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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의미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행한취임사는 미국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뒀다. 부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의 취임연설 시간에 비해 15분간이라는짧은 연설에서 선거공약을 구체화하면서도 선거과정에서 나타났던 부작용을 철저히 인식,반대 쪽의 다른 의견을 포용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국민 중 다수가 더 잘살게 됐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조국의 약속과 정의를 의심하고 있다”면서 “쇠락하고 있는 학교와 감춰진 편견,출생 환경으로 인해 일부 미국인들의 야망은 제약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사성을 과시하면서 시작된 연설은 플로리다 대선 논쟁을 의식,보기좋게 끝을 맺은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한 뒤 국가의 단결을 촉구했다. 그는 “때론 우리들의 차이가 너무 커서 우리는 한 대륙을 공유하고있지만 국가를 공유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우리의 단결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도자와 국민이 이룬 것인 만큼 나는 정의와기회의 단일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부푼 청사진을 펼쳐 보이기 보다는 태생적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이 추진할 국가통합에 적극 호응해줄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 같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는 다른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와 비교하면 다소 소극적인 인상마저 준다.또한 흑인을비롯한 유색인종의 공화당에 대한 반발을 의식, “미국은 한 번도 혈연이나 지연,그리고 출생지에 의해 통일돼본 적이 없다”고 문제점을직시한 뒤 “그러나 우리는 개별 배경을 넘어 함께 공유할 이념을 필요로 한다”고 다원성 속의 공동이념을 심으려 애썼다. 사회개혁,특히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한 듯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가진 힘은 어린이들이 가진 갈등을 치유하고도 남는다”며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천명하기도 했다. 한국이 주목할 부분은 역시 세계 속의 미국의 위상과 관련된 언급. 부시는 “우리는 도전을 능가하는 방어를 구축할 것이며,대량 살상무기의 위협이 새로운 공포를 남기도록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국가미사일방어망(NMD) 체제의 구축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그는 이어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국은 역사적 연관성과 선택에 따라 전 세계에 개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국제경찰로서의 위상약화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양분된 여론을 의식해 그는 “정중함은 전략이나 개별적인 정서가아니다”면서 “이것이 냉소와 혼란을 넘게 하는 단호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 구상을 제시하기 보다는 현실 문제의 해결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hay@
  • 단체장 令안서 정책실현 걸림돌

    정부가 대도시 자치구 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키로 한 것은 민선자치제 실시 5년 동안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워크숍에서도 발제자들은 역사성이나 구민들간 지역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구청장 직선 등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도시 자치구는 서울특별시 25개 구와 부산 대구 등 6개 광역시에 44개 자치구가 있다. 그러나 이들 자치구들은 같은 시에 있으면서도 인구,면적, 재정자립도 등의 격차가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때문에 도시계획사무와 상하수도 사무, 교통행정사무 등 종합행정을 하는 데 상당한 애로가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또 특별시와 광역시에서 시세의 징수를 자치구에 위탁함으로써 체납액이 매년 증가하는 것도 현안으로 대두됐다. 기초질서 위반행위에 대한 단속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문제점으로 지적됐다.민선 구청장이 표를 의식,불법 주·정차 단속이나 불법 노상 적치물 행위 단속을 느슨하게 펼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시 전체의 원활한 인사조정권 행사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도 자치구의 폐단으로 꼽혔다.자치구청장들이 시와 자치구,자치구와 자치구간인사 교류에 소극적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폐해는 상급 단체와 자치구간의 갈등이다.워크숍에서도 이부분에 대한 비판이 집중됐다.연사들은 차지구간 권한 행사의 형평성이 부족하고,특별·광역시장의 정책 침투가 여의치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자치구간 문제를 시에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자치구에 대한 시의 권한 부재로 인해 갈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정부가 자치법을 개정하려면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우선 해당 자치구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또한 자치제 훼손이라는 이념적 비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과제다. 홍성추기자 sch8@
  • [대한포럼] 남북 경제공동체 위한 새출발

    남북한은 11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 실무접촉에서 투자보장,이중과세 방지,청산결제,상사분쟁 해결 등 4개 부문에 대한 남북경협합의서에 가서명했다.이에 앞서 남북한은 청산결제 전용 화폐를 만들기로 함에 따라 안정적인 대북교역의 길을 열어놓았다.남북경협에대한 가서명은 앞으로 남북 장관급회담을 통한 정식서명과 남북 양측의 내부적 동의절차가 남아 있으나 정식 발효될 것으로 본다.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한 만큼 남북경협에 대한 실천 합의는 당연한 귀결이다.또 지난 9월 제3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경협에 따른 제반 문제를 협의,추진하기 위한 실천기구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기 때문에 합의서 발효는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남북경협 합의서는 남북 경제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본틀을 마련함으로써 본격적인 남북 경협시대를 개막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관건이 되는 경제협력이 예측가능한 방향으로안정적인 발전을 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특히 이번 남북경협 합의서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류를 타고 있는 남북관계 진전과 보조를 같이하는 또 하나의 가시적 성과다.이로써 남북경협은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며 우리 민간기업들의 대북투자 분위기 확산은 물론 남북경협 전반이 활성화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남북경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은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을통해 남북한간의 신뢰를 정착시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통일기반을확충한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로 평가된다.경제공동체 구성은 대북 경제지원에 따른 신뢰구축은 물론 남북화해의 폭을 넓히는 실질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경제공동체 구성은 무엇보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이라는 효과를 수반하고 있다.남북의 광범위한 경제교류·협력은 민족공동번영의 기반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통일비용을 줄이는 대체효과도 얻을 수 있다.남북경협은 북한경제 회생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데다장기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민족동질성을 회복하여 민족경제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남북경제협력은 ‘국민의 정부’가 정경분리에 입각한 경제교류를선언하면서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998년 2월25일 취임사를 통해 “정경분리에 입각한 경제교류가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이어 정부는 대북투자규모 제한을완전히 폐지했으며 방북허용 대상 확대,기업의 대북투자 자율 존중등의 조치가 뒤따르면서 민간분야 교류 활성화가 본격화되었다.1999년도 남북 교역액은 3억3,343만7,000달러로 북한 무역총액의 23%에해당된다.올해 상반기중 남북교역이 7,597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667만여달러에 비해 34.1% 증가한 것은 남북경협에 대한 정부의적극적인 지원 결과다. 남북경협에서 남한은 중국·일본에 이어 북한의 세번째 교역대상국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북한경제는 이제 남한경제와 불가분의 협력관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김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남북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국책연구기관간 협의를 북측에 공식제의한 배경도 남북경협의 질적 발전에 역점을 둔 정책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선택할 최선의 방법은 남한과의 경협을 더욱확대· 발전시키는 일이다.북한경제가 외부의 수혈 없이 자력갱생은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남북경제공동체 구성의 조속한 실현은 통일과정에서 풀어야 할 필수적 과제다.북한은 남북경제공동체 구성이 갖는 역사성을 바로 인식하고 남북경협에 적극 호응하기바란다. ■장청수 객원논설위원csj@
