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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류재화 옮김 우물이 있는 집 펴냄 로마는 흔히 신분질서가 확고한 경직된 사회로 간주되지만 사실은 신분 혹은 계급간의 이동이 활발했던 사회다.심지어는 황제의 자리도 특정 도시나 특정 가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이민족과의 결혼도 빈번했고,신분제도도 완화돼 노예의 삶의 질이 평민의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노예가 어느날 제국의 2인자가 되는 일도 가능했다. 로마의 신분제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대대로 지속되는 것도 아니었다.신들을 모시는 제례의식에서도 노예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누구 못지않게 컸다.노예가 엘리트 계층으로 편입된 경우도 있었다.클라우디스 황제 때부터 트라야누스 황제 때까지는 이례적으로 해방노예들이 내각 구성원으로 선발됐다.그로 인해 제국시절의 원로원 의원들은 이 노예 출신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나르키수스 같은 노예는 권력의 2인자로 등극해 신하들의 승진과 재산,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프랑스의 제롬 카르코피노가 쓴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류재화 옮김,우물이 있는집 펴냄)은 ‘세계제국’ 로마의 일상생활사를 2000년의 시간 장벽을 넘어 생생하게 전해준다.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비문(碑文)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역사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기보다는 생활상 그 자체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1939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등 수많은 로마연구자들의 필수 참고문헌이 돼왔지만 국내에서는 이제야 비로소 완역본을 얻었다. 그동안의 로마역사서들은 로마 건국에서 멸망까지 정치와 황제를 중심으로 기술된 것들이 대부분이다.그러나 이 책은 정치나 전쟁,황제의 무훈과 치적 등을 크게 다루지 않는다.그 대신 먹고 마시고 단장하고 일하고 즐기고 사랑하고 질투하는 인간 삶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추적한다. 서기 1세기경 로마 주민은 이미 100만명에 이르렀다.이중 15만명이 실업자로,그들 대부분은 국가가 지원하는 연금으로 생활했다.인구팽창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주택난.제국의 수도에는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6층(약 18m)의 주택,즉 ‘인술라(insula, 공동주택)’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그것은 당시로서는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것으로 수도와 화장실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물은 우물에서 길어와야 했으며 화장실은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공시설물이었다.요즘은 이런 고층주택의 주인은 보통 맨 위층에 거주하지만 로마시대에는 1층은 건물 주인이나 그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1차 임대자가 차지했다.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다.주인은 세입자가 세를 제때에 내지 않으면 위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치워 버려 외부와의 통행을 차단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시대 공공화장실은 무척이나 특이한 장소였다.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졌으며 분수대가 설치되기도 했다.겨울에는 난로를 피워 안을 따뜻하게 했다.고대 로마인들에게 공공화장실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사교장이었다. 공중목욕탕 또한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고대 로마에서 처음으로 공중목욕탕이 설립된 것은 기원전 2세기 무렵.공중목욕탕은 대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책임지고 해준다는 제국 통치이념의 상징이었다.여러 황제를 거치면서 로마의 목욕탕은 수천 개가 넘었다.요컨대 고대 로마의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니라 최고의 복지공간이었다.로마 시민들에게 목욕은 최고의 레저였으며,공중목욕탕은 황제도 자주 이용했다. 로마제국의 사치와 방탕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드는 일화가 귀족들이 산해진미가 가득한 연회에서 구토를 해 가며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과장된 면이 많다.책에 소개된 로마인들의 연회 혹은 식생활 문화를 보면 아침식사는 대부분 물 한 잔 정도로 건너뛰었고 점심은 간식 수준으로 가볍게 먹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저녁은 성찬이었다.부자들이 베푸는 연회의 경우 7번에 걸친 요리가 나왔다.그러나 일부 부자나 미식가들과는 달리 대부분 로마인들의 저녁식사는 소박했다. 고대 로마에도 페미니즘이란 것이 있었을까.로마 사회에서 가장의 권한은 2세기 들어 여권이 신장됨에 따라 급속히 약화됐다.가장이 자식과 부인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가진다는 법률도 사라졌다.처녀 때 누리던 편안한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거나 금기시되던 일에 도전하는 여성들도 생겨났다.이혼이 만연했으며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는 일도 흔했다.고대 로마에도 ‘페미니즘 현상’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편 저자는 고대 로마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편협한 이기심의 결과라는 견해를 펴 눈길을 끈다.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됐던 문화와 예술,스포츠를 즐겼지만 직업활동에는 관심이 없었다.그들은 직업을 천하게 여겼다.로마 여인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남자들을 흉내내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현대 역사학에서 생활사 혹은 일상사는 갈수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한 일상생활이 인간을 지배하는 하나의 코드로 인식되면서 역사분야에서도 수많은 무명씨들의 삶이 각광받고 있다. 찬란하고 오만했던 세계의 중심 로마.이 책은 그 영원의 도시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고대 로마인들의 감정과 의식,고민과 희망을 엿보게 한다.그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만날 수 있다는 데 또 다른 미덕이 있다.이 책에는 고대 로마연구의 제1텍스트,미시사의 고전이라는 평가가 따른다.2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그도 신선을 꿈꾸었다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 펴냄 백승종 지음 “성리학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주돈이,정호,정이,주희 등 송·명대 사상가들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신유교를 말합니다.이는 우주론·인성론·실천철학을 일관된 원리로 설명하고자 한 것으로,지극히 논리정연하면서도 거대한 사상체계이지요.성리학은 그 ‘장대한 규모와 종합성,그것이 수행한 기능의 측면에서 서양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비견될 만하다.’고도 합니다.”(백승종) “지난 역사를 상고할 때,원나라의 수도 연경에서 성리학이 처음 도입된 것은 고려 후기가 아니었겠소.원나라의 학풍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오.그때만 해도 성리학은 상산학(象山學)과 뒤섞인 상태로 유입되었소.이후 수백년에 걸쳐서 성리학만을 존숭하는 분위기가 차츰 고조되었던 것이오.15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조선 선비들의 성리학설에 관한 이해는 가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오.”(하서 김인후) ●역사학자 저자와 16세기 성리학자의 가상대담 16세기를 대표하는 조선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와 역사학자 백승종(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나눈 가상대담의 한 대목이다.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백승종 지음,돌베개 펴냄)는 우리나라 미시사 연구의 개척자로 인정받는 저자가 오랜 시간 마음 속으로 하서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저자는 왜 문답식 대화체라는 색다른 방식을 택했을까.무엇보다 거기엔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대화체를 빌려 쓴 책은 옛날부터 적잖았다.유교의 경전인 ‘논어’와 ‘맹자’는 그 고전적인 선례다.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의 ‘향연’ 또한 대화체 형식에 의존하고 있다.대화체의 맥을 잇는 저술은 17∼19세기 한국에서도 종종 발견된다.실학자들과 개화사상가들이 대화체의 전통을 되살려낸 것.그들은 실옹(實翁) 또는 실사(實士)와 허옹(虛翁) 또는 속유(俗儒)를 대비시키면서 치열한 사상적 토론을 전개했다.대화체는 이처럼 동서양의 유구한 지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현대들어 한국의 역사서술에 대화체를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이 파격적인 서술방식을 통해 먼지에 쌓인 수만 개의 활자 속에 가능성으로만 존재해온 역사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본격적인 가상담론을 펼치기에 앞서 책은 먼저 하서 김인후가 누구인가를 밝힌다.하서는 문묘에 배향된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 가운데 유일하게 호남 유림이다.절친한 벗이기도 한 퇴계 이황과 더불어 16세기 성리학계의 쌍벽으로 손꼽히는 하서는 정조에 의해 ‘동방의 주염계’라는 평을 들은 일세의 거유(巨儒).하서는 훗날 사칠논변(四七論辨,사단과 칠정에 관한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토론)의 기폭제가 된 중요 자료인 천명도(天命圖,우주만물의 성정을 표현한 그림)를 남겼다. ●한시 1600편 통해 다면적인 하서 김인후 재조명 이 책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16세기의 문화적 중층성을 드러내는 하서를 생동감 넘치는 입체적 인물로 복원한다.400여년 전 인물인 하서는 더이상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철학자라는 박제된 평가에 머물지 않는다.도교와 불교,성리철학이마음 속에서 부단히 교차하는 다면적인 인물로 되살아난다.이런 작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바로 하서가 남긴 1600편의 한시다. 하서는 일상의 편지마저도 기꺼이 시로 썼을 만큼 시에 대한 애정과 조예가 깊었다.그가 남긴 시는 일상의 사연들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정치사와 지성사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촘촘히 직조해낸다.중국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가 논적(論敵) 육상산이나 육구령과 시를 통해 격론을 벌였듯이,이 책에서 시는 논쟁의 핵심을 간명하게 전하는 유력한 도구다. 하서의 시 가운데 저자가 제일로 치는 것은 ‘화표학(華表鶴)’이라는 제목의 칠언고시다.저자는 이 시를 하서가 평생 지향해온 바를 요약한 ‘심리적 자서전’이라고 평한다.“끝없는 벌판 갈길 멀다렻뎠?화표주 하늘로 솟았네/검정 치마 흰 저고리,어디로 가는 길손일까/표연히 날아든 하늘 신선/서글퍼 맴맴 돌아 오래도록 머뭇머뭇/옛 성곽엔 쑥대만 욱었다네/길다란 울음소리 하늘에 번지오/만리를 부는 바람,눈빛 터럭 불어가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교나 불교 같은이단을 배척한 성리학자 하서가 점괘를 즐겨 보고 “표연히 날아든 하늘 신선”이 되고자 했다는 점이다.이 시는 무술적(巫術的)인 사생관과 도교적인 세계관이 성리학적 세계관과 뒤섞여 있는 16세기 선비들의 중층적인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렇다면 조선시대는 반드시 ‘성리학지상주의’의 나라는 아니지 않았을까.저자는 이 대목에서 세조때까지만 해도 송학(宋學),곧 성리학보다 한당(漢唐)의 유학을 숭상하는 풍조가 강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대화체 서술방식을 택한 저자는 “이른바 ‘가상’은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또 하나의 ‘가능성’을 좇는 역사라고 해서 사료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이런 책 어때요 / 고려 무인 이야기 상·하권

