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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벌레들이 또래에 추천한 책, ‘청소년도서 100권’ 읽어볼까

    책벌레들이 또래에 추천한 책, ‘청소년도서 100권’ 읽어볼까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청소년들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직접 또래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2019 청소년추천도서 100권’을 선정해 6일 발표했다. 도서관이 진행하는 청소년 독서문화프로그램 ‘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에 참여한 중·고교 독서동아리 ‘책벌레 리더스’ 학생들이 직접 읽고 선정했다. 어른 눈높이가 아닌 또래 눈높이에서 본 책이어서 더 친근하다.100권은 총류 2권, 철학 9권, 사회과학 17권, 자연과학 13권, 기술과학 11권, 예술 6권, 언어 2권, 문학 29권, 역사 11권이다.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을 비롯해 ‘선생님, 제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들죠?’(바이북스),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인플루엔셜),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갈래’(사계절), ‘급식체 사전’(학교도서관저널)처럼 청소년들의 생활과 직접 연관된 책들이 많았다. 가장 많은 추천책 목록이 있는 문학 분야에서는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창비)와 같은 성장 소설은 물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처럼 가볍고 읽기 편한 작품,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역사서에서는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우리학교), ‘만세열전’(생각정원),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피플파워)과 같은 책이 포진했다. 도서관 측은 “학교와 공공도서관은 물론 부모들이 청소년 독서지도 시 목록을 유용하게 활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추천 도서 목록은 도서관 홈페이지(nlcy.go.kr)의 ‘독서문화 활동지원’→‘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에서 받을 수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930년대 역사 속 전쟁·부패·정경 유착… 현재 진행형이다

    1930년대 역사 속 전쟁·부패·정경 유착… 현재 진행형이다

    그날의 비밀/에리크 뷔야르 지음/이재룡 옮김/열린책들/176쪽/1만 2800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상 수상작.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역사서에나 등장할 법한 권력자들의 짤막한 이야기 16편을 담았다.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보여주는 한편, 작가는 불쑥불쑥 난입해 그들의 작태를 논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 에리크 뷔야르의 ‘그날의 비밀’이다. 소설은 1933년 2월 20일, 독일 대기업의 총수 24명이 모인 비밀 회동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을 만나는 자리인 이곳에는 오펠, 지멘스, 바이엘, 알리안츠 등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이어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시종장으로 착각한 영국 추밀원 의장 로드 핼리팩스, 히틀러 앞에서 비굴하기 짝이 없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독재자 쿠르트 폰 슈슈니크 등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이어진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히틀러나 괴링 같은 정치인들의 뻔뻔스러움에 더해 구스타프 크루프 같은 기업가들의 무덤덤함이다. 정치인, 군인들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해도 기업가들은 놀라지 않는다. ‘그들은 뇌물과 뒷거래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며 ‘부패는 대기업의 회계 장부에서 긴축 불가 항목’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람과 달라 죽지도 않으며, 결코 늙지 않는 신비한 육체’(15쪽)이다.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가 죽고 다른 전범들이 처형당한 후에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나치당원의 금배지가 있던 자리에 독일 연방 공로 훈장을 달고서 말이다. 일상화된 부패, 정경 유착, 거대한 경제 권력의 위험성을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책의 마지막장은 크루프가 별장에서 자신의 아내, 아들과 식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2차 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노동력을 빌려썼던 독일 철강 군수업체 프리드리히 크루프사를 이끌었던 크루프는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않았다. 냉전 속에서 아들 알프레트는 경영을 재개했다. 뷔야르는 말했다. ‘한순간이라도 이 모든 것이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포인트는 달라도, 일본 기업 제품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현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몽골 항전지’ 인제 한계산성 사적 된다

    ‘몽골 항전지’ 인제 한계산성 사적 된다

    문화재청은 13세기 강원도 한계산에 고려가 축조한 인제 한계산성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3일 밝혔다. 한계산성은 둘레 약 7㎞로, 길이 1.7∼1.9㎞인 상성과 5∼6㎞인 하성으로 나뉜다. 상성은 몽골 침입에 대비해 쌓았고 하성은 반원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개축했다고 알려졌다. 조선시대 세종~문종 때 완성한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에는 1259년 몽골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골군을 이끌고 와서 한계산성을 공격했지만 성에 있던 방호별감 안홍민이 야별초군을 이끌고 나아가 이들을 섬멸했다는 기록이 있다. 2014년과 2015년에 이뤄진 발굴조사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의 흔적과 청자와 도기 조각 등 유물이 출토됐다. 연구자들은 험준한 지형에 상성과 하성을 건설한 한계산성이 고려시대 산성 축성 방식과 부속 시설물 변화 양상을 알려주는 대표적 중세 유적이어서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고구려의 국제정치 역사지리(이정훈 지음, 주류성 펴냄) 중국의 동북공정을 처음 고발했던 언론인인 저자가 고구려의 뿌리와 중국과의 투쟁에 대한 취재를 더해 쓴 고구려 대중(對中) 투쟁사. 수도 평양이 어디인지, 고구려가 대륙 세력과 혈투를 벌여 차지한 요동이 어디인지에 대한 추적과 증명도 시도했다. 504쪽. 2만 1000원.건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부키 펴냄) 현대 의학의 장밋빛 약속과 건강 열풍의 민낯을 신랄히 비판했다. 비대해진 헬스케어 산업은 우리에게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를 제안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근거는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약간의 불량 세포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마당에 정밀한 식단 관리와 러닝머신이 의미 있는가’라고 일갈한다. 292쪽. 1만 6000원.1918(다니엘 쇤플루크 지음, 유영미 옮김, 열린책들 펴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무대로 역사적 인물 25명의 삶을 좇는 역사서. 베를린 자유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시기 등장인물들이 쓴 회고록, 일기, 편지, 자서전 등을 토대로 100년 전 양차 세계 대전의 전간기, 그중에서도 종전 협정 전후 4~5년을 생생하게 펼쳤다. 344쪽. 1만 8000원.페이크(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박슬라 옮김, 민음인 펴냄) 전 세계적으로 4000만부 이상 판매된 재테크 서적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 최신작. 부채담보부채권(CDO), 주택저당증권(MBS) 등 현재 시장에 만연한 ‘가짜 돈’으로 말미암아 앞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1200조 달러 수준 대붕괴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584쪽. 1만 8000원.해러웨이 선언문(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책세상 펴냄)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생물학자인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1985)·‘반려종 선언’(2003)과 라이스 대학 영문과 교수 캐리 울프와의 대담을 한데 모은 저작선. ‘인간’이라는 신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개, 사이보그 등 다양한 친족들과 반려종으로서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372쪽. 1만 9000원.이 소년의 삶(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우리 시대의 헤밍웨이’라 불리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회고록. 의붓 아버지의 감정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토비는 성적증명서와 추천서를 위조해 멀리 떨어진 도시의 명문 기숙학교에 합격한다. 사춘기 시절의 혼란과 좌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된 소년의 내·외면 풍경을 섬세하게 그렸다. 464쪽. 1만 5800원.
  • 엘리트의 대물림… 제국대학은 韓 ‘금수저’ 산실

