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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비상걸린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

    일본 오타와라시의 교육위원회가 어제 후소샤판 역사·공민 교과서를 정식으로 채택, 시내 12개 중학교 학생 2300여명이 내년 봄부터 왜곡된 역사를 배우게 됐다. 게다가 일본 전국 584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교과서를 선정한 오타와라시가 후소샤판을 채택한 것이 다른 지구에도 영향을 미쳐, 역사왜곡 교과서의 채택률이 4년전보다 크게 높아지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중국 등의 인접국과 일본내 양심세력이 손잡고 벌여온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찬한 후소샤판 교과서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조선인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등 일본과 인접국간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중국 등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부터 다시 힘을 모아 왜곡교과서 채택률을 최소로 낮춰야 한다. 이와 관련, 국내에서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줄어든 듯이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는 일본내 저지운동 광고에 쓸 비용을 모금하고 있는데 국민 참여가 적어 목표액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주에 3억원을 모았어야 하는데 어제까지 모인 금액이 6000만원가량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3000만원은 오타와라시의 후소샤판 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진 어제 하루 모금된 것이다. 국민 모두가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해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 12개 일본 중학교 ‘후소샤版’ 첫 채택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도쿄 북부 도치기현 오타와라시의 시립중학교 등 12개교(학생 2300명)가 내년부터 4년간 극우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편찬한 후소샤판 역사·공민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 오타와라시 교육위원회는 13일 비공개 회의를 열어 새역모가 편찬한 후소샤판 역사·공민교과서를 교육위원 전원일치(5명 중 1명 결석)로 공식 채택했다. 회의장밖에선 50여명의 시민들이 반대를 외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내년 봄부터 일본의 1만 1134개(2003년 5월 현재) 중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와 관련,580여개 일본 교육위원회 차원에서 후소샤판을 채택한 것은 오타와라시가 처음이다.taein@seoul.co.kr
  • ‘왜곡’후소샤 역사교과서 채택 할 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도쿄 북쪽 지기현 오타와라시의 7개 시립 중학교(학생 1660명)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편찬한 후소샤 역사교과서를 채택, 내년 봄부터 사용할 것 같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오타와라시 ‘교과서채택협의회’의 조사원회는 최근 8종의 교과서를 검토한 결과 2종을 추천하면서 그 중 후소샤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협의회는 12일 회의를 열어 교과서를 선정한 뒤 13일 시 교육위원회로 넘겨 채택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후소샤 교과서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위안부와 강제연행을 부인, 양심세력으로부터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현재 도쿄 도립 양호학교와 중·고 일관교, 아이치 현립 양호·노인학교와 중·고 일관교, 사립 8개교 등 전국적으로 19개 학교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오타와라시처럼 한 지자체 전체 중학교가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이 시는 중학교 공민교과서도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일본의 1만 1134개(2003년 5월 현재, 전체 학생수는 374만 8319명) 중학교에서 내년 봄부터 4년간 사용되는 교과서를 채택하는 해이다.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서는 3∼54개로 나뉘어진 ‘지구’마다 설치된 ‘교과서채택협의회’가 교과서를 선정하며 지구내 교육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8월 말까지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taein@seoul.co.kr
  • ‘日 역사교과서 근대사인식’ 학술회의

    역사연구단체협의회는 ‘일본교과서의 근대사 인식과 역사교육’을 주제로 8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역사연구단체협의회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역사 관련 학회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은 일본에 침략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사례 발표다. 팜 꾸옥 수 베트남 하노이국립대 교수, 폴 크라토스카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등이 베트남·싱가포르·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다룬다. 이들 나라는 서구제국의 오랜 지배를 받은 경험 때문에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구호에 열광했던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서구제국보다 더 잔인한 일제의 통치방식에 곧 환멸을 느꼈다. 주최측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일본 역사교과서가 가지는 문제점을 확인하는 동시에 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역사교육을 전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평화 연대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역사왜곡교과서 채택저지 모금운동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 왜곡 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을 벌이기 위한 국민 모금운동을 전개한다고 3일 밝혔다. 목표 모금액은 10억원으로 이 단체는 성금이 모아지는 대로 이 단체 명의로 일본 내 신문광고를 내는 데 주로 쓸 계획이다. 모금 대상은 교육계, 언론사,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정치권을 비롯해 전 국민이며 구체적인 모금 일정과 방법은 4일 이 단체의 홈페이지(www.japantext.net)와 5일자 조간신문 등에 게재된다. 단체 관계자는 “1단계로 3억원을 모아 늦어도 9일까지 일본 내 주요 일간지에 새역모 교과서를 출간한 후소샤의 역사ㆍ공민교과서 채택을 저지하자는 광고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상) 태국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상) 태국

    “당신은 아시아주의에 관심이 없어도 아시아주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트로츠키의 경구를 살짝 빌린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주의라면, 우리는 곧 중화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한국을 연이어 흔들어온 동북공정과 역사교과서 왜곡이 그 가운데 있다. 따라서 마냥 친하게 지내자고 하기엔 찜찜하고, 그렇다고 허구한 날 싸우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이같은 고민과 답답함을 문화적 코드로 풀어보자는 단체가 있다. 바로 아시아문화네트워크(ACN)다. 문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계 종사자들의 모임인 ACN은 중국과 일본의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식민지배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아시아국가들간 평등한 연대를 꿈꾼다. 궁극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는 ‘아시아작가회의’의 결성이다.ACN은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지난 14일부터 25일까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동남아 4개국을 돌며 현지 문화계 인사들과 세미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소설가 방현석·김남일·이명랑씨, 영화제작자 차승재·김선아씨, 평론가 김재용·박수연씨, 연극인 김지숙씨 등이 참가했다.11일간 다루어진 주요 내용을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란 제목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촌부리(태국) 조태성특파원|태국에서 고속도로로 이동하다 보면 대형 외제차의 물결과 다국적기업들의 화려하고 거대한 광고간판이 시선을 끈다. 하지만 이같은 화려함의 이면에는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다. 태국인들은 외제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저임금을 강요받고, 저임금으로 그 외제차를 사려니 은행에 장기대출로 빚을 낸다. 