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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W포토] 女스타 S라인 뽐내는 롱드레스!

    [NOW포토] 女스타 S라인 뽐내는 롱드레스!

    배우 손예진, 한지혜, 박솔미, 한예슬, 최여진, 김지수(사진 왼쪽부터)가 롱드레스를 입고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서울신문NTN 유혜정 기자 kicoo2@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중세’의 다양한 신분계층 어린이들을 엿보다

    옛날 옛적에 왕·여왕이나 공주·왕자가 살던 시절에 태어났기를 공상하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신하를 부리는 공주나 왕자로 자신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로라 에이미 슐리츠 글, 로버트 버드 그림, 김민석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을 읽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착각을 깨달을 것이다. 희곡 형식으로 쓰여진 이 동화책은 1255년 영국 장원을 중심으로 ‘중세’를 살아가는 다양한 신분계층의 어린이를 등장시켜 당시의 삶을 재현했다. 양치기 소녀 앨리스, 쟁기 소년 윌, 종자의 딸 로우디, 똥 던지는 아이 바버리, 왕따 유대소년 살로몬 등의 고단한 인생이 생생한 중세풍 그림과 함께 살아났다. 농노의 딸 모그는 아버지가 열병에 죽자 기뻐했다. 아버지가 더 이상 엄마와 어린 동생 잭, 모그를 때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농노가 죽으면 농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가축을 가질 영주의 권리 즉 ‘상속 상납’이 기다리고 있다. 모그네 집의 가장 큰 재산인 암소 ‘파라다이스’를 잃게 생긴 것이다. 모그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까. 양치기 소녀 앨리스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양젖을 먹고 자랐다. 의료시설이 형편없던 중세에는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죽은 일이 허다했다. 양과 같이 살면서 양을 씻기고 돌보는 앨리스는 어느 날 가장 좋아하는 양이 사경을 헤매자 해가 지고 새벽 별이 뜰 때까지, 목이 쉬고 지칠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양이 어서 낫길 바라면서. “사람은 쉬지 않는데 어째서 밭은 쉴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쟁기소년 윌. 중세 농장 경영방식인 ‘삼포제’를 비판한다. 소작농의 아들 윌은 휴경을 거쳐 기름진 땅으로 바뀌는 경작지를 영주가 독차지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 같다. 기사의 아들 사이먼은 늠름하고 멋진 말을 타고 전쟁터로 나가는 꿈을 꾸지만, 1년 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굶어죽을 지경이고 말과 한쪽 다리도 잃었다. 사이먼은 돈이 없어 기사 대신 수도사가 돼야 할 형편이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 도시로 도망쳐 ‘1년+하루’를 살아야 하는 도망자 파스크는 봉건시대가 본질적으로 영주가 농노계층을 착취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도서관의 사서인 작가는 15세기 르네상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유럽의 중세의 역사와 제도를 통해 21세기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중세 시대로 떠나는 여행’이란 코너로 도시와 자유, 중세시대의 유대인, 매사냥, 십자군 전쟁 등 중요한 제도와 현상을 설명한 것도 유익하다. 9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NOW포토]최여진, ‘어머 이렇게나 많이’

    [NOW포토]최여진, ‘어머 이렇게나 많이’

    제 45회 백상예술대상이 27일 오후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최여진이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섬진강 하구에서 건져낸 남도의 봄맛

    섬진강 하구에서 건져낸 남도의 봄맛

    남도에서 벚꽃 개화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됐다. 이맘때면 섬진강 하구에서는 벚굴이 나온다. 벚꽃 필 무렵 가장 속이 튼실하고 맛도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겨울에도 생산되긴 하지만 초봄을 제철로 친다. 겨우내 얼어 있던 들녘의 각종 영양소들이 봄비와 함께 강으로 유입되면서 벚굴의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란 것이 현지 어민들의 설명이다. 종종 강굴로도 불리는 벚굴은 일반 굴의 10배, 거의 어린아이 머리 크기에 달할 만큼 ‘기골이 장대’하다. 키 큰 녀석이니 맛도 덜할 것이란 생각일랑 거두시라. 되레 키작은 일반 굴보다 부드럽고 향도 짙다. 바닷물로 살짝 간을 맞춘 덕에 양념 없이 그냥 먹어도 다디달게 넘어간다. 단, 5월을 지나면서는 알을 배 독성이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벚굴은 수온·염도에 민감해 벚굴의 최대 생산지는 경남 하동군 고전면 선소마을이다. 봄가뭄 때문에 말라깽이 팔십 할머니 젖가슴만도 못하게 쪼그라들었던 섬진강이 하동땅을 지나고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한껏 그 폭을 넓힌다. 바로 이쯤부터, 그러니까 섬진강과 바닷물이 몸을 섞는 기수역에서 벚굴이 자란다. 선소마을에서 남해 바다까지는 4.5㎞ 남짓. 바닷물 60%에 민물이 40%정도로 섞여 있어 벚굴이 생장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벚굴은 수온과 염도에 매우 민감하다. 둘의 수치가 높아지면 폐사하고 만다. 낙동강과 금강 기수역에서 서식하던 벚굴이 자취를 감춘 것도 강을 막아 바닷물과 소통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섬진강 또한 모래 채취 등의 목적으로 바닥을 준설한 탓에 요즘엔 평사리 최참판댁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간다. 강물의 염도가 높아지면서 벚굴의 서식지도 줄어 10년 전에 비해 3분의1 정도만 남았다. 벚굴은 바다 굴처럼 물이 빠졌을 때 캐는 게 아니라 잠수해서 딴다. 섬진강에서 벚굴 채취 면허를 갖고 있는 잠수부는 모두 3명. 18년 경력을 자랑하는 김기관(46)씨를 선소마을 선착장에서 만났다. 고향은 전남 장흥이라고 했다.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김씨가 배에 부착된 산소 호스를 찬 채 강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수심은 8~12m쯤 된다. 수심 5m 아래는 바닷물, 위는 강물이다. 위 아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면서 염도를 조절하는 것. 10분쯤 지난 뒤, 60m짜리 산소 호스가 절반 넘어 풀려나갔을 즈음 김씨가 배 위로 올라왔다. 그물을 올리니 커다란 벚굴이 뱃전에 가득찼다. “물속 바위에 집단 서식하는디, 죄다 허연 입 벌리고 먹이를 먹는 모습이 딱 벚꽃이랑께. 그래서 돌 위에 핀 꽃이라 안혀요.” 염치불구하고 한 점 청하자 김씨가 능숙한 솜씨로 벚굴을 갈라 내밀었다. 5년 정도 자란 녀석.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다. 반으로 잘라달라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한 입에 다 넣어야 한단다. 향과 영양분이 내장 부분에 많아 분리해서 먹으면 제맛이 안 난다는 것. 한 입에 쏘옥 빨아들여 오물오물 씹으니 짭조름하고 향긋하다. 곧 이어 달달한 맛이 입 안에 가득찼다. 치장하지 않은 맛, 내면을 드러내는 맛이다. 맛은 늘 이렇게 솔직하다. ●짭조름한 바다향 입안 가득 구워먹어도 별미다. 화덕에 숯탄을 넣고 껍질째 굽는데, 초장과 묵은 김치가 곁들여진다. 묵은지에 싸먹어야 맛이 더 담백해지기 때문이다. 굽는 과정에서 나온 즙은 양념없이 그냥 마신다. 개운한 맛이 입안을 말끔하게 헹궈준다. 벚굴식당(055-882-9009)은 선소마을에서 유일한 벚굴요리집이다. 주인장이 20년 경력의 벚굴 잠수부이기도 하다. 한 접시에 2만~3만원을 받는다. 굴죽은 5000원. 택배도 가능하다. 20㎏ 7만 5000원. 전남 광양시 망덕포구에는 하나로횟집(061-772-3637) 등 15개 정도의 벚굴 요리집이 있다. 글ㆍ사진 하동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인사]

