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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쉿! ‘착한 수업’ 중입니다

    쉿! ‘착한 수업’ 중입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커피나무에서 자란 열매의 씨앗을 가공한 원두입니다. 커피가 자라는 국가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고등학생 30명의 반짝이는 눈빛이 교실 앞 프로젝터 화면에 집중됐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네팔의 말레마을 주민들이 커피를 손으로 직접 따 판매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학생들은 커피콩 한 알에 담긴 생산자들의 땀과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학생은 “보통 무역을 통해 각 나라가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고 배웠는데 현실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저개발국 생산자들의 삶이 더 취약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맞아 학교 현장에서는 ‘착한 소비’에 대한 공부가 한창이다. 학생들은 공정무역 수업에서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빈곤의 문제를 깨닫고 경제 분야에서도 윤리적 가치가 필요함을 배운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학교에서 공정무역 밀가루로 구운 쿠키를 판매하거나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온 상품의 소비를 장려하는 등 공정무역을 통한 착한 소비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공정무역 시민단체 아름다운 커피는 지난달 13일 경기 여주시 여강고를 시작으로 오는 11일까지 상명여고, 안양고, 하나고 등 7개 고등학교에서 공정무역 수업을 진행한다. 시민대사로 불리는 공정무역 자원활동가들이 강단에 올라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커피의 생산과정을 퀴즈로 풀어보며 학생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여강고에서 진행된 공정무역 수업에 강사로 참여한 이춘실(56)씨는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업 태도도 아주 진지했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줘서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노동력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공정무역의 핵심가치를 깨달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의 날을 맞아 특별히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학생들이 평소 배우는 경제 및 지리,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과 연계시켜 학습효과도 높였다. 수업을 기획한 아름다운 커피 측은 “학생들이 커피, 초콜릿 등 대표적인 무역상품의 사례를 통해 상품의 생산과 유통에서 발생하는 세계의 빈곤문제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국내서 고암 작품 잊혀질까봐 눈물이 핑”

    “국내서 고암 작품 잊혀질까봐 눈물이 핑”

