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여진
    2026-07-07
    검색기록 지우기
  • 방산
    2026-07-07
    검색기록 지우기
  • 놀이
    2026-07-07
    검색기록 지우기
  • 파도
    2026-07-07
    검색기록 지우기
  • 홍보
    2026-07-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173
  • 「황 총리 발언파문」 여야의 입장

    ◎공식사과로 매듭… 현안 처리하자/민자/돌출 호재… 해임요구 등 정치공세/민주 황인성국무총리가 지난 8일 국회본회의에서 『12·12사태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것과 관련,달아오를 듯하던 정국은 황총리가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과발언을 하고 10일의 여야 총무회담에서 이문제를 국회운영과 연계시키지 않기로 합의를 봄에 따라 일단 위기국면은 넘긴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황총리의 발언을 불문에 부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민주당도 10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김대통령의 입장표명」「황총리해임촉구」등의 당론을 결집했지만 당초 이의 관철을 위해 고려했던 상임위활동거부,황총리해임권고결의안 제출등의 강경방안은 유보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이같은 결정은 상임위활동을 거부했을 경우 공직자윤리법개정등 당면한 과제를 정적이해에 매달려 외면했다는 국민적 지탄이 두렵고,또 부결될 것이 뻔한 해임 권고결의안을 서둘러 상정할 경우 더 이상의 정치공세도 무의미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자당◁ 황총리가 기자회견을 자청,공식사과를 한만큼 더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일단락짓자는게 민자당의 대체적인 기류이다. 이날 상오 국회에서 김종필대표주재로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당론으로 이어졌다. 특히 민자당은 총무회담에서도 황총리사퇴를 요구한 민주당측 주장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민주당측이 당장 이문제로 대여공세의 고삐를 죄고있지만 대형쟁점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공직자윤리법등 중요현안을 처리해야 할 이번 임시국회가 예전처럼 파행운영돼서는 안된다는 「당위성」을 민주당측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황총리발언을 상위활동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민주당측 입장도 이같은 대목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황총리발언에 사견을 전제,아직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인사들도 적지않다.이들은 12·12사태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시각을 거론하며 「부적절한 시기에 적절치 못한답변」등의 표현으로 황총리의 돌출행동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또 김대통령의 입장을 밝히라는 민주당측 요구에 대해서도 『기록을 찾아보면 나올 것』이라며 과거 야당총재시절 김대통령이 「군사반란」으로 규정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편 김대표는 지난8일 본회의산회직후 국무위원들과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황총리가 해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황총리도 9일저녁 이성호의원등 일부당무위원들과 만나 당측의 분위기를 전달받고 협조를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이날 최고위원회의와 점심까지 회의장에서 도시락으로 때운 의원총회에서 황총리의 해임을 김영삼대통령에게 촉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황총리에 대한 해임요구를 좀더 강력하게 포장하기 위해 황총리의 발언을 「김영삼정권의 공식적 견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김대통령까지 파문의 당사자로 지목했다. 특히 과거 87년 대선때 당시 김영삼 민주당후보가 12·12사태를 「군사반란」으로 집중부각시켰던 점을 상기시키며 황총리의 발언을 이에 연계시켜 청와대·정부간의 불협화음을 조장하려는 듯한 인상도 노출시켰다. 이날 채택된 결의문도 황총리보다는 김대통령을 겨냥해 『황총리 해임이라는 대통령의 확고한 조치가 없다면 김대통령 스스로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적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김대통령의 확실한 입장천명과 황총리의 즉각해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12·12사태라는 미묘한 사안에 대한 황총리의 발언은 새정부출범이후 무기력증세마저 보이던 민주당에게 모처럼만의 호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민주당은 이를 「민주발전」과 「역사성」측면으로까지 연결시켜 정치공세를 펼치는등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도 대응수위에 대해서는 다소간 의견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가 상임위활동과 황총리 발언파문을 연계시키지 않기로 한 것이나 황총리해임요구에 대한 김대통령의 태도를 며칠간 주시한뒤 해임권고결의안제출및 상임위활동보이콧을 결정키로 한 것은 정치공세의 한계에 대한 민주당의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황총리발언파문은 민주당에게는 정치공세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었지만 이 발언파문이 민주당의 극한투쟁상황까지 몰고 갈지의 여부는 임시국회회기중 여야가 막닥뜨려야하는 공직자윤리법개정 등 정치관련입법협상 절충과정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 율곡선생 마음이 편찮겠다(박갑천칼럼)

    사람에 따라 이름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첫째는 글자(한자)가 어려운 경우이다.가령 김양씨를 보자.한학자 할아버지가 어려운 글자 「양」(당노양)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불러주는 사람들은 『김양씨!』하지 않고 『김석씨!』한다.「석:주석석」자로 생각한 때문이다.하건만 신문의 인사이동란 같은데를 보면 어려운 자들이 적지않다. 둘째가 동명이인의 경우이다.한글 아닌 한자로까지 똑 같은 이름의 사람은 대단히 많다.참고삼아 전화번호부에서 「김순자」를 한번 찾아볼 일이다.전화번호부가 그럴때 거기 실리지 않은「김순자」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그 많은 동명이인이 하나같이 좋은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름이 같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생겨나는 것도 그것이다.대학부정입학 학부모의 이름과 같아서,혹은 비리와 관련된 별자리의 이름과 같아서 한바탕 웃음거리로 되기도 한다. 셋째가 괴상한 이름의 경우이다.지난해 여름 수원지방법원에 개명허가원을 낸 이건달·박공순씨의 경우,하필이면 건달씨는 무직이고 공순씨는 S전자 공원이었다.그뿐이 아니다.90년 대법원이 펴낸 개명허가 사례집 가운데는 정말로 희한한 이름들이 보인다.­조지나,김동태,방구석,김치국,지기미,한시만…등등.이들은 물론 이 이름들 버리고 새 이름으로 새 생활을 시작한다. 율곡은 우리가 두루 알고 있듯이 조선조의 거유 이이의 호이다.그는 이 호 때문에 지금 지하에서 속이 상해 있을 법하다.그가 전에 지하에서 속상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타계한지 1년후의 어느날 임금이 대사헌 구봉령에게 말한다.『세 신하(박근원·송응개·허□)가 이를 거간이라 했는데 과연 그런가.바른대로 말하라』.이때의 대답이『이가 비록 간사하지는 않으나 본래 경솔한 사람입니다.자신의 의견만 옳다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으니…』.거기에 영의정 노수신까지 가세한다.『이는 남이 자기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했으며 문장에는 힘을 다하지 않았건만…』(김시량의 「자해필담」에서). 지금 속상하는 것은 그때와는 다르다.「율곡사업」운운하면서 그의 호가 비리와 관련되어 들먹여지기 때문이다.그옛날 율곡이 제창했던 10만양병론을 기리면서 붙여진 「율곡사업」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하건만 잘못된 운용으로 말썽이 되면서 지하의 거유 마음을 편찮게 하고 있구나.
  • 금리 하락/마진 감소/경쟁 치열/은행 “경영위기”

