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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가 천천히 회군했다? 벽골제는 저수지? 방조제? 역사 속 9가지 전략전술

    이성계가 천천히 회군했다? 벽골제는 저수지? 방조제? 역사 속 9가지 전략전술

    전략전술의 한국사/이상훈 지음/푸른역사/364쪽/1만 8000원 조선 창업의 제1보라고 할 수 있는 위화도 회군의 핵심 전략은 ‘속도전’이었다. 역사서인 ‘고려사’에 따르면 이성계는 회군 당시 우왕과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일부러 천천히 남하했으며 우왕의 신료나 백성들도 이성계의 회군 병력을 마중나와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또한 개경에 도착한 이성계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전투를 수행했고, 비교적 손쉽게 최영군을 격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서의 기록은 위화도 회군이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천명에 따라 이뤄진 혁명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후대가 기록한 것이어서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 이성계는 위화도로 진군할 때는 하루 평균 10㎞씩 나아갔지만 회군할 때는 하루 평균 40㎞나 되는 속도로 남하했다. 사서에 기록된 것처럼 ‘사냥도 하면서 천천히 행군한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군했다.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그 당시 개경에 있는 최영의 군사력이 약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최영 군의 일부는 양광도(지금의 경기 남부, 강원 일부, 충청도 지역)에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내려가 있었고 일부는 요동 정벌에 출전해 있었다. 최영의 군사가 약해져 있을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이상훈씨가 한국사 속에 등장했던 다양한 전략전술 사례 9가지를 다룬 ‘전략전술의 한국사-국가전략에서 도하전까지’를 펴냈다. 4세기 평지에 3㎞가 넘는 대규모로 제방이 건설된 김제의 벽골제는 저수지인가 방조제(防潮堤)인가. 백제가 국가 존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대한 제방을 쌓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각종 사료들을 인용, 벽골제는 해수면이 상승하던 조축 당시에는 방조제 성격이 강조되다가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점차 저수지 성격으로 변모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풀이한다. 작전권은 평시와 전시로 구분되는데 현재 평시 작전권은 한국군에, 전시 작전권은 미군에 각각 있다. 즉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대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주한 미국 사령관에게 부여돼 있다. 2010년 한·미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2015년 한국이 이양받기로 했으나 최근 다시 연기하기로 했다. 고려 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삼별초 진압과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와 몽골이 연합해 여·몽 연합군을 편성했다. 전시 작전권은 몽골이 가지고 있었고 고려군은 몽골군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진도와 제주도의 삼별초 진압 과정에서 여·몽연합군의 작전 지휘권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고려군은 진도 삼별초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몽골군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제주도 삼별초를 진압할 때에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적극적인 군사 행동은 그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몽골로부터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사이사이에 ‘징검다리’라는 이름으로 해설을 붙여 무기의 개량, 군사 전략, 군율 등에 대한 이해를 도운 점이 눈에 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사라진 희귀서적 절도단을 추적하라

    사라진 희귀서적 절도단을 추적하라

    북로우의 도둑들/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노상미 옮김/책세상/372쪽/1만 6000원 20세기 초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4번가에는 독특한 곳이 있었다. 크고 작은 서점들이 나란히 배열된 풍경 그대로, 그곳은 ‘북로우’(Book Row)라 불렸다. 한번 출판된 책은 다 있다는 북로우는 애서가뿐 아니라 책도둑에게도 천국이었다. 책도둑들에게 도서관은 금고였고, 도난당한 책들이 암거래되는 북로우는 도서관 관계자들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다. ‘북로우의 도둑들’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수십개 서점이 몰려 성황을 이루던 북로우로 안내한다. 희귀 서적 범죄 전문가답게 저자는 미국 역사상 도서관 절도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그 시절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절도사건을 중심으로 희귀 도서의 미시사를 풀어낸다. 추리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초기 시집 ‘알 아라프, 티무르’ 초판본이 뉴욕 공공도서관 희귀자료실에서 사라진 사건이다. 책은 250부밖에 인쇄되지 않은 희귀 서적이라 1894년 경매에서 75달러에 팔린 것이 1909년에는 2900달러가 될 정도로 가치가 상승했다. 당시 뉴욕 공공도서관은 대규모 장서를 보유한 애스터 도서관을 통폐합해 책도둑들의 보물창고로 떠올랐고, 책도둑들의 기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책도둑들에게 필요한 건 적성과 재능 대신 “뻔뻔함, 자신감, 그리고 커다란 코트”였다. 하루에 도서관 3곳을 돌면서 50권을 훔쳐낼 수 있는 ‘능력’을 쌓았다. 책을 훔쳐온 대가로 표준수수료 2달러를 받거나 최종 판매가의 5%까지 받기도 했다. 절도가 빈번해지자 뉴욕 공공도서관은 보안을 위한 특별조사관을 두어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책 절도의 세계에 발을 들인 10대 소년 듀프리의 무모한 시도는 생각보다 쉽게 성공으로 이어졌다. 뉴욕의 서점가를 소개하던 책은 이때부터 특별조사관과 절도단의 추격전으로 장르를 옮겨 이야기를 펼친다.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역사서다. 추격전보다 당시 경매소의 풍경, 가짜 희귀본을 만드는 기술, 희귀 도서 소유자들의 삶, 장서를 지키려는 도서관의 비밀 표시 등 책을 둘러싼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조선의 10대 명문가, 그들의 정신과 혼

