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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YT 부고면 절반 채운 김학순 할머니 24주기

    NYT 부고면 절반 채운 김학순 할머니 24주기

    뉴욕타임스(NYT)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25일(현지시간)자 지면에 게재했다. 별세한 지 24년 만에 김 할머니의 삶과 진실에 대한 의지를 재조명했다. 충실한 부고 기사를 쓰기로 유명한 NYT는 1851년 이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인물을 재조명해 늦게나마 그들의 생애를 다시 돌아보는 취지의 기획물인 ‘간과된 여성들’(Overlooked) 시리즈에서 김 할머니를 소개했다. 앞서 2018년 3월에 유관순 열사의 삶을 다룬 적이 있는 시리즈다. NYT 부고면의 절반을 할애한 이날 기사는 1991년 8월 14일 김 할머니가 첫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으로 서두를 열었다. 그날의 기자회견에 대해 NYT는 “그의 강렬한 설명은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가 수십년 동안 부인해 오던 역사에 생생한 힘을 실었다”고 평가했다. 또 성폭력 피해자라는 수치심 때문에 침묵하던 피해 여성들이 김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보고 용기를 얻었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추가 증언이 이어질 수 있었음을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1997년 12월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기자회견으로 진실이 드러났던 8월 14일은 2018년부터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됐다는 소식도 기사는 전했다. 김 할머니를 추모하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도 전해졌다. 1998년 일본군 위안소 운영을 반인류 범죄로 규정한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은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것도 김 할머니의 30년 전 직접 증언이 미친 영향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최근 고백했다.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김 할머니는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 “안녕 메르켈” EU 정상들 마지막 참석한 그녀를 기립박수로 환송

    “안녕 메르켈” EU 정상들 마지막 참석한 그녀를 기립박수로 환송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다른 회원국 정상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AFP 통신과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이틀 일정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둘째 날 26개 회원국 정상들은 본격적인 현안 논의에 앞서 환송 행사를 열고 기립박수로 메르켈 총리에게 작별을 고했다. 지난 16년 동안 EU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던 메르켈 총리가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EU 정상회의였다. 메르켈 총리가 재임 기간 참석한 EU 정상회의는 107회다. 그는 이를 통해 유로존 재정 위기, 난민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코로나19 경제 회복 기금 설치 등 최근 유럽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논의하며 회원국들과 대응을 조율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비공개 헌사를 통해 “당신은 하나의 기념물”이라면서 메르켈 총리 없는 EU 정상회의는 “바티칸 없는 로마 혹은 에펠탑 없는 파리와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 관리가 전했다. 다른 회원국 정상들도 메르켈 총리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메르켈 총리가 “지난 16년 동안 어려운 시기에 우리 27개국 모두가 인류애를 갖고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우면서 유럽에 그의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도 메르켈 총리는 “타협 제조기”라면서 여러 차례 있었던 회원국들의 마라톤 협상 과정에 그는 늘 “우리를 단합시키기 위한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유럽은 그가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영상 메시지로 메르켈 총리에게 깜짝 작별 인사를 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 소년과 소녀, 남성과 여성들이 어려운 시기에 존경할 수 있는 롤모델을 가졌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힘든 결정을 하며 당신이 유머를 발휘하고, 현명한 실용주의를 선보이고, 윤리의 나침판을 내려놓지 않는 것을 지켜봤다”며 “당신과 친구가 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이어 “아주 극소수의 정치 지도자만이 협소한 사익에 앞서 원칙을 우선할 수 있다”면서 “당신의 친애하는 독일 국민과 전 세계는 이 같은 높은 지반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당신에게 오랜 세월 빚을 졌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미국 국민과 동료 지도자들, 미셸과 내 딸들을 대신해 당신의 우정과 리더십, 무엇보다 동독의 어린 소녀 시절부터 지켜온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신의에 감사를 표한다”며 “당케 쇤”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2009년 1월~2017년 1월) 메르켈 총리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물러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회담한 외국 정상 역시 메르켈 총리였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 EU 정상회의에서도 EU의 조약·결정보다 폴란드 헌법이 더 앞선다고 한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EU 내 갈등과 관련, 타협과 대화를 강조했다. 정상회의를 마친 뒤에도 EU에 “우려할 이유가 있는 시기”에 떠나게 됐다면서 “우리는 많은 위기를 극복해왔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주, EU 경제, 법치 문제 등을 언급했다.
  • 체육인 400명 윤석열 지지…‘공정과 상식의 스포츠 복지국가’

    체육인 400명 윤석열 지지…‘공정과 상식의 스포츠 복지국가’