    ◎부실여신 늘어 악화/새 전략 수립·인원감축 “자구 비상” 시장금리 하락과 규제금리 인하조치로 예대금리 차가 좁혀지면서 은행들의 수지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고금리 시대」에 「누워서 떡먹기」 식의 경영에 길들여진 국내 은행들이 「저금리 시대」를 맞아 경영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금융환경의 변화 속에 은행들의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그동안 정부의 보호막 아래 안주해 왔으나 차츰 자유경쟁 시장을 향해 「각개약진」의 전투대형으로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경쟁의 심화는 은행부실화의 위험을 안고 있긴 하지만 취약한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행은 7일 저금리 시대와 자유경쟁 시장체제로의 진입 등 금융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은행들이 적극적인 경영개선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강중홍 은행감독원 감독기획국장은 『금리인하에 따른 마진축소와 부실여신 증가 등으로 금년중 은행수지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에 따라 개별은행의 경영위험이 커지고 금융제도의 안전성도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올들어 두차례 단행된 규제금리 인하로 11개 시중은행의 업무이익은 금년 중에만 3천1백33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이는 92년의 11개 시은 전체 업무이익(2조1천8백49억원)의 14.3%에 달하는 규모이다. 한은은 ▲시장금리 하락으로 인한 마진폭 축소 ▲자금의 만성적인 초과수요 해소로 꺾기등 대고객 불이익 전가행위가 어려워진 점 등을 감안하면 은행수지는 이보다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수지 악화와 함께 회수불능인 부실여신 규모가 급속히 늘어나 은행의 안정경영을 위협하고 있다.무담보 대출로 6개월이상 연체돼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부실여신 규모는 92년말 현재 2조4천2백51억원으로 1년전(2조9백억원)보다 3천3백51억원(16%) 늘어났다. 은행들마다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비상이다.상업·제일·조흥은행 등은 올들어 「저금리」·「저마진」 시대에 적합한 신경영전략 수립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설치 운영중이다.한일은행은 국내은행 최초로 박사급을 포함,30여명의 전문인력을 투입한 「경영연구실」을 신설,일본·미국 등의 대형 은행들의 선진 경영기법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영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지 악화를 인원·비용 절감으로 극복하려는 절약경영 노력도 활발하다.6대 시은은 작년 한햇동안 총인원을 5만7천2백여명에서 5만6천1백여명으로 1천1백명을 감축했다.전체 인원의 1·9%에 해당한다.조흥·서울신탁은행 등 9개은행에서 지난해 7월이후 지금까지 조기 명예퇴직 형태로 은행을 떠난 고령·간부인력만도 3백40명에 달하고 있다.
  • 빠찡꼬·파친코(외언내언)

    「빠찡꼬(파친코)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운운하는 기사가 연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있다.각계각층에 「비호」세력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비호세력이란 그의 돈을 먹은 사람들이라는 뜻.검찰에 연행될때 호주머니에 1천3백만원이 있었다니 「보통시민」으로서는 입이 벌어질 뿐이다. 「보통시민」가운데는 「빠찡꼬­파친코」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적지않다.그게 뭐길래 그리 돈을 버는 것인가 싶어 국어사전을 뒤적여봐도 표제어로 나오지 않는다.그래서 신문에 나는대로 돈놓고 돈먹는 도박기계쯤으로 대충 짐작한다.물론 틀린건 아니다.(파친코는 원칙에 따른 표기이고 빠찡꼬는 관용표기임) 「파친코」는 일본말이다.아이들의 장난감으로서 우리로 말하자면 「새총」이다.Y자형의 나뭇가지나 쇠막대 위쪽에 고무줄을 달고서 당겼다 놓으면 작은돌이 퉁겨나가게 되어있는 장치이다.그것으로 참새도 잡곤 했다.나중에 오락기를 이르는 말로 된다.유리상자 안에 군데군데 못을 박아 장애물로 만들어놓고서 핸들을 눌러 구슬이 퉁겨져 나가게 한 장치인데 돌고돌다가 일정한 구멍에 들어가면 상품이 나오게 된다.구슬 퉁겨져 나가는 품이 아이들 장난감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었던게지.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 가운데는 이 파친코업으로 돈번 사람들이 적지않다.한데,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빠찡꼬­파친코」는 본디의 파친코와는 달리 「슬롯 머신」을 이르면서 쓰인다.약1백년전 미국의 C 페이라는 사람이 고안해냈다는 이 슬롯머신은 전국 관광호텔등에 갖추어져 있는 오락기구로서 한번 인박이면 발끊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게 화수분이 되게 하는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기술자가 기계를 손봐서 확률을 조작하는 것이다.미끼 삼아 승률 좋은 기계도 만들어놓고 나머지는 낮추어 놓는다.그걸 모르고 빙빙 도는 그림판에 정신이 팔리다보면 어느새 주머니는 비고 만다.우리 선남선녀들이 권력과 유착된 악의 주머니를 그렇게 불려주어 온 셈이다.꼴이 우습다.
  • 소설가 이제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7)