    조선의 10대 명문가, 그들의 정신과 혼

    명문가, 그 깊은 역사/권오영 외 지음/글항아리/416쪽/3만원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성립된 중앙집권적 양반 관료 국가로 흔히 인식된다. 그리고 그 시대 많은 지식인들이 관료로 등용되는 지름길이었던 과거의 큰 틀은 유교경전과 역사서의 공부로 집약된다. 조선왕조 500년을 주도했던 양반 관료들은 당연히 유교의 예(禮)와 덕(德)을 겸비한 인재였다. 그 예·덕의 출중한 인재들은 학맥·혼맥을 통해 권력의 정점에 섰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패상을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부는 물론 지식까지 독점했던 양반은 조선사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명문가, 그 깊은 역사’는 바로 그 조선왕조의 핵심 주체였던 양반 명가들을 통해 조선의 정신과 혼을 반추해 눈길을 끈다. 한국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뿌리회가 2004년부터 답사하고 연구해 온 100개의 조선 명문가 중 10개를 추려 소개했다. 한양 조씨 정암, 창녕 성씨 청송, 창녕 조씨 남명, 영일 정씨 송강, 풍산 류씨 겸암·서애, 무안 박씨 무의공, 해주 오씨 추탄, 파평 윤씨 명재, 한양 조씨 주실, 여주 이씨 퇴로 가문이 주인공이다. 책의 특징은 많은 명문가들의 생멸 속에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는 대표 명가들의 생성 과정과 영향력을 추적한 점이다. 권력의 정점을 누린 배경과 결속보다는 도와 예의 정신에 초점을 맞춘 점이 도드라진다. 사림정치와 도학정의 시대를 열었던 가문, 의(義) 정신을 바탕으로 불세출의 문학을 이뤄낸 인물들의 가문, 학문정치로 나라의 운명을 갈랐던 명가 등의 카테고리로 묶어 풀어내는 명가의 인재와 그 유산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16세기 사림의 영수로 꼽히는 조광조의 한양 조씨 가문이 등장하고 세를 누렸던 과정은 독특하다. 선조 조인옥은 고려말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을 종용한 인물. 이성계와의 혼인관계를 토대로 기반을 다졌던 조씨 가문은 문종비 복위를 지지하면서 사림성향으로 전환했으며 결국 조광조를 중심으로 중앙에 진출한 사림세력은 도학정치의 이상 실현에 집중했다는 추적이다. 성삼문, 성담수, 성현, 성혼 등 수많은 관료와 학자를 배출한 창녕 성씨 가문의 도학 정치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특히 “도란 큰길과 같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분명한데 어찌 알기 어렵다고 하는가”라고 소리쳤던 성수침과 그 아들 성혼의 이황·이이와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율곡과 사단칠정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 성혼은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 온 힘을 쏟은 인물로 그의 ‘이기일발설’은 소론계와 김창협·김창흡 등 일부 노론 학자에 계승돼 학맥을 형성한 바탕이다. 성수침의 묘갈명은 이황이 직접 썼으며 성혼 묘비의 비문은 김집이 짓고 윤순거가 썼다고 하니 두 부자의 학문과 인품에 대한 조선조 학자들의 존경과 칭송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선도와 함께 한국 가사문학의 쌍벽으로 불리는 송강 정철을 배출한 호남 명가 영일 정씨 가문의 배경도 독특하다. 특히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는 송강 정철 가문의 고문서들이 소개돼 흥미롭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정병석 경제산책] 송나라의 번영과 규제 혁파

    [정병석 경제산책] 송나라의 번영과 규제 혁파

    중국의 오랜 역사를 통해 가장 창조적이면서 최고의 번영을 이룬 시대는 송나라, 특히 북송 150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송나라는 기술혁신, 경제성장, 관료 지배구조 등에서 당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 위대한 ‘창조적 시대’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청명상하도’는 송의 수도 개봉의 번영과 활기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원작 청명상하도는 송의 장택단이 1120년쯤 두루마리 형태로 그린 풍속화인데 상하이 엑스포를 맞이해 이를 토대로 초대형 디지털 영상물로 제작한 것이다. 중국 역사를 50년 이상 연구한 하버드대 페어뱅크 교수는 유작인 ‘신중국사’에서 송이 가장 창조적이면서도 최전성기를 이룬 배경을 여러 각도에서 제시했다. 전란에 황폐해진 농지의 개간, 양쯔강 이남의 개발, 수리사업, 품종개량과 인구의 증가에 따라 농업생산이 증가하면서 경제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수도인 개봉까지 연결된 운하와 강 등 수로(3만 마일 길이)를 통한 물류유통시스템이 원활하게 가동돼 국내 상공업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20세기 사학 명저의 하나로 발간된 ‘중국통사’에서는 송나라 초기부터 이뤄진 대대적 규제혁파와 행정기관의 권력분산을 강조하고 있다. 송 건국 당시 시행되던 농업 관련 규제들이 국민들의 활동을 얼마나 촘촘하게 족쇄를 채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포구마다 통행세를 부과하고 과수원, 양어장, 물레방앗간을 운영하는데도 세금, 오리사육, 조개 채취, 땔감 채취, 논에 물대는 일 등에도 온갖 명목의 잡세를 부과했다고 한다. 송 건국자 조광윤은 농업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이런 잡세를 철폐한다. 2대 황제도 강 연안 지역에서 곡식을 운송하는 선박으로부터 걷던 세금을 폐지한다. 3대 황제는 농기구에 부과하던 세금도 폐지한다. 이러한 규제혁파로 농민의 부담이 줄고 경제활동이 자유로워지자 생산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역대 황제의 치적으로 역사서에 기록될 만큼 규제철폐는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의 개봉은 당의 수도였던 장안보다 훨씬 규제가 없는 도시였다고 한다. 장안에서는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과 영업시간에 제한이 있었는데 개봉에서는 이런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그래서 장안이 밤만 되면 활동이 정지된 캄캄한 세상이었던 데 비해 개봉은 밤새도록 사람들이 붐비는 인구 100만명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도시로 변모했다. 청명상하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활기차고 풍부한 물자유통, 오락 등은 개봉의 이런 모습을 반영한다. 개봉에는 수십 개의 극장이 있었고 여기서 각종 잡극, 만담, 연극 등을 시현했는데 어떤 극장은 수천 명을 수용할 만큼 컸다고 한다. 이런 규제완화가 송을 중국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면서 번영한 나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송을 뒤이은 명이나 청나라는 규제가 심한 매우 엄격한 사회였다. 명의 초대 황제 주원장은 송·원이 망한 것은 관리들의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가혹한 처벌제도를 신설하고 관리를 감시·감독하는 금의위(비밀 정보사찰기구), 도찰원(감찰기구) 등의 전담기구를 설치한다. 구체적 범법 사례 1만여개를 모은 사례집을 인쇄해 각 가정에 보급하고 각급 학교에서 이를 필수적으로 교육하게 지도한다. 관리와 민간에게까지 이렇게 엄격하게 법 규제를 강제한 법 만능의 통치와 해외무역을 금지한 결과는 송나라에서 창조적으로 번영했던 경제활동의 위축이었다. 지금 정부는 규제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암덩어리’라는 인식하에 모든 역량을 모아 이를 혁파하겠다는 야무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역대 정부도 대개 강한 의욕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문제를 끝장 토론해서 결판낸다고 하니 다시 기대해 볼만하다.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 [오늘의 눈] 한·일 ‘정상적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안동환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한·일 ‘정상적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안동환 정치부 기자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시대를 만들기 위한 부전의 맹세를 했다.”(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후 발표한 담화에서) “고노 담화 수정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2014년 3월 14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두 발언 모두 일본 아베 신조 총리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태평양전쟁의 주범인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신사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맹세했다는 아베 총리의 말은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진정성(?)도 거듭 확인됐다. 아베 총리가 영수인 집권 자민당은 지난 1월 당 지침에서 부전 맹세 문구를 슬그머니 삭제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인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귀를 씻고 들어야 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일방적으로 흔들어대다 수정 불가 입장을 밝힌 고노 담화도 원점으로 온 것일 뿐이다. 이마저도 그의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예정대로 검증한다고 확언하고 있는, 아직은 믿기 어려운 문제다. 아베 총리가 대단한 입장 변화를 한 것인 양 보는 건 착시 현상에서 비롯된 희망 사항일 뿐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인류의 보편적 상식과 양국의 역사적 기초를 가해자가 부인하고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였다고 ‘커밍아웃’하는 비정상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한·일 정상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꼼수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은 양국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상적인’ 정상회담이어야 한다. 깜짝쇼로 진정한 관계 진전을 기대하기엔 양국 국민 모두가 순진하지 않다. 오는 24일 열리는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 정상 간 회담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깐 멍석에서 연출된 인위적 회동으로 비쳐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북핵을 의제로 3국 정상이 만나도 막대한 분량을 비축 중인 일본의 무기급 플루토늄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다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 아베 총리는 뿌리 깊은 우익 정치인이다. 그는 궁지에 몰리면 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어떤 방법이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할 기회를 노리는 게 그의 진정한 ‘속마음’(本音·혼네)일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수한 역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팩트’다. storysun@naver.com
  • ‘욕망코드’로 본 세계지도… 그 속에 시대상이

