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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시대] 방사성 물질 유입된 지역의 우려/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지방시대] 방사성 물질 유입된 지역의 우려/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며칠 전 오후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하우스 설치 공사 인부들에게 “내일은 날씨가 좋아도 일하지 마시라.”고 했다. 다음 날 강력한 방사성물질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바람 방향이 벌써 동남풍으로 바뀌었다. 서둘러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도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내면서도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난 식목일 세화오일장에서 배추 모종을 사서 정성껏 심었는데, 이 녀석들이 어찌될 것인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초보 농사꾼 주제에 유기농사를 한다고 하여 걱정반 놀림반 식의 시선을 받아온 터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작은 결실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속에 농사를 지어 왔지만, 이건 도무지 불가항력이다. 그렇게 어렵게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 뭐하나. 이렇게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면. 구제역도 비켜간, 대한민국의 청정지역이라 자부하는 제주도도 방사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원자력의 심각성을 새삼 자각한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방사성물질이 우리나라를 덮쳐도 이를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들이거나 건설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서민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기 때문이다. 필자도 “인체에 위험이 없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싶다. 그러나 믿음과 현실은 같지만은 않은 법. 설령 백 퍼센트 믿는다 하더라도 이처럼 자주 노출됐을 때 영향이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주민은 물론 관광객의 안전까지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주도와 정부는 방사성물질의 유입에 대비한 안전조치를 강구하는 게 우선이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지금이라도 제주도는 물론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의 안전 조치를 강구해 주기 바란다. 이참에 원전정책의 재검토도 필요하다. 20년 뒤 중국의 원전은 228기, 일본은 69기로 국내 원전을 빼더라도 300여기에 달하는 원전이 ‘핵 고리’(Ring of Nuclear)를 이루며 한반도를 둘러싸게 된다고 한다. 지금 “그나마 중국에서 사고가 안 나 다행”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지만, 이번 사고가 중국보다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강 건너 불구경’ 식은 통하지 않게 됐다는 말이다. 새삼 ‘지구촌’, ‘동아시아공동체’라는 표현이 절감되는 요즘이다. 실제 일본발 방사능 공포에 지구촌이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대부분의 민족과 나라들은 자국중심주의에 따라 발전을 도모해 왔으며, 경쟁과 전쟁도 불사해 왔다. 그러다 보니 지구촌 한마을이라는 개념보다는 대립과 경쟁, 증오의 관계를 발전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사회와 국가 모두 심각하게 병들어 고통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모든 생명의 텃밭인 지구 생태계 자체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이제 우리 자연을 병들게 하는 인간 중심의 이기적 삶을 버려야 한다. 내 나라 중심의 이기적 생각도 버리고 이웃 나라를 내 나라처럼 대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지구촌 한마을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금번 원전사태가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 80kg 역기도 거뜬히…신기록 세운 9살 ‘슈퍼걸’

    비록 역도에서 인상·용상 같이 역기를 하늘로 번쩍 드는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한 소녀가 자신의 몸무게의 두 배나 넘는 역기를 웨이트 트레이닝 기술 중 하나인 스쿼트(squat)로 들어 올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12일 미국 CBS 뉴스 등 현지 외신은 뉴저지 페어론에 사는 ‘슈퍼걸’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나오미 큐틴(9)을 소개했다. 이 괴력의 소녀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생으로 몸무게는 88파운드(39.9kg)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균 몸무게인 36kg에 비하면 조금 더 근육량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큐틴은 지난 3일 미국 버몬트 버링턴에서 열린 파워리프팅 기관 ‘100% Raw’ 주최 대회의 스쿼트 부문에서 97파운드(44kg)급 등급 여성 부문의 기존 기록인 180파운드(약 81.6kg)을 가볍게 넘기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0대 후반 여성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소녀는 웨이트 전문가들도 주의한다는 데드리프트(deadlift) 부문에서도 193파운드(약 87.5kg)짜리 역기를 들어 올려 기록을 세웠다. 이에 나오미가 무제한급의 기록인 201.5파운드(약 91.3kg)을 깰 날도 가까워졌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한편 나오미 큐틴은 지난해에도 이 데드리프트 부문에서 기록을 세운 바 있으며, 2009년 데드리프트 부문 미국 기록을 세운 부친 에드 큐틴의 셋째 딸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설] ‘변호사 경찰서 특채’ 밥그릇 챙기기 아닌가

    대한변호사협회가 제 식구 밥그릇 챙기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듯싶다. 최근 일정 규모의 상장기업들에 변호사를 채용토록 의무화한 준법지원인제를 밀어붙여 상법 개정안에 반영시키는 성과를 거두더니 이번엔 경찰서마다 변호사 한명씩을 특별채용토록 요청하고 나선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변협으로서는 내년부터 첫 로스쿨 출신을 포함해 변호사 2500명 정도가 한꺼번에 배출됨에 따라 발생할 일자리 부족현상을 해결하는 게 최대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변협 나름대로의 일자리 확보 노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경찰청이라는 국가기관에 변호사 채용을 공식 건의한 행위는 온당치 않다. 변협 상임이사 3명은 지난달 28일 조현오 경찰청장을 찾아가 “경찰이 변호사를 채용해 일선 경찰서마다 한명씩 상주시키는 제도를 도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전국 248개 경찰서마다 5년차 이내의 변호사 한명씩을 임기 3년의 법률담당관이나 호민관으로 뽑아달라는 부탁이다. 피해자나 피의자의 인권보호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경찰관의 법률 자문역도 맡는다는 취지에서다. 게다가 5급 사무관에 해당하는 경찰서 과장급도 제시했다. 조 청장은 “특채할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원칙적인 대응에 박수를 보낸다. 변협은 뚜렷한 일자리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다급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경찰 특채 요청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에 대한 무시다. 경찰은 이미 사법·행정고시 출신을 채용하고 있고, 지휘부에는 경찰대나 간부 후보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또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지 않은가. 변협은 제 밥그릇 늘리기에만 집착해서는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수임료를 낮추고 법률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는 등 제 밥그릇 나누기부터 실천에 옮기는 게 정도(正道)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 [서울광장] 오만한 일본, 흥분한 한국/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오만한 일본, 흥분한 한국/이춘규 논설위원

