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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만혼(晩婚)의 행복/김인철 논설위원

    우편물을 받았다. 안 열어봐도 청첩장인 줄 알겠다. 누굴까. 일찍 결혼한 여자 동창생이 아이들 혼사 치른다는 소식이겠지 지레짐작했다. 한데 보낸 이가 남자다.“아하,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그랬다. 말이 별로 없는 친구, 무슨 연유에선지 결혼을 안 해 친구들로부터 툭하면 “아직 상투도 못 튼 어린애가…”하며 놀림을 받던 그 친구가 드디어 장가를 간단다. 동창생들이 하나둘 자식 혼사를 치를 즈음에 본인 결혼이라니…. 만사 제쳐놓고 혼례식장에 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50대 초반 친구의 모습이 환하다. 저렇게 밝은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역시 40대 후반 신부의 표정도 눈부시다. 신랑은 초혼이고, 신부는 재혼으로 이런저런 사연이 구구하다지만 여느 신랑, 신부와 다름없이 다정해 보인다. “아들 딸 낳고 잘살아라.” 친구들의 짓궂은 덕담에 대답이 걸작이다.“너희는 평생 자식들 키울 걱정에, 과외비에 학원비 때문에 고생했지만, 우린 우리 살 일만 걱정하며 행복하게 살련다.”만혼(晩婚)의 신랑, 신부가 더없이 행복한 이유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20&30] 솔로탈출 감동의 러브스토리

    [20&30] 솔로탈출 감동의 러브스토리

    ‘다른 사람들은 잘도 결혼하는데 난 왜 못할까.’ 결혼은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미혼 남녀의 공통된 의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이들도 짝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 직장이 안 좋은 걸까, 돈이 없어서일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도 결혼을 못해 시달리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결혼적령기의 20대 후반∼30대 미혼남녀 410명(남성 192명, 여성 218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83.4%가 결혼을 위해 전문가의 조언을 얻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이들을 위해 기혼 남녀의 결혼성공담을 들어봤다. 그들의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에서 결혼에 이르는 비법을 찾아보자. ●“사랑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대부분의 연인들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아낌없이 주는 ‘희생 정신’이 결혼에 이르는 지름길이었다고 회고했다. 직장인 최모(30·여)씨는 사랑을 위해 미국 유학을 중도에 포기했다. 공부보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택했다. 최씨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과 동기인 김모씨와 눈이 맞았다. 김씨가 군 복무를 하던 2년 남짓을 빼곤 8년 동안 늘 붙어 다녔다. 그러다 2006년 초 대학원을 졸업한 최씨는 ‘미국 박사’를 바라는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김씨를 남겨둔 채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김씨와 헤어져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간 최씨는 외로움에 눈시울을 적시는 날들이 적지 않았다. 언제나 곁에서 힘이 돼준 김씨가 그리웠다. 그의 소중함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해 겨울, 더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했다.“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남자친구 회사로 찾아가 ‘더 이상 떨어져 살 수 없다.’며 당장 결혼하자고 했어요. 그때 남자친구의 감동에 찬 표정은 지금도 선명해요. 부모님은 대경실색했지만 제 마음을 이해하시고는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학원강사 임모(34)씨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내’다. 여성은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재미와는 담을 쌓은 무뚝뚝함까지 겸비했다. 친구들은 그런 임씨가 절대 결혼하지 못하리라 장담하곤 했다. 하지만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반려자를 찾은 것이다. 임씨는 5년 전 같은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의 자태에 임씨의 굳은 마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후 새벽부터 출근해 그녀의 책상 위에 장미꽃 한 송이와 절절한 연모의 마음이 담긴 쪽지를 남겼다.‘꽃과 글’로 사랑의 마음을 전한 지 한 달째 되던 날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승낙했다. 그녀와의 첫 데이트 이후 임씨는 매일 강의가 끝나면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절로 온갖 유머가 튀어나왔다. 그런 임씨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여자 쪽 부모가 잘나가는 변호사와 맞선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녀에게 이 소식을 들은 임씨는 경상도 사내의 뚝심과 배짱을 발휘할 때가 닥쳤음을 직감했다. 그는 문지방이 닳도록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다. 온갖 감언과 선물 공세로 부모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당시엔 뭔가에 홀렸던 것 같아요.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 제가 180도로 확 바뀔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집안 반대에도 우리 사랑 변치 않아” 집안 반대에도 끝까지 사랑을 지켜내 결혼에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교육업계에 종사하는 이모(39)씨는 지금도 부인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젖는다. 숱한 고비를 이겨낸 끝에 그녀와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1992년 제대 뒤 복학했다. 그해 첫 전공수업 시간에 새내기로 들어온 과 여자후배를 알게 됐다. 서로 이야기가 통하고 취미나 생각이 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늘 함께 지내며 서로를 위해주고 챙겨줬다. 두 사람은 같은 해 졸업했고, 나란히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남은 건 결혼뿐이었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이씨의 부모가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여자친구가 무남독녀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집안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심한 상처를 받은 나머지 회사도 그만두고 자취를 감췄다. 며칠 뒤 이씨도 사직하고, 그녀를 찾아나섰다. 우선 그녀의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곁에 머물며 그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이씨는 그곳에서 취직한 뒤 자리를 잡았다. 그녀를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1년 남짓 지났을 무렵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그때 여자친구가 어디에 있든, 몇날 며칠이 걸리든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녀 말고 다른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죠.” 증권회사에 다니는 이모(29·여)씨는 대학 선배인 박모(34)씨와 일심동체가 돼 양가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성공했다. 양쪽 부모는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말렸다. 집안 형편이 서로 맞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씨의 집은 공직에 복무하는 아버지 덕에 풍족한 편이었다. 반면 박씨는 편모슬하에서 힘들게 컸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4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했던 박씨와 헤어질 수 없었다.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매일 양쪽 집안을 오갔다.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 가는 등 부모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노력했다. 문전박대를 수없이 당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6개월간 끈질기게 달라붙은 결과 그토록 차갑기만 하던 부모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양쪽 집안에서 고작 가정형편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떡하겠어요. 죽을 힘을 다해 양가 부모님들을 설득했죠.”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보며 키워온 사랑이 결실을 맺은 이들도 있다. 직장인 김모(36·여)씨는 1996년 대학 졸업 뒤 곧바로 취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이듬해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취직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백수’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는 취업 스트레스로 불면의 나날을 보내면서 점점 수척해져 갔다. 김씨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부모가 “내일 모레면 서른이다. 더 늦기 전에 결혼하라.”며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씨는 이런 어려움을 무심결에 남자친구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대뜸 “좋은 남자 만나라.”며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김씨는 그가 아니면 그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여행 가방에 옷과 생필품을 챙겨 넣고 무작정 그의 자취방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자 남자친구는 생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김씨는 그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 남자친구의 자취방에 머물며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그녀의 지극 정성은 그해 겨울 결혼으로 빛을 발했다.“당시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남자친구와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데 어떡하겠어요. 그때 제 행동이 지금도 옳았다고 자부해요.” ●초등 동창생 중·고·대학까지 곁에서 돌봐 직장인 김모(33)씨는 20년 동안 한 여자만 바라봤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예쁜 외모와 밝은 성격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김씨는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녀 곁을 지켰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대학시절 그녀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돈이 없다. 데려다 달라.”며 전화하곤 했다. 그때마다 김씨는 군말 없이 차를 몰고 가 계산을 치르고 해장국까지 먹인 뒤 집에 바래다 줬다. 그녀의 ‘주사’는 직장인이 되고나서도 여전했다. 그런 어느 날 그의 지성이 통했던지 그녀에게 변화가 감지됐다. 돌보듯 하던 무덤덤한 태도에서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따뜻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그에게 “잘 생겼다.”,“여자 마음을 잘 살펴봐라.”는 등의 말을 늘어놨다. 김씨는 그녀의 말과 눈빛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참고 참았던 사랑을 고백했다. 김씨는 지난해 봄 그녀와 결혼했다.“결국 그녀 곁에 제가 남게 되리라 생각했어요. 미인은 강한 자가 아니라 인내심이 많은 자와 백년가약을 맺게 되리라고 확신했거든요.” 직장인 신모(28·여)씨는 짝사랑으로 오랜 가슴앓이를 했던 남자와 다음달 결혼한다. 신씨는 빼어난 외모 덕에 직장 동료나 선후배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신씨는 자신을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남자들은 마다하고 언제나 냉랭하기만 한 선배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선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침마다 커피를 타주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는 등 온갖 교태(?)를 부렸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친한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에게 ‘선배가 해외지사 지원을 위해 아침마다 중국어회화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신씨는 무작정 같은 반을 신청했다가 첫날부터 선배가 보는 앞에서 창피만 당했다. 선배가 수강하던 반은 고급반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아침마다 꿋꿋하게 나가 선배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선배도 신씨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 달쯤 지나자 대하는 게 달라졌다. 출근 시간 전까지 중국어도 가르쳐주고, 아침도 같이 먹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결국 한 집에서 살게 됐다.“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학원에 갔어요. 어머니가 ‘잠도 많은 애가 웬일이냐.’며 신기해 하셨는데, 요즘 남편과 친정에 갈 때면 그때 일을 들먹이며 놀리곤 하세요. 중국어 실력이야 당연히 ‘꽝’이죠.” 김정은 황비웅 장형우기자 kimje@seoul.co.kr
  • 연말 이런 행동 ‘눈엣가시’

    연말 이런 행동 ‘눈엣가시’

