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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총리 사죄담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말뿐인 日사과에 절통함만…

    [日총리 사죄담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말뿐인 日사과에 절통함만…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10일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지만 우리 국민과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정신대 피해자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말뿐인 사과’에 그쳤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아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왔다. 양금덕(82) 할머니 등 광주 지역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1998년 일본 사회보험청을 상대로 후생연금 탈퇴수당 지급을 청구했지만, 일본 측이 지난해 1인당 99엔이라는 터무니없는 액수를 제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민간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최근 시민단체에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수용하겠다는 공문을 보내면서 민간차원에서 일부 진전이 이뤄질 기미를 보이는 게 고작이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이번 일본 총리 담화 발표에 대해 “15년전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담화에서 진전된 것이 전혀 없는 무성의한 내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번 담화문에는 단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 수많은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면서 “국제사회가 지난 50여년 동안 일본 정부에 강한 목소리로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표는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대해서도 “이미 과거에 청산했어야 할 문제를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추진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약탈해 간 수많은 문화재를 놔두고 의궤만 달랑 보내주면서 담화 발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국장도 “일제 피해자의 보상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언어적 수사에 그쳤다.”며 일본 총리의 담화 발표를 평가절하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불신과 장벽을 깨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한·일병합 100년이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의 의미를 간과한 담화”라고 덧붙였다.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담화에 나온 ‘통절한 반성’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사할린 강제징용자에 대한 지원문제도 ‘인도적 협력을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이라는 추상적인 언급으로 마무리해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와 함께 1990년부터 사할린 강제징용자의 영구귀국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을 얼마 남지 않은 ‘한인1세’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일시적인 모국방문사업 대상자는 연간 150명에 불과하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현재 사할린에 남아 있는 한인 잔류자에 대한 지원도 전무한 상황”이라면서 “잔류자에 대한 지원에도 일본 정부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담화 발표 시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외교 관례상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달 15일이나 한·일병합조약 체결일인 29일 담화문을 내놓아야 하는데 대내외의 압박을 피하려고 엉뚱한 시기에 발표했다.”면서 “앞서 담화문을 내놓은 것은 종전기념일인 15일을 한국을 배제한 자신들만의 행사로 만들고 국치일은 아예 무시하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일반 국민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회사원 정명재(25·여)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 뿐 실질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 실망스럽다.”면서 “조선왕실의궤 반환도 상징적인 조치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봉(56)씨는 “일본 시민들도 의례적인 총리의 말처럼 미안함을 느끼는지 의문이다.”면서 “일본 젊은 사람들은 과거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는데 역사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현용·윤샘이나기자 junghy77@seoul.co.kr
  • “약탈문화재 돌려받으려면 소재부터 파악해야”

    “약탈문화재 돌려받으려면 소재부터 파악해야”

    “3개월만 있다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람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파괴한다더니 그 말이 맞네요. 마음은 하루라도 빨리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지만 병원에서 6개월은 더 요양해야 한다니 어쩌겠어요.” 두 번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견뎌낸 팔순의 작은 체구는 한없이 가냘퍼 보였다. 체력이 약해 걸을 때 주위의 부축을 받아야 하지만 다행히 입맛도 되찾고,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가는 중이라고 했다. 프랑스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처음 발견해 ‘직지 대모’로 불리는 재불(在佛) 학자 박병선(82) 박사. 지난달 말 퇴원해 경기 용인의 지인 집에 머물고 있는 박 박사는 지난 22일 집으로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집 앞의 정자 그늘로 기자를 이끈 박 박사는 긴 시간 인터뷰에도 지친 기색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부서 문화재 산다고 하면 가격 치솟을 것” 약탈 문화재 얘기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에 맞춰 조선왕실의궤 등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 정부가 불법으로 약탈해간 문화재를 되찾아오자는 문화재반환운동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박 박사의 첫마디는 다소 의외였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무조건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우리 정부에서 산다고 하면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텐데 천문학적 액수에 이르는 예산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어요. 물론 들여올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 전에 누가, 어디에, 어떤 물건을 갖고 있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해서 목록을 만드는 게 우선이에요. 그 목록만 있으면 아무 때나 소유자와 협상할 수 있고, 전시회 때 빌려올 수도 있잖아요. ” ‘명성황후 표범 카펫’만 하더라도 명성황후와의 관련 여부를 떠나 그런 카펫이 수장고에 있다는 사실조차 40년 넘게 몰랐던 우리의 문화재 관리 현 실태를 신랄하게 지적하는, 아픈 얘기였다. 우리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진행 중인 외규장각 반환 협상 문제를 본격 꺼내자 박 박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양국 간에 영구대여 방안이 논의 중인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되는 얘기에요. 우리나라 문화재가 분명한데 왜 그걸 빌려와야합니까? 소유권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론에 밀려 임시로 국내에 들여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다만 이동과 보존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지금처럼 프랑스에서 보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서울대에서 역사를 공부한 박 박사는 스물일곱살이던 1955년,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1972년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발견해 세상에 알렸고, 1979년에는 베르사유별관 창고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냈다. 은사인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가 “프랑스가 병인양요때 약탈해간 물건이 많으니 꼭 찾아보라.”고 했던 당부를 잊지 않고 지킨 것이다. 풍문으로만 나돌 뿐 실체를 알 수 없는 약탈 문화재의 흔적을 이국 만리에서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선 반역자 소리를 들었고, 한국에서도 질시의 시선이 없지 않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그는 병인양요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다. 지난해 서울에 온 목적도 병인양요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188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일기, 함대장이 프랑스 정부에 보낸 공문, 규장각의 역사 등 양국의 자료를 집대성한 책이 될 전망이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 했어요.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어 자료를 다 찢어버린 적도 많아요. 그러고선 다시 그걸 붙이느라 생고생하고.(웃음)” ●작년 9월 직장암 수술 뒤 국내서 요양 중 지난해 9월 자료 조사를 위해 3개월 일정으로 서울에 온 그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직장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 길로 수원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에 입원했다. 11월 말로 예약해둔 비행기표는 무용지물이 됐다. 박 박사의 투병 소식은 뒤늦게 알려졌다. 타국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찾기에 평생을 바친 사학자가 암치료비도 없이 외롭게 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모교인 서울대와 청주시, 문화재청, 문화유산국민신탁, 기업 등에서 성금과 후원금이 답지했다. 병문안 오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은인이 너무 많아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기도해주는 걸 보면서 정말 고마움을 많이 느꼈어요. 강원도 강릉의 어떤 분은 밥을 못 먹으면 죽이라도 꼭 먹어야 한다면서 쌀을 보내기도 하고, 홍삼이 몸에 좋다며 선물로 주시는 분들도 어찌나 많은 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싶어요.” ●“같이 공부해 줄 젊은이들 옆에 있었으면…”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파리에 가 있는 듯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을 그만둔 뒤 박 박사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연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는 파리 시내에서 한시간 남짓 떨어진 교외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무리 여기에 있는 분들이 잘해 준다고 해도 내 집이 아니잖아요. 일도 밀려 있고 하니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 할 일은 산더미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그는 조바심을 냈다. 지금까지 혼자서 많은 작업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다행히 기업에서 연구원 2명의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프랑스로 돌아가면 서둘러 작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후학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나는 이제 말년인데 누구든지 같이 공부해줄 젊은이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일이 힘만 들고 돈은 안되다 보니 일주일도 못돼 도망가는 젊은이들이 태반이에요.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 의무감이나 남이 시켜서는 못할 일이에요.” 그는 “지금도 나보고 ‘연금 받으면서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왜 고생하냐’, ‘저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어딨냐’ 그래요. 하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 지 현지 사정을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요.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해요.” 바람결에 정자 옆 나무에서 잎이 떨어졌다. 박 박사는 “작년 가을, 저렇게 잎이 떨어질 때 이곳에 왔는데 아직도 못 가고 있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원래 홍삼이 잘 안 맞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잘 넘어가네요.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는 걸 몸이 아나봐요. 프랑스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이 나오면 병원비 다 갚을 거예요. 최대한 많이 받아내야 할 텐데….(웃음)”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박병선 박사는 ▲1928년 서울에서 출생. 5남매 가운데 셋째딸 ▲서울대 사범대 사회생활학과(현 역사교육학과) 졸업 ▲1955년 프랑스로 유학, 소르본대학에서 석·박사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 사서 재직시 ‘직지’ 발견 ▲1972년 파리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직지 출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세계에 알림 ▲1979년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도서 발견,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과 함께 파리국립도서관 사직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 ▲2009년 제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
  • [사설] 한목사, 북세습체제 옳다면 북서 살텐가

