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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로베르 플라실리에르 지음

    이탈리아의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고 했다.모든 역사는 현대의 시각에서 조명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만,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역사가 현대의 시각에 맞게 ‘창조’된다는 뜻이다.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서구가 근대 선진문명의 종주(宗主)가 되면서 서구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도 새롭게 창조됐고,고대 그리스는 인류가 돌아가야 할 ‘이상향’이 됐다.이런 역사관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 관한 숱한 환상을 낳았다.고대 그리스는 완벽한 민주주의의 전형을 제시했다.플루타르코스의 ‘영웅들’이나 스토아학파의 현인들이 보여준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도덕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었다.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 이성의 힘을 믿는 이성주의자인 동시에 낙천주의자였다는 등…. 그러나 프랑스의 역사학자 로베르 플라실리에르는 고대 그리스를 둘러싼 이런 이미지들은 ‘날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플라실리에르는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심현정 옮김,우물이 있는 집 펴냄)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이상향이 아닌 삶의 비극과 고통이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고대 그리스를 복원해낸다.이 책은 프랑스어 원전이 나온 지 45년만에 국내에 처음 완역 소개됐다. 책은 ‘위대한 민주정 지도자’로 추앙받는 페리클레스가 통치하던 시대 아테네의 사회상을 중점적으로 파헤친다.‘그리스 중의 그리스’로 통했던 고대 아테네는 과연 민주적인 도시였는가.저자에 따르면 고대 도시는 기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지닌다.아테네 역시 시민의 자유를 제한했고,외국인들은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됐다. 아테네는 제국주의적인 성향이 농후했다.‘지상의 제우스’ 페리클레스는 특히 노예사냥과 정복욕에 불탔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그리스인들을 엄청난 도덕군자인양 묘사했다.그러나 그보다 앞선 시대의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는 “사람들은 한 순간 재산과 목숨이 모두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찰나적인 즐거움을 추구했으며 쾌락에만 관심을 쏟았다.”고 증언한다.이런 사회에서 노예들은 비참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메네크라테스라는 인물의 이야기에서 보듯 의사들은 회복되면 의사의 노예가 되겠다는 계약을 맺는 경우에만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다.책은 이밖에 ‘군인들간의 동지애’ 형태로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특별행정관까지 둬 감독할 정도로 문란했던 여성들의 성생활,사형수를 돌로 때려 죽이는 잔인한 투석 형벌 등을 소개한다.이같은 고대 그리스,특히 아테네가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 서구인들의 이상향이 돼 왔을까.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1만 7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한인 러시아 이주’ 기념관 짓는다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에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관련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동북아평화연대와 연해주물결운동,고려학술문화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일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준)’를 발족,본격적인 건립비용 모금활동에 돌입했다. 동북아 평화를 열어갈 한·러간 우호증진과 잃어버린 구한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고려인들의 민족 문화를 기리기 위해서다. ●한·러 각계인사 대거 참여 추진위에 따르면 기념관은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市)에 위치한 건평 2000평 규모로 정보화교육센터와 한글교육센터,외래병원,문화극장,이주역사관 등의 시설을 갖춘 문화교육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기념관은 연해주에 거주하는 4만여명의 고려인들의 상징물이 될 전망이다. 건물은 우수리스크 시로부터 49년 무상임대로 마련하며,올해 10월부터 리모델링(개보수작업)을 거쳐 내년 10월중 개관할 예정이다.40억원에 이르는 건립비용은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모금을 통해 마련된다. 추진위에는 한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추진위에는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와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부영 전 국회의원,장치혁 전 고합사장,이화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조규향 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장 류보미르 러시아 연방의원과 김니콜라이 우수리스크 민족문화 자치회 회장,김영웅 전 러시아연방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고려인의 독립정신 기린다” 발족식에서는 러시아 이주 140년 역사를 되새기는 심포지엄이 열려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광규 재외동포이사장은 ‘고려인 이주 140주년,그 역사의 의미’와 ‘고려인 이주 140주년 한국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특히 고려학술문화재단은 1870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연해주 군무지사와 지방관들이 한인 이주 및 정착 대책을 협의한 공문과 편지를 공개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철종 13년) 10월 함경도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한 것이 최초다. 이후 한인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러시아 정부도 1879년 4월 이전에 한인들에게 거주증을 발급하고 식량까지 지원하는 등 한인 정착에 적극 개입했다. 재단측은 또 고려학술재단이 지난 97∼99년 국립역사문서 보관소에서 입수,‘극동문서 자료집’을 번역 발간했다. 여기에는 구한말 한인 의병관련 자료를 비롯해 독립운동,한국어 교육,한러·외교 등 러시아 지역의 한인 민족운동사 관련 자료가 담겨져 있다. 이광규 재외동포이사장은 “기념관은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는 고려인이 당당한 러시아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조선족,남북한이 화합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식민사관 처음 비판한 사학계 거두

    2일 별세한 이기백 학술원 회원은 지난 89년 타계한 이병도 박사의 수제자로,해방후 한국사학계 1세대 중에서도 선두로 꼽힌다.지난달 19일 세상을 떠난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과 전해종 전 서강대 교수 등이 동기생이다.숱한 후학들을 길러냈으면서도 파벌 만들기를 극구 꺼려,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이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불렸다. 평북 정주에서 후일 풀무농원을 설립한 농민운동가 이찬갑(1904∼1974)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3·1 만세운동 33인 대표의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해 1년 만에 졸업했다.이화여대교수를 거쳐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사의 전해종,서양사의 길현모·차하순 등과 함께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고인은 신라와 고려사 연구에 몰두,이 분야에서 ‘고려병제사 연구’‘신라정치사회사 연구’‘신라사상사 연구’‘고려귀족사회의 형성’같은 굵직한 저작을 펴냈다.신라 권력구조가 왕과 상대등,집사부 시중의 3각관계에 기반한다는 학설을 제시하면서 신라를 귀족연합-전제왕권-귀족연립시대로 구분한 장본인으로,이후 이 학설을 많은 후학들이 발전시켰다.또 고려시대 병제가 병농일치에 입각한 당나라 부병제를 모방했다는 기존학설을 뒤엎고 전문적 군인이 핵심을 이루는 군반제였다는 새학설을 제시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이 학설은 현재 고려대 민현구,서강대 홍승기,경희대 조인성 교수 등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한국실증사학을 대표하는 고인의 업적 가운데 우리 학계가 가장 확고하게 인정하는 부분은 인간중심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구분법을 제시,한국사의 독자성을 살려냈다는 점이다. 대표적 저작인 ‘한국사신론’은 일제가 세워놓은 ‘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처음으로 시도한 역저로,이로 인해 그는 한국사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현재 30∼50대는 대부분 이 한국사신론을 교재로 삼아 역사공부를 한 세대다.영어와 러시아어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판으로 번역돼 한국사를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이기도 하다. 이밖에도‘민족과 역사’‘한국사학의방향’‘신라사상사 연구’‘한국사상의 재구성’‘한국고대정치사회사 연구’‘한국고대사론’‘한국사를 보는 눈’ ‘한국전통문화론’같은 역사전문 논문집 외에 수상집 ‘연사수록(硏史隨錄)’을 남겼다.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학술원 저작상,인촌상,국민훈장 모란장,위암 장지연상,용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세계사 편력1,2,3/곽복희·남궁원 옮김

