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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요코하마 이춘규특파원|신세대 학자 오구라 기조 도카이대 조교수(한국철학)는 겨울연가 열풍 효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기여할 것으로 봤다.다만 역사 문제가 다시 부각될 내년에는 고비를 맞을 것으로 봤다. 자택 인근 요코하마 시내 한 호텔에서 오구라 교수를 만났다.많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하필 왜 겨울연가인가.그는 겨울연가가 일본인의 향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중년 여성들의 20∼30년 전 순수한 사랑을 되새기도록 자극했다는 얘기다.일본인에게는 억제당하는 직설화법도 신선했단다.한국어에 대한 분석은 독특했다.일본인들은 한국어가 강하고,거칠고,폭력적이란 이미지를 가졌었단다.학생운동·반일시위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그런데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말이 부드럽고,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언어라는 이미지가 정착됐다나.말이 음악같기도 해 한국어 바람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한국,한국어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현상이 ‘무서울 정도’라고도 표현한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겨울연가처럼 이상적인 사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역시 우려했다.드라마 촬영지 방문도 독특하게 분석했다.약 1100년 전부터 수백년간 일본인들은 순례를 집단으로 행해 종교적 해탈감을 맛보았다고 한다.그런 잔재들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남이섬을 찾는 것도 비슷하단 주장이다. 오구라 교수는 겨울연가 돌풍을 1회성으로 보지는 않았다.역사적 배경이 있단다.일본이 한국을 배울 만한 나라로 여긴 것은 두 차례.첫번째는 7세기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만들 때 이른바 백제 신라의 귀화인들이 문화를 갖고 일본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가 제도와 문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 시대다.도쿠가와는 7년의 전화를 봉합하기 위해 “나는 도요토미와는 완전히 다르다.주자학의 선배로서 조선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해 국교를 재개하며 조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번이 세번째 한국 배우기란다.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파트너십 선언,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언론들이 한국에서 배우자는 바람이 일었다는 것이다.겨울연가 종영 이후에도 “한국의 작품들이 일본인에게 계속 매력있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겨울연가는 잊고 지낸 이웃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촉매제였다는 분석이다. 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며 갑자기 젊은 여성들이 홍콩에서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고,월드컵 등 축구를 통해서 젊은 남성이 한국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았던 중년 여성들이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알기에 나서 일본 전체 세대가 한국알기에 동참했다.물론 서울올림픽 때 한국바람이 일다가 독도·위안부 문제 등으로 반일,혐한 분위기로 돌변했듯이 이번에도 역사인식 문제나 한국의 친일파 진상 규명 등 넘어야 할 변수가 많다고 우려했다.그 고비가 내년이란 분석이다. 재일동포들의 소외감도 우려했다.한·일 가교역을 담당했던 동포들이 직접교류 확대로 역할이 축소되는데다,재일교포의 고난은 잊어버리고,겨울연가의 영향 때문에 역사 문제는 외면하고 여행·소비 위주의 교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는 얘기다. taein@seoul.co.kr
  • “日 역사왜곡 저지” 韓中日 시민단체 나섰다

    일본 우익단체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한·중·일 3국의 시민단체가 손을 잡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3국의 역사왜곡 시정운동단체로 이뤄진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13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1년 왜곡 교과서 파동을 일으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후소샤(扶桑社)의 교과서가 내년 4월 새로 생기는 도쿄 도립학교 등에서 채택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단체가 일본 교육당국의 2005년 교과서 검정을 앞두고 ‘10% 이상 채택’을 목표로 신설학교를 공략하고 있다.”며 “도쿄도의 신설 중·고 일관학교를 타깃으로 삼고 대책본부까지 만들어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단체가 2001년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률이 0.039%에 그친 이후 ‘복수를 하겠다.’고 주장해 왔다.”고 덧붙였다. 일본측 대표단장인 ‘어린이와 교과서전국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은 “후소샤 교과서에 대해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이 ‘평가한다.’는 발언을 하고,자민당도 전면 지원을 선언하는 등 채택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면서 “2001년에는 근소한 차이로 후소샤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은 지역이 많았는데 도쿄도에서 이 교과서를 채택한다면 다른 지역에서 지지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이 교과서의 채택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2001년의 한·일간 역사교과서 파동이 내년에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회견 직후 서울시청을 찾아 ‘중·고 일관교의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는 도쿄 네트워크’의 협조요청서를 전달했다.요청서를 전달한 양미강 상임공동운영위원장과 다와라 사무국장,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사회과학원 왕시량(王希亮) 교수 3국 대표는 “왜곡교과서가 도립학교 지정 교과서로 채택된다면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도쿄와 서울시의 우호관계에 중대한 장애로 작용할 것”이라며 서울시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후소샤 교과서는 2001년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 때 문제가 됐던 8종의 교과서 가운데 역사인식 측면에서 가장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당시 한국 정부의 ‘일본 역사교과서왜곡 대책반’은 일본측에 전달한 분석자료에서 “후소샤 교과서가 군대위안부 강제동원과 난징(南京)대학살 사건 등을 누락시키고,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일제의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한국의 피해를 축소·은폐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열린세상] 고구려사와 관념의 국제정치/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미래전략硏 공동대표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로 한국외교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고구려사 왜곡문제는 두 국가간 고대사가 과연 누구의 것이냐를 놓고 한판 벌이는 외교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이러한 독특한 사안의 외교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어쩌면 탈출구 없는 외교적 소모전이 될 수 있는 이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이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흔히 외교에 동원되는 수단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물리적 힘을 떠 올린다.그러나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고의 구성물,즉 관념적인 것이 물리적 힘과 병행하여 외교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대표적인 것이 인권,민주주의,과거사 등이다.이러한 외교의 관념적인 수단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상대국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사용된다.인권,민주주의,수치스러운 과거사 등을 무기로 하여 한 국가가 상대국의 국내정치나 외교행태를 변화 내지 억지하고자 하는 압력을 넣는다.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미국의 대 중동정책이나,대북 및 대 중국정책이 그러한 예이고,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망언과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하여 보여온 외교가 또한 그러한 예이다. 둘째,이 수단들은 어느 정도 인류의 보편성을 담고 있다.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하여 부정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없을 것이며,과거의 잔혹행위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는 역사인식에 있어서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수단을 통한 압력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실효성이 있다.경제력과 심지어는 군사력에 있어서도 하위에 있는 한국과 북한이 일본에 대하여 외교적으로 큰소리 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과거사 문제의 보편성에 대한 인류 및 양국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이러한 관념의 수단들은 보다 상위의 관념체계인 민족주의와 연결될 때 그 사안이 국내정치적인 폭발성을 가진다.특히 피해의 경험과 역사를 가진 국가에 있어서는 그 폭발성이 더욱 크다.자국민이 비민주적인 형태로 인권의 유린을 당한 경우가 발생하거나 역사적인 망언이 발생할 경우 국내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여론의 반향이 생겨난다.