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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와 여신도들이 짜고…‘토론토 한인 교회 집단 성폭행 사건’

    목사와 여신도들이 짜고…‘토론토 한인 교회 집단 성폭행 사건’

     캐나다 교민 사회를 술렁이게 한 ‘토론토 한인 교회 집단 성폭행 사건’이 목사 A씨와 여신도들의 자작극으로 결론났다.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 메일’은 최근 ‘한인 교회 신도들에 대한 집단 성폭행 혐의 기소가 취하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신문은 이 사건을 “교회 신도 9명에게 총 500건의 가까운 성(性) 관련 혐의가 적용됐던 엽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사건은 지난 3월. 토론토 Y한인교회 소속 목사 A씨와 이 교회에 다니던 여성 4명이 같은 교회 남성 신도 6명을 집단 성폭행 등 67개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신도들이 혼숙하는 이 교회에서 남성 신도들이 상습적인 집단 성폭행을 자행했다는 주장이다. 캐나다 경찰은 용의자 6명 가운데 3명을 체포하는 한편 현장에 없었던 나머지 3명을 지명수배했다. 하지만 이들 3명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실로 엽기적이었다. 집단 성폭행은 물론 아동 포르노 제작, 약물투여, 감금, 폭행 등 정상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글로브 앤 메일’은 물론 ‘토론토 스타’ 등 현지 언론의 심층보도가 이어졌다.  사건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한 용의자의 부인이 목사 A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하면서부터다. 거기에 지난해 9월말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여성 B씨가 교회를 빠져나와 “이 사건은 A씨의 조작”이라면서 주장을 뒤집기까지 했다.  B씨는 50여쪽의 ‘경찰신고 시나리오’를 증거로 내놓았다. 경찰 신고 당시 이 시나리오를 그대로 외웠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결과 이 시나리오 대본에는 A씨의 친필이 남아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여성들이 무릎을 꿇고 벽에 붙은 대본을 외우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도 등장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남성들의 무죄를 뒷받침해줄 증거는 속속들이 나왔다. 지난 2009년 2월 한 달 내내 여신도들을 성폭행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한 용의자가 같은 기간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모습이 찍힌 CCTV가 발견됐다. 경찰은 또 A씨가 한국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여신도들을 동원해 남자들을 구속시키겠다.”고 말한 통화내용도 입수했다.  결국 현지 검찰은 지난 9월 A씨를 소환해 사건의 조작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A씨는 “테이프에 담긴 목소리는 내 것이 맞지만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들이 단어와 문장을 잘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A씨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번 사건이 A씨의 조작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17일(현지시간) 용의자 전원에 대한 기소가 취하됐다.  A씨가 여신도들을 동원해 조작극을 벌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A씨가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신도들이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고 말했던 점과 용의자로 지목된 남성들이 “A씨가 교회를 떠나려는 자신들을 잡아두기 위해 모함을 하고 있다.”고 말한 점 등을 들어 내부 분열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A씨는 현재 이번 사건과 별개로 캐나다 오렌지빌에서 여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은 내년 1월 열릴 예정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대출규제 ‘무풍지대’ 손본다

    대출규제 ‘무풍지대’ 손본다

    최근 3년간 몸집을 크게 불린 농협, 수협, 신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회사에 대해 금융당국이 까다로운 건전성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전체 대출(여신) 가운데 연체되거나 돌려받기 힘든 금액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는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2~10배 높이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재 3000만원인 비과세 예금 한도를 2000만원으로 줄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된다. 금융감독원은 6일 상호금융회사의 대출 가운데 연체 1개월 미만인 정상 여신과 1~3개월 연체된 요주의 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 최소적립비율을 일반 은행 수준으로 높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상호금융회사는 정상 여신에 대해 0.5%, 요주의 여신은 1%의 대손충당금을 쌓고 있다.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은행의 대손충당금 최소적립비율은 정상 여신의 1%, 요주의 여신의 10%다. ●비과세예금 한도 2000만원으로 금감원 방침대로 감독규정 세칙이 개정되면 적립률이 2~10배 증가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충당금 적립기준을 한꺼번에 은행 수준에 맞추면 상호금융회사의 부담이 커지므로 업계와 협의해서 수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연체가 3개월 이상인 고정 이하 여신, 연체 3~12개월인 회수 의문, 연체 12개월 이상인 추정 손실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각각 20%, 75%, 100%인 현행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상호금융회사의 비과세예금 한도를 3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한 뒤 필요할 경우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2009년부터 상호금융 예금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한도가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예금이 큰 폭으로 유입됐다는 판단에서다. 상호금융회사의 총자산은 2007년 말 233조원에서 지난 3월 말 311조원으로 33.5% 증가했다. 총여신도 146조원에서 186조원으로 27.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 총여신이 22.8%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증가세다. 금융당국이 은행과 저축은행의 주택담보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제동을 걸면서 대출 수요가 ‘무풍지대’인 상호금융회사로 몰린 것이 자산 급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저신용자의 거래 비중이 상호금융은 28.0%로 은행(5.7%)보다 높은 점이 우려 대상이다. 금리 인상 등으로 서민들이 은행 빚을 갚기 어려워지면 상호금융이 가계부채 폭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 7~10등급 28% ‘우려’ 이런 이유로 금감원은 200조원에 달하는 상호금융 대출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내놓은 방안 외에도 최대 80%까지 허용돼 온 상호금융회사 ‘권역외 대출’의 담보가치 인정비율(LTV)을 60%로 낮추고 여러 신협이 공동 대출단을 꾸리는 ‘신디케이트론’을 총대출의 30% 이하로 맞추도록 하는 등 대출 규제책을 내놓은 바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지방은행, 수도권 공격적 마케팅 왜