    “보통 사람들이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그들은 날마다 빵과 버터,자식 뒷바라지,또 먹고 살아갈 걱정 등 여러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단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확신을 갖게 되면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며,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 커다란 전환기가 찾아온다.그리고 그들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큰 일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다.” ●印영웅 네루가 딸 간디에 보낸 편지 196편 인도의 독립영웅 자와할랄 네루가 1930년 외동딸 인디라 간디의 13번째 생일을 축하해 보낸 옥중편지의 한 대목이다.네루가 나이니 형무소에서 쓴 이 편지는 거창한 도덕적 설교나 엄숙한 얼굴의 훈계가 아니다.네루 자신의 표현대로 “착한 요정이 줄 수 있는 공기나 정신,영혼으로 된 어떤 것”,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선물이다.어떻게 지도자가 탄생하고 역사를 이끌어가는가를 소상하게 일러준 네루의 글은 훗날 인도의 초대 여성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의 신념과 용기의 원천이 됐다. ●이야기체 편지글… 부담없이 읽혀 네루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3년 동안 옥중생활을 하면서 딸에게 쓴 196편의 편지글들을 모은 ‘세계사 편력1,2,3’(원제 Glimpses of World History,곽복희·남궁원 옮김,일빛 펴냄)이 ‘결정판’의 형태로 완역돼 나왔다.이야기체의 편지글 형식인 만큼 부담없이 읽힌다는 게 장점이다.이 글들이 씌어진 시기는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때.우리 역시 그 당시 일제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는 세계사’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 딸의 역사적 안목 키워주려 노력 1919년부터 간디 밑에서 인도 독립을 위한 반영투쟁에 나선 네루는 1921년 이래 1945년까지 여덟 차례 체포되면서 9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네루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마저 투옥돼 홀로 남겨진 어린 딸에게 편지를 통해 역사와 인생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려 했다.조국애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았다.“가장 오래된 도시인 베나레스,즉 옛날의 카시를 찾아가 그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렴.아득한 옛날-숱한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복음을 가져온 불타,오랜 세월 평화와 위안을 찾아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니? 늙고 쇠퇴하고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지만 활기차고 연륜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 바로 베나레스다.그 얼굴에서 인도의 과거를 볼 수 있고,강물의 속삭임 속에서 사라진 세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민족우월·제국주의 반대… 민주적 평등 강조 세계 역사는 바야흐로 중심이동이 이뤄지고 있다.이제 더이상 서구와 미국중심의 편협한 역사관으론 다변화하는 현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중국·인도 등 동양의 새로운 강자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네루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누구보다 앞서 읽었다.그는 모든 민족의 자주성과 평등을 강조하며 민족우월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나아가 동양이 과거엔 오히려 서양을 능가하거나 동등했음을 편지 곳곳에서 강조한다.“세계 여러 민족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르지 않다.지도는 여러 나라들을 울긋불긋하게 구분해 놓고 있지만 그 색깔 구분이나 국경에 연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커다란 파도가 밀어닥치듯 몇번이나 유럽을 정복했다.그들은 유럽에 문화의 빛을 전해줬다.아리아인,스키타이인,훈족,아랍인,몽골인,투르크인….아시아는 이 민족들을 마치 메뚜기떼를 낳듯이 잇따라 키워냈다.사실 유럽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식민지와 같은 존재였다.”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 네루가 국민회의파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16년 간디를 만나 그의 행동주의에 영향을 받아서였다.네루는 자신의 196회분 마지막 편지에서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라는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한번 ‘행동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행동을 동반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 미숙아이며 변절이다.만약 우리가 사상의 주인이 되려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롤랑의 말은 곧 네루의 말이기도 하다.각권 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눈도 귀도 즐거워]‘화해’ 박씨 물고온 日뮤지컬 ‘제비’

    일본 극단 와라비자의 뮤지컬 ‘제비’가 국립극장 초청으로 8·9일 이틀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극단 와라비자(대표 고지마 가쓰아키)는 일본 민요의 보고로 알려진 북서부 아키타현에서 집단 예술촌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연극단체.반전이나 한·일관계,재일동포 문제 등 진보적인 역사관과 함께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극단이다. 뮤지컬 ‘제비’(작·연출 제임스 미키)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주최를 기념해 초연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400년전 임진왜란 직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임경식이 그곳에서 십년전 실종된 아내 연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한·일간의 가슴아픈 역사를 재조명하고,진정한 화해를 모색한다. 일본인 작가가 썼지만 객관적인 시각이 돋보인다.극중에 삽입되는 국악·사물놀이·소리를 한국인으로부터 전수받는 등 철저한 연구와 고증을 더했다.뮤지컬 ‘제비’는 오는 10월 국립창극단 안숙선 예술감독의 작창과 국립극단 이윤택 예술감독의 연출로 창극으로 소개되고,내년 일본 순회공연에도 나선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 신촌을 다시 ‘젊음 특구’로