    이승한 지음 푸른역사 펴냄 고려시대 최충헌·최이·최항·최의로 이어진 최씨 일가 4대 62년간의 무인집권 안정기를 다룬 대중역사서.저자는 ‘최씨왕조’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도입해 최씨 일가의 창업과 수성,통치공학을 살펴본다.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진 무인정권은 확고한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극심한 권력투쟁과 잦은 정권교체는 그런 허약성을 드러냈다.하지만 최씨 정권은 최충헌의 직계자손들이 통치권을 세습했을 정도로 강고했다.‘왕권 위 통치권’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최씨왕조’란 표현은 이해할 만하다.상권 1만 2000원,하권 1만 1000원.
  • 이런책 어때요 / 인도의 발견

    자와할랄 네루 지음 김종철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총리를 지낸 네루가 아마드나가르 요새의 감옥에서 쓴 인도 역사서.네루는 고대 인도 문명에서 인도의 정체성을 찾는다.인더스강 계곡에서 시작한 인도문명은 여타 세계문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일종의 의회와 자치적인 촌락회의가 있었던 시민 선진문명이었다고 강조한다.인도문화의 특성으로 포용과 관용을 꼽는 네루는 신앙과 종족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인도 주변문화는 결국 ‘인도화’했다고 말한다.또 인도사회에서 카스트는 상이한 종족들을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합리화하려는 시도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2만 5000원.
  • 리오리엔트/너희가 세계 경제중심이라고? ‘유럽의 착각’ 깨기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펴냄 1980년대 초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뇌리엔 안드레 군더 프랑크(75)란 이름이 각인돼 있다.사회과학 붐을 일으킨 진원지였던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특히 그의 저작 ‘저발전의 발전’은 종속이론의 물꼬를 연 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가 저발전의 늪에 빠진 것은 봉건제 때문이 아니라 서양 자본주의의 수탈 때문이라고 주장,종속이론 진영의 우상이 됐다.그러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차츰 희미해졌다.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학문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 ‘리오리엔트(ReOrient)’다.그동안 학계에서나 가끔 논의되던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4년만에 한국어로 완역돼 나왔다. 도서출판 이산에서 펴낸 ‘리오리엔트’(이희재 옮김)는 서양 지성계에 일대 충격을 던진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철옹성이나 다름없던 서양 근대학문의 역사서술과 사회과학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마르크스나 베버 같은고전적인 이론가는 물론 아날학파의 거장 페르낭 브로델,‘근대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문명의 충돌을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까지 그의 비판엔 성역이 없다.비판의 논거는 무엇일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함몰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와 현대 경제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한다.저자에 따르면 이른바 유럽중심주의란 것은 유럽지향의 역사가와 사회이론가들이 유럽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발명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후반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 혹은 서양의 패권을 재생산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버팀목 구실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이같은 견해는 “유럽사는 없다.오직 세계사만이 존재한다.”고 한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관점과도 맥이 통한다. 책은 유럽중심사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났는가를 소상히 밝힌다.마르크스는 유럽만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맹아를 지니고 있으며,‘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대표되는 아시아는 정체성이 고착화돼 있다고 믿었다.나아가 아시아가 이런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유럽으로부터 진보의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한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의 피와 살이라고 여긴 베버는 유럽이 아닌 지역의 종교는 모두 신화적이고 신비적이며 주술적인,한마디로 반(反)합리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따라서 합리적 정신이란 효모를 가진 ‘서양’은 발흥했고,그것을 결여한 ‘나머지 세계’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저자는 유럽의 역사가로선 예외적으로 넓은 시야를 지닌 페르낭 브로델조차 “중국이 낙후된 것은 이슬람이나 서양보다 덜 발달된 경제구조 때문이었다.”는 식의 그릇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저자에 의하면 유럽인들은 지리학도 ‘발명’했다.‘유라시아’란 말 자체가 유럽중심적이기 때문이다.유럽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일개 반도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유럽인들은 유럽중심으로 ‘역사의 진전’을 지도상에 표현해 왔다.예컨대 메르카토르 도법에서는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이 인도만큼 크게 그려진다. 이 책은 ‘아시아 시대의 글로벌 경제’란 부제에 걸맞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세계경제 체제를 조망한다.저자는 유럽의 세계지배는 1800년 이후 지금까지 길어야 200년 남짓 이어진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근대 유럽의 경제성장은 유럽 스스로 달성한 것이 아니고,‘유럽 예외주의’로 이룩한 것도 아니다.1800년 이전의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중요하지도 앞서지도 않았다.1800년 이전에 세계경제에서 우세를 점한 지역이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였다.그 정점에 중국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중심자들은 이와 같은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지 않는다.합리성이나 기업가정신,기술혁신 등을 모두 유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예외적 현상으로 간주한다.저자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유럽은 아시아 경제라고 하는 열차의 3등칸에 달랑 표 한 장 끊고올라탔다가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아시아인을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단순히 아시아의 재부상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쓴 건 아니다.그는 유럽중심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종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 반대한다.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패권을 쥔 중심이 주도하는 일방적 질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역이 평등하게 교류하면서 공존하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란 인류 보편의 이상이다.이 책은 99년 세계사학회가 수여하는 ‘으뜸저작상’을 받은 데 이어 2000년엔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이런책 어때요

