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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통령 세종시 사과 이후] 靑·여권 ‘여론설득’ 총력… 야권 ‘예산안 연계’ 공동전선

    [이대통령 세종시 사과 이후] 靑·여권 ‘여론설득’ 총력… 야권 ‘예산안 연계’ 공동전선

    연말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추진 의사를 밝히자 야권은 강력 반발하며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세종시 문제 등을 내년도 예산안과 연계하며 원내에서도 공동 전선을 펴고 있어 극한 대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청와대와 한나라당도 야당과 친박(친박근혜)계, 충청권을 압박하고 설득하며 총력전을 벌일 태세다. ■ 행보 빨라지는 靑·여권 청와대와 여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으로 밝힌 게 신호탄이 됐다. 그간의 정중동 행보에서 벗어나 충청 주민과 야당, 친박 등 반대 진영을 설득하기 위한 ‘힘 모으기’에 나섰다. 세종시 수정안의 성패는 여론의 향배에 달린 만큼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30일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최고위원단을 청와대로 초청, 조찬회동을 갖는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갖는 첫 자리인 만큼 당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당·정·청 8인 수뇌부 멤버인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 정운찬 총리, 권태신 총리실장, 주호영 특임장관, 정정길 대통령실장, 박형준 정무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비공식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세종시 대안, 4대강을 포함한 정국 현안 대책 등과 함께 야권 및 친박계 등에 대한 설득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다음달 1일 한·헝가리 정상회담에 이은 국빈만찬에 박근혜 전 대표를 함께 초청했다. 이때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언급이 나올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이어 주중에는 영·호남의 주요 도시를 방문,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한 의견수렴에 나선다. 박 정무수석 등 참모진은 언론 인터뷰나 토론회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앞으로 초안이 마련되고 최종안이 제시됐을 때 적절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초안이 마련되면 그 뒤에 충분히 충청도민을 비롯해 여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정운찬 총리도 이번 주에 사회 각 분야 원로를 총리공관으로 초청, 오찬 간담회를 갖는 데 이어 다음달 2일에는 관훈토론회에 참석한다. 한나라당은 친이계 주류를 중심으로 우호적 여론 결집에 나섰다. 이에 당내 세종시 특위는 30일 충북도청을 찾아 현지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이어 영남권(12월8일 대구), 호남권(14일 전주), 수도권(22일 수원)을 돌며 여론 탐색전과 홍보전을 병행한다. 다음달 1일에는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이완구 충남지사와 조찬 간담회를 갖고, 15일에는 재경 충청향우회와 오찬 간담회, 22일에는 진보학자 오찬 간담회 등을 통해 수정 반대론자를 설득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15일에는 국회도서관에서 찬반 양쪽을 모두 초청해 세종시 건설계획에 관한 세미나를 연다. 김성수 홍성규기자 sskim@seoul.co.kr ■ 정책연합 외치는 야권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과의 대화’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야당이 주장한 세종시 수정 불가, 4대강 사업 반대를 놓고 이 대통령이 전혀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게 드러난 만큼 현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해 국회 안팎에서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세종시 백지화’를 규탄하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충청권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는 규탄대회는 1일 청주, 3일 천안, 8일 대전에서 차례로 열린다. 정 대표는 29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종시 백지화, 4대강 밀어붙이기, 예산안 일방 통행을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세종시 수정 문제로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거점으로 지역위원장 회의를 소집해 세종시 백지화 반대, 4대강 공사 저지 목소리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정 대표는 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에 더해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등과도 정책연대나 연합을 통해 긴밀하게 협력·소통하겠다.”면서 “세종시 수정 기도에 대해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확실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힘을 모아 ‘일방적 밀어붙이기’가 무위로 끝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장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시 수정을 위한 어떤 조치에도 저항할 것”이라면서 “입법 음모나 시도에 대해 원안 관철을 위한 불복종으로 항거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소속 의원 17명 전원이 의원직 사퇴를 결의한 데 대해 “우리의 뜻이 관철되지 못하고 불행하게 원안이 수정되는 결과가 생기면 스스로 국회의원 자리를 떠나 국민에게 책임있는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해 이 총재는 “세종시 수정 추진을 반대하는 세력과 뜻과 행동을 같이 할 수 있지만 정치연대로 비쳐지는 것은 경계한다.”면서 “정운찬 총리 해임결의안을 제출키로 한 우리의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민주당과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창구 홍성규기자 window2@seoul.co.kr
  • [모닝 브리핑] 여야 정치관계법 새달 중순까지 처리 합의