허름한 주택과 상가건물이 화려한 광고간판을 떠받치고 있는 풍경, 이게 바로 태국의 상징이다. ●‘저항의 역사´ 없는 태국문학 문제의식 없어 태국 부라파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한 태국 학자·문인들에게서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묻어났다. 태국 문학을 설명한 평론가 차마이폰 샹끄라장이 가장 직설적이었다.“태국도 차라리 식민지가 된 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친 경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실제는 식민지인데 형식만 독립국이다 보니 드러내놓고 저항해본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태국 문학에서 강렬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이 있는 작품을 찾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게 차마이폰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문제를 ‘까발려 놓고’ 고민하는 한국문학이 부럽다고까지 했다. 평론가이자 실파콘대 교수인 나르밋 썩쑥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태국의 군부독재를 “오직 경제발전만 내세우고 ‘독재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유포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태국의 경제도 비판했다.“외국기업을 들이기 위해 우리 노동자의 임금은 형편없이 깎았습니다. 회사는 탄탄할지 몰라도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그는 서구의 강대한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애국주의를 넘어선 아시아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나르밋은 ‘관이 안 보이면 눈물도 안 난다.’는 태국 속담을 들어 이제는 아시아주의를 외치기만 할게 아니라 구체적인 연대를 계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낙관적이었다.“미주와 유럽은 이미 나프타와 EU로 통합하고 있어요. 아시아도 뭉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지역 내 패권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싸워봤자 공존의 이익만은 못하다는 깨달음을 언젠가는 얻을 때가 있을 겁니다.” 나르밋은 그 뿌리로 동남아 국가들간 협력체인 아세안, 아세안과 동북아국가들을 묶는 아세안+3를 언급했다. ●아시아작가 연대해 패권주의와 맞서야 아시아주의에 대해 동남아와 동북아간에 생각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질문해봤다.97년 IMF위기 뒤 일본이 AMF를 구상했지만 일본의 패권주의를 우려한 주변국들의 미지근한 반응과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상실을 걱정한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예를 들었다. 이에 대해 나르밋은 “장기적으로는 아시아가 결국 뭉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대답을 다시 내놨다. 그는 “내가 너무 낙관적인가요?”라며 빙긋이 웃고 나서 “질문의 의미와 무게는 알겠지만 나는 느긋하고 낙천적인 태국인의 감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대신 나르밋은 올바른 아시아주의를 위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열강에는 3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군사력, 경제력, 유엔에서의 역할입니다. 중국은 이미 하고 있고 일본은 유엔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한국이 이들 국가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주화투쟁과 경제성장의 역사를 볼 때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가는 한국뿐입니다.” cho1904@seoul.co.kr ■ “10년전 한국학 도입… 드라마·영화 큰 인기” |촌부리(태국) 조태성특파원|부라파대학은 10여년째 한국학을 특화한 대학이다. 한국어과가 있는 태국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학센터(Korean Studies Center·KSC)가 있는 이유다. 그러나 2003년 출발한 KSC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문학·역사로 넓히지 못하고 아직 어학에 치중하고 있다.KSC를 이끌고 있는 타샤니 탄 타와닛 교수를 만났다. 그녀는 교환교수로 한국에서 2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태국에서 한국학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달라. -10여년 전부터 한국학이 도입됐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교수중심, 언어중심이었다. 그러다 1995년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코리아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한국어센터가 2000년 설치됐고, 2003년 한국어 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KSC로 바뀌었다. ▶왜 한국인가? -원래 한국과 태국은 좋은 관계였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한 뒤 많은 한국 회사들이 태국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태국인들의 관심이 늘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소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태국의 문화 토양은 무엇인가? -한국과 태국은 물론 다르다. 무엇보다 태국은 200여년간 전쟁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일본, 중국의 간섭을 오랫동안 받았다. 이 때문에 태국인이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느긋한데 한국인들은 인내심은 있지만 성급하면서 동시에 정확하다. 이런 성향 차이 때문에 태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마찰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아시아인으로서의 공통점은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 영향을 받고 윗사람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췄다는 것, 그리고 불교문화 등은 비슷하다. ▶드라마나 영화로만 한국을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편식 아닌가. -물론이다. 지금 인기 있는게 일종의 로맨스물인데 이것으로는 한국을 잘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깊은 이해를 위한 첫걸음이라 봐야 한다. 로맨스물만 범람하는게 좋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면 일단 성공이라 봐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한국학 석사과정을 만들 생각이다. 한국학에 대한 연구·개발·관찰이 더 필요하고, 연구가 쌓이면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해 교류하고자 한다. 교환학생, 교환교수도 더 늘리겠다. 문학과 역사뿐 아니라 전통음악, 미술 등 한국문화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싶다. cho1904@seoul.co.kr ■ “한국소설 번역가가 꿈… 송승헌 열성팬” |촌부리(태국) 조태성특파원|태국 대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부라파대 학생들 모두 하얀 와이셔츠에 남색 바지와 치마를 입었다. 교복이야 그렇다 쳐도 여학생들은 왜 치마만 입느냐고 물었다. 성차별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에는 바지와 치마를 같이 입는 여학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태국인들이 순응적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들도 여자는 치마만 입는다고 했다. 그제야 둘러보니 과연 그랬다. 그래도 유심히 뜯어보니 멋은 포기하지 않았다. 남학생들은 바지통에서 약간씩 차이가 났고 웃옷 디자인도 조금씩 다르다. 여학생들은 치마 길이나 타이트한 정도, 트임 부위가 제각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멋내는 건 젊은이들의 공통점이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무렵, 옆자리에 있던 앳된 여학생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또렷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이름은 핌파카 께쎈, 한국명은 ‘소은’이라 했다. 나이는 18살, 부라파대 한국학과 2학년이다. 한국어를 배운지 1년도 안 됐다는데 제 할 말은 꽤 한다. 다만 경상도 억양에다 다소 빠른 기자의 말투는 힘겨워했다. 그래서 꺼내든 게 한국어 사전. 서로 말하고 싶은 단어를 짚어가며 잠깐 대화를 나눴다. 한국학을 선택한 이유는 장래희망이 ‘한국소설 번역가’이기 때문이다.‘가시고기’,‘가을동화’를 너무 감명깊게 봤고, 좋아하는 배우로는 단연 송승헌을 꼽았다. 한국의 대학은 어떤지, 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더니 이메일까지 먼저 적어줄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런데 사진 찍자고 하니 부끄러운 듯 꺄르르 웃으며 친구 옆에 숨는다. 꼭 18살이다. 나중에 교직원 설명을 들으니 한국학 역사가 오래된 데다 가까이에 관광지인 파타야가 있어 한국인들에게 유독 적극적인 게 부라파대 학생들만의 특징이라 한다. 은근히 뿌듯했던 총각 기자, 그만 김샜다. cho1904@seoul.co.kr