    ◎“글을 그림처럼”… 절제된 언어의 마술사/「환상 리얼리즘」기법 구축,무의식세계 조파/사회 선입감·통념 거부… 쓰고싶은 글만 고집/「나그네는…」 이상문학상 수상… 시인·화가로서도 경지에 꾸부정하게 걷는 비뚤어진 걸음걸이,구겨진 청회색 점퍼에 벙거지를 눌러쓴 이제하의 모습은 카뮈의 뫼르소나 사르트르의 로캉뎅 일수도 있다.그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무심한듯 생각에 잠긴 묵연은 그대로가 시적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시킨다. 만사에 서툴고 세련된 티를 보이지 않는것도 이 예술가의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그러나 말 하기가 싫어 억지로 하는처럼 어눌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펼때는 드물게 치열함을 드러낸다.메마른듯한 그의 가슴에 정열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때 뿐일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가만은 아니다.시인이자 화가이며 화가이자 소설가다.그리고 타고난 다방면의 재능을 한 수준으로 고루 이끌어 자연스러운 자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1회 학원문학상수상 그가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때인 57년 여름,정식 데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52년 마산동중시절 이미 「학원」지에 투고하여 그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전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보라빛 노을을 가슴에/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에 스며 흐르는/노곤한 그리움이여/로 전개되는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박목월 조지훈씨의 심사로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과 함께 60년대까지 중3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이름을 불렸을때의 그 가슴의 고동을 잊지 못한다』는 감격과 홍대 조각과에 진학하여 『대학 2학년이 될때까지 학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들수 있다.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그는 대학이란 강의시간이나 학점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장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의 단순함은 문학쪽에서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현대문학」지의 시추천 완료후 그는 다시 신문의 신춘문예와 월간지를 통해 소설데뷔 관문을 거쳤고 당시 발표한 「유원지의 거울」「흰제비의 여름」또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립을 그린 「유자략전」등으로 「표현수법에 있어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압축미」「소설로 쓰여진 한편의 예술사회학」이란 호평속에서 문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무한한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그의 「초현실」이나 「잠재의식」등의 기법상의 탐구는 「쉬르계열의 그림을 느끼게하는 난해성」으로 지적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환상리얼리즘」으로 표현,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한 평자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지연(지연),학연을 거론하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대칭이 어떻게 한 이름으로 공존할수 있는가」란 의문을 제기하여 그는 한순간 환멸감과 모멸에 빠지는듯 했다. 그는 후에 「신뢰할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없는 리더의식과 옹졸한 콤플렉스로 지연·학연·인정주의 따위로 섹트를 조성하고 60년대식,70년대식으로 작가를 구분하려 든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환상리얼리즘」이란 한낱 조어가 아닌 기왕에 있어온 미술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를 잠시 소설에 차용한 것이지만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외형적 사회의식보다 개인의 무의식세계,그들의 꿈과 악몽을 다루기 위해선 초현실주의 기법을 취할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옳지않은 것,속된것,뻔뻔스러움과 적당주의는 그와는 맞지 않음을 명료하게 구분짓는다. 74년 채식주의를 테마로한 「초식」발표와 함께 현대문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문단에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모든 문학상이 일반적으로 너무 무난히 주어지며 과열된 문협선거에 얽힌 문단정치에 혐오감을 느꼈다는게 수상거부의 이유였다. 작가의 시대적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명제란 무엇인가. 그는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당대가 직접 간접으로 요구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윤리감각」이라고 말한다.예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원할때는 불을 이야기함으로써 물에 대한 감각을 없애주는 것이○수상 거부로 큰 파문 작가의 사명이며 책임일 뿐」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해서 작가마저 부화뢰동하고 나서면 작가 본래의 본성이 와해되고 작품은 몰개성화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과연 『쓰고싶은 것을 써서 생존이 가능한 작가는 몇사람이나 되겠는가?』를 자문하고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로 팔아 연명하는 하릴없는 날품팔이』라는것과 이에따른 자책지심을 문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문단초기인 신촌시절에서 동숭동 팔판동 지금의 평창동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 변함없는 소신을 지키는듯 하다. 신촌시절에는 그의 부인(고행자씨)이 삐에로 의상실을 경영,화곡동에 집을 산적도 있으나 부인의 사업실패로 난생처음 가져본 집을 빚잔치로 없앴고 이 때의 고생을 바탕삼아 장편 「광화사」와 중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맞서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문학은 대결로서 당장 결판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견디고 스며들고 녹이는 작업』임을 상기시킨 저 유명한 수상연설을 남기고 있다. 『문학에서의 가장 큰 고함소리는 침묵입니다.좋은 작품을 읽고 났을때의 그 멍청히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그의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림에서의 구성 색채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 글쓰기와 많이 닮아있음을 강조했다.이는 일찍이 시인 김춘수씨가 그의 소설 「황색강아지」를 보고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라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러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그는 한때 까마귀를 비둘기처럼 뱃심좋게 훈련시켜 돈심부름을 시켜봤으면 바란적도 있고 팔판동에 살때는 밤 10시가 넘어 총리공관이 있는 행길까지 내려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며 딸아이와 뛰어놀기도 했다. 한번은 딸아이(슬·고2)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위해 호텔 지하에 위치한 제과점에 가려다가 호텔 직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꺼부정한,초라한 행색이 사뭇 못마땅한듯 한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 사람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채 「총」이라고 대답하여 혼비백산시킨적도 있다.이 사회의 선입감,오래묵은 관념에 대한 특유의 냉소가 또하나 이제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 작업이후 일간신문을 비롯,월간지등에 「이제하 영화칼럼」을 쓰고 있다.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마음껏 평을 쓴다.물론 본격적인 평이라기 보다 객석에서의 느낌을 좀더 심층있고 사려깊게 쓰는 식이다. ○노래엔 기품 가득 그리고 때때로 젊은 시인 가수들과 어울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평소 대화때는 꺼들꺼들 쇠된 목소리를 내지만 노래할 때의 음성은 청량한 기품이 일품이다. 그는 이제 우리문단의 중진의 위치다.그의 말대로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을 성취해 가고 싶어한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느슨한 기는 찾아볼 수 없다.긴장을 푼듯 방심하고 무심한 속에서 오히려 감수성의 현을 전보다 더한층 팽팽하게 당기는 자세다. 그런중에도 친구들과 다양하게 교분을 트고 있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간혹 그가 괴벽이나 기인기질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다.선배나 후배들에게도 따뜻하고 정중하다.어느날 갑자기 그의 달라진 환경과 연륜과 함께 갑자기 표현하는듯한 속된 구석은 근원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지닌 예술성과 인간미는 이 시대에선 몇사람 되지않는 「비범임에는 틀림없다.그래서 그의 예술추구는 정련되지 않은 생금에도 비유된다. 그 옛날 그가 시추천을 받을 무렵 미당이그의 시를 향해 「신시쩍 나무」라고 한것처럼 도무지 「가뭄」을 타지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정」,「우리의 공명선에 잘 직통하는 그의 특수어법」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소설,소설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연보 ▲1937년 5월20일(음)경남 밀양출생.이해동씨와 김일선여사의 3남매중 독자 ▲1946년 마산으로 이주 ▲1953년 마산 고1 시「청솔그늘에 앉아」로 제1회 학원문학상 ▲1956년 마산고졸「새벗」잡지에 동화「수정구슬」당선 홍대조각과 입학 ▲1957년 「현대문학」에 시「노을」「설야」「바다」서정주추천 신태양사 「황색강아지」당선 ▲1958년 「소설계」중편 「나팔산조」 준당선 ▲1961년 군제대후 홍대조각과 4년에서 서양화가 3년으로 편입,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손(수)」입선 ▲1964년 육십년대 사화집동인(성찬경·박재삼·박회진등) ▲1966년 연작동화 「노래하는 돌」(신아일보연재) ▲1969년 동화 「느림보의 다섯가지 수수께끼」(대한일보연재) ▲〃 문제작 「유자략전」발표로 화제 ▲1973년 첫 창작집「초식」(민음사간)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상 수상했으나 수상거부 ▲1977년 꽁트 스케치집「새」(수문서관간)「소설문예」 창간 편집위원 ▲1978년 창작집 「기차,기선,바다,하늘」(홍성사간)월간「수상」(월간 에세이 전신)주간 ▲1979년 화랑협회 계간지「미술춘추」주간 ▲1982년 첫 개인전,개전기념시집「저어둠속 등빛들이 느끼듯이」(청하간) ▲1983년 일러스트집「사라의 눈물」(우석사간) ▲1984년 서양화 10인 소품전·문학선집 「밤의 수첩」(나남간) ▲1985년 중편「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발표(이장호감독으로 영화화) ▲1986년 동화집「노래하는 돌」(샘터간)장편「광화사」(한국일보연재) ▲1987년 장편「광화사」1·2부(문학사상간)「소녀유자」(문학사상 연재) ▲1988년 장편「소녀유자」(고려원간)장편「시습의 아내」(경남매일연재)수필집「길떠나는 사람에게」(동아간)이상문학상수상전집「임금님의 귀」(문학사상간) ▲1990년 장편「진눈깨비의 결혼」(청맥간)문학선집「포말위의 식사」(강천간) ▲91­현재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외 창작들 재간.영화칼럼집「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간) 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
  • 반민족연 김봉우소장 「친일파 99인」 3권 완간(인터뷰)

    ◎“친일인사에 대한 종합 심판서죠”/총독부·경찰서 자료 토대… 정확도 자신 『역사상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난뒤 반역자를 처단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이처럼 사회 전반에 기강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친일파에 대한 심판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제하 분야별 주요 친일인사에 대한 친일이력서라고 할수 있는 「친일파 99인」 전3권(돌베게간)을 최근 완간한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46)은 『친일 인사에 대한 최초의 심판서가 이제서야 처음 나온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책은 분명 민족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그러나 자기 부정성에 대한 연구는 자기 사랑과 자기 긍정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당연한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일파 99인」은 제목 그대로 일제하의 각계 인사 99명에 대한 친일 기록이다.정치와 경제,사회·문화 등 3권으로 묶여진 이 책에는 이완용과 송병준,박영효에서 부터 이능화,김활란,황신덕,모윤숙,현제명에 이르기까지 각계인사들의 친일기록이 담겨있다.이 책은 또 박흥식과 김기창 등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인사들의 친일기록까지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연구소의 목표는 사실 「친일 인명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2만5천명에 달하는 친일인사의 기록을 사전으로 남긴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지요.그래서 사전을 만들기 위한 예비작업을 겸해 사전을 만드는데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한다는 목적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19 91년2월 발족됐다.「친일 인명사전」역시 임선생이 당초 소규모로 구상했던 것을 연구소가 발족된뒤 의욕적으로 범위를 크게 넓힌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위해 처음에는 친일인사 2천명을 추렸지요.다시 2백명을 고른뒤 다시 종합적인 점검을 거쳐 마지막으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친일인사 99명을 골라냈습니다.99명을 골랐다는데 대해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완의 작업을 뜻한다고나 할까요.1백명을 골랐다면 친일인사선별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됐다는 느낌을 줄수 있으니까요』 이 책이 발간된뒤 책에 실린사람들의 후손으로 부터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연구소측이 책의 내용의 정확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생존하고 있는 인사들로 부터는 아무런 반발이 없었다는데 있다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내용은 개인적인 진술이나 소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나 경찰서 등 관청에서 발간한 자료를 기초로 했기 때문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책의 완간에 이어 이미 「친일 인명사전」과 「친일파 총서」를 펴내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 작업은 과거에 있었던 친일인사 규명작업에 대한 공포와 가능성에 대한 회의,시간적으로 너무 늦지않았느냐는 역사인식에 대한 무지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그래야 민족의 자주성이 회복되고 주체성도 비로소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김소장은 「친일파 99인」이 많이 팔려 앞으로의 작업에 국민적 격려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웃었다.
  • 출제관리 52명 전원 징계/교육부/교육평가원 답안유출 문책

