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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순의 낮꿈꾸기] 동성혼 합법화, 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강남순의 낮꿈꾸기] 동성혼 합법화, 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미시적 정의 등장 외면받던 인종·생태·젠더·장애·성 등 부각 “국민적 합의 안 됐다”동성혼 허용 안 돼 국민은 누구이며 누가 정당성 부여하나 성적 지향은 성소수자의 인간적인 권리 美 동성혼 제도화 이후 자살 시도율 급감 정치인·기독교인은 정의실현에 장애물 ‘억눌린 사람들’ 복귀 선언하는 촛불 돼야“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이다. 정의 실현이란 어떤 특정한 때를 기다려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긴급한 과제임을 역설한다. 그런데 정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사람들이 ‘정의 실현’이라는 말을 도처에서 쓰고 있다. 그래서 정의 실현이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상투화돼서 그 고귀한 의미가 오히려 퇴색해 버렸다. 그러나 그 의미가 퇴색되고 남용되고 왜곡됐다고 해서 정의 실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남용되고 퇴색된 의미를 재구성하면서 소중한 가치를 재탄생시켜야 한다. 정의 실현의 중요성을 되살리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질문하는 방식을 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의 실현이란 무엇인가”라는 연역적 접근의 물음이 아니라 “‘누구의 정의’, ‘어떠한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가”라는 귀납적 물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정의라는 말은 고대부터 사용돼 왔다. 그러나 고대부터 이어져 오던 거대 이론으로서의 정의는 현대에 들어서서 다양한 모습의 구체성을 지닌 정의로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연역적 접근에서 나오는 커다란 범주에서만 정의를 논의할 때, 정의에 관한 거대 이론을 창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대 이론으로서의 정의가 지닌 한계가 있다. 권력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는 배제되고 외면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의 논의가 지닌 지독한 한계다. 정의에 대한 거시적 접근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차별적 정황들에 개입하는 정의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 모두 요청되는 이유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미시적 정의 개념들은 거시적 정의 개념에서 배제된 주변부인들에 대한 정의 문제의 긴급성을 부각시켰다. 소위 ‘억눌린 사람들의 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억눌린 사람들의 귀환’은 인종 정의, 계층 정의, 생태 정의, 젠더 정의, 장애 정의, 또는 성 정의 등과 같은 미시적 정의 개념들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 전통적인 거시적 정의 개념에서 외면되고 배제됐던 정의들의 그 중요한 의미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시(巨視) 정치만이 아니라 미시(微視) 정치 또한 거시 정의만이 아니라 미시 정의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대통령은 소수자 정책을 어떻게 펼 것인가,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11월 19일 한 TV 방송에서 열린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 프로그램 ‘국민이 묻는다’에서 나온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통령은 “소수자 차별 문제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차별하면 안 된다고) 찬성하지만, 동성혼 문제는 아직 합법화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합의를 이루고 있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답했다.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은 단지 구호를 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차별의 매우 구체적인 정황들에 개입하면서 차별이 더이상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그 차별의 대상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차별을 넘어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단순한 낭만적인 모토가 아니다.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론을 제도화하고 입법화하지 않을 때, 그 “차별하면 안 되는 것”은 결국 “차별해도 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된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동성혼은 여전히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된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차별하면 안 된다’의 탈낭만화, 그리고 정치화가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제도적 개혁을 모색하고자 할 때 종종 소환되는 개념이 있다. ‘국민적 합의’ 또는 ‘국민적 정서’라는 말이다. 지극히 기본적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국민적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 권리로서 동성혼 역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허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소환되는 ‘국민’은 누구이며, 그들의 ‘정서’ 또는 ‘합의’의 정당성은 어떻게 누가 부여하는가. 부언할 필요조차 없이 ‘성적 지향’은 인간이 지닌 다양한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상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성소수자들에게 호혜를 베푸는 것도, 특별대우를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다. 인간이 다양한 성적 지향을 지닌 존재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은 한국의 국민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적 현실을 개선하고 그들의 결혼을 합법으로 만드는 정의 실현을 ‘국민적 합의’라는 말로 계속 유보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노예제도의 폐지 또는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권의 허용 등과 같이 계층 정의, 인종 정의, 그리고 젠더 정의를 확장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특정한 이들만이 아닌 ‘모든’ 이들의 평등을 확산하고자 하는 변혁적 의식을 지닌 소수들의 투쟁, 그 소수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이들, 그리고 결정권을 지닌 정치 지도자들의 과감한 결단 등에 의해 다양한 정의 실현을 제도적으로 확장하는 제도적·법적 변혁이 가능해 왔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동성 결혼이 헌법에서 보장받는 권리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2015년 6월 26일이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1999년 1월부터 2015년 12월 동안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사이의 성소수자들의 자살 시도율이 7% 감소했다. 또한 동성혼의 법제화를 실제로 시행한 주에서는 14%가 감소했다. 매해 청소년들의 자살 시도가 13만 4000명이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다수의 정치인, 종교인들에게 동성혼 문제는 처리해야 할 ‘이슈’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다. 성소수자들에게 이 문제는 ‘생명’에 관한 것이다. 성소수자들의 존재 방식을 부정하고, 그것에 근거해 그들을 ‘2등 인간’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성소수자들의 동성혼 합법화는 이성혼 합법화처럼 단지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정의 실현에 관한 절실한 문제다. 지금도 곳곳에서 사회적 차별과 질시, 배제와 폭력에 의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슈’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이다. 국가·사회·종교가 그들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할 때 결혼 당사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자살 시도가 13만 4000명이나 감소했다는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의 통계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 실현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건 기독교인들과 정치인들이다. “동성애는 메르스처럼 격리해야 한다”며 “동성애·이슬람 반대하면 누구와도 연대”하겠다는 전광훈씨가 예외적인 별난 목회자가 아니라는 점이 한국 기독교의 미래 전망을 절망적으로 만든다. 그뿐인가. “동성애, 동성혼, 차별금지법 허용 반대 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곳곳에서 주장해 온 정치인 김진표 의원도 실상 예외적인 ‘별난’ 정치가가 아니다. 무수한 ‘전광훈들’ 그리고 무수한 ‘김진표들’이 종교, 교육, 정치 등 한국 사회 곳곳에서 성소수자 혐오,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며, 포괄적인 ‘정의 실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방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혐오주의자가 ‘국민적 합의’를 대표하는 존재들인가.민주주의의 주요 가치인 개별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확장하고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의미에서의 포괄적 정의 실현이 ‘국민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유보돼서는 안 된다. 오늘도 국민적 합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불법화하는 종교·교육·정치에 의해 무수한 생명들이 사회적 죽임을 당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서초동에서, 그리고 여의도에서 촛불을 든 이들이 보여 줄 수 있는 국민적 합의의 정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국민적 합의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 확장과 보호를 분명하게 지지하는 ‘포괄적 정의를 위한 촛불’이 돼야 한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인권유린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억눌린 사람들의 복귀’를 선언하는 ‘포괄적 정의 실현의 촛불’로 확장돼야 한다. 국민적 합의는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창출돼야 하는 과제다. 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려서도 안 된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DGB대구은행, 여성직원 유니폼 전면폐지

    DGB대구은행이 여성 직원 유니폼 작용을 폐지한다. DGB대구은행은 지난 1967년 창립한 이래, 52년간 여성직원 유니폼 제도를 시행해왔다. 유니폼 폐지는 여성 직원만 유니폼을 착용하는 차별적 요소의 해소는 물론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추구하는 시대 흐름을 반영했다. 내부적으로 영업점을 포함한 전체 직원의 유니폼 폐지 및 자율복장 도입에 따른 내부 설문조사를 실시해 폐지 찬성의견이 61%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지난 13 영업점 주1회 캐주얼데이를 시작으로, 내년 1월부터 4월까지는 전일 유니폼과 자율복 병행 착용의 적응 기간을 거친다. 이어 2020년 5월1일부터는 여성직원 유니폼이 전면 폐지된다. DGB대구은행 관계자는 “여직원 유니폼 폐지를 계기로 수평적이고 활기찬 기업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단독] “부부 인정 기대 안했어요… 항공사 착오·실수인 줄”

    [단독] “부부 인정 기대 안했어요… 항공사 착오·실수인 줄”

