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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2>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납치돼 형제원으로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2>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납치돼 형제원으로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집 앞에서 놀던 꼬마, 누나와 함께 납치돼 형지복지원으로수용번호 ‘83-1XXX’ 하태식(48·가명)씨는 형제복지원에 두 번 입소했다. 10살 때 누나와 함께 트럭을 탄 남자들에게 납치돼 형제복지원으로 처음 보내졌다. 3년간 수용생활을 하다가 1986년 여름, 경비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아동소대 친구와 함께 담을 넘어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 경찰 손에 이끌려 다시 형제복지원로 가게 됐다. 이듬해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하씨는 아동소대, 작업소대, 악대소대를 옮겨다녔다. 기합과 매질은 일상이었지만, 도망쳤다 다시 붙잡혀 왔을 때 가해진 폭력은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중대장에게 불려가 맞고, 소대장에게 불려가 다시 맞았다. 하씨와 같은 날 재입소한 30대 수용자는 집단 구타 끝에 목숨을 잃었다. 하씨는 퉁퉁 부은 몸으로 소대장이 동료의 시신을 옮기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유년 시절 4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겪은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두렵고 세상을 향한 원망은 커져만 갔다. 퇴소 후 앵벌이, 신문팔이, 봉제공장을 전전하며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다. 지금은 물류센터에서 주 50시간씩 일한다. 자신을 ‘밑바닥 삶’이라고 표현하는 하씨는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아 그간의 삶을 위로받고 싶다. 아래는 하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하태식 진술 내용: 저는 하태식입니다. 1983년 5월 어느날 저녁 부산시 가야동 육교 아래에서 친누나와 놀고 있을 때 트럭에서 건장한 아저씨들이 다가와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묻기에 제가 놀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집에 태워준다면서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1.5톤 트럭 짐칸에 탔는데 냉동 탑차 같은 형태였고 밖에서 문을 잠글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저 멀리 있던 누나가 “왜 이러세요”라고 하면서 급히 저를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은 누나까지 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고 누나가 항의했지만 무지막지한 욕설을 하면서 집에 보내 줄테니까 가만 있으라면서 윽박 질렀습니다. 한 10분 흘렀을까 어느 철문 앞에 섰고 내리고 보니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83-1XXX번 제 수용번호 였습니다. 다음날 저를 데리고 간 곳은 많은 2층 건물들이 아래에서 위로 줄지어 있었는데, 그중 27소대라는 2층 건물의 1층이었습니다. 그때 누나는 23소대로 끌려갔고 제가 누나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27소대 소대장이 신고있던 고무신을 벗더니 그 고무신으로 “뺀돌뺀돌하게 생겼네”라고 하면서 제 뺨을 힘껏 내려쳤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제서야 제가 지옥에 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기억에 형제원은 약 3000명의 인원이 수용되어 있었고, 총 28소대까지 있는데 1소대부터 20소대 까지는 성인소대 23소대는 유아부터 십대 초반까지의 여자 아동소대, 24소대는 십대 초반의 남자 아동소대, 25·26소대는 여자 성인소대, 그리고 27·28소대는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남자 아동소대였습니다. 한 소대에 약 60~70명이 있었는데 군대 체제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소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소대장, 그 밑에 분대장, 서무가 있었고 28개 소대를 총괄하는 사람은 중대장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생활은 기합과 빠따로 시작하고 끝났습니다. 제식훈련과 군가를 배웠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무수한 폭행에 시달렸으며 소대장 기분에 따라 아무 이유없이 폭행 당하는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소대장이 저를 찾았는데 약간 늦었다는 이유로 제 배를 걷어찼습니다. 저는 넘어지면서 제 얼굴이 철제 2층 침대 아래 모서리에 부딪첬는데 오른쪽 눈가 옆이 찢어져 중대장 사무실이 있는 선도부와 식당 사이에 있는 의무실에서 눈옆을 열바늘 가량 꿰맸습니다. 그 상처가 아직도 제 얼굴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욕설과 구타 당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아도 늘 일상적인 일이었고 당연한 일인줄 알았습니다. 84년에는 형제원 자체 내에 학교가 세워졌는데 당시 저는 12살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다녔습니다. 3·4학년은 27소대, 5·6학년은 28소대 였는데 저는 1년이 지나 다음해 5학년이 되면서 28소대로 갔습니다. 개눈깔 소대장, 매일 원산폭격·한강철교·히로시마 고문 28소대 소대장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원산폭격·한강철교 등 다양한 기합이 있었는데 그중 ‘히로시마’라는 기합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2단 철제 침대에 거꾸로 물구나무 서서 발가락 끝을 철제에 걸고 두손은 바닥을 짚고 있는 것입니다. 10분~20분 기합받고 있으면 힘이 빠져 넘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소대장에게 엄청난 구타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단체기합을 받거나 낮에 기합을 받으면 한시간 정도 지나면 기합을 끝내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1~2명이 개인기합을 받을때가 있습니다. 이때 소대장은 제게 기합을 주고 자기는 침대에서 쉬다가 잠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끝없이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너무 힘들어 견딜수 없을 때면 저는 고육책으로 제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수없이 내려쳤습니다. 그럼 코피가 났고 제가 큰소리로 울면 그제서야 잠에서 깬 소대장이 기합을 끝냈습니다.그 소대장 이름은 전OO이었고 한쪽 눈에 가짜 눈알을 박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사람을 ‘개눈깔’이라 불렀습니다. 욕설과 구타, 교회당 공사 같은 수많은 작업 등등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일일이 다 진술할 수 있을지 난감합니다. 1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렉스 박사가 오는 날입니다. 형제원의 어린 원생들은 외국의 독지가들과 자매결연 같은 것을 맺었고, 저를 포함한 어린이들을 찍은 사진과 자필 편지 등을 써서 미국으로 보내면 그쪽에서 각각 양부모로 결연을 맺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인데요. 제 기억에 렉스 박사는 그 대표였고 1년에 한번 형제원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렉스 박사가 오는 날 아동소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지급받아서 입고, 형제복지원 입구에서 렉스 박사를 환영했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새 옷은 모두 반납해야 했고, 다시금 누더기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래도 맛난 과자를 먹을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결연을 하면 주기적으로 편지와 카드를 손글씨, 그림으로 보내는데 86년 여름에 몇천장의 그림카드가 필요해 원내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저와 정기훈(가명), 또다른 형, 셋이 뽑혀 병동 밑에 어느 밀실에서 셋이서 카드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를 뽑은 사람은 유OO씨로 수용자가 아닌 사회인이었는데 형제복지원 교회에 유년부 선생으로 일하고 있었고 중대장과 결혼했습니다. 중대장 부인의 위치에 있기에 우리는 병동 아래에 있는 어느 실내에서 맛있는 간식도 먹고, 다른 원생들과 다르게 수백장의 그림을 그리면서 편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병동과 식당, 아동소대 가운데에는 작은 운동장이 하나 있는데 그 운동장 위 한쪽에 개금분교가 자리 했습니다. 그 주위로 하얀 담벼락이 둘러져 있었고 담 주위는 온통 산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모든 담벼락 위엔 항상 경비가 몽둥이를 들고 촘촘히 지키고 있었는데 물론 그 경비들도 소대장들과 마찬가지로 수용자였습니다. 