    여야는 19일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임위 중심으로 민생·쟁점 법안의 합의 처리에 적극 노력키로 했으며,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12월 중순까지 처리키로 합의했다.한나라당 안상수·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담을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여야는 또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에서 논의하고 있는 지방행정체제개편기본법을 특위에서 충분히 심의해 내년 2월까지 처리키로 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주요내용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주요내용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 양국 정상의 기자회견을 간추린다. →양국은 북핵문제 해결시한을 언제까지로 설정하고 있나. 북한이 그랜드 바겐에 대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가. -(이 대통령)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과 협상했지만 일보전진하다 일보 후퇴해서 오늘날까지 아무런 합의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북핵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두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겠다는 관점에서 그랜드 바겐을 제안하게 됐다. 협상에 시간이 걸리고 어렵지만, 반드시 이뤄야 하고, 이룰 수 있고,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랜드 바겐에 대해선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북한 스스로 안전과 경제, 북한 인민,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북한의 미래를 위해 나는 이 문제를 (북한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 →그랜드 바겐에 대한 (한·미) 양국 공조는 어느 정도까지 이뤄질 수 있는가. -(오바마 대통령)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진행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말했듯이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평화적으로 해결할 문은 열려 있다. 북핵 제재 조치 완화, 국제사회 동참의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북한이 진지하게 핵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경제협력 확대, 한·미 동맹강화의 핵심적 사안인 만큼 신속한 비준 발효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오바마 대통령) 양국이 무역 관계를 확대해서 해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많은 논의와 작업을 하고 있고, 팀을 구성해서 장애가 되는 모든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비준으로 가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미국 기업과 노동자들은 경쟁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한·미 FTA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양국관계를 강화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인과 미국기업은 각자의 장·단점을 따로따로 평가하고, 우리가 원하는 윈윈상황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 자동차 시장을 개방해 한·미 FTA를 타결할 의향이 있는가. -(이 대통령) 지난 20년간 세계는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가 균형발전하고, 균형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불균형한 것을 어떻게 바로잡을지가 주요 20개국(G20)에서 논의할 과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무역 역조가 그렇게 일어나지 않고 통상 균형을 갖춰가고 있다. 10년, 20년 전 우리가 보호를 받을 때에는 무역 격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균형을 잡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한·미 FTA 문제에 대해 아주 솔직하고 전향적인 말씀을 해줬다. 그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유럽연합(EU)도 큰 (자동차) 생산국이지만 EU하고도 FTA를 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佛·브라질 “세계환경기구 창설”

    프랑스와 브라질이 세계환경기구 창설 제안 등 새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한목소리를 내기로 합의했다.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서 1시간 동안 정상회의를 가진 뒤 기자회견을 갖고 “선진국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최소 50% 줄여야 한다는 야심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두 정상은 2012년 세계환경기구를 출범시키고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촌 차원의 동참을 설득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기로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는 26일 브라질에서 열리는 아마존국가 정상회의와 27, 28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리는 영국연방 정상회의에 참석해 룰라 대통령과 공동 발표한 내용의 지지를 당부할 예정이다.룰라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16일 전화를 걸어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적극 논의해 달라고 당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 기자들에게 “미국과 중국이 두 나라의 경제 문제만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며 “기후변화와 관련,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코펜하겐 정상회의가 성공하기 위해서 두 나라가 힘을 합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주세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두 정상의 발표에 대해 “주요 신흥국 가운데 브라질이 이런 약속을 한 첫번째 국가”라면서 반겼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아리랑 세계화/김종면 논설위원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다 두고/ 동양의 쪽박이 웬일이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춘사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주제가의 한 대목이다. 1926년 10월1일 조선총독부 청사 완공기념식 날에 맞춰 개봉을 서두른 춘사는 영화전단을 압수당하자 악대를 동원해 아리랑을 부르며 종로·광화문통을 돌았다. 총독부 청사 완공식을 방해하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그때 아리랑은 ‘투쟁의 노래’였다. 