    2013년 캐나다서 결혼…美영주권 취득, 곧 이주 가족들까지도 숨기려 해…전세자금대출 등 차별 한국에서 우리는 남남…설마 안되겠지 했는데 인정받고 싶어서 신청 천주교 성소수자 모임…쉬쉬하는 분위기 슬퍼…더는 숨지 않도록 해야“기대도 안 했죠. 혹시 우리 성별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건가 의아할 정도였어요.” 대한항공은 최근 40대 한국인 여성 동성 부부를 마일리지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가족으로 인정했다.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나라 국적기인 대한항공이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했다는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가족 등록을 신청한 당사자인 아콘네(가명·여)씨조차 기대하지 않은 희소식이었다. 아콘네는 부부의 영어 이름 첫 글자를 따 만든 이들 부부의 가족 이름이다. 신상을 밝히고 싶지 않다며 아콘네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설마 될까’ 싶었는데 오히려 너무 쉽게 인정됐다”면서 “처음엔 혹시 실수가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취소당할까 봐 되묻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가족 마일리지 제도 시행 시점부터 개인의 성(性)을 구분하는 별도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국가의 공식 서류를 제출하면 가족 등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콘네씨 역시 캐나다에서 받은 혼인증명서를 제출했고, 대한항공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설마 되겠어’ 하는 마음에도 신청서를 낸 이유를 묻자 “그냥 어디서든 인정받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성소수자로 살아가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콘네씨는 “2013년 캐나다에서 결혼한 부부지만 한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남남”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전세자금 대출부터 병원 진료까지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는 “주변에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수술동의서를 쓰지 못하게 해 캐나다로 이민 간 동성 부부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의 시선도 차가웠다. 아콘네씨 여동생은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 가족이 믿는) 가톨릭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잖아”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받은 상처는 오롯이 부부의 몫이었다. 아콘네씨 부부는 결국 미국 이주를 결심했다. 지난해 부부로서 미국 영주권을 받았고, 16일 출국해 미국에서 새 터전을 꾸린다. 미국으로 이주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종종 한국을 찾을 계획이다. 아직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알파오메가’라는 이름의 천주교 성소수자 모임을 이끈다. 그는 “일부 종교계가 ‘동성애는 죄’라고 가르치며 ‘혐오를 위한 혐오’를 하고 있지만 내가 자라면서 배운 종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여성이자 레즈비언인 가톨릭 신자들로 이뤄진 이 커뮤니티의 회원은 270여 명이다. 처음에는 ‘아웃팅’ 우려로 커뮤니티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단체와 적극 연대하면서도 천주교라는 정체성을 좀 더 내세울 때라고 생각해 1년 전부터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갈 길은 멀다. 비공개로 이들을 돕는 성직자들은 차츰 늘었지만 함께 퀴어문화축제에 나서는 등 공개적인 지지 활동은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을 묻고 싶어 용기를 내고 있는데 여전히 쉬쉬하는 분위기에 더 슬퍼졌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주변의 조용한 지지와 응원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작은 희망을 보고 있다. 그는 “퀴어문화축제에 일반 시민들도 나와 응원하고 함께 즐기는 것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면서 “성소수자가 더이상 숨지 않도록, 이들이 고립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다 함께 연대한다면 우리 사회도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문 대통령 “특권의 정치·경제 불평등 겸허히 돌아봐야”

    문 대통령 “특권의 정치·경제 불평등 겸허히 돌아봐야”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특권의 정치가 이어지고 번영 속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 신분과 차별을 만들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겸허히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뿌리이기 때문”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이 태극기들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고 이름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나섰다. 왕조의 백성이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거듭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천명했고, 제3조에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이라고 명시했다”며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민주공화제를 진정으로 구현하고, ‘일체의 평등’을 온전히 이루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반성 위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의 길도 명확하다. 함께 이룬 만큼 함께 잘 사는 것이고, 공정과 자유, 평등을 바탕으로 함께 번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00년 전 그날 함께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은 영원히 빛날 것”이라며 “‘함께 잘 사는 나라’, ‘평화의 한반도’ 또한 함께해야만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발표된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0명 중 84명이 우리 역사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조사보다 8%가 높아졌다”며 이전 정부보다 국민들의 자긍심이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3·1 운동의 정신 속에서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를 이겨내고 당당하고 번영하는 자주독립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새로운 100년 미래 세대들이 3·1 운동의 유산을 가슴에 품고 당당한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고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계봉우 지사와 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봉환한 일, 중국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를 복원한 일 등을 거론하며 “뒤늦게나마 국가가 마땅히 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유관순 열사의 훈격을 높여 새로 포상했고 여성독립유공자의 발굴에 힘을 쏟았다”며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이 정당하게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상룡 선생 기념관 건립과 임청각 복원도 2025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임시정부기념관은 2021년 완공 예정”이라며 “이념과 세대를 초월한 임시정부의 통합 정신을 기리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홀트아동복지회, ‘미혼한부모가족 인식개선 동영상 공모전’ 시상식

    홀트아동복지회, ‘미혼한부모가족 인식개선 동영상 공모전’ 시상식

    홀트아동복지회(회장 김호현)가 ‘미혼한부모가족 인식개선 동영상 공모전’의 시상식을 개최, 공모전을 성공적으로 종료했다. 이번 공모전은 미혼한부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해소, 올바른 인식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동영상에 대한 공모를 진행했으며, 홀트아동복지회가 주최하고 ㈜한샘의 후원으로 실시됐다. 지난 11일 홀트아동복지회 강당에서 열린 공모전 시상식에는 홀트아동복지회 홍현국 이사장, 김호현 회장, ㈜한샘 이영식 부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참석해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앞서 50여 개의 접수작들 가운데, 공정한 심사를 통해 총 7개의 최종 수상작이 선정됐다. 심사 결과 대상에는 ‘I`m ok’를 출품한 김수민 씨가 선정됐으며, 공주님나라의 ‘미혼부 인욱씨의 평범한 일상이야기’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시상식에서는 수상자들에 대한 축하를 전함과 동시에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 상금 300만 원 ▲최우수상(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상) 상금 200만 원 ▲우수상(홀트아동복지회 회장상, ㈜한샘 회장상) 각 100만 원 ▲장려상(홀트아동복지회 회장상) 각 5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됐다. 김호현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은 “다양한 지원을 통해 미혼한부모가정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전했으며, ㈜한샘 이영식 부회장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가정을 응원하며, 앞으로도 한부모가정이 하나의 가정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인식개선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샘은 2019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와 함께 미혼한부모가정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주목받고 있다. ㈜한샘은 미혼한부모가정의 심리정서지원, 물품 지원, 직업훈련비 지원, 임직원들의 약정 기부로 진행되는 미혼한부모가정 긴급양육비 지원 등 다각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1955년 전쟁과 가난으로 부모를 잃고 고통받는 아이들의 새 가정을 찾아주며 입양복지를 시작한 홀트아동복지회는 현재까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전문적인 사회복지를 실천하며 국내외 대표 아동복지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아동복지, 미혼한부모복지, 장애인복지, 지역사회복지를 비롯하여 다문화가족지원, 캄보디아, 몽골, 탄자니아, 네팔의 해외빈곤 아동지원 등의 복지를 전개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요칼럼] 블라인드 채용, 공정사회로 가는 지름길/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금요칼럼] 블라인드 채용, 공정사회로 가는 지름길/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두 눈을 가렸는데 대상이 더 잘 보인다면 그 이치는 무엇일까? 때로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지만, 그것을 ‘보기’보다 대상에 대해 평소 가졌던 생각을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곰곰이 따져 보면 그런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말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아는가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앎이 대상에 대한 선입견에 물들어 있다면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불행히도 대상에 대한 앎이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눈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상의 진실과 얼마나 닮았을까? 학생들의 진로 지도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채용 경향도 파악할 겸 시간이 허락할 때면 외부 기관의 채용 면접위원 요청에 응한다. 최근 채용 면접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블라인드 채용’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심사 과정에서 지원자의 개인적 특성 중 편견이나 차별을 초래하기 쉬운 요인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하는 방식이다. 성별, 연령, 출신 학교, 출신 지역, 가족 상황, 계층 등 면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개인 정보를 배제하고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력이나 자격을 중심으로 면접을 진행한다. 블라인드 면접은 그동안 정부 채용 정책의 하나였지만 실제 채용 현장에서는 대단히 제한적인 수준으로 진행돼 왔다. 이를테면 출신 학교를 삭제한 면접 자료를 제공해도 경력 증명 자료를 살펴보면 출신 학교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연령이나 가족 상황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동안 채용 면접은 공공기관에서조차 개인 정보들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고 면접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대학 서열화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는 강력한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람의 역량에 대한 궁금증 이전에 출신 학교의 서열은 거의 최우선적인 잣대로 면접위원의 의식을 지배하고 면접은 백지 상태가 아니라 일정한 선입견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진다. 마치 흰 도화지가 아니라 붉은색이나 푸른색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격이다. 지원자가 기혼 여성이라면 면접위원의 머릿속에는 업무 역량만큼이나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역시 회색이나 검은색 도화지 위에 그리는 그림이다.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블라인드 채용은 그래서 다행스럽다. 거의 100퍼센트 수준의 블라인드 면접을 처음 하게 됐을 때가 생각난다. 개인 정보의 많은 부분이 삭제되고 업무와 관련된 역량 중심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었을 때 사실 당혹스러웠다. 이 사람을 어떻게 알아 가야 할까. 더 꼼꼼히 살피기 위해 온 마음과 신경을 집중해 지원자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주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잔뜩 긴장한 한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이름도, 학력도, 출신 지역도, 가족 상황도 알 수 없는 백지 상태의 인물. 그를 제대로 알기 위해 세심하게 질문했고, 엄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심했다. 그가 해당 업무에 적합한지를 다각도에서 검토했다. 그 결과 사람이 가진 능력과 품성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혁신은 큰 정책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이런 시도들을 튼튼히 쌓아 감으로써 우리 사회가 성숙해 가리라고 생각한다. 블라인드 채용은 사회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 서류부터 면접까지 성별, 연령, 출신 학교, 지역, 가족 상황 등 편견과 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들을 삭제할 때 이런 요인들의 영향력도 줄어들 것이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 웃어 주는 여자들? 웃겨 죽는 여자들!

