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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 오디세이/강신익 등 지음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의학의 역사’다.1차세계대전의 피해자는 1000만명이 채 안 되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유행한 ‘에스파냐 독감’은 2000만∼50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중세 말 흑사병이나 16세기 유럽인들이 몰고온 병원균으로 인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몰살도 질병과 의학이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의학 오디세이’(강신익 등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는 인문의학과 보건의료사, 고대의학 등을 전공한 4명의 저자가 동서양 의학역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다룬 인문교양서다. 저자들은 의학이 지닌 인문학적 속성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17세기 의학자 하비가 발견한 혈액순환 원리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철학 발전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는 것. 합리적 의학의 시발점이 된 히포크라테스, 광물학과 연금술을 의학에 접목시킨 파라켈수스,‘노동의학의 시조’ 라마치니,‘사회의학의 원조’ 피르호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 [사설] 일본에 역사공부 충고한 슈미트 전 총리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역사를 모르고, 망각하고, 심지어는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따끔한 충고를 가했다. 지난 5일 일본 아사히 신문에 게재된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를 거명하며 “일본 국민에게 자국이나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자나 유교, 선종 같은 정신문화가 고대 중국에서 혹은 한반도를 통해서 일본에 전래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면서 “중국, 한국이 일본을 불신하는 뿌리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친 일본의 행동에 있다는 점을 배우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슈미트 전 총리는 일본을 수십차례 오간 독일 내 손꼽히는 지일파다. 여든일곱의 존경받는 노 정치가이자 역사비평가인 그는 일본의 오랜 친구이지만 일본에 반성을 충고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2001년 도쿄 강연 때는 더 신랄했다.“독일은 피로 얼룩진 침략을 했다. 일본도 같은 침략국이다. 일본에서는 그것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가 등장하는데 인간은 침략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공통의 책임을 진다.”고 비판했다.‘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의 왜곡 교과서를 용인한 일본 정부와 망언을 해대는 일부 정치가의 맹성을 촉구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역사에 대해 침묵하다시피 했다. 독일의 과거를 뼛속 깊이 뉘우치는 슈미트 전 총리의 진심 어린 충고를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인들이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한다.
  • 특수성·민족주의에 갇힌 한국사 재해석

    지난 2월 발간돼 화제를 모았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전면적으로 비판해 ‘해방전후사의 재재인식’이라 불릴 만한 책이 20일 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서울신문 15일자 1면 보도> 역사비평사가 내놓은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에서 ‘근대를 다시 읽는다’(이하 ‘다시 읽는다’)로 제목이 바뀌었다. 28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동시에 뛰어넘겠다는 기획 아래 1·2권 각각 3부씩 구성했다. 편집진은 근현대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윤해동(성균관대)·천정환(성균관대)·허수(동덕여대)·황병주(국사편찬위원회)·이용기(역사문제연구소)·윤대석(인하대)씨 등 6명으로 구성됐다. 왜 재재인식이 필요할까. 편집진이 밝힌 머리말 ‘한국 근대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의 주요부분을 요약해 재구성했다. ●‘재인식’은 시대착오적 좌우대립 ‘인식’의 마지막 6권이 출간된 이래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됐고 신자유주의가 들어섰다. 이런 변화는 ‘인식’류의 민족주의나 민중주의 관점을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재인식’이 나온다 했을 때 기대했지만, 막상 책을 보고는 크게 실망했다. 좋은 글도 있지만 ‘재인식’이 한국에 끼친 영향은 명백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다. 결과적으로 ‘재인식’은 한국 학계와 사회를 냉전적인 진영의 논리로 되돌렸다. 보수·기득권 세력이 오독해서가 아니라 ‘재인식’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좌우대립에 편승했다. ●‘재인식’ 문명론은 저열한 변종 두 책은 대립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립되지 않는다.‘인식’의 민족주의 대신 ‘재인식’은 애국주의를 내세우지만, 결국 새로운 우익적 대한민국 국가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인식’과 ‘재인식’은 민족과 국가를 공유한 채 근대를 특권화했다. 또 ‘재인식’은 논리적으로도 민족과 근대를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재인식’이 운운하는 ‘문명론’은 근대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한발도 더 못나간, 또는 그보다 훨씬 저열한 변종에 불과하다. 문명론은 서구중심주의와 국가주의를 벗어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렇다면 재재인식이란? 한국사는 그동안 ‘특수성’과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지정학적 위치,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 피해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는 ‘근대 미달’이거나 ‘왜곡된 근대’가 아니라 근대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는 특수한 민족사가 아니라 보편적인 근대안에서 해명될 수 있다. 서구의 보편-특수 구도에 휘말려도 안되겠지만, 한국의 특수주의에 매몰돼서도 안된다. 이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소장학자들이 전개한 근현대사의 논지가 과연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지 주목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방전후사 진보 보수 대립논리 극복 노력