    건전한 대학문화는 자취를 감추고,유흥가로 변질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을 ‘미디어 세대’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되살리기 위한 문화축제가 처음으로 개최된다.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와 연세대학교는 다음달 1∼23일 연세대와 신촌 일대 영화관,교회,공원,거리 등에서 ‘제1회 서울·신촌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젊음과 함께 세계로,미래로’(Young,Global,Future)’를 주제로 내건 이 축제는 신촌을 ‘미디어 세대’로 통칭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1∼8일 열리는 ‘서울 국제 대학영화제’와 ‘신촌 거리예술제’로 서막을 올린다.연세대 공학원 강당·위당관,씨네플렉스 녹색,창천교회 등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는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이 출품한 실험성 강한 창작 단편영화 31편이 경쟁을 벌인다.특히 영화계의 거장인 로만 폴란스키,크쥐시토프 키예슬로프스키 감독이 학생 시절 만든 초기작과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초기 대표작도 상영된다. 연세대와 신촌의 ‘걷고 싶은 거리’,창천시민공원에서 펼쳐질 거리예술제에서는 몸의 기다림·기억·소통·해방·축제 등 다양한 주제 아래 록·힙합·재즈·클래식 등의 음악공연,라틴댄스 등 무용공연,마술·무술·마임·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공연이 진행된다. 4일 오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막행사로 열리는 ‘미디어와 몸’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무용,멀티미디어 퍼포먼스 등이 뒤섞인 공연으로 태고의 혼돈에서 인간의 몸이 생성돼 소통하고,자유로운 영혼이 춤을 추는 불의 축제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린다.이곳에서는 4∼23일 한국·미국·일본의 작가 70여명이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형무소 수감자들의 고난과 투쟁의 이야기가 첨단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전시된다. 장세훈기자˝
  • ‘5월 독립운동가’ 이애라 선생

    국가보훈처는 27일 여성 독립운동가 이애라(1894∼1922)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충남 아산 출신인 이 선생은 20세때 독립운동가로 일생을 보낸 이규갑 선생과 결혼한 뒤 공주 영명학교와 평양 정의학교 등지에서 교사로도 활동했다.3·1운동 직후 남편이 ‘비밀독립운동본부’를 결성하자 이를 돕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국민대회와 비밀회의를 개최토록 해 한성 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공헌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5월 한달 선생을 위한 전시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 [산악문학인 안재홍의 산오르記] 강화 고려산

    주 5일 근무 시대를 맞아 산을 찾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이에따라 서울신문 주말 매거진 ‘We’에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의 산을 찾아가는 산행 페이지 ‘안재홍의 산오르記’를 신설했습니다.필자 안재홍(52)씨는 산학문학가로,주말마다 산을 찾는 등산 애호가입니다. 고려산(高麗山·436m) 정상 부근에 진달래가 한창이다.강화도 읍내에서도 바라보이는 상봉에서 낙조봉까지 온통 진달래로 붉게 물들어 있다.참꽃으로도 불리는 진달래는 전국 어느 산에나 흔한 것이기는 하다.허나,고려산 진달래는 유난히 붉다. 마니산 그늘에 가려 숨겨져 있던 고려산이 진가를 발하고 있다.지난해부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상봉에 군 시설물이 있어 정상에는 오를 수 없으나 상봉에서 낙조봉까지 동서로 늘어진 산줄기 어디나 진달래가 흐드러져 있다.상봉 아래 북사면과 낙조봉 북서사면 부근의 진달래는 압권이다.간간이 잡목을 잘라내어 조망이 뛰어나고,시원스럽게 펼쳐지는 강화도 일원의 풍경이 일품이다.저수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농경지 풍경과 그 뒤로 보이는 석모도와 강줄기 같은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시다.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 밭과 함께 이름 그대로 낙조봉(落照峰)의 조망은 고려산에서 으뜸이다.고려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진달래 명산이라고 하는 화왕산·영취산·무학산·비슬산 등과 겨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진달래 명산이다. 고려산의 원래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다.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인도의 천축조사가 이 산 상봉 오련지(五蓮池,5개의 연못)에 오색 연화가 핀 것을 보고 오색(白·黑·赤·黃·靑) 연화를 불심으로 날려보내,연화가 낙하한 곳에 가람을 세웠으니,백련사·흑련사(묵련사)·적련사(적석사)·황련사·청련사라 이름하였다. 백·흑·적·황색 연화가 떨어진 곳에는 가람을 지었으나 청색 연화는 조사가 원하던 곳이 아닌 곳에 떨어졌으므로 원하던 곳에 ‘원통암’을 세우고,청색 연화가 떨어진 곳에 청련사를 지었다.그리고 산 이름도 오련산이라 하였다.현재 고려산에는 백련사·청련사·적석사와 원통암 등 세 개의 사찰과 한 개의 암자가 있다. 고려산의 사찰 중에 청련사의 분위기가 뛰어나다.남향에 자리한 사찰은 전등사에 뒤지지 않을 만큼 그윽하고 멋스러운 풍광을 자랑한다.강화는 고려왕조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을 강화로 옮겨 개경(開京,지금의 개성)으로 환도하기까지 38년(1932∼1207,고종 19∼원종 11) 동안 임시 수도였던 곳이다.이 때 ‘고려산’이란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고려(高麗)와 이름과 한자도 같이 불리고 쓰인다. 고려산 산중에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우물이 있다.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4세기 이전에 축조된 정상의 큰 연못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으로 사용되었고,작은 연못 네 개는 연개소문이 군사 훈련 때 말에게 물 먹이던 곳이다.이 산 북쪽에서 태어난 연개소문이 치마대(馳馬臺)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오련지(五蓮池)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 한다.지금도 세 개의 연못과 한 개의 샘이 이 산에 있다고 한다.지난해에 큰 연못이 있던 오련지를 상봉 아래 복원하여 진달래축제에 맞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백련사에서 상봉으로 오르는 길 옆에 있다. 고려산 산중의 사찰은 모두 차들이 올라갈 수 있게 도로가 나 있다.정상의 군 시설물이 이용하는 길이 따로 나 있고,백련사 오름 길은 진달래축제에 맞춰 확장·포장을 했다.세 개의 사찰로 오르는 길은 고려산 등산의 들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시멘트 포장길을 걷는 고통만 없다면,야트막한 산이면서 진달래가 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오르면 조망이 뛰어난 고려산을 이 봄에 한 번 오를 일이다.가족과 함께,연인과 함께! ●볼거리·먹거리 고려산의 사찰 순례와 등산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강화도는 유적의 고장이다.고려와 조선조의 유적들이 섬 전체에 산재해 있다.강화대교를 건너면 왼쪽에 만나게 되는 강화역사관을 보고 광성보·덕진진·초지진·마니산을 보는 게 일일 관광코스다.또 하나는 고려궁지·강화산성 북문·오읍약수터·강화지석묘·보문사·전등사를 도는 코스가 있다. 등산코스는 고려산 외에 마니산,봉천산,혈구산 그리고 석모도의 해명산이 있다.강화읍내 중앙시장 골목에 있는 우리옥의 백반이 먹을 만하다.백반 4000원.단체산행한 이들이 종종 이용한다.대로변에 공영주차장이 있다.강화도 특산물인 순무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또 포구 주변의 횟집에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가는길 강화읍에서 신점·외포리 방향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40분 간격으로 있다.부근리 삼거리에서 하차한 후 백련사 도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강화에서 고촌2리(적석사 들머리)행 버스를 이용하여 청련사 입구 하차,적석사는 고촌2리 하차.하루 7회.강화 개인택시 전화 (032)934-7898. 강화로닷컴 http://www.ganghwaro.com/goryeosan ˝
  • 꽁꽁 싸고 둘둘 말아서… 國寶는 ‘이동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9일 석재유물 2120점을 옮긴 것을 시작으로 용산 새 박물관으로의 이전작업에 본격 돌입했다.1915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시작한 중앙박물관 이전은 한국전쟁 이후 1953년 남산,65년 덕수궁 석조전,72년 경복궁,86년 중앙청 이전에 이어 96년 현 박물관으로 이전한 뒤 8년 만에 이뤄지는 대대적인 작업이다. 19일 이전한 경복궁내 박물관 수장고의 석기·청동기시대 마제석검 등 석재품을 포함해 오는 연말까지 약 8개월에 걸쳐 이전할 유물은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등 모두 9만 9622점. 이전작업에 연인원 7700명이 투입되며 5t짜리 무진동차량 490대가 소요된다.전체 유물 가치는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300억원을 포함해 약 7000억원으로 평가됐으며 유물의 이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지급한 손해보험 액수만도 5억 2000만원에 달한다. 19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시연을 통해 공개한 이전 내용을 보면 유물은 우선 중성 한지로 싼 뒤 충격에 대비해 솜포로 다시 감싸 각각의 크기에 맞게 제작된 오동나무 상자에 넣은 다음 소형 알루미늄 상자에 담아 차량에 싣게 된다. 경복궁 내 현재의 위치에서 용산 새 박물관까지 9.5㎞의 구간을 30분에 걸쳐 이동하게 되는데 안전을 위해 운송차량에는 직원과 무장한 호송원이 탑승하며,운반차량 앞뒤에서 경찰이 호송을 지원한다. 