개금분교 2층에 있는 교무실 위와 담벼락 위의 사이는 약 2미터 정도였는데 형제원에서 유일하게 담벼락과 가까이 있는 건물이었고 평소에 그곳은 항상 경비들이 보초를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훈과 그림을 그리다 잠시 쉬러 나와 운동장에 앉아 있었는데 담벼락 위에 아무리 살펴봐도 경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같은 반 친구인 김OO과 정기훈, 저 이렇게 셋이 있었는데 누군가 “저 교무실 건물타고 올라가 도망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고 다들 좋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정기훈이 먼저 1층 창문 창살을 타고 정말로 건물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김OO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도 얼떨결에 정기훈을 따라 창살을 타고 1층에서 2층, 2층에서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김OO은 겁을 먹고 아래서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교무실 옥상과 담벼락 사이는 2m 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정기훈이 먼저 뛰어넘었고, 저도 떨어지면 죽을수도 있겠다 싶어 두려웠지만 곧 뒤따랐습니다. 처음엔 장난 반 진심 반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현실이 돼버린 것이었습니다. 진짜로 마음먹고 계획을 짰으면 후환이 두려워 절대 불가능했을 그 일이 무엇에 홀린듯 실제 상황이 돼버린 것입니다. 목숨 걸고 탈출했지만…경찰은 다시 지옥으로 끌고갔다 간신히 담을 넘고서는 죽어라 달렸습니다. 앞에서 정기훈은 제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라 하면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렸는데 눈앞에 큰 철조망이 산 전체에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철조망을 넘고나서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구나”라며 정기훈과 저는 기쁨에 들떠있을 찰나 저쪽에서 군인둘이 총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형제원 철조망 밖은 바로 군부대였습니다. 군인들에게 잡혀 사색이 된 우리는 그곳의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졌는데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절대 형제원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 사정했고 다행히도 그 분은 형제원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회로 나온 때가 1986년 7월 여름이었습니다. 갈 곳이 없고 막막했던 정기훈과 저는 신문팔이를 했습니다. 부산 양정4동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13~18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10여명 함께 지내며 한국일보를 길거리와 버스 안에서 팔았습니다. 신문 배달이 아닌 판매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버스 안에서 신문을 팔면 당가나 찌라시를 돌리곤 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항상 대선소주나 진로소주를 한 병 가득 꼴깍꼴깍 마시고 버스를 탔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신문사 소장님이 양정에 있는 BBS 학교에 보내준다고 해 숙식제공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해 11월 아침에 갑자기 순경 몇 명이 자고 있던 방에 들이닥처서 저희를 양정4동 파출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저와 정기훈, 그리고 2명 더 총 4명이 자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모여 산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저희 4명을 조사하더니 조금 있다 승용차에 태웠습니다. “어디 갈 곳이 있다”며 저희를 태웠는데 처음엔 얘기를 안하더니 한참을 달린 후 차안에서 형제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완강히 저항했지만 양정에서 형제원이 있는 주례는 차로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고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형제원에서 도망 나왔기에 다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명했던 것입니다. 저는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망설였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형제원에 점점 가까워 졌을 때 울며 불며 순경에게 사정했으나 소용 없었습니다. 결국 4개월 만에 다시 형제원에 잡혀 들어갔는데 정기훈과 저는 중대장 사무실에서 빠따를 수없이 맞고 또다른 곳에서 소대장들에게 죽도록 맞았습니다. 우리는 “나는 도망갔다 잡혀 왔습니다”라는 빨간 글씨가 적힌 마대자루를 입고 식당 앞에 온종일 서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몇백명씩 소대별로 줄서서 기다렸는데 한두시간씩 입구 앞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볼 수밖에 없었고 마치 북한에서 인민재판 하는거랑 비슷했습니다. 그때 우리 말고 20살 정도 되는 형도 도망갔다 잡혀왔는데 그 형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맞았습니다. 1차로 중대장에게, 2차로 소대장들에게 맞았는데 그 형은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다구리(*뭇매를 뜻하는 은어)를 당했습니다. 그 후 우리 셋은 작업소대인 14소대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작업을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고 저와 정기훈과 그 형은 거기서도 폭행을 당했습니다. 얼마 동안 14소대 안의 침대에 온몸이 부어서 누워 있었는데 잠시 후 소대장이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우리는 간신히 일어났지만 옆 침대 위에 누워있던 그 형은 미동이 없었습니다. 소대장 지시에 따라 제가 흔들어 깨웠는데 자세히 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소대장과 다른 일행들이 당황하면서 그 시체를 메고 어디론가 갔습니다.그 후 저는 13소대라는 음악소대로 보내졌습니다. 그당시 제 머릿속에 머물던 생각은 ‘다시 잡혀올 때 순경 2명과 함께 타고 있던 승용차에서 차문을 열고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얼마나 한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 승용차는 경찰차 처럼 안에서 열어도 열리지 않고 운전석에서 뭔가 작동해야만 열린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납치, 또 한번은 파출소 순경에 의해 형제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왜 기어코 저를 형제원에 보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형제복지원이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저를 위해 그 지옥에 보냈던 것일까요? 10살 때부터 근 4년의 형제원 생활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먹고 살기 위해 앵벌이, 껌팔이, 신문팔이, 사탕공장, 봉제공장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가까스로 버텨 나갔습니다. 형제원에서 함께 지낸 수용자 중에 사회에서 만나 함께 신문 팔며 생활해온 박OO 형이 있었는데 결혼도 하고 애도 있었는데도 형제원에서의 트라우마와 생활고로 비관하다 결국 자살했습니다. 저 또한 살아만 있을뿐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배운 것 가진 것 하나없이 사회 밑바닥 삶을 살면서 항상 피해의식과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늘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초라하다는 생각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만은 저를 부정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날 형제원에서 겪은 피해와 제 비참한 삶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부산에서 형제원 근처에 살았던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아직까지는 형제원 출신 피해자 중에 사람답게 번듯하게 사는 사람을 본적 없습니다. 늘 그렇듯이 힘 있는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힘 없는 피해자들은 소외된 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당연한 것입니까? 무법천지와도 같았던 지난날 국가와 개인이 행했던 잘못을 청산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배상함으로써 말끔히 해결해주는 것이 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높으신 분들의 당연한 의무라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물류센터에서 하루 10시간씩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 걱정에 허덕이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이나 단란한 가정, 좋은 직장은 제게 꿈같은 일일 뿐입니다. 34년 전에 형제원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번에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동안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맘껏 해보면서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온 제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두서 없는 글 이만 맺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서울포토] “은퇴하려다 복귀했어요” 밝은 미소의 미셸 위