     “세번이었어요. 처음 찾아갔더니 이리 젊은 사람이 화랑 주인일 리 없다 백안시하고, 그래서 당시 서울서 샤갈전하던 포스터 들고 두번째 찾아갔더니 믿을 수 없다 하시고, 세번째 갔더니 2층에서 그간 작업하신 걸 보여주시는데, 잘못하면 이게 잊혀질 지 모른다 싶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나봐요. 그걸 보시고는 그림을 이리 좋아하는 걸 보니 진짜 화랑하는 사람 맞구나라면서 모든 걸 맡겨주셨죠.”  1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호재(59) 회장은 1985년 고암 이응노(1904~1989)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프랑스에서 작업하던 고암은 월북한 아들 문제 때문에 북한 공작원과 만났다가 박정희 정권에 호되게 당했고 그 뒤 프랑스에 살면서 아예 귀화해버린 작가다. 그래서 그 당시 국내에선 금기시된 작가였다. 그 이름을 어렵게 알아내 겨우 프랑스로 찾아간 이 회장이었건만, 고암은 작품을 보자는 이 회장을 두고 ‘고국에 발도 못 붙이게 하더니 화가에게 전부인 작품마저 다 없애려고 이젠 중앙정보부 공작원까지 보냈구나’라고 강하게 의심했다 한다.  이 회장은 잊혀진 고암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80년대 민중작가들의 뒤를 봐줬던 이 회장은 이미 충분히 이런저런 경고 메시지를 받았을 때였다. 거기다 고암 전시까지라면 어찌 될 지 모를 상황이었다. 다행히 민주화가 이뤄졌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전시 개막 테이프 커팅이 1989년 1월 10일 오후에 진행됐는데, 테이프 커팅이 딱 이뤄질 때 그 때 돌아가셨답니다. 사모님이 청소하고 들어오셨는데, 조용히 주무시듯 돌아가셨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는 어찌나 슬프던지.” 민주화 시위대를 형상화했다는 고암의 인물 군상 시리즈는 그렇게 고암이 가던 그 때 새 생명을 얻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한 건물 2층 작은 공간에서 출발한 가나아트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컨템포러리 에이지 : 작가와 함께한 30년’전을 연다. 3년 이상 후원하고 개인전을 연 작가의 작품들로 꾸몄다. 고암을 비롯해 오치균, 사석원, 전병현, 권순철, 황재형, 유선태, 박영남, 전수천 등 작가들과 얽힌 인연이 풍성하다. 후원을 위해 일부러 사들인 작품이 많다보니 유명 작가들의 초기작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건 또 하나의 재미거리다. 이 회장은 “지금도 미술시장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아직 소개 안되고, 대우 못 받는 작가들이 많다”면서 “이런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게 내 역할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무사(武士)다. 손에 칼을 쥐었다. 복수를 숙명처럼 여기고,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해야 마땅한 처지다. 그런데 이 무사, 싸우는 게 싫다. 용맹함으로 이름 떨치던 아버지 ‘찬솔아비’는 살아있을 때 싸우라고 강요했고, 아비가 죽자 어머니 ‘아란부인’은 복수를 간청한다. 그를 만나는 무사마다 칼을 뽑아들고, 마을처녀 ‘초희’는 지상의 왕 ‘검은등’에게서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아닌 다른 것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다”는 ‘갈매’에게 무사의 길은 운명이면서 짐이자 압박이다. 국립극단의 올해 첫 창작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칼싸움하는 무사가 되고 싶지 않은 갈매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회적 억압과 극복을 이야기한다. 갈매만 맘고생이 심한 줄 알았더니, 배우의 몸고생도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만난 김영민(42)은 손가락마다 상처투성이다.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끝나고 보면 까져 있다. 어제는 어디에 부딪혔는지 가슴 쪽에 통증이 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찬솔아비(김정호)와는 몸싸움을 하면서 바닥을 구르기 일쑤다. 흑룡강(윤상화), 백호(박완규)와 칼싸움을 하면서는 머리 위로, 발 아래로, 배를 향해 날아드는 칼을 날렵하게 막고 피한다. 배우들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져 관객들은 굉장히 흥미진진하겠지만, 배우는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다. ‘햄릿’, ‘에쿠우스’, ‘에이미’, ‘M버터플라이’…. 다양한 작품을 한 김영민은 별별 경험을 다했지만, 이렇게 과격한 칼싸움·몸싸움은 처음이다. ‘연극계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어울리는 잘생긴 얼굴로 그는 “이젠 40대라 몸 쓰는 게 힘들다”는 농을 던지면서도 꽤 즐겁다고 했다. “고연옥 작가가 쓴 극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강량원 연출과는 처음 만난 건데, 작업 과정이 좀 달랐죠. 보통은 연습 전에 대본 리딩을 어느 정도 하는데 강 연출은 바로 연습에 들어가더라고요.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인물과 상황을 함께 만들어가고, 느끼면서 체득하는 식이죠.”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운명에 놓인, 갈매의 딜레마는 김영민에게도 고민을 던졌다. “저 역시 부딪히거나 싸우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하게 되면 뒤돌아서 무척 후회하죠. 갈매처럼 당혹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은 아니지만, 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싸우고 투쟁하고, 때론 피비린내날 정도로 잔인하잖아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싸워야 하나, 등져야 하나.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간극, 그 틈을 어떻게 좁혀갈 것인가가 갈매의 숙제이자 내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했다. 복수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쩌면 극이 하염없이 무거워지고, 갈매의 처지가 너무 처절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꽤 코믹한 설정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동작만큼 날쌔게 입을 나불대는 흑룡강과 제 입을 슉슉 소리를 내며 칼싸움을 하는 엉뚱한 백호는 진지한데 웃긴다. “배가 불렀다”고 꾸짖는 찬솔아비에게 “먹고는 살겠죠”라고 받아치거나, 연인에게 안긴 듯한 자세로 “날 좀 죽여주시오”라고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는 갈매가 또 그렇다. 꽤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던 그에게서 엿보이는 장난기 어린 표정 변화가 색다른 느낌이다. 그는 “재미있고 쉽게 풀어내면서 관객에게 충분히 즐기고 판단할 여지를 준다는 게 공연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판단의 시작점은 ‘칼’이다. 칼이란 무엇인가. 싸움이나 투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세상과 맞설 수 있는 무기라는 상징일 수도 있다. “나 이제야 돌아왔어요”라는 갈매의 마지막 대사 역시 판단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지, 갈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이제 무사로서 살겠다는 것인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인지. “공연이 끝나면 많은 관객은 이렇게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무사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26일부터 5월 12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른다. 26·27일 공연은 프리뷰. 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여주 ‘市 승격’

    경기 여주군이 여주시로 승격된다. 정부는 2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여주시 도농복합 형태의 시 설치법을 심의·의결했다. 법률안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전되고 있는 여주군을 도농복합 형태의 시로 승격시키는 내용을 담았다. 군에서 시로 승격되면 여주읍을 3개 동으로 분리하고 지역개발 관련 국(局)을 설치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한 행정지원체제 구축이 가능해지는 등 행정 기능이 강화된다. 또 해마다 30억원의 교육비 신규투자가 이뤄지고, 중앙정부 및 경기도의 재정지원도 강화된다. 최저생활비 기준 인상으로 사회복지지원대상자도 1586명 늘어나게 된다. 안전행정부는 “수도권 배후지역으로서 도시화 및 산업화가 진전되고 있는 여주의 지역발전과 주민편의를 높이는 등 도시행정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도농복합 형태의 시로 승격한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인구 5만명 이상의 도시형태를 갖추고, 도시적 산업종사자 가구 수가 45% 이상이며, 재정자립도가 전국 군 평균치를 넘으면 시가 될 수 있다. 여주군은 인구 5만 4000명이 사는 읍이 있고 도시적 산업종사자 가구 수가 76.8%이며 재정자립도가 37.9%로 전국 군 재정자립도 평균치 18%를 훌쩍 넘어서 시 승격 자격을 갖췄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이슈&이슈] 여주, 지역 발전 ‘문’ 열어줄 동여주IC 필요합니다

