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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버노,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다” 또 터진 美대법관 지명자 성추문

    “캐버노,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다” 또 터진 美대법관 지명자 성추문

    트럼프, 증거 나오면 지명 철회 뜻 시사성폭행 추가 의혹이 잇따르고 있는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폭로가 터지면서 ‘캐버노 쇼크’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미 언론들은 “캐버노 지명자의 스캔들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정계의 뇌관으로 떠올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인준 청문회를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은 줄리 스웨트닉(55)이라는 여성이 변호사를 통해 낸 성명을 통해 메릴랜드주의 게이더스버그 고교에 다녔던 1980년대 초 한 하우스파티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 현장에 캐버노 지명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스웨트닉은 당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약을 탄 술을 먹게 해 항거 불능 상태가 되게 한 뒤 성폭행하려고 화장실 옆에 줄 서 있던 현장을 묘사했다. 스웨트닉은 “1982년 나는 집단 강간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됐다”며 “거기(대열)에는 브렛 캐버노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스웨트닉은 그러나 캐버노가 직접 성폭행을 했는지 아닌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캐버노 지명자는 즉각 의혹을 전면 부인했으나 스웨트닉에 이어 네 번째 성폭행 의혹을 제기하는 익명의 서한이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에게 배달됐다고 미 NBC방송이 전했다. 앞서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캐버노 지명자의 예일대 동창생이라고 밝힌 여성 데버라 라미레스(53)의 성추행 피해 사실도 보도했다. 맨 처음 캐버노 지명자의 성폭행 미수 의혹을 실명으로 주장한 팰로앨토대 크리스틴 포드(51) 교수는 27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그동안 캐버노 지명자를 줄곧 엄호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성폭행을 저지른 사실이 확인된다면 지명을 철회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서울 중·고교 내년 2학기부터 ‘두발 자유화’

    서울 중·고교 내년 2학기부터 ‘두발 자유화’

    염색·파마는 공론화 과정 거쳐 시행 학교 현장 “취지 공감하나 월권” 지적 교총 “두발·복장 학교 자율결정 존중을”‘여학생 머리 귀밑 7㎝’, ‘남학생은 단정한 스포츠형 머리’ 등으로 규정된 중·고교 학생의 두발 길이 제한이 서울에서는 내년 2학기부터 완전히 사라진다. 파마·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로워진다. ‘학생 기본권을 존중하겠다’는 취지인데 현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중고생의 두발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두발자유화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두발 길이는 완전히 학생 자율에 맡기고 ▲염색·파마 등 두발 상태도 학생 자율에 맡기는 것을 지향하도록 하되 학교 구성원 간 의견 차를 고려해 내년 상반기까지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각 학교는 새 두발 규정을 내년 1학기까지 학생생활규정(학칙)에 담아야 한다. 조 교육감은 ‘두발 자유’를 다시 꺼내 든 이유에 대해 “학생과 시대의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머리카락과 복장을 자유롭게 해 달라는 학생 민원이 많았고 교사 중에도 학생 두발·복장을 단속할 때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특히 ‘학교장 등이 학생 의사에 반해 복장·두발 등을 규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서울학생인권조례가 2012년 제정된 뒤 두발 길이 제한이 폐지 추세라는 점도 고려됐다. 현재 서울 중·고교 중 15.7%(708곳 중 111곳)에만 길이 제한 학칙이 남아 있다. 서울교육청은 길이 제한 학칙이 있는 학교들을 개별 접촉해 폐지를 설득할 계획이다. 염색·파마 등 헤어 스타일 문제는 조금 다르다. 조 교육감도 이날 “파마·염색 여부를 학생 자율에 맡길 수 있느냐는 논쟁이 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다만 규제를 그대로 둔다고 해도 학교장, 학부모가 학생과의 합의를 통해 제한 조항을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청은 염색·파마 자유화 여부를 두고 내년 1학기 학교별 학생·교사·학부모 등의 토론·설문조사를 거치고, 최종 의사 결정 땐 학생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할 방침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취지는 공감하나 학교 자율에 맡길 일을 교육감이 나서 방향까지 정해 준 건 월권”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염색 허용 여부를 학교 구성원이 알아서 정하도록 하겠다면서 “학생 자율을 권유한다”고 언급한 건 ‘가이드라인’이라는 지적이다. 한 여고 교사는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 짙은 갈색 등 무난한 염색은 암묵적으로 허용한다”면서 “굳이 교육감이 두발 자유를 ‘선언’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두발 규정 완화에는 동의하지만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두발·복장 관련 규정은 학교 자율로 정하게 돼 있기에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염색·파마는 성장기 학생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자유화된다면 고가의 파마를 할 수 없는 학생들이 열패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 교육감은 “염색 등 두발 상태를 통해 계층 차이가 드러날 것 같지는 않다”면서 “염색 부작용 정보 등은 공론화 때 학생들에게 충분히 제공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당신도 ‘놈놈놈’ 비하하는 ‘다문화맹’은 아닙니까

    당신도 ‘놈놈놈’ 비하하는 ‘다문화맹’은 아닙니까

    차별의 언어/장한업 지음/아날로그/240쪽/1만 4000원 #1.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백인과 흑인이 각각 길을 잃는다. 갈 길을 알려 달라는 부탁을 받은 한국인들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백인에게는 친절하게 응답하거나 손수 길을 인도하지만 흑인에게는 데면데면 응수하거나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2. 어릴 적부터 발레를 익힌 베트남 여학생이 한국 대학교에 유학을 온다. 그는 몸이 굳는 걸 막기 위해 틈틈이 발레 강습소를 찾아 몸을 풀면서 한국인 강사에게 지도를 부탁한다. 강사가 신기한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에서도 발레를 가르치나요?”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피부색에 따라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불평한다. 백인에게는 비굴할 만큼 친절하지만 황인이나 흑인에게는 냉담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베트남 유학생의 발레는 어떤가. 따져보면 19세기 중반부터 약 100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에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발레가 유입됐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도 발레를 배우냐’는 질문을 받는 베트남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한국인들은 ‘다문화 사회’를 애써 강조하지만 현실의 태도는 영 딴판이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자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나와 남을 가르는 차별의 몸짓이며 말이 앞선다. 다문화사회에 천착해 온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단일민족주의와 집단주의를 ‘차별의 언어’를 통해 꼬집는다. 그 차별과 비하의 언어는 중국인과 일본인, 서양인을 낮춰 부르는 ‘떼놈’, ‘왜놈’, ‘양놈’의 이른바 ‘놈놈놈’ 이론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떼놈은 ‘때가 많아서’, ‘떼를 잘 써서’쯤의 중국인에 대한 속칭이다. 하지만 그 어원인 ‘되놈’의 ‘되’는 북쪽을 가리키는 고유 한국어다. ‘왜놈’도 왜소한 일본인쯤으로 알고 입에 올리지만 본래 ‘왜놈’의 ‘왜’는 난장이 왜(矮)가 아닌 왜나라 왜(倭)다. 다문화 사회 한국에서 만연한 ‘놈놈놈’류의 편견과 비하를 저자는 ‘다문화맹’이라고 부른다. 그 ‘다문화맹’의 흔적은 이탈리아 스파게티와 베트남 쌀국수에서 쉽게 찾아진다. 베트남 쌀국수라 한다면 스파게티도 이탈리아의 밀국수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땅에 그토록 많은 차별의 언어가 횡행하는 이유는 뭘까. 그 원인은 역시 단일민족주의처럼 민족과 자기를 우선시하는 중심주의와 집단주의다. 실제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와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넘쳐난다. 외국에서는 내 남편, 내 아들이라 부르지만 한국인들은 늘상 우리 남편,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우리’의 어원은 울타리다.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지만 그 밖의 사람에게는 차단막이 될 수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인 박노자는 한국인의 우리주의와 집단주의를 이렇게 꼬집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우리 것’은 본래 좋고 우월한 것이며 우리 속에 사는 ‘나’는 별로 잘난 게 없어도 우리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당히 잘난 것처럼 여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존재하는 만큼 언어를 잘못 쓰면 잘못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일갈이다. “20세기 말부터 이민자가 대거 들어오면서 다문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저자는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인식을 전환하는 첫걸음은 자신과 자기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성찰입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중국 청소년 10% 인터넷 중독 심각…치료 권고