    ◎전 원장 포함 10명 파면·해임/출입통제·검색 등 보안관리지침 무시 교육부는 29일 국립교육평가원 장학사의 91∼93학년도 대입학력고사 답안 유출사건과 출제본부 관리부직원에 대한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전·현직 관련자 52명 전원을 사정차원에서 문책키로 했다. 교육부는 또 징계위원회(위원장 이천수 차관)의 문책절차가 끝나는대로 평가원장,교수요원,기능직 직원을 제외한 전직원을 대상으로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키로 했다. 교육부는 지난 18일부터 교육평가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대입학력고사 출제과정에서 「출제본부 보안관리 지침」이 무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평가원은 입시출제본부 관리요원을 선정하면서 특정인이 91∼93학년도의 경우 4∼7번까지 특정업무에 반복 기용되도록해 김광옥전장학사(50)가 상습적으로 답안을 유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평가원은 또 출제관리요원 선발과정에서 당해연도에 대학에 응시하는 직계자녀가 있는지의 여부를 가리지 않았으며 출제,검토위원등 출제본부 출제관리 요원들에 대한 검색이 형식적으로 실시됐고 평가원 직원들로 짜여진 관리요원들의 출입시에도 소지품 검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출제본부 관리요원들은 외출하려면 관리대표의 서면허가를 얻어 보안요원과 함께 외출해야 되는데도 92,93학년도 전·후기 입시출제의 경우 관리요원 1백63명은 관리대표의 사전허가없이,93학년도 홍순철관리부대표는 무려 21번이나 보안요원없이 각각 외출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따라 교육부는 김장학관과 김장학사를 파면하고 답안이 유출된 91∼92학년도 평가원장이었던 오덕렬 현학술진흥재단 이사장(58)을 해임조치했다.그러나 93학년도의 유성종전원장은 문책대상이나 이미 퇴임해 지휘·감독 책임을 물을 수없게 됐다. 교육부는 또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성기훈출제관리부장(51),이해영사회교과실장(48),출제본부관리 부대표 홍순철연구관(45)등 7명을 해임·정직등 중징계하고 출제관리부 보안위원 25명,진행위원,자료위원등 29명을 징계또는 문책했다.91학년도 평가원 출제관리부장이었던 교육부 심광한편수관리관(53)등 5명과 보안요원 10명은 징계소멸시효가 만료돼 인사조치토록 했다. 교육부는 91∼92학년도 입시에서 유출된 답안으로 대학에 합격한 함기선씨(54)의 두 딸과 김장학관의 아들에대해 각각 해당대학에 입학을 취소토록 지시했다.
  • 이문구작 「유자소전」(이달의 소설)

    ◎범속한 삶속에 용해된 유가사상 언어를 사용한다거니,언어를 쓴다거니 하는 말은 이문구의 언어표현방식을 얘기할때 적절하지 못하다.이문구는 언어를 부린다.그의 소설은 쓰여진 말들의 집결체가 아니라 부려진 말들의 곳간이다.그의 언어는 드넓은 목초지대에 부려진 마소와 같아서 힘입고 자유로우며 생동한다.이문구는 생명체로서의 언어를 부린다.숨을 쉬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의 언어는 많은 선율을 지니고 있다.선율을 타면서 비로소 그의 언어는 언어의 몸체를 얻는다.그는 대상을 서술할때 이미지로서라기 보다 음조와 가락을 머금고 있는 수많은 소리의 형식으로서 상상하는 드문 작가이다.그 소설 문체의 음악성은 말(언)과 글(문)사이의 구별이나 대립을 무화한다.이문구 문체의 탁월함은 말/글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다.말/글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것은 도식적으로 말해 감성/지성,표현체/지시체 사이의 대립을,결국 주정주의/리얼리즘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주관/객관의 대립을 훌쩍 넘어선다는 점에 이문구 문체가 품는 세계관이깃들여 있다.그가 「전」의 형식에 깊은 관심을 쏟는 것도 그의 이러한 문체적 세계관과 관련이 깊다.왜냐하면 「전」형식은 역사와 인물의 양면을 아우르는 형식이기 때문이다.짧게 말해 「전」은 수가적 한자문화권에서 고유하게 발전되어온 한 인물의 일대기이면서 수사적 기록이다.「전」은 개인성과 역사성을 함께 추구하는,달리 말해 1인칭 시선과 3인칭 시선을 함께 아우르는 유가적 역사 서술의 독특한 방편이 된다.「유자소전」은 이러한 「전」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이문구는 오랫동안 「전」의 형식에 골몰해온 작가이다.「우리동네」연작이 그렇고 「관촌수필」도 「전」의 성격이 짙다.이번에 출간된 「유자소전」도 그러한 기왕의 작업선상에 있다.그러나 이문구의 「전」형식과 전통적 「전」과의 차이는 그가 유교적 가치관이 지닌 소중한 부분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유교적 세계관의 허구성을 비판한다는 점이다.그 비판은 대개 청승떨기와 능청떨기를 통해 이루어진다.한 예를 보자. 『한번은 내가 짐짓 해보는 말로,「대관절 그 개갈 안난다는말이 무슨 뜻이라나?」,유자더러 물었더니 유자 대답하여 가로되,「아,그 개갈 안난다는 말처럼 개갈 안나는 말이 워디 있간 됩세 나버러 개갈 안나게 묻느다나」/하고 사뭇 퉁명을 부리는데 그러는 그의 표정을 읽으니 말이 난 제제에 아예 어원까지 캐서 적실하게 밝혀줄 수만 있다면 작히나 좋을까만 허나 말인즉 원체가 「개갈 안나는」말인지라 당최 종잡을 수가 없어서 유감이라는 내색이 역력하였다』 인용문에서 「…말하기를」이라고 쓰지 않고 「…가로되」를 쓴 것은 경전에서 흔히 쓰인 「왈」(왈)의 직역을 의식한 것인데 이는 예를 존승하는 의식의 발로이다.그러나 그러한 의례적 존칭투는 「개갈 안 난다」라는 비속적 관형어투에 의해 감싸인다.그 감싸임에 의해 즉 「가로되」는 「개갈 안 난다」라는 세속어투의 감싸임에 의해 「가로되」의 쓰임새가 더불어 세속화된다.이문구의 소설에서 유림적 의식은 이처럼 민중적 범속성에 의해 늘 감싸인다.그 민중적 범속성물 가운데 그가 유별나게 자주 사용하는 것은 능청떨기이다.「개갈 안 난다」는말의 말꼬리를 잡고 능청을 떠는 동안 그 능청이 유가적 의식을 녹이면서 감싸안는 것이다.그래서 이문구의 소설에서 유가의식은 돌올하게 솟아서 권력을 행세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세속적 삶 속에 스며든 채로 멀리 퍼진다.범속한 삶 속에 용해된 「민중화한 유가의식」은 그러므로 그 자체로써 이문구 문학의 주요한 한 주제를 이루는 것이다.
  • “서울신문 연재소설 「바람의 사슬」을 마치며

