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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만대장경 잘못 표기… “초5 역사교과서 오류 많다”

    교육부가 이달 안에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올 2학기부터 배우기 시작한 역사 과목 교과서에서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역사교육학회 등 7개 역사 관련 단체 모임인 ‘역사교육연대회의’는 7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의 첫 국정 역사 교과서인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등 역사교육연대회의 소속 학자들은 국정 교과서에서 부여와 삼한의 역사가 거의 다뤄지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부여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연원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국가”라며 “같은 고대사 안에서 볼 때 가야의 역사가 상세하게 다뤄지고 50년 안팎의 후삼국 역사에 큰 비중을 두어 기술한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 시기의 오류 문제도 여럿 지적됐다. 교과서에는 고려 때 청자에 붉은색 김치가 올라온 밥상이 그려져 있는 삽화(110쪽)가 있는데, 고추는 조선 후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붉은색 김치가 고려시대 밥상에 올라온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비에서 면해주는 내용을 담은 ‘속량’(贖良) 문서를 노비 문서로 잘못 표기한 점, 국사 편수용어로 정립된 ‘고려대장경’ 또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라고 표기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정부와 여당이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며 실제로는 교과서의 꼴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과 시스템을 결여했다”며 “국정 교과서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중등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등 진보 성향 학부모 단체들은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회견을 열고 “우리 아이들의 역사의식을 왜곡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며 학부모 1만 3042명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문기관을 통해 검토 중이며, 명백한 오류가 있다면 학교에 안내하고 추후 교과서 인쇄 때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왜곡·오류 넘치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왜곡·오류 넘치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위험한 역사시간/이주한 지음/인문서원/416쪽/1만 8000원 역사 교과서가 위태롭다. 정부여당 대표는 최근 국회 대표연설에서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교실에서부터 역사에 의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지난 7월 22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이미 국정교과서 문제를 의제로 다뤘다. 반면 서울대 역사 관련 교수들은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과서 국정화는 유신시대인 1973년 시작해 2001년에 사라졌다.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역사에 대한 접근 및 사유의 방법을 획일화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역사 왜곡을 초래한다. 이 책은 국정교과서 이전 현재 검인정 역사교과서조차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증거를 외면하는 등 역사 왜곡과 폄훼가 심각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고대사를 중심으로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나눠 검인정 교과서, 그리고 교과서 지은이들이 쓴 다른 책까지 낱낱이 해부하며 사관(史觀)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책이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는 역사 왜곡의 대표적 사례는 한반도 청동기의 시기 규정이다. 기원전 15~30세기까지 올라가는 수많은 고고학 유물과 유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들은 일률적으로 기원전 10세기 무렵으로 서술한다. 또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 아니고 위만국(교과서는 위만조선으로 표기)인 이유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제왕운기’ 등의 기록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 바탕에는 일본의 사서와 ‘삼국사기’ 등의 기록이 불일치하면 일본의 사료에 더 신뢰를 보내면서 나타난 결과이고, ‘단군조선 부정하기’, ‘임나일본부설 조작’ 등을 위한 식민사학의 영향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칫 ‘국수주의’, ‘재야사학’ 프레임으로 읽히기 십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 관계조차 외면당하는 현실에 대해 주장이 아닌, 더욱 구체적인 사료들로 대응한다. 단재 신채호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던 ‘독사신론’에서 “현재 각 학교의 교과용 역사책을 살펴보니 가치가 있는 역사책은 거의 없다”고 일갈했다. 2015년 9월 100년 남짓 전의 한탄이 더 심각하게 반복될 위기에 놓여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김무성 “4대개혁 성공 위해 재벌개혁 병행”

    김무성 “4대개혁 성공 위해 재벌개혁 병행”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일 “4대 개혁(노동·교육·금융·공공)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재벌개혁을 강조했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관련 대표회담을 이른 시일 내에 열 것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 최근 롯데가(家)의 경영권 승계 다툼을 언급하며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시장지배력 남용, 불공정거래를 통해 불법·편법으로 부를 쌓는 재벌들의 행위가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재벌개혁이 반기업 정책으로 변질돼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 등 정부의 경제활성화 법안에 대해 “야당이 몽니를 부리며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20대 국회가 생산적인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국회에서 비능률적인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한 새로운 보수주의 노선도 제안했다.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은 개혁적 보수의 길을 걷겠다”며 ‘포용적 보수’, ‘서민적 보수’, ‘도덕적 보수’, ‘책임지는 보수’를 당의 기치로 내세웠다. 김 대표는 교육개혁과 관련, “정치적 편향성,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로 교육정치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이 필요한 만큼 국회 내에 특위를 구성해 교육감 선출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연설에 대해 문 대표는 “여러 대목에서 극우적이고 수구적인 인식을 보였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회담 제안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배분 등으로 회담 의제를 넓힌다면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김무성 대표연설 뒤 “쇠파이프 불법파업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불 넘어갔다”

    김무성 대표연설 뒤 “쇠파이프 불법파업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불 넘어갔다”