    정부 승인 없이 불법으로 방북한 한상렬 목사의 최근 행보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는 지난달 22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 생명들의 살인 원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천안함 사건은) 지방선거에 이용하고자 한 이명박 정권의 사기극일 수 있다.”고 했단다. 반면 그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남녘 동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어른을 공경하는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머, 지혜와 결단력, 밝은 웃음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등 북한 찬양 일색의 발언을 쏟아냈다.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수병 46명에 대한 애도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그런 시점에 나온 그의 망언은 단순히 맹북(盲北)·친북인사의 ‘소영웅주의’에서 나온 일탈 행위로만 봐서는 안 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그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이고 도전이기 때문이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실정법 위반 여부는 그가 남한으로 귀환한 뒤 법에 의거해 처리하면 될 일이다. 최근 북한의 후견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관영통신은 6·25 전쟁과 관련, 처음으로 ‘북한의 남침’임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전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분단 이후 세습독재라는 체제의 속성도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김정일 찬양가를 부른 것은 자유 민주주의체제보다 북한의 유일독재체제가 더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한민국의 근간은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국가에서는 정권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가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발언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심히 걱정스럽다. 학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역사교육이 필요할 때다.
  • [열린세상] 세계화시대의 역사교육/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교수

    [열린세상] 세계화시대의 역사교육/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교수

    모든 역사와 문화에는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지중해 연안 유럽이나 근동 지방의 고대문화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얼른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그 문화를 대면하면 할수록 눈에 들어오고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문화도 있다. 우리 문화는 후자에 속한다. 우리 문화는 그 존재 이유를 따져 묻고 배워야 그 의미를 알게 되고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다. 우리 역사와 문화의 특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해 보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물 가운데에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藏經版殿)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은 116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345년에 완성되었다. 그 성당 하나를 짓는 데에 185년이 걸렸다. 이 성당은 고딕 예술의 종합작품이며, 일시에 6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규모를 갖추었다. 오늘날 파리를 찾는 사람들은 그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을 우러르게 마련이다. 이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세기에 세워진 이 장경판전은 남쪽에 있는 수다라장과 북쪽에 있는 법보전을 합쳐서 70칸에 이른다. 장경판전은 숯과 소금, 횟가루와 찰흙 및 모래를 버무린 흙으로 지반을 다졌다. 수다라장의 남향 창은 아래창이 위창보다 네 배나 넓게 되어 있다.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법보전의 창은 아래창보다 위창이 한 배 반 정도 더 크게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지세를 감안하여 서로 다른 크기의 창을 배치해서 건물 내 공기의 순환을 돕고, 온도와 습도의 조절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안에 800여년 전에 만들어진 8만 2258장의 팔만대장경 경판들이 뒤틀림이나 터짐이 없이 보관되어 있다. 이는 그 건물의 과학적 공법과 설계 덕분이다. 해인사를 찾은 사람들은 그 수려한 경치와 정연하고 아담한 가람의 배치에 취하여 이를 바라보게 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의 일부가 된 해인사는 얼른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해인사와 노트르담 성당을 비교할 때, 사람들의 눈을 일시에 끄는 것은 노트르담 성당임에는 틀림없다. 단순히 건물의 크기만을 보자면 해인사 장경판전과 노트르담 성당은 서로 비교도 안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공부를 통해서 해인사 장경판전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올바로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문화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게 되고 정당한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 과학적으로 건축된 해인사의 장경판전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자연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문화의 흔적이 집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경판전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착취를 포기하려는 결의에 찬 판단이 창조한 건물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지구상에서는 강력한 정치권력이나 종교적 신념에 의해 세워진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어떠한 정치권력이나 종교, 신앙의 이름으로도 백성들을 착취하는 일을 자행하지 않았다. 그 인간존중의 정신이 깃든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바로 이해할 때, 우리는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도 두 문화의 우열 대신에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인식은 우리 자신을 당당한 세계 시민으로 설 수 있게 만든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 지식은 중·고등학교 과정의 한국사 교육을 통해서 주어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국사 교육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제9차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라 한국사를 비롯한 역사교육이 고등학교 단계에서 선택과목으로 규정된 이후 벌써부터 한국사 교육은 교육현장에서 위축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9차 교육과정은 개정이 아니라 개악이다. 잘못된 일은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라나는 우리 2세들에게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려 세계화시대의 세계시민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 [한·일 100년 대기획] (20) 젊은이가 보는 양국관계 해법

