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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해외 신용카드 씀씀이 커졌다

    경기침체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지난해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쓴 내국인 수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 줄어들었다.그러나 해외 신용카드 이용액과 1인당 사용액은 다소 늘었다. 한국은행이 31일 발표한 ‘2003년 중 신용카드 해외이용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카드(직불카드 포함)를 해외에서 쓴 내국인 수는 438만 2000명으로 전년 대비 2.3%가 줄었다.외환위기 때인 1998년(-55.1%) 이후 5년 만의 감소세다. 한은은 “내수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사스 발생 등으로 해외 여행자 수가 감소한 게 주 원인”이라고 설명했다.지난해 해외 여행자 수는 708만 6000명으로 전년 대비 3만 7000명(0.5%)이 줄어 98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1인당 해외여행 경비도 지난해 1410달러로 전년(1469달러)보다 4.0% 줄었다. 그러나 해외 신용카드 이용액은 24억 6400만달러로 전년 대비 0.6% 증가했다.1인당 신용카드 해외 이용액이 562달러로 전년 대비 2.9% 늘었기 때문이다. 김태균기자
  • [레저+α]

    ●에버랜드 국내 최대의 멀티미디어 쇼인 ‘올림푸스 환타지’가 매일 밤 9시에 열린다.20m높이에서 지름 4m 크기로 터지는 불공,수면 위에 설치된 12개의 불구멍을 통해 12m높이로 솟아오르는 불기둥,물위에서 60m에 이르는 띠를 형성해 불이 타오르는 어뢰형 불꽃 등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환타지’하다.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최고의 신 제우스와 저승 신 하데스와의 대결 장면이 압권이다. 에버랜드는 이 쇼를 위해 100억원을 투자해 16m에 달하는 돌기둥,330W의 대용량 레이저,72kW의 서라운드 입체 음향 등을 설치했다.(www.everland.com),(031)310-5000. ●롯데월드 세계 최초로 삼국지 유물전시회인 ‘삼국지 체험전’을 6월24일까지 민속박물관에서 한다.2460개의 옥조각을 엮어 만든 옥의,조조의 딸이 사용했던 도장인 조헌인신,청나라때 제작된 관우의 동상 등 국보급 보물 230여점을 포함해서 삼국지 진품 유물 총 350여점을 전시한다.유물 감정가액이 약 500억원 규모에 이른다. 82근(49㎏)이나 하는 관우의 창인 ‘청룡언월도’를 비롯하여,4m20㎝의 길이를 자랑하는 장비의 ‘장팔사모’,쇠를 두부 베듯이 베었다는 조자룡의 ‘청공검’등 삼국지 영웅들의 창과 무기가 실제 형태로 복원돼 약 60여점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또한 삼국지 영웅들로 분장한 영웅 장수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www.lotteworld.com,(02)411-2000. ●중앙M&B 7만 5000분의 1 축척의 ‘초정밀 전국지도’를 내놓았다.주요도로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각도의 명소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등 여행자의 편의에 중점을 두었다.또 최근 이용이 급증하고 있는 위성항법장치(GPS) 사용을 위해 세계 측지계인 WGS-84 좌표 수치를 적색으로 표기하여,GPS가 측정한 위치를 지도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2만 5000원.(02)2000-6214. ●한국난재배자협회 동·서양의 다양한 난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2004 전국 난전시회’를 26일부터 4월5일까지 서울 양재동 꽃시장 옆 aT센터에서 연다.춘란을 비롯한 한란,풍란,자란 등 한국의 자생란 100여종 500점과 송매,용자 등 동양란 300여점,호접란,심비디움 등 서양란 3000여점을 선보인다.난 키우기 강좌 및 우수 난 콘테스트,디지털 사진 콘테스트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된다.관람료 어른 7000원,청소년 4000원.www.lan.or.kr,(02)575-1248. ●서울프라자호텔 그랜드 웨딩 플라자는 오픈 5주년을 기념하여 4월20일까지 5월 결혼 예정인 신부들을 대상으로 ‘모녀간의 정’이란 주제로 사연을 공모한다.응모한 사람들 중 3명을 뽑아 조식이 포함된 딜럭스룸 1박과 프렌치 레스토랑 토파즈 저녁 식사권,정성껏 준비한 과일과 와인을 제공한다.보낼 곳은 이메일 wedding@hanwha.co.kr이나 서울시 중구 태평로 2가 23번지 서울프라자호텔 웨딩사업부.(02)310-7720.˝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9) 베이징에서

    ‘중국 3무(無)’라는 말이 있다.중국 땅을 다 밟아본 사람,중국 음식을 다 먹어본 사람,그리고 중국 방언을 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 세계여행 루트를 짤 때는 이국적인 정서가 강한 인도나 파키스탄,터키 같은 나라에 비중을 두고,왠지 우리와 비슷할 것 같은 중국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하지만 막상 중국에 와보니 몇달씩 중국여행만 고집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듯했다. 거대한 국토를 구성하는 중국의 각 지방은 서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섬마을부터 아직 개발되지 않은 원시적 자연까지,그리고 세계적 대도시로 부각되고 있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발전된 도시부터 아직 최빈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한 시골마을까지 사람들 사는 모습이며 문화,언어,음식이 모두 하나의 나라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각각 다르고 흥미롭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데,중국안에 세계가 다 있다는데,더 늦기 전에 우리도 중국을 좀더 배우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행을 접고 베이징에서 1년간 공부할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하지만 역시 우리의 현재 본분은 여행.여행에 충실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직접 보고 배우기로 했다. 중국에서의 또 다른 황홀한 경험은 바로 정통 중국요리의 세계였다.여행일정상 중국의 많은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는 없었지만 베이징에 있는 동안 최소한 중국의 각 지역별 전통요리는 모두 먹어볼 수 있었다. 평생 먹어볼까 말까 한 화려하고 푸짐한 중국 정통요리의 세계에 한동안 빠져 우리는 동남아를 여행하는 동안 빠진 살들을 모두 도로 찾게 되었다. 한국의 명동과 같은 왕푸징이라는 번화가에 가면 중국인에게는 대중적이지만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길거리 음식을 많이 볼 수 있다.족히 몇십개는 돼보이는 포장마차가 이어져 있는 음식거리가 있는데 대부분 꼬치구이를 전문으로 판다.무난한 걸로 하나 먹어보려고 종류를 보니 해마,뱀껍질,자라,메뚜기,누에,번데기 등을 꼬치에 꽂아 기름에 튀겨 주는데 번데기나 누에는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의 5배 정도는 커서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됐다.한국인들이 많이 오는지 우리를 보더니 한국말로 “해마? 뱀?” 하며 자꾸만 권한다. 중국인이 즐겨먹는 간식 중에 영양 만점인 음식이 바로 부화직전의 달걀이다.알 안에서 이미 병아리의 모습이 갖추어진 상태의 달걀을 쪄서,또는 볶아서 먹는데 영양가가 아주 많다고 한다.몸의 허약함을 빙자한 남편이 자연스럽게 하나를 집어든다.“그냥 삶은 달걀이라 생각하고 먹으면 돼.너도 먹어 봐.몸에 좋다 잖아.” 역시 한국남자들 몸 생각은 알아줘야 한다.시각적으로 다소 부담이 되는 음식이긴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그리고 몸 생각하는 외국 여행자들에게는 훌륭한 간식거리이다. 이렇게 영양가 많고 고단백질 음식,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름기 많은 음식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중국사람들이 살이 안 찌고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차를 많이 마시는 식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계절에 관계없이 모든 식당에서는 찬물 대신 뜨거운 차가 나오는데,차를 계속 마시는 것은 기름기를 중화시켜 장을 깨끗하게 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몸이 차가워져 큰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보온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도 한여름에 이 방법을 한번 써 볼까 생각중이다. ●만리장성에 웬 눈썰매? 중국은 광활한 국토를 가진 나라답게 공원이든,문화유적지든 일단 걸었다 하면 좌우를 살피지 않고 직선코스로 바로 걸어도 최소한 두시간 이상 걸린다.9900칸의 방이 있다는 자금성도 꼼꼼히 돌아보려면 하루 종일 걸려도 다 보기가 어려울 만큼 압도적인 규모이다.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하는 만리장성은 또 어떤가.총 길이가 6000㎞라고 하니 시속 100㎞의 속도로 자가용을 타고 달려도 꼬박 60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그것도 평야가 아닌 산악지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성벽이니 만리장성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중 특히 군대 다녀온 한국남자들은 “이 높은 곳에 어떻게 이런 것을 이렇게 길게…”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솔직히 군대를 안 다녀온 때문인지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바로 만리장성의 중턱까지 사람을 태우고 오르내리는 일종의 기구이다. 우리는 케이블카나 최소한 리프트 정도를 상상했는데 특이하게도 눈썰매장에 흔한 썰매 같이 생긴 기계로,오를 때는 전동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내려올 때는 기다란 양철판으로 미끄럼틀처럼 만들어 놓은 통로에 혼자 앉아 손잡이로 브레이크를 조절하며 내려온다.조금만 속도가 붙어도 옆으로 휭 날아갈 것만 같다.밑에서 보면 봅슬레이라고 하는 스포츠 종목을 연상케 한다.역시 중국답다는 생각을 했다. 큰 돈 들이지 않고,나름대로 제 기능을 하니 ‘폼이 나지 않는’ 것 빼고는 그럴듯하다.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유적과 그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후손들이 개발한 편의시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다. ˝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8) 중국 베이징

