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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직이는 국악원」,포항 세명고를 찾다

    ◎고교생들,북장단 맞춰 “얼씨구” 합창/조용하던 객석이 흥보가에 환성 터져/“우리소리 진수 만끽”… 사인요청 줄이어 공연이 모두 끝난뒤 국악원 사물놀이단원들은 사인을 받기위해 무대앞에 몰려있는 1백여명의 여학생들을 피해 뜀박질하듯 강당앞에 서있는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이미 버스안을 가득 메운채 먼저 연주를 끝낸 다른 단원들의 사인을 받고있는 학생들을 발견하자 체념한 듯 자리에 앉아 내미는 종이마다에 서투른 사인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15일 하오 경북 포항의 세명고교 강당에서는 국립국악원의 「움직이는 국악원」공연이 열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강당안의 분위기는 이 공연이 이날 아침에야 갑작스럽게 결정되어 연주자와 청중 모두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인지 조금은 어수선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뒤 연주자와 청중들은 모두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듯 했다. 「움직이는 국악원」프로그램은 지방주민들,특히 낙도와 산간 오지의 주민들에게 제대로된 문화를 접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으로 국악원 연주단은 예정대로라면 이날 울릉도에서 연주회를 갖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폭풍주의보로 울릉도로 떠나기로 한 14일 배가 출발하지 못해 연주단은 포항에서 발이 묶였고 15일에도 출항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연주할 장소를 서둘러 물색한 끝에 찾아간 곳이 세명고교였다. 단원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울릉도에서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여간해서 가볼 수 없는 울릉도의 비경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학생들도 그랬다.학생들은 이날 아침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국립국악원이 찾아와 연주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호성을 울렸었다. 그러나 그 환호성은 한 학생이 말한대로 모처럼 오후수업이 없어졌다는 기쁨의 표현이었지 국악원 연주단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다는 해석이 옳을 것이다. 국악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면 어른들에게도 인내를 필요로 하는 관악합주곡 「함녕지곡」이 김응서씨의 집박으로 연주될 때만 해도 좀처럼 분위기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미씨의 궁중무용 「춘앵전」과이금희 조경희씨의 경기민요에 이어 황지일씨의 대금독주 「청성곡」이 연주가 끝나자 「국악이라는 것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듯 자세를 고쳐앉고 연주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나위연주에 이어 명창 김일구씨가 김청만씨의 북장단에 맞추어 흥보가 가운데 한 토막을 걸찍하게 늘어놓자 학생들도 김명창이 가르쳐준대로 『얼씨구』『잘한다』등 서투른 추임새를 「남발」하는 등 흥겨워했다. 마지막 순서인 사물놀이가 끝났을 때 1천8백명의 남녀 학생은 한 목소리로 환호성을 울렸다.학생들은 물론 단원들의 찜찜했던 마음도 한꺼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사인을 받기 위해 버스로 몰려든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 중견단원은 『한 이삼십년 전에도 공연이 끝나면 분장실로 몰려드는 소녀들을 돌려보내느라고 바빴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그러자 한 젊은 단원은 이렇게 말했다.『그 소녀들과 이 학생들은 달라요.이 학생들은 외국가수가 노래부르는 것을 보려고 죽기까지 한 바로 그 세대들인데요』 그러면서 그는 『문화소외층은 울릉도같은 섬이 아니라 바로 입시의 중압감에 쪼들려 있는 바로 우리 이웃의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을 이 공연에서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움직이는 국악원」은 단원들의 요청에 따라 16일에는 대구의 경상여고에서 예정에도 없던 공연을 한번 더 가졌다. 국립국악원 연주단은 지난 85년에도 울릉도에서 연주회를 가지려다 태풍에 발이 묶여 돌아섰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승렬 국립국악원장도 16일 예정에는 크게 어긋났지만 뿌듯한 연주회를 모두 마친뒤 울릉도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삼고초려」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울릉도연주는 꼭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 교대서도 올부터 ROTC선발/서울등 8개교 새달 후보생 모집

    ◎남학교수 적은 공주등 3곳은 인가보류 정부는 올해부터 교육대학에 학군사관후보생(ROTC)제도를 실시,학군단을 설치하여 교대졸업생도 국군장교로 임관할 수 있도록 했다. 국방부는 17일 전국 11개 교육대학 재학생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지난 69년부터 실시해오던 하사관후보생(RNTC)제도가 92년 2월로 폐지됨에따라 교육대도 4년제 일반대학에서와 같이 ROTC제도를 인가키로 했다. 국방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이달중 서울 인천 춘천 광주 진주 대구 부산 전주등 8개 교육대학에 육군대령을 단장으로 하는 학군단이 설치되고 5월1일부터 2학년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ROTC후보생을 모집,선발한뒤 93년부터 학군사관후보생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이들이 졸업하는 95년에는 건국이후 처음으로 국민학교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육대 졸업생이 국군소위로 임관된다. 그러나 남학생수가 적어 훈련최소단위인 20명의 후보생확보가 어려운 공주·청주·제주교육대등 3개교의 ROTC과정은 조건이 충족될때까지 인가를 보류키로 했다. 교육대에 ROTC과정이 인가되면 첫째 국가관과 사명감이 투철한 우수장교를 배출시킬수 있고 이들이 의무복무를 마치고 교직에 임용될 경우 국민안보교육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대는 지난 82년부터 4년제대학으로 승격되었으나 남학생들에게 초급대학이나 전문대학수준인 RNTC제도를 운영,졸업후 예비역하사로 전역과 동시에 병역이 면제되는 대신 교직에 3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만 했다. 국방부가 교육대에 ROTC제도를 인가한것은 교육대생들이 병역특례대상이 아니어서 남학생들이 지원하지 않고 여학생들의 입학이 크게 늘어나 국민학교교육이 여성화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고 우수한 교사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교육부의 건의에따라 취해졌다.
  • 밀레바 마티치의 경우/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굄돌)