    김무성 대표연설 김무성 대표연설 뒤 “쇠파이프 불법파업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불 넘어갔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일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전체의 인력과 조직을 재편하는 험난한 작업으로서 모든 개혁의 기초”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같이 밝힌 뒤 “노동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특히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모든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일자리 창출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4대 개혁(노동·교육·금융·공공)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노동개혁의 목표로 ▲청년 일자리 창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노동시장의 안정성 등을 제시한 뒤 “30∼40년 전 연공서열제, 호봉승급제 등 임금체계의 불공정성은 직무·성과 중심의 선진 체계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 개혁과 관련, “정치적 편향성,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로 교육정치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이 필요한 만큼 국회 내에 특위를 구성해 교육감 선출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여야의 이념 대결로 과열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광역자치단체장과 러닝메이트, 또는 교육감 임명제 등의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또 “역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의미에서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면서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개혁과 관련해서는 낙하산인사와 경영간섭을 배제한 ‘관치금융 해소’를 핵심 요소로 지목하고, 장기연체자의 자활을 돕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을 비롯한 채무조정제도의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김 대표는 최근 롯데가(家)의 경영 승계 다툼을 언급하며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시장지배력 남용, 불공정거래를 통해 불법·편법으로 부를 쌓는 재벌들의 행위가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다만 “재벌개혁이 반기업정책으로 변질돼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정치 분야에서는 자신이 ‘국민공천제’로 명명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정당 민주주의의 완결판’으로 강조했다. 특히 김 대표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으로 지목되는 보스·계보정치, 충성서약정치를 일소하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처방은 국민공천제”라고 전제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대표회담을 이른 시일 내에 열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 등 현 정부가 경제활성화의 근간으로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해 “야당이 몽니를 부리며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20대 국회가 생산적인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국회에서 비능률적인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통일을 달성한 서독도 통일 이전 10년간 매년 100억 달러(12조원)의 통일비용을 비축했다”면서 “통일재원을 마련해나가는 방법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 대표는 연설 뒤 “문재인 대표가 정부의 노동정책 실패를 노조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노조가입률은 근로자의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러 우리나라 대기업, 특히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각종 노조 전부 강성 기득노조”라면서 “민노총이 다 처리하고 있다. 그들이 매년 불법파업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법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그 공권력을 쇠파이프로 두드려 팼다. 그런 불법 무단행위 때문에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2만불 대에서 지금 10년을 고생하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3만불이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금 조선 3사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7조 4000억 적자다. 그런데 파업한다는 것 아닌가. 그럼 그들이 그 회사가 망해도 괜찮은 것인가. 해외에 다 홍보된다”고 말했다. 또 “CNN에 연일, 매시간 쇠파이프로 경찰 두드려 패는 장면이 보도되는데 어느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투자하겠는가. 그들이 우리 사회발전에, 경제발전에 끼치는 패악은 엄청나다.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무성 대표연설 “노동개혁 성공 위해선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김무성 대표연설 “노동개혁 성공 위해선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김무성 대표연설 김무성 대표연설 “노동개혁 성공 위해선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일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전체의 인력과 조직을 재편하는 험난한 작업으로서 모든 개혁의 기초”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같이 밝힌 뒤 “노동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특히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모든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일자리 창출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4대 개혁(노동·교육·금융·공공)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노동개혁의 목표로 ▲청년 일자리 창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노동시장의 안정성 등을 제시한 뒤 “30∼40년 전 연공서열제, 호봉승급제 등 임금체계의 불공정성은 직무·성과 중심의 선진 체계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 개혁과 관련, “정치적 편향성,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로 교육정치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이 필요한 만큼 국회 내에 특위를 구성해 교육감 선출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여야의 이념 대결로 과열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광역자치단체장과 러닝메이트, 또는 교육감 임명제 등의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또 “역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의미에서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면서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개혁과 관련해서는 낙하산인사와 경영간섭을 배제한 ‘관치금융 해소’를 핵심 요소로 지목하고, 장기연체자의 자활을 돕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을 비롯한 채무조정제도의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김 대표는 최근 롯데가(家)의 경영 승계 다툼을 언급하며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시장지배력 남용, 불공정거래를 통해 불법·편법으로 부를 쌓는 재벌들의 행위가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다만 “재벌개혁이 반기업정책으로 변질돼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정치 분야에서는 자신이 ‘국민공천제’로 명명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정당 민주주의의 완결판’으로 강조했다. 특히 김 대표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으로 지목되는 보스·계보정치, 충성서약정치를 일소하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처방은 국민공천제”라고 전제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대표회담을 이른 시일 내에 열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 등 현 정부가 경제활성화의 근간으로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해 “야당이 몽니를 부리며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20대 국회가 생산적인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국회에서 비능률적인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통일을 달성한 서독도 통일 이전 10년간 매년 100억 달러(12조원)의 통일비용을 비축했다”면서 “통일재원을 마련해나가는 방법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무성 대표연설 뒤 “쇠파이프 불법파업 때문에 2만불에서 10년 고생”

    김무성 대표연설 뒤 “쇠파이프 불법파업 때문에 2만불에서 10년 고생”