    국내 체육인 400명이 ‘윤석열과 함께 공정과 상식의 스포츠 복지국가로’라는 기치 아래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공식 지지에 나선다. 윤석열 국민캠프 건강·스포츠특별위원회 이에리사 위원장을 필두로 언론인, 대학교수, 은퇴 국가대표 선수, 생활체육 동호인 등으로 구성된 체육인들은 오는 24일 윤 전 총장 지지선언을 할 계획이다. 이들은 지지선언문을 통해 “공정한 나라,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스포츠의 역할이 매우 크다”며 “코로나로 인해 신체활동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때, 스포츠 복지를 통해 국민 누구나 환경에 상관없이 스포츠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건강한 삶을 누리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제적으로 하락세에 들어선 대한민국 체육의 새로운 비상과 국민의 건강한 삶을 증진하는 데 있어 윤석열 후보에 대한 체육인들의 기대가 크다”면서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일치하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지켜온 윤 후보를 통해 체육의 올바른 정책적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지선언에는 이종각 전 체육과학연구원 원장, 송강영 전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 이수옥 (사)100인의 여성체육인 회장, 김관규 전 국가대표 빙상 감독, 이문규 전 국가대표 여자 농구 감독 등 은퇴 국가대표 선수지도자 30여명도 이름을 올린다. 이민우 전 중앙일보 체육부장, 최화경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정태화 전 서울신문 체육부장, 박건만 전 스포츠경향 편집국장 등 언론인도 참여했다. 국민캠프 건강·스포츠특별위원회 이에리사 위원장은 1973년 만 열아홉의 나이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전 전승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로, 1988년 서울올림픽 여성 최초 국가대표팀 감독, 2005년 태릉선수촌 첫 여성 촌장,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첫 여성 선수 출신 국회의원이다.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YWCA 선정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YWCA 선정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한국YWCA연합회가 선정하는 ‘제19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수상했다.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운영위원회’는 뛰어난 여성리더십을 보여준 올해 한국여성지도자상 선정 결과를 19일 발표했다. 한국여성지도자상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지도력을 발굴해 여성지도자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알림으로써 차세대 여성지도자에게 도전 의식과 희망을 심어 주고자 2003년 제정된 상이다. 대상 수상자인 서이사장은 서귀포 출신으로 시사저널 편집장,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을 지낸후 언론계 은퇴한후 고향인 제주도 돌아와 전국에 도보여행 바람을 몰고왔던 제주올레길을 개척했다. 심사를 맡은 유시춘 EBS이사장은 “개발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한국 사회에서 올레길을 통해 지친 시민들의 삶에 위로와 쉼의 쉼표를 찍은 분이며 지역 주민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밖에 젊은 지도자상은 소설가 김초엽, 특별상은 배구선수 김연경이 선정됐다. YWCA는 한국여성지도자상을 제정한 이후 43명의 여성지도자를 발굴해왔다. 올해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은 11월 11일 열릴 예정이다.
  • 노르웨이서 사냥하듯 화살 쏴 5명 살해한 37세 용의자 이슬람 개종자

    노르웨이서 사냥하듯 화살 쏴 5명 살해한 37세 용의자 이슬람 개종자

    노르웨이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냥하듯 화살을 쏴대 5명을 살해하고 2명을 다치게 한 37세 남성 용의자가 순순히 경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14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방송은 에스펜 안데르센 브라덴이란 이름의 이 남성이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급진 사상에 경도됐다는 우려 때문에 경찰이 주의 깊게 지켜보던 인물이었다고 덧붙였다. 현지 경찰과 언론에 따르면 이 용의자는 전날 오후 6시 12분쯤부터 수도 오슬로에서 남서쪽으로 80㎞ 떨어진 콩스베르그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화살을 쏴댔다. 다음날까지 네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 등 다섯 명이 숨졌으며 부상자 중 한 명은 유럽의 유명 체인점 쿱스 엑스트라 안에서 장을 보던 비번 경관이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희생자들 나이는 50~70대라고 경찰이 다음날 아침 밝혔다. 경찰은 사건 발발 35분 만에 용의자를 체포해 근처 도시인 드람멘으로 옮겨 조사하고 있는데 3시간 동안 심문에 응하는 등 협조적이라고 했다. 덴마크 모친과 노르웨이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덴마크 국적을 갖고 콩스베르그에서 몇년째 살고 있었다고 BBC는 전했다. 또 경찰은 15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후 3시) 법원에 출두하는 브란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체포 당시 칼과 다른 무기들로 무장한 상태였다고 TV2 방송이 보도했다. 현재까지 경찰은 이 남성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으며, 쫓고 있는 다른 용의자는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테러 행위인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조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날 사건은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 참사 10년 만에 벌어진 점에 외신들은 주목했다. 지난 2011년 7월 22일 우익 극단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오슬로 정부청사 앞에서 폭발물을 터뜨리고, 노동당이 개최한 청소년 여름 캠프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연쇄 테러를 저질러 21년형을 복역 중이다. 모니카 마엘란드 법부장관은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트윗에 올렸다. 경찰 총수는 특별한 사전조치로 모든 경관들에게 무기를 소지할 것을 명령했다. 이 나라는 평상시에 경관들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다. 경찰은 성명을 통해 “국가 전체 위협 수준에 변화가 있다는 징조가 명시적으로 드러난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날이 임기 마지막이었던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대행은 “이 사건에 우리가 모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 사건이 테러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14일부터는 노동당 지도자인 요나스 가르 스토레가 이끄는 정부가 임명한 새 법무장관이 이 사건 수사를 맡는다.
  • ‘부패혐의’ 발목잡힌 세계 최연소 지도자