    중국 청소년 10% 인터넷 중독 심각…치료 권고

    중국 청소년 가운데 인터넷에 중독,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이른 이들의 비율이 10%를 넘어섰다. 중국 국가위생위(国家卫健委)·는 지난 3년 사이 중국 청소년의 인터넷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중독 상태에 이른 이들의 수가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26일 이 같이 밝혔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올 초 인터넷 중독을 ‘정신질환’의 한 분야로 포함시킨 바 있다. WHO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청소년 인구 중 약 6%에 달하는 이들이 인터넷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문제는 중국 보건위원회가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 국내 거주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자 비율이 10%를 초과, 세계 평균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인터넷 중독자를 조기 발견, 치료할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과학원 ‘루린’ 원사는 “현재 이 분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등 방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에 대해서는 기존의 불안이나 우울증 등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정신 질환과 동일한 수준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중국 청소년의 과체중 비만자가 크게 증가하는 등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국가위생위는 중국 청소년 가운데 과체중에 해당하는 인구 비율이 무려 16%에 달한다면서 적당량의 식사 조절과 과학적인 운동이 병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6~17세 청소년 가운데 과체중에 해당하는 비율은 9.6%, 비만단계에 접어든 인구가 6.4%에 달했다. 이 가운데 남학생의 비만율이 여학생의 비율보다 높았으며, 도시 거주자가 농촌 거주자보다 비만율이 높게 측정됐다. 또, 청소년의 과체중 문제가 증가하면서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등을 앓는 아동의 수도 동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중국질병통제센터의 정강장 소장은 “성장기 청소년의 비만 체중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체중을 줄이기 위해 맹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면서 “하루 삼시세끼 식사 시 곡물위주의 식사를 하되, 채소와 과일, 계란 등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식품을 즐겨 먹되, 일평균 약 300g에 달하는 우유, 두유 등을 섭취하고 소금이나 설탕 등이 과다하게 포함된 간식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여기는 남미] 괴물인줄 알고 죽인 동물, 알고보니 멸종위기종

    [여기는 남미] 괴물인줄 알고 죽인 동물, 알고보니 멸종위기종

    서식지에서 멀리 떠나 배회하던 멸종위기의 동물이 몽둥이찜질을 당하다 결국 죽었다. 아르헨티나의 지방 산티아고델에스테로 경찰은 22일(현지시간) 새벽 2시쯤 한 통의 신고전화를 받았다. 신고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동네에 괴물이 출현해 여학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싸우고 있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며 긴급출동을 요청했다. 괴물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경찰은 장총까지 챙겨 서둘러 현장으로 출발했다. 신고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경찰이 도착한 현장엔 여학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여학생들 앞에는 의문의 생물체가 쓰러져 있었다. 신고자가 괴물이라고 표현한 동물이 분명해 보였다. 여학생들에 따르면 이날 자정을 넘겨 반려견들이 심하게 짖는 소리를 듣곤 창밖을 살펴보다가 '괴물'을 목격했다. 개와 여우의 중간 모습을 한 '괴물'은 유난히 다리가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론 누런색이지만 입과 발목은 검은색이었고, 짧은 꼬리는 은색이었다. 괴불이라는 표현이 무리는 아니었다. '괴물'은 반려견들과 길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지방에선 반려견들을 앞정원에 자유롭게 풀어놓는 경우가 많다. 자칫 끔찍한 유혈극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여학생이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물이 반려견들과 싸우고 있었다"면서 "겁이 났지만 반려견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전화로 부른 친구들도 몽둥이를 들고 합세했다. 여럿이 몽둥이를 들고 다가서자 '괴물'도 본능적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여학생들은 물러서지 않고 '괴물'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동물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격렬한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죽은 생명체는 괴물이 아니었다. 동물은 스페인어로 아구아라구아수라고 불리는 갈기늑대였다. 남미 일부 지역에 서식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선 만나보기 힘든 동물이다. 멸종위기에 처해 보호를 받는 갈기늑대는 그 모습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경찰은 "여학생들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라 정말 안타깝다"면서 "쉽진 않겠지만 갈기늑대가 이곳에서 발견된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디아리오파노라마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월드피플+] 자전거 타고 10년간 23개국 세계여행한 칠순 노인

    [월드피플+] 자전거 타고 10년간 23개국 세계여행한 칠순 노인

    중국의 한 70대 노인이 10년간 자전거를 타고 23개 국가와 중국의 33개 성을 여행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화상보(华商报)는 최근 허난 난양시에 사는 쉬위쿤(徐玉坤, 71)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의 33개 성과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의 23개 국가, 총 10만km를 자전거로 달렸다. 다음 목적지인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여행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최근 정저우의 거리에서 기행고사전(骑行故事展)을 열고 있다. 그는 젊어서부터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꿈을 꿔왔다. 하지만 자식들을 키우고, 농사일을 하느라 꿈을 찾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50대 후반, 꿈에 대한 열망이 강렬해지면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식구들 모두 그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그의 여행을 강렬히 반대했다. 결국 2007년, 60살이 된 그는 ‘더는 꿈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식구들 몰래 집을 나섰고, 이튿날에야 식구들에게 여행 사실을 알렸다. 난양에서 베이징까지 1000여 km을 12일 동안 자전거로 달렸다. 이후 북쪽으로 이동해 다롄, 단둥, 장백산, 모허(漠河) 등지까지 간 뒤 하얼빈, 창춘, 선양까지 자전거로 여행했다. 2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7번의 자전거 여행길에 올라 전국 33개 성을 돌았다. 하루 최소 10시간, 100km가량을 자전거로 달렸다. 대부분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가져간 냄비에 라면이나 만두를 덥혀 먹었다. 그는 여행 내내 ‘최소한의 돈을 쓰고, 최대한 많은 길을 간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2010년 이후부터 2016년 11월까지는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23개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 한밤중 곰을 만나 한참을 도망쳐 달리는 등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 또한 많았다. 2014년 독일 여행 중에는 한 독일인이 노숙하는 그에게 아침 식사를 주며 집으로 초대했다. 유럽 여행 중에는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길을 잃고 서 있는데 여학생 두 명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학생은 그에게 보조 배터리와 목도리를 선물로 건넸다. 그는 “큰일은 아닐지라도 길에서 만난 사람의 작은 친절은 큰 감동이었다”면서 “여행 중 이런 감동을 느낀 순간이 부기지수였다”고 전했다. 그는 여행 중 ‘환경보호, 저탄소생활’이라는 깃발을 꽂고 자전거 여행을 한다. 비록 최종 학력은 중졸에 불과하지만, 세계를 돌며 생생한 삶의 지혜를 쌓고 있다. 그는 “세계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한다. 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중 한 페이지만을 본 것과 같다”면서 “여행을 하면서 시야와 가슴이 넓어졌고, 지식은 풍부해졌으며, 지병이었던 심장병과 위장병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완쾌했다”고 전했다. 또한 “마음의 크기에 따라 무대의 크기도 달라진다. 생명은 한정되었고, 난 내 생명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살아야 한다면, 멋지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남겼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박현갑의 틈새보기] 소년나이, 13세와 14세 차이