    김무성 대표연설 김무성 대표연설 뒤 “쇠파이프 불법파업 때문에 2만불에서 10년 고생”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일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전체의 인력과 조직을 재편하는 험난한 작업으로서 모든 개혁의 기초”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같이 밝힌 뒤 “노동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특히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모든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일자리 창출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4대 개혁(노동·교육·금융·공공)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노동개혁의 목표로 ▲청년 일자리 창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노동시장의 안정성 등을 제시한 뒤 “30∼40년 전 연공서열제, 호봉승급제 등 임금체계의 불공정성은 직무·성과 중심의 선진 체계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 개혁과 관련, “정치적 편향성,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로 교육정치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이 필요한 만큼 국회 내에 특위를 구성해 교육감 선출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여야의 이념 대결로 과열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광역자치단체장과 러닝메이트, 또는 교육감 임명제 등의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또 “역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의미에서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면서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개혁과 관련해서는 낙하산인사와 경영간섭을 배제한 ‘관치금융 해소’를 핵심 요소로 지목하고, 장기연체자의 자활을 돕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을 비롯한 채무조정제도의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김 대표는 최근 롯데가(家)의 경영 승계 다툼을 언급하며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시장지배력 남용, 불공정거래를 통해 불법·편법으로 부를 쌓는 재벌들의 행위가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다만 “재벌개혁이 반기업정책으로 변질돼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정치 분야에서는 자신이 ‘국민공천제’로 명명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정당 민주주의의 완결판’으로 강조했다. 특히 김 대표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으로 지목되는 보스·계보정치, 충성서약정치를 일소하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처방은 국민공천제”라고 전제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대표회담을 이른 시일 내에 열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 등 현 정부가 경제활성화의 근간으로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해 “야당이 몽니를 부리며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20대 국회가 생산적인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국회에서 비능률적인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통일을 달성한 서독도 통일 이전 10년간 매년 100억 달러(12조원)의 통일비용을 비축했다”면서 “통일재원을 마련해나가는 방법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 대표는 연설 뒤 “문재인 대표가 정부의 노동정책 실패를 노조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노조가입률은 근로자의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러 우리나라 대기업, 특히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각종 노조 전부 강성 기득노조”라면서 “민노총이 다 처리하고 있다. 그들이 매년 불법파업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법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그 공권력을 쇠파이프로 두드려 팼다. 그런 불법 무단행위 때문에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2만불 대에서 지금 10년을 고생하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3만불이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금 조선 3사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7조 4000억 적자다. 그런데 파업한다는 것 아닌가. 그럼 그들이 그 회사가 망해도 괜찮은 것인가. 해외에 다 홍보된다”고 말했다. 또 “CNN에 연일, 매시간 쇠파이프로 경찰 두드려 패는 장면이 보도되는데 어느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투자하겠는가. 그들이 우리 사회발전에, 경제발전에 끼치는 패악은 엄청나다.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장 블로그] 한글전용 예찬했던 황우여, 이제 와서 한자병기 앞장?

    2018년 고등학교 1학년(현재 중학교 1학년)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고르라면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 한자 병기’와 ‘역사교과서 국정 교과서화’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부가 한자 병기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고 한글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에 반대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육부의 ‘투톱’, 즉 장관과 차관이 각각 한글 전용론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론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35년 전인 1980년 8월 한글학회 기관지인 ‘한글새소식’ 96호에 당시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에 재직 중이던 한 판사의 ‘법 언어로서의 한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게재됐습니다. “나 자신이 10년 동안 판사직에 있으면서 모든 난해한 그리고 그토록 정확성을 요구하는 판결문을 오직 한글로만 표현해 왔는데 이러한 표현 문제로 당사자에게 오해를 일으키거나 상급 법원으로부터 잘못됨이 지적된 적이 내 기억에 없다.” 한글 전용론을 예찬한 이 판사의 이름은 ‘황우여’. 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독일 유학 경험이 있는 황 부총리는 지난 5월 국어·교육단체 대표들을 만나 “독일어 옆에 괄호로 라틴어를 따로 쓰지 않는다”며 한자 병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반대론자입니다. 국정화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이유입니다. 김 차관은 영남대 교수 시절인 2009년 6월 발표한 ‘교과서 검정체제 개선 방안 연구’ 논문에서 “국정 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 “검인정 교과서는 선진국(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제도”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북한, 베트남, 러시아 정도입니다. 교육부는 과목별 토론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해 완성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다음달 확정, 발표할 계획입니다. 교육부 ‘투톱’의 소신이 새 교육 과정에 어떻게 반영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정신력 승부’ 더 이상 안 통해… 日처럼 저변 확대만이 살길