    [서울포토] “은퇴하려다 복귀했어요” 밝은 미소의 미셸 위

    한국계 골프선수 미셸 위 웨스트가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올림픽클럽 레이크코스에서 열린 제76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한편 사실상 은퇴 직전이었던 미셸 위 웨스트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복귀한 것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성희롱성 발언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월 줄리아니 전 시장이 출연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지난 2014년 위 웨스트와 함께 프로암 행사에 참여했던 일을 회고하면서 “미셸 위는 외모가 매우 훌륭했는데 퍼트할 때 워낙 허리를 굽혀서 사진사들이 팬티를 찍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AP·AFP 연합뉴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80년대 ‘오싱’의 작가 하시다 별세 두 달 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80년대 ‘오싱’의 작가 하시다 별세 두 달 뒤

    1980년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일본 TV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가 지난 4월 4일 시즈오카현의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영국 BBC가 K드라마나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열광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알 리가 없는 드라마인데 세계 각국의 많은 이들이 향수에 젖은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고 4일 소개하면서였다.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귀국해 오사카에서 자라났다. 일본여자대 국어과 졸업 후 와세다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가 연극에 매료돼 예술과로 전과했다. 1949년 쇼치쿠 영화사에 첫 여성 각본가로 입사한 뒤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NHK의 대하드라마 여자 태합기(1981년), 생명(1986년), 가스가노쓰보네(1989년), 오싱(1983~1984년)을, TBS 드라마 세상살이 원수천지(1990년)를 썼다. 특히 1900년대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여성이 역경을 딛고 슈퍼마켓 체인점 총수로 성공하는 일대기를 그린 오싱은 일본에서 최고 시청률 62.9%를 기록했고, 세계 68개국에 수출됐다. 국내에서도 1985년 아역스타 김민희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2017년 ‘안락사로 죽게 해주세요’란 제목의 책을 내며 초고령 일본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책에서 그는 장례식, 친구, 부모, 남편, 연애, 자식, 친척, 후회, 일, 출세욕 등 10가지를 버리겠다고 선언했다.스리랑카의 한 팬은 어릴적 엄마 무릎에 앉아 머리를 빚으며 오싱을 보던 따듯한 기억을 트윗으로 남겼다. 반일 감정이 들끓는 중국의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정말 감동적이었다. 오늘도 난 주제곡 가락을 흥얼거릴 수 있다”고 적었다. 대만에서도 그녀의 죽음을 긴급 속보로 다룬 매체가 있었다. 일간 차이나 타임스는 고인을 “국보”라고 표현했다. 이 드라마는 1983년 4월에 첫 전파를 탔는데 전형적인 아사도라(아침 드라마)였다. 가정주부들을 타깃으로 여성 가장이 집안을 이끄는 내용들이 아사도라의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전 연령층에 고루 사랑 받았다. 당시 일본은 활황이어서 “거품 경제”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한 언론인은 “휘황하고, 모든 것이 풍족해 넘쳐나는 세태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묵직한 메인코스 요리에 앞서 균형을 맞춰주는 그린 샐러드 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학 엘파소 캠퍼스의 신문방송학과 아빈드 싱할 교수는 “사랑과 희생, 참을성과 용서” 같은 보편적 가치 때문에 세계로 수출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홍콩의 70대 팬 웡은 어릴 적 오싱은 쌀 한 봉지와 맞바꾸는 신세였고, 2차 세계대전에 아들을 잃고, 남편마저 극단을 선택했지만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면서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라도 용기를 내면 이겨낼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고 했다. 특히 하시다는 여성끼리의 미묘한 감정의 선을 잘 그려냈는데 2018년 인터뷰를 통해 늘 부대꼈던 며느리와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자신의 직장 생활도 잘 녹여냈다. 그녀는 종전 후 영화사 각본가로 취업했는데 상사들은 비서로 전업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았고 결국 작가로 성공했다.베트남부터 남미 페루까지 ‘오싱드롬’이 뻗쳤다. 태국 내각회의 일정을 이 드라마 때문에 조정했다는 얘기가 보도됐다. 방콕의 한 일간지에 그 주의 드라마 시놉시스를 실었더니 판매부수가 70% 늘었다. 홍콩에는 일본 과자 판매점 체인 ‘오싱 하우스’가 759개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광둥어로 번역된 드라마 주제곡 가사 중 “카르마(업보)는 너의 적이다. 결코 포기하지 마”는 지금도 홍콩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구다. 드라마에는 주인공의 성을 딴 타나쿠라 시장이 등장하는데 이란에는 같은 이름의 중고용품 시장이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는 청소부들과 유모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오싱 동네”라고 하는데 주인공의 첫 직업이 가정부였기 때문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드라마가 굉장한 역할을 했다고 돌아본다. 싱가포르의 40대 후반 여성 킷 오는 어머니와 함께 시청했지만 일본과 전쟁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지녔던 할머니는 한사코 보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반일 감정 같은 것은 없다. 오싱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 쇼는 일본을 덜 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40년이 흘렀지만 홍콩인 웡은 영혼을 깨우는 얘기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감동적이라며 민주화 시위에다 팬데믹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는 이 도시에 드라마의 교훈은 여전히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도 오싱을 기억하고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당당히 마주하라. 해결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는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성추행 피해 후 숨진 전직 공무원... 사과 요청하자 “증거 있냐”

    성추행 피해 후 숨진 전직 공무원... 사과 요청하자 “증거 있냐”

    인터넷 커뮤니티 통해 피해 호소“팀 회식날 ‘총애한다’며 손 잡기 시작”“몇 번 도망가도 ‘탄탄대로 걷게 해주겠다’”이후 가해자와의 업무 분리 등 안 이뤄져사과 요청하자 “증거 있냐”, “너를 아꼈다” 최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직 공무원이 4년 전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을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사실을 토로하며 2차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숨진 피해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30대 여성 A씨는 지난 2017년 11월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A씨는 “팀 전체 회식 날 좋은 일식집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됐고 과장님도 격려 차원에서 참석했다”며 “2차로 노래방에 갔을 때 과장님이 손을 꼭 부여잡고 ‘너를 총애하는 거 알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몸을 빼려고 하니 더 밀착하면서 ‘널 볼 때마다 집사람 생각이 난다’며 허벅지 등을 만지기 시작했다”며 “몇 번 도망갔는데도 따라와서 볼을 부비며 ‘오빠가 인사 잘 봐 줄게’라거나 ‘너 탄탄대로 걷게 해 준다’며 ×× 여자 끌어안듯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날 A씨는 상사에게 사과를 요청했지만, 기관장이 ‘증거가 있느냐’거나 ‘과장이 너를 아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등 내부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경찰 고소를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해당 커뮤니티에 A씨가 남긴 약 10개의 관련 글에는 가해자와의 업무 분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직장 내 2차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그 여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확인 안 되고 사무실 출근도 안 하고 전과 16범이라네요. 과장님 좋은 분인데 맘고생으로 살이 쪽 빠졌대요’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캡처를 올리며 자신에 대한 음해성 소문이 돌고 있다고 토로했다. 1년 뒤 A씨가 ‘성범죄 피해자로서 남기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쓴 게시글에는 “직장에 복귀하는 건 사실상 포기했으며 주위 사람은 절 떠났고 사람들로부터 ‘네가 똑바로 처신 못 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상사의 완강한 부인 끝에 거짓말 탐지기까지 받고 나서야 기소됐고 그는 아직도 어깨만 쓰다듬으면서 격려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갔어야 하나 자책한 적도 많고 자살 충동은 수도 없이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지난달 31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직 세무서 공무원인 A씨는 2017년 9월 부서 회식을 하던 중 상사인 B씨로부터 추행 피해를 본 뒤 직장을 그만뒀으며 우울증과 심리적 불안감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당시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상사 B씨를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앙투카 코트, 권순우 vs 페더러 맞대결은 성사될까