    ■국무총리실 ◇고위공무원 전보 △정책분석평가실 평가관리관 장상진△의전관 오균◇부이사관 전보△국정운영실 법무행정과장 정기동<사회통합정책실>△사회정책총괄과장 임찬우△재난지원〃 정현용◇서기관 전보 <국정운영실>△정책관리과장 민지홍△행정관리팀장 윤현주△건설정책과장 이교영△교통해양정책팀장 최현승<사회통합정책실>△안전지원과장 공병도△식품건강정책팀장 이정기△교육정책과장 조봉래△과학기술인력정책〃 서병재△고용정책팀장 김영선<규제개혁실>△사회규제심사2과장 문기응<정책분석평가실>△평가정보과장 김달원△자체평가관리〃 이희은△정책분석운영팀장 이종협<정무실>△국회행정관 김민성△시민사회〃 오후석<공보실>△언론지원행정관 정성환△정책홍보〃 민용식◇서기관 파견△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이성춘△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이영근△녹색성장기획단 최용선△미래기획단 정원상△새만금사업추진단 정책총괄과장 박진호 ■지식경제부 ◇국장급 △기술표준원 기술표준정책국장 최형기◇과장급△기술표준원 국제표준협력과장 윤종구△기술규제대응〃 이은호 ■환경부 ◇전보 <국장급>△기획조정실 국제협력관 김찬우△환경정책실 녹색환경정책관 안문수△〃 기후대기정책관 윤종수<과장급>△환경정책실 환경보건정책관 직무대리 오종극△대구지방환경청장 〃 이상팔△감사관실 감사담당관 윤용문△운영지원과장 이윤섭△기획조정실 창의혁신담당관 김법정△〃 규제개혁법무담당관 김동구△영산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단장 문용호 ■조달청 <서울지방청>△경영관리과장 홍성혁△정보기술용역〃 김민수 ■중소기업청 ◇승진 <국장급>△소상공인정책국장 이의준△경영지원〃 김진형<부이사관>△기획재정담당관 이상훈△창의혁신〃 손광희△벤처정책과장 백운만◇과장급 전보△비서관 최원영△감사담당관 윤도근△운영지원과장 최창호△규제개혁법무담당관 유지필△고객정보화〃 정수봉△기업협력과장 류붕걸△동반성장〃 박인숙△사업전환〃 김한식△기업금융〃 김문환△인력지원〃 조종래△해외시장〃 안병수△공공구매판로〃 이병권△기술정책〃 홍진동△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 창업성장지원〃 유지석△인천지방중소기업청장 신권식△충북지방〃 이대건△전북지방〃 이인섭△경남지방〃 최철안△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 창업성장지원과장 이정화 ■한국광해관리공단 △상임이사 김창호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단장 △경영혁신 이경구△정책개발 이재일△보안성평가 임재명◇팀장△경영전략 전길수△경영지원 이석래△보호기술부장 정현철△스팸대응 노명선△분석예방 류찬호△상황관제 신대규△이용자보호 신화수△평가기획 심원태△기술보증 김재성△지식정보보안산업 이시흥 ■건국대 <서울캠퍼스>△상허기념도서관 부관장 박순영△출판부장 박수원△쿨하우스(KU:L HOUSE)관장 김재경△박물관장 직무대행 채현석 ■가톨릭대 △교학부총장 이하규△교목실장 정태영△기획처장 김기찬△교무〃 박광국△학생지원〃 황병연△국제교류〃 마상윤△성신교정 교학〃 손희송△행정대학원장 이종원△문화영성〃 장동하△경영〃 장유철△성심교정 대학원부원장 이미숙△도서관장 오명숙△기획부처장 박희우 ■인제대 백병원 <백중앙의료원> △의료원장 이원로<서울백병원>△병원장 김용봉△부원장 겸 진료부장 염호기△기획실장 강재헌△수련부장 문정섭<부산백병원>△암센터 소장 손창학△감염관리실장 이정녀<일산백병원>△병원장 이응수△부원장 겸 진료부장 문영수△기획실장 김경환△교육수련부장 김경아△학술〃 이준성△수술실장 박장수△중환자〃 손문준(외과) 이성순(내과) 황종희(신생아)△대외협력〃 박시영△장기이식센터소장 박제훈△임상연구센터〃 한상엽△진료지원팀장 조용진△종합건강증진센터장 양윤준△Q.I팀장 김용훈△내시경실장 김남훈△스포츠건강의학센터장 임길병<상계백병원>△학술부장 김진혁△홍보실장 고경수△응급실장 직무대리 이상래<동래백병원>△병원장 오상훈△부원장 겸 진료부장 김운원△응급실장 직무대리 김진수 ■바슈롬싸우스아시아인크 △영업담당 상무 김여진 ■메리츠화재 △영업총괄 전무 박의헌 ■어바이어코리아 △지사장 양승하
  • 기원정사 등 초라해도 “스스로를 등불로 하라” 부처 가르침은 오롯이