    ‘부패혐의’ 발목잡힌 세계 최연소 지도자

    세계 최연소 정치 지도자로 주목받던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가 부패 혐의로 수세에 몰리다가 결국 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정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인데 관련 검찰 조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어 당분간 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쿠르츠 총리는 9일(현지시간) 기자 회견을 열어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우는 동안 오스트리아가 교착상태에 빠지게 두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에겐 안정이 필요하다”며 “혼돈을 막을 길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쿠르츠 총리는 뇌물 수수 및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외무장관이던 2016년부터 총리가 된 이후인 2018년 사이 호의적인 보도를 위해 한 신문사에 광고비 명목으로 재무부 자금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제·부패 사건 검찰은 앞서 지난 6일 총리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총리실을 포함해 재무부, 국민당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야당은 물론 현 연립정부 파트너인 녹색당까지 쿠르츠가 소속된 제1당인 국민당에 총리 교체를 요구해 왔다. 이들은 쿠르츠의 퇴진을 주장하며 12일 국회에서 불신임안을 상정할 계획이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쿠르츠 총리는 “나에 대한 비난은 거짓말”이라며 부인하다 이날 사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쿠르츠는 후임자로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외무장관을 추천할 것이며, 자신은 국민당의 당수 및 국회의원으로 계속 남을 것이라며 또 다른 승부수를 걸었다. 총리직은 내려놓되 정계에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녹색당 출신인 베르너 코글러 부총리는 사임을 환영하며 샬렌베르크와 기꺼이 협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부총리는 “우리는 샬렌베르크와 매우 건설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며 “흠결 없는 인물이어야만 크고 중요한 공동의 프로젝트와 개혁을 실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쿠르츠는 2017년 극우 자유당과 손잡고 만 31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돼 주목받았지만, 2019년 5월 자유당 대표였던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전 부총리의 ‘이비자 스캔들’ 동영상이 공개되며 큰 파문에 휩싸였다. 당시 독일 언론 등이 공개한 영상에는 슈트라헤가 러시아 재벌 여성에게 정부 사업권을 줄 테니 정치적 후원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쿠르츠는 자유당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발표하며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이듬해 녹색당과 손을 잡으며 다시 한번 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이번 부패 의혹에 따른 퇴진 압력에 결국 직을 내려놓게 됐다.
  • 탈레반 공포정치 본색…이번엔 남성 3인 시신 굴삭기에 내걸어

    탈레반 공포정치 본색…이번엔 남성 3인 시신 굴삭기에 내걸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두 달도 안 돼 공포 정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헤라트 지역에서 범죄 용의자라는 남성 세 명의 시신을 공개적으로 매달아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말라위 시르 아마드 무하지르 헤라트주 부지사는 이들 남성이 주내 오베지구의 한 주택에 무단 침입했다가 주인 남성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밝혔다.현지시간으로 5일 SNS를 통해 공유된 사진 몇 장에는 굴삭기 두 대의 각 버켓 부분에 이들 남성의 시신 중 두 구가 매달린 채 공중으로 띄워졌고 그 밑에서는 사람들이 이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는 탈레반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간 아프가니스탄을 집권했을 때 가혹하게 사회를 통치했던 공포 정치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국제 사회의 우려를 부추기는 또 다른 사례일 뿐이다.탈레반은 지난달 25일에도 같은 주에서 한 사업가와 그의 아들을 납치한 남성 네 명과 총격전 끝에 전원 사살하고 이들의 시신을 기중기에 매달아 중앙 광장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탈레반은 납치됐던 두 사람은 무사히 구조했다고 전하면서도 다른 납치범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시신을 광장에 걸어뒀다고 밝힌 바 있다.탈레반은 또 최근 아프간 중부 다이쿤디주 카호르 마을에서 시아파 소수 민족인 하자라족 주민 13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보고서를 통해 탈레반이 하자라족 주민 13명을 학살했다고 밝히면서 이 중 11명은 반군에 항복했던 아프간 정부군이고 학살 과정에서 17세 소녀 등 민간인 2명도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앰네스티는 이에 대해 ‘인종 청소’이자 ‘전쟁 범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7월 중순에도 탈레반이 가즈니주에서 하자라족 민간인 9명을 살해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아프간 장악 과정에서 바미안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도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자리가 몸담은 하자라족은 아프간 전체 인구의 9%를 차지하며 세 번째로 많긴 하지만, 아프간 주류로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에 의해 오랫동안 탄압을 받아왔다. 이는 파슈툰족 등 다른 종족이 이슬람 수니파 계열이지만 하자라족은 시아파이기 때문. 동아시아인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는 하자라족은 칭기즈칸이 13세기 초 침공한 이래 아프간 땅에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탈레반은 2001년 1월 바미안주 한 마을에서 하자라족 300여 명을 집단 학살하고 하자라족 종교 지도자들을 투옥했으며 여성들을 납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몇만 명이 산중 은신처로 쫓겨갔으며 일부는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기도 했다. 하자라족은 이번에도 탈레반의 인종 청소를 피해 파키스탄 등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버려진 ‘시진핑의 칼’… 부패 사냥꾼 푸정화 낙마