    지방은행, 수도권 공격적 마케팅 왜

    ‘작지만 강한’ 지방은행들이 수도권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서울 지역 영업점에 대해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지방은행들이 최근 들어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다시 점포 수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역에서 한계를 느낀 지방은행들이 자금 사정이 풍부한 서울에서 성장 가능성을 찾기 위한 방안이다. 지방은행의 수도권 점포들은 여·수신 실적이 좋고 시장도 넓어 영업망 확충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국 6개 지방은행이 서울에서 영업 중인 점포는 총 21개. 은행별로는 광주은행이 6개로 가장 많고 전북은행이 4개로 두 번째다. 부산·대구·경남은행은 각각 3곳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고, 제주은행도 지점 2개를 개설했다. 지방은행들은 1~2년 전부터 점포 수를 늘리고 서울지점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수도권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북은행은 당초 6개였던 서울 점포를 외환위기 이후 1개로 줄였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늘리고 있다. 2010년 강남과 여의도에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올 3월 서초지점을 여는 등 영업망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다시 1~2개 점포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또 본점에 있던 자금부와 투자금융부 기능을 서울지점으로 이관해 수도권 영업을 대폭 강화했다. 광주은행은 지방은행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서울과 인천,부평 등지에서 10여개 지점을 운영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서울 지역 점포 3개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다. 하지만 지난해 구로금융센터지점과 마포금융센터지점 등 2곳을 추가 개설하는 등 모두 6개 지점으로 다시 늘렸다. 부산은행의 수도권 점포 수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서울 지역 9개, 인천 1개 등 총 10개였으나, 현재는 서울영업부, 여의도, 강남지점 등 3곳이 영업 중이다. 지난 3월 금융지주 출범을 계기로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점포망을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 안으로 서울 구로디지털공단 지역에 제4지점을 개점할 방침이다. 이 같은 영업망 확대에 힘입어 지방은행들의 수도권 점포의 영업실적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수도권 점포의 여·수신고는 각 은행의 전체 영업실적에서 예상 밖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한계상황에 놓인 지방과 달리 성장 가능성이 높아 지방은행의 수도권 공략을 촉진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전북은행의 경우 2010년 말 서울 지역 3개 점포의 수신고가 1조 561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북은행 전체 86개 점포의 총수신고 7조 833억원의 22%를 차지하는 것이다. 여신도 7756억원으로 전체 여신규모 5조 7114억원의 13.6%를 차지했다. 광주은행의 2010년 말 수도권 지점 수신고는 3조 1470억원으로 전체의 25.45%, 여신은 1조 7450억원으로 15.9%에 이른다. 부산은행의 경우 수도권 여신이 2조원으로 2011년 현재 총여신액 23조 4000여억원의 8.6%를 차지한다. 수신 규모는 3조 8000여억원으로 전체 수신의 14.5%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은행도 전체 수신 실적 23조 8112억원 가운데 3개 수도권 지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5.7%인 1조 3585억원이다. 여신은 18조 2379억원 가운데 11.7%인 2조 1420억원에 이른다. 지방은행들이 수도권 공략을 강화하는 것은 연고 지역은 이미 한계상황에 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방은 인구가 점차 줄고 있고, 노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될 뿐 아니라 금융시장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이미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반면 수도권은 자금이 풍부하고 시장이 넓어 성장 모멘텀을 만들려면 수도권 진출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에 진출한 지방은행들은 자본이 거대하고 영업망이 촘촘한 시중은행과 정면승부를 하기보다는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주로 출향 인사와 지역에 연고를 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 애향심 마케팅’이다. 제2금융권의 높은 금리에 부담을 느끼는 수도권 중소기업도 지방은행 수도권 점포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다. 시중은행보다 문턱을 낮춰 알뜰한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으로 지방은행들의 순익과 건전성도 크게 높아졌다. 전체적인 이익 규모는 시중은행과 비교할 수 없지만 자본 대비 순익 실적은 훨씬 좋다. 대구은행은 올해 1분기 순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2% 증가한 100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순이익도 2274억원으로 전년에 견줘 33.4% 증가했다. 올해 순이익은 3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북은행의 올 1분기 순익은 219억원이다. 사상 최고 실적이다. 전북은행은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우리캐피탈을 인수하는 등 영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본점이 있는 광주광역시에만 점포가 70여개로 포화 상태에 이른 만큼 향후 수도권을 주요 공략 타깃으로 삼고 영업망을 넓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고]

    ●이성원(전 한국석유공사 기획조정실장)씨 모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010-2252 ●고경남(회계법인 손&고 대표)승남(트라이포드코리아 부장)희정(킨더슐레대치원 원장)희경(유니레버코리아 상무)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4 ●권영제(오성프라스틱 대표이사)씨 별세 오석(오성프라스틱 상무)오상(〃 부장)오선(〃 이사)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2)3010-2265 ●김명주(전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증경회장)씨 별세 강대인(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씨 모친상 김광국(사업)김정석(〃)씨 장모상 16일 서울대병원, 발인예배(경동교회) 19일 오전 8시 30분 (02)2072-2011 ●심재길(TJB 보도국 편집팀 기자)씨 장인상 17일 대전 을지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30분 (042)471-1653 ●김용님(전 대전 대성여중 교감)씨 별세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석현(대전평안정형외과 원장)씨 모친상 1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2258-5957 ●정호진(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총무이사)석진(하나투어 유럽본부장)씨 모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010-2231 ●여필구(한국예탁결제원 총무팀 차장)씨 모친상 16일 전남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62)220-6981 ●신동효(전 콴타스항공 