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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로세움(세계의 명소 걸작 건축감상:2)

    ◎고대로마 검투장… 1900년간 “우뚝”/역동성 넘치는 둘레 6백m 원형의 4층/각층마다 80개의 아케이드 구조물 방사상 배열… 아이디어 돋보여 고대 로마제국(BC 8세기∼AD 9세기)의 유적에서 느끼는 간격은 2천여년에 가까운 시간만이 아니다. 본래의 모습에 흠이 가고 용도도 바뀌고,어떤 곳은 폐허로 변해 옛모습을 되살리기 어렵고 당시의 사회상도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다만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커크 더글러스역)와 바라바의 검투 장면은 그 처절함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훈련소를 방문한 로마장군 부부 앞에서 오락대상으로 펼쳐지는 검투장면,검투사의 분노·저항·죽음 등을 통해 검투를 주목적으로 건설된 콜로세움의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서기 64년 폭군 네로황제에 의해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몰린 기독교도들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는 참혹한 장면을 볼수 있다. 로마제국은 대중오락을 국가가 제공했다.시민들은 잔인하고피투성이가 되는 경기의 관람을 좋아했으며 수천명이 운집한 원형투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 경기는 가장 인기를 끌었다.검투사들은 관중들의 함성속에 생사를 건 경기를 했다.한 검투사가 쓰러지면 그를 살리느냐 또는 심장을 찌르도록 하느냐는 관중들의 특권이었다.투기마당의 모랫바닥이 피로 범벅되어 질척거리면 새로운 모래로 덮고 경기를 계속했다. 콜로세움은 건축가 라비리우스의 설계로 72년 착공,82년 완성됐으며 공사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동원되었다.부지는 네로황제의 황금별궁안 연못터로서 폭군의 불타버린 저택지에 시민오락시설을 건설한 극히 정치적 상징을 띤 곳이었다.콜로세움의 북서방향은 포름로마눔(핵심적 정치·기념건물군과 광장)에 연계되어 캐피톨언덕의 로마의 수호신 「주피터 신전」과 공화정의 상징인 「원로원」과 직선축을 이루고 있다. ○라비리우스 설계 콜로세움은 투기마당(84×52m 타원형)을 4개층에 걸친 경사관람석이 타원형으로 둘러싼 구조물(둘레 6백m 높이 48m)이며 관람석 아래층은 통로공간으로 여러원형투기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어졌다. 구조체는 아치와 볼트로 되어 있는데 양외면에 벽돌을 쌓고 속은 로마식 콘크리트(화산재 콘크리트)로 채움으로써 매우 강하고, 겉에는 대리석으로 장식 효과를 살렸다. 콜로세움의 건축적 의의를 보자면 일단 구조적 안전성에 있다.현대와 같은 철근 콘크리트도 없던 당시 7층 높이로 지어 2천년 가까이를 버틸수 있게 한 기술이 놀랍고 건물 또한 아름답다.건물 외벽의 아치는 진·선·미에 해당하는 도리스식(1층),이오니아식(2층),코린트식(3층) 기둥양식을 적용하고 3세기에는 코린트식 장식벽을 4층에 증축함으로써 수평과 수직의 위계이다.또한 타월형평면으로 이룬 공간의 역동성과 축,명확한 통로공간이 특징이다. 외벽의 아치중 2,3층에는 석조인물상이 배치되고,1층은 독립된 출입구 구실을 하도록 했다.북동(장축) 중앙에 황제의 출입문이 있으며 로열박스는 2층에 남서향으로 배치되었다.4층 외벽면 상단에는 목제 마스트를 꽂아 깃발을 달고 차양을 쳐 한껏 축제기분을 내며 뜨거운 태양을 가리도록 한 것이다. 건물중앙의 투기마당은 4.5m의 담장을 둘러쳐 구경에 열중해 흥분하는 관람자들의 안전을 기했다.마당밑의 지하에는 검투사 대기실·맹수우리·무기고·경비대숙소·공연보조물 운반기계창고·지하도로 등이 있었다. ○관람객 안전 고려 콜로세움 완공후 1백일간의 준공축제 동안에만도 많은 검투사와 5천여마리의 맹수가 살육되었다고 한다.또한 한때는 초기 기독교도들의 처형장소로도 활용되었다. 검투경기는 407년에 금지되고 맹수와의 싸움도 523년에 금지됨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서로마제국이 게르만민족에게 망하고(476년)로마가 교황국가에 편입된 이후 1천년동안 이 건물은 방치되었다가 15세기부터 3백년간은 건축 석재 채취에 쓰이는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르네상스 시기 로마에 건설된 유수한 건축물인 베네치아궁을 포함한 3개 궁전,성베드로 대성당 신축 등에 쓰인 석재들이 이곳에서 캐내어진 것이다. 그러나 1749년 교황 베네딕트 14세가 콜로세움을 순교자의 피로 성화된 곳으로 선포함으로써 석재 공급 역할은 끝났으며 1800년부터 부분적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콜로세움 주변의 정리는 1933년 파시스트정부가 행한 유명한 로마도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주변의 고적군을 밀어내고 광장과 도로를 넓힘으로써 오늘의 경관을 확보했다. ○현대에도 모델로 현재 건물의 북동벽면은 온전한 상태이나 나머지 벽면은 멸실되고 2개층만 남아있는 곳도 있다.관람석과 투기마당의 바닥슬라브도 벗겨져서 내부의 아치·볼트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로 있다.1973년 이후 부분적인 복원·수리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콜로세움은 경기와 관람을 위한 건물의 한 전형이 되고 있다. 근대 올림픽 시작 이후 세계적으로 번진 스포츠 스타디움의 건설및 대중문화의 상징으로서의 엘리트스포츠와 이의 기업화에 따라 자재와 기술은 새로워져도 건축 원리는 타원형 콜로세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콜로세움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건축의 사회적 기능을 보여준다. 제1기 로마제국(4세기까지)에서는 검투사 또는 동물 투기장,제2기 중세(4∼14세기) 혼란기에는 지진피해,방치,또는 요새,제3기 르네상스기(15∼17세기)에는 약탈수난,제4기 근대계몽기(19세기)에는 순교지 지정,제5기 단일세계권(20세기후반 이후)에서는 세계적 역사관광 순례지로서 기능이 바뀌어 가고 있다. 1천여년의 망각과 3백여년의 약탈 수난과 도괴의 위기를 거쳐 근세에 들어와서 그 가치가 다시 부활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철거 운명에 놓인 우리의 조선총독부 청사(현 중앙박물관)에서 상기하는 아픔은 크다.식민 통치의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라하여 허물어져야 한다면 남아있는 건축이나 역사 유산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콜로세움은 변덕스레 바뀌는 이념과 가치관 때문에 과거의 건축 유산을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낭비와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함을 일깨워준다.
  • 민족사관확립의 중추되라(사설)

    국사편찬위원장이 10년여만에 바뀜으로써 「국편위」의 개혁과 개편에 대한 학계의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위원장의 경질과 함께 지난 6월30일자로 국사편찬위원 15명 전원의 임기가 끝나 곧 있을 새 위원의 위촉도 그동안 침체된 국사편찬위원회의 활성화에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편위」는 민주사의 편찬을 비롯,사료수집·조사·보관및 자료간행 등을 기본적인 기능으로 하고 있다.해방되던 해 「국사관」으로 출범했으니까 반세기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올바른 역사인식은 타당한 「시대정신」을 창출해내고 그것은 그 사회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법이다.인간은 정확한 역사인식을 통해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따라서 국사의 편찬과 연구를 총괄하는 「국편위」의 중요성은 실로 막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김영삼대통령이 신임 이원순위원장에게 『국사편찬위가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 바로잡기와 바로 세우기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한 당부도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국사연구가 추구해야 할 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토대로 하는 민주사관의 정립이라고 하겠다.일제 식민지지배를 통해 왜곡되고 격하당한 우리역사의 줄기가 제 모습으로,제자리에 복원되어야만 한다.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민족사관의 확립은 더욱 절실한 명제로 대두된다. 그럼에도 최근 사학계일부에서는 진보주의라는 미명하에 근·현대사를 왜곡기술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96년부터 사용될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1차 시안에서 연구팀이 제시한 용어들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정서를 배신하는 황당한 내용들이다.「제주도 4·3사건」을 「4·3항쟁」으로,「대구폭동사건」을 「10월항쟁」으로,「동학농민운동」을 「농민전쟁」으로 기술하는등 역사왜곡이 극심한 북의 사회주의시각과 유사한 관점을 보였다.검증되지도 않은 소수의 학설을 교과서에 기술하려 했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독선이요,오류다.사학계 일각의 이런 시각을 우리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없다.신임 위원장의 취임과 새 편찬위원의 위촉으로 새 모습을 보일 「국편위」는 학계의 이같은 혼란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직제의 개편이나 연구위원의 확충,발간사업 확대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연구를 주도하는 핵심기관으로서 올바른 사관의 방향을 제시하고 민족사관의 기틀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믿는다.일부 좌경성향의 사학자들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연구성과와 논리로써 오류를 시정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일 총회 마친 김윤환 한일의원련회장