    [이슈&이슈] 여주, 지역 발전 ‘문’ 열어줄 동여주IC 필요합니다

    김춘석 경기 여주군수와 군민들이 2016년 개통을 목표로 건설 중인 광주 초월읍~원주 가현동 56.95㎞를 잇는 제2영동고속도로에 동여주IC 개설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민간 투자 사업으로 공사 중인 제2영동고속도로 구간 대신IC와 동양평IC 중간 지점에 IC를 하나 더 설치해 달라는 것이다. 여주는 경기 남부 21개 시·군 가운데 유일하게 ‘군’ 지역으로 남아 있다. 수도권정비법상 자연보전권역에 속해 있어 개발도 쉽지 않은 지역이다. ‘도농복합 여주시’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동여주IC가 개설돼야만 실질적인 지역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게 11만 군민들의 생각이다. 여주는 수도권과 중부내륙, 더 나아가서는 전국을 잇는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여주에서도 주목을 받는 곳이 제2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북내면이다. 이 지역에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과 고달사지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보물 제6호인 고달사원종대사혜진석불좌 등 국보급 문화재가 있다. 현재 2곳인 골프장은 향후 4곳으로 늘고, 민영교도소, 천연가스 발전소가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어서 교통량이 급증할 추세에 있다. 문제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지방도 34호선과 국가지원 지방도 88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라 산업단지, 물류단지, 레저관광단지, 골프장 등의 개발이 가능한 지역이지만 외부에서 북내면으로 접근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 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서여주IC를 나와 주암리까지 이동하려면 30분 이상 소요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반면 군민들 요구처럼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동여주(주암)IC가 개설되면, 30분가량 접근성이 빨라져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입장이다. 김 군수는 “북내면은 다른 여주 지역과 달리 팔당상수원특별대책권역에서 제외돼 있고 수변구역지정도 돼 있지 않아 여주에서 개발의 숨통을 틀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때문에 동여주IC만 개설되면 국가지원 지방도 88호선과 지방도 34호선이 바로 연결돼 지역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2영동고속도로 사업시행자인 ㈜제2영동고속도로 측은 총사업비가 334억원이 소요되는 반면 경제성은 낮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국토해양부도 토지수용비 60억원의 지원은 가능하지만 민자고속도로에 그 이상의 공사비를 부담할 수는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결국 부족한 재원은 여주군이 부담해야 하는데 재정자립도가 37%, 1년 예산이 3500억원(일반회계)정도에 불과한 형편에서 IC 개설에 270억원을 투입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총사업비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국비에서 지원해 달라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런 가운데 군민들은 서명운동을 벌여 국토부와 사업시행자에 전달하고 대규모 군민궐기대회를 잇따라 개최하는 등 정부에 대한 압박수위를 점차 높여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제2영동고속도로건설사업단과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앞에서 2차례에 걸쳐 개최된 동여주IC 설치 요구 시위에는 여주 북내면뿐 아니라, 인근 양평군 지평면 주민들도 동참해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토지보상 거부는 물론 공사 진행을 막기 위해 실력 저지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민자사업으로 건설되는 제2영동고속도로는 총 1조 2648억여원이 투자되며 2016년 11월 완공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2012 신춘문예-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김준현