유물 이전은 석재품을 시작으로 토기를 비롯한 토제품,도자기류,금속유물,피모직물류에 이어 전적류 및 회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박물관에 전시중인 유물 6300점은 오는 10월18일 임시 휴관에 들어간 뒤 이전하고,야외 전시 석조유물은 새 박물관 조경이 완성되는 내년 3월부터 옮길 계획이다. 한편 내년 10월 개관할 용산 새 박물관의 현재 공정률은 92%.외부 조경과 전시실 인테리어 공사 등을 남겨두고 있으며 박물관내 미군 헬기장 이전 부지가 결정되면 올 하반기 철거에 들어가 조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새 박물관의 규모는 현재 건물의 3.5배.수장고도 4249㎡에서 1만 2434㎡로 확대되며 이중외벽으로 누수나 유해공기 유입을 차단하고 유물의 재질에 따라 수장고별로 독립 공조시설이 설치되는 등 수장환경이 크게 개선된다.이전된 유물들은 21곳의 수장고에 성격과 재질별로 정돈,보관된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중앙박물관은 이번 이전으로 6번째 옮기게 되지만 한국전쟁 중 숱한 문화재를 부산으로 옮기면서 피해를 최대한 줄인 경험을 살려 오래 전부터 이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왔다.”면서 “새 용산박물관이 완공되면 역사관을 신설해 고고발굴자료 및 미술사 자료에 크게 의존해 왔던 종전 전시에서 고지도·고문서·금석문 등 역사자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kimus@˝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퇴계선생은 로맨스나 스캔들이 없었나요?” “왜요,단양의 기생 두향(杜香)이 하고 연애한 것은 유명하잖아요.” “낮퇴계,밤퇴계가 달랐다면서요?” “그런 속전이 있지.” “자네 퇴계선생의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걸 들어봤나?” “아뇨.”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고 싶으면 매화에 관한 시를 읽어봐.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하셨고 내내 아무 말 없다가 저녁에 일으켜 앉히니 앉은 채로 서거하셨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저자와 한 퇴계연구가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이다. 혹자들은 100여년전에 ‘서유견문’의 유길준(兪吉濬)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견문’을 쓴 유홍준(兪弘濬·55·명지대 미술사학)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공교롭게도 둘은 이름의 ‘돌림자’도 같은 기계(杞溪)유씨 ‘충목공파’의 문장가 집안 출신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데가 없다.북한까지 다녀왔다.발품으로 일궈낸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권이 이를 입증한다.1,2권만 합쳐 250만부나 팔렸다.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는 생전에 그를 가리켜 ‘문화재급 역마살’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국토 박물관’으로 불려 그는 지난 10년동안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이하 답사기)를 비롯해 ‘완당평전’‘화인열전’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특유의 감각적 글솜씨로 ‘해방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살아 있는 국토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다닐 정도로 평판이 높다. 시인 박노해씨는 옥중에서 ‘답사기’를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제 눈을 맑게 열어준 운명같은 마주침의 책,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내 마음속 가장 은밀한 자리에 꽂아둔 우리 시대 고전같은 책입니다.…유 선생의 ‘답사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속에 갇혀 있던 나 아닌 것들이 벌떼처럼 살아나서 나를 깨뜨립니다.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자식이구나,조상님들이 내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답사기’를 읽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했다.“읽고 깨우친 바 기쁨이 하도 커서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다.기막힌 비경이나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풍기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심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말 명지대 행정관 4층 복도끝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노크했다.한창 집필중인 ‘답사기’ 4,5권의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연구실 문을 열자 ‘고색 창연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왔다. 산골 오지의 어느 노인이 밤새 새끼꼬아 촘촘히 기워만들었음직한 멍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그위에는 낡은 궤짝 하나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또 양쪽 벽에 쭉 늘어진 책꽂이에는 ‘답사의 노정’을 말해주듯 때묻은 고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만권은 훨씬 넘지요.이쪽은 한국미술사,저쪽은 중국미술사,저기 저쪽에는 서양미술사 책자들이지요.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중독처럼 사다놓은 결과물입니다.”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97년 이전에 3년정도 끊었으나 북한을 다녀오면서 다시 피우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네모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냥은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에서 만든것입니다.그런데 자동이래요.이렇게 열었다 놓으면 뚜껑이 저절로 닫히니까.나원 참….”답사도중에 얻어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일,책상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600자원고지와 만년필이 대신해 있었다.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 이쪽저쪽에서 글을 퍼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쓰다가 잘못되면 원고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써야 글이 살아 숨쉰다.”며 특유의 ‘원고지철학’을 늘어놓았다.컴퓨터는 인문적인 것을 쏙 빼버린 기계적인 빠름일 뿐,고뇌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다. 문득 독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취미는 여행이다.여행이라는 매체를 넣고 글을 썼다.마침 독자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학자인지 문필가인지 나도 몰라” “가끔 내 자신이 학자인지,문필가인지,평론가인지를 물어보곤 합니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문사(文士)가 없어요.고행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사말입니다.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문사일 수 없으며 지조있는 선비정신이 내재돼야 합니다.‘답사기’를 3권까지 썼지만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절반쯤 진행중인 4,5권 집필도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제주도를 답사했더니 4·3사건을 안 다룰 수가 없고,경상도를 갔더니 거창학살사건을 다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이런 과정을 거쳐 ‘답사기’의 완결편 2권을 올 상반기중 마무리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일생의 또다른 역작,즉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다짐이다.그것은 온국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일이다.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와 곧바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술사는 문화사의 꽃입니다.학식과 학덕을 쌓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관을 잘 반영했을 때 더욱 향기나는 꽃이 되겠지요.또 복잡한 현상을 단박에 단도질할 수 있는 깊이와 연구업적이 뒤따라야 합니다.영어로 쓰여진 한국미술사는 물론 번역할 수 있는 마땅한 텍스트도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 강해 이곳저곳 강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은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반면에 열등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결국 ‘짬뽕’식이 되다보니 단군 이래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적이 한번도 없이 중심부가 아닌,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적인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동아시아문화의 ‘주주’로서 다른 나라에 문화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필연이 도래했다고 역설했다.