    “이번 연말에는 이런 짓은 하지 맙시다.” 한 해를 정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운 정을 전하는 연말이다. 성탄절, 송년회 등 설레는 행사와 모임이 잇따르는 요즘. 주위에는 꼭 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 마음에도 없는 성의 표시 등으로 친구들의 빈축을 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앞으로 그러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연말 ‘공공의 적´. 남자들도 싫어하는 ‘꼴불남´, 여자들도 싫어하는 ‘꼴불녀´의 사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왜 연말정산 때만 되면 갑자기 착해지는건데?”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조모(42)씨는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회사 후배의 눈물겨운(?) 효행담에 가슴이 아려오곤 한다.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액을 더 돌려받기 위해서 “올해는 부모님을 내가 모시는 것으로 하겠다.”며 여동생들과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작년에는 네가 모신 것으로 했으니까 올해는 내가 모신 것으로 하는 게 맞잖아?”“넌 부모님한테 얼마나 잘해드렸길래 나보고 뭐라고 하는거냐?”등 ‘효자’치고는 다소 과격한 말투가 후배를 바라보는 조씨의 시선을 더욱 차갑게 만든다. 증권사에 다니는 유모(35)씨는 11월부터 “내가 아는 형이 모 정당의 대변인”이라며 정치 후원금을 내라고 조르는 회사 동기 때문에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어차피 10만원 까지는 연말정산에서 돌려받을 수 있으니 10만원을 다 채워내라.”며 후배들에게 후원을 강요하는 모습에 화가 난다. 유씨는 입사동기가 회사 선·후배들을 이용해 자신의 지인에게 후원금을 내게 한 뒤 나중에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길 바라는 건 아닌가 싶어 괘씸한 생각도 든다고 한다. 은행에 다니는 김모(40)씨는 12월만 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거듭나는 회사 후배를 보며 혀를 내두르곤 한다. 평소에는 교회 한 번 안 가는 후배지만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수백만원 헌금을 한 것으로 적혀있는 교회 영수증이 팩스로 날아오는 ‘기적’을 옆에서 직접 목격하곤 한다. ●“왜 술만 마시면 도덕선생님이 되시는거죠?” 가전제품회사에 다니는 정모(32)씨는 연말 송년회에서 듣게 될 고참 차장의 훈계 레퍼토리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한 해를 마감하면서 서로 좋은 기억으로 새해를 시작하자는 송년회를 만들자.”는 게 차장의 주장. 물론 술자리 초기에는 다사다난했던 한해에 대한 소회로 깔끔하게 출발하지만 술이 한 순배 돌고나면 모든 부원들이 다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야, 너!하는 짓이 그게 뭐냐?인생 똑바로 살아라. 똑바로!” 정유업체에서 일하는 차모(29)씨는 송년회를 이유로 12월 한달간 합법적 외박허가증을 받았다며 날마다 거래처와 송년회 자리를 만드는 차장이 무섭다. 연말연시를 핑계로 동료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마음대로 송년회를 잡아놓아 12월만 되면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송모(32)씨는 송년회 자리만 되면 부하 직원 모두 집에 못 들어가게 잡아두는 부장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어차피 나는 집이 인천이라 버스 끊겼으니 다같이 밤새 마시자.”며 남·녀 불문하고 밤새다시피 잡아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취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대리운전을 불러 가버린다. ●“쓰지도 못하게 할 휴가로 생색은 왜 그리 내는지….” 제2금융권에서 일하는 진모(35)씨는 부장 때문에 화가 잔뜩 나 있다. 올해 유난히 바쁜 업무 때문에 여름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은 그는 얼마전 회사에서 “올 여름 휴가 못 쓴 사람들을 위해 특별휴가 5일을 제공하겠다.”는 말에 신이 났었다. “윗선에서 안된다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냈다.”는 부장의 잘난 척이 그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특별휴가 5일을 다 쓰면 ‘왕따’당한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던 터라 주말연휴에 이틀만 휴가를 붙여 스키휴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휴가원을 받아 든 부장의 반응에 약 3초간 살인충동을 느꼈다고 한다.“야, 지금이 어떤 땐데 휴가 타령이야. 신청하란다고 진짜 신청하냐?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 실적까지 가로채 상 받으면 좋아요?” 전자회사에 다니는 오모(32)씨는 최근 부장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오씨의 회사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직원들의 한 해 실적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베스트 사원’도 뽑아 시상하는데 올해는 오씨의 수상이 유력한 분위기였다. 자신의 제품 아이디어가 회사 수익창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고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가 회사 경영에 직접 반영되는 등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동료들도 오씨에게 “베스트 사원에 뽑히면 한 턱 쏘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오씨는 최근 부장이 본인 스스로를 베스트 사원으로 추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장이 오씨의 사업 아이디어나 보고서 등을 부장 본인이 기획하고 감수한 것으로 보고했던 것. 부장의 보고서에서 오씨는 그저 시키는대로 일한 ‘행동대원’에 불과해 인센티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연말만 되면 자기 부하직원의 공을 가로채려는 낯 두꺼운 상사들이 어디 우리 부장 하나 뿐이겠어요? 다들 말도 못하고 속병만 앓는거지….” ●“꼭 연말에 사람들 앞에서 망신 줘야하나?” 대학원생 최모(27)씨는 지난해 연말 대학원 동기가 저지른 만행에 가끔은 오싹하기까지 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커플 동반 모임을 하기로 약속하고는 정작 그는 다른 모임에 나갔다. 때문에 여자친구는 당황한 기색으로 술만 마시다 돌아갔다. 알고보니 그는 여자친구와 확실하게 헤어지려고 일부러 그날을 택해 ‘테러’를 감행한 것. 여친에게도 “미안해, 우리 그만 정리하자.”는 말만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고.“아무리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한 일이라지만 특별한 날에 다른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런 식으로 망신을 주면 상대방 가슴에 평생 비수로 남게 될 텐데요. 아무리 친구지만 그럴 땐 정말 독한 놈 같아요.”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예수님 생일에 네가 왜 그렇게 난리치는데?” IT업체에 다니는 김모(24·여)씨에게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고 동창생이 최근 들어 여간 꼴불견이 아니다.“크리스마스 케이크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밤에 제일 잘 팔리듯 여자나이도 24살이 절정”이라며 올 연말을 불태우겠다고 반쯤 미쳐있는 친구를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미 크리스마스 이브에 갈 콘서트장, 무도회장은 예약을 다 해둔 상태. 친구들끼리 모여 파자마만 입고 웃고 떠든다고 이름붙은 ‘파자마 파티’를 하겠다고 호텔 예약도 마쳤다. 행사 때 입을 옷과 액세서리도 수백만원 어치를 구입했다.“어떨 때보면 제 친구가 돈을 못 써서 안달난 사람 같아요. 지나치게 돈을 쓰며 온갖 파티를 즐기는 ‘무개념족’ 같아 안타까워요.” ●“송년회가 무슨 ‘전국자기자랑’ 시간이니?” 신문사 기자로 일하는 이모(28·여)씨는 이번 송년회에서 대학 동기의 ‘자기자랑’을 다시 들을 생각을 하니 짜증부터 난다. 방송국 아나운서인 친구는 송년회 자리에서 술잔이 돌기 전부터 “우리 서로 근황을 얘기해보자.”며 운을 떼고는 직장·남친·자동차에 심지어 자기 집 강아지까지, 자랑이 끝이 없다. “내가 얼마 전에 모 단체 홍보대사가 됐거든. 내 미니홈피에 와서 확인해보면 알 수 있어.”,“몇 달 전에 회사 동료 기자가 사내에서 기자상을 받았는데 상을 받으면서 ‘이 상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은 여자가 여기 있다.’며 나에게 간접 고백을 하는거야.”,“요즘 집 앞에 항상 날 기다리는 남자가 있는데…. 생긴 건 멀쩡한데 그래도 귀찮아 죽겠어.”올해는 어떤 자기자랑으로 무장하고 나올지 겁부터 난다는 이씨는 ‘그 친구가 나오면 모임에 아예 안나가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나이 먹고 이래도 남자들이 늘 집에 데려다 줄까?” 의류회사에 다니는 박모(26·여)씨는 연말만 되면 늘 남자직원들에게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선배 여직원 하나가 그렇게 ‘밉상’이란다. 각종 송년회 자리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신 뒤 남자직원들의 부축을 받고 집에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다.“아무리 술이 좋다지만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충고에 돌아오는 답변은 “괜찮아, 난 예쁘니까 집에 다 들어가게 돼 있어.”였다. “한 두번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남자 직원들도 ‘예쁘니까 다 용서가 된다.’며 받아들이는 분위기라서 대놓고 말하기도 그렇고…. 나이 먹고 미모가 꺾인 뒤에 술 먹고 길거리에서 내팽개쳐지는 경험을 해 봐야 버릇이 없어지겠죠.” ●“평소에는 연락 한 번 없더니…단체문자 한 번이면 끝?” 골프용품점을 운영하는 김모씨(27·여)는 해마다 이맘 때면 날아오는 친구들의 ‘안부문자’가 그리 달갑지 않다. 일년 내내 연락 한 번 없다가 뜬금없이 “메리크리스마스∼”나 “새해 복 많이 받아.” 등의 단체문자 메시지 한 번 보내고는 나중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너 왜 문자까지 보냈는데 내 결혼식에 안 온거니?”,“내가 너 평소에 얼마나 챙겼는데 돈도 안 빌려주고…. 못됐다. 정말”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내줘서 고맙기는 한데요. 뜬금없이 그런 날을 핑계로 문자 보내고는 나중에 갑자기 연락해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친구들은 좀 꼴불견이죠. 오히려 나를 그저 알고 지내는 여럿 중 하나(one of them)라는 것만 일깨워줘 ‘우리 관계가 이것 밖에 되지 않았나.’하는 회의감만 심어주거든요.” 변호사 남모(32·여)씨도 연말·연시에 받는 친구들의 연하장을 볼 때마다 보낸 사람들의 진정성이 의심돼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내년엔 올해 이루지못한….”등 닳고 닳은 말투로 시작하는 연하장. 그것도 자필도 아닌 인쇄된 문자로 채워진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혹시 얘가 나한테 뭐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가.” “휴대 전화 번호 검색을 하다가 이름을 지우자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드니까 해마다 이 때가 되면 문자나 연하장을 보내는 것 아니겠어요?관계를 끊기보다는 나중에라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겠죠. 정말 저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럴 때 말고 평소에 전화 한 통만 해 주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너무 인간관계를 까칠하게 보나요?그래도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많을 것 같은데….” ●“분위기 흐릴거면 여기 왜 나온거야? ㅠ.ㅠ” 대학원생 신모(26·여)씨는 연말 송년회마다 꼭 자리를 함께 해야 하는 동료 대학원생 한 명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안마시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다들 즐겁자고 모이는 술자리에서까지 “너희들 너무 이런 자리에서 죄를 많이 짓는 것 아니니?”,“이런 모임이 다 허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등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마구 쏟아내 분위기를 깰 때가 많아 난감하다고 특히 신씨를 더욱 가슴아프게 하는 것은 그 친구가 모임이란 모임은 기를 쓰고 빠지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 ‘야, 너 정말 한 잔도 안 마실거냐?´ 라고 물으면 그 친구는 ‘요즘 술자리가 너무 많아서 오늘은 도저히 못 마시겠어.´라고 말해요. 누구는 요즘 술자리 없어서 이렇게 마시나요?술 한 잔 안마실거면 최소한 즐거운 송년회 분위기라도 흐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힐러리-男동창생 4년간 교환 서신 공개

    힐러리-男동창생 4년간 교환 서신 공개

    “그녀의 편지는 여느 시대의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표출되는 자기도취적이고 계시적이며 장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바로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힐러리가 1965년에서 69년까지 대학 시절 남자 고교 동창생과 4년 가까이 주고 받은 편지 30통의 내용을 공개했다. 편지 속에는 힐러리가 미완의 대기이던 학창 시절 품었던 생각들이 드러나 있다. 당시 힐러리는 웰슬리 여대에, 동창 존 피보이는 프린스턴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신문은 마구 떠들다가도 사색에 빠지고 번민하는 한편 혈기왕성한 힐러리의 편지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그녀의 생각을 드물게 여과되지 않은 채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대중 앞에서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는 오늘날의 힐러리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1967년 4월에 쓴 편지에는 “크리스마스 이후 내 앞에 잡다한 인생들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라고 되어 있다.1967년 10월 3일자 편지는 “일요일엔 아침부터 정신이 무기력했는데 사람들, 특히 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연민의 늪에서 헤맸다.”고 적고 있다. 이 편지에서 그녀는 피보이에게 받은 편지를 잘 보관해 뒀다가 훗날 그가 유명인사가 되면 편지로 돈을 많이 벌겠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물론 훗날 유명인사가 된 것은 피보이가 아닌 힐러리다. 피보이는 현재 남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여자 대학인 스크립스 컬리지의 영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힐러리가 편지를 쓰던 시기는 부친의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탈피해 자유주의적 반전행동가로서 정치적인 전환을 하던 즈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는 정치적인 것보다 자아 탐구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여성&남성] 나한테 작업건 게 아니었다고?