    앙투카 코트, 권순우 vs 페더러 맞대결은 성사될까

    남자 테니스 ‘빅3’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와 라파엘 나달(3위·스페인), 로저 페더러(8위·스위스)가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 단식 32강이 겨루는 3회전에 진출했다.조코비치는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2회전에서 파블로 쿠에바스(92위·우루과이)를 3-0(6-3 6-2 6-4)으로 완파했다. 경기 시작 2시간 6분 만에 3회전 진출을 확정한 조코비치는 3회전에서 리카르다스 베란키스(93위·리투아니아)를 상대한다. 이 대회 5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나달도 리샤르 가스케(53위·프랑스)를 3-0(6-0 7-5 6-2)으로 가볍게 돌려세웠다. 역대 상대 전적에서도 17전 전승의 절대 우위를 이어갔다. 나달의 다음 상대는 캐머런 노리(45위·영국)다. 페더러는 조코비치, 나달보다는 비교적 접전 끝에 2회전에서 승리했다. 마린 칠리치(47위·크로아티아)를 상대로 3-1(6-2 2-6 7-6<7-4> 6-2)승을 거두고 32강에 합류했다. 페더러는 도미니크 쾨퍼(59위·독일)를 상대로 16강 진출을 다툰다.페더러는 또 이날 승리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통산 364승을 달성하며 이 부문 1위도 질주하고 있다. 그가 16강에 오르면 마테오 베레티니(9위·이탈리아)-권순우(91위·당진시청) 경기 승자와 만나게 돼 경기 결과에 따라 권순우와 맞대결이 성사될 수도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조코비치와 나달, 페더러 가운데 한 명만 결승에 오를 수 있다. 대진표상 이들 세 명이 계속 이겨나갈 경우 조코비치와 페더러가 8강에서 만나고, 그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가 나달과 준결승을 치른다. 여자 단식에서는 지난해 우승자 이가 시비옹테크(9위·폴란드)가 레베카 페테르손(60위·스웨덴)을 2-0(6-1 6-1)으로 제압하고 3회전에 올랐다. 시비옹테크는 아넷 콘타베이트(31위·에스토니아)와 32강전을 치른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은퇴 앞둔 미셸 위 LPGA 복귀 결심은 줄리아니 성희롱 발언 때문

    은퇴 앞둔 미셸 위 LPGA 복귀 결심은 줄리아니 성희롱 발언 때문

    ‘분노’ 미셸 위 “복귀하면 발언 기회 얻으리라 생각” 사실상 은퇴 직전이었던 한국계 골프선수 미셸 위 웨스트(31)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복귀한 배경에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출산 후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위 웨스트가 줄리아니 전 시장의 성희롱성 발언에 분노해 복귀를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월 줄리아니 전 시장이 출연한 인터넷 방송에서 나왔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지난 2014년 위 웨스트와 함께 프로암 행사에 참여했던 일을 회고하면서 “미셸 위는 외모가 매우 훌륭했는데 퍼트할 때 워낙 허리를 굽혀서 사진사들이 팬티를 찍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됐고, 당사자인 위 웨스트도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위 웨스트는 줄리아니 전 시장의 발언 직후 트위터를 통해 “내 앞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경기력을 칭찬하던 사람이 뒤에서는 ‘팬티’ 운운하며 나를 (성적) 대상화했다니 몸서리가 쳐진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위 웨스트는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임원인 남편으로부터 절제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성희롱성 발언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감정이 과다하게 담긴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것이다.동시에 위 웨스트는 자신이 현역 복귀하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10대 골프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던 시절에는 몰랐던, 여성 운동선수에 대한 불평등과 무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달 하순 첫돌을 맞는 자신의 딸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에서 자라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여성 골퍼인 위 웨스트를 향한 성희롱성 발언이 LPGA 복귀의 동기이자 자극제가 된 셈이다. 다만 위 웨스트는 지난 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컷 탈락하는 등 전성기 때의 실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이날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막하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 출전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유타주 교통사고 일으킨 아홉 살 소녀 “여동생과 바다 수영하려고”

    유타주 교통사고 일으킨 아홉 살 소녀 “여동생과 바다 수영하려고”

    미국 유타주 경찰이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아침 추돌 사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깜짝 놀랐다. 당시 사진을 보면 가운데 빨강색 승용차가 오른쪽 흰색 승용차를 들이받은 뒤 왼쪽 세미 트레일러 로리와 정면 충돌했는데 빨강색 승용차 운전석에 아홉 살 소녀가, 조수석에는 네 살 여동생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둘 다 안전 벨트를 매고 있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두 소녀는 어이없게도 “바다에 헤엄치러 가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유타주는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주다. 유타주 웨스트 밸리 시티 경찰서에 따르면 자매는 이날 새벽 3시쯤 웨스트 조단 집에서 깨어 일어나 잠에 빠져 있는 부모의 셰비 말리부 승용차 키를 들고 나왔다. 봉쇄된 유타를 벗어나 캘리포니아주 해변으로 가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는것이다. 적어도 10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다. 아홉 살 소녀가 운전대를 잡은 차는 약 16㎞ 정도를 달리다 사고를 냈다. 먼저 흰색 승용차를 추돌하는 장면을 목격한 로리 운전자가 차를 멈춰세우고 경찰에 신고하는 중에 충돌한 것이라 그 역시 많이 다치지 않았다. 한 경찰관의 보디 캠에 녹화된 동영상을 보면 경관 중의 한 명이 “미치겠네! 여자애가 운전한 거야?”라고 묻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부모는 경찰이 연락해 사고 내용을 전달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스콧 리스트 형사는 전했다. “부모들이 겁에 질리고 많이 충격을 받았다.” 일년 전 이맘 때에도 유타주에서는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섯 살 소년이 가족의 차를 몰래 갖고 나와 운전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애의 변명이 기가 막혔다. 엄마한테 슈퍼카 람보르기니를 사달라고 했는데 거절 당하자 화가 나 직접 사러 가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다섯달된 아들 둔 남성, 가정폭력으로 경찰 추격받자