  • 盧대통령 고이즈미 - 한·일정상 ‘역사인식’ 발언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일 청와대에서 역사인식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전한 회담 결과와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내용을 토대로 정상회담 대화를 재구성했다. # 역사교과서 왜곡 노 대통령 2001년에도 교과서 문제가 매우 심각했는데 채택률이 낮아 그냥 넘어갔다. 올해는 여당인 자민당이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지원하고 있지 않으냐는 언론 보도도 있어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초등·중등 교육에서 역사교육은 국가의 가치체계를 교육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중등교육에서 자유민주주의라든지 인권·평화·평등 등 국제사회에서 검증된 보편적 가치체계를 교육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정부는 교과서 검인증 제도에 개입할 수 없고, 저자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우리 국민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왜곡된)역사책을 읽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떤 관념과 가치관을 갖게 되는지에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정당한 이유가 있다든지, 큰 잘못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고이즈미 총리(기자회견에서)한국민의 심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그 위에서 미래를 위해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양국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 야스쿠니 신사참배 고이즈미 총리 나의 야스쿠니 참배가 과거 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전쟁에 참가한 많은 일본인을 추도하고 앞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위한 것이다. 과거 전후 60년 동안 일본은 비핵화 원칙과 방위문제에서 주변국가들에서 위협을 준 적이 없다. 군사력을 억제하면서 경제발전을 추구해 왔다. 일본이 얼마나 평화지향적인 정책을 펴왔나. 노 대통령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면 거기에는 과거의 전쟁을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러운 것처럼 전시해놓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과거의 전쟁과 전쟁영웅을 미화하고 이런 것을 배운 나라가 옆에 있고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을 때, 여러번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 이웃 나라 국민들은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노 대통령 진정한 평화를 달성하려면 제도적 평화의 틀을 만들고 평화를 지향하는 공동의 인식을 가져야 하며,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와 내가 자주 만나 사진도 찍고 양국의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역사인식에 대한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고는 조그만 계기가 있어도 양국관계는 폭발하고 불신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 같은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계실 때 한국·중국·일본관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마음 속에 대결전선이 있는 한 진정한 미래의 평화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결전선을 없애기 위해 역사의 찌꺼기를 없애야 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반환과 관련,“신사측은 남북간에 반환처에 관한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일본 정부에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면 반환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북의 정부당국이 조속히 조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100년 전 약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온 임진왜란 승전비로, 정부가 반환협의를 위해 북측에 문화재회담을 제의해 놓은 상태다. 마치무라 외상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16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서는 “한국측이 현 상황인 채로 관세협상을 개시하는 데 신중한 자세”라면서 한국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한·일관계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초 독도문제가 발생했다. 독도문제로 양국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는가. -2005년은 아직 반환점에 오지 않았다. 양국간의 교류를 이어감으로써 우정의 해를 보낸 양국민이 올해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단히 의미가 깊은 한해였다.”고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한이 예정돼 있다. 한·일 관계개선에 좋은 복안이라도 있는가. -올해 전반부는 양국관계가 곤란을 겪었다. 양국이 이런 곤란을 뛰어넘어,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공동성명에 있는 것처럼 ‘동북아시대를 향한 한·일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간에 더한층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관계를 한때의 긴장상태에서 평정한 상황으로, 나아가 양국의 우호협력을 한층 확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다. 지난달 도쿄에서 ‘한반도 출신 옛 군인·군속 및 민간징용자 등의 유골문제에 관한 한·일협의’를 여는 등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착실히 대응하는 것도 그러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항구적인 무비자 전환 같은 성과를 기대해도 좋은가. -일본 각지에서 ‘가깝고 가까운 나라’로부터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의 비자면제(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 중 시한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항구적 면제에 대해 검토하겠다. ▶한·일 FTA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나. -협상 재개에는 서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두 정상간에 확인된 연내 실질합의를 향해 계속해서 한국과 협력해 갈 생각이다. #역사문제 ▶(주변국 침략과 관련해)일본은 독일보다 사과를 더 했다고 발언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일본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한·일기본조약 등에 따라 국가간 배상 등의 문제를 일괄처리했으나, 독일은 동서로 분단돼 있어 우리같은 국가간 배상문제 등을 일괄처리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 일본과 독일의 대응을 단순히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어떻게 보는가. -총리 본인이 설명한 대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참배 때마다 ‘부전(不戰·전쟁을 하지 않는다)’을 맹세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미화나 A급 전범을 위한 참배는 아니다. #국제관계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은 국제사회,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일본과 여러 가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해주도록 부탁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을 밝혔는데, 한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실제 외교정책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 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관한 중요한 과제에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일본, 한국 및 미국의 긴밀한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부 스스로가 ‘균형자론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 것’임을 밝힌 점에 유의하고 있다. #북한 문제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미국이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은 미국의 무력행사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관계국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중시해 왔다.