    [새로운 50년을 열자] ‘정신력 승부’ 더 이상 안 통해… 日처럼 저변 확대만이 살길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1963년 9월 29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2차전, 한국이 1-0으로 앞선 8회 초 국가대표 4번 타자 김응용(당시 한일은행)이 타석에 들어섰다. 김응용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몰린 상대 투수의 2구를 힘차게 받아쳤다. 홈런인지 안타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정신없이 1루를 향해 뛰었다. 2만 5000여 관중의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공은 담장을 향해 115m를 날아가고 있었다. 역사적인 투런포였다. 한국은 5-2로 승리한 1차전에 이어 숙적 일본을 또다시 3-0으로 누르고 국제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05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야구를 받아들인 지 58년 만이었다. 대회 우승의 주역 김응용(74)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일본과의 경기 전날, 감독님이 찾아와 일본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나가는데 선수단 분위기가 아주 엄숙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 우리 목표는 무조건 타도 일본이었다”고 돌아봤다. 훗날 국가대표 감독이 된 김응용은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란 명언을 남겼다. ●한·일전,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 일본과의 스포츠 대결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유상철(44) 울산대 감독은 “선수 시절 한·일전을 여러 번 치렀지만 매번 다른 경기와는 차원이 다른 중압감을 느꼈다”며 “한·일전만큼은 감독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선수들 스스로 각오와 의지를 다진다”고 말했다. 인기종목인 야구,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맞붙으면 두 나라는 단순한 응원 열기 이상의 흥분에 빠져들곤 한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위안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과거사 문제는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 여론 싸움인 반면 스포츠 경기에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란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깔려 있는 감정이 즉각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일전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식민지배를 통해 일방적으로 일본에 당한 민족적인 한과 복수심, 항일정신 같은 것이 투영돼 있다. 한·일전은 일종의 국민적인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70년간 한국인을 울리고 웃겼던 한·일전의 전설적인 순간을 되짚어봤다. ●극도의 긴장감 속 열린 첫 축구 한·일전 괴력이 빛을 발한 승부였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경기에 임했던 덕분일까. 한국 축구대표팀은 해방 이후 열린 첫 한·일전을 적진 일본에서 승리로 장식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한국은 일본과 대결하게 됐다. 원칙대로라면 두 나라가 한 차례씩 상대 국가를 방문해 경기를 치르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승자를 가려야 했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아직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았다. 반일 감정도 극에 달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놈들이 한국 땅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 간다 해도 패하면 나라 망신”이라며 경기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앞두고 이유형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23명은 반드시 일본을 꺾고 돌아오겠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했다. 한국 대표팀은 도쿄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5-1, 2차전에서 2-2로 1승1무를 기록해 사상 첫 한·일전 승리와 월드컵 본선 티켓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야구 한·일전은 8회부터… 악몽을 안기다 적어도 한·일전에서 야구는 ‘8회’부터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역대 한·일전 중 최고의 명승부로 1982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꼽았다. 야구팬들에게도 이 경기는 전설로 기억된다. 7회까지 0-2로 뒤지던 한국은 8회 말 김재박이 상대 투수 니시무라를 상대로 개구리 번트(스퀴즈번트)를 성공시키면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대화가 3점 홈런을 때려내 한국은 5-2 짜릿한 역전승으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뒤 한국 대표팀은 일본만 만나면 8회부터 대역전극을 펼치는 진풍경을 연출해냈다. 양국 간 첫 ‘드림팀’ 대결로 주목받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는 8회 2아웃 상황에 터진 이승엽의 투런포로 0-0 팽팽한 투수전이 깨지면서 사상 첫 단체 구기 종목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8회의 기적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이어졌다. 결승전에서 일본과 맞붙은 한국은 2-2 동점 상황에서 8회 이승엽이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또 한번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경쟁의식, 양국의 스포츠를 발전시키다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주요 국제대회를 모두 개최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은 경기력뿐만 아니라 자국 리그의 생성과 흥행을 이끌면서 스포츠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국가대표팀끼리의 전적 40승 12무 22패로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축구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영향을 더 받았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 축구는 한국에 형편없이 당했다”며 “1983년 한국에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돼 19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에 오르자 이를 의식한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만들었다. 그 뒤 일본 축구가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을 이기기 위해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 같은 특급 선수를 고액 연봉으로 데려가 자국리그 흥행과 수준 향상에 부단히 신경 쓴 결과”라고 말했다. 야구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같은 국제대회에서 종종 승리를 거두었지만 일본의 야구 저변이 워낙 탄탄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응용 전 사장은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에 대해 “한국이 단일팀으로는 승부를 노려볼 만하지만 고교야구팀만 5000개에 달하는 일본을 장기적으로 상대하기에는 무리”라고 진단했다. 한·일전 덕분에 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프로야구 관중이 급증했다”며 “야구 관중 800만명을 바라보게 된 데 한·일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문화 만들어야” 반면 전반적인 스포츠 인프라를 다져 온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엘리트 체육에만 매몰돼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희준 교수는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선수가 10만여명인 데 비해 일본은 핸드볼 선수만 8만명이 등록돼 있을 정도로 생활스포츠가 활성화돼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라이벌 관계를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면 그건 일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문화와 환경을 구축해 온 일본이 무조건 이겨야 하고 금메달을 따야 인정해주는 한국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한국의 국가대표팀은 일본에 이길지 몰라도 스포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라이벌 일본에 완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광복 70년·한일 수교 50년] 한·일 경색 국면에도 문화·관광 분야 교류 행사 150건 준비 중

    [광복 70년·한일 수교 50년] 한·일 경색 국면에도 문화·관광 분야 교류 행사 150건 준비 중

    역사교과서, 독도, 일본군 위안부 등 여러 문제를 놓고 한·일 관계는 수교 50년 이후 최고의 경색 국면을 맞고 있지만 문화 분야 교류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 관광 등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행사만 150건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한 한·일 문화예술 교류 행사가 준비돼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복판에서 열리는 대표적 문화축제인 한·일 축제한마당 행사가 다음달 ‘함께 열어요, 새로운 미래를’이라는 주제로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개최된다. 서울에서는 9월 19~20일, 도쿄에서는 9월 26~27일 열린다. 쌍방향 문화교류행사로 두 나라 시민들이 상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연극협회와 일본연출자협회 등 양국의 연극인 단체는 두 나라를 오가며 워크숍과 낭독회 등을 열고 우수 연극을 발굴해 각국에 소개하고 있다. 서울연극협회는 지난 2월 일본 연극 ‘의적 지로키치’를 초청 공연하고 3~4월에는 한국 연극 ‘설해목’과 일본 연극 ‘춤추는 희곡’을 각각 도쿄와 서울에서 공연했다. 지난달에는 히라타 오리자의 초기 작품 ‘모험왕’이 한국에서 공연된 데 이어 한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과 한·일 합작으로 함께 만든 후속작 ‘신모험왕’을 공연했다. 뮤지컬도 연극만큼 활발하지는 않지만 ‘러브레터’, ‘온 에어 야간비행’, ‘데스노트’ 등이 한국과 일본 제작사의 합작으로 만들어져 공연됐다. 클래식계에서는 지난 1월 열린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서울바로크합주단과 일본 NHK심포니오케스트라 등으로 구성된 한·일연합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른데 이어 지난 11일엔 한국과 일본 연주자들이 함께 꾸미는 ‘러브 스토리’ 공연 등이 펼쳐졌다. 관광 분야 역시 올해를 ‘2015년 한·일 관광교류의 해’로 지정해 지난 2월 한·일 우호교류투어, 4월 한·중·일 관광장관회의를 가졌다. 또한 오는 11월 한·일관광진흥협의회 심포지엄이 예정돼 있는 등 관광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2000년전 역사의 숨결따라 걸어볼까