    엘리트의 대물림… 제국대학은 韓 ‘금수저’ 산실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 지음/휴머니스트/392쪽/2만원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한종건은 그해 11월 6일 징역 6월, 집행유예 3월을 선고받는다. 출소한 그는 현해탄을 건너 가나자와 제4고로 향한다.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행정과를 합격한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경찰부 보안과장이 된다. 3·1운동에서 만세를 외치던 소년의 변신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조선의 ‘금수저’ 등 1000여명 유학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엘리트들. 그들의 뿌리를 쫓아가면 ‘제국대학’ 학생들을 마주하게 된다. 식민지 조선에 있었던 경성제국대학생을 떠올릴 수 있지만, 진짜 엘리트는 따로 있었다. 일본 본토 9개 제국대학 유학생들이다. 신간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일본 제국대학을 졸업한 조선인 유학생의 행적을 추적한다. 저자 정종현 인하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10년 전 교토에서 조선인 유학생 명부를 본 뒤, 그들의 실체를 밝히려 졸업생 명단을 정리하고 동창회보와 각종 역사서를 뒤졌다. 지금까지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은 모두 784명이다. 중도 포기한 이들까지 합치면 1000여명이다. 대부분 ‘있는 집 자제’였다. 제국대학에 입학하려면 일반적으로 중학교 5년, 고교 3년의 최소 8년 동안 유학생활을 해야 했고, 대학 졸업까지는 적어도 11년이 걸렸다. 제국대학 평균 1년 학비와 수업료는 당시 가장 부유했던 평양시민 연평균 수입에 버금갈 정도였다. 소시민 출신, 또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사례가 종종 있지만,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이상 꿈도 못 꿀 일이었다.●네트워크 기반으로 부와 관직 차지 제국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부를 일구고 관직도 꿰찼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연수를 꼽을 수 있다. 고려대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의 동생이다. 전라도 대지주 집안 아들이었던 그는 열다섯에 유학 가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도쿄 유학생 모임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활동했던 그였지만, 졸업 이후 일본인 동창생과 긴밀히 지내며 한국 재벌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경성방직(경방)을 세우는 등 승승장구한다. ●이회창 前의원 등 제국대학 엘리트 집안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겨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가문은 제국대학 엘리트 집안의 대물림을 보여 주는 사례다. 본가, 외가, 처가가 모두 제국대학, 고등문관시험, 식민지 관료라는 사회자본의 종합적 구현체다. 독립운동가 문정손 재판에 참여했고, 후배들에게 출전을 권유한 총독부 판사 출신 이충영도 비슷한 경우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아들 이수성의 뒤에는 제국대학 출신의 판사 아버지가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침략정치 비판’ 박영출 등 다른 행보도 물론 제국대학 출신이 모두 비슷한 길을 걷지는 않았다.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윤동주와 함께 체포돼 옥사한 송몽규를 비롯해 교토제대에서 유학하며 일본 침략정치를 비판하고 한국에선 좌익운동을 하다 옥사한 박영출, 친일로 전향한 아버지 최남선을 거부하고 여운형을 따른 도쿄제대 졸업생 최한검 등의 행보는 분명 이들과 다르다. 세속적 성공과 시대적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다 학문으로 파고들거나, 더 나은 대우를 받으러 북으로 향한 사례도 있었다. 수재로 불리던 소년들이 식민지 조국을 떠나 제국대학으로 향하고, 정체성이 흔들린 채 귀향해 친일 또는 개인 영달에 급급했던 사례를 읽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난 행보에 관해 하나같이 “고통에 신음하는 식민지 동족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합리화한다. 그러나 이들과 반대의 삶을 살았던 이들도 분명 있었다. 제국대학 출신들이 근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기에,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 이들을 좀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기고문/ 4차 산업혁명시대의 역사학(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