    웃어 주는 여자들? 웃겨 죽는 여자들!

    “이 잘 만들어진 리얼돌도 부족한 점이 하나 있더라고요. 남성분들이 간과한 게 있는데 이 리얼돌이 롱런하려면 이 기능이 추가돼야 해요. 모순적인 명령을 실행하는 기능요. ‘천박하고 퇴폐적이되 기품을 잃지 마.’”(고은별) “‘미쳐도 곱게 미쳐라’는 여자들한테 하는 이야기죠. 여자가 미치면 머리에 꽃을 꽂잖아요. ‘너네가 미쳤다고 꾸밈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메시지가 담긴 거죠.”(김보은) 지난 7일 토요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의 한 공연장에 관객 100여명이 모였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건 마이크 스탠드와 마이크뿐. 텅 빈 무대에 차례로 오른 여성 7명은 마이크를 잡고 10분씩 ‘농담의 향연’을 펼쳤다. 가부장제의 부조리함부터 연극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요구되는 이미지, 직장인의 애환, ‘29금’ 성적 농담까지 솔직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우스꽝스러운 분장도, 화려한 무대 장치도, 재미를 극대화할 소품 하나 없이 오로지 입담만으로 무대를 채운 이들은 여성 코미디언으로만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 퍼니’다. 이날 첫 정기공연을 선보인 블러디 퍼니의 반전 가득한 이야기에 관객들은 한 시간 30분 동안 깔깔대며 환호했다. 국내에서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스탠드업 코미디가 최근 몇 년 사이 활기를 띠고 있다. 방송인 유병재와 박나래가 넷플릭스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선보였고, 지난달에는 KBS가 박나래를 진행자로 내세운 ‘스탠드업’을 방영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방송뿐만 아니라 홍대 인근 공연장이나 호프집 등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현장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남성 중심의 웃음 코드가 뿌리 내린 한국에서 여성 코미디언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여자는 남자보다 웃기지 않는다’는 편견 아래 여성은 코미디에서 주체보다는 객체에 머물 때가 많았다.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씨가 지난해 말 여성으로만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 퍼니’를 꾸리게 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번역가, 외신 기자 등의 일을 했던 최씨는 지난해 초 우연히 오픈 마이크(아마추어 공연자가 설 수 있는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얻어 한 달간 무대에 섰다. 그러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코미디언의 성지’로 여겨지는 미국 뉴욕의 한 코미디 클럽에서 두 달 동안 수업까지 듣고 돌아왔다. 현재는 문을 닫았지만 지난해 6월 문을 연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클럽 ‘코미디 헤이븐’에서 유일한 여성 출연진으로 무대에 섰던 최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졌다. 여자 코미디언은 왜 이렇게 적을까. 그래서 최씨는 스스로 ‘웃기는 여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사라진 여자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다. 최씨는 먼저 코미디 헤이븐에서 진행된 오픈 마이크에 종종 참여한 최예나씨를 섭외했다. 이후 두 사람이 다른 여성 코미디언들과 함께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한 ‘그날’이라는 스탠드업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고은별, 이슬기씨가 팀에 합류했다. 지난 10월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연극을 결합한 공연에서 협업한 것을 계기로 연극배우 경지은, 김보은씨도 블러디 퍼니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정기공연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만난 이들은 “여자들은 늘 ‘웃어 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회의 편견을 넘어 여자도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여성 코미디언이 적은 이유는 왜일까요. 최정윤 “제 생각엔 웃기는 여자도 되게 많고 코미디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도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자가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결혼식 사회자만 봐도 여성들이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나이 있는 희극인 남성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몇 번 들었어요. ‘(코미디를) 짜는 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잘 짜는 여자들은 드물다’고요. 저는 여자들이 코미디를 잘 못 짠 게 아니라 본인의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최예나 “제가 예전에 돌잔치에서 사회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남성분이 저를 보더니 ‘여자가 하네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엔 많은 뜻이 내포돼 있잖아요. 일단 사회를 맡은 여자를 처음 본다는 의미가 있었고 사회를 맡은 저를 약간 못 미더워하는 뉘앙스도 묻어 있었고요. 이런 분위기가 코미디언들 사이에도 있어요. 여자 코미디언이 준비한 코미디는 남자 코미디언들이 많은 곳에서는 공감을 못 얻고 뒤로 밀리거든요.” -여성 코미디언들로만 이루어진 팀이라서 좋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최정윤 “여성 동료들과 공연을 하면서 느끼는 게 웃음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판에서 저희는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저희처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코미디의 깊이나 내용의 질적인 부분에서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서로를 보면서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잘했다’는 응원을 해 주니까 서로 성장할 수 있고요.” 이슬기 “방송에 출연하는 남성 코미디언들을 보면 자신들끼리 서열화된 모습을 개그로 많이 쓰잖아요. 어떤 사람은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라인을 따른다’고 언급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특정 역할 이상을 맡지 못하게 되잖아요. 저희들끼리는 누가 1등인지 누가 우두머리인지 상관하지 않아도 되니까 눈치를 볼 필요도 없죠.” -각자 생각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은 뭔가요. 최예나 “저는 방송사 코미디언 공채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원을 다녔었는데 여자들은 주체적으로 웃기기보단 어떤 특정 역할로 많이 쓰여요. 예쁜 역할, 못생긴 역할, 뚱뚱한 역할, 마른 역할 이런 식으로요. 콩트를 짜면 저 같은 경우는 뻔한 역할만 맡았어요. 아줌마나 혹은 마르고 예쁜 여자를 시기하는 못된 선배 같은 역할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남이 부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내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좋아요.” 최정윤 “한국에서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끼도 엄청 많고 뭔가 나대야 되고 무대에서 기도 안 죽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스탠드업 코미디 자체는 내가 어떤 성향인지는 전혀 상관없거든요. 내 매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농담을 잘하면 좋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는 게 멋있죠.” 이야기의 결은 다르지만 이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건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환과 고충이다. 지난해 스탠드업 코미디 개론서인 ‘스탠드업 나우 뉴욕’(왓어북)을 펴내기도 한 최정윤씨는 “뉴욕에서 코미디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의 감정에 가장 큰 반응을 일으키는 이야기에 재미가 숨어 있다고 했다”면서 “아무래도 일상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최정윤 “저는 낮에는 구성애 선생님이 운영하는 ‘푸른아우성’에서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성교육 수업을 할 때 아이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을 때가 많아요. 거기서 이런저런 재밌는 에피소드를 많이 가져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릴 때 제대로 된 성교육을 못 받고 성인이 된 탓에 사회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그런 면에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려고 해요.”김보은 “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도 하고 있어요. 무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왜 젠더 의식이 필요한지 현재 작품들은 어떤 점이 문제인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강의를 할 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스탠드업 무대에서 하기도 해요.”고은별 “사회적인 이슈 중 여자랑 연관이 없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소재로 엮을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정기공연에서 리얼돌에 대한 이야기도 할 예정이에요.” 아무래도 대중에게 익숙한 코미디는 ‘코미디 빅리그’나 ‘개그 콘서트’와 같은 짜여진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콩트나 ‘몸개그’라고 불리는 슬랩스틱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여성 코미디언은 조롱거리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소비될 때가 많다. 남성의 관점에서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받고 성적인 농담이나 여성 혐오 발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기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여성 코미디언들이 불편한 농담의 대상이 돼야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최예나 “코미디언 공채를 준비하면서 학원에 다닐 때 성차별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 쪽으로 도피했거든요. 코미디를 빙자해서 여자 위에 남자가 올라가서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몸짓을 하기도 해요.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그럴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대들면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 취급을 하고요. 여자에 대한 혐오가 너무 심하죠.”경지은 “제 코미디의 소재가 자기 비하적이고 자조적인 내용이거든요. 실제로 외모나 행동이 여성스럽지 못해서 조롱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속한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 자신을 더 격하해서 웃기거나 남자 선배가 내 외모로 웃기려고 할 때 그냥 수긍하기도 했어요. 스탠드업 무대에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이제 제가 더이상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걸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에서 박나래씨가 도전한 스탠드업 코미디쇼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고은별 “내용에 대한 비판을 하기 전에 유명세 있는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한 건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자체가 대단하고 용기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박나래씨 덕분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조명도 많이 되고 있거든요. 관심이 전무하던 상황에서 그 자체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최예나 “저는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봤는데 반응이 진짜 뜨거웠어요. 어떤 분은 미국 여성 코미디언 앨리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영향을 받아서 삶이 바뀌기도 했는데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고도 하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땐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여자들의 스펙트럼은 넓고 색깔도 다양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로서는) 박나래씨 한 분이 선보인 거니까 그분만 보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일단 물꼬를 터 줘 고맙죠.”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이슬기 “앞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지난 9월부터 격주에 한 번씩 해방촌에서 진행하고 있는 오픈 마이크도 계속해서 운영할 예정이고요. 재즈 보컬리스트, 래퍼 등과 협업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최정윤 “저는 언젠가는 각자 한 시간씩 스탠드업 쇼를 할 수 있으면 멋있을 것 같아요. 한 시간을 메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3년이 걸릴 수도 누군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모두 다 그걸 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보은 “저는 다른 여성들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심을 가져서 꼭 저희 팀이 아니더라도 자신들만의 크루를 꾸려서 코미디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최예나 “나중엔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끼리 타이틀을 걸고 대항전을 해도 재밌겠네요(웃음).”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스타강사 요구에 여학생들 밖으로 몰아낸 파키스탄 대학 논란