    ◎“시한부 종말론 파동 통해 「코리즘」 제기”/소설 시작 6개월후 휴거 소동/「예언 소설가」란 닉네임 얻기도 지난해 나라안을 떠들썩하게한 「휴거파동」을 소설속에서 미리 예언했던 서울신문연재소설 「바람의 사슬」이 이달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지난 92년1월1일부터 장장 16개월간 4백65회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 이 작품은 역량있는 중견작가 오인문씨가 신문연재소설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연재를 끝내고 난 작가의 소회를 소개합니다. 처녀봉을 정복한 알피니스트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처음부터 너무 험준한 미답의 봉우리를 택해 등반을 시도했기 때문인지 힘이 들었고,독자들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아 그동안 항상 팽팽한 긴장속에서 지내왔다.소설의 전개과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신흥종교 신도들이 테러 위협을 가해 오기도 했고,또 어떤 독자는 『이런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쓰여진다는 사실에 자랑을 느낀다』며 참고자료를 보내오기도 했다.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독자들과 함께 쓴 소설도 되는 셈이다. 92년 새해 첫날부터 이 소설을 시작했을때 나는 몇가지 상황을 설정했었다.세계의 패권국이 되기 위한 강대국들 사이의 경제전쟁이 우리나라를 무대로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그것은 곧 종교문제로 표면에 떠오를 것이라는 가정이었다.그래서 나는 시한부종말론파동을 이 소설의 주요사건으로 설정해 전개시켜 나갔다.그런데 반년쯤 지나자 소설속의 상황이 진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져 「10월28일 휴거파동」이 일어 났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그 소설의 내용과 흡사한 상황을 6개월뒤에 쓴 기사가 신문의 특종이 되다니,소설이란 참 묘한 것이로군요』라고 한 언론인이 내게 말했다. 그렇다.소설이란 참 묘한 것이다.특히 신문연재소설이란 더 그렇다.순수문학적 기능만으로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신문소설의 경우는 이런 측면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나는 감히 이런 시도를 했고,덕분에 내게는 「예언소설가」라는 닉네임 하나가 더 붙여졌다. 연재도중 이 소설을 『거시적 리얼리즘으로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 역작』이란 분에 넘친 본격적 평론이 권위있는 문학지에 실리기도 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나는 이 소설에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에 비교될 한국의 코리즘 문제도 제기해 보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높았음을 밝혀 둔다. 방대한 자료를 소화해 내느라 미처 발효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을 이 작품을 끝까지 인내하며 읽어주신 독자들과 이 글의 창작계기를 주신 서울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포철·광양제철 분리 백지화/경쟁력저하 등 부작용 우려/정부

    정부는 한때 포항과 광양제철소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최근 이를 백지화했다. 28일 경제기획원 상공자원부 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포철의 철강재 공급독점 등을 이유로 거대기업 포철의 법인분리를 실무차원에서 검토했으나 경제에 주는 충격과 분리에 따른 포철의 경쟁력 저하 등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없었던 일」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포철의 대기업집단 지정과 함께 일각에서 포철의 경영합리화를 위한 계열분리 방안 등이 제기됐으나 실무차원의 검토와 관계부처실무자간의 협의에서 철강재 공급가격 상승 등 분리에 따른 산업의 영향을 고려,법인분리방안은 백지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계열분리 백지화는 ▲철강업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제고를 위해 제철소 합병추세를 보이며 대규모화하고 있고 ▲포항과 광양을 분리했을 때 대외신인도 하락과 함께 국내와 해외사무소의 중복개설,총괄부서의 증가로 1천억원 이상의 추가부담이 생기는 등 경영이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법인분리로 경영환경이 악화될 경우 철강재 공급가격이 불가피하게 상승하게 되고 이에 따라 염가의 철강재로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는 자동차 조선 기계 등 기간산업의 가격경쟁력도 약화돼 법인분리에 따른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포철의 한 관계자는 『현재 포항은 철근 후판 선재 스테인레스강 등 고급강 중심의 소량다품종 생산체제를 갖춘 반면 광양의 경우 열연과 냉연강판을 주로 생산해 제철소간 이상적인 보완분업체제를 이루고 있다』며 『법인분리 방안이 한때 제기됐으나 최근 정부분석에서도 분리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 백지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6)

    ◎혁신창간의 주역들/“새 민족신문” 애국지사 총결집/「민족대표 33인」중 오세창 등 3명 참여/편집진인선도 “독립완성” 부합 인물로/이관구주필 주도… 몽양도 “각당 함께 혁신” 축하 8·15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11월22일 우리민족을 대변할 진실된 언론기관으로 재출발하게 된 서울신문은 당시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던 군소신문들과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달랐다. 인쇄시설등 시설면에서의 완벽한 구비는 물론이거니와 1904년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로 창간되어 구한말 격동의 6년간과 또 일제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의 36년간등 모두 42년동안 중단없이 역사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기 때문에 서울신문이 국내외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당시 좌·우익 대립상황 속에서의 위상설정을 비롯,앞으로 서울신문을 이끌고 나갈 경영진과 편집진의 구성문제등은 단순한 일개 신문창간의 차원이 아니라 미군정당국의 향후 언론정책의 방향을 가늠케하는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 ○하지중장이주문 미군정청으로부터 매일신보를 새로운 신문으로 창간토록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사람은 성재 이관구와 안당 하경덕 이었다.해방 2개월 후인 10월중순쯤 하지중장은 조선일보 정경부장과 조선중앙일보 주필등을 거치며 언론계 중진으로 활약했던 이관구에게 매일신보를 인수,위창 오세창을 사장에 추대하고 새로운 신문을 창간해 줄것을 요청했다.또 한편으로는 당시 하버드대 출신 철학박사로 연전교수로 있던 하경덕을 매일신보의 자산을 인수,관리하는 재산관리인으로 위촉했다. ○김동준 재정담당 대임을 맡은 이들에게 놓여진 선결과제는 신문창간에 필요한 재원확보와 대내외적으로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고 양심적인 인사들로 경영및 편집진을 구성하는 문제였다.이들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돼 나갔다.오세창선생의 서도 제자인 김무삼이 청년실업가 김동준을 이들에게 소개해왔던것.김동준은 광산업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으로 해방과 건국 과정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때마침 원주의 토지를 매각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간 자본금을 쾌척할 준비가 돼있었다. 이같이 재원문제가 해결되자 간부진 인선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초대사장에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으로 지조높은 항일민족주의자로 추앙받던 오세창선생을 추대하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수 없었다.이어서 역시 33인중의 한분인 권동진과 벽초 홍명희 두사람을 상징적인 고문으로 추대,진용을 더욱 강화시켰다. 창간의 실질주역이자 미군정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하경덕은 부사장,자본투자자 김동준은 전무에,그리고 신문경영에 오랜 경험을 갖고 있던 이원혁과 조중환이 상무에 각각 인선됐다.해방직후 「매일신보 자치위」를 결성,6백여사원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신문을 발행하며 외부로부터의 매일신보 접수기도를 막아냈던 문화부기자 윤희순은 출판국장겸 상임감사에 선임됐다.이렇게 짜여진 초창기 경영진은 다음과 같다. ▲사장=오세창 ▲고문=권동진 홍명희 ▲부사장=하경덕 ▲전무=김동준▲상무=이원혁 조중환 ▲취체역=김무삼 ▲상임감사역=윤희순 ○편집국에 10개부 당시 81세의고령인 오세창선생은 처음에는 사장취임을 고사했다.그러나 그가 자세를 바꿔 사장취임을 결심하게 된것은 해방후 혼란상을 보이고 있던 언론계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자신의 여생을 진정한 민족 언론기관 수립에 바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그는 서울신문 창간이 순조롭게 진행,자리가 잡히게 되면 물러서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창간 4개월만에 하경덕부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다. 한편 편집진용은 주필로 선임된 이관구의 주도로 짜여졌다.그는 창간사설에서 「해방후 민주주의적 질서수립과 독립완성」이라고 스스로 설정한 과제에 부합할 인물들을 물색했다.편집국장에는 대산 홍기문을 내정했다. 1903년 충북 괴산에서 벽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 일본대학 문학부와 조도전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귀국후 중동학교 교사로 있다가 부친의 권유로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언론계에 입문한 그는 논설위원도 겸임하며 문필을 날렸으며 문자보급 캠페인등 계몽사업에 주력했다.창간 편집진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국장=홍기문 ▲편집부=서강백(부장)허현 ▲정치부=박승원(부장)김영상 ▲경제부=주련(부장) ▲사회부=최금동(부장)고흥상 양형진 이봉구 인주현 여상현 한규호 윤일모 서병곤 오쾌일 유종대 ▲문화부=홍기무(부장) 조경희 노천명 이시우 이석희 ▲체육부=이용일 이유형 ▲특집부=김명수(부장) ▲사진부=조대식(부장)이병은 권태완 ▲교정부=최일준(부장) ▲조사부=한길수(부장) 이들 편집국의 창간진용은 이주필이 창간사설에서 밝힌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않는 공정하고 또 적확한 보도」를 위해 당시 혼란의 극치에 달했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하에서 민족언론으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취해나갔다.또한 이주필의 「은같은 말은 김같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은 당시 기자들에게 철저한 기자정신으로의 무장과 발로 뛰어 확인하는 책임정신을 가르친 것으로 지금까지도 전해져오고 있다. ○벽초3부자 참여 이들 창간진용 가운데 문화부장 홍기무는 편집국장 홍기삼의 친동생으로 벽초3부자가 서울신문 창간에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벽초는 자식 사랑이 남달라 자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버지와 대화할수 있게 했으며 당시의 분위기로는 상상도 못할 부자상초(맞담배)를 허용,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자식들의 부친에 대한 효도 또한 지극해 홍기문은 월북한 부친을 따라 월북하기도 했다.벽초는 1948년 4월 과도입법의원 신분으로 평양의 남북연석회의 남한대표로 참석했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으며 홍기삼은 같은해 11월 조선일보 전무로 있다가 아버지를 찾아 월북했다. 새로운 각오와 불타는 사명감에서 출발된 서울신문을 보는 외부의 기대도 컸다.당시 미군정장관 아놀드는 『나는 서울신문이 조선의 한 독립신문으로 호평받을 것을 확신한다』고 축하인사를 보내왔다.또 여운형은 『덕망 높은 신간부를 맞이하여 제호까지 고쳐 명실이 함께 혁신한 자태로 출발한다는 것은 우리 조선의 앞날을 위해 가장 경축할 일』이라고 치하했다.
  • 불 관객 배꼽 빼는 코미디영화 「손님」