    후쿠시마·미야기·이와테·아오모리·야마가타·아키타 현이 있는 일본 도호쿠지방은 한의 땅이다. 긴 세월 결혼도 차별받았다. 인구 과소화·고령화가 심하다. 부품·소재 산업이 강하고 도요타자동차 공장도 들어섰지만 여전히 낙후지역이다. 도호쿠를 궤멸시킨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 4주가 지나며 방송들은 재난방송체제를 끝냈다. 각료들은 4월 들어 방재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었다. 외국에 일본이 불안하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니 일본스럽다. 실체는 감추기 어렵다. 8일 현재 2300개 대피소에 16만여명이 피난 중이다. 피난민들은 “절망적인데 다른 사회는 사회대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해 준 게 없다.”며 소외감을 드러낸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공포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원전 반경 20㎞ 내 지역의 출입 금지를 검토 중이라 다수는 고향을 잃을 수 있다. 피난민들에게 현실은 잔혹하다. 이재민들은 빠르게 지쳐간다. 가설주택은 시급한 수요의 8%에 그칠 정도로 심각하다. 이와테 현 리쿠젠다카다 시의 첫 가설주택 경쟁률은 53대1이었다. 다음 주에나 입주할 수 있다. 수도권 사람들의 방사능 공포도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방사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격감하자 한 유력 신문은 ‘해외언론의 과잉보도 때문’이라고 억지다. 낯선 제한송전은 시민들의 인내력을 시험했다. 사재기 자제 공익광고는 계속 중이다. 선진국으로서의 국격이 말이 아니다. 관계자들은 도호쿠를 스마트시티·콤팩트시티 등으로 재건하겠다고 장담한다. 제2 열도 개조론까지 나오지만 다수의 피난민들은 “우리 삶은 3월 11일에 멈춰 있다.”며 억제했던 불안·불만을 터뜨린다. 마음의 상처는 세대·계층을 초월한다. 학교·친구를 잃은 동심은 상처가 크다. 자식 잃은 노인은 암담함에 넋을 잃었다. 불안이 극에 달한 임신부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난갔다. 공무원들은 구호물자를 제때 전달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떤다. 의사도 환자를 돌보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원전 주변 농민들은 방사능 오염을 우려한 정부 권고로 제철인 벼농사를 시작도 못했다. 인근 지역도 쓰나미로 바닷물이 2만㏊의 논을 삼켜 1~2년 이상 염해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어민들도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터전을 잃게 됐다며 불만이다. 침묵하던 농민·어민·상인들까지 정부에 불만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도호쿠 재창조 계획에 쓴웃음을 짓는다. 일본정부의 대응은 세계를 아연실색케 한다. 방사능 유출 상세정보는 감춘다. 방사능 오염수를 슬쩍 바다에 방류해 버린다. 위기관리 능력은 한심하다. 세계 각국에 미운 오리새끼 신세다. 강대국 미국과는 사전 협의하고, 인접국 한국은 무시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입으로만 사죄한다. 피해 복구보다 방사능 정보 단속에 급급하다. 은폐 체질에 세계의 시선이 싸늘하다. 고생하는 일본 국민은 응원하지만 재난 초기의 세계적인 호평은 약해졌다. 일본 국민의 시민의식은 여전히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정부는 철면피다. 미증유의 재앙에 지도자들은 허둥대면서 매뉴얼에만 매달렸다. 창의성을 발휘해 국난을 극복할 수 있을지 의심받는다. 그러면서도 국수주의적 정치외교 전략은 치밀하다. 어이없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다. 1923년의 대재앙 간토대지진 이후와 같은 우경화 폭주 우려도 나온다. 우리가 호의를 베풀어도 무시했다. 진보세력·언론도 국익 앞에선 침묵한다. 심각하다. 일본은 원래 이런 나라다. 이런 이웃을 둔 한국인은 짜증난다. 오만한 일본정부에는 집요한 한국을 보여주자. 정부도, 국민도 일관된 자세가 절실하다. 흥분했다가 식어버리는 대한민국식 대응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국력이 강하지 못해 일본이 무시하는 것은 싫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굴욕적이기도 하다. 원천기술을 일본에 의존하는 게 많다. 기술독립이 시급하다. 1997·2008년 경제위기 때마다 손을 벌렸다. 무시당했다고 열 받지 말자. 흥분할 시간에 실력을 키우자. taein@seoul.co.kr
  • 통합? 분산?… 과학벨트 개념논쟁 가열

    통합? 분산?… 과학벨트 개념논쟁 가열

    분산? 아니면 통합? 논란을 빚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분산론’과 ‘통합론’의 개념부터 흔들리고 있다.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분산배치로도, 통합배치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골자만 보면 분산론은 ‘중이온가속기+기초과학연구원(본원)’ 등 핵심시설은 한 곳에 두더라도 연구원 분원(사이트랩)을 다른 지방에 두는 것은 분산배치라는 것이다. 반면 통합론은 ‘중이온가속기+기초과학원’을 한 곳에 두기 때문에 일부 분원이 다른 곳에 가더라도 큰 틀에서 통합배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 본원, 50개 사이트랩의 절반을 충청권에 두고, 나머지 절반인 25곳 정도를 서울, 광주, 대구, 부산 등에 나눠 주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 판단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8일 “분산이나 통합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다. 과학벨트의 개념을 당초 한 곳에 집중시키는 도시 개념으로 보느냐, 도시에서 확장한 벨트 개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분산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어제 교과부 장관에게도 (과학벨트) 위원회에서 이런 개념부터 정리하고 시작해야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임 실장은 특히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이 분리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과학벨트의 양대 핵심 시설인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은 한 곳에 두되 나머지 분원은 다른 지역에 분산시킬 수 있다는 ‘원안’을 재확인했다. 한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과학벨트와 자신이 주장해 온 ‘삼각 테크노벨트’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 시절 “대구와 대전, 광주를 잇는 삼각 테크노벨트를 구축해 각각을 교육과학기술특구로 지정하면 지역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과학벨트는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원 설치가 골자지만, 삼각 테크노벨트는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과 광주과학기술원, 대전의 카이스트를 고리로 첨단 과학기술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라면서 “현재 이미 세 지역에 연구·개발(R&D) 특구가 지정돼 실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대흥동 등 재개발구역 4곳 용적률 완화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용적률을 완화하고 존치지역의 건축허가 제한을 해제하는 등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나섰다. 올해 들어 시는 지속적으로 용적률을 완화해주고 있는데, 그 이유로 최근 부동산 거래가 위축돼 재개발·재건축 및 뉴타운 사업이 지연되고, 건축 규제로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시는 지난 6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마포구 대흥동 12 일대 6만 2245㎡ 등 재개발·재건축정비구역 4곳의 용적률을 완화하는 내용의 변경안을 통과시켰다고 7일 밝혔다. 대흥2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은 용적률을 225.96%에서 252.3%로 완화하는 대신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 166가구가 추가로 들어서는 등 전체 규모가 1048가구에서 1188가구로 늘어난다. 마포구 현석동 108 일대 3만 8370㎡의 현석2 주택재개발정비구역도 용적률이 250%에서 292%로 완화된다. 또 마포구 신수동 93-102 일대(4만 7501㎡) 주택재건축정비구역의 용적률도 273%에서 299%로 완화된다. 서초구 서초동 1322 일대(1만 6763㎡)의 용적률도 230%에서 300%까지 늘려 ‘우성3차아파트 주택재건축 법정상한용적률 결정안’도 의결했다. 또한 동대문구 전농동 647 일대 등 뉴타운 4곳의 존치지역 8만 6000여㎡에 대한 건축제한 조치도 빠르면 다음 달 해제될 전망이다. 이는 오세훈 시장이 지난달 30일 “장기간 건축허가가 제한된 뉴타운 존치지역에서 주민들이 다수결로 원하면 건축허가 제한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히고서 이뤄진 후속조치다. 대상 지역은 전농동 647번지 일대 전농뉴타운 3만 4070㎡, 동작구 흑석동 186-19 일대 흑석 존치정비1구역 2만 7500㎡, 동작구 노량진 2동 84 일대 1만 8546㎡, 동작구 대방동 11 일대 6095㎡ 등이다. 건축법상 뉴타운 지구내 존치지역은 최대 3년간 건축허가가 제한되며 이후 국토계획법에 따라 추가로 5년까지 신·증축이 금지된다. 그러나 이번에 존치지역에서 벗어나면 건물 신·증축이 가능해지며 주택을 근린생활시설로 바꾸는 등 용도변경이 가능해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또 대구 찾은 朴… TK민심 달래기

