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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뭐길래?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뭐길래?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뭐길래?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도대체 무엇?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도대체 무엇?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도대체 무슨 이유?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도대체 무슨 이유?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무슨 이유?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무슨 이유?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무슨 이유?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무슨 이유?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뭔가 보니?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뭔가 보니?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뭔가 보니?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무엇?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무엇?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朴대통령 유엔 연설] 朴대통령·潘총장 7차례나 만나… ‘반기문 대망론’ 재부상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다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정상외교 기간 중 ‘독대’를 포함해 공식·비공식적으로 7차례나 반 총장을 만나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최근 ‘친박(친박근혜)계 대선주자론’이 등장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파급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첫 일정으로 반 총장을 만나 만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공식 발언은 주로 ‘북핵’, ‘통일’ 등 한반도 현안 등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 정치권에 이미 반기문 대망론이 자자한 상황에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7차례나 만나면서 그 자체로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특히 만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반 총장과 별도로 ‘독대’ 형식의 면담을 가져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만찬은 반 총장이 초청한 것이지만 독대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반기문 대망론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권 대선주자들을 둘러싼 상황이 미묘하게 변하는 가운데 재등장한 것이라 현실감이 사뭇 다르다. 여권 대선주자 부동의 1위였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공천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두고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데다 사위의 마약 사건이 알려지며 최근 주춤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친박계 대선주자론을 들고 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이 또다시 반 총장에게 급속히 쏠리고 있는 것이다. 당내 기반이 없는 반 총장으로서는 친박계가 우군이 돼 준다면 단번에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 정작 반 총장 본인은 거듭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여론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지난 23~24일 여론조사기관TNS 조사에서 반 총장은 지지율 21.1%로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김 대표는 14.1%,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1.2%였다. 다만 역대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후보가 대권을 쥔 전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반 총장의 성공 가능성 역시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유엔 정상외교 기간 중 반 총장 외에 다수의 국제기구 수장 및 각국 정상들과 공식·비공식 만남을 가졌다. 지난 28일의 기후변화 주요국 정상오찬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 대통령을 찾아온 아베 총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고, 박 대통령은 “서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앞서 27일에는 유엔개발정상회의 상호대화 세션을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과 공동주재했다. 두 여성 지도자가 세션을 주재하자 몽골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이 많아지면 훨씬 포용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에 박 대통령은 “여성 지도자에 대한 따뜻한 발언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뉴욕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서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오바마 “정권 퇴진” 푸틴 “협력” 시리아 해법 충돌

    오바마 “정권 퇴진” 푸틴 “협력” 시리아 해법 충돌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는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28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노출하며 충돌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여성 권리 관련 회의를 주재했다가 여성계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독재자가 수천 명의 국민을 살육했을 때 그것은 한 국가의 내정 문제라고 볼 수 없다”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시리아 사태 해결에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현실은 (바샤르) 알아사드로부터 새로운 지도자, 그리고 시리아 국민들이 재건할 수 있도록 무질서를 끝낼 수 있는 포괄적 정부로 권력이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알아사드 정권 퇴진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동우크라이나에서의 공격 확대를 고려할 때 우리는 한 나라의 주권과 영토 보존이 심하게 침해당한다면 이를 참을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도 없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다면 오늘 모인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뒤이어 연설에 나선 푸틴 대통령은 “테러리즘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시리아 정부와 군대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며 “오직 알아사드 대통령의 군대와 쿠르드족 민병대만이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 및 다른 테러단체들과 싸우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소련이 붕괴했는데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계속 확장하는 것은 냉전적 사고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서방에 사태의 책임을 돌렸다. 