    한달 보름간 무더운 동남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아직 혹독한 추위가 남아 있는 중국으로 날아왔다.방콕에서 티베트로 바로 갈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한창 발전의 중심에 있는 베이징(北京)에는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계획을 수정했다.하지만 막상와서 보니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고 교통수단이며,숙소며,외국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하다. 중국에는 요즘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어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아직도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헬로나 생큐,심지어 OK도 안 통한다.국제 언어인 보디 랭기지도 별 효력이 없다.길을 물으면 차렷 자세로 손가락이나 고개로 방향도 가리키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중국어로 얘기한다.잘 모르겠다고 영어와 몸짓으로 다시 물어봐도 또다시 중국어만 돌아올 뿐이다.중국말 멈추는 데에만 30초가량 걸릴 정도니 애초 영어로 조금이라도 의사소통을 할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국에서 중국어 말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 배운 한문실력을 총동원해서 나누는 필담뿐이다.동남아에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남편이 중국에서만큼은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화를 나눈다.옛날에 한자깨나 써 보았는지 자기 없으면 길이나 찾을 수 있겠느냐며 큰소리다. 중국에는 간판이나 유명 외국상품 이름에서도 외래어나 영어 알파벳을 찾아보기 어렵다.모든 상표나 단어가 다 한자화되어 뜻글자로 옮겨지고 그 글자를 중국말로 발음하기 때문에 KFC나 베스킨라빈스 같은 외국 브랜드도 중국에서는 그렇게 발음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KFC는 ‘컨더지’라고 하고 간판에는 켄터키 할아버지 옆에 ‘肯德基’라고 쓰여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다.세계의 대도시는 대부분 강을 끼고 있는데 베이징에는 강이 없다.그만큼 옛날부터 물이 부족하고 귀한 곳이다.그런 연유에서인지 정말로 잘 안씻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말쑥한 양복 겉옷을 걸친 사람도 ‘머리를 적어도 며칠은 안 감았다.’는 표시가 확 날 정도이다. 내가 묵는 숙소 지하에는 머리안마를 해주는 곳이 있다.의자에 앉은 채로 샴푸와 물을 조금씩 묻혀가며 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머리를 기가 막히게 감겨주는데,이 역시 물이 귀한 환경에서 생겨난 기술인 듯싶다. 안마 얘기가 나와서 얘기지만,베이징에 온 뒤로 거의 하루 걸러 안마를 받았다.안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안마가 거의 생활화되어 있다.종류도 다양해서 전신마사지,얼굴마사지,발마사지,등,허리,손,귀,목 등으로 다양하고 값도 저렴하다.한 동네 안에 종류별로 여러 개의 가게가 있는데 매일 사람들이 기다릴 정도로 늘 붐빈다.이곳 마사지는 혈을 짚어주는 마사지라서 처음 받고 나면 온몸이 조금 뻐근하지만 한번 받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생활속에 깊이 들어있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공원문화이다. 아침저녁으로 크고 작은 공원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사교댄스,에어로빅,태극권을 각각의 음악에 맞춰 연마하고 따라하는데,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이 수십명씩 줄을 맞추어 태극권을 연마하는 모습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맨손으로 하는 종류와 장검을 들고 하는 것,그리고 부채를 들고 하는 종류가 있는데 가끔 멋있는 무술 동작을 보면 여기가 소림사인지 동네 공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중국에서는 스님들이 비질하는 것만 보아도 무술하는 것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앞으로 15년 안에 세계 3대 강국이 된다고 하는 중국,그 중에서도 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수도 베이징.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이 나라의 10년후,20년 후가 궁금해진다. ■ 조선족 신여성 린원위씨 주중 한국기업 ‘IT-SANHA’에서 경리(우리나라의 과장급)로 일하고 있는 조선족 신여성 린원위(林文玉·38)씨를 만난 날은 마침 ‘부녀절’(3월8일)이었다.중국에는 직업을 갖고 일하는 여성이 워낙 많아 사회적으로 이날을 크게 기념한다.직장여성들이 회사에서는 사장이나 남자 동료들에게 선물도 받고 집에서도 이날만큼은 특별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다는데,육아는 어떻게 하나요. -아기를 보통 생후 4개월 때부터 학교나 일하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에 맡기고,집안일도 남편과 나눠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여성의 95% 이상이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 시스템이 여자들에게 편리하게 되어 있죠.학교 교육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엄마 아빠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해요.점심도 급식으로 대부분 학교에서 해결해주고,기숙사 시설도 초등학교부터 잘 갖추어져 있어서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중국사람들은 자녀를 한 명만 갖는데. -현재 자녀가 두 명 이상이면 벌금을 무는 산아제한 정책이 있는데 다음달부터는 베이징에서 ‘한자녀 갖기 정책’이 완화된다고 해요.조선족처럼 소수민족은 두명까지 허용되었는데 그것도 결혼신고하면 한 명 낳을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고,첫째 아이가 만 4살이 된 후에 둘째를 가질 수 있는 허가증을 다시 받아야 하지요.그런데 요즘 도시에서는 워낙 자녀를 한 명만 두다 보니 아이들이 귀하게 자라서 버릇이 없는 것 같아요. 베이징에서 소수민족으로 직장생활하는 것이 어떤지.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중국내에서 사회생활하는데 차별받거나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요.하지만 중국회사보다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보수도 더 많고,전공과 언어면에서 능력을 두배로 발휘할 수 있어서 선호자지요.˝
  • 네번째 소설집 ‘누가‘ 펴낸 윤대녕

    지난해 4월 창작에 전념하러 제주로 내려간 윤대녕이 네 번째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를 들고 서울에 들렀다. 5년 만에 낸 작품집은 지난해 쓴 4편 등 6편의 작품을 모은 것인데 “중·단편을 정기적으로 쓰는 게 문학적 긴장과 감각을 유지하는 데 좋았다.”고 말했다.제주 생활에서 나온 여유와 성찰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로 내려간 것은)문학적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였는데 냉정해지고 객관적이 되면서 집중력과 문학적 내구력이 늘고 글에 대한 허영심도 가셨다.”고 스스로 진단했다.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기 속으로 더 들어간 덕분에 작가의 창작 열기는 더 그윽해지고 치열해진 듯 “매년 중·단편 3∼4편을 쓰고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주·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생명의 고독감을 다룰,쓸 만한 장편도 쓸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작가는 90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달의 지평선’‘미란’‘눈의 여행자’ 등 장편과 ‘은어 낚시 통신’‘남쪽 계단을 보라’ 등 중·단편을 가로질러 왔는데 그 차이를 물었더니 “단편이 문학하는 느낌을 더 주지만 힘은 더 든다.200∼300장 분량이 제일 편하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집에는 ‘걷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흑백 텔레비전 꺼짐’의 일도와 정원은 서울 도심의 새천년 맞이행사장 주위를,‘찔레꽃 기념관’의 주인공 소설가와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여자 방송작가는 남산의 찔레꽃을 보러 무작정 비 오는 심야의 도심을 걸어간다.‘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의 남자는 아예 무작정 걷는다.작가는 그 ‘걸음 속 대화와 묘사’로 인물들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비춘다.그들은 대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현실에서 표류하는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하원(‘흑백 텔레비전‘),출생과 관련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독신녀나 현실에서 탈출구가 봉쇄된 탈영병(표제작),문학적 가치가 무시되는 현실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찔레꽃 기념관’) 등의 모습으로 투영된다.해설을 쓴 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정체성의 위기를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면서,그 현상과 원인을 정치적·문화적·사회적·존재론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한다.”라고 분석한다. 이런 작품세계는 ‘무더운 밤의 사라짐’‘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에서도 잘 나타난다.‘올빼미와의 대화’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듯한 사나이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아를 찾으려고 모색한다.이에 대해 작가는 “유독 걷는 것을 좋아한다.”며 “삶의 경계를 걸으면서 자아이면서 타자,그림자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번 작품들은 이전에 보이던 과감한 생략이 많이 줄어 눈길을 끈다.‘시적(詩的)’이라는 평까지 듣던 그의 세계에 설명이 늘어났다.작가는 그에 대해 “아마 불교적 취향 때문에 가능하면 설명을 줄이고 공간과 여백을 키워서 그런 평을 들었는데 내심 달갑지 않았다.”면서 “그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차츰 달라진다.생활 얘기도 늘리고 서사구조도 취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이를 관통하는 달라진 찰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늘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면서 나이에 걸맞은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의욕을 비친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
  • LG아트센터 공연앞둔 연출가 양정웅·이기도

    “강남으로 간다고 크게 달라질 게 있나요? 그저 대학로 나들이가 쉽지 않은 강남 관객에게 ‘우리 창작극 수준도 이 정도는 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LG아트센터, 젊은 연출가에 이례적 개방 LG아트센터가 한국 연극을 이끌 차세대 연출가로 점찍은 연출가 양정웅(36)과 이기도(35).‘오늘의 젊은 연극인 시리즈’로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강남 최고급 공연장으로의 입성을 앞둔 이들에게선 초조함이나 걱정보다는 기분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해외 유수 공연단체의 작품을 주로 소개해온 LG아트센터가 국내 연극인,그것도 30대 젊은 연출가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퍽 드문 일이다.2000년 개관 이후 LG아트센터가 공연장만 빌려주는 대관 작품이 아니라 직접 기획까지 참여한 연극은 연출가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와 ‘웰컴투 동막골’ 등 2편에 불과하다.그만큼 LG아트센터로서도 이들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최근 대학로서 가장 두드러졌던 2명 극단 여행자를 이끄는 양정웅과 극단 인혁 대표인 이기도는 최근 2∼3년 사이에 대학로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연출가들이다.양정웅은 스페인을 본거지로 한 다국적 극단 ‘라센칸’의 단원으로 일본,인도 등지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적 연극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배우들의 움직임과 무대장치,의상,음악,분장 등 모든 연극적 요소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이미지 연극’으로 불리며,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지난 연말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에서 ‘연-카르마’로 대상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 양정웅이 태생적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성을 추구한다면,이기도는 한국 전통 연희양식의 특수성에 좀 더 깊이 천착한다.