    ‘욕망코드’로 본 세계지도… 그 속에 시대상이

    욕망하는 지도/제리 브로턴 지음/이창신 옮김/알에이치코리아/692쪽/3만 3000원 세계 지도 12개를 중심으로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파헤치며 인류의 세계관을 풀어낸 역사서가 나왔다. ‘욕망하는 지도’(원제:A History of the World in 12 Maps)가 그것이다. 1402년 조선은 조선, 중국, 일본은 물론 인도,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를 그린 지도를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완성했다. 이름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로 통합된 땅과 역대 국가와 도시를 표시한 지도라는 뜻이다. 지도 탄생 배경은 이랬다. 태조 이성계와 그의 성리학 참모들은 고려 왕조 전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조의 흥망을 설명하는 고대 중국의 사고방식인 천명(天命·하늘의 명령)을 끌어들였다. 이성계는 새로운 천명에는 새 통치만이 아니라 새 수도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도를 송도(개성)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기고 경복궁을 지은 뒤 하늘을 그린 지도와 땅을 그린 지도를 주문했다. 하늘을 그린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먼저 완성돼 경복궁에 전시됐다. 새로 들어선 왕조가 하늘의 뜻이라는 우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이어 완성된 것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약어 강리도)였다. 이는 현존 지도 가운데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였다. 이 지도를 보면 중심엔 조선이 아니라 거대한 중국대륙이 인도 서해안부터 동중국해까지 축 늘어져 매달려 있다. 중국의 뿌리 깊은 정치적, 지적 영향은 지도 맨 위에 새긴 글에도 나타난다. 중국의 역대 수도 목록이 나오고 당대 중국의 성, 현 등의 행정 구역이 표시된다. 조선은 중국 다음으로 큰 땅덩어리로 등장한다. 제주도 아래쪽에 보이는 일본은 작은 섬에 불과하다. 아라비아 반도 옆의 아프리카는 실제보다 훨씬 작다. 아프리카 위쪽에 있는 유럽도 크지 않게 표시된다. 강리도는 조선이 자국의 정치 지형과 자연 지형을 동시에 인식해 만든 것으로 지리적 정확성보다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중국과 조선, 일본 등의 구조적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지도는 ‘구글어스’다. 컴퓨터 화면에서 구글어스 아이콘을 클릭하면 지상 1만 1000㎞에서 본 푸른 지구의 모습이 나타난다. 사용자는 구글어스를 통해 지구 어느 곳으로든 접근할 수 있으며 생생한 3차원 이미지로 동네, 거리, 건물, 집 및 산, 강, 바다를 다양한 크기로 볼 수 있다. 이는 인쇄된 종이 지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구와의 상호 작용’ 기회를 제공한다. 구글은 방대한 지리정보를 인터넷에서 무료로 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구글이 지도와 관련해 엄청난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며, 지도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책은 과학, 신앙, 제국, 돈, 정보 등 12개의 욕망 코드를 통해 각각의 지도가 제작 당시의 사회적 욕망이 반영된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둘로 나뉜 한국 현대사, 어떤 책 읽어야 할까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한국사에 대한 조명이 학자마다, 사관마다 다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된 책을 훑어보는 수밖에 없다. 최근 나란히 나온 역사서를 통해 역사의 씨실과 날실을 꿰맞춰 볼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와 친일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한 ‘친일, 청산되지 못한 미래’(민족문제연구청년모임·정운현 지음, 책보세 펴냄)는 친일 문제 100선을 꼽고, 저자가 쉽게 대화하듯 답을 덧댔다. ‘친일청산’의 구체적인 뜻부터 친일행적에 대한 판단과 북한의 친일청산 해법, 친일파의 공과론, 현대판 친일파 이해 등 다양한 의문점을 풀어준다. ‘두 개의 한국 현대사’(임영태 지음, 생각의길 펴냄)와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현대사’(남정욱 지음, 시대정신 펴냄)로 현대사 집필의 차이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두 개의 한국 현대사’는 상식과 비상식, 진실과 왜곡이라는 틀거리 안에서 현대사를 직시하고 비판한다. 한국사 교과서 사건, 광복절 논쟁, 국정원 대선개입 등 결정적 사건을 골라 한국사의 흐름을 정리했다.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현대사’는 보수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을 반란·폭동으로 설명하고 5·16군사정변을 ‘군사혁명’라면서 근거를 내세우는 등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인류 원형적 이야기 수록 … 역사서 이상의 가치

    일연은 22세에 승과에 응시, 장원급제했다. 고려가 몽고 침략을 당한 31세에 삼중대사의 승계를 받았고, 41세에 선사(禪師)에 제수됐다. 54세에 선종의 가장 높은 법계인 대선사(大禪師)가 됐다. 78세에 불교계 최고 자리인 국존(國尊)으로 책봉됐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당시 고려는 몽고와의 30년 전쟁, 무신의 난, 삼별초 항쟁, 민란, 몽고에 아부하는 세력의 등장 등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이때 고려 민족의 원류가 ‘단군’일 뿐 아니라 삼국의 뿌리가 모두 하늘과 연결된 태생이라고 강조한 ‘삼국유사’의 내용을 선택한 일연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전승되던 이야기 중 일연이 취사선택한 삼국유사 자체가 가진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폄훼해서는 안 되겠다. 물론 삼국유사를 ‘역사서’로만 읽는 것은 이 책의 매력을 절반만 누리는 일과 같다. 신라 신문왕 시절 선대 문무왕이 보낸 대나무 피리 ‘만파식적’ 이야기나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킨 이야기 등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담은 인류 원형적 이야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수많은 신화에 기초해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탄생시킨 것처럼 ‘삼국유사’ 속 이야기가 재탄생되지 말란 법이 없는 셈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2)일연 ‘삼국유사’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2)일연 ‘삼국유사’