    ◎“일 「데라우치문고」 반환 곧 성사”/진정한 과거정리 공감대 확산/한·중·일의원협의체 구성 활발/행정구역 개편 논란불구 불가피성 인정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21세기의 진정한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인식을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이 공유한 자리였습니다』 지난주 일본 토쿄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총회에 47명의 우리측 대표단을 이끌고 다녀온 김윤환연맹회장은 『일본에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내각이 들어선뒤 과거에 대한 정리없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있을 수 없다는 객관적인 역사관이 정립돼 가고 있다』면서 『「데라우치문고」를 포함한 문화재의 반환이나 일왕,왕세자의 방문등을 통해 과거사를 사죄하는 구체적인 역사 정리작업이 곧 이뤄질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데라우치문고」는 일제의 초대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가 조선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고향인 야마구치현의 여자대학에 기증한 것으로 김생,최치원,정몽주,김정희의 서화와 서간집등 1천여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다.김의원은 『일본측과 반환협의가 계속되고 있으며 소장자인 야마구치여대측에서도 부정적이지는 않다』고 전하고 『역사학자들이 현지를 방문,고증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일단 반환에 앞서 문화재 전부를 마이크로 필름에 담아 우리측에 보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김의원은 또 『데라우치문고 말고도 일본 정부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했다』고 밝히고 『일본측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이고 성의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김의원은 일본측이 해방 50주년,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이 되는 내년의 역사적 의미를 매우 중시,두 나라가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같은 사업을 뒷받침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의원은 『물론 일왕이나 왕세자의 방문은 오히려 우리국민의 정서를 그르치게 할 우려도 있다』고 짚고나서 『그 때문에 일본의 국회가 동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과거에 대한 명확한 견해를 공식결의하고,일왕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지금까지의 수사학적 변명이 아니라 「이만하면 과거문제는 정리됐다」고 납득할만한 수준의 사죄를함으로써 역사를 정리하자는 의견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의원은 이번 총회에서 한,중,일 3국이 의회차원에서의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직접 제안,구체적인 실무협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도이 다카코 일본 중의원의장은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맞아 정부차원의 APEC뿐만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를 포함한 아시아국가 의회간의 회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동감을 나타냈다고 소개했다. 민자당의 경북도지부위원장이기도 한 김의원은 일본 체류기간중 국내에서 계속 전개된 행정구역 개편 논란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원칙을 갖고 추진했어야 했다』고 지적하면서도 『대구가 경북에 편입되지 않으면 확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 범위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진보사관 배제… 객관성에 역점/국사교과서 개편시안의 내용과 특징

    ◎「쇄국정책」→「통상거부」·「창씨개명」→「일본식성명 강요」로/」5·16」·「10·26」·「12·12」는 평가 유보 교육부의 국사교과서 개편시안은 각계의 비판을 수렴,진보적이기 보다는 보수적·안정적인 역사의 객관적 서술에 중점을 두고있다. 이는 학계의 시비가 가려지지 않거나 평가가 덜 끝난 사건·용어를 신중하게 선택,학생들의 가치관·역사관의 혼란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더도 덜도 아닌 있는대로」기술하는 교과서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번 시안은 학계연구팀의 3월과 7월 두차례에 걸친 보고서와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실팀의 심사자료를 바탕으로 교육부가 위촉한 최병헌서울대교수(국사학)등 7명의 전문가가 마련했다. 이와관련,준거안 2차 보고서를 내며 이존희교수는 『지난 3월 준거안을 발표한 것은 개인의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학계·교육계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때 보여준 각계의 폭발적인 관심에 책임감을 느껴 보다 객관적이고 국민적 정서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명희 교육부 편수국장도 『국사교과서의 개편내용이 현행과 큰 차이없이 심의절차를 거쳐 시안대로 확정될 것』이라며 쟁점사안의 논쟁을 매듭지었다.개편시안의 특징으로는 크게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자칫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뒤흔드는 과격하거나 진보적인 개념규정을 피한 점이다. 당초 준거안 발표시 거센 비난을 산 제주도 4·3항쟁과 대구항쟁을 현행대로 사건·폭동으로 기술하고 주체사상을 삽입하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두 사건의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진보학설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국가의 정체성에 미치는 악영향과 학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다.김일성사상은 현행 유일사상으로도 설명이 가능해 주체사상을 빼기로 했으며 김의 사망과 후계체제 구축은 도덕·국민윤리 과목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같은 방향은 최근 사상논쟁의 방향과 일맥상통한 것이어서 주목된다.그러나 주민전체에 굴레를 씌운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사건으로 표시하고 그 주체를 「주둔군 내부의 일부 좌익세력과 이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이 주동이 되어」라는 식으로 명확히 서술키로 했다. 둘째는 고대사 부문에서 학계의 정설을 존중하되 학문적 성과를 반영,이론이 있는 내용은 따로 설명을 붙였다.우리나라의 벼농사 시점이 청동기시대이나 최근 발견된 양양·김포등지의 쌀유적지를 감안,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주로 설명한 게 예. 국가의 형성과정도 이론이 있으나 군장국가­연맹왕국­고대국가로 통일시켰다.양인 주장이 있는 고려시대 천민계층인 향·소·부곡민이 특정역을 부담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천민계층으로,근세의 태동시기를 18세기가 아닌 17세기로 서술하기로 한 점등이다. 셋째는 지나치게 왜곡된 역사개념을 중립적 시각에서 바로잡고 선조들의 투쟁을 주체적 입장에서 바로잡은 것. 이제껏 대원군의 대외정책을 국수적인 관점에서 몰아붙여 쇄국정책으로 기술한 것을 외세침탈에 대한 항거라는 점을 감안,잘잘못을 가려 통상거부로 표기한다.식민사관의 잔재인 창씨개명을 주체적 입장에서 일본식 성명강요로 바로잡는다. 또 일제하인 37년30만 동포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사실을 새로 기술하고 만주지역이 과거 우리땅이란 점을 감안,49년 이후는 중국 동북지역으로 표기한다.6·25전쟁을 한국전쟁이 아닌 그대로 표기한 것도 주체적 사관을 반영한 흔적이다.광복후 반민특위 활동과 마산의거를 새롭게 평가한 점도 국가의 정통성 유지측면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사에 있어 주역들이 생존해 있거나 재판계류중인 미묘한 사건등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했다. 5·16,10·26,12·12등을 쿠데타가 국민들의 언어정서에 맞지않아 이 개념을 포괄하는 정변등으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며 이는 2000년이후 7차 교과서개편시 후세사가들의 몫으로 남게됐다.
  • 「전후청산 계획」에 불신만 키운다/되풀이 되는 일지도층 「망언」