    버려진 ‘시진핑의 칼’… 부패 사냥꾼 푸정화 낙마

    中공산당 “심각한 부패 행위로 감찰”주민들은 혹독한 관리 몰락에 환호3연임 앞둔 習, 장쩌민계 숙청 분석도중국에서 ‘호랑이(부패한 고위층) 사냥꾼’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한 푸정화(66) 전 사법부장(장관)이 돌연 낙마해 베이징 정가가 얼어붙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폭적 지원 아래 ‘공산당의 칼자루’로 불리는 공안·사법 분야에서 요직을 맡았지만 부패 혐의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의 몰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5일 베이징일보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와 국가감찰위원회(감찰위)는 지난 2일 “푸 전 사법부장이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감찰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보통 ‘심각한 기율 위반’이라고 하면 뇌물 수수나 횡령 등 부패 행위를 뜻한다. 푸정화는 시 주석 집권 2기 들어 멍훙웨이와 쑨리쥔에 이어 세 번째로 숙청된 공안부 부부장(차관) 출신이 됐다. 그는 베이징시 공안국장과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 위원, 국무원 사법부장 등을 지낸 ‘공안통’이다. 지난해 국가 자문기관 격인 전국인민협상회의(정협)로 옮겨 부주임을 맡았다. 그는 2010년 베이징시 공안국장 시절 취임 74일 만에 초호화 유흥업소 ‘톈샹런젠’을 급습해 성매매 여성 500여명을 연행해 스타가 됐다. 공안부 부부장이던 2014년 ‘거대한 호랑이’로 불리던 저우융캉(79)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체포 및 조사를 주도해 시 주석에게 신임을 얻었다. 사회 정화 운동도 펼쳐 인터넷상 유언비어와 음란물을 단속했다. CNN 방송은 ‘중국은 왜 부패 관리들을 끌어내린 푸정화의 몰락에 열광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의 체포에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2013년 공안부 부부장 시절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검열해 중국 지도자들을 비난한 이들을 모두 찾아내 단속했고 유명 논객들도 임의로 구금했다. 인권 변호사와 사회 운동가에 대한 탄압도 서슴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를 ‘혹리’(인민을 혹독하게 대하는 관리)라고 불렀다. 시 주석 입장에서도 ‘공동부유’를 기치로 3연임을 노리는 상황에서 여론이 극히 나쁜 푸정화와 함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의 낙마를 ‘장쩌민계 쳐내기’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푸 전 부장은 장쩌민 전 주석의 최측근인 멍젠주 전 중앙정법위 서기가 중용한 인물이다. 시 주석은 장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 계파에 매우 비판적이다. 장 전 주석 재임기간(1993~2003)에 중국 내 사회모순과 부정부패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번엔 美여자축구리그가 ‘명장 성추문’ 숨겼다

    이번엔 美여자축구리그가 ‘명장 성추문’ 숨겼다

    “(성추행을 반복한) 폴 라일리가 감독을 계속하다니 현역 여자축구선수들이 매우 걱정됩니다.”(4월 28일 전직 선수 시네이드 패럴리) “(라일리에 대한) 조사를 또다시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5월 5일 리사 베어드 미국여자축구리그 커미셔너) 미국여자축구리그(NWSL) 노스캐롤라이나 커리지의 라일리 감독이 전 소속팀인 포틀랜드 톤스에서 강요로 선수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스타 선수인 앨릭스 모건이 피해 선수의 조사 요구를 NWSL이 거절한 이메일을 폭로했다. 미 체조협회의 무능과 무관심 속에 30년간 33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들을 성폭행한 래리 나사르(58) 미 체조 대표팀 주치의 사건이 지난달 상원 청문회에서 다뤄지며 미 전역을 흔들었지만, 비단 체조 종목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3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라일리는 강요를 통해 한 선수와 성관계를 맺었고, 또 다른 2명의 선수와는 입맞춤을 하고 성적인 사진을 보내게 했다. 라일리는 이를 부인했지만, 팀은 곧바로 그를 해고했다. 이와 관련해 모건은 지난 1일(현지시간) 관련 이메일을 폭로했고 NWSL의 책임론이 번졌다. 그는 트위터에 “NWSL은 라일리의 혐의에 대해 여러 번 제보를 받았지만 여러 번 조사를 거부했다.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NWSL은 몇몇 선수들의 문제 제기로 2015년 라일리의 성희롱 문제를 조사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라일리는 이를 비웃듯 팀을 옮겨 가며 감독을 맡았다. 2018, 2019년에는 팀을 우승시켜 ‘명장’ 평가까지 받았다. 지난 8월 이후 NWSL 소속 지도자 중 성추문으로 해고된 것만 라일리가 세 번째다. 거센 비난에 2일 NWSL은 주말 경기를 전면 취소하고 베어드의 사임을 받아들였다. 라일리의 성추문을 처음 제기한 건 지난 4월 NWSL에 재조사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던 패럴리였다. 그는 지난달 30일 더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당한 정황을 설명하며 자신이 “라일리의 통제하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에 국제축구연맹(FIFA)과 미국축구협회가 성추문 사건을 조사한다고 나섰지만 이들 기관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결국 조직의 무관심이 여성 선수들의 피해를 키웠기 때문이다.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24)는 지난달 16일 나사르 사건을 다룬 상원 청문회에서 “연방수사국(FBI)은 눈을 돌리고, 미국 체조협회와 올림픽위원회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이들이 “괴물 같은 존재”를 방치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 “부적 선거냐” “최순실 연상”… 손바닥 ‘王’ 윤석열 또 구설