    [2012 신춘문예-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김준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당선소감] 더 정갈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릴 때, 저녁이면 부모님은 저와 동생에게 과일을 깎아 주셨습니다. 지켜보며, 사과껍질을 끊기지 않게 깎는 법을 배우고 싶었죠. 그러나 손놀림이 서툴렀던 저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한 번도 긴 곡선의 껍질을 남긴 적이 없었던, 제 사과. 서툴렀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아리를 길렀던 적이 있었죠. 어쩌다 다리를 다친, 이름도 잊어버린 그 병아리 역시 제 서투른 사육의 증거였습니다. 베란다의 사과박스 속 홀로, 한 쪽 다리로 서 있던 병아리를 보며 저는 ‘쓸쓸’이라는 감정을 배웠습니다. 의무처럼, 저는 병아리의 배설물이 묻은 신문지를 갈아주었습니다. 오래된 신문지와 새 신문지의 날짜 사이 점점 간격이 벌어지던 어느 날, 병아리는 눈을 감고 있더군요. 방에서 홀로 쓰다가 그렇게 지칠 때면 저는 밝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늘 믿고 기다려주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에게- 늘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문학을,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시고, 늘 제 서투른 감각들을 짚어주시는 김문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 이상의 인사는 좋은 작품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영남대 국문과의 교수님들, 제가 지나온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 특히 승협, 명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정끝별 손택수 두 심사위원께는 더 정갈한 소리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오래 가라앉고자 합니다. ■약력 ▲ 1987년 포항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현재 동대학원 국문과 재학 [심사평] ‘따로 없는 詩 쓰는 법’ 모험에 박수를 추사에 따르면, 묵죽을 그리는 데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 ‘따로 있는 법’을 성실히 참조하면서도 과감히 떨쳐버리고 어떻게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설 것인가.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는 모험을 향해 떠난 외롭고 고단한 열정들과의 뜨거운 만남의 자리였다. 꼼꼼하고 균형 잡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20여명의 작품 중 최종심에 오른 것은 ‘새라는 가능성’, ‘고동의 길’, ‘만찬’, ‘이끼의 시간’ 등 모두 네 편이었다. 예리하게 벼린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새라는 가능성’은 높은 시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있었다. 새, 새장, 온도, 울음, 바람 등 선택된 오브제들과 그 엮음의 방식이 표절 시비로 이미 당선 취소된 바 있는 작품들과 유사해 또 다른 표절 시비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만찬’은 “노을에도 마블링이 있다/ 칼이 허공의 날개처럼 살 사이를 휘젓는다”와 같은 감각적인 언술에 호소력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과잉된 수사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고동의 길’과 ‘이끼의 시간’이었다. ‘고동의 길’은 수많은 시 창작론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균형 잡힌 구조와 투박한 시어들을 장악해 들어가는 사유의 힘이 돌올했다. 반면에 미성년의 실존적 내면을 다룬 ‘이끼의 시간’은 우물, 검은 비밀봉지, 현악기(기타) 등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은유와 신경증적인 감각들로 이미지와 이미지, 의미와 의미 사이의 연결고리가 불안으로 술렁였다. 동봉한 작품들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불안은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가능성의 감각과 열기로 꽉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완숙한 포도주의 맛과 아직 미숙하긴 하되 미래를 잠재한 떫은 포도주의 맛 사이에서 장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선 자의 모험에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에 매운 채찍과 응원을 함께 보낸다.
  • “주먹만한 알밤 쥐여주시던 국민들 성원 못 잊어”

    12월 19일 오후 6시 정각.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발표 순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는 환호성에 휩싸였다. 박근혜 당선자가 오차 범위이긴 하지만 경합우세로 나오자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김용준·황우여·정몽준·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서병수 사무총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등과 선대위 관계자들은 당사 2층에 마련된 대선 상황실에 일찌감치 모였다. 당사는 낮부터 몰려든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9대의 TV 모니터에 ‘50.1% 대 48.9%’로 박 당선자가 앞서고 있는 수치가 표시되자 선대위 관계자들과 당직자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를 연호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감격에 겨워 서로 얼싸안았다.  일부 방송 조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다소 앞서는 결과가 발표되자 당직자들은 속속 전해지는 개표 현황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황우여 공동선대위원장은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아직 이르다.”며 말을 아꼈다.  안형환 대변인은 오후 8시 출구조사 관련 브리핑에서 “격차가 작기 때문에 개표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면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개표 과정에서 한 점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밤 11시가 넘어야 당락이 확실해지리라는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표차가 점점 커지자 환호는 커졌다. 방송을 지켜보던 선대위 관계자들은 “부산에서 60%가 됐다.”, “전북이 10%를 넘었네.”, “제주도가 이번에는 괜찮네.” 등 기대감에 부풀었다. 투표율이 높았던 게 새누리당에 그리 나쁠 게 없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밤 9시를 전후해 ‘당선 유력’이 ‘당선 확실’로 바뀌면서 당사는 축제의 도가니로 변했다. 당사 바깥은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소리 높여 외쳤다.  박 당선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홀로 개표 방송을 시청하다 밤 10시 40분쯤 자택을 나서 당사로 향했다. 검정색 패딩 점퍼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박 당선자는 환호하는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100여m를 걸어 차량에 올랐다. 집 앞 골목은 발디딜 틈이 없어 수행차량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였다.  밤 11시 10분쯤 당사에 도착한 박 후보를 황우여·정몽준·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뜨겁게 맞았다. 김성주 위원장과는 포옹을 나눴다. 당직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박 당선자를 맞았다. 이들과 함께 잠시 TV방송을 지켜본 박 당선자는 4층 기자실에 들러 사례를 했다. 선대위 관계자들을 향해 “힘들고 어려운 선거였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셔서, 진심을 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짧게 밝혔다.  선거기간 동안 밀착취재했던 기자들에게도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취재하고 보도해 주느라 애써 주신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이후 박 당선자는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당선소감을 밝혔다. 선거 전날인 18일 마지막으로 유세 연설을 했던 그곳이다. 더없이 환한 표정으로 박 당선자는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특별무대에 올랐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선거기간 중 만나뵜던 많은 국민 여러분”이라면서 “제 주먹만 한 알밤을 들고 와 손에 쥐여 주신다든지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하시던 모습들이 많이 생각난다. 다시 뵙고 싶고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러분께서 열어주실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보내주신 신뢰의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루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선거운동 중 큰 사고가 났다. 저를 돕던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교통사고로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쯤 삼성동 자택 인근 언주중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박 당선자는 “선거 기간 함께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현명하신 국민들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실 거라고 믿는다.”면서 “날씨는 춥지만 꼭 투표에 참여하셔서 국민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좋은 꿈을 꾸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며 엷은 웃음만 지었다. 투표소 주변에선 지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기계화보병사단 도하훈련