    스타강사 요구에 여학생들 밖으로 몰아낸 파키스탄 대학 논란

    파키스탄의 한 대학이 초청강연을 맡은 연사의 요구에 따라 여학생들을 강제로 분리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에 따르면 파키스탄 페샤와르에 위치한 카이바르의학전문대학은 최근 전직 크리켓 선수이자 이슬람 설교자로 활동 중인 사이드 앤워(51)를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익명의 관계자는 앤워가 연단에 오르기 전 여학생들을 따로 앉히라고 요구했고, 학교 측은 야외 무대 담장 밖으로 여학생들을 몰아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여학생들은 담장 너머로 들리는 연사의 목소리에만 의존해야 했다. SNS에 퍼진 당시 영상에는 울타리 뒤에 줄지어 앉은 여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학생은 “캠퍼스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애초 여학생 분리 조치를 요구한 연사가 비이성적이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러나 강연 당일 연사와 학교 측의 성차별적 요구에 항의한 사람은 없었으며, 대부분 침묵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의 전직 여성 하원의원 부샤르 고하르는 “여성의 참여를 제한하고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이날 강연에서 앤워는 자신의 인생사와 이슬람 율법이 어떻게 자신을 우울증으로부터 구해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무장 경호원의 호위 속에 학교에 나타난 그는 “종교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말한 구원의 대상에 여성도 포함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동석하는 것을 범죄시한다. 올 3월 파키스탄 동부의 한 대학교에서는 남녀 합동 행사에 불만을 가진 남학생이 교수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기도 했다. 당시 파키스탄 에저턴대 영문과 학과장으로 정년퇴임을 4개월 앞두고 있었던 칼리드 하미드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학생들과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다 학생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교수를 살해한 카디브 후사인은 범행 직후 “혼성 행사는 이슬람에 반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했다”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이 학생이 남녀가 함께 신입생 환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반이슬람적 행위라 보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김균미 칼럼] 유리천장에 낸 실금들, 지금부터다

    [김균미 칼럼] 유리천장에 낸 실금들, 지금부터다

    유리천장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8년 6월 7일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완주한 뒤 워싱턴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에서 패배를 인정하며 유리천장을 언급했다. “이번에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뜨리지는 못했지만, 여러분 덕에 1800만 개의 금이 갔다”고 지자자들을 위로했다. 8년 뒤 힐러리는 미국 역사상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힐러리의 도전은 더 많은 여성이 선출직에 나서는 동력이 됐다. 경선 결과와 상관없이 여성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는 것이 더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2019년 한국은 어떤가. 대통령의 공약대로 내각의 약 30%가 여성 장관이고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여성 고위직 비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양성평등정책이 더욱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국립대에 첫 여성 총장 선출이 유력하고, 기획재정부의 ‘핵심 보직´인 인사과 조직제도팀장에 여성이 처음 임명된 것이 여전히 뉴스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의 유리천장이 도전을 받고 금이 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견고하다.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지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여성의 비율은 여전히 낮다. 분야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10~20% 정도에 그친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율은 더 작다. 이런 가운데 성평등, 다양성 제고 차원에서 의미 있는 법안 2개가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어 주목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준수 여부를 자율공시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여성 이사를 최소 1명은 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공립대학 교원의 특정 성별이 4분의3을 초과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연도별 목표 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도 같은 날 법사위를 통과했다. 기업과 대학은 성별 격차가 유독 심한 분야로 꼽힌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올 1분기 기준 전체 상장사 2072개의 임원 성별 현황 조사에 따르면 여성 임원 비율은 4.0%에 불과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38개 국립대의 여성 전임교수 비율은 14.7%, 주요 보직의 여성 비율은 9.8%이다. 물론 두 개 법안 모두 의무조항이 아닌 권고조항이라는 점이 매우 아쉽다. 논의 과정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 벽을 넘지 못한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특히 지난해 10월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초안에는 ‘특정 성의 이사가 이사회 정원의 3분의2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사진의 3분의1을 여성으로 구성할 것을 의무화했다. 정무위와 법사위를 거치며 역차별과 기업의 부담 문제가 제기되면서 결국 여성 이사 수를 최소 한 명으로 줄이고 의무규정에서 자율공시로 대폭 후퇴했다.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210개이며 이 중 이사회에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은 165개로 78%에 달한다. 자율공시이지만 상장법인 이사회에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곳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딘 것은 분명하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올해부터 매년 기업 내 성별 임원 현황을 분석해 발표할 예정이고, 세계여성이사협회 등 여성·시민단체가 주시함으로써 대상 기업들에 긍정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구성의 변화가 심각한 수준의 임원 성별 격차를 해소하는 기폭제로 이어져야 한다. 아쉬움도 많지만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변화가 곳곳에서 일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서울시는 지난 9일 국내 최초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시행했다. 산하 22개 투자 출연기관의 성별 임금격차를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으로 확산할지 주목된다. 또 정부가 올해 8개 부처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를 신설해 양성평등정책을 여가부 차원이 아닌 범정부 차원으로 확대해 실시하는 것도 주요한 변화 중 하나다. 유리천장에 낸 실금 몇 개로 당장 천장이 깨지지는 않는다. 기업과 대학들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변화를 유도하되, 말에 그친다면 의무조항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위해 다시 힘을 합쳐야 한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kmkim@seoul.co.kr
  • [문화마당]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갈라진 벽의 틈새를 보듯, 2010년대도 훌쩍 지나갔다. 2009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열어젖힌 ‘제4차 산업혁명’의 봇물에 휩쓸려 그사이 삶의 전 영역이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됐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보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머리 한쪽이 늘 멍한 산만함에서 우리 정신을 지켜 주는 것은 역시 호흡 긴 서사인 책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책의 대지에 핀 꽃들은 자주 불(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유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을 던졌다. 만연한 부정의에 경악한 독자들은 ‘분노하라’는 시대의 명령을 따랐다. 무엇에 분노했는가. 불공정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며 학자금 대출과 알바 인생에 절망하는데, 장학금 챙겨 가며 공부한 전직 법무부 장관의 딸이 보여 준 세상, 즉 특권을 통해 쌓은 스펙을 제 능력인 양 자부하는 ‘20 vs 80의 사회’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불평등이다. 부의 세습이 노골화돼 부익부빈익빈이 갈수록 심화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21세기 자본’의 사회는 문제의 실체가 불평등이라는 인식을 퍼뜨리는 중이다.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불평등 세대’ 등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로잡지 못하면, ‘세대 전쟁’의 홍역이 덮쳐 올 것임을 우려하게 한다. 착취된 노동이다. 일이 행복을 주지 못하는데 왜 일해야 하는가. 적당히 일하고 작은 행복이라도 확실히 챙기는 쪽이 낫지 않은가. ‘피로사회’는 성과에 집착하면서 죽음에까지 자기를 몰아붙이는 ‘자기 착취’를 폭로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미생’인 세상인데, 자신을 고갈시키지 않는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청년들은 ‘자존감 수업’을 받고 ‘미움받을 용기’를 행한다. 삶의 새로운 양식을 찾아 동네책방을 순례하고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는다’. 가부장제 가족주의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계기로 ‘페미니즘’이 일어섰다. 여성이 쉽게 살해되고 폭행당하며 차별받는 사회는 작동을 멈춰야 한다. 편견으로 점철된 세상을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이 더는 없어야 한다. 여성은 벌써 주체인데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고 일깨운다. 그래서 여성들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백래시’, ‘탈코르셋’ 등 해방의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 ‘이상한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 형태가 꾸준히 시도되고 ‘딸에 대하여’, ‘대도시의 사랑법’ 등 퀴어의 일상화도 이제 어색하지 않다. 언어의 소외다.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스러져 가는 이들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의 입술은 목소리 없는 이들한테 열려야 한다. ‘소년이 온다’의 높은 문학적 성취도, ‘사당동 사람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고기로 태어나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 인간의 조건을 살피는 기록의 존엄성도 여기서 비롯된다. 정치는 난잡하고, 경제는 암울하고, 사회는 비참하다. 세상이 타락한 자들을 위한 숫자 놀이로 전락한 듯하다. 온통 이익(利)을 말할 뿐 아무도 의(義)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던 얼굴은 어용을 자부하고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를 성찰하던 마음은 위선이 됐다. 촛불과 함께 힘차게 타올랐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또다시 무릎이 꺾이는 중이다. ‘닥치고 정치’에 기대를 걸었지만, 현실은 ‘닥쳐라, 정치’로 변해 가고 있다. 불타 버린 이 자리에서 책은 다시 출발한다. 새해에는 어떤 책이 시대의 죽비가 될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 한국당 “4대 비리 연루자 공천서 배제”