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이란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주도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네들만 살려고 해서 실패했습니다.더이상 도덕적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기는 틀렸습니다.중국사람들은 우리보다 5,6년 뒤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한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십시오.대중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미국의 문화가 오기전에 마를린 먼로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왔지 않습니까.이제는 세계에서 1등이 나와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도 동아시아물류중심국가를 외쳤는데 이는 반쪽에 불과합니다.물류와 문화가 합쳐진 그런 정책이어야 하지요.” 나이 40이 넘어가면 과거의 이력이 얼굴에 하나둘 새겨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파란과 곡절도 많았다.93년 이전까지는 정말 별볼 일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14년반만의 대학졸업,교수직 박탈,8년동안의 백수상태,운동권 이론가라는 제도권 교수의 따돌림 등만 떠올려도 그렇단다. ●고3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미대 진학 청운초·중학을 나온 그는 경복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중동고로 방향을 튼 그는 1967년 고3때 국문학과를 택하려고 했으나 담임선생의 권유로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그러나 ‘예술학개론’‘예술비평’ 등의 딱딱한 강의가 많아 연극회에 가입해 유치진의 ‘토막’,천승세의 ‘만선’ 등 민족극 공연에 적극 참가했다.공부는 뒷전이었다.연출은 주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대학시절 그의 서울 종로구 창성동 집에는 소위 ‘의식있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보안 경찰관에게 데모꾼 소굴로 인식됐다.결국 69년 4월 ‘3선개헌 풍자극’의 대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해 7월 무기정학을 받았다.시련을 호되게 겪은 그는 서둘러 군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한국미술사 연구에 필생을 걸고 뜻을 세우지만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상수배중이던 이철(전 국회의원)에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75년 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방황하던 그는 7개월 뒤 군복무중 미술관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원래는 장준하 선생이 주례를 맡기로 했으나 의문의 실족사로 리영희 교수로 바뀌었다.결혼 후에는 금성출판사,공간사 등에 다녔다. 80년 10월,입학한 지 14년 반만에 겨우 졸업장을 받고 이듬해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에 들어갔다.대학원을 마친 그는 건국대 교수로 채용됐으나 미복권 상태임이 밝혀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이때 그는 ‘미술속에서 현실을 찾자’는 구상 아래 그 유명한 슬라이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어 떠돌이 생활로 대중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답사기’라는 역마살도 이때 시작됐다. “인세요? 한 15억원정도? 세금 한 4억 냈을테고….집사람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줘요.장관이라도 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란가?(웃음)” ‘답사의 달인’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전문화의 진수는 경주,건축의 아름다움은 병산서원·부석사라고 했다.또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려면 제주가 으뜸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유홍준 교수는 ▲1967년 중동고 졸.80년 서울대 미학과 졸.83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98년 찰학박사(성균관대). ▲77년 공간 편집부.78년∼83년 중앙일보 계간 미술부 근무.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91년∼2002년 영남대 회화과 조교수.2002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2003년 문화재위원. ▲저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비평에서,정직한 관객,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3,나의 북한유산 답사기,완당평전,화인열전 등. ˝
  • [열린세상] 역사를 되돌리지 말라/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2002년 12월19일.우리나라 정계의 기준으로 봐서는 ‘젊은’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노 후보는 채 50%가 되지 않는 1200여만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헌법에 따라 그를 지지한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2월19일을 단순히 한 개인이 정치적 승리를 얻은 날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노 대통령의 당선은 그전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제도적 틀과 견고한 문화적 성곽에 균열을 냈던 일대 ‘사건’이었다.그리고 그 사건을 일으킨 주체는 바로 개혁적 시민들이었다.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지역주의,학벌주의,연고주의,정경유착,부정부패 등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조직화되어 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의 당선은 개혁적 시민 세력의 승리였으며,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절실한 염원을 상징한다.2002년 12월19일은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희망이 정치적으로 제도화된 날이었던 것이다.이런 시민들의 희망을 얼마나 잘 실현시켰는가에 대해서는 국민과 역사가들의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04년 3월12일.임기를 한 달 남짓 남긴 야당 국회의원 193명이 대통령 탄핵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선택을 무효화시켰다.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야만적 탄핵과정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참담한 심경으로 쓴 소주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차떼기,뇌물 수수,청탁,선거부정 등 비리와 부패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사람들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권력의 중심에 서서 온갖 특혜를 다 누려온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의 성채가 흔들리자 상식으로나 법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억지를 부리며 탄핵을 발의하고 의결했다.탄핵의 대상이 되어야 할 그들이 탄핵의 칼자루를 휘두르며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여론 조사에 나타난 다수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고 탄핵을 강행한 그들은 대체 어느 나라의 정치인들인가? 탄핵 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조사 과정의 왜곡 때문이라고 주장하고,국민들의 비판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그들은 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인가,아니면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그들은 어떤 역사관과 시대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아연해질 따름이다. 역사 사회학자 임마뉴엘 월러스타인은 근대 프랑스 혁명에 대해 독특한 의미를 부여한다.