    기원정사 등 초라해도 “스스로를 등불로 하라” 부처 가르침은 오롯이

    네팔의 룸비니와 인도의 슈라바스티, 쿠시나가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부터 깨달음을 얻은 정각(正覺), 그리고 전법(轉法)후 열반까지의 궤적이 담긴 불교 성지들이다. 비록 옛 모습을 잃거나 많은 부분 훼손됐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신과 철학, 흔적을 더듬어 전세계에서 찾아드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조계종 총무원이 이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 본지 김성호 선임기자가 동행했다. 지난 14일,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의 슈라바스티. 전날 델리발 새벽기차에 몸을 실어 8시간만에 발을 디딘 럭나우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6시간을 더 달려 밤늦게 슈라바스티에 도착한 순례 일행은 잠을 설친 채 첫 순례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어둠 속 ‘갈 길이 머니 서둘러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자의 성화에 일행들이 눈을 비비며 오른 버스. 비포장도로나 다름없는 거친 길을 막춤 추듯 덜컹거리며 질주하기 시작하자 스님의 강의가 시작된다. “부처님 재세 당시의 16개 나라 중 가장 강력했다는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사위성)는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의 기원이 된 도시”라는 설명에 귀를 세우다보니 어느새 기원정사 입구. 80년을 살았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금강경을 비롯, 현재 전하는 경전의 3분의2 정도를 설한 곳이자 24회의 안거를 날 만큼 생전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기원정사가 아닌가.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혀 입구를 들어서자니 한국말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손을 벌려 한푼 적선을 애타게 청해오는 어린 걸인들이 빙 둘러 막아선다. 첫 순례지에 가졌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조금 ‘헐렁하다’ 싶은, 일말의 허탈감을 안고 들어서니 붉은 벽돌 더미와 오랜 수령의 나무들이 갇힌 듯 큰 정원에 듬성듬성 서있다. 부처님 아들인 라훌라와 제자 사리불존자의 이름을 딴 스투파(탑)들. 이름만 스투파일 뿐, 붉은 벽돌로 나지막이 쌓아놓은 벽돌더미가 초라하다. 2500년 전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던 집이며 대중 설법이 줄곧 이어지는 큼직큼직한 승원들이 줄지어 섰을 터이지만 대부분 파괴·훼손된 채 지금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조촐한 스투파며 승원터가 순례객들을 무심하게 맞을 뿐. 처음 시작된 그 나라에서 이젠 명맥조차 잇기 힘든 작은 종교로 쇠퇴한 불교의 위상이 그대로 읽힌다. 사위국의 큰 부자인 급고독(수닷타 장자)이 성도(成道)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사위국 기타 태자의 땅을 어렵게 사들여 지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기수급고독원’, 즉 기원정사.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기원정사에선 1년 중 안거철 3개월 동안만 주석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개인 거처이던 향실과 강의가 열리던 거대한 승원 터를 지나 걷다보니 이윽고 금강경을 설한 그 유명한 자리 간다 쿠티. 미얀마를 비롯한 각지에서 찾아온 스님과 신도들이 제각각 터를 잡고 앉아 불교 경전들을 독송하는가 싶더니 한국 순례단의 즉석 법회가 시작된다. 조계종이 가장 중요시하는 소의경전인 금강경 표준본을 최근 완성한 사실을 부처님께 알리는 법회. 금강경을 처음 설한 곳에서 여는 금강경 봉정 법회여서일까.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성지를 찾은 한국 스님, 신도들의 낭랑한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기원정사를 나와 1.5㎞쯤 차로 달리다보니 그 옛날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는 사위국의 너른 영토가 펼쳐진다. 옛 사위국 영토에서 맞닥뜨리는 불교 경전 속 흔적들. 스승 부부의 꼬임에 빠져 99명을 죽여 살인마로 전락한 앙굴리마라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감화되어 개종한 뒤 살았던 굴속 생활, 멸종된 망고 나무를 순식간에 키워내 이교도들을 굴종시킨 기적,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기원정사를 지어준 수닷타 장자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간다.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갖고 국경을 넘어 도착한 네팔 땅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 서둘러 찾은 탄생지 룸비니 동산. 이른 시각인데도 순례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느 나라인지 모를 옷차림의 순례객 틈에 끼어 걷다 보니 마야부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은 곳에 세웠다는 마야데비 사원이 눈에 든다. 탄생지의 발굴 현장 자체를 사원으로 만든 독특한 기념공간. 신발을 벗고 안에 드니 탄생 직후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며 발걸음을 떼었다는 아기부처의 족적을 보려는 순례객들로 북적인다. 사방에 회랑처럼 두른 관람로를 떼밀리듯 순례객들에 밀려 돌아나오니 마야 부인이 몸을 씻었다는 너른 사각 연못 언저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일본 사람들이 복원을 맡아 엉뚱하게도 이렇게 큰 목욕지를 만들어놓았다.”는 어느 스님의 볼멘 소리. 열반지 쿠시나가르행 버스에 몸을 실어 룸비니 동산을 떠난 지 한참 됐는데도 스님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다시 국경을 넘어 전날 왔던 길을 거슬러 7시간만에 만난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 먼저 다비장을 들르자는 일행의 의견을 모아 찾은 붉은 벽돌 스투파가 황혼의 햇살을 받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장례를 치렀던 역사적 현장. 순례객들의 탑돌이 행렬을 따르다보니 탑 뒤쪽에 8개의 작은 스투파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 사후 이곳에서 다비해 수습한 사리를 차지하려 전쟁까지 벌이려 했던 당시 여덟 나라가 사리를 가져가 각각 세웠다는 사리탑의 모형들. “먼 훗날 내 몸이 한 군데로 모일 것”이라 예언했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하나된 몸, 즉 평화로운 정토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몸을 뉘어 열반에 들었다는 부처님의 열반상을 모신 열반당은 다비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주말과 공휴일이면 주민들의 가족공원으로 변하는 이곳이 과연 불교 4대 성지인지 의심스럽다.”는 안내자의 귀띔. 열반당까지 이어진 잔디밭 위의 쓰레기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아래 마지막으로 몸을 뉘었다는 사라쌍수에서 위안을 찾는다. 오른 팔로 머리를 괴고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붙인 채 두 발을 포개어 고요히 누운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당 뒤편엔 열반 길까지 스승을 끝까지 모셨던 제자 아난다 스투파가 서 있다. 결국 열반지가 된 쿠시나가르로 향하기 전 마지막 안거에 든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너는 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자신을 집으로 삼아라. 그리고 법으로써 등불을 삼고, 법으로써 집을 삼아 이에 귀의하여야 한다.” 부처님 생전의 모든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해 나중에 불경 편찬의 결정적 역할을 한 아난다 존자. 그는 이렇게 지금도 부처님 뒤에 앉아 묵묵히 스승의 말을 전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지금도 살아계시는100살의 옛가수 이애리수

    [그의 삶 그의 꿈] 지금도 살아계시는100살의 옛가수 이애리수

    “황성옛터가 뭐예요?” “이애리수가 누구예요?” 어떤 젊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랴? 여기서 잘못은, 그런 질문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질문을 받는 어른들에게 있다. ‘문화의 단절’을 만들어 놓은 사람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단절은 비극이다. 수준 높은 나라라고 자랑하는 우리의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현실을 바로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나는 2008년 10월 28일자 《한국일보》에 “황성옛터의 가수 이애리수 98세로 생존 확인”이라는 내용의 특종 기사가 실린 날 공교롭게도 중국 여행을 갔다. 신문에 기사가 나가고 나서 문화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우선 모든 신문들과 방송, 그리고 통신들과 인터넷 등에서 이 기사를 그대로 인용 보도를 했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언론계의 관례상 한 신문에 실린 기사를 다른 신문이 그 다음날 받아서 쓴다는 것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신이 신문의 뒤를 이어서 보도하는 일은 자주 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마치 내가 기사를 써 놓고 의도적으로 도피한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중국 여행이 오래 전에 계획된 일이라서 그건 오해다. 하지만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의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나를 찾는 전화가 하루에 100여 통씩 오니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신문 방송에서 어째서 나를 찾았느냐하면 이애리수 여사의 가족들과 사진을 찍은 배정환 씨는 무슨 전화가 오든 나한테 연락하라고 밀어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1호를 연예기자 1호가 취재한다는 것 말고도, 이번 특종 기사 속에는 몇 가지의 의미가 있다. 우선,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이애리수가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나이로 99세가 된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일은 매우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또한 23살의 나이로 결혼한 이후 단 한 번도 언론 매체나 일반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 분을 내가 처음 만났다는 것이 행복이다. 이애리수 여사의 본명도 일부 언론에서 ‘이보전’이라고 보도가 되었다. 그것은 잘못이다. ‘이음전(李音全)’이 본명이다. 아마도 한자로 ‘음’자가 ‘보(普)’자와 비슷해서 생긴 해프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애리수라는 예명은 서양이름인 앨리스(Alice)를 한국식으로 쓴 것이다. 그녀의 모교인 호수돈(Holston) 여학교가 미국인이 설립한 학교라서 서양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경기도 개성에 있던 명문 ‘호수돈 여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잘하고 키가 큰 미인인데다 리더십이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 외삼촌의 영향으로 연극을 했고 여학교 졸업 후에 배우와 가수 생활을 했다. 19살 때 그녀는 운명의 단성사 극장 무대에 서게 된다. 바로 <황성옛터>를 처음으로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객석에 있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서 함께 따라 불렀고, 네다섯 번 연거푸 합창을 하며 나라 잃은 슬픔 속에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일본경찰들이 와서 공연을 중단시키고 관계자들을 경찰서로 연행해 가기도 했는데, 이 사건 이후 이애리수는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나 가수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재학생인 두 살 아래 멋쟁이 부잣집 외아들 배동필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기 때문. 이때부터 그녀는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게 된다. 배 씨의 아버지 배상호 선생이 두 사람의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에 연예인이 며느리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표현으로 ‘연예인’이지 그때는 그렇게 부드러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강하다.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루지 못할 바에야 목숨을 버리자는 결심으로 함께 동맥을 끊었다. 다행히 배 씨의 여동생이 이를 발견하고 병원에 옮겨 치료를 받았다. 결국 배 씨의 아버지는 혼인을 승낙하면서 몇 가지 강력한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혼인은 하되 결혼식은 올리지 말 것, 둘째, 가수와 배우를 했다는 이야기는 평생 발설하지 말 것, 이 일은 가족들도 모르게 할 것, 셋째, 신문·잡지는 물론 연예계 관계자들과 연락하지 말 것 등이다. 여자로서,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음전 씨는 그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남편 배동필 씨가 “이제라도 결혼식을 올리자”고 제안했으나, “그 분이 안 계시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다”면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연예인 출신이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조건도 완벽할 정도로 지키며 살아왔다. 심지어는 1937년생인 큰아들조차도 대학교(연세대) 3학년 때에 가서야 자기 어머니가 <황성옛터>를 부른 가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언론이나 연예계 사람들과의 연락은 아예 두절을 했다. 오죽하면 모든 언론매체에서 그녀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녀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고 직·간접으로 꾸준히 접촉을 해오고 있었다. 그 세월이 40년이다. 1968년에 나는 그녀를 인터뷰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와 가족들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 후 40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나도 끈질긴 면이 있는 모양이다. 큰아들 배두영 씨와 함께 일산에 있는 한 아파트에 들어설 때, 이음전 여사는 간병사의 도움을 받아 죽과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여 점심을 들고 계셨다. 젊은 시절 예뻤을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패 있고, 편안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커다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음전 할머니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이제는 해가 바뀌어서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되었다. 큰아들 말로는 어머니의 머리가 완전 백발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검은머리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별로 말 수가 적은 편이라고 하는데, “편찮은 데는 없으세요?”라고 질문을 하자, “괜찮아, 괜찮아”라며 입을 오물오물 하고 계셨다. 사진을 찍느라고 플래시를 계속 터뜨릴 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1928년, 단성사 극장 무대에 서 있었을 때를 회상했을까? 9남매(2남 7녀)를 낳고, 기르던 파란만장하던 그 시절을 생각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동네를 산책했는데 그때마다 반드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에선 ‘한복 할머니’로 통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가 <황성옛터>의 가수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백년 인생 속에서 이음전이 아닌 ‘이애리수’라는 이름으로 산 세월이래야 겨우 5~6년간이다. 그 짧은 세월 때문에 그녀가 겪었을 시련과 아픔은,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한 남편과의 행복한 삶으로 치유가 되었을 터이고, 9남매를 품에 안고 살며 그 속에서 기쁨을 찾았을 것이다. 한 시간쯤 되는 만남을 끝내고 나오면서 내가,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하자, 이음전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 이상득 의원 ‘친박 끌어안기’

