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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메르켈 후계자 못 찾으면… EU 리더십마저 흔들린다

    獨, 메르켈 후계자 못 찾으면… EU 리더십마저 흔들린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인 ‘로즈 먼데이’ 카니발 등 독일 유명 축제의 단골손님은 바로 ‘유럽의 거물’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카니발 퍼레이드를 장식하는 기상천외한 각종 정치 풍자 조형물 가운데 메르켈 총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빠짐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녀와 같이 보기 민망한 스트립걸로 여성 정치인을 묘사한 조형물을 보면 우리나라의 정치 풍자물은 차라리 점잖다는 생각마저 든다. BBC는 최근 보도에서 “올해 카니발은 메르켈이 수치심을 견뎌야 할 마지막 축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2021년에 임기를 마친 뒤 명예롭게 은퇴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기독민주당에 닥친 연이은 위기로 메르켈의 ‘아름다운 퇴장’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극우에 치이고 좌파에 치이고 지난 2월 초 독일 정가는 튀링겐주 총리 선출 과정에서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몰표를 받아 총리가 탄생하며 발칵 뒤집혔다. 이 과정에서 기민당과 ‘신나치 정당’인 AfD가 한배를 탄 모습이 연출되며 메르켈 총리와 기민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기성 정당들은 극우 정당과는 협력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깨진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책임을 지고 메르켈이 자신의 후임으로 직접 점찍었던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기민당 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에 불출마할 뜻을 밝히며 다시 한번 독일 정가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그동안 메르켈은 당권과 총리 권력을 분리시켜왔다. 이 같은 그의 방침이 크람프카렌바워의 당내 위상을 위축시켜온 가운데 AfD가 집권당의 권력구도까지 뒤흔들자 메르켈의 리더십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소도시 하나우에서 인종차별주의자의 총격사건이 벌어지며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한층 뒤숭숭해졌다.이 같은 소요 속에 같은 달 23일 치러진 함부르크 지방선거에서 기민당은 3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중도 좌파 성향의 사민당이 39%의 득표율로 1위를, 환경 정당인 녹색당은 2위(24.2%)를 차지하는 등 진보 진영이 크게 선전한 반면 기민당은 11.2%를 얻어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됐다. AfD도 5% 지지를 넘지 못해 주의회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외신들은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과 앞서 극우주의자의 총격 사건에 따른 위기감이 사민당과 녹색당을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극우정치의 부상과 크람프카렌바워의 총리 불출마 선언, 극우 테러 사건, 함부르크 선거 패배 등 일련의 사건들은 기민당의 향후 노선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반이민 정서 등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의 우경화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중도·좌파정당들의 함부르크 선거 승리는 기민당에 정반대의 신호를 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지방선거는 올해 독일에서 유일하게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정치권으로서는 민심을 확인할 유일한 기회였다. 가디언은 함부르크 선거 결과를 보도하며 “메르켈의 그늘을 벗어나는 길이 중도 노선을 고수하는 것인지, ‘우클릭’을 하는 것인지 고심하고 있는 기민당에 (함부르크 같은) 도시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은 결과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줬다”고 진단했다. ●조기 전대 카드로 위기 돌파할까 함부르크 선거 참패 이후 기민당은 당대표 선거 조기 개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초 8월쯤 개최하기로 했지만, 연이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4월 25일로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은 모두 중년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단 초반 판세는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NRW) 총리와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기민당 원내대표 등이 선두에 선 모양새다. 라셰트 주총리는 메르켈 시대의 계승을 표방하는 중도·온건파 후보다. “메르켈 시대와 거리를 두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는 출마선언을 하며 최근 총격사건을 의식한 듯 “독일 내 유대인과 이민자 공동체들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향후 기민당의 중심 임무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실제 그의 난민 공약은 메르켈의 현 정책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셰트에 이어 곧바로 출마선언을 한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메르켈 총리의 중도 행보에 반발해 돌아선 옛 기민당 지지자들을 되찾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밝힐 만큼 우파 성향이 강한 인사로 꼽힌다. 메르츠는 2018년 12월 당 대표 선거에서 메르켈이 지원한 크람프카렌바워에게 고배를 마신 바 있어 이번 선거를 통해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오스카 니더마이어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교수는 BBC에 “기민당을 지지하는 민초들은 메르츠를 선호하고 있으며, 현재 모든 여론조사에서도 그가 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반(反)메르켈파’로 유명한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하원 외교외원장 등도 잠재적인 후보군으로 꼽힌다. 2009~2012년 환경부 장관을 지낸 그는 2012년 NRW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물어 메르켈로부터 해임된 바 있다. 메르켈에 비판적인 인사이지만, 당 안팎의 지분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도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혔지만, 그는 당권 경쟁에 나서지 않는 대신 라셰트를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대표직보다는 부대표직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후문이다. 라셰트와 메르츠 간 2파전 양상은 앞서 함부르크 선거 이후 제기됐던 당내 노선 투쟁의 대리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18년간 기민당 대표를 지냈고, 15년째 총리로 독일을 이끌어온 메르켈 총리의 존재감을 당장 뛰어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 전문매체 EU옵서버는 독일 측 관계자의 전언을 인용해 “유럽에 대한 차기 독일 정부의 영향력은 메르켈의 그것보다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독일이 살아야 유럽이 산다 더불어 메르켈과 기민당의 위기는 비단 독일 정치만의 위기가 아니다. 프랑스와 함께 EU의 양대 축을 맡고 있는 독일의 내부 문제는 주변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은 올해 하반기부터 EU 순회의장국을 맡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후속 협상과 10년간 1조 유로(약 1조 3333억원)가 투입되는 기후대응정책인 ‘EU 그린딜’과 같은 의제를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다. 독일의 리더십 위기가 사실상 EU의 리더십까지 표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가디언은 “독일 원로정치인들은 기민당 지도부가 오는 여름까지 현재 문제를 방치하면 EU의 업무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독일 정치의 위기로 프랑스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EU 내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독일의 도움 없이 프랑스 혼자 EU의 난제들을 책임질 수 있다고 자신하기도 어렵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베를린의 ‘헤비급 파트너’(독일 총리)가 없다면 마크롱은 홀로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라며 “기민당의 부활과 메르켈의 훌륭한 후계자를 찾는 것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 입장에서도 필수적인 일”이라고 진단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아시아계에 폭언·폭행… 환자 수용시설 반대, 코로나 공포에 다시 도진 美 인종차별·님비

    아시아계에 폭언·폭행… 환자 수용시설 반대, 코로나 공포에 다시 도진 美 인종차별·님비

    인디애나선 “호텔 예약 취소됐다” 기피 택시·우버 호출 서비스 일방적 승차 거부 트럼프, 앨라배마 격리시설 계획 백지화미국 사회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곳곳에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금기시됐던 인종차별이 노골화하고, 코로나19 수용시설을 둘러싼 님비현상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내에서 코로나19 관련 첫 사망자가 나오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3명이 확진자로 판정받으면서 공포가 번지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확진환자를 위한 수용시설을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님비현상)뿐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무차별 폭언·폭행 등이 잇따르고 있다. 다민족·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님비’는 금기어였다. 최근 한인들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지하철 안에서 백인 남성이 태국계 여성을 향해 코로나19 관련 폭언을 퍼부었다. 그는 “모든 질병은 중국에서 왔다. 중국인들은 역겹다. 그들이 미국으로 질병을 옮겨 온다”며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냈다. 또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한 흑인 남성이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여성에게 “병에 걸렸다”며 무차별 폭행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인디애나에서 아시아계 한 남성은 호텔 입실을 거부당했다. 그는 “직원이 대뜸 중국인이냐고 물었고 ‘아니다’라고 말해도 ‘예약이 취소됐다’며 쫓겨났다”면서 “근처 호텔도 똑같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택시나 우버 등 차량 호출 서비스에서도 ‘아시아인 혐오’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계 승객이나 운전자를 드러내고 피하는 것이다. 워싱턴DC의 제러미 서는 “공항에서 우버를 호출했는데 몇 번을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다”면서 “코로나19의 공포감이 커지면서 아시아계 이름의 승객을 거부하는 등 우버나 리프트 기사들의 인종차별적 승차 거부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공포 확산이 ‘우리 동네는 안 된다’는 님비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 대선 등을 앞두고 공화당 표밭에 관련 시설을 지을 경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산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해외에서 감염돼 귀국한 환자들을 군 기지와 특수의료시설을 갖춘 네브래스카 의료센터에서 치료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늘기 시작하자 증상이 가벼운 일부 환자들을 앨라배마 애니스톤 한 격리시설로 이송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주지사뿐 아니라 상·하원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다. 케이 아이비 앨라배마 주지사는 성명에서 “최우선 과제는 앨라배마 주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보건복지부의 앨라배마 수용소 계획을 크게 질책하며 ‘백지화’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앨라배마는 공화당의 텃밭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 공고한 지역이다. 여기에 수용시설을 만드는 것은 오는 11월 대선을 포기하는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환자 이전 계획과 일본 크루즈 환자 이송 등으로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평이다. 또 캘리포니아의 코스타메이사시도 같은 이유로 연방정부와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연방법원은 환자 이송 일시 중단을 명령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코로나19 공포감이 커지면서 ‘정의’와 ‘포용’이라는 미국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자국우선주의 등에 따른 부작용이란 지적도 나온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동양인 할아버지 인종차별 하며 괴롭힌 美 흑인 남성 논란 (영상)

