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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균미특파원 워싱턴 저널] 美 노예제도 아물지 않은 상처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시대를 연 미국에서 150여년 전 폐지된 노예제도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임이 확인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당선된 로버트 맥도넬 버지니아주지사는 지난주 4월을 ‘남부연합 역사의 달’로 선포하면서 남북전쟁의 단초가 된 노예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가 들끓는 비난 여론에 밀려 7일 밤 결국 사과 성명을 발표하며 한발 물러났다. 맥도넬 주지사는 내년 남북전쟁 150주년을 앞두고 역사관광을 촉진하고, 남부연합군 후손들의 요청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4월을 남부연합 역사의 달로 선포했다. 문제는 선언문에 부끄러운 역사인 노예제도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버지니아 주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폐지에 반대해 ‘남부연합’에 가담했을 뿐 아니라 남부연합의 수도가 위치했던 곳으로 곳곳에 남북전쟁의 유적지들이 남아있다. 또한 불과 몇년 전 늘어나는 히스패닉 불법이민자들을 공개적으로 차별, 사회적 문제가 됐던 보수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는 물론 보수 성향의 일간지 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까지 나서 사설로 맥도넬 주지사의 ‘무감각한 역사인식’을 비난했고, 민주당과 인권단체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쪽짜리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인종차별적 인식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맥도넬 주지사는 7일 성명을 통해 ‘선언서’에 “노예제도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으며, 이 일로 불쾌했거나 실망한 버지니아 시민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맥도넬 주지사는 “노예제는 미국을 분열시키고 신이 주신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박탈했으며 남북 전쟁을 초래했다.”고 덧붙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미국에서 일반인은 물론 정치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다. 인종차별적 발언은 금기사항이다. 미국의 흑백문제는 한국의 지역감정보다도 뿌리가 깊고 민감하다. 이번 일은 잘못된 인식을 스스로 바로잡는 미국 사회의 건강성과 동시에 1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물지 않은 흑백차별의 상처를 보여준다. kmkim@seoul.co.kr
  • “오만한 일본 주권침해 도발 왜곡교과서 검정 취소하라”

    일본이 초등학교의 모든 사회과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게 한 데 대해 적극적·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일본 정부에 독도 영유권을 표기한 교과서의 검정승인 취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승인은 오만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도발행위”라면서 “이는 한·일 양국 미래세대의 진취적 동반자 관계 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앞서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우리 교과서에도 일본의 침탈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도 日약탈 목록 싣자”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은 “우리 교과서에도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명확히 표기해 우리 학생들이 약탈문화재 목록 등을 주지해서 일본 학생들을 만나면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당 권영진 의원은 “일본이 시도때도 없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하는 것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자는 것인데, 같은 논리라면 대마도도 우리땅 아니냐.”고 물었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대마도 관료들은 조선왕조의 관직을 받고 해마다 부산 동래왜관에 와서 관복을 입고 조선 임금에게 절을 하게 되어 있었다.”면서 “우리 고지도에는 제주도와 대마도가 양쪽 발처럼 그려져 있는데, 이는 대마도가 우리 영역 안에 들어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지도 수집가 인센티브 주자” 외교적 차원의 반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요미우리 보도에 대해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고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일본 총리에게 강력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게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교과부 이주호 차관은 “총리실·외교통상부와 협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예산지원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2010년도 예산안 심사 때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 및 동해표기 오류 시정사업 예산을 2억원 증액할 것을 요구해 교과위에서 의결됐지만, 최종 예산 심의과정에서 모두 삭감됐다.”면서 “이러고서 강력한 대처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고지도 등 각종 자료를 모으는 민간 수집가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독파라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시론] 한·일 새로운 100년과 역사 매듭 풀기/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시론] 한·일 새로운 100년과 역사 매듭 풀기/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최근 의미심장한 보도가 있었다.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따르면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를 200년간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의 폐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시점에서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진실은 승리한다는 철칙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은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민족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다.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는 정한론(征韓論)의 호재로서는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의 한반도 강탈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의 지배를 되찾는 것에 불과하다는 오도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실제 이러한 주장은 영국의 유수한 신문인 ‘런던타임스’(1897년 9월17일)에 이어 중국의 잡지 ‘시무보(時務報)’에 전재되기까지 했다. 이렇듯 임나일본부설은 한국 민족에게는 독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송두리째 박탈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로서 한껏 악용되었다. 이와 관련해 일제 강점기의 교과서에 수록된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상상도가 상기된다. 신라 해변에 상륙하여 어깨에 화살통을 멘 군복 입은 신공황후의 왼손은 긴 활채를 내려뜨려놓고, 오른손은 이마에 대고 멀리 응시하며 정찰하는 삽화인 것이다. 단 한 장의 삽화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황국사관에 입각한 ‘일본서기’의 관련 내용은 한국인들을 끝없는 절망감에 빠지게 하거나 분노하게 만들었다. 전후에 간행된 일본 국사 교과서에도 관점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영악할 정도로 세련된 논조를 구사하며 파고들었다. 즉, 일본열도를 통일한 야마토 조정은 4세기 후반경 기술 노예와 선진 문물 및 철자원의 획득을 위해 한반도 남부로 진출하여 가야를 자국 세력하에 두었다는 것이다. 허구로 가득 찬 임나일본부설을 붕괴시키기 위해 ‘일본열도 내 삼한분국설’을 비롯한 숱한 학설이 남북한에서 쏟아졌다. 그럼에도 임나일본부설은 철옹성처럼 군림했다. 그러던 망령이 한국과 일본 학자들 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걷히고 만 것이다. 