    한나라당내 친이계가 친박계에 연이어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친박을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건의가 상당부분 받아들여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 중심에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부의장이 있다. 이 전 부의장은 21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이 지역 의원들과 조찬 회동을 가졌다. 김무성·허태열·서병수·유기준·박대해·유재중·허원제·현기환·이진복·김세연 의원 등 참석자 중 상당수가 친박계였다. 안경률 사무총장 등 친이계도 함께했다. 이 전 부의장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은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가족이 있다.”면서 “다양한 견해를 한 데 모으고 화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나라당이 탄생시킨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국가와 국민이 잘되는 것”이라면서 “당내에서 화합하고 대야 관계도 원만하게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김무성 의원은 “이 전 부의장은 당내 제일 큰 어른”이라면서 “지금까지 대통령의 친형으로서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고 몸조심을 하신 분이 당의 화합을 위해 우리들을 만난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전 부의장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로 옆방을 사용하는 김무성 의원 사무실을 2월 초순부터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홍사덕·김무성·이경재·이해봉 의원 등 친박 중진 의원들을 최근 만나 대선과 총선 과정의 앙금을 풀자는 데 의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BBK 갈등 등은 지난 일이니 털어버리자는 얘기들이 오갔다.”고 전했다. 친이계 핵심인 공성진 최고위원도 지난 14일 김무성 의원 등 친박계 중진들과 골프 회동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물밑 왕래가 속도를 내면서 당협위원장 선출, 4·29 재·보선 공천 등 계파간 입장이 상반된 현안에 대해서도 조정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김무성 의원은 최근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경제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꾀해야 하는 국정 2년차에 친박문제를 풀지 못하면 정권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여권 내에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 주현진기자 jrlee@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아! 스테파노님” 1만8000여 추모객 하늘길 배웅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아! 스테파노님” 1만8000여 추모객 하늘길 배웅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잘 가세요.”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안타까운 조문객들은 운구차라도 만져보려 손을 뻗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치러진 20일 오전 11시40분. 장례미사를 마치고 김 추기경을 실은 관이 대성전을 빠져나왔다. 앞장선 십자가에 영정이 뒤따랐다.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관을 들었다. 명동성당 하늘 위로 조종(弔鐘)이 울려퍼졌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렇게 떠났다. 오전 10시부터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진행된 장례미사에는 1만여명이 참석했다.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8000여명의 시민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되는 미사를 바라봤다.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 특사 자격으로 집전한 장례미사는 기도 후 성수를 세 번 뿌리는 의식으로 시작됐다. 정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김 추기경의 유언처럼 감사와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10시50분쯤 참석자들이 줄지어 영성체를 받는 성찬전례가 고요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오전 11시5분부터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강우일 주교, 이명박 대통령 등 각계의 고별사가 이어졌다. 고별사 낭독이 시작되자 고요했던 대성전 안팎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김 추기경의 관이 성당을 빠져나오자 흐느낌은 절정을 이뤘다. 신부들이 관을 들고 대성전을 나와 운구차가 대기해 있는 성당 앞 마당으로 이동하자 추모객들은 “추기경님, 사랑합니다.”라고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일부 신자들은 성호를 긋고 하얀 미사포를 벗어 흔들며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쉬워했다. 운구 차량은 오후 1시15분쯤 경기 용인 성직자묘지에 도착했다. 2000여명의 추도객이 운집한 가운데 하관예식이 진행됐다. 정 추기경이 기도를 한 뒤 관에 성수를 뿌렸고, 묘지관리원 6명이 광목 천으로 관을 내렸다. 추도객들의 입에서는 가톨릭 성가가 흘러나왔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관이 끝난 뒤 정 추기경이 다시 성수를 뿌렸고,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추도객들은 묵주기도를 올렸다. 흙을 덮는 순간이 되자 봉분 주변으로 주교들이 도열했다. 정 추기경이 성수를 뿌린 뒤 주교와 유족들, 김 추기경의 비서신부와 비서수녀가 성수를 이어 뿌렸다. 삽으로 흙을 뿌리는 의식도 같은 순서로 진행됐다. 유족들의 표정에서는 진한 슬픔이 배어나왔다. 오후 2시쯤 관은 흙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무덤 위에 놓여진 하얀 국화 몇 송이가 김 추기경의 하늘길을 마지막으로 배웅했다. 김민희 조은지기자 haru@seoul.co.kr
  • [5080] 은퇴남편 증후군…괴로운 부부들