    동양인 할아버지 인종차별 하며 괴롭힌 美 흑인 남성 논란 (영상)

    68세 동양인 할아버지를 향해 인종 차별적인 집단 괴롭힘을 한 흑인들 중 한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미국 NBC뉴스가 27일 보도했다. 지난 24일 (이하 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다수의 흑인들에게 집단적으로 인종차별를 당하는 동양인 할아버지의 충격적인 영상이 올라왔다.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뷰의 한 거리에서 촬영된 동영상에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68세 동양인 할아버지가 재활용품들을 수거해 가다가 다수의 흑인들에게 짐 보따리를 빼앗기고 위협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덩치가 큰 한 흑인은 빗자루를 들고 이 할아버지를 위협하고 할아버지가 수거한 재활용품을 뺏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남성은 위협을 당하는 할아버지를 놀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며 촬영했다. 이 동영상에는 공포에 떠는 할아버지를 놀리고 즐기는 흑인들의 웃음소리와 "난 동양인이 싫어"라고 외치는 인종 차별적인 대화들이 난무한다. 해당 동영상은 370만 번이 재생되고 SNS에 퍼져나가며 이들 가해 흑인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트위터에 해당 동영상을 공유한 한 사용자는 "이 동영상은 빈인륜적이고 구역질이 난다"며 "경찰은 가해자들을 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가해 흑인들에 대한 비난은 동양인 사회 뿐 만 아니라 같은 흑인 사회에서도 올라왔다. 결국 27일 윌리엄 스콧 샌프란시스코 경찰 서장은 해당 동영상을 촬영한 드웨인 그레이손(20) 이라는 흑인 남성을 구속했다. 이 남성은 동영상을 촬영하며 벌인 강도, 노인 학대, 인종차별로 인한 증오범죄로 기소됐다. 경찰은 동영상 속에서 빗자루를 들고 할아버지를 위협한 또 다른 흑인 남성의 신원을 파악해 체포할 예정이다. 흑인이기도 한 스콧 경찰서장은 "우리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노인 학대와 인종차별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18년 흑인 여성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시장에 임명된 런던 브리드 시장은 "나의 할머니가 이런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더욱 이러한 행동은 용서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김경태 해외통신원 tvbodaga@gmail.com
  • “임신했다”는 여성에 블룸버그 충격 답변 “Kill it”

    “임신했다”는 여성에 블룸버그 충격 답변 “Kill it”

    ‘저격수’ 워런, 블룸버그 임신 여성 차별 주장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78) 전 뉴욕시장의 ‘저격수’로 부상한 엘리자베스 워런(70) 매사추세츠주 상원 의원이 블룸버그가 임신한 여성을 차별했다는 의혹에 대해 집중 공격했다. 워런은 25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열린 대선 제10차 토론회에서 블룸버그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지적하면서 민주당에서 “가장 위험한” 후보라고 날을 세웠다. 워런은 이 자리에서 특수교육 교사로 일했던 과거 자신을 보호할 조합이나 연방 법률도 없었다고 언급하며 블룸버그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블룸버그가 임신한 직원들 가운데 한 명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진 방식, ‘지워버려(Kill it)’라고 나에게 말한 상사는 없었다”며 “사람들은 블룸버그를 위해 일했던 여성들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고 이어갔다. 블룸버그 “그런 말 안 해”… 증거는 “그녀 발언”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즉시 그런 발언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나는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녀가 뉴욕시 교사였다면 결코 그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토론회 진행자인 게일 킹(65)이 워런에게 블룸버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 제공을 요구했다. 워런은 간단히 “그녀 발언들”이라고 답했다. 워런이 언급한 사건은 블룸버그 통신사 직원 세키고 사카이 개리슨 사건을 말한다. 1997년 소송 기록에 따르면 1995년 4월 11일 오전 11시 20분쯤 블룸버그는 그해 9월 출산 예정인 개리슨에게 ‘지워버려’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사내에서 16명이 임신과 관련된 것이 불쾌한 듯 “대단해, 16명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이같이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1989년 1월 채용된 개리슨은 1995년 5월 해고됐다고 뉴욕타임스 1997년 6월 19일자가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소송 당시에도 이 발언을 부인했고, 사건은 유죄 인정없이 합의로 종결됐다. 소송 여성과 비밀유지 협정… 침묵 매수 개리슨 사건은 블룸버그 통신사가 1996년부터 2016년까지 당한 40건의 소송 가운데 하나다. 대다수 사건은 성차별·인종 차별·임신 차별· 업무 능력 차별사건이라고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전했다. 블룸버그는 차별 소송에서 화해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이들 여성과 비밀유지 협정을 맺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해당 여성들의 침묵을 돈으로 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슬람 성지’ 노래한 여성 체포령…빛바랜 사우디 여자축구리그 출범

    ‘이슬람 성지’ 노래한 여성 체포령…빛바랜 사우디 여자축구리그 출범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방 세계와 여성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로 다음달 여성 축구대회를 처음 시작한다. 그러나 노래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넣었다는 이유로 여성 래퍼 체포에 나서면서 여성을 향한 차별 폐지 정책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5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사우디스포츠연맹(SFA) 회장인 칼리드 빈 알왈리드 왕자는 이날 “여자축구리그(WFL)는 건강하고 활기찬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비전 2030의 전략이자 역사적인 발걸음”이라고 밝혔다. 총상금은 50만 리알(약 1억 6000만원)이다. 여성 축구 리그는 지역 챔피언을 결정하는 예선 라운드를 거친 팀들이 토너먼트를 통해 WFL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회는 리야드, 제다, 담만 등에서 열린다. 사우디가 여성 축구대회를 출범한 것은 여성 평등권 확장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12월 음식점에서 성별 분리정책을 종식했고, 8월에는 남성 후견인의 동의 없는 여성 해외여행 금지를 철폐했다. 2017년에 여성에게 운전할 권리를 부여, 2018년에 여성에게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이 발급됐다. 그러나 여성 차별은 여전하다. 사우디 여성은 결혼하거나 이혼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심지어 건강보험에 접근할 때 남성 후견인의 허락이 필요하다. 법정에서 여성의 증언은 남성보다 무게가 덜 실린다고 CNN이 전했다. 유엔 전문가들은 “(사우디에서) 독립된 인간으로서 여성의 기본 인권과 존엄이 부정되고 있다”며 “정치·경제·사회 문제에서 여성의 평등한 참여와 의사 결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차별 논란을 달군 것은 아사옐 슬레이라는 사우디 여성 래퍼가 지난주 메카에서 부른 ‘메카 걸’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다. 히잡을 쓰고 카페 안에서 영어와 아랍어로 “메카가 강력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했지만 체포 위기에 몰렸다. 메카 통치자인 할레드 알 파이잘 왕자는 이날 “메카의 관습과 전통을 모독했다”며 체포를 지시했다. 여성 래퍼가 체포되면 ‘신성모독’을 이유로 극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가 전했다. 그의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삭제됐지만 트위터에는 남아 있다. 반면 강간 혐의로 기소된 모르코 남성 팝가수 사드 람자레드 공연은 허용됐다. 이를 두고 소셜미디어에는 “사우디 당국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185조원 쓰고도…역대 최저·OECD 꼴찌 출산율 ‘0.92명’

    185조원 쓰고도…역대 최저·OECD 꼴찌 출산율 ‘0.92명’