    기계화보병사단 도하훈련

    2일 경기 여주시 남한강에서 열린 육군 기계화보병사단 도하훈련에 참가한 K21 전투차량이 코브라 헬기의 엄호 속에 강을 건너고 있다.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 [화제의 인물들] 김무성 보수분열 차단 ‘일등공신’

    [화제의 인물들] 김무성 보수분열 차단 ‘일등공신’

    19대 총선에서 보수 분열을 막고 새누리당의 제1당에 견인차 역할을 한 공신으로 단연 김무성 의원이 꼽힌다. 부산 남을의 4선인 김 의원은 공천 국면에서 물갈이론이 득세하며 낙천하자, 탈당 후 무소속 출마 대신 ‘백의종군’을 선택하는 용단을 내렸다. 그의 일성은 “좌파세력 승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무성답게 결정했다.”고도 했다. 김 의원의 선택은 물길을 바꿨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진수희·안상수·안경률 의원,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 여권 중진들의 연이은 불출마 선언을 이끌어냈다. 당의 선거유세도 날개를 달았다. 이재오, 정몽준 등 친이계 거물급 의원들이 지역구 선거에 올인하면서 박근혜 중앙선거대책위원장 1인의 지원에 의존하던 절박한 상황이었던 터다. 그는 야당과의 경쟁이 달아오르자 서울, 울산 등 각지를 박 위원장과 함께 누볐다. 6일엔 기자회견을 자청해 “우파 후보 단일화 운동을 벌여주시길 부탁한다.”고 보수진영에 촉구하며 새누리당에 막판 힘을 실어줬다. 그는 “우파가 공천에 불복해서 탈당, 출마하고 우파 정당끼리는 후보단일화를 위한 연대가 없었다.”면서 “동반 낙선해서 좌파후보를 당선시켜 역사의 죄인이 될수 없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이었던 그는 18대 국회 들어 원내대표 선출을 놓고 박근혜 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며 ‘탈박’(탈박근혜)으로 돌아섰다. 한때 박 위원장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계기로 박 위원장과 화해 무드로 돌아서게 됐다. 당 차기지도부로 거론되며 벌써부터 그의 행보엔 힘이 실린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정치 뉴스라인] 박선영 의원 독도로 ‘본적’ 이전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3·1절을 앞두고 가족관계등록부의 등록기준지(옛 본적)를 독도로 옮겼다. 국회의원 중 처음이다. 박 의원은 지난 22일 등록기준지를 당초 경기 여주시에서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30으로 이전했다. 오는 4월 발표될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남편인 민일영 대법관과 상의한 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 노원 여대생 살인사건 어머니 “네티즌에 감사”