아리랑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리랑세계화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에 온 베스트셀러 ‘컬처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유 세계원형발견연구소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리랑에는 이별과 그리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다.아리랑 고개를 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정신이 담겨 있다.” 요컨대 한국의 성공에는 아리랑이 숨어 있으며, 아리랑은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글, 한식, 한복, 한옥, 한지…. 늘 곁에 있기에 오히려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민족의 뿌리 한(韓)브랜드. 나라 안팎에서 ‘한국적인 것’에 점차 눈떠가는 추세이고 보면 한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아리랑의 세계화 또한 머지않은 듯하다. 선창과 후창, 후렴구 등 세계 민요에서 보기 드물게 열린 구조를 갖고 있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아리랑은 아리랑 민요와 아리랑 아닌 민요로 구분해도 좋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내내 울려 퍼진 평화와 화해의 노래다. 남북단일팀이 함께 부르는 단가다. 통일이 되면 국가(國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키스 하워드 호주 시드니대 교수가 지적했듯 “세계 곳곳의 한국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아리랑이며, 그 힘의 원천은 역동성”이다. 아리랑 가사는 5000여 소절에 이른다. 그 갈피마다 민족사의 희로애락이 서려 있다. 그런 만큼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이야기 산업’의 젖줄이 될 수 있다. 아리랑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7000만 민족의 민요를 넘어 세계의 노래로 끌어올려야 한다. 경쟁력 있는 아이템을 개발해 아리랑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에 나서야 할 때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南, 대북관계 적극개선 필요”

    북·미 양자 대화가 이달 말쯤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많은 대북 전문가들은 북·미간 본격적 대화국면을 기회로 우리 정부도 좀더 적극적인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9일 “정부는 북핵 문제가 남북 당국간 회담의 의제가 돼야 한다고 밝혔고, 북핵 해결 방안으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을 제시했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 이방인이 아닌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이를 위해선 남북간 당국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간 고위급 회담, 6자회담 재개 수순으로 가야 하며 북·미 대화 이후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남북은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북핵 문제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일단 북·미 양자대화가 실시되면 북핵 문제는 일부 요철이 생기더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간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6자회담에서 주도권을 쥐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북·미 대화 분위기에 떠밀려 정부가 구색 맞추기식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미 대화 분위기를 고려해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과거 통미봉남(通美封南)의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 측에 북·미 대화가 두 차례 이상 지속돼서는 곤란하다는 우리측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국회 대정부질문] 野 “ 6자회담 사실상 휴업” 政 “금강산관광 재개 검토”

    [국회 대정부질문] 野 “ 6자회담 사실상 휴업” 政 “금강산관광 재개 검토”

    6일 국회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민주당 김충조 의원은 “6자회담이 사실상 휴업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취한 조치 등을 물었다. 이에 정운찬 국무총리는 “정부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관련국들과의 정상 및 외교장관 등 다양한 수준에서 긴밀한 협의를 지속,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 언제든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답했다. ●남북대화엔 “북핵논의 우선” 다만 정 총리는 “북핵문제 진전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은 어렵다. 북핵 논의를 우선해서 하려고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남북의 ‘싱가포르 비밀접촉설’에 대해서도 여야 의원들의 추궁이 잇따랐다. 정 총리는 “아는 바가 없다.”고만 되풀이했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이 “국가정보원의 북한 담당이 3차장에서 1차장으로 바뀌었고, 지난달 셋째주 주말 국정원의 모 차장이 싱가포르를 찾았다.”고 다그쳤지만 정 총리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정 총리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본회의장에 앉아있던 여야 의원들은 “총리가 아는 게 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따랐다. 정 총리는 “아주 유연한 자세로 어디에서든, 어떤 조건이든 우리의 원칙만 가지면 남북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그러자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은 비선라인이 아닌 공식라인으로 당당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북 쌀 지원엔 “긍정 입장” 대북 인도적 지원 및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정 총리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 풍부한 광물자원과 천혜의 관광자원 등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북한 경제를 지금 중국이 독차지하고 있다.”며 정 총리에게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정 총리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더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북 쌀 지원에 대해서는 “북한 식량사정과 남북관계, 국민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검토하되, 기본적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 “731부대, 독립군이냐” 한편 정 총리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국군포로 문제를 거론하면서 (일제의 인체실험 부대인) ‘731부대’를 아느냐고 묻자, “항일 독립군이냐?”