    [여성&남성] 나한테 작업건 게 아니었다고?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묘한 간극을 쉽게 좁히지 못한다. 상대의 머리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까를 평생동안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을 마감한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에게 애정표현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만든 행동, 이 때문에 어떤 황당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경험담을 들어봤다. ■남자를 아리송하게 하는 여우의 행동 회사원 최모(27)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고등학교 여자 동창생의 가냘픈 행동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지난해 말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최근 남자 친구와 헤어져 힘들어하고 있던 중. 따로 술을 한잔하자던 친구가 술에 취한 뒤 “집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댈 땐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한다.“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좋은 감정을 품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며칠 뒤 ‘예전 남자친구와 다시 사귄다.’며 기뻐하는 전화가 와 혼자 허망하게 ‘삽질’을 했다는 걸 알게 됐죠.” 회계사 박모(30)씨 역시 동기 회계사의 취중 작업에 마음이 움직였다. 외모는 돋보이지 않지만 평소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여자 동기에게 마음을 빼앗긴 박씨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지만 한마디로 차이고 말았다. 하지만 동기는 미련이 남았는지 그 뒤로 자주 연락해왔고 함께 술을 마신 뒤 집에 바래다 주겠다는 그의 제의도 쉽게 응했다. 이때다 싶어 용기를 내 고백을 한 박씨. 하지만 답이 걸작이었다.“네가 하도 불쌍해보여 그랬던 거야.” ●영화 보자고 해놓고… 회사원 송모(26)씨는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가 영화를 보여달라고 조르는 태도에 설마하는 마음이 들게 됐다. 지난 추석 연휴 때 후배가 갑자기 ‘오빠, 저랑 영화 같이 보실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응했더니 후배는 덜컥 커플석을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관 안에서도 후배는 송씨에게 딱 달라붙어 송씨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나를 좋아하는 거야.’라고 확신하고 며칠 뒤 고백했지만 그때 후배의 표정은 송씨에게 악몽으로 남게 됐다. 회사원 김모(29)씨도 대학교 2학년 때 한 여대와 함께한 개강파티에서 만난 여성과의 영화관람 데이트가 착각의 원인이 됐다. 마음이 맞아 급격히 친해진 두 사람은 개봉 영화는 전부 섭렵하고 쇼핑도 함께 했다. 하지만 뒤에 알고 보니 그 여성은 김씨의 친구와도 그렇게 함께 놀았던 것으로 밝혀졌다.“용기를 내 ‘나와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더니 결국 그에게 가버리고 말았죠.” 회사원 이모(28)씨도 미모의 대학 선배에게 첫눈에 반해 데이트 신청을 했고 놀이공원과 미술관 등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싹틔웠다고 ‘잘못’ 생각하게 됐다. 여선배는 이씨를 후배라기보단 남자로 봐줬고 심지어 가족들에게마저 소개시켜 줬다. 그러던 여선배의 생일날. 이씨는 여선배의 나이 숫자만큼 송이가 채워진 장미 꽃다발과 선물을 사서 여선배의 집앞에서 전화를 했지만 여선배는 “미안해, 내가 행동을 잘못해온 것 같아 나갈 수가 없어.”라고 답했다. 알고 보니 여선배의 집앞에는 이씨 말고도 과 선배 2명과 동기 한명이 더 진을 치고 있었다. ●어려운 부탁은 다 들어줬는데…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여학생의 친절에서 애틋한 마음을 느꼈다고 ‘혼자’ 생각했다. 원래 다른 반에 있던 김씨 친구가 그 여학생을 마음에 들어해 메신저 역할을 하던 김씨에게 그 여학생은 “난 그 애 싫어. 너하고 연락할래.”라고 말하며 추파를 던졌다. 그 여학생은 매일 사물함에 피자와 도넛 등의 주전부리를 살짝 넣어둬 김씨를 기쁘게 했다. 넉달 뒤 수학여행을 간 경주에서 김씨는 용기를 내 고백했지만 답은 “우리는 그냥 친구사이일 뿐이잖아.”였다.“여자들은 그냥 친구에게도 그런 친절을 베풀 수 있구나 싶더군요. 통 이해가 안 됐어요.” 대학원생 박모(26)씨는 학부 시절 한 여후배가 남긴 기억만 떠올리면 기분이 씁쓸하다. 학부 2학년 때 1년 아래였던 여후배는 보고서 제출기한만 되면 찾아와 “오빠, 내가 아파서 다 못했는데 도와줄거죠. 대신 제가 영화 보여드릴게요.”라며 간접적으로 데이트를 신청했다. 한 학기 동안 그렇게 써준 보고서만 무려 7개. 여후배는 그 덕에 평점 4.3점 만점에 4.1점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했다.“하지만 방학 때 연락이 끊기더니 2학기 때 다시 만난 후배는 영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죠.”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아요.’다 그런거야? 공기업에 다니는 성모(26)씨는 대학시절 스터디 후배의 문자메시지 한 방에 마음을 잃었다. 후배가 보내온 ‘열심히 하는 오빠 모습이 보기 좋아요.’라는 문자는 성씨 생각에 쉽게 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스터디 모임 때마다 그 후배가 눈에 밟혔고 온종일 그 후배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뒤 그 후배는 스터디 모임에서 “오늘 남자친구 생일이라 좀 일찍 가면 안될까요.”라고 하고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모임장소를 나가버렸다.“알고 보니 그 문자를 스터디 모임 남자 선배한테 다 보냈더군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여자를 헷갈리게 하는 늑대의 습관 회사원 김모(25)씨는 술만 마시면 전화를 걸어오는 친한 대학 후배 때문에 ‘착각의 늪’에 빠진 적이 있다. 그 후배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나 요즘 너무 많이 힘들다.”거나 “내 미래가 너무 두렵다.”면서 속내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전화를 받다 보니 그는 ‘이 녀석이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가 “걔 원래 술 마시면 여기저기 전화해. 나한테도 했어.”라고 말해줘 혼자 얼굴만 붉혀야 했다. 회사원 손모(24)씨도 마찬가지. 대학에서 만난 그 남자는 평소에도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고 MT(야유회)에 가서는 밤새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잠이 들면 옆에 누워 고이 잠이 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남자가 어느날 밤 술을 마시고 전화해 “요즘 사는 것이 힘들지 않니.”라는 말을 물어왔다. 남자의 전화에 마음이 두근거린 손씨는 고백을 기다렸지만 묵묵부답이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에겐 다른 소중한 여자가 있었다. ●남자의 문자메시지에 마음이 두근두근 학원강사 전모(29)씨는 대학의 남자 동기가 보내준 문자메시지에 마음이 동했다. 전씨는 몇년 전 자신의 생일 전날 별 생각없이 잠자리에 들었다가 그 남자 동기가 자정이 되자마자 보내준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자신도 잊고 있었던 생일을 축하해준 그 동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그날부터 그 동기만 보면 묘한 감정이 일었다.“며칠 뒤 다른 여자 동기가 ‘오늘 내 생일인데 그 남자동기가 문자보냈더라.’고 하더군요. 김이 팍 샜죠.” 회사원 우모(28)씨는 4년전 함께 공부하던 2년 선배의 감정이 아직 궁금하다. 매일 전화통화를 하고 같은 스터디 멤버에게 하기 힘든 사생활 얘기까지 하던 그. 어느날 그 선배가 ‘널 위한 음악을 카페에 올려놨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와 스터디 멤버들이 함께 쓰는 카페에 들어가 보니 며칠 전 무심코 좋아한다고 말했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3개월가량 친하게 지내며 거의 사귀기 직전까지 갔던 관계에 마음 졸였던 우씨는 스터디가 흐지부지되며 연락이 뚝 끊기고 말았다. 회사원 이모(26)씨는 매일 영문도 모른 채 받은 한 선배의 초콜릿이 머릿속을 온통 헝클어놓았다. 항상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선배가 어느날 포장도 하지 않은 초콜릿 몇개를 건네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 선배는 그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이씨에게만 ‘영문 모를 초콜릿’을 건넸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이씨는 결국 술을 잔뜩 마신 뒤 그 선배에게 전화해 이유를 물었다. 그 선배는 “응, 우리집이 작은 구멍가게를 하다 얼마 전에 정리해서 초콜릿이랑 사탕이 많이 남았거든. 처리할 데가 없어서….”라고 했다.“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해주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선배가 너무 미웠죠.” ●뜨거운 눈빛, 무슨 의미일까? 회사원 이모(25)씨는 ‘석호필’(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같은 한 남자의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다. 친구의 친구로 자연스레 알게 된 그 남자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씨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주치는 눈빛에 지긋함이 담겨있었다. 마음이 있는 줄 알고 연락처를 주고 다음에 보자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지만 그 남자는 이후 연락이 뚝 끊겼다. 궁금증이 일어 안부를 물어본 친구는 “걔는 남자랑 얘기할 때도 눈을 쳐다보며 얘기한대.”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27)씨는 회사 윗기수 남자선배의 가벼운 스킨십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선배는 대화할 때 항상 어깨를 툭 치거나 팔을 살짝 잡곤 했다. 얼굴에 뭐가 묻었다며 털어준다든지 옷깃을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게다가 무슨 말을 할 땐 항상 귓속말로 해 김씨를 긴장시켰다.“행동만 보고 ‘아,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한참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그 선배는 누구에게나 귓속말로 얘기하는 소심한 남자일 뿐이었죠.” 비서로 일하는 이모(31)씨는 회사 후배의 매일 아침 커피 한잔 공세에 마음이 끌렸다. 후배는 평소 회식 자리에서도 이상형을 물어보곤 “내가 바로 그 남자”라며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더니 출근하면 매일 책상 위에 커피 한잔을 올려놨다. 은근히 애교 많은 후배의 ‘작업’을 즐기고 행동을 기다리기만 했더니 얼마 뒤 사내 소식통을 통해 그 후배가 거래처 여직원과 사귄다는 소문을 들었다.“넋놓고 기다리다가 버스만 놓쳐버렸죠.”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길섶에서] 여자의 일생/함혜리 논설위원

    오랜 만에 여고동창생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대전에, 다른 친구는 인천에 산다. 내가 귀국했다고 주말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언제 보아도 어제 본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고 할 얘기도 많다. 아직 여고 때의 교복 입은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만날 때마다 달라지는 대화의 주제를 보면 세월의 흐름이 실감난다.3년쯤 전에 만났을 때는 아이들의 대학 진학이 대화의 주제였다. 두 친구는 모두 큰 아이들을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조기유학보냈고, 그 때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연로하신 부모님들 얘기가 주로 오갔다. 대전서 올라온 친구가 시아버님의 치매 때문에 가족 모두가 고생한다고 했다. 대소변을 못 가리시는 탓에 하루에 10차례 이상 빨래를 내 놓으신단다. 깔끔한 그 성격에 얼마나 힘이 들까. 친구들은 강화도 근처에 좋은 땅을 사서 집 짓고 모여 살자고 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데다 바다도 있고, 무엇보다 공항이 가깝다는 것이 강화도를 선택한 이유다. 그래야 미국에 있는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더 찾아 올 것이라는 바람에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CN캐나디언오픈 ‘코리안 파워’ 한자리

    “시즌 10승째는 내 손안에.” ‘여제’도 없다.‘메이저 사냥꾼’도 빠졌다. 한국 여자골퍼들의 한 시즌 최다승(10승) 달성이 드디어 가시권에 들어왔다. 프랑스(에비앙마스터스)와 영국(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잇따라 두 자리 승수 달성에 실패한 ‘코리안 파워’가 10일 밤(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헌트골프장(파72·6611야드)에서 개막하는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N캐나디언오픈(총상금 170만달러)에 재도전장을 내밀었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캐리 웹(호주), 그리고 라이벌 중의 라이벌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휴가에 들어갔다. 줄리 잉스터와 폴라 크리머(이상 미국) 등 잠재적 우승 후보들까지 모두 빠졌다. 오로지 한국 선수 가운데 과연 누구의 손이 우승컵을 들어올릴지가 관심사다. 자연스럽게 디펜딩 챔피언 이미나(25·KTF)에게 눈길이 쏠린다. 루키 시즌이던 지난해 이 대회에서 마수걸이승을 신고했던 이미나는 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첫 우승의 기쁨을 안겨준 캐나다는 나에게 약속의 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통산 2승째이자 올시즌 첫 승을 거둔 게 지난 2월 필즈오픈. 승수를 한 개 더 추가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이미나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선수가 청주 상당여고 동기동창생인 김주연(KTF)이다.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메이저 우승컵으로 장식했던 김주연은 아쉽게도 이후 타이틀 추가는 못했지만 여전히 ‘위너스 클럽’의 멤버다.“2승의 갈증을 푸는 건 물론 한국의 10승째까지 벼르고 있다.”며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과 함께 생애 첫 시즌 3승을 노리는 김미현(KTF)은 최근 절정의 감각을 유지하고, 박세리(CJ·이상 29)도 브리티시여자오픈 기권의 빌미가 됐던 왼쪽 팔꿈치 부상이 회복돼 기대를 모은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심상덕의 서울야화](16)거지들이 사랑했던 스타 차홍녀

    ‘대종상 영화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과 함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도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고요. 그런데 옛날 영화 중 1965년 ‘김지미’와 ‘신영균’이 주연했던 전택이 감독의 ‘홍도야 우지마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해도 그동안 연극으로 많이 공연이 됐고, 지난 195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거든요. 또 1930년대 후반에도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였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36년 동양극장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으로 연극으로 공연됐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홍도 역을 맡았던 배우가 ‘차홍녀’였습니다. 홍도의 오빠역인 경찰관은 그 시절 첫손에 꼽히던 배우 ‘황철’이 맡았고요. 이 작품을 쓴 극작가 ‘임선규’는 처음부터 여자 주인공엔 차홍녀를 생각했었기에 ‘홍도’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거고, 또 오빠인 경찰관 역엔 황철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철수’라는 등장 인물을 만들어 냈던 겁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데 없는 두 남매.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뒤, 오빠의 동창생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은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거죠. 그러나 홍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소박을 맞고 쫓겨나게 되는 겁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집안 식구들의 모함만 듣고 홍도를 마치 부정한 여자로 치부하면서, 전 약혼자와 결혼할 생각을 갖게 되고 이성을 잃은 홍도는 본의 아니게 전 약혼녀를 살해하게 돼 경찰관이 된 오빠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런데 ‘대종상 영화제’가 있는 오늘.‘서울야화’에서 왜 ‘홍도야 우지마라’라는 연극과 영화 얘기를 하느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홍도야 우지마라’의 주인공 ‘차홍녀’가 인기절정의 여배우였지만 너무나 아까운 나이 25살에 꽃잎을 떨구게 됐던 겁니다. 그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요. 당시 극단 ‘아랑’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돌던 1940년 겨울.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역에 나갔는데 그날 따라 기차가 한 40분 정도 연착이 되는 바람에 기차역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때, 그 추운 날씨에 역 앞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덜덜덜덜 떨면서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하게 됐던 거죠. 바로 이 순간 차홍녀가 그 거지 앞을 그냥 지나쳤다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평소 인정이 많던 차홍녀는 그 거지에게 적선을 했던 겁니다. 거지는 그 인정이 고마워 손을 내밀었는데 차홍녀가 따스하게 거지의 손을 꼭 붙잡아 줬던 거죠.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거지와의 접촉에서 그 당시 한창 유행하고 있던 ‘천연두’에 걸려 지방공연을 다녀온 지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겁니다. 그 당시 ‘천연두’에 걸리면 전염병치료소인 ‘순화병원’에 강제로 수용돼 비참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은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한약을 먹이면서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는 겁니다. 차홍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 서울시내에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당시 동양극장 앞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구걸하던 거지들은 물론 서울시내 다른 지역 거지들에게도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차홍녀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거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겁니다. 그리고 당시 화장터가 있었던 홍제동까지 거지들이 상여의 뒤를 길게 따라가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우리에게는 ‘홍도야 우지마라’로 더 잘 알려진 연극을 통해 인기 정상에 올랐던 차홍녀. 그녀는 비록 스물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차홍녀’의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엔 마음씨 고왔던 그 시절의 스타 ‘차홍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 [문화캘린더]