    동상이몽(同床異夢). 겉으로는 같은 편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가진 사이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동상이몽을 많이 경험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럼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사실만을 서술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요즘 교육계를 시끄럽게 하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것도 같은 사건에 대한 동상이몽 때문이다. 같은 현상에 대해 상반된 시각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예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사대주의와 신라 정통론 입장에서 고대 삼국을 재편하거나 누락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신화나 기록들을 풍부하게 수집하고,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으로 쓰였다. 여기서 술이부작이란 기록은 하되 따로 꾸며서 넣지는 않는다는 실증적인 태도를 말한다. ‘유사’(遺事)란 말도 남겨진 일이란 뜻으로 삼국시대에 일어났던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들을 적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국유사’에 쓰여 있는 단군신화 및 여러 건국신화들을 토대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정통성을 찾을 수 있고, 당시 고대인의 의식이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술이부작의 원칙으로 쓰인 실증적인 역사서로만 본다면 그것은 삼국유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색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삼국유사’는 고려 25대 충렬왕 때 선종 구산문의 하나인 가지산파의 승려였던 일연(一然)이 1281년쯤에 편찬한 책이다. 그는 당시 승려로서 최고 직책인 국존(國尊)으로 책봉됐다. 책은 총 5권 9편으로 돼 있다.(도표) ‘삼국유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권1의 ‘왕력’과 ‘기이’편을 제외한 대부분은 모두 불교에 관한 사실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삼국유사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권1에 나온다. 책의 구성만으로 보았을 때 일연의 불교적 입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일연은 충렬왕 때 불교계의 최고 정점인 국존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일연은 몽골과의 항쟁이 마무리되고 개경으로 환도한 뒤 들어선 개경정부의 절대적 후원에 힘입어 불교계에 전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는 권문세족과 원의 간섭이 심했던 때였다. 일연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민지(閔漬), ‘보각국존 일연 비문’(高麗國 華山 曹溪宗 麟角寺 迦智山下 普覺國尊碑 幷序)에 보면 일연을 후원했던 인물은 박송비, 나유와 같은 무신과 이덕손, 민훤, 염승익 같은 문신으로 나뉜다. 여기서의 무신은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뒤 개경으로 환도, 삼별초의 진압, 동정군(東征軍)의 참여를 주도했던 사람들이고, 문신은 충렬왕이 원에서 세자로 있을 때 원나라에서 모시고 귀국한 부류이다. 이렇게 일연은 반무신정권세력과 친원세력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당시 불교는 정치세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만큼 일연도 현실적인 정치권력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이라면 일연은 왜 ‘기이’편을 맨 앞에 배치했을까. 삼국유사의 ‘기이’ 제1편의 서문을 보면 “대저 옛 성인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에 대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錄)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를 잡고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즉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왔다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가 제 편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모두 그 뜻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 뒤 단군신화,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등 신기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이한 세계에 대한 믿음은 종교적 접근이 있어야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일연의 삶을 기록한 위의 비문을 다시 살펴보자. “… 일연의 어머니는 이씨이고, 낙랑군 부인으로 봉해졌다. 처음에 둥근 해가 집안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배에 내리쬐는 꿈을 3일 밤이나 꾸었는데, 마침내 태기가 있어 태화 병인년 6월 신유일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두 기사를 연결해 보면 일연의 출생 역시 비범한 인물은 신이한 과정에서 태어난다는 독특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그는 신이함 자체를 불교적 경이로움과 연결시킨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 전반부에 ‘기이’를 배치해 후반부에 서술될 다양한 불교적 경이를 자연스럽게 납득시키고, 불교의 세계 속에서 삼국의 역사를 읽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권3 ‘탑상’편의 황룡사 관련 기사를 보면 이러한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황룡사는 호국불교의 구심점으로 국가적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던 절이었다. ‘탑상’편의 ‘가섭불 연좌석’이라는 기사에 황룡사 터는 옛날 가섭불이 연좌하여 제자 2만명을 제도했던 거룩한 곳이라고 나와 있으며 ‘탑상’편 ‘황룡사 장륙’에도 황룡이 그 땅에 나타나 불사를 세웠다고 하였고, 황룡사가 완공됐을 때에 장륙존상을 봉안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황룡사 구층탑’편을 보면 중국에 유학 갔던 자장 법사에게 9층탑의 건립을 명한 뒤 경덕왕 13년에 황룡사 대종이 만들어지는 것까지 황룡사 관련 문헌과 기사를 여러 차례 배치함으로써 부처님의 섭리에 의해 호국불교가 발전하고, 구심점이 되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삼국유사의 방대한 기록들은 모두 정합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져 신라불교의 자취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다양한 모습의 승려들을 소개하여 민중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원효가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통해 중생을 교화하는 이야기(4권 ‘의해’, 원효불기)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같이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해 도달하고자 한 목적지는 확실해 보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불교적 이상세계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연이 보여준 술이부작의 원칙이란 전해 내려오는 모든 사실을 수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목적을 가지고 엄선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삼국유사의 술이부작은 어떤 의미일까. 수많은 사실을 선별해 기록하기 위해서 일연처럼 확고한 입장과 관점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인터넷 세상이 또 다른 담론으로 작용하는 사회이다. 현대의 술이부작이란 시대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선별된 사실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으면 삼국유사 전체를 모두 읽어보자. 정민 교수의 ‘불국토를 꿈꾼 그들’(문학의 문학)과 정출헌 교수의 ‘김부식과 일연은 왜’(한겨레출판)를 참고하길 바란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미래학자의 통찰법(최윤식 지음, 김영사 펴냄) 정부기관과 핵심기업들의 전략멘토로 활동하는 미래학자 최윤식의 통찰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치열한 비즈니스 정글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100년 기업들을 집중분석해 그 이면에 숨겨진 통찰의 비밀을 조명했다. 미래의 신문과 잡지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사실과 견해를 구분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 미래 패턴을 추출하는 방법,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를 반전의 기회로 바꾸는 관심 질문법, 빅데이터를 만드는 정보수집 원칙, 미래전략 시나리오 작성법, 대중심리를 활용한 비즈니스 프로파일링 기술까지 저자가 개발하고 현장에서 적용·발전시킨 실전 통찰 프로세스를 소개한다. 저자는 통찰력이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며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날카롭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복잡한 현대사회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이치와 구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미래의 기회를 선점하도록 돕는다. 268쪽. 1만 4000원. 발칸의 역사(마크 마조워 지음, 이순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문명의 교차로이자 유럽의 화약고로 수백년 동안 큰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발칸의 명암을 균형 잡힌 감각으로 그린 책. 2006년 초판을 새로운 편집으로 다듬었다. 세계 지도에 모습을 드러낸 지 고작 200여년이지만 실타래처럼 뒤엉킨 피정복민의 역사를 간직한 발칸은 그 비극의 역사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형성됐다는 점에서 해법을 찾기 힘든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발칸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발칸의 정체성을 찾고 침략자들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발칸인의 투쟁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동서양의 강대국들에 의해 강요된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발칸인의 한계에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매년 탁월한 대중역사서에 수여하는 영국의 권위 있는 울프슨역사상을 수상한 책이다. 날카로운 일침을 보낸다. 현 분쟁의 역사적 뿌리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한편 1, 2차 세계 대전과 냉전기에서부터 공산주의 붕괴, 유고 연방의 와해, 유럽 남동부의 최근 안정화 노력까지 발칸의 전 역사를 조명했다. 279쪽. 1만 3000원.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마음의 병 23가지(보르빈 반델로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펴냄) 신경과 및 정신과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독일의 정신의학자 보르빈 반델로가 쓴 심리질환에 관한 안내서. 우울증, 강박증, 사회 공포증, 광장 공포증, 정신분열증, 거식증, 수면장애, 알코올 중독, 치매 등 23가지 마음의 병에 대해 원인과 증상, 자가 진단법과 다스리는 법을 실제 사례와 함께 설명했다. 저자는 “뇌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기관이고 심리적 증상은 종종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음에 입은 상처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신체적 손상, 뒤엉킨 신경체계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원인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호전될 수 있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새로운 치료방법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은 심리질환에 대한, 그리고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440쪽. 1만 8000원.
  • “좌·우 이념 넘어 객관성 갖춘 역사책 만들 것”