고 되물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모닝 브리핑] 북미 다음주 비공식접촉… 양자회담 조율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과 북한의 비공식 접촉이 다음주 미 샌디에이고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 복귀에 대해 보다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 북미대화를 서둘러 가질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이언 켈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오는 26~27일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참석하는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동북아시아 협력대화(NEACD)에 미 당국자들이 참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mkim@seoul.co.kr
  • 南 “새달·내년 설 추가상봉” 北 “상응조치부터”

    남북 적십자 대표단이 16일 개성공단에서 만나 4차례의 회의를 통해 이산가족상봉 문제 등을 협의했지만 양측은 서로의 동상이몽(同床異夢)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남북 적십자 대표단은 이날 오전 10시쯤 만나 40분간 입장을 교환했으나 계속 평행선을 달렸다. 우리 대표단은 실무접촉의 방점을 ▲추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 및 정례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 등에 두었지만 북측은 인도적 대북 식량 지원 추진에 무게를 실었다. 오후에 열린 회의에서도 입장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남북이 이날 4차례에 걸쳐 회의를 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측이 지난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및 임진강 수해방지 회담에서의 유감 표명 등 일정부분 남북관계 호전을 위해 남측에 성의를 보였으니, 남측도 식량 지원 등 나름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측 대표단은 이날 회의 도중 우리 대표단에게 “남측이 성의를 보였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행사 추가 개최, 국군포로 납북자 상봉 숫자 확대와 조기해결 등을 최대한 타진한 뒤 북측의 반응에 따라 식량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측은 우리 측 제안을 최소화하며 식량 지원 확대를 원하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남북 대표단이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수차례 정회 및 속개를 이어갔음에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지만, 북측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당국 간 공식 만남에서 처음으로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정부는 북측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다만 지원규모는 소규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남북은 지난 14일 개성공단에서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해 회담한 뒤 이틀 만에 다른 주제로 자리를 함께한 것이지만 분위기는 다소 차이가 나 눈길을 끌었다.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남북 간 회담은 비교적 순조로웠지만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은 이산가족 상봉과 식량·비료 지원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어 회의 내내 진통을 겪었다. 임진강 수해방지 회담에서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던 북측이 이틀 뒤 열린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식량 지원만을 고수하며 완강한 입장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북측이 임진강 수해방지 회담에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많이 얻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고 분석했다. 북측이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식량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 내려고 임진강 수해방지 회담에서 비교적 낮은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사설] 물꼬 튼 남북대화 세밀한 전략 필요하다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이 어제 개성 남북경협사무소에서 열렸다. 개성공단 실무회담 이후 당국간 대화로는 석 달 만이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지난달 임진강 수해에 대해 유감의 뜻과 함께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황강댐 방류에 대해서도 ‘해당기관이, 더 큰 피해를 막으려, 긴급히 방류하게 됐다.’고 개략적이나마 경위를 설명했다고 한다. 당국 차원의 의도된 도발행위가 아님을 강조한 셈이다. 임진강 수해에 따른 남북 경색을 원치 않으며 대화의 실마리를 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임진강 회담에 이어 남북은 내일 적십자회담을 갖고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오랜 경색 국면 끝에 모처럼 한반도에 대화의 훈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대화 재개를 반기기에 앞서 냉철한 현실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북측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우리의 대응 방향과 목표를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 북한의 유화적 자세는 북·미 대화를 앞당기려는 분위기 조성용의 성격이 짙다. 과거의 벼랑끝 전술 대신 화해의 손짓을 내보이는 쪽으로 외양만 바꿨을 뿐이다. 2차 핵실험 이후 적어도 남북간에 관계 진전을 이끌어낼 상황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더 큰 틀에서 보면 6자회담 참가국들과 개별대화를 추진함으로써 이들 5개국의 응집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북한 자신의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대화 분위기를 살려가되 남북대화가 북·미 회담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전략을 세밀히 짜고 북을 그리 이끌어야 한다. 대북지원으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풀되 보다 장기적으로 고위당국자 회담을 통해 그랜드 바겐을 논의하는 기회를 잡기 바란다.