    ◎53년부터 계속… 진정한 반성 “회의적”/도처에 군국주의 망령… 현정권에 부담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하는 일본의 8월.많은 각료와 일본인들은 매년 8월15일을 전후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정국)신사를 참배한다.사쿠라이 신(앵정신) 전환경청장관의 「침략전쟁 부인」발언은 일본의 이러한 군국주의가 사회저변에 뿌리깊게 남아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사쿠라이 전장관(자민당)은 지난 12일 『일본은 침략전쟁이라는 생각으로 전쟁을 하지않았다.태평양전쟁으로 오히려 아시아는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났고 경제부흥과 민족 활성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망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보수세력의 전형적인 왜곡된 역사관이다.그는 자신의 발언이 한국·중국 등 아시아국가들과 연립정부내의 사회당으로부터 강력한 비판과 반발을 불러일으키자 결국 14일 사임했다.후임에는 자민당의 미야시타 소헤이(궁하창평) 전방위청장관이 취임했다. 자민당 지도부는 연립정권의 유지를 위해 우선 사회당의 요구대로 환경청장관을 교체한 것으로 분석된다.일본언론들은 사쿠라이 전환경청장관의 발언과 사임파동이 연립정권내의 사회당과 자민당의 역사인식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며 전후청산과 「비둘기파 정권」임을 강조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 정권에 중대한 타격으로 정권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다.정권이 바뀌어도 일본의 침략전쟁과 군국주의·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망언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불과 3개월전인 지난 5월에도 하타정권때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법상이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다』라는 망언으로 국내외의 강력한 비판과 반발이 있자 사임한바 있다. 일본 각료 및 지도자들의 망언의 역사는 길다.그 첫번째는 지난 53년 한·일회담때의 구보다 간이치로 일본측 수석대표의 망언.그는 『일본의 식민지지배는 한국에 유익했다』고 말했다.그후 다카스기 신이치 제7차 한·일회담 일본측 수석대표,나카소네 내각때의 후지오 마사오 문부상(84년),다케시타내각때의 오쿠노 세이스케 국토청장관(88년)등의 망언이 계속됐다. 자민당을 중심으로한 일본의 보수·우익세력은 이같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지지배의 「은혜론」을 강조할뿐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단절시키려 했던 식민지지배의 고통과 비참함에는 눈을 감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은 또 문제의 발언으로 주변국가가 반발을 보이면 사후해명·유감표시와 각료의 사임이라는 편리한 「이중행동」을 반복해오고 있다. 무라야마내각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후청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그러나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올바른 역사인식이 없는 전후 청산은 일본이 과거사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져 다시 군사·정치대국화를 지향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국가들의 불신감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 8월의 문화인물 박은식선생/일제때 민족사연구·독립운동에 헌신

    ◎추모세미나·강연회·관련 자료전 다양 문화체육부는 8월의 문화인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백암 박은식선생을 선정했다. 박은식선생(1859∼1925)은 황해도 황주 태생으로,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민족사 연구,언론활동,독립운동에 헌신하며 민족혼을 일깨웠다. 18 98년 이래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민족사상을 고취하고 민족고전을 보급,지도하다 한일합방 이후 19 11년 만주로 망명,고대사 연구와 독립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대통령을 지낸 선생의 유해는 지난해 조국으로 봉환되어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저서로는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왕양명실기」,「대동고사론」 등이 있다. 문체부는 「박은식의 달」을 맞아 8월 한달동안 관련단체와 함께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학술세미나,관련 자료 전시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각종 기념행사는 다음과 같다.(주관처) ◇강연회 및 세미나=△추모 학술 세미나:12일 하오 1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신용하교수(서울대) 등이 「박은식의 애국계몽사상과 민족주의 역사관」 등에 대해 발표(광복회,한국민족운동사 연구회)△강연회:12일 하오 3시 전북 진안군 마령면 이산묘에서 유장호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이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강연(전주문화원) ◇전시 및 공연=△관련 사진자료 전시회:1일부터 31일까지 독립기념관에서 선생의 영정 등 사진자료 12점 전시(독립기념관)△관련자료 전시회:1일부터 31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한국통사」 등 10종10책을 전시(국립중앙도서관)△박은식의 달 및 광복 49년 기념 축제:14,15일 이리역 광장에서 사물놀이,관현악 연주 등 공연(예총 이리지부)
  • 일 법무,망언취소·사죄/3일만에/아주국들 반발… 파면 요구

    ◎한 외무,주한대사 불러 향의 한승주외무부장관은 6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법무상의 망언과 관련,고토 도시오(후등리웅)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우리 정부의 항의의 뜻을 전하고 일본정부의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한장관은 이날 상오 고토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나가노법상의 태평양전쟁 관련 발언은 『한국 정부및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밝히고 『이는 왜곡된 역사관으로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장기호외무부대변인이 전했다. 한장관은 이어 『일본정부는 진상을 규명하고 자국의 입장을 확실히 표명하는 한편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긴급기자회견 자청 【도쿄=이창순특파원】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며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라는 망언으로 국제적 파문을 일으켰던 일본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법상이 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을 전면적으로 철회하고 사죄했다. 나가노법상은 이날 자신의 발언이 중국·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의 강력한 반발로 외교문제화됨과 동시에 국내에서도 정치문제화되자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자신의 과거역사에 대한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남경대학살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며 대단히 불행한 사건으로 중국국민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3일만에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사건』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의 진퇴문제와 관련,『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임명권자인 하타 쓰토무(우전자) 총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일 중진법조인들 나가노망언 비난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을 방문중인 일본법조계의 중국사법제도조사단(단장 소전성광변호사)은 남경대학살의 조작설등 나가노 일법무상의 망언소식을 듣고 분개,6일 나가노장관의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뒤 성명서를 주중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방중활동중 남경대학살의 역사현장을 둘러본 우리들로서는 법률가적 양심에 따라 과거 침략의 역사적 죄과를 왜곡하려 한 나가노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게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변호사 법학교수등 18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지난달 28일부터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방중,중국의 사법제도에 관한 조사활동을 벌이던중 나가노 망언소식을 듣고 5일밤 북경호텔에서 전체회의를 소집,이같은 내용의 성명문안을 작성했다. ◎나가노 망언 규탄/일 정부 사과 촉구/여야 논평 여야는 6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일본 법무상의 태평양전쟁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논평을 각각 내고 일본정부의 사과와 책임있는 태도표명을 촉구했다.
  • 1백주년 특별공연/동학농민군 함성 무대위에 넘친다

    ◎뮤지컬 「징게…」·민족가극 「금강」·무용극 「녹두꽃…」 등 다채/「들풀」/우금치서 전사한 농민군 이야기 극화/「녹두꽃…」/동학난 당시 시대상 현대시각서 조명/4월22일∼6월7일 전주서 10여팀 참가 기념연극제도 동학 농민군의 함성이 무대위에 넘친다.동학혁명 1백주년을 맞은 공연계는 기념연극제·뮤지컬·무용극등 다양한 장르의 특별무대를 마련,동학혁명의 의의를 새롭게 조명한다. 현재 공연을 준비중인 무대는 민족예술총연합회(민예총)가 주관하는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 기념연극제와 역사뮤지컬「들풀」(극단 모시는 사람들),창작무용극「녹두꽃이 떨어지면」(서울시립무용단),민족가극「금강」(가극단 금강),뮤지컬「징게 맹개 너른들」(서울예술단)등. 민예총은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오는 4월22일부터 6월7일까지 전주 시내 각 소극장에서 「동학기념연극제」를 펼친다.현재 참가를 신청한 단체는 「우리동네 갑오년」(대전·우금치극단),「이거리 저거리 각거리」(대구·극단 함께하는 세상),「칼노래 칼춤」(서울·부산 극단 한두레·자갈치회)등 10여팀.연극제 기간중에는 전야제 형식의 마당극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25일부터 서울 연강홀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들풀」(김정숙 작,권호성 연출)은 동학혁명 최후·최대의 격전장이었던 우금치 전투에서 죽어간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황해도 굿 무형문화재 박남희씨를 비롯,김호정 장진등 모두 30여명의 배우들이 민초로 출연,시대를 뛰어넘는 민중의 건강한 모습을 연기해낸다.연출자 권호성씨는 『이 작품은 이 땅의 들풀들이 자신을 짓누른 역사의 껍질을 온몸으로 걷어내며 새하늘,새세상을 열어가는 사랑과 분노의 이야기』라며 『5년간의 기획끝에 탄생되는 노작인만큼 이를 통해 동학혁명이 단순히 죽어버린 과거의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될것』이라고 자신했다. 서울시립무용단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녹두꽃이 떨어지면」(김용범 작,황두진 연출)도 주목할만한 작품.동학난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을 오늘의 시각에서 조명,「과거의 전봉준」이 아닌 「미래의 녹두장군」을 그린다는 것이 기획의도다.특히 기존의 스토리 위주의 무용극 구성방식에서 탈피,대형무대에 어울리는 현대화된 새로운 한국 춤사위를 소개함으로써 기존의 무용공연과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계획도 갖고있다.시립무용단의 터줏대감인 한상근씨 등의 안무로 80여명의 무용인들이 출연하는 초대형무대로 꾸며진다.공연은 4월19,20일 하오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밖에 서울예술단의 「징게 맹개 너른들」(김제 만경 넓은들,부제 「녹두장군」,김효경 연출),신동엽시인의 대서사시「금강」을 각색한 「금강」(문호근 연출)등이 각각 4월,8월중에 선보인다.특히 1백여명의 배우들이 꾸미는 초대작「징게 맹개 너른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구전민요로 널리 알려진 녹두장군 전봉준의 진보사상을 동학난의 시대적 필연성이란 새로운 관점에서 극화할 방침이어서 관심.한편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이같은 대작들의 잇단 출현은 우리 민족운동사의 커다란 분수령을 이룬 동학혁명을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올바른 역사관 정립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은다.
  • 일 교과서검정 “변화의 바람”/도쿄=이창순(특파원코너)