    해방전후사 진보 보수 대립논리 극복 노력

    다음 주 출간되는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이하 새로운 흐름)은 기존의 연구성과에 도전해 보겠다는 신진연구자들의 야심과 조바심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함을 뜻한다. ●인식 VS 재인식 논란 ‘인식´에 대한 비판은 간간이 있어왔다. 당시엔 최신 연구성과였지만,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이다보니 학술보다 운동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식´은 20∼30년 전의 책인데다, 그 사이에 사회주의권 붕괴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도 있었다. 변화의 필요성은 있었다. 그러나 재인식이 성공적이었느냐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뉴라이트에 기울었다는 의미에서 ‘재인식´도 학술보다 운동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재인식´ 편집진은 ‘재인식=뉴라이트´라는 평가를 오해라 했지만,‘재인식´ 자체가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다.‘개별 논문은 훌륭한데, 편집자들의 시각이 매우 단선적´(최원식 인하대 교수)이라는 비판이 한 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진 구성이었다. 탈근대론자 박지향(서울대)·김철(연세대)이 뉴라이트인 이영훈(서울대)·김일영(성균관대)과 결합할 수 있느냐다. 뉴라이트는 박정희를 오늘날 대한민국을 반석에 올려둔 지도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탈근대론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가동원체계에 가장 비판적이다. 탈근대론의 입장에서 박정희 시기 경제개발을 분석한 김보현(성공회대)이 ‘박정희는 반민족주의자´라는 좌파의 통념을 깨되 ‘박정희는 민족주의자였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한 예다. 임대식 역사비평 주간의 표현대로 탈근대론과 뉴라이트의 ‘기묘한 연대´가 아닐 수 없다. ●인식, 재인식 모두 뛰어넘자 ‘새로운 흐름´의 야심과 조바심은 여기에 있다. 탈근대론으로 상징되는 다양하고도 새로운 역사접근법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갈 길이 다른 뉴라이트 같은 정치운동에 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90년대 이래 쏟아져 나온 다양한 역사접근법을 차분하게 감상하기도 전에 출발선상에서부터 ‘진보냐 보수냐.´는 틀에 갇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흐름´은 ‘재인식´에 투영된 ‘진영논리´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진보진영이 ‘인식´ 이후 지적으로 태만했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재인식´ 역시 ‘인식´의 시대착오적인 진영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긴 마찬가지라는 것. 좌파를 ‘이분법적인 철부지 극렬 민족주의자´라 비판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국가=문명, 민족=야만´이라는 식의 이분법에 매여 있는 게 ‘재인식´의 분석틀이다. 또 탈근대론을 내세우면서도 역사적 사실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인식이냐 재인식이냐가 아니라 둘의 대결 구도 자체를 깨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재인식, 누가 만들었나 ‘재인식´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편집자 가운데 해방전후시기 전공자가 김일영뿐이고 그나마도 국사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라는 것이다. 비전공자들이 개략적인 머릿속 그림만 가지고 시대를 논했다는 것인데, 많은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장상환(경상대) 같은 학자는 “이들이 모여 편집한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에 반해 ‘새로운 흐름´은 편집위원 6명 가운데 4명이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정통 국사학자다. 이들은 2000년 전후로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후반의 젊은 연구자들로 90년대 새로운 역사연구방법론을 듬뿍 받아들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책임편집자 윤해동(성균관대)은 근대민족주의 비판으로 유명한 국사전공자이고, 황병주(국사편찬위원회)는 탈민족주의를 제기했던 임지현 한양대 교수와 함께 작업했던 국사학자다. 허수(역사문제연구소)도 근대사상사를 연구한 국사 전공자이고, 이용기(서울대)는 국사학자로는 아직까지 낯선 사회사(구술사) 연구자다. 이외에도 국문학자인 윤대석(성균관대)·천정환(성균관대)은 한국 근현대 문학 연구에 진력해온 소장 연구자들인 점이 ‘재인식´팀과 분명히 구분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방전후사 再재인식’ 나온다

    “‘인식’,‘재인식’을 넘어 이제는 ‘재재인식’이다.” 역사비평사가 다음 주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이하 ‘새로운 흐름’)을 시중에 선보인다. 이 책이 이목을 끄는 것은 지난 2월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뛰어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재인식’을 넘어선 ‘재재인식’인 셈이다. 특히 ‘새로운 흐름’은 ‘재인식’이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다루는 듯했지만, 결국 뉴라이트의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비판의식 위에 서 있다. “‘재인식’은 ‘인식’ 위에 최근 연구성과를 소화해 냈다기보다, 신자유주의적이고 친자본·친국가적인 성향으로 기울었다.”는 한 편집위원의 언급은 이를 뜻한다.‘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에 대한 비판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재인식’의 비판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권 분량으로 모두 6부로 구성된 ‘새로운 흐름’은 여기에 공감한 신진연구자들이 쓴 28편의 논문을 모았다.‘식민경험과 국민형성’이라는 주제 아래 1권은 ▲식민지와 근대성 ▲친일문제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기 국민국가 형성 문제 등을 다뤘다.‘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다룬 2권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여성성·남성성과 미디어의 관점, 문화·담론연구나 사회적 소수자의 시선에서 현대사를 바라본 권보드래(이대)·이임하(덕성여대)·유선영(한국언론재단)·김준(성공회대)·김원(서강대)씨 등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총론 외에도 각 부마다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하는 보론도 덧붙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야만시대의 기록/박원순 지음

    시인 고은은 “고문을 당해보면 인간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고문이 일상화된 시대를 경험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쓴 ‘야만시대의 기록’(역사비평사 펴냄)은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고문을 통사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고문에 대한 사회학적 의미 등을 설명한 1권, 일제강점기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고문의 사례를 다룬 2권, 전두환 정권에서 현재까지의 고문을 다룬 3권으로 이뤄졌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의 고문의 형태와 양상은 전적으로 일제에 의해 개발되고 전승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일제 고등계 출신 형사와 헌병들이 그대로 새 정부의 경찰과 군이 돼 사찰기관을 장악했다는 관점이다.1948년 일제의 고문형사로 악명을 날린 노덕술과 관련된 ‘수도청 고문치사사건’,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등의 사례를 소개한다. 각권 2만 5000∼3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육당 ‘만몽론’은 대륙지향 의식”