    2000년전 역사의 숨결따라 걸어볼까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온조는 무슨 생각을 하며 송파구 풍납동 왕도길을 걸었을까? 송파구는 2013년 서울시와 함께 한성백제 스토리텔링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진 ‘한성백제왕도길’을 22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이번 왕도길은 천호역에서 석촌역까지 이어지는 10여㎞ 길이다. 탐방로를 걸으면서 한성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특히 왕도길 코스 중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내에 있어 일부러 왕도길을 걷기 위해 찾지 않아도 가볍게 공원을 걸어도 몽촌토성을 배경으로 산책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어지는 한성백제박물관은 한성백제 역사를 전반적으로 소개·전시한 교육의 장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풍납토성의 단면과 축조하는 인부들의 모습, 금동대향로와 같은 다양한 역사적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또 어린이들에게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4D상영관’을 마련,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한성백제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석촌동고분군은 한성백제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총 4기의 무덤이 복원돼 있다. 그중 3호분은 가로 50.8m, 세로 48.4m 규모로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역사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접하던 무덤을 실제로 본다면 그 규모와 웅장함에 압도될 것이다. 구 관계자는 “왕도길을 역사적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문화해설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한성백제왕도길 걷기 행사’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재미 한인 3·4세대에 ‘독도는 한국 땅’ 알려야”

    “재미 한인 3·4세대에 ‘독도는 한국 땅’ 알려야”

    “독도가 대한민국의 명백한 영토임을 재미 한인 3·4세대들에게 바로 알려 주세요.” 신순식(56·4급) 경북도 독도정책관이 미국 현지 한국학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독도 바로 알리기 강연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신 정책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티넥호텔에서 열린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 제33회 정기학술대회(16~19일)’에 참가해 협의회 소속 교장과 교사 등 800여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아침을 여는 곳, 독도’를 주제로 강연했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외국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행사에 참가해 독도를 주제로 강연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알려졌다. 통상 지금까지 독도 관련 해외 행사에는 민간단체들의 참여가 주를 이뤘다. 신 정책관은 NAKS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날 강연에서 독도가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를 제시해 가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또 일본이 독도 영유권 진실을 은폐, 왜곡하고 있는 점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려고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 정부와 재외동포들은 국제적으로 독도를 조직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정책관은 강연에 앞서 경북도와 NAKS 간 업무협약을 맺고 독도 역사교과서 왜곡 등 갈수록 노골화되는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재미 한인 3·4세대를 대상으로 독도 교육 강화 등에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이번 대회 기간 동안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함께 대한민국·독도 홍보 부스 운영을 통해 독도 홍보물을 나눠주고 홍보 노하우를 들려줬다. 1981년 미국 연방 정부 비영리단체로 설립된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는 미주 전역에 총 14개 지역협의회와 위원회로 구성됐으며, 회원 학교 1000개(교사 5000명, 학생 4만명)를 두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 역사·문화 교육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韓·日 정상회담 해도 관계 진전은 회의적”

    한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해도 실질적인 관계 개선에는 회의적이라는 관측이 미국 의회에서 나왔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펴낸 ‘한·미 관계’ 보고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두 서로 타협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같이 전망한 것으로 12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의회조사국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접근이 서로 충돌하고 악순환에 갇혀 있다”며 “박근혜 정부는 일본이 2차대전 당시의 행위에 대해 완전히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하면서 한·일 관계의 다른 측면들을 과거사 문제와 연계하는 반면, 아베 총리는 일본 민족주의자들이 자학적이라고 여기는 증표들을 역사교과서 등에서 지움으로써 역사적 자긍심을 회복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의회조사국은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북한 도발 등에 대한 즉자적 대응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관계로 진전시킬 이해나 역량이 있는지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미 관계는 1953년 동맹을 체결한 이후 가장 강건한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몇 달간 양국이 이견을 보이는 분야에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한국의 대미-대중 관계를 가늠해보는 리트머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대만 고교생들 ‘친중·반일 역사교과서’에 뿔났다