  • “경복궁 주차장 어찌하오리까”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 안에는 ‘궁궐 제모습 찾기’와는거리가 먼 세 개의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그리고 중앙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주차장이다. 민속박물관은 경복궁 복원 계획에 따라 2009년까지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계획이다.중앙박물관은 2003년 용산에 새 건물이 세워지면 조선왕조역사박물관으로 용도가 바뀐다.왕조역사박물관도 경복궁 완전 복원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왔다. 그러나 주차장만은 2009년 마무리될 경복궁 1단계 복원계획에 언급이없는 것은 물론 후속 복원에 따른 검토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앞으로도 조선왕조 정궁의 역사성을 대책없이 훼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복궁 박물관이 새삼스럽게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극심한 교통난때문이다. 최근 경복궁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삼청동길은 주말은 물론평일에도 관람객들이 타고 오는 차량들로 극심한 정체가 빚어진다. 교통경찰관들도 삼청동에서 동십자각으로 이어지는 편도 2차로의 1개차로는 아예 관광버스와 승합차들에게 내어주고 주차를 묵인한다.이렇다 보니 경복궁이나 두 박물관을 찾는 내외국 관광객들은 물론 삼청동길을 통행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931평 넓이의 경복궁 주차장이 문을 연 것은 지난 85년.지상에 버스 48대와 승용차 31대,지하 1·2층에 각각 승용차 110대와 88대를수용할 수 있다.적지않은 규모지만,수요에는 크게 못미친다.서울시민들에게는 대중교통을 이용토록 유도한다지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나아가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까지 진입이 어려운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그럼에도 주차난은 앞으로 심해지면,심해졌지 저절로 풀려가는 일은결코 없을 것이다.지금도 교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경복궁 2단계 복원계획을 세우며 주차장을 아예 없애는 결정을 내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왕궁안의 주차장’을당연시 여긴다면 모를까,경복궁을 복원할 계획이라면 늦었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경복궁 안’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재청 뿐 아니라 ‘경복궁 밖’을 관리하는 서울시등 관계기관이 함께 모여 주차장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놓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틈새 뉴스

    ◆조달청은 이달말까지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물자사랑 어린이 글짓기 작품을 공모한다고 6일 밝혔다. 응모를 원하는 어린이는 물자사랑 실천과 관련,평소 생활주변에서보고 느끼고 실행에 옮긴 체험사례를 200자 원고지 10∼20장(A4용지2∼4장) 분량으로 적어 대전시 서구 둔산동 정부대전청사 조달청 물자비축국 물자관리과(042-481-7131,7456)로 보내면 되고 인터넷(http://www.sarok.go.kr)을 통해서도 응모할 수 있다.조달청은 다음달말대상 1명(상장 및 장학금 100만원)을 비롯해 금상 2명(50만원),은상3명(30만원),동상 4명(20만원),장려상 10명(10만원) 등 수상자를 선정,발표할 예정이다. ◆행정자치부는 6일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적 우수성과 유구한 역사성을 알리고 해외교포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국가상징’이라는 영문책자를발간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상징인 태극기,애국가,무궁화,국새 등에 대한연혁과 해설을 컬러 화보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쉽게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또한 올해 개정된 한글의 로마자표기법에 맞춰 각 기관에서 제각기 표시하던 국가상징과 각종 기념일의 영문표기법을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
  • 신간 맛보기

    ◆내 생애 단 한번(장영희 지음,샘터 펴냄)‘코리아 타임스’에 연재중인 칼럼 ‘Crazy Quilt(조각이불)’를 읽어본 사람은 저자(서강대영문과교수)의 글맛을 잊지 못한다.저자가 우리말로 쓴 첫 수필집인이 책은 그의 한국어 감각 또한 남다름을 보여준다.생명의 소중함과희망의 철학을 전해주는 40편의 글이 실렸다. ‘걔,바보지요?’라는 글의 한 대목.“‘주홍글씨’라는 소설에서 너새니얼 호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일이라고 했다.나무도 가슴 아픈 말을 들으면 슬퍼서 죽는다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그의 글엔 휴머니즘이 살아 숨쉰다.7,500원◆우리 무당 이야기(황루시 지음,풀빛 펴냄)전통예술의 기능 보유자이자 현대판 ‘불가촉(不可觸)천민’인 무당의 인간적 면모를 밝힌책.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기층문화로서의 무속에 대한 오해와편견을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췄다.어설픈 무당연기나 신비주의적 접근으로 무속을 비하하고 미신화하도록 부추기는 TV드라마나 추적 다큐멘터리 등이 비판의 표적.돈만 아는 무당,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기주(祈主)등 요즘 굿판의 세태에 대해서도 일침을가했다.‘무당 굿놀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관동대 국문과교수)는 무당을 “문화의 산물이자 일정한 역사성을 갖는 존재’로규정한다.1만원◆야성의 삶(개리 스나이더 지음,이상화 옮김,동쪽나라 펴냄)미국 캘리포니아 원시림연에 몸을 묻고 스스로 야생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저자의 명상 에세이.퓰리처상 수상 시인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반문화주의자인 저자는 살아 있는 자연의 신화와 노래를 잔잔한 목소리로들려준다.인간은 악하고 자연은 선하다는 서양철학 특유의 맹목적이고 이분법적인 구분은 잘못된 것이라는 게 기본 전제. 저자의 사상은 “어떤 문명도 견딜 수 없는 야성을 내게 달라”고 한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와도 통하는 데가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의 선(禪)과 인도사상,대승불교의 진리를 전해주는 글들이 실렸다.9,000원◆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김상환 지음,민음사 펴냄)서울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가 10년 동안 쓴 시인 김수영에 관한 글을 엮었다. 철학자에 의해 책으로 씌어진 국내 최초의 단일 시인론이라고 한다.20대 때 프랑스 대학에서 데카르트를 열심히 공부하던 저자는 인생에서 한번은 데카르트를 읽고 또 읽던만큼의 열정과 수고를 우리나라고전에 바치리라고 마음먹었는데 거기서 김수영을 만났다. 그리고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대하면서 남루하고 고단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사랑하게 되었다. 문학소년이었지만 엄정한 논리의 철학자인 저자가 김수영 글의 무엇에 그토록 끌리는 것일까.1만2,000원
  • [문화도시 문화거리](10)서남해 대표적 藝鄕 목포

    ‘목포는 항구다’라는 유행가를 처음 듣고는 친절이 어지간히 지나치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그런데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라거나‘목포는 항구’만큼이나 지당하여 굳이 입에 올릴 필요가 없는 말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바로 ‘목포는 예향’ 또는 ‘목포는 문화도시’라는 말이라고 목포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목포는 유달리 문화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다.작가 박화성과 그의 아들로 역시 작가인 천승세,극작가 차범석,시인 김지하,소설가 김은국,서양화가 김환기,남종화의 대가 허건,승무의 명인 이매방,판소리명창 조상현과 신영희를 비롯하여 ‘목포의 눈물’을 부른 대중가수 이난영과 ‘님과 함께’의 남진도 이곳 출신이다. 목포 중심가의 다방이나 음식점이면 으레 이름난 화가들의 그림 한두 폭쯤 걸려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주인의 취향을 보여준다기 보다는,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이 모이지 않는 이곳사람들의 문화수준을 반영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인구 26만명의 중소도시로시 예산의 7%를 문화예술에 투입하는 것도 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기초자치단체로 교향악단과 합창단·무용단·소년소녀합창단·연극단·국악단 등 6개 시립단체를운영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목포문화를 이끌어가는 두개의 공간적 축은 유달산과 입압산아래 바닷가에 펼쳐진 갓바위 문화의 거리다.구시가지를 감싸안은 유달산 일대가 전통적인 목포의 문화중심이라면,하당동과 신흥동에 조성되고 있는 신도시와 이웃한 갓바위 문화의 거리는 현대적 문화를포용하여 조화를 이룬다.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달산으로 가는 어귀 대의동에 목포문화원이 있다.1900년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건물은 사적으로 지정됐다.