    역사 관련 대중 강연을 하다 보니 적잖은 분들이 질문을 던진다. 노령 층에서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계층도 다양하다. 역사 고고학을 전공한 나로서도 모르는 것이 있지만, 생각지 않은 분야의 질문을 받아 당황스러운 때도 있다.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이는 현재 대세인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깊다고 본다. 고고학자인 필자는 2015년부터 4차 산업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4차 산업은 사실 고고학과 매우 유사하다. 고고학 자체가 시대마다 최첨단의 기술로 연구하는 것이고, 모든 자료를 최대한 모아 놓고 해석을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역사자료들이 한글로 빅데이터화되어 누구나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인터넷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과거 전문가들만이 볼 수 있었던 역사 관련 자료들이 이제는 일반인들도 관심만 가지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러 사연 때문에 역사공부를 단념했던 이들, 혹은 인생 2모작이나 3모작을 설계하는 이들이 빅데이터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역사학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반 시민들이 역사와 관련한 많은 연구 결과까지 쏟아내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재야 사학자’들로 불리며 근거가 모호한 한두 가지 자료들로 침소봉대하던 수준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자료들을 찾아서 제시하고, 심지어는 역사 현장을 다녀온 내용들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야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공동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시도하는 연구이론을 참고하여 새로운 이론적 기반까지 갖춘 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강호의 실력자들이 인터넷에서 나와 직접 연구 결과를 책으로 출판하는 현상을 보면서 이제 바야흐로 ‘시민사학’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판단된다. 필자는 과학이나 수학, 경제 관련 역사서가 눈에 띄면 한번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가끔은 무릎을 치면서 감탄할 때도 있다. 과학·수학·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역사의 기록과 해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특정한 소수의 생각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당대 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었던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역사이고 이런 당대의 경험을 6하원칙으로 정리,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단순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 정치, 행정, 경제, 종교 등 각 분야별로 나뉘어 발전하게 된다. 학문 또한 다양한 분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복잡한 사회조직을 갖춘 시대일수록 역사학 연구는 각 분야별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의 역사학은 대학의 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1학년 때는 역사 교양 및 개론서, 2학년 때는 고대사, 3학년은 중세사. 4학년은 근세사 등등이 가장 흔한 커리큘럼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졸업할 때 대부분 경제학, 기후학 등 다른 학문에 대해서는 잘 모른 채 대학원에 진학한다. 다른 분야의 학문을 응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학부과정의 심화, 반복교육이 이뤄진다. 이렇게 배운 역사학도들과 저마다의 분야에서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역사 연구에 매진하는 일반 시민들과 비교해 볼 때 누가 더 사실적일까. 인간은 경험을 누대에 걸쳐 활용한다. 이 경험은 계몽주의와 실증주의를 거치며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한국사회도 이러한 개연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전문영역을 투과시켜 확인해 보는 시민들의 인문학적 지식과 역사의식이 현대 한국이 처한 동북아시아 지역 내의 역사적인 갈등, 그리고 트라우마 같은 수동적 사고를 풀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과학 발달이 가져온 또 하나의 큰 성과인 것이다.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한글에 구역질” 발언 日작가, 자신의 책에 표절·오류 드러나자…

    “한글에 구역질” 발언 日작가, 자신의 책에 표절·오류 드러나자…

    극우 성향의 일본 작가 햐쿠타 나오키(63)가 쓴 일본사 책이 폭발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을 둘러싸고 그릇된 역사관, 무리한 역사서술, 무단표절 등 다양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햐쿠타는 “한국의 위안부는 날조된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일본내 혐한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극우인사다. 2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햐쿠타가 지난해 11월 출간한 ‘니혼코쿠키’(일본국기·겐토샤 간)는 지금까지 총 65만부가 팔렸다. 올 3월까지 월간 베스트셀러 ‘톱10’을 꾸준히 유지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역사를 극우파의 시각에서 정리한 것으로, ‘교과서에서 배울 수는 없는 일본통사’라는 광고카피를 내세워 높은 인기를 끌었다. “역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됐다” 등 서평이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전체 역사를 알기 쉬운 문장으로 읽고 싶다는 욕구가 퍼져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이 어느 정도 거기에 부응했기 때문이라고 인기의 배경을 설명했다.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1937년 중국 난징 대학살에 대해 ‘발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럽다’고 기술하는 등 우익의 입장에서 본 역사수정주의 서술에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이 일었다. 역사학자 고자 유이치는 아사히신문 칼럼에서 작가 본인의 생각을 역사학계의 통설인 것처럼 다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무단표절 의혹도 제기됐다. 다른 역사서적이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서술과 거의 같은 문장이 곳곳에 있는데도 인용 출처를 명기하지 않았다. 사실(史實)과 서술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정식 개정판을 내지 않고 증쇄(추가 인쇄)만을 하면서 도둑질 하듯 슬그머니 내용을 바꿔 끼운 사례도 발각됐다. 아사히신문은 “초판 1쇄와 6쇄를 비교하면 전체 509쪽 분량 중 최소 16곳에서 문장이 수정(단순 오탈자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역사서적을 많이 출간하는 유시샤의 나가타키 미노루 사장은 이와 관련해 “역사서적으로는 이례적인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그는 “오탈자를 고치는 정도는 증쇄를 하면서도 얼마든 가능하지만, 이렇게까지 내용과 인용 출처를 수정하는 경우라면 공식적으로 개정판을 내는 게 원칙”이라며 “심하게 말하면 인용상 실수는 날조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책의 절판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논란을 예상해서인지 겐토샤는 이 책의 도서코드를 ‘일본역사’가 아닌 ‘일본문학, 평론, 수필, 기타’로 분류하는 편법을 썼다. 역사를 다룬 책이라도 문학, 수필 등으로 분류되면 역사서적 수준의 엄밀함은 요구되지는 않는다는 게 출판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햐쿠타는 아사히신문의 취재에 “일본에 역사책이 산더미처럼 나와 있지만, 참고문헌 리스트를 싣고 있는 책은 별로 없는데 왜 나만 갖고 그렇게 집요하게 공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일본 NHK 경영위원이기도 한 햐쿠타는 그동안 “일본인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없다”, “한국의 위안부나 중국의 난징대학살은 두 나라가 날조한 것으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거친 표현을 동원한 망발을 자주 해왔다. 2017년 6월에 발간한 ‘이제 한국에 사과하자’라는 책에서는 과거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 ‘우리 마음대로 근대 의료기술을 조선에 전파해 평균 수명을 늘려줘 미안하다’, ‘우리 마음대로 여기저기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켜줘서 미안하다’와 같이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미화해 반발을 불렀다. 지난달에는 일본 전철 내 한글안내 표기와 관련해 “구역질이 난다”, “전차를 타고 있는 승객 중 한국인 여행객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내가 느끼기에는 1%도 안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역의 전광판 표시시간을 30%나 뺏기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등 혐한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역사서 분석해 태양흑점과 기후변화 관련성 새로 밝혀냈다