    [한·일 100년 대기획] (20) 젊은이가 보는 양국관계 해법

    ■韓-과거사 청산이 먼저 우리 대학생들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과거 청산’을 꼽았다. 양국의 뒤얽힌 과거사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관계로 발돋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경(25·여·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는 ‘일본통’을 자처한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현지 여행도 자주 다녔다. 중학교 때부터는 일본 학생과 펜팔을 계속해 오면서 속을 다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김씨는 “민감한 문제이지만 ‘과거사 청산’이란 화두를 일본 친구들에게 꺼낸 적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때마다 결론은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친구들은 과거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아예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면서 “윗세대와 아랫세대 모두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의식 없이 무작정 덮어두고 넘어가려 한다거나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한·일관계를 계속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생각하면 늘 불편 송하원(24·성공회대 사회학과 4학년)씨는 “일본의 과오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보상이라는 역사의 수순이 완료되지 않아 우리가 일본을 생각하면 늘 불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씨는 “매듭짓지 못한 과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내리지 못한다.”면서 “그 때문에 일본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폄훼하는데 이는 한·일 양국의 손해”라고 덧붙였다. 정다혜(23·여·연세대 총학생회장·사학과 4학년)씨는 “한·일관계 문제의 근원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서로를 믿기 위해선 역사적 사건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사회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친일파 잘살고 독립운동가 후손 시달려 젊은이들은 우리의 과거사 문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환(22·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경제학과 3학년)씨는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안 돼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친일파 후손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도 “친일파들이 버젓이 국가적 위인으로 숭상받고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잘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잘못을 지은 것처럼 가난에 시달리면서 조국땅에도 못 들어오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씨는 “양국의 상호 발전과 관계개선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씨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갈등의 원인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서로 평가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와 연대해 日사과 받아야 아울러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연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일본의 역사의식이 잘못됐다고 감정적으로 교역을 끊기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만행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인류적으로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게 피해를 본 다른 나라들과 이념과 정치체제는 달라도 함께 연대해 일본의 죄과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조건 일본이나 일본인을 배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무조건 일본 사람이 싫다고 해서는 일본인을 설득할 수도 없고 우리땅을 불합리하게 불법적으로 강점한 일본인과 형식적으로 같은 모습을 띨 수 있다.”고 경계했다. ●양국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 부족 오히려 양국의 문화·사회적 교류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씨는 “양국에 대한 이해도 더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친구들은 한국의 아이돌 가수, 영화배우 등 연예인에게만 관심이 있지 한국문화나 한국인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연예인을 매우 좋아한다고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우리 학생들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일본 연예인, 만화를 좋아하는게 대부분”이라면서 “문화를 음악, 만화, 공연 같은 작은 범주가 아니라 생활습관과 생각하는 방식 등에까지 서로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효섭·윤샘이나·김양진기자 newworld@seoul.co.kr ■日-서로를 인정해줘야 일본 젊은이들이 지난 18일 한국 상점들이 몰려 있는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 도리(거리)에 모였다. 직장인과 대학원생들인 이들은 평소에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 터라 새로운 100년을 맞는 한·일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일본을 짊어져 나갈 이들이 보는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해법을 들어봤다. 몇 달만에 신오쿠보 도리에 왔다는 다야 모리(27·일본어 예비학교 교사)는 “일본의 유명 번화가에서 한국 식당이 많아져 일본 사람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며 “해가 거듭될수록 가까워지는 한·일관계를 이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한국인 김주임(29)씨와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고바야시 가즈토(27)는 “몇 년 새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 커플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결혼하는 사례를 주위에서 자주 보고 있다.”며 “한국이 그만큼 경제·문화적으로 일본과 대등해진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최근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기업의 선전을 꺼냈다. ●한국기업 장점 진지한 연구 시작 그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이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 5개사를 합친 매출액보다 많은 것에 일본 젊은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30년 전에 일본이 강했던 산업이 잇따라 한국에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강한 게 결단력이 빠르고 국가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관·민체제가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일본에서도 한국의 장점을 각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일본 중·고등학교 예비교사 교사인 와타누키 아이미(26·여)는 “최근 외무성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제3세계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기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일본 기업도 좀 더 위기감을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국기업의 최근 활약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일본선 한국어, 한국선 일본어 교육을 그는 “앞으로 일본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서로를 필요로 할 텐데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며 “일본은 중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에서도 좀더 일본어 교육을 늘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다는 후지마쓰 겐스케(24·도쿄외대 대학원생)는 양 국민 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을 잘 모를 때는 그들의 엄격한 상하관계에 무척 답답한 느낌을 가졌다.”면서 “하지만 같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과 같이 술도 마시면서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유교문화의 장점이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공동 역사교과서 만드는 일 중요 물류회사에 다니는 미야타 다케히토(27)는 “일본인이 한·일 간의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며 “일본과 한국의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서로를 객관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에 두 번 갔는데 정말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며 “거리는 가까운데 서로 동떨어진 교육을 통해 양국을 먼나라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다.”고 전했다. 예비 교사로서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다야는 “얼마전에 NHK가 일본과 한국 간의 역사에 대해 방송했는데 과거처럼 일본이 한국보다 우수하다는 시각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방송해 일본 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며 “한국에서도 그런 방송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류의 바탕은 한국의 도전정신 고바야시는 “두 나라 국민 간에 서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객관적인 사실도 안 보이고 역사적으로도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며 양 국민 간의 진지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인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한류의 열풍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방신기, 빅뱅에 이어 최근에는 카라, 티아라, 소녀시대 등 여성 그룹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평가한 그는 “일본 연예인들은 일본말만 하지만 한국 그룹은 한국말뿐만 아니라 일본어, 영어까지 배워 아시아를 비롯해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다.”며 일본도 연예계까지 퍼진 한국의 도전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사설] 서울대와 공기업 ‘국사 살리기’ 반갑다

    서울대가 2014년 입시부터 고교에서 한국사를 이수한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서울대 입시가 대학입시의 방향을 좌우하는 만큼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2014년 대학입시라면 지금 중3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대상이다. 당장 내년부터 각 고교에서 국사교과 개설이 이어질 게 뻔하다. 고사 직전 상황에 처한 학교 역사교육의 전환을 이룰 만한 조치다. 앞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들은 지난 1일부터 직원채용 때 한국사 능력을 반영토록 한 인사운영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늦게나마 역사의 중요성을 직시해 실천에 나선 움직임들이 반갑다. 역사는 그것이 어두운 과거이건 밝은 기록이건 있는 그대로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각국이 역사·전통의 중요성을 인식해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교육을 외면, 홀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확정된 개정 교육과정만 하더라도 시행될 경우 한국사 과목은 사회과목의 일부로 편입돼 사실상 실종될 판이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사회탐구 과목 중 국사시험을 선택한 응시자가 열 명 중 한 명 꼴에 불과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 국사교육이 얼마나 뒷걸음질치고 있는지 극명히 드러난다. 글로벌 시대에 역사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일본이 과거사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한 예이다. 글로벌 인재로 인정받아도 국제사회에서 제 나라 역사를 모른 채 경쟁에 뛰어든다면 패배는 뻔한 것이다. 대학입시며 취업에서 까다롭고 불편한 과목이란 인식 아래 우리 역사를 피하려 든다면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대다수의 우리 국민은 역사와 역사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얼마 전 국민권익위가 2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22곳이 채용 시험에 한국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더 늦기 전에 역사교육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 ‘임정청사’ 경교장 복원 공사 개시