    1890년대말 스위스 국립공과대학의 재학생들 가운데 밀레바 마티치라는 여학생이 있었다.천재적인 자질과 학자로 대성하려는 포부를 아울러 지니고 있었던 이 젊은이는 동료 학생인 아인슈타인과 매우 친한 사이가 되어 자주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인슈타인이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을 때 밀레바는 석사학위 취득자의 명단에 들지 못했다.결혼도 하기 전에 아인슈타인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그는 비록 학위는 갖지 못했지만 남편인 아인슈타인에게는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아인슈타인에게 화려한 명성을 안겨준 초기의 업적들은 모두 밀레바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업적들이 발표될 때에는 언제나 남편의 이름만이 명기되었을 뿐 아내의 존재는 어둠속에 가려졌다.그리하여 남편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동안 아내는 여전히 무명의 존재로 남아 있어야 했으며,더욱이 그동안에 여러 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또 살림규모가 커짐에 따라 점점 학문의 세계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밀레바에게 닥친 운명의 시련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다른 여자가 생긴 남편의 요구로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그러면 밀레바는 이혼의 대가로 자유를 얻었는가? 그렇지 않았다.정신병자인 아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이 그의 어깨 위에 지워진 것이다.그는 학문의 세계로 돌아갈 꿈도 꾸지 못한 채 피아노와 수학의 과외선생으로 불행한 여생을 보내다가 가난속에 죽었다. 밀레바의 이처럼 비극적인 운명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할 요소로 우리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해도 남성위주의 질서와 인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시야를 넓혀 유사이래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밀레바가 이러한 질서와 인습의 악마적인 세력에 떠밀려 좌초하고 말았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실로 아득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 사람의 밀레바가 좌초의 비운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저 악마적인 세력의 피해자가 잇따라 생겨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 본립도생/배기민 대한상사중재원장(굄돌)

    누구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정치인은 하언·하설의 꽃을 피울 것이요,경제인은 품질·수량을 속이고 절대 돈은 갚지 않을 것이며,시정잡배는 주부이든 여학생이든 돈 될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잡아다 넘길 것이니 온통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지 않겠는가.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신문등 언론은 어떻게 되겠는가.아마도 어느 기업인이 은행돈 갚는 게 특종거리가 되고,택시기사가 병약한 노인을 태워주었다고 사회면 톱 기사거리가 되며,어느 교수가 연구논문 하나 발표하였다고 TV가 특별방송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오늘의 신문인상과는 전혀 달리 선행이 범람하는 사회로 비추어져 있지 않을까. 오늘의 우리 사회는 비리가 범람하고 이를 통탄하는 사람이 많다.아직도 비리가 뉴스의 주된 초점이 되고 이를 비난하고 각성하자는 소리가 크다.그런데 언젠가는 언론도 독자도 중독증에 걸려 관심의 병적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한 사회의 건강은 이것이 병들고 있다고 요란하고 시끄러울 때는 아직도 회생할 힘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우리 사회의 건강을 되찾기 위하여 오늘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치유책을 완전무결하게 만들자고 하지 말자.또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정직하고 남에게도 정직하게 해내자. 나는 「본립도생」이라는 논어(학이편)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왔다.본이 서면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목표를 위한 수단·방법을 보다 인간적·문화적·자연적으로 하자는 현대식 해석을 해보기도 한다.나는 지금도 한 사람의 인품·교양·향기는 그가 목표를 추구하는 수단·방법을 엄선하는 그 엄격한 자세에 있다고 믿는다.
  • 여성단체 「김보은양 구명운동」확산/무죄탄원 서명·공동변호인단 구성

    자신을 상습 성폭행해온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김보은양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법과 인륜의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지난 4일 선고공판에서 김양은 징역 4년,남자친구 김진관군은 7년을 선고 받았다.이 선고공판을 계기로 두 사람에 대한 구명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김부남사건대책위,여성의 전화,대전·충남여민회,충북여민회등으로 구성된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1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열고 ▲무죄석방을 위한 전국서명운동 전개 ▲항소심에 대비한 공동변호인단 구성 ▲대규모 항의집회등을 펴나가기로 결정했다.공대위는 이와 더불어 현행법 체계내에서는 무죄를 설명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감안,12년간 변태적인 성폭행을 해온 의부의 반인륜성을 부각시키기로 했다.의부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살인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당방위 쪽으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이를 위해 살해된 의붓아버지 김영오씨(청주지검 충주지청사무과장)의 추악성을 알려주는 김보은양과 친어머니등 그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재판자료등을 모아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도 세웠다. 공대위는 이에 앞서 고려대 공주대 단국대등 충남지역 6개대학의 총여학생회와 함께 이들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펴왔다.13일 현재 3만5천여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이들에게 답지한 진정서·탄원서만도 8백통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퍼스널컴퓨터(PC)통신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전자게시판과 전자우편함을 통해 격려편지 보내기,모금활동,공개토론,서명운동등이 펼쳐지고 있다.지난달 31일 데이콤의 PC­SERVE 한 회원이 「이들에게 격려편지를 보내자」는 내용의 글을 게시판에 실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여 민자당 정옥순여성국장등이 1심공판에 앞서 재판부를 방문,두 사람의 정상을 참작해 줄것을 요구했다.민주당은 지난 2일 이우정최고위원(여성특위위원장)을 위원장으로 「김보은­김진관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무죄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와 함께 「성폭력특별법」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보은­김진관사건 외에도 오는 17일 1차공판이 열리는 김진희­은희자매에 대한 친부의 성폭행사건을 비롯해 근친 강간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지난 1년간 접수된 친인척에 의한 근친강간사례만도 전체의 20%나 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 「개방물결」 중국… 결혼풍속도 달아졌다.(특파원코너)