    [5080] 은퇴남편 증후군…괴로운 부부들

    30년 동안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 죽치고 앉아 있다면? 누구는 ‘인생 2막’이라고 하고 누구는 ‘황혼 신혼’이라고 하는데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아내가 불만스럽게 얘기한다면 그저 철없는 소리로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뭐지? 이 숨이 막혀 오는 듯한 기분은? 아들 딸 시집 보내고 이제 자유를 만끽하려는 찰나에 집으로 들어온 남편. 비정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같다. 그렇게 부엌을 싫어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냉장고 속에 관심이 많아진 걸까. 전에 없이 처음 보는 외간 여자들과 수다도 떤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하는 짓은 참을 수 있는데 아파트 울타리를 벗어나지도 않고 경비 아저씨랑 무슨 얘기가 저렇게 많을까. 그때부터 은퇴 남편을 향한 부인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견디다 못한 남편은 다시 탈(脫)가정을 시도하기도 한다. 황혼 신혼이 아니라 황혼 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달라진 남편… 하루종일 잔소리에 반찬 타박까지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사는 송양진(54·여·가명)씨가 오랜만에 옆 동네 친구 집을 찾았다. 친구들이 모여서 여느 때와 똑같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씨도 이 친구들과 더불어 낮부터 저녁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을 챙기느라 발걸음이 뜸해진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송씨를 반겨주던 친구가 송씨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이랑 깨가 쏟아지니까 우리 생각도 안 나지?”라고 농담을 한다. 송씨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지난 연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던 남편 안국진(57·가명)씨가 지난해 12월 초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처음에는 경제위기다 뭐다 해서 시끄러웠지만 하루아침에 집에 가라는 말에 상처받고 돌아온 남편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송씨는 “뼈빠지게 30년 일했으면 충분하고, 애들도 다 시집장가 갔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남편을 위로했다. 주말 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던 남편 때문에 독수공방했던 수많은 시절을 이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어렴풋한 기대까지 있었다. 송씨의 이같은 기대는 채 1주일을 가지 못했다. 종일 집에서 함께 있는 남편은 30년 전 젊은 시절의 모습이 아니었고, 직장에 다니던 때와도 너무나 달랐다. 하루에 두세 시간 신문을 읽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것 이외에는 송씨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다. 냉장고 문을 열어서 이것저것 살피는 것은 물론 안 하던 반찬 타박까지 한다. 송씨가 “하루 세 끼를 어떻게 전부 다르게 차리냐.”고 불평해도 막무가내다. 아침에 함께 가는 약수터에서는 처음 보는 동네 아줌마한테 말을 걸지 않나, 뜬금없이 경비실에 들어가서는 나올 줄을 모른다. 송씨가 친구들에게 남편과 붙어 지낸 두 달 동안의 푸념을 쏟아내길 30분. 송씨 휴대전화로 남편의 전화가 온다. ‘어디 갔느냐?’부터 시작해 ‘빨리 와라.’로 끝나는 내용. 송씨는 친구들한테 “남편이 웬수”라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야 했다. ●은퇴 후에 시작된 ‘옆집 남편 시리즈’ 지난해 초 대형 회계법인에서 파트너로 일하다 은퇴한 허우진(65·가명)씨는 최근 집 근처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인 7평짜리 사무실은 허씨가 전에 쓰던 사무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허씨는 진정한 자유를 찾은 듯한 느낌이다. 허씨가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접대를 하고, 사람들을 관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건강은 나빠져 갔다. 부인과 의논한 끝에 시집간 딸이 낳아 맡긴 쌍둥이 손자나 돌보자는 생각으로 본인이 창업 당시부터 참여해 20여년간 몸담은 회사를 과감히 떠났다.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자신처럼 은퇴한 친구들을 만나 골프나 치면서 허씨는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기를 6개월 남짓. 어느 날 문득 허씨는 부인과의 관계가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직연금을 받아 허씨가 부인에게 주는 돈은 매월 300만원 정도. 쌍둥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딸이 보내오는 60만원을 합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부인은 허씨가 소위 잘나가던 시절에 가져다 주던 금액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 생활비가 불만인 눈치였다. 동창회나 동네 모임에 갔다 오면 ‘누구네 남편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부동산을 열었다더라.’부터 시작해 ‘옆집 아저씨는 창업을 준비하느라 매일 시장조사를 다닌다더라.’까지 밤새 잔소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매일 듣다 보니 허씨의 기분도 좋을 리가 없었다. 허씨는 친구들만 만나면 “평생 이웃집 남자, 친구 남편하고 비교는 안 당하고 살았는데 다 늙어서 이게 뭔일이냐.”고 하소연을 했다. 날이 갈수록 부인의 구박은 심해졌다. 심지어 한 달에 50만원 받던 용돈마저 ‘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25만원으로 삭감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자 허씨는 과감히 ‘독립’을 결심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함께 회계사 사무실 간판을 내걸고 다시 영업 전선에 뛰어든 것. 그러나 허씨는 결코 다시 치열하게 살 생각이 없다. 그는 “가끔 친구나 후배들을 통해서 한두 건 맡으면 된다.”면서 “집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집사람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같아서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황혼 이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성주희(62·가명)씨는 지난 연말 모임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의 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퇴한 남편들과 지내는 친구들의 불만이 이날의 화두였다. 한 사람이 ‘우리 남편이 이렇다.’라고 말하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성씨는 대화에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심지어 몇몇 친구는 “주희가 부럽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건넸다. 어떤 친구는 “잔소리에도 꼼짝 못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집안일도 안 하고 예전과 똑같이 대접받으려는 것에 화가 난다.”고도 했다. “남자가 집에만 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성씨는 “일본에서 은퇴 후 황혼 이혼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황혼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만 있게 되면 아내가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불화를 겪으며 심지어는 이혼까지 하는 현상을 ‘은퇴남편 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고 부른다. 고령화가 오래전부터 진행된 일본에서 1991년 이름 붙여진 이 현상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가족과 별 대화없이 잠만 자는 남편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아내는 이같은 상황이 불만이어도 가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같은 생활이 수십년간 이어지게 마련이다. 같이 살아도 서로 잘 모르는 불편한 타인 같은 관계는 남편의 퇴직이라는 중대한 전환점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밖으로 나다닐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붙어 살다 보니 남편의 좋지 않은 면들이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남편의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거나 목소리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명(耳鳴)이 생긴다며 이비인후과를 찾아 하소연하는 부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맞벌이를 하거나 가족 내에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젊은 세대에 비해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나이 든 세대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남성과 여성의 가족 내 관계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퇴직으로 인한 준비되지 않은 가족 재구성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시대와 환경이 변한 만큼 과거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가정을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지속적으로 가족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같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5080]월 200만원으로 넉넉한 황혼 [5080] 노인들의 힘겨운 겨울나기
  • ‘나는펫’ 출연자 고백 “‘리얼’아니다…감정까지 대본”

    ‘나는펫’ 출연자 고백 “‘리얼’아니다…감정까지 대본”

    ‘리얼리티’를 내세우는 코미디TV ‘애완남키우기 나는펫’(이하 나는펫)이 실제로는 대본의 구성과 형식에 맞춰 모두 ‘짜여진 드라마’라고 출연자가 직접 밝혔다. 코미디TV ‘나는펫’ 시즌6에 출연중인 유은혜는 “촬영 날 주어진 상황뿐만 아니라, 저에게 주신 대본에는 제가 해야 할 말들과 감정표현까지 적혀 있다. 아무래도 실제 저의 모습과 많이 달라서 힘든 부분이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 18일 서울신문NTN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사실을 털어놓은 유은혜는 “정말 너무 다르다. 솔직히 주변 반응 때문에 서운하고 속상한 적도 많다. 실제와 전혀 다른 모습 때문에 네티즌들의 악플과 주변의 시선에 상처받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넌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출연중인 유은혜는 ‘나는펫’에서 ‘무개념 무상실 세상 무서운줄 모르는 순수소녀’로 소개됐다. 남자 파트너 최관희에게 이것저것 무리한 것을 요구하면서 떼쓰는 캐릭터다. 알파걸과 누구나 한번쯤 가슴에 품고 싶은 꽃미남 펫의 리얼 상황을 담는다는 프로그램 소개와 달리 철저히 대본에 의해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왔다는 것. 실제로 서울신문NTN이 입수한 ‘나는펫’의 대본에는 출연자가 해야 할 대사와 얼굴표정은 물론 속마음까지 다 기록돼 있었다. 여자출연자는 물론 그의 친구들 대사와 남자 출연자와의 갈등상황 마저 대본에 빼곡하게 적혀있을 정도였다. 이같은 주장에 ‘나는펫’ 관계자는 “우리 프로그램은 20%의 설정만 주어질 뿐 나머지는 다 리얼이다. 출연진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더욱이 제작과정이 굉장히 긴박하기 때문에 일일이 대본을 써줄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면 부인했다. ‘나는펫’은 현재 시즌 6까지 방송되면서 상당수의 고정 시청자들을 확보한 상태다. 한편 몇 해 전부터 ‘리얼’이라는 포맷이 예능프로그램에 안착돼 너도나도 ‘100% 리얼리티’를 표방하며 제작에 열을 올렸다. 이런 와중에 일부 프로그램들이 대본에 의해 철저히 구성된 것이라는 의혹에 시달린 바 있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양성평등 앞당긴 도시문화의 상징”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무엇일까.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국민 70%가 아파트에 살기를 희망하는 나라에서 아파트는 부의 원천, 차별적 지위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펴낸 ‘아파트에 미치다-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이숲 펴냄)은 아파트 선호가 유별난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지니는 사회문화적 함의를 들여다본 책이다.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현대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일종의 내시경으로 간주한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책은 아파트를 창구 삼아 한국사회의 총체적 측면을 두루 살펴본다. ●‘아파트 천지’ 부정적 시각엔 반대 저자는 ‘아파트 천지’ 현상을 지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반대한다. 그는 한국 아파트에 대한 최초 박사학위 논문이 2004년 프랑스 출신 학자 줄레조에 의해 쓰여진 사실을 지적하며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대한 연구가 우리 학계에서 먼저 발원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파트 거주 확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달라진 사회현상을 포착한다. 샤워의 일상화로 여성의 자궁경부암이 급감하고, 그림을 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 미술시장 판도에 영향을 끼쳤으며, 아파트 덕분에 한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한 것 등을 소개한다. 하지만 아파트의 확산으로 익명성이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내 집’의 상징인 문패가 사라진 데서 드러나듯, 아파트 내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파트 문화가 가족 구성원 사이 평등한 관계를 촉진했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남성의 공간이었던 사랑방이 가족공간인 거실로 흡수되고, 여성의 공간인 부엌이 주방으로 격상돼 가족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됐다는 것이다. 문단속이 쉬워져 주부들의 외출이 한결 자유로워진 점도 여권 신장의 하나로 이해된다. ●안전성·환금성 뛰어나 계속 늘어날 듯 그렇다면, 지금 같은 아파트 전성시대는 얼마나 오래갈까. 저자는 “적어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파트가 수익성·안전성·환금성이 뛰어나며, 전 국민을 서열화시키는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고급아파트 거주는 중산층 이상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증 혹은 ‘스펙’과 같은 것이 돼버렸다.”고 상기시킨다. 하지만, 아파트의 고가화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저자는 아파트 사회의 높은 진입장벽이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파급될 수 있는 온상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아파트 문제에서 생기는 불만과 서러움의 목소리를 뜬금없이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결부시키는 것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무주택자들은 모두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의 온상’으로 몰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싹트는데, 그렇게 보긴 힘들지 않을까. 그러면서 저자는 또한 “좌파 포퓰리즘의 득세를 막아 대한민국 체제의 안정적 확대재생산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주택정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주택 분배체제를 시장의 자유에 맡기지 말고 인위적 수정을 가해야한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 파급을 우려한 저자의 입장과는 배치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1만 2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왜 케인스 경제학인가