    “부적 선거냐” “최순실 연상”… 손바닥 ‘王’ 윤석열 또 구설

    홍준표 “유치해” 유승민 “품격 떨어진다”민주당 “尹의 정치 비전은 절대왕정인가” 尹 “지지자가 써줘→물티슈로 못 지워”오락가락 해명, 알고 보니 3·4차 때도 ‘王’“홍판표→홍준표 역술인이 작명” 역공도국민의힘 대선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일 경선 5차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 ‘왕’(王) 자를 쓴 모습이 포착되면서 또 한번 구설에 휩싸였다. 윤석열 캠프는 부적 논란에 “지지자의 응원 메시지였다”며 일회성 해프닝으로 선을 그었지만, 앞선 두 차례의 경선 토론회에서도 같은 글자를 손에 적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내 경쟁자인 홍준표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시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 하나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면서 “부적 선거는 포기하길 바란다. 정치의 격을 떨어트리는 유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미신을 믿는 후보, 끝없는 의혹에 휩싸인 후보, 걸핏하면 막말로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후보로 본선에서 이길 수 있겠나”라고 날을 세웠다. 여권에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민주당 이소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현대 사회의 정치인이 맞냐. 윤 후보의 정치 비전은 절대 왕정인가”라며 “우리 국민은 무능한 지도자가 미신과 주술에 의존해 정치적 결단을 내렸을 때 어떤 위기를 겪었는지 기억한다”고 했다. 맹폭이 이어지자 윤 전 총장은 주술적 의미는 억측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오락가락 해명’으로 의문만 키웠다. 부적 논란이 불거지자 캠프는 지난 2일 “연세가 있는 동네 여성 주민이 ‘토론회 잘하라’는 격려 차원에서 적어 준 것”이라며 “물티슈 등으로 닦았지만 지우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지난 1일 5차 TV토론회뿐만 아니라 앞선 3, 4차 토론회에서도 손바닥에 ‘왕’ 자를 새기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거짓 해명’ 논란까지 번졌다. 부적 논란에 진실성이 없다는 비판까지 겹친 것이다. 이에 윤 전 총장은 3일 직접 해명에 나서 “어릴 때부터 친척들이 부적 같은 걸 줘도 성의를 생각해서 받긴 해도 서랍에 넣어 놓고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저희가 어릴 때는 시험 보러 가거나 집에서 대소사가 있을 때도 연세 드신 분들이 손에 써 줬다”면서 “자신감을 갖고 토론하라는 응원으로 생각해 토론회 때도 손을 보여 드린 것”이라고 했다. 이 또한 글자를 지우려고 노력했다는 캠프 해명과 다소 맞지 않는 설명이다. 한편 윤석열 캠프 김기흥 수석부대변인은 “원래 ‘홍판표’였던 홍 후보의 현재 이름은 역술인이 지어 준 것이라는 걸 홍 후보는 잊었는가”라며 홍 의원에게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 트럼프 노려보고, 바이든 전화 거절… 美 대통령 4명과 밀당 ‘무티 리더십’

    트럼프 노려보고, 바이든 전화 거절… 美 대통령 4명과 밀당 ‘무티 리더십’