독창적인 텍스트 해석과 과감하고 세련된 무대연출로 주목받는 그는 2001년 ‘흉가에 볕들어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받았고,2002년에는 ‘에비대왕’으로 서울공연예술제 작품상을 수상했다. ●‘환’ 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각색 이들이 LG아트센터에 올리는 작품은 이미 대학로에서 몇차례 연장 공연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검증받은 대표작들.18일부터 26일까지 선보일 극단 여행자의 ‘환’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각색한 것이다.하지만 지금까지 공연된 어떤 ‘맥베스’보다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넘친다.장이모의 영화 ‘영웅’을 연상시키는 장군들의 결투 장면이나 여장 남자로 묘사된 던컨 왕 등의 이미지는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묘한 충돌과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가신신앙 소재 ‘흉가에 볕들어라’ 극단 인혁의 ‘흉가에 볕들어라’(4월3∼11일)는 가신신앙이라는 우리 전통의 소재를 바탕으로 질퍽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우러지는 토속성 강한 연극이다.대극장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배우들이 공중을 날고,입체 무대가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보다 스펙터클하게 형상화한 것은 이전 소극장 공연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점이다.퓨전 국악그룹 ‘그림’이 직접 라이브 연주를 한다. ●“여건 좋은 곳에서 욕심껏 제작” 젊은 기운은 넘쳤으나 상대적으로 관록은 부족했던 공연에 중견배우 정규수·최일화(환),박용수·한명구(흉가에 볕들어라) 등이 참여하면서 좀 더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게 된 것도 연출가로선 매우 반가운 일.양정웅은 “대학로에 비해 LG아트센터의 제작여건이 좋다보니 욕심껏 작품을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한살 차이로 같은 또래.연출력이 비교되는 데 대한 부담은 없을까.“두 작품의 형식이 아주 달라서 비교가 안될 거예요.그리고 너무 바빠서 부담 가질 겨를도 없어요.(웃음)”(02)2005-0114. 이순녀기자 coral@˝
  • [탄핵정국] ‘뿌리 깊은 한국’…3일만에 평상회복

    혼란은 하루로 족했다.금요일인 지난 12일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온나라가 격동에 빠져드는 듯했지만 불과 사나흘도 안돼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다.특히 탄핵소추안 가결 당일 가장 크게 요동쳤던 주식시장 등 경제분야의 회복세가 두드러진다.우리사회가 어지간한 충격파에는 끄떡없는 강한 재생·복원능력을 갖고 있음이 어려운 때를 맞아 새삼 확인됐다.만성이 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염증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이제 국민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주식시장 대통령 탄핵안 통과로 가장 우려됐던 부문 중 하나가 금융부문이었지만 15일 시장은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났다. 12일 장중 한때 48포인트나 폭락했던 주가는 탄핵 이틀째(거래일 기준)인 이날 3.46포인트 상승으로 돌아섰다.초미의 관심사였던 외국인들은 6억원 순매수로 출발했다가 ‘팔자’로 전환,467억원 순매도를 기록하긴 했지만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채권가격은 급등락없이 차분한 흐름을 이어갔다. 시장전문가들은 주가가 앞으로 탄핵정국이 아닌 국내외의 경제적 변수에 따라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씨티·JP모건·리먼브러더스 등 외국 주요투자자들은 이번 탄핵사태가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주식·채권시장이 조만간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경제부나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의 안정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도 평가했다.씨티글로벌마켓증권 유동원 이사는 “거래소에서 외국인의 움직임은 안정적인 상태”라고 평가하고 “일단 탄핵으로 인한 시장의 불안심리는 어느 정도 잠재워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외환시장 지난 12일 달러당 12원이나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날 5.5원이 떨어졌다.해외에서의 환율 움직임도 안정적이었다.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해외투자자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외국환평형기금 가산금리도 하락세를 보였다.이날 홍콩 채권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외평채 가산금리는 지난 12일 0.75%포인트보다 0.02%포인트가 하락한 0.73%포인트로 출발한 데 이어 오후 들어 0.71%포인트로 다시 0.02%포인트가 떨어졌다.만기 5년 외평채는 12일의 0.60%포인트에서 0.02%포인트 하락했다.이영균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앞으로 런던과 뉴욕시장에서의 외평채 가산금리,주식예탁증서(DR) 가격변동 등을 주목할 필요는 있으나 급변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대외 신인도 유지를 위해 외국의 감독당국과 해외 투자자 등에 탄핵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한국 정부와 금융감독 당국의 노력 및 국내 금융시장 상황을 설명하는 e메일을 발송했다. 금감원은 이어 16일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해외 차입선 대표자회의를 통해 국내 금융회사와 기업의 외자차입 여건이 악화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등 국내에 있는 국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들과 오찬간담회를 열어 국내 경제 및 금융 상황과 시장 안정화 방침을 설명할 예정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수출·유통 수출은 탄핵 가결 이전보다 더 늘었다.지난 13∼15일 하루평균 수출액은 7억 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5억 3000만달러) 실적을 앞질렀다.또 당초 차질이 우려됐던 외국인투자 유치정책은 최근 120개 연내 유치목표 기업을 긴급 점검한 결과,총 80억달러 규모를 유치하는 데 차질이 없을 것으로 파악됐다.유통업계는 술 소비량이 늘어난 것 정도 외에는 탄핵의 충격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소비심리가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매출액이 소폭 늘어났다.백화점·할인점의 지난주말(13∼14일)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0∼40% 증가했다. 다만 신세계 이마트·롯데마트 등 주요 할인점과 편의점에서는 주류 매출이 급증,눈길을 끌었다.이마트의 경우 소주의 매출이 40% 증가하는 등 주류 매출이 50% 이상 늘었다.LG마트는 지난 12일 캔맥주 판매량이 전일보다 51.7% 늘었으며 소주도 지난주보다 매출이 12.3% 늘었다.편의점 LG25의 수도권 점포(680개)에서는 지난 12일 맥주와 소주 판매량이 지난주 동기 대비 각각 14%,17% 증가했다. 김규환 김경두기자 khkim@ ●레저 지난 12일 이후 경마,경륜,경정 등 레저스포츠 인구는 오히려 조금 늘거나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마사회에 따르면 매주 토·일요일에 시행되는 경마는 과천경마장과 27개 장외발매소를 합쳐 13일 14만 1935명,14일 16만 3087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탄핵소추안 가결 직전 주말인 6일 14만 5850명,7일 16만 3852명과 거의 같다.과천 서울경마장은 오히려 입장객이 1000∼2000명 늘었다. 매주 금∼일요일 시행되는 경륜의 경우 잠실경륜장 및 전국 14개 장외발매소 입장객이 지난 5∼7일 11만 1358명에서 12∼14일 11만 3863명으로 증가했다. 여행업계에서는 아직 특별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제주전문 여행사인 대장정투어 손태원 사장은 “비상근무체계가 강화되면서 공무원들만 간간이 예약을 취소할 뿐 전체적인 여행자수는 예년과 같다.”고 했다. 영화 관객 수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이상준 CGV홍보팀장은 “일부 영화의 관객수가 줄어들었지만 이는 새로 개봉한 영화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탄핵사태와 촛불시위에도 전체 관객수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병규기자 cbk91065@ ●치안 지난 12일 탄핵안이 통과한 직후 첫 주말인 13,14일 서울을 빠져나간 차량은 각각 25만 8100여대와 31만 6000여대로 평소(토요일 26만여대,일요일 30만여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또 서울시내와 인근의 유원지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인파가 몰렸다.에버랜드 홍보실 관계자는 “토요일인 13일 2만 7000여명의 입장객이 찾았다.”면서 “이는 2만 6000여명이 찾은 지난주나 예년 평균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롯데월드 관계자도 “예년과 같은 수준”이라고 했다.서울 동작구 보라매 공원에서 3년째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종갑(52)씨는 “지난주말에도 평소와 분위기가 다름없었다.”면서 “공원에서 운동과 나들이하는 시민들이 변함없이 매점을 이용해 매상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탄핵 규탄집회,야당에 대한 협박전화 등 사회 불안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서도 사건·사고는 오히려 줄어드는 등 평온한 모습이다.국회와 여의도 일대를 관할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여의도 일대 시위가 도심쪽으로 옮겨간 이후 국회 주변이 오히려 조용해 졌다.”고 말했다.서울 종로경찰서 백승언 형사계장은 “지난 13일 접수된 사건은 10여건으로 여느 주말과 다름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공직 “다소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지만,흔들리지는 않는다.” 탄핵 후폭풍으로 공무원 사회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휴일인 14일에도 상당수 공무원들이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챙긴 것이 이를 방증한다.미묘한 시기인 만큼 공직사회에서는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일부는 자발적으로 골프부킹도 취소했다.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크게 동요하는 수준은 아니다.당장 화급을 다투는 긴급한 국가현안이 없는 데다,거의 매주 개최됐던 국정현안조정회의를 통해 국무총리가 주요 정책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기 때문에 국정운영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과 무관치 않다.사회부처의 한 국장은 “여당이든,야당이든 어느 쪽에서 이번 사태가 비롯됐는지 모르겠지만,공무원으로서는 일하기가 정말 힘들어졌다.”면서 “하루빨리 정상을 회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대통령업무보고를 마친 노동부는 당초 계획대로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서울지방노동청을 시작으로 지방노동관서 순시를 시작했다.올해 업무계획을 설명하고,탄핵정국에 흔들리지 말고,업무를 수행해달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성수기자 sskim@ ˝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7) 라오스 북부 방비엥