    [박현갑의 틈새보기] 소년나이, 13세와 14세 차이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최근 유튜브 인기스타 중에 초등학생 창작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100번까지 어떻게 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영상물로 조회수 110만여건을 기록한 12살 어린이도 있죠. 이처럼 창의성을 바탕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어린이도 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로 부모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7월 인천의 13세 여중생이 또래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해당 남학생은 지난 2월에 이 여학생을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14세 미만이라 형사처벌은 받지 않습니다. 사회봉사명령이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 대상일뿐입니다. 이 여학생의 극단적인 선택과 성폭행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노가 강했습니다. 아버지를 흉기로 찌르기도 2년 전에는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11살 초등학생 아들이 경찰에 붙잡힌 일도 있습니다. 2016년 1월 7일 경기도 김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학생은 오후 10시 47분쯤 자신의 방에서 아버지 B(55)씨의 배를 흉기로 한 차례 찔렀습니다. 학생은 경찰조사에서 “아버지가 평소 자주 폭행을 했고 사건 당일에도 집에 늦게 귀가한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홧김에 찔렀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 학생 역시 만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이어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지난 6월 26~27일에는 중·고생 10명이 여고생을 노래방으로 불러내 노래소리를 크게 한 상태에서 1시간 30분동안 폭행한 뒤, 얼굴을 가리고 관악산으로 데려가 성추행과 폭행을 한 일도 있습니다. 경찰은 가해청소년 10명 중 9명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만 14세 미만인 중학생 1명은 가정법원으로 넘겼습니다. 검찰로 송치된 9명 중 혐의가 무거운 7명은 구속된 상태입니다. 이 사건 피해자 언니는 지난 7월 3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여고생이 중·고생에게 관악산으로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했다. 경찰이 수사 중인데도 가해자들은 태연하게 SNS를 하고 있다. 한국은 나이가 어릴수록 처벌하기 어렵다”며 소년법 폐지나 개정을 청원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잇단 청소년 강력범죄 발생으로 처벌강화를 외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소년법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민청원 47번째 답변자로 나서 소년법상 형사 미성년자 상한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소년범죄 예방가 소년범 교화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소년법 변천 소년법은 1958년 7월 법률 제489호로 제정·공포된 후, 지금까지 여러차례 개정되었습니다. 최초 제정당시 소년의 기준은 20세 미만이었으나 현재는 19세 미만을 소년으로 규정(2조)하고 있구요. 범죄소년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최대 15년형까지만 유기징역을 내릴 수 있습니다. 촉법소년(4조)은 최초 제정당시에는 12세 이상 14세 미만이었으나 2007년 법 개정으로 현재는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바뀌었습니다. 촉법소년은 죄를 지었으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며 보호처분만 받습니다. 10세 미만은 보호처분 자체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국회에는 26건의 소년범죄 관련 개정 법률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0세 이상 14세 미만’에서 ‘10세 이상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이 핵심입니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성인처럼 취급하여 처벌의 상한을 높이는 방안도 있습니다. 사형 또는 무기형의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형으로 처할 경우, 15년 유기징역으로 한다는 것을 사형시에는 무기징역으로, 무기형을 내릴 때에는 20년으로 높이는 방안도 있습니다. 그리고 징역 또는 금고를 선고받은 소년에 대하여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는 형의 집행 기간도 늘림으로써 가석방을 어렵게 하려는 방안도 제안됐구요.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형사미성년자 기준이 14세 미만인 나라는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입니다. 13세 미만은 프랑스, 호주나 영국은 10세 미만입니다. 13세와 14세, 어떤 차이 있나? 형사 미성년자 상한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한살 낮추면 13세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올 상반기 청소년범죄 통계에 따르면 형사미성년자 중 10~13세 범죄는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13세 범죄만 놓고 보면 14.7% 늘었습니다. 이 통계는 정부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 미만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하는 주요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상곤 장관은 “초등학생은 형사 미성년자로 남기고, 중학생부터는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경우, 범죄 기록이 남거나 교도소에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같은 13세라고 하더라도 학교급에 따라 처벌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소년에 대한 치료와 교육이 병행되지 않으면 단기적 효과에 그칠 수 있습니다. 보호처분의 핵심인 보호관찰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소년보호관찰관이 보호처분 대상자의 재범 위험 수준에 따라 상담과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한 관리감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지난 8월 기준 소년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소년은 118명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7.3명의 4배 수준이죠. 정부는 이를 1인당 33명선으로 낮춘다는 계획입니다. 소년원 학생이나 보호관찰 청소년 치료와 교화가일반 학생 지도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담당인력 증원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형사처벌 연령 인하가 형사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고 처벌의 실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형사책임주의라는 것은 행위자가 책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하는데 촉법소년이 저지른 잘못된 일이 빈번하다고 해서 형사책임 연령을 일률적으로 낮추면 형사법체계의 대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2015년 10월 경기도 용인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5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이 아파트에서 사는 9살 초등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물론 보호처분 조치 대상도 안 돼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청소년 성숙,법은 10여년 전이라면 형사미성년자 연령 인하 문제는 선택의 문제로 보입니다. 과거에 비해 지금의 청소년은 경제성장과 학교교육 보편화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성숙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발달로 청소년 모방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범죄수법은 성인범죄에 못지않게 흉포화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범죄행위에 걸맞는 처벌이 되지않는다면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법은 시대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청소년 범죄행태의 변화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하여 국민 모두가 납득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해보입니다. 형사처벌 대상 나이를 낮춰 청소년 범죄를 억제하는 한편 보호처분기간 다양화와 보호관찰인력 증원 등 실효성있는 교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같은 입법 및 행정조치와 별도로 사회공동체의 노력 또한 중요합니다. 청소년 보호와 교육책임은 가정과 학교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책무입니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노인대국’ 일본, 보이스피싱 피해도 눈덩이…대책 마련 부심하는 치안당국

    ‘노인대국’ 일본, 보이스피싱 피해도 눈덩이…대책 마련 부심하는 치안당국

    일본 도쿄 신주쿠구(區)는 다음달부터 만 65세 이상 주민들의 이름과 주소, 나이 등이 적힌 명단을 관내 4개 경찰서에 제공한다. 이 명단은 ‘보이스피싱 전화사기’ 예방 교육을 위한 것이다. 경찰관들이 해당 주민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는 요령과 그런 전화가 왔을 때의 행동수칙 등을 1대1로 교육할 예정이다. 지난해 신주쿠구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 130건의 피해자 중 86%가 65세 이상 주민이었던 데 따른 고육책이다. 도쿄 메구로구는 전화사기 이력이 있는 전화번호를 자동으로 걸러주는 전화기 보조장치를 관내 고령자들의 집에 설치해 주고 있다. 이 장치는 전국 경찰관서에서 보이스피싱 등에 사용되고 있다고 지목한 전화번호 발신을 스팸전화로 간주해 착신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준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고령자의 전화사기 피해가 이어지자 올 7월 30일부터 80세 이상 고객의 현금입출금기(ATM)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1년 안에 현금카드를 이용해 출금한 기록이 없는 고객의 1일 이용한도를 일괄적으로 낮췄다. 원래대로 유지를 하려면 신청을 해야 한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 말고도 80여곳의 금융회사들이 비슷한 방안을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다. 일본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전화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간 등이 피해 예방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찰과 시청·구청, 금융기관, 편의점, 고령자 단체 등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전화사기 수법을 학습한다든지 피해자의 실제 체험을 공유한다든지 하는 활동을 수시로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 전화사기 피해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가장 큰 이유는 ‘노인대국’이기 때문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올해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28.1%로 유엔 통계 기준으로 압도적인 세계1위다. 70세 이상 고령자도 20.7%로 전인구의 5분의 1을 넘어섰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달콤한 말로 유혹하거나 불안감을 조성해 돈을 뜯어내는 전화사기에 취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이 아닌 가족인 것처럼 전화를 걸어 돈을 보내라고 하는 ‘오레오레(나야 나) 사기’의 빈도가 일본에서 높은 것도 전화를 받는 사람들 중에 고령자가 많은 탓이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지난해 ‘특수사기’(대부분 보이스피싱) 건수는 1만 8212건으로 전년보다 29% 늘어난 가운데 이 중 65세 이상이 피해자인 경우는 1만 3196건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했다. 특히 65세 이상 대상 보이스피싱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증가했다. 최근에는 지방 농어촌보다 대도시의 피해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전국의 전화사기 건수는 8197건으로 전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도쿄도는 2037건으로 35%(524건), 인근 가나가와현은 1372건으로 39%(382건)나 외려 증가했다. 경찰청은 “보이스피싱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잠적하는 데 있어서 한산한 지방보다는 복잡한 도시지역이 더 낫다고 판단해 특수사기범들이 수도권에 사는 고령자를 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푼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학생들이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 11일 기후현에서는 16세 여고생이 전화사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학생은 지난해 9월 다른 공범과 함께 70대 여성의 집에 전화를 걸어 “당신의 현금카드를 쓸 수 없게 됐다. 지금의 카드는 법원에 맡겨야만 한다”고 거짓말을 해 속인 뒤 집을 방문해 카드를 받아 현금 100만엔(약 1000만원)을 인출했다. 실제로 올 상반기 검거된 전화사기범 1325명 중 청소년은 36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에 달했다. 전화사기단 내에서 이들의 역할은 70% 이상이 속아넘어간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푸른 눈의 예수들…빛고을엔 ‘희생의 꽃’이 핀다, 형형색색 고물들…양림동 펭귄마을엔 보물이 산다