    통계청 “한 세대 지나면 출생아 절반으로”전문가들 “경쟁사회 없애려는 노력 없어”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지난해 역대 최저인 0.92명까지 추락했다.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국가는 2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틀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006년부터 14년간 무려 185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저출산 흐름을 막지 못했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19년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작년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1970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역대 최저치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1명 아래로 떨어진 뒤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는 출생아 수도 30만 3100명으로 간신히 30만명대에 턱걸이했다. 전년보다 7.3%(2만 3700명)나 급감했다.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돈다는 것은 한 세대가 지나면 출생아 수가 지금 낳는 수준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고령 인구가 급속히 늘고 출생아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 고령화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85명까지 떨어졌다. 평균 출산연령은 33.0세로 전년보다 0.2세 상승했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중은 33.3%로 전년보다 1.5% 포인트 높아졌다. 정부는 2006년부터 1∼3차에 걸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진해 지난해까지 모두 185조원을 저출산에 대응한 사업비 등으로 사용했다. 예산을 세부적으로 보면 2006~2010년 1차 기본계획 때 20조원, 2011~2015년 2차 기본계획 때 61조원을 사용했다. 2016~2020년에 해당하는 3차 기본계획에는 지난해까지 104조원을 투입했다. 지난 14년간 투입된 총액 185조원은 ‘초슈퍼’라는 수식어가 붙은 올해 정부 전체 예산(512조원)의 3분의1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2006년(1.13명)과 비교해 0.21명이나 추락했다.전문가들은 복지 등의 측면에만 집중된 정책을 모조리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정부 예산은 주로 복지 분야에 집중돼 있었으며, 최근에는 젠더 분야에도 눈을 돌리고 있지만 잘못된 진단이라고 본다”며 “미국이 복지 제도가 있어서 출산율이 높은 것이 아니고, 젠더 모델은 우리와 토양이 다른 유럽 사례이기 때문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구학에서는 경쟁이 격화되며 물리적 밀도나 심리적 밀도가 높을 때 생존이 힘들어지며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우리나라는 모든 자원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대학도 서울에 가야 하기 때문에 경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도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차별이 생기는 고도의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이어지며 양육 시스템이 고비용 구조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사교육을 없애고 학벌 차이를 없애는 구조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몸무게 넘었네?…체중 ‘0.7㎏ 초과’로 해고당한 말레이 승무원

    몸무게 넘었네?…체중 ‘0.7㎏ 초과’로 해고당한 말레이 승무원

    20년 이상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해 온 말레이시아 여성이 사측의 ‘몸무게 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가운데, 현지 법원의 판결이 공개됐다. 미국 폭스뉴스 등 해외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항공에서 25년간 근무한 이나 멜리사 하심은 2017년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나이가 공개되지 않은 이 여성이 해고 통지를 받았을 당시의 신장은 160㎝, 몸무게는 61㎏이었다. 말레이시아항공 사규에 따르면 BMI(체질량지수)를 기준으로 ‘정상’ 상태를 벗어날 경우 해고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하심은 정기검진 당시 BMI ‘정상’에 해당하는 61㎏보다 0.7㎏을 초과한 상태였으며, 이후 말레이시아노동법에 따라 부당한 해고조치를 받았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항공은 2015년 10월부터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객실 승무원의 몸무게를 BMI 기준 ‘정상’을 유지하도록 지시해왔다. 소송이 제기되자 말레이시아항공 측은 “해당 직원에게 몸무게를 감량할 수 있도록 18개월의 유예기간을 줬고, 전문가를 동원한 체중관리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서 “그러나 해당 직원은 사측의 이러한 지시를 무시한 채 운동 스케줄 등에도 불참했다”고 반박했다. 반면 소송을 제기한 하심의 변호사는 “말레이시아항공의 이러한 사규는 영국항공이나 루프트한자항공 등 경쟁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정이며, 직원의 몸무게와 항공 안전과는 결과적으로 큰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 1㎏에 불과한 과체중은 의뢰인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항공사 측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근 열린 재판에서 법원은 말레이시아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회사는 원고에게 사측의 규정에 부합할만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못했다”면서 “체중관리 프로그램은 모든 승무원들에게 적용됐으므로 차별적이라고 보여지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말레이시아 항공 승무원 조합은 법원의 판결이 “매우 잘못된, 비인간적인 판결”이라고 비난했지만, 항공사 측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난해 파키스탄국제항공은 몸무게가 정상을 넘는 ‘비만’ 승무원들에게 몸무게를 감량하지 않으면 지상직으로 강제 이동시키겠다고 밝힌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보드게임으로 관세법 수업… “공무원 교육도 달라질 때”

    보드게임으로 관세법 수업… “공무원 교육도 달라질 때”

    재미없는 주입식 수업 대신 놀이와 접목 우려와 달리 새 교수법에 교육생 긍정적 대기업 경험 살려… “첫 ATD 수상 목표”“공공과 민간이 혁신에 대한 지향점은 같지만 구호와 실행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공도 변화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공무원 교육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조은정(58) 관세청 관세국경관리연수원장은 24일 실무에 사용할 수 있는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공모를 통해 지난해 9월 국경관리연수원장에 임명됐다. 관세청 첫 여성 고위공무원이자 최초 여성 연수원장이다. 대기업에서 교육·마케팅을 담당했던 임원 출신답게 업무 파악 및 진단이 신속했고 혁신에 주저함이 없다. 교육기관의 경쟁력은 교수진의 역량과 직결된다며 ‘개인의 힘보다 조직의 힘이 강하다’는 논리로 집단지성을 유도했다. 조 원장은 “교수진의 실무능력은 뛰어났지만 교수법이 약했다”면서 “관세행정은 모르지만 교수법에 강점이 있는 원장과 상호 보완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교육은 재밌고 교육생이 주도하게 한다는 ‘철학적 접근’을 강조했다. 시험에서 관세법이 빠져 50% 이상이 선택하지 않는다. 관세법을 알지 못하는 신입 직원들에게 어디까지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전체 내용을 쏟아붓는 주입식이 유지됐다. 수업은 재미없고 자리는 지키되 공부가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재미가 없으면 집중하지 않는 특성을 반영한 교수법이 필요하다”고 차별화를 강조한다. 보드게임을 활용한 ‘관세법’ 수업을 도입했다. 1949년 관세법 제정 후 놀이를 통한 학습은 처음이다. “이해가 안 된다”, “왜 필요하냐”는 반대 속에 우선 해 보기로 했다. 교수진과 관세전문가, 제작업체가 참여한 뒤 지난해 12월 직원 대상 시범까지 거쳤다. 수입 신고부터 반입 전 과정을 게임해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허위신고했다 적발되면 칩을 반납하고, 숨어 있던 세관원이 밀수나 허위를 발견하거나 성실 신고자가 칩을 받는 반전이 있다. 직원들도 허위신고·밀수를 시도하다 탈락했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신규 직원들은 “용어·절차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입 물품이나 사후 심사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현직들은 “억울한 성실납세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등의 소감을 밝혔다. 현 1~2단계에 복잡한 요소를 가미한 3~4단계 및 품목 분류 게임을 추가 개발할 계획이다. 교육 과정에 대한 적정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도 손을 볼 생각이다. 동영상 강의 중심이 아닌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 ATD(인재개발협회) 어워드 수상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조 원장은 “국가의 일을 시작한 만큼 작은 변화가 이뤄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천안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천산갑, 세계가 가장 원하는 동물/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천산갑, 세계가 가장 원하는 동물/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영국의 비비시 어스(BBC Earth)를 즐겨 보는 편이다.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데다, 국내 방송사들에서 전파를 타기 전의 다큐멘터리를 만나는 경우도 있어 꽤 매력적이다. 최근 본 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천산갑-세계가 가장 원하는 동물’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천산갑 보호 활동에 바치고 있는 독일 여성 마리아 디크만의 이야기를 그린 프로그램이다. 그와 함께 중국, 베트남 등을 돌며 왜 아프리카의 천산갑이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로 인해 멸종 직전에 이르게 됐는지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천산갑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밀렵에 희생되는 동물 중 하나로 소개했다. 개미를 먹고 사는 순둥이인 데다, 위기 때 몸을 둥글게 마는 것 외에는 변변한 재주가 없어 밀렵꾼들의 쉬운 표적이 되곤 한다. 천산갑은 주로 중국에 팔려 간다. 고기는 식용으로, 몸에 두른 비늘은 고가의 약재로 쓰인다.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1960년대 이후 개체수가 아시아, 아프리카를 통틀어 94%나 감소했다고 한다. 마리아는 천산갑을 “아시아에서는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물”이라고 표현했다. 우쭐대고 싶어 하는 일부 부유층의 천박한 보신 취향 탓에 동물 한 종이 절멸 위기까지 내몰린 것이다. 천산갑은 최근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물이 됐다. 천산갑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중간숙주라는 주장이 중국에서 제기된 이후부터다. 아마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천산갑이란 동물을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의 멸종 소식을 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로 건너온 코로나19의 확산 기세가 무섭다. 얼마나 더 많은 인명이 희생돼야 끝날지 알 수 없다. 종식을 말하기엔 섣부르지만, 교훈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사태가 중국이 거대한 미몽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나은’이 아닌, ‘반드시 이어져야 할’ 미래를 위해서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던 게 지난 2002년 말이다. 사향고양이가 중간숙주로 알려지면서 당시 중국에서 야생 동물을 즐겨 먹는 식습관을 버리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다. 사스 이후 자연은 중국인들에게 생각을 바꿀 시간을 줬다. 무려 18년이나. 한데 중국의 자세는 별로 바뀌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수많은 상어들이 지느러미만 잘린 뒤 버려지고, 호랑이는 가죽만 남기고 통째 분해된다. 상아와 뿔을 얻자고 지금 이 순간에도 코끼리와 코뿔소를 사냥하고 있다. 상아야 아름답기라도 하지, 불끈 선 모습이 남성성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코뿔소의 뿔을 먹는 행위에 이르면 코웃음만 나온다. 기껏해야 손톱과 비슷한 성분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고래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야생동물에게 무저갱의 지옥으로 여겨지는 곳이 중국인 셈이다. 얼마 전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코로나19를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다. 잡지는 방독면을 쓰고 귀마개를 한 빨간 망토 차림의 동양인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아래쪽에는 굵고 큰 글씨로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중국 정부가 불편해한 건 당연지사다. 인종차별 운운하며 격하게 항의하는 등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앞뒤 뚝 자르고 표지만 보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밀렵의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민낯을 까발리고, 이 같은 행태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자연의 복수는 혹독하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야생동물에게 없는 미래가 인간에게는 있을 것 같은가. angler@seoul.co.kr
  • “자유 얻은 학생은 교권도 존중”… 인간다운 학교 위해 싸운다