    ***왜 사냐면...웃지요 김열규 지음 궁리 펴냄 “만산(滿山) 홍록(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구나.” 우리 옛 시조는 푸른 잎,단풍 잎도 웃는다고 했다.그런가하면 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도 “봄날이 며칠이랴.웃을 대로 웃어라.”라고 노래했다.지는 꽃잎도 바람과 장단 맞춰 흔들흔들 웃는다고 했던 그 살가운 감성,흐드러진 웃음은 어디로 갔을까.우리는 왜 웃음기근 속에 살게 됐을까.한국인의 마음살이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전달해온 저자가 풀어놓는 한국인의 웃음의 미학은 신선하면서도 걸쭉하다.한국 문화에서 웃음이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가를 민담,소설,판소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살펴본다.1만 2000원. ***이덕일의 여인열전 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 고구려와 백제건국의 숨은 주역 소서노,황제국가를 꿈꾼 고려의 여걸 천추태후,세계를 지배한 대제국 원을 움직인 고려출신 여인 기황후….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속 여인들의 삶을 엄정한 사료해석을 통해 밝혀냈다.인간중심의 역사서 집필에 몰두해온 저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는 이책에서 역사 인물들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살려내는 데 주력한다.한 예로 진덕여왕은 서라벌 출신 진골 정통들의 반발과 당나라의 위협에 맞서 김유신과 김춘추로 대변되는 소외세력을 등용,국가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1만 7900원. ***농부의 마음으로 경영하라 앨런 힉스 지음 함규진 옮김 / 시대의창 펴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래의 자연은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그 시스템을 유지한다.예컨대 초목은 가을 결실기가 끝나면 낙엽을 퇴비 삼아 지력 회복을 꾀하고 양분을 축적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멈춘다.때론 해걸이를 통해 양분과 소출의 균형을 맞춘다.때문에 대지의 힘을 전혀 고갈시키지 않은 채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사람과 조직의 양생원리도 이와 같다.이 책은 유기농법의 방식을 원용,개인과 조직의 지속가능한 경영프로그램을 제시한다.그것은 일할 때 칭찬과 격려 등의 깨끗한 자원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으로 요약된다.1만 3000원. ***영혼의 정원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지음 이해인·이진 옮김 / 열림원 펴냄 자연의 고요함과 에너지,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을 일깨워주는 명상록.자연의 사계와 정원의 신비를 우리의 삶과 연관지은 영혼의 일기다.저자는 ‘스탠’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수녀.인간은 삶이란 작은 정원에서 날마다 생각하는 나무같이,기도하는 잎사귀같이,각자 영혼을 가꿔가야 할 정원사란 메시지를 전한다.글 끝자락마다 짤막한 지혜의 어록도 실렸다.“내 영혼은 지상의 아름다움을 통하지 않고선 천국에 이르는 계단을 찾을 수 없다.”(미켈란젤로)“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매일 한 가지씩 버려라.”(노자) 등이 그것이다.1만 3500원. ***고전소설 바르바라 지히터만 등 지음 두행숙 옮김 / 해냄 펴냄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70명의 직원이 매년 20∼30편씩 소설을 찍어내는 ‘소설공장’에서 만들어진 작품임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가난과 간질,도박벽에 시달리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짧은 시간 안에 소설을 지어내지 못하면 글쓰는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해 쓴 작품이 ‘죄와 벌’이란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운가.이책은 우리가 고전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 경외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세계문학의 원형이라 할 16∼19세기 명작소설 50편의 내용과 창작배경을 다뤘다.1만 5000원 ***존재하는 무0의세계 로버트 카플란 지음 심재관 옮김 / 이끌리오 펴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0의 개념은 인도문명이 낳은 것이 아니다.그보다 훨씬 이전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마야 같은 독자적인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따라서 0의 개념은 보편적 성격을 띤다.반면 저자는 인류가 0의 도움 없이 큰 숫자를 계산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실감나게 보여준다.수학에 능했다는 그리스인에게도 0이 없었다.0을 주제로 인류 문명사를 거시적으로 그려낸 이 책엔 0이 갖는 인문학적 의미를 다룬 에세이들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1만 2000원.
  • 어린이 책세상/우리가 만난 어린왕자

    ●우리가 만난 어린왕자(전윤호 글) 고전 ‘어린 왕자’의 비행기 조종사가 자연을 사랑하는 산지기로 새롭게 태어난 창작동화.자연사랑을 귀띔하는 30편의 이야기.초등3년 이상.맑은하늘 9000원. ●잠옷 파티(재클린 윌슨 글,닉 샤랫 그림,지혜연 옮김) 새 학교로 전학온 주인공,친구들에게 신체장애를 앓는 언니의 존재를 숨기는데….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떨치게 하는 영국산 창작동화.초등3년 이상.시공주니어 6000원. ●뤽스극장의 연인(자닌 테송 글,조현실 옮김) 영화관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 남녀가 엮어가는 훈훈한 사랑이야기.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역설.프랑스 ‘올해의 청소년책’수상작.초등 고학년용.비룡소 6000원. ●난 무섭지 않아(미셀 게 글·그림,이경혜 옮김) 엄마아빠가 텔레비전 공포영화를 못 보게 하자 화가 난 주인공.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로 아이와 어른이 소통해가는 내용의 그림책.4∼7세용.웅진닷컴 7500원. ●BLB동화 시리즈-2단계(정태선 글,이효숙 등 그림) 유아의 형태지각 능력을 자극해 언어발달을 돕는 ‘큰글자 책’시리즈.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로 자연스럽게 한글을 깨우치게 하는 유아그림책.전 6권.4세까지.어린이중앙 각권 8800원. ●침앤지(캐서린·로렌스 안홀트 글·그림,조은수 옮김) 장난꾸러기 쌍둥이 원숭이 ‘침’과 ‘지’.엄마따라 시장구경 갔다가 길을 잃고마는데….귀엽고 화려한 원색의 그림에 눈이 즐겁다.3∼5세용.행복한 아이들 9000원. ●만화 ‘레카’(박지연 글) 주인공 도리가 요정세계와 엄마를 구하기 위해 여행길에 나선 뒤 겪는 모험담을 그린 인기 TV애니메이션이 만화로 나왔다.그리스 로마·북유럽·인도신화에서 중국 괴담,한국의 설화까지 다양한 소재.‘전설의 용사들’‘마녀학교 이야기’등 2권.6세 이상.문학세계사 각권 8800원. ●어린이를 위한 ‘연탄길’(이철환 글,강전희 등 그림) 베스트셀러 ‘연탄길’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각색한 동화책.역경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전 3권.초등3년 이상.반딧불이 각권 8000원. ●신나는 역사여행(샬럿 허드먼 글,강영선 옮김) 역사 해설은 기본.생생한 현장발굴 사진과 일러스트를 곁들여 쉽고 재미있게 펼치는 역사서.29개 세부항목으로 나눠 각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자세히 소개.1권 ‘석기시대’,2권 ‘그리스’,3권 ‘로마제국’.초등 저학년 이상.엔터북스 각권 9800원.
  • 춘추좌전’ (전3권)/쉽게 풀어쓴 지혜 가득한 동양고전