    바이든 취임 후 통화 요구에 “휴가 중”오바마와 달리 트럼프와 끝까지 마찰푸틴과 조지아·크림반도 등 계속 충돌러와 천연가스 라인 추진 협력은 성과獨·佛 긴축정책 동맹… ‘메르코지’ 별명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독일 총선이 치러진 26일(현지시간) 16년간 이어져 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 체제가 막을 내렸다.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이자 동독 출신 총리로 선출된 메르켈은 ‘무티(Mutti·엄마) 리더십’으로 대표되는 포용의 정치를 보인 모범적인 지도자로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또한 2018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 자의로 물러나는 첫 총리로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역사’를 남겼다. 목사의 딸로, 평범한 물리학자였던 메르켈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989년 훗날 기독민주당(CDU)에 합류한 옛 동독의 정치단체 민주궐기(DA)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헬무트 콜 전 총리에게 발탁돼 ‘콜의 양녀’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적 아버지’ 콜 전 총리를 퇴임시키는 결기를 보여 줬고 이때 얻은 대중적 인기와 신뢰로 2000년 첫 여성 기민당 대표에 이어 2005년 총리 자리도 꿰찼다. 2017년까지 세 차례 선거에서 승리하며 네 차례 연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위기 대응 능력이다. 재임 기간 조지아와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지정학적 도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유로존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유럽 난민사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각종 위기를 안정적으로 봉합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위기에 맞서 메르켈은 주요국 정상들과 협업해야 했다. 메르켈 집권 16년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메르켈과 협력하거나 갈등을 겪은 다른 정상들과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 필수적이다.●美 ‘아들 부시’ 때부터 재임한 메르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던 지난 1월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바이든은 수요일 취임 뒤 그 주중 메르켈과 통화를 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반면 주말을 낀 휴가 일정을 잡았던 메르켈은 ‘지금 통화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 정상들보다 통화 순위가 밀릴 수 있다’는 백악관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통화 일정을 자신의 휴가 뒤로 미뤘다. 동맹 복원을 내세운 바이든의 입장에서 독일과의 우호적 관계를 내보내는 게 중요했지만, 메르켈이 재임 16년 동안 경험한 미국은 틈만 나면 유럽과 소원한 관계를 내비치며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던 국가였기에 일정 조율 중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4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할 때마다 번번이 메르켈은 처음엔 불협했고, 이후엔 친밀해졌다. 대표적으로 후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첫 임기 4년 동안 베를린 방문 일정을 잡지 않으며 두 정상 간 서먹한 관계를 시사했다. 그러나 정치권 아웃사이더란 공통점을 지닌 둘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갔고, 오바마는 2011년 메르켈에게 미국 최고 영예의 시민상인 자유메달훈장을 수여했다. 다만 첫 임기 4년을 마친 뒤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메르켈과의 관계 개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4년 내내 독일 주둔 미군의 비용 문제를 타박했고, 메르켈은 공식 석상에서 트럼프를 노려보는 사진 여러 장을 남겼다. ●나발니·크림반도 등 푸틴과 갈등 지속 유럽의 정치지형도 메르켈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메르켈보다 두 살 많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시로 도발하고, 메르켈이 싸움을 피하지 않으며 두 정상 간 결투가 재임 내내 이뤄졌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전쟁에 개입했고, 2014년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다. 메르켈은 러시아의 무력시위를 경계해야 했다. 최근엔 알렉세이 나발니 같은 푸틴의 정적들에 대한 암살 시도를 규탄하는 등 러시아의 인권 문제도 다뤄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은 최근 완공된 러시아와 독일 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를 추진하는 등 협력하기도 했다. ●브렉시트·난민 문제 해결 등 이끌어 유로존 위기, 난민사태 동안 메르켈은 유럽연합(EU) 내 정상들과 끝없는 협상을 벌여야 했다. 유로존 위기 동안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긴축정책을 수립하며 둘의 이름을 합친 ‘메르코지’란 조어가 생길 정도로 협업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긴축안을 거부하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그리스 총리와의 협상 과정에서 경직된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EU 국가별 난민 유입을 총지휘하는 과정에서도 메르켈은 고집스러움을 발휘했다. 마치 위기가 없었던 것처럼 사태를 봉합, 원상태로의 회복을 위기관리라고 생각한 메르켈의 고집은 그의 지지자와 반대파를 동시에 양산시킨 요인으로 평가된다.
  •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메르켈 리더십, 무척 그리울 겁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메르켈 리더십, 무척 그리울 겁니다

    한동안 우리는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강철 같은 지도력을 보여준 여성 지도자를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가 26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지는 독일 총선 결과 차기 총리가 결정되면 16년의 집권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다. 위 사진은 지난 23일 말로우 조류공원을 찾아 앵무새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쪼였는지 아파하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다. 물론 그녀도 여느 지도자처럼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늘 실용적인 태도, 합의를 구하는 타협적인 성품과 지도력은 길이 기억될 것 같다. 그녀의 40년 정치 역정을 영국 BBC는 사진첩처럼 꾸며 눈길을 끈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포스트 메르켈’을 결정할 연방하원 선거를 하루 앞둔 25일 자신이 몸담은 CDU의 아르민 라세트 후보 고향인 아헨에서 열린 유세에 나란히 나서 연립정부 구성 및 총리 선출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연립정부의 소수파인 사회민주당(SPD)이 다수파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을 지지율에서 다소 앞서는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24일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도좌파인 사민당은 26%의 지지율로 중도우파인 기민·기사 연합(25%)을 1%포인트 차로 앞섰다. 하루 앞선 23일의 주간 슈피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25%-23%로 2%포인트 차였는데 조금 더 좁혀졌다. 녹색당은 16%였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사민당은 2∼3%포인트 차로 기민·기사당 연합을 따돌렸다.  당초 메르켈 총리는 총선 유세에 참여하는 일을 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워낙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초접전 양상이라 마지막 절박한 호소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이 녹색당, 좌파당과 함께 진보 연정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이 조합은 노동, 복지, 환경 정책에서 어느 정도 공집합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외교·안보 정책에서 이견이 상당해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좌파당은 사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탈퇴를 주장해왔다.
  • ‘내가 일본 국적을 포기한 이유는···’, 씨름 아이돌 손희찬 선수