    ◎성관념 해이… 혼전 시험동거 확산/자식도 애물시… 무자녀가정 급증/전통가정규범 붕괴… 세대간 갈등 빚기도 10여년에 걸친 개혁개방정책 추진으로 중국에서는 요즘 결혼후에 자식을 전혀 안갖겠다는 「무자식 상팔자」의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그런가 하면 중국사회전통으론 아직 용납될수 없는 「혼전 시험결혼」이란 풍속이 지식계층에서 서서히 인기를 모아가고 있다고 중국의 신문·잡지들이 보도하고 있다. 최근 북경에서 발행된 화보 「민주와 법제」는 한 북경여학생의 말을 인용,그녀의 친구와 선배언니 8명이 학창시절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중 5명이 사회진출직후 혼전 시험결혼생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이들중 몇명은 남자 반려자를 두번이상 바꾸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은 『시험결혼은 상호 상대방이 자신을 진실하게 사랑하는지 확인할수 있고 애정을 더욱 굳게 다져나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화보는 아직 시혼자수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반해 결혼을 했으면서도 자식만은 안갖겠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상해시 인구정보센터는 지난79년 「한가정 한자녀갖기」캠페인이 벌어진 이후 89년까지 상해에서 결혼한 부부중 14%인 16만쌍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이같은 「무자식」가정은 주로 북경이나 상해등 대도시의 지식층에 많다. 자식문제에 관한한 신앙처럼 중요시해온 중국사회에서 이같이 가족이란 개념 자체에 의문을 품게된 것은 개혁정책에 따른 생활스타일의 변모나 자금사정,출세우선주의,단순한 사랑등이 주요 동기로 꼽히고 있다. 북경에 사는 41세의 한 간호원은 『어린이를 키우는데 한달에 얼마나 드는가 생각해보라』고 반문한후 『적어도 1백원은 든다.더구나 요즘은 한자녀갖기운동으로 모든 애들이 꼬마황제 취급을 받고 있지 않느냐』라고 설명했다. 다른 부부들은 어린이를 두면 직장에서의 출세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를 들기도 하고 결혼이 필요한 것은 사랑때문이라는 극단론을 펴기도 한다.자식이 없으면 잘못된 결혼으로 이혼을 해야할때 부담감이 없어서좋다는 사람도 있다. 아이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그들 가족이나 동료들로부터 자식을 두도록 끊임없는 압력을 받는다.한 40대여인은 『내 친구들은 정말 성가시게 군다.나를 화장실구석에 몰아넣고 모욕을 주기도 하며 이기주의자로 취급하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북경에서 무자식부부의 60%는 부부가 대졸학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대졸여성의 진보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신문은 지적했다. 그런가하면 아직도 부인이 딸을 낳으면 구박을 받고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은데다 「한가정 한자녀운동」때문에 딸을 낳으면 물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는 일도 흔히 있는 것으로 중국신문들은 보도한다.이때문에 태아감별과 낙태가 만연돼가고 있는 것도 중국의 새로운 풍속도라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멀지않아 신부감이 5천만명이나 부족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나 딸이란 가난한 살림에 입만 늘리고 결혼지참금까지 마련해 시집보내면 끝장이라는 사고방식이 아직도 뿌리깊게 박혀 있다.중국사회과학원은 이같은 전통사회의식과 더불어 새로운 생활풍속도가 일고 있으나 옛사고방식은 현실적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식사고는 아직 중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대학생·전경 “화합의 축제”/전남대서

    ◎1천여명 「손에 손잡고」 흥겨운 한때/체육대회·풍물놀이로 적대감 해소/“만나보니 형제같아… 자주 모임을”/서로의 입장 이해돕는 「대화의 장」으로 대학생과 경찰이 어우러진 「전의경·대학생 친선 한마당」축제가 11일 상오 전남대 실내체육관에서 열려 화합의 한마당을 이뤘다. 광주 북부경찰서와 전남대 총학생회 산하 「총예비역 협의회」공동주최로 가진 이날 행사에는 오병문 전남대 총장 박일만광주북부경찰서장 등 관계기관장을 비롯,학생·경찰 등 모두 1천여명이 참석,흥겨운 한 때를 보냈다. 상오10시 경찰악대의 「손에 손잡고」연주와 함께 시작된 이날 축제는 개회식에 이어 탁구·배구·씨름·줄다리기 등 체육대회,「돼지몰이」「닭몰이」등 레크리에이션,경찰·학생 장기자랑,각 단과대 풍물·노래패들의 「뒤풀이 한마당놀이」등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짠 다양한 오락프로그램 순서에 따라 8시간여동안 진행됐으며 참여학생과 경찰관들은 서로를 응원하며 상대방이 이길 때는 박수를 보내는 등 시종 화합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광주호남대 1년을 마치고 입대한 김태광수경(22·광주 북부경찰서 방범순찰대 1소대)은 『시위 진압때는 이성을 잃어버려 데모하는 학생들이 밉기만 했으나 막상 만나보니 친형제 같은 느낌이 든다』며 『이같은 자리가 자주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대 농학과4년 김광명군(23)도 『그동안 경찰을 무작정 적대시했던 생각이 오늘을 계기로 바뀌게 됐다』며 『같은 젊은이로서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 부산경성대 여학생회/성폭력 고발창구 개설(조약돌)