    ◎석달새 4백만 몰려… 10년내 대히트/중세인,현대 출현 실수연발에 “폭소” 「손님」이라는 프랑스영화가 이 나라에서 4백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이것은 과거 10년동안 어느 프랑스 코미디영화도 못따르는 기록이다.그야말로 프랑스인이 곧잘 영어로 표현하는 「빅 뱅」(대폭발)이다. ○제작비 6천만프랑 재미있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개봉한지 석달이 지난 현재도 영화관들은 여전히 손님들로 만원이다.43세의 제작자 알랭 테르지앙이 『프랑스영화의 어쩔수 없는 퇴조란 천만의 말씀이란 증거』라고 뻐길 만하다.이 작품은 막강한 할리우드영화들에 눌려 빈사지경에 빠져있는 프랑스영화의 자존심을 되찾게 했다. 특히 희극영화가 이런 히트를 친 것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진다.코미디라면 TV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제작비를 적게 들이고도 재미를 보았다.테르지앙은 『관객을 끌려면 적어도 1억프랑(약 1백60억원)은 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이 작품제작엔 6천만프랑도 채 들지 않았다』고 밝혔다.그는 54번째의 작품인 이 영화에서 마침내 노다지를 캐낸 것이다. ○자동차와 칼싸움 중세의 기사 고드프루아와 그의 하인자크누이유는 마법사가 지어준 약을 먹고 아스팔트길과 자동차,송전탑과 전등불 따위의 괴물이 그득한 20세기의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다.칼을 빼들어 자동차와 싸우고 화장실 변기에 손을 씻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한다.기사는 우연히 자신의 직계후손과 상봉하며 또한 마법사의 후손과도 만난다.선대의 유언을 지켜 약의 비방을 대대로 물려받아온 마법사의 후손은 기사를 다시 중세로 돌아가게 해준다. 타임머신같은 착상의 이 영화는 미국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재미있다.얼핏 보기엔 「백 투 더 퓨처」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가.영화잡지 「영화노트」에 따르면 「프랑스식 코미디」이기 때문이다.프랑스 감독과 배우가 프랑스의 역사를 배경으로 프랑스인의 감정에 잘 맞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장 마리 푸아레감독은 이 영화에 역사와 가족의 가치,문명발달과 환경파괴,인권문제 따위를 양념처럼 얹음으로써 단순히 웃고마는 코미디에 그치지 않게 했다.천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조상과 후손의 해후는 프랑스인들에게 역사와 가족의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게 배역을 잘 캐스팅한 것도 성공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기사역을 맡은 르노는 희극배우같지 않고 웃지도 않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때문에 사람들은 웃는다.클리비에는 원래 유명한 코미디언이고 기사의 후손 베아트리스역을 맡은 여배우 발레리 르메르시에는 유달리 이 영화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대사흉내내기 유행 베아트리스는 『오케』(OK)라는 말을 자주 쓰며 기사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 때마다 『미치겠군』하고 내뱉는다.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두 마디 말의 흉내가 대유행인데 누군가가 이를 흉내내면 모두 허리를 잡는다.이런 유행어도 관객동원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 현대판 고려장(외언내언)

    「용재총화」(권10)에 야인(여진주)들의 풍습 몇가지가 적혀있다.그 가운데 늙은 어버이에 대한 얘기도 끼인다.­어버이가 늙어서 능히 걷지 못하면 자식이 성찬을 베풀어 대접한 다음 묻는다.『아버지 곰이 되고 싶습니까,호랑이가 되고 싶습니까.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그런 다음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아버지를 주머니속에 넣는다.그 주머니를 나무에 걸어놓고 활을 쏘되 살 하나로써 죽이는 아들을 참효자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었던지 아닌지 모를 풍습이었지만 가슴 섬뜩해지는 얘기다.먹고살기 어려워서였던 것일까.한데,문명화한 오늘에도 그런 유형의 가슴저려 오는 얘기는 있다.「현대판 고려장」­.대구에 사는 올해 쉬흔두살의 한초로는 스무살난 아들과 짜고 여든한살된 자신의 노모를 남을 시켜 버리게 한 것이다.그래서 노파는 죽었다.야인들만도 못한 그 초로의 자식은 「마지막 성찬」을 베풀어 드렸을 것 같지도 않다.팔순노모는 곰이 됐을까,호랑이가 됐을까. 부자가 다 노동자이고 보면 생활이넉넉지못할것같긴하다.그러나청부유기하는 대가로 1백20만원을 건넸다니 아주 어렵지는 않은것도 같다.어쨌거나 어버이를 부양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일뿐 빈부와 관계되는 일은 아니다.하건만 시류는 늙고 병든 어버이를「귀찮은 존재」로 여겨나가는 경향이다.초로의 아비는 그 자식에게 「교훈」을 남긴 셈이다.자신 또한 늙고 병들면 할머니처럼 내다버리라는 실천적 수훈이 되었을 터이니까.고려장 있던 시절의 노모와 부자와 지게 얘기를 바로 오늘의 현실에서 보는 씁쓸함이있다. 그 사건이 있은 며칠후 서울에서는 예순아홉살난 아들이 아흔세살된 노모를 목졸라 죽인 사건도 일어났다.『오래 살아 괴롭힌다』가 이유였다.자신도목졸려죽을 짓을 한 셈이다.더구나 이 경우는 오래 못살았다고 할수 없는 늙은이의 짓이어서 더 숨이 막힌다.막돼가는 세상이구나 싶기만 하다.
  • 박 의장 사퇴서 제출

    박준규국회의장이 24일 구창림비서실장을 통해 26일자로 의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내용의 의장직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박의장이 사퇴서를 제출함에 따라 26일 본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그의 사임안을 처리한다. 국회소집에 앞서 박의장이 사퇴서를 제출한 것은 의장직사퇴에 따른 신상발언을 따로 국회 본회의에서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박의장은 이날 의장직사퇴서에서 재산문제로 인한 물의를 유감으로 생각하며 입법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의장직을 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4·23보선 민자당 압승이후의 정국