문화원은최근 각종 강연과 강좌가 열리는 사회교육공간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다,2층에 박화성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어 더욱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라는 유달산은 목포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산이다.유달산 중턱에 서서 다도해 풍경을 내려다보며 ‘목포의 눈물’노래비에 새겨진노랫말들을 읽고 있노라면,목포사람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유행가 가사로 흘려버리지 못할 만큼 감회를 느끼기 마련이다. 유달산에는 국내 최초의 조각공원을 비롯하여 또 하나의 공원인 어민동산,난전시관 등이 밀집해있다.최근 ‘유달산 문화권’에서 새로운명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은 ‘문화의 집’이다.도심거주 인구가 줄어들면서 문을 닫은 옛 달성초등학교가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시립국악원도 자리잡아 하루종일 단원들의 연습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습이 끊이지 않는다. 갓바위 문화의 거리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문화공원일 것이다.바닷가에 자리잡은 문화예술회관은 지역 공연문화의중심지이다.시립예술단체의 본거지로,유수한 해외예술인 및 단체도이곳을 빠뜨리지 않는다. 갓바위 야외공연장에서는 매주 음악·무용·연극공연에 시 낭송회·사진전 등 갖가지 문화예술행사가 펼쳐지는 ‘토요예술마당’이 열린다.이 행사를 주관하는 예목회(예향목포인연합회)는 목포 토박이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지난 1995년인간문화재 이매방이 출연하여 첫 마당을 연 뒤 지난 16일 200회 기념행사를 가졌다. 김영자 예목회장(서양화가)는 “토요마당은 목포문화예술인들의 목포를 위한 예술마당”이라면서 “모임을 만들어 토론하고 평가하는 것도 좋지만,시민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회원들모두 무료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웃한 해양유물전시관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유물선의복원작업이 이 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그러나 바다가 삼면을 둘러싼 이 건물의 로비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이곳을 찾은 보람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지역의 향토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는 향토문화관과 소치(小痴)에서미산(米山)·남농(南農)·임전(林田)·오당(五堂)으로 이어지는 ‘운림산방(雲林山房)’ 5대의 화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남농기념관도 이곳에 있다.여기에 2002년 자연사문화박물관이 들어서면 이 일대는 서남해권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가 되기에 모자람이없다. 이곳에서는 또 2002년 목포 세계도예엑스포를 앞두고 지난 23일부터세계도예 프레엑스포가 열리고 있다.오는 10월3일 막을 내리는 프레엑스포는 목포문화가 한국문화를 넘어 세계문화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고 있다. 목포 서동철기자 dcsuh@. [이렇게 가꿉시다] “인류생존 걸린 '해양시대' 대비를”. 해양박물관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해양에 관한 역사,고고,민속,예술,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가치가 있는 자료를 조사,수집,보존,전시 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 나라들은 해양역사를 연구하고 전시하여 바다를 개척한 조상들의의지와 자존을 지키기 위해 국립의 해양박물관을 갖고 있다.해양박물관 가운데는 해운과 조선기술사,해양인류학 등 해양문화 전반을 다루는 종합 시설도 있지만,발굴을 통해 인양된 고선박(古船舶) 등을 집중 조명하는 박물관도 있다. 영국과 독일·네덜란드 등은 배와 바다에 얽힌 역사와 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해양박물관,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바이킹박물관,스웨덴은침몰한 17세기 전함을 인양하여 전시하는 바사호박물관 등을 갖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 해양국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들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이젠 우리가 어엿한 세계적 해양 대국이라는 사실을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우리 해운인과 우리가 만든 선박이 전 세계 대양을 누비고 있는 자랑스런 현실이 뿌리 없이갑자기 돌출 되었다고 믿는 것인지.다행스럽게도 신안해저발굴조사는잊고 있던 바다의 역사성을 일깨워 주었다. 무관심의 바다 속에 묻힌선조들의 훌륭한 해양문화 전통을 발굴하고 지키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그 뜻을 전해주고,바다에 대한 도전과 꿈을키울 수 있도록 준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소화하기에는 지금의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서는 너무 부족하다.1994년에 설립된 해양유물전시관이 채 10명도 되지 않는 전문 인력으로 넓은 해역의 발굴조사와 보존,전시,사회교육을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다.전문 인력의 양성,적정 규모의 조직과 예산,역할과 기능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미래학자들이 ‘해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그 세기에 들어서 있다.인류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는 심각한 난제를 해양에서풀어야 할 것을 내다 본 것이다.과거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바다라는자연을 극복하고 활용하였는지 그 지혜를 역사에서 찾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바다 속에 묻혀 있는 역사적 유물뿐만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 잘못 갇혀있는 바다까지도 발굴해 내야한다. 그러한 일을 위해 제대로 된 국립해양박물관 하나는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金 鏞 漢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실장
  • [대한포럼] 경의선 복원, 통일 번영의 출발

    경의선 복원과 남북도로 연결공사가 마침내 시작됐다.50여년간 끊어졌던 남쪽 문산역에서 장단역간 12㎞ 철도 구간을 이어가고,통일대교와 장단간 6㎞ 구간 왕복 4차선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지난 1945년 9월11일 서울에서 신의주 운행을 마지막으로 민족의대동맥이 단절된 지 55년 만에 재개통을 위한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경의선 복원공사가 시작된 18일은 우리나라 철도 개설 101주년 기념일이어서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계획대로라면 내년 9월이면 남북간 도로와 철도길이 열리게 되며 경의선을 타고 평양과 신의주를방문할 수 있게 된다.특히 반세기를 넘은 분단상황에서 경의선이 복원되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첫째,경의선 복원은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어 통일·번영의 새 지평을 여는 획기적 민족사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6·15공동선언으로 조성된 남북화해 무드를 통해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소시키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이산가족 상봉사업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후 최대의 가시적 성과로 평가될 통일사업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경의선 기공식 연설을 통해“우리 민족이 화해와 협력과 번영의새 시대로 나아가는 민족사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역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남과 북이 도로와 철도 왕래를 통해 민족화해와 동질성 회복에 크게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남과 북이 기존의 불신과대결의 냉전적 자세를 버리고 공존공영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도 의미있는 진전이다.남북간 군사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을 뚫고 민족의 대동맥을 육로로 직접 연결하는 대역사(大役事)라는 점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경의선과 도로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남북 쌍방이 매설해 놓은 각종 지뢰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남북간 군사적 긴장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둘째,남북이 하나의 철도망으로 연결됨으로써 물류공급이 원활해지고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남북한간인적·물적 통로로서의 역할은 물론 북한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지난해 남북간 해상 물동량은 98만4,000t으로매년 11.3%씩 늘어나는 추세다.이 물동량은 주로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하기 때문에 남북이 모두 막대한 물류비용을 부담하고 있다.이것이철도와 도로 등 육상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북간 운송비는 약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기업의 가장 큰 부담인 높은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활성화의 초석이 되는 인프라 투자 기회를 확대할 수 있고,이를 통해 외국자본 유치는 물론 경의선 연결에따른 통과운임 수입도 얻게 돼 북한 경제의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경의선 복원은 동북아시아 물류 중심지로서 한반도의 입지적우위를 제공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경의선 복원은단순히 남북을 잇는 차원을 넘어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등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이른바 ‘철(鐵)의 실크로드’로활용될 것으로 보아 우리 경제의 유라시아 대륙진출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의선 복원에 따른 이같은 역사적 의미와 긍정적 효과에도불구하고 여러가지 난제를 갖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우선 철도복원에 따른 막대한 재원마련이 어려운 과제다.따라서 내년 9월로 예정된 복원공사가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며 북측과의 면밀한 협의와 협조를 통해 차질없이 진척시켜 나가야 하겠다.경의선 복원을 계기로 민족의 통일·번영의 기틀을 넓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장 청 수 객원논설위원 csj@