    ◎호소카와 등장후 「남경학살」 등 게재 허용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의 등장과 함께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이 더욱 완화되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한국,중국등 아시아주변국가들과 많은 마찰을 빚으며 심각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었다.그 배경은 일본이 자신의 전쟁범죄와 식민통치의 잔학성등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은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잔학행위를 검정제도를 통해 교과서에 싣지못하도록 했다.이같은 역사왜곡은 원로역사학자 이에나가(가영삼낭)전도쿄교육대학 교수의 오랜 「역사교과서 소송」이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에나가 전교수는 30여년전 일본의 침략전쟁기술등이 문부성 검정에서 통과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으며 그 소송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이에나가 전교수의 「일본사」고교교과서는 30여년전 3백20개 부분이 검정에서 지적을 받아 불합격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올해는 오기나 용어등 대부분사소한 문제만 지적받았으며 그 수도 31개로 줄었다.이에나가 전교수는 올해 교과서에 남경대학살,종군위안부문제,731부대등 과거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던 내용을 다시 기술했다.그러나 문부성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일부 수정을 요구했을뿐 대부분 그대로 통과시켰다.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이 완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증은 최근 적지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문부성은 종군위안부문제,남경대학살등 「숨기고 싶은」역사적 범죄행위의 교과서 기술을 허용하기 시작했다.아카마쓰 료코 문부상도 『어거지 검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역사교과서 소송,주변국가들의 반발,시대의 변화등 다양한 요소가 그 배경에 있다고 할수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총리와는 다른 비교적 솔직한 역사관을 갖고있는 호소카와총리의 등장도 중요한 계기가 되고있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역사적 잔학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기 보다는과거에 눈을 감으려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있다.그런가운데서도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이 완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아시아국가들과의 미래지향적 우호관계의 출발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 동학혁명 100돌/대대적 기념사업 펼친다

    ◎천도교서 「계획된 혁명」 부각에 초점 맞춰/방대한 백년사·자료·논문집 발간/우금치전투병 1만명 군적 싣기로 오는 10일은 동학혁명의 효시가 된 전봉준주도의 고부군아 습격봉기가 일어났던 날. 1894년의 일이니까 꼭 1백주년을 맞게 되었다. 이에따라 동학을 모태로 창도한 천도교는 동학혁명 1백주년기념사업회를 조직했다. 천도교는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올해 조형물 건립사업과 학술,문화예술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학술사업에 특히 중점을 두어 동학혁명의 이론을 학술적으로 정립할 계획. 왜냐하면 일제때에는 혁명의 주체를 피지배자로 보고 동학란으로 격하했는가 하면,기껏 발전한 역사관에 의해서도 동학운동,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 정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천도교의 입장과 주장은 사뭇 다르다. 비록 성공은 거두지 못했더라도 1893년 동학교도 8만이 참여한 1893년 3월10일 대규모의 보은장집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준비기간이 1년여나 되어 계획된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도교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을 동학혁명으로 부르도록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할 방침이다.기념사업회가 학술사업으로 확정한 각종 자료집 간행도 그 명칭을 모두 동학혁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간행사업은 ▲동학혁명1백년사 ▲동학혁명 1백주년논문집 ▲동학혁명자료집등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동학혁명1백년사」는 6천4백60쪽으로 계획된 방대한 사료집. 그리고 「동학혁명자료집」은 2천6백쪽으로 간행할 예정이다. 「동학혁명1백년사」에는 19세기후반 동학사상이 태동한 사회적 배경에서 부터 1894년 동학혁명,1919년의 3·1운동,1920년대의 신문화운동에 이르는 기간의 주요 사안이 들어간다. 이현희(성신여대),김창주교수(동국대)등 8명의 필진이 참여하는 「동학혁명1백년사」는 모두 11개 항목으로 집필된다. 「동학혁명자료집」 간행에는 신일철(고려대 대학원장), 최동희(고려대), 진용후(서울대), 중총명교수(일본 종랑여대)등 13명의 학자가 집필을 담당했다. 이밖에 전국에 산재한 사발통문과 서찰,관군의 포고문 등 동학혁명 관련 사료를 한데 모아 번역하는사료편찬작업을 비롯,「청·일전쟁실기」와 「동학군군적부」 간행사업도 학술사업의 하나로 올해 추진한다. 동학혁명의 큰 요인으로 문호개방 이후의 외세가 가져온 모순이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청·일전쟁실기」 간행 역시 뜻있는 사업. 특히 동학혁명의 서막처럼 떠오른 보은장내집회때에 이미 조선조정이 청나라에 차병교섭을 벌이는등 외세개입을 자초했다. 끝내는 동학혁명 과정에 청군과 일군이 우리나라에 상륙함으로써 청·일의 각축장이 되었다. 1894년 12월 동학혁명이 맥이 결정적으로 꺾이는 공주 우금치전투의 상대도 일군이었다. 이전투의 참가한 1만여명의 동학군을 비롯한 전국의 동학군 명부를 수록하는 「동학군군적부」는 연말쯤 나온다. 이 군적부에는 각 지역의 전투일지를 부록으로 곁들여 싣기로 했다. 기념사업 전체예산은 39억6천1백만원. 이 가운데는 정부지원금 5억원이 포함되었으며 나머지는 특별성금과 천도교유지재단 지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 서방의 「중국 괴롭히기」/최두삼 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영국은 오는 97년의 홍콩반환문제를 놓고 중국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반환전에 식민지 홍콩의 민주화를 이룩해놓겠다며 입법원(의회)선거문제를 놓고 중국과 협상을 해오다가 최근 협상포기를 선언,독자적인 민주화추진계획을 발표했다.그러나 민주화라는 명분뒤에는 『땅은 돌려주되 그 위에 이룩한 부를 송두리째 넘겨줄 수는 없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같다. 중국을 괴롭히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다.특히 지난 89년 천안문 유혈사태이후 최근까지 거의 5년동안이나 서방 강국들은 경쟁적으로 중국을 질타해왔다.그중에서도 미국은 최혜국대우 부여를 비롯한 각종 문제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고 올림픽개최마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었다. 서방세계의 중국괴롭히기는 아편전쟁으로부터 청일전쟁 중일전쟁등을 비롯,지금까지 1백50여년간 지속됐다.그동안 중국대륙을 침탈해오면서 끝없이 중국인들을 능멸해왔다.심지어 외국인 전용구역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을 내걸어두는가 하면 중국인들이 씻기를 싫어해 몸이 더럽다는 사실을 과장해서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도 만들어냈다. 『중국 한국 일본등 3나라 사람들이 모여 더러운 곳에서 얼마나 오래 견디는 지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기로 했다.방법은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와 함께 얼마나 오래 견디는 지를 견주자는 것이다.일본사람은 불과 3∼4시간만에 손을 들고 뛰쳐 나왔다.은근과 끈기의 한국인도 만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돼지에게 욕설만 퍼부으며 빠져 나왔다.마지막으로 중국인이 들어간 지 한시간도 안된 때였다.이번에는 중국인이 아닌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오면서 「저런 인간과는 한시도 같이 지낼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이같은 서방측의 대중국 핍박이 있을 때면 생각나는 게 영국의 세계적인 석학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관이다.그는 서양측에 짓밟혀 온 중국이 잠에서 깨어 날 때 거대한 보복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며 황화론을 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미국과 영국은 마치 태평양시대의 도래를 촉구라도 하듯 자꾸만 중국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아무래도 요즘 서방 지도자들은 토인비의 역사관 따윈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 김원우의 「우국의 바다」(이작가 이작품)