    요즘 유행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만주와 몽고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한반도’에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게 아니라 한때는 저 드넓었던 땅을 앞마당처럼 헤집고 다녔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선구자´가 있었다. 바로 변절한 친일 지식인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육당 최남선의 ‘만몽(滿蒙·만주와 몽고)문화론’이다. 강해수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은 계간지 ‘역사비평’ 가을호에 실은 ‘최남선의 만몽인식과 제국의 욕망’에서 육당을 ‘친일-반일’ 구도로 보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제국의 욕망’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은 없었는지 봐야 한다는 것. 강 연구원은 그동안 육당에 대한 연구가 3·1운동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뛰어난 지식인에서 1920년대에 변절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다 보니 1930∼40년대 육당의 언행은 ‘변절한 친일 지식인의 남루한 행적’으로만 다뤄질 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강 연구원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0년대 중반 이후 일제가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으로 건너가 육당이 발표한 글들에 주목한다. 지금 일본 우익이 흔히 ‘불행했던 과거사’라고 불리는 20세기 초반 동북아 침략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후소샤 교과서에도 실렸던 ‘조선 팔뚝론’이다. 조선반도는 대륙에서 섬나라 일본을 향해 불쑥 솟아있는, 위협적인 팔뚝이라는 것. 그래서 일본의 조선병합은 이 위협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얘기다. 육당은 이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 ‘평화의 도끼론’을 만들어낸다. 손잡이는 조선반도, 도끼날은 만주 몽고 지역이다. 일본은 도끼 손잡이(조선 병합)를 잡은 뒤 도끼날(만주국 성립)까지 확보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중원을 내려 찍는 일, 바로 중일전쟁만 남았다는 얘기다. 이건 그냥 침략이 아니다. 오래전 고대사부터 반복되어 왔던, 중원을 향한 모든 민족들의 자연스러운 투쟁 과정 가운데 일부다. 거기다 이번에는 이미 낡아버린 제국, 중국을 제압하고 서양에 맞서는 것이니 또 다른 평화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가능한 것은 육당이 ‘만몽지역-한반도-일본열도’를 잇는 공통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도(神道)’다. 지금이야 일본의 대중적인 종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육당은 다르게 본다. 만몽지역의 샤머니즘, 한반도의 무당이 바로 신도다. 육당은 이를 ‘대륙신도-조선신도-일본신도’라 이름 붙인다. 이런 논리 전개는 비교언어학과 비교문화론 등을 통해 널리 퍼지고 있는 오늘날의 재야사학, 민족사학을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 이들은 육당의 논리를 따오기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육당은 20세기 초반 가장 근대적이었던 일본을 주체로 상정했고 백인종 대 유색인종간의 대결이라는 인종주의적 관점과 발전하지 못한 민족은 절멸될 수밖에 없다는 사회진화론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 정도다. 그래서 강 연구원은 되묻는다. 육당의 배경에는 “민족의 원향(原鄕)으로서의 만주를 향한 우리들의 제국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고.“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냐고. 그래서 육당은 과연 그냥 친일파이기만 했던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들리지 않던 총성 종이폭탄!(이윤규 지음, 지식더미 펴냄) 히틀러는 1939년 9월1일 새벽 폴란드를 기습공격하기 전 수년 동안 유럽정복계획을 위장하기 위해 각종 평화공세를 폈다. 북한도 1950년 6월25일 기습공격을 감행하기에 앞서 평화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조만식 선생과 간첩 김삼룡·이주하의 교환을 제의하는 등 심리전을 구사했다. 현역 육군 대령인 저자는 6·25전쟁과 관련된 심리전의 유형을 사례 중심으로 살핀다.‘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듯, 평화의 시기에도 들리지 않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2만 5000원.●한국인의 정치사상(김한식 지음, 백산서당 펴냄) 상고시대 홍익인간 이념부터 현대 민주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조명. 저자(국방대 교수)는 한국정치사상 연구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상고사에 있다고 주장한다.‘규원사화’‘한단고기’ 등 상고사 문헌에 따르면 상고시대 선인들의 활동무대는 한반도와 만주 남부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대륙 하북성까지 포함된다. 회대지방과 요동, 산동지역 전부를 망라하는 것이다. 저자는 ‘한단고기’에 문제점이 많다면 적어도 ‘규원사화’ 같은 상고사 문헌은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한국정치사상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3만원.●아리랑 시원설 연구(김연갑 지음, 명상 펴냄) 낙랑 남쪽 자비령의 이름인 ‘아리’에서 비롯됐다(이병도),‘아리’는 ‘밝(光)’의 고어로 ‘아리랑 고개’는 ‘광명의 고개’다(양주동), 고향을 뜻하는 여진어 ‘아린’에서 유래했다(이규태)…. 아리랑의 시원에 관해서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저자(아리랑세계화위원회 사무총장)는 아리랑은 목은 이색의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정선 7현과 인연이 깊은 이색의 시에는 ‘(정선)아라리’의 뿌리라 할 만한 수지(誰知) 즉,(이 마음을) 누가 알리오라는 글귀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2만 5000원.●귀신론(고야스 노부쿠니 지음, 이승연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계로(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법을 묻자 공자가 답했다.“아직 사람을 섬기는 일도 잘하지 못하거늘,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일본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인 저자는 논어 ‘선진’편에서 공자가 제자인 자로(계로)와 나눈 문답을 귀신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책은 고문사학파를 이끈 오규 소라이의 귀신론을 시작으로 귀신과 제사의 의미를 둘러싼 일본 유학자들의 담론투쟁을 생생히 보여준다.1만 2000원.●다 빈치의 두뇌 사용법(우젠광 지음, 류방승 옮김, 아라크네 펴냄) 1452년 피렌체공화국 빈치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뛰어나고 두뇌를 잘 사용한 인물로 꼽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뇌와 우뇌 중 한쪽만 치우쳐 사용하는 데 반해 다 빈치는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사용할 줄 알았다.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의 업적을 정리한 바사리는 다 빈치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때때로 하늘은 인간이 아닌 신을 우리에게 내려 보낸다. 우리 모두는 그의 생각과 뛰어난 지식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뇌력(腦力)의 비밀이 담겼다.1만 5000원.●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김규원 지음, 시공아트 펴냄)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황금색. 그것은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한 색이다. 이 축제는 한 해의 말미를 장식하는 중유럽의 중요한 행사다. 크리스마스 정령 같은 황금빛 소품들이 진열된 장터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며 독일의 음울한 겨울 날씨를 음미해보자. 원초적 본능이 꿈틀대는 바르셀로나 메르세 축제의 빨간색은 희망의 상징. 이탈리아의 전통 경마대회인 팔리오 축제에는 17가지 색 무지개가 수를 놓는다. 색으로 보는 유럽축제 이야기.1만 5000원.
  • [책꽂이]