    ●동작구 제11회 여성 주간을 맞아 오는 11일 오후 3시30분 여성단체 및 여성 등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문화공연 ‘아줌마 닷 컴’을 한다. 아줌마 닷 컴은 여고 동창생 3명이 10년 만에 다시 만나 소녀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아줌마로 살아가는 세상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극이다. 주로 80년대 주옥같은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나와 30∼50대 여성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공연 1시간 전부터 선착순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극단 오렌지의 공연으로 배우 서정화와 이경성 등이 출연한다. ●강서구 어린이를 위한 연극 ‘똥벼락’을 개화동 강서아동복지센터에서 8일 오후 1시에 공연한다. 이 연극은 서울문화재단의 ‘찾아가는 문화공연’행사로 민들레 극단이 공연한다.‘똥벼락’은 똥과 도깨비라는 전래동화의 소재로 이뤄진 그림동화이다. 돌쇠네는 30년 동안 김 부자네 집에서 일하고 겨우 돌밭을 받았는데 돌쇠는 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밖에서 똥을 쌀 일이 있어도 집에 오고 이곳저곳에서 똥을 주워오는 등 온갖 똥을 모은다. 그의 부지런함과 정성에 탄복한 도깨비는 김부자네 똥을 모아 선물로 준다. 결국 돌쇠네 돌밭에 곡식이 주렁주렁 열렸다. 하지만 우연히 밭에서 금반지를 발견한 돌쇠네가 이를 김부자에게 갇다주자 김부자는 가져간 똥을 돌려주든가 곡식을 내놓으라고 엄포를 한다. 이에 돌쇠네 아버지가 도깨비에게 요청을 한다. 150명에 한정해 선착순으로 전화로 접수한다. 무료공연이다.(02)2662-3845. ●동대문 시설관리공단은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를 위해 다음달 3∼4일,18∼19일 2차례에 걸쳐 강원도 평창 봉평면 휘닉스파크에서 ‘어린이 참사랑 여름캠프’를 열고 초등학교 2∼6학년을 대상으로 참여자 100명을 오는 22일까지 모집한다. 캠프 프로그램은 별자리 관측과 어린이 래프팅, 곤돌라 탑승, 터비썰매, 캠프파이어 등 다양하다. 참가비는 5만 8000원. 희망자는 이문체육문화센터에 접수하면 된다.02)963-0534∼7 ●관악구 서울미술고등학교와 함께 미술을 좋아하지만 가정사정상 배울 수 없는 4∼6학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문화 나눔 미술캠프’를 운영하며 참가 대상자를 13일까지 모집한다. 참가 대상자는 관악구에 거주하는 소년·소녀 가장과 실직자 자녀, 극빈 아동들로 학교장 추천을 받아야 가능하다. 또 동작교육청이나 동사무소의 추천도 괜찮다. 신청서 제출은 관악구 봉천6동 예술길 서울미술고등학교 부설 TQ미술교육연구원에 방문접수하거나 팩스로 신청하면 된다.(02)872-2111∼4, 팩스 (02)873-7111.
  • 명문여고 옛언니·동생 관계

    명문여고 옛언니·동생 관계

    자가용 한대를 은퇴한 옛 교장에게 선사했다. 불난 모교 교사(校舍)신축기금을 수십만원씩 기부했다. 모교의 생활관 건립기금으로 4백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다. 어느 남자동창회들 얘기가 아니다. 근래에 여고(女高)동창생들이 끼리끼리 모여 만든 화제들. 다음은 그래서 수소문해 본 명문여고출신(名門女高出身) 아무개와 아무개 부인들. 꾸준하게 모이기는 배화(培花) 육(陸)여사는 언니와도 동기(同期) 여자들의 경우 출신(出身)과 동창(同窓)을 대학에서보다 여고(女高)에서 꼽는 것이 상례(常例). 「언니」,「그애」의 친밀한 대명사를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못버리는 사이가 여고(女高)동창들이다. 「뭔지 모르게 서로 통하는게 있어서」통성명하고 출신을 캐 보니까 동창이더라고 여자들은 곧잘 무릎을 치면서 감탄한다. 아무리 그처럼「얘,쟤」하면서 모이는 사이라도『여자 셋만 모이면 시끄럽다』는 심술궂은 익살은 저리 가라고 엄청난 일을 척척 해 내고 있다면 통 큰 신사들도 조금은 놀랄 것이다. 은퇴한 교장 이세정 (李世禎)씨에게 진명여고(進明女高)동창생들이 자가용「코로나」1대를 선사한 것이 금년봄, 몇해전 경기여고(京畿女高) 구교사가 불탄뒤 경운회(慶雲會)(동창회)가 동창모금을 해서 교사신축을 도운 것이 2백여만원. 역시 금년봄 숙명여고(淑明女高) 동창회인 숙녀회(淑女會)의「올드·타이머」들이 돈을 모아 해방전의 친한국(親韓國) 일인(日人) 교장 야촌성지조(野村盛之助)씨를 초빙했었는가 하면 배화여고(培花女高) 동창회는 모교돕기 4백만원 적금을 붓고 있다는 소문. 여자들의 눈칫돈으로는 꽤 큰 액수. 모두 명문이니까 시집들을 잘 가서 그렇지 뭐냐고 한다. 배화동창(培花同窓)=우선 팔자지수(指數) 최고로는 작년 10월 70년 창립기념을 가진 배화(培花)를 들 수 있다. 해방전후만 하더라도 김윤경(金允經)씨를 비롯한 애국자들이 은둔생활 겸 교편을 잡던 여학교였기 때문에「미션·스쿨」다운「프라이드」가 있었다. 게다가 아내 최고의 좌(座)인「퍼스트·레이디」육영수(陸英修)여사를 배출한 학교. 육영수여사의 언니 혜수(蕙修)여사도 한살 차이의 동기동창생. 명부에도 나란히 적힌 자매(姉妹)였기 때문에도 유명하다. 1942년 16회인 이 동기들은 전부터도 꽤 열심히 모이는 열성동창들이었다. 알뜰히 기금(基金)을 마련해서 벽촌에 책보내기 운동도 22세부터 25년간 체신부에서 일하면서 공무국장(工務局長), 전기통신시험(電氣通信試驗)소장을 지낸 안동렬(安東烈)씨(며칠전 퇴임)의 부인 김영연(金英蓮), 보광(保光)「알미·사슈」사장 서정호씨 부인 남정길씨. 변호사 고병국(高炳國)씨 부인 김함득(金咸得)씨. 이들을 중심으로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16회 동창들은 조그만 기금을 마련해서『어깨동무』등 아동잡지를 벽촌국민학교에 보내는 등 복지사업을 소규모 해 왔다. 『공직생활이 시작된 뒤로는 오히려 만날 틈이 없는「퍼스트·레이디」지만 동기생(同期生)의「프라이드」가 그런 보람 있는 일을 찾게 한다』는 한 동창의 얘기. 「올드·타이머」로서 15년전 동창(同窓)교장추대의 움직임까지 있었던 장화순(張和順)씨는 쌍용양회회장(雙龍洋灰會長) 조병준(趙炳俊)씨 부인. 김성곤(金成坤)씨 장녀(長女)와 임송본(林松本)씨 3녀(女)를 며느리로 맞는 다복한 노부부(老夫婦)로 알려져 있다. 김상돈(金相敦)씨 부인 김자혜씨가 장화순씨와는 비슷한 또래의 노장파「엘리트」들. 이호(李澔)법무장관 부인 성낙은(成樂恩)씨 외국어대학(外國語大學)이사장 김여배(金與培)씨 부인 이옥경(李玉慶)씨. 작곡가(作曲家) 김순애(金順愛)씨. 정경화등 음악자녀를 키운 어머니 이원숙(李元淑)씨. 한국민예사(韓國民藝社)여주인 견덕균씨. 의학박사 장재섬(張在暹)씨. 황진주씨. 동창회장 박종옥(朴鐘玉)씨는 낙사회(樂師會)부녀부장. 중앙여중교장 김두원(金斗媛)씨 이들 모두가 쟁쟁한 배화50대(代)다. 문단(文壇)주변에서 배화는 드문 명문으로 꼽히는데 여류(女流)의 중진 장덕조(張德祚)씨가 배화출신인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명문다운 모습은 문예(文藝)쪽에도 뚜렷하다. 7월초 주부「클럽」의 초대 신사임당상을 받은 서예가(書藝家) 이철경(李喆卿)씨와 그 동생이며 역시 서예가인 이미경씨가 배화출신이다. 한전(韓電)부사장 진의종(陳懿鍾)씨 부인 이학(李鶴)씨도 자신의 서도(書道)로 이름이 알려졌다. 여담이지만 신사임당 본상(本賞)뿐만 아니라 장기(長技)백일장의 수필 서도부문 수상자들까지 배화출신이었다. 수상식(受賞式) 다음날 청와대 초청「파티」에서 육여사는 그것을 무척 흐뭇해 했단다. 외환은행장(外換銀行長) 홍승희(洪升熹)씨 부인 서귀숙(徐貴淑)씨. 상은(商銀)이사 강정한씨 부인 이설자(李雪子)씨. 장경순(張坰淳)국회부의장인 문순자(文順子)씨. 논산훈련소장 박남표(朴南杓)소장 부인 이송자(李松子)씨도 배화출신. 경기(京畿)출신엔 학자가 많아 박사 백여명중 30여명이 경기동창(京畿同窓)=똑똑하고「프라이드」높은 것이 자타공인(自他共認) 사실도 돼 있는 경기출신.『딸은 자랑하고 싶어서 경기 보내지만 며느리는 콧대가 높아서 경기를 피한다』는 속설(俗說)이 예비 시어머니들간에 떠돌 정도다. KS라는 별명으로 서울대학과 붙어 다니는 이름이 경기니까 그런 말들은 본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킬지언정 조금도 상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짭짤한 여류학자들을 꼽아보면 거의가 우리 동창 아냐!』라고 자랑한 한 경기출신 여교수의 학계(學界)「리스트」부터 추려보면 배정현(裵廷鉉)씨의 부인이고 숙대가정대학장 농학박사 김삼순(金三淳)씨. 일본체류중인 수학박사 홍임식씨. 최근에 귀국한 농학박사 이미순(李美淳)씨. 부부박사로 3년전 재국당시「매스·콤」의「탤런트」가 되다 시피했던 정치학박사 이범준(李範俊)씨. 윤일선(尹日善)씨의 따님인 사회학박사 윤은구(尹恩球)씨. 아무튼 알려진 여자박사 1백명중 3분지 1인 30여명이 경기여고 출신이라는 숫자가 동창회 명부에 올려져 있다. 이대의 이춘란(李春蘭)씨. 이남덕(李男德)씨. 안인희(安仁姬)씨. 나영균(羅英均)씨. 김세영(金世永)씨등의 실력파교수들. 서강대(西江大)의 김인자(金仁子)씨. 서울대에서는 농대(農大)의 김번옥씨. 사대(師大)의 현기순(玄己順)씨. 중앙대(中央大)의 윤서석(尹瑞石)씨. 서울여대학장이고 대한어머니회 회장인 고황경(高凰京)씨. 성신여사대 부학장 조기흥씨. 창덕(昌德)여고교장 현병진씨. 서울여중교장 최정현씨. 동대분여중교장 김영옥씨. 서울시 장학사 김정애씨. 전 보사부 부녀국장 주정일(朱貞一)씨. 미모의 여류작가 강신재(康信哉)씨. 예능(藝能)과 미모로 이름난 오위영(吳緯泳)씨의 딸 자매들 정주(貞珠) 덕주(悳珠) 현주(賢珠) 제씨가 나란히 경기출신. 실력파「디자이너」「노라·노」씨는 경기라는 딱지가 금상첨화 격의 위광(威光)이며 그가 키워 낸 후배 「디자이너」박충정(朴充貞)씨는 여고후배이기도 하다. 방향을 남편쪽으로 돌리면 체신부장관 김태동(金泰東)씨 부인 이재원(李宰遠)씨. 재무부차관 정소영(鄭韶永)씨 부인 박재옥씨. 외무부차관보 황호을(黃鎬乙)씨 부인이며「피아니스트」인 정영자씨. 차일석(車一錫) 서울시부시장 부인 백영자(白英子)씨. 지금은「카메라」의 초점에서 빗나간 왕년의 인물중에는 송요찬(宋堯讚)씨 부인 권영각(權寧珏)씨가 있고 김유택(金裕澤)씨 부인 박흥덕(朴興德)씨. 전상공부(前商工部)장관 이병호(李丙虎)씨 부인 한경선씨. 전재무부장관 천병규(千炳圭)씨 부인 박용주씨. 前문교부장관 현 고대교수 김상래(金相淶)씨 부인 김인숙씨. 이재학(李在鶴)씨 부인 이정수씨. 장도영(張都暎)씨 부인 백정숙(白亭淑)씨가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통계로 본 서울] (20) 중등학교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은 바쁜 일상의 청량제 같은 존재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중·고교 시절의 행복한 추억은 힘을 북돋아 준다. 바쁜 일상 탓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동창생들을 만나 아련한 기억들을 풀어놓기도 하고,‘그때가 좋았지….’라며 그 시절의 추억을 안주 삼아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30일 ‘2005년 서울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서울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각 363개교와 292개교다. 학생 수는 매년 줄고 있는 추세이며,‘남초현상’은 중·고교에서도 여전히 심각하다. ●중학생 총 37만 9000여명… 남자가 2만여명 많아 중학교는 국·공립이 253개교, 사립이 100개교로 1만 828학급에 중학생 수는 37만 9188명이다. 여학생은 17만 8761명, 남학생은 20만 427명으로 남학생이 2만명 이상 많다. 교직원 수는 1만 9406명으로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9.5명이다. 구별로는 노원구가 26곳, 송파구가 25곳, 강남구가 23곳, 양천구가 18곳, 강동구가 16곳, 서초구가 15곳 등이다. ●일반계 고교 강남·노원 각 17곳 최다 고등학교는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로 나뉜다. 일반계의 경우 국·공립이 74개교, 사립이 140개교로 모두 8230학급,28만 3153명이다. 실업계는 국·공립 19개교, 사립이 59개교로 2292학급,6만 9870명이다. 총 고등학생 수는 35만 3023명으로 중학생 수보다 2만명 이상 적다. 여고생은 일반계가 13만 5177명, 실업계가 3만 3919명으로 모두 16만 9096명이며, 남고생은 일반계가 14만 7976명, 실업계가 3만 5951명으로 모두 18만 3927명이다. 교직원 수는 일반계가 1만 6959명, 실업계가 5155명으로 총 2만 2114명이다. 일반계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6.7명이며, 실업계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3.6명이다. 구별로 일반계는 강남·노원구가 17곳, 강서구 14곳, 송파구 13곳, 양천구 11곳 등이며, 실업계는 노원 8곳, 강서·은평 7곳, 관악·구로 5곳 등이다. ●현존 국내 최초 근대적 학교는 배재고 서울에는 역사가 100년을 넘은 명문고들이 수두룩하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남자학교는 배재고로 1885년 8월3일 선교사 아펜젤러(배재학당)가 설립했다. 개교 당시에는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지난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했다. 최초의 근대식 여자학교는 이화여고(중구 정동)로 1886년 5월31일 선교사 스크렌턴(이화학당)이 만들었다. 이밖에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는 경신고(1885년·종로구 혜화동), 정신여고(1887년·송파구 잠실7동), 경기고(1899년·강남구 삼성동), 휘문고(1904년·강남구 대치동), 양정고(1905년·양천구 목동), 진명여고(1906년·양천구 목동), 숙명여고(1906년·강남구 도곡동), 보성고(1906년·송파구 방이동) 등이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헉! 남자라고요” 18년 여성으로 살아온 사연