     2년 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사망한 여대생 신모(당시 19세)양의 어머니 김모씨가 이 사건을 재수사하도록 도와준 네티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씨는 지난 11일 아고라에 ‘성폭행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의 사연과 현실-수사 진행상황’이란 글을 올려 “변함없이 언제나 한결 같은 관심과 염려로 큰 도움을 주시는 많은 선생님에게 정말 고맙다. 어떤 제도나 법보다도 우선해서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정의의 힘을 보여주시는 여러 선생님이 계시기에 저는 더욱 힘을 낸다.”면서 “재수사 여론을 모으는 데 도움을 준 네티즌들에게 고맙다.”고 밝혔다.  신양 사건이란 2009년 8월 신양이 친구에게 소개받은 김모(당시 군인)씨, 백모(당시 무직)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이들이 성폭행을 시도하자 저항하다가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진 사건이다. 김씨는 1심 재판에서 폭행죄 혐의가 인정됐지만 신양의 가족이 추가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2심에서 폭행치사죄가 적용돼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김씨가 지난 달 7일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성폭행에 저항하다 죽은 어린 여대생의 사연과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공론화됐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네티즌의 뜨거운 관심 등으로 재수사 중이다.  김씨는 수사 상황에 대해 “제 딸의 수사 소식을 후련하게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그럴 수가 없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의 진실을 사실대로 다 알리면 사회적 충격이 크다.”면서 “검찰과 법원에서의 일은 현재 사건의 진행을 본 뒤 추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찰청에서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고, 병원기록은 전부 확보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여러분(네티즌)의 우려대로 이 사건으로 징계를 받을 경찰내부 인물들의 저항에 의해 수사가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지만 담당 수사관은 믿어달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다만 (피의자) 백모씨의 삼촌이라고 알려진 변호사 사무실의 형사사무장은 외삼촌으로 밝혀졌고, 형사사무장은 경찰출신이 거의 대부분인데 백씨 외삼촌은 경찰 출신이 아니라고 경찰은 주장한다. 이 점은 현재 저희 측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경찰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관이 최초 수사 당시 딸의 옷 등 증거물을 확보하고, 피해를 입은 신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은 밝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신년기획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인간은 물만 먹고 60일 정도는 살 수 있지만, 호흡하지 않고서는 단 5분도 살 수 없다. 호흡은 건강과 직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숨이라고 다 같다는 생각은 금물. 우리 몸에 이로운 올바른 호흡법은 무엇일지 바른 호흡법으로 건강한 2011년을 보내는 방법을 한국체육대학교 오재근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체험! 삶의 현장(KBS2 오후 8시 50분) 트로트계 황제 박상철, 트로트 샛별 홍진영이 달려온 곳은 노량진 수산시장. 밤 11시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산물 종류와 양만 해도 무려 370여종 500여t. 제철 맞은 홍합부터 20㎏에 육박하는 대왕문어까지 나르고 또 날라도 끝은 보이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힘쓰는 일을 트로트남매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몽땅 내 사랑(MBC 오후 7시 45분) 나영은 태수에게 추파를 던져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에 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늘 승아 편을 들어주는 태수의 행동에 금지와 나영은 태수가 승아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나영은 승아랑 태수가 사귄다고 소문을 내버린다. 이 소문을 듣고 승아가 부인하자, 금지는 나영을 부추겨 승아가 태수의 여자인지 확인하려 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SBS 오후 8시 50분) 경기 포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산 속 무덤에 사람이 살고 있다. 무덤 모양으로 만든 공간에 머물며 먹고, 자고, 시까지 지으며 자유를 노래하는 김영기씨. 그리고 경기 여주시, 늘 곁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부모님의 눈이 되어주는 해남씨. 언제나 함께하는 삼총사의 따뜻한 동행도 만나본다. ●다큐 프라임 원터풀 사이언스(EBS 오후 9시 50분) 해가 갈수록 우리의 눈과 귀를 더 집중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축제, 불꽃놀이. ‘2010 서울세계불꽃축제’와 ‘2010 부산세계불꽃축제’에선 화려한 색과 모양을 자랑하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곳곳에 과학이 숨어 있는 ‘화학의 꽃’으로 불리는 불꽃놀이, 그 뜨거운 현장으로 떠나본다. ●아름다운 이야기<보석상자>(OBS 오후 11시 5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위기와 절망의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잘나가던 개그맨에서 시각장애인이 된 이동우씨가 데뷔 17년 만에 최초로 TV 프로그램 토크쇼를 진행한다. 거리의 수호천사 수와진의 안상수씨와 함께 어둠 속 환한 빛이 되어주는 우리시대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 고현정 ‘민낯’으로 침대 셀카 “애완고양이도 귀족?”

    고현정 ‘민낯’으로 침대 셀카 “애완고양이도 귀족?”

    배우 고현정이 침대에서 애완 고양이와 찍은 셀카를 공개했다. 고현정은 12월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저와 같이 사는 베이와의 망중한. 눈도 오고 해서요”라는 글과 함께 고양이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고현정은 화장기 없는 민낯에 체크무늬 잠옷 차림으로 침대 위에서 고양이 베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셀카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고현정도 셀카를?” “일상이 화보고 CF다” “고양이도 왠지 털 빛깔이 우아한 게 귀족 느낌이 난다” “민낯인데도 피부는 자체발광”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지난 11월 30일 처음 트위터를 시작한 고현정은 “고현정입니다. 저의 공식트위터가 오픈했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소통이란 걸 해보려고요. 종종 소식 올릴 테니 기대해주세요”라고 첫 글을 남기며 트위터 입성을 알렸다. 이후 12월1일에는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시다니. 열화와 같은 성원 감사드립니다. 우하하하~ 안개가 예술입니다. 자유로에서 고현정 올림”이라고 호탕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연상되는 글을 남기도 했다. 사진 = 고현정 트위터 서울신문NTN 오영경 기자 oh@seoulntn.com
  • [소시 인터뷰] “멤버들이 돌아본 日인기 요인은!!”

    [소시 인터뷰] “멤버들이 돌아본 日인기 요인은!!”