연설 이후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한 오찬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악수하고 잔을 부딪쳤으나 오바마 대통령의 표정은 굳었고 푸틴 대통령은 입가에 미소를 보였지만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들은 오후 5시부터 90분 동안 가진 양자회담에서 또다시 격돌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양자회담 후 “사무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상황에 대한 이견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약 40분간에 걸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쿠릴 4개 섬 문제 등을 논의했다. 한편 시 주석은 전날 ‘베이징 여성 권리 선언’ 20주년을 기념해 유엔과 함께 ‘양성평등과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회의’를 주최하고 1000만 달러(약 120억원)를 지원한다고 밝혔으나 여성·인권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시 주석이 여성주의자를 탄압하면서 유엔에서 여성 권리에 대한 회의를 주최한다고요?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요”라는 글을 남겼다. 기조연설 첫날인 이날 가장 주목받은 지도자는 2008년 집권 뒤 첫 유엔총회에 참석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다. 카스트로 의장은 연설에서 “미국과의 외교 관계가 복원된 상황에서 관계가 정상화되려면 쿠바에 대한 경제, 상업, 금융 봉쇄가 끝나야 한다”며 “관타나모 해군기지로 불법 점유한 땅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교황 ‘강대국 탐욕’에 거침없는 쓴소리

    교황 ‘강대국 탐욕’에 거침없는 쓴소리

    “모든 종류의 남용과 고리대금업은 제한받아야 한다.” “강대국들은 권력과 물질적 번영을 위해 이기적이다. 끝없이 돈에 목말라하고 있다.” “약하고 빈곤한 계층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중대한 죄’다.”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0차 유엔총회에서 강대국들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물질적인 이득을 쫓는 이른바 우리 사회의 ‘강자’들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약자보호’를 거듭 강조했다. 총회장에는 193개 회원국 대표들이 모두 자리했다. 교황은 먼저 세계 평화와 인권에 대한 유엔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유엔이 국제사회의 분쟁 해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데 대해 비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시리아, 남수단의 분쟁을 둘러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간의 이견을 거론하면서 “인간이 분파적 이해관계 보다 우선해야 하는데 후자가 더 정당성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안보리에 더 공정한 체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교황은 낙태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리에 충실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낙태 문에 대해서는 “(생명은) 모든 단계에서 절대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고, 남성과 여성에게는 “타고난 차이”가 존재한다고 했다. 또 서구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비 서구 지역에 변형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요함으로써 ‘사상적 식민지화’를 시키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최근 미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일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분석이다. ‘약자 보호’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교황은 빈곤층도 교육의 권리와 더불어 ‘3L’, 즉 주거(lodging)·노동(labor)·토지(land)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교황은 ▲시리아·이라크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탄압받는 기독교도의 보호 ▲핵무기 전면 금지 ▲인신매매 금지 등에 각국 정부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마약밀매에 대해서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소리없이 죽이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교황의 연설은 스페인어로 진행됐다. 한편 교황은 연설 직후 9·11테러 추모박물관으로 이동해 미사를 집전하고,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했다. 교황은 할렘 학교를 방문한 데 이어 포프모빌(교황이 타는 공식 의전 차량)인 흰색 지프 랭글러를 타고 뉴욕의 ‘허파’인 센트럴파크를 가로지르는 도심 퍼레이드를 벌였다.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한 뒤 뉴욕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행선지인 필라델피아로 향한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곳은? ‘기발한 상상’ 업적이 되다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곳은? ‘기발한 상상’ 업적이 되다