  • 광복군 창군6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주제발표 요지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우전)는 오는 17일 광복군 창군 60주년을앞두고 14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3층 대회의실에서 기념식과 학술세미나를 갖는다.‘한국광복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광복군의 역사적 정통성과 의의 등을 확인하는 여러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이중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김행복 국방군사연구소 연구위원,한시준 단국대 교수 등의 주제발표문 3편을 요약한다. ■광복군의 정통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은 역사성·정통성에도 불구하고 해방후 창군과 건국과정에서 소외·배척됐다.그 이유는 크게 4가지로 분석할수 있다. 첫째,수적인 열세이다.해방전 일본군·만주군에 복무했던 한국인은39만여명이었으나 광복군 출신은 3만5,000여명에 불과했다. 둘째,미군정이 일본군 전력자나 영어 구사가 가능한 학도병 출신들을 중용했다. 셋째,광복군 계열의 분열현상이 심했다.광복군출신 가운데 오광선은광복청년회,이범석은 조선민족청년단,이청천은 대동청년단을 조직했다.이념적으로도 임시정부 우파계열을 중심으로 대한무관학교,좌파계열로 조선국군학교(중앙육군사관학교) 등이 대립했다. 넷째,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인사정책이 편파적이었다. 이승만은 임정요인들과 광복군을 건군 참여에서 배제했다.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이국무총리겸 국방장관이 되었으나 이승만정권의 임정 배척 노선을 극복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맞아 국군의 정통성과 ‘국군의 날’ 재정립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군사(軍史)를 광복군으로 소급하여 정통성을 확보하고 국군의 날 역시 광복군 창건일로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광복군 정통성의 국가승인 문제(한시준 단국대 교수) 광복군은해방후 국내와 중국에서 건군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 작업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중국측은 공산당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광복군의 건군 활동을 불안요소로 간주했다.또 미군정은 임정과 광복군의 존재를인정하지 않았다. 광복군이 미군정의 건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군 창설과정에서 광복군의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군정 하의 통위부와 조선경비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방부와 국군으로 개편되었는데,통위부장 유동렬은 모든 권한을 국방부장관 이범석에게 이양하였다. 광복군에 의해 미 군정의 군권(軍權)이 대한민국 국군으로 넘겨진것이다.정부수립후 광복군 출신들은 창군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현재 국군은 광복군의 역사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국군의 뿌리를 국방경비대,육사의 연원을 군사영어학교에 두고 있다.이제우리 군의 뿌리와 연원을 되찾아야 한다. ■광복군의 군사적 특성(김행복 국방군사연구소 연구위원) 광복군은군사령부가 먼저 편성되고 예하부대는 차후 구성됐다.인적자원은 중국 관내에서 양성된 군사간부와 만주에서 이동해온 독립군 세력이 주축을 이뤘다. 이들은 이른바 초보활동에 의해 장병을 모집해 1년만에 3개사단을형성하려고 했다.그러나 일제의 무자비한 소탕작전, 병력모집의 곤란성, 중국의 간섭 등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에 파견된 공작대원들은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고 미국 첩보기구 OSS와의 훈련도 마쳤다. 광복군은 임정의 국군이었으나 정규군이라기보다 비정규군·특수전부대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데 머물렀다.이 점 때문에 광복군의의의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망명정부가 이국 땅에서 만든 광복군은 조직적·통일적·지속적인 군사활동을 수행했으며 이는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梨大박물관 ‘…옹기의 원류를 찾아서’ 展

    도기는 청자·백자와 함께 한국도자의 3대 축이다. 그러나 도기는 저급도자기로 분류돼 도자사에서 늘 누락돼왔고,도기의 전통을 이은 옹기는 한국의 전통 도자기임에도 불구하고 민속자료 정도로만 인식돼왔다. 도자기로서의 역사성과 예술성은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한국도자의진정한 주인공인 도기와 옹기. 그 숨겨진 가치를 밝히고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없는 과제다.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마련한 ‘제3의 전통,옹기의원류를 찾아서’전(12월 20일까지)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전이다.한국도기의 전통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의 푸레독에 이르는 무유(無釉)도기와 구림도기에서 옹기에 이르는 시유(施釉)도기 두 갈래로 나뉜다. 옹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 푸레독과 유약을 입힌 옻그릇,유약을입히지 않았지만 고온소성으로 표면이 반짝이는 반오지가 있다.옹기의 성형기법으로는 두 가지가 전승된다.선사토기의 제작기법처럼 바닥판을 만든 뒤 또아리 쌓기로 타래 성형을 하는 권상법(捲上法)과바닥판 위에 넓은 흑판을 붙여 올리는윤적법(輪積法)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도자사상 가장 뚜렷한 맥을 형성해온 도기와 옹기의 발전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남북국시대의 흑갈유(黑褐釉) 도기,고려시대의 녹갈유 자배기,조선시대 옹기 소주고리 등 170여점이 박물관 1전시실과 로비에 전시돼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나선화 박물관 학예실장은 “옹기가 한국의 전통도자기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한국도자사 연구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연구대상도 일본인이 선호하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등 자기발달사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이번 전시는 옹기야말로 한국도기역사의 정점임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 동작, 역사문화 탐방로 만든다

    서울 동작구에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탐방가로가 조성된다. 동작구(구청장 金禹仲)는 옛 노들나루 주변에 있는 사육신 묘지공원과 효사정,용양봉저정,국립 현충원과 호국사찰 지장사 등을 잇는 5.3㎞ 구간을 역사문화 탐방로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 일대에 산재한 충절과 애국의 명소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 가로명도 ‘노들 역사문화 탐방로’로 했다. 탐방로는 현충원에서 효사정∼용양봉저정∼사육신묘에 이르는 1개 역사탐방로와 신설될 한강나루터에서 취수탑∼조정협회∼한강 시민공원구간의 한강나룻길,중앙대∼현충로 구간의 중앙대길,한강 시민공원에서 전철 동작역∼현충원에 이르는 동작역구간 등 3개 보조구간으로 구성된다. 우선 2003년까지 사업 취지에 맞춰 탐방로 주변 빈땅에 역사와 문화적 주제를 담은 다양한 소공원·쌈지공원을 조성하고 보도는 전통문양으로 단장하기로 했다.연차적으로 인근 시민아파트와 헌병대 부지를 공원으로 꾸미고 사육신의 충절이 서린 노들나루도 재현하며 본동의 가압장 부지에는 공원이나 소전시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노량진수원지 주변에는 배수지공원과 녹지가 조성된다.정자인 ‘용양봉저정’에는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개방형 쌈지공원과 노인휴게시설 설치를검토중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용산역일대 첨단업무단지로