    또 대구 찾은 朴… TK민심 달래기

    박근혜(얼굴) 한나라당 전 대표가 4일 다시 대구를 찾았다. 지난달 31일 대구에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비판한 지 나흘 만이다. 그러나 이번엔 신공항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오후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 들어서는 ‘지능형 교통체계(ITS)기반 자동차부품 시험장’ 기공식에서 기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오늘은 안 해요.”라며 함구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박 전 대표로서는 이미 할 말을 다했다.”면서 “이 대통령이 직접 공약을 지킬 수 없는 입장을 설명한 이상 박 전 대표가 나서서 되돌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 의원은 “이 문제를 더 끌어서 박 전 대표가 이로울 게 없다.”면서 “박 전 대표로선 지난달 31일 신공항 필요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소신은 지키고 지역민심을 챙긴다는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대신 대구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대구 연구개발(R&D)특구 출범식’ 축사에서 “대구와 대전, 광주를 잇는 삼각 테크노벨트를 구축해 각각을 교육과학기술특구로 지정하면 지역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삼각벨트’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대구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아프간 ‘코란 소각’ 항의 시위 20명 사망

    미국인 목사의 이슬람 경전 코란 소각으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의 항의 시위가 사흘째 계속됐다. 3일 시위지역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시위로 마자리샤리프의 외국인 유엔 직원 7명을 포함해 20여명이 숨지고 80여명이 부상하는 등 피해가 늘고 있다. 아프간 경찰과 칸다하르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부 마자리샤리프와 헤라트에서 시작된 항의 시위가 남부 칸다하르와 수도 카불, 잘랄라바드로 확산됐다. 탈레반의 옛 거점도시였던 칸다하르에서는 2일에 이어 이날에도 수백명이 코란을 치켜들고 “미국에 죽음을”, “카르자이에게 죽음을”을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지난 2일 칸다하르에서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유엔사무소와 공공기관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향하다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숨지고 81명이 다쳤다. 사상자 가운데 일부는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불 외곽에서는 2일 여성으로 변장한 남성 두명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기지 인근에서 코란 소각에 항의하며 자살 폭탄공격을 감행했다. 미국인 목사의 코란 소각에 항위하는 시위는 그렇지 않아도 10년째로 접어든 아프간 전쟁에 지친 아프간인들의 뿌리깊은 반(反)서방정서를 자극했다. 오는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의 점진적인 철수와 아프간 경찰로의 치안권한 이양을 앞두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당사자인 미국인 목사 테리 존스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이슬람 반대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22일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미 최대 이슬람 사원 앞에서 시위를 강행할 뜻을 비쳐 시위가 다른 지역들로 번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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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승진 △대변인실 홍보담당관 전성오△문화예술국 문화여가정책과장 용호성△〃 예술정책〃 유병채△관광산업국 관광진흥〃 이병국△홍보지원국 홍보콘텐츠〃 류정영 ■국토해양부 ◇서기관 승진 △국토해양부 지영호 김원배△대변인실 홍보담당관실 김옥희△감사관실 감찰팀 김을겸△운영지원과 박종원△주택토지실 토지정책과 한종우△건설수자원정책실 하천운영과 김종철△교통정책실 종합교통정책과 고행철△〃 광역도시도로과 강태석△물류항만실 물류정책과 백병호△국토정책국 도시정책과 김용태◇기술서기관 승진△주택토지실 주택정비과 강대진△〃 지적기획과 성윤모△건설수자원정책실 해외건설과 박연진△물류항만실 항만정책과 허명규 장기욱△〃 항만개발과 김태년△국토정책국 건축기획과 김태곤△물류항만실 해양교통시설과 김민철△여수지방해양항만청 이기상△평택지방해양항만청 장세익△국립해양조사원 최신호 진준호△건설수자원정책실 건설인력기재과 권인식◇기술서기관 승진·보임△부산지방해양항만청 해양교통시설과장 공현동 ■우정사업본부 △제주체신청장 정현의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 △기반지원 김한곤 ■전자부품연구원 △경영기획실장 김대희◇사업기획단장△케티파트너스 양승강△디지털홀로그래피 정광모△무선에너지기술 임승옥 ■문화일보 △논설위원 최형두<편집국>△부국장직대 최중홍△편집부장〃 한형민△사진부장〃 김선규△AM7부장〃 오승훈<광고국>△광고관리부장 위건용<기획관리국>△기획부장직대 최성진 ■시티신문 ◇이사 △편집위원 김영만 ■조선매거진 ◇상무이사 △미디어전략실장 김공필◇국장대우△미디어사업본부장 박선이◇부국장대우△여성미디어본부장(여성조선 편집장 겸임) 이상문 ■중부일보 △관리국장(방송추진 부본부장 겸임) 유정희△제2사회부 용인담당 부국장 정찬성△정치부장 한동훈△제2사회부·기동취재부장 동규 ■울산MBC ◇국장 승진 △경영사업국장 안희택◇부국장 승진△경영관리부장 임부택△경영사업국 오원태△기술국장 김승곤△보도〃 한동우△기획특집부장 박치현◇부장승진△경영사업국 서정훈△편성제작국 김현중◇부장대우 승진△광고부장 목주승△보도국 한창완 ■KBS비즈니스 ◇부장 △스포츠사업 박노일△신성장사업 이준재△시설사업 최정호△경영기획 김봉만 ■IS일간스포츠·JES △편집디자인 데스크 서기찬△스포츠데스크 김성원 ■숭실대 △입학처장 김정헌△평생교육센터장 조문수 ■한국산업기술대 △창업지원단장 나보균 ■한밭대 △교무처장 김종섭△산학협력단장 임재학△산학협력단 부단장 이호철△교무과장 손금배△공과대학 행정실장 정회인 ■건양대병원 △제2진료부원장 윤대성◇실장△기획조정 나문준△QI 김지웅△의료정보 이성기△중환자 