    ‘내가 일본 국적을 포기한 이유는···’, 씨름 아이돌 손희찬 선수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나중에 지도자가 됐을 때, 후배들에게 좋은 씨름 기술들을 알려 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인성이 바탕이 된 선수들을 키우고 싶고 저 또한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난해 KBS 주말 예능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에서 ‘씨름돌’(씨름+아이돌)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증평군청 소속 태백급 손희찬(26) 선수. 실력은 물론 빼어난 외모에 선명한 ‘왕(王)자 복근’으로 모래판에서 보여준 그의 열정은 20~30대 젊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조상님들이 씨름 보는 이유를 알았다”, “이 좋은 걸 할아버지들만 봤단 말이야”라는 반응도 젊은 팬들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 빠르게 번져 나갔다. 손씨를 포함해 외모와 몸이 ‘받쳐 주는’ 젊은 씨름돌들이 민속 씨름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손씨는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 이중국적을 가지게 됐지만 이미 본인의 ‘전부’가 돼버린 한국 전통 스포츠인 씨름에 푹 빠져 살아왔기에 당당히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당연한 결정이었고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말하는 손씨.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같은 체급의 다양한 스타일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들과 오고가며 훈련을 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꾸준히 몸을 만들며 태백장사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잇는 손 선수를 지난달 31일 증평군청 인삼씨름단 훈련장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Q) 씨름을 하게 된 계기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 중에 씨름부 선수가 있었어요. 쉬는 시간에 ‘씨름 한 번 해보자’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쉽게 진 거예요. 승부욕이 발동해서 씨름부원이 되겠다고 씨름장에 직접 찾아갔는데 제가 체구가 작고 너무 왜소해서 씨름부원으로 안 받아주시더라고요. 하루, 이틀 지나고 삼일째에 허락해 주셔서 씨름을 하게 됐어요. (Q) 일본 국적을 포기한 이유일본 국적을 포기하려고 하면 일본 대사관에 가서 일대일로 대사관 사람과 면담을 해야 돼요. ‘후회는 안 하겠느냐’, ‘왜 일본 국적을 포기하려고 하느냐’ 등 많은 질문을 해요. 일본 국적을 갖고 있었음에도 어떤 혜택을 누린 건 없지만 막상 파기하려고 하니깐 뭔가 아쉬운 면은 좀 남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에서 자랐고 민속스포츠인 씨름을 하고 있으니깐 일본 국적을 파기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게 결정한 거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일본어 가르치지 말고 한국어부터 가르쳐라’고 저희 어머니한테 늘 얘기를 하셔서 일본어를 잘 못해요. 지금 드는 생각은 일본어를 같이 배웠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해요. (Q) 나에게 씨름이란한림대학교 졸업하고 정읍시청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2년 동안 선수생활을 했죠. 감사하게도 증평군청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운동 환경이나 시스템에 있어서 좀 더 좋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팀을 이적하게 됐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씨름한 날이 더 길어요. 씨름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도 재밌지만 씨름 선수들만의 스타일이 다 다른데 그런 다양한 스타일의 선수들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제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하고 실전에서 그게 다 맞아떨어졌을 때는 물론이고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넘겼을 때도 정말 재밌는 거 같아요. 또한 씨름이 우리 고유의 전통 민속놀이로써 국가무형문화재에 등록돼 있을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도 등재돼 있잖아요. 항상 그런 자부심을 갖고 운동하고 있는 거 같아요.(Q) 인기 스포츠에 대한 부러움은 없는지인기 스포츠를 보러 온 관중들께서 많은 응원을 해주는 걸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운동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은 딱히 안 해 본 거 같아요. 아직까지 태백장사를 못 해본 거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씨름을 시작한 거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씨름의 희열’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관중 분들께서 찾아와 주셨고 힘도 주셨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하루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씨름장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2019년 전국체전 8강전에서 제가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 과정에서 경고를 받았어요. 결국 상대 선수가 제 샅바를 더 많이 잡고 저는 상대방의 샅바를 조금 잡는, 많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죠. 그때가 경기 종료 3초 정도밖에 안 남아있었을 때였어요. 상대방을 못 넘겨도 지고 제가 넘어져도 지게 되는 막다른 상황이었는데 남은 시간 3초 만에 제가 승부를 지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가 지금까지 씨름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시합 중에 하나였지만 그걸 잘 이겨내서 인상 깊었다고 생각하고 있죠. 씨름 운영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에 대해선 불평하지 않아요. 불평해도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빨리 달라진 경기 운영에 대해서 이해하고 경기에 임하는 게 선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정말 ‘살만 닿아도 상대 전력분석 끝’인지서로의 중심이 다르다 보니깐 샅바를 잡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힘이 어느 정도 세다, 안세다’, ‘긴장을 좀 했구나, 안 했구나’, ‘어떤 스타일로 운영을 하겠구나’ 같은 건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Q) 씨름에서의 기술과 힘이란초등학생과 성인이 씨름을 할 경우, 성인이 키나 힘에 있어서 모든 걸 압도하기 때문에 아무리 초등학생이 기술이 좋아도 힘에 밀리는 것처럼, 어느 정도 안 밀릴 정도의 힘만 있어도 기술이 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압도적인 힘이 좀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해요. 시합에서 멋진 기술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되면 마을 속 욕심이 생겨서 지게 되더라고요. 제 주특기가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자세에 집중하는 편인 거 같아요. 저는 손기술로는 앞무릎치기, 다리기술로는 안다리기술을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Q) 고된 훈련의 흔적들저는 주로 손기술을 사용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 보니깐 제 귀가 상대방의 옆구리 등에 자주 부딪치게 돼서 귀가 많이 붓게 됐고 손가락 같은 경우에는 샅바를 잡고 당기다 보니깐 안쪽으로 휘어지게 됐어요.(Q) 씨름 ‘직관(직접 관람)’ 매력이 있다면다른 스포츠들과 달리 씨름은 선수 개인 라커룸 같은 게 없어요. 하지만 관객 분들이 선수들 바로 옆에서 선수들이랑 같이 경기를 볼 수 있고 소통도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선수들의 숨소리나 기술의 화려함 같은 걸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직관의 매력인 거 같아요. (Q) ‘씨름계의 옥택연’이란 말을 듣는데‘씨름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MC분들이 농담 삼아 옥택연 닮았다고 했었는데 증평군청 입단식에서도 ‘씨름계의 옥택연, 손희찬 선수’라고 소개해줘서 제가 너무 민망했죠. 어깨 운동은 따로 많이 안 하는데 어깨가 다른 선수들보다 좀 넓은 편이어서 이 부분은 좀 자신 있는 거 같고 외모적인 면에선 100점 만점에 중간 이상은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외모 때문에 ‘씨름의 희열’에 섭외됐다기보다는 전반기에 운이 좀 좋아서 성적을 잘 내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섭외 제의가 와서 된 거라 생각해요. 씨름을 알리고 홍보하는 거에 대해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씨름 선수들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끔 가면 아이들이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고 씨름 기술도 많이 알려달라고 해요. 그럴 때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좋아하는 연예인연예인들 중에서는 아이유를 정말 좋아해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아이유씨가 자리 잡고 있어요. 안 나가요 제 마음속에서. 힘들 때마다 아이유씨 노래를 자주 듣고 있어요. 좋은 앨범 들려주시고 연기활동 자주 보여주시면 저도 힘내서 경기장에서 더 멋진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고 하겠습니다. (Q) 팬 관리는 어떻게팬 분들께 잘 못하는 거 같아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SNS 같은 것도 자주 해야 하는데 제가 아직까진 좀 서툴고 쑥스러워서 팬 분들께 쉽게 못 다가가는 거 같아요. 팬 분들로부터 물질적인 걸 받았을 때 소름 돋았던 적은 없었는데 편지를 읽고 소름 돋았던 적은 많았어요.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는 건 물론이고 저를 멀리서 지켜보실 뿐인데도 저에 대한 생각도 너무 많이 해주시고 저를 너무 잘 아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소름 돋을 때가 종종 있어요.(Q) 코로나로 인한 훈련의 어려움은 없는지저희가 다른 곳으로 훈련을 가거나 혹은 다른 팀들이 저희 쪽으로 훈련하러 들어오게 되면 제 체급을 가진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과 많은 훈련을 할 수도 있게 돼서 좋겠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시합이 크게 열려 많은 관중들이 모였을 때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불평하지 않고 훈련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상황도 기회라고 생각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좀 더 중점을 두고 힘이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어요.(Q)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항상 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이 바탕이 돼야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하고 제가 지도자가 되어 있을 때에도 어떤 씨름적인 기술 등도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항상 인성이 바탕이 된 그런 선수들을 키우고 싶고 저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Q) 앞으로의 목표항상 태백장사 타이틀을 갖는 게 목표이고 제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힘들 때나 경기에 졌을 때나 잘했을 때나 관계없이 항상 응원을 해주시는 팬 분들께도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 전하고 싶어요.
  • 미 부자가문 상속녀가 오스트리아 빈의 레지스탕스 도운 이유