    “좌·우 이념 넘어 객관성 갖춘 역사책 만들 것”

    역사 기술은 더러 객관성을 의심받는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사는 더욱 그렇다. 최근 한국사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위태롭기 그지없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면서도 역사교과서 기술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주변국들은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 ‘제대로 된’ 한국사 책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는 때다. 이런 가운데 민음사가 ‘가장 믿을 만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역사서 ‘민음 한국사’ 시리즈를 출간했다. 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현재 한국사에서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하다. 한국사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시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하고 역사서 수준을 높이는 출판을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책을 내놨다”고 밝혔다. 총 16권으로 계획한 시리즈의 1차분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많았던 15~16세기를 조명했다.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제1권)과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제2권)다. 장 대표가 강응천 문사철 대표와 한국사 시리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민족사관과 친일사관, 독재 미화 등이 한창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미 수년 전부터 객관적인 역사 서술과 접근법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우선 한 편집자가 전체 역사 서술의 큰 틀을 잡고, 역사학계의 중진학자들이 전문 분야를 집필한 뒤에 편집 과정에서 서술 방향과 톤을 논의하는 식으로 균형을 잡아갔다. “세계적으로 역사를 집필하는 기본 방식”이라는 장 대표는 이 책의 독특한 기술 방식의 하나로 ‘세기별 구분’을 꼽았다. 보통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누는 구성이 아니라 100년 단위로 쪼개 풀어내는 방식이다. 명확한 시간 변화를 주축으로, 같은 시기를 살아온 다른 나라의 상황을 비교하다 보면 한국사의 개성과 다양성이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15세기에 진행된 조선 건국을 원-명 교체와 연결 짓고 주변 신생국 열전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16세기는 조선 사대부의 성장을 중심으로 양명학과 프로테스탄티즘, 종교개혁 등을 들여다본다. 좀 더 쉽게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을 이용한 것도 장점이다. 편집을 주관한 강 대표는 “한국사를 통괄해 보겠다는 의지로 분야별 전문가들을 제대로 모았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단순히 역사학자로만 구성하지 않고 폭넓은 분야의 학자들을 참여시켰다.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한국 과학사를 진단하고, 박진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15세기 한글 창제의 의미를 짚는다. 한필원 한남대 건축과 교수는 사대부들의 이상향인 경북 봉화 닭실마을에서 피보나치 수열을 찾고, 염정섭 한림대 사학과 교수는 사회경제사를 두루 고찰한다. 강 대표는 “한국사에 대한 모든 선입관을 배제하고 역사를 들여다보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이라면서 “초기의 목표를 이루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판단하기에 이르지만, 포괄적으로 다시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최대한 알차게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리즈는 15세기부터 시작해 19세기를 끝내면 다시 고대부터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오는 순서로 출간된다. 20세기와 현 정권까지의 현대사는 2016년에 내놓으면서 완간할 계획이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倒行逆施’

    교수들이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교수신문은 지난 6∼15일 전국의 교수 62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32.8%(204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를 선택했다고 22일 밝혔다. 도행역시는 중국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인 ‘사기’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의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가 초평왕에게 살해되자 오나라로 도망쳐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됐다. 이후 세력을 키워 초나라를 공격해 승리한 뒤, 원수를 갚고자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채찍으로 300차례나 내리쳤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가 질책하는 편지를 보내자 오자서가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어서(吾日暮道遠)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故倒行而逆施之)”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를 고집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며 추천 이유를 말했다. 도행역시에 이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란 뜻의 ‘와각지쟁’(蝸角之爭)이 22.5%(140명)의 지지를 얻어 2위에 올랐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전공과 세대·지역을 안배해 선정된 추천위원단이 사자성어 43개를 우선 추천한 뒤, 교수신문의 필진과 명예교수가 5개를 추려내 전국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해 선정했다. 앞서 교수신문은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한 바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중근 회장, 6·25 관련저서 기증

    이중근 회장, 6·25 관련저서 기증

    이중근(왼쪽) 부영그룹 회장 겸 우정문고 대표이사가 4일 서울 통일로 경찰청 본청에서 자신의 저서인 ‘6·25전쟁 1129일’ 1100권을 경찰에 기증하고 이성한 경찰청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책은 6·25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까지 매일의 날씨, 전황, 국내외 정세 등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편년체 역사서로, 경찰청은 전달받은 도서를 16개 지방경찰청과 산하 경찰서 등에 전달해 안보의식 정립을 위한 참고도서로 활용하기로 했다. 부영그룹 제공
  • 소설 속 얼굴로 한국인 정체성을 읽다