더불어 한·일 양국의 지성과 양식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로써 자국의 입장만 강요하던 일방통행식 연구에서 벗어나 정직한 역사 해석이 가능하다는 공감대를 구축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랬기에 왜구의 주요 구성원이 일본 학계에서 주장하던 것처럼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사실과, 일본열도의 벼농사와 금속문명이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에도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제는 한일병합과 관련한 근대사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순서인 것 같다. 불법이었던 을사늑약과 독도 영유권 문제 등 근·현대사의 숱한 부분에서 양국은 여전히 커다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 진출의 역사적 근거로 여겼던 임나일본부설의 종언은 비록 구속력은 없다지만 그 자체가 지닌 상징성만으로도 큰 파급 효과를 지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임나일본부설에 연원을 두었던 그 뒤의 모든 불행한 사건들에 대한 진실 규명도 실타래 풀리듯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되지 않은 사안은 역사관의 차이로만 돌리기보다는 상대 측의 공감대를 유도하거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이제 선수는 우리가 쥐었기 때문이다. 소위 임나일본부의 운영 주체로 새롭게 지목된 안라(安羅)가 있던 경남 함안 지역을 학생들과 종일 답사하고 온 날이라 소회가 더욱 각별한 것 같다. 한술 밥에 배 부를 수야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이제 한·일 간의 과거사를 바로잡고 편향된 역사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역사 매듭풀기의 시작으로 본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역사의 사필귀정을 믿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를 지나간 한·일관계 100년의 악몽을 반전시킬 수 있는 미래 100년의 서곡으로 간주한다면 몽상일까?
  • 日언론 한일역사공동연구 떨떠름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 언론들은 24일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과 관련, 양국 간 역사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데 새삼 놀라면서도 향후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한 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조사결과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면 기사에서 “한·일 양국 연구자들이 상대국의 교과서를 비판했다.”며 “역사인식의 차이가 교과서에도 반영돼 있다는 점이 선명하게 부각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지금까지는 일본의 교과서만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측 교과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며 “한국의 교과서에 ‘일제’라는 용어가 언급되어 있지만 누구를 지명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천황의 칭호가 국왕으로 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대립을 넘어서는 노력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교과서의 문제점으로 “‘일본인은 모두 악’으로 삼는 내셔널리즘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며 “일본 국민이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헌법을 제정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폐기와 관련해서는 최근 일본에서도 역할에 의문이 많았는데 한국 언론이 이번 연구의 성과라고 일제히 보도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맞댔다는 의미도 부정할 수 없다.”며 “앞으로 논의를 긍정적으로 진행할 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아사히신문도 4면에 “한·일 양국이 서로 역사인식을 이해하는 어려움을 재차 부각시켰다.”며 향후 정부가 논점 선택에 대한 지침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의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인 후소샤를 계열사로 거느린 산케이신문은 “한국 학자들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집요하게 비판했다.”며 독도 문제도 다루지 않은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jrlee@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안중근 순국 100주기를 맞으며/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안중근 순국 100주기를 맞으며/박홍환 베이징특파원

    일주일 뒤인 3월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지 꼭 100년째 되는 날이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는 일주일만에 뤼순 감옥으로 압송돼 144일 동안 수감돼 있다가 ‘동양평화’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았다. 우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 공원의 한쪽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달라.”던 그의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지 못한 못난 후손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이국 땅에서 구천을 헤매고 있을 안 의사 혼령은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돼 있는 동안 비록 사형집행으로 완성은 못 했지만 그의 구상이 오롯이 담긴 ‘동양평화론’을 남겼다. 한·중·일 3국 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체 구성,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이 핵심이다. 공교롭게도 100년이 지난 지금 한·중·일 3국 간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3국 정상회의가 정례화됐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시작됐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회의체와 유사한 ‘동아시아 공동체’ 어젠다도 이미 제안된 상태다. 안 의사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베이징에서 업무를 본 뒤 도쿄의 저녁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3국 간 관계는 지난 100년 이래 최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감한 현안들이 적지 않다. 한·일 및 한·중 간의 역사인식 문제, 한·일 및 중·일 간의 영토 문제, 청산되지 않은 전후 보상 문제….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에도 인색한 것이 지금의 3국 관계이다. 지난해 안 의사 거사 100주년 취재를 위해 하얼빈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한·중 공동세미나가 열렸지만 정작 주인공인 안 의사의 이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중대사는 약식으로 열린 기념식 행사에도 참석조차 못 했다. 안 의사가 ‘동아시아 공동의 적’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역 제1플랫폼에는 암호 같은 세모와 네모 표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뤼순의 여행책자에는 안 의사가 수감됐던 뤼순감옥에 대해 “1909년 10월26일, 조선의 애국지사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일본 군국주의 두목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같은 해 11월1일 뤼순감옥에 투옥됐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중국인들 조차 ‘아시아 제일의 의협’으로 안 의사를 칭송했다. 순국 100주년을 맞아 민간단체와 국회의원들이 하얼빈과 뤼순 현지를 찾아 추모식을 거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했으니 현지에서 추모식을 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남북 민간단체 공동 추모식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를 추모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처지도 아니다. 게다가 안 의사는 중국인들에게도 뚜렷하게 각인된 항일투쟁열사 아닌가.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은 당시 일본의 관할하에 있었던 곳이다. 중국의 수많은 항일투쟁열사가 안 의사와 마찬가지로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일본은 관동군 사령부를 뤼순에 설치한 뒤 중국 침략을 자행했다. 