미국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이나,중국에서의 일본인의 집단 매춘 관광,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이 피해국의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국내정치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고구려사 문제는 관념의 국제정치 사안이라는 동일한 범주의 사안이지만 그 성격이 앞에서 열거한 사안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선 고구려사는 한국이 중국에 압력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실효성이 적은 수단이다.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중국이 어기고 있는 그러한 문제라기보다는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난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근대민족국가와 그에 따른 민족주의의 성립이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닐진대,근대적 의미의 국경선과 민족의식이 공유되지 않았던 아주 먼 옛날의 고대 국가가 우리의 역사인지 저들의 역사인지를 보편적으로 합의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사안은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국내정치적으로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따라서 외교적으로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사안을 정부가 여론에 휩쓸려 밀어붙이다 보면,국내적인 비판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어 스스로 국내외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이미 있었던 역사 해석을 중국 정부가 바꾸는 것은 일단 의구심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중국정부의 입장변화가 중국의 팽창적 민족주의로 연결되지 않도록 한국정부는 필요할 때마다 따지고 견제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정말 관념의 국제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따져서 적절히 해야 할 것이다.이 문제는 여론과 정치인의 감성에 이끌려 벼랑끝으로 시끄럽게 외교를 몰 그런 사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미래전략硏 공동대표
  • [이런 책 어때요]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고모리 요이치 지음 오에 겐자부로는 9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모호한 일본의 나’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전후 일본 사회는 ‘모호함’ 그 자체로 읽힌다.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 강변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끊임없이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나라 일본.사회운동가인 저자는 궤변과 책임회피로 일관한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 800자를 분석,일본 사회에 만연된 모호한 역사인식의 실체를 벗긴다.천황의 ‘옥음방송’과 ‘인간선언’은 종전선언이라기보다는 패전후 일본의 전략을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1만 2000원. ●문자제국 쇠망약사/이남호 지음 전자영상시대의 문자의 위상과 쓰임을 고찰한 산문?저자(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자문화가 세상을 재원시화(reprimitivization)시킬 것”이라는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의 주장은 과격하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이 시대를 읽는 하나의 틀로 삼을 만하다고 강조한다.문자시대가 물러가고 전자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기본 생각.문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내면성’이 현대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점점 약화돼가고 있는 것도 문자문화의 쇠퇴와 전자문화의 확산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만 1000원. ●사랑,그 환상의 물매/김영민 지음 고전적인 구애의 메커니즘이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하지만 저자(한일장신대 교수)는 그런 오래된 사랑의 방식에 이의를 단다.사랑은 결코 마음의 거래방식이 아니라는 것,마음은 연정의 증명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면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사랑법은? 그것은 ‘말’과 ‘살’로 엮어가는 연하디연한 놀이다.철학자다운 사랑의 아포리즘이 퍽이나 감각적이지만,요령부득의 언어 유희는 인공조미료 냄새를 솔솔 풍긴다.저자의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한 85편의 ‘사랑’글들을 묶은 전작 산문집.1만 1000원. ●세계 최대의 축제 올림픽 이야기/클라이브 기퍼드 지음 고대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은 코로에보스라는 젊은 요리사였다.그는 기원전 776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린 첫 올림픽의 유일한 종목이던 스타데 경주(192m 달리기)의 우승자였다.그후 고대 올림픽에는 원반던지기와 창던지기,디아울로스(스타디움 두 바퀴 달리기),권투,레슬링,멀리뛰기,전차경주 등 많은 종목들이 추가됐다.고대 올림픽은 운동경기이자 종교적 축제였다.따라서 대회 기간엔 휴전이 선포돼 전쟁이 멈췄다.여성은 선수로든 관중으로든 올림픽 경기장 안에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올림픽에 대한 총체적인 안내서.9500원. ●생명을 치유하는 맛있는 물/하야가와 히데오 지음 물의 정체를 밝혔다.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하수도와 상수도가 교차하는 일이 없다.하지만 일본은 하수가 상수와 하나로 합쳐저 다시 사용된다.질산성 질소는 정수장에선 완전히 여과되지 않기 때문에 상수에 하수의 질산성질소가 섞여 버린다.지하수는 안전하다는 신화는 옛말.책은 건강에 좋은 기능수 중에서 환원수에 대해 설명한다.공기중에 방치된 철이 녹스는 것,종이가 타서 재가 되는 것,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 등이 산화반응.환원은 산화된 상태를 원상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산화환원전위가 낮고 항산화력도 강한 물이 진짜 환원수다.9500원.
  • 양국정상 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1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양국관계 증진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다음은 질의 응답.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일 스포츠 및 문화교류가 활발해졌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인식,야스쿠니 신사,독도문제 등 여러 현안이 남아 있다.이런 장벽을 어떻게 메워나갈 것인가. -노 대통령 한·일간 새로운 미래,동북아의 새 미래를 위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를 갖고 계속 논쟁하고 양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정부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각기 자기의 판단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공·사석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가끔 있을 수밖에 없다.독일과 프랑스,독일과 폴란드 간에는 정부까지 참여하고 민간학자 사이에서 연구를 통해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교육의 방침에 관해 합의를 이뤄내 각각 역사교과서 문제가 해결됐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북핵 완결에 대한 한·미·일간 온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고이즈미 총리 답변에 앞서 말하겠다.일본과 북한은 재작년 9월17일 협의했던 ‘평양선언’이 성실하게 이행되지 않는 한 수교는 없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그 선언 속에서 납치문제,핵문제,미사일 문제 등이 통합적·포괄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양국간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북한과의 수교 입장이 후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납치문제,미사일 문제,핵문제 해결이 필요하나 가능한 한 2년내에 (수교를) 하고 싶고,빠르면 1년내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북핵 대응에 3국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대응 방법에서 차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제주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양국정상 기자회견