    벌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부위는 어디일까? 과거 이슬람 최고 지도자는 어떻게 900명 가까운 자녀를 둘 수 있었을까?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은 코피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남녀가 키스를 한 뒤에는 어떤 유전자 분비물이 남을까? 제25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열렸다. 기발한 질문들에 대해 놀랍고 신기한 연구 업적을 내놓은 사람들을 위한 잔치다.   ●1991년 만들어…노벨상 수상자 공개전 발표 올해 이그노벨 생리 및 곤충학상은 벌에게 쏘였을 때 가장 아픈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를 연구한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마이클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벌에게 쏘였을 때 고통스러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몸 25군데에 직접 벌침을 놓았다. 그 결과 콧구멍과 윗입술, 성기 등 세 부분이 가장 아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피어J’에 발표했다. 스미스는 “벌에 쏘이면 모든 부위가 다 아프지만, 사람의 얼굴 피부 다음으로 성기를 둘러싼 피부가 가장 얇아 통증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빈대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오버자우셔 교수와 카를 그라머 교수는 18세기 모로코 알라위 왕조의 술탄(최고 통치자)인 물레이 이스마엘이 888명의 자녀를 두게 된 경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지난해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술탄이 여성들과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잠자리를 가져야 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잠자리 횟수보다는 술탄의 생식 능력이 뛰어나 임신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어 올해 이그노벨 수학상을 거머쥐었다. 언어학자인 마르크 딩게만세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오류를 어떻게 수정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다가 ‘응(Huh)?’이란 단어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흔히 방금 들은 말을 다시 물을 때 무심코 내뱉는 이 단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지역마다 발음에서만 조금씩 차이가 날 뿐 거의 유사하다. 연구팀은 언어나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응?’이란 말을 뱉음과 동시에 평균 1분 30초마다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딩게만세 교수 등은 ‘응?’은 짧은 말이지만 자신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대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결론 내렸다. 딩게만세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2013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는데 전 세계 20만명의 연구자가 읽어 그해 가장 많이 읽힌 과학논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 덕에 딩게만세 교수 등은 올해 이그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 밖에도 키스를 한 뒤 남은 유전자 분비물을 연구한 사람과 키스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30명에게 키스를 시킨 과학자가 의학상을 수상했다. ‘닭에게 인공 꼬리를 붙이면 과연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공룡처럼 걷게 될 것인가’를 연구해 그렇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자에게는 이그노벨 생물학상이 돌아갔다. 뇌물을 거부한 경찰에게 추가로 돈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태국 방콕경찰국은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차지했다.●이젠 창의성이 넘치는 이그노벨상 올해 수상자들처럼 역대 이그노벨상 수상작들에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지난해에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어린아이들의 코피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팀이 의학상을 수상했다. 밤샘을 잘하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보다 머리는 좋지만, 자아도취가 심하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는 연구를 발표한 사람들은 심리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실제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도 있다.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만드는 데 성공한 공로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와 함께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임 교수는 노벨상을 타기 10년 전인 2000년에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가임 교수는 영국 브리스톨대 마이클 베리 교수와 함께 살아 있는 개구리를 자기장으로 공중 부양시키는 실험에 성공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가임 교수는 2010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노벨위원회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며 “사람을 웃게 해주는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그노벨상은 반(反)과학성과 시대상에 대한 풍자적 성격도 강하다. 1999년에는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미국 콜로라도주와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에 과학교육상을 시상하며 “뉴턴의 중력 이론,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 교육도 금지해 달라”고 비꼬기도 했다. 2013년 시상식에서는 주최 측이 부문별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원)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고 했으나, 곧 “기준 화폐는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다. 짐바브웨 달러는 경제개혁 실패로 연간 2억 3100만%의 물가 상승률 때문에 100조 달러가 발행된 적도 있었다. 2009년 사용이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는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제3세계 새 질서 꿈꾸다

    제3세계 새 질서 꿈꾸다

    갈색의 세계사/비자이 프라샤드 지음/박소현 옮김/뿌리와 이파리/508쪽/2만 5000원 냉전 시대의 또 다른 축이었던 제3세계는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로 구분 자체의 의미가 희미해져 갔다. 세계화에 자리를 내주면서 지금은 사라진 얘기가 됐다. 그러나 인도 출신의 역사학자 비자이 프라샤드는 제3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재발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프리샤드는 이 책을 통해 1920년대 브뤼셀부터 1980년대 메카까지 훑어 가며 제3세계 운동의 풍요로운 역사를 들여다본다. 제3세계의 시작은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첫 반제국주의연맹회의였다. 남아프리카, 알제리, 인도네시아, 인도, 이란 등지에서 브뤼셀 회의에 온 대표들은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뿐 아니라 급진적 민족주의 운동에 속해 있었고 서로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자치권이었다. 당시 인도국민회의 대표로 이 회의에 참석했던 네루는 훗날 자서전에서 브뤼셀 회의가 “식민지와 속국이 당면한 여러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브뤼셀 반제국주의연맹회의의 흐름은 훗날 제3세계 운동의 결정적인 모멘텀이 된 1955년 반둥회의로 이어진다. 2차 대전 후 양 거대 진영 사이에 내팽개쳐진 갈색 나라들은 ‘제3세계’라는 이름 아래 집결했다. 