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한·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이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핵문제의 악화를 상정해 관계국의 구체적인 대응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일 수교협상의 재개 전망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대북 제재의 목소리가 일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북 협상의 조건은 무엇인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성실한 대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으로서는 생사가 불분명한 납치피해자와 관련해 생존자의 즉시 귀국 및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촉구해 가겠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정부 “우리땅… 거론땐 단호대처” 한·일 양국이 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제 선정 작업에서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도 문제의 경우 정부는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분명한 우리나라 영토인 만큼 의제로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14일 열린우리당의 인터넷방송에 출연,“이번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야스쿠니 문제, 다음에 역사왜곡, 세번째 독도문제”라면서 “특히 독도문제는 명백하게 우리 영토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의 발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독도 문제를 얘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본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단호하게 받아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교과서 역사왜곡과 관련, 정부는 이번에 정식의제로 올려 일본의 무성의를 분명히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일본은 가능하면 의제에서 제외했으면 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우리 정부는 중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장관은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인터넷방송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검토를 약속한 대로 제3의 추도시설 문제를 검토하도록 정상회담에서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마치무라 외상 ‘왜곡 교과서’ 검정때 문부상 역임 마치무라 노부타카(60) 외상은 중의원 7선의 집권 자민당 내 중진이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 통상산업성에 들어가 13년간 공직생활을 했다.1983년 정계에 입문해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해당되는 문부상을 두 차례 지냈으며, 외무성 정무차관과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역임했다. 2001년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지난해 9월 개각의 외교·안보팀 개편 때 외상으로 발탁됐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과제를 떠안고 있으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 독도,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이 겹쳐 유엔에서의 영향력이 큰 중국, 한국의 반발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역사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4월 “한국인에게 대단한 아픔을 드린 데 반성한다.”고 밝히고 5월 뉴욕의 유엔개혁회의에서는 “일본은 역사를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독일보다 훨씬 여러 번, 더 많이 사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4월 일본 NHK에 출연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니 이런 바보같은 일도 없다.”고 말해, 외교통상부가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강력 항의하는 공식논평을 낸 바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최근 한일분쟁 일지 ▲2월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상정. ▲2월25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 “독도는 일본 영토” 발언. ▲4월5일 일본 문부성, 왜곡 교과서 검정. ▲5월11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한국과 북핵 정보 공유 불가” 발언. ▲6월1일 신풍호 한·일 경비정 대치 사건. ▲6월11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원래 없었다.”발언.
  • 한·일관계 ‘溫故知新’

    조선시대 한·일문화교류의 첨병 역할을 한 조선통신사의 활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조선통신사학회가 공식 출범한다. 조선통신사학회 창립준비위(위원장 강대민 경성대 교수)는 국내외 학자 100여명과 일본총영사, 부산시 관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17일 부산시청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16일 밝혔다. 이 학회는 최근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됐다. 이 학회는 그동안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통신사의 복원작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교류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하게 된다. 창립총회에 이어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에서는 미국 일리노이대 로널드 토비 교수와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주제발표 및 토론회가 있을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日 과거청산 5개사안 한일정상회담때 제시”

    |도쿄 이춘규특파원|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14일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상황을 묻자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를 언급,“일본과 역사적 인식이 다르다. 일본측의 대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 나종일 주일대사는 13일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와 만나 “교과서 문제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불안정한 일이 생기고 있다.”고 이 문제가 회담 일정과 의제를 확정짓지 못하는 원인임을 시사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 청산’을 위한 5가지 메뉴를 준비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이날 전했다.5가지 메뉴는 ▲제2기 역사공동연구위에 발족과 연구대상에 역사교과서 포함 ▲강제징용자 유골반환 ▲한국 거주 피폭자 지원 ▲사할린 거주 한인 지원 ▲북관대첩비 반환 등이다. 신문은 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과거 청산’을 위한 이같은 일본 정부의 새로운 대처를 한국측에 전달,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모색한다는 구상이라고 전했다. taein@seoul.co.kr
  • 막판까지 고민하던 韓·日정상회담 20일 연다

    막판까지 고민하던 韓·日정상회담 20일 연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오는 20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역사교과서 왜곡 등 양국 현안과 북핵문제 등을 논의한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14일 발표했다. 김 대변인은 이날 “정상회담에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력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할 것”이라면서 “정상간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통해 올바른 한·일관계를 논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12월 일본의 가고시마에서 열린지 6개월만이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7번째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달 초 모스크바에서 한·중, 한·러 정상회담과 지난주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이뤄지는 것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당사국 정상 회담의 마무리 성격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에 대한 일본의 자세변화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이 그동안 의제와 장소 등을 놓고 협의를 한 끝에 고이즈미 총리가 20일 서울을 방문, 당일 정상회담을 갖고 21일 오전 일본으로 떠나는 1박2일 방한일정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日유족회 야스쿠니 참배 재고요청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강력한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회장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가 11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유족회 간부에게 전화,“총재가 되면 반드시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약속, 이것이 총재선거 공약이라며 4년 연속 참배해 왔다. 