    ●오만과 편견 19세기 전후 신분 사회와 결혼 문화, 연애관을 다룬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작이다. 이번에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했다.‘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 두 번째 편이다. 시리즈 첫 편 ‘오페라의 유령’이 동시 출간됐다. 푸른숲. 각권 9500∼9800원. ●쑤우프, 엄마의 이름 정신 지체장애인 엄마를 둔 열세 살 소녀 하이디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과거와의 대면을 통해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담았다.23개의 단어밖에 말할 줄 모르는 엄마와 광장 공포증이 있는 버니 아줌마와 함께 살아가는 하이디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어디였는지, 왜 다른 가족은 없는지가 알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내뱉는 ‘쑤우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엄마, 외할머니처럼 보이는 사람 등이 뉴욕주 힐탑 요양원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낮은산.232쪽.9000원. ●고구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역사비평’ 편집인 등을 역임하고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발간한 역사학자 이이화 서원대학교 석좌교수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새롭게 쓴 고구려사. 고구려 태동기의 주변 상황부터 주몽 설화가 갖는 역사적 의미, 광개토대왕비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배경, 영토확장 과정, 고구려 문화유산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언어세상.248쪽.1만 2000원. ●꼴찌 축구단, 축구왕 되다 그야말로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여 만든 축구팀 ‘슈퍼 키커스’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 국민서관.192쪽.8000원.
  •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일본의 조선지배는 군인과 경찰, 관료들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지배구조는 오히려 지배계층의 비호 아래 조선에 이식된 수많은 ‘풀뿌리 식민자’들을 통해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개항 당시 54명에 불과했던 조선 내 일본인은 식민 지배 말기인 1942년에는 75만명을 넘어섰다. 이 숫자는 일본의 작은 부현(府縣)의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요컨대 식민지는 일본 자본주의 모순의 분출구이자 생명선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이규수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은 군인에서 상인, 게이샤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일제 ‘풀뿌리 식민지배’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 교수.1876년 조선 개항부터 1945년 일본 패전까지 일본 식민지배의 양상을 실증적으로 밝힌다. 개항 직후 조선으로 거류민을 가장 많이 보낸 지역은 전통적으로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나가사키였다. 강점 이후에는 지역적으로 조선과 가까운 야마구치나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와 주고쿠 지방이 주를 이뤘다. 식민 후기로 갈수록 관리와 경찰이 늘어나면서 도쿄 등 대도시 출신자들과 홋카이도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지방의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주 초기에 건너온 일본인 중에는 조선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대륙낭인들이 많았다.1894년 7월 대원군 추대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도 오카모토 류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대륙낭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들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면화 재배나 철도 건설, 식림사업 같은 일들은 자신들이 베푼 시혜로 여겼다. 그런 만큼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은 극심했다. 한 예로 한국의 온돌에 대한 편견은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 널리 유포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18년 조선 주둔 일본군으로 복무한 나가이 요시는 “온돌제 군인들 머리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온돌방에서 잠을 자면 모두 바보가 된다고들 했다.”고 증언했다. 물론 조선의 민예를 연구한 야나기 무네요시나 아사카와 다쿠미처럼 조선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사랑한 일본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책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눈길을 끈다. 첫째는 자신들의 행동이 훌륭했다고 강변하는 부류다. 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 사장으로 수풍댐을 건설한 구보타 유타카, 경성제국대 교수로 대륙병참기지론을 편 스즈키 다케오, 전남 지사를 지낸 경찰 출신의 야기 노부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 전후 대장성 재외재산조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스즈키 다케오는 “…비참한 상태에 있던 조선경제가 병합 이후 불과 30여년 사이 오늘과 같은 일대 발전을 이룩한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라고 단언, 일본 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에 대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두번째 유형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경성회·인천회·벌교회 같은 동향회를 만들만큼 식민지 조선을 그리워하던 부류. 그리고 세번째 유형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비판을 가하는 부류다.‘조선식민자’의 저자 무라마쓰 다케시, 소설가 고바야시 마사루, 조선사연구회 회장을 지낸 하타다 다카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아비판파’다. 저자는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는 말로 책의 집필의도를 밝힌다. 그동안 식민정책사는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해 중요하게 다뤄왔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삶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마치 일본사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 내 일본인에 관한 국내 학계의 연구를 자극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조선시대 삶의 파노라마