지점장)동선(전 JC PENNY 상무)동익(홍익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동희(베스트공인중개사)씨 부친상 주상곤(언론인)씨 장인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3010-2237 ●이기홍(국민카드 마포지점 팀장)상용(하나대투증권 퇴직연금사업부 차장)현숙(신한데이타시스템 팀장)씨 부친상 김양우(사업)성기중(오스코케미컬 부사장)이관훈(사업)조현섭(〃)씨 장인상 안혜원(삼성화재)씨 시부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010-2294 ●조철현(아시아경제 건설부동산부 차장)씨 부친상 박대용(세원피쉬 대표이사)정종영(농협중앙회 경남지역본부 과장)씨 장인상 16일 경남 남해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9시 (055)860-6430, 6431 ●이우범(충북지방경찰청 정보3계장)청범(보은경찰서 읍내지구대 경사)씨 부친상 16일 충북 보은 금강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9시 (043)544-6693 ●이상수(전 보광훼미리마트 부회장)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3410-6912 ●양창석(사업)원석(KBS 사회공헌부 부장)영석(우석대 교수)호석(한국은행 본점 차장)옥석(변호사)씨 부친상 17일 전북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63)250-2450 ●고태현(경기방송 기자)씨 모친상 17일 의정부성모병원, 발인 19일 오전 11시 (031)820-5053
  •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어느 미남 승려와 폐결핵 환자 아가씨와의 청순한 러브 스토리. 원효(元曉) 대선사가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파계한 끝에 설총(薛聰)을 낳았다는 천년 전의 로맨스처럼 지현(知玄)스님의 로맨스는 물씬한 감동마저 준다. 지금은 환속하여 부산(釜山)에서 알뜰하게 살고 있다는 그들의 파계 장소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돌산도(突山島) 향일암(向日庵)에 얽힌 얘기-.  전남(全南) 여수(麗水)시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돌산(突山)섬이 나온다. 여천(麗川)군 돌산(突山)면 율촌(栗村)리에서 1km쯤 북쪽에 금오산(金鰲山)이 있고 산에는 흔들바위란 게 있다. 집채만큼 큰 바윗덩이가 사람이 밀면 흔들거린다는 기묘한 바위다. 이 흔들바위 밑에 까치집처럼 앙증맞은 향일암(向日庵)이란 암자가 있다. 하지만 이 암자의 유래는 거창하다. 신라 선덕(善德)여왕 13년(사기 639년)에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을 본거지로 승군(僧軍)이 활약했다는 곳. 그 건 그렇고 이 일대 경치가 장관이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그리고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기막힌 절경이다.  1957년이면 17년전. 키가 헌칠하고 미목수려한 스님 한분이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로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왔다. 당시 나이 27살, 법명은 지현(知玄), 속명은 박영식(가명), 호는 호월(湖月).  경남 남해(南海)가 고향인 지현(知玄)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에 출가,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10년을 목표로 수도하다가 마지막 3년을 채우기 위해 향일암(向日庵)을 찾은 것이다. 지현(知玄)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에 사바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向日庵)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곡식 위의 제비같은 탈속(脫俗)의 지현(知玄)스님, 게다가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인기스님이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59년 봄이 되었다. 향일암(向日庵)에서 1km 떨어진 해변가 율촌(栗村)마을에 양장 차림의 미인 아가씨가 찾아들었다. 광주(光州)에 산다는 박애희(朴愛姬)양(23·가명). 폐결핵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차 이모가 사는 율촌(栗村)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의 홍보가 요정처럼 기막히게 예쁜 미인.  아열대성 식물인 동백·산죽(山竹)·비화(飛花)가 온 섬을 뒤덮고 바위 틈에 도사린 석란(石蘭)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뒤덮어 6순 환갑이라 해도 마음 설렐 판이었다.  박(朴)양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의 탓(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띈 남성이 바로 지현(知玄)스님.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모습을 취한듯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일암(向日庵)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지현(知玄)스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 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 이번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하다가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 되는 여인은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知玄)스님에게 달려가『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시키게 녹두물이나 먹이시오』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녹두를 갈아 먹였다.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59년이 저물고 새해 음력 1월14일 새벽 4시. 지현(知玄)스님은 화엄경(華嚴經)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박(朴)양이 흔들바위에 맨발로 서서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찰나였다.  혼비백산한 지현(知玄)스님.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스님과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나위가 없었다.『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박(朴)양은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29년동안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 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知玄)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65년 여름. 대구(大邱) D사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지현(知玄)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면서 모녀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가가대소,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한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2녀를 두었다.  지난 71년 5월. 향일암(向日庵)을 중창할때 속인 지현(知玄)부부는 찬조금 5만원을 보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찾아간 기자에게 사진찍기를 거부-.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흔들바위」는 오늘도 의연하다. <麗水=金德鉉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15일 제6권 28호 통권 제248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홍대여신 ‘요조’ 가수·배우·DJ·CF모델로 종횡무진… 신세대 아이콘으로 떠오르다