    소녀시대가 한일 음악차트를 석권하며 아시아 No.1 걸그룹 다운 면모를 확인시켰다. 한국에서 발표한 신곡 ‘훗’은 공개되자마자 차트점령에 성공했고 일본 두 번째 싱글 ‘지’(Gee)는 일본 오리콘 위클리 싱글차트 2위에 랭크, 해외 여성그룹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만에서 이틀간 2회 공연을 연 소녀시대는 2만 4천여 명의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전석 매진에 해외 여성아티스트 사상 최다 관객동원이다. 그야말로 아시아는 ‘소녀시대 신드롬’으로 물들고 있다. 그들의 인기는 국내 지상파 3사 9시뉴스에 소녀시대의 일본 활약상이 소개된 것만 봐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써니는 “처음 뉴스에 나왔다고 하기에 ‘우리가 뭐 잘못을 했나’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영은 “9시 뉴스에 나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방송에서의 소녀시대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다른 연예인분들이 소녀시대가 좋다고 해도 그 소녀시대는 우리가 아닌 다른 소녀시대인가 싶다. 그런 소리 들을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태연은 일본진출 2달여 만에 이러한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지 몰라 당황스러우면서도 행복하다. 소녀시대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 무엇보다 K-POP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겨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두 달여간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동안 국내를 비롯한 일본매체들은 그들의 활약상과 성공요인을 써내려가기에 바빴다. 그렇다면 그들 스스로가 바라본 소녀시대의 장점과 인기요인은 무엇일까. 티파니는 현지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소녀시대를 알릴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그녀는 “아시아에서 K-POP이 많은 관심을 받는 가운데 인터넷에서 우리 콘텐츠나 자료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으니까 전 세계 많은 팬들이 우리를 더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출해서 활동하기 전부터 기다려줬던 팬들이 있다”고 설명했다.그들의 음악데 대한 자신감도 주효했다. 수영은 “진출할 때 음악스타일을 바꾼 게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인들을 그대로 가져갔다. 언어에 있어서도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을 쓰면서 자연스러운 표정, 색깔, 예쁜 웃음을 보여드리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 있는 그대로 보여드렸더니 그대로 받아들여주셨다”며 뿌듯해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음악 그 자체다. 태연은 “일본에서 흔하지 않았던 콘셉트였던 것 같다. ‘소원을 말해봐’로 인상을 크게 받으신 것 같더라. 여자애들인데 똑같은 군무를 맞춰 추고 음악은 스타일리시하고 멋있다는 애기를 해주시더라. 그런 점이 기존 일본 스타일과는 달라서 더 큰 반응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기에 갈 길도 멀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티파니는 최근 출연이야기가 나온 일본 연말 가요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 대해 “꼭 참여하고 싶다. 단독 투어도 했으면 좋겠다. 아직 두 달이라 갈 길이 멀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그런 만큼 고민이 많다. 최근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도 소녀시대 따라하기 열풍이 불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유리는 “UCC를 보면 우리가 했던 옷이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다. 뭔가 할 때마다 책임감이 생긴다”며 “유튜브 동영상 댓글을 통해 자기네 국가에서도 공연을 해달라는 얘기들을 한다. 언젠가 꼭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김태우, 성대폴립 수술 ‘가창력 영향’ 우려↑

    김태우, 성대폴립 수술 ‘가창력 영향’ 우려↑

    가수 김태우의 ‘성대폴립 수술’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창력에 영향을 끼칠까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태우는 1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성대폴립 수술을 받았다. 성대폴립이란 후두 부근에 일종의 물 사마귀 같은 ‘폴립’이 생기는 질환이다. 수술은 17일 입원과 동시에 이뤄졌으며 김태우는 현재 치료를 위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김태우 소속사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측은 당초 KBS 2TV ‘청춘불패’ 하차 소식과 관련 “지난해 발표한 싱글 ‘사랑눈’에 이어 새 앨범 준비를 앞두고 집중이 필요할 것 같아 두 달간 빠지기로 결정했다”며 수술 언급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이는 소식을 접한 팬들의 걱정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18일 오후 ‘성대 수술’에 대한 소식이 불거지자 “수술의 경과가 좋고 심각한 수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용히 치료 받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소식을 접한 팬들은 “가창력하면 ‘곰태우’ 인데 갑자기 성대수술이라니 걱정 된다”, “간단한 수술이라 하니까 어서 완쾌해서 멋진 무대 보여주시기 바란다”, “처음에는 성대수술이라 그래서 깜짝 놀랐다”, “수술을 위해 프로그램을 하차했었구나” 등 걱정을 담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김태우는 지난 11일 ‘청춘불패’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G7’ 멤버들과 이별을 고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기자 legend@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양악수술’ 김지혜, V라인 등극…’임혁필과 병원동기’▶ 손예진, 암스테르담의 ‘팜므파탈’ 변신…"고혹+요염"▶ 김신영, 경매서 10억 탕진..구매 물품은?▶ 포미닛, 인지도↓ 충격에 녹화중단 "이정도일 줄은.."▶ MC몽 ‘몽키펀치’ 법정분쟁 휘말려…’시끌시끌’▶ 문채원, 선글라스 민낯 셀카 공개...팬들 시선집중▶ 김정은, 매끄럽고 탄력있는 각선미 ‘아찔 매력’
  • 박지성, 슈퍼주니어 노래 ‘보나마나’ 에브라에 추천…이특 “감사”

    박지성, 슈퍼주니어 노래 ‘보나마나’ 에브라에 추천…이특 “감사”