    ○…부산경성대 여학생회(회장 서지경·22·생물4)는 2일 교내 학생회관 1층에 성폭력고발창구및 상담실을 마련한뒤 1천명의 여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폭력추방을 결의. 여학생회는 개소식에서 『강간뿐만아니라 성적희롱·추행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언어적·정신적폭력을 포괄한것이 성폭력이라는 것을 여성 스스로가 인식하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
  • 윤석화씨 열정에 숨죽인 객석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공연현장을 가다/여가수 「회한의 모성애」에 잔잔한 감동/여성관객 줄이어 통로입석까지 만원 『공연이 시작되려면 1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입석표밖에 안 남았어요』 『어떻게 1시간반 동안 통로에 쭈구리고 앉아서 연극을 보니(?)그것도 같은 값을 내구』 지난 27일 하오 2시30분 윤석화의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원작 임영웅연출)가 공연되고 있는 신촌의 산울림소극장 매표소앞에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두 여학생이 통로에 앉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연극을 볼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날도 좌석표는 역시 공연시작 1시간전에 매진됐고 입석표를 포함해 2백명이 넘는 관객들이 울고 웃고 노래부르는 윤석화의 열정적인 연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낮공연이 있는 날이라 다른 때보다 중년여성 관객들이 비교적 많이 눈에 띠었지만 20∼30대의 젊은 여성관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35세의 여가수 맬라니역을 맡은 윤석화는 녹음시설과 피아노가 갖춰진 자신의 방 한 구석에서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며 손톱소제를 한다.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한다고 호소하는 11살 난 딸에게 근사한 내용의 편지를 써보내고 싶어 그녀는 편지를 수없이 고쳐써 보기도 하고 노래로 편지를 대신해 보기도 하며 괜히 흥분에 들떠 방안을 서성인다. 그러나 막상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떠올릴라치면 자꾸만 자신의 아픈 과거가 눈앞을 가로막는다.집안 사람들로부터 별로 귀염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어린 시절,유난히도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아버지에 대한 따스한 추억.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에 대한 기대나 꿈·야망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뒤엉켜있다.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부모들이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어린 딸에게 해주며 자신의 부모와는 다른 엄마가 되고 싶어한다. 윤석화가 경쾌한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은 박수로 흥을 돋운다.또 그녀의 동작하나,표정하나라도 놓치기 않으려는 관객들의 시선은 온통 윤석화에게로 쏠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친구는골라서 사귀어라」「감정을 조심해라」「남을 탓하지 말라」「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등 시시콜콜하게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조목조목 늘어놓으며 엄마노릇을 한번 제대로 해보려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주변 젊은 엄마들의 자화상을 떠올리듯 객석 여기저기에서 한숨소리가 절로 나온다. 좌석이 없어 앞자리에 방석을 깔고 연극을 봤다는 정현조(여·대학생)양은 『항상 엄마한테 듣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무대에서 접하니까 색다르게 느껴진다』며 『그러나 일상적인 소재가 주는 작은 공감들에 여성연극이 표명해야할 주제의식이 파묻혀 버리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또 큰 마음먹고 연극을 보러왔다는 직장인 김옥자씨(27·여)는 『극 자체는 밋밋하지만 현실사회에서 여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깊었다』면서 『직장여성이 증가하는 우리사회의 흐름에도 잘 맞는 연극인 것 같다』며 관극소감을 밝힌다. 관객들은 대부분 연극배우 윤석화가 80분동안 제공한 볼거리와 일상에서 잊고 지내왔던 삶의 소박한 이야기가 던져준 잔잔한 파문을 간직한 채 극장문을 나서고 있었다.
  • 직업훈련원에 인문고생 몰린다/어제 원서 마감

    ◎올 9천6백명 지원… 작년의 갑절/공고에도 여학생진학 급증/“무조건 대학가자” 퇴조… 조기취업 확산/고3대상 직업학교 지원자 30% 탈락 무조건 대학에 가고보자는 대학지상주의대신 능력에 맞는 기술을 익혀 조기취업을 하려는 새로운 흐름이 중·고교생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문계 고교생들이 대거 직업훈련기관들에 몰리고 있고 남학생들만의 교육기관으로 여겨져왔던 공업계 고교에 진학하는 여학생들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같은 현상은 80년대이후 대졸자의 취업난이 계속되고 있고 업종간·학력간 임금격차가 크게 줄어든데 영향받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또 우리사회가 산업화·다원화되면서 적성에 맞는 기술을 익혀 산업현장으로 뛰어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취업관의 선진화현상으로도 이해되고 있다. 노동부산하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이 4일 전국 35개 직업훈련원 가운데 인문계학생의 지원이 가능한 24개 훈련원의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8천4백90명 정원에 모두 1만5천2백27명이 지원했고 이가운데 인문계고교 2학년과정을 마친 응시자는 전체지원자의 63%인 9천6백명이나 됐다. 이는 지난해 4천8백명의 인문계고 학생들이 지원,전체 응시자의 30%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갑절이 넘는 수치이다. 24개 훈련원 가운데 인문계고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려든 곳은 5백40명을 모집하는 전북 이리직업훈련원으로 전체 지원자 9백11명의 72%나되는 6백53명이 인문고 학생이다. 이와함께 90년부터 인문계고 3학년만을 대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고 있는 3개 직업학교에도 정원을 훨씬 넘는 학생들이 지원,3분의1이 넘는 학생들은 선발과정에서 탈락됐다. 6일 입학식을 갖는 아현직업학교와 서울직업학교및 종로산업학교 등 3개 직업학교에는 4천1백32명 정원에 6천3백31명이 응시,34%인 2천1백99명이 탈락했다. 한편 공업계고교에 진학한 여학생은 지난해 1천4백87명이던 것이 올해는 2천7백10명으로 무려 80%이상 증가했다.이에따라 공업계고교에 재학중인 여학생수는 지난해 3천6백15명에서 올해는 5천7백60명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이희선훈련관리과장은 『최근 대학에 들어가도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 일찌감치 기술을 익히면 쉽게 취업할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교육부와 노동부 등은 중·고교생 사이에 일고있는 기술선호가 산업체 인력난해소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대학입시 열병 해소에 까지 영향을 미칠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고 직업훈련기관과 공업계고교설립확대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 국무회의

    ◎「총액임금」적용기준 설명/최 노동/“안전대책 없는 공연 불허”/이 문화 제7회 국무회의는 정원식국무총리가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때문에 평양을 방문중이어서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대신 주재했다. 최부총리는 국무위원들에게 총리부재이유를 간단히 설명한뒤 평소 자신이 앉던 자리에서 안건심의를 시작. 40분 정도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심의,의결된 안건은 교통부가 상정한 「항만운송사업법시행령(개)등 대통령안 2건、건설부의 「개발제한구역내 행위허가」등 일반안건 6건등 모두 8건이었다. ◎…특별한 논의없이 간단하게 8건의 안건을 심의한뒤 최병렬노동,이수정문화,조완규 교육부장관등이 「92년 임금교섭지도지침」과 「뉴키즈」사건등에 대해 보고. 먼저 최노동부장관이 『올 경제운용계획에서 제시된 총액기준 5%이내 임금인상 대상업체로 1천5백28개소를 선정했다』면서 선정이유및 기준을 설명. ◎…심의안건 가운데는 1급이상 임금이 동결된 공무원들의 여비를 현실화하는 내용의 「공무원여비규정(개)」이 특이. 이상배총무처장관은 안건설명을 통해 『임금및 공공요금 등 사회각부문의 경비가 상승했는데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출장및 여행경비는 수년동안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이번 개정안은 공무원들의 이같은 각종 비용을 현실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 개정안의 주요골자는 교통비및 숙식비를 평균10% 인상하는 것이라고 소개. ◎…이어 이문화부장관이 팝그룹 「뉴키즈 온더 블록」의 공연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 이장관은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여학생인데다 40여명이나 돼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정부가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소개. 이장관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현장에 2천명의 경찰병력과 앰뷸런스 4대를 배치했었다』고 설명한뒤 『앞으로 철저한 안전대책이 세워져있지 않은 공연은 허가하지 않겠다』고 보고. 이장관은 『앞으로 중·고교생들의 건전한 여가선용을 위해 일년에 3∼4차례 연극·영화·미술전람회등을 개최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교육·체육청소년·문화부 등 3개 관계부처가 대책마련을 위해 내일부터 실무회의를 개최키로 했다고 부연. 조교육부장관도 『청소년 주무부서장관으로서 가슴아프다』며 대책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 ◎…국무회의가 끝난뒤 정부 대변인인 최창윤공보처장관은 정부「선거홍보대책보도자료마련」이라는 일부 언론보도와 관련,『그런 자료를 보고받은바 없다』고 공식 부인.최장관은 『간혹 국회에 나가보면 보고 듣지도 못한 자료를 국회의원들이 제시해 난감한 때가 여러차례 있었다』며 작성됐다 하더라도 「실무자차원의 연구검토 서류」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 ▷의결안건◁ ◇항만운송사업법시행령(개) ◇국내여비규정(개) ▲공무원들의 여비단가 평균 10% 인상 ▲갑지,을지 2개지역으로만 구분 ◇부산·대전시 하수처리장건설사업을 위한 세계은행차관 협약 체결(안)
  • 전산착오로 합격자 바꿔/두 여학생 모두 구제키로(조약돌)