    소설 속 얼굴로 한국인 정체성을 읽다

    한국인의 탄생/최정운 지음/미지북스/580쪽/2만원 두 가지 반전이 있는 책이다. 하나는, 묵직한 제목만 봐선 딱딱한 역사서 또는 사상철학서일 거라 짐작되지만 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근대 문학을 주 재료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저자는 문학 전공자가 아닌 정치학자란 사실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담론을 집대성한 ‘오월의 사회과학’(1999)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은 최정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1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왜 한국인의 정체성의 근원과 진화 과정을 근대 소설의 주인공들에게서 탐색하려는 시도를 했을까. 저자는 우리의 근현대 사상사가 정통적인 방법론으로는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는 책 도입부에서 “우리의 근현대 역사에는 서구의 경우와 같이 사상사로 읽고 분석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저서들, 텍스트가 거의 없다”면서 “사상사적 자료가 그나마 가장 풍부하게 남아 있는 분야가 있다면 문학, 특히 소설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내용은 사실과 이상과 고민을 포함한 역사적인 현실이며 그러한 역사적 현실의 재구성이 이 책의 목표”라고 썼다. 책은 구한말 망국과 국권 상실의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서 태어난 근대 한국인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혼돈의 시기를 헤쳐나오면서 어떻게 새로운 한국인상을 모색하며 정체성을 확립해왔는지를 근대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설명한다. 저자는 먼저 20세기 초반 신소설이라 불리는 최초의 근대 소설문학 작품 중 이인직의 ‘혈의 누’, 이해조의 ‘구마검’ 등을 분석하면서 구한말의 ‘홉스적 자연상태’, 즉 보호 기제가 모두 허물어져 생존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한일병합 직전에 이르면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종류의 한국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혐오의 대상이자 무의미한 존재인 대한제국의 ‘국민’ 대신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은 ‘민족’의 개념이 비로소 실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즈음, 민족주의자들은 개화 민족주의와 저항 민족주의로 갈라진다. 춘원 이광수가 1917년 발표한 ‘무정’의 ‘이형식’이 초기 개화 민족주의자라면 단재 신채호의 1916년작 ‘꿈하늘’의 주인공 ‘한놈’은 저항 민족주의자였다. 저자는, 개화 민족주의자들은 서구의 사상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되길 열망했지만 정체성의 기반이 부족했으며, 저항 민족주의자들은 내면의 각성 없이 투쟁 본능만을 갖추고 있어 역사를 추동할 동력이 없었다고 분석한다. 상실감의 시대였던 1920년대, 지식인들은 강한 한국인을 길러내야 한다는 명제에 대체로 합의했다. 김동인은 초기작 ‘약한 자의 슬픔’‘목숨’ 등을 통해 강한 한국인의 모델을 찾아 헤맸지만 이런 노력이 작품 속에 제대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 서울을 배경으로 기이한 생태의 대도시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이상의 ‘날개’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파리한 지식인들의 초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편에선 강한 한국인을 창조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춘원의 ‘유정’속 주인공 최석이 집요함을 핵심적 특징으로 하는 근대 한국인의 최신 모델이며, 이러한 춘원의 작업은 심훈의 ‘상록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한다. 같은 시대에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이라는 새로운 민중영웅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춘원은 우파의 입장에서, 벽초는 좌파의 입장에서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두 인물을 창시했고, 이 두 영웅의 모델은 현대 한국인에게도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책은 벽초가 임꺽정을 통해 이성의 자리에 저항 정신을 심었으며, 원한과 증오에 기반한 순수한 저항 정신이 반지성주의를 확산시켰다고 주장한다. 기실 반지성주의는 일제 시대를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풍토였다. 일제에 빌붙어 민족을 배신하고, 서구의 지식을 무작정 들여와 계몽하려는 근대 지식인들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생긴 반감이 1930년대 반지성주의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렇게 형성된 반지성주의가 또 하나의 역사적 저주인 ‘교육만능주의’와 짝을 이뤄 오늘날 우리 사회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해방된 한국인들이 강한 유전자를 확립하기 위해 과도하게 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덕성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근현대 역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그런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간 엄청나게 먼 길을 왔고,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 자격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빛을 밝히자 문명이 빛났다