    한국당 “4대 비리 연루자 공천서 배제”

    “자녀·친인척 관련된 조국형 범죄 무관용” 음주운전 3회·성희롱 등 물의도 부적격 ‘공관병 갑질’ 박찬주 논란 끝 입당 허용자유한국당이 자녀·친인척 등이 연루된 입시·채용·병역·국적 등 4대 분야 비리자를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한다. 또 도덕성·청렴성과 국민정서에 미달하는 경우도 공천을 받을 수 없게 기준을 강화한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11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4대 분야 부적격자 배제 등 3가지 공천 부적격 판단 기준을 발표했다. 총선기획단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전희경 의원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의와 공정의 원칙이 사수되어야 할 분야를 입시·채용·병역·국적으로 정했다”며 “4대 분야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자녀·친인척 등이 연루된 비리가 적발될 경우 예외 없이 부적격 처리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특히 우리 사회의 모든 부모님께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던 ‘조국형 범죄’는 더욱 철저한 검증을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도덕성·청렴성 기준은 2003년 이후 음주운전이 총 3회 이상 적발된 경우, 뺑소니·무면허 운전, 조세범 처벌법 위반자 등이다. 도촬·스토킹, 미투, 성희롱·성추행, 가정폭력·데이트폭력, 여성 혐오·차별적 언행, 아동학대, 아동폭력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 국민정서 부적격자 기준에 걸린다. 당헌·당규에서 규정한 5가지 유형(강력·뇌물·재산·선거·성)의 범죄로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부적격 기준도 강화된다. 성범죄의 경우 ‘벌금형 이상’에서 ‘기소유예를 포함해 유죄 취지의 형사처분 전력이 있는 자’로 기준을 조정한다. 총선기획단 총괄팀장인 이진복 의원은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조치가 앞서 발표한 ‘현역 50% 이상 물갈이’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공관병 갑질’ 논란을 빚었던 박찬주 전 육군대장에 대해 “우리 당에 공천 신청 안 하지 않겠느냐”며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당 충남도당은 이날 오후 당원자격심사위 회의를 열어 박 전 육군대장의 입당을 확정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블랙 퀸’ 시대 활짝…美 미인대회 모두 휩쓴 흑인 여성들

    ‘블랙 퀸’ 시대 활짝…美 미인대회 모두 휩쓴 흑인 여성들

    미국 미인대회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이 일어났다. 8일(현지시간)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조지비니 툰지(26)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미스 USA, 미스 틴 USA, 미스 아메리카에 이어 미스 유니버스까지 미국 주요 미인대회 왕관이 모두 흑인 여성에게 돌아갔다. 지난 5월 미스 USA에 등극한 첼시 크리스트(28)와 4월 미스 틴 USA에 선정된 칼리그 개리스(18), 지난해 9월 미스 아메리카에 뽑힌 니아 프랭클린(25) 모두 흑인이었다. 미스 유니버스까지 4개 대회가 같은 시즌 나란히 흑인 우승자를 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77년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자넬 페니 컴미송이 미스 유니버스 사상 최초의 흑인 우승자가 된 이후로는 42년 만의 일이다.성폭력 예방 활동가인 툰지는 “허물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경계들이 계속 무너져내리고 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녀는 “나와 같은 피부색, 나와 같은 머리칼을 가진 여자는 결코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세상에서 자랐다. 이런 흐름은 오늘로써 끝내야 할 때”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보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툰지의 우승은 결코 개인의 승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선 3개 대회 우승자들과 함께 미국 미인대회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블랙 퀸’ 시대의 막을 열었기 때문이다.미국 미인대회에서 역사가 가장 긴 미스 아메리카는 1921년 창설 당시 ‘백인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라는 규정에 따라 흑인 여성의 출전이 제한됐다. 1970년 출전 제한이 풀렸지만 첫 흑인 우승자가 나오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스 아메리카는 1983년에야 비로소 첫 흑인 우승자 바네사 윌리엄스를 배출했다. 1952년부터 치러진 미스 USA에서는 1990년에야 첫 흑인 우승자 캐롤 앤-마리 기스트가 나왔으며, 같은 해 시작된 미스 유니버스는 1977년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자넬 페니 컴미송이라는 여성을 최초의 흑인 우승자로 지명했다. 1983년부터 시작된 미스 틴 USA의 첫 흑인 우승자는 1991년 당선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자넬 비숍이었다.이처럼 오랜 기간 백인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국의 미인대회에서 흑인 여성의 비중이 늘어난 배경으로는 달라진 미의 기준과 흑인 여성의 위상을 들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여성의 잇따른 선전이 미국인들의 미적 기준이 인종차별과 고정관념으로 얼룩진 과거에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일례로 올해 미스 틴 USA 우승자인 자넬 비숍은 자연스러운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손질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했지만, 오히려 더 큰 주목을 받았다.‘블랙 걸 매직’(#BlackGirlMagic) 운동 등 SNS를 중심으로 흑인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한몫했다. 블랙 걸 매직이라는 해시태그는 2013년 6월 카숀 톰슨이라는 흑인 여성이 의류 사업을 하면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흑인 여성의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의미로 쓰던 태그는 점차 흑인 여성의 미적 아름다움과 힘, 업적을 바로 보자는 의미의 운동으로 전개됐다. 이런 움직임에는 미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도 힘을 싣고 있다. 오바마 여사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 4개 미인대회를 휩쓴 흑인 여성들의 소식을 전하며 블랙 걸 매직이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했다.흑인 여성의 미인대회 진출과 함께 미인대회의 다양성 확보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미스유니버스조직위원회는 2012년부터 트랜스젠더 여성의 대회 참가를 허용했으며, 미스 아메리카는 지난해부터 수영복 심사를 폐지했다. 그러나 ‘미스 블랙 아메리카’ 출신 애슐리 엔카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그녀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인대회 우승자 중 아시아 여성, 플러스 사이즈 여성은 없다”면서 “여전히 유럽인 중심의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꼬집었다. 오랫동안 미인대회를 연구해온 힐러리 레비 프리드먼 브라운대학교 초빙교수 역시 “대회의 다양성은 아직 많은 집단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한국당 “‘조국형 범죄’ 공천 배제”...현역 대폭교체 예고