    ‘임정청사’ 경교장 복원 공사 개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이 본격 복원공사에 들어간다. 서울시는 1일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자리에 위치한 경교장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기 위해 내년 11월까지 임시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화장(梨花莊)·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의 하나인 경교장(사적 제465호)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부터 암살당한 1949년 6월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쓰던 곳이다. 신탁통치 반대운동, 남북 정치지도자 회담 등 한국현대사를 장식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주무대였던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시는 현 소유자인 삼성생명·강북삼성병원과의 협의와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을 받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하고 현재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경교장 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복원설계를 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원무실로 쓰였던 경교장 1층 서쪽방은 임시정부 환국 후 국무회의가 열렸던 귀빈 응접실로, 약품창고로 활용됐던 2층 중간방과 동쪽방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와 서재로 복원된다. 또 병원시설로 활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벽체나 사라진 창호 역시 모두 1945~1946년 당시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으로 되살린다. 안건기 문화재과장은 “의료시설로 사용되고 한때 철거 위기까지 맞는 등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복원되면 근현대사의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는 다만 2005년 부분 복원·공개돼 시민들에게 사랑받아온 경교장 2층 서쪽 백범 김구 기념실은 공사기간에도 매주 토요일 3차례씩 제한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경기대도 양측 대립

    ■비리퇴출 사립대 옛재단 복귀 가시화…사학분쟁 다시 꿈틀 임시이사(관선이사)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사립대에 옛 재단의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임시이사 체제의 구성원들은 비리로 퇴출된 옛 재단의 재입성을 반대하고 있고, 옛 재단 측은 임시이사 체제가 오히려 학교 발전을 후퇴시켰다며 직접 운영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사학분쟁 2라운드가 익어가는 형국이다. 옛 재단들이 이처럼 복귀의 신호탄을 쏘고 있는 것은 ‘시기와 시대적 차이’와 맞물려 있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색깔이 현 정부 들어 보수적 색채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최근 상지대의 사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분위는 17년간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았던 상지대의 정이사 추천권을 옛 재단 측에 대폭 넘길 방침이다. 비리로 물러난 김문기 전 이사장 측에 이사 9명 중 5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한 것이다. 또 2007년 대법원은 “임시이사들이 학교가 정상화된 상황에서 학교 설립자 측과 협의없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학의 설립과 운영에는 자유가 인정되기 때문에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다는 해석이다. 사분위 관계자는 “실형을 받았지만 사면복권된 옛 재단 측이 학교 운영에 참여한다고 해서 법리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광운대, 경기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등 임시이사체제인 20개 대학의 이사회는 정상화 이후 설립자 측 인사로 구성된 정이사진 형태로 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옛 재단의 학내 재입성에 대해 일부 학교 구성원과 총학생회가 반대하고 있어 분쟁의 불씨는 살아 있다. 해당 대학의 총학생회는 옛 재단의 도덕성 문제를 들어 비리재단의 재진입을 반대한다. 옛 재단 입성 반대의 목적이 학교내 ‘밥그릇’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립대학 운영권을 놓고 ‘옛 재단-학생-교과부(사분위)’ 삼자간 분쟁이 불가피한 이유다. 사분위 관계자는 “사학비리, 이사진 공백 등의 이유로 대학에 임시이사가 파견돼도 횡령자금을 보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갈등관계가 상존하다 보니 대학 정상화와 정이사 임명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상지대의 경우 재논의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분위는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임시이사 파견 원인을 제거해 나갈 것”이라며 밝혔다. 현재 사분위의 행보로 봤을 때 과거 조선대, 영남대처럼 20년 이상 임시이사 체제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옛재단측 “관선체제후 학교발전 후퇴” 총학생회 “부패없는 건실한 재단 유치” 7월 초 임시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기대의 경우 복귀를 노리는 옛(舊) 재단 측과 총학생회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현재는 탐색전 수준이지만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강한 인화성을 내포하고 있다. 손종국 전 총장은 ‘설립자의 건학 이념 구현’과 ‘학교 발전’을 명분으로 학교를 되찾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손 전 총장은 28일 “설립자의 설립 취지를 이어받은 구성원이 법인의 주체가 돼야 한다.”며 복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손 전 총장은 “현 체제는 개인적 출세나 욕심에만 관심이 있었지 학교를 발전시키는 데는 뒷전이었다.”고 임시이사 체제를 비난했다. 그는 “임시이사 체제가 들어서기 전 전국에서 27위(언론 대학평가 순위)이던 학교가 현재 70위권으로 밀려났고, 관선체제 이후 학교 재산이 주는 등 경기대학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옛 재단 입성을 반대하고 있는 총학생회와의 대화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대화에 적극 나설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기존 총학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학교 이사회는 작은 국회처럼 의견이 분분해 언제든지 삐걱댈 수 있다.”면서 “학내 교수들이 옛 재단의 재입성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은 잘못됐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학교인 만큼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옛 재단의 학내 재입성을 반대하는 측은 “사립학교는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로 볼 수 없다.”면서 “옛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러 해임됐다면 법인의 모든 권리를 상실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유승훈 경기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은 “2004년 손 전 총장의 비리가 터지기 이전부터 재단 측의 비리와 부패가 쌓여 왔다.”면서 “지금은 학교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건실한 재단을 유치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경기대 총학생회 측은 옛 재단이 다시 학교로 들어올 것을 대비, 과반수의 학생들과 교수, 총장으로부터 ‘입성 반대서명’을 받아 사학분쟁위원회에 제출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학을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갖 인사전횡, 공금횡령 등이 자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시이사진이 코드 인사라는 옛 재단 측의 주장에 대해 “선임할 때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거치는 만큼 코드인사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2010 한국전쟁 60주년 화해의 원년] 7월 좌익 10월 우익 학살… 1950년엔 모두 희생자였다