    [달콤한 사이언스]역사서 분석해 태양흑점과 기후변화 관련성 새로 밝혀냈다

    “해의 빛이 사라졌다가 사흘 후 다시 밝아졌다.”(고구려 영류왕 23년 9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中) “해에 흑점이 보였는데 크기는 계란만했다.”(고려 예종 10년 3월, 고려사 中) 국내 연구진이 이 같은 국내 역사기록들을 분석해 새로운 태양의 활동형태와 이로 인한 기후변화 영향을 찾아내 주목받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전북대, 충남대 기초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이 국내 역사서들에 기록된 태양 흑점과 서리 발생 정보를 분석한 결과 태양의 240년 활동주기를 새로 발견하고 이런 태양 활동주기가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천문학 분야 국제학술지 ‘기후 및 태양-지구 물리학’ 5월호에 실렸다.연구팀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 태양 흑점과 관련한 기록 55개를 바탕으로 태양의 활동주기를 분석했다. 분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측 역사서에 실린 흑점정보도 함께 연구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잘 알려진 태양활동의 11년 주기와 60년 주기 이외에 240년의 장(長)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태양 표면에서 주변보다 온도가 낮아 검게 보이는 현상인 흑점은 태양활동의 직접적 지표로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 첫 흑점 관측은 17세기인 1611년 이탈리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기원전 28년에 흑점 관측 기록이 처음 나타나있고 한국사에서도 서기 640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흑점을 표현한 최초의 기록이 나타난다. 실제로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은 흑점의 크기를 다섯 등급으로 나눠 검은 점, 자두, 계란, 복숭아, 배의 크기로 기록했다. 이런 기록의 차이 때문에 서양 천문학에서는 240년 태양활동 장주기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팀은 역사서에 기록된 기상현상 중 온도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인 서리 기록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 700군데를 찾아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인 ‘무상(無霜)기간’의 변화와 태양 활동주기를 비교했다. 무상기간은 1년 중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으로 늦은 봄 마지막 서리에서 초가을 첫 서리까지 기간을 말하는데 이 기간이 짧을수록 춥다는 의미이다.분석 결과 태양 흑점이 많아진 시기에 한반도 온도가 급격히 하락했음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가 태양활동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해냈다. 연구를 이끈 천문연구원 고(古)천문연구센터 양홍진 박사는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의 풍부한 역사기록들이 현대과학적 측면에서도 매우 신빙성이 높고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며 “아직 많이 분석되지 않은 고천문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천문현상을 계속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지역 원로 서예가, 가락국기 전문 담은 서예작품 김해시에 기증

    지역 원로 서예가, 가락국기 전문 담은 서예작품 김해시에 기증

    경남 김해시는 10일 지역 원로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벽암 허한주(88) 선생이 가락국기 전문을 담은 서예작품을 시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벽암이 기증한 서예작품은 가로 35㎝, 세로 135㎝ 크기 화선지 16장으로 총 글자수는 3961자다. 노령의 서예가가 한달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완성한 작품이다. 화선지 한장 마다 240~250 글자를 빼곡하게 한자한자 정성을 다해 썼다.시는 평소 구양순체를 골조로 한 역동적이고 선 굵은 필치가 특징인 벽암 특유의 서체가 오롯이 녹아 있어 서예의 맛을 느끼며 감상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로 완전한 내용은 전하지 않고, 삼국유사 제2권에 요약된 내용이 남아있어 가야사에 대한 문헌 사료로 널리 쓰인다. 김해 김씨 집안 역사서인 숭선전지(崇善殿誌) 첫머리에도 가락국기가 등장하는 등 오늘날 가락국 왕조사를 엿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시는 벽암 선생 작품은 삼국유사 요약본과 숭선전지본을 모두 참고한 것으로 가락국기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시는 벽암의 기증 작품 원본은 표구해 병풍으로 만들어 공개하고 사본을 도시디자인 조형물 등 도시 곳곳에 김해를 상징하는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벽암은 이날 김해시청에서 열린 시승격 38주년 김해시민의 날 행사에서 제23회 김해시 문화상을 수상한 뒤 허성곤 김해시장을 만나 해당 작품을 기증했다. 그는 “물실호기(勿失好機·결코 잃을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가야사 복원에 미약하나마 붓의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는 벽암 선생은 한국미협 김해지부 고문, 경남원로작가회 부회장, 김해원로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지역 대표 예술가로 서예와 한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허 시장은 “가락국기는 가야사의 정통성과 가야에 대한 김해의 종주권을 입증하는 귀한 문헌 사료여서 허한주 선생의 작품 기증은 매우 뜻깊다”며 “지역 대표 원로 예술가의 붓 끝에 밴 가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많은 시민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동화약품·활명수, 순화동 5번지의 서울미래유산