    대만 국민당 정부가 ‘친중(親中)·반일(反日)’ 내용을 강화한 새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내놓은 것에 반발해 고등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보다 대륙의 수탈이 더 악랄했다’는 대만의 뿌리 깊은 반중(反中) 정서가 학생 시위로 폭발한 것이다. 6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고교생 400여명이 타이베이 교육부 청사로 몰려가 점거를 시도하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학생들은 “교육부의 새 교과서는 막후에서 중국의 입맛에 따라 조정된 것으로 다원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면서 “절대 이 교과서를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당 정부는 2012년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재집권하면서 과거 민진당 집권 시절에 쓰인 친일 색채가 강한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는 작업을 벌여 왔다. 다음달 1일 새 교과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이전 교과서는 중국사와 대만사를 분리해 대만의 독립적인 역사를 강조했지만, 개정 교과서는 ‘본국사’로 통합했다. ‘중국에서 제일 큰 섬은 해남도’라는 내용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섬은 대만섬’이라고 개정해 중국과 대만을 하나로 봤다. 특히 새 교과서는 ‘황국 신민화’ 사상을 제거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전 교과서는 ‘자원해서 위안부가 된 부녀도 있었다’고 기술했지만, 새 교과서는 ‘강제로 끌려왔다’고 명시했다. ‘일부 대만 청년이 애국의 마음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는 내용도 삭제했다. 교육부는 “일본의 수탈을 강화해 객관성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진당 출신이 시장을 맡고 있는 타이베이와 가오슝 등 주요 도시는 이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朴대통령 관례 깨고 日보다 中 먼저 방문… 최악 갈등의 ‘서막’

    [새로운 50년을 열자] 朴대통령 관례 깨고 日보다 中 먼저 방문… 최악 갈등의 ‘서막’

    2013년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미국 다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자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과 밀착해 일본을 소외시키는 것 아니냐”며 들끓었다. 일반적으로 우방인 미국 다음으로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의 한·일 관계는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에 비유된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부터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6월 이전까지 일본은 적대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양국은 1965년 국교정상화 후 군사동맹을 맺지 않았지만 우호협력적 안보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도 왜곡된 역사 인식 등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제일주의와 경제 실리 외교를 표방했고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데 기대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1964년 1월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가 “자유 진영 상호 간의 결속을 강화해 극동의 안전과 평화유지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6·3 사태로 불리는 대규모 대학생 시위 등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문제는 한국 내 부정적 대일 여론 못지않게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우월감도 심각했다. 국교정상화를 추진했던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상도 1963년 “조선과 대만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일본 주요 정치가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결여돼 있었다. 1970년대에는 일본 한복판에서 중앙정보부가 당시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씨를 납치한 사건(1973년), 재일 교포 문세광이 영부인이던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사건(1974년) 등이 겹치며 한·일 관계는 단교 직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80년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일본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경제적 실익을 얻고자 했다. 1981년 당시 노신영 외무부 장관은 일본 정부에 “한국이 소련, 중국, 북한의 위협 속에서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해 일본의 안보를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일본은 한국에 안보 경제협력 자금으로 100억 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은 이 구상에 반발했지만 결국 1983년 1월 한국에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시 미국과 소련 간 신(新)냉전이 격화된 시기라 가능했던 일로 평가받는다. 한·일 양국은 1982년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3·1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한 일본의 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해 사실상 처음으로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이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1990년대 탈냉전을 맞아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하자 한·일 간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관계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때는 일본의 군사력 확대와 군국주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시기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됐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8월 일본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고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등(무라야마 담화) 한·일 관계가 순풍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1996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김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고 강력히 반발하며 양국 관계는 다시 극도로 악화됐다. 1998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악화된 대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1998년 8월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지나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도 한국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 대통령은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미래지향적인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며 한·일 간 장관급, 실무 국장급 교류와 재해 구난을 위한 공동 훈련(SAREX)을 실시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집권하면서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다시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시마네현이 독도 영유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파동을 겪었다. 고이즈미 총리 본인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일본의 도발이 잇따랐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 노무현 정부에서 악화됐던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는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2009년 9월부터 집권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총리가 역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 노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했다. 2012년 6월 양국 정부가 체결하려던 군사 정보보호협정은 국내 여론의 압박에 무산됐다. 같은 해 8월 이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적으로 방문하면서 일본 내 반한 감정에 불이 붙었다. 이후 일본 자민당의 총선 승리로 재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기 위해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밝혀 한·일 관계는 다시 얼어붙게 됐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28일 “지난 50년간 한·일 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갔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부 차원에서 이를 쉽게 봉합할 수 있었다”면서 “21세기 들어서 여론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를 의식한 정치 지도자들이 악화된 한·일 관계를 봉합하기 어려워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끊어진 덕수궁 돌담길/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끊어진 덕수궁 돌담길/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1.1㎞ 길이의 덕수궁 돌담길이 완전히 연결될 전망이다. 서울시와 주한 영국대사관이 돌담길 회복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영국대사관 부지 내 70m와 대사관 주변 일반인 출입 통제로 100m 등 총 170m가 끊겨 있던 돌담길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양해각서는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 일반 동의서이긴 하지만 올해 내로 서울시·영국대사관이 합의를 통해 내년쯤 전 구간을 개방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절절히 담긴 공간이다. 구한말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앞다투어 대사관을 설치한 곳이 아닌가. 영국대사관이 돌담길 일부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서울시가 ‘돌담길 회복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영국대사관이 동의했다고 한다.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1884년 영국이 서울 덕수궁 옆 땅을 대사관 부지로 사들이면서 끊겼던 돌담길이 131년 만에 온전히 되살아나는 셈이다. 덕수궁 돌담길 복원은 잘못된 과거를 원상태로 환원시키는 가시적 반추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의 지적과 시정 요구, 그에 대한 인정·개선의 노력이 합쳐진 결정이다. 그 맥락에서 역사와 관련한 사태들을 보자면 안타깝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현행 5대5에서 6대4로 조정하는 내용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사과 교육과정시안’이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가 초·중·고교에 배포하려 만든 ‘일본군 위안부 바로알기’ 교재에는 잘못된 내용이 숱하다. 그런가 하면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에 관련 전문가가 아닌 외교부 출신 관료를 앉히려는 인선 논란이 또 불거졌다. 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 축소는 보수·진보의 대립 논란을 의식한 측면이 짙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엄연한 사실 인정과 교육의 등한시라는 비판을 넘기는 힘들어 보인다. 교육부가 검토해 수정을 요청한 사항에 따르면 여성부의 ‘위안부’ 교재는 ‘일본 천황의 군대’를 의미한 ‘황군’ 용어조차 그대로 쓰는 등 부적절한 용어·문장과 사실오류,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289곳이나 지적됐다고 한다.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은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과거사 왜곡 등 이른바 ‘역사 전쟁’에 대응하는 야전사령관 격이다. 그 중요한 인물 낙점을 둘러싼 논란을 중국·일본이 어떻게 볼지 두렵다. 최근 광주에서 연출된 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의 ‘따로따로’ 행사는 그런 우리의 역사인식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부끄러움의 정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할지, 제창할지를 놓고 보여 준 분열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면 5·18 기념식이 정부 기념행사로 지정된 1997년부터 참석자들이 늘 함께 불러온 노래가 아닌가. 북한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였다는 노래가 그리도 첨예한 갈등과 분열의 명분일까.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보통 사람들이 함께 받아들이는 통념과 상식의 역사까지도 거부하는 ‘시계추 되돌리기’는 이제 멈춰야 한다. 오늘은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보자. 끊어진 채로 있는 돌담길을 정색하고 한번 쳐다보자.
  • 1965년 한·일 ‘독도 밀약설’의 숨겨진 진실