    라오스 북부의 작은 마을 방비엥은 여행자들의 당초 여행계획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곳이다.하루를 계획하고 온 사람은 이틀을,이틀을 생각했던 이는 나흘을 머물다 간다.특히 서양 배낭여행자들은 한달 이상 장기체류하는 경우도 많다.전부 도는 데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리는 이 작은 마을의 무엇에 사람들은 그렇게 끌려서 떠나지 못하는 걸까. 방비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쏭강에서 튜브 타기,카약 투어에 참여하기,고산족 마을 방문하기,그리고 마을 구경하기 정도.이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노천시장을 구경하며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일과중 하나이다. 시장 뒤쪽으로 늘어서 있는 집들은 대부분 나무판자나 대나무로 지어져있다.따로 기술자나 건축업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각자 알아서 짓는다.집 짓는 날은 온가족이 나와서 한가지씩 거든다고 한다.각자 지은 농산물을 가져다 사고파는 이곳 장터는 꼭 우리나라 옛날 시골 모습같다.그런데 이색적인 것은 여기서 파는 야생동물들이 가지각색이라는 점.야생쥐부터 야생너구리,박쥐까지 참 다양하다.요리법은 잘 모르겠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나름대로 맛있는 별식이라니,으∼(별식 좋아하는 한국 아저씨들이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방비엥에 있는 동안 날마다 이 신기한 시장구경을 하면서 우리도 다양한 과일을 흥정해서 사먹곤 했다.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외지인들에게 바가지를 잘 못 씌운다.아주 조금씩 가격을 더 불러놓고는 ‘500낍(60원 정도) 더 불렀는데,1000낍 더 불렀는데‘하는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들통날까 초조해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비싸다고 돌아설 듯 어깨만 살짝 틀어도 가격은 곧 내려가고,덤 없냐고 하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몇개를 더 얹어준다.(라오스에서도 똑같이 ‘덤’이라고 한다.) 초저녁에 개울가로 내려가면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구이 파티에 초대하고,마을을 산책하다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바로 이런 순수한 사람들 때문에 여행자들은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곳 역시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한 평화롭고 조용하던 작은 마을이 이제는 거리마다 여행자들이 넘쳐나고,각종 투어 프로그램에 게스트하우스며 외국인 입맛에 맞는 수십개의 레스토랑이 생겨나 마을의 모습도 신흥 관광지처럼 변해가고 있다. 태국여행을 할 때 북부 산악지대 치앙마이에서 고산족 방문이 포함된 트레킹에 참여한 적이 있다.그들만의 세계에서 오롯이 살아가고 있는 고산족을 만나길 기대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어린이들은 피카추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전통의상 차림의 주민들도 관광객들을 위해 형식적으로 갖춰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함께 트레킹을 했던 스웨덴 친구는 “순수한 지역민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 상업화한 나머지 고산족도 패키지 상품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아쉬워했다.요즘 치앙마이 트레킹 투어를 주선하는 에이전트들은 앞다투어 ‘새로 개발한,아직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은 고산족 방문’이라는 문구를 프로그램 소개에 일률적으로 넣고 있다.라오스의 방비엥도,태국의 치앙마이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코스가 됐지만 그 사람들만의 평온한 행복,오롯한 평화가 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게스트하우스 운영 김혜자씨 동남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된 ‘김치 아줌마’ 김혜자(63)씨.예순이 넘은 나이에 라오스를 처음 찾았던 그녀는 라오스가 좋아서,라오스의 순수한 사람들이 좋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라오스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지난 99년 건강이 악화돼 38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 동료교사 넷과 함께 딸에게 가이드를 부탁해 한달간 인도차이나로 자유여행을 떠났어요.태국과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나이도 잊은 채 아주 즐겁게 여행했지요.특히 라오스 북부여행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은 내 유년시절과 똑같아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인터넷 배낭여행 동호회에서 유명하던데. -처음엔 조금씩 메모를 한 것을 딸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곤 했는데,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읽고 격려해주어서 적극적으로 연재를 하게 되었지요. ‘김치 아줌마’라는 애칭은 어떻게 생겼나요. -여행하면서 제일 힘든 게 음식이잖아요.더욱이 한국사람들은 김치를 먹어야 힘이 나지요.그래서 처음엔 우리가 묵었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부터 김치를 담가주기 시작했죠.그러다 보니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나봐요.난 내 이름보다 그 별명이 더 좋아요.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정감도 있고. 라오스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시죠. -오랫동안 초등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여행하면서도 어린이들 교육이나 학교시설에 관심이 많았어요.그래서 방문하는 마을마다 학교는 꼭 갔었죠.그런데 학교시설이 정말 엉망이었어요.학용품도 거의 없고.그래서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학용품을 수집해 전해줬죠.지금은 친한 교장선생님 한분이 자비로 라오스 시골에 학교를 하나 지어주려고 하는데 쉽지만은 않네요.˝
  • 태양의 섬 사이판 & 로타

    서태평양의 미국령 두 섬 사이판과 로타의 최대 매력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때묻지 않은 트로피컬 휴양지라는 점이다.그래서 대단한 볼거리나 다양한 풍물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하기 일쑤다.그러나 바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느림의 미덕을 온몸으로 체험하기엔 더이상 좋은 곳을 찾기도 어렵다. 사이판엔 올 들어 한국 여행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해외여행 자유화 초기 한때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다가,‘휴양 여행’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외면받던 것이,웰빙 바람을 타고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때늦은 폭설,그리고 기나긴 추위로 지친 몸을 따뜻한 남국의 섬에서 녹여봄은 어떨지.사이판과 로타섬을 다녀왔다. ●사이판 사이판은 서태평양 한복판에 위치한 북마리아나 제도의 주도이다.남북으로 21㎞,동서로는 8.8㎞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으로,섬에서 가장 높은 타포차우산에 오르면 사방의 해안이 손금보듯 명확하게 보일 정도.사이판에선 최근 산호섬인 마나가하섬이 가장 인기가 있다.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불과 2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미니섬.사이판의 마이크로비치 끝 선착장에서 배를 타니 20여분 만에 섬에 닿는다. 바닷물은 꼭 코발트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가슴 정도의 얕은 물속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떼지어 헤엄쳐 다닌다.겁없는 놈들은 다리를 톡톡 쪼아대기도 하는데,간혹 팔뚝 굵기의 물고기가 쪼아대면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고기들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스노클링을 이용해야 한다.물안경과 호스를 연결한 스노클을 쓰고,물갈퀴를 신으면 준비 끝이다.대여료는 10달러 정도.좀 더 깊은 곳에 들어가려면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된다.요금은 어른 100달러,아이 80달러.이밖에 스피드보트에 줄을 매고 낙하산을 즐기는 패러세일링,제트스키 등도 즐길 수 있다.꼭 마나가하섬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사이판엔 때묻지 않는 비치가 즐비하다. 특히 사이판의 유흥가인 가라판에서 무초곶까지 눈부신 백사가 깔려 있다.하루에도 몇번씩 바다 색깔이 바뀌며,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이곳에선 특히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배를 타고 나가 50m 정도의 깊이까지 낚싯줄을 내려 3∼20㎏의 씨알 굵은 물고기들을 낚아올린다.요금 60달러. 사이판에 처음 왔다면 섬을 한 바퀴 돌며 사이판의 다양한 모습을 구경해보자.먼저 섬 중앙의 해발 473m의 타포우차산에 올랐다.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곳.‘사이판이 이 정도로 작을 줄이야.’란 느낌이 들 정도로 섬 선체가 한눈에 들어온다.만세절벽,자살절벽도 가볼 만하다.모두 일본인들의 한이 어린 곳이다.만세절벽은 2차대전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7월 일본군이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던 곳.하지만 공격에 실패한 일본인 수천명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절벽 아래 푸른 바다속으로 투신 자살한 곳이다.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짙은 코발트 빛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풍광이 장관이다. 해발 249m의 마피산 산정의 서쪽 절벽인 자살절벽은 1944년 미국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감행하자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뛰어내려 자살한 곳이다. 사이판 북동쪽의 새섬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섬에는 들어갈 수 없고 건너편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는데,석회암 섬과 연둣빛 바다,섬을 뒤덮은 새가 어우러져 환상적 그림을 그려낸다.이밖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최후 사령부가 있던 ‘라스트 커맨드 포스트’,일본 통치 시대부터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유흥가 가라판도 들러볼 만하다. ●로타섬 로타는 사이판과 괌 사이에 있는 면적 125㎢의 작은 섬이다.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35분 거리에 있으며,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외부 차만 보면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할 정도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있다. 로타섬에선 북부해안의 스위밍홀(Swimming Hole)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로타 북부 해안의 산호초 안쪽의 천연 수영장이다.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갯바위와 산호초가 만든 지름 20여m의 공간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아늑한 천연풀을 만들어준다.물에 뛰어들면 ‘언제 다시 이런 곳에서 헤엄을 쳐보나.’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떠나기가 싫은 곳이다. 해수욕이나 해양레포츠를 즐기기엔 섬 남쪽의 테테토 비치가 좋다.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하다.