식민지 지배와 토착 봉건제의 모순을 동시에 극복하려 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신생국 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 반둥에 모여 식민주의의 종언을 축하하고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함께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의 열망은 ‘제3세계’라는 정치적 프로젝트로 드러나 한 시대를 뜨겁게 달궜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적 존엄성을 갈망했고, 삶의 필수재인 토지, 평화, 자유를 염원했다. 불만과 열망을 다양한 형태의 조직으로 모아냈고 각 민족의 지도자들은 이 조직들을 통해 요구 사항을 수렴할 발판을 마련했다.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가나의 크와메 은크루마,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같은 지도자들은 그 시절 10여년에 걸쳐 여러 회의에서 수차례 조우했다. 반둥회의에 이어 1961년 카이로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와 베오그라드에서 시작된 비동맹운동, 아바나에서 열린 삼대륙회의 등에서 만난 민족지도자들은 인민의 희망을 담아낼 사상과 일련의 기구를 만들어 갔다. 저자는 “‘제3세계’란 이러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며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간 멸시당하고 착취당해 온 제3세계가 운명의 주인이 돼 자신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제3세계의 흥망을 추적한 책은 그동안 진행됐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활력으로 넘쳤던 궤적과 사상들을 발굴하고 각 시대의 풍요로운 역사를 조명하는 동시에 실패한 역사의 원인도 날서게 지적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제3 세계’는 실패한 국가, 기근, 빈곤, 절망의 동의어로 쓰였고, 결국은 부채 위기와 제1세계의 세계적 재편성 정책에 의해 사라지고 만다. “투쟁의 열기로 만들어진 신생국들은 사회 관계를 효과적으로 재조직하지도, 남겨진 식민지형 국가 구조를 분쇄하지도 못했다. 신생국들은 구사회 계급과 손잡고 식민지 관료제 구조를 받아들이며 제3세계 의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서구가 제3세계 운동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는 주장과 달리 몰락의 원인을 내부의 모순에서 찾아낸 저자는 토지와 물에 대한 권리, 문화적 자긍심과 경제적 동등함, 여성과 원주민의 권리 등 지역의 경계를 넘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중운동이 포스트 제3세계 운동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제3세계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반둥회의가 열린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 곳? 업적이 된 ‘기발한 상상’

    벌에 쏘이면 가장 아픈 곳? 업적이 된 ‘기발한 상상’

    벌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부위는 어디일까? 과거 이슬람 최고 지도자는 어떻게 900명 가까운 자녀를 둘 수 있었을까?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은 코피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남녀가 키스를 한 뒤에는 어떤 유전자 분비물이 남을까? 제25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열렸다. 기발한 질문들에 대해 놀랍고 신기한 연구 업적을 내놓은 사람들을 위한 잔치다. 올해 이그노벨 생리 및 곤충학상은 벌에게 쏘였을 때 가장 아픈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를 연구한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마이클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벌에게 쏘였을 때 고통스러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몸 25군데에 직접 벌침을 놓았다. 그 결과 콧구멍과 윗입술, 성기 등 세 부분이 가장 아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피어J’에 발표했다. 스미스는 “벌에 쏘이면 모든 부위가 다 아프지만, 사람의 얼굴 피부 다음으로 성기를 둘러싼 피부가 가장 얇아 통증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빈대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오버자우셔 교수와 카를 그라머 교수는 18세기 모로코 알라위 왕조의 술탄(최고 통치자)인 물레이 이스마엘이 888명의 자녀를 두게 된 경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지난해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술탄이 여성들과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잠자리를 가져야 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잠자리 횟수보다는 술탄의 생식 능력이 뛰어나 임신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어 올해 이그노벨 수학상을 거머쥐었다. 언어학자인 마르크 딩게만세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오류를 어떻게 수정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다가 ‘응(Huh)?’이란 단어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흔히 방금 들은 말을 다시 물을 때 무심코 내뱉는 이 단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지역마다 발음에서만 조금씩 차이가 날 뿐 거의 유사하다. 연구팀은 언어나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응?’이란 말을 뱉음과 동시에 평균 1분 30초마다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딩게만세 교수 등은 ‘응?’은 짧은 말이지만 자신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대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결론 내렸다. 딩게만세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2013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는데 전 세계 20만명의 연구자가 읽어 그해 가장 많이 읽힌 과학논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 덕에 딩게만세 교수 등은 올해 이그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 밖에도 키스를 한 뒤 남은 유전자 분비물을 연구한 사람과 키스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30명에게 키스를 시킨 과학자가 의학상을 수상했다. ‘닭에게 인공 꼬리를 붙이면 과연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공룡처럼 걷게 될 것인가’를 연구해 그렇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자에게는 이그노벨 생물학상이 돌아갔다. 뇌물을 거부한 경찰에게 추가로 돈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태국 방콕경찰국은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차지했다. 