    “자유 얻은 학생은 교권도 존중”… 인간다운 학교 위해 싸운다

    “수학 문제 못 푼다고 손바닥 때리고, 봉사라면서 힘든 노동을 몇 주 동안 시킨 적도 있어요. 이런 일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어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안소연(18·활동명 해별)양은 ‘조례만드는청소년’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소연양은 지난 1년간 친구들과 함께 경남 지역에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교권을 침해한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도 10대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우리는 진 게 아니다. 아직 못 이긴 것”이라고 외친다. 누군가는 이들의 싸움을 ‘야자 하기 싫어서’, ‘머리를 염색하고 싶어서’ 하는 투정으로 여긴다.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반항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되묻는 어른도 있다. 10대들의 외침에는 “우리를 하나의 인격체로 봐달라”는 간절함이 있다. 소연양 역시 “조례가 인권침해를 막을 완벽한 방패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우리가 겪은 일들이 인권침해였음을 스스로 깨닫고 함께 바꿔 나갈 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조례, 교권 침해·동성애 조장한다고? 소연양을 비롯한 경남 지역 청소년이 바라는 학생인권조례는 10년 전인 2010년 경기도가 처음 제정했다. 광주와 서울, 전북도 뒤이어 만들었다. 조례의 큰 틀은 같다. 학생이 나이와 성별, 종교, 임신·출산,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으며, 물리적·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복장이나 두발 등 외모에서도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권리를 얻으려고 ‘조례만드는청소년’은 어른들과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2009년, 2012년에 이어 지난해 5월에도 경남도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세 번째 실패다. 청소년들은 기독교단체와 보수교원단체의 반발이 컸다고 돌아봤다. 반대 측은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 교권 침해가 급증하고, 학생들의 성적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찬성 3명과 반대 6명으로 조례안을 부결시켰다. 학생이 아닌 어른들 편을 들어 줬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소연양은 “청소년에게 투표권이 없으니 표를 의식하는 의원들로서는 우리 손을 들어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대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교실에서는 인권침해가 공공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입식 교육 체제 때문에 학생이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통제 대상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청소년이 복장이나 머리 모양, 휴대전화 소지와 같은 소소한 규제부터 체벌이나 인격 모독적 발언까지 여러 종류의 인권침해에 노출된다는 게 학생들의 항변이다.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여긴다. 이마저 없는 지역의 학생들은 여전히 교사들과 교복 치마 길이나 머리 염색 여부를 두고 승강이를 벌인다. 차별적인 발언도 심심찮게 오간다. 소연양 역시 “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애 옆에서 왜 민폐를 끼치느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한다”고 했다. 이어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속이 상해 울자 오히려 선생님이 ‘수업 분위기 나빠지게 왜 우느냐’며 구박했다”고 덧붙였다. ●인권조례 긍정적 효과… 체벌·혐오 감소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현장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효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따르면 학생들은 인권이 침해됐다고 느낄 경우 언제라도 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상담·조사·권리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2012년 조례 시행 후 학생인권 상담 건수를 살펴보면 2013년 927건, 2015년 1136건, 2017년 1551건으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10월 말 기준 575건으로 약 3분의1 수준으로 감소했다. 서울시교육청 김영준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 도입 이후 학교 현장에서 체벌이 많이 줄었다”면서 “앞으로 욕설, 혐오 표현 등 언어폭력에 대해서도 권고와 교육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생인권 신장이 곧 교권 침해’라는 일각의 주장이 무색할 만큼 교사들도 조례에 호의적이다. 경력 20년의 경기도 교사 A씨는 “우리 학교는 염색도, 화장도 모두 허용했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았다”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 만큼 아이들도 교사를 존중해 줬고, 수업도 더 원활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례가 도입된 지역도 갈 길은 멀다. 전국중고등학생진보동아리총연합회가 지난해 7월 서울시내 중고교 학생 1742명(응답자 16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9명(96.4%)이 학생인권조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가운데 70.3%는 조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불만스럽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서울의 한 상업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은 “선생님들이 ‘여자애가 그게 뭐냐’, ‘혼전순결은 지켜야 한다’는 등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억압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털어놨다. 이 여학생처럼 성별이나 종교, 나이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응답이 전체의 41.6%였다.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거나 욕설을 들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 공업고등학교의 남학생은 “체육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때리거나 심한 욕설을 하는 선생님도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응답자의 절반 정도(52%)가 교사에게 체벌이나 기합, 언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는 조례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과 교사의 신뢰를 형성하고, 학교를 인간다운 공간으로 만드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불필요할 정도로 엄격한 규제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망친다고 생각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조례가 도입되지 않은 지역인 충남 교사 B씨는 “복장이나 화장 규제가 엄격하고 꿀밤을 때리는 등의 체벌도 허용되는 분위기라 교사와 학생이 마치 감시자와 피감시자 관계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개념이 아닌 만큼 우리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도입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교과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국중고등학생진보동아리총연합회의 성인 대표인 최준호(23)씨는 “교권은 교사의 권위가 아닌 교사의 인권으로 해석돼야 한다”며 “그 관점에서 보면 교권과 학생인권은 충돌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이 존중될수록 교권도 존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대들은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조례는 결국 제정되지 못했지만 소연양과 ‘조례만드는청소년’은 그간의 활동을 담은 기록집을 만들었다.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지키기 위해 싸우는 청소년들이 있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앞으로 조례 제정을 위해 어떻게, 얼마 동안 싸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직 진 것이 아니며 친구들을 위해 할 일이 더 많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점이다. 소연양은 “일단 우리의 활동을 기록으로 기억하기로 마음을 모았다”면서 “앞으로 조례를 만드는 활동을 계속 해나갈지는 고민 중이지만 이 활동이 멈추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참정권이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급진 페미니스트가 본 페미니즘

    급진 페미니스트가 본 페미니즘

    스트레이트 마인드/모니크 위티그 지음/허윤 옮김/행성B/228쪽/1만 7000원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제2의 성’(1949)에서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을 생물학적 결정론이 아닌, 남성중심사회에서 의존적인 존재가 된 ‘타자’ 개념으로 파헤쳤다. 프랑스 작가 모니크 위티그(1935~2003)는 여기서 더 나간다. 여성으로 태어났든 만들어졌든 여성이라는 원형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 자체가 남녀의 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를 공고히 한다는 주장이다. 여성이 더욱 우월한 지위에 놓여야 한다거나 레즈비언과 게이를 무조건 옹호하지 않는다. 그 역시 ‘만들어진 성 범주’에서 사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나 모권제나 “억압자의 성이 바뀔 뿐” 덜 이성애적인 것은 아니다. 레즈비언과 게이가 스스로를 여성이나 남성으로 인지한다면 성의 굴레 안에서 변형한 것이지 성적 자유를 택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급진적인 주장을 토해 낸 위티그는 ‘페미니스트 이슈’ 등에 실은 에세이 중 9편을 골라 ‘스트레이트 마인드’(1992)를 냈다. 위티그의 유일한 이론서로 알려진 이 책은 한국에서 같은 제목으로 처음 번역돼 출간됐다. 도발적인 주장을 읽다 보면 간간이 한국 사회에 던질 만한 질문이 떠오른다. 위티그는 “‘여성’ 범주가 ‘남성’ 범주만큼이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범주이며 영구적이지 않다”고 했다. 여성 차별을 벗어나려 남성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주의,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나 여대 입학 거부 등 일련의 사건들도 성의 경계 밖에서 생각해 볼 건 없는지.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첫 토론회서 난타당한 블룸버그… 현실정치 벽에 부딪히나