    빠르고 가벼워야 잘 나가는 시대라서일까.책을 읽어도 더디고 무거운 원전보다는,다이제스트본이나 발췌본에 손이 먼저 가게 마련이다.그러면서도 일부 인사는 마치 그 책을 꿰뚫은 척 일부 구절을 인용한다.많은 식자들이 가끔 이용하면서도 정작 그 원전은 거의 읽지 않은 동양학의 고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춘추좌전(春秋左傳)’이다.까닭은,제대로 된 번역서가 드물어 한문에 능통한 이가 아니면 읽을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척박한 현실을 달래듯 ‘춘추좌전’이 3권,2000여쪽 분량으로 완역되어 나왔다.동양학 100권 발간을 목표로 외길을 걸어온 자유문고의 48번째 작품.공자가 지은 역사서이자 훗날 그 시대(춘추 전국시대)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된 ‘춘추(春秋)’에,좌구명(左丘明)이 역사적 사건을 풀어넣어 구성한 것이 ‘춘추좌전’이다.‘좌씨춘추’‘춘추좌씨전’이라 부르기도 한다.중국 춘추시대 가운데 노(魯)나라 은공 원년(기원전 722년)에서 애공 14년(기원전 481년)까지 241년의 역사와 문물을 담았다. 옛 역사서라고 지레 겁먹거나 지루할 것이라 담쌓을 필요는 없다.책 속에 재미있는 고사나 일화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고사성어가 대부분 여기서 유래해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예를 들어 상편 427쪽을 보면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출처인 제·진나라 얘기가 나와 그 뜻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이밖에 미봉책(彌縫策),결초보은(結草報恩),발본색원(拔本塞源).백년하청(百年河淸)등 숱한 고사성어를 만날 수 있다. 책의 가치는 또 있다.시대가 어지럽고 각박할 때면 기댈 수 있는 정신적 고향이랄 수 있다.책장을 열고 지혜의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그저 곰팡내 나는 옛 얘기가 아니라 ‘어쩌면 요즘 세태에 이렇게 잘 어울릴까.’라는 감탄이 절로 나는 표현들이 많아 깜짝 놀라게 된다.한가지 일화를 들어 보자.하권 48쪽 소공편에 ‘말대필절(末大必折)미대부도(尾大不掉)(물건의 끝이 너무 크면 반드시 부러지고 꼬리가 크면 흔들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재벌·정부 조직을 경계하는 데 적절한 대목이다. 남기현 성균관 부관장이 6년의 땀을 쏟아 해역했다.특히 국내에선 처음으로 149쪽 분량의 자구 색인을 덧붙여 책을 학술적으로 이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게끔 했다.각권 2만원. 이종수기자 vielee@
  • [베이징은 지금] 中 풍도와 고건 총리 지명자

    고건(高建) 총리 지명자는 중국의 역사적 인물인 풍도(馮道)와 너무도 닮은 점이 많다.두 사람이 걸어온 역사적 환경과 정치적 궤적이 그렇고 엇갈리는 평가까지도 비슷하다. 풍도(882∼954)는 당나라 말기부터 송(宋)나라 통일 전까지의 혼란기에 5왕조(후당·후진·요·후한·후주)를 거치면서 11명의 천자(天子)를 섬긴 인물이다.30여년간 권력 주변에 머물면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는 재상 자리만 무려 20년을 지켰다.5000년 중국 역사는 물론 세계 역사에서 풍도는 최장수 재상 기록 보유자임이 분명하다. 고 총리 지명자의 경력도 풍도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37세 나이로 최연소 도지사(전남)에 임명된 이후 30년 가까이 무려 6명의 대통령을 보필한 인물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중용돼 세번의 장관과 두번의 서울시장,그리고 이번까지 합치면 두번의 국무총리를 지내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중국 국민들 사이에 풍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절의(節義)를 중시하는 유교사관의 영향 탓일 것이다.중국의 일부역사서는 한족(漢族)인 그가 한족들이 오랑캐라 부르는 요(거란)나라에 재상으로 출사한 대목에선 ‘염치없는 자’라는 비난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어 그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조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구왕조의 재상이 신왕조의 황제에 봉사함으로써 혼란을 줄이고 백성들에게 ‘안녕’을 제공했다는 평가이다. 베이징의 몇몇 역사학자들은 요왕조가 허난(河南)을 점령하고 대학살을 자행하려 할 때 목숨을 걸고 막은 것이 풍도라고 말하며 그의 재평가작업을 하고 있다. 고 총리 지명자도 풍도처럼 엇갈린 세평을 받고 있다.돋보이는 청렴성과 행정의 달인이란 최고의 찬사 뒤에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의 처세술이란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도 후세에 ‘처세의 달인’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라 진정한 행정가라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oilman@
  • 보물 추적자/전설속에 묻힌 보물 탐사

    히틀러 금괴 지금은 어디있을까 흥미진진 추적과정 엮어 독일 전설 속의 용사 하겐이 라인강에 던졌다는 니벨룽겐의 보물은 어쩌면 아직도 차가운 강바닥 어딘가에 묻혀 있지 않을까.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감쪽같이 사라진 히틀러의 제국은행 금괴는 지금쯤 어디서 잠자고 있을까. 쉽게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흥미진진한 상상이다.‘보물’이란 단어가 내뿜는 낭만적 매력을 엄연한 사실에 근거해 재구성한 책이 나왔다. 독일 공영방송 체데에프(ZDF)의 편집자 겸 작가인 볼프강 에베르트가 엮은 ‘보물 추적자’(정초일 옮김,푸른숲 펴냄).전설이 된 보물의 행방을 끈질기게 쫓으며 환희와 좌절을 거듭한 이들의 모험담이다. 보물 추적가들의 탐사대상이 된 테마는 4가지.러시아 고고학자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한 세계 최대 규모의 황금유물,유럽인에게 낭만의 탐험지로 인식된 실크로드,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행방,2차대전 때 없어진 히틀러 제국은행의 보물 이야기 등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의 면면도 다양하다.고고학자,역사학자,예술품 약탈자,보물 사냥꾼.학문적 성과를 목표로 출발하건 일확천금을 노리건,책속의 보물찾기는 역사교양서의 충실한 소재로 탈바꿈했다. 때로는 르포처럼,때로는 역사해설서처럼 행간행간에서 입체감을 살리는 기술은 책의 특장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의 보물탐사 여정을 엮은 1장 ‘옥수스강의 무덤 발굴자들’편.고대에 ‘황금의 땅’으로 통한 북아프가니스탄 박트리아의 유적탐사 과정을 일지처럼 생생히 재현한다. 1978년 봄,‘황금의 언덕’이라 불리는 박트리아 지역의 틸리야테페.굴착기 밑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164점의 금박조각에서 탐사팀은 그곳이 2000년 전의 보물매립지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보물탐사는 기대 밖의 큰 성과를 거뒀다.몇몇 보물이,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에 있는 스키타이 보물들과 흡사하다는 점에 주목,시베리아의 보물들이 고대 박트리아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을 확인한 것. 진지한 역사서로서의 기능도 톡톡히 한다.‘황금의 언덕’이 탄생하기까지의배경을 설명하고자 기원 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되짚어 보인다. 잔재미를 주는 읽을거리도 갈피갈피에 놓였다.‘피렌체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이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종말을 맞은 징크스,1985년 발견된 동인도 무역선과 1999년 인양된 중국 정크선의 보물이 수십·수백억원에 팔려나간 사연 등은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 같은 스릴을 선사한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
  •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피아니스트