    전산처리 잘못으로 합격자를 뒤바꿔 발표해 물의를 빚었던 청주 서원대는 20일 교육부와 협의한 결과에 따라 두 학생 모두 합격자로 처리하기로 했다. 서원대에 따르면 지난 15일 합격자를 발표한 다음날인 16일 채점된 답안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무용학과에 지원한 백모양(서울 국악여고 3년)이 4교시 예체능과목에서 획득한 2점을 1점으로 컴퓨터에 잘못 입력해 최종합격자로 발표된 전모양(충북여고 3년)과 0·3점 차이로 낙방한 것을 발견,이튿날 합격자로 통보했었다는 것이다. 대학측은 지난 16일 이같은 사실을 교육부에 보고한뒤 93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무용학과 정원 1명을 줄이는 대신 학교측의 실수로 합격했다가 낙방한 전양을 올해 합격자로 처리할 수 있는지 여부를 교육부에 문의해 오다 교육부가 이를 받아 들임에 따라 전양도 합격자로 처리키로 했다.
  • 「뉴키즈 증후군」이 남긴 교훈/임영숙 문화부장(데스크시각)

    대학 3학년때 클리프 리처드란 영국가수의 내한공연이 다니던 대학의 강당에서 열렸다.이름있는 외국 팝스타의 첫 내한공연이었던 이 공연에서 보여진 여학생들의 「추태」가 당시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을때 한편으론 창피하고 한편으론 무조건 야단만 치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신촌일대에 울려퍼졌던 공연장의 괴성의 주인공들은 물론 여고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강당을 내준 대학의 학생들도 도매금으로 비난받았다.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든 클리프 리처드의 세대로서 「뉴키즈 소동」을 지켜본 마음은 착잡하다.20여년전의 괴성과 흐느낌은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고 다시 터져 나왔고 오히려 도를 더해 의식불명의 중상자를 포함,몇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광란」의 사태가 일어났다.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자신들의 우상을향해 맹목적으로 다가가는 청소년들의 여러 행태는 클리프 리처드의 세대로서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른들이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했다 해서 그 아이들만 나무랄수는 없을 것 같다.비록 공연장을 찾지는 않았지만 뉴키즈의 또 하나의 팬인 중학생 딸을 둔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 도대체 이 소동이 빚어지기전에 뉴키즈 온 더 블록이란 팝그룹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뉴키즈의 공연장을 찾은 10대소녀의 아버지들 가운데서도 소동이 빚어지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전혀 몰랐던 이들이 많을것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음악회를 찾아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별 악기 이름을 가르쳐주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발레 「호도까기인형」을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며 자녀들에게 문화교육을 시키는 서구의 교양있는 부모들처럼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자녀들의 관심이 어디에가 있는지는 알아야 함에도 우리들은 무관심하다. 그 무관심과 방임속에서 우리의 미래인 10대들은 말초적이며 충동적인 대중소비문화에 빠져들고 있다.응시생의 25%만이 통과할 수 있는 좁은문의 대학입시 관문앞에서 홍역을 치르는 청소년들에게 대중문화가 위안과 안식을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도피처 역할을 하고 있는것이다. 「영계」를 찾는 비뚤어진 어른들의 향락문화 한켠에서 인신매매범이 극성을 부려도 『우리 가족만 무사하면 괜찮다』는 천민자본주의 문화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돈을 번다. 공항에서의 소동으로 사고가 예상됐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한 주최측,뉴키즈 공연에 열광하는 외국관객들의 반응을 TV로 방영하며 내한공연 녹화권에 눈독을 들인 방송사,국내외 연예·스포츠 스타의 팬클럽 결성을 유도하여 독자확대를 꾀하는 일부 청소년잡지들­ 돈벌이만 생각한 어른들에게 이번 사건의 원초적 책임이 있다. 결국 이번 소동은 우연히 빚어진 것이 아니라 비뚤어진 우리 사회의 문화 토양에서 배태된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우상과 함께 성장기의 방황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드문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뉴키즈공연이 불상사로 얼룩진 것은 그들에게 자기 절제를 가르치지 못한 가정교육과 평소 욕구분출의 기회를 마련해 주지 못한 무관심,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그릇된 자본주의 때문이다. 공연현장을 취재한 젊은 기자는 『부상자가 생긴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있을수 있는 청소년들의 열광에 어른들이 과잉반응을 보인듯 싶다』고 말했다.「열광」과 「광란」사이에 놓인 시각차이를 극복하고 청소년들이 건전한 대안문화를 즐길수 있는 적극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인듯 싶다.어른들에게도 방망이로 두더지를 두드리며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놀이가 필요한데 우리의 청소년들은 고작 심야의 라디오 프로나 TV·불건전 비디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 파렴치한 상혼/김재순 사회1부기자(현장)