    “뭐요,내가 남자라고요? 참 환장하겠습니다.그럼 앞으로는 남자처럼 입고 행동해야 합니까.” 중국 대륙에 아리잠직한 여고생이 어느날 알고 보니 남성인 것으로 밝혀져 시끌벅적하다.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시 더우먼(斗門)구에 살고 있는 한 10대의 아리따운 소녀가 염색체 검사를 해본 결과 표준적인 남성의 몸을 지닌 것으로 판명돼 주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성(性)정체성에 혼돈이 생긴 장본인은 지금까지 여자로 살아온 샤오왕(小王·18)씨.찬찬히 뜯어봐도 긴 생머리에 화사한 투피스를 받쳐 입은 고즈넉한 모습이 묘령의 소녀처럼 보이나 사실은 아주 표준적인 남성의 몸을 지니고 있다. 샤오왕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 생식기가 복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여성 생식기와 비슷하게 생긴 요도 기형 질환의 하나인 ‘요도 하열’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이런 까닭에 그의 부모는 샤오왕을 여성으로 착각해 딸로 키우고 샤오왕 자신도 지금까지 당연히 여성으로 생각하고 여성처럼 행동해왔다. 부모와 샤오왕이 여성으로 생활하다 보니 가족은 물론,이웃 사람들,학교 선생님과 동창생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여성으로 알고 여성으로 대접해 줬다.그것도 무려 18년 동안을…. 그러던 중 샤오왕에게 ‘청천벽력’ 같은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같은 나이의 여학생들은 모두 가슴이 정상적으로 발육해 뚜렷이 드러나 보이는데 비해 자신의 가슴은 도대체 부풀어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자신의 몸이 너무 궁금해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다.검사 결과 샤오왕은 자궁과 난소가 보이지 않은 것은 물론,염색체도 46XY 남성으로 밝혀졌다.담당 의사는 “다른 어떤 검사를 해봐도 샤오왕의 몸은 모두 표준적인 남성의 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다시 득달같이 광둥성 인민병원으로 달려가 비뇨기과 정밀검사를 받았다.검사결과 역시 표준적인 남성으로 나왔다. 병원 담당의는 “샤오왕은 ‘요도하열’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며 “이 희귀질환의 경우 어린 시절에는 여성 생식기와 모양이 비슷한 까닭에 여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희귀병은 그러나 불치의 병이 아닌 만큼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수술만 제대로 이뤄지면 정상적인 배변은 물론,결혼해 정상적인 성생활도 누리고 아기도 낳아 기를 수 있다는 것. 샤오왕은 현재 광둥성 비뇨외과 전문의 수술을 받아 건강한 상태로 퇴원,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이름도 남성적인 것으로 바꾸고…. 온라인뉴스부
  • [이사람]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새로운 천년 ‘섬김의 리더십’ 산실로”

    [이사람]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새로운 천년 ‘섬김의 리더십’ 산실로”