    [미래유산 톡톡] 동화약품·활명수, 순화동 5번지의 서울미래유산

    순화동은 조선 시대 ‘수렛골’이었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소문은 주막이 많아 수레꾼들과 수레들이 쉬어 가던 곳이라서 그렇게 불렸다. 수렛골은 또 추모동이라고도 했는데 조선 후기 서울의 인문지리역사서 ‘한경지략’에 따르면 추모동은 소의문 밖에 있었다. 즉 차동(車洞)인데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가 탄생한 집터가 있어서다. 영조 37년 ‘인현왕후 탄강구기’라는 여덟 자를 새겨서 비를 세웠다는 기록에 연유한다. 이 순화동 5번지에는 하나와 같은 서울미래유산 두 점이 있다. ㈜동화약품과 활명수다. 활명수는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하던 1897년에 민병호 선생이 궁중에서만 복용하던 생약의 비방을 서양의학에 접목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4세대에 걸쳐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소화제의 대명사다. 창업 117년의 동화약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 기업이며, 대한민국 최초로 신약을 개발한 곳이다. 1966년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을 준공했고 1987년에 증축했다. 순화 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본사는 2014년 남대문로로 이전했다. 동화약품 자리는 1919년 7월 10일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업무 연락과 정보 수집 활동을 펴며, 군자금 모집 등의 목적으로 나라 안에 은밀히 이루어진 지하 비밀조직인 ‘연통부’ 터이기도 하다. 초대 사장 민강 선생이 서울연통부의 책임자였다.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 일부를 독립자금으로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독립 운동가들은 중국으로 갈 때 활명수를 가지고 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항일 의거 유적지로 선정하고 ‘서울연통부 기념비’를 세웠다. 왕이 마시던 소화제, 활명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소화제이기도 하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사설] 레이와 시대 개막, 경색된 한일 관계부터 풀어야

    일본이 오늘 새 일왕 나루히토 즉위와 함께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았다. 어제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촉발한 전쟁을 반성하고 역사서를 토대로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해 왔다. 왕위를 이어받은 나루히토 왕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60년에 태어난 전후세대다. 과거사 관련 부채 의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만큼 한일의 문제를 직시해 더 융통성 있는 역사관을 지닐 것을 기대한다. 실제로 나루히토 일왕은 ‘올바른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평화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수시로 밝혀 왔다. ‘아름다운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는 ‘레이와’ 작명에서도 그 의도가 드러난다. 최근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화했다. 양국의 위안부 합의가 파기됐고,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정을 내려 첨예한 대립을 이어 가고 있다. 여기에 초계기 마찰도 안보 분야의 신경전이 최고조에 이르게 하고 있다. 양국 간 경제인 교류가 단절되고 한국 소비재 상품의 일본 내 판매가 직격탄을 맞는 등 경제 분야 피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만일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가 집행되고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발동하면 한일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새로운 일왕의 즉위를 계기로 한일 관계가 복원되기를 바란다. 때마침 ‘지일파’인 이낙연 국무총리도 어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하도록 지도자들이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밝혔다. 일본 정부가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 외교에 치중하며 한국을 외면하지만,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 관계를 방치할 수는 없다. 양국은 과거사 문제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외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숙명을 안고 있다. 북한 비핵화 문제와 동북아 안보, 경제 교류에서도 양국은 불가분의 관계다. 나루히토 일왕 즉위와 새 연호 사용, 다음달 말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정부도 일본과 미래 지향적 관계를 모색하길 바란다.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깊은 슬픔에 빠진 파리 위고를 읽으며 달래네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깊은 슬픔에 빠진 파리 위고를 읽으며 달래네