    18세기 조선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자기 앞에 넓은 소매의 도포에 술띠를 두루고 갓을 쓴 사람이 나타나면 대번 양반인 줄 알았다. 연암 박지원이 ‘양반전’에서 상민 신분의 비애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듯, 그들은 양반에게 “몸을 꾸부려 어찌할 줄 모르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조선사회는 한마디로 신분사회였다.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의식주에 따라 신분이 드러났고 국가의 정체성과 개인의 삶이 유지됐다.‘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은 의식주를 통해 조선시대 생활사 전반을 살핀 흥미로운 책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와 고문서를 매개로 당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한다. 풍속화는 신분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평양감사향연도’ 가운데 한폭인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를 보면 당시의 복식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책은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 일련번호를 매겨 양반·중인·상민·천민의 남성의복 등을 분석하며 18세기 신분제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양상들을 짚어나간다. 도포는 양반 신분의 상징이다. 고려시대의 깃이 곧은 직령(直領)에서 유래한 도포는 사대부가 예를 차리기 위해 입는 것으로, 그들의 평상복이자 출입복이었다. 도포의 색깔은 여러 가지였다. 평상시에는 백색 도포를 입었고, 길복(吉服)으로는 옥색이나 연갈색을 입었다. 청색의 청포도 있었다. 도포 외에 반(班)과 상(常)을 가르는 신분의 상징을 하나 더 든다면 술띠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면 양반의 가슴에는 반드시 술띠가 둘러져 있다. 하지만 상민은 조선시대 금제(禁制)에 따라 술띠를 착용할 수 없었다. 술띠야말로 양반의 도포를 진정 도포답게 만드는 중요한 장식이었다. 우리 민족의 식문화의 중심은 단연 밥이다. 삼국시대까지 밥은 곡물을 시루에 넣고 찌는 증숙반(蒸熟飯)이었다. 시루에 찐 밥은 술밥같이 꼬들꼬들해 가마솥에서 지은 찰기 흐르는 밥과는 큰 차이가 있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솥을 이용해 밥을 짓는 자숙반(煮熟飯)이나 취반(炊飯)이 일반화됐다. 이 책에서는 ‘미암일기’‘묵재일기’등 조선시대 양반들이 남긴 다양한 일기 자료를 활용해 당시 식생활 문화의 실상에 다가간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최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환곡을 받아 생활하던 하층민에게는 그림의 떡. 상당수의 하층민들은 보리를 수확하는 5월부터 가을걷이를 하는 9월까지 쌀이나 조 대신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다. 보리가 생산되는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의 ‘맥절(麥節)’에는 보리를 더 싸게 사들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의 대식(大食)습관을 다룬 대목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조선 전기 훈구파의 거목 이극돈은 상소를 올려 풍년이면 먹을 것을 아끼지 않아 중국 사람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번에 먹어 치운다고 개탄했다. 조포석기(朝飽夕飢)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아침에 양식을 다 먹어치워 저녁에는 굶는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주거생활은 어땠을까. 책은 호구단자와 준호구, 가옥문기, 가좌책 등을 면밀히 분석해 그들의 주거 양태를 밝힌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셋집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주거생활에서 온돌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온돌방은 고려 말에 등장한 새로운 공법으로, 지배층을 중심으로 점차 보급됐다. 그러나 조선 초까지도 관청이나 부잣집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이었으며, 그것도 주로 병자나 노인의 방에만 설치됐다. 온돌이 민간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대략 16세기경으로, 그전까지는 입식생활이 주를 이뤘다. 의식주의 역사는 그동안 복식사나 음식사, 건축사 등 각각의 영역에서 통사적으로 혹은 양식적으로 다뤄져 왔다. 이 책은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보다 대중적인 시각에서 의식주의 생활사를 한데 아우른다. 조선 풍속화와 고문서를 고리로 학제간 연구의 폭을 한층 넓혔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1만 7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김기봉 지음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김기봉 지음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이 눈에 선하다. 신분을 넘은 로맨스를 뒤로하고 공주로 돌아와 기자회견장에 선 오드리 헵번.“연방제로 유럽경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물으니,“유럽의 긴밀한 유대를 이끄는 것이면 찬성합니다.”라고 답한다. 한반도에 포연이 자욱 하고 포성이 귀를 때리던 1953년에 만들어진 영화 속 대사는 1957년 로마에서 결성된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바치는 예언적 헌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용감하다. 일제에 대한 저항과 협력을 기준으로 식민지시대를 산 이들을 애국자와 매국노 둘로 나누는 이분법의 주술에서 놓여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만 이 땅의 사람들도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동아시아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용감하다. 일제에 대한 저항과 협력을 기준으로 식민지시대를 산 이들을 애국자와 매국노 둘로 나누는 이분법의 주술에서 놓여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만 동아시아는 과거의 갈등을 재생산하는 ‘기억의 터’가 아닌 미래의 희망을 위한 “기억의 장”이 될 수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도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동아시아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이다. 아직도 제2차세계대전이 남긴 앙금이 채 가라앉지 않고, 냉전이 남긴 상처도 아물지 않은 동아시아를 사는 이들은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1967)를 거쳐 유럽연합(European Union·1993)을 이룬 그들이 너무 부럽다. 하여 탈냉전과 탈근대의 시대를 맞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앞 다투어 백가쟁명의 동아시아 담론을 토해 놓았다. 특히 미국 주도하의 세계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지식인들의 뇌리에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는 매혹적인 탈출구로 아로새겨졌다. 문학비평가가 문인들의 작품을 곱씹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 이라면, 역사비평가는 역사가의 역사서술을 되새김질하여 독자의 현명한 역사소비를 중개하는 이다. 이를 자임한 김기봉(경기대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이 처든 붓끝은 동아시아 담론의 허점을 휘젓는다. 동아시아를 사는 이들에게 동아시아란 실재하는 역사 공간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미래 역사의 기획이므로 역사적 성찰을 뒤로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이다.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은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목표로 해서 동아시아를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 역사를 성찰하지 않으면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공동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자국 중심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는 민족주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동아시아라는 시공간을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길 바란다. 그는 민족이라는 우물에 갇혀 구시대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국사학자들에게 장기지속(la longue duree)의 구조를 중시하는 아날학파의 방법론과 유럽 통합의 역사 경험을 빌려 공동체가 왜 만들어져야 할 역사의 당위인지를 설득한다. 민족이라는 초역사적 거대담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동아시아라는 대안적 역사세계에 눈을 뜰 수 없으니 민족이라는 색안경을 어서 벗어던지고 공동체 만들기에 동참하라고 손을 잡아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탓하기 전에 국사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우리 눈 안의 들보를 먼저 없애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게 순리가 아니냐고 묻는다.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의 거울’처럼 민족의 영광만을 노래하는 국사를 버리고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동아시아사라는 ‘공동의 거울’을 새로 들여놓으라고 말이다. 역사비평가 김기봉이 꼭꼭 씹어 놓은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위한 역사적 성찰의 성과가 담긴 이 책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한국사>
  • 野, 이종석·유시민 ‘아킬레스건’ 정조준