    빛을 밝히자 문명이 빛났다

    인간이 만든 빛의 세계사/제인 브록스 지음/박지훈 옮김/을유문화사/380쪽/1만 5000원 ‘인간이 만든 빛의 세계사’는 인간이 만들어낸 빛이 삶의 양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핀 탐사기이자 역사서이다. 18세기까지 사람들이 경험한 빛은 고대 로마시대의 빛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까지 램프 제작 기술에 별 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램프의 밝기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킨 곳은 18세기 후반 유럽의 연구실이었다. 스위스 과학자 프랑수아 피에르 아미 아르강이 개발한 램프는 이전에 쓰던 램프의 오렌지색에 비해 불빛이 ‘하얗고, 생생하며, 눈부셨다’. 그의 램프는 일반 램프보다 10배나 더 밝아 등대의 항로 표지로 쓰였다.아르강 램프는 너무 밝아 눈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여서 넓적한 운모, 장식용 유리 등으로 불꽃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램프나 전등에 씌우는 갓의 시초였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에서 새로운 조명 수단으로 가스불이 등장했다. 독일 출신의 영국 이민자 프레데릭 앨버트 윈저가 중앙 거점에서 가스를 생산해 관을 통해 가로등, 상업시설, 웨스트민스터의 가정집 등에 가스를 공급했다. 사람들은 가스불을 이렇게 예찬했다. “한여름의 대낮처럼 밝으면서도 달빛처럼 부드러워 눈을 편안하게 했다.” 가스불은 첫선을 보이자마자 런던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저녁 시간을 여가에 할애하고 돈도 더 썼다. 아이쇼핑이 취미로 자리잡으면서 저녁 시간은 소비자들의 시간으로 탈바꿈했다. 1870년대에 러시아의 발명가 파울 야블로치코프가 전기를 이용한 아크등을 개발했다. 아크등은 너무 밝아서 가로등을 45m 간격으로 배치해도 충분히 거리를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이 지나치게 강렬해 빛의 세기를 낮추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촛불 10~20개에 맞먹는 빛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802년 영국왕립협회에서 험프리 데이비가 발갛게 달군 백열 필라멘트를 선보이며 백열등 개발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77년이 흐른 1879년 12월 31일 밤 미국 워싱턴주 멘로 파크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에디슨이 그의 연구실, 사무실, 집에 설치한 수십개의 백열등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딸깍’ 스위치를 올리는 소리와 함께 진공 유리구 속에 나타난 빛은 불꽃도 나타나지 않고 달래거나 어를 필요도 없었다. 빛은 더 이상 떨리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았고 냄새가 나거나 촛농을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산소를 소모하지도 않았고 공장에서 쓰는 걸레나 건초 더미에 불이 붙을 우려도 없었다. 아이 혼자 불 옆에 있어도 괜찮았다. 백열등의 등장은 사람들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밤늦게 작업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혜택이 셀 수 없이 생겨났지만 부작용도 컸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먹고 마시는 ‘노는 문화’는 불면증, 비만 등 현대병을 유발했다. 오늘날은 백열등이 더 환하고 전기를 덜 쓰는 발광다이오드(LED)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이젠 빛의 홍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인공조명이 넘쳐나 심신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올바른 역사인식 위한 차분한 보도 돋보여/심영섭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옴부즈맨 칼럼] 올바른 역사인식 위한 차분한 보도 돋보여/심영섭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옛 왕조의 역사인식을 뜯어고치는 역사서를 편찬한다. 새롭게 역사서가 완성되면 옛 서적은 봉인하거나 파기한다. 이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기술하기보다는 시각의 차이와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새로운 역사 기술이 야만적이거나 폭력적일 때도 있다. 이민족이 지배할 때이다. 중국정권의 조공국가이던 시절과 일제강점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기의 역사서는 이민족의 지배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지배당하는 민족의 영혼마저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제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러한 사관을 반영한다. 교학사가 새롭게 발간한 고교의 한국사 검정교과서는 서울신문의 사설이 지적하듯 특정가치관을 반영하여 편향적일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사관을 따르고 있다(9월 17일자). 사설에 따르면, “한국사 검정교과서 논란은 교학사 교과서 내용의 ‘우편향’과 오류 주장이 나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교과서의 문제는 역사 기술 과정에서 최소한의 학술적 노력이나 진지함마저도 저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과서 공개 이후 2일 만에 교과서 곳곳에서 왜곡과 오류, 표절이 298가지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서울신문은 9월 23일자 9면에 게재한 기획기사에서 교학사 검정교과서의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 오류와 왜곡, 표절의 문제를 제기했다. 역사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역사편찬자의 가치관과 의식에 기초하여 그 시점까지의 관련 역사서와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를 반영한다. 그러나 역사서가 역사소설과 구분되는 점은 창작이 아니라 옛 문헌과 과학적 연구 성과를 체계적이며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하는 데 있다. 이번 교학사의 교과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검정기관의 교과서 검증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8개월간 진행된 검정기간 동안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신문은 이번 검정과정에 참여한 검정위원과 연구원의 수가 예전보다 대폭 줄었으며, 검정과정도 촉박하게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8개월의 검정기간 중 검정위원과 연구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여였다고 한다. 그마나 검정위원의 전문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제도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교과부는 교학사의 검정교과서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사용할 8종의 검정교과서 전체를 재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9월 17일자 사설에서 친북사관이나 친일사관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사설 말미에서 “정부의 재검정 방침에 대한 7곳 출판사와 집필자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지만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란 차원에서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며 양비론으로 끝맺고 있다. 그러나 교학사의 오류투성이인 교과서와 다른 7개 출판사의 교과서를 동일한 잣대로 뭉뚱그려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7종의 다른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인 취재와 지적이 있어야 했다. 벼룩 잡자고 초가를 태울 수는 없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사설에서 지적했듯 “검정체계의 근본적인 결함”에 있는 것이다. 오히려 사설을 통해 검정체계의 개선방안을 제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역사학계 “발명 수준” 야권 “우편향”…교학사 교과서 오류 비판 확산

    역사학계 “발명 수준” 야권 “우편향”…교학사 교과서 오류 비판 확산

    내년부터 채택 예정인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우편향 사관과 사료 부실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10일 하루 동안 정치권과 역사학계에서는 교학사 교과서 내용의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의 토론회가 두 차례 열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미화·왜곡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내용을 분석했고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 진보단체의 학자들은 교학사 교과서에 오류가 298건 있다고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 퇴출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검토 중인 야당 의원들은 11일 교육부를 항의방문해 교육부 장관에게 교과서 검정취소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사학자들은 근현대사 부분뿐 아니라 고대사 부분에서도 교학사 교과서가 40년 전에 폐기된 사관을 따르거나 한민족의 활동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해 기술했다고 주장했다. 고대 한민족의 생활 반경에 대해 이 교과서는 ‘황허 문명권의 확장에 따른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원전 1000년 동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민족의 원형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다’(15쪽)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한민족 문화의 원형을 중국 문명 확대의 파생물처럼 서술한 오류라고 역사연구회 등은 진단했다. 또 고대 부족국가인 부여와 관련해 ‘부여는 산과 언덕, 넓은 연못이 많아서 한반도 지역에서는 가장 넓고 평탄하였으며’(22쪽)라고 썼는데, 만주에 형성된 부여의 지배권을 졸지에 한반도로 축소시켜 버려 왜곡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역사학자들은 “교학사 교과서 기술은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함께 통과한 다른 7종의 교과서와 다른 사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서 “이 교과서로 공부하고 한국사 시험을 보게 된다면 좋은 점수를 못 받겠다”고 총평했다. 전해지는 역사서 덕분에 영토, 지배권 등과 관련해 큰 이론이 없는 고려·조선 시대와 관련해서는 사료를 억측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동명왕편을 쓴 고려 문인 이규보에 대해 ‘향리 출신으로 중앙의 권력자들과 줄이 닿지 않았던 이규보는’(71쪽)이라고 교과서에서 묘사했는데, 이규보는 향리 출신이 아닐 뿐더러 아버지가 이미 호부 낭중의 중앙관직에 진출해 있었고 외조부도 울진 현위를 역임한 관료 집안이었다고 한다. ‘몽골의 영향으로 일부다처제가 나타났다’(75쪽)는 서술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발명한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정치권은 근현대사 대목의 사료 왜곡해석과 함께 우편향성에 주목했다.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 상임위원은 “일제강점기 전체 내용을 요약하며 ‘일본이 융합주의를 적용하였다’고 썼는데, 융합주의란 말을 처음 들었다”면서 “찾아보니 외국 학자들이 인종·민족·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차이를 극복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것을 융합이라고 하던데, 뉴라이트가 보기에 일제강점기는 식민지가 아니라 다민족·다문화 사회란 말인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본 영자신문 재팬타임스가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해 약간의 긍정적인 단락을 실었다”고 언급하며 부각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도 이 위원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제 자본이 침투해 설립한 미쓰코시백화점 등 근대식 건물을 무더기로 게재하거나 ‘1930년대 명동 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278쪽)는 식의 기술은 일제 덕분에 우리가 근대식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의 비중 문제는 한국사 교과서 문제를 현재 시점까지 이끌어내는 문제로 지적됐다. 교학사 교과서에서 안창호 선생 관련 본문 기술은 ‘안창호의 발기로 창립된 신민회’(210쪽) 말고는 전무했고, 이광수의 친일 변절 관련 별도 박스에 안창호가 죽음으로써 이광수가 친일을 선택하게 된 것처럼 게재됐다. 반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 관련 기술은 임시정부와 관련해 25차례 나오는 등 자세할 뿐 아니라 이승만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미화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측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를 통과한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중에서 유독 교학사 교과서만 문제 삼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반박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말은 의식과 교양의 정도에 따라 구조와 품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몇몇 정치인들의 말은 착하기는커녕 악하다 못해 심히 망령되다 하여 양식 있는 일본인을 포함, 국제사회까지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리에 맞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않은 말을 해 대는 일본인들의 망언(妄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일본서기’와 같은 역사서와 ‘메이지유신’ 그리고 ‘정한론’이 망언을 담고 있으며, 가깝게는 나카소네 내각에서 문부성 장관을 지낸 후지오는 ‘한·일 병합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했고, 방위청 장관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싸웠고, 일본의 이상적 목표는 각국의 독립이었다’고 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어느새 바뀌었다. …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는가”라고 하면서 개헌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 지도층은 어찌하여 이런 망언을 아무런 역사의식이나 죄책감도 없이 내뱉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겐 쉽게 치유되지 않는 고질이 있어서 그렇다. 그 고질은 일본인의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판단 능력을 앗아 간 정신질환을 말한다. 일찍이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에 대해 ‘국화’와 ‘칼’처럼 두 개의 극단적 형태를 구성 요소로 한 문화 패턴이 특징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역사상 일본인들은 이웃 나라를 수없이 노략하고 침탈한 민족이었고, 진주만 기습과도 같은 국제전까지 자행한 민족이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병사들은 칼이 잘 드는가를 실험하기 위해 포로들의 목을 쳤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어린 여성들까지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적 노리개로 삼음은 물론 학대까지 자행했다. 어디 그뿐인가.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이라는 반문명적 잔혹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범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억지와 부회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특유의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이 망언을 낳고, 망언은 힘에 대한 과신으로 이어지며, 과신은 힘의 오용을 불러오는 데 있다. 힘의 오용은 또 다른 힘의 응징으로 마침내 자멸을 초래하고 만다(亡國)는 역사적 사실은 인류가 체험한 힘의 논리며 결과였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세기 일본인 모두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 경험을 까맣게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 정치인들은 역사를 직시하고 이웃 민족에게 입힌,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몇 년 전 폴란드에 갔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서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라는 경구를 보았다. 이 말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 건 요즘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일본 지도층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일까. 비록 일본은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이웃 나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 연보·계보나무·통계 그래프·미술관 웹사이트까지…독창적인 눈으로 들여다본 ‘시각적 표상’