    1960년 경기여고 교장실. 숙대 가정대 학장으로 있던 표경조 경기여고 총동문회장이 박은혜 교장에게 말한다.“미래 대학총장으로 키울 테니 똑똑한 후배를 우리 학교로 보내주세요.” 그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대학 입학도, 졸업도 수석이었다.4년간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4학년 땐 총학생회장도 맡았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학자였다. 정치학계의 대모가 꿈이었다.5·16 군사혁명, 북한 무장간첩 31명의 서울 침입 등으로 혼란스러운 격동의 60년대와 70년대 중반까지 책과 씨름하며 보낸다. 이 무렵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도 받는다. 여성 정치학 박사 3호다. 국회의원 생활도 4년간 한다. 정치이론과 실무경험까지 두루 거친 그는 모교 정법대 학장과 기획처장을 거쳐 94년부터 2008년 8월까지 총장으로 모교발전을 도모하게된다. ●재임기간 캠퍼스 6000평에서 1만8000평으로 바로 숙대 이경숙(63)총장 얘기다. 이 총장은 바빴다. 올해로 개학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국내 첫 4선 총장취임 인터뷰도 몇몇 언론사가 함께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의 총장 재임 동안 숙대는 몰라보게 변해왔다. 캠퍼스는 1995년 6000여평에서 1만 8000여평 규모로 커졌다. 각종 단과대 건물과 박물관, 연주홀 등 17개동의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최근 6년간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 선정, 모바일 캠퍼스 구축, 국가고객만족도(NCSI) 3년 연속 1위 등 양과 질에 있어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다. 비결을 묻자 “공감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개인보다는 학교를 먼저 생각하며 일해 온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숙명 사랑은 총장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구체화된다.94년 13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2006년까지 대학발전기금 1000억원을 조성, 세계 최고의 여자대학으로 변신시키겠다고 선언한다. 이전에 모인 기금 규모는 2억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몸으로 실천해 나갔다. 동창생들을 찾아다니며 15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 한번 더 내기 운동’도 벌였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코드동블루로부터 120만달러도 유치했다. 국내 대학이 외자를 끌어들인 첫 사례로 기록된다. 이같은 노력으로 현재 숙대 발전기금은 927억원으로 불어났다. 학생수가 1만여명선인 여자대학임을 감안하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섬김의 철학은 그의 인재양성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21세기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합의를 본게 섬기는 지도자상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섬기고, 세계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그리고 남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죠,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도 섬김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가 4선 총장이 된 것도 이러한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춤추는 총장님 “제2탄 기대하세요” 섬김의 리더십은 청파 은혜제 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학생·학부모들 앞에서 남자 교무위원들과 함께 미니스커트에 선 글라스를 끼고 춤을 추는 60대 할머니가 바로 그다. 그는 2000년부터 해마다 5월에 만20세 성년이 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깜짝 이벤트를 선보인다. 지금까지 테크노 댄스, 난타공연 등 다양한 춤실력을 선보였다, 올해 5월에 예정된 청파은혜제 때에도 마찬가지다. “매주 한번씩 갖는 교무위원 회의를 마치고 1∼2시간씩 학생들로부터 춤 지도를 받죠. 처음엔 다들 머쓱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명나게 놀죠.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물론 공연 때 실수라도 하면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죠. 이런게 대학 구성원을 한 곳으로 뭉치게 하는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이 총장이 밝히는 섬김의 철학은 이렇게 몸에 배어 있었다. ●숙대생 건배는 ‘진달래´로 시작 ‘개나리´로 마무리 술 실력은 어떨까?기독교 신자로 술을 전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은 대단하다. 그가 참석하는 자리는 예외없이 나오는 구호가 있다.‘진달래’로 시작해서 ‘개나리’로 끝나는 숙대 건배사다.‘진하고 달콤한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를 줄인 ‘진달래’를 그가 외치면, 나머지 참석자들은 ‘개인과 나라의 이상을 위하여’라는 의미인 ‘개나리’로 화답하며 술잔을 부딛친다. 숙대를 잊지 말고 오래오래 가슴속에 품어달라며 그가 만든 숙명 사랑의 결실이다. “남녀공학 대학과 달리 여대는 졸업해도 선·후배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등 연결고리가 약한 편이죠. 그래서 정서적 공감대를 키우려고 고민한 끝에 여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그리고 들어서 기분좋은 표현을 생각했죠.”이 총장의 부연 설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숙대 사랑이 듬뿍담긴 이 건배사를 들었다.“얼마전 21세기 인재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어요. 청와대에서 수상자들을 위한 오찬자리를 마련했는데 대통령이 건배를 제의해 진달래, 개나리를 외쳤죠.”라고 말한다. 이 총장은 ‘교수 가족’이다. 지난해 은퇴한 최영상 전 고려대 부총장(화학과 교수)은 그의 남편이다. 이숙자 전 성신여대 총장은 그의 여동생이다.99년에 동생이 성신여대 총장이 됐을 때 “행정이나 인간관계는 잘 하고 있지만 교수님들을 특히 잘 섬겨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12개나 되는 대학원 원장을 모두 맡고 있는 한정신 원장은 대학, 학과 동기다. 4선 총장답게 웬만한 국내 대학 총장은 다 안다. 김병량 한대총장, 어윤대 고대총장, 신인령 이대총장, 정운찬 서울대총장, 정정길 울산대 총장 등과 친분이 두텁다. 서울대 출신인 정 총장과는 학창시절 총학생회장 신분으로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숙대는 건학 100주년을 맞아 이달 중순부터 리더십을 주제로 한 전국 대학총장 특강을 준비중이다.2020년까지 한국지도자의 10%를 길러 내겠다는 숙대의 꿈이 실현될 그날이 주목된다. ■ 이경숙 총장은 ▲1943년 3월 서울 출생 ▲1961년 경기여고 졸업 ▲1965년 숙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67년 숙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1년 미국 캔자스대 대학원 석사 ▲1975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대학원 박사학위(국제정치학 및 비교정치) ▲1976년 숙대 교수 ▲1981∼85년 제11대 국회의원(민정당) ▲1985∼89년 숙대 정법대학 학장 ▲1990∼94년 숙대 기획처장 ▲1994년 3월∼ 현재 숙대 총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정보화 부문) ▲2002년 한국능률협회 제34회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기타: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의자에 파묻혀 대본(臺本)을 읽다가 그걸 무릎위에 놓은 채 잠이 들었던 모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 천천히 눈을 뜨고 나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만진다. 극단 실험극장(實驗劇場) 사무실 안. 연극 대본을 읽다가 잠이 든 한 여배우의 잠과 잠 뒤의 화장은 보는 사람의 마을을 「센티멘털」하게 만들려고 하는 구석이 있다. 극본은 오태석(吳泰錫)작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김혜자(金惠子·28)는 이 연극에서 「히로인」 변이순역을 맡게된다. 극단 실험극장의 제20회 무대인 이 작품은 6월20일부터 24일까지 「드라마·센터」에서 공연. 김혜자는 최지숙(崔芝淑)과 더불어 이 땅 연극계에 있어서의 청춘의 「심벌」이자 가장 사랑받는 25대여배우중의 하나(老役을 많이 맡는 여운계(呂運計)의 연기력을 포함해서). 백성희(白星姬) 나옥주(羅玉珠)의 계보로 이어지는 1급의 배우의 「바통」계승을 착실히 닦고 있다. 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안한다기 보다도 천성으로 할 줄을 모르고 성실한 여자라는 것이 연극계의 일반적인 평인데 예컨데 누가 남의 욕을 하면서 『같이 욕하자』는 표정으로 金양을 쳐다보면 『전 몰라요』라는 말 밖에는 못한단다. 그게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역시 천성. 金양이 처음 무대에 선 것은 23세 되던 62년 민중극장(民衆劇場) 창립공연으로 올린 『달걀』(페르시앙·마르소作). 경기여고 선배인 권영주(權寧珠)씨의 권유로 무대에 섰다. 『해보라고 해서 그냥 했는데 해보니까 참 좋아서 그냥 계속했어요』 그러니까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굉장, 단단한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또는 절로 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담담하기 짝이 없다 못해 시들해 보이기 까지 하는 어투. 「민중」에서 『국물 있사옵니다』 『토끼와 포수』 『도적들의 무도회』등에 출연했고 자유극장(自由劇場)으로 옮겨 『따라지의 향연』 『피크닉 작전』 『神의 대리인』 『해녀 뭍에 오르다』등에 출연. 실험극장에 오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등에 출연하면서 그 재능을 평가 받았다. 그 동안 주역을 맡은 연극이 『피크닉 작전』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제일 애착이 가는 역은 『국물…』에서의 창부(현소희) 역인데 『왜 좋은지 모르지만』 역시 그냥 좋다. 『사할린스크…』의 「도시꼬」역도. 이번의 『유다여 닭이 울기전에』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서로 팔아 먹는 배신의 「드라마」이자 심층심리의 어떤 진실을 그린 것. 지금까지의 인습적인 연기「테크닉」과는 달리 가령「실망」같은 걸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발목의 관절이 딱 꺾인다거나 또는 뒤로 나가자빠지는 장면 등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낼지 걱정이라는 이야기. 어떻든 어색·딱딱이라는 때는 거의 완전히 벗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맑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보는 사람을 삼키기 시작한 김혜자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톤」을 보여주는 타고난 배우라는 느낌. 한편 KBS-TV 1기생으로 들어갔다가 TV출연을 4년간 쉬었고 다시 시작한 것이 재작년. 『무죄』 『탑』 『여고 동창생』 『2백50조』 『역류(逆流)』 『나는 참새올시다』 『잡았네요』 『아홉명이 찾는 여인』등에 출연. 현재는 『그림자』에 출연중이다. 김혜자는 부군 임종찬(林鍾璨·40)씨와의 사이에 1男을 둔 어머니. 『아빠는 밀어주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아요. 안하는 걸 속으로 바라고 있겠지만, 말해봤자 들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가만히 있겠죠 뭐. 집에서도 대본을 읽고 있으면 아이가 같이 놀자고 칭얼대요』 제2회 한국 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수상. 주량은 남들 말로는 맥주 1병이고 자신이 말한다면 1「컵」정도.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대성그룹 고 김수근 회장가(家)의 혼맥은 매우 단출하지만 3남3녀 모두 경영에 참여할 만큼 2세들의 대외 활동은 왕성하다. 무엇보다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딸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는 고 김 회장가(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다. 독실한 기독교 가풍이 남녀 평등으로, 정략결혼에 대한 거부감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또 통혼(通婚) 과정에서 ‘교회 인연’이 적지 않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며,2세들의 화려한 학벌도 이 집안의 자랑이다. 대성은 고 김 회장이 연탄사업을 기반으로 성장시킨 그룹이다. 한때는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기업으로 손꼽힐 만큼 재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초엔 국내 10대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었다. 그러나 연탄산업의 몰락과 이에 따른 변신이 늦어지면서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으며,2000∼2001년 사이엔 연이은 계열 분리로 그룹 규모가 더욱 줄었다. ●에너지 산증인 김수근 창업주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김수근 대성 창업주가 운명하기 며칠 전 병상으로 그룹 임·직원을 불러 남긴 필담 유언의 한 토막이다. 그의 기업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91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창업주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삼국석탄 대구지점에서 연탄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일본인만을 채용하는 원칙이 있어 취직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회사에서 입사를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여 취직한 뒤, 성실함과 정직으로 내부 업무는 물론 외판 업무도 맡았다. 당시 김 창업주는 일에 대한 집념과 노력 등으로 일본인으로부터 ‘가죽고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4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47년엔 “연료 대책이 시급하고, 더 이상 산림이 황폐화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대구 칠성동에서 연탄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했다. 김 창업주의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대성그룹이 보유한 경북 문경새재 주흘산 수백만평을 관광지역으로 개발하자는 권유가 많았었지만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연탄사업을 벌인 것은 황폐화하는 삼림을 보호하자는 뜻이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주흘산 입구엔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는 내용의 푯말이 있다. 또 김 창업주는 출장을 갔다 오면 영수증 한 장까지도 빠짐없이 챙기고, 경비가 남으면 회사에 고스란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외국 호텔 객실에서 쓰고 남은 일회용 비누를 “집에서 면도할 때 쓰면 좋겠다.”며 가방에 넣어 오기도 했다. 정치권 압력에도 초연했다고 한다. 대성이 정치적으로 스캔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창업주는 친구였던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의 정치헌금을 거절해 세무조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경영철학도 남달랐다. 그는 무엇보다 ‘번 만큼만 투자한다.’는 경영론을 일관되게 지켰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는 경영이 가능했다.“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그의 경영철학은 ‘대기만성’의 약자인 ‘대성’이라는 그룹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아들 3형제에게 ‘투명 경영’을 유훈으로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기업이 내 소유란 생각을 버려라. 또한 이사회를 사장의 들러리로 만들지 마라.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죄악이니 이익을 못낼 때는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써라. 국민의 사랑을 못 받을망정 지탄받는 기업은 되지 마라.” 이런 김 창업주의 철학은 대성을 남의 돈을 안 쓰는 튼실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조촐한 혼맥의 ‘교회 인연’ 김 창업주가(家)의 혼맥은 한때 내로라했던 재벌가(家)치고 매우 단출하다.2세들 가운데 중매 결혼이 적지 않았지만 정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방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영훈 회장은 이와 관련, “지인들을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덕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부친의 확고한 뜻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1942년 여귀옥(83)씨와 혼례를 치렀다. 이들의 인연은 대구 ‘남산교회’에서 맺어졌다. 김 창업주의 모친인 기묘임(작고) 여사와 여씨의 모친인 최성연(작고) 여사가 대구 남산교회의 신도였다. 그렇다고 결혼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 창업주는 당시 대구상고를 중퇴해 가족 생계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반면 여씨는 당시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하고, 평양여자신학교를 수료한 ‘신 여성’이었다. 또 여씨 집안은 대구에서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자, 명망가(家)였다. 그러나 여씨의 모친인 최 여사는 “내가 딸이 둘이면 하나는 부잣집에, 하나는 인격을 보고 하겠는데 단 하나밖에 없으니 인격을 보아야겠다.”면서 주변의 반대를 물리고 김 창업주를 사위로 맞았다고 했다. 김 창업주와 여씨는 슬하에 4남3녀를 뒀다. 이 가운데 4남 영철군이 73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장남 김영대(64) 회장은 모친의 친구 소개로 71년 법조인 차영조 변호사의 딸 정현(57)씨와 결혼했다. 정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김 회장 부부는 정한(34)-인한(33)-신한(31) 등 3형제를 두고 있다. 장남인 정한씨는 현재 대성산업 기계사업·해외자원개발부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97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대원외고 동창인 전성은(33)씨와 결혼했다. 성은씨의 부친인 전경호 서한모방 회장은 김 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기동창이다. 차남 인한씨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과 후배인 이내리(28)씨와 2002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막내 신한씨는 지난해 말 병역특례를 마치고, 현재 경영수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이다. 차남 김영민(61) SCG그룹 회장은 79년 친지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성악과)를 나온 민명옥(51)씨와 인연을 맺었다. 명옥씨의 부친은 전 유화증권 사장을 지낸 민유봉씨이다. 김 회장 부부는 은혜(26)-요한(24)-종한(17)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3남 김영훈 회장은 93년 박영창 목사의 소개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3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의한(12)-은진(9)-의진(6) 등이 있다. 장녀 김영주(58) 대성닷컴 부회장은 75년 서울대 의대 출신인 내과전문의 신현정(61)씨와 인연을 맺었다. 현정씨는 현재 도시가스서비스회사인 ㈜알파서비스를 경영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기업인이자 화가로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정희(30)-명철(29)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차녀 김정주(57) 대성닷컴 사장은 하버드대 신약학 박사 출신으로 연세대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독신이다.3녀 김성주(50) 성주인터내셔날 사장은 하버드 동창생인 딘 고달드와 결혼해 딸 지혜(17)씨를 두고 있다. 김 창업주의 동생인 김의근(작고) 회장가(家)와 김문근(작고) 회장가(家)도 정·관계와 그다지 인연이 없다. 굳이 꼽는다면 재계에서 중견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고 김의근 모토닉(옛 창원기화기공업) 회장은 양제선(81)씨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장남인 영준(작고)씨를 통해 대한모방 회장을 지낸 김성섭가(家)와 사돈지간이다.3남인 김영목(50) 모토닉 부사장은 산업은행 부총재를 지낸 홍대식의 딸 홍은주(43)씨를 배필로 맞았다. 차남인 김영봉(53) 모토닉 사장은 평범한 은행원의 딸인 김혜옥(46)씨와 혼례를 치렀다. 김문근(작고) 전 대성광업개발 회장은 김정희(작고)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영범-영돈-은주-영천-영석 등 4남1녀를 뒀다. 장남인 영범씨는 최근 대성광업개발 회장직에 올랐다. 형제 모두 대성광업개발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성그룹의 분가는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매출 2조원을 넘는 대성은 고 김 창업주 생전에 동생인 김의근 회장이 2000년 7월 대성정기와 창원기화기공업의 경영권을 갖고 가장 먼저 ‘대성의 품’을 떠났다. 김의근 회장은 사실상 김 창업주와 동업 관계였다. 그는 김 창업주가 47년 연탄사업을 시작할 때 석탄 생산을 맡았고, 김 창업주는 제조와 판매를 책임졌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김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김문근(작고) 회장이 대성광업개발을 맡아 분가했다. 대구공고 출신인 김문근 전 회장은 대한중석 등에서 일하다 1950년대에 대성에 합류했다. 김 창업주 사후인 2001년 6월엔 영대·영민·영훈 등 아들 3형제가 다시 2차 세포분열을 통해 분가했다. 장남 김영대 회장이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인 김영민 회장이 서울도시가스 계열을,3남인 김영훈 회장이 대구도시가스 계열을 각각 맡았다. 그러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있었다. 주식 평가를 놓고 형제간 잡음이 일면서 재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김영대 회장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8월엔 막내 김성주 사장이 이끄는 성주인터내셔날도 대성에서 떨어져 나갔다. 장남과 3남은 현재 ‘대성그룹´ 사명을 같이쓰고 있다. ●김영대 회장의 ‘인재론’ 김영대 회장은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사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잘 나서지 않고 매우 조용하다. 그는 또 학구파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월·수·금요일은 일본어, 화·목·토요일은 중국어를 공부한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안정과 보수로 대변된다. 이 때문에 간혹 김 회장 주변을 ‘경로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회장의 비서인 전성희(63) 이사는 국내 비서계의 대모다. 김 회장을 모신 지 28년째다. 그의 비서 입문은 우연이었다고 한다.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남편의 대학 친구였던 김 회장은 “미혼 비서를 뒀는데 모두 1년 정도하고 그만두더라. 어디 오래 근무할 아줌마 없느냐.”며 추천을 부탁했다. 결국 남편의 권유로 전 이사는 당시 세브란스 병원 약사모집 면접을 포기하고 대성에 들어가게 됐다. 전 이사는 이화여대 약대 출신이다. 김 회장의 운전기사인 정홍(64) 차량관리 과장도 40년 이상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환갑 기념 유럽여행을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상 신분을 넘어 지기(知己)인 셈이다. 또 대성 임직원들은 다른 그룹과 달리 60대 이상이 유난히 많다. 김 회장의 인재를 아끼는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샌님(?)같은 김 회장도 무서울 정도의 강한 집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90년대 초 씨티은행으로부터 5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가로챈 뒤 미국으로 도주한 직원을 직접 추적해 붙잡은 경험이 있다. 그가 쓴 ‘구름 속의 구만리’라는 추적기에서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당시 10개월 동안 출장 9차례, 미 체류기간 200일, 미대륙 종횡단 9000마일, 만난 사람만도 10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50억원의 돈도 돈이지만 회사의 신용과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그 직원을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고 했다. 더욱이 일개 직원에게 거액의 수표를 무책임하게 내준 은행측으로부터 음모론까지 흘러나오면서 ‘대추적’을 결심했다. 대성그룹은 현재 3세 경영이 닻을 올렸다. 장남인 김 상무가 2002년 연구개발실장으로 입사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대성 부활’ 노래하는 3남 김영훈 회장 김영훈 회장은 조용한 말소리와 차분한 몸가짐, 설득조의 언어 구사 등에서 CEO보다 목사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릴 적 꿈이 목사였다.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했으며, 영락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늦장가를 갈 정도로 공부에 푹 빠져 살았다. 그가 받은 학위만도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에 이어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하버드에서 신학과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다.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그는 늘 책과 씨름하는 것이 취미다. 김 회장은 1988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대성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경영의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경영인보다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지만 부친의 ‘SOS’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계열분리 이후 대구도시가스를 주력으로 경북도시가스와 바이넥스창업투자 등 1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당시 에너지사업 일변도에서 지금은 문화사업을 차세대 ‘먹을 거리’로 마련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그는 창립 60주년을 한 해 앞둔 올해 201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0억달러를 목표로 한 ’10·10·10’ 전략을 내놓았다. 옛 대성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김 회장의 야심찬 청사진이다. 2남 김영민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스포츠 마니아이며 유머러스하다.ROTC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역사 교관으로 근무했다. 경북사대부고와 미국 댈러스대, 남가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공주의 길’ 포기한 김성주 사장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별종’이다. 가문에서 그렇고, 사업에 있어서도 그렇다. 다른 형제들이 부모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반면 김 사장은 부모가 반대하는 일들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혹독한 고생을 경험했다. 송금이 끊겨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으며, 직장 생활도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사업에서도 ‘봉투’와 ‘접대’라는 그간의 사업 상식을 깨고 투명경영으로 남성 세계를 하나씩 깼다. 김 사장은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일군 여성 CEO가 드문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는 훗날 성주인터내셔날을 창업한 배경에 대해 “살찐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golders@seoul.co.kr ■ “우리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우리 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대성가(家)의 2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김영훈 회장은 대성의 차세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는 문화사업을 이른바 ‘효자 사업’이 아니라 ‘효녀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여성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성가(家)의 딸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 장녀 김영주 화백의 또다른 ‘명함’은 대성닷컴 부회장이며,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대성닷컴 사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자매가 최고경영자(CEO)직을 맡은 것은 문화사업에 여성 특유의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회장의 요청 때문. 김 부회장은 화가로서의 재능을 대성닷컴 출판사업에 톡톡히 쏟아내고 있다. 김 부회장이 책 표지 디자인을 혼자 다할 정도다. 김 사장은 그룹의 문화사업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김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오브 아트 대학원을 나왔다. 김 교수는 미시간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매는 모친에 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절제회’ 활동에도 열심이다.1983년부터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부회장을 번갈아가며 맡아오고 있을 정도다. 절제회는 종교를 초월해 각종 절제 운동을 펼치는 여성 단체. 국내에선 국산품 애용과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운동을 벌였고, 최근엔 금연 운동과 임산부와 청소년 음주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자매 가운데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성공한 여성 CEO로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 사장은 199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 세계여성지도자총회의 아시아 대표 연설자,2004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의 ‘주목할 만 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명’에 선정되는 등 글로벌 CEO으로서 명성이 매우 높다. golders@seoul.co.kr ■ 2세들 ‘화려한 학벌’ 고 김수근 회장가(家)는 재계에서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3남3녀 모두 명문대 출신으로 2개 이상의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다. 3남 김영훈 회장은 “모친 여귀옥 여사의 남다른 자식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과 절제 등을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모친은 ‘공부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으며, 제가 미국에 유학갈 때도 편안하게 ‘놀다 오라.’는 당부까지 하셨다.”면서 “그러나 우리 형제는 모친의 바른 생활과 이웃사랑 등을 보면서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여 여사는 임신 중엔 태교를 위해 잡지나 신문을 보지 않고, 오직 성경만 보고 지냈다고 한다. 또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했으며, 꾸지람보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했다. 대성가 2세들은 모두 대단한 학벌의 소유자이며,‘수석’을 곧잘 했다. 법학을 전공한 장남 김영대 회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차남 김영민 회장과 3남 김영훈 회장, 장녀 김영주 화백도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특히 김영훈 회장은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 석사 학위가 무려 4개다.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이화여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막내 김성주 사장은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앰허스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김영훈 회장은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 학업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낸 편은 아니었다.”면서 “특히 정주 누나는 중학교 때 반에서 40등까지 했지만 우리 형제 가운데 공부를 가장 잘 했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 아래 자녀를 키운 여 여사의 가르침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3세들도 부모 못지 않은 학구파다. 한편 여 여사는 결혼 후에도 영락교회 권사로서 활동했으며,52년에는 초교파적 기독교 여성단체인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를 설립했다. 현재 35개국이 가입해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인기 여자탤런트 신상백과