    양국정상 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1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양국관계 증진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다음은 질의 응답.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일 스포츠 및 문화교류가 활발해졌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인식,야스쿠니 신사,독도문제 등 여러 현안이 남아 있다.이런 장벽을 어떻게 메워나갈 것인가. -노 대통령 한·일간 새로운 미래,동북아의 새 미래를 위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를 갖고 계속 논쟁하고 양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정부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각기 자기의 판단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공·사석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가끔 있을 수밖에 없다.독일과 프랑스,독일과 폴란드 간에는 정부까지 참여하고 민간학자 사이에서 연구를 통해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교육의 방침에 관해 합의를 이뤄내 각각 역사교과서 문제가 해결됐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북핵 완결에 대한 한·미·일간 온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고이즈미 총리 답변에 앞서 말하겠다.일본과 북한은 재작년 9월17일 협의했던 ‘평양선언’이 성실하게 이행되지 않는 한 수교는 없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그 선언 속에서 납치문제,핵문제,미사일 문제 등이 통합적·포괄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양국간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북한과의 수교 입장이 후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납치문제,미사일 문제,핵문제 해결이 필요하나 가능한 한 2년내에 (수교를) 하고 싶고,빠르면 1년내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북핵 대응에 3국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대응 방법에서 차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제주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고구려사 “시민 속으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자국사 편입시도.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두 나라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점차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이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구체적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 것으로 우긴다.’는 식의 감정적이고 표피적인 인식이 주류는 아닐까? 이런 현실은 사회적 어젠다가 전달되는 과정이 지닌 한계에서 비롯한다.고구려사 왜곡 등 학술적 이슈는 주로 심포지엄이나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이중 심포지엄은 자료집이나 토론과정이 전문가 중심이어서 일반인들로서는 무슨 소린지 좀처럼 알기 어렵다.한편 대중의 인식을 도와주는 언론도 ‘지면 제한’이라는 한계 때문에 사실의 일부만 전달될 수밖에 없다. 21∼23일,28∼30일 두 차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소재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여는 ‘중국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바로 알기’ 시민강좌는 이런 문제의식이 담긴 기획이다. ‘대중의 눈’으로 고구려사 왜곡의 진상을 밝혀서 참여도를 높인다는 취지아래 마련된 이 강좌는 ‘파워 포인트’를 이용하여 도표·삽화 등 다양한 시각자료를 곁들이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내용도 일반대중이나 중고생이 알 수 있도록 간략하고 재미있게 꾸몄다. 첫날 주제인 ‘중국 동북공정의 추진배경과 역사인식’(윤휘탁 박사)의 경우,이전에는 ‘동북공정’만 설명했다면 이번 강의는 중국 정부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역사 인식을 쉽게 풀어가면서 동북공정을 추진하게된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 강연방식은 2,3일째의 주제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내용, 고구려사의 전개와 특성’(김현숙 박사),‘고구려의 세계 문화 유산과 벽화 세계’(김일권 박사) 등에도 적용된다.참가비는 무료.(02)2118-1700.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중국의 동북공정 대응논리 찾아라

    중국 쑤저우(蘇州)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이 각각 신청한 고구려 유적에 대한 개별 등재가 확정된 가운데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동북공정 프로젝트와 관련한 첫사업을 시작해 주목된다. 고구려연구재단은 중국 정부·학계의 총체적인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맞서 대응논리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 예산으로 설립됐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었다.그러다가 최근 2004년도 공동기획연구 및 자유연구과제를 선정,이를 위한 공모 공고를 낸 것이다. 연구재단이 내건 총31개의 공모 과제는 재단에서 지정한 과제를 연구자 5인 이상이 수행하는 공동기획연구(6과제)와 개인,또는 복수의 연구자가 재단 설립 취지에 맞춰 자유롭게 수행하는 자유연구(25과제)의 두 가지로 구성된다. 이가운데 공동기획연구에 포함된 6개 과제는 ▲고조선과 부여의 주민구성 및 국가형성▲고구려의 국가형성▲고구려의 고분벽화 연구▲고구려와 발해의 계승관계 연구▲한·중 외교 관계에 대한 연구▲근대 한·중·일·러의 국경 획정과정 연구이다.지원금은 과제당 5000만원.한편 자유연구는 연구자 4인 이상이 참여하고 4개 이상의 세부주제로 구성되는 5개 ‘공동연구’(지원금 과제당 4000만원)와 한 사람이 하나의 과제를 정하는 20개 ‘단독연구’(지원금 과제당 1000만원)로 구성된다. 자유연구의 범주는 ▲한민족의 형성▲동북아 고고학▲고조선사▲부여사▲고구려역사▲고구려 문화▲발해사▲고대 한·중 관계사▲고려-근대 한·중 관계사▲고려-근대 한·일관계사▲고려-근대 영역문제▲근대 민족 문제▲북방민족사▲한·중·일 역사인식 등이다. 관련 서류 접수는 10일 낮12시까지 마감하며,선정 결과는 이달중 통보한다.(02)2118-1700.˝
  • [열린세상] 민족주의 버릴 것인가/최광식 고려대 역사학 교수

    최근 전국역사학대회와 철학연구회 학술대회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주제로 하여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가 열렸다.역사학 관련 학회뿐만 아니라 철학연구회에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단순히 역사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에서 논의의 쟁점이 된 것은 민족 단위의 역사 인식과 서술을 고수할 것인가,아니면 이를 벗어나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즉 고구려사의 귀속문제에 대해 중국과 한국이 갈등을 벌이는 것은 민족 중심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민족중심의 역사 인식과 서술을 벗어나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즉 종래의 민족주의적 관점의 역사인식과 서술을 탈피하고 세계화시대에 맞추어 역사 주체의 단위를 민족을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민족주의는 더 이상 세계화시대의 지향하여야 할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고구려사를 가지고 중국과 한국이 서로 자기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싸움을 하고 있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왜냐하면 중국은 2002년 2월 ‘동북공정’을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고구려의 역사를 ‘일사양용론’적 입장에서 인식하고 서술하였다.더구나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아직도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다.즉 고구려의 역사의 귀속문제에 대해 중국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최근의 일로서 역사학적 접근이 아니라 정치적 접근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역사를 보는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한 왜곡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중국이 애국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 입장에서 고구려사를 새삼스럽게 귀속시키려 한다는 점을 일차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그러고 나서 우리의 역사 인식과 서술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공격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공격적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을 해치고 식민지화하는 배타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저항적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일제시대 민족주의가 없었다면 우리가 굳이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민족중심의 입장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민족주의사학이 필요하였던 것이다.물론 광복이후에는 민족중심에서 벗어나 민족과 세계를 함께 아우르며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는 신민족주의사학이 제창되었으며,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즉 세계사의 보편성과 한국사의 특수성을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보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서구와 같이 국경을 허물고 유럽공동체와 같이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시대에 민족이라는 개념은 전혀 필요가 없는 개념인 것인가?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서구사회와 역사적인 경험과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우선 우리는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해 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아직 민족국가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물론 민족중심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그 범위를 넓히고 보다 넓은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따라서 민족의 특수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을 함께 고려하면서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는 자세가 아직도 유효한 것이라 생각한다.배타적이 아닌 열린 민족주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민족국가를 이룩하지 못한 현재 아직도 유효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최광식 고려대 역사학 교수˝