    서울역에서 삼각지,용산역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용산지역 100여만평이 서울시의 대표적인 부도심으로 개발된다.또 용산역 일대 14만여평에는 외자 유치를 통해 국제첨단업무단지가 조성된다. 서울시는 4일 서울역과 삼각지,용산역 일대를 상업·업무기능 중심의 3핵지역으로,동자·남영동 지역과 용산동2가 지역을 배후 주거지 등 지원기능 위주의 2매듭지역으로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용산부도심 지구단위계획안’을 확정,공고했다. 계획에 따르면 서울역지구는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인한 업무확대에 대비해 5,000평의 역무시설을 확충하되 건물의 높이는 서울역의 역사성과 입지를 감안해 서울역사 돔 하단부 높이를 초과할 수 없게 했다. 삼각지지구는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이 변경돼 용적률이 최고 300%에서 500%로 완화되지만 남산과 연계한 도시경관보호를 위해 신축건물의 최고층수는 지역별로 10∼15층 이하로 제한된다.옛 상명여고 부지는 부도심 기능 제고를 위해 용적률을 900%까지 허용하되 한강로변과 백범로주변에는 대규모 공원이 조성된다. 이와 함께 용산역지구 14만평은 용적률 800%를 적용,층고 350m,80층 규모의 초고층건물 건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국제적 첨단업무단지로 조성하기로했다.국제업무단지임을 감안,용산철도정비창 이전을 전제로 국제공모를 거쳐개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서울시는 특히 고속철도 중앙역사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용산역사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대규모 상업·업무시설을 갖추고,현재 슬럼화해있는 용산역 앞쪽도 도심 재개발을 통해 대형 빌딩단지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달중 공고·공람절차를 마친 뒤 시의회 의견청취와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1월중 이를 최종결정,고시할 계획이어서 빠르면 내년부터 단계적 개발이 가능할 전망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포럼] 기대되는 남북군사委 설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를 통해 “남북간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긴장완화와 불가침등 평화를 위한 조치에 대해 적극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이 제의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문제는 한반도 냉전종식을 위한 획기적 조치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르면 7월중에 설치될 것으로 보여 6·15 평양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와 관련,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음을 시사해주고 있다.평양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상호 무력으로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평화정착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뒷받침됐다고 하겠다.남북 두 정상이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통일문제를 대화를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이 본격 협의될 전망이며 급류를 탈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의 군사위원회설치문제는 가능성과 제약성이 혼재돼 있어 많은 어려움이있을 뿐만 아니라협상시간도 장기간 소요된다는 점에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는 어려운 문제로 인식돼 왔다. 김대통령이 제의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구상은 한반도의 적대적 긴장상태를청산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해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기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장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지난 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동이라는 의미도 함께 하고 있다고 본다.남북기본합의서에 규정된 군사공동위원회를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가동,군사적신뢰구축 방안을 논의해 나가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군사위원회가 본격 가동되면 남북한은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군사직통전화 설치,상호비방 중지,파괴·전복행위 중지등 당장 실현 가능한 문제들을우선적으로 논의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냉전구도를 해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대통령이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그렇다. 엄밀하게 보면 현재의 남북관계는 분쟁과 평화라는 이중적 구조를 갖고 있다.남북간의 경제,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전쟁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이와같은 한반도의 불확실한 안보상황을 극복하고 전쟁방지를 논의할 기구가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도 남북군사위원회 설치는 매우 중요하다.지금까지 남한은 먼저 신뢰를 구축한 다음 군축을 하자는 논리를 내세운 반면,북한은 군축을 포함한일괄타결을 주장해 왔던 점을 고려할때 민족의 화해와 협력,상생(相生)을 위해서는 군사위원회 설치를 통한 군사적 신뢰 구축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과제다. 특히 남북군사위원회에서 불가침문제를 합의하는 단계로까지 진전되면 한반도 평화통일은 물론 전쟁종식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평화정착의 전기가 되기를 7,000만 겨레는 바라고 있다.6·25전쟁 이후 남북한은이념대립에 기초해 ‘적화통일’과 ‘멸공통일’이라는 극단적 대립속에 군비경쟁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남북간의 과다한 군비경쟁으로 자칫 민족의 공멸을 자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만큼 남북이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국제질서가 국가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며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대결과 냉전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또다시 세계사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이같은 역사성에서 남북군사위원회가 조속히 구축되기를 바란다.“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남북 두 정상의 합의정신을 이행하고 평화통일의 대도를활짝 여는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 남북군사위원회가 조속히 설치되기를 기대한다. 장청수 논설위원csj@
  • 독자의 소리/ ‘독도는 우리땅’ 역사적자료 수집 홍보를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알고 있다.따라서 일본의 독도소유권 주장에 대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부르거나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갖가지 대응을 펼치고 있다.그런데 몇년전 분명히 우리땅인 독도에 접안시설공사를 하니까 일본의 항의가 있었고 그 항의 때문인지 당초 성대하게 치를예정이었던 접안시설 준공식이 울릉도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더욱이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견책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일본인의 호적을 독도로 옮기는 것을 정부에서 허락을 했지만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행동도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도 한때 음성적으로 규제된 적이 있다.이런 여러가지를 보면서 과연 독도는 말로만 우리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없다. 차제에 언론기관에서 독도의 역사성과 대륙붕에 의한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여 독도가 우리땅임을 국민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본다.이를 통해 일본정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밝혀야 한다.또한 우리정부의 입장과 대응은 무엇인지소상히 밝혀 국민의 알권리와 긍지를 충족시켜 주기 바란다. 한정남[서울 강서구 발안1동]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4)미술

    지금 우리 사회의 1차적인 관심사는 분단의 극복이다.미술활동 또한 이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미술은 과연 분단현실나아가 통일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해왔으며 또 반영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은 우리에게 전쟁은 있었지만 전쟁미술은 없다고 말한다.이것은 우리 미술이그만큼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은 50년대를 제외하곤 거의 전쟁을 다루지 않았다.60∼70년대 ‘민족기록화’의 하나로 간혹 다뤘지만 관변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한국미술이 민족분단의 아픔과 모순을 인식하고 이를 본격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다.분단극복 혹은 통일을 지향하는 그림들이 ‘6·25’‘분단전’‘통일전’등 주제전의 형식을 통해 선보였다. 6·25를 다룬 미술작품은 현재 별로 남아 있지 않다.전쟁체험을 형상화하는데 비교적 성공한 작가로는 박고석,이수억,이철이,양달석 등이 꼽힌다. 특히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2)은 6·25 당시 피난민 거주지였던 부산 범일동 풍경을표현주의 기법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그러나 50년대 전쟁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들은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전쟁화가’로서의 집단적 조형이념을 보여주지도,양식적 영역을 확보하지도 못했다.그들의 그림의 모티브는 한정됐다.전쟁으로 인한 비극상을 단순 소박하게 재현했을 뿐, 그 역사성을 깊이 있게 살핀 작품은 드물다.한국전쟁 조형물로 또 다른 관심을 끌 만한 것이 미국 수도 워싱턴 국민광장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기념동상이다.19명 군인들의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담은 이 상징물은 국내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잊혀질 수 없는 전쟁’으로서의 6·25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우리 미술은 문학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분단상황에 뒤늦게 주목했다. 