    [2010 한국전쟁 60주년 화해의 원년] 7월 좌익 10월 우익 학살… 1950년엔 모두 희생자였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 주민 정석재(61)씨는 23일 나지막한 동구림리 야산을 가리키며 좌·우익, 가해자·피해자 구별 없이 한국전쟁 희생자 262명의 원혼을 위로할 ‘용서와 화해의 위령비’(위령벽)를 세울 터라고 말했다. 그는 ‘군서면 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위령비를 건립할 5000여㎡ 공터 아래쪽에는 ‘지와목 방화 사건’ 때 좌익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28명을 기리는 순절비(1976년 제막)가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가면 서기 405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백제인 왕인 박사의 유적지가 바로 건너다 보였다. 이곳이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이 반복된 참극의 현장이다. 구림마을을 휩쓸고 간 ‘전쟁의 상흔’은 한반도 그 어느 지역과 다르지 않다. 이웃끼리 죽고 죽이는 야만적인 보복 학살이 이어졌다. 마을은 불신과 공포로 뒤덮였다. 1950년 7월 영암경찰은 후퇴하면서 국민보도연맹원 20~30명을 월출산 자락의 도갑산 골짜기 등에서 처형했다. 그러다 인민군이 점령하자 좌익 유가족들은 과거 경찰·경찰지서에 자주 드나들거나 협조한 사람들을 색출해 살해했다. 10월 초에는 좌익 세력이 잇따라 방화사건을 일으켰다. 특히 7일에는 우익 인사와 기독교인 28명을 자와목에 있는 주막에 가두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7일 오전 6시 경찰 공비토벌부대가 ‘구림 첫 포위사건’을 저질렀다. 3개 소대가 ‘좌익의 근거지’라며 부녀자, 아이까지 무차별 살해한 것. 대나무 숲이나 마루 밑에 숨었던 사람들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인민군에 부역하거나 협조했던 사람들은 이미 마을을 떠나고 없었다. 이런 참극이 되풀이돼 불과 반년 만에 민간인 262명이 학살됐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구림마을은 ‘전쟁의 상처’를 용서와 화해로 치유하고 있다. 2006년 11월17일부터 ‘과거사를 용서와 화해로 이루고자 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자·피해자 구별 없이 희생자의 위패를 함께 놓고 합동위령제를 올렸다. ‘용서와 화해’로 가는 첫발은 험난했다. 적극적으로 좌익·우익 활동을 한 사람들까지 ‘희생자’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논란이 거셌다. 친정에 왔다가, 피란 왔다가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은 다르지 않으냐는 문제제기였다. 주민들은 마을 역사를 담은 ‘호남명촌 구림’을 공동집필하며 의견을 모아 갔다. “냉전체제 속에서 약소 민족이 겪은 불행한 전쟁이다. 그래서 역사 앞에서 모두가 희생자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림마을 주민들은 2006년부터 이 같은 화해와 용서의 다짐을 새길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높이 4m, 길이 7m의 위령비는 무덤을 뚝 자른 모양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여기에 월출산을 밑그림으로 그려 넣고, 골짜기마다 희생당한 262명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는 구상이다. 올해 위령제(11월17일) 전까지 착공하기로 했지만 만만찮은 건립비 마련이 걸림돌이다. 주민은 성금 2000만원을 모았지만, 영암군이 약속한 8000만원이 아직까지 지원되지 않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정부의 관심이 부족해 예산 확보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530년간 대를 이어 구림마을에서 살아온 현삼식(62)씨는 “위령비 건립은 비극적인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면서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처럼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5년 좌·우 희생자 374명을 아우르는 유족회를 결성한 전남 나주시 다도면 주민들은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를 건립해 다음 달 제막식을 갖는다. 나주시가 3000만원을 지원해 성사됐다. 화해를 상징하며 ‘맞잡은 두 손’을 위령비 재단에 그려 넣었다. 다도면 주민 374명이 1948년 11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좌익 세력과 군·경에 학살당한 상처를 덧내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다. 영암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국전쟁 明著] 백선엽 ‘군과 나’

    유월이 오면 얼굴에 생기가 도는 아흔 살의 노병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 군부대, 학교, 단체 등을 누비며 열변을 토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4성 장군이자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제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예비역 장군이다. 백 장군이 펴낸 한국전쟁 회고록 ‘군과 나’(시대정신)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군과 나’는 매년 유월이면 팔려나가는 책이다. 10년 주기로 언론에 회자되는 책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한국전쟁 발발 40주년을 앞둔 1989년이었다. 한 일간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 단행본으로 펴냈다. 10년이 흐른 1999년 재출간했지만,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책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개정판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한 해 앞둔 지난해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에 대해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학생들에게 알릴 만한 책을 찾던 행정가의 권유에 의해서다. 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백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그날부터 휴전까지 ‘3년 1개월 2일 17시간’을 꼬박 전선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의 서술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누구의 기록보다 살아 숨 쉰다. 장군은 “나라가 북한의 침공으로 부산 앞바다까지 밀려 떨어질지도 모르는 존망의 위기와 압록강까지 국군이 진격하여 통일의 꿈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까지 전투의 최전선을 온몸으로 체험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36.9%가 한국전쟁 발발연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 중 20대가 56.6%로 가장 많았다. 30대 28.7%, 40대도 23%에 달했다. 2008년 시민단체가 서울시내 초·중·고교 학생 1955명에게 물어보니 초등학생 778명 중 35%가 ‘한국전쟁을 일으킨 건 남한’이라고 답했다. 답답한 일이다.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발발 6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백 장군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의미는 각별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가는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군이 노구를 이끌고 젊은이들에게 강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장군은 “아직도 많은 국민이 한국전쟁과 군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고 끝날 때까지 비교적 한국전쟁 전체를 조감할 수 있었던 나의 경험이 당시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과 에너지를 총동원했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토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술회했다. 젊은 군인과 청소년들에게 ‘군과 나’는 한국전쟁 교과서가 될 만 하다. 전쟁에 참가한 126만 9000여명의 국군 중 현재 살아 있는 노병은 24만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80살이 넘은 고령이다. “나의 회고는 승리의 기록이라기보다 전쟁의 기록”이라는 백 장군의 지적에 동의하는 까닭이다. ‘군과 나’는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인정받는다.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과 연구. 책은 숱하다. 그러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나라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군과 나’는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해 우리 스스로 기록한 가치 있는 기록서라 할 수 있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은 “미국의 참전에 관한 기록은 많지만, 대한민국의 처지에서 이 전쟁을 쓴 기록은 별로 없었다. 백선엽 장군의 책은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준다.”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전후 세대에게 육성으로 말한다. “나라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한반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생생한 기록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봄으로써 잘못 알고 있던 6·25전쟁을 바로 알게 되고 동시에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군과 나’는 생생한 기록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한국전쟁을 후세에 전달하고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열린세상]역사교육과 새 문화의 창조/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교수

    [열린세상]역사교육과 새 문화의 창조/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교수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을 떠나 일반 상식인이나 교양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우리나라 중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역사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당히 약하다. 특히 우리의 역사교육에서 한국사 교육은 홀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도에 급작히 시행되었던 ‘미래형 교육과정’에 따르면 고등학교 과목 전체가 선택과목으로 변경되었고, 수업부담이 큰 역사는 과목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제외될 우려가 컸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3년 동안의 학습과정에서 한국사 수업을 듣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학계는 중등학교 역사교육의 붕괴에 깊은 우려를 갖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전체 역사교육과정에 대한 체계성 내지는 계열화의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교육과정 자체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래형 교육과정의 시행은 강행되었고, 고등학교용 ‘역사’ 교과서의 검정작업을 강행했다. 그리고 지난 5월6일에는 역사교과서의 검정결과를 발표하여 모두 6종의 역사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하였다. 이 교과서들은 최소한 3년간에 걸친 집필 준비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검정에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서 교육부는 올해 5월12일 확정된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을 토대로 하여 5월14일에 수정, 보완 지시를 다시 내렸다. 보완 지시의 내용은 ‘역사’ 교과서를 ‘한국사’로 바꾸고, 그 전체 분량의 3분의1 정도를 한 달 안에 완전히 다시 집필하라는 주문이었다. 역사교과서 검정 당국의 이 지시는 학계의 의견을 일부 수렴한 결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거의 재집필 수준의 수정을 요구하는 일은 당치 않은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집필자들은 교육부의 이 요구를 사실상 이행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한 달이라는 단기간 안에 그와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집필자가 있다면, 그 교과서의 전체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검정을 시행해야 한다. 교과서는 그렇게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등교육기관의 역사교육에서 교과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은 사실상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역사교육, 한국사교육의 파탄을 자초하는 일로 생각된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사 과목이 다시 부활되었다면 당연히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최소한 3년간의 교과서 집필기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3년의 기간 동안에는 이미 검정에 통과한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게 한다면 좀더 정상적인 역사교육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교육부는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한 학기당 8과목 이상을 개설하지 말라는 집중이수제에 관한 방침을 일선학교에 전달했다. 역사과목도 이에 따라 배정 시간수가 사실상 축소되었고, 한 학기나 1년간 집중이수하고 더 이상 배우지 않는 ‘형식적’ 과목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역사과목도 집중이수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보다도 역사과목이 아예 선택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경우도 나타날 것이다. 또한 역사과목의 독립성이 부인되는 과정에서 비전공교사들이 이를 교육할 우려가 사실화되고 있다. 나아가 중등학교 역사교육은 그 존폐의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이는 자라나는 젊은 세대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민족과 인류의 역사를 도외시한 채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모든 나라들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역사교육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데, 우리만 이를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 국가는 민족문화를 발전시킬 책임을 지고 있다. 이 중차대한 책임은 우선 일선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관철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사교육 내지 역사교육의 정상화에 관한 문제는 비단 역사 연구자나 역사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되어야만 한다.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5월 정신’ 계승 어떻게