    野, 이종석·유시민 ‘아킬레스건’ 정조준

    6일부터 3일간 국무위원 5명과 경찰청장 내정자 등 6명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내정자들의 아킬레스건이 집중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야당에선 이종석(6∼7일) 통일부장관, 유시민(7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에 대해 화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통일외교통상위에선 이 내정자의 학자시절 각종 논문과 서적을 통해 발표한 ‘친북 혐의가 있는 발언’,NSC 사무차장 재임중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각서 파문의 진위 등을 중점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5일 기자회견에서 “이 내정자가 1995년 역사비평서 ‘현대북한의 이해’에서는 김일성을 ‘우리 현대사에서 최초로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선언하고 주체확립을 기치를 내건 지도자’로 평가했다.”면서 “이 내정자의 부인 유모씨도 지난 2004년 6월 출범한 대안교육단체 ‘나다’의 후원회원으로 활동중”이라고 말해 청문회의 분위기를 예상케 했다. 그는 이 내정자가 “서울올림픽을 분단올림픽으로 규정하면서 개최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폭로했다. 이 내정자 측은 이에 대해 서면답변을 통해 “민족민주운동 진영에서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기술을 내정자 자신의 관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복지위에선 유시민 내정자의 국민연금 미납에 따른 논란과 ‘서울대 프락치사건’을 둘러싼 야당측의 집중 공세와 여당 의원들의 반박이 예상된다. 특히 한나라당은 유 내정자가 1999년 성공회대 겸임교수 때 최종학력을 ‘박사’로 허위기재했다는 의혹과 유 내정자 부친의 친일경력 의혹 등에 대한 사실 확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유 내정자는 이와 관련,“일본국 동경도 준대상업학교를 나와 1943년 2월부터 45년 7월까지 만주국 통화성 쾌대무자촌 국민우급학교에 재직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우식 과기부총리 내정자는 경기도 일대 토지 투기 의혹, 이상수 노동장관 내정자는 ‘코드·보은인사’ 등으로 각각 공격을 받을 전망이다. 또 이택순 경찰청장 내정자의 경우는 노무현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논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 이처럼 국무위원 내정자들에 대한 한나라당의 맹폭이 예고되자 열린우리당 노웅래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여당이라고 해서 후보자를 봐주는 일은 분명히 없을 것”이라면서도 “후보자를 욕보이기 위한 인사청문회가 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문회를 앞두고 이종석·유시민 등 대부분의 내정자가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접촉한 것과 관련,‘사전접촉’ 논란도 일고 있다. 한나라당측은 “야당의 날선 공세를 진화하기 위한 무마용으로, 있을 수 없는 처사”라며 비판한 반면 열린우리당측은 “관례적인 부탁일 뿐 회유나 협박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전광삼 구혜영기자 hisam@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개인 자격’으로 단행한 신사참배와, 지난 100년간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가 최근 고국의 품에 안긴 임진왜란 승전기록비인 북관대첩비를 보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와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 특히 지식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가 쓴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현대송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는 야스쿠니 신사를 여러가지 각도로 접근, 비판적인 시각으로 풀어냈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최근 발언뿐 아니라, 관련 재판진술서, 언론기고 등 생생한 기록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기 주장을 자제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야스쿠니 문제의 핵심에 대해 스스로의 입장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파헤친다. 신사에는 조선인이 무려 2만 1000여명이나 합사돼 있으며, 타이완인도 2만 8000여명이나 있다. 한국이나 대만 유족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야스쿠니가 일방적으로 계속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문제가 되는지, 야스쿠니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첫번째 접근은 ‘감정의 문제’.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가 ‘감정의 연금술’에 의해 전사의 비애를 행복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치에 불과하며, 전사자를 단순히 추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창(顯彰)하는, 즉 드높여 받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야만 ‘기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질’ 병사들을 다시 천왕의 명예를 대가로 전장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역사인식의 문제’로서의 접근에서는 ‘A급 전범’을 분리시키는 것에 대한 정치적 타협성을 비판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전쟁책임 문제를 넘어 식민주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문제’에서는 헌법상 정교분리 문제를 논의하면서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술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검증한다. 오히려 국가신도(國家神道)라는 초종교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국민의 의무로 설정한, 종교의 윤리적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문화적 문제’는 야스쿠니에 대한 일본과 중국, 한국문화를 비교하면서 일본이 문화적 차이에 따른 야스쿠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마지막의 ‘국립추도시설의 문제’는 ‘제2의 야스쿠니’가 될 수밖에 없는 추도시설의 문제점을 점검한다. 이미 지난 4월 일본에서 출간돼 6개월 만에 3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야스쿠니 문제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한 셈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생각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책.98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책꽂이]