    푸른 눈의 예수들…빛고을엔 ‘희생의 꽃’이 핀다, 형형색색 고물들…양림동 펭귄마을엔 보물이 산다

    20세기 초, 광주 양림동에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발을 디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만 해도 낯선 이국땅을 밟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겠지요. 태어나 자란 고향을 뒤로하고 남의 나라에 오는 것, 말도 안 통하는 땅에서 배곯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는 것, 머나먼 타지에서 눈을 감는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 매 순간순간이 크나큰 결심이고 용기이자 헌신이 아니었을까요. 미국과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양림동 언덕배기 땅을 사들여 집을 짓고 교회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3·1운동을 하는 신자들을 돕고, 한센병 환자의 손을 잡았으며, 남루한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지은 건물은 번듯한 근대 문화재가 되고, 이방인 선교사들의 행적은 아름다운 역사가 됐습니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의 조붓한 골목길에는 100여 년 전 양림동에 살았던 이들의 삶이 고여 있습니다.1904년 12월 25일 광주 양림동에 있는 유진 벨 선교사 사택에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예배가 열렸다. 전라남도 지역에 울려 퍼진 첫 기도문, 첫 찬송가였다. 1900년대 초 양림동에 온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유진 벨과 클레멘트 C 오웬은 성탄절 예배를 시작으로 작은 동네에 터를 잡고 기독교를 전파한다. 생소한 종교를 믿는 이방인들이 읍성 내에 자리잡기는 어려웠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곳이 양림동, 병들어 죽은 이들의 시신을 내다 버리는 풍장터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가진 게 없던 시절, 마을에는 병들고 배곯는 이들이 지천이었다. 이국의 선교사들은 복음을 가르치기에 앞서 복음을 실천한다.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고 본국의 후원금을 그러모아 양림산 자락 땅을 사들인 뒤 학교와 병원, 교회를 지은 것이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을 둘러보는 4.5㎞의 골목길은 양림동에 머무른 작은 예수들의 행적을 뒤따르는 길이다.●좁은 골목 사이로 오웬기념각과 광주 최초의 양림교회 양림동역사문화마을에 깃든 기독교 역사를 음미하려면 양림오거리 아래 오웬기념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다. 바로 옆에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교회가 있으며, 수피아여학교, 우일선선교사사택, 호남신학대 선교사 묘원 순으로 동선이 잘 연결된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바지런히 누벼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걷다 보면 만나는 서양식 건축물은 선교사 이름이 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네덜란드 식으로 회벽돌을 쌓았다’, ‘원형 창과 첨두아치 형상의 창문을 조화롭게 배치했다’는 안내문 설명을 읽기에 앞서 이곳에 얽힌 선교사들의 삶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양림동은 그저 오래된 동네요, 사택은 고색창연한 서양식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양림동에 거주한 선교사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한국인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이들은 한국 이름으로 살았다. 유진 벨은 ‘배유지’, 로버트 M 윌슨은 ‘우일선’, 클레멘트 C 오웬은 ‘오원’ 또는 ‘오기원’, 엘리자베스 셰핑은 ‘서서평’으로 불렸다. 1895년 한국에 온 배유지 선교사는 수피아여학교를 세웠다. 여자여서 배움이 어렵던 시절, 여학생들은 근대식 학교에서 교육의 권리를 보장받았고, 민족의 앞날을 고민해 행동으로 옮겼다. 광주 지역 3·1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해 1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었고, 교복을 찢어 태극기를 만들었고,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우일선 선교사는 제중원 원장으로 의료 선교에 앞장섰다. 워싱턴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의료인은 광주한센병원, 여수 애양원을 여는 등 한센병 환자를 향한 사랑이 극진했다. 서서평 선교사는 1934년 풍토병과 영양실조로 죽으며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는 데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나같이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삶이었다. ●배유지 선교사 만든 수피아여학교, 아치형 창문·회벽의 조화 의료 봉사를 하던 오원 선교사는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뜬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이었다. 오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 오웬을 기념해 세운 건물이 오웬기념각이다. 요즘 용어를 빌리자면 복합문화공간이랄까. 예배는 물론, 수많은 강연, 음악회, 무용과 연극 공연이 열린 공간이다. 수피아여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예배당은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 선교사들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던 곳이다. 학교를 세운 배유지 선교사를 기리는 뜻에서 ‘배유지 기념 예배당’이라고도 한다. 아치형 창문과 회벽이 어우러져 고아한 아름다움이 풍긴다. 건축물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면 나타나는 2층 건물, 윌슨 선교사 사택이다. 우일선 선교사가 살던 집이자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로 소개되는 곳이다. 미국 영화에서 볼 법한 ‘잘생긴’ 주택은 회색 벽돌을 네덜란드 식으로 쌓아 올리고 내부는 회반죽을 칠했다. 외관만큼 집에 서린 사연도 아름답다. 이곳은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이자 광주 최초로 고아원 사역을 시작한 장소다. 마당 한편에는 은단풍 나무가 있다. 우일선 선교사가 고향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이란다. 은단풍은 자신과 고향을 이어주는 끈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벗이었으리라. 누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열거하지 않더라도 어떤 죽음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윌슨 선교사 사택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호남신학대 언덕에 아담한 묘원이 있다. 배유지와 오원 선교사를 포함해 양림동과 호남을 기점으로 활동한 22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원이다. 본명과 한국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비석 앞에는 방금이라도 누가 다녀간 듯 싱그러운 꽃다발이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이 건넨 안부 인사다. 선교사들은 눈을 감은 후에도 고국이 아닌 양림동에 묻혔다.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까만 눈의 사람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한껏 안아줄 수 있는 양림동 언덕배기에.출발점이었던 오웬기념각 근처에 마을의 또 다른 명소, 펭귄마을이 있다. 양림 커뮤니티센터 뒤편의 골목길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옛날 주택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은 색색의 폐품으로 가득하다. 목록 한번 다양하다. 멈춰버린 시계, 고물 자전거, 이 빠진 그릇, 녹슨 실로폰, 줄 나간 바이올린….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것들, 효용이 중요한 세상에서 제 기능을 다한 것들이 여기서는 귀한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 카메라에 쉴 새 없이 담기는 예술 작품, 정크아트가 된 것이다. 펭귄마을의 시작은 화재가 나 방치돼 있던 빈집에서 가져온 고물이었다. 김동균 촌장을 주축으로 마을 주민들은 맥주 병뚜껑으로 물고기 몸통을, 깨진 장독대 뚜껑으로 펭귄 팔을 만들어가며 길거리 미술관을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고물은 쓸모없다 여긴 것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고 속삭인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처럼 노년의 지혜가 담긴 글귀, 라면땅부터 뽀빠이까지 불량식품 가게에서의 소소한 군것질도 놓치기 아까운 즐거움이다. 버드나무가 울창해 ‘버들 양’(楊)에 ‘수풀 림’(林), ‘양림’(楊林)이란 이름이 붙은 양림동은 젊은이들에겐 놀 거리 많은 핫플레이스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골목에 세련된 레스토랑과 한옥 카페가 들어섰다. 양림동은 변화에 유연한 동네다. 풍장터에서 기독교 문화를 꽃피운 마을은 어르신의 손때 묻은 작품과 젊은이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양림동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예향의 도시 축소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향의 고장,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광주. 이 도시의 예술적인 면면이 궁금하다면 양림동역사문화마을 맞은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향하면 된다. 2015년에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예술 전반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서 역사적 의미도 깊다. 부지는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총 5개 시설로 나뉜다. 재밌는 점은 건축의 특이성이다. 구 전남도청 본관, 별관, 경찰청 본관을 활용한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하면 모두 지하에 들어서 있어 거대한 지하세계 같다. 그렇다고 어두침침하거나 습한 기운은 없다. 건물 지붕에 설치된 70여 개 채광정 덕이다. 채광정은 낮에는 햇볕을 지하 깊숙이까지 받아들이고 밤에는 은은한 불빛을 뿜어낸다. 총면적 16만 1000㎡. 우리나라 문화 공간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보니 여행자는 입구에 들어선 순간 어디를 둘러봐야 할지 당황하기 십상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여행자에게 넓은 부지는 때로 부담이므로. 광주에 흐르는 예술의 향기를 맡고 싶되 1시간 남짓밖에 시간이 없다면 문화정보원 라이브러리파크로 향하자. 전시 규모가 아담해 가벼운 마음으로 휘이 둘러볼 수 있다.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극장을 하나로 묶은 라이브러리파크는 무료 전시를 자주 연다. 문화창조원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자 기획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6개 복합관에는 아시아를 주제로 국내외 이름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올라간다. 문화생활을 한 뒤 가을볕에 몸을 바짝 말리고 싶다면 문화창조원 뒤편 하늘마당이 제격이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은 전시만큼 인상적이다.●무등산 품에 안고 달리는 모노레일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집 앞 공원 같은 산,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은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이름이다. 지산유원지 앞마당으로 소풍을 갔다, 리프트를 타고 무등산을 올랐다, 엄마 손 꼭 붙잡고 모노레일을 탔다….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에 얽힌 추억은 1980~90년대 이곳을 찾은 어린이의 수만큼 각양각색일 것이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선로를 달리던 모노레일은 운영업체 부도 등으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11년 만인 2016년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모노레일을 타러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무등산 등산로를 따라 산길을 오르는 방법과 745m 길이의 리프트를 타는 방법. 빨갛고 노란 철제 리프트는 1990년대 광주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은 시속 5㎞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리프트가 두 발을 대신하고 시간은 넉넉하니 가족, 연인, 친구는 번다한 일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모노레일은 탑승역인 빛고을역과 종착점인 팔각정 아래를 25분 동안 왕복한다. 끼이익, 모노레일에서 이따금 섬뜩한 소리가 난다. 선로가 하나라 약간의 덜컹거림도 피할 수 없다. “아빠, 여기서 떨어져도 죽진 않겠죠?” “이거 누가 타자 그랬어! 무섭잖아!”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스릴은 없지만 옛날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짜릿함에 여기저기서 즐거움 섞인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모노레일 밑으로 나무들의 초록색 정수리가 빼곡하다. 종착점인 팔각정은 무등산 향로봉 기슭에 자리해 광주 도심이 한눈에 담긴다. 드넓은 광주가 아담해지는 순간, 빛고을의 따사로운 볕이 내리쬐는 순간, 마음이 쉰다. 글 이수린(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오산IC를 타고 논산천안고속도로 천안분기점을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광주IC에서 서광주 쪽으로 들어선 뒤 중외공원 입구에서 ‘무등산, 시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양동시장에서 ‘남광주교차로, 양동시장’ 방면으로 들어서 천변좌로를 따라 2㎞가량 이동하면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이다. →맛집 충장로에 있는 1960백선청원모밀(268-1960)은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메밀 집이다. 역사만큼 음식 맛이 깊어 2011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 이름을 올렸다. 가다랑어포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는 여타 메밀 집과 다르게 멸칫국물로 육수를 내 시원하다. 영미오리탕(527-0248)은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온 뒤 사람들로 더욱 북적인다. 들깻물에 미나리와 오리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들깨오리탕이 유명하다. 푸짐한 남도 밥상이 당긴다면 금다연(374-1000)이 어떨까. 친환경 식재료를 써서 호박죽, 전, 회까지 한 상 가득 거하게 차려낸다. →잘 곳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여럿 있다. 호남신학대 부근의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682-0976)는 옛 선교사의 사택을 리모델링했다. 고즈넉한 적벽돌 집의 2층 테라스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지산유원지 내에 자리한 호텔무등파크(226-0011)는 골프연습장, 온천사우나, 볼링장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 장학금에 월급까지… “엔지니어 부족 극복하려 대학 세웠죠”