  • [열린세상] 글로벌 시대의 韓·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글로벌 시대의 韓·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주 금요일 서울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이어 토요일에는 베이징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바로 2주일 전에는 뉴욕과 피츠버그에서 한·일 정상이 무릎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었다.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한 지 겨우 3주 지난 시점에서 한·일 정상이 세 번이나 회담을 가졌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일 양 정상이 대면할 기회는 1년에 몇 번일까? 우선 매년 2회에 걸친 한·일 셔틀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도 작년부터 정례화되었다. 1990년대부터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 2005년 출범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는 매년 1회 그리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는 2년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더불어 내년부터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세계경제질서 문제를 다루게 될 최고의 회의체로 지정됨에 따라 한·일 정상이 만날 기회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이렇게 보면 두 나라 정상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아무리 적어도 연 7회 이상으로, 줄잡아 50일에 한 번은 좋든 싫든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현안과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현안, 그리고 글로벌 이슈가 핵심적인 의제로 다루어졌고 두 정상은 세 차원의 현안들에 대해 의견 합치와 공감대 형성을 이끌어냈다. 첫째, 양국간 현안에 대해서는 하토야마 총리가 과거사를 직시하는 자세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일본 신정부의 대 한국 외교 기본자세를 밝히고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문제나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추진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총론적으로 과거사 직시와 반성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각론에서는 일본 국민의 감정과 일본 내 정치사회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현되기까지는 간단치 않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동아시아의 핵심 현안은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이른바 그랜드 바겐 구상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는 ‘정확하고도 올바른 방안’이라고 평가하고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6자회담 복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중국과 미국에만 대화의 창을 열어놓고 한·일 양국과의 직접대화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으로서도 긴밀한 대일 공조를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대북정책 주도권 확보 및 영향력 확대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한·일 정상이 다뤄나갈 글로벌 차원의 이슈는 매우 다양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 및 금융 분야의 협력에서부터 기후변화, 개발 및 환경, 인권 등의 분야에서 두 나라는 상당부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양국 간 공조와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내년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G20 정상회의와 일본에서 열릴 APEC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양국의 협력 방안이 깊숙이 논의되었다. 2010년은 한·일 관계에서 보면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해임과 동시에 역사적인 G20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내년에는 한·중·일 정상회담의 개최도 한국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한·일 양국은 뜻깊은 2010년의 도래를 계기로 그동안 양국관계를 대립과 반목으로 몰아갔던 역사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글로벌 질서의 개편을 창의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한·중·일 정상회담] 北, 원자바오 입빌려 속내 전달

    [한·중·일 정상회담] 北, 원자바오 입빌려 속내 전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연결고리로 관계개선을 위한 ‘뜻’을 교환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 총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미국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하려고 한다는 뜻을 전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북한의 의사를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참석하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참여해서 핵포기 합의를 이루는 게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북한도 알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북한의 핵폐기 논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MB“북에도 그랜드바겐 설명할 것” 원 총리를 매개로 남북 정상이 서로 의중을 전달한 셈이다. 남북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는 긍정적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원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에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 구상을 설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북핵 문제를 남북대화와 연계해 풀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 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이자 향후 대북 경제재건의 주도적 지위에 있는 만큼 주도권을 쥐고 나가겠다는 인식을 중국에 전달하면서 북핵 해결에 강한 자신감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한국, 일본과도 관계개선을 하려고 한다.”, “6자회담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주도하는 현재의 제재 국면을 탈피하려는 의도뿐 아니라 북·미 양자대화를 앞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 관계개선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동시에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의도된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미 대화에 임하는 미국의 부담을 줄여 적극적으로 양자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명분을 세워주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관계개선’ 발언을 했지만 당장 남북 양측을 ‘대화가 통하는 관계’로 급선회시킬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北 6자복귀 등 긍정변수가 기폭제 우선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북한이 핵문제에서 확실한 변화를 보여야 본격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이 “6자회담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핵포기 합의를 이루는 게 목표”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등과 같은 긍정적인 변수가 생겨야 남북관계도 변화의 ‘계기’를 맞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남북정상이 간접적이지만 대화 신호를 주고받은 것은 일단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인 급선회보다는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이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이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했거나 검토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 흐름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도 북·미 양자대화의 성공적 모양새가 필요한 만큼 6자회담을 마냥 회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국정감사] 박근혜·박주선 등 날세운 중진