    홍대여신 ‘요조’ 가수·배우·DJ·CF모델로 종횡무진… 신세대 아이콘으로 떠오르다

    멀티 엔터테이너는 아이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인디 뮤지션 가운데에서도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홍대 여신’으로 잘 알려진, 그러나 이 호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싱어송라이터 요조(본명 신수진·29)가 그렇다. 장기하와 함께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신세대 아이콘으로 불쑥 떠오른 그녀다. CF에 출연하고 사진전에도 얼굴을 비추더니 최근에는 공중파 라디오(KBS FM) DJ 자리까지 꿰찼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에도 출연했다. 그 와중에 2년 만에 새 앨범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도 발표했다. 최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요조를 만났다. ●가수·배우·DJ… 아이돌 못지않은 ‘멀티엔터’ →수식어가 너무 많다.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가수, 영화배우’로 소개돼 있던데. -스무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한 뒤로 가장 고민이 컸던 부분이 이름 뒤에 직업을 뭐라고 적을까였다. 도대체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하는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다. 첫 앨범을 냈을 때 직업란에 뮤지션이라고 적을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그때 기분이 어렴풋이 든다. →2010년에만 세편의 영화에 나왔다. 최근 ‘조금 더 가까이’ ‘카페 느와르’에서는 정극 연기를 펼쳤는데, 영화를 통해 얻은 게 있나. -원래 나의 표현 수단은 음악인데 영화로 해야 하니까 왼손으로 양치질하고 왼손으로 밥 먹고, 뒤로 걷는 기분이었다.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하는 것 같아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다. 짜릿함도 느꼈다. →‘외도’한다고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을 텐데. -면전에서 직접 욕하는 사람은 없더라(웃음). (정색하며) 스스로 음악이 뒷전이었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내 정체성은 음악하는 사람이다. 음악을 하며 만난 인연에 충실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다. ●“나의 정체성은 음악하는 사람” →음악 얘기를 해보자. 새콤달콤, 상큼발랄이 요조의 이미지인데 이번 앨범은 느낌이 다르다. -일부러 다르게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며 맞는 음악을 찾아가는 것 같다. 좋게 이야기하면 성숙해졌다고 할까. →왠지 (가수) 장필순 느낌이 묻어났다. -그런가? 기분 좋은 말이다. 예전부터 정말 좋아했던 선배님이다.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존경했다. (장필순 선배의) 8년 만의 콘서트도 직접 찾아가 봤다. →앨범 표지의 기린이 인상적인데. -(눈을 빛내며 카메라를 꺼내들더니) 지난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했을 때 우연히 찍었다.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다. (목이 길어) 남들보다 훨씬 멀리 볼 수 있는데 광활한 초원에 아무것도 없다면 얼마나 외롭겠나. 함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들이 이번 앨범에 많이 들어가 있는데, 기린이 이를 잘 표현하는 것 같아 사용했다. 원래 고독하고 쓸쓸함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기도 하고…. →‘홍대 여신’으로도 유명하다. -그 별명엔 관심없다. 어떤 분은 홍대 여신 계보를 말하기도 한다. 계보? 그런 건 잘 모른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인터뷰할 때 ‘그 이야기는 빼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솔직히 지겹다는 생각도 한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지금 홍대엔 신전도, 여신도 넘쳐나니까(웃음). ●주류 비주류 경계 무너뜨린 아이콘 →인디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것도 부담스럽겠다. -기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장단점이 있다.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홍대 문화’ 전반을 대표하는 것으로 비쳐져 반감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홍대 문화가 관심을 받고, 보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 힙합, 랩을 했다고 들었는데. -중·고등학교 때 갖고 다닌 CD 케이스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흑인일 정도로 흑인음악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조금씩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포크가 더 좋아지고, 기타 소리가 더 좋아졌다. →그래서인가. 노랫말에서 감수성이 넘쳐난다. -말을 잘 못한다. 느릿느릿하니까 남들이 답답하단다. 싸울 때도 글로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말로 하면 안 되니까(웃음). 내게는 말보다 글이 더 편하고 좋은 방식이다. →라디오 DJ 활동은 어떤가.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느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너무 빨리 세상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조금 더 낭만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뮤지션으로서의 지향점은.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보다는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완전히 교감하고 찰떡처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길게길게 가고 싶다. 그들이 몇 명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여신도 성추행 파문 삼일교회 ‘스타목사’ 끝내…