    연표란 역사적 사실을 순서에 따라 표로 정리한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바뀌어 온 모습, 역사의 전반적 흐름을 알기 쉽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책으로 된 것, 보관하기 쉽게 가로로 만든 것, 그림이나 사진을 넣어 만든 것 등 그 모양도 다양하다. ‘시간 지도의 탄생’은 한마디로 ‘연표의 역사서’다. 저명한 역사학자들인 두 저자는 “역사가들이 문자로 기록된 사료만을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삼아왔을 뿐 시각적 표상이 제기하는 형식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시각적 표상이 정보를 조직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인데도 역사 차트나 도표에 관한 저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 이 같은 책을 낸다”고 밝히고 있다. 책은 서구의 고대와 중세, 근대, 오늘날을 종횡으로 오가며 연보, 계보나무, 지도, 통계 그래프, 미술관 웹사이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시각적 표상에 대해 꼼꼼하고 독창적인 해석의 잣대를 들이댄다. 지은이들이 이처럼 다양한 이미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시간의 흔적은 다름아닌 선(線)이다. 역사가들은 강의실에서 흔히 타임라인(timeline)이라고 부르는 간단한 선형(線形) 도표를 활용해 무겁고 따분한 역사서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책으로 멋지게 변신시킨다. 미국 시카고대 W J T 미첼 교수(미술사)의 말마따나 우리는 시간이 ‘길다’ ‘짧다’고 말한다. 또 시간의 ‘전’과 ‘후’를 얘기하고 시간의 ‘간격’을 말한다. 시간의 선들은 어느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지만, 어쨌든 그 모든 시간의 시각적 표상 속에 확고하게 존재한다. 연보 등의 자료와 관련해 서구의 것들만 사용하고 한국, 중국 등 동양의 것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역사학자, 역사학도라면 책이 다루는 내용의 방대함과 수준 높은 논의에 시선을 줄 만할 것 같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씨줄날줄] 드라마와 역사적 진실/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드라마나 영화, 소설은 사실이 아닌 허구(fiction)의 창작물이다. 그런데 사극이나 역사소설은 허구에 사실(역사)을 접목시키다 보니 실체적 진실과 충돌할 요소를 늘 품고 있다. 역사소설의 경우 우리는 실제 역사와 얼마나 다른지 크게 따지지 않는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나 홍명희의 ‘임꺽정전’을 그저 재미있게 읽을 뿐이지 소설 속의 내용이 실제로 있었는지 신경을 쓰지 않듯이 말이다. 사실 삼국지 내용 중 역사와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을 열거하면 책 한 권으로 모자란다고 한다. 초선이나 이유와 같은 다수의 등장인물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나 역사 드라마, 즉 사극에서는 좀 다른 것 같다. 작가는 되도록 사실에 충실하려고 애쓰지만 역사서의 기술만으로는 우선 드라마 분량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작은 역사적 사실에 살을 붙이고 더러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내용을 비틀기도 한다. 작가 신봉승씨는 고증을 거친다고 해도 사건이나 인물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사례가 워낙 많다 보니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10여년 전 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한 방송사의 사극 ‘왕과 비’의 작가 정하연씨와 맞붙었다. 세조의 계유정난과 사육신을 왜곡했다는 주장이었다. 작가로서는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싶었을 게다. 근래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가 등장하면서 왜곡 논란이 더욱 잦아졌다. 장희빈을 다룬 한 방송사의 사극 ‘장옥정’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왕이 자신을 ‘과인’이 아닌 ‘짐’이라고 호칭한 것, 죽은 뒤에 붙여졌던 인현왕후 같은 ‘시호’를 산 사람에게 사용한 점 등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특히 장희빈이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모습은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 해도 너무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사극보다 더 사실에 충실하게 제작하는 분야가 다큐멘터리 영화나 드라마다. 사실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을 포함한 다큐멘터리는 소송전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한 대학교수의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었다. 부러진 화살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이 천안함 폭침 사건을 다룬 다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했는데 유족과 장교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법정소송으로 번지고 있다. 침몰의 원인을 좌초와 충돌로 몰고 갔다는 게 원고들의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와 사실 왜곡의 주장 사이에서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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