    ◎“조선왕조 몰락과정 사실적 추적”/자료수집만 10년… 실존인물 고영근 등장 김원우(46)의 장편역사소설 「우국의 바다」(전6권 세계사간)는 여늬 역사소설과는 다르다.「역사소설 읽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한껏 안겨 주면서도 「고증된 역사의 진면목」을 한점 빠뜨리지 않았다.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을 두 축으로 조선왕조가 어떻게 망국의 과정을 밟아 가는지를 사실적으로 추적한 이 소설의 기둥은 고영근이라는 의외의 인물이 떠받치고 있다. 작가가 역사속에서 찾아낸 실존인물 고영근은 서출로 태어나 사대부집 종에서 중전 민비의 친정동생 민영익의 청지기를 거쳐 장단군수,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출세한 입지적전 인물.이후 만민공동회 회장으로 일하다 일본에 망명해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테러리스트로 변신,일본관헌의 추격을 따돌리고 민비시해의 조선측 일급 하수인인 우범선을 척살하는 자객이 된다.고영근이란 인물을 통해 작가의 보수적이면서도 자주적인 역사관을 엿보인다. 궁중과 민가,그리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우국의바다」는 종래 한국역사소설이 지녀온 행동반경의 협착성이나 주인공의 단순성·추상성을 훌쩍 뛰어 넘는 역작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김원우를 김주영,황석영을 잇는 걸출한 역사소설작가의 반열에 들게 한다. 박종화류의 「궁중사」와 홍명희류의 「민중사」의 적절한 배분은 「세부의 작가」로 일컬어지는 김원우의 글솜씨를 잘 드러낸다.10년에 걸친 자료수집기간과 6년이라는 긴세월을 이 한 작품의 마무리에 매달려 추고에 추고를 거듭한 공들인 작업끝에 실존인물 고영근의 10년 일본망명생활은 물론 사대부들의 행음풍속,대원군과 민영익의 예도.궁중풍속,선비집안의 가풍등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재현해 낼 수 있었다. 김원우는 지난77년 「임지」로 등단한후 「무기질청년」「세자매이야기」「장애물경주」「짐승의 시간」「가슴없는 세상」등을 발표하면서 오늘의 한국현실과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정명하게 비판해 왔다.지독할 정도의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독살스러운 세태풍자는 「김원우류」로 일컬어도 손색없을 만큼 일가를 이루고 있다.한국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소설가 김원일의 실제이다.
  • 김영삼대통령 만찬사

    오늘 회담은 우리 두 나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매우 유익한 만남이었음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두나라는 올해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으며 다함께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우리 두 나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데 더없이 좋은 계기를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나는 일본의 역대총리 중에서 가장 높은 국민적 기대와 신망을 받고 계시는 호소카와 총리대신에게 개혁의 동지로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느끼고 있습니다.새 일본을 상징하는 호소카와 총리대신께서 새로운 역사관을 밝히고 한국과 더 가까운 이웃이 되려는 의지를 적극 실천하고 계신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나도 지난 2월 취임이래,우리 두 나라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더욱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우리 두 나라는 수천년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서로 문물을 주고 받으며 깊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우리 두나라가 한때 불행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수천년 교류사 중에서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합니다.우리는 이제 더이상 과거에 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가오는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우리 두 나라가 양국간의 상호이익과 세계를 위하여 함께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우리 두 나라는 새로운 문명,새로운 국제질서가 탄생하는 이 시기에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서 더욱 긴밀한 협조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 “부담없는 대화” 공동성명 생략/「경주정상대좌」 어찌되나

    ◎과거사 언급수위 어느정도일지 주목/공식수행원 숙박비만 우리측서 부담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총리가 6일 「실무방문」형식으로 경주에 온다.한일 두 나라의 정상은 고도 경주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양국 현안을 논의하게 된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노태우대통령의 교토방문에 이어 두 나라의 정상외교를 실무외교로 정착시키는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특히 김영삼대통령이나 호소카와총리 모두 개혁을 추진하는 지도자로서의 공통점 때문에 서로에게 남다른 친근감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점을 확인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주된 목적으로도 여겨진다. ○…양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이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 실무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양국은 정상간 대좌가 보다 부담없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않는다.대신 간략한 공동기자회견을 갖기로 합의를 봤다.정상회담 시간을 토요일 하오로 잡은 것도 전례없던 일로 실무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양측은 두나라 정상 부처가 여유있고 서로 스스럼없는 분위기 속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석굴암,불국사등 역사유적지를 관람하는 시간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한에서 호소카와총리가 과거문제에 대해 어떤 수위의 언급을 할지도 관심사.지난 시절 양국 정상이 만났을 때 나왔던 「유감스러웠던 과거의 불행한 역사」(83년 나카소네총리) 「금세기 한시기의 양국간 불행한 역사 있었던 것 진심으로 유감」(84년 히로히토왕) 「통석의 염」(90년 히로히토왕) 「한·일간 불행한 과거 솔직히 사죄」(91년 가이후총리)등과 같은 표현은 사실상 양국간에 미리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식의 사전조율이 없다.호소카와총리는 지난 8월 취임기자회견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은 일본의 침략전쟁이었다」고 인정하는등 이전의 총리와는 달리 발전적인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호소카와총리의 발언은 일본내에서 반대여론이 많아 어느 수준의 발언이 나올 것인가 주목된다. ○…호소카와총리의 이번 방한에 우리정부가 배정한예산은 모두 6천9백50만원.비슷한 일정의 과거 경우보다 40%가 줄어든 액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 호소카와총리의 공식 수행원은 이시하라 노부오(석원신웅)관방부부장관과 후쿠다 히로시(복전박)정무담당외무심의관등 15명으로 이들이 머물 힐튼호텔의 8개 방에 대해서만 우리측이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일본측이 부담한다.일본 외무성은 당초 과장급 실무자를 한국에 파견,호소카와총리 방한과 관련한 의전문제등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호소카와총리가 의전은 초청국에 일임하라고 지시했다고.일본측은 그것이 「호소카와스타일」이라고 설명. ○…호소카와총리의 부인 가요코(개대자)여사는 지난 7월 방한한 클린턴미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여사와 마찬가지로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눈길.가요코여사는 지난 7월 총선때는 신당 창당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남편을 대신해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했으며 최근 미국방문때도 동행,부군의 기자회견 장면을 직접 비디오로 촬영하기도. 가요코여사는 호소카와총리의 한국 방문에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청바지,스웨터를 준비했다고.
  • 개혁과 금단증세(김호준 정치평론)