중국으로서도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이다. 그런 점에서 안 의사 순국 100주기가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안 의사가 브라우닝 권총으로 날려 버리려 했던 침략과 반목의 역사를 100년 만에 끝장내고, 동북아 평화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안 의사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안 의사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 “나의 전쟁이 헛되지 않았구나.” 대국적인 차원에서 오는 26일 현지에서 열릴 추모식에 대한 중국 측의 배려와 참여를 기대해 본다. stinger@seoul.co.kr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확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확정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부지에 들어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건립 윤곽이 잡혔다. ●2012년까지 콘텐츠 1만점 수집 문화부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립 기본계획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박물관 전시 구성은 대한민국의 ‘태동’ ‘기초확립’ ‘성장과 발전’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 등 4가지 대주제를 기본으로 삼았다. 대주제마다 3~4가지 중주제도 별도로 설정했다. 박물관은 이에 맞춰 국가발전 역사를 객관적으로 정리, 스토리텔링화해 전달하되, 가상체험 등 디지로그 형태로 꾸며 흥미와 감동을 줄 계획이다. 전시 콘텐츠는 2012년까지 연간 3000점씩 총 1만점을 우선 수집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발전 관련 자료를 수집·연구·전시하는 종합박물관뿐 아니라, 올바른 역사인식 제고를 위한 역사문화관, 국가상징거리의 핵심적인 상징관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문화부는 이에 따라 현대사 아카이브와 온라인 사이버박물관도 함께 구축할 방침이다. 박물관은 현 문화부 청사를 리모델링해 부지 6446㎡(약 2000평), 연면적 9500㎡(약 3000평)로 조성된다. 문화부는 국고 451억원을 투입해 올 10월 착공, 2012년 5월 준공할 계획이다. 유동적이긴 하지만, 개관 목표 시점은 2012년 말로 잡았다. ●올 10월 착공… 2012년 말 개관 건축방향은 울타리 없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광화문광장과 연계, 문화적인 휴식과 역사적인 대화가 가능한 공간을 지향한다. 이에 따라 옥내 전시공간은 3000㎡, 휴식과 감상을 할 수 있는 옥외 전시공간은 1800㎡가 배정된다. 유물 수장, 공공편의, 교육 기능 등을 위한 공간도 만든다. 문화부는 아울러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박물관 옆 주한미국대사관 부지까지 활용, 복합문화시설로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시론] 한성백제박물관에 바란다/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

    [시론] 한성백제박물관에 바란다/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

    백제라고 하면 공주나 부여만을 생각해 왔는데 서울에 한성백제박물관이 건립된다고 한다.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는 기원전 18년에 백제가 한강유역에서 건국되어 475년 공주로 천도할 때까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678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동안에 무려 500년 가까이 서울에 있었으나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한성백제 시대의 생활모습은 1980년대에 와서 서울 강남지역에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고, 백제 유적과 유물이 드러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997년 1월에는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아파트 공사 중 대규모의 백제왕궁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한성백제이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풍납토성을 중심으로 일대 백제유적을 발굴하여 한성백제의 면모를 밝혀내면서 마침내 박물관 건립이 추진될 수 있었다. 백제 건국 이전의 유적들이 도시개발로 많이 없어졌다지만 한성백제박물관은 한강유역에서 백제가 건국되기까지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되는 토착세력의 정통성을 구체화하여 전시하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강남의 역삼동유적은 청동기시대로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백제 건국의 정통성을 이어주는 대표적인 유적이지만 지금은 배드민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많이 훼손되었다고는 해도 이런 유적의 자취를 찾아서 박물관과 연계시킬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한성백제 시기를 중국의 낙랑군이나 대방군 시기로 보는 것은 물론, 심지어 한성백제 지역을 낙랑과 대방의 점령지로 보는 우리 역사 부정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국내 공공기관이나 일부 연구자 가운데도 한성백제 전반기를 역사가 없는 ‘원삼국시대’라고 하여, 백제가 기원후 4세기 전후로부터 국가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성백제박물관은 한성백제 전기의 역사를 복원하는 학문적 노력과 함께 당시 유물을 효과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마땅히 고고학 발굴로 이미 찾아낸 역사적 유적·유물을 통하여 한성백제 전기의 역사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은 고구려와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일부에서 최근 한강유역과 경기·충청 일원에서 조사되고 있는 삼국시대 성곽의 주인을 고구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 지역에서 보이는 고구려적 양식은 한성백제가 고구려의 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문화적 특징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에서 중국 한나라의 문화적 흔적이 나타난다고 한사군의 문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신라 유물 위주로 전시하고, 공주나 부여의 국립박물관이 그 지역의 백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듯이 마땅히 한성백제 시기의 한성백제 유물을 위주로 전시하는, 전문성을 지닌 박물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확실히 국적이 밝혀지지 않은 유물을 고구려 유물이라고 분류하여 전시한다면 역사인식을 왜곡할 수 있고, 또 한성백제 이후의 신라시기 유물을 위주로 전시하면 한성백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한성백제박물관은 단순한 유물전시관이 되기보다는 한성백제의 역사적 정체성을 밝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한성백제박물관은 한성백제의 풍납토성을 보호하고 연구·교육시설로 활용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현재 영어마을로 사용되고 있는 풍납토성 내부의 옛 외환은행 숙소를 한성백제박물관 분관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풍납토성을 보전하는 것은 2000년 역사의 서울을 진정한 서울로 지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역사 인식의 준거는 1995년 8월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한·일 관계를 가장 험악하게 만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연말 의사당 부근인 도쿄 지요다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담화의 주역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로부터 1시간40분 동안 한일병탄 100년의 의미 및 평가, 양국 관계의 미래, 담화의 의의, 남북한 문제 등을 들었다. →한일병탄 100년의 해를 맞았다. 지난 100년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지금보다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1945년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한국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전후(戰後)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 형식적으로는 식민지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적 전환의 의미가 크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바람직한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또한 이웃 나라로서 식민 36년을 포함해 깊은 반성을 전제로 지금부터 긴밀히 협력하고 신뢰관계를 쌓아 나가야만 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공동체를 확립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당시 문화개방이 있었던 덕분에 서로 문화적인 체험이 가능하게 됐다. 