  •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와다 하루키 지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급속한 국제화·세계화의 조류를 타고 있다.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과 상품의 이동으로 어느 국가도 국제사회 속에서 고립된 채 외로운 섬으로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이와 동시에 지역 국가간의 결속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역주의 역시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지역화의 물결 속에서도 동북아시아는 첨예한 민족주의적 갈등과 안전보장문제에 휩싸여 있다.영토,역사인식 문제와 더불어 북핵위기라는 안전보장상의 문제가 동북아 국가들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즉,동북아에서는 세계화·지역화·민족주의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지역적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최근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 AN)+한 중 일’이라는 지역공동체가 제안되기도 하였다.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와다 하루키 지음,이원덕 옮김,일조각 펴냄) 역시 이러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착안하여,1990년 이래 저자가 구상해 온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의 배경과 필요성,그리고 장애요인들을 검토하여 구체적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참된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북아시아 6국(한국·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과 몽골’의 동북아시아 국가연합(ANEAN)을 설립한 후,ASEAN과 통합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며,동북아 공동의 집의 중추적 역할은 한국과 동북아 각 지역에 살고 있는 동북아 코리안이 주도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즉,전전 일본이 제창한 일본 중심의 대동아 공영권이 아닌,한반도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지역주의의 창설을 일본인 학자가 제창하고 있는 색다른 책이다. 저자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동경대학교 명예교수)는 김대중 납치사건,민청학련사건 등과 관련된 일본의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역사학자이며,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와다 교수는 책에서 동북아가 이질적이고 다원적인 지역이며,갈등과 대립의 지역이지만,동북아에서 공동의 집이 가능하다면 전 인류적 공동의 집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이 책이 주장하는 동북아 공동의 집은 북핵위기 등 안전보장위기의 극복,긴급사태에 대비한 상호원조체제의 정비,공동의 환경보호,FTA 등의 경제공동체 형성,국가간의 문화교류 등을 골격으로 할 것이며,궁극적으로는 정치와 안보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어떠한 형태로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ASEAN+3로 추진할 것인가,아니면 우선 ANEAN을 형성한 후 ASEAN+ANEAN으로 추진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코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예를 들어 경제협력은 ASEAN+3로,안보대화는 ANEAN을 토대로 하여 지역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양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북핵문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공동의 안전보장 확보는 공동체의 기본 조건이다.따라서 지역문제해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6자회담을 발전시켜 동북아 공동체의 기초로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하겠다. 비록 6자회담이 현재는 북핵문제의 해결이라는 한시적인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으나,이 책에서 공동의 집의 골격의 하나로 거론하고 있는 ‘동북아 비핵화지대 구상’ 등은 북핵문제해결 이후에 6자회담을 지역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요한 의제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은 저자의 표현대로 유토피아일 수 있다.그러나 동북아 공동의 집이 가능하다면 인류 공동의 집,전 지구 공동의 집 또한 가능할 것이며,이러한 유토피아에의 지향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1만 3000원. 전진호(광운대 일본학과 교수)˝
  • [사설] 日법원도 위헌판결한 야스쿠니 참배

    일본 후쿠오카지방법원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위반이라고 판결했다.2차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어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의 항의를 줄기차게 받아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 평화헌법에도 반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후쿠오카지법은 “자민당내와 국민으로부터 강한 반대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몰자 추도 장소로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 없는 야스쿠니 신사를 4번이나 참배한 것은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판결 이후에도 “참배는 개인적 신조”라며 참배 계속을 공언하는 등 이웃나라의 비판과 자국의 헌법을 묵살하는 언동을 늘어놓고 있다.선린우호의 국제관계를 이끌어가야 할 한 국가 지도자의 양식이 이것밖에 안되는지 심히 우려스럽다.일본 정부는 총리는 물론 모든 정부 인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해야 한다.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이루 형언키 어려운 피해를 입은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수립해 나가기 위해 일본 정부는 전범을 기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전후 33년이 지난 1978년 A급 전범을 비밀리에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참배하는 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모독이다.만일 독일 총리 등이 히틀러,괴링,히믈러 등 나치 전범을 추도한다면 구미 어느 나라가 좌시하겠는가. 정부는 차제에 일본 총리의 그릇된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중국을 배워야 한다.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을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하며 전범을 제외한 순수 전몰자 추도장소의 건립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판결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는 것은 이웃나라와의 미래를 위협하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 [이런책 어때요] 장희빈, 사극의 배반

    사극이 대중의 역사인식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더구나 ‘국사’란 이름으로 획일적 역사해석을 강요받아온 우리의 경우 더욱 그렇다.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역사적 상대주의에 익숙하지 못한 지적 풍토에서 TV 사극의 ‘역사해석’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된 것이다.사극이 펼치는 역사도 과연 역사인가.저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온 사극 ‘장희빈’의 예를 들어 문제에 접근한다.대중이 사극에 대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진짜 같은 거짓’이지 ‘거짓 같은 진짜’가 아니라는 게 책의 결론이다.1만 3000원.
  • 고은이 노래하는 비극·절망의 풍광/연작시 ‘만인보’ 16~20권 출간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萬人譜)’ 16∼20권이 창비사에서 나왔다.1986년 처음 세상에 나온 ‘만인보’는 97년 15권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민중의 다양한 삶의 결을 노래하면서 총체적인 역사인식을 불어넣어왔다.7년 동안 호흡을 고르며 정제해 내놓은 이번 연작시 719편이 태어난 공간은 민족사의 대전환기인 식민지·해방공간·한국전쟁 전후를 아우른다. 시인은 이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삶과 맞닥뜨린 죽음의 상황,전래사회가 무너진 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실존과 폐허(…),비인간화를 몰고온 전쟁 등이 비극의 풍광으로 그려진다.” 시인이 이 ‘폐허’에서 부르는 절망의 노래에는 이번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김일성·조소앙·이승만·신익희 등 좌우익을 망라한 정치인을 비롯,임화·이중섭·선우휘 등 예술가와 남인수·현인·김정구 등 가수 등이 시인의 웅장한 서정성으로 살아난다.또 한라산을 핏빛으로 물들인 빨치산과 토벌대,창녀,장작 장수,노천 사진사 등 이름없이 그 공간을 메웠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이 역사 위로 복원된다.사람만이 아니다.1300명의 양민이 학살당한 진주 초등학교 운동장,서울 변두리 판잣집 풍경이 또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살아나 스산하던 당시의 진상을 증언한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해설에서 “당대의 숱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역사의 모습들을 섬세하게 직조하면서 역사의 진행을 거대한 양감으로 재구성한다.”고 상찬한다.시인은 올 하반기에 5권,내년에 5권을 더 보태 모두 30권으로 ‘만인보’라는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이종수기자
  • [日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3)새 한·일 관계를 위해