    ‘초선보다 더 매서운 중진들’ 주로 초선 의원이 활약하는 국정감사에서 유독 눈에 띄는 여야 중진 의원이 있다. 4선의 한나라당 박근혜(대구 달성) 전 대표와 재선의 민주당 박주선(광주 동구) 최고위원이 그들이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인 박 전 대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에 더해 구체적인 대안 제시로 피감기관을 긴장시킨다. 박 전 대표는 국감에 대비해 상당한 양의 정책자료를 학습하고, 국감장에서 세세하고 꼼꼼하게 지적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차기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정치적 위상까지 겹쳐 피감기관이 박 전 대표의 지적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분위기다. 지난 5일 보건복지가족부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 박 전 대표는 “실종아동 사건 담당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간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통합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실종아동 대책 태스크포스팀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박 전 대표의 지적에 피감기관은 하나같이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박 전 대표 쪽은 “피감기관에서 박 전 대표의 지적을 가능한 한 적극 반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박 의원은 중진급 재선으로 통한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소속인 박 의원은 율사 출신답게 ‘송곳 질의’로 유명하다. 외통위 의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원로·중진이어서, 박 의원의 날카로운 비판과 지적이 단연 돋보인다는 평이다. 지난 6일 통일부 국감에서 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5자회담과 그랜드 바겐은 사전조율도 거치지 않은 설익은 내용”이라면서 “한·미 간에 엇박자를 내고 북한의 강한 반발만 불러일으켜 남북관계의 불신만 깊게 했다.”고 꼬집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원칙도 전략도 대책도 없는 3무(無)정책”이라고도 했다. 박 의원은 국감 첫날인 지난 5일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조 정착방안’,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경제효과의 진실과 문제점 및 보완대책’ 등 3권의 정책자료집을 내놓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국감 현장] 玄통일 “남·북·미·중 회담 현실적으로 어려워”

    6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감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통일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최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이산가족상봉에 상응하는 대북 지원 검토’ 의견을 밝힌 점을 상기시킨뒤 “통일부가 가만 있으니 정보를 담당하는 국정원장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냐.”며 통일부의 소극적인 행보를 문제 삼았다. 송 의원은 남북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북핵 폐기를 확인한)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의 이행을 북한에 적극 요구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현인택 장관은 “(원 원장의 발언은) 와전된 것으로 확인했다. 통일부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비켜갔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평양에서 ‘북·중 관계의 끊임없는 발전’을 말한 것은 유엔의 대북 제재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현 장관은 “대북 제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국제정세가 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급물살에 누가 서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르다.”고 이견을 보였다.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과 미·중이 참여하는 4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현 장관은 “현재 남북 관계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또 한나라당 정의화·황진하·윤상현 의원은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국군포로 상봉을 유도하기 위해 동·서독간 ‘정치범 석방거래’ 방식을 빌린 대북 현물 지원제도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사설] 日 총리 ‘역사 직시할 용기’ 실천 기대한다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뒤 한·일 관계가 일단 순탄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신임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에서 가진 정상회담은 첫단추가 제대로 꿰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다짐이 이전 자민당 정권 때와 다르다. 말에 그치지 말고 실천으로 옮겨야 새로운 한·일 관계가 열린다.하토야마 총리는 “민주당 새 정부는 역사를 직시할 용기를 갖고 있다.”면서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밝혔다. 역사를 직시한다는 것은 일본의 새 정부가 과거사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일본은 1995년 당시 사회당 출신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담화를 통해 일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들은 틈만 나면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군비강화 등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을 보여 왔다.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한 셈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적절한 시기에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수준의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진심을 담아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 국민들의 마음에 닿도록 하길 바란다.또한 하토야마 총리의 역사 직시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군위안부와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역사교과서 역시 진실이 수록되도록 앞장서야 한다.