    지난 16일 안타깝게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였다. ‘노트르담은 프랑스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고, 전 세계도 실의에 빠졌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본 사람은 본 사람대로, 못 본 사람은 못 본 사람대로 슬픔이 크다. 깊은 정취를 남긴 그곳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과, 진짜를 볼 수 없다는 슬픔이 같을 수는 없지만 안타까워하는 마음만큼은 한마음으로 크다. 파리를 자주 오가는 지인은 이제 파리를 여행해야 할 중요한 이유 하나가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오늘의 명성을 갖기까지 적잖은 공헌을 한 작품이 있다. 대문호라는 식상한 칭호로는 그 가치를 다 알 수 없는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흔히 ‘노틀담의 꼽추’로 알려진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화·뮤지컬·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됐는데, 앤서니 퀸 주연으로 1956년 개봉된 영화가 유명했다. 몇몇 기록에 따르면 무려 70회 이상 영화로 제작됐다고 한다.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괴물’로 불릴 만큼 흉측한 외모의 꼽추 카지모도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는 방해하는 인물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헌병대장 페뷔스 드 샤토페르는 위선적인 바람둥이다.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는 종교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 소설의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인간적 욕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에스메랄다를 본 이후 깊이 감춰둔 욕망을 분출하며 생의 끝자락까지 내몰린다. 에스메랄다도 전형적인 인물이긴 마찬가지다. 프롤로의 사랑을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샤토페르에게 매달린다. 천대받는 집시였음에도 에스메랄다는 외모·춤·노래 다 되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과신한 것이다. 사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주목해 봐야 할 대목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15세기 파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럽의 생활사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15세기 파리 서민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사법제도며 대혁명의 기운까지, 유럽의 시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들이 선보인다. 웅장하면서 아름다운, 한편으로는 어둡고 음울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자체로 15세기의 유럽을 대변한다.한 발 더 나가 보자. 빅토르 위고의 소설들은 대개 사랑을 모티브로 시대상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레미제라블’보다 더 애착을 가졌다고 하는 ‘웃는 남자’는 17세기 영국 귀족 사회와 하층민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유럽의 역사 한 자락을 보여 준다. 특히 ‘콤프라치코스’라는 유아 납치단의 실체는 여느 역사서보다 적확하게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레미제라블’은 19세기 혁명의 기운을 장발장의 기구한 삶,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을 통해 풀어낸다. ‘파리의 노트르담’, ‘웃는 남자’, ‘레미제라블’ 순서로 읽으면 큰 틀에서의 유럽 역사를 훑는 셈이다. 급하게 결론으로 되돌아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을 5년에 이루겠다고 장담한 모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바라기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급하게 복원해서 더 엉망이 된 문화유산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3·1 운동, 임정 100주년 맞아 역사서 판매량 크게 늘어

    3·1 운동, 임정 100주년 맞아 역사서 판매량 크게 늘어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근대 이후를 다룬 역사서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서점인 예스24에 따르면, 청와대가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다음 날인 2월 21일부터 지난 10일까지 역사서 분야 도서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래 13.4% 증가했다. 지난해는 5만 4340부가 팔렸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6만 1600부가 팔렸다. 특히 역사서 가운데 ‘한국 근대사’, ‘해방전후사’, ‘정부수립이후’의 세부 카테고리 도서 판매량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8년 이 기간의 판매량은 6770부였지만, 올해는 1만 3580부였다. 출간한 도서의 종수도 35종에서 61종으로 74.3% 늘었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역사서는 도올 김용옥이 해방정국과 제주 4·3, 여순민중항쟁에 대해 다룬 ‘우린 너무 몰랐다’(사진, 통나무)였다. 그 뒤로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돌베개), 설민석 강사의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세계사)이었다. 예스24 측은 “역사에 관한 시민들의 관심이 특히 높은 해인 만큼, 역사서를 비롯해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조명한 분야의 도서가 꾸준히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400년 미국엔 ‘白·白 차별’ 있었다

    400년 미국엔 ‘白·白 차별’ 있었다

    1957년 9월 4일 미국 아칸소주의 리틀록 센트럴고등학교에 15세 흑인 소녀 에크포드가 등교한다. 1954년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인종차별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뒤 백인 공립학교에 첫 등교한 9명의 흑인 학생 가운데 한 명이다. 오벌 퍼버스 아칸소 주지사는 주방위군과 경찰을 동원해 이들의 등교를 막는다. 그러자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연방군을 동원해 흑인 학생들을 보호한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등교하는 에크포드를 찍은 사진 뒤편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욕설을 퍼붓는 백인 소녀가 보인다. 그의 이름은 헤이즐 브라이언으로, 이 사진 때문에 그는 이후 “가난하고 무식하고 수치심을 모르는 이른바 ‘백인 쓰레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불리게 된다. 1950년대 미국의 흑백 갈등만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긴 조금 부족하다. 미국 루이지애나대 석좌교수인 저자가 이 책에서 파헤친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자는 백인이지만 남부 혹은 미국 산간이나 오두막에 사는 헤이즐 브라이언과 같은 가난한 백인 하층민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정치에 활용됐는지 분석했다. 그동안 미국 역사 교과서는 미국 건국에 관해 올바른 신념을 지닌 영국 청교도가 사람들을 이끌고 왔으며, 귀족 사회인 영국과 달리 평등한 신분을 쟁취하고자 독립전쟁으로 맞섰고, 노예 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이 발발했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곳이란 식으로 가르쳤다. 저자는 그러나 미국이 시작부터 ‘착취’와 ‘배제’ 논리에 의해 기획됐고, 힘없고 가난한 백인 하층민이 400년 동안 끊임없이 조롱받고 소외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국이 초기 식민지 건설을 기획할 1500년대부터 이들을 좇는다. 400년 전 영국인들은 미국을 게으른 가난뱅이와 사회의 온갖 찌꺼기들을 흘려보낼 ‘하수구’로 여겼다. 신대륙에 온 뒤 그들의 삶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백인 상류층은 ‘하얀 금´이라 불린 면화 재배를 위해 대규모 농장을 지었다. 인디언 학살, 흑인 노예제도 정착 속에서 백인 하층민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주를 장려하고자 땅을 무료로 떼어 주는 정책도 있었지만, 이들은 곧 땅을 팔아먹고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우생학이 휩쓸면서 백인 하층민에 관한 사회의 핍박과 조롱은 거세졌다. 우생학 지지자들은 ‘유전적인 부적격자들을 강제 처형하자’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1931년까지 미국 27개 주에서 단종법이 제정되기도 했다.저자는 이들의 뒤편에 ‘사회 통합’을 주장하는 정치가, 이를 활용해 돈벌이에 나선 대중문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여러 정치가들이 이들을 적극 활용했다. 예컨대 ‘남부 촌뜨기’로 불린 빌 클린턴은 백인 하층민 가운데 가장 성공한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했다. 남부 노동자 계급에게 호응을 얻은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백인 하층민의 생활은 여전히 그대로다. 앞서 사례로 들었던 헤이즐 브라이언은 사진이 나간 다음날 기자들에게 “백인도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부모와 마찬가지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1년 뒤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해 가난한 트레일러 거주자로 전락한다. 저자가 이들을 가리켜 “1600년대 초기 식민지로 건너온 개척자 중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이주한 자들은 거의 없었고, 절대다수가 ‘잉여 인구’, ‘소모용 쓰레기’, ‘미개한 야만인’으로 분류된 자들이었다”고 말한 부분과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저자는 미국에서 금기시하는 계급 문제를 다루고자 경제, 정치, 문화, 과학 등 광범위한 자료를 동원한다. 미국사를 비틀어낸 역사서라서 미국사에 관한 배경지식 없이 책을 읽어 나가기가 버거울 정도다. 게다가 저자 특유의 비꼬는 문체 때문에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만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토지를 중심으로 형성한 자본이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한다는 사실은 귀 기울일 만하다. 뉴스에 연이어 나오는 재벌가의 빗나간 행태, 잘나가는 연예인들의 막나가는 행태를 보노라면 백인 하층민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는 않아 보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임종기 전남도의원, 인사행정 혁신 위한 정책대안 제시 ‘눈길’