    첫 토론회서 난타당한 블룸버그… 현실정치 벽에 부딪히나

    다른 후보들, 블룸버그에 의혹 집중 포화 “TV광고로 이미지 만든 사업가” 평가도‘마이클 블룸버그(전 뉴욕시장)는 재앙’, ‘모든 측면에서 난타당했다.’ 19일(현지시간)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대한 미 언론들의 관전 평이다. 이날 토론회는 최근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한 블룸버그 전 시장의 데뷔 무대여서 한껏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벼르고 나온 경쟁 후보들의 ‘호된 비판’에 블룸버그 전 시장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간 66조원이 넘는 재산으로 만든 광고 및 홍보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대안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다음달 3일 슈퍼화요일에 중도층 표심을 토대로 대세로 급부상할 거라는 일각의 예측은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나온다. 가장 거세게 몰아붙인 경쟁자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었다. 여성 후보답게 과거 블룸버그의 성희롱 전력이나 발언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워런 의원은 “그들(성희롱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비공개 협약’을 풀라”고 압박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1990년대 자신의 소유인 블룸버그LP에서 여직원들에게 성희롱 소송을 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극소수만 비공개 협약을 맺고 있다. 그들에게 달렸다”고 요청을 거부했고, 이 부분에서 청중의 탄식이 나왔다. 또 워런 의원은 “우리는 여성을 ‘떡대’나 ‘말상 레즈비언’이라고 비하하는 억만장자와 맞서고 있다”며 “이런 성차별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블룸버그의 말”이라고 지적했다. “거만한 억만장자를 다른 억만장자로 대체한다면 민주당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블룸버그는 (뉴욕에서 실시했던) 신체 불심검문 정책 등으로 흑인과 라티노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은 “샌더스와 블룸버그는 양극단”이라며 “한 사람은 사회주의자이고 다른 사람은 자본주의자다. 한 사람은 당을 깨뜨리려 하고 다른 사람은 당을 돈으로 사려고 한다”며 상승세인 두 후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내가 번 돈은 상속받은 게 아니라 자수성가해서 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희롱 의혹에 대해 “블룸버그LP는 남녀 직원에게 똑같은 액수의 월급을 지급하고, 최근 한 조사에서 미국 내 좋은 직장 2위에 꼽혔다”고 답하는 등 핵심을 비켜간 답변을 했다. 그는 토론 후반부에 “샌더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 정책 현실성이 없다”며 공격도 했지만 CNN은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 여러 선수가 한 선수(블룸버그)를 집중 공격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정말 잘 만든 TV 광고에서 블룸버그는 인기 있는 전 뉴욕시장이자 사업가”라며 “하지만 네바다에서 그가 선거운동 능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블룸버그 전 시장이 최근 샌더스 의원에 이어 2위까지 올라왔지만 처음 나온 TV 토론회에서 현실정치의 벽을 절감하면서 중도층 판세에 다시 안개가 드리워졌다. 한편 블룸버그 전 시장은 이날 당적을 민주당으로 옮겼다. 본래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꿔 2002년 뉴욕시장에 당선됐지만, 2009년에는 무소속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블룸버그, TV토론 첫 등장…민주당, 중도 성향 후보의 교통정리에 나설까

    블룸버그, TV토론 첫 등장…민주당, 중도 성향 후보의 교통정리에 나설까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오는 19일(현지시간) 첫 TV 토론에 참가한다. 블룸버그는 오는 슈퍼 화요일인 3월 3일부터 경선에 참가하기 때문에 이번 TV 토론가 사실상 첫 데뷔 무대가 되는 셈이다. 이에 다른 후보들이 중도 진영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블룸버그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예고하는 등 이번 TV 토론회는 사실상 ‘블룸버그 청문회’가 될 것으로 워싱턴정가는 전망하고 있다. 또 블룸버그뿐 아니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피터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등 난립하고 있는 중도성향 후보들간 교통정리나 짝짓기도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 지지자들이 샌더스의 깃발 아래 결집하는데 중도 지지자들이 여러 후보로 나뉘면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CNN 등은 블룸버그가 토론 참여 자격 요건을 충족함에 따라오는 22일 네바다 코커스(당원대회)를 앞두고 19일 오후 9시(미 동부시간 기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후보 토론에 참여하게 됐다고 18일 전했다. 블룸버그의 토론 참여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후원자 수에 대한 자격 기준을 없애고, ‘10% 이상 전국 지지율 기록 네차례’ 등의 여론조사 기준만 맞추면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가능해졌다. 이는 DNC가 ‘셀프 후원’으로 후원자 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블룸버그를 위해 토론 참여의 길을 터준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블룸버그의 무제한적 선거운동 지출은 그를 유력 대선후보로 수직 상승시켰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부가 보호해줄 수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면서 “토론 참여는 부가 보호해줄 수 없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주자들은 블룸버그 전 시장의 신상 문제나 과거 전력 등을 제대로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흑인과 라티노(라틴계 미국인)에 대한 과잉 검문과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뉴욕시장 재직 시절의 ‘신체 불심검문’ 강화 정책, 성희롱 발언 및 여성 차별대우 의혹 등이 집중 거론될 전망이다. 금권선거 논란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진보 성향의 주자들은 블룸버그의 천문학적 선거자금 지출에 대해 “미국 정치 시스템의 부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격해왔다. 또 워싱턴정가는 중도 진영 주자들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샌더스를 누르기 위해 후보 단일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 등의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샌더스는 지난해 12월 조사보다 9%포인트 오른 31%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블룸버그(19%)보다 12%포인트 앞섰다. 바이든은 15%로 3위에 머물렀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중도 진영에서 교통정리가 되지 않으면 강성 진보인 샌더스가 어부지리로 대선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3월 3일 슈퍼 화요일 전후로 중도 진영 후보들의 짝짓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급진 샌더스 꺼리는 美민주, 이번엔 ‘블룸버그 딜레마’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무소속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경선 돌풍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민주당 주류가 급부상하는 ‘마이클 블룸버그(전 뉴욕시장) 딜레마’에 빠졌다. 인종차별·성차별·선거매수 등 각종 의혹으로 골치는 아프지만 60조원이 넘는 재원을 동원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주류의 눈엣가시인 샌더스에게도 맹공을 퍼붓고 있어서다. 블룸버그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러닝메이트로 검토 중이라는 미 인터넷매체의 전날 보도 역시 민주당 주류의 정서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17일(현지시간) 민주당 경선 판세에 대해 “샌더스가 앞서 가는 가운데 곧 치를 민주당의 경선에서 (블룸버그)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블룸버그는 (흑인과 라틴계의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신체 불심검문 강화 정책, 성차별 등 각종 의혹으로 공격하기 쉽지만 공세가 강화되면 그는 투입하는 돈을 늘릴 것”이라며 “(다른 후보들이) 타깃을 샌더스에서 블룸버그로 변경하면 상황만 복잡해진다”고 평가했다. 불룸버그와 여타 후보들이 반목할 경우 샌더스만 선두를 질주하게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들의 기대대로 블룸버그는 샌더스에 대해 포문을 활짝 열었다. 이날 블룸버그는 샌더스 진영의 극성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데 대한 비판광고를 내보냈다. 광고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시민적 담론에 참여하는 건 중요하다’는 샌더스의 육성 메시지를 싣고 “진짜?”라고 묻는 식이다. 지난해 4분기에만 정치 후원금 없이 1억 8800만 달러(약 2238억원)를 선거자금으로 투입한 여세를 이어 갈 경우 샌더스에게 타격이 될 수 있다. 실제 블룸버그의 샌더스 때리기를 관전하는 듯 피터 부티지지(전 사우스벤드시장), 조 바이든(전 부통령),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주 상원의원) 등 중도 후보들은 아직은 블룸버그보다 샌더스 견제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블룸버그가 샌더스 견제를 넘어 대세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이든은 “막대한 돈으로 엄청난 광고를 살 수는 있지만, 과거의 나쁜 기록들을 지울 수는 없다. 블룸버그와 할 이야기가 많다”며 곧 검증의 시기가 올 것임을 시사했다. 이미 워싱턴포스트는 과거 기업을 운영할 때 블룸버그가 여성직원 성희롱과 관련해 여러 번 소송을 당했다고 보도했고, 뉴욕시장 때는 소수민족 비하 발언을 일삼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블룸버그는 다음달 3일(슈퍼 화요일)부터 경선 투표에 참여한다. 블룸버그 딜레마에 빠진 건 민주당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그가 소유한 블룸버그 통신의 기자들도 검증보도의 중립성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기생충이 ‘민사라 칸나’ 표절” 인도 영화 제작자 주장 ‘파문’