권선중△감염관리(감염내과장 겸임) 조유미◇센터장△임상시험(가정의학과장 겸임) 유병원△진료협력(소화기내과장 겸임) 김선문◇과장△임상의학 김영진△내분비내과 박근용△마취통증의학 강포순△심장내과 배장호△흉부외과 류한영△신장내과 윤성로△소아청소년 임재우△정형외과 김상범△비뇨기과 장영섭△이비인후과 박병건△피부과 전수영△재활의학과 이영진△핵의학과 김진숙◇부소장△장기이식센터 황원민◇부장△내과 허규찬 ■우리은행 ◇승진 <부행장>△중소기업고객본부 김장학△경영기획본부 김승규△준법감시인 손근선<상무>△U뱅킹사업단 이영태△채널지원단 이동건<영업본부장>△부산경남동부 이동빈△부산중부 곽상일△강남중앙기업 김현수◇이동 <부행장>△개인고객본부 강원△리스크관리본부 김종운△여신지원본부 서만호<영업본부장>△본점영업부 김종완 ■동양종합금융증권 ◇승진 <부장>△금융센터분당정자지점 곽형신△상품전략팀 김상태△금융센터상무지점 김영진△고객지원센터 김정규△금융센터구포지점 김추열△기획팀 남봉진△자금팀 박승배△인사팀 박영훈△기획팀 신동은△금융센터인천본부점 안현미△금융센터강남역지점 오소영△태백지점 우석봉△금융센터월평지점 윤종삼△금융센터계양지점 이강실△금융센터선릉역지점 이동헌△금융센터천안본부점 임동선△결제업무팀 조강수◇승격 <지점장>△금융센터충주지점 장두산△금융센터원주지점 원호연△금융센터평택지점 김현준△금융센터거제지점 전용희△금융센터보령지점 김주식△금융센터압구정본부점 임민수△금융센터구로지점 김영준△평촌지점 황선용△창원시티세븐지점 정성우△금융센터홍대지점 윤석천△금융센터신사지점 신무석△청담지점 채영곤△속초지점 심상우△금융센터칠곡지점 정인수△금융센터의정부지점 김우용◇전보 <지점장>△금융센터강남본부점 장근수△김해지점 김순돌△금융센터은평지점 전영근△금융센터연산지점 김추열△골드센터분당점 이숙철△동래지점 김민재△금융센터센텀지점 최헌승△금융센터구포지점 서도근△진해지점 한근일△금융센터홍제지점 양연하△마산지점 유창열△금융센터삼성역지점 유영렬△금융센터서천안지점 우석봉△금융센터안양지점 최석두△금융센터신림지점 심영진△태백지점 박경식△금융센터김포지점 정동호△금융센터수유지점 이성호△삼척지점 최경상△금융센터창원지점 이승주 ■IBK투자증권 ◇승진 <이사>△분당지점장 구본관△광화문〃 고인준△IPO1팀 배상현<부장>△금융센터 논현본부 AM지점 이영훈△성서공단점 이석용△인천지점 전경주△감사팀 현진길 ■이트레이드증권 ◇이사 승진 △기업금융2팀 이창환△논현PB센터 개설준비위원회 오형록△채권금융팀 이규윤◇신규 선임△컨텐츠팀 팀장 엄기열△채권영업팀 〃 권오덕◇전보 <팀장>△리스크관리 권우석△홍보IR 김동현△인사 최광순△총무 김준철△법인금융 백운복△FX마진 김명권△부동산금융 박성근△캐피탈마켓 황영진△채권인수 안재성△영업부 김종림△테헤란 권욱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신규선임 △대표이사 김준송 ■한양증권 ◇이사대우 승진 △주식파생운용팀장 정경윤△인천지점장 강신규△안산지점 구자현◇전보△영업추진팀장 최경규<지점장>△삼풍 조한규△부평 원중희△안산 이동성△행당 용규만◇부장 승진△삼풍지점 장기태△부평지점 이재진△안산지점 임재수△시화지점 심상한 원중희 권태국△도곡지점 황정현 이연희△인천지점 이종훈△안양지점 서종배△행당지점 박태봉△IB영업팀 박성민△감사팀 배성수△전략기획팀 고명섭 ■푸르덴셜투자증권 ◇승진 △대전지점 한귀석△대치지점 위규범△여의도지점 김행선△이촌지점 조주혁△정보운영팀 박병준△포항지점 오세덕△감사팀 함영만△둔산지점 송요한△명일지점 손정학△법인자산영업팀 남상각△부경법인본부 최시양△산본지점 위민형△수유지점 김태성△인사총무팀 반석원△전주지점 남건욱△정보개발팀 이성기△화곡지점 왕병렬△랩운용팀 남형민 ■한화증권 ◇부장 승진 △감사팀 강승엽△경영기획팀 신충섭△기업금융팀 김재성△기업분석팀 최원균△리스크관리팀 김관순△법인금융2팀 이덕출△선물옵션운용1팀 김동욱△홍보팀 김종술△FICC상품팀 신민식△상하이 사무소 정용석△중국금융사업팀 장병호△광주지점 이계신△문경지점 권재윤△서초지파이브지점 김은정 ■한화손해보험 ◇부장 승진 <지원단장>△제주 고건일△경북 김덕경△중부산 박영이△대전 이승우△강북 한용우<영업부장>△법인영업10부 박정채△법인신규프로젝트 봉필식△방카영업2부 정연중<보상센터장>△대구 김삼기△부산 김태철△경기 홍성권<본사 부서>△경영기획 정진택△경영기획 김희갑△경영관리 최종훈△경영관리 권혁준△경영관리 최기진△인사 김규하△상품개발 이명균△화재특종업무 이재우△자동차보험 정종민△고객서비스 한성수<개인영업본부>△수도사업부지원팀 서준호 ■메리츠화재 ◇임원 전보 △수도권1본부장 정인현△수도권2〃 허준석△수도권3〃 윤여일◇부서장 전보 <팀장>△개인영업교육 박종호△개인영업지원 정유철△기업보험혁신 이용화<부장>△국공영업 조성우△법인영업2 최학용△NewAccount영업 박영준△강북보상서비스센터 김경태<지역단장>△강서 유재문△구미 강학구△노원 변중호△대구 연명흠△동래 서재용△마포 유광일△새서울 조한욱△서광주 권종길△전주 최미남△진주 안용수△포항 임우택△수도권교차 정성원<마케팅팀장>△수도권1본부 이진기△수도권2본부 이봉훈△수도권3본부 이호성 ■동부화재 ◇승진 <부사장>△경영지원실 김영만△신사업부문 이기무<상무>△인사지원팀 정종표△호남사업본부 김석환<본점 팀장>△법인마케팅팀 김진구△일반보험업무팀 김유석△자동차보상본부 박찬선△신채널사업본부 이범욱<부서장>△강북本마케팅팀 정광수△방카마케팅부 손정호△신채널영업1부 정학기△기업보험대리점2부 서정석[파트]△시스템기획 손성구△장기U/W기획 장용준△장기보전 여태훈△SIU모방원△영업전략 현열석△법인영업기획 이진구△재물업무 류석△법률리스크관리 김용준[보상SC]△지방장기 김만순△강북 신승학△강남 소창석△경남 이교승△충청 문병희[사업단]△대구 이종훈△안산 김병철[방카영업부]△경인 강영선△지방 오광진<보상부장>△호남 오남섭◇전보 <상무>△강북사업본부 구본기<본점파트장>△위험관리연구소 김준태[센터]△U/W 김원하△업무지원 김영묵[파트]△자동차업무 박춘근△보상기획 나대두△장기보상지원 김동삼△일반보상 전익주△자동차보상지원 허대회△영업지원 이정환△신사업지원 마종락△업무지원 성백현△기획관리 김창호<본점 부장>△신채널영업2부 박월웅△강북방카영업부 이태호<사업단장>△강동 김인근△강릉 최희근△춘천 박기영△동래 백승훈△동부산 강석천△서부산 박순기△창원 이상규△통영 남견호△서면 임호경△서대구 이화석△동대구 권중수△포항 백평현△서부 김현수△중앙 박성록△북부 유주현△의정부 강경준△일산 박하진△동부 김종년△광화문 안광도△강남 임덕은△인천 도상욱△수원 김순석△안양 최석윤△유성 김명남△제주 최영철△전주 표창종 <보상센터장>△수도권장기 이성근△동서울 조완철△경기 박순범△부산 복진수△대구 손흥락<보상부장>△동서울 김장홍△부산 하동수△글로벌 장기호△강북 김경열<법인부장>△해운보험부 박훈△Agency영업부 차춘호 ■알리안츠생명 ◇승진 △경북영업단장 황재복△재무관리부장 송민용△자산운용지원〃 이은섭 ■두산인프라코어 ◇승진 △전무 장근배 ■대웅제약 ◇이사대우 승진 △마케팅팀 서호영△도매사업팀 여범동<마케팅본부>△소화기팀 진성곤△병원기획실 강종한<글로벌사업본부>△해외사업팀 박영호 ■보령제약 ◇이사대우 승진 <보령제약>△NEPHRO BIZ Unit 오원식△RA팀 박관재<보령메디앙스>△재경지원실 송인택<보령바이오파마>△제대혈사업부 김성구△생명공학제대혈연구실 김태연△마케팅팀 유병규△MR사업부 박명배 ■유한양행 ◇전무 승진 △생활건강사업부장 김해룡△중앙연구소장 이태오△사업지원본부 서상훈 ■모두투어 △이사 공병길△이사대우 서상영 전상석 강경자 ■엔씨소프트 ◇전보 △최고프로듀싱책임자(CTO) 배재현◇승진 <전무>△인사담당 구현범<상무>△아이온개발실장 김형준△사업기획〃 신민균 ■파라다이스 ◇신임 △감사 이창민
  • 영역별 만점자 1%수준·EBS 연계율 70%유지