    다섯달된 아들 둔 남성, 가정폭력으로 경찰 추격받자

    한 미국 남성이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폭행했다가 경찰의 추격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인스타그램으로 생중계해 충격을 주고 있다. 앤젤 에르난데스 그라도(28)가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는 동영상은 삭제됐지만 경찰의 추격을 받자 눈물을 흘리며 친구들과 통화하거나 음악을 듣는 영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대부분 아들과 차 사진으로 채워져있다. 산디에고 트리뷴은 지난 26일 그라도가 경찰의 추격을 받자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그라도의 여자친구이자 다섯달 된 아들을 둔 여성에 대한 폭행 피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라도의 여자친구(25)는 자신이 이틀 동안이나 아파트에 감금당했으며, 남자친구로부터 도끼로 맞았다고 호소했다. 그라도는 여자친구가 아파트를 떠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으나 폭행 피해 여성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그라도가 사랑하는 아들을 낳은 여자친구를 심하게 폭행한 것은 불륜을 의심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오전 1시 30분쯤 그라도의 차를 찾아냈고, 수시간 동안 산디에고 경찰과 고속도로 순찰대는 그를 추격했다. 경찰은 수차례 그라도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그는 경찰에게 전화로 자신이 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라도는 오전 6시 30분쯤 두 대의 무장차량을 비롯해 수십대의 경찰차가 에워싸자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경찰은 곧 그를 오렌지 카운티 병원으로 옮겼고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그라도가 인스타그램에 마지막으로 올린 사진은 사망 당일 다섯달 된 아들을 자신의 BMW 차량 앞에서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아들에 대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며 “그는 나의 전부이고, 너무 잘생겼으며 완벽하다”고 말했다. 그라도의 여자친구 역시 갈비뼈가 여러대 부러지고 온 몸에 멍이 들어 병원에 입원 중이다. 현지 언론은 경찰의 추격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문의 중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계명문화대 강민경, 대한볼링협회장배 여대부 개인전 우승

    계명문화대 강민경, 대한볼링협회장배 여대부 개인전 우승

    계명문화대 강민경(생활체육학부 2년)이 제39회 대한볼링협회장배 전국남녀종별볼링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대학부 개인전 정상에 올랐다. 3일 막을 내린 이 대회는 전국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학생 선수와 실업팀 선수 등 1000여명의 선수가 대거 참여해 열띤 경쟁을 펼쳤다. 강민경은 5월 24일 열린 여대부 경기 첫날 개인전(4경기 합계 다득점으로 순위 결정)에서 마지막 7개 프레임을 연속 스트라이크로 장식하며 최종 합계 922점(평균 230.5점)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첫 번째 경기를 164점으로 최하위권에서 출발한 강민경은 이후 집중력을 발휘하며 차근차근 점수를 쌓아 나갔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4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린 강민경은 순위 경쟁이 치열했던 마지막 경기에서 뒷심을 발휘해 6번 프레임부터 7연속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며 한국체육대학교 신다은(919점)과 경북대학교 오선진(886점)을 제치고 역전 우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강민경은 “이번 대회를 통해 개인경기 생애 첫 메달 획득을 금메달로 장식하는 영광과 함께 역전 우승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되어 기쁘다”며, “운이 아니라 실력임을 입증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988년 창단된 계명문화대학교 볼링부는 제94회 전국체육대회 3관왕 등 지금까지 각종 전국대회에서 100회 이상의 우승과 함께 국가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실업팀 선수와 지도자를 배출하는 등 볼링 명문으로 정평이 나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남녀 프로당구 PBA·LPBA 투어 이젠 전용 채널로 본다

    남녀 프로당구 PBA·LPBA 투어 이젠 전용 채널로 본다

    출범 세 시즌째를 맞는 프로당구(PBA) 투어가 전용 TV채널을 탄생시켰다.프로당구협회(총재 김영수)는 2021~22시즌부터 ‘PBA&GOLF’ 채널을 통해 올 시즌 PB-LPBA 투어 전 경기를 방송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골프를 중심으로 운영해 왔던 ‘GOLF&SPORTS’는 이번 시즌부터 ‘PBA&GOLF’로 간판을 바꿔달고 PBA·LPBA 투어 콘텐츠로 내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밖에 MBC스포츠플러스가 새롭게 합류하며 기존의 SBS스포츠 채널, 지난 시즌 재방송 중계만 했던 IB SPORTS도 새롭게 PBA 투어 생중계 채널로 참여한다. PBA 투어 측에 따르면 이에 따라 올 시즌 PBA 투어 생중계 편성 경기는 지난 시즌보다 7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PBA투어 콘텐츠에 대한 당구팬들의 인기가 크게 늘어났고, 미디어 채널의 중계 수요도 늘어났다.출범 첫 시즌을 완벽하게 소화한 팀리그도 경기 수 증가에 따라 더 많은 중계 편성이 예상된다. 팀리그는 NH농협카드와 휴온스가 합류하면서 8개팀 체제로 두 번째 시즌에 돌입한다. 첫 시즌 정규리그 90경기와 플레이오프 10경기를 합쳐 총 100경기가 생중계 됐지만 올 시즌 2개 팀이 늘면서 정규리그 경기 수만 168경기로 지난 시즌에 견줘 무려 87%가 늘어났다.김영진 사무총장은 “이번 시즌 생중계 편성 경기가 대폭 늘어난 것은 지난 시즌까지 서바이벌 방식으로 치렀던 남자부 128강·64강전을 세트제로 과감히 바꾸고 팀리그도 8개팀 체제로 치르는 등 양적인 요인이 크다”면서 “그러나 코로나19 탓에 계속 무관중 경기가 불가피해지면서 ‘경기장 직관’을 못하는 당구팬들을 위한 배려가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2020~21시즌 ‘확진자 제로’를 기록하며 월드챔피언십을 포함해 6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PBA 투어는 오는 14일부터 여드레 동안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블루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21~22시즌 대장정에 돌입한다. 올 시즌에는 2개 대회가 늘어 7개 정규대회와 월드챔피언십 등 총 8개 대회로 치러진다.PBA 투어가 전 경기 세트제로 진행되는 것에 발 맞춰 여자부 LPBA 투어도 예선전인 PQ라운드부터 32강 서바이벌 경기를 전·후반 90분에서 80분으로 단축해 경기에 속도감을 입혔다. 총상금도 1000만원이 늘어난 5000만원으로 올렸다. 특히 새로 합류한 ‘여자 3쿠션 최강’ 히다 오리에(일본)과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캄보디아)가 본격 가세, LBPA 퀸 판도를 뒤흔들 전망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12살에게 “가슴사진 보내” “무슨 속옷” 성희롱한 고교생

    12살에게 “가슴사진 보내” “무슨 속옷” 성희롱한 고교생

    “가슴 사진 보내지 않으면 주소 유포한다.” 12살짜리 여자 아이를 협박한 후 신체 사진을 찍게 하고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고등학생이 법정에 섰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 장찬수)는 3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군(18)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A군은 지난해 3월16일 온라인에서 알게 된 피해자 B양(12)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인적사항을 말하지 않으면 IP 주소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B양으로부터 B양의 이름과 소속 학교, 전화번호 등의 인적사항을 전달받았다. A군은 B양이 대화 중 욕설을 한 점을 꼬투리 잡아 “가슴 등을 찍은 사진을 보내지 않으면 네 인적사항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신체 사진을 전송하게 하고, “친구들은 어떤 속옷을 입고 다니냐” 등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A군은 지난 2018년과 2020년에도 이와 비슷한 범행으로 재판에 넘겨져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A군은 이날 법정에서 “계획적이었다기 보다 즉흥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 A군 측 변호인은 이어 “피고인의 어머니가 피해자와 합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재판부에 공판을 속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다음달 8일 오후 2시에 공판을 속행하기로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서울포토]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첫 모의평가