    수십년간 가까이 해온 담배나 술을 어느 날 칼로 두부모 자르듯 딱 끊게 되면 두통·불면증·갈증·수전증·현기증·흥분·허탈등 갖가지 이상증상이 나타난다.불안·초조·신경과민·긴장등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공복감·불규칙한 배변·우울·무기력증·발한·식곤증·집중력 장애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니코틴이나 알코올 만성중독자가 금연·금주등의 결과로 혈중의 니코틴·알코올농도를 일정수준 유지하지 못했을때 일어나는 이러한 생리적·심리적 이상증세를 의학에선 금단증상이라고 부른다. 금단증상은 인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으로도 많이 발견된다.새 정부의 개혁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 보여온 신경질적 반응도 일종의 금단증상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수십년간 혼탁한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 부패추방과 더불어 갑자기 닥친 생소한 청정 사회속에서 괴롭다고 몸부림치는건 인체에서 습관작용의 중단후에 나타나는 이상증세와 다를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새 정부의 개혁추진을 둘러싸고 열렬한 지지론 못지않게 차가운 신중론도 부단히 제기됐다.개혁을 하려면 청사진을 내놓고 하라든가,개혁은 인치가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제 과거 청산은 그만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국면을 전환하자는 제창등이 그것이다.실명제 실시여부는 새 정부의 개혁의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라고 떠들다가 정작 실명제를 실시하자 문제점 부각에만 열을 올려 한때 사회불안감을 증폭시켰던 언론의 이중적 보도태도도 이러한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을 신중하게 추진하자는 주장들은 얼핏 그럴싸하게 들린다.그러나 차근차근 뜯어 보면 많은 경우 개혁에 대한 인식 결여에서 나온 것이거나 개혁중단론의 위장임을 알 수 있다.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으라는건 개혁전략을 누설함으로써 개혁대상에게 도피와 방어의 시간을 주자는 이야기와 통할수 있다.또한 법과 제도에 따라 개혁을 추진하자는 주장은 법과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 개혁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수 있다. 인체의 금단증세는 초기 3∼5일간 절정에 달한다.체질에 따라선 2주일 이상 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10일 이내에 끝난다.개혁신중론이 반개혁적 함정을 안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를 관대하게 받아들일수 있었던건 그것이 인체에서와 같은 일시적 금단증상이자,단기적 체질조정과정으로 이해 됐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모월간지에 실린 「박정희와 김영삼의 역사적 화해」란 글은 개혁신중론을 이러한 선의로만 대할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특히 고위층 주변에선 이 글을 두고 『한판 붙자는 도전장이냐』고 흥분하면서 수구세력이 고개를 들고 과거 회귀론이 목청을 돋울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이 글은 첫머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은 6·25동란을 거쳤으면서도 죽지않고 살아남은데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그 의도가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나쁜 도입부다.기득권세력의 저항이 끝내는 개혁자 정조를 죽이고 만다는 인기소설 「영원한 제국」의 구도가 자꾸만 연상돼 언짢기 짝이 없다. 이 글이 주제로 다룬건 김대통령의 역사관이다.김대통령이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국가건설이 아닌 반대의 노선,즉 3·1운동∼4·19의거∼5·18광주사태∼6월사태에 국가의 정통성을 귀착시키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그러면서 이글은 지난 30년간 한국의 경제발전은 군사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한뒤 김대통령은 역대대통령,특히 박정희와 화해함으로써 성공할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글이 김대통령의 역사관을 계승이 아닌 단절로 본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김대통령은 수년전의 3당통합,즉 역대집권세력이 모두 참여해서 구성한 민자당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했고 취임후에도 인위적 정계개편은 배제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민자당은 여전히 집권당으로 건재하고 있다.과거 박대통령과 전두환대통령이 기존정당을 해산하고 기성정치인들의 활동까지 규제한 가운데 급조한 여당을 집권의 발판으로 삼았던 일을 상기한다면 누가 더 역사 계승에 충실했는지는 자명해진다.현 문민정부는 4·19의거와 5·18광주사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 김대통령의 발언도 역대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그위에 민주적 가치관을 추가한 것으로 보아야지 역사의 단절과 파괴로 보는건 잘못이다.신한국 건설의 주체는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도덕적 에너지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적 에너지여야 한다는 새 정부의 입장에서도 「화해와 승계」는 발견된다. 대통령의 개혁과 역사관을 회의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역사는 항상 정의와 긍정적인 사람들 편에 서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 「반란표」 충격 등 어수선한 당분위기

    ◎민자/계파 불협화 진정에 진력/잇단 자극성 발언에 민정계 “심기불편”/청와대의 당결속 「중대발언설」에 촉각 민자당이 뒤숭숭하다.25일 박철언·김종인의원 석방결의안 표결 결과 예상보다 많은 반란표가 나와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있다. 민자당지도부는 『가결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으나 내심 계파간 물밑 갈등이 불거져나온 것으로 판단,무척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특히 두 의원이 반YS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한다.정가 일각에서는 벌써 여권핵심부에 대한 민정계의 곱지않은 정서가 표출된 것으로 보는 등 그것이 미칠 정치적 파장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선지 지도부는 연일 머리를 맞대고 있다.대책마련을 위해서다. 김종필대표는 26일 예정에도 없던 당4역회의를 긴급 소집,심각한 얘기를 주고 받았고 전날 저녁에는 황명수사무총장·김영구원내총무 등 당4역과 박관용비서실장·주돈식정무수석등 청와대 고위관계자간에 당정대책회의도 가졌다.이 자리에서는 불상사의 재발방지를 위해 당내화합및 결속력 강화에 주력키로 하고 특히 「민정계 다독거리기」에 최선을 다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그러면서 『당이 깨질 정도의 심각한 상태는 아니나 별도의 대책은 마련돼야한다』는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나아가 이번 일의 단초를 제공한 유성환의원에 대해 강도높은 제재조치를 취해야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일부 개진된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김영삼대통령은 27일 하오 당정치특위 제1분과위원 초청만찬에 중하위당직자,국회상임위원장및 간사단을 함께 불러 이번 파동의 진화와 당결속을 위한 「중대발언」을 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하지만 계파 갈등은 사안자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과 같아 묘수 찾기가 어렵다. 갈등해소의 해법은 누구나 알고 있는 「화학적 융합」이다.그러나 당내 역학구조,성장배경 등을 감안할때 이것을 일궈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다.여기에 지도부의 고민이 몰려있다.한술 더떠 단합에 앞장서야 할 지도부나 중진의원중 일부가 서로를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더욱 꼬이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이번 항명사태의 원인제공은 일차적으로 민주계인 유성환의원의 김윤환의원 전력시비발언이다.김의원이 민정계내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몇안되는 중진이고 보면 전국구인 유의원이 단독감행을 했을리 만무하다는 의혹을 던지며 그 배후인물로 최형우의원쪽을 지목,민정계가 흥분했던 게 사실이다. 나아가 지난 23일 TV대담프로에서 「개혁대표론」을 주장,파문을 증폭시킨 최의원의 발언도 이번사태에 한몫 톡톡히 했다는 지적이 많다.그는 『차기 당대표는 역사관이 투철하고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하며 개혁정치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분히 김대표의 재지명을 배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김대표측이 발끈한 것은 물론 유의원 발언으로 안그래도 불편한 심기에 쌓여있던 민정·공화계의원사이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결국 반란표로 이어졌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때문에 당내 다수파인 민정계는 『민주계의 거세작전이 시작된 것 아니냐』며 경계심을 더욱 강화하고있는 실정이었다.물론 최의원진영은민정계의 이같은 시각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힌다.하지만 이를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민정계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반란표로 불거져나온 계파간 갈등양상은 곧 다가올 당지도부 개편과 내년 5월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갈등의 수위가 어느정도냐에 따라 김영삼대통령의 정국운영에도 변수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관련,김대통령과 여러차례 독대를 통해 민주계 관리자로서의 위치를 굳힌 최의원의 행보가 주요한 축이 될수 밖에 없다.특히 새정부출범후 줄곧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김대표와 최의원의 반목은 「시한폭탄」의 성격이 짙다.요즘 최의원캠프의 움직임이 단연 돋보인다.최근들어 그의 표정은 무척 밝다.김윤환의원 전력시비처럼 최의원은 자신의 라이벌이 될만한 인사들에 대한 「흠집내기」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뜬금없는 얘기도 나돌아 속앓이가 심한 당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민정계 일각에서는 『당을 달리 할수 밖에 없다』는 극단론도 일고 있다.하지만 민정계의 속성상 실현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게 정설이다.또한 갈등이 계속 표면화된다면 당에 남아있는 3당합당의 유일한 주주인 김대표의 위상이 강화되리란 역설적인 추론도 가능하다.강력한 추진력보다는 별탈없이 당을 꾸려나가는데는 김대표가 적격이기 때문이다.김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되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 한·중,40년단절 단숨에 메우다/오는24일 수교1주년…평가와 전망