    여신도 성추행 파문 삼일교회 ‘스타목사’ 끝내…

    여신도 성추행 사실을 시인하며 사임 의사를 공개 표명한 서울 용산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다수의 네티즌들이 “목사님이 성추행이라니 부끄럽다”, “말세가 다가오나보다” 등 개탄하는 입장을 보인 반면 일부는 ”사실을 공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가상하다”, “회개하고 반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동정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한편 전 목사가 몸을 담았던 삼일교회 홈페이지에는 전 목사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다수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현재 신도들 사이에서는 전목사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거나 담임목사로 삼일교회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동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전 목사는 지난 2009년 11월 중순께 자신의 집무실에서 30대 초반의 여신도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그간 성추행 혐의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던 전 목사는 1일 오전 삼일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작년 가을 무렵 교회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사실이 있어 이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난 7월 당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어 삼일교회를 비롯한 대한민국 성도들과 선후배 목사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당회에서 사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좀더 하나님 앞에 회개와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겠기에 교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현재의 심경을 고백했다. 전병욱 목사는 30대 초반 삼일교회를 개척한 뒤 ‘스타목사’로 젊은 성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이후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한국 교회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 전병욱 목사 트위터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저축銀 잠재부실 6개월새 47%↑

    저축은행의 잠재부실 규모가 6개월만에 47.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정옥임(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저축은행들의 요주의 여신규모는 16조 6193억원으로 지난해 말(11조 2864억원)에 비해 5조 3329억원(47.3%)이 늘었다. 이는 저축은행 총 여신(65조 9325억원)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요주의 여신은 여신건전성 분류기준상 이미 부실이 발생한 채권을 의미하는 ‘고정 이하 단계’의 직전 단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언제든 부실화될 수 있는 잠재부실 대출이다. 저축은행은 은행권에서 이미 부실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는 3개월 이상~6개월 미만의 연체 채권을 요주의 여신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부실 위험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저축은행의 요주의 여신이 급증한 것은 기업 운영자금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기업대출의 연체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기업운영자금 등에 대한 대출 중 요주의 여신은 지난 6월 7조 558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 5081억원이 늘었고, 부동산 관련 대출 중 요주의 여신도 8조 758억원으로 올 들어 1조원 넘게 불어났다. 반면 가계대출 중 요주의 여신은 322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897억원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들의 대비는 오히려 허술해졌다. 저축은행들이 쌓은 요주의 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 규모는 지난 6월 5674억원으로 지난해 말(5692억원)에 비해 18억원 감소했다. 한편 6개월 이상 연체부터 포함되는 저축은행의 고정 이하 여신규모는 6월 말 5조 8592억원으로 지난해 말(5조 6252억원)보다 4.2%(2340억) 증가했다. 건전성 기준상 ‘정상’으로 분류되는 여신은 43조 4539억원으로 저축은행 전체 여신의 65.9%에 그쳐 지난해 말의 73.3%(46조3118억원)보다 감소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여신도1백명 옷벗겨 동영상 찍고… ‘음란포교승’

    여신도1백명 옷벗겨 동영상 찍고… ‘음란포교승’

    캄보디아의 한 수도승이 절 내에서 나체의 여성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수차례 촬영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현지 경찰은 네트 카이(37)라는 이름의 수도승이 기도를 위해 절을 방문한 여성들을 속여 옷을 벗게 하고 이를 몰래 찍은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가 2008년부터 최근까지 100명이 넘는 여성이 등장하는 영상을 만들어왔으며, 이를 음란동영상 공유사이트 등에 업로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휴대폰 등의 장비를 이용해 현장에서 직접 이를 유포하기도 하는 등 수도승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짓을 벌여왔다. 경찰은 “이 수도승은 기도를 하러 온 여성에게 ‘신의 기운을 받으려면 신성한 물에서 목욕을 해야 한다.’고 설득한 뒤, 이를 몰래 촬영하는 수법을 썼다.”면서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의 행동은 여러 수도승 뿐 아니라 불도신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면서 “풍기문란죄 등을 적용해 징역이 선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수도승은 5만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밥 짓는 수행자’ 공양주 보살들 애환

    ‘밥 짓는 수행자’ 공양주 보살들 애환

    보살(菩薩)은 본래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으나 중생을 구제하고자 해탈을 미루고 있는 성인’을 뜻한다. 그런데 절간에서 일상 쓰는 보살이란 호칭은 여신도, 특히 공양간(부엌)에서 밥 짓는 공양주를 지칭한다. 음식을 만들어 뭇 대중을 먹이는 행위를 보살의 무한한 자비심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간 ‘인연으로 밥을 짓다’(함영 지음, 타임팝 펴냄)는 공양주들을 ‘밥 짓는 수행자’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대부분 절의 공양주가 일종의 직업이 돼 버렸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양주는 불가의 가르침과 인연이 없이는 하기 힘든 수행자와 같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공양주들의 수행은 스님들의 수행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스님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한다면 공양주 보살들은 ‘남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한다. 이들의 수행은 정진하는 스님들의 건강을 지키고 꾸준한 수행의 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책은 우선 북한산 광륜사에서 수십 년간 공양간을 지켜온 공양주 ‘자성월 할매’와 부공양주 ‘공덕심 할매’의 수행기를 전한다. 두 공양주는 평생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함)와 일중식(日中食·하루 한 끼만 먹음)을 실천했던 청화(1924~2003) 대종사의 밥상을 챙겨온 보살들이다. 큰 깨달음을 이룬 스님 뒤에는 이런 고행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단을 꼼꼼히 챙겼던 공양주 보살들의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이어 소개하는 전남 용천사 전정희 보살과 선덕행 보살도 만만치 않다. 30년간 공양간에서 손발을 맞춰 온 두 보살은 선방(禪房)에서 함께 수행하는 ‘도반(道伴)’과 다름이 없다. 이들은 서로를 이끌어주는 한편, 넉넉한 웃음과 인심으로 ‘스님들의 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해 나간다. 각종 불교 매체에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인 글쓴이는 오랜 현장 취재를 통해 공양간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했다. 책에는 공양주들의 생생한 육성과 함께, 스님들이 먹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흉내낸 탕수채, 떡국, 팥죽, 각종 장아찌 등 사찰음식의 요리비법 30가지도 전한다. 티베트 스님들이 사는 부산 광성사의 이국적인 공양간 모습도 전한다. 1만 48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성당앞 ‘묻지마 살인’ 용의자 검거