    영역별 만점자 1%수준·EBS 연계율 70%유지

    “문제를 어렵게 내고 비틀기보다는 공부한 학생들이 학업성취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30일 성태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은 ‘쉬운 수능’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비판이 나오는 현실인 만큼 정상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에게 득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올해 수능의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역별 만점자 1% 수준’을 꼽을 수 있다. 학생들이 어려웠다고 평가한 2011학년도 수능의 경우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언어 0.06%, 수리 가형 0.02%, 수리 나 0.56%, 외국어 0.21% 등이었다. 반면 쉬웠다는 2010학년도 수능 영역별 만점자는 언어 0.24%, 수리가형 0.34%, 수리 나 0.84%, 외국어 0.74%였다. 교육과정평가원이 밝힌 영역별 1% 수준이 된다면 2010학년도 수능보다 더 쉬운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학생들은 언어영역과 수리 가형, 외국어 영역이 보다 쉬워졌다고 느낄 수 있다. 평가원은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출제범위가 바뀌는 수리영역도 쉽게 내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수능부터 수리 가형은 ‘수학Ⅰ’ ‘수학Ⅱ’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에서, 수리 나형은 ‘수학Ⅰ’과 ‘미적분과 통계 기본’에서 출제된다. 특히 문과생들이 주로 보는 수리 나형에 미적분과 통계 기본이 추가되면서 수리영역이 어려워 당락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교육과정평가원은 “미적분 내용이 추가됐지만 수험생이 준비하는 데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학교수업과 EBS를 통해 공부하면 충분히 풀 수 있도록 출제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육과정평가원은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영역의 경우 만점자 1% 수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성태제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해보다 쉽게 내겠지만 탐구영역은 올해부터 3과목으로 선택과목수가 변경돼 응시자수 변동이 매우 심할 경우 만점자 1% 수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 수험생들이 어떤 과목을 선택하는지 등을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상위권의 경우 변별력도 약화될 수 있다. 한 입시전문가는 “2006년 수능 언어영역의 경우 만점자가 1.8%가 나왔는데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바뀌면서 대학 입시의 당락이 뒤바뀌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도 “수시모집은 큰 변화가 없겠지만 정시모집에서는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논술고사와 같은 대학별고사를 시행하는 대학은 대학별고사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수능 성적으로만 선발하는 수능 우선 선발의 경우 상위권 대학의 인기학과는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동점자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성 원장은 “1점 차이로 지망 대학 합격 여부가 갈리는 상황은 지양하자는 것”이라며 “필기시험의 영향력을 낮추고 인성, 수행능력 등 다양한 형태로 교육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인 만큼 대입의 수능 비중을 낮추고 입학사정관제 등을 중심으로 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은 쉬워지고 수시모집이 늘고 있지만 수능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시모집에서는 수능의 비중이 오히려 커졌다. 수능 성적을 100% 반영하는 대학도 87개에 달하고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들은 정시모집 인원의 50~70%를 수능 성적으로만 뽑는 ‘수능우선 선발제도’를 시행한다. 또 수시모집에서도 대학에서 수능 성적을 최저학력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희대·고려대·서울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 등은 수능 4개 영역 중에서 2개 영역이 2등급 이내에 들어야 한다. 연세대와 서강대는 인문계는 3개, 자연계는 2개 영역이 2등급 이내에 들어야 한다. EBS 교재와 인터넷 강의를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올해 수능 EBS연계율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70%를 유지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EBS에서 나온 지문이나 문제를 크게 변형하지 않고 출제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쉬운 수능이라고 해도 영역별로 일부 문항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보인다. 고득점을 위해서라면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출문제로 수능 시험의 난이도를 먼저 파악하고 여기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무턱대고 공부하기보다는 지망대학은 물론 최대 선택과목수가 변경된 탐구영역의 선택과목도 가급적 빨리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지방대학의 경우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과 가중치 등을 고려해 비중이 큰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탐구영역 선택과목의 경우 2과목을 반영하는 대학을 준비하더라도 3과목을 선택해 준비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 소장은 “영역별 기본 개념을 철저히 익힌 다음 다양한 종류의 문제 풀이를 통해 실력을 올릴 수 있다.”면서 “문제 풀이도 정답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은 교과서로 기본 개념을 다시 확인해야 하고 문제를 풀 때도 수능 시험 시간에 맞춰 푸는 연습을 하면 실전에도 대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靑·여권 ‘성난 TK 달래기’ 속앓이

    성난 대구·경북(TK) 민심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30일 발표되는 동남권 신공항 입지 평가 발표에서 밀양과 가덕도가 모두 탈락하고 사업이 백지화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남권 민심이 들끓고 있다. 부산·경남(PK) 지역도 반발은 거세지만 그나마 신공항을 안 하는 대신 김해공항 확장을 대안으로 얻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대구·경북 지역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더 거세다. 대구·경북 지역은 현 정권의 정치적 지지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공항 백지화와 관련, 친이(이명박)계의 핵심인 대구·경북 지역 의원조차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직설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을 정도다. 밀양과 가덕도 모두 경제성 면에서 신공항 입지로 적합지 않아 사업이 백지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간간이 흘러나오면서 어느 정도 충격 완화 역할을 했지만, 성난 대구·경북 민심을 가라앉히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아무리 ‘경제논리’에 입각했다는 점을 내세워도 신공항이 이 대통령의 2007년 대선공약이었던 만큼 또 한번 대선공약을 뒤집으며 ‘제2의 세종시’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 핵심에서는 영남권, 특히 대구·경북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공항 백지화’를 상쇄할 만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실리콘 밸리로 조성될 예정인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일부를 대구·경북 지역으로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연구 중심 대학인 포항공대(포스텍)가 있는 만큼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연구 관련 시설을 대구·경북 지역에 보내면 관련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입주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검토 단계의 아이디어 차원이며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이 같은 움직임은 전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청와대에서 한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사실”이라면서 “아직 정부에서 입장 발표도 안 했는데 다른 것을 연결해 말을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금강하구 실뱀장어 조업기준 완화해야”

    실뱀장어 어획량을 늘리기 위해 조업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28일 전북 군산시에 따르면 금강하구 일대에서는 지난 2월부터 전북과 충남지역 소형 어선 190여척이 몰려 실뱀장어 조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획량이 예년의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하순 기준 실뱀장어 어획량은 1.5㎏으로 예년의 같은 기간 500㎏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뱀장어 가격이 1마리에 1900~2200원으로 지난해보다 70~80%나 올랐다. 어민들은 실뱀장어 어획량을 늘리기 위해 무동력선이나 5t 미만 동력선으로 제한하고 있는 실뱀장어 조업 어선을 10t 미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뱀장어를 잡을 때 사용하는 그물의 크기를 감안할 때 5t 미만은 너무 작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업 허가구역도 어군에 따라 조업해야 하는 특성을 감안해 항구 경계 내까지 확대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어민들은 “군산항과 장항항 등 내항은 대형선박 운항이 없고 교통장애가 없기 때문에 항계에서도 한시적 조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실뱀장어 조업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금강하구 일대에서 매년 2월부터 6월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北 40여차례 갔지만 이런 굶주림은 처음”