문학분야에서는 4·19이후 분단모순과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고 이어 참여문학이 등장했다.참여문학은 70년대 들어 민족문학으로 발전해갔다.모더니즘을극복하고 민족문학 혹은 민중문학이란 이름 아래 통일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반면 미술 쪽에서는 모더니즘이 제도권에 진입,주류를 이루며 20년 가까이 화단을 지배했다.이는 미술의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단상황에 대한 미술가들의 깊은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우리 미술이분단상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데는 70년대 이후 문학 등 인접예술분야와 사회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80년대 들어 분단극복과 통일 염원을 담은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오윤 ‘통일대원도’,손장섭 ‘역사의 창-통일염원’,최병수 ‘분단인’,김봉준 ‘온 겨레도’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그 내용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상징적인 것이어서 구체적인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미술에서 분단모순이나 통일문제는 이제 더이상 민족·민중미술 작가들만의 몫이 아니다.보다 많은 미술가들 사이에 통일지향적인 미술이념이 확산될 때 한층 심화된 그림이 나올 수 있다. 한편 6·15선언 이후 분단극복을 위한 남북 미술교류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주목된다.한국미술협회는 광복절 ‘33인 판문점 합동전’을 추진하고 있으며,한국고미술협회는 10월중도자기 등 고미술품을 중심으로 한‘남북교류민족전’을 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또 월북화가 이쾌대의작품전이 최근 그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서 열렸으며,지난 5월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천재화가 오은별의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진정한 의미의 남북 미술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제도미술’의 틀에갇혀 있는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김종면기자 jm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1)문학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지 50년이 되는 해.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성사로어느 때보다 강한 화해 분위기가 감돌아 6.25를 맞는 감회가 유다르다. 분단극복을 포함한 민족문제의 해결은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최대 책무이며문화예술 부문은 믿음직한 선봉이 되고자 한다.남북화해의 세기에 맞는 첫 6.25를 기해 동족상잔의 치유와 회복,통일을 향한 장르별 문화예술의 성과와과제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상처는 대개 시간과 함께 아문다.그러나 세월이 상처의 본질까지 치유시켜주지는 않는다.상처를 근본적으로 낫게 하자면 세월의 망각에 마비되는 대신시간이 주는 거리감으로 기억을 보다 투명하게 닦아야 한다. 6·25이후 50년을 되돌아 볼 때 6·25를 다루거나 관련된 문학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드물어졌다.이같은 관심의 양적 축소는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을 회피한 결과일 수도 있으나 주제가 본질·정예화한 데서 온 당연한 현상으로수긍될 수 있다.소설을 중심으로 한 6·25문학은 직접적 아픔에 압도된 50년대식 전중·전후 문학을 극복하면서 ‘이념’과 ‘분단’을 최대의 이슈로삼게 된다. 전중·전후문학은 “6·25로 인한 개인의 파탄과 가치관의 붕괴,풍속적 변모 혹은 전쟁의 극한 상황성,삶의 부조리 등을 묘사·절규한다”고 평론가김병익은 지적했다.김동리 박영준 황순원 염상섭 등 전쟁이전 활동 소설가들과 함께 전쟁을 체험하며 등단한 손창섭 오영수 김성한 서기원 이범선 박경리 선우휘 등의 전후세대 소설가들의 50년대 작품들은 6·25란 대폭발로 귀가 멀도록 멍멍해진 가운데 씌어진 것이다.목전의 미증유의 상황에 사로잡혀있어 역사적인 안목으로 차분히 응시하는 겨를 같은 것은 도저히 기대하기어려웠다.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김동리의 ‘실존무’ 염상섭의‘취우’ 손창섭의 ‘비오는 날’ 박경리의 ‘불신시대’ 서기원의 ‘암사지도’ 등은 높은 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6·25를 객관적·전면적으로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6·25전쟁의 직접성이 닳아지면서 이 동족상잔의 거대한 뿌리로서의 이념과 끝나지 않는 전쟁의 현재로서의 분단 문제가 서서히 전면에 나선다.이때 50년대 문학은 “6·25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가 결여되며 따라서 분단에 대한현실적,미래지향적 의지를 정서적 비애로만 환치시킨다”(김병익)는 비판 앞에 놓인다.즉 역사의식의 미흡을 지적받고 있는데 장용학의 ‘요한시집’(1955) 등 몇몇 작품들은 비교적 역사의식을 지닌 작중인물을 통해 분단에 대한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고자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그리고 상상력의 문을 넓혀준 4·19혁명과 함께 최인훈의 ‘광장’(1960)이 나왔다.‘6·25를 하나의의식화된 이념의 형태로 포착한’(김윤식) 이 소설은 6·25의 이념적 동인이되었던 양대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그 현실적 양상을 ‘한꺼번에’비판하는 넓은 시야를 보여주었다. 문학이 힘을 쏟아야할 당대의 이슈들이 많아지고 반공 이념 일변도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6·25문학의 후신으로서 분단 현실을 투철하게 인식하려는 ‘분단 문학’은 활기를 잃었다.이 와중에서 이호철의 ‘판문점’(1961) 하근찬의 ‘야호’(1972) 윤흥길의 ‘장마’(1973) 김원일의 ‘노을’(1977) 등은 편협하게,분단고착적으로 굳어진 6·25,남북대치에 관한 일반 독자의 인식에 일침을 가했다.또 홍성원은 역사성은 뒤떨어지지만 6·25를 총체적으로조망하는 대하장편 ‘남과 북’을 내놓았고 불명료한 역사관점 속에서도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한 이병주의 실록장편 ‘지리산’이 각각 70년대 후반 완성됐다. 시간은 망각의 잡초를 무성하게 퍼뜨리지만 뜻있는 사람에겐 드디어 기억의꽃망울을 터트리도록 한다. 6·25 체험세대인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83년9월부터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89년9월 10권으로 완간된 이 소설은 빨치산화한 민중,백성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조명하고 있다.40년 가까이 왜곡과 망각의 음지에 차폐된 역사에 기억과 평가의 햇빛을 쏘인 것이다.이 햇빛으로쑥쑥 자라난 것은 빨치산의 신화가 아니라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된 6·25당시의 역사와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투영된 분단의 현실이었다.이제 문학에서분단은 절대적으로 고착된 전제가 아니라 극복의 몸짓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변물인 것이다. 이후 미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김하기의 ‘완전한 만남’(1991)과 분단현실과 관련이 깊은 제주 4·3사태를 이야기하는 현기영의 ‘마지막 테우리’(1994) 등이 있지만 탈역사적 기류의 90년대에는 이렇다할 6·25,분단문학작품이 없었다. 전쟁체험 세대가 점진적으로 이룩한 분단극복의 방향성에다 남북 양쪽을 과거 어느 때보다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시대상황을 잘 활용할 때 6·25 미체험의 신세대들도 분단문학의 순도를 한 눈금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재영기자 kjykjy@
  • 각국 언론 보도내용 “한반도 평화의 새시대 맞았다”

    [워싱턴 도쿄 파리 외신종합]각국 언론들은 남북공동선언 합의 소식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내보내며 이를 한반도 화해,통일을 향한 징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남북한간 이견의 소지가 남아있어 통일까지는 오랜 시일이걸릴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14일로 이틀연속 1면 머리기사로 올리며 “민주주의 영웅적 투사로 지위를 굳힌 김 대통령이 남북한간 대화를 복원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변화의 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월스트리트저널은 그러나 한국측이 미국과 일본의 가장 큰 관심사인 북한 미사일 개발과 핵무기 프로그램 의혹에 대해 북한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CNN,ABC 등 방송들도 반세기의 적대를 청산하고 통일로 가기위한 초석이 놓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주한미군 문제 및 북한 장거리 미사일,핵개발 등 두개의 전략적 관심사가 심도깊게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요미우리(讀賣)등 일본 주요신문들은 15일 5개항에 걸친 남북공동선언을일제히 1면 통단으로 보도,세계사적 뉴스로 평가했다.요미우리는 ‘김총서기, 방한을 수락’ 제목의 기사에서 “한반도는 긴장완화와 남북 평화공존,나아가 통일까지 전망하는 신시대를 맞이했다”고 논평했다. □중국 중국 언론은 환영과 지지를 표했다.신화통신은 합의문 서명 직후인 14일 오후 8시12분(현지시간)부터 ‘역사적 합의서’,‘원칙성 합의서' 등의표현으로 합의문의 역사성등을 강조했다. □유럽 프랑스 TF1-TV는 14일 남북 공동선언이 “화해의 조심스러운 시작”이라고 평가했다.르몽드 15일자는 정상회담의 가장 두드러진 결과로 ‘수수께끼 지도자’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미지 변화를 꼽았으며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슈피겔 등은 “통일의 초석”이라는 점에 의미부여했다.영국 BBC도 공동선언 내용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합의 소식 등을 비중있게 전했다.