    “기생충이 ‘민사라 칸나’ 표절” 인도 영화 제작자 주장 ‘파문’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한 인도 영화 제작자가 자신의 영화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18일 ‘기생충’의 배급사 CJ ENM 측은 “‘기생충’ 표절을 주장하는 인도 영화 제작사 측에서 어떤 연락도 받은 것이 없다. 배급사와 제작사 쪽으로 아무런 이야기가 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17일 인도 매체 인디아 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인도 영화 제작자 PL 테나판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자신의 영화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소송 준비 소식을 알렸다. PL 테나판은 ‘기생충’이 자신이 제작한 1999년 작품인 ‘민사라 칸나(Minsara Kanna)’와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사라 칸나’는 사랑하는 여성을 보기 위해 이 부유한 여성의 가정에 운전사로 들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주인공의 가족도 이 가정에 하인과 요리사로 들어가 신분을 비밀로 유지하고 일한다. PL 테나판은 “‘기생충’이 우리 영화 플롯을 가져갔다. 우리 영화가 ‘기생충’에 영감을 줬다”며 “국제변호사를 선임해 고소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사라 칸나’를 연출한 라비쿠마르 감독은 “이 논쟁이 영화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가져올 것”이라며 “아직 영화를 못 봤지만 ‘민사라 칸나’가 영감을 준 ‘기생충’이 오스카를 수상해서 기쁘다. 표절 소송은 제작자에게 달려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PL 테나판의 난데없는 표절 시비에 인도는 물론 전 세계 관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PL 테나판의 ‘기생충’ 표절 주장은 ‘오스카 효과’의 최정점에 있는 ‘기생충’의 후광을 받고자 펼치는 억지 주장이라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현지 매체조차 이 같은 주장을 황당하게 보고 있다. 한 인도 매체는 “‘기생충’은 계급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적 차별을 담은 블랙 코미디로, 플롯을 보면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르다. 영화의 내용과 미학적 측면에서도 완전히 차별화 된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한 인도 평론가 또한 SNS를 통해 “가족이 다른 가족의 집에 위장해 들어가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이야기의 트로프(문채)다. 트로이 목마 트로프라고 부를 수 있다”면서 이같은 설정은 고대에서부터 전해내려온 이야기라고 일침했다. 한편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글로벌 IT기업 CEO 박사장(이선균 분)의 집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해 5월 국내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국내를 비롯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다. 지난 9일(현지시각)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블룸버그의 돌풍을 막아라’...美 민주당·백악관, 협공에 나서

    ‘블룸버그의 돌풍을 막아라’...美 민주당·백악관, 협공에 나서

    미국 백악관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지지율이 급상승 중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때리기에 나섰다고 16일(현지시간) CNN 등 현지언론이 전했다. 이는 아직 본격 경선에 뛰어들지도 않은 블룸버그 전 사장이 전국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위에 오르는 등 ‘돌풍’의 조짐을 보이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전 시장과 지지층이 겹치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NBC에 “신체 불심검문 강화 정책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 대한 그의 입장이 집중 조명을 받을 것”이라며 치밀한 검증을 예고했다. 또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도 폭스뉴스에서 “그는 신체 불심검문 강화 논란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가 뉴욕시장 때 ‘신체 불심검문 강화’를 시행했고, 이는 당시 흑인과 라티노(라틴계 미국인)에 대한 과잉 검문과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왔다. 블룸버그는 이 문제에 대해 지난해 사과했으나, 최근 다시 이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전날 라스베이거스 유세에서 “블룸버그는 그의 돈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는 지지율과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블룸버그의 최저임금법, 치안 유지, 부유층 과세, 월스트리트 규제 등에 관한 정책을 비판했다. 여성인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도 NBC에 블룸버그의 성차별 의혹에 대해 “그는 단지 방송전파 뒤에 숨을 수 없다”면서 오는 19일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공격할 것을 시사했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도 이날 ‘폭스뉴스 선데이’에서 블룸버그를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최근 ‘미니 마이크’라고 하는 등 블룸버그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콘웨이 고문은 블룸버그의 성차별 발언 및 여성 차별대우 의혹과 관련, “블룸버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이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면서 “유색인종과 여성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블룸버그의 상승은 그를 민주당 대선 경선 경쟁자들뿐 아니라 트럼프 대선 캠프의 주된 타깃으로 만들었다”면서 “특히 그에 대한 공격은 인종 차별적 정책과 여성 처우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성향이 강한 샌더스 의원보다 중도 성향의 블룸버그 전 시장을 상대하기 버거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오는 7월 전당대회까지 민주당 후보들뿐 아니라 트럼프 측도 블룸버그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억만장자 블룸버그·사회주의자 샌더스… 美 민주당 경선서 맞붙는 두 노장

    억만장자 블룸버그·사회주의자 샌더스… 美 민주당 경선서 맞붙는 두 노장

    ■설화도 뛰어넘는 블룸버그, ‘슈퍼화요일’ 돌풍의 핵 되나 아직 경선에 뛰어들지도 않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돈의 힘’이 통한 것인지 다음달 17일 경선이 열리는 ‘대형주’ 플로리다에서 여론조사 1위에 올라서는 등 민주당 경선 구도를 흔들 ‘핵’으로 부상 중이다. 덕분에 미국 언론의 대접도 남다르다. 버니 샌더스 전 상원의원과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의 양강 구도 속에서 블룸버그 전 시장을 주목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30년 전 성차별 발언 폭로 기사도 블룸버그에겐 지지율을 올리는 ‘노이즈 마케팅’이 되는 분위기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블룸버그가 최고경영자(CEO) 시절 했던 성차별 등 부적절 발언이 담긴 과거 책자를 새삼 조명했다. 1990년 한 직원이 블룸버그의 48세 생일 선물로 만들었다는 이 책자는 제목이 ‘휴대용 블룸버그’로, ‘마이클 블룸버그의 재치와 지혜’라는 부제가 달렸다. “좋은 영업사원은 술집에서 ‘나랑 잘래?’라는 말로 여성을 데리고 나가려는 남성과 같다. 그는 많이 거절당하지만 역시 성관계를 많이 할 수 있다”, “회사 금융정보 컴퓨터가 구강성교를 비롯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럼 많은 여자들이 이 분야에서 퇴출될 것이다”는 등 책에 담긴 내용은 저속하기 그지없다. 블룸버그 선거캠프는 책과 관련, “발언을 블룸버그가 직접 한 게 아니고 (장난 같은) 선물을 위해 누군가 지어냈을 뿐인데, 30년 동안 나돌며 선거 때마다 인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부적절한 과거 언행 소환에도 블룸버그의 위상에 흠집이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순자산만 600억 달러(약 71조원)에 달하는 재력가인 그가 수년 동안 막대한 자금을 매우 ‘전략적’으로 기부해 왔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이번 선거운동에만 4억 100만 달러(약 4744억원)를 썼는데, 대선 출마 훨씬 이전인 1997년부터 지금까지 정치·사회 각 분야 시민·자선단체 수백만 곳에 총 25억 5000만 달러(약 3조 167억원)를 기부했다. 특히 건강·안전(14억 달러), 문화·예술(2억 8150만 달러), 교육(2억 3930만 달러), 지역발전(2억 1020만 달러), 환경·기후변화(2억 7820만 달러) 등 대선 국면을 장악한 정치 의제와 관련한 분야에 집중 기부를 해 왔다. 이런 광대한 기부로 시민단체의 비판이 무뎌졌으며, 여론의 도마에 오르지 않은 덕인지 블룸버그는 지난 14일 대의원 219명이 배정된 대표적 경합주 플로리다에서 민주당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1위(27%)를 기록했다. 다음달 3일 ‘슈퍼 화요일’ 경선에 뛰어드는 블룸버그에게 청신호가 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흥행 카드 ‘샌더스 딜레마’ 진보 지지에도 주류 시큰둥 ‘누구도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를 좋아하지 않는다.’(Nobody likes him) 지난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직설적 공격에도 ‘78세 무소속 사회주의자’ 샌더스에 대한 미국 민주당 주류의 우려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초부유세·무료대학교육·전국민의료보험 등의 급진적 공약으로 첫 2개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이들은 물론 월가가 긴장하고, 부유층은 반대 광고 집행에 나섰다. 분명한 흥행카드지만 주류는 반기지 않는 소위 ‘샌더스 딜레마’에 민주당이 고심에 빠졌다. 가디언은 15일(현지시간) “네바다 코커스(22일)를 앞두고 슈퍼팩(억만장자들의 외곽 정치자금 단체)이 반(反)샌더스 광고를 집행한다”며 “이들은 첫 무대였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도 광고에 70만 달러(약 8억 3000만원)를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1일에는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골드만삭스 회장이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만큼 미국을 분열시키고 경제를 망치고 우리 군대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등 중도 성향인 경선 주자들도 한목소리로 샌더스의 급진적 이상정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대가 안 된다는 점을 부각했다. 샌더스를 ‘미친 버니’라고 비난하던 트럼프가 최근 “에너지가 있다”며 태도를 바꾼 것도 샌더스를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샌더스의 돌풍에 분명 이유는 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익을 대변한다”며 30년간 무소속을 지켰고 학생, 저임금노동자, 라틴계 등 확실한 지지세력이 있다. 부자의 기부도 거부했다. 부유해야 학벌을 갖추고, 빈자는 병원에 못 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 밀레니엄 세대가 베이비부머 인구에 육박하자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빌 더블라지오 미국 뉴욕시장도 같은 이유로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USA투데이는 경선 후보들의 인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샌더스가 40%로 1위였고, 바이든(31%), 부티지지·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30%),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29%), 트럼프(26%) 순이었다고 했다. 다만 샌더스가 민주당의 새 주류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라틴계가 많은 네바다 코커스는 선전이 예상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29일)는 바이든의 지지층인 흑인이 많다. 다음달 3일 슈퍼 화요일에는 ‘트럼프를 이길 적임자’로 자평하는 블룸버그의 첫 등판도 효과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억만장자 블룸버그·사회주의자 샌더스… 美 민주당 경선서 맞붙는 두 노장