    |도쿄 황성기특파원|시즈오카 현립대학의 조교수인 고하리 스스무(41)는 작년 11월 부산에서 값진 경험을 했다.자신의 제자들과 동서대 학생들이 한·일 두 나라의 내셔널리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10여명의 양국 학생이 원탁에 둘러앉아 시작된 토론은 금세 열기를 띠어갔다.일본 학생이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폐쇄적·배타적”이라고 비난하자,한국 학생은 “군사국가로의 회귀”,“동해를 ‘일본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배타적”이라고 맞받아쳤다.다른 일본 학생은 “반일(反日)은 한국에서 ‘힘의 원천’”이라며 “역사교과서,야스쿠니 신사참배,종군위안부 문제가 나오면 한국은 ‘과거’를 꺼내 일본을 때림으로써 민족적 우위의 쾌감을 얻어왔다.”고 주장했다.이를 듣던 한국 학생은 “힘의 원천이라든가,쾌감이라는 표현은 웃긴다.사실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토론은 갈수록 과열돼 분위기가 한때 험악해지기도 했다.하지만 토론이 끝난 뒤 어떤 일본 학생은 “서로 가슴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공개된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감상을 털어놓았다.뒤풀이에 간 이들은 뜨거웠던 토론은 깡그리 잊은 듯 얘기꽃을 피웠다. 고하리 교수는 “두 나라의 20대들이 역사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이나 반일감정을 때에 따라 이용하는 한국 수구파 정치인들보다는 훨씬 세련돼 있었다.”고 당시의 느낌을 들려준다.그는 “독도(일본명 竹島·다케시마)나 동해(일본해)의 명칭,일본의 우경화,교과서 문제 등 우호나 교류의 장에서는 터부시해 온 얘기를 앞으로는 거부하지 않고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美·中 양대국 틈서 공동이익 추구해야 한국과 일본의 주역인 3040세대,그들은 전쟁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똑같다.그러나 한국쪽이 민주화를 이룬 성공체험이 있다면,일본쪽은 70년대 파산한 학생운동을 보고 자라며 좌파적·진보적 활동의 무의미함을 실감한 세대이다. 한국쪽이 사회에 진출한 90년대 들어서 가까스로 성장의 과실을 누리기 시작했다면,일본쪽은 정점에 달했던 80년대 중반의 ‘재팬 넘버 원’을 맛보다,거품경제가 붕괴되고 ‘잃어버린 10년’,좌절의 90년대를 보냈다. 반일감정이 옅어지는 대신 북한을 의식하고,반미를 비롯한 민족주의 성향이 짙어진 한국의 3040,이전 세대와 달리 식민지배에 ‘빚’이 없고,싹트는 내셔널리즘 속에서 국가를 인식하기 시작한 일본의 3040이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면 좋을까. 한국의 386세대 국회의원들과 교류가 두터운 고바야시 유타카(39·참의원) 의원은 이렇게 제시한다. “정치도 경제도 글로벌화해 가는 시대에서 두 나라가 반목하면 어떤 손해가 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FTA(자유무역협정)문제만 해도,중국과 맞설 때 양국이 제각기 싸우는 것과 공동운명체로 싸우는 것,어느 쪽이 합리적인가를 생각하면 해답은 보일 것이다.” 중국의 위협에 한·일이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은 평론가 미야자키 데쓰야(41)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영토확장에 야심이 있다거나,전쟁국가가 된다는 것은 망상이다.한국이 따뜻한 눈길로 봐줬으면 한다.미·중 양대국에 낀 일본과 한국이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구축해 가야 한다.”(미야자키) 그러나 새 한·일관계 구축이라는 이상과 목표에도 불구하고,신보수 일본인들의 역사인식,대 한국관에는 적지 않은 거리와 괴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주재원인 한국인 A(40)씨는 술친구인 일본 신문기자(38)에게서 들은 얘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김치나 감자탕은 물론 한국 영화도 좋아하는 그 친구와 한·일관계에 대해 가볍게 토론하던 중의 일이었다.“1910년의 한일합방은 힘이 있는 나라가 힘이 없는 나라를 식민지 지배하던 당시 역사의 필연이었다.” 친구의 이런 말에 A씨는 취기가 달아났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아소 타로 전 자민당 간사장)거나 ‘조선인이 한일합방을 바랐다.’(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망언은 비난하면서도 그들 망언의 주인공과 비슷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 친구에게 벽을 느꼈다.”(A씨) 지난해 한국인 무비자 특구를 일본 정부에 신청한 기쿠치(菊池)시는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무비자가 실시되면 일본에서의 한국인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밑도끝도 없는 음해성 메일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도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는 마찬가지다.경찰 공무원인 가와무라(37·가명)는 지난해 11월 어학연수를 하던 한국에서 난처한 체험을 했다.첫 대면한 한국인으로부터 “당신이 한국사람인지,일본사람인지를 가리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서 “독도는 어느나라 땅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대답했던 그는 “역시 일본사람”이라며 그 한국인에게서 무안을 당했다. 한국쪽이 내셔널리즘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도요가쿠엔대학 전임강사인 사쿠라다 준(38)은 “지금 한국이야말로 전전의 일본 같은 내셔널리즘 과잉이 아닌가.”고 주장한다.“한국인이 일본에 대항의식을 갖고 접해 올 때 어색한 감정을 갖는 일본인이 많다.”(사쿠라다) ●젊은세대 한·일관계 큰 굴절 없어 생각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도 고바야시 의원은 두 나라 젊은 세대의 역할을 강조한다.“먼저 (망언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만일 야스쿠니 참배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마찰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원만히해결할 수 있는 신뢰조치를 한·일의 젊은 세대가 만들어가야 한다.”(고바야시) 그 조치의 좋은 사례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나,한·일 FTA교섭을 꼽는다. 일본 팝음악에 빠진 한국의 젊은이들을 취재해 ‘좋아해서는 안되는 나라’라는 책을 써낸 간노 도모코(40)는 한·일관계가 ‘제2의 단계’에 들어갔다고 본다.그 증거로 일본 언론에 한국 386세대와 관련된 기사가 늘어난 점을 꼽는다.“한국의 중추가 새 세대로 자리잡았다고 일본의 동세대가 의식하기 시작했다.”(간노) “2002년 월드컵,영화,드라마,음악 같은 양국문화의 유입으로 젊은 세대의 한·일관계에는 큰 굴절이 없다.”고 분석하는 그는 “사고방식이 다른 점을 피부로 느끼는 세대가 늘어나는 것은 양국관계가 바뀌어갈 전조”라고 내다봤다. marry04@ ■이종원 릿쿄大 교수 진단 |도쿄 황성기특파원|릿쿄대학의 이종원(李鍾元) 교수는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당장은 위험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그는 “반드시 과거회귀는 아니지만 젊은세대들은 체계적 논리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탈역사적 내셔널리즘이어서 낡은 역사,낡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일부 정치적 의도에 쉽게 동원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서 내셔널리즘을 찾는다면. -과거 세대가 역사 대 반역사의 구도라면,젊은 세대는 한 마디로 탈역사이다.역사의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한일합방을 ‘힘의 정치’에 의한 역사라고 쉽게 말해버린다.그렇다고 역사를 미화한다는 의식도 없다.일종의 중립적 태도다.이전 세대처럼 한국을 깔본다거나 전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없다. 한국을 역사적 구조에서 보지 않고,평면적·단락적으로 보는 세대가 늘었다.분명한 시대변화이지만 그래서 혼란스럽게 한다. 신·구 내셔널리즘의 관계는. -얽혀 있다.신 내셔널리즘이 명확한 사고구조나 언어표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실체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표현은 히노마루(국기),기미가요(국가) 같은 옛것을 쓴다.보수정치가 전략적·정치적 동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들의 내셔널리즘에 낡은 옷을 입히려고 하고 있다.때문에 새롭게 등장하는 내셔널리즘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객관적 대응을 해야 한다. 이것들은 위험하고 공격적이고,배타적이고,우파적인 대내외 정책과 맞물려 있다. 새 세대에도 양면이 있을 텐데. -긍정·부정 양면이 있다.한국,한국문화에 대해 편견이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일관된 체계가 없으니까 일관된 체계를 갖고 있는 전전회귀형 내셔널리즘에 쉽게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30∼50대,특히 40대 이후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를 좋아한다.언론·학계도 그렇다.젊은 세대들은 다나카 야스히로 나가노 지사 같은 혁신파를 지지하면서도 이시하라에게도 친밀감을 표시한다. 한국 젊은세대의 내셔널리즘이라면. -월드컵에서의 붉은 악마를 한국의 내셔널리즘이라고 흔히 예로 들면서 더불어 반미를 꼽는다.그것은 일본의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단순화시키면 아시아가 1945년 이후 정치·경제적 성장,민주화를 이루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발견했다.미국·유럽·일본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지 않는 세대가 중국이건,한국이건 나오고 있다. 한·일 내셔널리즘의 틀린 점이라면. -아시아 전체가 유럽과 미국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추세인데,과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일본만 1990년대 경제침체로 좌절했다.그래서 과민해졌다.내셔널리즘은 자신감이 넘칠 때는 개방적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배타적이고,히스테리컬해지고,병리적이 된다. 한국도 세계화라든가,고구려붐이라는 국토회복운동 같은 내셔널리즘적인 현상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 같다.한국쪽은 자기정체성은 강하지만,반면 글로벌하고 동아시아를 얘기한다.젊은이들의 국가별 호감도 조사에서 1위 일본,2위 북한,3위 중국 순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같은 이유에서인 것 같다. ●이종원 교수는 1953년 대구출생.민청학련 사건으로 서울대를 중퇴한 뒤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대서 법학박사.도호쿠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직(법학부).저서로는 ‘동아시아 냉전과 한미일 관계’ 등.