    장학금에 월급까지… “엔지니어 부족 극복하려 대학 세웠죠”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은 자국 내 기술 전문가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왕실 승인을 얻어 설립한 다이슨기술공학대학이 이달 2기 신입생을 맞았다고 19일 밝혔다. 전액 장학금에 학생들에게 2000만원이 넘는 연봉까지 주는 다이슨기술공대는 지난해 영국 왕실 승인을 받은 ‘고등교육 및 연구 법안’에 따라 지난해 9월 윌트셔주 맘스베리에 문을 열었다. 4년 교육 과정이며, 다이슨 전문가들과 영국 워릭대학의 워릭제조업그룹(WMG)이 교육 과정 개발에 공동 참여했다. 영국 발명가이자 가전회사 다이슨 창업주인 제임스 다이슨이 대학을 설립한 배경에는 전문가 부족으로 영국 제조기업의 경쟁력이 한국, 중국, 인도 등에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이번 입학생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지원자 950명 중 선발된 43명이다. 신입생 중 40%가 여학생이다. 다이슨 측은 “영국 공과대에 재학 중인 여학생 평균 비율이 15.1%인 점을 감안하면 다이슨기술공대 여학생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2기 신입생 입학으로 이 학교 학부생은 총 74명이 됐다. 2020년에는 학생 수가 2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다이슨은 전망한다. 다이슨기술공대 학생은 4년간 공학과 과학 이론을 공부하고 실제 제품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하며 실무 경험을 쌓는다. 워릭대학은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에게 일반 엔지니어링 공학 학위를 수여한다. 학부 커리큘럼에서 첫 2년은 공학 기본 원리를 학습하고 그 뒤 2년은 심도 있는 전자·기계 엔지니어링을 공부한다. 일주일에 3일은 다이슨 글로벌 엔지니어링 팀의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무 경험을 쌓는다. 학생들은 학비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재학 기간 동안 다이슨이 연 1만 6000파운드(약 2360만원)의 급여를 준다. 게다가 재학생들은 유명 건축가 크리스 윌킨슨이 디자인한 5성급 호텔 수준의 기숙사에서 지낸다. 맘스베리 캠퍼스에는 78개 모듈 형태의 기숙사가 설치돼 있다. 기숙사의 실험실 129개, 카페 7개, 멀티 스포츠 경기장, 학생들의 개인 공간엔 전부 다이슨의 최신 기술과 맞춤형 가구가 적용돼 있다. 다이슨은 이런 시설뿐 아니라 전반적인 커리큘럼과 연구를 위해 지난해 5년간 3150만 파운드, 2017년부터 5년간 3150만 파운드(약 465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10대 장애인여학생 식사 중 기도막혀 의식불명 상태

    경기 부천에서 10대 장애인 여학생이 교사가 먹여주는 음식물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18일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전 11시 30분쯤 부천의 모 장애인학교에 다니는 A(15)양이 교사가 먹여주는 점심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심정지가 되자 병원으로 옮겨졌다. A양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병원 측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심정지 상태가 이어져 뇌 기능이 손상됐다고 소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은 중증 장애를 앓고 있어 양 손을 사용하지 못해 교사의 도움을 받아 식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A양의 아버지는 “학교 측의 조치가 소홀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당시 A양에게 밥을 먹인 교사 B씨를 소환, 조사하고 이 학교 다른 교사들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해 정확한 경위를 밝힐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만취 여학생 성폭행 방치 사망···“초성 게임으로 술 먹여”

    만취 여학생 성폭행 방치 사망···“초성 게임으로 술 먹여”