    왜 케인스 경제학인가

    전 세계 금융위기의 ‘메시아’로서 케인스가 부활하고 있다20세기 전반 제1·2차 세계대전과 대공항 속에서 수정자본주의를 내놓은 케인스는 최근 30~40년간 인플레이션의 주범, 공공분야의 확대로 인한 효율성 저하, 노동조합의 권력 팽창, 정부정책의 실패, 좌파 경제학자 등과 동일시되면서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 친화력을 강조하는 관료는 물론 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던 월가의 투자은행조차 케인스를 운운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존 메이너드 케인스 1·2권’(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그같은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전 세계에 정부의 규제완화와 시장의 효율을 강조하던 밀턴 프리드먼류의 신자유주의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선언으로 결정타를 맞고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워싱턴 컨센서스’가 유용하지 않게 됐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1990년 전후로 경제위기를 겪는 남미와 개발도상국, 제3세계에 구조조정을 전제로 삼아 미국식 시장 경제체제(신자유주의)의 대외 확산 전략을 꾀하는 것. 미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모여 있는 워싱턴에서 이뤄진 합의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스가 살아 있다면 현재의 금융위기 속 경제위기에서 어떤 처방을 내릴까. 그는 우선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유효소비를 증대시키려고 할 것이다. 잘 알려진 ‘소비가 미덕’인 셈이다. 구매력 있는 고소득층의 자금이 은행으로 몰려가지 않도록 이자율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될 경우 낮은 이자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기업의 투자로 흘러가지 않고 초단기 자금으로 시장을 떠도는 유동성의 함정에 갇힐 수도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폄으로써 경기불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스는 정부 정책으로 경제를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봤을까? 아니다. 불확실성이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성과를 위축시키듯이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다만 케인스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 아니라 어떤 개입을 할 것이냐로 초점을 맞췄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이 그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에서 케인스는 결국 20세기 초반을 살아나가면서 자유주의자에서 정부 개입과 보호무역을 외치는 수정자본주의자로, 화폐수량설의 개량자에서 비판자로, 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시장에서 국가로 관심사를 이동시켜나간 현실주의자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영국 재무부 관료로 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에 영국 등 승전국이 요구한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에 반대한 비범한 경제학자의 초상이 나온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케인스가 한국경제에는 뭐라고 조언할까. 저자인 스키델스키는 “대대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동반한 경제발전의 문제와는 사실상 큰 관련이 없으므로, 전후 한국 정부가 거시적 수요 창출뿐만 아니라 미시적 결정과 관련해서도 일일이 개입하는 경제발전 모델에서 케인스가 언급할 대목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최근 한국 경제는 서방의 정책결정자와 언론의 갈채 속에서 곧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가 금융위기에 노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케인스 사후 63년만에 마침내 케인스가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하 일반이론) 등 대표적인 이론을 사회·경제·정치적 맥락에서 분석함으로써 케인스가 추구했던 복지국가의 모델로서 경제적 해법을 밝히고, 현재적 상황에서 맹종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1·2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발생한 대공항,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파시즘 대두 등 파괴적인 사회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영국 워릭 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원래 역사학자로 케인스 전기를 쓰면서 경제학을 공부해나간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에게는 교양 역사서처럼 보이고, 비경제학자에게는 경제학 서적처럼 보인다. 저자는 1970년초 출판사와 계약할 때는 케인스를 다룬 단행본을 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 30여년이 지난 2000년에야 케인스 3부작으로 태어났다. 이 책을 읽고 감동한 번역자가 한국어 번역의사를 밝혔을 때, 저자는 3부작을 40% 줄인 1000쪽짜리 축약 단행본(2003년판)을 번역하라고 권고했단다. 단행본에 대한 저자의 애착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 과정에서 책은 1700쪽으로 늘어나 불가피하게 두 권으로 나누어졌다. 책을 쓰는 데 30년, 번역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이 책이 집필되던 1970년대는 케인스는 용도 폐기되면서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던 시점이었고, 번역이 시작된 2004년은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세상을 내다보는 혜안과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권 3만 5000원, 2권 3만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식사중 방귀 뀌고 손톱 물어뜯고”

    “식사중 방귀 뀌고 손톱 물어뜯고”

    식사 중에 방귀 뀌고 손톱 물어뜯기, 어마어마한 양의 케이크 단숨에 먹어치우기….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사진 오른쪽·1889~1945)의 알려지지 않은 ‘못된 버릇’들이다.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한 저택에서 히틀러의 나쁜 습관에 관한 네 쪽 분량의 비밀정보문서가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더 타임스 등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읽은 뒤 48시간 내에 파기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여진 비밀문서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히틀러의 최측근 참모가 일기 형식으로 쓴 것. 히틀러가 동프러시아 라스텐부르크에 있던 독일육군지휘본부, 일명 ‘늑대소굴’에 있을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에는 히틀러의 고약한 약점들이 속속들이 공개됐다. 히틀러의 식사예절은 충격적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코를 후비거나 방귀를 뀌는 등의 불쾌한 행동은 예사였다. 문서를 쓴 주인공은 히틀러가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많은 양의 식사를 빠른 시간에 해치웠으며 때론 통제불가능할 정도의 ‘식탐’을 보였다고 전했다. 히틀러는 그러나 ‘고독한 인간’이었다. 그는 측근들에게 “나라에 대한 임무를 다하기 위해 가족을 돌볼 수 없어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도 자주 했다. 반세기 만에 햇빛을 보게 된 문서는 새달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며, 경매가는 1000파운드(약 210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로농구] 모비스 “2위 꿈도 꾸지마”

    [프로농구] 모비스 “2위 꿈도 꾸지마”