    ◎「뉴키즈」공연 주최측 사고처리 외면 『외국가수를 보고 저토록 미쳐 날뛰는 아이들속에 내자식도 끼어 있다니…』 『아무리 흥행수입을 위한다지만 너무 한것 아닙니까』 미국의 5인조 팝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이 열린 17일 저녁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10대들의 광란으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흥행수입만을 노린 상혼의 희생양이 된 청소년들은 학교수업도 잊고 이른 아침부터 책가방대신 갖가지 플래카드와 망원경·카메라를 들고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최측은 더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대주변에는 관객들을 앉히지 않는다는 관례마저 깨뜨리고 정원인 1만3천명을 훨씬 넘는 1만7천여명을 입장시켜 대혼잡을 가중시켰다. 요란한 굉음과 불빛을 앞세우고 공연이 시작되자 「악」하는 괴성과 함께 그룹멤버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는 여학생들이 꽃과 선물·방석 등을 던지며 앞으로 앞으로 몰려나갔다. 무대앞쪽에 앉아있던 여학생 1백여명이 이들에게 깔려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는등 부상자가 속출했다.그러나 주최측인 서라벌레코드사는 서투른 아르바이트학생 20여명을 시켜 다친 학생들을 임시진료실로 옮기는 데 그쳤다. 아무런 사고 예방대책도 없이 좌석도 없는 마루를 오히려 특별석으로 둔갑시킨 그릇된 상혼이 대형사고를 유도한 셈이다. 사고에 이어 공연이 중단되고 병원 앰뷸런스 20여대가 부상자들을 태워 날랐다. 한데도 주최측은 사고처리와 사태의 수습에 주력하기보다는흥행만을 생각한듯 남아있는 청소년들에게 『공연이 곧 다시 시작될 것』이라며 3시간이 넘게 붙잡아 두었다. 공연장 밖에는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2백여명의 학부모들이 공연의 중단과 환불을 요구하며 책임자를 찾았으나 주최측이 마련한 상황실에는 귀청을 찢는 비명을 토해내는 여학생들과 아르바이트학생 5∼6명만 보이고 정작 주최측은 아무도 없었다. 하오11시35분쯤 재개된 공연이 끝난뒤 남은 것은 어지러운 쓰레기와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10대들의 아우성 뿐이었다.
  • 소녀들의 광란(사설)

    기성세대들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될 수 없는 해괴한 일이 일요일 낮 김포공항에서 일어났다.낯선 외국인 팝그룹 하나가 공연하러 온 것을 맞으러 나온 1천여 소녀팬들이 「광란」을 해대는 바람에 공항의 업무가 한때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17일밤 공연무대에 뛰어올라 소란을 피우다가 공연을 중단시키고 숱한 관객이 부상을 입는 소동까지 벌였다. 거의가 여자 중고교 학생들로 이뤄진 청소년들의 집단히스테리 증세같은 이런 소란은 가히 「신인종」을 보는 것같은 충격을 주었다. 영웅이 없는 현대에는 연예계의 스타들이 젊은이의 열광의 표적이 된다.유명한 팝송이 전파하는 속도는 첨단적인 전파매체의 회로를 타고 순식간에 세계를 휩쓴다.「극성팬」들이 그들의 표적을 한번이라도 접근해 보고 싶어서 광란의 소동을 피우는 풍속도 똑같은 속도와 질량으로 세계를 돌아 우리에게까지 전파된 것이다. 성장기는 물론 어른이 되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런 문화와 접해보지 못했던 어른들로서는 종말을 보는 것처럼 암담한 느낌을줄 일이지만 당사자들로서 심상하고,한때 스쳐가는 약간 강한 「바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므로 어른들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도 아니라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양상을 놓고 보면 그냥 낙관만 하며 웃어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않고 무엇보다도 이런 일에 대응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적잖이 걱정스런 부분이 있다.그토록 야단스럽게 서울에 「입성」한 뉴키즈그룹 자신이 팬들의 이 광란에 「솔직히 말해 두렵다」고 말할 지경이었다.너무 흥분하지 말도록 가라앉혀 달라고 주최측에 당부할만큼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열광을 넘어서는 광란적 현상이었음을,그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팬들의 집단열기에도 그 나름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우리의 어린 소녀팬들에게서는 그 점이 아주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나이든 세대들은 윽박지르고 억눌러 나무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 열광이 광란이 되지 않도록 길잡아 주는 노력은 해야할 것이다. 소녀들이 이토록 극성을 부려가며 소요극을 벌이는 것에는 방송매체나 이들 연예행사를 주관하는 측의 의도적인 부추김이 다분히 작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느끼게 된다.방송매체의 경우 쇼프로의 공개방송이나 비슷한 행사에서 여학생들을 집단으로 동원하고 그들이 지르는 기성이나 극렬한 행동을 프로그램의 배경효과로 활용하여 은근히 부추기는 일이 많다.또한 이런 일을 업종으로 하는 사람들의 상업적 부추김 또한 적지않은 것이다.연예인들 또한 철없는 그들의 분별없는 행동을 확대 재생산하여 인기관리에 이용하는 짓을 꾀 하고 있다. 이와같은 상업주의와 이기주의가 개입하여 청소년들을 잘못 유도하는 일은 어른들이 반성해야 한다.어른들이 사려 깊으면 많은 피해는 감소될 수 있다.특히 부모나 학교 스승들은 그같은 극단적 광란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도록 마음써야 한다.그것이 허망하고 의미없는,분별없는 행동임을 터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여가문화로 이끌어주어 최소한의 질서와 교양이 바탕을 이루도록 노력해 주어야 할 것이다.
  • 여학생 공고진학 늘고있다/작년 3천6백50명 재학

    ◎3년새 6백명 증가/전자과에 최다… 1천명 상회 여학생의 공업계고교 진학이 늘고 있다. 9일 교육부에 따르면 공업계고교에 재학중인 여학생은 89년 3천7명이던 것이 90년 3천2백20명,지난해에는 3천6백50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공업계고교 취업이 잘되고 또 산업현장의 여성기능인력 수요도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현재 여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 학과는 공업계고교에 개설된 45개 학과중 13개이다. 이 가운데 전자과에 1천59명이 재학,가장 많으며 여성에게 적합한 디자인학과·화공과·건축과·식품공업과에도 각각 7백71명,4백69명,4백16명,4백12명이 진학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학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기계과·토목과·전기과·자동차학과등 중장비학과에도 각각 14명,9명,5명,1명이 재학하고 있다.
  • 정신대 만행/「사과」엔 높은 소리… 「배상」엔 미온적