    “北 40여차례 갔지만 이런 굶주림은 처음”

    캐나다의 자선단체인 퍼스트 스텝스의 수전 리치 대표는 최근 방북해 영·유아들의 영양 상태와 식량 상황을 보고 돌아왔다. 그는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긴급 호소문’을 내고 북한의 심각한 영양실조와 식량 부족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청했다. 리치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40여 차례 방북을 했지만 가장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면서 “사정이 좋은 지역도 하루 배급량의 절반인 300~400g밖에 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방북 결과를 설명해 달라. -2월 18일부터 3월 1일까지 후원자 다섯명이 평남과 강원(북한 측) 지역을 방문해 고아원, 진료소, 유치원, 탁아소, 협동농장과 식료공장을 포함해 21곳을 돌아보고 왔다. 강원 통천 지역은 지난해 가을 태풍과 홍수 피해로 야채 농사를 망쳤고, 60년 만에 가장 심한 겨울 추위로 인해 봄에 수확해야 할 보리와 밀의 80~90%, 감자 및 채소 농작물이 모두 얼었다. 그곳 사람들은 “앞으로 한두 달 사이에 각 지역의 비축식량이 모두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북한을 도왔는데, 이 시점에서 긴급 식량 지원을 호소하게 된 배경은. -10년간 북한을 40여 차례 방문하면서 이 일을 해 왔는데 내가 본 것 중 가장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이 먼저 심각한 영양실조와 식량부족에 따른 긴급호소를 우리에게 해 왔다. 농사가 잘 이뤄지진 않았어도 이만큼 심각하진 않았다. 2008년 큰 홍수 피해가 있었을 때는 국제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도움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의 쌀 생산량이 늘었다고 보고했는데 불과 4개월 만에 식량난이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풍년이 들더라도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평남 남포는 해외에서 물자가 들어오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그나마 사정이 다른 곳에 비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이곳의 일꾼마저 하루 식량 배급량의 절반인 300~400g밖에 받지 못하는 형편을 고려해 볼 때 북한 전체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식량 지원 계획은. -10년 동안 메주콩 외에 콩우유 생산 기계, 부속품, 스테인리스 우유통 등 설비들을 북한에 보냈다. 이번 방문 때는 설비보다는 콩을 우선적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올해는 콩우유의 원료인 메주콩을 더 많이 보낼 계획이다.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입장은. -캐나다 정부는 인도주의적 지원은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인과 캐나다 거주 한인들까지 점점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있다. 개인, 단체, 교회를 통해서 돕고 있다. 미국과 한국도 식량 지원에 나서야 한다. 어른들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어린이들에게 배가 고파도 참고 기다리라고 해야 하나.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장미·인삼·김·막걸리 ‘울고’ 라면·설탕·소주·미역 ‘웃고’