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가면 손바닥 크기에서 아이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반긴다. 로타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섬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조류보호구역이다.수백m 높이의 벼랑 아래 펼쳐진 숲에 붉은발가마우지,하얀꼬리열대새 등 수십종의 새들이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섬 서쪽엔 유일한 마을인 송송마을이 자리하고 있다.마을뒤 송송전망대에 서면 마을과 함께 두겹의 케이크처럼 생겨 ‘웨딩케이크산’으로 불리는 타이핑고트산,그 뒤로 산호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이판,로타(북마리아나 제도) 글 임창용기자 sdragon@ ●항공편 및 교통 매일 오후 8시20분 아시아나항공(1588-8000)이 인천발 사이판행 비행기를 띄운다.4시간 소요.사이판에서 로타까지는 얼라이언스항공이 운영하는 30인승 세스나기를 이용해야 한다.35분 소요. 사이판에선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싸면서 편리하다.주요 리조트를 연결하는 PDI셔틀버스를 타면 사이판의 중심 도로인 비치로드를 중심으로 주요 호텔과 쇼핑센터 주변에 쉽게 갈 수 있다.번화가인 가라판에 가려면 시내 면세점인 DFS갤러리아가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대부분의 호텔을 경유한다.택시는 호텔 프런트에서 불러 이용할 수 있다.기본요금은 1달러50센트지만,2분마다 32센트가 가산돼 가까운 거리라도 금방 10달러를 넘어가기 쉽다.로타섬엔 택시가 없으므로 개인 여행자의 경우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야 한다. ●렌터카 렌터카는 한국 면허증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임차료는 차종에 따라 보험료 포함 50∼90달러.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지렌트카’(233-2000) 등 10여개의 렌터카 업체가 있다.섬이 크지 않으므로 스쿠터를 빌려서 타도 좋다.16세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면 면허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배우고 탈 수 있다.가라판 시내에서 한국인이 유일하게 ‘아시아스쿠터’(233-1114)를 운영한다.대여료는 1일 25달러. ●호텔 사이판의 리조트 호텔은 대부분 섬 북부나 가라판 등 해안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PIC사이판,하얏트리젠시사이판 등 특급 리조트 호텔은 숙박비가 170∼200달러,일급 호텔은 100∼180달러로 비싼 편이다.비용을 아끼려면 사이판월드리조트 등 60∼99달러인 중급호텔을 이용하면 된다.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면서 위치가 좋은 호텔도 있다.로타섬엔 ‘로타리조트 & 컨트리클럽’(532-1155)이 유명하다.필리핀 해를 바라보는 곳에 빌라형 객실과 골프장,아로마테라미 마사지 시설 등이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다.골프장이 특히 아름다워 골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기타 -시차: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환전:미국 달러를 사용하므로,공항에서 미리 바꾸는 게 편리하다. -전화:호텔 객실의 전화를 이용할 경우 1분당 2∼3달러.수신자 부담전화를 이용하면 호텔에 별도로 서비스요금을 내야 한다.사이판 월드 리조트의 경우 1회당 50센트.전화카드를 구입해 호텔내 공중전화를 이용해도 된다. 주요 현지 전화번호 아시아나항공(288-2625),북마리아나 제도 관광청(664-3200),경찰(234-0406),사이판국제공항(664-3500),전화번호 안내(411).˝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6) 베트남 라오스 돈뎃섬

    사실 베트남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을 때만해도 걱정이 태산이었다.‘말라리아 약을 안 먹어서 모기에 물리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그곳엔 사람보다 닭이 더 많다던데 여행자 조류독감 환자 1호가 될 수도 있겠다.’‘얼마전에 푸쿤이라는 곳에서 게릴라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던데.’….라오스에 대해 편협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마치 사지로 쫓겨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긴장에 또 긴장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그 모든 걱정들이 기우였구나 싶다.사람들은 이전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고,또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순수한 사람들의 미소를 따라 여행을 하고 있다.아쉬운 건 라오스의 별미인 닭칼국수와 닭죽을 못 먹어본다는 것 정도이다. 라오스는 영국과 거의 같은 크기의 땅덩이에 인구가 540만명밖에 안 된다.인구밀도가 우리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라오스에서 가장 큰 도시 비엔티엔도 수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고,차도 드물다.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아직 그다지 각박해지지 않은 것 같다.옛날 우리의 시골처럼 인심도 후하고 인상들도 선하다. 우리가 라오스에 들어올 때 예상했던 여행지는 북쪽의 방비엥이나 루앙프라방 같이 한국의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들이었지만,막상 라오스를 여행해 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남부 라오스를 가보기를 적극 추천한다.할 수 없다.계획수정,비엔티엔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남부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간 곳은 앙코르와트의 초기유적지가 있는 참파삭과,남쪽으로 더 내려가 4000여개의 섬이 있는 돈콩,돈뎃이라는 섬이다.참파삭에서는 유적지라도 볼 수 있었지만 돈콩,돈뎃 섬은 정말 할거리,볼거리가 없는 곳이다.특히 돈뎃 섬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만 지면 칠흑 같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구경할 게 없어도 지루하지 않고 할 일이 없어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장소가 또 이곳이다.아침에 해뜨면 자전거를 빌려 강변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돌아 방갈로로 돌아온다.메콩강물로 등목하고 육지에서 공수한 귀한 맥주 한 잔을 들고 강변으로 난 방갈로 발코니의 그물침대에 누워 강물을 보거나,음악을 듣는다. 하릴없이 오후를 보낸 뒤 해질 녘에 다시 산책하면서 주민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사진도 찍어준다.서울에서는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초조·불안하고,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안달에 사로잡혀 살았는데,이곳에서는 그런 모든 세상사가 참 덧없이 느껴진다.‘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이렇게 유유자적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이곳을 벗어나면 우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시간의 힘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겠지만,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 돈뎃에서 만난 할아버지 전기가 안 들어오는 이곳은 해가 지면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초저녁에는 그나마 울타리 입구에 발전기를 이용한 메추리알만한 전구를 하나 켜놓는데 옆집 할아버지는 날마다 삼십분 정도 전구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수천,수만마리의 날벌레들을 짚단에 불을 붙여 휘휘 저으며 잡는다.해도 해도 계속해서 날아드는 그 날벌레들을 하염없이 잡고 있는 할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날마다 손짓,발짓,영어,한국어,라오스어를 섞어가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할아버지는 별로 찾지 않던 섬에 낯선 이방인 여행객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 같다.별로 할 말이 없어도 자주 들러 이것저것 알려주고 돌아가시곤 했다.돈뎃에서의 3박 4일동안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난 배타고 키낙(돈뎃에서 가까운 육지로 아침장이 선다.)까지는 나가 본 적이 있지.(태국 그림엽서를 꺼내며)이건 여행객이 주고 간 건데 방콕에는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다는데 한국에도 높은 건물들이 있수?” 우리가 방콕보다 더 많다고 하자,손가락으로 6을 가리키며 “6층짜리 빌딩도 있다구?”하신다.한참 웃다가 “63층짜리 건물도 있어요.”하니까 거의 뒤로 넘어가신다.까올리(라오스어로 한국)에 대해 많이 아느냐고 여쭤 보니 “남한은 미국이랑 친하구,북한은 중국이랑 친하구,맞지? 한국사람들은 싸움 잘해.”하며 양 엄지손가락을 높게 세워든다.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총 쏘는 흉내를 내는 걸 보니 베트남전에 대해 아시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영어는 ‘same same’,‘No Problem’이다.무슨 말이건 대부분 이 두 마디로 해결하는데 재밌는 건 또 그런대로 다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뭘 부탁해도,혹은 뭐가 잘못될까 걱정해도,뭘 잃어버려 미안해해도 무조건 ‘노 프로블럼’이다.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이 주문한 대로 안 나오거나 서로 말이 잘 안 맞으면 나중엔 그냥 웃으며 무조건 ‘세임세임’이다. 프랑스랑 영국은 같은 서양사람이니 ‘세임세임’이고,방콕이랑 서울은 둘 다 높은 건물이 있으니 ‘세임세임’이다.생선 요리를 시켰는데 물고기가 없으면 돼지고기를 가리키며 ‘세임세임’이니까 그냥 그걸 먹으라고 한다.우리도 재미있어서 한동안 그 두마디로만 대화를 나누었다.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보다 더 긍정적이고 위트있는 말이 있을까 싶다.˝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5) 베트남 호치민에서 하롱베이까지