    영화는 인간의 꿈을 담는 그릇일 때가 많다.하지만 때로는 처연한 역사를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신랄한 시선으로 복기하는 역사서이기도 하다.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내년 1월10일 개봉)는 후자 쪽에 드는 가슴 뻐근한 휴먼드라마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폴란드.유태계 폴란드인으로,실제로 어린 시절 나치의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은 감독은,작심한 듯 전쟁의 광기를 스크린에 고발했다.이야기는 2차대전 당시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실화에 근거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점령한 독일군은 유태인들을 철조망으로 둘러친 게토에 강제로 격리수용한다.유태인은 반드시 완장을 차야 하며,어디든 출입금지다.젊은 피아니스트 블라텍(애드리언 브로디)에게 한 여인이 다가오지만 얼어붙은 현실에서 사랑은 채 싹을 틔울 수 없다. 처음엔 전장에서 꽃핀 예술혼이나 절절한 연애담을 펼쳐놓겠거니 싶다.그러나 영화는 이내부드러운 호흡을 싹 걷어낸다.전쟁의 광기가 화면을 점령하고,이어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나약하고도 강인한 인간의 불가해한 본성이 싸늘히 전개된다. 영화의 얼개는 생존투쟁을 벌이는 블라텍의 고독하고 숨가쁜 행적 자체.사랑하는 여자에겐 접근조차 못하고 급기야 부모형제마저 학살현장으로 떠나보낸 그는 일용 노무자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목숨 걸고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나아진 게 없다.숨어지내는 빈집의 창 너머로 보이는 건 불타는 시체,들리는 건 나치의 총성뿐이다. 감독의 뼈아픈 기억 때문일까.담담하다 못해 퉁명스러울 만큼,얄팍한 감상주의를 멀리했다.전쟁의 살의(殺意)앞에서 스러지는 인간의 존엄과 예술혼,실낱같이 꿈틀대는 인간애 등이 고통스럽게 화면을 비집고 다닌다.촉망받던 피아니스트는 총구의 공포에 늘 겁먹은 소시민적 ‘목격자’이지,용기백배한 ‘행동가’가 되지 못한다. ‘쉰들러 리스트’를 위시해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를 고발해온 일련의 작품 속에서 이 영화가 갖는 매력은 오히려 거기에 놓여 있다. 한 인간의 기적적인 생존기를 영웅담으로 윤색하지 않았다는 점.그토록 간절하던 피아노를 눈앞에 두고도 총탄이 날아올까봐 건반 두드리는 시늉만 내거나,통조림 깡통을 따다 말고 살아남기 위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장면 등에서는 감동이 곱절로 불어난다. 유령처럼 텅 비어가는 도시를 홀로 버티는 주인공의 생존기록 말고 촘촘한 드라마 구도는 없다. 끄트머리에 독일군 장교와의 기막힌 우정과 인연이 짧은 소재로 끼어든 정도. 감독의 미술적 감식안은 놀랍다.폭격에 쑥대밭이 된 도시,그 하늘의 이지러진 달,누더기의 피아니스트가 등을 돌리고 혼자 걸어가는 장면 등을 모노톤으로 묘사한 종결부가 오래 잔상으로 남을 듯하다. 영락없이 동유럽인처럼 생긴 주인공은 ‘씬 레드라인’‘썸머 오브 샘’ 등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다. 황수정기자 sjh@
  • 오피니언 중계석/ ‘21세기 한국사교과서와 역사교육‘ 심포지엄 - 역사교과서 퇴행적 애국주의 위험

    일본의 검정교과서가 한국과 관계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나라의 중·고생들이 사용하는 국정 및 검정교과서에도 퇴행적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표현이나 기술이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 서중석 외)주최로 최근 성균관대에서 열린 ‘21세기 한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의 방향’주제 심포지엄에서 강창일 배제대 교수는 ‘대외관계의 서술에 나타난 퇴행적 애국주의’라는 주제연구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강 교수는 “역사 서술은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며 “우열사관(優劣史觀)에 입각해 주변 민족을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다음은 주제 연구의 요지다. 혹자들은 역사교육의 목적을 ‘애국·애족심 혹은 민족정체성 함양’이라고 한다.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무엇이 애국·애족인가.’하는 본질 문제에 들어가면 성립될 수가 없는 논리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학교 국정교과서를 살펴 보면,적잖은 문제가 드러난다.우선 지나친 상무심(常武心)과 애국심의 고취 문제,정복사업과 대외침략의 미화 문제를 들 수 있다.우리가 일으킨 전쟁과 영토확장을 위업으로 서술하고 있다.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관도 문제다.중국 중심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인식하고 있으며 은연중 중국민족을 우등민족으로 묘사하고 있다.반면 북방민족과 왜를 열등민족으로 묘사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감성적 역사의식도 눈에 띈다.무조건 ‘크고,오래 되고,많은 것’을 찬미하고 숭상하는 원초적 감각주의가 그것이다.그런가 하면 자주성을 과잉 평가해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반란)에 대해 “고려인의 자주의식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무책임한 역사인식도 드러난다.민족의 위대함만을 적시하고 있는데,개화정치나 의병투쟁·독립운동 전부를 성공한 것으로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경우도 없지 않다.“임진왜란은 조선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일본에서는 정권이 바뀌었고,명도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져 결국 만주의여진족에게 중국의 지배권을 내주게 되었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고교 국정·검정교과서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단일민족론과 봉건적 충효론을 지나치게 예찬해 “우리 민족은 반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이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부모에 대한 효도가 중시되고….”라고 적은 것이 대표적이다. 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서술도 지적할 수 있다.“민족주체성을 견지하되 밖으로는 외부세계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개방적 민족주의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역사 서술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지나친 자주성의 강조는 식민사관의 타율성론이나 사대주의론 혹은 중국중심적 사관에 대한 강박적 과잉반응의 소산이라고 할 만하다. 우열사관에 입각하여 주변민족을 재단하는 경향도 문제다.중국민족은 우등민족,왜와 북방민족은 열등민족이라는 등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각 민족의 주체적 역사 영위와 그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균형잡힌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전쟁이나 정복사업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잘못된 사업이다.그런데 그것을 위업으로 미화한다면 그것은 전쟁을 부추기고 개인의 삶을 도외시하는 역사관이다.상무심도 어디까지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편법이지 그 자체가 절대적 가치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민족주의라는 것도 일정한 시대,특정 세력에 의해 주장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전체주의적인 애국주의가 작용한 결과다. 소수의 집필자나 관리자들의 역사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역사교과서가 국가의 이름으로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정리 심재억기자 jeshim@
  • 클로즈 업/ KBS1 역사스페셜 - 임란승리의 주역 항왜는?