    동일본 대지진이 한국의 대(對)일본 농식품 무역구조를 바꿨다. 장미·인삼·김·막걸리 등 일본 수출 효자상품이 타격을 입었고, 라면·설탕·소주·미역 등 먹거리 수출이 증가했다. 27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대일 수출 증가율이 지난 16일까지 17.4% 수준이지만, 23일에는 18.7%로 늘어났다. 일본으로의 농·수산식품 수출이 대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방증이지만, 품목별로 명암이 엇갈렸다. 대지진 이후 보름 동안 라면·미역 등 식료품 수출은 급증했다. 지난 11일까지만 해도 전년 대비 라면 수출액 증가율은 51.7%였지만, 23일 집계에서는 전년 대비 증가율이 59.1%로 올랐다. 같은 기간 소주 수출액 증가율은 8.6%에서 17.8%로, 설탕 수출액 증가율은 34.2%에서 51.1%로 뛰었다. 12일 동안 증가율이 라면은 7.4%포인트, 소주는 9.2%포인트, 설탕은 16.9%포인트씩 늘어난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요오드 함유 식품으로 주목받는 미역도 전년 대비 수출 증가폭이 11일까지는 3.4%로 미미했지만, 23일에는 13.3%로 높아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 내 미역 최대 산지에서 지진 피해가 발생하는 바람에 수출 주문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기호제품의 수출 실적은 뚝 떨어졌다. 장미꽃 수출액은 지난 11일까지만 해도 전년 대비 0.4%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지만, 23일에는 증가율이 7.7% 감소로 반전됐다. 인삼 수출액 증가율도 지난 11일 집계에서는 8.9%였지만, 23일에는 마이너스 3.5%로 뒤집어졌다. 관계자는 “일본 지진으로 수출 피해를 본 품목에 대해서는 정책자금 상환 연기, 대체시장 개척, 특별 마케팅 지원 등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노래 하나 감상해본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한운사 작사, 황문평 작곡의 ‘빨간 마후라’다. 얼핏 짧고 단순한 노래 같지만 대한민국 공군 출신들에게는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추억의 되새김질을 하게 하는 노래다. 또한 40~5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는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다가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1964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 ‘빨간 마후라’는 공군 전투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과 시원한 활주로, 빨간 머플러가 컬러 필름으로 표현돼 관객을 압도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서울 충무로 명보극장에서만 25만 관객을 기록했다. 특히 이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됐으며 주연으로 나온 신영균(83)씨는 당시 제1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한류 스타가 누구냐고 했을 때 영화계에선 신씨를 거론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런 추억을 담은 ‘빨간 마후라’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고 유치곤 장군의 호국기념관에 노래비로 세워져 이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원로 영화배우 신씨가 2010년 10월 출연한 재산으로 출범한 재단법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이 현판식과 함께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2011년도 상반기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첫 장학금 전달 영화인 총연합회 회원단체와 영화인회의 등 8개 영화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영화인 자녀 이동규(서원대 유아교육학과 1학년), 임원룡(서울대 경영학부 4학년)군 등 대학생 10명과 홍민호(경복고 3학년), 정원(동두천외국어고 1학년)군 등 고교생 9명에게 총 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들 장학생 중에는 영화배우 허기호(허장강씨의 장남)씨의 아들 허진우(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1학년)군도 포함됐다. 이 자리에서 신씨는 명보시네마테크 운영, 신영균연기예술상 제정과 함께 영화 인재 발굴 사업으로 청소년 영화제 ‘필름 게이트’와 방학 시즌 어린이 영화 체험 교실인 ‘꿈나무 필름 아트 캠프’ 등을 추진할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올 연말에는 제1회 신영균영화연기대상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처럼 ‘빨간 마후라’와 ‘5인의 해병’ 등으로 일찍부터 원조 한류스타의 명성을 얻은 신씨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는 등 국내 영화 발전을 위해 새로운 열정과 의욕을 보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명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신씨를 만났다. 때마침 김두호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도 함께 있어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인터뷰가 진행됐다. 검은색 양복에다 빨간 넥타이 차림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40대로 보인다.”고 인사를 하자 “에구 뭘, 마음이 젊어서 그런가.”라며 파안대소했다. 그래서 건강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운동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가끔 골프 라운딩도 하고 헬스클럽에는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나가지요. 나이 먹어서는 근육 운동을 자주 해야 돼요. 골격이 튼튼해지니까.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합니다.” ●294편 영화 거의 다 기억… 팔순의 나이 무색 신씨는 웃음이 호탕하다. 생각을 젊게 하고 행동 또한 그러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억력 또한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1960년 조긍하 감독의 ‘과부’로 데뷔한 이후 1978년 ‘화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출연한 294편의 영화를 거의 줄줄 꿰고 있었다. ‘빨간 마후라’에 출연한 동료 배우 최무룡씨를 비롯해 ‘5인의 해병’에 등장하는 황해·곽규석·박노식씨 등에 대한 추억도 또렷하게 떠올린다. 이들 중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아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특별하다. 신씨는 알다시피 지난해 10월 자신의 사재 대부분을 털어 장학사업에 쓰겠다고 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후 후회는 한번도 없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장학사업)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인들의 작업 환경이 아직도 열악합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재능 있는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와 보탬이 된다면 그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대를 잇는 훌륭한 연기자들을 잠시 떠올린다. 1955년 ‘피아골’로 데뷔한 고 이예춘씨의 아들 이덕화와 손녀 이지현, 고 김승호씨의 아들 김희라와 손자 김기주, 오발탄의 명배우 고 김진규씨의 아들 김성준, 고 황해씨의 아들 전영록, 고 독고성씨의 아들 독고영재와 손자 독고준, 고 박노식씨의 아들 박준규 등. ●치과의사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꿈 간직 신씨 자신도 가난과 배고픔을 몸소 겪었기에 연기에 자질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청춘극단’에서 2년 동안 연기를 하다가 생활의 비참함을 벗어나고자 좀 더 안정적인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해군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58년 서울 회현동에 ‘동남치과’를 개업했으나 도저히 끼를 못 버려 2년 뒤 황순원 원작 ‘과부’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연극을 했는데 생활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직업적으로 전망이 좋다는 치과의사가 되고자 했지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데뷔작 ‘과부’에서 처음 주연으로 발탁될 당시를 회고한 그는 “배역도 좋고 작품도 좋았는데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많이 고민했지만 순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이후 신씨는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스타의 길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빨간 마후라’ ‘5인의 해병’ 같은 군사물은 물론이고 ‘연산군’에서는 폭군,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는 멜로물의 주인공,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는 종교인으로 등장하며 타고난 끼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18년 동안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니 그의 열정과 끼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다면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릴 때 왜 배우를 그만두게 됐을까. “당시 군사정권이었죠. 검열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권총을 쏘는 장면도 ‘왜 이 각도에서 총을 쏴야 하느냐’ 등의 이유로 가위질을 많이 당했지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매력도 없어지고 편수도 줄고, 관객 또한 마찬가지로 흥미를 잃게 됩니다.” ●군사정권시절 검열 심해 배우 생활 그만둬 배우를 그만둔 이후에는 제주도에서 영화박물관 건립에 열정을 쏟는다. 그가 제주도와 인연이 된 것은 영화 ‘마적’(신상옥 감독)이었다. 이 영화는 1967년 제주도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신씨는 드넓은 초원에서 영화박물관을 생각하게 됐다. 결국 오랜 노력 끝에 1999년 제주 남원읍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신씨가 부자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부를 일궜을까. “제 인생의 특징을 말한다면 실패를 안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지도 않았고 또 무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인격적으로는 겸손하자고 늘 생각했어요.” 신씨는 배우 시절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늘 불안하게 여겼다. 그래서 1960년대 친구와 함께 서울 금호동에 동시 상영을 하는 ‘금호극장’을 지었다. 영화는 많으나 극장이 턱없이 모자라는 현실에서 발동이 걸렸던 것. 이후 명보극장 바로 옆에 있는 명보제과를 인수했다. 이때 부인 김선희 여사가 팔을 걷어붙여 직접 빵을 굽고 장사도 하면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당시 명보제과는 뉴욕제과와 태극당, 풍년제과 등과 함께 4대 제과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던 1977년 8월 명보극장을 인수하게 된다. 이후 ‘지옥의 묵시록’과 ‘빠삐용’ 등의 외국 영화와 ‘내가 버린 여자’(이문웅 감독),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 ‘미워도 다시 한번’(변장호 감독) 등의 한국 영화가 잇달아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지난해 기부 대상을 ‘명보극장’으로 정한 것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극장 소유는 영화인들의 꿈이었고 이제는 그 꿈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언젠가 꿈이 이뤄진다는 철학도 포함됐다. 신씨는 지금도 꿈을 꾼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에 출연해 멋진 연기로 영화배우로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단다. 이를 위한 구상이 현재 기획 단계에 있다고 귀띔했다. 그의 취미는 나무 심기다. 신영영화박물관 옆에 많은 나무들을 심었단다. 서른두살에 영화 나무를 처음 심은 이후 지금도 꾸준히 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팔순 나이에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서 또 한번 영원히 자라는 나무를 심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신영균은 치과의사 → 배우 → 국회의원…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 1928년 황해도 평산의 산 속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해 일찍 서울로 월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교회 연극을 통해 연기를 접한 뒤 줄곧 배우를 꿈꿨다. 한성고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청춘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극단 배우로 생계 유지가 힘들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울대 치의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총학생회 연극부를 창립해 활동했고 졸업 후 치과의사로 일하다 1960년 32살의 나이에 영화 ‘과부’로 데뷔했다. 이어 1961년 ‘마부’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고, 1962년에는 ‘연산군’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데뷔 2년 만에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출연작 중 단연 압권은 ‘빨간 마후라’(1964)이다. 이 영화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원조 한류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심해지면서 영화계가 침체됐고 1978년 ‘화조’를 끝으로 배우 활동을 접었다. 이후 명보극장을 중심으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고 15,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9년 제주도에 영화박물관을 지었으며 지난해에는 사재 500억원을 선뜻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18일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현판식을 가지면서 장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요 대표작으로는 열녀문(1963), 쌀(1963), 달기(1964), 시장(1966), 천하장사 임꺽정(1968), 대원군(1968),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이 있으며 18년 동안 모두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계륵’ 된 정운찬 위원장과 혼돈의 재·보선

    ‘계륵’ 된 정운찬 위원장과 혼돈의 재·보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여권 내 역학 구도로 볼 때 ‘계륵’에 가깝다. 4·27 재·보선 분당을 지역구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감안할 때는 버리기 아까운 카드였다. 최근 ‘초과이익공유제’ 발언 등으로 여권 내 분란을 일으킨 점에서 보면 나름 ‘상품성’도 있었다. 정 위원장의 이런 입지가 이제는 크게 흔들리는 모양새다. 신정아씨가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정 위원장과의 관계를 언급한 게 결정타가 됐다. 그동안 일관되게 정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던 청와대부터 흔들리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3일 “신정아씨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말과 함께 ‘상황이 고약하게 됐다’는 얘기가 함께 나온다.”면서 “내부에서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시간을 갖고 좀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정 위원장의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해서는 “(사표는) 우리가 받는 게 아니며 지경부 장관의 소관”이라고 한발 빼는 분위기다. 신정아씨 자서전 출간 이후 정 위원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구태여 소매를 붙잡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처음으로 이날 청와대에 온 정 위원장은 말을 아꼈다.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행사에 추진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정 위원장은 “신정아씨와 관련해 한마디 해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됐어요. 행사 왔는데 뭘…”이라고만 했다. 한나라당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정 위원장의 지지 세력들로부터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 위원장을 분당을에 전략적으로 공천할 생각을 가졌던 원희룡 사무총장(공천심사위원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상당히 고약한 상황이 됐다.”면서 “정상적인 절차대로 공천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출마 여부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던 기존 입장과 차이가 난다. 정 위원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면서 ‘정운찬 대 손학규’ 구도가 예상됐던 분당을 지역도 여야 모두 내부 이전투구에 빠지면서 안갯속 형국이다. 한나라당에서 폭로전 조짐마저 나타났다. 정 위원장이 힘을 잃으면서 상대적으로 강재섭 전 대표가 유리하게 됐지만, 박계동 전 의원은 이날 “강 후보는 공천을 받아도 완주할 수 없는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의 출마설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을 빚었다. 손 대표의 특보단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여권 텃밭, 저조한 투표율, 진보 진영 승리 전무, 재보선 진두지휘’ 등을 들어 ‘손학규 분당 출마 4대 불가론’을 폈다. . ‘정운찬 카드’가 몰락하면서 이제 정가의 시선은 손 대표에게 집중되고 있다. 여러 정황과 반응을 종합하면 ‘(출마)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로 모아진다. 손 대표는 이날 김해 출정식에서 신 의원의 불가론 성명을 전해 듣고 “날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되는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구혜영·이창구기자 sskim@seoul.co.kr
  • 시·군에 도의원 전용사무실 웬말