올해 수상자들처럼 역대 이그노벨상 수상작들에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지난해에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어린아이들의 코피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한 조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팀이 의학상을 수상했다. 밤샘을 잘하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보다 머리는 좋지만, 자아도취가 심하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는 연구를 발표한 사람들은 심리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실제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도 있다.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만드는 데 성공한 공로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와 함께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임 교수는 노벨상을 타기 10년 전인 2000년에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네덜란드 네이메헨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가임 교수는 영국 브리스톨대 마이클 베리 교수와 함께 살아 있는 개구리를 자기장으로 공중 부양시키는 실험에 성공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가임 교수는 2010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노벨위원회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며 “사람을 웃게 해주는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그노벨상은 반(反)과학성과 시대상에 대한 풍자적 성격도 강하다. 1999년에는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미국 콜로라도주와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에 과학교육상을 시상하며 “뉴턴의 중력 이론,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 교육도 금지해 달라”고 비꼬기도 했다. 2013년 시상식에서는 주최 측이 부문별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원)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고 했으나, 곧 “기준 화폐는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다. 짐바브웨 달러는 경제개혁 실패로 연간 2억 3100만%의 물가 상승률 때문에 100조 달러가 발행된 적도 있었다. 2009년 사용이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는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정부3.0 실현으로 청소년활동 더 안전해진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KYWA, 이사장 김선동)과 4개의 안전 전문기관으로 구성된 ‘청소년활동 안전협의체’가 여성가족부에서 위탁한 청소년수련시설 종합 안전점검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소년활동 안전협의체’는 금년 3월 청소년수련시설에 대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관리 등을 목적으로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과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시설안전공단, 한국소방안전협회 등 4개 안전전문기관으로 구성되었다. 동 협의체는 지난 6월부터 전국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의집 등 397개 생활권 수련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오는 10월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아울러 현장 안전점검 뿐만 아니라 해당 수련시설 관계자에게 시설물 안전관리 요령 및 현장여건에 맞는 안전관리 방안을 제시하는 등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수련시설 담당 공무원, 청소년지도사 등에 대한 안전교육에도 참여하여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인식 시키는 등 교육참여자의 안전의식 강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향후 KYWA는 안전점검 결과를 여성가족부에 제출할 계획이며 여성가족부에서는 국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e-청소년’ 사이트(www.youth.go.kr) 등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육부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안전점검 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다. 이처럼 KYWA는 분야별 전문 안전기관과의 협업을 통하여 그동안 지방자치단체 및 청소년수련시설 자체 관리에만 의존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외부용역 대신 공공기관과 협업함으로써 안전점검 인력에 대한 인건비 부담을 줄여 예산 절감 효과도 거두고 있다. 김선동 KYWA 이사장은 “‘청소년활동 안전협의체’는 정부3.0의 핵심가치인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의 취지를 살린 모범 사례로, 청소년활동 공공기관인 KYWA와 전문성을 갖춘 안전 전문기관들이 협력해 보다 안전한 청소년활동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KYWA)은 청소년정책 사업을 수행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 청소년활동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 △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체험환경의 조성 △ 청소년자원봉사 및 국내외 청소년교류활동의 진흥 △ 청소년 지도자의 양성 및 교육 등 정책과제를 내실 있게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50년 여행 50일 인생(홍윤오 지음, 나눔사 펴냄) 3인칭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 형식의 이색 여행기. 오십줄에 접어든 주인공이 갑자기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홀로 중남미와 이탈리아 여행을 다니면서 이전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는 과정을 담았다. 저자가 직접 다닌 여행 일정과 경로, 각종 여행 팁 등도 유용하다. 352쪽. 1만 5000원. 힐러리 이야기(김재영 지음, 프리뷰 펴냄) 힐러리 클린턴이 왜 새로운 여성 리더십의 전형인지를 빌 클린턴 대통령 1, 2기 재임 시절인 1995~98년 백악관과 미국 정치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언론인의 시각에서 다룬다. 대통령의 아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백악관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 섬세하고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담았다. 320쪽. 1만 5000원. 게일 루빈 선집-일탈(게일 루빈 지음, 신혜수 등 옮김, 현실문화 펴냄) 문화인류학자로 ‘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급진적 이론과 방법론으로 다뤄 온 게일 루빈 미국 미시간대학 교수가 40년간 작성한 주요 논문을 모았다. ‘여성거래’, ‘성을 사유하기’ 등 14편의 논문을 추리고 새 서문과 연보를 추가했다. 904쪽. 4만 4000원.