    임종기 전남도의원, 인사행정 혁신 위한 정책대안 제시 ‘눈길’

    임종기 전남도의원(더불어민주당, 순천2)이 지난 3일 열린 제330회 임시회 본회의 도정질문을 통해 전남도의 인사행정과 주인의식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임 의원은 “선호부서와 기피부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전문직위제, 순환보직제, 희망보직제, 필수 보직기간 등 많은 방안들이 시행됐다”며 “기회와 결과의 공정을 담보한 인사행정 개선을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직위제와 관련해 “도 본청 48개부서 중 전문직위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17개 부서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전문성과 계속성이 필요한 재난, 투자유치, 일자리 창출업무 등에 전문직위제를 실시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재난과 일자리 창출은 빠져버렸고, 투자유치는 전문관이 지정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임 의원은 “직원들은 각자 맡은 일에 전문가가 돼 최소한 기피부서란 말은 전남도에서는 사라져야 한다”며 “앞으로 모든 공무원에게 직위를 만들어 보직을 부여하고,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방침이 조직문화의 기본이다”고 강조했다. 임 의원은 “이를 위해 인수인계서를 후임자들이 계속해서 추가로 편철해 그 자리의 역사서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인사행정의 혁신 환경을 마련하고 전남도지사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다”며 “도민들이 감동을 받았을 때 엔돌핀의 4000배 효과가 생성되는 다이돌핀이 나온 만큼 ‘도지사님의 다이돌핀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수로왕 건국신화’ 입증 치열한 논쟁 예고

    표면의 6개 그림, 가야 신화 투영 첫 유물 “거북 등껍데기 외엔 단서 부족” 시각도 대동문화재연구원이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소형 무덤에서 발견한 토제방울은 소형 토기, 쇠낫, 화살촉, 옥구슬, 어린 아이의 치아, 두개골 조각과 함께 출토됐다. 홍대우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과장은 아이의 무덤에서 건국신화가 새겨진 방울이 발견된 것에 대해 “방울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놀잇감일 수도 있지만 방울이 통상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그 관계성을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토제방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표면에 선으로 새긴 그림이다. 연구원은 현미경 조사를 통해 남성의 성기 혹은 산봉우리, 거북의 등껍데기, 관을 쓴 남자,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연구원 측이 가락국 건국신화와 연결짓게 된 건 거북의 등껍데기 때문이다.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 역사서인 가락국기에 따르면 어느 날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9명의 족장(구간·九干)이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줏빛 줄이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이 내려온 곳을 따라가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는 금빛 상자를 발견했는데, 알에서 제일 먼저 깨어난 동자가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다섯 동자 역시 각각 다섯 가야를 세워 임금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배성혁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남성의 성기 혹은 산봉우리로도 보이는 그림은 대가야 시조의 탄생지인 가야산(상아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토제방울이 당시 대가야인들의 건국신화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가치있는 유물”이라고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 “최근 열흘 정도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향후 학계의 충분한 논의와 연구를 거쳐야 한다”며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전문가들 역시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이희준 경북대 명예교수는 “거북의 등껍데기에서 가야 건국신화라는 점을 착안했지만 (6개 개별 그림 중) 춤을 추는 여인, 하늘을 우러러 보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일본서 요즘 정보 전산시스템 손질에 분주한 이유