    한국당 “‘조국형 범죄’ 공천 배제”...현역 대폭교체 예고

    입시·채용·병역·국적 등 ‘4대 분야’ 부적격자 배제자유한국당이 자녀나 친인척이 연루된 입시·채용 비리 등을 이른바 ‘조국형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경우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이런 내용을 담은 3가지 공천 부적격 판단 기준을 마련했다고 11일 밝혔다. 한국당은 내년 총선 공천에서 ‘4대 분야’ 부적격자를 배제하기로 했다. 4대 분야는 입시, 채용, 병역, 국적으로 정했다. 자녀나 친인척이 이들 분야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 공천 부적격 처리할 방침이다. 병역은 본인, 배우자, 자녀가 대상이고 국적은 고의적인 원정출산 등을 의미한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우리 사회 모든 부모님께 큰 박탈감을 안겨줬던 조국형 범죄는 더욱더 철저한 검증을 해 부적격자를 원천 배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대 분야 외에도 도덕성, 청렴성에서 부적격이 드러나면 공천에서 배제된다. 구체적으로 지위와 권력을 남용해 불법·편법 재산 증식, 권력형 비리, 부정 청탁 등을 저지른 경우와 탈세를 저지른 경우, 고액·상습 체납 명단에 오른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2003년 이후 음주운전이 총 3회 이상 적발된 경우, 뺑소니·무면허 운전을 한 경우나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경우도 부적격 대상이다.도촬·스토킹, 미투, 성희롱·성추행, 가정폭력·데이트폭력, 여성 혐오·차별적 언행, 아동학대, 아동폭력 등 성·아동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물의만 빚었어도 배제하기로 했다. 성범죄의 경우 ‘벌금형 이상’에서 ‘기소유예를 포함해 유죄 취지의 형사처분 전력이 있는 자’로 부적격 기준을 강화한다. 총선기획단 총괄팀장인 이진복 의원은 “이런 부분에 대해 (현역) 의원 중 대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여러분도 다 아실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앞서 발표한 ‘현역 50% 이상 물갈이’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공관병 갑질’ 논란을 빚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에 대해 “우리 당에 공천 신청을 안 하실 것 아니냐”고 말했다. 원정출산 기준과 관련해 나경원 의원을 언급하는 말에는 “나 의원은 본인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사설] 우리 사회 만연한 탈북 여성 차별, 부끄럽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제 “탈북 여성들의 상당수가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임금 차별과 일상적인 성희롱,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5월부터 넉 달여 동안 직장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 100명을 설문 조사하고 35명은 심층 면담한 결과이다. 이에 따르면 탈북 여성들은 사투리 등으로 인해 구직 단계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어렵게 취업했더라도 임금격차 등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 월평균 임금은 189만 9000원으로 일반 평균 임금 255만 8000원의 74.2% 수준에 그쳤다. 응답자의 37%는 직장에서 모멸감이나 성희롱, 괴롭힘 등을 경험했지만 대부분(41%)은 혼자서 참고 지낸다고 답했다. 현재 탈북 여성은 2만 3500여명으로 전체 탈북 이주민 3만 2700여명의 72%인 점을 감안하면, 탈북 이주민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차별적 대우를 경험했거나 차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탈북 여성의 고용률이 56.6%로 우리나라 여성의 51.3%보다 높은 것은 자녀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사정 때문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주민의 30.7%가 빚을 지고 있고 76%가 월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울감과 절망감을 느낀 비율은 25.6%로 취업자가 실업자보다 높다고 하니 탈북 여성들이 겪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동포보다 탈북인들이 더 차별받고, 탈북 여성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더 받는 게 현실이다. 경제력이나 피부색깔, 출신국가,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한다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탈북 여성은 자유를 찾아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국을 찾아온 사람들 아닌가. 제도적인 차별이나 혐오뿐만 아니라 눈에 드러나지 않는 각종 차별의식을 없애는 데 우리 사회가 좀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결혼이주민으로 한국서 사는 다문화가족에게도 더 따듯한 사회가 될 것이다.
  • 사우디 정부, 시나브로 사라지던 ‘식당 남녀 다른 출입문 의무화’ 없애

    사우디 정부, 시나브로 사라지던 ‘식당 남녀 다른 출입문 의무화’ 없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식당에 들어갈 때 성별에 따라 다른 출입문을 이용하게 했던 의무화 조항을 없앤다고 밝혔다. 사우디 지방자치부는 8일(현지시간) 식당들에선 더 이상 성에 따라 구분해 출입구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대신 업주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면 된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9일 전했다. 지금까지는 식당이나 카페에 입장할 때 가족과 여성들은 한 출입구를, 남성들은 다른 출입구를 이용해야 했다. 극장에서도 남녀는 각자 다른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해야 했다. 최근에는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을 조용히 없애는 추세였는데 이번에 정부가 대놓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공표한 것이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7년 국정을 장악한 이후 반체제 인사를 억압하는 조치를 강화하면서도 사회 전반의 낡은 관습을 폐기하는 흐름을 이어가는 연장 선이다. 지난해에는 여성 운전자의 운전을 허용했고 올해 초에는 동반 남성이 없이도 여성 혼자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국왕 칙령을 변경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여성을 차별하는 법과 제도가 남아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또 이름난 여성 활동가들은 정부가 개혁을 진행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여성 등 억압되고 그늘 진 사회 부문을 개방하는 빈살만의 개혁은 해외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반동적이고 억압적인 퇴행을 경험하기도 한다. 지난해 언론인 자말 카쇼그지를 독살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우디를 줄곧 지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주요 지도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리야드 정부 인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카쇼그지가 첩보원 팀의 ‘깡패 작전’에 살해됐다고 정부는 밝혔는데 많은 이들과 유엔 전문가들은 일종의 법원 밖 처형을 당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헌재 “차별·혐오 표현 금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합헌”

    헌재 “차별·혐오 표현 금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합헌”

    기독교학교 교장 등 ‘반동성애 못 가르친다’ 헌법소원헌재 “차별·혐오 금지는 인간 존엄성 보장 차원 긴요”“타인의 인권 침해하는 표현은 보호 가치 매우 낮아” 성별이나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혐오 표현’을 하지 말도록 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기독교학교인 서울디지텍고 교장이었던 곽일천 이사장과 같은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조례 5조 1항은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국가·민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또 5조 3항에서 학교의 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이 5조 1항에 적시된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혐오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구인들은 해당 조례가 헌법 위임이 없고 표현·종교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것은 성별 정체성·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혐오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분 때문이다. 성별 정체성이란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젠더를 의미한다.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하는지, 여성으로 인식하는지 아니면 그 외의 젠더로 인식하는지를 가리킨다. 성적 지향이란 성별 정체성과 별개로 개인이 이끌리는 상대의 양상에 따라 구분된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 무성애 등이 이를 구분짓는 개념이다. 청구인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종교적 교리에 따라 동성애 등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고, 이것이 곧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이다. 재판부는 “차별·혐오 표현은 개인이나 소수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침해하고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하므로, 금지되는 것이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특히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차별·혐오 표현은 학생의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수 있고,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의 인격이나 가치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또 “해당 조항으로 달성되는 공익은 매우 중대한 반면, 제한되는 표현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는 표현으로 그 보호 가치가 매우 낮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상위 법령 없이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한 것은 법률유보원칙(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국회 의결을 거친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 협약 등에서 규정·선언하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규범화하여 마련한 학교 운영 기준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370여개 청소년·교육단체 등이 모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논평을 내고 “우리 사회가 차별 언행 및 혐오 표현 등에 대처해야 할 필요를 인정한 것”이라며 “이후 차별금지법 등 관련법이 제정돼야 할 정당성도 시사한다”고 환영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청년 정치인 3인을 만나다