    [서울포토]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첫 모의평가

    문·이과 통합 체제로 시행되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첫 모의평가가 실시된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OMR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2021. 6. 3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한예슬 “10살 연하 남친, 가라오케서 만나…직업 귀천 없다”

    한예슬 “10살 연하 남친, 가라오케서 만나…직업 귀천 없다”

    배우 한예슬이 공개 열애 중인 10세 연하 남자친구가 불법 유흥업소 접대부 출신이라는 의혹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한예슬은 2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 얘기들로 걱정 많으셨을텐데 오늘 촬영 중이라 늦게 얘기 전해드려 죄송하다”며 “많은 분들이 걱정 하시는 부분들, 혹은 궁금하신 분들께 제 입으로 직접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시작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먼저 지금 제가 행복하게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에 관한 소문들부터 얘기 드리겠다”며 “이 친구의 예전 직업은 연극배우였고 가라오케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던 친구”라면서 “많은 분들이 호스트바와 가라오케가 같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다 오픈된 곳이 가라오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예슬은 자신에 대해 “유난히 흥도 많고 일찍부터 큰 사랑을 받아서 마음 가는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어렸을 때부터 많지 않다 보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하는 곳을 가고, 좋아하는걸 하는게 더 숨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면서 “이런 마음의 제가 몇년 전 지인분들과 간 곳에서 처음 지금의 남자 친구를 알게 됐고 제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건 작년 9월”이라고 밝혔다. 이어 “9월 그 시기는 이 친구가 그 직업을 그만두고 난 후”라고 강조하며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전 제 감정에 솔직하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여자로서의 한예슬도 소중하고 싶어서 남자친구의 배경보단 제 감정이 느끼는대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한예슬은 남자친구가 일하던 당시 유부녀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분이 계시다는 기사는 제가 남자친구와 긴 대화로 사실이 아니라는 걸 듣게 됐고, 제가 직접 보지 못한 소문들 보단 저에게 본인의 어려운 얘기를 진솔하게 해주는 제 친구 말을 믿고 싶다”며 깊은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남자친구에게 람보르기니 차를 선물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그 차는 제가 저에게 선물한 차”라며 “남자친구에게는 지금 이동할 차가 없어서, 제가 더 경제적 능력이 되는 지금 제 상황에서 저의 다른 차를 편히 타고 다닐수 있게 같이 키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예슬은 자신이 이른바 ‘버닝썬 여배우’라는 설에 대해서는 “입에 담지 못할 큰사건의 주인공이 저라고 얘기하신 부분들은 정말 경찰, 검찰에서 밝혀주시길 제가 더 원하고 있다”고 결백을 호소했다. 이어 “제가 저의 사생활에 대한 모든 걸 다 공개할순 없겠지만 위 내용에 관한 부분은 진실이라는 걸,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리니 다들 너무 걱정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한예슬은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하는 대신 비용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 언제까지 행복할지 미래는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에 감사하며 살겠다”며 “억울하고 화나서 소송으로 해결할 생각뿐이었던 제게 주변분들의 지도로 그 비용을 오히려 더 좋은 선한 기회로 기부하게 됐다”고 알렸다. 그는 “이미지 세탁이라고 욕하셔도 그 손가락들이 무서워서 피하면 여러분들이 주신 사랑 덕분으로 도울 수 있는 감사한 저의 상황을 놓쳐버리는게 되는 거라고 좋은 말씀 주시는 지인분들 말만 새기고, 걱정해 주시고 지도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한예슬은 “저한테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 내일부터는 밝은 예슬이로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다”면서 “이 이후부터 절 걱정해주시는 분들과 저와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명예를 위해 허위 사실 유포및 악성 댓글은 고소 및 차단하겠다”고 경고하며 글을 맺었다. 앞서 한예슬은 지난달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 남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며 10세 연하 연인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일각에서 한예슬의 남자친구가 과거 유흥업소 접대부였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한예슬은 “너무 소설이잖아요”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지난 2일 한 매체는 한예슬의 남자친구가 과거 유흥업소 접대부로 일했다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 역시 불법적으로 운영됐던 유흥업소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과거 유부녀에 금전적 지원을 받은 적이도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보도와 관련 한예슬의 새 소속사 높은 엔터테인먼트 측은 즉각 의혹을 부인했으며, 배우 사생활에 대한 억측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화언론인클럽 회장에 문소영 논설실장

    이화언론인클럽 회장에 문소영 논설실장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언론인 모임 이화언론인클럽은 신임 회장에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이 취임했다고 2일 밝혔다. 임기는 2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문 실장은 서울신문 금융부장, 정치부장,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2018년부터 논설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관훈클럽 편집위원, 한국여기자협회 이사를 지냈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보수주의자, 가짜뉴스에 쉽게 낚인다

    보수주의자, 가짜뉴스에 쉽게 낚인다

    美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 연구 결과공화당원은 진짜 뉴스 중 18%만 믿어가짜뉴스의 46%가 보수진영에 유리보수층, 진보층보다 확증편향성 강해정확성 높은 미디어·정보환경 갖춰야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덕분에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오프라인으로는 어려운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인맥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SNS는 온라인으로 많은 사람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특성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SNS를 통한 가짜뉴스 확산 차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커뮤니케이션학자와 통계학자, 심리학자들이 가짜뉴스처럼 잘못된 정보에 특별히 취약한 집단은 없는지 살펴봤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우경화된 잘못된 정보들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정치적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보수주의자들이 진실보다 그럴듯한 거짓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큰 것은 미디어와 정보 환경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6월 3일자에 실렸다.연구팀은 온라인 여론조사업체 ‘유고브’(YouGov)를 통해 2019년 1월부터 6월까지 미국 성인남녀 1204명을 대상으로 정보 의존성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2주 간격으로 SNS에서 많이 언급된 진짜 뉴스 10건, 가짜뉴스 및 오보 10건을 제시했다. 참여자들은 20건의 뉴스를 읽은 뒤 뉴스 한 건당 20개씩 제시된 문장에 대해 우선 참, 거짓을 평가하고 자신의 생각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4점 척도로 답하도록 했다. 또 연구팀은 참여자 중 진보주의자 5명과 보수주의자 5명을 뽑아 정치, 사회, 과학,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보이는 진술 240개를 제시한 뒤 평가하도록 했다. 이와는 별도로 온라인에서 사람을 모아 똑같은 뉴스를 주고 해당 정보들 이 사실이라고 할 때 진보에 유리할지, 보수에 유리할지 아니면 중립적인지를 판단하도록 했다. 연구 결과, 진보와 보수 모두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더 많이 믿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보수 진영을 지지하는 정보에 오류가 더 많았으며 이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가짜뉴스나 거짓에 좀더 편향성을 보인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민주당원은 가짜뉴스 중 2%만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공화당원은 가짜뉴스의 41%가 참이라고 응답했다. 민주당원은 진짜 뉴스의 54%는 확고한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공화당원은 진짜 뉴스 중 18%만 참이라고 답했다. 또 진짜 뉴스의 65%가 진보진영에 유리하고 보수진영에 유리한 것은 10%에 불과하며 가짜뉴스의 46%는 보수진영에 유리하고 진보진영에 유리한 것은 23% 정도라는 응답이 나왔다.로버트 본드 교수는 “편향된 정보 환경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보수진영이 사실에 대한 감수성이 낮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확증편향성은 더 강하다는 점을 이번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가짜뉴스가 대체로 보수진영에 득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정보에 편향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켈리 가렛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도 “이번 연구에 따르면 진보 측이나 보수 측 모두 자기 편에 유리한 쪽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강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거짓을 좀더 쉽게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의 퇴보는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을 때 나타난다”면서 “많은 사람에게 정확도와 신뢰성이 높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급과 수용 환경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남친 가라오케서 만나…버닝썬 여배우 절대 아냐” 한예슬의 해명