    오는 24일로 한중수교 1주년을 맞는다.냉전종식과 더불어 과거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동반자시대를 함께 연 지난 1년을 서울과 북경의 시각에서 회고·평가해보고 바람직한 양국관계의 발전방향을 주중·주한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늠해본다. ◎서울의 시각/임정요인 유해봉환 허가 큰 의미/항공협정등 미해결현안 과제도 최근 상해임정 요인들의 유해봉환이 있었다.유해봉환을 보는 외교전문가들의 시각은 남다르다. 한 외교전문가는 『상해임정 요인들의 유해봉환은 지난 80년대 초부터 북한이 중국측에 집요하게 요구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이 작업은 상해임정의 법통을 북한정권이 잇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외에 과시,우리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한 전략에서 추진해왔다는 것이다.그런데도 한국전쟁 참전등 맹방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을 제치고 우리에게 봉환을 허가한 것은 『대단한 정치적 의미』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이에앞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문제로 열린 유엔안보리에서는 기권으로 우리의 입장을 간접 지지한바 있다.냉전시대의 오랜 적국과 불과 수교 1년의 변화치고는 놀랄만한 것이 아닐수 없다. 중국과의 발빠른 유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호의존성의 증대와 오랜 역사관계에서 생긴 동질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국 외교사령탑인 한승주,전기침 외무장관이 새정부들어 짧은 기간인데도 벌써 3차례나 만나 회담을 가진 것도 이에서 기인한다.그러나 이것으로 올 접촉이 모두 끝난 게 아니다.지난 7월말 싱가포르에서 양국외무장관이 만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유엔총회 때,오는 10월 전외교부장의 초청으로 한장관이 중국을 방문할 때,아·태경제협의체(APEC)각료회의 때등 3번이나 더 만나게 되어있다』며 서로 웃었다 한다.물론 북핵문제라는 뜨거운 현안이 있긴했지만 미·일이 아닌 다른 나라 외무장관을 불과 10개월만에 6차례나 만난다는 것은 결코 흔치않은 일이다. 중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무엇보다도 북경 주재 한국공관의 확대이다.노재원전중국대사가 한국을 대표해 부임한 것은 지난 90년초 무역대표부 대표 자격이었다.그뒤 공관의 규모는 급속히 팽창,수교전에 이미 16명의 공관원이 상주하는 중형공관의 모습을 갖추었고 수교 이후에는 30여명이 넘는 대형공관으로 성장했다.이는 워싱턴과 도쿄공관의 규모를 넘보는 수준이다.또 지난 7월에는 상해총영사관이 설치됐고 중국도 조만간 부산총영사관을 개설할 예정이다.여기에 올해안에 중국 심양과 광주 두곳에 총영사관이 새로 설치된다. 그래서인지 공관 선호경향이 뚜렷한 외교관들로부터 인기 있는 공관으로 급부상했다.이것은 한·중관계가 그만큼 비중있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앞으로의 역할,즉 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비록 상징적이긴 하지만 전부장은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런데도 중국어를 고집,통역관을 붙이고 그 통역관이 상대 장관의 대화내용을 중국어로 바꿔 전하는 동안 다음 답변을 생각한다는 것이다.외교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의 무서운 일면』이라고 말한다. 아직 항공협정을비롯,2중과세방지협정및 환경협력협정,보건의료협정등이 체결되지 못한 것도 「무서운 일면」이라고 여기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다.중국의 「타임스케줄」상 적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늦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대한반도 2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자국의 전통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확보할수 있을때 까지는 한반도의 분단현상을 타파하는 것 보다 현상유지를 통한 긴장완화에 우선 순위를 두고있는 것이다.우리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이는 수교 1년이 양국 관계에 많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지만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북경의 시각/최적 경협파트너 인식,교류 급증/올 교역규모 1백억불 돌파 기대 한국과 중국에 있어 지난 1년은 참으로 역동적인 한해였다.한중양국은 수교후 불과 1년만에 40년 단절의 역사를 단숨에 메우기라도 할듯 숨가쁘게 오가며 이해와 협력의 장을 다졌다. 교류와 협력이 이뤄진 분야는 문화·체육으로부터 과학기술·환경·교육·국제평화·예술·경협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활발했던 쪽은 무역·투자등 경제분야였다.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이 한국 경제가 뻗어나갈 「최후의 땅」이라는 인식이 기업인들 사이에 보편화 돼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중국 역시 의식구조나 경제기술수준,지리적 인접성 등의 이유에서 한국을 최적의 경협 파트너로 생각하는 가운데 양국간 수교를 만시지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국기업들은 중국행열차를 놓치면 영영 낙오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듯 재벌총수들을 비롯,수많은 기업가들이 분주히 중국을 드나들었다.그래서 수교이전 한국에서 발붙이기 어려웠던 일부 한계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중국을 찾아들던 시절은 이젠 옛날 얘기가 됐다.투자규모만 해도 85년부터 92년 6월말까지 7∼8년간엔 중소기업 위주로 약 3백건,2억5천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 1년동안에만 4백여건,4억5천만달러로 급증했다.지금 추진중인 사업만 해도 약 1억달러 규모의 대우산동시멘트공장을 비롯,현대의 대연자동차 생산공장,동아건설의 북경지하철·고속도로공사 등 수억달러의 대형 프로젝트가 수두룩 하다. 양국간 무역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지난해 82억2천만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중국은 우리의 3대 교역국으로 성큼 다가섰고 우리는 중국의 7대 교역국에 올랐다.지난 수년간 지속된 한국의 대중무역적자가 지난해 7억6천만달러의 흑자로 돌아선데 이어 올 상반기 5억9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몇몇 전문가들은 양국교역 규모가 올해 1백억달러를 돌파한 후 2∼3년내에 2백억달러를 넘어 현재의 중일무역수준에 접근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기도 하다. 양국이 지난 1년동안 경협과 관련한 각종 제도와 장치를 거의 마무리 지은 것도 놀랄만한 변화이다.민간차원에서 체결됐던 무역협정·투자보장협정 등이 수교직후 곧바로 정부차원협정으로 전환된데 이어 지난 연초 건설협력 양해각서가 양국 건설장관에 의해 서명된 것을 시발로 해운협정,우편및 전기통신협정등이 뒤따랐고 한중무역실무회의를 비롯한 경제분야회의나 세미나,시찰단교류,각종 친선협회 결성등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북한을 의식해서인지 한국과의 접촉을 꺼리던 중국관리들도 수교 이후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접근해오고 있으며 중국의 업계 관계자,관리,학자들의 방한도 급증추세에 있다.수교이전 방한 중국인은 80%가 친지를 방문하는 조선족동포들이었으나 이제는 상용비자에 의한 방한비율이 70∼80%로 늘어나 완전 역전됐다고 주중한국대사관의 한 담당자는 밝히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아직도 중국을 특정지역국가로 묶어 방문시 특인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는 것과 중국이 국제민간항공기구가 규정한 관제이양점 수용을 거부하며 서울∼북경간 직항로개설을 미루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어쨌든 지난 1년동안 협력과 교류에 따른 제도적 장치들을 거의 매듭지은 상황이어서 이같은 틀을 바탕으로 양국간 교류와 협력을 일상화하고 정착시키는 일이 이제부터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K­1TV다큐 「사할린의 카레츠키」를 보고(TV주평)