  • 반기문, 이례적 4박 5일 중국 나들이 왜?

    반기문, 이례적 4박 5일 중국 나들이 왜?

    중국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일본의 어깃장에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것은 물론 일본을 준엄하게 꾸짖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 총장은 다른 정상들과 달리 6일까지 중국에 머물며 열병식의 열기를 이어 줬다. 반 총장의 이례적인 4박 5일 중국 일정을 보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활동이라기보다는 한국 정치인의 방문 일정과 비슷해 보인다. 이 때문에 국내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혹시 내년 사무총장 퇴임 이후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은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힌다. 반 총장은 지난 2일 오후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리옌훙(李彦宏) 바이두 회장과 토론회를 가졌다. 리 회장은 누리꾼에게서 받은 질문 2000여개를 토대로 토론에 나섰고 반 총장은 세계 이슈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반 총장은 3일 오전 열병식이 끝난 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여성 지도자 류옌둥(劉延東) 부총리와 잇따라 회담을 했다. 중국의 통치 리더십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이 제기하는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4일 오전에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과 특별 인터뷰를 했다. 반 총장은 “유엔과 유엔 사무총장은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라 공정·공평한 기구”라면서 “(일본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 측이 열병식 참석 논란과 관련해 일본을 비판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본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한국(유권자)을 향한 메시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4일 오후부터 5일 오후까지는 한반도와 가장 가깝고 밀접한 산둥성에 머물렀다. 성 서기 등 현지 고위 관료를 두루 만났고 공자 출생지 취푸, 바오투취안(趵突泉)공원 등을 방문했다. 바오투취안공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지지도 약속했다. 반 총장의 중국 일정과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는 “과거 대권 주자들이 미국과의 인연을 강조했듯이 요즘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면서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반 총장이 중국과 인연을 쌓는 게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지방 방문을 부탁해 일정이 길어졌을 뿐”이라면서 “이미 ‘세계 대통령’ 자리에 올랐는데 정치판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게 반 총장의 일관된 생각”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中 전승절 열병식] ‘황금색 패션 외교’ 朴대통령… 중화부흥·군사굴기 드라마 참관

    [中 전승절 열병식] ‘황금색 패션 외교’ 朴대통령… 중화부흥·군사굴기 드라마 참관

    모처럼 푸른 하늘을 수놓은 첨단 군용기 200대, 지축을 흔들며 등장한 500여기의 최신형 무기 장비, 평균 연령 90세 노병 부대가 포함된 1만 2000여명의 병력, 평화 메시지와 함께 발표된 인민해방군 30만명 감축 방안…. 3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 열병식’은 역대 최대 규모로 세계를 향한 ‘군사굴기(軍事崛起) 쇼’이자 중국인을 위한 ‘중화 부흥의 드라마’였다. ●열병식 행진곡은 한국인 정율성 선생이 작곡 오전 9시(현지시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톈안먼(天安門) 북쪽의 돤먼(端門) 광장에서 각국 지도자를 맞이하며 열병식의 시작을 알렸다. 공식 예복인 중산복(인민복)을 입은 시 주석과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펑리위안은 차례차례 입장하는 각국 대표단과 악수를 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열병식에서 처음 연주된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은 한국인 작곡가 정율성(1914~1976) 선생이 작곡한 군가였다. 광주 출신인 그는 1939년 이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여러 곡을 남겨 중국의 3대 혁명음악가로 불린다. 깍듯한 자세로 영접에 나선 시 주석 부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황금색 상의를 입고 입장하자 미소와 함께 짧은 담소를 나눴다. 중국인들은 황금색이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노란 상의는 펑리위안의 붉은색 원피스와 잘 어울렸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악수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지 않고 이동하려 했지만, 펑리위안이 친절하게 안내해 시 주석 오른쪽 옆에서 촬영을 했다. 