    ◎“국민은 개혁 편”… 여 추진력 가속/민주계 등 실세 정치권풍토개선 박차/여/임시국회 대여공세로 “완패희석” 모색/야 민자당의 완승으로 끝난 「4·23보선」결과는 향후정국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민자당은 이번 보선을 그간 김영삼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한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폭넓은 지지로 해석하며 정국주도권 확보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보선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이번 임시국회를 계기로 대여공세 강화를 통한 국면전환을 시도할 태세이다. ▷민자당◁ 김 대통령의 지속적인 개혁추진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표로 나타난 것으로 풀이하며 매우 흡족해 하고있다.더불어 그동안 사정정국에 다소 움츠렸던 집권여당의 능동적인 역할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재산공개파문에 따른 당내 일부의 동요가 진정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한다. 사실 여야 모두가 이번 보선에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강하게 부여했고 그만큼 정치적 비중 또한 컸다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때문에 민자당이 이처럼 고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최형우전총장의 도중하차로 개혁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렸던 여권핵심부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개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덕용정무제1장관이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할것』이라며 『나비가 탄생하려면 오랜 세월을 고치로 보내야 하듯이 개혁작업에서 일부가 희생되고 고통을 당했다고 해서 중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재섭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이번 결과는 우리 당이 개혁에 앞장서달라는 준엄한 분부』라고 풀이하며 『우리의 잘못된 정치관행과 제도를 고치는데 진력할 것』이라고 향후방향을 제시했다. 여하튼 민자당은 이번 보선결과에 힘입어 당장 26일 열리는 임시국회부터 정국주도권을 잡아나갈 것이 분명하다.박준규국회의장의 의장직사퇴및 신임의장선출등 5건의 표결에 있어서도 원만한 처리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사안의 성격상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부표를 던지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자당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보선완승이 당의 국민적 인기와 주도적 역할에 의해 이뤄졌기 보다는 김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계를 비롯한 김대통령의 측근인사를 중심으로 더욱 정치권 풍토개선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높고 이럴경우 안그래도 소외의식이 강한 민정,공화계가 더욱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여진다.그만큼 당의 단합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광명에서 손학규후보의 당선은 앞으로 공천자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짐작된다. 손후보는 부천서성고문사건의 권인숙씨가 지지연설을 할 정도로 재야핵심인사였음에도 낙승을 거둔 것은 국민들이 얼마나 개혁을 원하고 있는지 단적인 증거라는 관측이고 보면 앞으로 있을 6월말쯤의 4개지역 보선에서도 참신한 개혁인사를 다수 공천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리고 이것은 정치권을 개혁대 보수의 구도로 재편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전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자 겉으로는 『예상했던 일』로 치부하면서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기택대표도 『전당대회후 당체제가 정비되지않은 상황에서,또 신정부가 들어서서 국민적 지지가 쏠리고 있는 때에 보선이 실시돼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문민정부의 개혁열풍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만큼 이번 보선은 민주당에 힘겨운 싸움이었던 셈이다.지도부의 선거전략 부재,당의 무기력등이 집중 거론될 것으로 예상됐던 이날의 최고위원 회의가 자성의 분위기속에서 공동책임론으로 조용히 끝난 것도 이러한 공통된 현실 인식때문이다.다소 비판적인 정대철 이철의원등이 『지금 당내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뿐 심각한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는게 사실이다.무기력의 국면을 타개할만한 마땅한 묘책을 찾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만일 이같은 무기력증세가 지속된다면 오는 6월의 보선도 장담할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이게 되고,그 이후의 사태 또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민주당이 최고위원회가 끝난뒤 곧바로 원내대책회의와 이대표 연설문안 초안작성에 돌입한 것도 「보선후유증」에서 탈출,국면전환을 위한것으로 해석된다.보선 투표율 저조만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이를 정치권전체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나선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를 무기력에서의 탈출구로,입지확보의 계기로 적극 활용할 것같다.김대식총무는 『국회활동이 보선결과에 영향을 받지않을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따라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이동근의원 석방결의안 처리와 이대표연설을 통한 대여 공세수위는 어느때 보다 높을 전망이다.
  • 문민개혁시대 민의소재 재확인/「4·23보선」 결과가 뜻하는 것

    ◎공명 프리미엄속 정국주도 자신감/민자/무력감 증폭… 입지 약화로 수세 몰려/민주 23일 실시된 3개 지역 보궐선거는 민자당의 완승으로 끝났다.김영삼대통령의 출신지역인 부산의 동래갑,사하에서 민자당의 승리는 일찍부터 예견됐었다.그러나 친야성향이 강한 광명에서조차 민자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새정부 출범이후 여권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이같은 결과는 김대통령이 지난 2개월여동안 추진해온 일련의 개혁정책에 대한 평가라고도 볼 수 있다. 여야관계 측면에서는 현정국운영에 있어 주도권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앞으로도 특별한 돌발변수가 없는 한 이같은 판세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전망된다.선거결과가 여권에게는 자신감을,야권에게는 무력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따라서 김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는 선거전보다 호조건속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정치권은 당초 이번 보선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를 주저했었다.단순한 지역선거정도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외견상명분은 공명선거 정착을 위해서였다.정치적인 무게를 지나치게 두다보면 중앙당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불가피하고 결국 선거양상은 과열·타락으로 치닫고 만다는 것이었다.과거 보선때마다 되풀이되었던 이같은 양상은 승자·패자 모두에게 부작용이 너무 컸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명분외에 속사정도 있다.여야가 이번 선거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에 상당한 위험부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민자당의 경우 지역특성상 부산의 동래,사하에서의 승리는 확신할 수 있었지만 야세가 강한 광명에서의 결과가 미지수였다.민주당도 당초 기대했던 광명지역에 민자당이 개혁이미지의 손학규후보를 공천하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선거전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광명지역에서조차 지역여론이 여당후보 우세쪽으로 나타났고 자연히 여야의 대결장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퇴색했다. 그러나 여권핵심부의 입장에서 이번 보선을 개혁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근거로 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새정부 출범이후 일련의 개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표의 검증과정은없었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따라서 김영삼대통령에게 이번 보선은 개혁을 위한 한단계 높은 추진력을 갖게하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그만큼 개혁을 위해서 여론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게 됐고 정치적 부담도 한결 덜해졌다.반대로 김대통령이 지칭하는 반개혁세력은 더욱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여권지도부는 앞으로의 개혁과정에서 정치적 추가 희생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더이상 개념치 않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이에비해 민주당은 이번 보선을 계기로 더욱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개혁에 대해 총론적 차원에서 더이상 시비를 걸 여지가 없어진만큼 정국의 큰 흐름에 있어서는 여당에 계속 끌려가야 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기택대표등 당수뇌부는 지도력결핍이라는 문제제기와 더불어 지난번 재산공개파문에 따른 당내비판여론에 시달려왔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선이후의 여야관계는 더욱 순탄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양측관계는 이미 민주당 이동근의원의 구속사건으로 냉각되기 시작했다.민주당지도부는 보선의 후유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 위한 국면전환을 시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 보선으로 새롭게 짜여진 여야간의 형세와 인식은 26일 시작되는 임시국회를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여겨진다.민자당의 자신감에 맞서 민주당은 최근의 대형사건 등을 빌미로 철저히 시비를 가리겠다는 자세다.종전의 「선별적 협조」방침과는 달라진 모습이다.이같은 분위기는 민주당이 설욕을 다짐하고 있는 오는 6월의 보궐선거까지 계속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첨단 DB관리시스템 개발/대우통신/한글데이터의 입출력도 가능