  • 홍성원 6·25대하장편「남과북」전6권으로 改作

    작가 홍성원이 23년전에 완간했던 ‘남과 북’(전 6권·문학과지성사)을 개작해 다시 내놓았다. 지난 77년초까지 월간 ‘세대’에 5년2개월동안 ‘6·25’란 제목으로 장기연재됐던 이 소설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부터 휴전이 성립된 직후의 1953년 9월까지 3년 반 기간을 다룬 6·25 대하드라마다.작가는 1만 장이 넘는 원고의 보완과 개작을 위해 꼬박 1 년 간의 시간을 투자했다고 개정판 서문에서 밝힌다.묵은 문장을 손질하고 냉전 시대의 ‘사나운 표현’들을 교체하고(북괴를 북한,괴뢰군을 인민군 등으로),새로운 주인공을 등장시키고,중복된 일부 내용은 과감히 삭제했다는 것이다. 작가 말대로 ‘남과 북’은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서슬 푸르게 살아 있던 197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다.이미 77년 2월의 초판 후기를 통해 작가는북한에 대한 표현의 상한선이 ‘감상적인 민족주의 언저리거나 당국에 의해철저히 도식화된 반공 가이드라인 내’로 제한된 사실을 적시했었다.그후 20여년이 지나 “‘한국 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 전쟁의 절반을 담당한 북한 쪽 이야기를 빼버린다는 것은,표현상의 불평등 못지않게 공평하지 못한 일” 이며, “작품 ‘남과 북’이 한국 전쟁을 제대로 그리는 데 한계가있었다” 고 고백하면서 개작에 나선 것이다.작가는 북한 쪽 주인공을 작품에 새롭게 등장시킨 점을 이번 개작의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새로운 등장인물은 ‘자본주의 압제로부터 인민을 해방하여 사회주의 조국 통일을완수한다’는 북한측 전쟁 목표와 관련해 원래의 꿈을 잃지 않으려고 혼신의노력을 다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의 이같은 보완은 말 그대로 보완일 따름이다.작가가 초판부터 언급한 ‘남과 북’의 본질적인 한계가 이 보완으로 극복되는 것은아니다.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장점과 매력은 이로 해서 훼손되지 않는다.변화의 급류가 굽이친 20여년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아직도 읽고 주목할 가치가 있다.비록 제목과는 달리 남한 쪽에 꽉 붙잡혀 있긴 하지만 홍성원은 6·25의 ‘전모’를 드러내고자 한다.작가라면 누구나 가질 것같은이같은 목적의식은 그러나 20년 전에도 드물었고 지금도 흔하지 않다. 6·25는 수많은 한국의 소설가에게 심연의 대광맥이지만 그 채광의 결과물을 보면 가치 이전에 너무 개인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을 어쩌지 못한다.품위를 잃지 않아 온 최초의 전업작가라고 할 수 있는 작가 홍성원은이와 달리 요컨대 6·25를 휼륭한 이야기 소재로서 접근한다.물론 작가는 ‘남과 북’이 6·25를 졸업하기 위한 졸업 논문과 같다고 말하고 6·25는 하루속히 졸업해야 될 우리 모두의 고통스런 과제라고 덧붙이고 있다.그러나작가는 6·25를 우리의 역사적인 개별 사건으로서보다 폭력과 자기 파괴의극단적인 현장인 인간의 전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역사·이데올로기 우선시대에는 역사성이 부족하고 경박·통속적이라는 평을 면치 못해 왔지만 그런과잉시대가 지나간 지금 ‘전방위적 이야기꾼’이 하는 ‘남과 북’의 스토링텔링은 이번 개작을 맞아 다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 6·25에 대한 이 작품의 ‘총체적 조망’을 확신하는 작가는 “30여 명의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국군·미군·중공군 등 각기 다른 국적의 여러 군인들을 비롯하여,한국 기자와 미국 기자·학자·상인·지주·의사·브로커·양공주·전쟁 고아·건달 등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면서 “영웅도 없고 승자도 없이 오직 패자만을 다량으로 생산한 이 전쟁은,바로 그 패자들의 눈을 통해서만 황량한 전체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전자책(e-book) 동시출간. 김재영기자 kjykjy@
  • MBC ‘이제는‘ 25일부터 재편성

    지난해 가을 화제 속에 방송됐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25일부터매주 일요일 다시 방송된다.역사의 질곡 속에 숨겨져 왔던 진실들이 지난해방송된 13편으로 끝나지 않았음에 대한 인식이다.제작진은 ‘이제는 말할 수있다’의 주된 화자는 억눌린 상황에서 말 못했던 당시 피해자들임을 당당히밝힌다. 기획·연출을 맡은 정길화 PD는 “프로그램에서 다룰 사안의 성격상 매스미디어나 역사 속에서 승자나 강자의 이야기만 부각돼 왔다는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지금까지 누적돼 왔던 역사적 편파성에서 벗어나 균형을 맞추는 셈”이라고 밝혔다.물론 제작진은 피해자의 하소연에만 의존할 경우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목소리도 담았다. 피해자들의 폭로와 고발에 가해자들의 변명과 사과,때론 ‘모르쇠’ 등을 만날 수 있다.여기에 목격자들의 증언과 확인,연구자나 전문가의 진단이 이어진다. 지난해 9월 12일부터 12월 26일까지 방송됐던 13편에는 제주 4·3사건,동백림사건,인혁당사건 등이 있었다.25일부터오는 10월 1일까지 방송될 내용은크게 한국전쟁 재조명,남북관계,한미·한일 등 대외관계,인권과 사회 정의등으로 나눠진다. 한국전쟁의 재조명은 6·25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데서 출발한다.양민학살,미국의 세균전 등이 이 범주다.25일 방송될 ‘양민학살’편에서는 지금까지잘 알려지지 않았던 51년 2월21일 자행된 경남 산청 양민학살 현장이 소개된다.‘의혹! 미국의 세균전’에서는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의 비밀문서를 중심으로 미국의 세균전 의혹에 대해 파헤친다.남북관계에는 ‘94년 전쟁위기론’,‘간첩 황태성사건’등이 있다.전쟁위기론은 94년 북한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주내용이다.당시 미국은 북한의 의심나는 핵시설에 대한폭격까지 염두에 뒀다고 한다.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이 상황을 짚어본다. 대외관계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망언(妄言)의 뿌리,일본의 친한파들’이 있다.마지막으로 인권과 사회정의에서는 올해로 분신 30주년을 맞는 ‘전태일 열사 사건’,80년대 초‘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던강제징집과 군 의문사 사건 등이 방송된다. 정PD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라고 입을 다물면 언제 말하겠는가”라며 “그때그때의 성과를 끌어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경하기자 lark3@
  • 5·18항쟁 문화적 영향/ 문학·출판부문 성과