한마디로 고이즈미 총리와 전몰자를 추도하는 유족회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선 ‘2인 3각(脚)’과 같은 관계여서 유족회의 참배 재고 요청이 사전조율을 거쳤든 안거쳤든, 향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계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12일 분석했다. 유족회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통해 “야스쿠니 참배는 유족의 비원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싶은 일이지만, 이와 함께 영령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근린제국을 배려, 이해를 얻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린제국 등의 반발과 그로 인한 역대 총리들의 참배 재고 요청 등으로 인해 영령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가 회장과 오쓰지 히데히사 후생노동상 등 간부들이 모임을 가진 뒤 발표한 성명은 또 한국과 중국 등 상대국의 입장에 대한 배려와 이들 국가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총리의 신사참배가 정치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신사참배에 앞서 이들 국가의 비난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유족회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의 분사(分祀)문제에는 정치가 개입하면 안된다고 강조했으며, 야스쿠니신사가 유일한 영령의 위령시설이기 때문에 새로운 추도시설의 건설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성명이 나온 뒤 유족회의 일부 간부는 “회장 개인의 생각으로 전체적인 동의를 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몰자 유족의 전국조직으로 약 100만 가구가 가입해 있고, 집권 자민당의 강력한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가 이같은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유족회는 그동안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요구해 왔을 뿐 아니라 “(총리 참배는) 유족회 활동의 중점사항”이라고 밝히는 등 총리의 신사참배를 강력히 지지해온 단체이다. 아울러 일본역사교과서 역사왜곡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단체로 알려졌다. 한편 도쿄신문은 이날자 사설을 통해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인해 일본외교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며 “자국 독선을 억제하라.”고 촉구했다. taein@seoul.co.kr
  • 한·일수교 40주년 특별기획 일본을 다시본다

    서울신문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새 기획시리즈 ‘일본을 다시 본다.’를 내보냅니다. 특별취재팀의 일본 현지취재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토대로 22회에 걸쳐 연재될 이번 기획물은 10년간의 장기불황속에서도 철저한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민영화, 나노테크 등 신산업 창출을 통해 실질경쟁력을 높여가나는 일본의 노력을 집중 조명합니다. 독도,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 일본 우경화와 ‘힘의 외교’의 실상을 짚고 21세기 진정한 한·일 협력시대를 열기 위한 조건과 미래지향적 지평도 함께 모색합니다.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독일, 수주경쟁서 유리한 출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독일이 중국의 방대한 고속철 시장에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 발짝 먼저 내디뎠다. 독일이 8일 중국과 고속철 기술을 공동 개발키로 합의한 것이다. 올 여름 중국 베이징∼상하이간 고속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독일의 이체(ICE)가 일본 신칸센과 프랑스 TGV를 제치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 것이다. 앞서 독일은 2002년 완성된 상하이 지역의 자기부상열차 건설권도 따낸 바 있어 중국내 철도건설권 사업에서 독주를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철도부는 이날 독일과 중국이 시속 200㎞ 이상의 여객 수송용 철도를 설계, 건설하는 데 협력을 강화하고 철도장비 설계 및 생산, 선로ㆍ장비 유지 관리, 정보기술 등 철도 관련 기술에서 협조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독일의 ICE가 일본 및 프랑스 경쟁업체를 제치고 중국 고속철 수주를 위한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는 신호라고 현지 언론들도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독일의 철강업체인 티센크 그룹과 전자업체 지멘스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 ‘트랜스래피드 인터내셔널’은 시속 430㎞로 달릴 수 있는 자기부상 열차를 개발하는 등 고속철 기술의 총아인 자기부상열차 기술에서 앞서고 있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당초 자기부상열차 수주전과 관련, 가격 경쟁력면에서 일본과 프랑스가 우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중국내 반일 감정이 격화, 사실상 일본은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산케이 신문 등 일본언론들은 중국이 베이징∼상하이간 고속철도로 신칸센을 선정할 경우 일본 정부가 대중국 정부개발원조(ODA)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포기하지 않고 강력한 경쟁자로 ‘고지 탈환’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의 고속철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알스톰사는 지난해 8월 “중국에 고속철 기술을 전면적으로 넘겨줄 수 있다.”며 강력한 구애전에 돌입했다. 최근엔 독일 지멘스사를 따돌리고 중국 장춘철도(CRC)와 연간 60개 열차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설립하는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알스톰사측은 “이번 계약이 향후 중국 고속철 건설사업에서 양국간 지속적인 협력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며 며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상하이 신공항과 도심을 잇는 단거리 자기부상열차를 운행 중인 중국은 지난해 1300㎞ 거리의 베이징∼상하이간 고속철 건설에 1300억위안(15조 6000억원)을 투자키로 결정하고 독일과 일본, 프랑스 회사들에 입찰을 권유하고 있다. 이 사업은 자동차 산업처럼 산업의 파급효과가 큰 분야여서 주 계약자의 하청을 받기 위한 기업들의 로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초전에서 독일의 유리한 고지 선점으로 천문학적인 중국의 고속철 시장의 수주 전쟁이 본격화됐다.”고 평가했다. oilman@seoul.co.kr
  • 한중일 ‘역사왜곡 방지’ 심포지엄

    한중일 ‘역사왜곡 방지’ 심포지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이 낳은 최대의 성과는?아마 한·중·일 3국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가운데 일본 시민사회는 부러움과 우려의 대상이다. 철저한 풀뿌리 운동이라는 점에서는 앞서 있지만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 때문에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올바른 역사인식’이 일본 젊은이들에게는 ‘공자 왈 맹자 왈’하는 고리타분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지난 20여년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바로 ‘피스보트(Peace Boat)’다. 젊은이의 눈높이에 맞춘 활동 덕분에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찬사까지 받고 있다. 심포지엄 참석 차 방한한 피스보트 대표 노히라 신사쿠를 만났다. 피스보트는 어떤 단체인가. -1982년 제1차 역사교과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당시 언론인, 대학생, 연구자 등 200여명이 뭉쳐, 배를 타고 다니며 아시아를 직접 체험해보자고 했다. 이것이 피스보트다.1983년 정식 출범한 뒤 지금까지 49차례 항해에 2만 5000여명이 참석했으며 세계 60여개국을 돌았다. 지금도 바다 어딘가에 피스보트는 항해 중이다.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1960∼70년대 학생운동이 실패한 뒤 일본 시민운동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이런 젊은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배 타고 다니며 댄스파티, 시장구경, 요리대회 등 즐거운 일을 벌인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여행할 욕심에 피스보트 사무국을 들락날락하다 자연스럽게 지뢰·기아·난민·역사 문제를 접하고 또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점이다. 세계평화를 체험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피스보트 참가자의 반 이상이 20대다. 한국 시민단체와는 연계해서 활동하나. -물론이다. 마침 올해 8월13일부터 27일까지 한국 환경재단과 함께 ‘부산-인천-단동-상하이-오키나와-나가사키’ 루트에 참가할 600명을 모집 중이다.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환영한다. 