    여고생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학생들에게서 성폭행을 당한 뒤 방치돼 숨졌다. 숨진 학생은 소주를 2병 이상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 영광경찰서는 15일 여고생에게 술을 먹여 성폭한 혐의(특수강간)로 A(17)군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군 등은 지난 13일 오전 2시 10분∼4시 15분 사이 전남 영광군 한 모텔 객실에서 B(16)양에게 술을 먹여 성폭행한 뒤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양은 이날 오후 4시쯤 객실을 청소하러 간 모텔 주인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A군 등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B양을 게임으로 술을 먹여 성폭행할 계획을 사전에 세우고 오전 0시 30분쯤 전화로 B양을 불러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소주 6병을 사서 모텔에 투숙한 뒤 B양에게 2병 반 이상을 마시게 했다. 이들이 한 게임은 ‘초성 게임’으로 예를 들어 한글 자음 ‘ㅅ’(시옷)과 ‘ㄹ’(리을)을 말하면 ‘사랑’ 같은 해당 자음이 들어간 단어를 빨리 말해야 한다. 남학생 둘은 메신저로 답할 단어를 미리 짜 여고생이 지게 해 술을 먹였고 1시간 만에 소주 3병 넘게 마신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밝혔다고 YTN이 전했다. 이들은 여고생이 쓰러지자 차례로 성폭행한 뒤 모텔을 빠져나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군 등은 “A양이 잠들어 있어 오전 4시 15분쯤 그냥 나왔다”고 진술했다. 부검 결과 시신에서 A군 등 2명의 DNA가 검출됐으나 외상 등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특수강간 치사가 아닌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A군 등이 B양을 항거 불능 상태에 놓이게 한 뒤 성폭행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부검을 의뢰해 B양의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B양이 치사량이 넘는 술을 마셨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혈액과 장기 등의 검사를 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만점준다”…경찰 내사 착수한 중학교 ‘미투’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만점준다”…경찰 내사 착수한 중학교 ‘미투’

    “광진구 공립중 교사가 여학생 상습 성희롱” 주장항의 여학생에는 “섹시하다는 건 칭찬”교육청 특별장학 착수서울 광진구 한 공립 중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11일 서울 교육청 성동광진교육지원청 등에 따르면 광진구 남녀공학인 A중 학생들은 이날 학교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 교사에게 성희롱·성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도 같은 주장을 공유했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 학교 도덕 교사 B씨는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평(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거나 “여자는 아테네(그리스 신화 속 신)처럼 강하고 헤라처럼 질투 많은 것은 별로고 아프로디테처럼 예쁘고 쭉쭉빵빵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성희롱 발언을 했다. 또 이 교사가 여학생의 팔 등을 상습적으로 만졌고 이에 학생들이 “성희롱성 발언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섹시하다라고 하는 건 칭찬 아니냐”고 말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학생들은 B씨 외 교사들도 성적인 욕설을 쓰거나 여학생들에게 “너희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방법은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라고 하는 등 성희롱·성차별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교사들이 ‘성 정체성 혼란이 온다’는 이유로 여학생의 바지교복 착용을 금지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성동광진교육지원청은 이날 A중 특별장학에 착수했다. 경찰도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성희롱 폭로가 나온 A중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해 학생 등을 대상으로 실제 성희롱이 있었는지와 구체적인 발언 내용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대학생 31.7% “술 억지로 마셨다”…장소 1위는?

    대학생 31.7% “술 억지로 마셨다”…장소 1위는?

    대학생 3명 중 1명은 주변 권유로 억지로 술을 마신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우리나라 대학생의 음주행태 심층 조사’ 최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대학생의 31.7%는 원하지 않는 술을 억지로 마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가 질병관리본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82개 대학 및 전문대학 재학생 5024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원하지 않는 술을 마셨다는 응답이 29.2%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MT’(22.6%), ‘선배들과의 친목 모임’(21.2%), ‘개강·종강 파티’(7.0%), ‘체육대회’(4.7%) 등의 순이었다. 1년 중 한 번이라도 제대로 걸을 수 없거나 혀가 꼬이고 사물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만취 음주’ 경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인 54.3%가 ‘그렇다’고 답했다. 남학생 55.3%, 여학생 53.3%로 남녀 경험이 비슷했다. 연간 만취 음주빈도는 월 1회 미만이 31.7%, 월 1회 이상이 22.6%였다. 음주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는 구토나 속 쓰림과 같은 ‘신체적 불편함’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67.6%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필름이 끊김’(34.3%), ‘나중에 후회할 일을 했음’(31.2%), ‘강의를 빠짐’ (26.1%), ‘수업 진도를 못 따라감’(17.5%) 등의 순이었다. 윤 의원은 “정부가 음주로 인한 폐해를 정확히 교육하고 국민의 음주 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그러나 사랑이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시)의열단장 김원봉은 고국이 해방되자 이역에서 숨진 아내 박차정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김원봉은 피 묻은 박차정의 속적삼을 친정 식구들에게 전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인 경남 밀양 부북면 제대리 뒷산에 유골을 묻었다. 1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지만 중국 땅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중국서 만난 김원봉과 13년간 항일독립운동 제대리에서 내려 농가를 지나 야산으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띄엄띄엄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묘지였다는데 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100m쯤 올라가니 박차정의 묘소가 나타났다. 마른 솔잎이 봉분을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라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는 너무 초라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란 비문만이 묘주(墓主)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묘소에서 멀리 너른 들녘이 보이고 밀양강이 굽이쳐 흐른다. 밀양강 바로 북쪽, 해천 옆에 남편 김원봉의 생가가 있었다. 그 위쪽 부북면 신작로에는 해방 후 귀국해 고향을 방문한 김원봉을 환영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찼었다.‘빨갱이’로 낙인찍힌 김원봉의 배우자란 딱지는 박차정의 공훈을 인정받는 데도 오랫동안 장애물이 됐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차정의 생가는 부산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담벼락 옆 동네 안쪽에 있다. 지금은 옛날 모습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드문드문한 관람객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충절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어릴 때부터 반일 감정이 남다른 소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김원봉은 대한광복회의 암살 활동에 충격을 받고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약산은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터진 3·1운동의 비폭력에 실망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암살·파괴활동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혈 운동가들은 민중 속에 잠재한 폭력의 위력을 끌어내는 뇌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19년 11월 9일 중국 지린성 반 아무개 농부의 집에 우국 청년 10명이 모였다. 밤샘 토론 끝에 김원봉을 의백(義伯·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이 결성됐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을 ‘칠가살’(七可殺)로 규정, 처단의 목표로 삼았다. 단원들은 거사에 서로 가겠다고 싸울 정도로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첫 거사 모의는 그만 악명 높은 조선인 경찰 김태석에게 발각돼 윤세주 등 6명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장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기도,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습격 등 잇단 의거를 감행했다. 헝가리인 마자알의 고성능 폭탄 제조법 전수와 의열단 정신을 명문화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의 기세는 더욱 높아져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열단원 김지섭은 화물선 석탄창고 속에서 열이틀을 지낸 끝에 일본에 도착해 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의열단원들의 잇단 항거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에게는 김구 선생보다 많은 100만원(현재 가치 약 320억원)이란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다. 김원봉은 잠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원판을 회수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일경을 따돌렸다. 신출귀몰이었다. ●신출귀몰 약산,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 더 붙어 5~6년 동안 수백건의 투쟁을 했지만 자금이 바닥나자 의열단의 활동도 주춤해졌다.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약산은 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 학생들을 가입시키면서 의열단 재건에 나섰다. 김원봉이 박차정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다. “천궁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의 반월이/ 고요히 대지 위에 비칠 때(…)/ 옛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이 18세 때 모교(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교지에 발표한 시 ‘개구리 소리’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박차정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된 집안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비분강개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박차정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1930년 1월에 서울 여학생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바로 ‘근우회 사건’이다. 두 번의 구금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해 몸은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박차정을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였다. 박차정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3~4월쯤이었다.●독립투쟁·문학 공통관심… 사랑으로 발전 박차정은 등단을 권유받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김원봉도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독립투쟁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관심사는 사랑으로 승화됐다. 두 사람은 1931년 3월 결혼했다. 김원봉은 난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설해 투사들을 양성했다. 이육사는 이 학교 1기 졸업생이었다. 박차정은 교관으로 힘을 보탰다. 김원봉은 일본의 침략이 격화되자 혁명세력의 통합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박차정은 그 산하에 난징조선부녀회를 만들어 당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을 규합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약산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8년 10월 10일 항일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약산은 의용대장이 됐고 박차정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다. 의용대는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활동을 했고 총을 들고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1939년 2월 박차정은 장시성 쿤륜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화베이지방으로 북상해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김원봉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 임정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군무부장 취임 직후인 1944년 5월 27일 부상의 후유증이 깊어져 아내 박차정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김원봉은 광복을 맞아 근 30년 만에 귀국했으나 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익 인사 김원봉에게 반대파의 백색테러와 암살 위협이 지속됐다. 미군정에 체포됐을 때 고문을 하고 수모를 준 경찰이 친일 앞잡이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풀려난 뒤 너무나 분해서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검열상과 노동상이란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1958년 숙청당하고 말았다.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좌우를 넘나들며 독립을 염원한 민족주의자였다.●약산 생가터엔 의열기념관… 서훈은 거부 당해 밀양 내이동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의열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흐르는 해천변에는 항일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준설 학예연구사는 “김원봉뿐만 아니라 박제혁, 최수봉, 강우규 의사 등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면서 “의열단에 최초로 참여한 사람은 알려진 대로 13명이 아니라 10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약산 집안의 9남2녀 중 4형제는 6·25 때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막내 김학봉(86)씨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다. 김원봉에 대한 유족과 밀양시민들의 서훈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제3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6일 개막…국내외 37편 본선 진출