    일본서 요즘 정보 전산시스템 손질에 분주한 이유

    일본 정부가 14일 정보 전산시스템 혁신을 위한 범정부 부처 회의를 갖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새로운 일왕의 즉위에 따라 5월1일 0시부터 나루히토(德仁·59) 일왕 체제의 새 연호(年號)를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연호는 일본 공문서와 일부 우익 매체 등에서는 많이 쓰인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 부처와 독립 행정법인의 시스템뿐만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금융 및 교통 등 민간기업의 인프라와도 원활하게 호환되는 지 등의 대응에 대해 확인했다. 또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10일간의 연휴기간, 국민 생활에 미칠지 모르는 영향을 재확인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매체들이 전했다. 5월 1일부터 적용될 새 연호는 한달 전인 4월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다. 새 연호 선정과 관련해 이번에는 중국 고전 의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호 선정을 관장하는 일본 정부(내각관방) 관계자는 13일 국회 답변에서 선정 절차에는 높은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며 국문학자와 일본사학자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문학자는 일본어 전문가이고, 일본사학자는 일본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정통한 학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전의 연호 선정 과정이 한문학자와 동양사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다. 일본은 서기 645년 제36대 고토쿠(孝德) 일왕(덴노)의 다이카 개신(改新) 때 연호를 들여왔다. 일본에는 연호와 관련한 간단한 ‘원호법(元?法)이 있다. 원호 즉 연호는 일본 정부가 정하고, 왕위 계승이 있을 때에만 생산한다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원칙을 두고 있다. 선정 조건으로 국민의 이상에 어울리는 좋은 의미, 읽고 쓰기 쉬운 것,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는 것, 일상에서 속되게 사용되지 않는 것 등이다. 영문 이니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부터는 영문자로 표기될 때의 머리글자가 어떻게 되는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전의 메이지(M), 다이세이(T), 쇼와(S)와 구분하기 위해 H가 영문 머리글자로 표기되는 헤이세이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루히토 새 일왕의 연호로는 M, T, S나 H가 머리글자로 표기될 수 없는 한자가 선정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 연호의 보도는 특종 보도가 오보가 판명되는 일이 있는 등 경쟁이 치열하고 민감한 분야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단독] 신채호 中망명 전 살았던 삼청동 집터 발견…표지석 설치한다

    [단독] 신채호 中망명 전 살았던 삼청동 집터 발견…표지석 설치한다

    사업회, 칠보사 앞 주차장 공터로 추정 새달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열어 검증 망명 전 대한매일신보에 이름·주소 적어 ‘집문서 분실…휴지로 처리’ 광고 내보내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집터로 추정되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표지석 설치가 추진된다. 이 집은 단재가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주필과 황성신문 기자로 민족 정기를 진작하고 항일 투쟁을 벌이고,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1905년부터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사단법인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건흥 공동대표는 19일 “단재 선생은 1910년 조선이 국권을 상실하는 국치를 예감하고 자신이 살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가옥을 떠나 중국 칭다오로 망명했다”며 “현재 삼청동 칠보사 앞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가 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 표지석을 설립하는 방안을 서울시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다음달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단재 선생이 실제로 살았던 곳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해 사실로 확인되면 표지석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신채호는 중국 망명 직전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의 1910년 4월 19일자 3면에 ‘본인 소유 초가 6칸의 문권(文券·집문서)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분실하였기에 이에 광고하오니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라는 광고를 실었다. 광고 문안 뒤에 ‘경 북서 삼청동 이통사호 신채호 백’(京 北暑 三淸洞 二統四戶, 申采浩 白)이라고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적었다. 단재가 적시한 이 주소지는 현재 종로구 삼청동 2-1로, 중국 망명 이후 1912년까지 국유지였으나 그 이후 여러 사람의 소유를 거쳐 현재 한 불교재단법인이 소유하고 있다.단재의 며느리 이덕남(76)씨는 이 광고와 관련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재산과 가족, 목숨까지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며 “시아버지 단재 선생도 본인 소유의 집을 휴지로 처리하라고 할 정도로 어떤 미련도 없이 중국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단재의 삼청동 가옥터가 발견됐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면서 “단재 선생은 역사서 ‘조선상고사’를 통해 민족주의 사관을 정립하고 언론인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중국 감옥에서 순국한 혁명적 독립운동가인데, 기념관은커녕 그를 기리는 표지석 하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임정 수립 100주년 역사서 옥석 가리기

    올해는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출판계도 최근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관련 서적이 간간이 보이더니, 최근에는 인문·사회 분야뿐 아니라 어린이 책과 소설 분야에서 활발히 책이 나옵니다. 관련 정보는 물론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직접 좇은 책,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한 소설 등이 눈에 띕니다. 책을 접하면 우선 반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솔직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들 별 관심 없었으니까요. 다양성 측면에서 이런 책은 많이 나와야 합니다. 다만, 최근 경향에 맞춰 이벤트성으로 낸 책들도 눈에 보입니다. 역사는 역사가만 다루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불분명한 사실을 마치 사실인 양 기술하거나 왜곡하는 일,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자료를 마구 짜깁기해 책으로 내놓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책일수록 재미가 없고 구성도 투박합니다. 이벤트에 맞춰 급하게 내놓으려면 자료 조사도 미흡했을 것이고, 당연히 재미가 떨어질 겁니다. 기본적인 사실이 어긋나고 주장을 내세우면서 결국 엄숙하고 비장하라고 강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독자들은 이런 분야 자체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주 읽었던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반비)은 역사를 어떻게 다루느냐를 보여 준 책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예술관이라 불리는 독일 베를린시의 역사 기억 방식을 보여 주는 조형물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조형물, 광고물 하나에도 오랜 기간을 들인 까닭에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버스 광고 형식으로 소개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정보라든가, 2700여개가 넘는 유대인 추모비 등은 직접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100주년이어서, 그저 광풍처럼 한 번 쓸고 가는 게 아니라 오래 노력하고 공들인 책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행히 출판사 몇 곳이 이런 책을 준비 중이라 하니, 책골남이 옥석을 골라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습니다.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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