프랑스 혁명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사회변동이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사회변동의 불가피성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그러나 그들의 시대인식과 상관없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 정치꾼들의 얕은꾀와 억지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변화된 한국의 정치 문화적 지형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기성 정치인들의 가장 큰 한계이다.새로운 정치문화의 핵심에는 급격하게 성장하고 성숙한 시민사회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유통 및 네트워크 형성 방식이 있다.이러한 조건들 덕분에 사회적 합리성,투명성,도덕성 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이에 따라 그동안 당연시되던 정치 관행의 부도덕성과 불합리성이 쟁점화되고 비판되는 것이다.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 행위방식과 사고틀 속에서 야합으로 적당히 정치판을 짜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4월15일은 시민의 힘을 보여줄 때이다.이제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국민을 팔면서,사실은 사리사욕을 채우고,당리당략에 움직였던 많은 정치인들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 학벌과 지역보다는 정치적 신념,능력,일관성 같은 것들을 후보선택의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2004년 4월15일은 개혁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축제의 날이 될 수 있다.그날은 다같이 투표장을 찾자.그리고 정말로 나라를 생각하고,국민을 존경하는 국회의원을 뽑자.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 친일청산 ‘온라인’ 대장정

    친일청산 및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모금을 위한 ‘온라인 봉화 대장정’이 시작됐다.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를 미루고 있는 데 대해 네티즌들이 반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1일부터 100일 동안 홈페이지(minjok.or.kr)에서 한반도 지도에 김구,이육사,윤봉길,유관순 등 애국지사의 이름이 명명된 100개의 봉수대를 설치하고 100명의 봉수꾼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육사 봉수대’는 시인 김지하,‘윤봉길 봉수대’는 양수철 서천문화원장이 봉수장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함세웅 신부,소설가 조정래·황석영 등도 참여할 예정이다.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과거 전란이 났을 때 봉수대를 밝혀 위기를 알렸듯이 친일 과거사 문제 등 ‘역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되자 시민단체와 네티즌 등은 “역사적 진실규명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라며 정치권을 성토했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사무처장은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국회의 의도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네티즌도 분노하고 있다.한 네티즌은 국회 홈페이지에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데는 번개 같은 사람들이 민족문제는 ‘나 몰라라’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민족 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소속 의원 등 7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국회의원과 네티즌이 함께 하는 민족 정기 번개’ 행사를 갖고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촉구했다.참석자들은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하고 순국선열 위패봉안소에 국화를 바쳤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내년 10월 문연다

    용산의 새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일이 내년 10월로 확정됐다.박물관 개관의 걸림돌로 작용한 미군 헬기장은 오는 8월 철거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무 중앙박물관장은 10일 이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주요 업무계획을 밝혔다.그는 “헬기장 철거 문제는 국무조정실과 미군 사이에 기본합의가 끝나 빠르면 이달말,늦어도 3월 중에는 결론이 날 것”이라면서 “내년 6월에는 조경 공사도 모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박물관의 정면에 위치한 헬기장이 철거되면 흙으로 4∼5m의 산을 만들고,나무를 심어 박물관 건너편에 들어선 고층아파트가 바라보이지 않도록 조경작업을 한다는 계획이다. 경복궁 안에 있는 현 박물관은 ‘2004 세계박물관대회’가 끝나는 오는 10월18일부터 휴관한다.사무실의 중추 기능은 오는 4∼5월에 용산으로 미리 이전한다.이렇게 되면 내년 10월까지는 비정규 인력을 포함하여 용산에 160명,경복궁에 159명이 나누어 근무하게 된다. 용산 박물관에는 어린이박물관을 설치한다.일반 전시실을 찾은 어린이들이 자칫 이해하기 어려워 오히려 전통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취지다.따라서 어린이 박물관은 철저히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영훈 학예연구실장은 “어린이 박물관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수준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면서 “일단 고고학 유물 중심으로 개관하고 이후 1년 단위로 전시내용을 바꾸어 어린이들이 박물관을 찾을 때마다 다른 내용의 전시를 관람하고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박물관 안에 역사부가 출범함에 따라 용산 박물관에는 우리 삶과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관을 개관한다.오는 4∼6월에 ‘가까운 옛날(가칭)’시범 전을 열어 전시방향의 일단을 보여주기로 했다.또 사회교육과 문화상품개발,고객지원 등 대국민문화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문화사업국과 동아시아 문화연구 및 전시를 전담한 동양부의 설치도 추진키로 했다. 이밖에 박물관정책 업무를 문화관광부로부터 넘겨받음에 따라 340여개에 이르는 공·사립박물관의 운영실태를 점검하여 실질적인 지원계획을 세운다.지방국립박물관 가운데 전주박물관에만 있는 사회교육관도 2006년까지 청주·광주·김해·대구에 새로 세운다. 이건무 관장은 “박물관이 이전하는 기간 동안 국립민속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등 비슷한 기능의 기관과 협조하여 관람객들이 혼란없이 박물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면서 “이전하는 기간에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소장 유물의 검색 기능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 [열린세상] 정체성의 위기

    다사다난했던 2003년 한해도 조용히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간다.국가적으로 핵문제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사회적으로 정치개혁과 대선자금 비리수사가 연일 언론의 뉴스 초점이 되었던 한해였다.각 정권마다 시대정신에 따른 시대적 소명이 있었다면,이로 인해 금년에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시대적 소명이 정치개혁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야당 후보보다도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자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시대정신이 이와 같이 정치개혁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치개혁법안이 정치권에 의해 표류 내지는 개악되고 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선거철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단상 위에서 유권자들에게 큰절까지 하는 쇼를 하면서,일단 금배지를 달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기득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일부 의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암담할 따름이다. 이제 우리 국회도 대수술을 하고 정치개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그리고 민생문제와 민족문제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야 한다.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한다.우리 국민들도 냉소적으로 정치권을 방관하지만 말고,항상 깨어있어 내년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부 정치인에게는 용기있게 격려도 하고,힘들지만 정치권을 감시하는 관련 시민단체에도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최근 모 일간지는 2003년 한해 동안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우왕좌왕(右往左往)’이라고 밝혔다.