    박지성이 팀 동료 에브라에게 슈퍼주니어 노래를 추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에브라는 지난 5월 자신의 트위터에 “슈퍼주니어의 보나마나(미인아 부제)는 정말 좋은 노래다. 박지성이 슈퍼주니어가 정말 좋다고 했다”고 감상평을 남겼다.이를 뒤늦게 발견한 이특은 지난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박지성 선수 감사합니다”라며 “앞으로도 멋진 경기 보여주시구 건강하세요!! 지성이 형님이라고 불러야겠다”고 애교 있게 응원글을 남겼다.두 사람의 트위터를 본 네티즌들은 “국가대표 환영식 때 슈퍼주니어가 갔어야 했다”, “슈주 좋아하는 캡틴박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등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한편 박지성과 에브라는 팀 내에서도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유명하다. 에브라는 지난 22일 ‘박지성 축구센터 준공식’ 참석을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김제동, MBC로 지상파 복귀…네티즌 ‘환영’

    김제동, MBC로 지상파 복귀…네티즌 ‘환영’

    방송인 김제동이 MBC 시사교양국의 새 프로그램 ‘7일 간의 기적’ MC로 물망에 올랐다. 김제동은 오는 22일 방송을 앞둔 ‘7일 간의 기적’의 진행자로 지목돼 이번 주 안으로 캐스팅 작업을 마무리 짓고 다음 주중 첫 촬영에 돌입한다. ‘7일 간의 기적’은 물물교환을 통해 한국인의 정(情)을 재발견한다는 취지로 제작된 휴먼 로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그간 김제동이 방송에서 선보인 푸근하면서도 정감 가는 이미지가 프로그램 성격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설명. 제작진은 지난해 10월 방송된 파일럿 프로그램 ‘오 마이 텐트’를 거울삼아 기부와 재미를 결합한다는 새로운 성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당시 김제동이 진행했던 ‘오 마이 텐트’는 포맷의 정형성 부족과 편성 시간대 확보의 어려움을 겪어 정규 편성되지 못했다. 때문에 시사교양국과 김제동이 다시 뭉친 ‘7일 간의 기적’이 앞서 만회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김제동이 최근 4년 동안 함께한 MBC ‘환상의 짝꿍’ 폐지에 대한 위로를 전하며 “프로그램 폐지는 아쉽지만, 김제동씨 성격에 잘 맞는 프로그램을 다시 만난거 같아서 기쁘다.”, “아이들과 함께한 경험을 빌어 다정하고 감칠 맛 나는 진행 보여주시기를”, “이번에는 불발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등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기자 legend@seoulntn.com
  • 주현미 “아버지와 남동생 장례 후 바로 디너쇼”

    주현미 “아버지와 남동생 장례 후 바로 디너쇼”

    주현미가 가수로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주현미는 17일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해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의 장례식 후 공연을 해야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공개했다. 주현미는 “가수는 가족의 희생을 딛고 활동하는 것. 다행히 나는 가족들의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며 “나는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이 장례 지내고 와서 바로 디너쇼를 했다.”고 밝혔다. 가수로서는 성공했지만 딸이자 누나로서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슬픈 과거를 고백한 주현미는 후배가수 정정아에게 가족과 결혼,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친정아버지와 남동생도 주현미씨의 마음을 알고 계실거다.”, “너무 안타깝다.”, “앞으로 가족에게도 팬들에게도 더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등의 댓글로 주현미를 응원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주현미는 30년 간 알고 지낸 후배 가수 정정아와 특별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정정아의 아버지는 작곡가 정종택으로 그는 주현미를 발굴한 장본인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민경 인턴기자 c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손태영, 하와이서 보낸 ‘제 2의 허니문’ 공개

    권상우-손태영, 하와이서 보낸 ‘제 2의 허니문’ 공개

    지난 20일 하와이로 ‘제 2의 허니문’을 떠났던 권상우-손태영 부부의 즐거운 한때가 공개됐다. 손태영은 지난 16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편 권상우가 하와이에서 직접 찍어준 5장의 사진을 개제했다. 손태영은 남편 권상우를 “권 사진작가님”이라 칭하며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 손태영은 야자수 열매 음료를 손에 들고 편안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이내 쑥스러운 듯 사진을 찍는 권상우를 향해 손 사레를 치는 손태영의 모습에서 지친 스케줄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권상우-손태영 부부의 편안함을 엿볼 수 있다. 손태영은 자신의 사진에 “마우이에서의 하루, 반얀트리를 꼭 보러 가야한다며 이리저리 왔다갔다…”라고 덧붙여 네티즌들의 부러움을 샀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하와이가 뭐 길래…우리집은 왜 장한동에 있을까”, “뭐야 이 언니 오빠들 왜이래. 너무 행복해 보이니까 눈물이 다 나려하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하와이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화보였을 듯. 푹 쉬고 돌아와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등 다양한 소감을 밝혔다. 한편 권상우는 MBC 주말드라마 ‘김수로’에 캐스팅 된 아내 손태영을 위해 영화 ‘포화 속으로’ 촬영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제 2의 허니문’을 준비했다. 이번 권상우-손태영 부부의 하와이 여행은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바쁘게 뛰어온 두 사람의 재충전을 위한 시간이었다. 사진 = 손태영 미니홈피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 기자 legend@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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