친근감이나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깊이있게 협조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 100년을 위해서는. -미래는 열려 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반복됐지만 그런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에 유럽연합(EU), 미국이 각각 나름의 공동체를 구성했듯 아시아도 대응 차원에서 아시아대로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총리시절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더 이상 자기 나라만 잘 살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웃나라 없이는 자기 나라도 없다. 한국이 좋아지면 일본이 좋아지고, 일본이 좋아지면 한국이 좋아진다는 관계를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물론 역사, 독도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도 많지만 완전한 인식의 일치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한 획을 그은 무라야마 담화의 메시지는.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자 사죄의 표명이다. 이 바탕 위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서로 공생해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더 이상 절대로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관을 확실히 세우자는 의미에서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담화의 준수에 대한 평가는. -현 하토야마 총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도중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든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의 사건도 일어났지만 기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담화를 둘러싼 일본 내의 비판적인 언동도 적지 않다. 지금도 무라야마 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언론, 출판자유의 나라인 만큼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부정적인 의견은 일본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8·30중의원) 선거를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라야마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총리의 새로운 담화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 교수는 한일병합(무라야마 전 총리 표현) 100년을 맞아 이미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가 많이 바뀐 상태이므로 무라야마 담화에 새로운 비전을 더한 새 담화를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의견이라고 본다. 하토야마 정권이 수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뭐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토야마 총리를 취임 이후 만난 적도 없어서다. 덧붙인다면 한일병합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다.’라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일병탄 100년을 짚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일본의 이웃나라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북 간의 국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어떤 형태로든 국교는 정상화돼야 한다. 납치문제나 핵문제 등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들도 남아 있기는 하다. 다행히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회담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체결되면 한반도의 통일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성의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병합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북한 간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병합100주년을 맞아 관계전환에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간의 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 모두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대중 대통령 재임당시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한국인을 조그만 상자 안에 꿇어 앉히고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의 밀랍인형들을 봤다. 일본군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역사적 사실이므로 추호도 부정할 수가 없다. 또 보여줘야만 한다. 과거의 반성과 사죄가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서로 문화를 공유했으면 한다. 이웃나라, 형제와 같은 나라인 만큼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해해 나가길 희망한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 미래를 위해서다. 친구로서 만나고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꼭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이와 함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글 사진 hkpark@seoul.co.kr ■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15일) 요약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나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 ■ 근황은 근황은 아침 6시 일어나 체조·걷기 가끔 한국 역사드라마 즐겨 두툼한 외투 차림에 중절모를 쓴 무라야마 전 총리는 평범한 노신사였다. 중절모를 벗고 앉았을 때에야 호텔 직원도 알아본 듯했다. 8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눈을 덮을 정도의 짙은 눈썹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말투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건강의 비결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하면 머리를 써야 하고, 손발을 써야 한다. 호사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지만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는다.”고 덧붙였다. 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걷고, 체조를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차는 자전거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웃었다. 가끔씩 한국의 역사드라마를 보고 있다. “때때로 강연을 다니지만 시민으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면서 “그러나 평화헌법 제9조(전쟁 포기·군사력 보유금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고향인 규슈현 오이타에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 도쿄 요치야에 위치한 ‘일본·조선(북한) 국교촉진국민협회’에 들러 협회 사무국장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만나고 있다. ●약력 ▲86세, 규슈 오이타 출생 ▲1946년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1972년 중의원 첫 당선(사회당)~이후 8선 ▲1993년 사회당 위원장 ▲1994년 6월~1996년 1월 제81대 총리 ▲1996년 사민당 당수 ▲2000년 정계 은퇴 ▲현 사민당 명예당수