    제3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6일 개막…국내외 37편 본선 진출

    “상상이 현실되는 지금, 여기, 우리는” 제3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가 오는 6일 평촌 중앙공원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롯데시네마 평촌, 안양아트센터에서 나흘간 펼쳐진다. 개막식은 개막선언에 이어 홍보대사 소개, 집행위원장 인사, 축하공연, 개막작 소개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날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의 ‘운명’ (2017년)이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젊은 부부의 숨겨진 비밀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1일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는 총 100개국에서 2330편의 영화가 출품됐다. 최종 예심을 거쳐 국내 21편(19세 이하 9편, 24세 이하 12편), 국외 16편(19세 이하 7편, 24세 이하 9편) 총 37편이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됐다. 초청작 19편을 포함 50편이 넘는 작품이 영화제 기간 상영된다. 이번 출품된 작품은 국내외 청소년과 청년들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읽을 수 있고, 그들의 예민하고 풍부한 감수성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다. 국내 작품은 또래 혹은 집단 내 따돌림. 성 정체성, 자신의 신체적 내적 변화에 대한 자기 고민을 주제로 한 작품이 여럿 등장했다. 놀라운 만듦새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한 국외작품은 국내작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장르적 실험이 과감하고 다양했다는 평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청소년의 정치 참여, 장애, 인권 등 정치,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에 관심을 보인 작품이 눈에 띄었다.‘19세 이하’ 부문 본선 진출 주요 작품 중 ‘B틀어주세요’(현수민 등 2인)는 청소년이 호기심으로 B급 영화의 정체에 대해 알아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학생들에게 직접 B급 영화를 보여주고 반응을 살핀 후 영화전문가, 전문 팟캐스트 재작진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애니메이션 ‘Sink’(하영재 등 4인)는 항상 싸우기만 하는 부모님을 피해 달아날 공간이 어두운 욕실뿐이었던 아이의 아름다운 우주여행을 다뤘다. 통통한 체격을 가진 여학생의 이성에 대한 감정을 다룬 ‘겟 잇 뷰티’(이예승)는 부모의 강요로 운동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성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외에 ‘섬’(황정욱), ‘열등반’(미국.아나 야쿠보프스카), ‘성장통’(폴란드.네이슨 시아) 등이 선정됐다. ‘24세 이하’ 본선 진출 주요 작품 ‘7318’(윤소영 감독)은 정리해고 위험에 처한 마을버스 기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키도 작고 못생긴 남자의 심리를 다룬 ‘러브 콤플렉스’(은정현 감독)는 사진동아리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학생과 만나면서 격는 콤프렉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외에도 노인대학 청소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금희’(김소정 등 2인)를 비롯 ‘컬러 케이지’(Colour Cage·다니엘 리아코스), ‘학교가기 싫은 날’(김수정) 등이 본선에 진출했다. 경쟁작은 본선 심사를 거쳐 19세 이하, 24세 이하 2개 부문으로 나눠 4작품씩 총 8편을 수상작으로 선정, 영화제 막지막 날인 9일 시상할 예정이다. 시상은 대왕고래상, 혹등고래상, 향유고래상, 참돌고래상 4개 부문이다. 본선 심사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한 오성윤 김독과 영화감독이자 성균관대 교수인 윤용아, 영화 ‘6년째 연애중’ 감독 박현진이 맡는다. 이번 영화제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생겨나고 있는 인류 문명의 급속한 발전을 잠시 멈추고, 인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기계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SF(공상과학), VR(가상현실) 특별전을 준비했다. 인간과 알파고의 대국을 다룬 다큐멘터리 ‘알파고’, 감정을 가진 최초의 인공지능 로봇 이야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A.I’, 가상현실에 대해 고민해 보는 스티븐 리스버거 감독의 ‘트론’ 등이 상영된다. 이외에도 롯데시네마 평촌에서 오는 7일 ‘A.I도 인간이 될 수 있는가’ 8일에는 ‘가상현실 영화의 현재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영화교실이 열린다.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는 만안청소년수련관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5년 동안 개최해 오면서 영화 꿈나무를 발굴했던 ‘대한민국청소년창작영화제’를 확대 발전시켜 새롭게 시작한 국제영화제다. 안양시,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안양시청소년재단 만안청소년수련관,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회에서 주관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엄마와 함께 사라진 초등학생...경찰, ‘장기결석아동’ 추적 수사

    엄마와 함께 사라진 초등학생...경찰, ‘장기결석아동’ 추적 수사

    올해 초등학교 취학 대상인 아동의 소재가 여전히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결석 중인 여중생 1명의 소재도 불분명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청은 올 초부터 지난 27일까지 미취학, 장기결석 아동 391명에 대한 소재 파악에 나선 결과, 2명을 제외한 389명의 소재가 확인됐다고 31일 밝혔다. 교육부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미취학 아동 20명은 전원 발견됐다. 다만 올해 상반기 예비소집 때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아동 270명 중 1명과 장기결석자 101명 중 1명은 아직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경찰이 추적 수사를 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불참한 뒤 사라진 남학생 A군은 어머니와 함께 잠적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의 어머니 B(40)씨는 타인의 인적 사항을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설·사용한 혐의(사기 및 사문서 위조)로 입건됐지만 A군과 함께 자취를 감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B씨의 소재를 파악 중”이라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A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교육 방임 등 학대 혐의도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결석자로 분류된 중학교 3학년 여학생 C(16)양은 상습 가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한 해 장기결석 등의 이유로 수사 의뢰를 받은 아동 807명 중 3명의 행방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 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부모와 함께 잠적한 아동부터 가출한 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여중생도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아동 1명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해당 아동의 아버지로부터 “출생 후 아이를 누군가에게 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아동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뒤 아동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또 하반기 신학기를 맞아 장기결석아동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보고 교육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합동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9월에도 월 평균 의뢰 건수인 20건보다 34건 많은 54건이 접수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의뢰받은 아동에 대해서는 실종 사건에 준해 소재 확인을 하고 있다”면서 “학대가 의심되면 사법 처리 등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광주시 모고교 교사 제자와 성관계 파문

    광주의 한 고교 현직 교사가 결손가정의 1학년 여학생과 수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해당 교사는 여학생과 관계를 지속하려는 목적으로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적을 고쳐줬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교육당국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31일 광주 모 고등학교 등에 따르면 기간제교사인 이 학교 1학년 담임교사 A(36)씨가 다른 반 여학생인 B(16)양과 불미스런 관계를 맺어 온 것을 시인함에 따라 지난 27일 계약해지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A씨는 수개월간 B양과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B양이 어머니에게 지난 주말 광주에 사는 할머니 집에서 자겠다고 한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밝혀졌다. B양은 어머니의 추궁에 지난 25일~26일 A씨의 차량을 타고 서울로 가 유명 아이돌그룹의 공연을 관람한 뒤 호텔에서 동숙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학기가 시작되고 다른 반 학생인 B양과 친밀감을 쌓게되자 6월쯤부터 자신의 차량으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입맞춤을 하는 등 신체접촉을 했다. 이후 성관계를 맺은 후에는 차량은 물론 아예 B양의 집 인근의 원룸에서 수시로 만났다. 첫 성관계 시도때에는 B양이 거부해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성관계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양은 “A씨가 1학기 기말고사 한 과목의 답안지를 돌려주고 틀린 문제를 고치게 해 줬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B양은 1학기 기말고사 과목 중 이 과목만 유일하게 1등급을 받았다. 해당 학교는 정확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A교사에 대해 계약해지했으며, 성적 조작은 없었다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경찰도 A씨를 성추행 등의 혐의로 입건해 조만간 소환할 예정이다. B양 가족은 “A씨는 아이의 부모 이혼으로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점을 이용해 친밀도를 높인 뒤 성적 착취대상으로 삼았다”며 분노했다. A씨는 B양과의 성관계에 대해 강제성이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미성년자 의제강간) 상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면 협박·폭력 등 강제성이 없어도 처벌받고, 미성년자가 성관계에 동의하더라도 죄가 성립된다. 그러나 B양의 경우 16세이므로 B양의 진술에 따라 성관계 혐의에 대해 A씨는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희롱 성적 학대는 강제성이 없어도 죄가 성립하는 만큼 A씨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영진전문대 공군부사관학군단 입단식