    ‘5월 정신’은 현실 정치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야기된 남북대결 문제 해결에 ‘평화’의 정신을 보태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문제도 나눔문화 확산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진보와 보수, 영남과 호남 등 정치·사회적 갈등 요인도 1980년 당시 ‘하나됨’의 공동체 실현으로 극복할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도 ‘5월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곳곳에서 인권과 민주화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폭력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힘겨운 싸움이 진행 중이다. 한국은 가장 짧은 기간 안에 압축적으로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제3세계 국가들은 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와 광주로 몰려든다. 5·18 정신의 세계화를 위한 절호의 찬스다. 이 기회에 각종 학술대회를 유치하고, 5·18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 발간 등이 시급하다. 가치 확산에 앞서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 역사의 격량 속에 몸을 내던져야만 했던 5·18 피해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그것이다. 일시적 현금 보상과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지만 일부는 아직도 육체·정신적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광주에서는 상당수의 ‘5·18 정신 이상자’들이 거리를 떠돌기도 했다. 대부분 머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실성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그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가산 탕진과 가정 해체는 또다른 2차 피해자를 낳고 있다. 정신적 장애를 앓거나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생활 대책이 시급하다. 지역사회의 정서적 통합과 가치 공유도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5·18을 품격 높은 브랜드로 활용할 수 있다. 장년기에 접어든 만큼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 박만규 전남대 5·18연구소장(역사교육학과 교수)은 “5·18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나눔의 공동체 실현이 핵심이고 저항의 밑바닥에는 민주·인권·평화란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런 보편적 가치를 확산하고 인류 평화를 꾀하는 것이 궁극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중·고 역사교과 독도서술 강화

    중·고 역사교과 독도서술 강화

    중·고등학교 역사 과목에서 독도에 대한 교육이 한층 강화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기하는 등 잇따르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고, 아이들이 독도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2일 독도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역사 교육과정’을 확정,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2009 개정 교육과정’ 개편으로 공통교육 과정이 ‘초1~고1’(10년)에서 ‘초1~중3’(9년)으로 바뀌고, 고교 전 과정이 선택제로 전환되는 등 역사교육에 대한 비중이 낮아져 자칫 소홀히 다뤄지기 쉬운 독도 등 영토 관련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교과부는 설명했다. 개정 역사 교육과정에 따르면 중학교 ‘역사(하)’의 한국 근현대사 3개 영역을 4개 영역으로 늘리고, 2개 영역에서 독도 관련 서술을 강화하도록 했다. 먼저 ‘근대국가 수립 운동’ 영역에서 “일제 국권 침탈 과정과 이에 맞선 국권 수호운동의 흐름을 파악한다. 특히 일제에 의한 독도 불법 편입의 부당성과 간도협약의 문제점을 인식한다.”고 학업성취 기준을 제시했다. 또 ‘대한민국의 발전’ 영역에서는 “독도를 비롯한 영토 문제와 주변국과의 역사 갈등 등을 탐구해 올바른 역사관과 주권의식을 확립한다.”고 명시했다. 고등학교 역사는 ‘한국사’로 명칭이 바뀌면서 근현대사를 8개 영역에서 7개로 줄였다. 영역별로 ‘근대국가 수립 운동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편에서는 “국권 피탈 과정과 일제의 침략에 맞선 국권 수호운동의 흐름을 파악한다. 특히 일제에 의한 독도 불법 편입 및 간도 협약 관련 자료를 조사해 문제점을 인식한다.”고 교육기준을 제시했다. 또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제정세의 변화’ 영역에서는 “독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영토 문제, 역사 갈등, 과거사 문제 등을 탐구해 올바른 역사관과 주권의식을 확립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과서 편집진은 확정된 교육과정과 성취 수준에 맞춰 교과서를 편찬하게 된다. 이번에 확정된 역사 교육과정은 고등학교는 2011학년도, 중학교는 2012학년도부터 반영된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제자리 찾은 삼전도비

    제자리 찾은 삼전도비

    우리민족의 수난을 상징했던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三田渡碑)가 제자리를 찾는다. 서울 송파구는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고증을 거쳐 삼전도비가 최초 세워졌던 석촌호수 서호 언덕(송파구 잠실동 37)으로 이전해 25일 준공한다고 22일 밝혔다. 삼전도비는 조선 인조 17년(1639)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청나라의 승전비다.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나라군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하였다는 내용이 한쪽 면에는 한문, 다른쪽 면에는 만주문·몽골문으로 비석 하나에 3개국 문자를 사용해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그러나 1895년 고종의 명으로 땅에 묻혔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워졌고 여러 차례 옮겨지는 등 고난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07년 붉은 페인트로 훼손되는 등 정당한 문화재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했다. 송파구는 2003년부터 삼전도비 이전에 대해 문화재청 심의를 요청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원위치에 대한 정밀한 고증이 없는 한 이전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고수해 왔다. 이에 송파구는 서울학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3월 원위치 고증을 제출했다. 연구소는 1938년 간행된 ‘속경성사회’에 수록된 ‘경성부근 명승 사적 안내도’를 통해 삼전도비의 원위치를 밝혀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전도비의 원래 위치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187로 인조가 항복의 예를 올렸던 수항단이 세워졌던 자리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는 현 롯데월드 바로 밑 석촌호수 서호의 북동쪽 부분 물 속으로, 그 자리에 다시 비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최초 위치에서 가장 근접한 지역으로 문화재청의 조건부 승인이 이뤄졌다.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동안 진행된 이전작업은 풍화로 마모된 비를 보호하기 위해 현대적인 양식의 보호각을 설치하고 균열된 비신을 보수하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송파구는 삼전도비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문화재 지킴이를 배치해 훼손을 막을 방침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삼전도비가 자라나는 세대에 국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국사를 국가계승사로 봐야 동북공정 대응”