    광주광역시의 한 성당 앞에서 40대 여성 신자를 살해한 사건의 30대 남성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용의자는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해 최근 교회 근처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건과의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9일 광주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40분쯤 광산구 모 성당에서 여신도 염모(48)씨를 살해한 혐의로 박모(38)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은 박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범행 당시 입었던 옷이나 신발, 범행 차량 등에 남은 혈흔 등을 토대로 여신도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또 지난 5월20일 오후 9시20분쯤 광주 북구 용봉동 모 교회 앞에서 발생한 여의사 안모(44)씨 살인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시인했다가 “모르는 일”이라며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에따라 여의사 살인 사건과 이보다 앞선 3월19일 북구 중흥동 모 교회 앞에서 발생한 50대 회사원 피살사건과의 연관성도 캐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휘청대는 실물경제] 대기업도 돈줄탄다

    [휘청대는 실물경제] 대기업도 돈줄탄다

    지난 20일 한 국책은행장은 대기업 간부와 마주앉았다.“도와주지 않으면 (회사가)넘어간다.”는 집요한 자금지원 요청 앞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 은행장은 “대기업들이 (주거래)시중은행으로부터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자 국책은행에 몰려오고 있다.”고 전했다.‘그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기로 했느냐.’는 반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업계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의 고위 관계자도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거래하는 모 10대 그룹 계열사에서 자금을 요청해오는데, 기존 여신도 회수가 안 되고 있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대기업들도 연말 결제 수요 등을 앞두고 돈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국책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창구까지 기웃대고 있다.10대 그룹은 인수·합병(M&A) 계획 등을 취소하며 현금 비축액을 늘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을 뿐, 연말 보릿고개(자금난)가 높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은행권의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9월 3조 2000억원에서 10월 5조원으로 늘었다. 이는 기업들이 자금조달 창구를 은행으로 바꾸고 있음을 의미한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 등 직접 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자금사정 실사지수( BSI)는 10월에 75로 전월(81)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월별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최저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의식해 신규 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데다 정부마저 눈치를 살피느라 중소기업에 자금을 우선 배정하는 탓이다. 실제 우리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지난 21일 현재 7960억원에 그쳤다. 이같은 추세라면 10월(2조 7840억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정부가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 며 줄곧 내세웠던 부채 비율도 들썩이는 양상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30대 그룹 계열 164개 상장기업(금융회사 제외) 차입금은 9월 말 현재 49조 62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7% 증가했다.1년 이내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단기 차입금은 약 29조원으로 75.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자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현금 확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의 12월 결산법인 가운데 비교 가능한 559개사의 현금성 자산(현금+만기1년 이내 단기 금융자산)은 9월 말 현재 70조 9794억원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보다 9조 1807억원(14.86%) 늘었다. 특히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43조 113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8.57%나 늘었다.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7조 692억원)는 얼마전 미국 샌디스크 인수를 포기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경제위기 해소책은 녹색성장”

    “경제 위기의 해소책은 녹색성장이다.” 도이치뱅크그룹은 최근 발간한 ‘2009년 기후변화 투자 백서’에서 “최근의 금융 및 경제 위기로 각국 정부는 향후 2~3년 동안 불황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그린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할 역사적인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녹색성장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2050년까지 무려 45조달러(약 6경 3000조원)라는 엄청난 투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클린 에너지 발전 및 저장 등 인프라 ▲물, 농업, 쓰레기 등 환경자원 관리 ▲에너지 및 자원의 효율적 이용 ▲환경보호 및 비즈니스 컨설팅 등 환경 서비스를 주요 투자 분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또 “정부는 녹색성장을 부양하기 위해 세금혜택, 보조금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사용하고, 국제 탄소시장에서 탄소 가격이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기업은 가급적 빨리 신재생에너지의 가격을 기존의 화석연료 가격에 근접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지난 27일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창립 총회 강연에서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새로운 성장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면서 “녹색 산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박 수석은 “녹색성장은 국제 유가와 관계 없이 추진되고,2030년까지 100조원이 투자될 것”이라면서 “11월 중에 마스터 플랜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특히 “앞으로 세금도 소득에 대한 과세에서 탄소에 대한 과세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이와 함께 “기업 여신도 친환경 정도에 따라 차등화하고 녹색 기업에는 정책금융 지원, 대출 지급보증 등의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JMS 교주 정명석씨 구속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정인창)는 22일 여신도들을 성폭한 혐의로 JMS 교주 정명석(63)씨를 구속수감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홍승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소명이 충분하고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송환된 만큼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씨는 1999년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자 해외로 출국해 인터폴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JMS교주 정명석씨 9년만에 송환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검찰 내사를 받다 해외로 달아난 JMS교주 정명석(63)씨가 도피 9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정인창)는 20일 중국 정부와 법무부로부터 정씨를 넘겨 받아 성폭행 혐의 등을 다시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정씨의 혐의가 확정되면 22일쯤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정씨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정씨의 해외 도피 경위와 추가 범죄 혐의도 수사할 계획이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부고]

    ●김기재(전 행정자치부 장관)익재(자영업)씨 모친상 15일 경남 진주시 엠마우스요양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55)749-9503 ●유수언(통영상공회의소 회장)광언(전 정무1차관)기언(극동수산 대표)승준(사업)대준(전 한양증권 차장)상준(삼성화재 부장)씨 모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410-6915 ●임형식(전 스포츠서울 사진부장·사업국장)씨 모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3410-6905 ●이현숙(대한적십자사 부총재)진흥(연합정보써비스 대표)은숙씨 부친상 정교용(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김기홍(전 KADO 감사)씨 빙부상 유근숙(기장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총무)씨 시부상 14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2650-2742 ●이홍길(변호사)홍근(사업)홍식(〃)홍범(현대카드·현대캐피탈 경영법무실장)씨 모친상 고영호(미국 거주)씨 빙모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6시 (02)3010-2292 ●이재형(현대증권 광화문지점장)씨 모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010-2295 ●최건영(사업)무영(미국 거주)찬영(사업)덕영(〃)봉자(캐나다 거주)씨 부친상 성왕기(사업)김현수(캐나다 거주)박승순(현대건설 건축부 상무)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2)3010-2237 ●서철원(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씨 부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32 ●엄세현(전 대한방직 부사장)씨 별세 김명자(약사)씨 상부 엄기문(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씨 부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2)3410-6902 ●김효종(법무법인 한승 고문변호사)씨 빙부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410-6918 ●최인석(미래에셋)정수(한강손해사정)씨 부친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010-2233 ●김동식(재미 사업)성식(연세탑비뇨기과 원장)씨 부친상 이승열(SBS 보도제작국장)오재교(성동경찰서 정보과)씨 빙부상 14일 서울위생병원, 발인 16일 오전 6시 (02)2210-3425 ●박노석(동인종합건설 부장)태석(사업)진석(KT파워텔 마케팅전략실장)씨 부친상 양재옥(경인도시개발)씨 시부상 15일 건국대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2030-7901 ●손영일(아시아나IDT 상무)씨 상배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3010-2231 ●강성만(재미 사업)성호(사업)경임(부이그건설 디자이너)씨 부친상 하성근(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61 ●강유원(전 정보통신부 서울체신청장)씨 별세 태욱(포스코 연구위원)금희(중앙대·총신대 강사)씨 부친상 백운화(KISTI 전문연구위원)장태평(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씨 빙부상 15일 서울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2072-2016
  • 中법원 “교주 정명석씨 한국 인도” 판결