    영진전문대학교(총장 최재영)는 30일 오후 제4기 공군 부사관학군단(RNTC) 입단식을 개최했다. 이 대학 글로벌캠퍼스(칠곡) 국제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이날 행사에는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남학생 31명, 여학생 4명이 참석해 입단 신고를 했다. 2015년 전국 전문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공군 부사관학군단을 창설한 영진전문대는 공군 정비부사관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제4기로 입단한 후보생 35명은 이번 학기부터 군사학, 항공정비학 등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한 전공과목을 수강한다. 또한 항공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및 정비 일선부대 실무경험 등을 익혀 최고의 항공정비 전문가로 성장해 나갈 계획이다. 최재영 총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우리 대학 학군단이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학군단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다 하겠다”고 말하고 “4기로 선발된 후보생들은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최정예 정비부사관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영진전문대는 1,2기 후보생 61명이 공군하사로 임관해 각 전투비행부대에서 근무 중이며 이날 입단한 4기 후보생은 2020년 임관할 예정이다. 이날 입단한 고병건(부사관계열 1년)후보생은 “독일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아버지처럼 국가와 공군을 위해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96년생으로 늦깎이 지원생인 최윤선(여, 부사관계열 1년)후보생은 “올해 유난히 더웠던 날씨 속에 기초군사훈련에 참여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동기들이 서로 힘이 돼줘 무사히 수료했다”고 했다. 이인서(여·전자정보통신계열 1년) 후보생은 “2주간의 기초군사훈련 병영생활이 힘이 들어 중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동기생들이 ‘같이 임관하자’라는 구호에 끝까지 할 수 있었고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전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정대연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4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정대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 실종된 인천 학생들 나(정대연)는 인천 화도진 고개 넘어 화수동 111번지 쌍 우물 앞 배급소 집 외아들로 태어나 창영국교를 졸업하고, 인천동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대문에 있는 감리교 신학대학교 2학년 때 6·25 사변이 터졌다. 인천을 점령한 북한괴뢰군들은 인천 지역에서 중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인민의용군에 입대시켰는데, 강제로 끌려간 중학생들은 그 후 모두 실종이 되었다. 9·15 인천수복과 인천학도의용대의 창설 UN군의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수복이 되어서, 고려대 2학년생 이계송을 대장으로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를 조직하여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護國)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인천학도의용대의 부연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50년 늦은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게 되어, 또다시 인천이 적화(赤化)가 되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우리들은 걱정만 하고 있었다.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남하 1950년 12월 초 국방부 정훈국 인천파견대에서는 인천 지역의 중학생들도 남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너편에 있었던 경기도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 소속 국민방위군 소위가 선두에서 인천학도의용대 3000명 대원을 이끌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수용소(통영충렬국교)를 향하여 우리들은 걸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950년 12월 24일 대전역 도착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하여 처음 1박을 한 곳은 안양이었다. 우리들은 1950년 12월 20일 수원에 도착하여 수원역에 안내판을 만들어 성탄절 날까지 대전으로 오라고 알렸다. 1950년 12월 24일 인천학도의용대 본대는 대전에 도착하여 성탄절을 대전역에서 맞았다. 1950년 12월 29일 마산 도착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논밭에 버려진 수많은 얼거나 굶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보면서 그 머나먼 남쪽 끝까지 모진 고생을 하면서 내려온 우리들은 부패한 국민방위군의 제3수용소(통영충열국교)에 어린 대원들을 입소시킬 수 없어서 마산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통영으로 남하하는 것을 정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참모회의를 신마산역 중앙여관에서 하여, 대구 육군본부를 찾아가서 담판 짓기로 하였다.대구 육군본부에서 황헌친 인사국장 만남 이계송 대장과 나는 걸어서 대구를 가게 되었다. 낙동강에 도착했을 때는 생전에 잊지 못할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강변에 많은 유골이 널려있는 것이 낙동강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 주는 끔찍한 장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계송 대장과 나는 육군본부 인사국장 황헌친(黃憲親) 준장을 만나서 우리가 육군본부에 찾아오게 된 동기를 인사국장에게 설명하고 인천학도의용대의 진로에 대한 각서를 받았다. 황헌친 준장이 만들어준 각서 내용 ①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의 이동함에 있어 차량이나 선박을 이용할 수 있는 차량·선박 징발권(徵發權)을 준다. ②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까지 입소하고, 포병사관학교에 응시할 기회를 준다.中 4~6학년생들이 먼저 해병으로 자원입대 이계송 대장과 나는 다시 걸어서 낙동강을 건너 인천학도의용대원들이 수용돼 있는 마산 임시 거처에 와서 보니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마산에서 가까운 진해 해병교육대 신병으로 중학교 4~6학년생들 600여명이 자원입대했고, 인천에서 같이 출발한 국민방위군 소위가 나머지 중학교 1~3학년 대원들을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경남 통영출열국교)로 데리고 갔다. 中 1~3학년생들 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우리 대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이 계송 연대장과 나는 마산에서 출발하여 통영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가서, 통영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인 충렬국민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 대원들이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게 된 경위는 인천에서부터 우리와 같이 행동했던 국민방위군 인솔 소위가 자기가 받은 명령대로 2000명이 넘는 대원들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입소시킨 것이었다. 육군본부에서 받은 징발증(徵發證)을 수용소 소장에게 보여주고, 우리들은 모두 배에 나누어 타고 통영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였다. 1951년 1월 10일 인천학도의용대원 1500여명은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입소하였으며 훈련병이 된 이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의 조직은 사라지게 되었다. 1951년 2월 1일 육군통신학교 입교 부산육군 제2훈련소를 마치고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간 날이 1951년 2월 1일이다. 우리가 지휘관 옆에서 조금 안전하게 근무하는 통신병이 된 데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물리 교사 출신의 부산육군통신학교 신봉순 교육대장님 덕분이었다. 신봉순 교육대장님은 1951년 2월 1일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중 500명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켰으며, 오갈 데 없었던 여학생 120명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다시 인천으로 여학생들이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신 인천학도의용대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반드시 살아서 고향에서 꼭 다시 만나자”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교육을 마친 나는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걸어와서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인천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울면서 헤어졌다. 처음에는 육군 제8사단으로 배치받았다. 다음에 나는 육군본부 내의 통신부분을 담당하는 561부대로 가게 되었다. 그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서, 1953년 3월 9일 군에서 명예제대하였다.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 1997년 6월 25일 자 인천일보에서 6·25 특집(特輯) ‘전쟁터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 가슴에 와닿는 것은 나하고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했던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이경종(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의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의 6·25 참전역사 찾기를 시작했다는 기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나의 기억을 글로 남기게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경종규원 2부자(父子)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편찬 사업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4회를 마치며 23살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정대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님은 육군 중위로 장교 현지임관 제의도 거절하고, 중학생 동생들과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습니다. 많은 인천의 중학생들을 위기에서 구했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섭섭해하지 않았던 인천의 훌륭한 형입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정 대 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 1951년 10월 5일 강원도 향로봉전투에서의 정대연(가운데). 1928년 9월 3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9년 2월 15일 인천동산중학교 졸업 1950년 6월 25일 서울감리신학대학 2학년 1950년 9월 25일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으로 추대 1951년 1월 10일 통신병으로 입대(군번 0246202) 1953년 3월 9일 의병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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