    청년 정치인 3인을 만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4개월가량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은 총선기획단을 꾸리고 전열을 가다듬느라 분주하다. 이번 총선의 키워드는 ‘청년’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문제와 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변화의 속도에 우리 국회가 영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회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져 제20대에 들어서는 55.5세를 기록했다. 반면 제17대 국회에서 23명이던 30대 이하 국회의원은 제20대 들어 3명에 불과하다. 이를 쇄신하기 위해 2030 청년 정치인들을 국회로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권자의 30%에 달하는 2030 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청년 정치인 영입은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총선에 뛰어든 청년 정치인 3명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더불어민주당 오상택(39)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자유한국당 장능인(30) 부대변인, 정의당 장혜영(32) 미래정치특위 위원장이다. 오 전문위원은 운동권 학생회의 마지막 세대이고, 장 부대변인은 카이스트 출신의 사회적기업가다. 그리고 장 위원장은 얼마 전까지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영화를 찍고 유튜브를 하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정치에 뛰어든 배경은 다 달랐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같았다.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위 위원장 “386, 정치 배워서 했지만 우리에겐 삶이자 현실” “저와 동생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에서 시작했어요.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이대로 있으면 우리는 그냥 죽게 될 테니까요. ” 지난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의당 장혜영 미래정치특위 위원장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월 말 정의당에 입당하며 쓴 공개 정치 선언문에서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일을 주저하는 지금의 정치에 지쳤기 때문’에 정치를 시작한다고 했다. 사실 그가 제도권 정치에 들어선 건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줄기차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유튜브 ‘생각 많은 둘째언니’로도 잘 알려진 장 위원장은 2017년 6월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을 18년 만에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면서 탈시설 자립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기도 하다. 장 위원장은 정부가 약속했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비롯해 공약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직접 입법 기관에 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장애인 탈시설은 단순히 장애인 3만명의 탈시설이 아니라 약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일”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길 원하는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정의당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장 위원장은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으로 크게 장애인 복지와 정치 개혁을 꼽았다. 구체적으로 그는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제도를 주장한다. 장 위원장은 “지금의 정책은 장애인 복지를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장애에 등급을 매기고 평가를 한다. 장애가 있다는 것을 문제로 보는데, 진짜 문제는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차별”이라며 “표 하나를 놓고 몇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를 따져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당사자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24시간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청년을 약자로 보고 접근하는 관점 역시 청년의 가능성과 의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청년 정치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저는 87년 민주화를 책에서 배웠어요. 책을 읽고 공부를 하더라도 그 당시 경험한 세대보다 잘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기성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성소수자, 장애인의 함께 살아갈 권리, 여성주의 이런 것에 대해 386세대는 배워야 알 수 있지만 우리에겐 삶이고 현실이죠. 현 국회에는 이런 것들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하고, 21대 총선에서 이것이 시작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겁니다.”장능인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경제적 어려움에 꿈도 못 꾸는 청년 더이상 없어야” 자유한국당에서는 장능인 부대변인이 나섰다. 그는 내년 총선에 고향 울산에서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인 2009년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그는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전선거대책위원장, 2017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그리고 올해 대변인을 맡으며 당내 떠오르는 청년 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인터넷으로 ‘장능인’을 검색하면 ‘미담장학회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눈에 띈다. 그는 스무 살 때 만든 교육봉사 동아리 ‘미담장학회’를 사회적기업으로 성장시켜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전국 12개 대학에서 500명의 대학생 선생님이 참여하고, 방과후교실 등을 통해 3000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 미담장학회 설립 배경은 그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러 집을 다녀 보니 부모님의 소득 수준과 학생들의 꿈의 크기가 비례하는 측면이 있더라고요. 실력은 키우면 되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있으면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뜻맞는 친구들과 함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학교로 불러 가르치기 시작한 게 시초가 됐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미담장학회의 종잣돈이 됐다. 10여년째 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장 대변인은 정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4차 산업을 넘어 5차 산업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지금 국회에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해 본 세대가 없다”면서 국회에도 청년들이 입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발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취업이나 생업을 걱정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돈이나 시간이 큰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사관학교 같은 청년 정치인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선거에 나갈 때 펀드나 기부하는 방식의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장 대변인은 청년 정치가 기성 정치권의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 정치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의 중위임금제, 상임위원회 현장참여제도, 사회문제 공론화 입법·지원 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20~30대 청년 중에 연봉 1억원 받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국회의원도 중위임금이나 최저임금을 받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경제를 살리면 자연스럽게 월급이 올라가고, 그러지 않으면 줄어들도록 해야 책임정치가 가능하지요.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오상택 민주당 국가균형위 전문위원 “인간성마저 상실한 국회… 그래도 해법은 정치뿐” 더불어민주당의 오상택 대통령직속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은 2011년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6년 영남대 총학생회장을 하며 운동권 총학의 마지막을 불태웠던 그는 이인영 원내대표 정무특별보좌관, 성균관대 초빙교수 등을 거치며 정책적으로나 실무적으로도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오 위원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고향인 울산 울주군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선의 유불리를 따진다면 울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란 고향이기 때문에 이곳을 사람들이 오고 싶은 도시로 발전시키고 싶다”면서 “국회와 정당 등 중앙정치 경험을 토대로 지역 발전을 모색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울산에 가서 시민들을 만나며 소통을 넓히고 있는 오 위원은 청년 정책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학교폭력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 청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여러 가지 정책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면서 “대학을 다니고 졸업해 취업하는 것을 보통의 청년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이런 경우를 도와줄 수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청년이라는 약자 집단의 전체 윤곽을 바라보고 이에 대해 적절히 처방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청년기본소득, 수당 정책을 보편적으로 시행해 기본적인 설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 매년 수차례 반복되는 국회 파행을 옆에서 지켜본 오 위원은 그 어느 때보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탄식이 크다고 했다. 그는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0%에 불과하다. 이것이 국회의 현주소”라며 “정쟁을 통한 극렬한 대립이 결국 일하지 않고, 인간성마저 상실한 비정한 국회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국회 보좌관 등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민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정치밖에 없다”고 했다. 역시 해법은 청년 정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당, 한국당, 정의당 등 기성 제도권 정치인들이 청년 정치를 최우선에 걸고 있는데 각 선거 때마다 보여 주기식 정책이 아니라 실천으로 가야 한다”면서 “예컨대 1억원이 넘는 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청년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비용적, 조직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 국회에 입성하는 청년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못 먹어서 엉덩이가 너무 없어”… 탈북여성들 차별에 운다

    “못 먹어서 엉덩이가 너무 없어”… 탈북여성들 차별에 운다

    평균 월급 189만 9000원… 전체 74% 수준 “이력서에 北 출신 숨겼더니 연락 오더라” “말투 고치려 스피치 학원도” 구직 어려움 북한이탈주민지원법에 ‘보호’ 명시해야“일본식 횟집에서 일할 때였어요. 남자 손님들이 술잔에 돈을 감아 주면서 마시라고, 그게 예의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남자 손님이 술을 달라기에 ‘뭘로 드릴까요’ 물었더니 ‘입술을 달라’는 거예요. 러브샷 강요도 많았어요. 제가 북한에서 왔다고 쉽게 대한 거 같아요.”(탈북 여성 A씨)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가운데 75%는 여성이다. 8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이탈여성 일터 내 차별 및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상당수가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임금 차별과 일상적인 성희롱,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출신·사투리 숨겨야 겨우 취직할 수 있어 요구르트 관리소 등을 거쳐 약품도매업에 종사하는 탈북 여성 B씨는 정착 초기 북한 출신임을 숨기고 일을 구했다. 그는 “이력서에 고향을 이북으로 적어 넣으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며 “출신지를 숨기면 50%는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북한 사투리도 구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C씨는 “식당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말투가 너무 억세서 손님들한테 거부감을 준다’, ‘영업에 방해가 된다’며 거절하더라”고 말했다. 탈북 여성과 비슷한 말투를 쓰는 중국동포(조선족) 여성들은 국내 체류 기간이 길고 적응이 빠르다는 이유로 식당업계에서 더 선호된다고 탈북 여성들은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중국에 오래 거주한 일부 탈북 여성은 중국동포로 위장 취업하기도 한다. D씨는 “말투를 고치려고 스피치 학원도 다녀봤는데 나이 먹어 바꾸려니 쉽지가 않다”고 털어놨다. ●똑같이 일해도 월급은 일반인보다 더 적어 어렵사리 취직을 해도 탈북 여성들은 임금 차별 앞에 절망했다. 2010년 탈북한 뒤 직업교육을 통해 세무회계 2급, 기업회계 1급 자격증을 딴 E씨의 첫 월급은 105만원이었다. 보험료 떼면 고작 90만원이었다. 탈북민을 고용한 기업에 국가가 급여의 50%를 지원해 주는 제도에도 일반 직원 초봉(150만원)의 3분의2 정도에 그쳤다. 탈북 여성의 고용률은 56.6%로 일반 여성(51.3%)보다 높다. 그만큼 생계가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임금 사정은 열악하다. 2018년 탈북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월평균 임금은 189만 9000원으로, 일반 국민 임금(255만 8000원)의 74.2% 수준이다. ●동료·상사로부터 성희롱 고통까지 탈북 여성들은 성희롱도 감내하고 있었다. 30대 여성 F씨는 “35살 때 스크린골프장에서 일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퇴근 후 밥을 사준다면서 ‘애인해 달라’고 요구해 취직한 지 보름 만에 관둬야 했다”고 털어놨다. 사무직으로 취업한 G씨는 “몸매가 날씬하네. 북한에서 먹지 못해서 살이 안 찐 건가”라는 상사의 성희롱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H씨도 “햐, 몸매 봐라, 어쩜 이렇게 예쁘냐. 그런데 엉덩이가 너무 없다. 살 좀 쪄야 한다”는 남자 상사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드라이브를 시켜 준다는 동료 남성이 ‘피곤하니 쉬어 가자’며 모텔이나 호텔로 이끌어도 그것을 성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탈북 여성도 있었다. 보고서는 “제도적인 차별이나 혐오보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차별의식이 더 문제”라며 “북한이탈주민지원법에 북한 이탈 여성 보호를 명시하도록 하는 권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못 먹어서 엉덩이가 너무 없네’…탈북여성 차별실태