이 말은 우리사회의 각 부문이 자신의 정체성과 본분을 망각하고 방황한 데서 연유한 것 같다.모든 실수를 자신 안에서 찾기보다는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무조건 타인의 화려한 겉모습을 비판없이 본뜨다 보니 온 결과로 보인다. IMF위기 이후 우리사회에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경쟁력이었다.경쟁도 우리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경쟁이냐를 확실하게 해야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유익성을 가져온다.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그 수단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왜 대학에가야하고,고시를 합격해서 무엇을 하겠으며,영어를 왜 잘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목적과 동기를 동시에 항상 성찰해야 한다.무조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제압하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는 그러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이제까지 어느 한해가 안 중요한 해가 없었겠지만,2004년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물론 총선과도 관련해 다른 어느 해보다도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한 한해가 될 것 같다. 최근 한 영국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IQ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왔다.우리 민족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5000여년의 역사를 일궈온 민족이다.우리 민족은 내년에도 현재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인 정치개혁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전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관 민족관 세계관 등에 관한 정체성이 확고히 서 있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항상 도덕성과 한국적 문화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역사관,민족관,세계관을 젊은 세대에게 고집스럽게 몸으로 보여주고 견지해야 한다.나라의 경제와 복지도 풍부한 정신문화와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더욱 탄탄해진다.과거 권위주의시대와 군사독재시절에 반독재투쟁의 행태가 아니라,잘못된 것은 반드시 합법적 절차를 거쳐 바로잡는다는 고집스러운 선비정신이 우리의 정체성의 위기와 관련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쉽다. 이 장 희 한국외대 법대 학장 국제법
  • 편집자에게/ “고구려역사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中 고구려사 왜곡 정부 적극 대응을’기사(대한매일 12월10일자 1,27면)를 읽고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프로젝트에 대해 역사관련 단체가 한목소리로 공동 대응한다는 대한매일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먼저 중국의 불순한 의도를 탓하기 앞서 우리가 얼마만큼 우리 역사에 애정을 갖고 연구했으며 소중히 여겼는지를 반성해 봐야 할 것 같다.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를 통해 공식입장이 나온 지 6개월이 지나서야 학계에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만시지탄을 느낀다.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정규교과 과정에서도 역사교육을 축소하고 무관심하지 않았는가를 반성해 볼 일이다.중국이 사회과학원 중심으로 수조원의 돈과 인력을 들여 연구하는 사실을 직시하여 고구려사와 고조선사 등의 상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 교육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중국 당국의 방해와 북한의 여건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니역사학회나 문화재 보존 관계 전문가들도 협력하여 고구려사를 복원하고 알려야 한다. 그것은 남과 북의 이념의 문제가 아닌 엄연한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에 우리가 지키고 보존하지 않는다면,잃어버린 고구려의 터전과 함께 고구려의 역사까지도 잃어버릴지 모른다. 경규오 증산도 홍보부장
  • 고구려역사 지키기 학술대회/고구려史 뺏기면 고조선도 뺏긴다 학계 공동대응 방안 모색

    ‘정치적 목적에 이끌리는 불순한 중국학계의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국책사업,이른바 ‘동북공정’에 한국 학자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나섰다.9일 오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 학술발표회’.한국고대사학회,한국사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련 17개 학회가 모여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를 한목소리로 성토하는 한편 거국적인 공동대응과 남북공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모임은 그동안 학회 혹은 개인이 개별적으로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학자들이 실천적인 대응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첫 공식모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정부에 대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심포지엄에 들어간 학자들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허구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참석자들은 일단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바탕을 둔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족을 중심으로 57개의 소수민족을 같은 테두리에 넣으려는 큰 목적아래 남북통일 후 불거질 영토문제에 쐐기를 박으려는 사전조치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 학계는 중국 ‘동북공정’의 요체를 ▲고구려인의 뿌리는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고구려 건국지역 및 기본 관할범위가 중국 경내이고 ▲고구려는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은 종속관계로 정리했다.따라서 ▲수·당의 고구려 원정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변방 할거세력 통제이며 ▲고구려 멸망 이후 대다수 유민이 한족(漢族)으로 편입했으며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자가 아니며 역사적 연속성·상관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우리민족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농경을 영위하던 예맥족과 한족을 근간으로 형성되었고,이들은 고조선 멸망 이후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서 다양한 정치체제를 이루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으로 정립되었고,통일신라와 발해를 거쳐 고려로 통합되었다.”며 중국의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참석자들은 학술발표회를 마친 뒤 기존 한국고대사학회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를 모든 학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대책위로 확대 개편해 정부 차원의 공식 대책기구가 마련될 때까지 중국 정부에 대한 대응과 여론 확산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김성호기자 kimus@ ■“北 고분군 세계유산 등록 적극 지원을” 학술대회에서 가장 첨예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 북한이 제출한 평양의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의 지안(集安)지역 고구려 유적이 함께 등록신청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북한 고분군이 열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있는 북한 고분군의 등록을 위해 남한측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놓았다.무엇보다 남한측이 기술 및 재정 지원과 함께 문화유산위원회에 고구려 고분군의 정체성과 고유 문화성을 적극 알려야 하는 것으로 집약했다. 북한 고분군이 배제된 채 중국의 고구려 유적만 등록될 경우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목표가 그대로 달성되는 셈.고구려 역사의 중국사 편입에 지금보다 훨씬 힘이 실리게 된다. 