    전국의 여러 시청, 군청에 광역도의원의 전용 사무실이 설치되자 “도의회에 사무실이 있는데 왜 산하 시·군에도 설치하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무실을 마련을 요구했던 도의원들은 ‘도와 시·군의 가교’ 역할을 주장하고 있으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충남도에 따르면 천안시는 시의회 건물 3층 전문위원실 옆에 도의원 전용 사무실을 마련, 최근 지역 출신의 도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을 열었다. 시의회 의원들은 도의원들의 행동이 못마땅한 탓인지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천안시는 36㎡ 규모의 사무실 리모델링 비용으로 1600만원과 소파, 탁자, 의자 등 집기 구입비로 500여만원의 예산을 썼다. 천안 지역 도의원은 7명(비례대표 제외)으로, 이들은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새 시장을 만나 시청에 도의원 사무실을 설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동욱 시의회 의장은 “도의원 사무실 얘기가 나왔을 때 시의원 사이에서 ‘여기가 무슨 의원회관이냐’는 불평이 있었다.”면서 “기초자치단체에 상급 의회 의원의 사무실이 꼭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이미 설치된 곳에서는 사무실 무용론이 나온다. 청양군은 2007년 군청 1층에 도의원 사무실을 설치했다. 단 1명의 도의원을 위한 사무실 규모는 27㎡가 넘는다. 유병환 전국공무원노조 청양군지부장은 “사무실을 설치하고도 장기간 이용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사용하고 있다.”면서 “노조는 사무실이 없어서 군청 옆 개인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데 도의원에게는 공짜로 군청에 사무실을 내줬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노조는 사무실 임대료와 전기요금 등으로 연 300만원 정도를 쓴다. 유 지부장은 “도의원이야말로 군청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무실을 임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도는 지난해 7월 26일 도의회의 요구로 도의원 사무실 설치를 요청하는 공문을 산하 23개 시·군청에 보내 김천(도의원 2명), 예천(2명), 포항(7명), 영주(2명) 등지에 사무실을 두었다. 이에 대해 시·군 공무원들은 “눈치를 봐야 할 시어머니가 둘이 됐다.”, “도의원들이 이중으로 세금을 쓰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안동(2명), 의성(2명) 등은 도의원 사무실 설치를 무산시켰다. 충북 옥천군(2명)도 “법적 근거가 없고 공간도 없다.”는 군의회의 반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우남국 공직협 경북협의체 회장은 “시·군 예산으로 도의원 사무실을 만드는 것은 낭비”라면서 “사무실을 만들어 주면 시·군과 밀착돼 청탁, 비리, 인사 개입 등이 판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사설] 일본산 먹거리 안전 철저히 대비하라

    일본 정부가 자위대 등을 동원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1~4호기에 냉각수를 투입한 게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일부 전력선이 복구되면 냉각수 순환과 압력조절 관련 장치들이 다시 가동되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우려하는 3호기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변수도 많이 있지만, 잘하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은 반갑다. 핵 공포의 걱정은 다소 줄어들고는 있지만, 먹거리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방사능 누출사고에 따라 예상된 것이지만 먹거리 안전문제가 심각할 수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최근 실시한 수돗물 샘플검사에서 도쿄, 군마현 등 6개 지역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발견됐다. 미량이고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라지만 수십년간 실시한 검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요오드가 검출되지 않았던 것에 비춰 보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고 여파가 심상치 않을 수도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요오드가 인체에 다량 흡수되면 갑상선 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3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우유, 도쿄와 인접한 이바라키현에서 생산된 시금치에서는 식품위생법상 기준치를 넘는 방사성물질의 잔량도 검출됐다. 시금치에서는 세슘도 발견됐다. 일본 정부는 인체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초기 단계의 수치라는 것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일본은 원전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출하를 제한하고 안전성 조사 품목도 늘리기로 했다. 시금치·우유뿐 아니라 다른 일본산 채소·과일·생선·육류 등 신선식품에서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은 높다. 지금은 초기 단계여서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는 일본산 먹거리가 많지 않지만 원전사태가 빨리 수습되지 않으면 노출될 품목과 검출되는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현재 별 문제가 없다고 안이하게 대응할 게 아니라,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일본에서 수입되는 식품뿐 아니라 일본을 경유하는 식품에 대한 검역도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우리 국민도 과민반응은 자제하되, 신선식품에 대한 위생관리에 종전보다 세심한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 [부동산특집] 김포한강로 6월 개통·지하철 9호선 연장 추진 ‘호재’

    [부동산특집] 김포한강로 6월 개통·지하철 9호선 연장 추진 ‘호재’

    다음달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4800여가구의 아파트가 수요자를 찾아간다. 최근 불기 시작한 지방 분양시장의 훈풍이 북상하고 있는 가운데 모처럼 수도권에서 대규모 합동분양이 이뤄져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한강신도시는 오는 6월 자유로 맞은편 ‘김포한강로’ 개통과 지하철 9호선 연장 추진 등 호재가 적지 않은 데다가 친환경도시라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그동안 김포한강신도시는 서울 도심과의 거리가 25㎞에 불과하지만 국도 48호선 외에 광역도로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서울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림픽대로 확장공사가 마무리되고, 김포한강로가 올림픽대로와 바로 연결되면 서울에서 김포한강신도시로의 이동이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열린 김포시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기존의 경전철안 대신 지하철 9호선 연장안을 추진 중이어서 교통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오는 10월(예정) 경인아라뱃길 개통까지 마무리되면 김포한강신도시는 명실상부한 서서울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게 분양 참여업체 관계자의 얘기이다. 전셋값 상승과 지방 분양시장의 호조, 김포 일대 교통여건의 개선 등에 힘입어 이 일대 미분양 아파트 물량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1월 현재 김포시 미분양 아파트는 모두 1840가구로 전년 동월(2518가구) 대비 45% 급감해 경기도 내 시·도 중 감소세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양의 특징은 합동 분양이라는 점이다. 홍보 등은 같이 하되 4월 중 순차적으로 분양한다는 것이다. 합동분양에는 김포도시공사, 대우건설, ㈜모아주택산업·㈜모아건설, 반도건설, 한라건설 총 5개사가 참여한다. 전체 가구수는 4799가구(분양 승인 등의 과정에서 조정)에 달한다. 분양 첫 테이프는 한라건설이 Ac12블록에서 분양 첫 테이프를 끊는다. 분양가는 3.3㎡당 800만~1100만원대. 서울의 평균 전셋값이 3.3㎡당 737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수요자들의 자금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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