  • [내 책을 말한다] 왜곡된 분노 뒤에 숨은 중화패권주의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산업화와 도시화라고 할 수 있다. 삶의 형태와 질이 송두리째 변하는 본질적인 변신인 만큼, 적지 않은 사회적 부작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다. 부의 분배 메커니즘 부재에 따른 엄청난 빈부격차와 대규모 이농현상에 따른 농민공(農民工)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도 이미 1970~80년대에 경험했던 바다. 하지만 약대국에서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의 발전에 성공한 중국인들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대국굴기(大國屈起)’로 표현하면서 과거 서구 강대국들의 굴기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인식의 주체로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계층이 바로 ‘80후(後)’와 ‘90후’이다. 이들은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로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겪어야 했던 대고대난(大苦大難)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인식했고 이른바 ‘혁명시대’의 우매한 역사도 체험하지 못했다. 이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중화(中華)의 국가주의와 건국 60주년과 개혁개방 30주년의 경축 분위기다. 그리고 이들의 사회적 생태 본질은 ‘소황제(小皇帝)’다. 나라 안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와 나라 밖에서는 중국밖에 모르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이들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의 배경인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중국이 화났다(中國不高興)’이고, 특히 ‘80후’와 ‘90후’들을 위해 쓴 책으로서 최근 중국 안팎에서 일어난 대형 사건들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을 통해 ‘70후’ 이전의 혁명세대가 갖고 있는 역사적 패배의식을 서구에 대한 분노로 전환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80후’ 이후 세대들이 인터넷을 통해 조성하는 강력한 여론이다. 중국이 화났으니 어쩌라는 건가. 태클 걸지 말고 중국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뜻이다. 중국은 이미 남의 말을 들어야 하는 나라에서 남에게 말할 수 있는 나라로 발전했고, 21세기의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이 중국에 있다는 뜻이다. 이들이 말하는 중국의 분노는 청 왕조 붕괴 이후 170년 동안의 역사에 대한 분노이고, 분노의 기초는 지난 30년 동안 이룩한 놀라운 국력신장이며, 분노를 발산하고자 하는 대상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강소국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세력들 틈새에 끼여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변화된 역사인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과거 외번(外蕃·중국의 바깥 속국으로 일컫는 말)의 위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충분한 견제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외형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적 지표에만 주목하는 동안 저들의 역사인식은 이미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룬 상태다. 지난 170년의 일그러진 역사를 자초했던 중국인들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사유는 없이 모든 역경의 책임을 외세에 돌리고 있는 저들의 ‘왜곡된 분노’ 뒤에는 애국이라는 이름의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이는 중화패권주의로 구현될 수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경종으로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태성 중국문학 전문번역가
  • 상생없는 역주행 정국에 대한 경고

    상생없는 역주행 정국에 대한 경고

    여기 한 지식인이 있다. 그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10여 차례에 걸쳐 투옥과 연금을 겪었고 두 차례에 걸쳐 교수직에서 해직됐다. 이는 암울한 시대를 지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저서 중 ‘민중과 지식인’ 같은 책은 비겁한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꾸짖음이었고,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는 한 줄기 빛발이었다. 그리고 1993년 군부 독재정권이 절반 정도 종식되며 들어선 문민정부에 초대 통일부총리로 들어간다. “오로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이라는 대업, 그리고 민주 개혁을 이루고자 함”이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걸쳐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실천적 지식인의 정치적 경험 대담으로 이 실천적 지식인은 국가권력 참여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패배 등 경험과 증언, 역사인식의 내용을 대담집 ‘우아한 패배’(김영사 펴냄)로 풀어냈다. 사회학자인 한완상(73)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다. 그는 지난 세 정부는 물론, 이명박 현 정부까지 정책의 한계와 과제 등을 촘촘히 짚어가며 지적한다. ●호혜주의·우아한 패배가 역사 진전이뤄 한 전 총재는 책에서 불안한 북·미관계, 남북 대결을 원하는 한반도 냉전 세력의 득세, 후퇴하는 민주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2009년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분명한 변화를 촉구하는 ‘경고’를 담았다. 단순한 회고록 성격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면 ‘때문에의 논리’를 넘어 ‘불구하고의 논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기계적 상호주의가 아닌, 상생의 호혜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미 관계의 조정자 역할, 남북의 지속적인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의 제목인 ‘우아한 패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남긴 말이다. 미안해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는 유서의 메시지는 참으로 깊은 자기 성찰에서 나온 자기 비움의 메시지였고, 그런 아름답고 우아한 패배만이 새 역사를 움트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아한 패배를 용기 있게 선택하여, 증오와 불신과 폭력의 악순환을 종식시켜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선순환을 작동시켜야 한다.”면서 “우아하게 패배할 수 있는 그 용기는 자기의 탐욕을 비워낼 수 있고, 자기의 독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랑의 힘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대담 아래 달아놓은 각주는 읽는 재미를 더욱 돋운다. 예컨대 1993년 10월2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나왔던 북한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지금의 소회를 함께 달아놓았다.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지난 군사정권 때 우리의 인권유린을 묵인했고 ▲북한 인권을 통해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있으며 ▲굶주리는 동포들의 생존권적 기본권에는 무관심한 점 등을 꼽는다.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부장과 가진 인터뷰 아래쪽 각주에는 최근 발언을 소개하며 ‘전형적 냉전 근본주의가 갖는 독선과 배타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평했다. ●YS시절 입각 비화 등 흥미진진 각주에는 여러 흥미로운 비화(秘話)도 있다. 그는 문민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총리가 아닌, 대통령 비서실장을 먼저 제안받았다고 한다.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는 궁금하지만 ‘과감한 개혁을 두려워하는 주변 세력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 아닐까.’하고 짐작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보다 정치인 김대중과 더 가깝다는 이유로 당시 레이니 주한대사를 좋아하지 않았던 김영삼(YS) 대통령 얘기,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한 YS 얘기 등도 있다. 2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신해혁명 100주년 ‘하나의 중국’ 재건하나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신해혁명 100주년째인 2011년이 중국과 타이완 간 관계변화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중국이 신해혁명 100주년에 타이완과 평화협의 비망록을 체결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가운데 이번엔 신해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중국 근대사의 주요사건 기념식을 양안이 공동으로 거행하자는 제안이 학계에서 나왔다. 