    1965년 한·일 ‘독도 밀약설’의 숨겨진 진실

    일본과의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광복 70년을 맞아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함은 단순한 민족적 감성이나 학술적 접근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아베 신조 총리의 신사참배, ‘다케시마의 날’ 행사,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독도의 일본 영토 명문화, 평화헌법 수정을 통한 침략적 군사력 강화 흐름, 나아가 미국과 일본, 한국이 묶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 움직임 등에서 보여지듯 역사에 대한 치열한 접근은 곧바로 현재 외교안보, 경제 영토 문제 등으로 직결되는 탓이다. 특히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은 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50년 전인 1965년,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맺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독도 밀약설’이 있다. 1965년 당시 두 나라가 꽉 막힌 한·일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독도를 둘러싸고 은밀한 약속을 했다는 게 요지다. 핵심은 한·일 두 나라가 각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현 상태를 그대로 둔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양국의 공식 입장은 밀약은 없다는 것이다. KBS 1TV는 21일 밤 10시 시사기획 창 ‘광복 70주년 특집-독도 밀약설을 취재하다’를 방송한다. 취재진은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와 함께 한·일협정 외교문서 10만쪽 등 두 나라 정부 문서를 대상으로 독도 밀약설의 근거를 정밀 추적했다. 그 결과 밀약설을 강하게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독도 막후 교섭의 전말을 생생하게 전하고, 독도 막후 교섭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지 함께 짚어 본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日, 사실 아닌 역사 왜곡 안 돼…준엄한 역사의 평가 받을 것”

    이완구 국무총리는 9일 일본이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재론하는 것에 대해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역사 왜곡을 해선 안 된다”며 “엄연한 진실을 덮을 순 없고 준엄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역사 왜곡 문제는 앞으로의 한·일 관계나 미래 세대를 위해 냉정하고 객관적인 팩트(사실)에 입각해 진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은 문화청 홈페이지의 한국 문화재에 관한 설명에서 ‘임나’라는 표기를 쓰고 있고, 또 최근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들도 일본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임나일본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총리는 “임나일본부는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회가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한 용어”라며 “교육부에 이 부분에 대한 연구 활동을 강화하고 사실 규명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할 계획”이라며 “또 고대사 연구에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하며 백제 패망 후 유민 수십만명이 규슈로 건너간 점, 폭우로 무너진 일본 왕릉에서 백제의 칼이 발견된 점, 일본 전통 악기가 백제의 것에서 유래한 점 등을 예로 들면서 “일본의 뿌리는 백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2011년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때 유사한 왜곡, 기술에 대해 강력히 시정을 요구했음에도 이번 검정 통과본에 관련 내용이 실린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관계 기관의 구체적 분석을 거쳐 문제 제기를 다시 하고 관련 기술의 시정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본 문화청 관계자는 “1936년 중요 문화재로 지정할 당시 임나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10여년 전 홈페이지를 개설할 때부터 이 표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문화재에 대해 기재된 내용은 문화재로 지정된 당시의 학설 등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며 “지금 문언을 바꿀까 말까 하는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노골적 역사 미화·공세적 민족주의…아베 입맛대로 현실화