    “제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 선봉부대 장수 사야가가 보내온 투항서의 일부이다.1592년 4월초 대군을 이끌고 가고야섬을 출발한 일본군 장수 사야가는 1주일만에,선조가 하사한 이름 김충선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KBS1 역사스페셜 ‘임진왜란 비사! 왜군과 싸운 왜군들’(오후 8시)에서는 일본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 김충선을 통해 ‘항왜(降倭)’에 관해 알아본다.항왜란 임진왜란중 조선에 투항한 1만여명의 일본군을 일컫는 말.제작진은 “항왜야말로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이라고 주장한다.이들을 통해 조총 제조기술과 전술을 전수받는 등 당시 조선의 승리에 이들이 큰 몫을 했다는 것.항왜는 어떤 사람들이며 왜 조국에 등을 돌린 것일까. 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선조를 중심으로 한 당시 국제정세 속에 있다.무리한 일본의 전국통일 과정에서 생긴 반 도요토미 세력,장기화한 원정에서 싸울 의미를 찾지 못한 일본 군사들,그리고 선조의 항왜 유인정책 등등. 역사스페셜 ‘임진왜란 비사’는 이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사야가가 저술한 글을 모았다는 ‘모화당문집’,후손들이 모여산다는 대구 우록마을 집성촌,조선왕조실록과 일본역사서,사야가 연구 학자들을 찾아 한일 양국을 뒤졌다. 채수범기자 lokavid@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실학이 숨쉬는 곳으로

    경기도는 조선후기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이 발생하고 성장·발전한 곳이다.실학하면 쉽게 떠오르는 인물이 반계 유형원,성호 이익,다산 정약용이다.성호 이익은 안산에서 일생을 보내며 후학을 양성하다가 안산에 묻혀 있고,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역시 광주에서 태어나 벼슬살이와 유배기간을 제외하고 평생 고향을 벗어나지 않았다.반계 유형원은 서울에서 태어나 호남 땅 부안에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지만 묘소는 용인에 있어 경기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이익의 제자이며 역사서 ‘동사강목’의 저자 안정복과 권철신,화성에 살며 농업을 연구하고 농업서 ‘천일록’을 집필한 우하영을 비롯해 조선후기 많은 학자들이 경기지방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활동하면서 혈연·지연·교우관계를 통해 학문 경향을 같이하며 실학을 연구 발전시켰다. 이들 실학자는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그리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였고,앞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 당 시대 가장 앞선 성곽 축성술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수원 화성도 이들 실학자의 지혜의 산물이다.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은 중국 및 서양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거중기(擧重器)를 제조하는 등 새로운 축성 기술을 도입했으며,공사 총감독은 실학자 채제공이 맡아 진행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식정보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이러한 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개혁적이며,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은 재조명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 현재 경기도는 동북아시아권 경제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물류,유통인프라를 확충하고 국제 비즈니스 기반을 조성하며,평택항을 중심으로 서해안권역 개발을 위해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리고 지식기반 산업 집적지를 조성하고 첨단 과학기술 기반을 구축하며 중소기업 경쟁력과 국제통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와 같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중국과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발전한 실학을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서 역사교과서 속에만 두지 말고 끄집어 내 가까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기도는 지금 실학을 주제로 하는 테마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경기도 실학박물관은 실학 관련 유물을 수집 전시하는 것은 물론,실학관련 정보와 연구를 집적한 연구의 중심지,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전시 및 체험교육 체계를 구성한 문화공간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실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학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경기도를 실학의 고장,실학이 살아 숨쉬며 계속 연구 발전하는 고장이 되게 하고자 한다. 손학규/경기도 지사
  • 독서의 계절 CEO는 어떤책 읽나

    CEO는 늘 바쁘다.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꽉 찬 일정 탓에 개인시간을 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독서의 계절이 와도 마음먹고 앉아 책 한권 펴놓고 읽을 여유조차 없다.그런 와중에도 짬짬이 독서에 몰두하는 CEO들이 적지 않다.그들은 어떻게 책을 읽고,어떤 책을 좋아할까.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와 잭 웰치-올 가을 CEO들의 독서 키워드는 ‘넥스트 소사이어티’와 ‘잭 웰치’인 듯하다.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이 최근 읽은 책이 바로 미래사회,미래경제,미래경영을 예측한 피터 드러커의 ‘넥스트 소사이어티’.이 회장은 “슈퍼맨식 CEO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으며,미래 CEO의 역할은 오페라단의 단장이 돼야한다고 역설한 대목에 상당히 공감했다.”고 한다. CJ FS의 김상후(金相厚)대표와 삼성물산 건설부문 이상대(李相大)사장,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孫炳斗)상근부회장도 애독서로 이 책을 꼽았다. 김 대표는 주로 집에서 조용히 책을 정독하지만 최근엔 바쁜 일정 때문에 점심시간을 활용한다.이 사장은 ‘가는 곳이 독서실’일정도로 집·차안·사무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즐긴다. 금세기 최고 CEO로 평가받는 GE의 잭 웰치 전 회장 관련서적도 국내 CEO들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책을 통해 서구 선진기업들의 경영노하우와 마인드를 익히는 LG텔레콤 남용(南鏞)사장은 ‘끝없는 도전과 용기’(잭 웰치)를 정독했다.경영이념과 일에 대한 열정을 상세히 담아낸 이 책을 지인들과 임직원들에게 추천하기도 한다. 해태제과 차석용(車錫勇)사장은 잭 웰치‘최후의 리더십’(로버트 슬레터)을 읽었다.저자는 “모래 속에 머리를 묻고 있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남 사장은 이 책을 CEO들의 필독서로 권장한다. ◆경제·경영서적은 기본-CEO가 가장 선호하는 책은 당연히 경제·경영 관련서적.세계경제 흐름의 변화와 해외 유수CEO의 경영마인드가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SK㈜ 최태원(崔泰源)회장은 SK의 전략인 중국 사업확대 차원에서 중국서적을 많이 읽는다.최근에 읽은 책은 ‘세계화 이후의 세계화’(로웰 브라이언)와 ‘겅호’(켄 블랜차드·셀든 보울즈 공저).주로 주말과 차량 이동시간을 이용해 책을 잡는다. KT 이용경(李容璟)사장은 ‘민영 KT호’의 초대 사장이 된 뒤 애독서인 ‘최고 경영자 예수’(로리 베스 존스)를 다시 폈다.그는 “어려운 시대에 소임과 지도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예수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있다.”면서 “고민하는 CEO,갈증을 느끼는 CEO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했다. 사업에 대한 ‘배짱’과 ‘예술적 재능’을 강조하는 두산 박용오(朴容旿)회장은 최근 ‘소로스’(마이클 T 카우프만)와 ‘보스 토크’(월스트리트저널)를 탐독했다.박 회장은 “이 책을 통해 미래 위기극복 과정,CEO의 대응법과 생존방법 등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제일제당 김주형(金周亨)사장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재쟁탈전’(브루스 툴간)을 읽는다.어떻게 하면 인재를 잘 선발하고 유지·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질적인 답변을 준다고 소개했다. ◆‘책 권하는’ CEO-SK 손길승(孫吉丞)회장은 손이 닿는 곳에 항상 책을놓고 있을 정도.승용차에 늘 2∼3권을 비치해 두는 독서광으로 소문나 있다. 최근에는 32권짜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야마오카 소하치)를 통독했다.중국 관련서적도 대부분 독파했다.경영진 및 임직원들에게도 “세상의 변화를 모른 채 기업을 할 수 없다.”며 늘 공부하고 독서하라고 주문한다. 교수가 꿈이었던 효성 조석래(趙錫來)회장은 독서를 통해 전문가를 능가하는 지식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경영·경제 관련서적뿐 아니라 품질관리,신기술 관련 책들이나 일본 원서를 즐겨 읽는다. 최근에는 부실의 늪에 빠진 제조업체의 공장장이 한정된 시간안에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을 담은 소설 ‘더 골(The Goal)’(엘리 골드렛)을 읽고 주요 임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LG전자 구자홍(具滋洪)부회장은 틈이 날 때마다 경영관련 서적을 손에 잡는다.최근에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짐 콜린스)를 읽었다.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기업들의 공통점을 분석한 내용이 좋아 2만 5000여명의 직원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때로는 부드러운소설도-진로 김선중(金宣中)회장은 지독한 독서광에 두편의 시집을 출간한 문인이기도 하다. 경영관련 서적,소설,역사서,추리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한달에 7∼8권을 읽어낸다.요즘엔 고대 로마의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를 읽고 있다. 쌍용건설 김석준(金錫俊)회장은 스트레스를 독서로 풀 정도로 책을 끼고 산다.침대 부근에 항상 책을 두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읽는다.일반소설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엔 17세 소년이 요트 세계일주를 하며 대자연에 맞서는 모험담을 그린 ‘라이언 하트’(제스 마틴)를 읽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삼성전자 이윤우(李潤雨) 반도체부문총괄사장도 될수록 부담없는 소설류를 즐긴다.조선시대 명의 이제마의 일대기를 담은 ‘신의 이제마’(이수광)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인텔 창업자인 앤디 그로브 회장과 친분이 두터워 그의 서적 ‘Swimming Across’와 ‘Oneon One with Andy Grove’도 읽었다. 산업팀 종합
  • 오피니언 중계석/ 친일청산 방법론 논란-안병직·최갑수·박찬승교수 다른 견해 피력