  • 고구려역사 지키기 학술대회/고구려史 뺏기면 고조선도 뺏긴다 학계 공동대응 방안 모색

    ‘정치적 목적에 이끌리는 불순한 중국학계의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국책사업,이른바 ‘동북공정’에 한국 학자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나섰다.9일 오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 학술발표회’.한국고대사학회,한국사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련 17개 학회가 모여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를 한목소리로 성토하는 한편 거국적인 공동대응과 남북공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모임은 그동안 학회 혹은 개인이 개별적으로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학자들이 실천적인 대응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첫 공식모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정부에 대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심포지엄에 들어간 학자들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허구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참석자들은 일단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바탕을 둔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족을 중심으로 57개의 소수민족을 같은 테두리에 넣으려는 큰 목적아래 남북통일 후 불거질 영토문제에 쐐기를 박으려는 사전조치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 학계는 중국 ‘동북공정’의 요체를 ▲고구려인의 뿌리는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고구려 건국지역 및 기본 관할범위가 중국 경내이고 ▲고구려는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은 종속관계로 정리했다.따라서 ▲수·당의 고구려 원정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변방 할거세력 통제이며 ▲고구려 멸망 이후 대다수 유민이 한족(漢族)으로 편입했으며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자가 아니며 역사적 연속성·상관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우리민족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농경을 영위하던 예맥족과 한족을 근간으로 형성되었고,이들은 고조선 멸망 이후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서 다양한 정치체제를 이루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으로 정립되었고,통일신라와 발해를 거쳐 고려로 통합되었다.”며 중국의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참석자들은 학술발표회를 마친 뒤 기존 한국고대사학회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를 모든 학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대책위로 확대 개편해 정부 차원의 공식 대책기구가 마련될 때까지 중국 정부에 대한 대응과 여론 확산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김성호기자 kimus@ ■“北 고분군 세계유산 등록 적극 지원을” 학술대회에서 가장 첨예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 북한이 제출한 평양의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의 지안(集安)지역 고구려 유적이 함께 등록신청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북한 고분군이 열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있는 북한 고분군의 등록을 위해 남한측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놓았다.무엇보다 남한측이 기술 및 재정 지원과 함께 문화유산위원회에 고구려 고분군의 정체성과 고유 문화성을 적극 알려야 하는 것으로 집약했다. 북한 고분군이 배제된 채 중국의 고구려 유적만 등록될 경우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목표가 그대로 달성되는 셈.고구려 역사의 중국사 편입에 지금보다 훨씬 힘이 실리게 된다. 우선 중국이 지안 일대의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여건상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따라서 고분군,특히 벽화고분에 대한 항온·항습 처리 등을 위해 북한에 전문가를 파견해야 하며 아울러 주변 정리사업을 북한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호기자 ■주요 발제 요약 ●최광식 고려대 교수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동북지방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동포의 법적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특히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해 추진한 것이다.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은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에 국한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그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따라서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공석구 한밭대 교수 중국학계가 고구려사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논리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다.그런데 중국,북한에 각기 나뉘어져 있는 고구려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중국학계는 논리적 문제점을 드러냈다.중국학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또 다른방안을 제시하였다.이러한 방안도 고위금용(古爲今用·옛것을 왜곡해 오늘에 활용한다는 뜻)의 시각 하에서 당시의 고구려사를 편입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만주지방의 고구려사는 중국의 영토 안에서 건국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지방할거정권이 세운 지방사로서 파악하고 있다(통일적다민족국가론).따라서 현재 북한 영토 안에 있었던 고구려사,즉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는 과거 고대중국의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사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결국 중국학계는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바탕으로 내세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 폐기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는 현재를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현 중국 영토 안에 존재하였던 고구려사를 인식하는 시각마저도 사료의 자의적인 해석과 무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이 부분은 앞으로 구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박경철 강남대 교수 고구려는 국가형성기 이래 환경적 여건의 취약성을 군사적 팽창정책으로 상쇄하면서 전형적인 ‘전제적 군사국가’를 지향했다. AD 4세기 말 이래 하나의 왕국의 단계로 넘어서서,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제국적 지배구조에 입각한 다종족국가로 웅비하였다. 고구려는 국초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한 군사적 팽창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천하지뇌(天下之腦)’에 해당하는 동몽고 문제에 접근하여 독자적 생존권과 패권의 보존 및 확산을 위한 대륙정책을 관철해나가고자 했다.그러나 수·당제국은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지배질서에 입각하여 안보를 보장하려는 세계정책을 강행하려 했다.곧 고구려와 수·당의 70년 전쟁은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수·당의 세계정책이 정면충돌하면서 빚어낸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중국학자들은 수·당이 고구려에 보낸 조서(詔書)를 근거로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하고 있다.조서의 상투성과 수사성을 감안하지 않은 즉흥적인 정책적 역사인식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모든 자료들은 고구려의 수·당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서조차 책봉·조공제도가 가동되고 있었음을 적시하고 있다.화이론과 책봉·조공론이 갖는 허구성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임기환 한신대 학술원 연구원 중국 역사학계는 고구려가 시종일관 중원 왕조와 종속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주장하면서,그 근거로 조공·책봉 관계를 들고 있다.고구려왕이 책봉을 받았다는 것은 곧 중원 정권의 관리임을 뜻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책봉의 형식만 글자 그대로 해석할 뿐이지,책봉의 역사적 성격은 간과하고 있다. 사실 조공·책봉 관계는 중외(中外)관계의 한 유형이며,중국적 세계질서를 규정하는 양식의 하나이다.특히 남북조시대 중국세력이 분열되어 주변국가에 대한 규제력이 약화된 상황에서는 책봉·조공은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외교관계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책봉·조공제는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서 적용된 외교형식이기 때문에,유독 고구려만 이를 근거로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도 하다.중국이 백제나 신라,왜 등과 맺은 책봉·조공 관계와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구려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피책봉국이지만,독자적으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여러 국가나 세력 집단을 포함하고 있으며,독자적인 천하관을 갖고 있다.중국학계와 같이 중원 왕조의 신속국(臣屬國)이란 해석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관념이다. 정리 서동철기자 dcsuh@
  • 책꽃이

    ●화랑(이종욱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한국인에게 화랑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애국 애족하는 젊은이들의 표상으로 화랑은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그런 화랑이 때로 부하의 임신한 아내와 관계를 갖고 뇌물을 주고 낭도를 거느리기도 했다면? ‘화랑세기’ 신봉론자인 저자(서강대 교수)는 ‘순국무사형’이라는 화랑도에 대한 단선적인 역사인식을 부정한다.신라의 화랑은 사랑하고 결혼하고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치기도 했고 반란을 일으키거나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던 인간 그 자체였음을 강조한다.1만 2000원.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박파랑 지음,아트북스 펴냄) 현직 큐레이터의 눈을 통해 한국 미술판의 현실과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난해하기만 한 미술비평,큐레이터를 잡무로 내모는 후진적인 화랑의 행태 등을 비판한다.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으로 쇠락해가는 지방도시였던 스페인 빌바오 시가 세계에서 수백만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 것 등의 사례를 들어 문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강조한다.9500원. ●그리스 신화 속의 여성들(베아트리체 마시니 지음,이현경 옮김,현대문학 펴냄)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에게 붉은 실을 건네 미궁을 빠져나오게 도와준 숨은 공신 아리아드네,제우스 신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전쟁에 나간 연인을 자신도 모르게 배신한 알크메네.형제간 전쟁에서 패배한 오빠의 시신을 매장해준 대가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안티고네,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죄로 패전국의 공주에서 노예로, 마침내 정부로까지 전락한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남성지상주의의 그리스 신화 속에서 그림자처럼 몸을 낮췄던 여성들의 비극적 삶을 되살려냈다.9500원. ●마라도 청년,민통선 아이들(최상운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그대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것은 나무도 아니고 강물이나 동물도 아니다.그대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 오로지 그대와 같은 존재들뿐이리라.”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야말로 진정 가슴에 새겨 둘 말이라는 것이다.가슴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만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메시지를 전한다.1만원. ●악마의 역사(폴 카루스 지음,이지현 옮김,더불어책 펴냄) “선은 악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신은 악마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저자는 선과 악에 대한 상대적인 관점에서 ‘악마’를 해석한다.사탄이 수많은 폐해의 근원으로 규정되지만 실은 세상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자 과학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2만8000원.