    “국사를 국가계승사로 봐야 동북공정 대응”

    모두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부분을 건드린 책이 나왔다. 서의식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한국고대사의 이해와 ‘국사’ 교육”(혜안 펴냄)이다. 제목에 국사라는 단어에만 작은 따옴표를 해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서 교수가 주장하는 핵심은 국사를 ‘내셔널 히스토리(National History)’라 번역한 뒤 이를 민족주의(Nationalism)로 연결짓지 말고, ‘역대국가계승사(The history of past successive states in Korea)’로 개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 즉 스테이츠(states) 개념이다. ●“기존학계 문제 사회발전단계론서 비롯” 그동안 고조선·고구려 하면, 단군신화·광개토대왕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본격화되면서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기존 학계의 대답은 영 신통치 않았다. 기껏해야 중국의 선진적 ‘국가’ 문명이 흘린 단물을 먹고 자란 ‘부족’ 문명이나 ‘성읍’ 문명에 불과했다는 정도다. 조금 더 세련된 논의도 나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변경사’(임지현 한양대 교수)나 ‘요동사’(김한규 서강대 교수) 같은 개념이 나오더니, 아예 지금 한국의 선조는 신라이기 때문에 고조선·고구려 따위야 역사책에서 지워버려도 된다는 ‘한국사’(이종욱 서강대 교수) 개념도 나왔다. 반박하면 ‘과거의 영광을 과장하는 반실증적인 국수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현대 중국은 청에서 나왔고 청의 전신은 후금, 거슬러 올라가면 요금, 그 이전은 발해,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와 고조선이니, 만주는 물론 한반도 이북은 중국의 역사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서 교수는 ‘역대국가계승사로서의 국사’라는 개념으로 이런 흐름에 반대한다. 그가 보기에 기존 학계의 문제는 사회발전단계론에서 비롯됐다. 발전단계론은 ‘원시공산-고대노예-중세봉건-근대자본’으로 간다는 마르크스 이론이나, ‘씨족-혈족-부족-국가’로 나아간다는 인류학적 이론 두 가지다. 흔히 말하는 ‘주류사학계의 통설’은 일본이 주장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받든 뒤 이런 발전단계론을 받아들이면서, 남들은 버젓한 국가를 세우는 기원전후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돌도끼 든 원시부족이 뛰어다녔다고 설정했다. 이들 주장을 검토, 비판하는 과정에서 서 교수는 경제사학계의 거두 백남운(1974년 작고), 국사학계의 태두이지만 논란도 끊이지 않는 이병도(1989년 작고),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을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정배, 민족사학의 대부 이기백(2004년 작고) 등 흔히 주류사학계 원로라 꼽히는 인물들의 주장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런 작업 끝에 서 교수는 고조선과 고구려 초기사회는 ‘족장 혹은 군장(chiefdom)’ 사회가 아니라 어엿한 ‘국가(state)’였다고 주장했다. 고대사 논의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매혹적인 논리다. 서 교수는 국사교과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도 분명히 해 둔다. “고대사 연구가 어렵다고 고고학자들이 발굴유물을 토대로 고대사 부분을 씁니다. 그러니 구석기 시대가 교과서에 들어가요. 한반도라는 땅 자체가 형성된 것이 1만년 전인데 수만년 전인 구석기시대 얘기를 왜 씁니까. 그건 인류 보편사지요. 국사로서의 교과서를 만든다면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부터 쓰면 됩니다. 우리가 위대했다는 게 아니라, 과거 우리나라에 어떤 나라들이 들어섰느냐만 써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신라는 고조선 유민들이 만든 나라” 서 교수의 전공은 신라사다. 고대사 전반으로 넓힌 이유는 신라가 미개한 부족연맹체에서 시작됐다는 이병도의 ‘사로6촌설’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미개한 족장이 아니라, 고조선에서 남하한 유민이 만든 각국의 수장이 모인 게 바로 신라의 탄생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신라사 전문연구서도 7월쯤 낼 계획이다. 현실적 이유도 있다. “지켜보기만 하니 너무 답답합니다. 요즘 독도가 이슈인데, 그래도 독도 문제는 싸울 논리라도 있습니다. 동북공정을 보세요. 북한, 간도, 만주 다 잃어버리게 생겼는데 나설 수 있는 논리가 없습니다. 어느 게 더 절박합니까.” 절박함이 쉬 풀리긴 어려워 보인다. 서 교수마저 서문 말미에 “생각은 거칠고 글은 투박하지만 필자의 의중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해 뒀다. 저자의 의례적인 겸손이라고 하기에는 기존 사학계의 벽이 여전히 높아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강북구 삼각산 순례길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 강북구 삼각산 순례길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강북구에는 순례길이 있다.’ 서울 강북구 삼각산은 백두·금강·묘향·지리산과 함께 오악으로 꼽힌다. 순례길은 삼각산을 끼고 도는 3.4㎞ 구간에 걸쳐 있다. 아직은 미완성이다. 그럼에도 순례길은 등산로 곳곳에 유적지와 문화재 등이 산재해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통일교육원 입구서 시작 삼각산 순례길은 통일교육원 입구에서 시작된다. 초행길인 방문객을 위한 배려가 엿보이는 동반자 같은 표지판이다. 이어 졸졸 흐르는 대동천 물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인간이 만든 소리가 아닌 자연이 빚어내는 음악이 곳곳에서 재잘거린다. 지난가을 화려한 삶을 마감한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인 숲길을 거닐고, 띄엄띄엄 만나는 목재다리를 건너고, 두메산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섶다리와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이 길에서는 유난히도 굴곡 많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삼각산 자락엔 일제 치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장렬히 산화한 이준 열사를 비롯해 3·1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 등 우리나라 독립과 건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묘역 16기가 흩어져 있다. 안내를 맡은 이중인 강북구 테마공원기획단 주임은 “이곳에 안장된 애국지사 16명은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대부분 국민장이나 사회장을 치른 애국지사들”이라면서 “4·19민주묘지와도 가까워 청소년들이 애국지사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시대정신을 배우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4·19 민주묘역이 한눈에 보광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4·19민주묘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른다. 전망데크에 서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숙연해지는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순례길의 끝자락엔 솔밭공원(보광사 입구)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해도 좋다. 서울에서 유일한 평지형 소나무 군락지로 100여년생 소나무 1000여그루가 집단 자생하고 있다. 순례자의 쉼터 같은 곳이다. 구는 올해 안에 솔밭공원부터 손병희 선생 묘역까지 2.2㎞ 등 모두 6.2㎞ 순례길을 추가로 조성한다. 산행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줄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우리콩 순두부집(995-5918)에서 먹는 순두부와 콩비지 정식(각 6000원)은 사찰음식처럼 정갈하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열린세상] 국사가 선택인가/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사가 선택인가/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역사는 과거의 발자취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러기에 미래에 대한 올바른 전망은 과거에 대한 지식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사는 민족이 나아갈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작업의 전제가 되어 왔다. 지난날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영광과 고난의 길에 대한 이해는 오늘의 도전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정신적 힘과 용기의 원천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미래형 교육과정’이 새롭게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미래형 교육과정을 통해 교육 받은 세대들에게 과연 올바른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시키기 위한 제도상의 정당한 배려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는 중학교 과정과 연계하여 고등학교 1학년에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를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시행해 보지도 않은 채 작년 말에 개정 발표된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국사 과목을 고등학교 1학년 선택과목으로 변경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단계에서는 국사과목은 아예 없고 동아시아사와 서양문화의 이해를 위한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역사학계 및 역사교육학계가 강력히 반발하자 뒤늦게 교육 당국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역사’를 ‘한국사’라는 과목명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이제 고등학교 국사과목은 학교 당국이나 학생들이 선택해야 하는 여러 사회과목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다. 이는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교육하던 기존의 제도와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그런데 국사는 다른 사회과목과는 달리 학습량이 많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가 어려운 과목이다. 국사 과목이 지닌 이런 속성을 감안해 종전의 교육과정에서는 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었다. 돌이켜 보건대, 개항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가장 중요시되던 과목은 국어와 국사였다. 국사는 나라의 발전을 위한 정신적 기초를 다지는 데에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과목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할 때문에 이른바 개발독재 시대에도 국가는 국사교육을 강조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준비를 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입시에 불리한 과목은 교육현장에서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국사 과목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학교 당국이나 수험생들은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당연히 국사 대신에 다른 사회 과목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결국 현재의 미래형 교육과정 아래에서는 단 한 번의 국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오늘날 국사교육은 광복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현재 교육 당국에서는 국사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반드시 선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국사교육은 기존의 교육과정 단계보다도 월등히 후퇴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사교육의 후퇴는 역사교육 전반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형 교육과정’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라도 국사교육을 종전의 위치로 복구하려는 작업이 당장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개항기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사교육이 걸어온 역사적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끈 정신적 기초로서 국사교육이 발휘했던 성과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또한 국사교육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발휘할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을 충분히 평가해야 한다. 국사는 우리 인문정신의 원천 가운데 하나이다. 건강한 인문정신을 기초로 할 때 오늘과 내일의 우리 사회는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게 될 터이다. 국사교육은 소홀해지고 있는 인문교육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에서 국사교육은 필수화되어야 한다.
  • “한·일 국민 1% 서명운동 추진”