제1혁명으로도 불리는 신해혁명은 1911년 쑨원(孫文)을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을 탄생시킨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장하이펑(張海鵬) 연구원은 14일 타이베이에서 폐막한 ‘양안 60년’ 학술토론회에서 “신해혁명 100주년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2015년) 기념식을 양안이 공동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장 연구원은 “중국 근대사의 진행과정은 양안 모두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하나의 중국’에 대한 이론과 실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인식 문제이기 때문에 공동개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년 초 공산당과 국민당이 학계를 비롯한 각 정당, 사회단체까지 망라하는 준비위원회를 구성, 2011년 10월10일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활동을 총괄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기념활동은 양안화해, 국공화해, 민족단결, 신해혁명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공동선언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장 연구원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쑨원 탄생 150주년(2016년), 5·4운동 100주년(2019년), 아편전쟁 180주년(2020년) 등은 물론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100주년(2021년)과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100주년(2024년) 기념활동도 공동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한편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마잉주(馬英九) 총통 특사 자격으로 참석한 롄잔(連戰) 국민당 명예주석과 만나 “양안 정치난제 타개에 힘을 쏟자.”고 제안했다고 15일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stinger@seoul.co.kr
  • ‘대마도는 한국 땅’ 日지도 첫 공개

    대마도(對馬島·일본명 쓰시마)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옛 지도 2점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어학부 김문길 교수는 28일 경남 마산문화원에서 열린 ‘대마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여지도(對馬與地道)’와 사본을 전시했다. 대마여지도는 1756년 6월 일본 지리학자 모리고안(森幸安)이 에도시대 막부의 명을 받아 제작한 뒤 공인을 받은 것으로 현재 원본이 교토 기타노덴만구(北野天滿宮)에 소장돼 있는 것을 김 교수가 찾아냈다. 2003년 출간된 모리고안 지도에 수록된 이 지도에는 ‘부시준조선국지지례칙부향군령지470리(釜示准朝鮮國地之例則府鄕郡令之470里·대마도의 부·향·군 모든 법칙은 조선국 부산에 준한 것이다. 거리는 470리다.)’라고 적혀 있다. 김 교수는 “지난여름 일본에서 이 지도를 찾아냈는데 사본으로만 볼 수 있어 아쉬웠지만 일본의 지리학자가 공식적으로 직접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1834년에 제작된 청구도 동래부 기장현 지도는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데 김 교수가 직접 확인해 사본으로 햇빛을 보게 됐다. 이 지도에는 ‘본예신라수로470리재동래부지동남해중지실성왕7년무신왜치영어차도(本隸新羅水路四百七十里在東萊府之東南海中至實聖王7年戊申倭置營於此島)’라고 적혀 있다. 이는 ‘대마도는 원래 신라 땅에 예속되어 있고, 실성왕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으로 470리 거리 동남쪽 바다에 있다. 무신년에 왜(일본인)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 지도는 동래부 기장현을 중심으로 그린 것으로 대마도가 지금의 부산 동래부 기장현에 예속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역사를 되짚어 각종 자료와 고증을 통해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그 땅에 대한 정확한 역사인식을 후세에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대마도의 실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사설] 준동하는 일 보수 과거사 직시하라

    한·일 과거사를 직시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과오를 바로잡겠다는 역사인식은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일본 보수우익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1905년 시마네(島根)현이 독도를 자국영토에 편입한 날을 기념하는 ‘다케시마(竹島)의 날’ 행사를 내년엔 도쿄에서도 열 태세다. 지난 주말엔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부여에 강력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총리관저 바로 옆에서 열렸다. 하토야마 정권 출범 후 급물살을 타는 과거사 청산과 개선노력의 발목을 잡는 집단행동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사민당·국민신당과의 연립형태를 띤 하토야마 정권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획득해야 안정적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보수세력의 눈치도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미우리·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이 정권 출범 한달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70∼80%대의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토야마 정권의 동아시아 중심 외교와 과거사 청산에 초점을 맞춘 역사인식에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다케시마의 날’ 도쿄행사며 재일동포 참정권 반대집회를 주도한 면면은 모두 자민당 출신 보수인사들이다.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 정권의 혁명적 역사인식과 행보는 일본 열도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현직 관료가 한·중·일 공통교과서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정치적 열세 만회 차원의 근시안적 고집은 자멸을 불러올 게 뻔하다. 동아시아권을 휘감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일본 보수우익 세력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 日국민 절반 “위안부 사과해야”

    日국민 절반 “위안부 사과해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일본인이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뢰해 지난 8월1일부터 9일까지 서울 시민 527명, 베이징·도쿄 시민 각 500명 등 1527명을 대상으로 ‘한·중·일 역사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해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 응답자의 48.9%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2007년, 2008년 같은 조사에선 각각 38.4%, 40.8%였다. 반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30.3%로 2007년 50.4%와 2008년 53.5%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내 인식 변화의 가능성을 추측케 하는 결과다. 한·일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본인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응답한 일본인은 65.5%로 2007년(49.4%)과 2008년(53%)에 이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일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국인도 44.3%로 지난해 22%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결과는 올 들어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특별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중·일 역사 현안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한국인은 독도문제(23.6%)를, 중국은 영토문제(12.3%)를 꼽은 반면 일본은 역사인식의 차이(11.2%)를 꼽아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또 역사인식 개선을 위한 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 공동연구 등 학술적 교류(한국 50.6%, 일본 32.7%)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중국은 ‘정치회담 등 정치적 교류’(20.9%)를 들어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갈길 먼 하토야마의 ‘동아시아공동체’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10일 중국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장기적 목표’로 채택됐다. 