    인기 여자탤런트 신상백과

    ◇ 김난영(金蘭暎) 1943년 1월 16일 생. 군산여고, 서라벌예대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임자있었네』『그림자』『사람나고 돈났지』에 출연 중. <단골>「보그」미용실,「아미」의상실 <취미> 음악 (듣는 것만) <월수> 10만원 <신상> 무남독녀. KBS-TV에 들어가자마자「프로듀서」이남섭(36·『임자있었네』작·연출)씨와 결혼. 6살·2살 딸을 데리고 시집살이.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거느리는 맏며느리. 큰 살림살이라『돈 모을 새 없죠』 <소문> 한때 이혼설까지 번졌던 부부 사이가 원만해져 이제는 싸움 한번 않는 원앙부부가 됐다. 돌아오는 5월 2일(예정일)이면 셋째 아이가 탄생한다. 2주치를 당겨 녹화도 끝내놓고 분만 준비 중. ◇ 강부자(姜富子) 1941년 2월 8일 생. 충남대 국문과 졸업 <이력> KBS-TV 2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춘하추동』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트로아·조」의상실 <취미>「빌딩」을 지었다 허물었다에서 저녁거리 시장보기까지의 공상 <월수> 10만원 <신상> 4남 2녀 중 넷째. KBS-TV 동기생이었던 이묵원(32)씨와 4년 연애 끝에 결혼.『시거든…』에서는 부부가 출연 중. 남편은 말이 없고 착해서 사랑한단다. 돌 지난 아들이 하나. <소문> 그럴싸해서 그런지 시집살이를 기막히게 잘하고 있다는 소문인데 실은『친정어머니가 아기 때문에 같이 살아 주시는 딴 살림을 하고 있죠』 ◇ 안은숙(安恩淑) 1943년 6월 29일 생. 마산산(産), 마산여고, 성균관대학 영문과 졸업 <이력> TBC-TV 1기. 현재『124군 부대』『춘하추동』에 출연 중. TV「탤런트」의 이름에만 그치지 않고 연극, 영화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 얼굴. 본인은「스크린」이나 무대에서 제값을 하고 싶어하고. 아닌게 아니라 그런 야심을 보인다. <단골>「보그」미용실,「샤넬」의상실 <취미> 연극하는 것 <월수> 10만원 <신상> 3남 3녀 중 막내딸. 결혼할 마음이 아직은 안 잡혀 있단다. <소문> 땠는지 안땠는지는 몰라도 심심치 않게 굴뚝에 난 연기는 재벌 일색이었다. 따라서 남편감은『생활력이 강하고 지성있고 건실한 남성』을 원한다. ◇ 김민자(金敏子) 1943년 7월 27일 생. 서울산(産), 정신여고 졸업 <이력> KBS-TV 3기. 현재『팔판동 새아씨』『배덕자』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아미」의상실 <취미> 그림보기, 음악듣기 <월수> 10만원 <신상> 2남 3녀 중 셋째. 언니가 성우 김소원(金素媛)씨, 동생은「패션·살롱」「가야」를 정릉에서 경영. 형제 모두가 주체성이 강한 집안. <소문> 그간 약혼설이 파다하던 TV「탤런트」최불암씨와는 별 진전없이 동료로 지내는 사이. 결혼 말이 나오면 언제나『좋은 기회에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죠. 입에 맞는 떡이 있습니까』 ◇ 김혜자(金惠子) 1941년 10월 25일 생. 서울산(産), 경기여고, 이대 미대 중퇴 <이력> KBS-TV 1기. 현재『그림자』『여고 동창생』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이사벨라」의상실 <취미> 무취미, 책 읽기 정도 <월수> 8만원 <신상> 무남독녀. 회사 경영을 하는 임종찬(40)씨와 3년의 연애 끝에 대학 3년 재학시절에 결혼을 했다. 6살 난 아들이 하나.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 <소문> 나돌아 다니는 부인을 탐탁지 않아하는 남편과 아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서서히「탤런트」생활을 그만 둘 예비운동 중.『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만 둘 마음이 크죠』 ◇ 여운계(呂運計) 1940년 2월 25일 생. 고대 국문과 졸업 <이력> 64년부터 연극에 출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팔판동 새아씨』『124군 부대』에 출연 중. <단골>「로즈」미용실,「비너스」의상실 <취미> 배우 본명 알아보기, 남의 머리 빗기기,「패션」잡지 정독하기 <월수> 6만원 <신상> 3남 1녀 중 둘째. 대학 재학 시에 차상훈(31)씨와 열렬히 3년 연애. 결혼한 지 7년째. 6살 된 딸과 2살짜리 아들이 남편보다 중하단다. <소문>「유네스코」에 근무하는 남편이 10월에 불란서에 갈 예정이라 즐거운 준비를 서두르는 중. 양장점 주인이라는 소문은『15일간 양재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을 때 난 소문이겠죠』 ◇ 사미자(史美子) 1940년 5월 6일 생. 파주산(産), 이화여고 졸업 <이력> 동아방송 성우 1기. 연극 이력 6년, 실험극장 단원. 현재『화조』『124군 부대』『팔판동 새아씨』『배덕자』에 출연 중. <단골>「사다」미용실, 최윤정 의상실 <취미> 아들 딸과 집에서 노는 것 <월수> 10만원 <신상> KBS-TV 1기「탤런트」김관수(33)씨와 연애 결혼한 지 7년. 7살 딸이 하나, 5살 아들이 하나. 남편과는『화조』에서 공연 중. TBC-TV 편성부「프로듀서」사상아(史相兒)씨가 오빠. <소문> 갈현동에 집을 사서 이사간지 한 달이 채 못된다. 얼마 전부터는 영화출연 편수도 많아져 더욱 바빠졌다고. ◇ 정혜선(鄭惠先) 1942년 2월 21일 생. 수도여고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그림자』『사람나고 돈났지』『여고 동창생』『열풍지대』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보그」미용실,「노라노」의상실 <취미> 음식 만들기 <월수> 7만원 <신상> 무남독녀. KBS-TV 1기 동기생인 박병호(32)씨와 3년 연애를 계속, 결혼에「골인」했다. 6살 딸, 4살 된 아들이 있다. <소문> 요즈음 주로 영화 출연과 제작에 바쁜 남편과 더불어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차를 샀다. 곤색「코로나」(2-6356번).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부군 박병호씨의 영화제작을 함께 걱정하고 있다. ◇ 선우용녀(鮮于龍女) 본명 정용례(鄭龍禮), 1945년 8월 15일 생. 서울산(産), 상명여고, 서라벌예대 졸업 <이력> TBC-TV 1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춘하추동』『김유신』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 강숙희 의상실 <취미> 옷 만들기 <월수> 12만원 <신상> 3남 4녀 중 셋째. 아버지가 서울신문, 오빠가 동아일보에 근무 중. 남자와의「스캔들」운운에는 신물이 난다면서『결혼은 아주 안할래요』한때는 영화계에서도 각광을 받았지만 요즈음은 뜸하고 TV에만 주력하는 편. <소문>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張勳)씨와는 별 연락 없고 옆에「태우고 다녔다」로 소문났던 빨간색『퍼블리카』는 즉각 팔아 처분했다. ◇ 조영일(趙玲一) 본명 조희자(趙姬子), 1943년 8월 9일 생. 덕성여고, 중앙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이력> KBS-TV 1기. 현재『시거든 떫지나 말지』『김유신』에 출연 중. <단골>「센추리」미용실,「아미」의상실 <취미> 가리는 것 없이 마구 먹기 <월수>「세금도 면제된 주제」라는데 동료들이 옆에서 정말이라고 동정을 표한다. <신상> 4남 3녀 중 맏딸. KBS-TV「탤런트」전성기 시절 김현철(KBS-TV 교육계)씨와 연애 결혼. 4살 된 아들이 있었다. 지난해에 오지명(32)씨와의 염문으로 KBS-TV측으로부터 이 두 연인은 퇴거 처분을 받았다. <소문>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결합된 오지명씨와는 지난해 10월 2일 정식으로 결혼. 지금 임신 5개월.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CJ나인브릿지클래식] 바람의 제주…이지영 ‘바람’