    “한·일 국민 1% 서명운동 추진”

    “900회까지 오니까 먼저 간 사람들이 생각나. 1000회까지는 안 갔으면 좋으련만….” 6년 만의 강추위가 서울을 강타한 13일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9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모인 길원옥(82), 강일출(82) 등 4명의 할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지만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수요집회를 잊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 온 서로를 격려하고 앞으로도 꿋꿋이 힘든 싸움을 진행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1992년 1월8일부터 진행 수요집회는 1992년 1월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만행에 대한 역사교육 시행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1995년 1월 발생한 일본 고베 지진 때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매주 진행됐다. 900회 수요집회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40여개 단체가 참가하거나 연대해 힘을 보탰다. 일본 도쿄·후쿠오카·오사카·나고야·교토와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 파리, 미국 워싱턴·LA·뉴욕에서도 연대집회가 열렸다. ●“국회서도 앞장서줬으면” 윤미향 상임대표는 “앞으로는 일본 정부로 하여금 관련 법을 제정해 배상하고 사과하도록 하는 데 힘을 쏟겠다.”면서 “이를 위해 한국 국민의 1%인 50만명, 일본 국민의 1%인 100만명, 도합 150만명의 서명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캐나다인 안젤라(36)는 “900차 집회는 슬픈 기념일이다.”면서 “아직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현숙씨도 “여성으로서 할머니들에게 감사한다.”면서 “할머니들 덕분에 여성의 인권이 향상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에는 87명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다. 길 할머니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집회에 직접 찾아와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면서 “시민들 덕분으로 늙은 몸이지만 하루하루 지탱해 나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강 할머니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앞장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사설] 개정교육과정 역사 외면 위험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 1학년 ‘역사’ 과목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고, 2~3학년 선택과목에서 ‘한국문화사’를 제외하는 내용의 ‘2009 개정교육과정’을 이달 중 확정하기로 한 데 대해 역사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번 개정교육과정이 역사교육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그대로 실행될 경우 역사교육이 파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현행 일선 고교의 역사교육은 1학년은 ‘국사’를 필수로, 2~3학년은 ‘한국근현대사’와 ‘세계사’를 선택과목으로 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2007 개정교육과정’에 의해 근현대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를 필수로, 2~3학년은 ‘한국문화사’ ‘동아시아사’ ‘세계역사의 이해’를 선택과목으로 적용할 예정이었다. ‘2007 개정교육과정’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역사 인식의 확립을 위해 역사교육 강화를 핵심으로 개정된 것인데 시행도 되기 전에 폐기될 처지가 돼 버렸다.‘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고교 시절 내내 한번도 한국사 교육을 받지 않고 졸업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중학교 때 배우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가 정규 교육에서 받는 최종 역사교육이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올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정립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오로지 학생 개인의 흥미와 노력 여하에 역사교육의 운명을 내맡긴다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발상이다.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역사학계의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여 역사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개정안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 통영·거제시 위안부 할머니 기록물 만든다

    통영·거제시 위안부 할머니 기록물 만든다

    경남 통영·거제시가 고향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생활상 등을 담은 영상 기록물이 제작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은 9일 통영·거제가 고향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의 영상과 사진을 120분 분량의 DVD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지난 6월 말부터 촬영을 시작해 9월까지 작업을 마친 뒤 현재 영상 편집을 하고 있다. 기록물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시민모임이 2007년부터 해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금마련 인권영화제’ 등을 개최해 모은 성금으로 충당한다. 2002년 8월 시민모임이 결성됐을 때 통영·거제지역에는 위안부 할머니 8명이 생존해 있었으나 지금은 김복득(92) 할머니 등 3명만 생존해 있다. 4명은 고령과 지병 등으로 세상을 떠났고 1명은 울산으로 이사를 했다. 제작팀은 생존한 할머니들을 방문해 증언을 채록하고 하루하루 일과를 카메라에 담았다. 2007년 8월 별세한 이순선(당시 86세)·김기아(당시 83세) 할머니 등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도 생전 사진이나 영결식 영상물들을 수집해 정리했다. 전국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령으로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당시 일본군 만행을 기억하고 체험한 증언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송도자 시민모임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그분들이 남긴 증언과 힘겨웠던 생활들이 기록으로 남아 역사교육의 자료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통영·거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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