    “남친 가라오케서 만나…버닝썬 여배우 절대 아냐” 한예슬의 해명

    남친 접대부·버닝썬 연루 의혹에 해명 배우 한예슬이 ‘버닝썬 여배우’ 의혹을 다시 한번 부인하고, 자신의 남자친구에 관한 의혹을 해명했다. 한예슬은 2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여러 얘기들로 걱정 많으셨을텐데 오늘 촬영중이라 늦게 얘기 전해드려 죄송하다“며 ”제 입으로 직접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입을 열었다. 먼저 10살 연하 남자친구에 대해 한예슬은 “이 친구의 예전 직업은 연극배우였고, 가라오케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던 친구다”라며 “많은 분들이 호스트바와 가라오케가 같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다 오픈된 곳이 가라오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난히 흥도 많고 일찍부터 큰 사랑을 받아서 마음 가는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어렸을때부터 많지 않다보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하는 곳을 가고,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더 숨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면서 “이런 마음의 제가 몇 년 전 지인분들과 간 곳에서 처음 지금의 남자 친구를 알게 되었고 제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건 작년 9월이다. 9월 그시기는 이친구가 그 직업을 그만두고 난 후다”고 덧붙였다. 한예슬은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제 감정에 솔직하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여자로서의 한예슬도 소중하고 싶어서 남자친구의 배경보단 제 감정이 느끼는 대로 지내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제 남자친구의 직업, 만난과정“이라고 했다. ”한예슬과 남자친구가 불법 유흥업소에서 만났다“ 보도가… 이날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한예슬의 남자친구에 대한 여러 제보를 접했다며, 한예슬과 남자친구가 불법 유흥업소에서 만났다고 보도했다. 호스트인 것은 문제가 아니나, 대가성 관계를 맺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 인터뷰에 등장한 피해자들은 한예슬의 남자친구가 스폰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제비였다“고 폭로했다. 또 유부녀와 이혼녀를 상대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예슬은 “피해자분이 계시다는 기사는 남자친구와 긴 대화로 사실이 아니라는 걸 듣게 되었고, 제가 직접 보지못한 소문들 보단 저에게 본인의 어려운 얘기를 진솔하게 해주는 제 친구말을 믿고 싶다”고 적었다. 그리고 ”람보르기니를 남자친구에게 선물했다는 얘기에 제 새차를 남자친구에게 줘야하나 고민했다”고 받으며 “그 차는 제가 저에게 선물한 차”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자친구에게는 지금 이동할 차가 없어서, 제가 더 경제적 능력이 되는 지금 저의 다른 차를 편히 타고 다닐수 있게 같이 키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버닝썬’ 사건 여배우 나 아니다” 재차 반박 이어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 등장했던 여배우가 한예슬이라는 한 유튜버의 폭로에 대해 재차 반박했다. 한예슬은 “그리고 입에 담지 못할 큰사건의 주인공이 저라고 얘기하신 부분들은 정말 경찰, 검찰에서 밝혀주시길 제가 더 원하고 있다”며 자신도 의혹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제가 제 사생활에 대한 모든 걸 다 공개할 순 없겠지만 위 내용에 관한 부분은 진실이라는걸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리니 다들 너무 걱정 말아달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어 한예슬은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 언제까지 행복할지 미래는 장담할수 없지만, 현재에 감사하며 살겠다”면서 “마지막으로, 억울하고 화나서 소송으로 해결할 생각뿐이었지만 주변분들의 지도로 그 비용을 오히려 더 좋은 선한 기회로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미지 세탁이라고 욕하셔도, 그 손가락들이 무서워서 피하면 여러분들이 주신 사랑덕분으로 도울수 있는 감사한 저의 상황을 놓쳐버리는 게 되는거라고 좋은 말씀 주시는 지인분들 말만 새기고, 걱정해 주시고 지도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고 인사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한예슬은 “저한테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고, 제가 잘할수 있는 부분은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며 “이 이후부터 절 걱정해주시는 분들과 저와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명예를 위해, 허위사실 및 악성 댓글들은 고소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한편 앞서 유튜버 김용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예슬이 남자친구와 유흥업소에서 만났으며, 한예슬이 ‘버닝썬 여배우’가 맞다고 주장했다. 한예슬이 버닝썬 VIP룸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또 김용호는 한예슬의 남자친구를 두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다 딱 ‘비스티 보이즈’”라고 말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제25회 전북청소년연극제’ 개최

    ‘제25회 전북청소년연극제’ 개최

    (사)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가 주관하는 제25회 전북청소년연극제가 6월 10일(목)부터 13일(일)까지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전북청소년연극제는 1997년부터 청소년들의 공연예술과 희곡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들의 창의성과 문학적 소양을 길러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의 증진을 위해 실시되었다. 올해 전북청소년연극제에는 총 3개의 고등학교 연극부가 참여하며, 각 고등학교가 하루에 하나씩 작품을 선보인다. 전북청소년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학교는 전북도 대표로 8월에 열리는 제25회 전국청소년연극제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6월11일에 전주제일고등학교 까멜레온의 ‘낙오자를 위하여’를 시작으로 12일 전주상업정보고등학교 ING의 ‘어른, 부재중(창작초연)’, 13일 전주여자고등학교 SINCE1996의 ‘재이(再離)-다시 떠나다.(창작초연)’가 공연된다. 전북연극협회 관계자는 “청소년연극제기간 동안 학생들과 관계자분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온라인 공연을 통해 관객과 소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서울컬처 culture@seoul.co.kr
  • 결혼식 직후 남편 전 부인에게 신장 기증한 美여성