    베트남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다.거리나 사람들의 모습에 아직 전통적인 것이 많이 남아있고,낡고 허름하지만 예쁜 색으로 페인트칠한 집들은 멋진 배경을 만들어 준다.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모양도 예쁘고,외부도 화려한 색으로 칠을 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한 마을에 같은 모양,같은 색 집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이 정면만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이다.베트남 집은 앞면이 좁고,주로 앞뒤로 길게 지어져서 옆면이 너무나 잘 보이는데도 그냥 회색 콘크리트 색깔 그대로이다.너무 궁금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페인트 살 돈이 없거나 칠할 시간이 없거나 혹은 그저 베트남의 스타일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호치민에서 하롱베이까지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주택 형태를 비롯,가장 베트남적인 모습들을 많이 만난 곳은 하노이였다.특히 하노이의 항박 거리 주변의 아침 장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베트남은 아침이 무척 일찍 시작된다.학생들도 7시면 등교가 끝나고 아침 장은 그보다 훨씬 일찍 열린다.대다수 동남아 국가가 그렇듯 저녁 일찍 하루를 마감하고,다음날 아침에 해가 뜨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퍼’라고 하는 길거리 국숫집에서 아침을 해결한다.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고,그냥 길거리에 우리나라 목욕탕 의자랑 똑같이 생긴 의자들을 놓고 즉석에서 간단히 국수를 말아준다.우리도 어딜 가든 현지음식을 최대한 먹어보자는 여행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 아침,손님이 제일 많은 ‘퍼’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바닥에 닭,돼지 등 생고기를 널어놓고 잘라 파는 걸 보니 차마 고기넣고 끓인 국수가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조류 독감만 아니었어도 먹어봤을 텐데….그래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한창 발전하고 있는 단계라 그런지,아니면 아직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그래서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베트남에서 유독 많이 싸우게 된다고 한다.설령 사람들이 별로 친절하지 않다 해도 베트남은 우리에게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나라였다.베트남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도 전통적인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래서 신비로운 동양의 아름다운 나라로 남기를 바라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 비엔티엔에 도착할 때까지 흔들리는 한국의 낡은 버스 안에서 꼬박 20시간을 보내며 현지인들과 섞여 자다깨다를 반복했다.동남아에 한창 조류독감이 번지고 있어서 라오스로 들어가는 여행자도 다른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좋은 길로 달렸으면 7∼8시간 만에 충분히 왔을 거리인데 길 사정도 안 좋은 데다가 동남아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운 성격 때문에 계속 지체되었다.저녁 7시에 출발하기로 되어있던 버스는 9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고,중간에는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아무런 말 없이 사라져서 1시간 뒤에 돌아오기도 했다.알고 보니 동네 아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고 한다.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일들에 화나기 시작하면 즐거운 여행을 하기가 힘들다.그저 익숙해 지는 수밖에. ■ 하노이대 유학중인 김덕영씨 하노이국립대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김덕영(22)씨는 베트남 전문가를 꿈꾸는 야심만만한 한국 젊은이다.베트남 유학생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신천지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유학을 오게 된 계기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할 때 아버지가 먼저 제안하셨어요.처음엔 조금 망설였는데 지금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이곳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한창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죠.일단은 베트남어를 능숙하게 하고,베트남에 대해 많이 아는 게 목표예요.우선은 통역 일을 하고,장기적으로 유망 사업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베트남 친구들을 소개한다면.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달라요.이를테면 누구에게 사과할 때 미안한 표정을 짓는게 아니라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실실 웃어요.처음엔 너무 화가 났는데 그게 이 사람들의 방식이래요. 베트남 여자들은 자기주장이 강해요.그래서 전 베트남 여자가 친구로는 좋지만 여자 친구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한국 유학생들의 생활은. -아직은 한국 학생들이 많지 않아요.물가는 한국보다 싸지만 학비는 꼭 그렇지도 않아요.현지인들이 내는 학비랑 외국인 학비는 거의 20배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대부분 집을 렌트하거나 기숙사 등에서 생활하고요.보통은 밥도 해주고 빨래,청소를 도와주는 메이드를 둬요.시간도 절약되고,베트남은 인건비가 많이 싸서 큰 부담이 안 되거든요.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과 비교해서 어려운 점,좋은 점은. - 다른 나라로 유학가는 것보다 좋은 점은 우선 비용이 적게 들고요,또 베트남은 이제 막 발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기회가 있는 곳이기도 해요. ˝
  • 에도의 여행자들/다카하시 치하야 지음

    ‘크로노폴리스 도쿄(Chronopolis Tokyo) 24시’ 올해 마이니치신문의 한 신년 특집기사엔 이런 제목이 붙었다.크로노폴리스는 초시계란 뜻의 크로노그래프와 도시국가를 일컫는 폴리스의 합성어.2003년 ‘에도(江戶) 400년’을 맞아 그들은 에도 곧 오늘날의 도쿄가 시공을 초월한 역동적인 도시임을 강조하기 위해 크로노폴리스(시간도시)란 말을 만들어냈다.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쿄엔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이른바 ‘밤도깨비 투어’로 주말의 하네다 공항은 야심한 시간에도 발디딜 틈이 없다.우리는 얼마나 에도,나아가 오늘의 도쿄를 알고 있을까. ●다양한 인물군상의 흥미로운 여행담 일본의 역사평론가 다카하시 치하야(61)가 쓴 ‘에도의 여행자들’(김순희 옮김,효형출판 펴냄)은 ‘여행’이란 키워드로 살펴본 에도시대(1603∼1867)의 생활사 혹은 풍속사다.전란의 시대를 거쳐 세워진 에도 바쿠후는 270여년에 걸쳐 평화를 누렸다.‘도쿠카와 평화’라 불리는 이 시기를 거치며 에도는 오늘날의 세계도시 도쿄의 기틀을 갖춰갔다. 에도는 18세기 초에 이미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였다.저자는 당시 에도를 비롯해 일본 각지를 돌아다녔던 학자,문인,승려,공직자,외국인 등 다양한 인물군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에도시대 이전까지의 여행은 대부분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도카이도(東海道,도쿄에서 교토에 이르는 국도) 등 다섯 개의 가도가 정비되고 숙박시설이 갖춰지면서 사원참배나 성지순례를 명목으로 한 유람여행이 등장했다.서민들도 비로소 오락으로서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이와 같은 서민들의 여행은 에도시대 중기부터 성행했다.그것은 ‘고(講)’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고란 사원에 참배하거나 영산을 찾아가기 위해 조직한 단체를 가리키는 말.가장 인기를 누린 것은 이세신궁 참배를 위한 이세고와 후지산 순례를 위한 후지고였다. 에도시대의 진정한 여행가로 하이쿠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대표적인 인물이 ‘하이쿠의 아버지’ 마쓰오 바쇼다.바쇼의 인생은 방랑 그 자체였다.“도카이도의 어느 한 곳도 모르는 사람은 하이카이를 잘 할 수 없다.”고 갈파한 바쇼는 하루에 30∼40㎞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며 다닌다.” 바쇼는 이 유명한 하이쿠를 마지막으로 50세에 여행지 오사카에서 죽었다. ●신혼여행 1호 주인공은 사카모토 료마 메이지시대 개막을 앞둔 에도시대 말기엔 신혼여행도 생겨났다.일본엔 원래 신혼여행이란 관습이 없었다.누구나 신혼여행을 가게 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다.에도 바쿠후 말기의 개명파 지사 사카모토 료마는 1866년 신부 오료와 함께 규슈의 가고시마 온천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것이 일본의 신혼여행 1호다.에도시대 말기엔 ‘효도여행’까지 나타났다. 저자는 에도시대 여인들의 여행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선구적인 여성시인 이노우에 쑤조의 ‘동해일기’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여자들의 여행을 그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검문소와 통행증이다.여자들의 통행은 까다로워 ‘온나 데가타(女手形)’란 엄격한 규정의 여자 통행증이 따로 있었다.특히 에도를 떠나는 여자들에 대한 감시는 더욱 심했다. ‘아라테메바(改め婆)’라 불린 히토미온나(人見女)의 존재가 그런 사정을 잘 말해준다.여자 여행객들의 몸수색을 담당한 히토미온나는 때론 속옷까지 벗게 해 성별을 확인하는 등 모욕을 주기도 했다.이런 일은 웬만큼 지위가 높은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저자에 의하면 이는 봉록이 1만석 이상인 다이묘(大名)의 처자식들이 에도에서 인질로 살아야 하는 통제정책 때문이었다. ●조선통신사들의 선린 외교여행도 다뤄 책은 에도시대 조선통신사의 선린 외교여행도 다뤄 눈길을 끈다.일본이 에도시대의 쇄국체제 아래서 유일하게 국교를 연 나라가 조선이다.나가사키의 데지마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어 네덜란드와 교역을 하고 있었지만 국교를 맺었던 것은 아니다.청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메이지시대 이후 조선을 얕보고 지배하려는 정책 때문에 에도시대 통신사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한반도는 군사력에선 일본에 뒤지기도 했지만,문예나 학술 면에선 고대부터 늘 앞섰던 문화선진국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이 책에선 1719년 통신사로 에도에 갔던 제술관 신유한이 남긴 기행문 ‘해유록(海遊綠)’을 토대로 조선통신사의 일본 여행을 살펴본다. ‘에도시대의 에도’와 ‘21세기의 에도’.수백년전 에도여행과 오늘의 도쿄여행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그 사이에 놓인 간극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은 역사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결코 부질없는 일이 아니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 (4) 베트남 하노이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베트남에 갈 때는 김남주나 장동건 사진 몇장만 가져가면 칙사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정말 그런지,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많이 궁금했었다.실제 와서 보니 역시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드라마 열풍은 베트남 전역에 일고 있었다.굳이 한류열풍이 아니더라도 생활 구석구석 한국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개방경제를 채택하면서 한국 기업체들이 대거 진출한 덕분이었다.가전제품은 물론 시골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초코파이나 박카스를 쉽게 구할 수 있다.베트남 사람들이 타는 미니버스도 그렇고 외국인들을 위해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버스는 대부분 한국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예전에 셔틀버스로 쓰던 차들이다.신기한 건 도색은 커녕 최소한 한글을 지우고 새로 쓰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어떤 차를 타도 문앞에 한글로 ‘자동문’이라 쓰여있고,차량 바깥에는 백화점 이름이 크게 쓰여있어서 그걸 타면 꼭 한국의 쇼핑센터로 갈 것만 같다. 동네 이발관이나 작은 가게에 걸려 있는 포스터는 주로 한국영화 포스터다.안재욱이 베트남 여자와 함께 찍은 제품 광고도 자주 볼 수 있다.베트남 사람들이 보는 주말 매거진에는 송윤아 얼굴이 커버로 되어 있고,재래시장에 가면 연풍연가라고 한글로 쓰인 티셔츠들이 걸려 있다.시골 간이역에서 신문을 파는 처녀가 옆가게에서 공수한 김재원 브로마이드를 보고 너무 뿌듯해 한다. 시내 어딜가나 한집 건너 한집씩은 한국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있다.최근에는 얼마전 종영한 ‘유리구두’ 때문에 김현주,소지섭,김지호 등이 최고의 인기다.베트남 최북단 중국 국경지역 소수민족 마을을 여행하고 온 한 한국 여행자는 TV가 많지 않은 그 오지에서도 극중 소지섭 흉내를 내며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었다고 한다.카페에서 만난 베트남 아가씨 후아슝은 “한국 드라마는 베트남 사람들의 정서에 잘 맞는다.”면서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들의 패션이나 외모를 베트남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드라마 ‘올인’이 한창 방영중인데,특이한 건 대사 더빙을 변사처럼 한다는 사실.