공동체 구축이 ‘공동성명’에 포함됨에 따라 일단 아시아 외교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성과와는 달리 실질적인 실현까지는 국가 간의 속셈이 다른 탓에 갈 길은 멀고도 험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는 동아시아 지역의 통합에 무게를 둔 유럽연합(EU)의 아시아판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3국 회담에서 공동체와 관련, “경제적 제휴 강화를 시작으로 문화적·사회적 단계 교류로 확대하고 싶다.”며 단계적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달 23일 유엔총회에서는 ‘할 수 있는 분야에서부터’라는 전제 아래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금융·통화·에너지·환경·재해구조 등의 협력안을 내놓았다.한국은 하토야마 총리의 역사인식 및 기본적인 가치관 공유 등의 영향으로 공동체 구상을 지지하는 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제안을 “우애정신에 근거한 매우 좋은 생각”이라고 밝혔다.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찬성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일본 주도의 공동체 추진이 마뜩잖다. 다만 ‘패권 경쟁’으로 비쳐칠 것을 우려,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뿐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3국 회담에서 “이미 동아시아에는 많은 메커니즘이 있다. 이들 안에서 협력, 연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자국의 영향력이 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의 역할에 무게를 뒀다. 동상이몽격이다.특히 미국의 역할도 변수다. 미국 측은 공동체 참가 여부를 떠나 “일본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경계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을 제외할 생각이 없다.”며 미국의 참여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지난 7일 강연에서 미국을 뺀 한·중·일, ASEAN,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었다. 때문에 구체적인 접근에 들어갈수록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hkpark@seoul.co.kr
  • 李대통령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하토야마 “신정부는 역사 직시”

    李대통령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하토야마 “신정부는 역사 직시”

    ■ 양국 정상회담 의미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9일 정상회담은 과거사에 대한 기본 인식을 공유하면서 양국 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하토야마 총리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가슴에 안고 행동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향적 역사인식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날 정상회담이 새로운 한·일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다. 하토야마 총리가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양자회담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루 앞서 서울을 찾은 것은 그 자체로도 시사점이 크다는 게 청와대 쪽 설명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방한은 지난달 취임 이후 양자외교 차원의 첫 외국 방문이어서 우리나라와의 관계발전에 대한 관심과 의욕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일 간 협력관계는 양국은 물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하다.”면서 “가깝고도 가까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하토야마 총리는 “신(新) 정부는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정권”이라면서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와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다만 하토야마 총리가 아키히토 일왕 방한,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유보한 것은 양국 간 거리가 단시일내 좁혀지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평가를 낳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일 과거사 청산 문제와 관련, “소위 무라야마 담화의 뜻을 정부의 한 사람 한 사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생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부분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또 재일교포의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싶다.”면서 “그러나 국민의 감정이 통일돼 있지 않아 내각에서 논의를 계속해 결론을 찾아보고자 한다. 내각이란 ‘팩터(요인)’를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 6월 아소 다로 전 총리와의 도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은 향후 한·일 관계의 전향적인 발전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사설] 한·중·일 교과서 일본 역사인식에 달렸다

    일본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이 그제 도쿄 외국특파원협회 강연에서 한·중·일 공통교과서 편찬을 제안했다. 오카다는 “한국과 중국·일본 공통의 교과서를 만드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면서 3국 역사공동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직 각료로선 공통교과서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오카다는 특히 침략전쟁 사죄와 관련, 무라야마 담화로는 불충분하다며 말보다 행동이 필요함을 강조해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과거사 청산 없이 한·중·일 3국의 미래에서 발전적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기술과 그 내용을 담은 교과서 편찬은 그래서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2차대전을 포함해 150년간 4차례의 전쟁을 치른 독일·프랑스정부가 2006년 공동 교과서를 펴내 똑같이 사용하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1930년대부터 70여년에 걸친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청산노력에 힘입은 결실이다. 한·일 간에도 2002년 학자 등 전문가들로 공동연구위원회를 발족했지만 일본 측의 보수적 인식 탓에 겉돌고 있다. 오카다가 그제 “과거 전쟁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앙금과 적대의 관계를 화해와 상생의 사이로 바꿀 1차적 책임은 가해자의 몫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중·일 3국의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펴내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인식이 먼저 가시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오카다 발언은 예사롭지 않다. 동북공정을 둘러싼 역사시비를 몰고온 중국도 새길 대목이다. 동북아, 특히 한국 중심의 외교에 치중하겠다는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처음 보인 과거사 청산의 실천적 의지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 日 “한·중·일 공통 교과서 제작 이상적”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7일 오후 도쿄에 있는 외국특파원협회 강연에서 한·중·일 교과서 문제와 관련, 이상적인 형태는 한국과 중국, 일본 공통의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카다 외무상은 “일본의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제작자가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국가가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전제, “장기적으로 이상적인 형태는 (한·중·일) 공통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이어 “첫걸음으로 역사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중·일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은 지난 2005년 공동으로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제목의 역사 교과서를 발간한 적이 있다.