    문학은 제일 먼저 느끼고 가장 늦게 잊는다.5·18 광주민주항쟁은 잊어버리고 싶으나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억울한 피의 기억,죽기 전에 다시 느끼고 싶은 뜨거운 시민 공동체의 삶이 있다.문학이 어찌 5·18을 모른체 할 수 있을까. 5·18을 소재로 한 5·18문학,광주문학은 지난 20년 동안 연면히 이어졌다. 5·18이 가지고 있는,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지형성과 풍부한 문학적 잠재량 등에 비춰 그간의 문학적 노력이나 성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그러나 문학의 바탕이 되는 일반의 관심과 인식을 살필 때,5·18이 전국적·보편적 스케일로 성장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 5·18의 피에 절은 꾸러미를 풀어보지도 않고서 싫증을 내며 창고에다 쳐박아 버렸다면 틀린 말일까.이같은 지역적 한계를 염두에 두면 소설이 주축이 된 지난 20년간의 5·18 문학화는 긍정적인 색채를 띤다.특히 최근 이삼년 5·18문학의 재흥 기류는 보다 더 확실하다. 5·18 문학은 80년대에는 외적 제약을 비집고 나오려고애를 썼고,90년대에는 내적 관심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사태후 4년 가까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던 5·18은 ‘존재’가 점선,괄호로나마 인정되면서문학화를 출발시켰다.85년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광주항쟁의 전말과 의미를 민중적 전망아래 정리한 보고문학의 역작이나 본격 문학작품은 아니었다.본격작품은 이보다 다소 앞선 84년말 임철우의 단편 ‘봄날’을 꼽을 수 있다.5·18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유추하게 하는 이 작품은 내용도 항쟁의 당시상황이 아닌 항쟁이후 남은 자의 죄책감에 관한 것이다.이같은 사태이후의 후일담 성격은 알레고리나 우회적 언급을 차용한 작품화 방편을 거둬들인 뒤에도 80년후반 1차 광주문학 활성기의 주조라 할 수 있다. 광주문학을 연 작가 임철우는 이어 4년간 ‘직선과 독가스’ ‘사산하는 여름’ ‘불임기’ ‘관광객’ ‘동전 몇닢’ ‘어떤 넋두리’ 등의 광주 단편을 차례로 발표했다.윤정모의 85년 단편 ‘밤길’도 항쟁 현장을 빠져나온부끄러움을 이야기하지만 보다 강한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어 주목받았다.국회 광주특위가 가동된 88년에 발표된 중편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방향에서 커다란 편차를 드러내 넓어진 광주문학의 폭을 말해준다.시민군 주체와 관련해 노동자의 주도성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깃발’은 광주항쟁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며 항쟁 와중에 실성한 소녀의 실존적 후일을 그린 ‘저기 소리없이…’에서 광주사태는 역사성이 최대로 희석된 특수한 인간조건으로 확장된다. 80년대 말까지의 5·18문학은 87년과 90년에 차례로 나온 소설집 ‘일어서는 땅’(인동)과 ‘부활의 도시’(인동)에 집약되었다.문순태(‘일어서는 땅’‘녹슨 철길’)한승원 (‘어둠꽃’)이영옥(‘남으로 가는 헬리콥터’)정찬(‘완전한 영혼’‘새’‘슬픔의 노래’)정도상(‘십오방이야기’‘저기 아름다운 꽃 한송이’)공선옥(‘씨앗불’‘목마른 계절’)을 비롯 김중태 김남일 김유택 박호재 김신운 박원식 백성우 이명한 이삼교 홍인표 이순원등이 1차 광주문학의 축대에 돌을 보탰다. 문학의 역사성에 반기를 든 90년대 들어 5·18은 소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으나 끝무렵 새얼굴의 문학을 솟구쳐 낸다.임철우는 97년말부터 98년초에걸쳐 장편 ‘봄날’ 5권을 완간,다시 광주문학의 기수 역을 맡았다.완성하는 데 10년이 소요된 이 대장편은 작가가 소설이 아니라 기록으로 읽어달라고주문할 만큼 비참하고도 찬란한 당시상황을 세밀하게 복원한다.이어 그때 수습위원으로 일했던 송기숙과 현지 신문사 부국장이었던 문순태는 올해 장편‘오월의 미소’와 ‘그들의 새벽’을 각각 내놨다.80년대에 볼 수 없었던항쟁기간의 디테일 삽입과 함께 화해와 테러를 동시에 모색하거나 노동자 출신 시민군의 마음 끝까지 더듬고자 한다.그리고 시인 황지우는 5·18 당시와 오늘을 역동적으로 엮은 희곡 ‘오월의 신부’를 지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처럼 90년대 말부터 재기한 2차 광주문학은 장편화와 입체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기억과 껴안음의 새 길을 열고있는 5·18문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뜨겁고 투명한 불꽃을피워낼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5·18은 민중문화 뿌리내린 주역”. 소설가 임철우(46)씨는 이맘때만 되면 예서제서 부지런히 들먹거려지는 사람이다.누구 한사람 ‘5월’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광주이야기를 감히 소설로 썼었다.그러나 여전히 맘은 편치 않다.그날의 이야기가 오늘로 남지 못하고 20년전 과거로 잊혀지는 지금,‘5월 작가’라는 이름표는 버거운 짐이다. “진상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는데,모두들 부담스러워 잊어버리려 하는 게 5월의 역사 아닙니까? 광주시민들에게는 피눈물 솟구치는 현실이 세상사람들에게는 한낱 수습 끝난 과거가 돼있으니까요.5월만 되면 으레들떠서 설치는 언론들도 솔직히 밉상맞고 그렇습니다”그는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소리를 하느라” 청년기의 한 토막을 생으로 바쳤다.1980년 5월16일부터 27일까지 열이틀간의 ‘광주사태’(소설을탈고할 때까지 ‘사태’였다) 현장으로 아득바득 사람들을 이끌어간 소설이장편 ‘봄날’이다.모두 5권짜리 대하소설을 이태전 원고지 7,000장으로 묶어내기까지는 꼭 10년이 걸렸다. 그에게 소설은 단순한 글쓰기 영역이 아니다.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하지 못했던 그에게 그건 “비겁하게 살아남아 치르는 대가”일 뿐이다.전남대를 휴학하고 지역마당극단에서 연극운동에 몰입하던 당시 ‘광주사태’는글쓰기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아니,확신이라기보다는 의무를 주었다고 해야 옳다.등단하기도 전이라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치열하게 현장을 기록하고 다녔더랬다.광주시내 골목골목을 뒤지며 보이는 것,들리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적어뒀다.그 수첩 기록들이 고스란히 ‘봄날’ 원고속으로 들어갔다. ‘5월 문학’이란 용어를 그는 달가워하지 않는다.5월 이야기가 한국문학사의 엄연한 한 맥락인데,굳이 거기에 특별한 수식어를 달아 생색내는 것 같아서이다. “80∼90년대의 화두는 광주였습니다.그 화두를 꺼내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는 역할을 문학이 자임했고요.5월 문학이 없었다면 ‘민중문학’이나 ‘민중론’이 목소리를 낼 터전도 없었겠지요.5·18은 우리 사회에 민중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문화예술에서의 민족 주체성을 확인시킨 주역이었어요”그는 5월 이야기를 다시 꺼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5월을 폐광처럼 팽개치는 세상에다 또 그 이야기를 들이민다는 게 맥도 빠진다.“기력이 소생하기를기다린다”며 그가 웃었다.지난 3월 5·18연극 ‘봄날’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그는 요즘 수원 한신대로 출강한다. 황수정기자 sjh@. *6·29선언 계기 활발히 출간. 5·18의 참상을 친구들 간에도 터놓고 얘기하기가 불안했던 시절이 꽤 오랜기간 있었다.활자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지난 85년 5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황석영 기록)가 처음 책으로 묶여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당시만 해도 비밀리에 인쇄를 마치고 제본작업을하다 발각돼 전량 압수당한 뒤 밤새 마스터인쇄로 조금씩 찍고 손으로 제본해 5,000부를 발행,대학가 서점을 통해 은밀히 판매했다.대학가의 필독서로자리잡았다. 5·18 관련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증언록이나 자료집을 간간이낸 것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했던 5·18 관련서적은 87년 6·29선언을 계기로 활발히 출간되기 시작했다.‘죽음을 넘어…’도 이때야 정식출판됐다.이제까지 나온 책은 대략 수백종.종류도 시·소설 등 문학물에서 사진기록·자료·증언·수기집,취재기,정치·사회·법적 연구서까지 다양하다.‘광주민중봉기와미국’(이삼성) 등 잡지 등에 발표된 글이나 연구논문들도 많다.5·18 관련주요 서적을 정리한다. 김주혁기자 jh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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