    억만장자 블룸버그·사회주의자 샌더스… 美 민주당 경선서 맞붙는 두 노장

    ■설화도 뛰어넘는 블룸버그 ‘슈퍼화요일’ 돌풍의 핵 되나 前뉴욕시장, 플로리다 여론조사 1위로 인종·성 차별 등 부적절 발언 공개에도 막강한 재력 뒷받침… 등장 전 존재감 커 아직 경선에 뛰어들지도 않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돈의 힘’이 통한 것인지 다음달 17일 경선이 열리는 ‘대형주’ 플로리다에서 여론조사 1위에 올라서는 등 민주당 경선 구도를 흔들 ‘핵’으로 부상 중이다. 덕분에 미국 언론의 대접도 남다르다. 버니 샌더스 전 상원의원과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의 양강 구도 속에서 블룸버그 전 시장을 주목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30년 전 성차별 발언 폭로 기사도 블룸버그에겐 지지율을 올리는 ‘노이즈 마케팅’이 되는 분위기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블룸버그가 최고경영자(CEO) 시절 했던 성차별 등 부적절 발언이 담긴 과거 책자를 새삼 조명했다. 1990년 한 직원이 블룸버그의 48세 생일 선물로 만들었다는 이 책자는 제목이 ‘휴대용 블룸버그’로, ‘마이클 블룸버그의 재치와 지혜’라는 부제가 달렸다. “좋은 영업사원은 술집에서 ‘나랑 잘래?’라는 말로 여성을 데리고 나가려는 남성과 같다. 그는 많이 거절당하지만 역시 성관계를 많이 할 수 있다”, “회사 금융정보 컴퓨터가 구강성교를 비롯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럼 많은 여자들이 이 분야에서 퇴출될 것이다”는 등 책에 담긴 내용은 저속하기 그지없다. 블룸버그 선거캠프는 책과 관련, “발언을 블룸버그가 직접 한 게 아니고 (장난 같은) 선물을 위해 누군가 지어냈을 뿐인데, 30년 동안 나돌며 선거 때마다 인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부적절한 과거 언행 소환에도 블룸버그의 위상에 흠집이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순자산만 600억 달러(약 71조원)에 달하는 재력가인 그가 수년 동안 막대한 자금을 매우 ‘전략적’으로 기부해 왔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이번 선거운동에만 4억 100만 달러(약 4744억원)를 썼는데, 대선 출마 훨씬 이전인 1997년부터 지금까지 정치·사회 각 분야 시민·자선단체 수백만 곳에 총 25억 5000만 달러(약 3조 167억원)를 기부했다. 특히 건강·안전(14억 달러), 문화·예술(2억 8150만 달러), 교육(2억 3930만 달러), 지역발전(2억 1020만 달러), 환경·기후변화(2억 7820만 달러) 등 대선 국면을 장악한 정치 의제와 관련한 분야에 집중 기부를 해 왔다. 이런 광대한 기부로 시민단체의 비판이 무뎌졌으며, 여론의 도마에 오르지 않은 덕인지 블룸버그는 지난 14일 대의원 219명이 배정된 대표적 경합주 플로리다에서 민주당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1위(27%)를 기록했다. 다음달 3일 ‘슈퍼 화요일’ 경선에 뛰어드는 블룸버그에게 청신호가 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흥행 카드 ‘샌더스 딜레마’ 진보 지지에도 주류 시큰둥 슈퍼팩 反샌더스 광고에 70만弗 투입 “트럼프만큼 분열 조장… 경제 망칠 것” 노동자 등 다수 이익 대변에 기반 탄탄 ‘누구도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를 좋아하지 않는다.’(Nobody likes him) 지난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직설적 공격에도 ‘78세 무소속 사회주의자’ 샌더스에 대한 미국 민주당 주류의 우려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초부유세·무료대학교육·전국민의료보험 등의 급진적 공약으로 첫 2개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이들은 물론 월가가 긴장하고, 부유층은 반대 광고 집행에 나섰다. 분명한 흥행카드지만 주류는 반기지 않는 소위 ‘샌더스 딜레마’에 민주당이 고심에 빠졌다. 가디언은 15일(현지시간) “네바다 코커스(22일)를 앞두고 슈퍼팩(억만장자들의 외곽 정치자금 단체)이 반(反)샌더스 광고를 집행한다”며 “이들은 첫 무대였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도 광고에 70만 달러(약 8억 3000만원)를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1일에는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골드만삭스 회장이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만큼 미국을 분열시키고 경제를 망치고 우리 군대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등 중도 성향인 경선 주자들도 한목소리로 샌더스의 급진적 이상정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대가 안 된다는 점을 부각했다. 샌더스를 ‘미친 버니’라고 비난하던 트럼프가 최근 “에너지가 있다”며 태도를 바꾼 것도 샌더스를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샌더스의 돌풍에 분명 이유는 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익을 대변한다”며 30년간 무소속을 지켰고 학생, 저임금노동자, 라틴계 등 확실한 지지세력이 있다. 부자의 기부도 거부했다. 부유해야 학벌을 갖추고, 빈자는 병원에 못 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 밀레니엄 세대가 베이비부머 인구에 육박하자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빌 더블라지오 미국 뉴욕시장도 같은 이유로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USA투데이는 경선 후보들의 인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샌더스가 40%로 1위였고, 바이든(31%), 부티지지·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30%),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29%), 트럼프(26%) 순이었다고 했다. 다만 샌더스가 민주당의 새 주류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라틴계가 많은 네바다 코커스는 선전이 예상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29일)는 바이든의 지지층인 흑인이 많다. 다음달 3일 슈퍼 화요일에는 ‘트럼프를 이길 적임자’로 자평하는 블룸버그의 첫 등판도 효과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잘나가는 ‘형님 예능’ 설곳없는 ‘언니 예능’

    잘나가는 ‘형님 예능’ 설곳없는 ‘언니 예능’