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허용 문제는 내년 초 법안 제출 약속을 지키고 반드시 입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도 일본 측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가시적 조치들이 이행되는 가운데 한·일 간 안보·경제 공조가 튼튼해진다면 새로운 양국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는 실천방안을 내놓은 뒤 일왕이 방한하는 절차를 통해 한·일 신시대의 진정한 개막을 지구촌을 향해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 [유엔총회·기후변화정상회의] 오바마 “지금은 각국이익 공유돼야 하는 시기”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유엔총회 본회의 연설에서 “새로운 관계의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23일 오전 9시(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 64차 유엔총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은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각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공유돼야 하는 시기라고 깊게 믿고 있다.”며 공동의 이익과 상호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총회 참석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첫 미·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는 (내가 추구하는) 정책의 “중심”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그동안 동등한 미·일 관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등을 주장한 ‘하토야마식 외교’의 첫 시험무대인 이번 미국 방문에서 하토야마는 양국의 동맹관계를 의식, 강경론에서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일본과의 관계는 미국의 외교 정책의 초석”이라고 화답했다.북·미 대화와 관련, 하토야마 총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환영한다.”면서도 “북· 미 간 양자 대화 틀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미·일간의 긴밀한 조율을 강조했다.또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최근 ‘타이어 관세발’ 무역 분쟁으로 관계가 불편해진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바마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두 사람 모두 포괄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양국간의 관계와 북한 문제 해법에 대해 논의했다.미국이 중국산 승용차와 경트럭용 타이어에 대해 3년간 35~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불거진 양국간 무역 분쟁과 관련,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 측이 특히 타이어 분쟁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관세 부과가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한가지 특정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kmkim@seoul.co.kr
  • 한·미 외무 “북핵 5자 긴밀협력”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북한 핵 문제와 관련, 양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5자가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유 장관은 이날 뉴욕 맨해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힐러리 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히고,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북핵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일괄타결)‘에 대해서도 5자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미 외무회담 직후 뉴욕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북한이 강조했던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의 합의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헌신한다면 미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국제사회가 함께 (대북) 패키지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진전을 위해 지금까지 수개월간 이어져 온 일반적 원칙”이라면서 “문제는 우리가 매우 이것의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캠벨 차관보는 “모든 당사국들은 6자회담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6자회담 복귀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 가장 명확하고 굳건하다.”면서 “북한이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핵심 공약인 2005년, 2007년 서명한 근본적인 조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 모든 당사국들이 강하게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강조했다. 캠벨 차관보는 “만일 북한이 추가적인 인도적 지원을 요구하면 우리는 경제적 지원 문제와 인도적 지원 문제를 분명히 분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인도적 지원은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면서 “전달을 검증하는 명백한 능력 및 식량, 의약품 및 지원물품의 배포와 관련된 다양한 가이드라인과 관련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사설] 급류 타는 북·미 대화 한국 소외 안 돼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설 뜻을 밝혔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은 비핵화의 목표를 계속 견지할 것이며, 이 문제를 양자 또는 다자 대화를 통해 해결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지난해 말 6자회담이 중단된 뒤 처음이다. 그만큼 물 밑으로 논의되고 있는 북·미 양자 회담이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미 미 행정부는 이달 말 또는 10월 초 회담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5월 북한의 2차 핵 실험 이후 지속돼 온 대북 제재 국면이 빠른 속도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는 지금 우리의 과제는 자명하다. 비록 북·미간 대화가 선행된다 하더라도 북핵 해결과 한반도 정세 변화의 장은 결국 6자회담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어떤 경우에도 북·미간 대화로 인해 한국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한·미간 공조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회담으로 못박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핵 포기를 전제로 북·미 수교와 김정일 위원장 체제 보장, 대북제재 해제 등 6개의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미 의회조사국의 분석이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다.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에 북·미 수교 방안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들 인센티브 모두 6자회담에서 논의돼야 할 사항이라는 점에서, 자칫 북·미간에 6자회담 재개를 뛰어넘는 합의를 이룰 경우 나머지 참가국, 특히 한국은 북핵 논의의 주도권을 북·미에 넘겨준 채 끌려가는 형국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와 함께 남북 대화 재개에도 정부가 적극 노력할 시점이다.