    기존의 친일청산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한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연구발표를 둘러싸고 학계의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진다.안 교수는 지난달 18일 서울대에서 열린 ‘2002 역사학 국제회의’에서 ‘과거청산과 역사서술’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친일세력 청산은 아직 때가 이르며,이를 정치적·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해선 안된다.”는 견해를 밝혔다.주제발표와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반대토론,박찬승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의 반박문(8월31일자 한겨레신문)을 요약해 싣는다. 안 교수는 독일의 나치집권기(1933∼1945)와 한국의 일제강점기(1910∼1945)를 ‘일상사’시각에서 비교 분석했다.그는 “독일과 한국이 각각 나치와 일본의 지배를 경험한 공통점이 있지만 독일이 지난 수십년간 나치즘을 연구한 것과 달리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에 수반된 억압과 수탈 통제에 따른 고통과 희생의 면면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춰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만 부각시켰다.”고 지적했다.또 “적어도 전쟁 이전 나치집권기에 대다수 국민의 일상은 평온하고정상적인 것”이었으며 “그들은 노동과 여가의 일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면 정치적 통제와 억압,감시와 테러라는 비정상적 행위들은 묵인했다.”고 밝혔다.일제시대 연구도 “(한국인들에게)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기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역사는 과거를 정치적으로 심판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좇은 ‘매국노’라는 인물상도 사실행위의 복합적 측면을 단순화한 결과”라는 시각을 드러냈다.그의 주장대로라면 “다분히 정치적·도덕적 잣대로 이뤄진 친일파 명단공개는 일제시대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과거청산이 “국가가 정통성과 통치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인데,“제대로 된 국민국가의 설정이란 각도에서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묻는 것을 일상사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을 폈다.“역사에는 심급이 있어 국가·민족의 문제와 개인의 실존적 문제는 차원이다른 것”이며,“과거청산은 범죄행위에 대해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에 가깝다.”는 주장이다.그에 따르면 안 교수가 말하는 일상사는 ‘밑의 역사’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밑으로부터의 역사’는 아니다. 박 교수는 기고문에서 “안병직 교수는 3·1운동 이후 이렇다할 저항이 없어 일제 지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고 전제,“하지만3·1운동 직후 경찰비는 총독부 예산의 26%를 차지했고,이후에도 2∼7%(군사비 제외)로 교육비보다 항상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보안법 외에도 치안유지법·제령 등 각종 악법과 제도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그렇게 볼 때 “체제유지의 위기는 상시화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친일파 명단 발표에 대해 그는 그런 방법이 꼭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를 현실에서 청산되지 못한 문제를 역사 속에서라도 청산하자는 의미,친일파들의 변신과 변명이 더 힘을 발휘해온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겠느냐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역사는 선악포폄을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안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물론 역사학이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지만 근대 역사학의 목표인 ‘인과관계의 구명’외에 전통적 역사학의 목표인 ‘과거에 대한 평가’작업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식민지시대에서 과연 긍정적인 측면을 찾을 수 있을까.그는 안 교수가 한예로 신작로를 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체포된 의병과 힘없는 농민들에 의해 건설됐으며,그 길을 통해 쌀과 면화들이 일본으로 실려 나간 ‘신음’의 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또 총독부는 황국신민을 육성하려고 보통학교는 늘려 갔지만 중등학교 수준인 고등보통학교는 ‘1도 1교’밖에 두지 않았으며,총독부에서 만든 병원에는 한국인 의사가 거의 없어 한국인들은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웠다는 사실도 밝힌다.요컨대 식민지시대에 대한 ‘향수’는 ‘왜곡된 의식’이 내재화한 결과인데,그것을 식민지시대도 그런대로 살기 좋았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리 김종면기자 jmkim@
  • ‘로마인 이야기’ 담보로 20억 신용대출

    출판사의 기획 능력과 출판물의 지적재산권을 담보로 은행이 거액을 신용대출해 화제가 되고 있다. 도서출판 한길사(대표 김언호·사진)는 대하역사서 ‘로마인 이야기’를 담보로 국민은행에서 20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고 27일 밝혔다.신용대출의 대상이 된 ‘로마인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30년 이상 머물면서 고대 로마의 흥망사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저술 활동을 해온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15권짜리 역사평론이자 소설이다. 한길사는 이 책을 지난 1995년부터현재 10권까지 출간했고,2006년에 완간할 예정이다. 한길사는 이 책이 지금까지 200만 여권이 팔렸다고 밝혔다. 출판계에서는 이 시리즈가 앞으로 1000만권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기획물을 담보로 은행이 대출해 준 것은 영세한 출판계에 희망을 심어준 일”이라며 “앞으로 출판사들은 좋은 기획물을 자금 부족으로 포기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삼국지의 영광/김문경/사계절/ 삼국지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관운장은 전쟁 중에도 역사서 ‘춘추’를 즐겨 읽었다.춘추를 빼고는 그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이 책에 탐닉했다고 전해진다.실제로 중국 도처에 관운장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나 관제묘(關帝墓)를 찾아가면 높다란 의자에 앉아 검은수염을 늘어뜨린 채 춘추를 읽고 있는 그의 석상 하나쯤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당시 중국에는 지금처럼 의자중심의 입식생활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책도 달랐다.지금 같은 ‘멋지게’제본된 책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어느 정도가 사실인가.왜 그렇게 재미있으며 또 어떻게 탄생했을까.우리가 읽는 삼국지는 정말 나관중이 쓴 것일까. ‘천년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동양의 고전 삼국지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을 더듬어간 책 ‘삼국지의 영광’(김문경 지음)이 새로 나왔다. 우리 나라 소설가 이모씨가 ‘인세수입 1위’를 고수하는 이유도 이 ‘삼국지’에 있다는 얘기도 있다.이처럼 여러가지 모양새로 각색돼 출간된 삼국지는 종류도 헤아리기 힘들다. ‘…영광’은 이렇듯 한·중·일 동양 삼국의 정신세계를 관류하는 ‘삼국지연의’의 사회사 혹은 역사적 해부를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삼국지와 삼민주의를 엮어 ‘이야기는 3에서 시작된다.’고 풀어나간다.그러고는 삼국지는 ‘칠실삼허(七實三虛)’라고 지적한다.열에 일곱은 사실이고 나머지는 허구라는 것이다. 작자 나관중을 둘러싼 논란과 신격화된 관우 등 인물상의 변천,삼국지의 사상과 이를 둘러싼 역사상의 출판전쟁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삼국지 이전에 읽히고 있던 ‘원형 삼국지’들도 소개했다. 곳곳에 삽입된 토막 이야기와 그림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줘 삼국지를 보다깊이 이해하고 소화하는 데 필요한 보조자료로 손색이 없다.사계절.9800원. 심재억기자 jeshim@
  • 잃어버린 옛地名 되찾기 나섰다