    중국 법원이 JMS 교주 정명석씨의 신병을 한국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중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1일 “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에서 지난 달 28일 정씨의 신병을 한국에 인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법원 판결에 따라 정씨의 신병이 바로 한국에 인도되는 것은 아니고 베이징 최고인민법원의 비준에 이어 국무원의 결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한국으로 신병인도가 이뤄지기까지는 수 개월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1999년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당국이 내사에 나서자 해외로 출국해 도피생활을 해오던 중 중국 안산시에서 한국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선양 연합뉴스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 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무심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 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무심 스님

    “모든 것을 내려놓게나.” 몸과 마음을 비우라는 전 화계사 조실 숭산(2004년 입적) 스님의 ‘방하착(放下着)’ 한마디에 미련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한국불교에 귀의한 무상사 주지 무심(無心·49·본명 조슈아 헨리 레아)스님. 미국 보스턴대 화학과를 졸업한 이 미국의 과학도를 한국 땅의 ‘눈 푸른 납자(衲子)’로 변신시킨 건 무엇일까. 이 푸른 눈의 과학도에게 많은 길 중에서도 하필이면 한국불교를 택해 한국 승가에 몸담게 한 것은 불법(佛法)인가, 아니면 거역 못할 인연인가. 언제 어디서건 “나는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무심 스님.1984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아 한국생활을 한 지 23년째를 맞은 그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무상사(無上寺·충남 계룡시 두마면 향한리 산 51의9)는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과 함께 한국의 선(禪)불교를 만방에 전파하는 양대 수행도량. 계룡산 국사봉 아래 국제선원과 대웅전, 요사채의 한옥식 건물 세 채를 갖춰 망집을 버리고 ‘참 나’(眞我)를 찾기 위해 물 건너 산 넘어 찾아드는 외국인 스님들을 맞아주는 이색지대이다. 지금은 미국, 말레이시아, 폴란드, 체코, 리투아니아, 홍콩의 스님과 행자 10명이 편하게 살고 있지만 안거 때면 참선 정진하는 20여명의 외국인 납자들로 선풍이 시퍼렇다. 이 무상사에서 4년째 외국인 수행자들을 이끄는 주지 겸 지도법사 무심 스님은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다. 평소엔 웃음 많은 넉넉한 친구이지만 흐트러진 수행승들에겐 어김없이 불호령를 내리는 ‘계룡산 호랑이’인 것이다. ●보스턴대 출신 미국의 과학도 ‘불교 입문´ 무상사(無上寺).‘부처님 앞에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이 모든 게 평등하다.’는 대웅전의 ‘무상사’편액을 바라보는 스님의 각오는 날마다 새롭다. 대학시절 명상과 요가에 빠져 있던 그에게 숭산 스님과의 만남은 세상의 미명을 밝히는 큰 길로 불쑥 다가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힌두교 수행자를 따라 간 토굴에 불상이며 십자가며 힌두신이며 여러 종교 상징들이 있었는데 유독 불상에 눈길이 가더란다.“불교를 알고 싶다.”는 말에 돌아온 “불교를 배우려 들지 말고 살아 있는 부처님을 찾아보라.”는 힌두교 수행자의 말에 호기심만 더 쌓일 뿐이었다. 케임브리지 선원을 찾아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듣고도 의심이 풀리지 않아 귀찮을 만큼 끈질기게 수행법을 묻던중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수행이다.”는 말에 눈앞이 밝아졌다. 스님 말마따나 “수행기술이나 방편을 알려줄줄 알았는데 의외의 내려놓으라는 ‘방하착’ 한마디에 눈 귀가 열린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식품회사에 1년반을 다니면서도 ‘방하착’이 내내 머리에 휘돌아 결국 숭산 스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행자가 됐다. ●수덕사 등 한국의 유명 선원에서 안거 34차례 화계사에 온 게 1984년 4월 말이다. 수덕사, 정혜사, 신원사를 비롯해 전국의 이름난 선원에서 안거에 든 것만 해도 34차례. 숭산 스님의 법문에 감화돼 머리를 깎고 한국으로 출가한 50여명의 외국인 스님 가운데 가장 먼저 조계종 비구계를 받은 인물이다.‘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원을 받아들인 범어사 스님들이 머리를 깎아주었다.‘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유명한 현각 스님의 사형이기도 하다. 부산 흥법사 주지 심산 스님과 대구 관음사 회주 우학 스님은 당시 부산 범어사에서 함께 비구계를 받은 한국인 도반들이다. “나를 버리려 했던 내가 무거운 짐을 진 껍데기가 돼있음을 알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남의 생각과 손에만 이끌려 살고 있는 나였지요.” 2001년 화계사 국제선원장 시절이었다. 후배들 눈치도 보이고 해서 “내 손으로 뭔가 하겠다.”는 뜻을 숭산 스님에게 간곡히 알린 뒤 부산으로 내려가 무작정 시작한게 남산국제선원이다. 한국의 외국인 스님 가운데 가장 먼저 일선포교에 나선 것이다. 한국인 신도들을 직접 대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범어사 밑의 포교당으로 쓰이던 상가 건물의 방 하나를 빌려 ‘남산국제선원’ 간판을 붙이고 나니 신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엿하게 선원의 모양새를 갖춰갈 무렵 무상사의 주지 스님이 사정이 생겨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가는 바람에 무상사로 옮겨와야 했다. “당시 신도들의 열성과 신심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어요. 무상사에 와서도 신도들의 요청으로 매주 두번씩 부산에 내려가 법문이며 수행지도를 해야 했지요.” 이후 비구니 스님이 선원을 맡아 어렵게 꾸려갔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사연은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무상사에 와선 대웅전도 번듯하게 세워놓았고 지금은 건물들에 단청을 입히느라 바쁘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단청 불사에 매달려 손님 맞으랴 건물 손질하랴, 한참 만에야 스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처님의 상호를 떠올리게 하는 둥근 얼굴이다. 유난히 푸른 눈만 아니라면 걷는 폼새나 말하는 투며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이런저런 불사들을 모두 도맡아 하자니 돈도 있어야 하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여간 어려운게 아니에요. 종단 지원 없이 모든 것을 다하려니 더 힘들어요.” 종각도 세워야 하고 숭산 스님 부도탑도 모셔야 하고…. 이런저런 욕심(?)을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이젠 사판승이 다 되었다.”며 겸연쩍어하는 스님의 말끝을 잡았다.“한국불교에서 무엇을 얻었느냐.”는 물음에 한참의 침묵 끝에 날 선(?) 말을 돌려준다.“한국불교에서 무엇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무엇을 갚고 살아야할지를 고민 중입니다.” 한국의 불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수행전통을 오롯이 갖춘 채 염불과 불경 공부를 겸하는 통(通)불교의 성격을 갖지만 한국의 스님들은 이 ‘귀중한 보물’을 잘 모르고 사는 게 안타깝단다. 한 절집에서 이렇게 큰 일들이 어그러지지 않고 순탄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게 신기하다고 한다. 다그쳐 물었다. 발심(發心) 출가의 화두, 즉 ‘얼마나 내려놓았느냐.’는 미련한 질문에 서슴없는 답이 나왔다.“말에 집착함은 곧 허상에 쫓기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려놓으라는 숭산 스님의 방하착도 길을 제대로 찾으라는 방편에 다름 아니지요.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고 노력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무상사에선 남녀구별 없이 한방에서 함께 참선 ‘분별없는 말은 오해를 낳고 큰 화로 이어진다.’는 평범한 경계가 무상사에선 혹독한 묵언수행의 전통으로 서 있다.“묵언수행은 참회의 방편이 아니라 나를 찾는 수행의 큰 길”이라는 무심 스님의 지론을 따르는 무상사의 외국인 스님들은 보름, 수개월, 심지어는 수년간 묵언수행을 계속한다. 수행을 깨는 납자들은 가차없이 쫓겨난다. 구별과 차별 없는 ‘무상(無上)’의 큰 뜻은 수행공간에서 독특하게 살아 있다. 다른 한국의 선방들이라면 비구, 비구니, 남자신도, 여신도들이 각각 다른 방에서 참선에 들지만 이곳 무상사에선 한 방에서 모두가 함께 한다. 역시 무심 스님의 수행방식이다. 포교는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무심 스님. 얼마전 아프간 피랍사건을 의식한 듯 불쑥 말을 꺼낸다.“한국인이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교나 기독교 포교를 하는 것과 내가 한국에 와서 불교 포교를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인도에서 중국으로 간 달마대사도 처음엔 그곳 불교계에서 박대당했다는 비유와 함께 “나도 한국인들에게 무시와 질시를 숱하게 받았지만 지금 이렇게 한국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한국에 언제까지 살겠느냐.”고 물었다. 답은 생각대로였다.“불법을 위해 사는 사람이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죽는 게 무슨 상관이냐.”면서 한국과 인연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 살 수도 있지만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고 넘긴다. 유대인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불가에 귀의하지 않았으면 나도 역사 교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무심 스님.“깨끗한 물이나 오염된 물이나 모두 허물없이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어머니의 가슴과도 같은 넓은 도량의 한국불교를 택하는 눈 푸른 사람들에게 맑은 정신을 갖도록 하는 게 내 소임”이라며 기자를 배웅했다. ‘내려놓으라.’는 방편과 함께 받은, 스님의 ‘이 뭐꼬.’ 화두풀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계룡산 무상사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무심(無心) 스님은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출생 ●1979년 보스턴대 화학과 재학중 숭산 스님 만나 발심 ●1980년 보스턴대 졸업 ●1984년 한국 입국, 화계사에서 법명 ‘무심´ 받음 ●1986년 범어사에서 비구계 수지 ●1985∼1989년 수덕사, 신원사 등에서 안거 ●1997년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지도법사 자격 받고 공안지도 ●1999년 화계사 국제선원 수석지도법사 ●2002년 부산 남산국제선원 개원 ●2003년∼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및 지도법사
  • 수사기밀누출 국정원직원 해임