  • [시론] 北·美대화, 북핵포기 지렛대 되도록/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시론] 北·美대화, 북핵포기 지렛대 되도록/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미국 정부가 마침내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대화의 개최를 예고했다. 북한은 이미 6자회담 폐기를 선언했으므로 북·미 양자회담만을 주장하겠지만 미국은 6자회담의 전초전으로 간주할 것이다. 회담 방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협상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안타깝게도 다수 전문가들은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관적 전망의 배경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비관론의 배경에는 지난 20년간에 걸친 북핵외교의 실패 사례가 있다. 1990년 초부터 남북대화, 북·미대화, 6자회담을 통해 각각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1년), 제네바 기본합의문(1994년), 9·19 6자 공동성명(2005년)을 채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합의문은 휴지조각이 되고, 북한은 핵개발을 강행하고 말았다. 과거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지금 북한 핵능력은 플루토늄 핵개발을 넘어 고농축우라늄 핵개발로 확산되고 핵무기 보유 추정량도 과거 1∼2개에서 10개로 증가했다. 북한은 핵협상을 하면서도 한시도 핵개발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변화와 붕괴 가능성을 과대평가했다. 붕괴를 기대하면서 상당기간 북핵문제를 방치해 적극적 북핵외교의 기회를 놓쳤을 뿐 아니라 핵개발 시간마저 벌게 한 셈이다. 다음 최근 북한 대외정책에 있어 국내정치적 요인이 지배적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최소한의 외교정책적 합리성마저 상실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탈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매우 심각한 경제·체제위기를 겪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에 이어 최근엔 어떤 공산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3대 세습의 무리수까지 두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대외 도발을 통해 위기를 조장해 국내통제를 강화하고 권력세습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 과거에도 북한의 핵도발이 빈번했지만 북·미대화와 북·미수교를 달성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농축핵개발, 핵무장권 등을 계속 주장함에 따라 그런 기대는 사라졌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과 가계세습 국면을 관리하기 위해 핵무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었다. 극도로 도발적인 언동을 일삼던 북한이 돌연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제기했다. 북한과 모든 대화는 일단 환영하되 신중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특히 이번 북·미대화의 재개를 계기로 북핵 협상환경과 비핵화 전략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의 핵능력이 월등히 증대했으며 추가적인 핵 도발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체제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제사회 일부에서는 북한 내 급변사태와 핵무기에 대한 통제력 상실 가능성마저 논의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다 효과적 북핵협상을 위해 ‘5자 협의’가 필요하다. 6자회담은 최선의 북핵 협상 틀임에도 불구하고 비효과적이며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다. 특히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와 보상 수준과 집행을 두고 5자간 입장이 달라 그 틈을 북한이 이용하고 합의이행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대북정책 노선에 있어 5자간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6자회담에서 어떤 비핵화 솔루션을 북한에 적용할지에 대한 공감대도 희박하다. 5자가 반드시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소통장치가 있어야 북한에 대한 협상력과 합의 집행력이 강화될 것이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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