    서울시가 일제시대 때 이름이 바뀐 옛 지명을 되찾는 사업을 추진한다. 강원도 평창군은 일본식으로 개명되거나 사라진 산의 이름을 찾아내는 ‘산 이름 찾기 운동’을 벌인다. 서울시정 인수위 강승규(姜昇圭) 대변인은 25일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당선자가 24일 문화관광국의 업무보고에서 ‘옛 지명찾기 사업을 검토할 것 ’을 요청했다.”고 밝혔다.강 대변인은 “이 당선자는 ‘창경궁 이름이 일제시대 때 창경원으로 바뀌면서 남쪽은 원남동,서쪽은 원서동으로 각각 지명이 변경된 뒤 창경궁은 옛 이름을 되찾았지만 원남동과 원서동은 그러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시는 시사편찬위원회나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에서 일제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지명의 변천사를 분석,바뀐 지명 현황을 파악한 뒤 ‘옛 지명찾기’ 대상을 확정,학계 고증과 주민의견 수렴 등을 통해 지명을 복명(復名)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작업에 들 어갔다. 시는 이와 별도로 이 당선자가 선거운동 당시 공약으로내걸었던 강변북로 를 ‘월드컵대로’로 바꿔 부르는 것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한강 남측 도로를 올림픽도로로 부르듯,한강 북측에 있는 강변북로를 월드컵대로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지명위원회를 거쳐 개명할 방침이다. 한편 평창군은 군내 유명산 중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지도나 역사서에 표기된 이름과 달리 이름이 일제식으로 고쳐지거나 없어진 산이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에 잘못 불려지거나 지형도에 표시되지 않은 산의 이름을 사료 등에 근거,제 이름을 찾아주고 국립지리원에 일괄 개명을 의뢰하기 로 했다.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정선군 북면에 걸쳐 연결된 가리왕산의 경우 산의 족보인 ‘산경표’에는 가리산으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 왕(旺)자는 일제시대 때 일본의 왕을 지칭하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파악된다. 진부면 장전리∼대화면 하안미∼정선 북면에 걸친 중왕산(中旺山) 역시 산 경표에는 주왕산(住王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발왕산(發旺山)도 일본식 표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와 함께 1900년대 초기 군지(郡誌)에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수정산이 평창읍 서쪽 20리밖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현재는 존재 하지 않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산의 위치를 밝히기로 했다. 평창군 관계자는 “위치나 이름이 잘못된 산으로 인해 산의 가치와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사료에 근거해 산의 제 이름을 찾아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덕현·평창 조한종기자 hyoun@
  • ‘영상역사’ 시대…사극도 역사일 수 있다/김기봉교수 ‘포스트모던 역사이론’주장

    ‘인문학의 위기’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전통적인 역사학이 대중에게서 외면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반면 TV 사극은 어느 때보다 높은 인기를 누린다.이에 역사학계는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고 비판하고,사극 제작진은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일 뿐”이라고 강변한다.역사학과 사극이 화해할 접점은 없는 것일까? 포스트모던 역사 이론은 가능하다고 대답한다.최근 발간한 문화사학회의 학회지 ‘역사와 문화’ 제5호에 실린 김기봉 경기대 교수의 글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로서 사극’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김 교수는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역사이론·사학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역사란 무엇인가를넘어서’‘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등의 저서를 발표한 40대 초반의 역사학자다. 사극의 ‘광풍’에 대해 역사학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학 상아탑 안에 있는 역사는 ‘하한가’를 보이지만 대중문화 속의 역사는 계속해서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을 역사가들은 바라만 볼 것인가? 역사란 어쩌면 과거에 상연한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오늘의 시점에서 리메이크하는,일종의 사극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결국 역사가란 사극 제작자와 마찬가지로 지나간 과거를 재현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지식정보의 디지털화가 일어남과 동시에 탈(脫)문자의 시대가 도래했다.문자로 쓴 역사는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로 전락한 셈이다.이와 함께 ‘영상역사’라는 새 장르가 역사학 안에 자리잡아간다.따라서 문자매체에 의존한 역사학은 위기를 맞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탈문자 역사’로의 전환을 통해 역사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이제 역사가들이 영상역사로서 사극을 경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그것과의 만남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사극을 위한 역사이론 정립이 필요하다.그동안 만남에 장애가 된 요인은 ‘사실로서의 역사’와 ‘허구로서의 사극’이라는 이분법이었다.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해소됐다.이제 역사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함으로써 역사학과 사극의 만남을 열어줄 새 역사이론을 개발할수 있다. 역사가는 역사서술과 사극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역사서술은 과거의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사극은 드라마적인 재연을 통해서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면 역사서술에는 허구가 없는가? 사학자 헤이든 화이트에 따르면 과거가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에 의한 플롯 구성이 필요하며,이러한 플롯 구성은 근본적으로 역사가의 상상력에 의해 주도된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는 사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 역점을 둔다.하지만 사극은 비록 일어난 사실은 아니나 삶의 진실일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자유를 더욱 많이 향유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을 말하는 시가 그 반대인 역사보다도 더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역사과학이 중시하는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지만,대중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역사는 효과로서의 역사다.오직 과거의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실증사학의 잣대만을 고집하는 역사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그리고 무엇을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지 반성해야 한다.역사가들은 이제 TV나 대중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갖는 역사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오늘의 역사가는 지식 생산에만 전념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대중이 역사학 밖에서 범람하는 역사를 소비하는 방식을 비평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역사비평’의 영역을 열어야 한다. 역사란 다른 시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성립한다.이 시대를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극은,정통 역사서술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삶의 방향을 지도해줄 뿐만 아니라 인생의 괴로움·좌절감을 해소해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따라서 역사가들이 사극의 이러한 기능을 자신의 임무로 떠맡지 않는다면,역사학은 오직 역사가를 위한 학문으로만 존재할 것이다.그리고 역사학은 인문학의 위기 속에 결국은 사멸하는 종(種)이 되고 말 것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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