    모비스와 삼성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선두 동부를 넘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플레이오프 4강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2위에 대한 갈망이 클 뿐. 올시즌부터 5전3선승제(종전 3전2선승제)로 늘어난 6강플레이오프를 건너뛴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이기 때문. 전반은 34-30. 모비스가 조금 앞섰다. 3쿼터는 ‘테렌스 레더(삼성·35점 16리바운드) vs 모비스’의 양상. 국내 선수들의 외곽포가 침묵한 탓에 삼성은 집요하게 레더에게 공을 줬다. 모비스 수비 2~3명이 달라붙었지만 레더는 3쿼터에만 21점을 터뜨렸다. 레더 외에 득점은 이상민의 3점과 차재영의 2점뿐. 반면 모비스는 함지훈(15점)과 천대현(7점), 저스틴 보웬(10점), 김효범(20점)이 고루 득점을 올렸다. 3쿼터가 끝났을 때 57-56. 모비스가 앞섰지만 살얼음판 승부가 이어졌다. 혈투는 종료 직전 갈렸다. 75-74로 앞선 경기종료 53초전 김효범이 던진 3점포가 림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어진 삼성의 두 차례 반격은 실패. 반면 종료 45초 전 박구영(12점 5어시스트 4스틸)의 자유투 1개와 종료 27초 전 브라이언 던스턴(17점 14리바운드)의 자유투 2개로 모비스가 81-74로 달아났다. 순간 유재학 감독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모비스가 1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홈경기에서 삼성을 84-77로 눌렀다. 상대전적에서도 3승2패로 앞섰다. 모비스는 선두 동부(27승13패)에 1.5경기차로 따라붙었다. 반면 삼성은 KCC(이상 23승18패)와 함께 공동 3위로 내려앉았다. 대구에선 6위를 굳히려는 KT&G와 플레이오프를 향한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는 9위 오리온스가 만났다. 결과는 원정팀 KT&G의 92-91 승리. KT&G는 오리온스를 상대로 5전전승을 챙겨 천적의 면모를 과시했다. 반면 4연패에 빠진 오리온스는 KT&G와의 승차가 6경기로 벌어졌다. 한편 삼성은 22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리는 KT&G 전에서 창단 31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三星’이라고 쓰여진 실업농구 시절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 올드팬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또 꿈나무 육성을 위해 2000년부터 시행해 온 ‘고(故) 김현준 농구장학금’ 전달식과 함께 고인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유품전시회도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라디오DJ 컬투 “우리는 李씨와 잘 맞아”

    라디오DJ 컬투 “우리는 李씨와 잘 맞아”

    라디오 DJ 컬투가 호흡이 잘 맞는 연예인들을 묻는 질문에 “이소라, 이적, 이본 모두 이씨와 잘 맞았다.”는 깜짝 사실을 공개했다. SBS 파워FM 107.7 MHz ‘두시탈출 컬투쇼’의 진행을 맡고 있는 컬투가 19일 오후 1시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 “TV와 다르게 라디오는 늘 그대로 다 보여주는 게 진짜 방송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방송이 틀에 짜여있고 격식에 맞춘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청취자분들이 영화 ‘라디오스타’같은 방송을 한다며 좋아하시는 것 같다.”며 방송에 애착을 드러냈다. 프로그램에 대한 특징을 묻는 질문에 김태균은 “짜여진 구성보다는 호흡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사실 두 명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많지만 우리는 15년을 같이한 호흡이 있다.”고 밝힌 뒤 ”물론 방청객들이 우리방송의 가장 큰 힘이 된다.”며 방청객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SBS 파워FM 107.7 MHz ‘두시탈출 컬투쇼’는 2년6개월 동안 약 2만 5천여 명의 방청객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라디오를 진행하며 겪게 되는 고충을 묻는 질문에 정찬우는 “방송을 할 때 만약 기분이 안 좋으면 전 바로바로 얘기를 한다. 전 감정기복이 심한데, 그걸 감추고 방송하지 못한다. 덜 재밌어도 이해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방송한다.”며 “또 방청객들이 웃지 않으면 그때마다 ‘이럴 거면 여기 왜 왔냐?’고 되묻는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DJ를 꼽으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정찬우는 “정말 언변이 좋은 사람은 정선희 만한 사람은 없다. 지금 상황이 안 좋지만 정말 입담이 뛰어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김태균은 “개인적으로 잘 맞는 진행자가 있다. 예전에 저희가 게스트로 방송에 나갈 때는 일주일에 11~12개 정도 했었다. 그 당시 이소라(가수) 이적 이본, 이렇게 세 명이 잘 맞았다. 그러고 보니 이씨랑만 잘 맞았다.(웃음) 그들이 잘 웃어주고 잘 맞춰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SBS 파워FM 107.7 MHz ‘두시탈출 컬투쇼’는 지난 16일 부터 일주일동안 동아리특집으로 꾸며져 ‘rh- 혈액형 동호회’, ‘성우 아나운서 지망생 동호회’ ,‘AFKN청취동호회’, ‘살사동호회’, ‘에어로빅동호회’, ‘비보이동호회’등의 단체 방청객을 초대해 화기애애한 시간을 만들었다. (사진출처 = SBS)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유소 습격사건’ 영화 vs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 영화 vs 뮤지컬

    최근 많은 영화들이 ‘무비컬’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화 되고 있다. 문화계와 그 밖의 다양한 분야에서 허물없이 장벽을 무너뜨리기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중 오는 3월 12일 오픈하는 해프닝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 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탄탄한 구성 현란한 볼거리, 원작의 힘 ‘플러스 알파’ 1999년 ‘코믹 통쾌극’ 이라는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은 전혀 관계없는 4명의 ‘꼴통’들이 각자 나름의 이유로 하룻밤 동안 주유소를 털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메가폰을 잡은 김상진 감독은 “심심해서 주유소를 터는” 그들 사이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탄탄한 구성과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대중성을 바탕으로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드라마 구조에 음악과 춤을 부각시켜 볼거리, 들을 거리를 업그레이드해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이 탄생했다. 무비컬의 가장 큰 특징은 극적인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현장감에 있다.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을 과거 회상 장면과 결합시켜 그들의 애환과 고민을 보여주고 관객을 몰입시켜 감동을 이끌어낸다. 뮤지컬에서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시도와 소스들이 덧붙여진다. ‘쓰릴미’ ‘판타스틱스’ ‘헤드윅’ ‘김종욱 찾기’ 등으로 개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달중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주유소 ‘습격’이라는 해프닝에 반응하는 각 16명의 등장 캐릭터들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동시에 캐릭터에 맞는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달중 연출가는 영화 속 해프닝을 벌이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복잡한 시간 구성과 짧은 모자이크식 설명으로 뮤지컬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박진감 넘치는 진행의 묘를 살릴 계획이다.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남한산성 서문~동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남한산성 서문~동문