    대우통신(대표 박성규)은 23일 대량의 정보처리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다사용자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사진)의 개발에 성공했다. 「한바다」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시스템은 사용자 접속기능인 전위처리기와 데이터를 저장·관리하는 후위처리기로 구성됐다.전위처리기에는 데이터베이스의 설계를 위한 스키마관리기,정보의 검색·변경 등이 가능한 폼이용 질의기,응용프로그램 생성도구인 사용자메뉴,보고서 작성기 등이 있다.후위처리기에는 데이터의 무결성보장 및 데이터 복구·보완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또 한글 데이터의 입출력과 데이터베이스의 구축도 가능해 값비싼 외국제품에만 의존해온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기술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조세불복 갈수록 늘어/작년 심판청구 4천3백건… 46% 증가

    ◎“계산착오” 22.4% 시정 국세청이나 관세청이 물린 세금에 납세자가 이의를 제기한 국세심판 청구건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10건중 2·2건은 세금이 잘못 매겨진 것으로 판정됐다. 국세심판소가 23일 내놓은 국세심판청구처리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각종 세금부과에 불만을 느낀 납세자가 국세청을 통해 심판을 청구한 건수는 전년의 2천8백7건보다 45.9%가 늘어난 4천3백3건이었다. 이중 국세청이나 관세청이 세금을 잘못 매긴것으로 판정돼 납세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인용건수는 9백65건으로 인용률이 22.4%였다. 인용률은 90년 27.9%에서 91년 26.5로 점차 낮아지고 있으나 일본의 18%,대만의 20%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세목별 인용률을 보면 ▲관세가 39.1%로 가장 높고 ▲상속·증여세 38.5% ▲법인세 33% ▲양도소득세 25.5% ▲토지초과이득세 11.7%이다. 또 국세심판을 거치고도 불만을 느껴 납세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1천4백36건 가운데 정부가 세금을 잘못 매겼다고 법원이 판결한 인용률은 전년보다 1.1%포인트 높아진 38.6%(5백55건)에 달했다. 국세청이나 관세청은 국세심판소가 판정한 인용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미 납부한 세금을 다시 산정해서 부당하게 부과한 세금을 되돌려줘야 한다. 지난해 인용건수 9백65건으로 정부가 납세자에게 되돌려준 세금은 1천31억원이나 된다. 90년의 인용금액은 6백56억원,91년 8백47억원이었다. 한편 납세자의 의식향상과 토초세등 재산관련 세금부과에 대한 이의건수가 급증하면서 전체 세금부과 건수에서 심판청구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조세불복 비율이 점차 증가,90년 0.5%에서 91년 0.72%,지난해에는 0.86%로 높아졌다.
  • 「하나회 정리」 이은 군정상화 수순/군인사 비리 사정의지·배경

    ◎“뇌물관행이 전투력 손상” 판단/전례없는 대규모 숙청 가능성/인사고과 복수관리 등 제도개선 검토 군인사를 둘러싼 뇌물수수 수사는 육군수뇌부에대한 「통치권차원의 인사」에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할 수있다.군인사비리사정이 김종호전해참총장의 뇌물수수사건에서 우발적으로 시작됐다기 보다는 하나회제거에 이은 군정상화를 위한 2단계 작업으로 보여진다. 새 문민정부는 군인대통령시대에 고착화된 군의 부패가 기본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인식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진급등 각종 인사를 둘러싸고 고액의 뇌물이 관행화된 상황에서 고급장교들이 과연 군무에 충실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에서 사정작업이 진행되는 듯한 인상이다.때문에 이작업이 부패장교의 대대적인 숙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SBS에서 김전총장건이 보도된 22일 아침에 이미 청와대 고위당국자들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이들은 『SBS에서 큰 사건이 터질것이다』라고 설명했으며 이 문제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임을 예고했었다.이러한 청와대의 움직임은 군사정이 우발적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기간 계획된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김전총장건은 그가 현직에있을 당시 비리가 적발돼 당시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시 노대통령은 어떤 연유에선가 이를 보고받고도 불문에 부쳤다는 후문이다.당시 정부가 정통성부족분을 군의 「정권에대한 충성」에서 상당부문 메우고 있었고 거의 관행화되다시피해 문제삼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점에서 불문의 배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새정부는 군에 더 이상 정권안보를 의존할 필요가 없고,개혁에 대한 높은 국민적지지가 군에 대해서도 과감한 사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23일현재 최소한 육군과 해군에서 군수사당국에 의한 인사비리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이같은 광범위한 군사정은 전례가 없는 것이고 그여파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군인사를 둘러싼 금품수수가 관행화돼있고,공공연한 비밀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사정결과가 없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현해군고위직 관련 비리조사가 증거를 찾지 못해 일단무혐의 처리된데서도 드러나듯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않는한 사실상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따라서 군당국의 조사도 혐의가 있는 사람 모두를 한번쯤 거른다는 일괄사정 형식보다는 제보가 있는 경우로 한정될 것으로 여겨진다. 청와대에는 군인사비리에 대한 제보가 줄을 잇고 있으나 대부분 익명으로 제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정부의 군에대한 사정의지가 이번 김전총장사건으로 확인된 이상 새로운 제보들이 줄을 이을 가능성도 크다는게 사정관계자들의 기대이고 전망이다. 정부는 군의 인사를 둘러싼 비리를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제거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정부가 하나회를 군의 단합을 해치는 종양으로 파악했다면 인사비리는 군의 전투력을 사실상 상실시킨다는 점에서 더 시급히 도려내야할 환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국방부는 최근 2∼3년부터 전군의 진급심사에서 공정성·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3심제를 도입,시행하고 있으나 비리가 개입될 소지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에 따라 근원적인 개선책을 강구할 예정이다.특히 진급에서 지휘관 한사람의 인사고과평점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진급대상자들의 인사고과를 복수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행장사법처리와 금융정화의지(사설)

    대출비리와 관련된 은행장의 사법처리는 경제발전을 위해 김융불조이를 과감히 제거하겠다는 단호한 정부의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고질적인 경제성장의 장애요인을 과감히 수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기관이 돈을 대출해 주면서 커미션을 받는 것은 단순한 불건전 금융관행만은 아니다.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자 대표적인 경제부조리이다.이 비리는 구속될 안영모 동화은행장이 불과 2년동안 커미션을 받아 8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할 정도로 만연되어 있다.그런데도 그같은 경제부조리가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해 온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과거 정부 고위층과 정치권이 금융을 정경유착의 고리로 이용해 온데 있다.고위층과 정치인이 은행에 어느 기업에 대출을 해주라고 요구하는 이른바 낙하산식 대출과 청탁대출 등의 금융비리가 금융인들에게 커미션을 하나의 불건전한 관행정도로 여기게 만들었다.또 그 비리가 권력에 의해 보호까지 받아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정기관이 김융비이를 수사하다그 배후에 정부 고위층이나 정치인이 개재된 것을 알면 그대로 봉합해 버림으로써 금융부조리는 거의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에 와 있는 것이다.정부의 이번 조치는 경제부조리의 대표적인 행태인 대출부조리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한 것이다.지금까지 비리를 저지른 김융기관 임원에 대해 사표처리하던 것과는 달리 사법처리를 하고 있는 데서 그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 사법처리는 금융비리를 저지른 인사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신호로 보여진다.행장 구속에 이어 커미션의 행방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사정당국은 차제에 정·경·금융의 연결고리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그 유착관계를 차단하기 바란다.금융기관 인사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고위층 인사들의 청탁대출을 근절하지 않고는 금융비리의 척결이 불가능하다. 사정당국의 비리척결과 병행해서 금융정책당국은 비리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금융기관의 금리를 빠른 시일안에 자유화해야 한다.기업들이 커미션을 주고도 대출을 받으려하는 것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즉 금리가 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금리가 갖고 있는 고유기능을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또 금융기관 임원을 해당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선임하도록 인사의 자율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금융기관 역시 자정노력이 절실하다.커미션 대출등 금융비리가 외부의 압력보다 내부의 불건전한 관행에 의해 더 많이 빚어진 데 대한 뼈아픈 자성이 있어야 할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