노히라의 경우는 어떤가. 피스보트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었나. -도쿄 사람이 내 고향 가고시마를 ‘시골 깡촌’으로 여기는데 화가 났었다. 그런데 나 역시 동남아시아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됐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90년대 초에 피스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베트남에 갔었는데 있는 그대로의 베트남보다는 ‘이국적인 뭔가’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미군이 일본에 와서 기모노 입은 여성을 보고 ‘뷰티풀’이라고 외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던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그런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북한과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주겠다. 내가 판문점을 통해 남에서 북으로 갈 때였다. 안내자가 청바지를 입지 말라고 했다. 북한은 청바지를 ‘미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올 때 우리 일행의 반 이상은 청바지 차림이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북한사람은 뭔가 세뇌당하고 로봇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한·중·일 3국인들이 모두 피스보트에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교과서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한국·중국에 대해 “냉정하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말하는데 ‘맞은 사람’은 화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때린 사람이 대화로 풀자고 하면 말이 안 된다. 왜 화가 났는지 물어보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한국 내에서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를 똑같이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일본은 과거 침략과 지배를 미화하는 민족주의이고 한국은 이에 저항하고 해방운동을 벌여온 민족주의다.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이미 한국은 많이 변했다. 인권이나 민주화 수준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과하다거나, 걱정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송승재 재일코리안청년연합 대표 “일본에서 살아가야 할 재일한인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한국 정부와 사회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강력히 대처해야 합니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송승재(31) 재일코리안청년연합(KEY) 대표는 조국의 도움을 강력히 요청했다.KEY는 재일한인 3∼4세들의 모임. 그들이 느끼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심각성은 국내에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왜일까.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식민지시대를 합리화한다는 것은 곧 재일한인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재일한인들은 식민지시대였기 때문에 일본에 건너간 우리 동포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과거의 잘못을 빼거나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교과서로 공부한 아이들이 자라나면 우리 재일한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한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큰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류열풍에 힘입어 재일한인들의 입장이 조금 나아진 측면도 있지 않을까.“일본의 미디어들은 ‘욘사마’를 한번 비추고는 일장기 불태우는 한국·중국의 집회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일본인들은 ‘일본은 아시아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나라는 그러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혹여 재일한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아직 공식적으로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과서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혀지는데 길게 보면 교과서에 반영된 인식이 전체적인 사회의 인식을 바꿔놓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KEY는 역사교과서 채택률을 떨어뜨리는데 온 힘을 다 모을 예정이다.“8월 말쯤 각급 교육위원회와 학교의 채택결과가 나온다지만 실질적으로는 7월 초·중순쯤에 이미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를 대비해 일본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후소샤교과서의 내용과 본질을 알리는 작업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후소샤교과서 어떻게 막나 이제 7∼8월이면 일본의 각급 교육위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선택을 결정한다. 가장 왜곡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후소샤 교과서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일본 우익은 채택률 10%를 목표로 내세웠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채택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와 중국의 사회과학원, 일본의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이 9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 모여 ‘동북아 평화와 역사갈등, 해결을 위한 모색’이라는 이름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후소샤 교과서를 어떵게 막을 것인가,‘마지막 전략’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먼저 하종문 한신대 교수, 변슈위에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네트21’ 사무국장이 한·중·일 3국의 상황을 발표했다. 이들은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 교과서로 인해 다른 교과서들까지 우경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견을 모았다. 동시에 지난달 한·중·일 공동으로 출간한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해 “공통의 역사인식을 위한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뒤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특히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후소샤 교과서에 대한 학습회를 개최하고 ▲교과서 순회 전시회를 여는 한편 ▲각급 시민단체와 지자체간의 연대를 튼튼히 한다는,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제시했다. 오후에는 한·중·일 3국 각 지역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여기서는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하고, 후소샤 교과서 채택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본내 활동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교육과 자치 사이타마 네트워크’는 후소샤 교과서를 감수한 사람이 교과서 채택권한을 가진 교육위원회의 위원으로 부임한 상황을 강력히 비판했다.7월10일 이 교육위원의 파면을 요구하는 심포지엄을 열 예정이고 여기에 한국측의 적극적인 참가를 요청했다. 류큐대 다카시마 노부요시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방식을 소개했다. 