    ◎두 얼굴의 일본사람들/“다끝난 일” 정부·시민 소극자세 일관/일부선 “과거죄악 청산,새 출발 해야” 한일간 비극적 역사의 한부분인 종군위안부(정신대)문제가 서울과 도쿄에서 이슈화되고 있다.그러나 강제연행의 당사자인 일본의 대응은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20일 『종군위안부문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때 참기 어려운 문제』라고 전제하고 이들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을 지적했다.그러나 가토(가등)관방장관은 『한일간 보상의 문제는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끝났다』며 정부의 보상가능성을 배제했다.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이같은 이중성은 일반 시민들의 여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도쿄의 한 시민단체가 개설한 「종군위안부 110번」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화응답자중에는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제와서 일본의 치부를 폭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의 일부 양식있는 사람들은 과거침략에 대한사죄와 보상을 적극 주장한 자,종군위안부문제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굴한 사람도 일본 중앙대의 요시미(길견)교수였다. 요시미교수는 『일본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앞으로 4년간이 과거침략사를 청산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하고 사죄와 보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는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출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에는 이같이 양식있는 목소리가 있다.그들은 일부 교수 변호사 언론인 사회단체 등이다.이들은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종군위안부 110번」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도 보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일부는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식있는 소수」에 불과하다.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없다.정부도 그들의 정당한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군의 관여를 부인해온 것은 군의 관여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보상문제로 발전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은 전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일부에서는 민간차원의 보상을 주장하기도 한다.그러나 일본정부의 기본입장은 김학순씨 등이 제소한 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사법적 판결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판결의 결과는 알 수 없으며 또 언제 판결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본정부가 사과를 하면서도 보상에 소극적인 것은 그들의 전형적인 2중적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일본은 말로는 사죄하면서도 행동은 또 다르다.일본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2중적 행동때문이다. 일본의 보상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한일간의 외교마찰로 비화될지 모른다.한국정부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배상청구문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만약 한국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일본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양국간의 관계는 악화될 우려마저 없지않다. 미야자와 총리는 노태우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한일협력관계를 강조했다.그러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는 진정한 과거청산 없이는 불가능하다.과거없는 미래는 없다. ◎“나는 죄인” 세 일인의 증언/“숨돌릴 틈도없이 「다음」 받으라” 강요/“몸 좋고 가난한 학생 중점선발” 특명 일본의 한 시민단체는 지난 14일부터 3일간 「종군위안부 110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당시의 경험담 및 관련정보를 수집했다.종군위안부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아사히(조일)신문은 21일 이 프로그램 내용과 함께 그동안 들어온 2백30건의 제보가운데 3명의 증언을 보도했다.증언내용을 소개한다. 남경주둔 일본군 부대에 소속되었던 나는 3회정도 위안소를 출입했다.위안소에는 고참병사가 차례를 무시하고 새치기하는 것을 막기위해 별도의 감시병이 배치되었다.한사람당 15분이 할당되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때는 『빨리 끝내고 나오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위안부들이 허리띠를 채 매지도 못한채 다음 사람을받는 경우도 있었다.위안소출입은 일반병·하사관·장교등 계급에 따라 시간대가 달랐다.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나는 군연금을 받고 있다.전위안부들에게도 어느정도의 보상은 있어야 한다. 당시 19세였던 나는 2차대전 말기 해남도의 해군병원에서 종군 간호부로 일했다.매월 1회정도 종군 위안부들이 3대의 트럭에 실려 성병검사를 받으러 왔다.트럭 1대에는 보통 7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일본인·대만인도 있었다.의사가 검진을 했지만 매독증상이 있을 때는 간호부가 선정했다.나보다 한두살 많은 언니들에게 『아프냐』고 물으면 『슬프다』『아이고』라며 눈물을 흘렸다.임신한 사람들도 있었다.나는 지금도 간호부로 계속 일하고 있다.환자중에는 재일 한국인도 있다. 나는 한국에 있는 국민학교교사로 일했었다.6학년 담임이었던 1943년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가능한 한 체격이 좋고 집이 가난한 여학생을 선발하라』는 지시를 받고 8명을 선발했다.그들은 도야마(부산)에 있는 비행기부품공장으로보내진것 같았다.일본에 돌아와서도 당시 선발됐던 어린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4년전 한국을 방문,나에게 배운 제자 몇명을 만날수 있었다.그러나 내가 선발한 8명은 누구하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제자들로부터 『그들은 위안부가 됐다.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행방불명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 정신대 피해 곧 구체조사/교육부/해방전 설립 초·중교 3천곳 대상

    교육부는 18일 노태우대통령이 정신대문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해방이전에 설립된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정신대피해사례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교육부는 1945년 당시 국민학교는 2천8백34개교,중학교는 1백66개교로 이들 학교에서 상당수의 여학생들이 정신대에 동원됐을 것으로 보고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신대피해조사는 개별사례중심이 아니라 학생가운데 몇명이 정신대에 끌려갔는지 전체 피해규모를 파악하는데 초점이 모아질 것』이라면서 『학적부조사는 학교장 책임하에 이루어지도록해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받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역사의 아픔」에 눈감는 자 누군가/일의 정신대만행에 부쳐