    ‘못 먹어서 엉덩이가 너무 없네’…탈북여성 차별실태

    “일본식 횟집에서 일할 때였어요. 남자 손님들이 술잔에 돈을 감아 주면서 마시라고, 그게 예의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손님이 술을 달라기에 ‘뭘로 드릴까요’ 물었더니 ‘입술을 달라’는 거예요. 러브샷 강요도 많았어요. 제가 북한에서 왔다고 쉽게 대한 거 같아요”(탈북여성 A씨)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가운데 75%는 여성이다. 이들의 상당수가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임금 차별과 일상적인 성희롱,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8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이탈여성 일터 내 차별 및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여성들은 일반 여성보다 경제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 외에도 보이지 않는 직장 괴롭힘을 호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신·사투리 숨겨야 겨우 구직 요구르트 관리소 등을 거쳐 약품도매업에 종사하는 탈북여성 B씨는 정착 초기 북한 출신임을 숨기고 일을 구했다. 그는 “이력서에 고향을 이북으로 적어 넣으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며 “출신지를 숨기면 50%는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이북사투리도 구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C씨는 “식당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말투가 너무 억세서 손님들한테 거부감을 준다, 영업에 방해가 된다며 거절하더라”고 말했다. 탈북여성과 비슷한 말투를 쓰는 중국동포(조선족) 여성들은 국내 체류기간이 길고 적응이 빠르다는 이유로 식당업계에서 더 선호된다고 탈북 여성들은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중국에 오래 거주한 탈북여성들은 중국어와 생활상식 등을 활용해 중국동포로 위장 취업하기도 한다. D씨는 “말투를 고치려고 스피치 학원도 다녀봤는데 나이 먹어 바꾸려니 쉽지가 않다”고 털어놨다. ●똑같이 일해도 월급은 일반인 75% 수준 어렵사리 취직을 해도 탈북 여성들은 임금 차별에 절망했다. 2010년 탈북한 뒤 직업교육을 통해 세무회계 2급, 기업회계 1급 자격증을 딴 E씨의 첫 월급은 105만원이었다. 보험료 떼면 고작 90만원이었다. 탈북민을 고용한 기업에 국가가 급여의 50%를 지원해주는 제도에도 다른 직원 초봉(150만원)의 3분의2 정도에 그쳤다.속옷공장에서 자리를 잡은 F씨는 하루 11시간씩 주 6일 근무했지만 40만원의 월급밖에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탈북 여성의 고용률은 56.6%로 일반 여성(51.3%)보다 높지만 임금 사정은 열악하다. 2018년 탈북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월평균 임금은 189만 9000원으로, 일반국민 임금(255만 8000원)의 74.2% 수준이다. ●성희롱 고통까지 감내하는 여성들 탈북 여성들은 성희롱도 감내하고 있었다. 30대 여성 G씨는 “35살 때 스크린골프장에서 일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퇴근 후 밥을 사준다면서 ‘애인해달라’고 요구해 취직한 지 보름 만에 관둬야 했다”고 털어놨다. 사무직으로 취업한 H씨는 “몸매가 날씬하네. 북한에서 먹지 못해서 살이 안 찐 건가“라는 상사의 성희롱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I씨도 “햐, 몸매 봐라, 어쩜 이렇게 예쁘냐. 그런데 엉덩이가 너무 없다. 살 좀 쪄야 한다”는 남자 상사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드라이브를 시켜준다는 동료 남성이 ‘피곤하니 쉬어가자’며 모텔이나 호텔로 이끌어도, 그것을 성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탈북 여성도 있었다. 보고서는 “제도적인 차별이나 혐오보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차별의식이 더 문제”라며 “북한이탈주민지원법에 중층적 소수자인 북한이탈여성 보호를 명시하도록 권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386은 공부로 정치했지만 우리는 삶이 정치다”

    “386은 공부로 정치했지만 우리는 삶이 정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4개월가량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은 총선기획단을 꾸리고 전열을 가다듬느라 분주하다. 올해의 키워드는 ‘청년’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문제와 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변화의 속도에 우리 국회가 영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회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져 제20대에 들어서는 55.5세를 기록했다. 반면 제17대 국회에서 23명이던 30대 이하 국회의원은 제20대 들어 3명에 불과하다. 이를 쇄신하기 위해 2030 청년 정치인들을 국회로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권자의 30%에 달하는 2030 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청년 정치인 영입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총선에 뛰어든 청년 정치인 3명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더불어민주당 오상택(39)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자유한국당 장능인(30) 부대변인, 정의당 장혜영(32) 미래정치특위 위원장이다. 오 전문위원은 운동권 학생회의 마지막 세대이고, 장 부대변인은 카이스트 출신의 사회적기업가다. 그리고 장 위원장은 얼마 전까지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영화를 찍고 유튜브를 하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정치에 뛰어든 배경은 다 달랐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같았다. 당리당략에 매몰돼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제도권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청년 정치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혜영 “장애·젠더 동시대 문제 기성 정치권엔 풀 사람 없어”“저와 동생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에서 시작했어요.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이대로 있으면 우리는 그냥 죽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제 모든 시간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의당 장혜영 미래정치특위 위원장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월 말 정의당에 입당하며 쓴 공개정치선언문에서 ‘지금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일을 주저하는 지금의 정치에 지쳤기 때문’에 정치를 시작한다고 했다. 사실 그가 제도권 정치에 들어선 건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줄기차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유튜브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도 잘 알려진 장 위원장은 2017년 6월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을 18년 만에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면서 탈 시설 자립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기도 하다. 장 위원장은 정부가 약속했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비롯해 공약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직접 입법 기관에 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장애인 탈 시설은 단순히 장애인 3만명의 탈 시설이 아니라 약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일”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길 원하는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정의당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장 위원장은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으로 크게 장애인 복지와 정치 개혁을 꼽았다. 구체적으로 그는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제도를 주장한다. 장 위원장은 “지금의 정책은 장애인 복지를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장애에 등급을 매기고 평가를 한다. 장애가 있다는 것을 문제로 보는데, 진짜 문제는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차별”이라며 “표 하나를 놓고 몇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를 따져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당사자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24시간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청년을 약자로 보고 접근하는 관점 역시 청년의 가능성과 의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청년 정치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저는 87년 민주화를 책에서 배웠어요. 책을 읽고 공부를 하더라도 그 당시 경험한 세대보다 잘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기성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성소수자, 장애인의 함께 살아갈 권리, 여성주의 이런 것에 대해 386세대는 배워야 알 수 있지만 우리에겐 삶이고 현실이죠. 현 국회는 이런 것들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하고, 21대 총선에서 이것이 시작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겁니다.” ·장능인 “4차 산업혁명 못 따라와…중위임금으로 낮추고 책임정치”자유한국당에는 장능인 부대변인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고향 울산에서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인 2009년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한 그는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전선거대책위원장, 그리고 올해 대변인을 맡으며 당내 떠오르는 청년 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인터넷으로 ‘장능인’을 검색하면 ‘미담장학회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눈에 띈다. 그는 스무살 때 만든 교육봉사 동아리 ‘미담장학회’를 사회적기업으로 성장시켜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전국 12개 대학에서 500명의 대학생 선생님이 참여하고, 방과후교실 등을 통해 3000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 미담장학회 설립 배경은 그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러 집을 다녀 보니 부모님의 소득 수준과 학생들의 꿈의 크기가 비례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실력은 키우면 되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있으면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장 부대변인은 그렇게 뜻맞는 친구들과 함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학교로 불러 가르치기 시작한 게 현재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미담장학회의 종자돈이 됐다. 10여년째 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장 대변인은 정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4차 산업을 넘어 5차 산업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지금 국회에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해본 세대가 없다”면서 국회에도 청년들이 입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발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취업이나 생업을 걱정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돈이나 시간이 큰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정치사관학교 같은 청년 정치인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선거에 나갈 때 펀드나 기부하는 방식의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장 부대변인은 청년 정치가 기성 정치권의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 정치를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의 중위임금제, 상임위원회 현장참여제도, 사회문제 공론화 입법·지원 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20~30대 청년 중에 연봉 1억원 받는 사람 어딨겠습니까. 국회의원도 중위임금이나 최저임금을 받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경제를 살리면 자연스럽게 월급이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줄어들도록 해야 책임 정치가 가능하지요.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상택 “당리당략에 매몰된 국회…그래도 해법은 정치뿐”더불어민주당의 오상택 대통령직속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은 2011년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6년 영남대 총학생회장을 하며 운동권 총학의 마지막을 불태웠던 그는 이인영 원내대표 정무특별보좌관, 성균관대 초빙교수 등을 거치며 정책적으로나 실무적으로도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오 위원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고향인 울산시 울주군에서 출마선언을 했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선에 유불리를 따진다면 울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란 고향이기 때문에 이곳을 사람들이 오고 싶은 도시로 발전시키고 싶다”면서 “국회와 정당 등 중앙정치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지역 발전의 방법을 안다”고 자신했다. 현재 울산에 내려가 시민들을 만나며 소통을 넓히고 있는 오 위원은 청년 정책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학교폭력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 청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여러 가지 정책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면서 “이런 경우를 대학을 다니고 졸업해 취업하는 것을 보통의 청년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도와줄 수가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청년이라는 약자 집단의 전체 윤곽을 바라보고 이에 대해 적절히 처방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청년기본소득, 수당 정책을 보편적으로 시행해 기본적인 설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년 수차례 반복되는 국회 파행을 옆에서 지켜본 오 위원은 그 어느 때보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탄식이 크다고 했다. 그는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0%에 불과하다. 이것이 국회의 현주소”라며 “정쟁을 통한 극렬한 대립이 결국 일하지 않고, 인간성마저 상실한 비정한 국회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국회 보좌관 등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민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정치밖에 없다”고 했다. 역시 해법은 청년 정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당, 한국당, 정의당 등 기성 제도권 정치인들이 청년 정치를 최우선에 걸고 있는데 각 선거 때마다 보여주기 식 정책이 아니라 실천으로 가야 한다”면서 “예컨대 1억원이 넘는 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청년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비용적, 조직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 국회에 입성하는 청년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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