알려진 대로 역사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는 선입관없이 공정한 심사를 위해 철저히 교과서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후소샤는 미리 검정신청본을 유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유출과 동시에 각급 교육위원회 등에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하라고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노부요시 교수는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 낸 신고서를 통해 “교과서는 교육적 상품이고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불공정한 거래방식은 절대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과서를 용서하지 않는 시민네트워크 후쿠오카’는 교육위원회 위원장에게 “21세기를 함께 살아갈 이웃나라와의 우호관계를 구축해나가기 위한 교과서인지 아닌지가 교과서 선정의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참가자들은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든 지속적이고 끈질긴 감시와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역사교과서’ 韓·日공동연구 과제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연내 재개할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의 ‘과제’로 삼기로 방침을 바꾸고 한국과 조정에 들어갔다고 마이니치신문이 8일 보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이달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같은 방침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역사공동연구위의 전체위원회인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아래 전문분과회를 설치한 뒤 대상을 정해 공동연구를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면서, 양국이 세부대상 협의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단, 일본정부는 연구는 하되 연구성과를 추후 교과서 기술에는 반영시키지 않는 것이 전제라는 입장을 한국측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역사를 왜곡 기술한 것으로 드러난 후소샤 교과서는 물론 다른 교과서에서의 강제연행 및 종군위안부 기술 삭제 등을 대상으로 왜곡실태를 조사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일본은 교과서의 편집권은 해당 출판사측에 있으며 정부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런 일본 정부가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은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만회할 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taein@seoul.co.kr
  • 한·일 경비정 해상대치 ‘예고된 충돌’ 이었다

    한·일 경비정 해상대치 ‘예고된 충돌’ 이었다

    한·일 경비정의 해상 대치는 예견돼 있었다. 일본이 강경대응키로 방침을 정한 사실을 알고도 정부당국은 물론 해당 수협과 어민들의 안이한 대처가 빚은 결과다. 일본이 지난 3월 자국의 EEZ(배타적경제수역)나 영해에서 무허가 조업한 전력이 있는 한국 어선에 대해 단순 침범도 나포키로 내부방침을 정한 사실은 정부당국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2일 밝혀졌다. 주일 후쿠오카 총영사관이 이같은 일본측 방침을 입수해 비공식 경로를 통해 정부당국과 해양경찰청에 알렸으며, 통영해경은 일본 해상보안청이 작성한 한국 어선 22척의 명단을 통발수협에 통보하고 해당 선박에 대한 교육 등 대비책 수립을 촉구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들 어선이 지난해 일본 영해 또는 EEZ를 81차례 침범한 것으로 조사했으며, 대부분 장어 통발어선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항공촬영이나 인공위성 사진을 판독, 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일본측은 한국 어선들이 일본 EEZ를 침범, 불법 조업하는 현행범에 한해 나포했었다. 지난해까지 연간 나포 건수는 1∼2척에 불과했으나 올들어서는 7척이 나포돼 벌금을 물고 풀려났거나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이다. 당시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명백한 불법조업 등의 증거 없이 과거 행적, 또는 정황증거만으로 나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통발수협도 일본의 조치를 과잉단속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데 그쳤다. 통발어선이 일본측 EEZ를 침범하는 것은 신 한·일어업협정으로 주 조업구역이 일본측에 넘어간데다 지난 2001년부터 입어가 불허됐기 때문이다. 일본측은 어업협정 이후 2000년까지는 통발어선의 입어를 허용했지만 이듬해부터 ‘등량등척(等量等隻)’의 원칙에 따라 배제시켰다. 일본에서는 통발어업을 하지 않고, 어획강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이유다. 정부는 매년 통발어선의 입어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측은 기존 방침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으며, 어민들도 ‘한·일 민간어업협력위원회’를 통해 요구하고 있으나 요지부동이다. 어민들은 “한·일 어업협정 당시 일본은 해역별 어획량 등을 정확히 파악, 협상테이블에 나왔으나 우리정부는 사전준비 없이 졸속으로 협상을 타결,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502신평호가 경계를 넘은 해역은 과거 우리 통발어선의 주 조업구역이었다. 그리고 부산과 울산 앞바다는 수역이 좁아 EEZ경계가 연안에서 13마일에 불과, 의도적이든 아니든 침범하는 사례가 잦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일본이 강경단속에 나선 것은 자국의 어족자원 보호 외에도 독도 분쟁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불거진 한·일간 외교분쟁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클릭이슈] 대학가 日극우단체 자금 유입 공방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년 오사카생.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22살 때 물려받은 유산으로 우익단체 ‘국방사’ 결성.1931년 국수대중당 총재에 선출된 뒤에는 당원들에게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제복을 입혔을 정도로 파시즘을 추종. 만주 항일유격대 소탕과 가미카제 특공대 창설에 깊숙이 관여. 패전 뒤에는 도쿄재판에 회부돼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지만 투옥 3년 만인 1948년, 감옥에서 나와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 1951년부터 경정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사카와는 ‘도박재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선사업과 함께 사사카와 재단(95년 사망후 일본재단으로 개명)을 설립한다. 그는 1970년 150t짜리 병원선 1척을 한국에 기증한 데 이어 1975년에는 한국나병연구원 건립자금으로 1억 2000만엔(당시 2억원)을 전달한다. ●일본재단의 돈을 둘러싼 해석 두고 치열한 공방 이런 사연을 갖고 있는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흘러들었다는 사실이 최근 부각되면서 해당 대학의 구성원들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공익법인이긴 해도 전범과 관련된 재단의 돈을 학문 연구에 사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과 사사카와 개인이 아닌 공익법인으로부터 받은 돈이기 때문에 투명하게 쓴다면 문제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5년. 연세대는 당시 재단의 기금을 출연받아 학교법인 아래에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뒀다. 같은해 12월4일 알렌관에서는 ‘한·일협력 연구기금 전달 조인식’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었다. 당시 일본재단의 기금을 끌어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송자 연세대 전 총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양국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사카와의 셋째아들로 일본재단의 이사장인 사사카와 요오헤이는 이날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며 “일제의 박해에 쓰러진 그의 학문과 정신을 이 기금을 통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한·일협력 연구기금’ 10억엔(당시 환율기준 75억원)이 일본재단의 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연세대는 심각한 학내 갈등을 겪는다. 교수평의회와 총학생회는 전범의 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힌 연세대는 결국 1996년 6월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독립적인 재단법인 ‘아시아 연구기금’으로 탈바꿈시킨다. 일본재단의 돈과 외부 지원을 합해 총 1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아시아 연구기금은 여기서 나오는 이자 수입 등으로 해마다 3억∼8억원 정도를 교수들에게 연구비로 지급해 왔다. ●일본재단, 연구비 지원 제안 잇따라 연세대에 일본재단의 자금이 유입되기 훨씬 전인 1988년 고려대에도 이 재단의 자금으로 장학금이 조성됐다. 사사카와 생전에 장학금을 유치한 고려대는 그의 이름을 따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라는 장학금을 설치하고 1억 2950만엔을 받았다. 이 기금의 이자는 2003년까지도 고려대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됐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1980년대 말부터 일본재단이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에게 전화를 일일이 걸어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실제 일부 교수가 그 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재단의 기금은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 한 사람의 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 교수는 “일본재단은 경정사업을 하는 하나의 공익법인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로또나 마사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아시아연구기금은 동아시아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연구를 하는 데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연세대 교수협의회 대표 최종철 교수(영문과)는 모든 기금에는 돈을 주는 단체의 의도가 있다고 반박한다. 일본재단의 핵심 운영진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구성원들로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돈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재단의 자금을 받은 단체와 대학들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기금을 모두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효연 김준석기자 belle@seoul.co.kr