처음엔 상황설명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를 혼자 연기하듯이(사실 별로 변화는 없지만)한다.극장에서 상영하는 한국영화는 아예 성우가 직접 나와 무대 옆에서 라이브로 영화속 인물들의 대사를 읊어준다.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더빙기술은 상당히 발전한 것 같다.베트남도 곧 성우가 인기직업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한류열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의 대부분 드라마속 연예인들의 외모,패션 등에 국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나짱 시내에 있는 책방 가게 주인 아저씨는 “한국 드라마는 여자들만 좋아한다.여자들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얘기나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패션 등을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것이지 그외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한국 드라마는 안 보지만 내용은 항상 뻔하다.누가 누굴 좋아하고,대부분 삼각관계에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꼭 암으로 죽는다.”면서 한국 드라마 신드롬에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래도 우리가 베트남에서 체감한 ‘한류열풍’은 기대 이상이었다.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몰래 훔쳐보면서 호감을 보이는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꽤 자긍심이 느껴지기도 했다.하지만 베트남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어느날부터는 더이상 한국에서 온 것들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한류열풍’이라는 단어 안에 단지 한국의 연예인이나 패션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다른 다양한 문화와 장기적으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일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노이 국립대 응웬 트엉 후엔 응웬 트엉 후엔(阮商玄·Nguyen Thuong Huyen·24)은 하노이 국립대 인문사회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쾌활한 베트남 아가씨.졸업하면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한국학 전문교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한국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한국은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권이면서 베트남보다는 많이 발전한 나라여서 흥미를 느꼈어요.한국은 베트남과 닮은 점이 많아요.한국과 베트남이 어떻게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는지 공부하고 싶어서 선택했어요. 졸업후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한국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더 공부할 계획이에요.현재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학생은 많지만 아직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저 하나거든요.공부가 끝나면 베트남으로 돌아와서 한국학 전문교수가 되고 싶어요. 베트남 대학에 있는 한국어과에 대해. -5년 전까지만 해도 하노이 국립대 한 곳에만 있었는데,한국기업이 대거 진출하고 한류열풍이 불면서 제가 알기로도 6개 이상의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생겼어요.학생들에겐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가 인기예요.보통 3학년 정도에 베트남 주재 한국기업에 취직이 돼요. 한류열풍에 대한 생각은. -저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봐요.하지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성공하는 이야기들은 재미있지만 너무 사랑얘기에 치중되는 얘기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베트남에서는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일을 열심히 하는데 한국 드라마를 보면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한국의 드라마나 역사외에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정치나 종교에 관심이 많아요.베트남은 이미 통일이 됐지만 한국은 아직 휴전상태라서 나중에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그리고 한국에 교회가 아주 많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흥미로워요.그리고 남자친구에 관심이 많아요.제 남자친구가 한국사람이거든요.˝
  • 재용씨 73억 '전두환 비자금’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安大熙)는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괴자금 167억원 중 73억 5000만원이 전씨 비자금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검찰은 이날 재용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수감했다.재용씨는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박희승 판사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 영장을 발부했다.”면서 “피의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금으로 추정되는 채권 167억 500만원을 증여받고도 노숙자 김모씨와 사채업자 등의 차명계좌를 개설,74억 3800만원을 포탈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10면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재용씨의 채권 167억원을 역추적한 결과 73억 5000만원 가량이 전씨가 관리했던 비자금으로 확인됐다.”면서 “채권 73억 5000만원은 지난 87년 4월쯤 대통령 경호실의 김모 재무관이 관리했던 자금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사실관계에 대한 추가확인과 법률검토 등을 거쳐 73억 5000만원 전액을 몰수추징할 방침이다.나머지 괴자금 93억여원의 원출처도 전씨 비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추적키로 했다. 검찰은 재용씨의 영장범죄사실로 2000년 12월말 외조부 이규동씨로부터 액면가 167억원(시가 141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받고도 증여재산을 은닉,74억 3800만원 상당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적용했다. 재용씨는 문제의 자금 167억원을 ▲기업어음(CP)·주식 매입(53억원) ▲부동산 매입(33억원) ▲벤처회사 2곳 투자(21억원) ▲또다른 채권 매입(34억원)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또 CP거래 등을 하면서 유명 탤런트 P양 어머니 윤모씨 명의 계좌를 활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재용씨 괴자금 중 50억원 상당의 어음과 유가증권,자기앞수표를 포함한 현금 2억 3000만원,5개 예금통장의 잔액 1억 600만원,여행자수표 5만달러를 압수했다. 지난 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은 전씨는 지금까지 314억원만 납부했으며,지난해 6월 법원에 제출한 재산목록에서 본인의 예금은 29만원뿐이라고 신고했었다. 강충식 구혜영기자 chungsik@seoul.co.kr˝
  • [종하랑 선영이의 베낭메고 60개국]②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앙코르의 사원들은 7∼11세기 사이 크메르 문명의 전성기에 만들어졌으며,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당시 크메르 제국의 황제는 앙코르에 앉아 남으로는 베트남,북으로는 중국의 윈난성,서쪽으로는 벵골만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통치했다고 한다.앙코르 왕조가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는 정글에 함께 묻혀버렸고,수백년이 지난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캄보디아 씨엠립 킬링필드의 나라,선조들이 남겨준 유적 앙코르와트로 먹고 사는 나라,무장강도와 거지들이 여행자들을 강탈하고 구걸하는 나라,곳곳에 게릴라가 출몰하고 여기저기 지뢰가 묻혀 있는 나라…. 캄보디아에 오기 전 내가 갖고 있던 인상들이었다.그런 무서운 나라에 가는 게 겁나기도 했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그리고 앙코르와트만 보고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태국 아란지방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비행기로 오면 편했겠지만 배낭여행자들인 우리에게 비행기값은 한달 이상의 생활비와 맞먹었기 때문에 두 주먹 불끈 쥐고,심호흡을 하고 그 악명높은 국경넘기를 감행했다. 방콕에서 캄보디아 씨엠립까지 꼬박 하루 버스를 타고 ‘죽음의 길’ 비포장 국경지역을 달려 미지의 땅,무시무시한 나라 캄보디아에 밤늦게 도착했다.캄보디아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밤이 되면 온통 암흑세계가 된다.불안감이 가중된 우리는 빨리 숙소를 잡고 다음날부터 앙코르와트를 돌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연방 두리번거렸다.그런데….이상하게 나쁜 사람은 찾을 수가 없고 가는 곳마다 호의적이고 순한 사람들뿐이었다.물론 여행하기 위험한 지역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곳 씨엠립은 그리 위험한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도 너무나 순박하고 착해 보였다. 하루만에 캄보디아에 대한 나의 모든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고,우리는 정작 앙코르와트 유적지보다도 사람들 사는 모습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캄보디아는 국민소득이 연 300달러에도 못미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고단해보이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자꾸만 맘에 걸리는 것은 국경지대나 유적지 입구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이다.선조들이 남겨준 찬란한 유적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얼 먹고 살까 싶을 정도로 캄보디아는 오직 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에게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전력도 수입해서 쓸 만큼 별다른 기간산업이 없다. ‘원 달러’를 외치며 계속 물건 하나만 사달라고 따라다니며 애원하는 대여섯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들.가난을 안고 태어나 가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어린이들에게 이들의 신은 어떤 은총을 내려줄까….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운 사원이라 칭송받는 앙코르 사원을 돌아보며 이 거대한 신전을 짓기 위해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나르던 고단한 백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 인터뷰 - 고교1년생 싼 보파양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 덕분에 캄보디아의 다른 지역보다는 생활수준이 높은 편.그래도 고교 진학률은 중학교 졸업생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이때문에 이곳의 고등학생들은 혜택받은 소수의 인텔리층에 속한다.씨엠립 외곽에 있는 왓 스배이(Wat Svay)고등학교 1학년생인 싼 보파(Ssan Bopha)도 그런 학생 중 한명이다. 학교 생활에 대해. -유치원을 포함해서 보통 7시에 수업을 시작해요.유치원은 2∼3시간,초·중·고등학교는 6시간 정도예요.교실이 많지 않아서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공부해요. 방과 후나 방학에는 주로 무얼 하는지. -형편이 좋아서 대학진학을 할 수있는 애들은 공부를 더 하는 편이고,그렇지 않은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집에서 농사일을 도와요.방학도 농번기인 4월에 보름,6월에 한달 정도여서 가족들을 도와 들판에서 일을 하는 애들이 많아요. 이곳 고등학생들도 과외를 하나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따로 과외반을 모집해서 등록금 외에 별도의 과외비를 받고 영어나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을 가르쳐요.그런데 시험에 나오는 내용들은 정규 수업시간보다 과외시간에 주로 가르쳐주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 애들은 과외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관광가이드예요.돈도 많이 벌 수 있고,또 외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죠.그 다음으론 택시 운전기사인데,역시 돈을 많이 벌어서예요.저도 대학에 가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어요. 학교시설이 훌륭해 보이진 않았지만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은 모두 밝고 건강해 보인다.캄보디아의 미래가 자신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 [기네스코너]