  • “한일합병 조선이 선택… 식민지배 인간적”日 이시하라 또 망언

    |도쿄 황성기·김수정기자|‘망언 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한일합병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쏟아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001년 ‘3국인 발언’으로 한국·타이완인을 비하한 적이 있는 그는 이번에는 조선이 합병을 선택하고,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인간적이었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 분노를 사고 있다. 망언은 28일 열린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전국협의회’의 도쿄 궐기대회에서 나왔다. 마이니치·아사히 신문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기조강연을 통해 1910년의 한일합병과 관련,“(일본은)결코 무력으로 침범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그는 “한반도가 분열돼 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니까,그들(조선인) 총의로 러시아·중국·일본을 택할까 하다 근대화가 뚜렷하고 얼굴색이 같은 일본인의 도움을 얻으려고 전세계 국가가 합의한 가운데 합병이 이뤄졌다.”고 합병을 정당화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그들의 감정으로 볼 때 화가 치밀고 굴욕적인 일이겠지만,그러나 어느 쪽인가 하면 그들 선조의 책임”이라고 마치 조선이 합병을 바랐으며 따라서 합병의 책임을 조선에 전가했다. 그는 “식민주의라고 해도 원래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다.”고 억지 논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올들어 과거사에 관련된 정치인의 망언은 3번째다.그의 발언은 드문드문 이어져온 일본 정치인들의 ‘과거사 망언’을 총정리하고 있어 주목된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바란 것”(아소 다로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5월31일),“한일합병은 유엔이 승인한 것”(에토 다카미 전 총무처장관·7월12일)이라는 망언이 역사의 일부분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사실에 기인한 망언이었다.여기에 한술 더 떠 황국사관에 뿌리를 둔 이시하라 지사의 망언은 합병과정,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극우 보수세력의 그릇된 한·일 역사인식을 거침없이 총체적으로 주장하고 있고,그런 망언이 일본 사회에서 큰 저항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북 대화파인 외무성 간부 집에 지난달 폭발물이 설치된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발언,물의를 빚었던 그는 “총재선거에서 이슈화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라고 할 만큼 의도적인 망언으로 유명하다. 이번 망언이 이뤄진 곳이 피랍자 가족 송환을 요구하는 집회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북 강경파인 이시하라 지사가 납치문제에 관한 보수세력의 대결집을 노리고 자극적인 발언을 흘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29일 이시하라 지사의 망언과 관련,외교부 당국자 논평을 내고 “일본의 책임있는 정치인이 그릇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시대 역행적 발언을 한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marry01@
  • 도마에 오른 ‘박노자’/하원호 교수 “근대역사 서술 깊이 아쉽다”

    러시아 출신의 귀화 한국인 박노자 (사진·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부)교수가 국내 학계로부터 정면비판을 받았다.진보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가 계간 ‘역사비평’ 가을호에서 박 교수의 역사인식과 글쓰기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향후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글은 하원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한국사)가 박 교수 의 ‘당신들의 대한민국’‘나를 배반한 역사’ 등 에세이를 서평형식으로 지적한 ‘역사는 배반하지 않는다-박노자의 한국 근대인식 비판’. 하 교수는 박 교수의 글쓰기에 대해 일단 “본받을 만하고 역사학의 입장에서도 흠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치켜세운뒤 “그러나 그의 역사학이 진일보할 수 있도록 근대역사 서술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 교수는 한말 계몽주의자들의 ‘국민’이라는 담론이 군사주의 배타주의 팽창주의를 갖고 있었고 이것이 박정희주의 담론의 토대가 되었다는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사유형태의 유사성은 인정하지만 박정희의 ‘국민’,그보다 앞서 이승만의 국민을 앞세운 사회통제정책은 한말의 계몽사상과는 무관한 일제말 파시즘의 유산이었다.”고 반박한뒤 박 교수의 이같은 오류는 바로 텍스트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특히 “박 교수가 정통 마르크시즘이나 최근 학문조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학문적 무기로 갖고 있지만 그의 근대사에 대한 글은 100년 전의 사실을 현재 우리와 그대로 연결시켜서 본다.”며 방법론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 교수는 “박 교수의 글은 충격과 파닥이는 상상력은 있을지라도 어둡고 긴 터널의 끝과 끝을 연결시켰을 뿐 터널 안을 뒤집고 다니는 역사학의 어렵고 힘든 고행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며 “한국사회의 소외된 자에 대한 넘쳐나는 애정에도 불구하고 농민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어 박 교수의 역사인식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중에서도 소수에 편향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역사문제연구소의 이번 비평은 그동안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습에 칼날을 들이대 온박 교수의 주장에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던 국내 역사학계에서 나온 첫 비판이어서 박 교수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김성호기자 kimus@
  • 駐日대사 지낸 최사용교수에 들어본 韓·日관계 / “21세기 8·15는 미래지향적 관점서”

    ‘8·15’는 오늘날 한반도 모습을 만들었던 ‘살아있는 역사’이다.일제 해방 58돌.‘한·일관계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며,한반도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평화학자로서,주일 대사를 지낸 최상용 고려대 교수로부터 들어봤다.최 교수는 “21세기의 8·15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이니셔티브(주도권)의 극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과거사 문제와 관련,“역사는 모래위에 쓰는 글이 아니며 없어지지 않지만,이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접어둘 수는 없다.”고 했다. ■최상용 교수 약력 ▲42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일본 동경대 정치학 석·박사 ▲미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객원교수 및 일본 연구소 연구원 ▲고려대 평화연구소 소장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한국 정치학회 회장 ▲한국 평화학회 회장 ▲한일문화교류위원회 부위원장▲주 일본 대사(2000.2∼2002.2)▲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한국현대사에서 8·15의 의미는. -58년 전 8·15는 일제 35년 통치에서해방되었다는 점에서 환희의 날이었지만,민족·국토 분단의 시작이었기에 비통한 날이었다.되씹어 보면 식민통치나 분단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 힘으로 결정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제는 우리에게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등 막강한 힘이 있다.국내 정치에서 통합력을 발휘하고 국제 정치에서 외교력을 구사해 한반도에 평화의 뿌리를 내리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망언이 되풀이되고 있다. -일본은 그들의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력과 군사력을 갖고자 할 것이며 유사법제,자위대의 해외파병,천황기념관 건립 등 일련의 움직임은 강한 일본을 바라는 다수 일본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한·일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사문제이다.그러나 역사문제에 매달려선 앞으로 나갈 수 없다.지난 1998년 한·일 파트너십의 기본내용은 ‘통절한 반성과 사죄’다.원래 무라야마 전 총리가 주장한 것이다.사회당위원장 출신인 그는 역사인식에 대해선 우리 국민과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이다. 해결 방법은 없는가. -많은 한국인들이 왜 일본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처럼 하지 못하냐고 말한다.브란트 총리는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독일의 과거를 사죄했다.그러나 일본에서 ‘브란트 모델’을 기대하긴 어렵다.일본은 천황제도를 갖고 있고,명치유신 이래 140년간 보수 노선을 걸어왔다.일본에서 ‘브란트 모델’을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무라야마 모델’을 토대로 해야 한다.한·일 관계는 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98년 한·일 파트너십선언으로 크게 달라지고 있다.