  • 을사·합병조약등 대부분 현격한 시각차

    “이번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활동의 의의는 양국간 역사인식의 차이와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박준우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은 31일 제1기 공동연구위의 활동 종료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발표 내용을 눈을 씻고 살펴봐도, 공통점은 일본측이 임나일본부설을 철회한 정도였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주제에서는 양측이 엄청난 견해차를 드러냈다. 이런 시각차를 앞으로 어떻게 줄여나갈지 막막할 정도였다. ‘조선통신사는 조선국왕이 보낸 조공사절’이라는 일본측의 주장에선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조선통신사는 일본 막부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에 파견을 호소해서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은 양심적 일본 학자들도 인정해 왔다. 양국의 역사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로 구성한 연구위원회에 내보낸 일본측 학자들이 거의 최악의 역사인식을 보유한 인물들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역사 청산에 대한 일본정부의 박약한 의지를 다시 한번 읽을 수 있다. 현실이 이 정도라면 제2기 역사공동연구위가 발족하더라도 큰 기대를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정부는 그나마 우리 입장이 일본 교과서에 조금이라도 반영되길 바라고 있지만, 일본측은 “우리는 역사교과서 채택이 검인정 제도라서 민간에 내용을 강제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최종 연구보고서’를 공개했지만 그 내용이 당장 국내 국사교육에 반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역사학계의 합의와 교육과정 개편 등 거쳐야 할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날 한·일 공동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교과서에 그 내용을 반영하는 데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학계에서 ‘정사(正史)’로 결론내리기 전에 이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반영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무리라는 설명이다. 국정 및 검인정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은 모두 학계의 검증과 합의를 거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성과가 한·일 역사학자들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명확히 확인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보고서의 내용이 학계의 검증을 거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설령 학계에서 이번 연구성과를 부분적으로 ‘정사’로 결론 내리더라도 교과서에 반영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빨라도 오는 2007년 2월 향후 교육과정을 고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윤웅섭 학교정책실장은 “공동위원회의 연구성과를 교과서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전적으로 저자인 역사학자들의 판단에 달렸다.”면서 “교육부가 이번 내용을 반영할지 여부를 지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상연 김재천기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교과가 독립해야 할 이유/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2003년 여름, 우리는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한 충격적인 사태에 접했다. 역사학계를 비롯해 정부·정치권·시민단체, 그리고 전 국민의 뜨거운 비판 열기에 놀라, 현재 중국은 주춤한 상태다. 우리는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해 고구려 역사를 비롯한 북방사의 학술적 체계화에 주력하고 있다. 일찍이 1982년부터 시작된 일본 역사교과서의 식민지배 미화는 급기야 올 봄 극우적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쇼사 판)를 탄생시키고, 이에 더하여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 제정으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부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을 상설기구로 설치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1세기 탈민족주의적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 담론’을 다듬던 학계는 된통 벼락을 맞은 셈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동북아 공동체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동아시아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중·일 삼국의 학계와 시민단체가 수년의 공동작업 끝에 공동역사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간행하게 된 것은 아주 소중하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역사분쟁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들끓는 여론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지난해 가을, 학계와 시민단체를 모아 ‘국사발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물론 학계의 전반적인 중론은 ‘국사’ 교육의 강화가 아니라 동아시아사·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 교육의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데 모아졌다. 이를 위해서는 국사와 세계사가 ‘사회 교과’에 편입돼 있는 현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 미군정 때 수입된 미국식 사회과는 민주시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데,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미국의 역사를 사회과의 일환으로 교육하는 것은 그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타율적 근대화의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전통 내지 전근대와, 근·현대의 연속성은 두드러지지 못하다. 사회교과에서 우리의 역사적 연원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경제 중심의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고구려 역사에까지 소급하는 역사교육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국사와 세계사가 사회교과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역사를 전공하지 아니한 사회과 교사가 중학교 국사의 40% 이상, 세계사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은 교육의 전문성을 유린하는 처사다. 남아도는 교사의 수급조절을 위해 교련·실업·제2외국어 담당 교사가 2회에 걸친 방학 중 연수만으로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칠 수 있게 한 조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또한 현재처럼 ‘국사’ 교과서만이 ‘사회’ 교과서와 별도로 제작되는 방식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발주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사로 규정하려는 시도나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역사교육이 나만을 자랑하는 국수적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지난 5월6일 교육부가 ‘역사’를 사회 ‘교과’의 한 ‘과목’으로 독립시킨다고 하여 마치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교육과정과 교사 양성은 사회과 체제로 그대로 둔 채, 현재 사회 교과 안에 독립교과서로 돼 있는 ‘국사’ 교과서에 세계사를 포함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과로부터 역사교과는 ‘교과’로서 분리 독립돼야 한다.‘한국을 중심에 둔 동아시아’‘세계사와 비교된 한국사’ 교육을 위해 하루속히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 통합체제로서의 ‘역사’ 교육이 독립적으로 실시돼야 한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교육이 변해야 한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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