오카다 외무상은 역사인식과 관련, “과거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기분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1995년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무라야마 담화가 있었음에도 이에 반하는 각료의 발언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고 역설했다.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공동체’ 구성에 대해 “일본,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을 범위로 상정하고 있다.”며 미국은 정식 가맹국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들어오지 않는 국가를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을 일정 부분 배려할 뜻도 시사했다. 동아시아공동체의 지향점과 관련, “우선 경제부터 시작, 환경과 보건위생 등으로 협력 분야를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오카다 외무상은 또 “하토야마 총리가 미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며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했다.hkpark@seoul.co.kr
  • 유엔 데뷔 하토야마 “국제사회 가교역할”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24일 유엔총회 본회의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의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 또 경제위기, 지구온난화, 핵감축·비확산, 빈곤 문제, 동아시아공동체 구축 등 ‘가교’로서 추진할 5가지의 과제를 선정,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권교체에 대해 “일본 민주주의의 승리”라면서 일본의 ‘변화’를 강조했다. 또 “정권교체에 의한 경제정책의 수정을 통해 일본 경제는 부활할 것이 틀림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철학인 ‘우애’를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미국·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가교’로 나설 뜻을 밝혔다. 일본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실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진출 구상도 감추지 않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총회 연설을 위해 지난 10년간의 연설문을 분석, 보다 효과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신경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와 관련, “용인할 수 없다.”며 기존의 강경 대응안을 언급하면서도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납치·핵·미사일 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성의 있게 청산해 국교 정상화를 도모하겠다.”며 북·일 관계개선에 강한 의욕을 표시했다. 지난 2002년 평양에서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평양선언을 계승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북핵실험 때 민주당 안에서는 평양선언을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납치문제에 대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성의 있게 행동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할 뜻이 있다.”며 북한에 변화를 요구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동아시아공동체의 창설을 제안하면서 “일본은 과거 잘못된 행동에 따른 역사적 문제도 있는 탓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주저했다. 새로운 일본은 역사를 뛰어넘어 아시아 국가들의 가교가 되길 희망한다.”며 역사인식을 가미, 중요성을 역설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금융·통화, 에너지, 환경, 재해구조 등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협의해 나갈 계획도 제시했다. 그는 핵문제와 관련, “일본은 핵무기 개발의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불구, 비핵화의 길을 선택한 것은 유일한 피폭국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라면서 “핵보유국이든 아니든, 핵감축·비확산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을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 3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선언했다. 비핵 3원칙은 1967년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국회에서 밝힌 정책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오는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의 배출량을 1990년에 비해 25% 삭감하는 중장기 목표를 발표했다. 또 평화구축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부흥을 위해 “직업훈련 등의 사회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하토야마 “한국선 나보다 아내가 더 인기”

    │뉴욕 이종락특파원│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신임 일본 총리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두 정상은 하토야마 총리가 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지난 6월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회동했으나 정상 간 회담은 처음이다.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뉴욕에서 ‘상견례’를 가진 두 정상은 약 35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인사말부터 역사인식과 관련해 ‘짧지만 의미있는’ 대화를 나눴다. ●MB “日 온실가스 제안 과감” 공식회담에 앞서 하토야마 총리는 “이 대통령께서 선거 직후 가장 빨리 전화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일본에게 한국은 가장 가깝고 중요한 나라다. 양국 관계가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일본) 정부로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하토야마 총리가) 국민의 전폭적 지지로 당선돼서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른바 ‘하토야마 이니셔티브’를 소개하면서 “이것이 다른 나라에도 자극이 돼서 (12월 열리는) 덴마크 코펜하겐(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좋은 결과를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하토야마 총리의 과감한 선도적 제안이 미국과 중국 등에도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2016년 여름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릴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으며, 이 대통령은 내년 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을 지지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덴마크 총리와도 정상회담 한 참석자는 “하토야마 총리는 회담에서 한류팬으로 알려진 부인 미유키 여사가 한국에서 자신보다 더 인기가 있다며 농담하는 등 시종 화기애애했다.”고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24일에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라스 라스무슨 덴마크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대통령은 덴마크의 2012년 여수박람회 참가를 요청하는 한편 오는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 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실질적인 성과도출을 위해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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