마지막으로 입장한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반기문 총장은 오른쪽서 다섯번째 자리 톈안먼 성루에 오를 때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왼쪽에서 걸어갔다. 단체 기념사진 촬영 때는 시 주석 오른쪽에 푸틴 대통령이 섰고, 왼쪽으로 펑리위안과 박 대통령이 섰다. 성루 위 귀빈석에서 박 대통령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자리했다. 열병식장 입장부터 성루에서 열병식을 관람할 때까지 박 대통령의 자리가 네 번 바뀌었지만 줄곧 시 주석 가까이에 있었다. 중국 당국은 박 대통령에게 차양막이 없고 햇빛이 강할 수 있으니 미리 선글라스를 준비하라고 안내하는 등 전날 시 주석과의 단독 오찬에 이어 각별한 의전을 이어갔다. 성루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시 주석으로부터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자리에 앉았다. ●박대통령, 슈뢰더에 “하르츠 개혁 귀감됐다” 박 대통령은 성루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장쩌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등 중국의 원로지도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등 성루외교를 펼쳤다. 특히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에게 “지난 2003년 추진한 하르츠 개혁(노동개혁)이 귀감이 됐다”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2기 핵심과제로 노동개혁을 꼽은 바 있다. 오전 10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개회선언을 하자 시 주석은 15분가량의 기념사를 마친 뒤 톈안먼 광장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창안제(長安街)에 도열해 있는 장병들에게 “퉁즈먼 하오”(同志們 好·동지들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치며 사열했다. 장병들은 “서우장 하오”(首長 好·최고사령관님 안녕하십니까)로 우렁차게 답했다. 시 주석이 탄 무개차는 중국산 최고급 승용차 훙치(紅旗)였다. 시 주석이 각 부대를 사열하면서 왼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하다가 맨 마지막에 오른손으로 경례한 것은 중국군의 독특한 전통이다. 분열 행진의 선두엔 항일노병부대가 섰다. 팔로군 등 항일전에 참전했던 노병들은 저마다 가슴에 훈장을 달고 대형 무개차에 앉아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열병식에 참여했다. 대만 국민당군 출신 노병들을 호송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45대의 오토바이 부대가 등장했다. 대원들은 시속 10㎞로 10시간씩 100㎞를 가는 고된 훈련을 거쳤다. 분열 행진 중 미모로 유명세를 탄 평균 신장 178㎝ 육·해·공 여성 의장대 51명이 눈길을 끌었다. ●예포 70발은 항일전쟁 70주년 기념 물량공세로 공중과 지축을 압도했다면, 열병식의 내용은 여러 가지 ‘숫자’로 상징됐다. 먼저 70.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며 개막을 알린 예포가 총 70발 발포됐다. 헬기 편대는 아라비아숫자 ‘7’과 ‘0’의 모양으로 대열을 맞춰 식장 상공을 수놓았다. 팔로군, 신사군, 동북항일연군, 화남유격대 등 10개 항일부대가 선보인 깃발 역시 70개였다. 오전 11시 37분 리 총리의 종료 선언과 함께 열병식의 끝은 비둘기 7만 마리와 풍선 7만개가 톈안먼 광장 하늘을 수놓았다. 개막식을 알린 예포 56발은 중국을 이루는 56개 민족의 숫자가 반영됐다. 열병식 국기게양을 맡은 호위부대는 톈안먼 광장 인민영웅기념비에서 게양대까지 정확하게 121걸음을 걸었다. 중국이 패전해 아시아 패권을 잃는 계기였던 청일전쟁(1894년) 발발 121주년을 기념한 행보다. 청일전쟁의 무대는 동학농민혁명 등으로 근대화와 자주화 모색이 한창이었던 한반도였다. 전쟁의 시작도 끝도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열병식에 드러나지 않은 ‘여백’은 앞으로 중국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우선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열병식에 참석한 현직 정상은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유일했다. EU 회원국 대다수는 정상이 참석하지 않고 장관급이나 외교관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맥스 보커스 주중 대사가 참석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개인 자격으로 초청받아 왔다.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도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초청자 대다수의 정통성이나 격이, 모처럼 준비한 중국에 맞지 않았던 여백을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메워 줬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서울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노벨평화상 소녀 말랄라, “폭탄·총알 대신 책에 돈 써라”

    노벨평화상 소녀 말랄라, “폭탄·총알 대신 책에 돈 써라”