    ◎일관성 분노로 머물면 또다른 죄악 오늘,일본인 남자 관광객들이 줄줄이 데리고 다니는 이른바 한국인 콜걸들을 보면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그들의 배설을 받아내는 공동변소 역할을 하다가 숨져간 20만명의 어린 소녀들을 생각한다. 한국에 놀러온 것은 그렇다치자.어린 나이에 인육의 노리개로 유린당하다가 숨져간 그 무수한 영혼들을 생각한다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다녀도 부족할 판인데 대낮에 한국의 거리에서 돈주고 산 한국 아가씨들을 버젓이 데리고 다니면서 부끄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는 것을 보면 한국 남자로서 분이 솟구치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과거에는 총칼로써 한국 여인들을 유린했는데 지금은 돈으로 한국 여인들을 사고 있으니 그들의 본성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해방 47년­이렇게 기나긴 세월이 흘렀는데 왜 이제서야 정신대 문제가 세상에 알려져 전국이 온통 분노로 들끓고 있는 것일까.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일본어를 일본인들처럼 구사할줄 아는 일본어 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누가 이에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까.죽 끓듯이 끓어오르는 분노.이런 분노는 지금까지 여러 번 있어왔지만 얼마 못가 금방 식어버리고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정신대의 참상을 목격한 자,그들을 동원하는데 적극 참가한 자,징집되어 떠나는 그들을 모아놓고 그앞에서 고무적인 시를 낭송하던 친일 문인들,그 모든 것을 기록하던 자­그들은 지금까지 모두 침묵해왔고 오늘도 쉬쉬하고 있다.오히려 일본쪽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쪽에서는 숨을 죽인채 비굴하게 눈치만 살피고 있다.그 비굴함과 야비함이 오늘까지 펄펄 살아남아 우리의 현대사를 주름잡아왔다고 생각하니 이 땅이 마치 소돔과 고모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대 문제를 소재로 해서 필자가 「여명의 눈동자」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7년전인 1975년의 일이었다.필자가 알기로는 그때까지 정신대 문제를 다룬 국내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그렇게 작가도 많은데 왜 정신대 문제를 다룬 작품은 하나도 없을까.일본어세대의 작가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집필을 시작하면서 알게된 것은 우리 국내에는 정신대에 관해 정리되어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하는 수 없이 나는 일본쪽에서나마 빈약한 자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여명의 눈동자」는 처음에는 정신대 문제만을 다루려고 구상했던 작품이었다.그런데 쓰다보니 욕심이 생겨 무대가 방대하게 넓어지게 되었던 것이다.「여명…」에 나오는 여주인공 윤여옥은 17세의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가 참혹한 시련을 겪는다.그녀의 나이를 17세로 정하면서 당시 나는 나이를 너무 어리게 잡았다고 생각했었다.17세의 어린 여학생이 감당하기에는 공동변소 생활이 너무도 참혹하고 엄청났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밝혀지고 있는 자료들을 보면 12,3세의 국민학교 여학생들까지 정신대에 끌려갔었으니 거기에 비하면 17세의 여옥은 나이든 축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군은 한 곳을 점령하면 닥치는대로 여자를 강간하고 강간 끝에는 대검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다.마치 성도착증환자처럼 여자만 보면 날뛰고 성병이만연되자 그것을 예방하는 목적에서 젊고 깨끗한 조선 소녀들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징집해 갔던 것이다. 「돌격지상」­.이것은 일본군이 정신대,이른바 종군위안부와 관계를 맺을 때 사용하던 콘돔에 찍혀있던 글귀이다.무엇을 위한 돌격지상이었을까? 오늘의 일본인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 한학급 30명중 29명 징발/부산 낙민국교

    ◎「정신대」 전국서 1백25명 밝혀져 일제가 국교생들을 정신대에 강제동원한 사실이 16일에도 경남 마산시등 전국 각지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날 현재 국교생을 정신대에 징발한 사실이 학적부나 관련자의 증언에 의해 확인된 것은 전국 20개교,1백25명으로 집계됐으나 앞으로 그 숫자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 교육청은 16일 현재 낙민국교(구 유락국교)에서 51명,영도국교에서 3명등 2개 국교에서만 54명이 일제정신대에 동원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여자국교였던 낙민국교의 경우 1944년 6학년 3반에서는 전체 학생 30명중 29명이 일본인 담임교사의 권유로 차출됐음이 확인됐다. ◎남자국교생 13명/소년항공대 차출 한편 일제는 부산시내 부민·봉래국교 등 2개 국민학교 남자어린이 13명을 소년항공병등 군인으로 징발한 사실이 학적부에서 확인됐다. 【대구=이동구기자】 대구 효성국교(교장 지영복·62)에서도 1945년 국교생 6명이 정신대로 끌려간 것으로 16일 밝혀졌다.효성국교 관계자는 『당시 13살인 6학년 여학생 2명이 졸업직후 정신대로 끌려갔음을 학적부에서 확인했으나 이들의 신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김동준기자】 1944년 여름 인천 영화국교 6학년 여학생 8명이 정신대로 끌려간 사실이 졸업생 최모씨(61·여·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에 의해 16일 밝혀졌다. 최씨는 『전쟁이 치열했던 1944년 여름 여자정신대에 지원하면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일제의 유혹에 현혹된 같은 반 학우 8명이 일본으로 떠났다』면서 친구 8명과 떠나던 날 학교 정문에서 정신대복을 입고 당시 교장과 담임,그리고 학우 64명등이 기념촬영한 사진을 내보였다. 최씨는 또 『여학생들만 다녔던 영화국교는 기독교계열 학교였기 때문이었는지 정신대로 징용된 학생들이 적은 편이었으며 정신대로 끌려간 8명은 중위권 성적의 신체건강한 친구들로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며 『어린 소녀들을 무자비하게 끌고간 일제의 잔학함에 치가 떨린다』고 덧붙였다. 【마산=강원식기자】 경남 마산시 회원구 산호2동 김복선씨(60·여·보험회사원)는 16일 『1944년 당시 성호국민학교 4학년(12살)이었는데 일본인 담임 니시오카 세츠코 선생(여·당시 35세가량)이 정신대에 갔다오면 중학교에 진학시켜 주겠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친구 4명과 함께 정신대에 들어가 일본 도야마현소재 비행기공장에서 2년동안 일한 뒤 45년 12월 귀국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기숙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같은 또래의 조선여자 1백여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점심은 빵조각으로 때우는등 하루 두끼의 식사를 제공받았고 12∼15시간씩의 중노동에 시달리며 월급없이 잡비정도만 받는등혹사당했다』고 말했다. 한편 마산 성호국교는 이날 당시의 학적부를 찾아 김씨등 4명(1명은 미확인)이 정신대에 끌려가 45년 3월31일 퇴학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재입학,46년 6월에 졸업한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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