    ●단재 신채호 평전(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펴냄) 일제와 싸운 혁명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선생 평전.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일제 침략을 통렬히 비판하고, 민족사학의 이름으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는 등 각 분야에서 항일의 삶을 실천한 참지식인으로서의 삶을 그렸다.1만 6500원.●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에버하르트 호르스트 지음, 모명숙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중세 프랑스의 저명한 신학자였던 피에르 아벨라르와 수녀원장이었던 엘로이즈의 금단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 이야기는 12세기 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시, 소설, 연극 등 예술작품의 모태가 되었다.●분단의 두 얼굴(김승렬 등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지구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역사를,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과의 비교사적 측면에서 다룬 책.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에게 의존하는 독특한 남북 분단구조에 대해 19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1만 8000원.●8·15의 기억-해방공간의 풍경,40인의 역사체험(서정주·이항녕 등 지음, 한길사 펴냄) 반일과 친일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해방공간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각기 다른 성향의 40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특정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담았다.1만 5000원.●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앤드루 모튼 지음, 유향란 옮김, 이너북 펴냄)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삶을 조명한 책. 영국 데일리메일지의 왕실 출입기자였던 저자의 다이애나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던 내밀한 모습들을 살펴본다.1만 5000원.●위성으로 보는 한국 아트라스(호영 펴냄) 위성에 찍힌 한반도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은 한반도 지리백과사전. 한국의 위성 ‘아리랑’, 미국의 ‘랜드샛’, 프랑스의 ‘Spot-4’ 등에서 5만분의 1의 척도로 촬영된 남북한의 각 도·시·군별 사진을 해설과 함께 담았다.15만원.●디지털 스토리텔링(이인화 등 지음, 살림 펴냄) ‘살림지식총서’ 200호 돌파 기념특집으로, 디지털 이야기를 6권(196∼201호)에 나눠 담았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상상력과 미학적 측면의 디지털, 산업으로서의 디지털, 디지털 에듀테인먼트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권 3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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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최호근 지음, 책세상 펴냄) 백인에 의한 북아메리카 인디언 학살로부터,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살육, 보스니아·코소보의 인종청소, 한국의 4·3사건까지 세계 역사상 발생했던 대표적 집단학살 사건을 다섯가지 유형으로 분석한다.2만 2000원.●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사랑의 심리에 대한 과학적 안내서. 다양한 과학실험을 통해 낭만적 사랑이 뇌 회로 및 신경 화학물질의 작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밝힌다.1만 2000원.●중국의 옷(服飾)문화(왕웨이띠 지음, 김하림·이상호 옮김, 에디터 펴냄) 중국인들이 역사적으로 입었던 의복의 기원에서부터 실용적 기능, 윤리적·미학적 의의, 풍속에 따른 중국복식의 변화양상, 각 민족간 의복의 차이 및 유행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1만 8000원.●사계절 꽃산행(현진오 지음, 궁리 펴냄) 진기한 산들꽃을 키워내는 동강, 키작은 풀들의 천국 태백산, 봄부터 가을까지 꽃잔치를 벌이는 점봉산, 등 저자가 20여년간 전국을 누비며 우리 꽃들을 찍고 기록한 것들을 담았다.2만 2000원.●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할 포스터 지음, 전영백과 현대미술연구팀 옮김, 아트북스 펴냄)초현실주의의 아름다움에 프로이트적 해석을 가한 평론서. 초현실주의는 창시자인 앙드레 브로퉁에 의해 사랑과 해방의 운동으로 이해돼왔다. 그러나 할 포스터는 반복 강박, 죽음 충동 등 어두운 측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1만 8000원.●세계의 과거사 청산(안병직 등 지음, 푸른역사 펴냄) 독일과 프랑스, 남아공, 스페인, 러시아, 아르헨티나, 칠레, 알제리의 과거 청산 사례를 분석·정리했다. 과거 청산과 관련해 그동안 국내에 잘못 알려지거나 간과되었던 외국 사례들에 주목한다.1만8000원.●우남 이승만 연구(정병준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그동안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던 이승만의 집권 과정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1912년 미국 명명후 국내에 기반을 갖지 못한 이승만이 어떻게 미군정과 좌·우익 등의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3만5000원.●장군이 된 이등병(이계홍 정리, 화남 펴냄) 최장기 근속 보유자, 최다 계급 진출자, 최다 참전 군인 등 수많은 기록과 함께 한국 군현대사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히는 최갑석 장군의 인간승리 기록을 담았다. 육군 이등병에서 소장오르기까지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1만원.
  • [책꽂이]

    ●미래를 여는 노벨상 이야기(김용운 지음, 우성 펴냄)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과 생애를 통해 현대과학을 소개하고 주요한 발명과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 창조성에 기여하는 교육과 문화의 관계를 밝힌다. 한국 과학기술 수준과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도 짚었다.1만 5000원.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주중식 지음, 한길사 펴냄)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교육 이야기.‘조그만 향기마저 바람에 나눠주고 싶은 들꽃이 되고 싶다.’는 그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놀면서 나눈 이야기들과 이들에게 전해주는 소중한 가르침을 담았다.1만원. ●잊혀진 가람탐험(장지현 지음, 여시아문 펴냄) 돌보는 이 없고, 개발의 삽날에 찍혀 잊혀져 가는 폐사지 순례기. 양양 진전사지, 여주 고달사지, 익산 미륵사지, 제주 법화사지 등 남한 9개도에 흩어져 있는 35개 폐사지를 찾아 한국 불교의 흔적을 더듬는다.2만 3000원. ●중국의 문화지리를 읽는다(후자오량 지음, 김태성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거대하고 복잡한 중국문화의 지형을 짚는다. 문화가 중국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중국의 남과 북, 과거와 현재를 샅샅이 실사하며 중국문화의 핵심을 선명하게 드러낸다.2만원. ●대중의 반역(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현대 대중사회의 본질을 파헤친 문명 비판서.20세기 초반 유럽사회에 몰아닥친 ‘대중의 습격’을 목격하면서 대중이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 상황을 문명사적으로 해석했다.1만 2000원. ●위대한 꿈의 기록, 카프카의 비밀노트(이윤택 엮음, 북인 펴냄) 불확실한 현대인의 삶을 드러내며 20세기 문학의 한 특징적 징후를 보여주었던 카프카의 아포리즘 집.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단초를 카프카의 소설과 일기, 편지글 등에서 발췌하였다.9500원. ●명문가의 자식교육(김영수 편저, 아이필드 펴냄) 중국 역대 명인들의 자식교육법을 소개한다. 서한시대의 동박삭으로부터 삼국시대 촉의 제갈량, 송대의 주희, 명대 말기의 개혁가 장거정, 근대 중국의 계몽사상가인 엄복에 이르기까지 한 집안을 이끌었던 가장으로서 남긴 진솔한 교육이야기를 담았다.1만 8000원.
  • “독도분쟁 시발점은 미국인 시볼드”