노무현 대통령도 이를 확인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던 것이다.문제가 있을때 이것을 민족주의의 대결로 몰아붙이지 말고 자국의 국가이익의 입장에서 합의점을 찾아내는 인내심과 사려가 필요하다.중국은 관영 언론을 통해 과거사 문제에 단호하게 반응하지만,한편에선 매우 유연한 자세로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 보수화가 계속되지 않겠는가. -지난 6월 유사법제를 일본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켰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일본 국민들이 군사적으로 더 강한 쪽을 지향하고 있고,그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그러나 일본의 사회체제가 군국주의 부활로 이어지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일본인의 60∼70%가 보수를 지향한다.그러나 일본의 중도보수주의자 가운데서도 극우파나 일부 신보수주의자들의 질주를 경계하는 소리가 있다.일본 사회를 이분법적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책임없는 정치인들의 망언은 계속될 가능성도 있지만,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그러나 각료들이 그 같은 망언을 한다면 결코 용납해선 안된다. 한반도 평화구축에서 일본의 위상과 역할은 -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가하고 있고 6자회담 당사국으로 참가한다.‘납치문제’로 벽에 부딪혀 있지만,궁극적으로는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이룰 것이다.대사 시절 일본 기업들에게 남한과 함께 대북 경제협력 투자에 과감하게 나서라고 주문하곤 했다.대북 국교정상화와 과감한 대북 경협은 일본의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북·일간 경제협력은 한반도 전쟁위협을 줄이고 평화구축을 뒷받침하는 일이다.일본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국민에게 느껴질 때 한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것으로 본다. 동아시아 지역에 평화는 가능한가. -한반도는 아시아 냉전의 초점이었고 지금도 마지막 냉전 지역으로 남아 있다.한반도에 평화가 뿌리 내려야 세계사의 냉전이 종식된다.우리는 한반도의 냉전극복과 평화정착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통일에 앞서 먼저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타당한 것이다. 다가올 6자회담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한국은 핵확산과 전쟁을 동시에 막아야 하는 입장에 서있다.이는 원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현실적으론 대단히 고통스러운 딜레마를 내포한다.그러나 기적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다.인내심을 갖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이룩해야 한다.전세계 GDP의 20%를 차지하는 한·중·일 3국간 평화협력체,나아가 동북아 평화체제의 초석이 될 것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책 /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글·사진 창작과비평사 펴냄 “한 여울의 철교를 얼른 건느니/전곡리의 정거장도 등에 버렸고/연천대광(連川大光) 두 정거장 잠간 거치니/철원색(色)의 번화함이 눈을 흐리네” 용산에서 원산까지의 여정을 15절로 그린 ‘경원철도가’만 보아도 철원이 얼마큼 번화한 도시였는가 금방 알 수 있다.오죽하면 ‘철원색’이라 했을까.노동당사가 있는 관전리에 서던 철원장은 인근 최대의 시장이었다. 1930년대에는 거래액이 130만원을 넘었다.일제가 미국인 제임스 모스로부터 경인선을 사들인 가격이 18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다.그만큼 철원장의 명성은 전국적이었다.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풍요는 식민지배가 계속됨에 따라 심각한 빈부의 분열로 이어졌다.철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사진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36).‘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 )을 펴낸 저자는 철원을 ‘통일기행의 일번지’라고 부른다.지난 10년 동안 민통선이라 불리는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누빈 그가 유달리 철원에 집착하는것은 그곳이야말로 고달픈 한국현대사와 곧바로 대면할 수 있는 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10년간 철원·강화·백령도등 누벼 저자는 철원의 민통선 여행코스에서 철원역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한다.철원역은 월정리역에서 노동당사로 가다가 구철원시가지로 꺾어질 즈음의 지뢰밭 뒤에 있다.월정리역에 비해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하지만 철원역의 폐허는 전쟁의 상처를 가장 아프게 전해준다.저자는 “월정리기행이 보이는 것과의 만남이라면,철원역기행은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라고 말한다.그의 여행의 지향점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한국전쟁 이후 시간이 정지해버린 박물관 같은 구철원시가지,얼음창고터,철원제사공장터,철원제일감리교회,노동당사,백마고지를 도는 행로 곳곳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난다. 어느날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수백명이 몰살됐다는 신탄리 폐터널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그의 연천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신탄리 폐터널이 미국과 인민군의 격전장이었음을 확인한 저자는 이어 연천군 청산면 열화우라늄탄 사고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현대 고달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 이라크전쟁 때 미국이 사용해 지탄을 받은 그 열화우라늄탄이 1997년 한반도에서 그것도 ‘사고’로 터졌다는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다.1999년 유고전쟁 이후 이탈리아 병사들에게 나타난 집단 백혈병증세도 열화우라늄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저자는 ‘연천 제1의 볼거리’ 태풍전망대의 선전판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6·15선언 이후 선전판 글귀가 ‘귀순자 대환영’에서 ‘우리는 한 형제’로 바뀐 것.6·15선언의 영향이 가장 빨리 나타난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경원선의 분단풍경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그중 하나가 동두천 미군기지다.저자는 동두천에 이르러 불현듯 소요산의 전설을 떠올린다.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원효대와 요석이 머물렀다는 별궁터,그리고 원효가 사랑하는 요석을 두고 이름을 붙였다는 공주봉이 자리잡은 소요산.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소요하면서도 면벽수도를 할 수 있었다니 원효는진정 고승인가.저자의 이런 낭만적인 상념은 동두천 미군기지의 담벽을 따라 뻗어 있는 경원선에 시선이 미치면서 분노로 바뀐다.의정부에서 신탄리까지 달리는 경원선은 사실 출발부터 미군기지와 함께 있다.의정부역사 양쪽에는 ‘캠프 폴링 워터’라는 미군부대가 있다.저자는 “미군의 군홧발에 채이면서도 능청맞게 달려온” 경원선을 “분단의 상처가 가장 아물지 않은 곳”으로 지목한다. 저자가 민통선 기행 길목에서 유난히 강조하는 게 유실지뢰 문제다.비무장지대 남쪽에 1만개,후방지역에는 7만개 이상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다.파주·연천·양구·고성 등 곳곳에 피해자들이 널려 있다. 저자는 해마다 홍수가 나면 대인지뢰 유실사고 공포에 떠는 신탄리 차탄천을 찾았다.그리고 지뢰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고발하는 산문시 같은 감상적인 글을 남겼다.“아침부터 이장댁 스피커에서 ‘회심곡’이 구슬피 흘러나왔다.지뢰피해자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상주는 돌아가기 전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당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행복하다며 내 손을 잡았다.돌아오는 기차에서 보니 지뢰밭이 멀지 않은 동산에서 상여꾼들이 달구질을 하고 있었다.지뢰를 밟고 나서는 인생이 지뢰밭이라고 하더니 그는 죽어서도 지뢰밭에 묻히고 말았다.” 저자는 실제로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디 윌리엄스와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과 함께 한국의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미군기지·유실지뢰 문제 진지한 접근 민통선 기행은 그 자체가 분단극복을 위한 하나의 작은 실천이다.분단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분노는 때로 폭주기관차처럼 불을 뿜는다.양구 평화의 댐에서는 정권의 ‘한판쇼’에 놀아난 씁쓸한 기억을 곱씹으며,동해 북부선 현장과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북의 잠수함 승무원들이 사망한 칠성산 억새밭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절규하듯 갈망한다. 이 책은 민통선에 관한 본격적인 기행서로는 국내 처음이다.최초라는 상징성보다는 물론 글에 배어 있는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냉전시대 분단의식을 부추기는 ‘안보관광’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평화운동가로서의 역사인식이 담겨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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