    “쉬고 싶어서 쉰 게 아니고 (방송국에서) 쉬라고 해서 쉰 거죠.” 지난 6일 방송된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4’에서 코미디언 박미선은 “왜 요즘 방송에 안 나오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KBS ‘거리의 만찬’에서 양희은, 이지혜 등 다른 여성 진행자들과 함께 ‘잘린’ 박미선은 “일이 없는 여성 후배들과 모여서 일을 해보려고 공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근 몇몇 여성 예능인들이 연예대상에서 수상하는 등 주목받고 있지만,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형님 예능’은 꾸준히 새로 제작되고 시즌을 거듭하고 있다. 방송가에서 ‘언니 예능’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주 진행자, 남성이 여성의 3배… 여전히 고정된 성역할 박나래, 김숙, 이영자, 송은이, 팽현숙. 요즘 방송 중인 지상파와 케이블의 주요 예능 프로그램 속 메인 여성 진행자다. 40여개의 지상파 예능 중 메인 진행을 꿰찬 여성 연예인은 손에 꼽는다. 서울YWCA가 2019년 8월 지상파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의 예능·오락 프로그램 18개를 조사한 결과 고정 출연자 총 133명 중 남성은 72.9%로 여성 27.1%의 2.7배였다. 주 진행자 비율은 남성 75%, 여성은 25%로 3배 차이였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쏟아지지만 여성을 앞세운 것은 드물다. 여성 진행자로만 구성됐던 KBS ‘거리의 만찬’은 김용민 시사평론가로 진행자를 교체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시즌2 재검토에 들어갔다. 반면 지난달 시작한 MBC 주말 버라이어티 ‘끼리끼리’에는 남성 연예인 10명이 등장한다. KBS의 대표 예능 ‘1박 2일 시즌4’와 ‘해피투게더4’, SBS ‘집사부일체’, jtbc ‘아는 형님’과 ‘뭉쳐야 찬다’ 등은 대부분 예능은 남성 집단 진행자 체제를 수년간 유지 중이다.숫자도 적지만 여성들은 고정된 성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MBC ‘언니네 쌀롱’은 패션과 화장 등 뷰티 해결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자 6명 중 5명이 여성이다. 스포츠 예능은 반대다. 씨름을 재조명해 인기를 얻은 KBS ‘씨름의 희열’은 선수와 진행자 세 명 모두 남성이다. SBS 농구 예능 ‘핸섬타이거즈’에는 남성 13명과 1명의 여성 매니저가 출연한다. 매니저로 나오는 걸그룹 레드벨벳의 조이는 선수들의 ‘멘탈 관리’와 분위기 메이킹을 책임진다. 지난해 12월 시즌이 끝난 TV조선 ‘연애의 맛’은 남성이 여성을 안고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 등을 방송했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몸을 쓰거나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의 역할, 꾸밈이나 ‘멘탈 관리’ 등 돌봄의 영역은 여성의 역할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서울YWCA 모니터링 보고서는 “18개 프로그램 속 외모 비하 등 성차별적 내용이 35건 등장했으며, 여성에게 주어진 자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도전자나 홍일점 진행자로 제한적”이라며 성차별적 요소를 지적했다. ●리얼·야생·관찰 버라이어티 확대… PD “누가 모험 택하겠나” 여성이 주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든 데 대해 방송 관계자들은 우선 그동안 만들어 온 ‘웃음 공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꼽는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리얼, 야생, 관찰 버라이어티 등 점점 자극적이고 몸을 사리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포맷에서 웃음을 주기에는 남성이 더 편하고 수월하다는 것이다. 지상파의 한 예능 PD는 “잘 망가지고 한 번에 캐릭터를 잡을 수 있는 남성 연기자를 섭외하면 더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다”며 “매주 시청률 성적표를 받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이미 성공해 본 진행자와 검증된 방식을 택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PD들은 ‘여성 PD로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 이 위험을 더욱 감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여성은 뚱뚱하거나 외모로 망가지는 여성만 등장하는데, 여기서 탈피하면서 건강한 재미를 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믿고 맡길 만한 여성 출연자 자체가 적다는 의견도 있다. 출연 기회가 적으니 꾸준히 성장하지 못하고, 인력 자체도 많지 않은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한 케이블 방송의 예능 PD는 “여성 출연자 풀 자체가 적기 때문에 단독으로 메인 진행을 맡길 만한 사람도 적다”면서 “특별한 콘셉트를 가지고 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특별히 여성이기 때문에 출연시켜야 한다는 고려를 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여성 제작진의 절대적 숫자 자체가 남성보다 적다는 점도 꼽힌다.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산업 통계에 따르면 방송사 중 여성 정규직 비율은 18.3%였다. 사람들을 통솔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방송계 특성상 남성 특유의 ‘형님문화’가 형성되고, 여기에서 여성들은 배제된다는 지적이다. 한 지상파 여성 PD는 “출연진, 제작진, 매니저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이들은 형님과 아우 관계로 막역해지면 서로 같이 성장하고 캐스팅할 확률도 높아진다”면서 “여성 출연자에 비해 남성 출연자들은 ‘형’을 믿고 가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상급자 중 여성이 없다는 점도 장벽이다. 지상파의 한 중견 여성 PD는 “15년 전만 해도 여성 상급자는 없었고 신입 여성은 1~2명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기피 현상이 있었다”며 “인정받기 위해 더 남성처럼 일하고 밤도 더 새웠는데, 여성 동료가 많았다면 일부러 남성처럼 보이려는 분위기는 덜했을 것 같다”고 했다.●“여성 상급자·제작진 늘려야 성차별적 콘텐츠 줄어들 것” TV에서 밀려난 여성 연예인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1년 넘게 불러 주는 방송국이 없었던 송은이와 김숙은 2015년 방구석에서 시작한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시작했고, 4년 만에 콘텐츠 제작 및 매니지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방송에서 보기 힘든 박미선은 최근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방송인 김나영 등 출산 이후 유튜브를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연예인도 많다. 박나래는 넷플릭스에서 원톱 스탠드업 코미디쇼 ‘농염주의보’를 선보인 데 이어 KBS 코미디 프로그램 ‘스탠드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스탠드업’을 연출하는 김상미 PD는 “박나래씨가 인기가 많은 것도 고려됐지만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기획 취지와도 맞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핑클 멤버들이 출연했던 jtbc ‘캠핑클럽’, 여성 아이돌 그룹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은 엠넷 ‘컴백전쟁 퀸덤’, tvN ‘삼시세끼 산촌편’ 등 갈등이나 자극 대신 소소한 재미와 파격을 준 예능도 주목받았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는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여성 제작진의 수가 늘어야 장기적으로 성차별적 콘텐츠가 줄고 방송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미선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 제작진과 방송통신위원회·방송심의위원회 위원의 여성 비율이 매우 낮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쿼터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리 천장이 깨져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담아내고 성차별적 요소를 개선해 갈 수 있다”면서 “잠재적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미디어에 출연할 기회도 넓혀야 한다”고 했다. ●英BBC, 출연자 성비 ‘50대50 프로젝트’로 유리천장 없애 영국 공영방송 BBC의 경우 2018년 출연자 남녀 성비를 동일하게 맞추는 ‘50대5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여성 출연자 50% 이상을 달성한 프로그램은 27%에서 74%로 급증했고, 여성 출연자가 40% 미만인 방송은 41%에서 8%로 줄었다. 리더십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한 케이블 방송국의 책임프로듀서는 “요즘은 여성이라고 채용하지 않는 분위기는 없다. 다만 PD의 역할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리더이기 때문에 일종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의사 결정권자에 여성들이 많이 배치되고, 동시에 자신만의 리더십 방식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한 지상파의 여성 예능 PD는 “방송 제작진들은 시청자 반응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내부에서 변화를 만들려고 해도 시청자 의견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힘을 받는다”며 “성차별적 내용 등 불편한 방송에 대한 시청자 감시와 변화를 원하는 수요가 있어야 제작진들도 발맞춘 콘텐츠를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열린세상] 유럽의 동양인/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열린세상] 유럽의 동양인/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고양이를 안고 밤 산책을 나갔다. 동네 어귀를 돌아서 오는데 어떤 백인 여성이 나를 보고 멀찍이서 딱 멈췄다. 그러고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품에 끌어안고 있는 하얀 고양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고양이라고 대답하자 여자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약간 무안해진 모양이었으나 그렇다고 사과를 하지는 않았고 다시 “그건 그럼 네 고양이냐”고 물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창궐하기 전에 벌어졌던 사건이고, 당시 나는 그 여성의 태도를 그저 공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지 잘 모르는 것을 접했을 때 나타나는 공포. 어두운 밤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뭔지 짐작이 가지 않는 커다란 허연 물체를 끌어안고 가까이 오는 거다. 무서울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남의 고양이를 잡아다 안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라니. 그렇게 고양이를 모른단 말인가. 고양이는 안기는 것을 싫어하고 심지어 주인이 안고 있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초면의 고양이를 평온히 안고 다닐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무지가 공포를 낳고 무례를 낳는 것이다. 만일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유럽인들이 동양인을 대놓고 차별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퍼진 상황에서 그 일을 겪었다면 저 사람이 내가 동양사람이라 저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 역시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질병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아무런 정보 없이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피하고 심지어 질병 그 자체 취급하는 태도들. 하물며 질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무례한 취급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분들은 한국인은 중국인이 아닌데 왜 유럽인이 우리를 차별하느냐고 분개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인에게 한국인을 중국인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몽땅 그저 동양인으로 여길 뿐이고 중국은 일종의 대표국가다. 이런 유럽인들의 태도가 억울하다면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을 외양만 보고 구별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면 좋을 것이다. 이들 세 나라 역시 복잡한 과거사가 얽혀 있는 데다가 언어도 민족도 다르다. 하지만 대개 한국인들 역시 이들 나라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서양인은 몽땅 ‘미국인’으로 칭하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드물지 않다. 즉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널리 퍼진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중국인과 구별 짓는 것은 별 의미도 효과도 없다. 차별이나 혐오가 당하는 입장에서 더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차별이란 개인이 소속된 집단적 특성에 가해지기 마련이라 개인이 개선할 수 없거나 개선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을 공격의 구실로 삼는다. 국적이나 인종이나 성별 같은 것. 아니면 종교나 부모라는 위치 등이다. 내가 동양인이라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중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질병이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내가 어쩔 수는 없는 일이니 이를 이유로 차별적이거나 혐오를 담은 언행을 당한다면 그건 참으로 억울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와 관련해 차별이나 혐오 표현을 나 스스로 직접적으로 겪지는 않았다. 물론 소셜 미디어나 언론의 보도가 실제 분위기보다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현실 생활에서는 이런 일들이 흔히 벌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명에게서 단 한마디의 차별적인 말을 들어도 기분 나쁘고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모든 또는 다수의 사람이 차별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당하는 입장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심지어 직접 겪지 않더라도 전달받는 말과 글을 통해서 가해지는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코로나19 발병 이후 중국인들에게 또는 재중 교포들에게 취했던 일부 한국인들의 태도는 집단적인 차별과 혐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대에 입학하고자 했던 성전환 여성을 거부하며 쏟아낸 말들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질병이 무섭고 공포스러웠을 수도 있다. 성전환자라는 존재가 낯설고 불편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무지나 공포가 무례, 더 나아가 차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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