    여신도 성폭행 혐의를 받고 도피 중인 종교단체 JMS 교주 정명석씨에게 수사기밀을 알려준 혐의로 현직 검사와 국정원 직원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직원은 해임됐지만, 검찰은 검사를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5개월 이상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0) ‘국내 유일 ㄱ자형 예배당’ 김제 금산교회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0) ‘국내 유일 ㄱ자형 예배당’ 김제 금산교회

    전북 전주와 김제를 잇는 노령산맥 중봉(中峰) 모악산 국립공원의 금산사 입구 마을에 있는 금산교회(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0-1, 담임 이인수 목사). 금산사 반대방향 왼쪽 작은 샛길로 들어서 300m쯤 지점 오른쪽에 한옥 ㄱ자와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서있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작고도 큰 교회’로 통하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 땅 초기 기독교의 ㄱ자 공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개신교 순례성지다. 호남 지역 기독교 건물론 처음으로 문화재에 등록된 건물.‘남녀칠세 부동석’의 유교식 전통을 살려내면서 외래종교의 토착화를 이루기 위한 선교사들의 고민과 아름다운 신앙미덕이 함께 서린 흔치 않은 유산이다. 잘 알려졌듯 모악산 일대는 예로부터 내세지향의 미륵신앙이 결집된 곳.600년(백제 법왕2년) 미륵불교의 총본산이랄 수 있는 금산사가 들어섰고 구한말 ‘후천개벽’을 내건 강일순이 증산교를 시작해 지금도 40여개의 증산교 분파가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신흥종교 단지다. 한때 100개가 넘는 다양한 교단이 몰려들었고 지금도 이 지역 인구의 70% 이상이 불교나 증산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와 신흥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산리는 모악산 아래 새터, 용화, 팟정이(두정리)등 세 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됐는데 그 첫동네가 팟정이인 만큼 팟정이는 바로 금산리의 다른 이름으로도 통했다. 이 팟정리 마을에 금산교회가 들어선 것은 미국 남장로회 개척 선교단원으로 내한한 선교사 테이트(L.B. Tate·한국명 최의덕) 목사에 의해서다. 최의덕 목사는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펴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귀국한 아펜젤러 목사의 강연에 감화를 받아 한국으로 건너온 인물. 호남 지역 선교 책임을 맡아 전주며 정읍을 말로 오가던중 1905년 팟정이에서 마방을 운영하던 이 지역 부호 조덕삼(1870∼1910)을 만나 전교해 결국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조덕삼은 유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면서도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최의덕 목사에게 접근해 결국 하나님에 귀의했으며 선뜻 자신의 사랑채를 교회 건물로 제공했다. 바로 이곳에서 금산교회가 시작된 것이다.3년 후인 1908년 4월 신도가 30여명으로 늘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27평짜리 ㄱ자 기와집인 교회당을 짓게 되었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초기에 이같은 ㄱ자 예배당은 적지않이 세워졌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고, 온전하게 남은 것은 금산교회가 유일하다. 교회의 전체적인 골격은 모악산 너머 배재(梨峴)에 있던 전주 이씨의 재실(齋室)을 옮겼다고 한다. 양반 집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던 재실을 뜯어다 ‘하느님의 성전’을 지은 것이다.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재림때 영원한 하늘의 장막에 들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머물던 거룩한 공간으로 삼았던 것”(이덕주 목사)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ㄱ자 예배당은 전형적인 중부지방 단층 고패집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남북향 다섯칸 집의 북쪽 모서리 동쪽에 두 칸을 이어붙였다. 홑처마의 지붕은 처음엔 초가로 올렸으나 1920년대 함석지붕으로 바꿨다가 광복 후 지금의 시멘트 기와로 올렸다. 남쪽과 동쪽의 출입문은 여닫이 격자무늬 종이문. 통마루 바닥에 올라서면 천장이 그대로 드러나고 칸막이 없는 시원한 통간 건물에 가슴이 확 트인다. 조금씩 휜 소나무를 다듬어 대들보와 종보로 썼는데 천장을 받치는 큰 기둥 없이도 아주 안정되게 느껴진다. ●ㄱ자형 건물은 ‘남녀 7세 부동석´ 유교전통 반영 건물을 ㄱ자형으로 지은 것은 역시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당시의 유교 전통을 반영한 것. 그 때문인지 내부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남북방향의 강당 끝 모서리에 강대상이 있고 그 강대상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만 남녀석을 번갈아 볼 수 있었다. 강단의 좌측에는 여신도들이, 정면에는 남자들이 앉도록 구분해 남자석과 여신도 좌석 사이에 흰 포장을 쳤던 것이다. 강단 오른쪽 바깥 귀퉁이에 지금도 서있는 기둥은 바로 이 포장을 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출입문도 남쪽과 동쪽에 각각 따로 내어 남녀 신자들의 출입을 구별했다.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 장로는 이 교회를 세운 조덕삼의 친 손자. 조 장로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갈 때마다 교회 입구에 이르면 어머니 손을 놓고 아버지와 함께 남자석에 들어가 앉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포장(차단막)은 1940년대에 가서야 걷혔다고 한다. 남자석 천장의 상량문(한문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6절)과 여자석 천장의 상량문(순한글 고린도전서 3장 16∼17절)도 각각 다르게 썼다. 당시 최의덕 목사를 비롯한 교회 건축자들이 ‘남녀7세 부동석’의 습속을 외면했다면 금산교회는 핍박받아 지금까지 지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최의덕 목사가 이곳에 정착할 무렵 전주 등 인근 지역 유생들은 돌팔매를 하며 교회 건립을 방해했다고 한다. ●목사 드나드는 쪽문, 예수탄생 성당과 닮아 강단 뒤쪽으로 목사들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쪽문을 낸 것도 독특하다.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몸을 숙여야 하는 구조인데 목회자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겸손’을 되뇌고 실천하지 않았을까?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성당에서 문을 넘기 위해 제아무리 높은 신분이라도 말을 내려 허리를 깊게 숙여야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닮아있다.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5평 규모의 강단은 2단 구조이지만 결과적으로 3층 구조. 한국 전통의 제단을 연상케 하지만 ‘뜰, 성소, 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 기간엔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쓰였으며 얼마전까지도 교회당 창틀에 ‘인민군 만세’‘공화국 쟁취’같은 연필 글씨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 좌익 활동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88년 ㄱ자 예배당 바로 옆 789평 부지에 벽돌 예배당을 새로 지어 현재 40명 정도가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1986년 첫 시무지로 금산교회를 택해 부임한 뒤 담임을 맡아온 이인수 목사는 “금산교회의 교회당은 일제가 교회당을 폐쇄했을 때도,6·25전쟁통에 마을이 온통 불바다가 됐을 때도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을 유지했으며 숱한 철거논란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기적같이 여겨진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작고도 큰 교회’에 얽힌 이야기 금산교회가 초기 ‘ㄱ자’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귀중한 신앙유산을 넘어 ‘작고도 큰 교회’로 통하는 것은 이 교회를 세운 조덕삼과, 한국 개신교사상 유례없이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1924,1947,1948년)이나 역임한 이자익 목사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법과 회의록을 줄줄 외울 정도로 암기력이 뛰어나 장로교 ‘법통’으로 칭송받는 전설적인 인물. 그는 다름아닌 조덕삼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마부였다.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학력이지만 마부로 일하면서 틈틈이 독학했으며, 최의덕 목사를 통해 주인인 조덕삼과 비슷한 시기 나란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자익은 원래 1882년 경남 남해의 가난한 농가 출신.9살에 아버지,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집을 떠돌다가 17살에 행상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전주에서 행상에 실패한 뒤 김제 금산의 대지주인 조덕삼의 집에 들어가 머슴살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1905년 10월 나란히 세례를 받아 성찬예식을 가졌는데 이 의식은 금산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하는 시초로 인정되고 있다. 놀랄 만한 것은 머슴이었던 이자익이 주인인 조덕삼에 앞서 장로가 되었다는 사실. 금산교회는 1908년 교인이 100명 정도로 불어나자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조덕삼이 떨어지고 대신 머슴인 이자익이 선출되었던 것. 반상을 엄하게 따지던 당시로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금산교회 당회록에 따르면 조덕삼은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자 신도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이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집에선 주인과 마부였지만 교회에서는 장로와 평신도의 입장에 섰던 두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덕삼은 선배 장로인 이자익 장로를 1910년부터 5년간 평양신학교에 유학시켜 금산교회의 담임을 맡겼다. 물론 그때까지 이자익 목사의 모든 뒷바라지를 했던 것은 조덕삼이었다.1908년 사재를 털어 교회를 건축한 조덕삼은 유광학교를 설립, 지역 청소년 교육사업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 유광학교는 당시 한글을 비롯해 한국역사며 성경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금산교회는 처음부터 상반(常班)이 함께 어울리는 민중교회로 출발했던 셈이다. 이후 금산교회는 조덕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조영호 장로에 의해 지탱돼 왔으며 조부와 선친의 뒤를 이어,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씨가 장로로 피택됨으로써 한집안에서 드물게 세명의 장로를 탄생시켰다.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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