우선 중국이 지안 일대의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여건상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따라서 고분군,특히 벽화고분에 대한 항온·항습 처리 등을 위해 북한에 전문가를 파견해야 하며 아울러 주변 정리사업을 북한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호기자 ■주요 발제 요약 ●최광식 고려대 교수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동북지방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동포의 법적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특히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해 추진한 것이다.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은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에 국한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그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따라서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공석구 한밭대 교수 중국학계가 고구려사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논리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다.그런데 중국,북한에 각기 나뉘어져 있는 고구려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중국학계는 논리적 문제점을 드러냈다.중국학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또 다른방안을 제시하였다.이러한 방안도 고위금용(古爲今用·옛것을 왜곡해 오늘에 활용한다는 뜻)의 시각 하에서 당시의 고구려사를 편입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만주지방의 고구려사는 중국의 영토 안에서 건국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지방할거정권이 세운 지방사로서 파악하고 있다(통일적다민족국가론).따라서 현재 북한 영토 안에 있었던 고구려사,즉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는 과거 고대중국의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사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결국 중국학계는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바탕으로 내세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 폐기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는 현재를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현 중국 영토 안에 존재하였던 고구려사를 인식하는 시각마저도 사료의 자의적인 해석과 무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이 부분은 앞으로 구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박경철 강남대 교수 고구려는 국가형성기 이래 환경적 여건의 취약성을 군사적 팽창정책으로 상쇄하면서 전형적인 ‘전제적 군사국가’를 지향했다. AD 4세기 말 이래 하나의 왕국의 단계로 넘어서서,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제국적 지배구조에 입각한 다종족국가로 웅비하였다. 고구려는 국초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한 군사적 팽창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천하지뇌(天下之腦)’에 해당하는 동몽고 문제에 접근하여 독자적 생존권과 패권의 보존 및 확산을 위한 대륙정책을 관철해나가고자 했다.그러나 수·당제국은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지배질서에 입각하여 안보를 보장하려는 세계정책을 강행하려 했다.곧 고구려와 수·당의 70년 전쟁은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수·당의 세계정책이 정면충돌하면서 빚어낸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중국학자들은 수·당이 고구려에 보낸 조서(詔書)를 근거로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하고 있다.조서의 상투성과 수사성을 감안하지 않은 즉흥적인 정책적 역사인식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모든 자료들은 고구려의 수·당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서조차 책봉·조공제도가 가동되고 있었음을 적시하고 있다.화이론과 책봉·조공론이 갖는 허구성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임기환 한신대 학술원 연구원 중국 역사학계는 고구려가 시종일관 중원 왕조와 종속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주장하면서,그 근거로 조공·책봉 관계를 들고 있다.고구려왕이 책봉을 받았다는 것은 곧 중원 정권의 관리임을 뜻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책봉의 형식만 글자 그대로 해석할 뿐이지,책봉의 역사적 성격은 간과하고 있다. 사실 조공·책봉 관계는 중외(中外)관계의 한 유형이며,중국적 세계질서를 규정하는 양식의 하나이다.특히 남북조시대 중국세력이 분열되어 주변국가에 대한 규제력이 약화된 상황에서는 책봉·조공은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외교관계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책봉·조공제는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서 적용된 외교형식이기 때문에,유독 고구려만 이를 근거로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도 하다.중국이 백제나 신라,왜 등과 맺은 책봉·조공 관계와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구려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피책봉국이지만,독자적으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여러 국가나 세력 집단을 포함하고 있으며,독자적인 천하관을 갖고 있다.중국학계와 같이 중원 왕조의 신속국(臣屬國)이란 해석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관념이다. 정리 서동철기자 dcsuh@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 12월의 독립운동가 최양옥 선생

    국가보훈처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7년간 옥고를 치른 최양옥(1893∼1983)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강원도 횡성군 출신인 선생은 원주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중동중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서울 근교에서 잡화장사를 하던 중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광복 후 동지들의 기념사업 활동에 참여하다 1983년 타계했으며,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독립기념관과 서대문독립공원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전시실을 마련,사진 등 관련자료를 12월 한달간 전시할 예정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美교사들 ‘위안부 할머니’ 만나

    미국인 원어민 교사들이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미국 프로바이트재단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7월 한국에 들어와 일선 중·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원어민 교사 24명은 8일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위안부 역사관을 둘러보고 이옥선(74)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다.이번 방문은 이 할머니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와 숙식을 함께 했던 재미교포 2세인 권보미(21·대전 갈마중 원어민교사)씨가 주선해 이뤄졌다.
  • 한·미 연합사 25주년 체육대회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25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체육행사가 7일 서울 용산기지에서 한·미 양국 장병과 군무원,가족 등 5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양국 장병들은 10㎞ 단축마라톤에 이어 혼합팀을 짜 배구,소프트볼,농구,럭비,줄다리기 등을 즐겼다. 행사장에는 양국 장병들의 상호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역사를 다룬 역사관이 설치돼 주목을 받았다. ‘전통 궁중의상 및 한복관'에서는 미 장병과 가족들이 한복을 직접 입어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연합사 관계자는 “한·미 장병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서로 한데 어우러짐으로써 상호 공감대를 넓히고 우호를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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