    ◎사할린교포문제 진실규명 돋보여 역사의 아픔에 눈감는 것이 자기부정이라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KBS­1TV가 지난 11일 방영한 8·15특집 다큐멘터리「사할린의 카레츠키」는 사할린 「억류교포」문제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명제임을 웅변한 뜻깊은 계기물이었다. 연대기적 구성을 취한 이 프로는 우선 국제 역학관계속의 일본의 태도와 위상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소화사」에 바탕하고 있음을 선명히 제시하는등 비교적 엄정한 역사관에 입각,진실규명에 나선 점이 돋보였다.아울러 다양한 영상자료와 역사적인 비밀문서등을 프로그램속에 용해,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특히 사할린 최대 탄광으로 해방전 악명을 떨쳤던 브이코프 탄광을 비롯 19 18년 차르 황제가 친서한 사할린내 한국인 거주 허용문서,일제시대 강제징용자 도주 수배문서등 「물증」이 낱낱이 밝혀져 치열한 다큐멘터리 정신을 엿보게 했다.또한 기존의 유사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인정적·감성적 접근방식을 탈피,정통 역사다큐멘터리 스타일에 한발 근접했다는점도 평가할만 하다.4만5천 사할린 한인교포의 귀환을 단순한 망향의 차원이 아닌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할 「역사의 인질」문제로 파악한 것도 한층 성숙된 시각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프로는 지나치게 역사적 사건전달에만 치중,전체적으로 평면적이고 밋밋한 나열식 전개에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또한 사할린내 한인 분포지역 10곳을 주마간산식으로 「일별」하기 보다는 「악마의 동굴」 브이코프 탄광이나 한인 강제징용자들이 첫발을 내디뎠던 코르사코프 내항등 「화제성」지역에 좀더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등의 유연한 연출도 아쉬웠다.게다가 현지증언을 담는 과정에서는 인터뷰의 반말투 질문이 적지않아 시청자들을 당혹케 했다.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집요한 기록정신 못지않게 뚜렷한 비전제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이 점에서 「사할린의…」는 단지 「주의환기」차원에 머물고 말았다는 생각이다.아무튼 이 프로는 사할린 한인의 질곡의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조명하고,「한민족의 대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어떻게 구현해나가야 할것인가를 다시 한번 반추케한 역작이었다.
  • 국사편찬위원 청와대오찬 대화요지

    ◎“한국병,민족정기 바로잡지 못한탓”/김 대통령/한국학 해외자료수집등에 투자 필요/국사 대학필수과목으로 부활 시켜야/편찬위원 다음은 김영삼대통령과 국사편찬위원들이 23일 청와대 오찬에서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김대통령=나는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왔다.역사는 우여와 곡절이 있지만 마땅히 흘러야 할 방향으로 흐른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해방이후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5·16,10월유신,12·12,광주민주화운동등에 대해 나름대로 새정부는 정치적평가를 내린바 있다.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국사편찬위 같은데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역사적평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 역사만이 아니라 가까운 역사에 대해서도 자신있는 평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여러분들이 현대사를 재조명 정리해 주어야 한다. 최근에 읽은 폴 케네디의 「21세기 혁명」은 60년대에 소득이 비슷했던 아프리카의 케냐와 한국이 지금은 몇십배 차이가 나는데 가장 큰 이유가 교육이라고 지적했다.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상운위원(전성신여대총장)=일본은 상품진출에 앞서서 문화·예술을 소개한다.문화행사뒤엔 또 꼭 일본상품을 내놓는다.우리도 측우기·도자기 같은 옛 과학기술을 먼저 소개하고 상품을 소개하면 전통있는 기술에 의한 상품으로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박영석위원장=편찬위가 옛날 왕조의 춘추관때 처럼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지금은 사료편찬에 치중하고 있다.사료를 수집하고 한국역사를 연구하는데까지 기능이 보강돼야 한다. ▲고병익위원(전서울대총장)=편찬위가 각대학의 대학원들과 연계를 갖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김석희위원(부산대)=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중·러·일의 한국학 해외자료들을 수집,연구해야 한다.그런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정배위원(고려대 부총장)=지난 6공정부는 대학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에서 제외시켰다.이를 필수로 다시 살려야 한다. 국사교과서를 다양한 역사관을 키울 수 있도록 검인정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재용위원(숭실대)=국사교과서의 검인정화에 동감이다.해방후의 역사정리가 안돼있다.문민정부에서 군사문화 청산작업을 해야할 것이다.일제 식민지시대도 정리해야 한다.총독부건물을 빨리 옮기자. ▲정영호위원(한국교원대)=향토사연구가 대단히 중요하다.70년대에 각시·도에 문화재과를 신설해 향토사연구에 중추적 역할을 했는데 80년대 초에 이를 없애버렸다.그뒤 89년에 다시 문화예술과가 설치되었으나 전문요원이 없다.시·군단위에도 문화예술을 담당할 요원을 1명쯤 두도록 하자. ▲차문섭위원(단국대)=모든 대학에서 국사를 필수로 해야한다. 향토사개발도 중요하다.일본이 인간개조운동이 향토사연구에서 시작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5년전 일본서 정신대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었을때 우리교포들이 우리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 거리를 나다니는 것 까지 싫어한 적이 있었다.부끄러운 식민지시대를 자꾸 들추는 것이 열등감만 심어줄 수도 있다.중국도 치욕적인 역사를 갖고 있지만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런 부분을 덮어 나가고 있다. ▲한영우위원(서울대)=우리나라는 문화대국의 자존심이 있다.세종때의 문예전성기,정조때의 문예부흥시대에 이어 지금 문민정부가 왔다.이는 3백년주기로 문화의 전성이 오는 것으로 봐야하고 그런 점에서 새정부가 문예부흥시대를 열것 같아 기대가 크다. ▲김대통령=한국병도 해방이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 탓이다.이런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다면 현대사가 이렇게 왜곡되지 않았을 것이다.역사바로잡기를 더 연구해서 광복절 이후에 한번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 중국 원전 번역 출간 활발/고전위주 탈피… 현대철학·사상서 중심

    ◎「세계 5천년 역사…」 「신유학」 등 선보여 중국 원전의 번역 출간이 활기를 띠고 있다. 중국에서 쓴 세계역사로 7권짜리 「세계 오천년 역사 이야기」(중원간)가 최근 제6권까지 번역되어 나온데 이어 중국의 젊은학자 정가동의 「현대신유학」(예문서원간)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5권짜리 「동화로 읽는 5분 과학 이야기」(장백간)도 제2권까지 잇따라 나온 것. 중국대륙이 동양사상과 문학의 최대 보고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그러나 앞서 예를 든 최근의 번역서들은 중국의 사상과 문학이 영화를 누리던 지나간 시대의 저작이 아닌 최근에 씌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현대신유학」을 쓴 정가동은 19 56년생으로 현재 남개대학철학과의 박사과정에 있는 소장학자이다.「현대신유학」이란 5·4운동 이후 지금까지 유학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철학,더 나아가 민족문화의 재건만이 중국민족의 존립을 유지할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사조를 말한다. 「세계 오천년 역사 이야기」는 상해출판사의 「세계오천년」을연변 민족출판사가 우리말로 출판한 것을 국내로 들여와 다시 다듬은 것.조선족이 포함된 중국인들이 쓴 본격적인 세계사이다.지금까지 세계사는 보수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한 민족이나 왕족의 흥망성쇠만을 너무 중시하거나 진보적인 역사관에 따라 역사의 원동력을 민중에게서 만 찾는등 역사 계급의 한쪽만을 편들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이 책은 중국에서 나왔으면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가로질러 당시의 시대정신에 입각한 역사서술로 객관성을 확보하려 애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화로 읽는 5분 과학이야기」시리즈는 연변 인민출판사에서 중국의 과학동화 가운데 빼어난 것만 우리말로 간추린 「5분간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기초과학지식을 동화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는 「과학동화」는 중국에서 창안됐다고 한다.어린이용 도서의 경우 창작은 지지부진한데 반해 서양 것의 범람으로 우려의 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우리보다 현대화가 뒤진 것으로 얕보던 중국의 어린이 도서는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최근 중국의 저작 가운데는 상당 부분 우리가 받아들일 부분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이에따라 출판인들은 멀지않아 중국이 우리 번역물 시장의 중요한 재료 공급원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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