    여걸들이 비바람 속에서 악전고투를 펼치는 동안 리더보드 꼭대기를 선점한 건 ‘여제’도 ‘버디퀸’도 아닌 스무살짜리 ‘루키’였다. 한국여자오픈 챔프 이지영(20·하이마트)이 28일 제주 나인브릿지골프장(파72·6306야드)에서 벌어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총상금 135만달러) 1라운드에서 ‘커리어 베스트’인 7언더파 65타의 불꽃샷을 터뜨리며 단독선두에 올랐다.4개홀 연속버디를 포함, 무려 9개의 버디를 뽑아내고 보기는 단 2개로 막아냈다. 10번홀에서 출발한 이지영은 초반 2개홀을 파세이브하며 차분히 돌풍을 준비했다.12번홀(파5)에서 서드샷을 핀 2m까지 바짝 붙인 이지영은 가볍게 첫 버디를 뽑아낸 뒤 15번홀(파4)까지 ‘버디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후 버디 2개를 더 보태 전반홀에서만 보기없이 6개타를 줄여 단숨에 선두로 나선 이지영은 후반 2∼3번홀에 연속보기로 주춤했지만 곧바로 만회한 뒤 마지막 9번홀(파5)마저 버디로 장식했다. 우승상금 20여만달러와 향후 2년간 LPGA 풀시드(전경기 출전권)의 꿈을 부풀린 ‘루키’는 이지영뿐만이 아니었다. 파브인비테이셔널 챔피언 박희영(18·이수건설)은 3언더파를 쳐 단독4위에 올랐고, 홍란(19·김영주골프)도 2언더파로 버텨 지난주 하이트컵에서 첫승을 일군 뒤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이선화(19·CJ)와 함께 공동5위에 올라 2라운드를 기약했다. 장정(25·5언더파)과 김미현(28·KTF·2언더파)이 각각 2위와 공동5위에 올랐을 뿐 해외파는 부진했다. 디펜딩 챔피언 박지은(26·나이키골프)은 버디와 보기를 번갈아가며 이븐파에도 못 미쳤고,‘동창생 챔프’ 이미나(4오버파)와 김주연(2오버파·이상 24)도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 시즌 첫승을 올린 강수연(29·강수연)은 버디는 한 개도 뽑아내지 못한 채 9오버파로 망가져 최하위에 머물렀다. 대회 첫승을 장담하던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보기 4개를 저지르고 버디는 1개에 그쳐 3오버파 75타로 한희원(27·휠라코리아)과 함께 공동39위에 그쳤다. 제주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곧 90회를 맞는 전국체육대회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잔치였다. 줄임말로 ‘체전’이라 부르게 된 언저리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던 시절의 개인보다도 국가 명예를 최고로 치던 잔영이 남아 있다. 군화발이 득세할 무렵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전후로 체육이 도색영화, 성(性)산업과 더불어 3S(Screen·Sports·Sex) 정책으로 국민들을 도취시키기도 했다. 스포츠에 매력이 숨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다 프로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등 격변기를 맞아 체전은 물론 아마추어 대회는 시들해져만 갔다. 어떤 이들은 전국체전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체전은 누구에게든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고향의 마을 어귀엔 아무개 아들이나 딸이 체전 대표로 뽑혔다느니, 무슨 메달을 땄다느니, 몇등을 했다느니 하는 빨간 글씨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이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전국체전이라고 해봐야 귓전으로 흘려 들을 정도로 더 싸늘해졌다. 하지만 역시 골목 골목에서는 ‘우리 동네 아무개, 우리 학교 아무개가 몇등을 먹었다.’는 식의 입소문이 환영 플래카드와 함께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신화의 도시’로 불리는 울산에서 제86회 전국체전이 펼쳐졌다.1792명이 뛴 서울시 선수단은 총점수로 순위를 가름하는 대회 방식에 따라 경기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2위로 돌아왔지만 금메달 숫자는 114개로 가장 많이 따왔다. 서울 체육을 보면 한국 스포츠가 보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스타들도 많이 몰린 곳이 바로 서울이다. 인구 1000만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스포츠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짝 들여다본다. ■ 장대높이뛰기 1인자 김유석 “내 아버지가 백만장자라 해도 내 삶은 장대 높이뛰기에 걸었다.” 세살 때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태평양을 건너갔던 한 꼬마가 어엿한 청년으로 되돌아와 체육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그 보물단지는 다름아닌 서울시 체육회 소속, 그것도 한국 스포츠에서 황무지라 할 육상 종목에 있다. 지난 8월초 시청에 입단했다. 더욱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민을 가거나 원정 출산까지 감행하는 게 한국의 요즈음 세태다. ●“날아가는 멋에 살죠.” 김유석(23). 서울시 육상단 선수로 뛰고 있는 그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자연을 이용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사람으로 불린다. 현재 장대 높이뛰기 최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흔히 버거운 살림살이에 쫓겨 아들 딸에게 책을 쥐어주기는 고사하고 운동으로 ‘계층 상승’을 겨냥하기 쉬운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 최소한 학업과 경제사정을 따지면 아쉬울 게 도무지 없는 편이라 그를 바라보는 체육계의 눈은 ‘기대 반, 부러움 반’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등학교도 미국의 5대 명문 사립재단인 디어필드 아카데미(Deerfield Academy)를 나왔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역시 명문 중에서도 명문인 UPEN(University of Pensylvania)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장대높이뛰기 종목을 육성하는 UCLA를 선택하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고집까지 보였다. 한국 육상을 말하자면 몇몇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낳은 마라톤 정도가 전부라 하겠기에 더욱 그렇다. 김씨는 전국체전을 다녀온 뒤 약간은 실망스러운 가운데 다음 기회를 벼르며 다시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올 4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MPSF(Mountain Pacific Sports Federation) 육상대회에서 5m61㎝로 한국 최고기록을 일궈낸 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대회 신기록에 머물고 말았다. 그가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세번째였다.2003년 5월 미국 PAC-10 선수권대회에서 세운 5m55㎝, 지난해 6월 전미 대학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 5m60㎝를 1㎝,5㎝씩 끌어올렸다. 지난 15일 남자 일반부에 출전,5m36㎝를 뛰어올랐다. 웬만한 이들 같으면 대회신만 해도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이 웨이 UCLA 2학년 때인 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줄곧 육상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실력에 못잖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금까지 20여년을 이국에서 지내오면서도 단 한번도 국적을 바꿔보지 않은 그의 가족들이다. 세 글자가 뚜렷한 이름도 마찬가지다.3년 전 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뛰어야 한다며 대한육상경기연맹에 아들 실력을 봐달라고 연락해온 데서도 알아볼 만하다. 이같은 사실을 보란 듯 증명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육상연맹 홍순모(46)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칠레에서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이 때 유석이를 처음 만났지요. 시드니올림픽을 치러낸 나라라는 거드름에 들뜬 오스트레일리아 육상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미개인’ 운운하며 놀려댔지 뭡니까.” 오징어에 고추장, 된장 등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란다. 그런데 김씨가 한발짝도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못쓴다며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 사과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으라고 해 항복(?)을 받아냈다고 홍 이사는 덧붙였다. 고교 때 동급생들 사이에 최고의 실력을 뽐내던 김씨는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선 뜻밖의 부진을 보였다. 대회참가 직전에 훈련하다가 봉이 부러지는 바람에 손목 부상을 입고도 끈질긴 투혼을 보였다는 대목은 그가 장대 높이뛰기라는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디어필드 아카데미 2학년에 올라가면서 뉴잉글랜드 사립고등학교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내리 3년간 챔피언이 되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수 아래였던 친구들이 요즈음 들어 (5m)70∼90㎝대까지 기록하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상태라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장래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라고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머잖아 해내고 만다.” “장대 높이뛰기에서만 경험하는 하늘을 나는 그 기분, 그 환희. 그보다 좋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저는 장대 높이뛰기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고교 동창생이기도 한 형이 의무학점인 스포츠 종목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 배우다 푹 빠지게 됐다. 형은 하버드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가로 주목받고 있는 반면, 성적이 더 뛰어나다던 동생은 아예 직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운동이냐, 전공을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을 때 “네 길을 걸어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들도 그의 가족이다. 선수이면서 학생회 임원, 학년 대표를 지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선수라 해서 수업이나 과제, 시험에서 예외일 수 없는 환경에서 한치도 모라람이 없는 재목이었다.191㎝ 84㎏의 건장한 한국청년은 외모도 빼어나 영화에 출연하고 모델 제의도 받은 적 있다. “더 좋은 대학교를 마다하고 운동을 한다고 덤볐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은 삶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는 UCLA보다 더 좋은 대학은 없다, 좌우명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행복 이상은 없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27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육상 대회에 차례로 나가며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장대높이뛰기 사절’인 셈이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크라이나의 부브카를 지도한 얼 벨 코치와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마이클 톨리 코치가 그를 주목해 단련시키고 있다는 점은 미래를 밝혀주는 사실이다. 독일인 매니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한국 출신의 월드스타 탄생을 예감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핏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언젠가 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육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모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운 정신과 스포츠맨으로 제1 덕목인 반듯하고 절제할 줄 아는 태도 때문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땀으로 일군 ‘스포츠 서울’ ‘아우 먼저, 형 먼저’ 하는 쌍둥이 메달리스트에서부터 방망이 든 프로배구 감독의 아들, 야구 감독의 핏줄을 이어받은 다이아몬드 유망주까지…. 수도 서울의 명예를 걸고 땀을 흘린 전국체전 선수단에는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도 서울시 여자축구단이었으니 “막판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라는 자부심에 들뜰 만하다. 이들 가운데 레슬링에 출전, 메달을 따낸 쌍둥이 형제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군에도 나란히 입대한 국군체육부대 김종대·종태(25)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10분 먼저 태어난 김종대가 형이다. 형제는 중랑중 1학년 때 나란히 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형은 이듬해 손을 뗐다. 두명 모두 운동을 시킬 수는 없다는 부모님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슬링을 잊지 못하던 차에 3학년 때 다시 매트에 올랐다. 이 때 생긴 공백 탓일까. 동생이 그레코로만 1위를 한 반면 형은 자유형 3위로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몸무게가 55㎏으로 같지만 서로 매트에서 다투는 일만은 피할 수밖에 없어 세부종목만 나눴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국군체육부대에 뽑힌 것만으로도 실력을 알아줄 만한데 당당하게 메달까지 따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차세대 황영조로 불리는 육상 꿈나무 전은회(17·배문고)는 남고부 5000m와 10㎞에서 우승해 장거리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전은회는 지난 5월 전국 고교대회 10㎞에서 29분 27초로 황영조(3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강원도 명륜고 시절인 89년 세운 기록 29분 31초를 4초나 앞당겼다. 이어 지난 6월엔 5000m 레이스에서도 허장규(22·삼성전자)가 갖고 있던 고교 최고기록 14분 17초 93을 12초나 앞당긴 14분 05초 44를 기록해 제2의 황영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교부 야구에서 우승한 신일고엔 왕년의 배구스타 아들이 눈길을 끌었다.2학년 강성호(16)군은 아버지 강만수(50) 전 현대캐피탈 감독의 뒤를 이어 중3 때까지 배구를 하다가 야구로 전향(?)한 사례다. 프로야구 LG트윈스 2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인식(52) 감독의 아들 김준(20·고려대 2년)군도 서울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이밖에 대학부 검도에서는 허동찬(21·성균관대 3년), 동진(19·성균관대 1년) 형제가 5명씩 겨룬 단체전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을 따내 ‘칼 솜씨’를 뽐냈다. 서울 대표팀은 신기록도 쏟아냈다. 한국신기록 42개 가운데 5개, 대회신기록 165개 가운데 28개를 낚았으니 체면을 구기지 않은 셈이다. 특히 4관왕에 오른 6명 가운데 수영의 박태환(16·경기고 1년)은 대회 마지막날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아 서울을 빛냈다. 여자축구 결승전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올해의 선수 후보에 뽑힌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을 앞세워 경남대교를 2대0으로 물리쳐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동작구청 씨름단 주현섭(27), 강남구청 체조단 박경아(19)와 최미선(25), 성북구청 펜싱팀 남현희(24) 등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선수들이 따낸 메달 28개도 색깔을 떠나 어려운 여건에서 건져낸 것들이어서 박수를 받을 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여고동창생 미나·주연 “유럽서 2승”

    “이제 우리는 유럽으로 간다.” 한달 새 미여자프로골프(LPGA)시즌 2승을 합작한 ‘여고 동창생’이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나란히 시즌 2승에 도전한다. 무대는 20일 밤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마스터스골프장(파72·6192야드)에서 개막하는 에비앙마스터스대회(총상금 250만달러). 메이저대회는 아니지만 상금 규모에선 US여자오픈(310만달러)에 이어 LPGA 두번째다. 대회측은 지난해부터 올시즌 지난 10일 현재까지 LPGA와 유럽여자골프(LET)에서 한 차례 이상 우승한 챔피언들을 비롯한 ‘거물’ 78명에게만 출전권을 부여했다. 컷오프가 없는 데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의 전초전이기 때문에 경쟁은 더없이 치열할 전망. 모두 10명이 출전하는 한국선수들 가운데 BMO캐나디언오픈에서 감격의 투어 첫 승을 올린 이미나(사진 왼쪽·24)와 US여자오픈의 ‘여왕’ 김주연(오른쪽·24·KTF)의 각오는 남다르다. 루키 시즌인 올해 세 차례의 ‘톱10’을 모두 2번의 준우승과 마수걸이 첫 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이미나는 본격적인 신인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33명의 신인 가운데 ‘0순위’는 고교를 갓 졸업한 폴라 크리머(19·미국). 그동안 루키 포인트 839점으로 독주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나가 캐나디언오픈 우승으로 포인트를 451점까지 끌어올려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미나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역전의 발판을 놓겠다는 다짐이다. 이미나와 청주 상당고 동기생인 김주연도 시즌 2승에 욕심을 내는 건 마찬가지.US여자오픈 우승 이후 출전한 2개 대회에서 공동30위 안팎의 신통치 않은 성적을 냈다.‘운좋게 우승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한편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2주간의 휴식을 마치고 시즌 7번째 우승 사냥을 위해 에비앙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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