    ●7살 금메달리스트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는 마르셀 디파이예라는 프랑스 소년이다.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네덜란드 선수의 불참으로 2인1조 조정경기 대표선수로 참가했다.정확한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7살쯤으로 추정되며 어쨌든 10살이하인 것은 확실하다.최연소 여자 챔피언은 한국의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인 김윤미이다.1994년 여자 3000m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릴레이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나이가 13세 85일이었다. 올림픽 개인종목 최연소 우승자는 13세 268일 된 미국의 게스트링으로 1936년 8월12일 베를린 올림픽의 스프링 보드 다이빙에서 우승했다. ●치아로 22만3380㎏ 열차 끌어 1996년 6월9일 벨기에 딕스무크 철도 선로에서 치아를 이용한 기차 끌기 시도가 있었다.주인공은 벨기에 출신 월터 아르페잉드로 여객열차 8량 총 22만 3880㎏의 무게를 3.2m나 끌고갔다. ●다락방에서 57년 홀로 생활 우크라이나 몬치치에 사는 스테판 코발추크는 57년 동안 자신의 다락방에서 지냈다.1942년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나치를 피해 처음으로 다락방에서 지내기 시작했으나 전쟁후 나치에 대항하여 승리한 러시아 적군파의 징병을 피하려고 계속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1999년 9월 75세인 그를 다락방에서 불러낸 것은 다름아닌 자신을 돌보아주던 누이의 죽음이었다. ●5만3351㎞ 걸어서 여행 최장의 도보 여행 거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노스 포트 마이어즈에 사는 아더 블래싯이가 수립한 5만 3351㎞이다.1969년 12월25일 여행을 시작해서 7개 대륙 277개국을 방문한 그는 단순한 도보 여행자가 아니었다.여행 내내 3.7m짜리 나무 십자가를 지고 다니면서 설교를 했다고 한다. ●훌라후프 82개 동시에 돌려 어깨와 엉덩이 사이에 훌라후프를 걸고 동시에 가장 많이 돌린 훌라후프의 갯수는 82개이다.이 기록은 1999년 8월5일 로리 린로멜리가 미국 네바다주 레노의 애틀랜타 카지노에서 세운 것이다.그녀는 각각의 훌라후프를 3번씩 완벽하게 돌렸다.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 (1) 태국 방콕 카오산 거리

    박종하·이선영 부부는 결혼 3년차 동갑내기 커플.남편은 증권맨,아내는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다 사표 쓰고 세계 일주 배낭여행에 나섰다.20개월간 60개국 정복이 목표다. 방콕은 복잡하고 지저분한 첫 인상과는 달리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한 곳이다.특히 카오산(Khaosan)거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여행자 거리로,배낭 여행자들의 천국이다.길 옆에 즐비한 노점상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사람들,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메고 숙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색실로 머리를 꼬고 레게머리를 하기 위해 길거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북부 고산족 전통의상을 하고 장신구를 파는 원주민들,그냥 그 모든 것을 별 하릴없이 구경하며 걸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카오산에는 없는 것이 없고 뭐든지 싸지만 또 제값을 주고 사는 사람도 없다.흥정만 잘하면 좋은 물건을 부르는 값의 절반에도 살 수 있다. 유럽의 여행자들도 흥정을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연신 “No discount?” 하며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고 안달이다.우리도첫날에는 요령을 잘 몰라 조금밖엔 못 깎았는데 이젠 선수가 다 되었다.한번은 하나에 160바트(100바트=3000원 정도) 하는 바지를 사는데 우리가 두개를 200바트에 달라고 했더니 아무런 흥정없이 바로 OK를 해서 얼마나 허무했는지 모른다.오후 내내 ‘더 낮게 부를 걸…’하고 후회하다가 한국에 있을 때 이렇게 아꼈으면 정말 잘 살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유럽의 배낭여행자들은 물가도 싸고 볼거리,먹거리가 많은 태국을 아시아 여행지 중 최고의 매력적인 여행지로 꼽는다.카오산거리 펍(주점)에서 만난 영국인 배낭여행자 제니퍼는 “친구와 함께 1년 정도 여러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태국만큼 동양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으면서 물가도 싸고,여행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없다.”며 달뜬 표정으로 북부 산악 트레킹에서부터 남부 섬여행까지 자신의 태국여행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실 카오산 거리 자체는 왕궁과 주변 사원들을 제외하면 크게 매력적인 관광지는 아니다.하지만 방콕 근교나 주변국가로 여행하기 좋은 관광 네트워킹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중간 거점 또는 경유지로 많이 들른다.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그 국적도 정말 다양하다.북미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많고,일본이나 한국 여행자들도 많이 보인다.그런데 행태를 보면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여행자들은 우리들이 여행하는 모습과 많이 다르다.우리는 하나라도 더 보고,하나라도 더 느끼기 위해 늘 마음이 급하고 여행을 와서도 서두르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서양의 여행자들은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있어 보인다.어딜가나 책 읽는 사람이 많고 카페에 앉아 엽서를 쓰는 이들도 많다.어떤 여행이 좋은 여행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우리도 조금씩 여유를 갖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여행에서 보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 자체가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도 여행의 큰 선물이니까 말이다. 카오산 메인 거리에서 살짝 벗어나면 영화상영 시간표를 게시해 놓고 시간마다 영화를 틀어주는 노천카페들도 있다.북부 산악트레킹을 다녀오면 꼭 그 카페에서 하루종일 책보고 영화보고 사람 구경하고,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기로 했다. ●방콕 ‘신여성’ 나와랏 통낙 선한 인상의 나와랏 통낙(Nawarat Tongnak·35)씨는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사회적 성공욕심이 강한 소위 태국의 신여성이다.외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평소 궁금했던 몇가지를 물어봤다. 태국 사람들의 이름은 누가 지어주나요. -대부분 사원의 스님들이 지어주세요.제 이름도 스님이 지어주셨는데 ‘아홉가지의 보석’이라는 뜻이죠.태국은 90% 이상이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생활과 사상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는답니다. 태국사람들은 항상 느긋해 보여요. -태국사람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답니다.작은 일에 조바심을 내지도 않죠.역시 불교의 영향인데 어차피 주어진 만큼의 시간에 주어진 만큼만 일하고 생활하면 된다고 믿기 때문에 화를 낼 일이 별로 없어요. 태국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다면서요. -예전에는 태국도 남성위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집에서 살림만 했었죠.하지만 점점 사회가 변화하면서 요즘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어요.오후가 되면 길거리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서있는 남자들이 많은데 부인이 일 끝나면 태워가려고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요즘엔 집에서 애 키우는 남자들도 많죠. 통낙씨의 행복은 어떤 건가요. -어렸을때는 친구와 어울려서 파티하고 놀러다니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어요.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죽을 때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생활해요.개인적으로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요.태국에서도 영어를 잘하면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거든요.
  • 베트남 2명·태국 1명 추가사망/중국 조류독감 확산조짐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외신|중국에서 조류독감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베트남에서는 이로 인한 사망자가 10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이 아시아여행자를 겨냥해 조류독감 경고를 발령하는 등 조류독감 파문이 계속 번지고 있다. 중국어 인터넷 신문인 둬웨이(多維)는 광시 자치구 오리농장에서 오리가 집단 폐사한 뒤 사흘만인 지난 26일 후베이성 우쉐(武穴)시의 양계 전문 농가와 후난성 우강(武岡)시의 오리 농가에서도 닭과 오리가 조류독감으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베트남 국영통신 VNA가 발행하는 영자일간지 베트남 뉴스는 작년 10월27일 이후 지금까지 베트남 64개성 가운데 14개성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해 50명이 감염됐다고 보도했다.이 가운데 18명이 목숨을 잃었으며,7명은 조류독감에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관련기사 8면 하지만 베트남 위생 및 전염병학 연구소는 이날 “ 타이 빈에서 지난주 각각 23세와 30세인 자매가 숨져,지금까지 베트남에서 조류독감으로 숨진 사람은 8명으로 늘었다.”고 밝힌 것으로 이날 공식 확인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28일 태국에서도 의심환자 1명이 추가로 숨졌다.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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