    남한산(522m)은 남한산성이 될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밖에서는 험준하지만 안으로는 부드러운 산세, 북쪽으로 한강과 접해 있는 등 전략적 중요성을 두루 갖추었다. 삼국시대부터 축조된 산성은 인조 2년(1624) 대대적으로 증축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남한산성만큼 치욕의 상처를 간직한 곳도 드물다. 1637년 병자호란의 굴욕을 겪었고,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인 박해 사건이 있었으며, 군사정권 시절엔 육군교도소가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한산성은 원형 그대로 말끔하게 복원되어 노송이 우거진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다. 주말이면 역사 공부하는 아이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리고 걷는 맛이 좋아 찾아온 산꾼들로 북적북적하다. ●작은 암문을 통해 은밀하게 성 안으로 남한산성은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하남시, 광주시, 성남시 등 4개 지역에 걸쳐 있어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많다. 그 중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수어장대(守禦將臺)에 올라 산성을 타고 서문~북문~동장대암문에 이르고, 여기서 조망이 좋은 벌봉(봉암·515m)을 다녀와 동문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 보자. 이 길은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산성에 서린 역사의 흔적도 반추할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 10여 분 가면 남한산성 입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한천약수터까지는 미로 같은 골목과 작은 고개를 넘어 40분쯤 걸린다. 약수터는 넓은 평지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시원하게 약수 한 잔을 들이켜고 제법 가파른 경사를 30여 분 오르면 울창한 소나무숲을 통과해 청량산(482.6m) 정상아래 산성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산성을 자세히 보면 개구멍처럼 작은 암문이 보인다. 암문(暗門)은 대문을 달지 않고 정찰병들을 내보냈던 문이다. 옛날에는 돌로 막아 뒀다고 한다. 허리를 굽혀 기다시피 통과하면 그 옛날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왁자지껄하고 널찍한 포장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고기 비늘처럼 잘 짜여진 산성의 미학 본격적으로 산성길을 따르자마자 청량산 정상에 자리잡은 수어장대를 만난다. 본래 단층으로 지은 것인데 영조 27년(1751)에 2층 누각을 증축했다. 층간 높이는 낮지만, 야무지게 버티고 선 남한산성의 총지휘부다. 수어장대에서 서문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와 성곽의 오묘한 굴곡이 수평과 수직으로 어우러져 있어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남한산성은 본성의 길이가 9㎞, 옹성은 2.7㎞로 고기 비늘처럼 잘 쌓았다. 18세기 복원 기록인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를 따라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서문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러 나갔던 문이다. 성문이 낮아 머리를 숙여야 했고, 길이 가팔라 말에서조차 내려야 했다고 전해진다. 서문을 지나면 다시 암문이 나오는데, 그곳으로 나가면 연주봉옹성이 이어진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벽을 기어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돌출된 방어시설이다. 보통 평지 읍성에 주로 설치하는데, 산성으로는 남한산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연주봉옹성 정상에 서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청 태종이 깨뜨린 벌봉 언덕에 자리 잡은 북장대지(北將臺址)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장관이다. 산성 안의 나무들은 마을 주민들이 ‘금림조합’을 만들어 순산원을 두고 도벌을 막아 보호한 덕택에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 남았다고 한다. 동장대암문에서 벌봉으로 이어진 길은 남한산성 최고의 걸작이다. 인적이 뜸한 길은 순하면서 호젓하고, 길섶 양쪽으로 허물어진 봉암산성이 쓸쓸한 분위기를 돋운다. 다시 동장대암문으로 돌아와 15분쯤 내려가면 작은 암문이 보일 듯 말 듯 숨겨져 있다. 이 암문 밖이 장경사신지옹성이다. 유장하게 곡선을 그리는 옹성 너머로 잘 생긴 광주의 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법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면 장경사를 지나고, 동문 아래에서 도로를 만나면서 산행이 끝난다. 송파구 마천동 남한산성 입구~남한천약수~수어장대~동문 코스 약 11㎞, 5시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 가는길· 맛집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 남한산성 입구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이 끝나는 동문에서 도로를 따라 5분 오르면 산성 종로 로터리다. 음식점은 이 일대에 몰려 있다. 오복손두부(031-746-3567)는 주먹두부가 독특하고, 백제장(031-743-6551) 은 산채정식, 함지박(031-744-7462) 은 엄나무백숙을 잘한다. 종로 로터리에서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으로 나가는 9번 버스가 수시로 있다. 남한산성 관리사무소 (031)743-6610.
  • ‘워낭소리’ 성공했지만 갈길 먼 독립영화

    ‘워낭소리’ 성공했지만 갈길 먼 독립영화

    독립 다큐멘터리영화 ‘워낭소리’의 ‘대박’에 이은 ‘낮술’의 선전에도 독립영화계의 한숨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한 두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의 제작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기 그지 없는 데다, 관련 지원 정책은 오히려 축소·폐지되는 등 제작 현실이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00년부터 해마다 5억원의 예산을 들였던 홍보·마케팅 지원사업을 올해부터 폐지했다. ‘워낭소리’도 이 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돼 4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바 있다. 독립영화인들은 “제작여건을 보면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한 것도 거의 ‘로또 당첨’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면서 “독립영화 관련 예산이 확대되진 못할망정 삭감되거나 정책이 실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워낭소리’의 고영재 PD도 “독립영화와 관련해 중장기적인 진흥정책이 필요하며, 정책을 만들 때도 일방적으로 공표할 것이 아니라 여론수렴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 수렴 거친 중장기 진흥정책 필요 멀티플렉스 극장의 개봉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멀티플렉스가 제작비나 마케팅 비용, 스타급 배우 출연 여부로 상영작을 결정해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워낭소리’ 배급사인 인디스토리 남희승 씨는 “7개관으로 시작한 ‘워낭소리’도 처음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대부분 상영을 거절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보통 독립영화는 상영관 1개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늘어 봤자 서울지역 5개관에 그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GV 홍보팀 윤여진 씨는 “CGV는 ‘워낭소리’ 개봉 전부터 2주차에 CGV 무비꼴라쥬에서 개봉하기로 이야기가 돼있었다.”면서 “‘워낭소리’의 흥행에 멀티플렉스에서의 상영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데서도 드러나듯, 멀티플렉스도 독립영화에 관객만남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에 기대 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13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독립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독립영화 인큐베이팅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해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 장관은 “현행 지원 제도에서 떨어진 사람에게도 인큐베이팅 지원을 해줘 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며 실무자들에게 정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어 지난 15일 ‘워낭소리’를 관람한 이명박 대통령도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현재 사업 중단 중인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이 다시 추진될지 주목된다. 독립·예술영화계의 숙원인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은 제3기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진흥기금 250억원과 서울시 예산 250억원을 들여 건립하려던 것으로, 현재의 4기 영진위가 들어서면서 올 영화진흥기금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이 빠지는 등 표류하고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용산참사 여진 ‘일파만파’

    용산참사의 여진이 정치권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야권은 15일 청와대의 홍보지침 사건이 전대미문의 청와대발(發) 여론조작 시도라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일개 행정관 차원에서 홍보지침을 경찰청에 내려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윗선을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은 정치적 공세로 일축하면서도 불똥이 어디로 튈지 전전긍긍하고 있다.●메일 발송 이성호 행정관 사의 표명파장이 확산되자 ‘용산참사의 국면전환을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홍보지침 이메일을 경찰청에 보낸 홍보기획관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이성호 행정관은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이 행정관은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아들이다.민주당 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보지침 사건은) 연약한 여성을 죽인 연쇄살인마를 홍보해 가난한 시민의 죽음을 묻으려고 한 범죄행위”라면서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단죄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부대표는 “참여정부 때 ‘박근혜 패러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행정요원이 직위해제됐고,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청와대 행정관도 직위해제됐다.”고 지적했다.경찰 간부가 ‘용역업체가 진압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도록 현장에 동원된 경찰에게 강요했고, 검찰이 화재 발생지점에 대한 철거민의 진술을 왜곡했다는 의혹도 이날 제기됐다.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구속된 철거민 김모씨의 진술에 근거했다며 발화지점을 망루 3층 계단이라고 발표했다.”면서 “하지만 김씨는 심문과정에서 ‘발화’라는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심문 당시 검사가 ‘망루 3층 발화지점을 봤느냐.’고 추궁하자 김씨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옆에 있던 김씨의 변호사가 ‘불이 거기서 시작된 것이냐.’라고 다시 묻자 ‘거기서 불빛이 보였다는 말이다.’라고 정정했다.”면서 “심문조서에도 정정된 진술이 기재됐지만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내용을 무시했다.”며 은폐·왜곡 의혹을 제기했다.●“경찰 허위 진술 강요 의혹”진보신당은 “신두호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이 당시 용산참사 현장에 투입된 경찰에게 ‘용역을 못 봤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강요했다.”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편지가 지난 12일 당 대표 앞으로 제보됐다며 여권을 압박했다.한나라당은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홍보지침은) 청와대 조사에서 이미 개인 차원의 돌출행동임이 밝혀졌다.”면서 “계속 문제 삼으려는 것은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구혜영 주현진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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