    “독도분쟁 시발점은 미국인 시볼드”

    독도문제는 한·일간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음 주 발간될 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에 실릴 ‘독도분쟁의 시발과 윌리엄 시볼드’를 기고한 목포대 정병준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1952년 미·일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외교관 ‘윌리엄 시볼드’를 조명했다. 알려졌다시피 이 조약은 일본의 패전처리 문제를 다룬 조약. 당연히 일본이 강점한 영토의 반환문제가 포함되어 있고 독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회담 초기에 한국령이었던 독도는 회담이 진전되면서 일본령으로 바뀐다. 여기에는 독도를 레이더기지로 쓰자는 시볼드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시볼드는 맥아더의 극우 반공주의 노선 덕분에 벼락 출세한 외교관이다. 전후 일본 처리를 두고 미국내에선 두가지 목소리가 있었다. 일본을 철저히 개혁하자는 ‘중국통’ 인사들과 그러면 빨갱이들만 이롭게 한다는 ‘일본통’ 인사들간 대립이었다. 맥아더는 ‘일본통’쪽을 채택했다. 그랬기에 ‘대위’에 불과했던 시볼드를 외교관으로 발탁했다. 미 국무부조차 적절치 않은 인사라고 지적했지만 맥아더는 굽히지 않았다. 정 교수는 ‘맥아더 장학생’ 시볼드가 큰 영향력은 없었다고 봤다. 그러나 미국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한국 문제에는 시볼드가 개입할 여지가 많았다. 그는 일본계 여자와 결혼하고 일본에서 법률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을 만큼 지일파 인사였다. 그는 일본의 이익을 적극 옹호했다. 전범추방·재벌해체에 반대하고 공산주의자 석방을 비판하는 등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소련에 억류된 일본군 포로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여기에는 냉전과 매카시즘 영향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정 교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독도문제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일본이 독도문제만 나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독도문제에 중립을 표시하는 것도 “독도문제가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미, 미·일관계를 폭발시킬 뇌관”임을 알게 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학계 일부 ‘脫 민족주의 수용론’ 눈길

    학계 일부 ‘脫 민족주의 수용론’ 눈길

    최근 학계 논란의 중심에는 탈민족주의가 있다. 이 논란은 단지 학문적 논쟁에만 그치지 않는다. 논리의 순수성과는 별도로 ‘현재 정치’에 접속되면 보수주의와 뚜렷한 친화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핵심은 DJ정부 이래 집권한 ‘민족주의 좌파’에 대한 위기감과 반감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크게 다루는 자칭 ‘민족지’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논의 역시 비중있게 다루는 어색한 풍경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에서 다시 한양대 임지현 교수를 비판했다. 지난해 여름호부터 이어지고 있는 논쟁의 연장선상이다. 조 교수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임 교수가 박정희체제의 특수성을 외면한다는 데 있다. 서구의 몇몇 파시즘을 일반화한 뒤 박정희체제를 끼워맞추는 것은 ‘지적 종속’의 한 형태다. 이는 임 교수가 좁은 맥락의 비슷한 점에 집착,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부시-빈라덴’은 적대적 공범관계다. 하지만 ‘제국적 질서와 권력구조’를 놓치면 일면적인 해석에 그친다. 임 교수의 논지라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와 일본제국주의는 똑같다.‘반근대적 성격’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과거청산문제도 비슷하다. 나치재판을 마무리한 뒤 ‘몇몇 전범만 처벌해 독일 국민은 면죄부를 얻은 게 아니냐.’는 독일의 경험에서 뒤의 것만 임 교수가 따오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 제도적 과거청산마저 안 된 우리 상황은 지워져 있다. 조 교수가 “현재의 과거청산이 실패한다면 (임 교수 주장은)학문적 연구로 끝나버린다.”고 비판하는 까닭이다. 조 교수는 그러나 각주를 통해 박정희체제의 헤게모니를 과도하게 강조했다고 시인하는 등 임 교수의 논의가 지나친 좌파적 해석에 대한 ‘해독제’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한·중·일 3국의 근대사인식비교’ 학술대회에서도 최근 다시 일기 시작한 식민지근대화론 주장 가운데 일부분이 수용될 조짐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신주백 책임연구원은 한국 역사교과서의 일제시대 서술이 지나치게 ‘한국수탈론’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지주제 발달 등 한국의 대응이 빠진 데다 한국의 수탈만 있을 뿐 타이완과 만주의 사례는 없다. 도쿄대 마쓰모토 다케노리 교수 역시 식민시대 서술에서 수탈론 외의 서술은 찾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근대성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기존 역사연구에 대해 실증적 연구없이 ‘일제=악’이라는 도덕론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비춰볼 때 일제시대 중국의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중국 사회과학원 롱웨이무 부주간의 발표도 눈길을 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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