    노골적 역사 미화·공세적 민족주의…아베 입맛대로 현실화

    6일 확정된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는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해 온 ‘역사 미화’와 공세적 민족주의를 교과서를 통해 처음으로 현실화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아베 정부의 입장과 견해를 반영하고 이에 기반한 교과서 내용과 기술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검정 결과에는 지난해 1월 문부과학성이 개정한 교과서 검정기준 및 중·고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의 지침에 따라 아베 정부의 입장과 의지가 대폭 반영됐다. 교과서 검정기준과 해설서를 바꾼 아베 정부가 이 틀에 맞춰 공교육 현장에서 쓰는 교과서의 내용 변화를 이뤄낸 것이다. 앞으로도 독도 영유권 주장과 과거사 부정 등을 더욱 노골화시킨 각급 교과서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란 점이 더 큰 문제다. 당장 내년 4월 고교 교과서 검정에선 독도에 대한 보다 도발적인 영유권 주장의 증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부정 등이 우려된다. 이번 검정으로 바뀐 교과서들은 내년 4월 새 학기부터 사용된다. 모든 일본 중학생들이 “독도는 일본땅”이란 내용을 배우게 되며 상당수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교과서를 쓰게 된다. 독도 기술과 관련, “한국의 불법 점거”라는 공세적 표현을 담은 교과서는 기존 4종에서 13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표현을 담은 교과서도 9종에서 15종으로 증가했다. 지리 과목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독도가 한국에 의해 불법 점거돼 있어, 일본이 항의하고 있음을 명기하라”고 요구했다. 역사 관련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일본이 국제법상 정당한 근거에 기반해 독도를 정식으로 영토에 편입한 경위를 명기하라”고 요구했다. 동경서적, 일본문교출판, 제국서원 등은 “에도시대 초기부터 일본인들이 조업해 왔으며 1905년 편입됐다”는 내용과 함께 ‘이승만 라인 설정’ 등 경위를 소개했다. 또한 간토대지진과 관련해서 시미즈서원은 “경찰, 군대, 자경단에 의해 살해당한 조선인이 수천명에 달했다”는 기존의 내용을 “살해된 명수에 대한 통설은 없다”라고 바꿨다. 문교출판도 “조선인 수천명이 살해됐다”는 내용을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살해됐다”고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대체했다. “통설이 없을 경우 이를 명시하라”는 교과서 검정 기준에 따른 것이다. 개정 작업은 아베 총리의 측근인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이 주도했다. 아베 정권은 “자학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소위 ‘정상화교육’을 추진해 왔다. “더이상 자기 비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침략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강조하며 사과와 반성 대신에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역사”를 강조해 왔다. 또 ‘피해자’, ‘영토 회복’이란 기치 아래 민족감정을 부추기면서 국민적인 결집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다만 이번 개정에서 역사교과서 검정을 받은 마나비샤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 및 고노 담화 요지가 새로 들어간 점은 주목된다. 2011년 이전 교과서에는 관련 내용이 있었지만 현행 교과서에는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마나비샤는 진보적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단체인 ‘어린이와 함께하는 교과서 모임’을 모체로 해서 만들었다. 일본의 시민운동단체 및 양심적인 지식인들과의 연대를 통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백제 도예부터 K팝까지… 한·일 관계 2000년의 역사

    백제 도예부터 K팝까지… 한·일 관계 2000년의 역사

    한일 교류 2천년/정구종 지음/나남/665쪽/3만 2000원 일본은 가깝지만 참 먼 나라로 일컬어진다. 물리적인 거리 측면에서 북한을 제외하면 국경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하지만 36년 강점기 피압박 역사의 흔적은 너무나 짙게 드리워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 등을 둘러싼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며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 멀기만 한 나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하지만 두 나라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휠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시대 도예, 종교, 행정제도 등 구체적인 문화교류 및 전수 이전에 이미 2000년 전 고대 한국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대륙의 벼농사법을 전수하는 등 교류의 역사는 유장하다. 현대사의 과오에 기인한 반성과 용서, 화해의 과정은 필연이겠지만 우호적인 교류 협력의 기억이 실은 그보다 훨씬 깊음을 알 수 있다. 부산 동서대 석좌교수이자 일본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민간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일본의 인류학자, 언론인, 문화평론가, 문화재전문가, 역사학자 등 지식인 23명을 만나 한·일 교류의 깊고 넓은 전체적인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백제왕 일가가 정착해 살았다는 미야자키현 히가시우스키군 난고손 마을의 ‘백제왕 전설’의 역사적인 부분을 심도 있게 다루는가 하면, 15대 심수관 도예가를 만나 조선도예의 기술과 전통,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일본 도자문화 사쓰마야키를 이룬 심수관가(家)의 역사성을 담는다. 또 ‘케이팝 전도사’를 자처하는 젊은 대중문화평론가를 만나 일본 내 한류 열풍의 현주소를 짚는 등 종횡무진 전방위적이다. 도쿄특파원 등을 지낸 언론인 출신으로서 묻고 답하는 인터뷰 형식을 통해 실증적이면서도 역사성을 띤, ‘살아 있는 역사서’를 만들어 냈다. 저자는 “두 나라는 길고 오랜 역사 속에서 만남과 소통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장르가 재창조되었고 새로운 문화로 태어났다. 한·일 문화의 하이브리드와 콜라보레이션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일본 열도에서는 여전히 한류와 혐한류가 공존하고,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떨쳐내지 못하고 파장 안에 머물면서도 반일감정은 고조되는 상황이다. 치열한 반성과 성찰에 이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강조했듯, 결국 서로 좀 더 깊이 알아야 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뉴스 플러스] 교과서 ‘천안함 내용’ 확대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중·고등학교의 모든 역사교과서에 실린다. 교육부 관계자는 26일 “오는 9월까지 마련할 역사교과서 집필지침에 천안함 관련 내용을 포함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모든 역사교과서에 관련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집필지침이 마련되면 국정의 경우 2017년부터 바뀌는 역사교과서, 검정은 2018년 개정되는 역사교과서에 각각 적용된다. 용어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천안함 피격’으로 통일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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