    결혼식 직후 남편 전 부인에게 신장 기증한 美여성

    20년 전 이혼한 전 부인과 ‘가족모임’ 관계 돈독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 50대 여성이 결혼식을 올린 뒤 남편의 전 부인에게 신장을 이식해줘 화제가 되고 있다. 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오칼라에 거주하는 데비-닐 스트릭랜드(56·여)는 최근 남편 짐 머스의 전 부인인 밀레인 머스(59·여)에게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오랫동안 신장병 투병을 해온 전 부인 밀레인은 지난해 11월 입원했을 당시 신장 기능의 8%만 정상 기능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친오빠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이 나와 무산됐다. 그렇게 또 다른 기증자를 기다리며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기증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혼한 전 남편이 10년 전부터 사귄 여자친구 데비였다.데비는 짐과 결혼하기 전부터 밀레인과 가족모임에 초대된 뒤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혼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가운데서도 짐과 밀레인이 두 자녀를 함께 돌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비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누군가에게 장기 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식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장기기증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고 말했다. 데비는 전에도 낭성섬유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던 형제에게 자신의 폐 한쪽을 이식해주겠다고 나섰다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특히 곧 손주가 태어나 밀레인이 할머니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신장 이식수술 결심을 더욱 굳혔다. 이식수술 날짜는 여러 달의 검사와 코로나19에 따른 절차 중단으로 미뤄지다가 짐과 데비의 결혼식 이틀 뒤로 잡혔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2일, 마침내 데비와 짐은 결혼식을 올렸고, 이틀 후 수술이 진행됐다. 한쪽 신장을 내어 준 데비와 이식을 받은 밀레인은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곧바로 상대방을 애타게 찾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두 사람 간 면회 성사가 어려울 듯 했지만, 허가가 나면서 결국 남편 짐이 데비를 휠체어에 태운 뒤 자신의 전 부인의 병상에 직접 데려다줬다고 한다. 데비는 “마스크를 쓴 채 함께 울었다. 봉합한 상처 때문에 배가 아팠는데 그래도 우린 웃고 또 울었다”면서 밀레인의 눈 밑에 항상 드리워져 있던 다크서클이 사라지고 활기를 되찾은 모습에 기뻤다고 심경을 전했다.이들은 자신들을 ‘콩팥 자매’라 부른다면서 올 여름에 다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손자들을 함께 돌보기도 한다고도 했다. 전 남편 부인의 신장 기증으로 건강을 되찾은 밀레인은 “데비가 내 생명을 구했다”면서 ‘가족’으로서 함께 더 끈끈하게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콜롬비아서 또 민간인 학살범죄…민가에서 주민 9명 살해돼

    콜롬비아서 또 민간인 학살범죄…민가에서 주민 9명 살해돼

    남미 콜롬비아에서 또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남서부 알헤시라스 농촌 지역에서 발생했다. 무장한 괴한들이 민가에 들이닥쳐 무고한 주민 9명을 살해했다. 콜롬비아 경찰은 "괴한들이 공격한 곳은 한 주택으로 피해자는 가족과 친인척 등 남자 7명, 여자 2명"이라며 "무차별적으로 총을 맞고 9명이 현장에서 몰살을 당했다"고 밝혔다. 잔인한 살상을 자행한 괴한들의 정체와 괴한들이 민간인을 공격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 소식통은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현재로선 이유를 추정하기도 힘든 극악 범죄"라고 말했다.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비정부기구(NGO) '인데파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콜롬비아에서 이런 사건은 벌써 41번째다. 이 단체는 3명 이상이 한꺼번에 살해되는 사건을 학살로 규정하고 이런 사건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번에 학살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커피 농가가 몰려 있는 곳으로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에도 무장괴한들은 이유를 밝히지 않고 민간인을 무더기로 살해하고 도주했다. 전문가들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내전의 불씨가 만행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세기 넘게 내전에 시달린 콜롬비아는 2016년 정부와 반군단체 '무장혁명군'(FARC)이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무장혁명군이 해산하면서 산악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게릴라 대원 1만3000여 명이 사회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부 세력은 '결사항전'을 고집하면서 게릴라 군복을 벗지 않았다. 무장혁명군 잔당으로 불리는 이들은 지금도 산악생활을 하면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범죄는 더욱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확실한 세력이던 무장혁명군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자 일종의 권력 공백이 생겼다"며 "패권을 잡으려는 범죄조직이 우후죽순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무장혁명군 잔당과 새롭게 결성된 범죄조직 간 마약사업, 불법 채굴사업 등 이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극악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를 보는 건 무고한 주민들이다. 현지 언론은 "과거 무장혁명군이 활동하던 시대와 비교할 때 민간인의 피해는 결코 줄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보도했다. 무장혁명군이 활개치던 반세기 내전 때 살해된 무고한 주민은 최소한 26만 명, 무장단체의 공격을 피해 삶의 터전을 옮긴 주민은 수백 만 명에 이른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나치에 빼앗긴 작품 되찾으려다 포기 “귀도 안 들리고”

    나치에 빼앗긴 작품 되찾으려다 포기 “귀도 안 들리고”

    프랑스 할머니 레오네 놀레 메이어(81)는 2012년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갤러리에서 낯익은 그림 하나를 보고 얼어붙었다. 양부모가 나치 독일에게 약탈당한 인상파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 ‘양을 데려오는 여자 목동’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1941년 프랑스 남서부에서 나치 장교들이 약탈한 수많은 그림 중의 하나였다. 오랫동안 행적이 묘연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 건너가 있었다. 미국인 가족이 매입해 2000년 오클라호마 대학 프레드 존슨 주니어 미술관에 기증한 사실을 알게 됐다. 메이어의 친부모와 가족은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다. 그녀는 입양돼 이본느와 라올 메이어 부부 손에서 자라났고 그들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2년이나 지나 막무가내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쩔 수 없이 2016년 자신도 공동 소유자로 이름을 올리고 대신 미국과 프랑스를 3년마다 오가며 전시하기로 타협했다.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갤러리나 미술관을 임대해 전시회를 열어 수익을 챙길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만약 메이어가 사망한 뒤 그녀의 권리를 대신 주장할 프랑스의 갤러리를 찾지 못하면 다시 오클라호마 대학이 오롯이 소유권을 갖기로도 합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메이어는 당한 것만 같았다. 지더라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그녀의 변호사는 타협을 강요당했으며 순회 전시를 위해 두 나라를 오가는 운송 비용이 너무 들어 프랑스에서 갤러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며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결국 미국 법원은 메이어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합의에 동의해놓고 이제와 딴소리를 한다고 공박했다. 현재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이 그림은 7월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이를 막으려던 노력이 허사가 됐다. 오클라호마 대학은 그녀가 법적 행동을 계속하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메이어는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끝내 두 손을 들었다고 영국 BBC가 1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녀는 이날 성명을 내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 오랜 세월 싸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었지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다른 어떤 선택도 남아 있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아예 소유권 주장마저 포기하고 대신 오클라호마 대학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 프랑스에 교환 전시할 수 있게 하고, 작품 밑에 명판을 만들어 한때 메이어 가족 소유였음을 명시하게 하는 조건만 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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