    “폭탄(Bomb)이나 총알(Bullet) 대신 책(Book)에 돈을 써라.” 무장세력 탈레반의 총에 맞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파키스탄의 소녀 인권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사진·18)가 1일(현지시간) 전 세계 리더들에게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외쳤다. 유사프자이는 탈레반에 맞서 여성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벌여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유사프자이는 이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말랄라펀드가 워싱턴DC 카네기평화연구원에서 공동 개최한 행사에 참석, “전 세계 지도자들은 6년 또는 9년 간 교육에만 치중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미래에 성공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며 “모든 아이들에게 12년이라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가들의) 취약한 통치방식이 특히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며 “각 나라들은 군대에 돈을 덜 쓰고 학교에 돈을 더 써야 한다. 총알이 아니라 책, 폭탄이 아니라 책에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사프자이는 지난해 260여명의 여학생들이 납치된 나이지리아를 방문, 조너선 굿럭 대통령을 만난 뒤 정부 당국자에게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지 통계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통계가 없다며 유엔에 물어보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는 교육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런 기본적인 자료도 없으면서 모두가 서로를 비난하고 항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실랄하게 비판했다. 이날 행사에 동행한 유사프자이의 아버지이자 교육자인 지아우딘 유사프자이는 “교육은 여학생들에게 산수와 언어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며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해방이자 자유, 독립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사망한 케일라 뮬러 죽기전 ‘성 노리개’ 취급 ‘경악’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사망한 케일라 뮬러 죽기전 ‘성 노리개’ 취급 ‘경악’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올해 초 숨진 것으로 확인된 20대 미국인 인권활동가 케일라 뮬러(당시 26세)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죽기 전까지 성 노예로 능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해외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알바그다디는 시리아 알샤다디야에 있는 은신처에서 여성 성 노예들을 개인 소유물처럼 가둬놓고 살았다. 능욕을 당한 여성 중에는 이라크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10대들 뿐만 아니라 인권활동가 케일라 뮬러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알바그라디의 만행은 성 노예 생활을 하던 14세 야디지족 소녀가 은신처를 탈출해 미국 정보요원들을 만나면서 공개됐다. 이 소녀는 지난 2014년 8월 말 이라크 모술에서 납치된 뒤 알바그다디의 시리아 은신처로 옮겨져 그 해 10월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당시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에는 야지디족 10대 소녀 5명과 뮬러가 함께 감금돼 있었다고 한다. 뮬러는 난민을 돕는 국제구호단체의 인권 활동가로 2012년 12월 시리아와 터키 접경지대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이듬해 8월 IS에 납치됐다.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는 뮬러가 알바그다디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고 전했다. 알바그다디는 야지디족 소녀들을 자주 IS 조직원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팔았으나 뮬러는 계속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신처에 알바그다디가 오는 날이면 뮬러는 빠짐없이 끌려갔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뮬러는 돌아올 때마다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털어놨고 때론 울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뮬러는 매우 점잖은 아랍어로 ‘강제로 결혼당했다’라고 소녀들에게 표현했다고 한다.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사진 = 서울신문DB (탈출한 야지디족 소녀)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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