    미 부자가문 상속녀가 오스트리아 빈의 레지스탕스 도운 이유

    영국 런던에 있는 프로이트 박물관은 18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내년 1월 23일까지 ‘암호명 매리, 뮤리엘 가디너의 특별한 삶’ 기획전을 개최한다. 미국의 부자 집안 출신인데도 어렸을 적부터 사회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고, 외톨이로 자유주의를 표방했으며,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1920년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배우고 싶어 오스트리아 빈을 찾았다가 파시스트들과 나치에 저항하는 지하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용감한 여성이었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주연한 1977년 영화 ‘줄리아’로도 만들어져 레드그레이브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인생에 가장 극적인 장면은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1938년 11월의 어느날 아침이었다. 게슈타포 요원이 찾아와 호텔 객실 문을 노크해 잠에서 깨어났다. 요원은 미국인인 그녀가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심장이 쿵쾅대는데도 애써 태연한 척 린츠를 여행하러 왔다고 둘러댔다. 그 뒤로도 추궁이 이어졌지만 그 요원은 결국 물러났다. 요원이 그녀의 정체에 대해 조금 더 조사했더라면 많은 이들의 인생 항로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그녀는 1901년 시카고에서 육가공으로 부를 일군 모리스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박물관의 캐롤 시겔 국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문이 그렇게 막대한 부를 쌓은 반면,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주 불공평하다고 느꼈다”면서 이번 기획전이 가디너를 “창업자 어머니”로 모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곧바로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 아주 젊었을 적에 여성 참정권 행진을 조직할 정도였다. 1912년 타이태닉호가 침몰하자 부유한 이들의 명단이 대대적으로 신문에 보도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3등칸”으로 묘사되곤 했다. 열한 살의 그녀는 어머니에게 3등칸이 어떤 뜻이냐고 물었고 “보통 사람”이란 답을 들은 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가족 안에서 유일한 자유주의자가 됐다. 손자 할 하비는 할머니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고 소개했다. 매사추세츠주의 웰레슬리 단과대학에 입학한 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짧은 결혼 생활 끝에 딸 코니를 낳은 뒤 1926년 빈으로 이주했다. 프로이트 밑에서 공부하겠다는 희망 때문이었다.당시는 사회민주당이 집권해 사회개혁이 한창이었다. 그녀는 ‘붉은 빈’이라고 표현하며 이 도시를 사랑했다. 빈의 한 대학 의대를 다녔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파시스트들이 득세해 사회민주주의 지지자들을 색출하고 다녔다. 하지만 가디너는 그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하 레지스탕스를 돕기로 했다. 이때의 별명이 매리였다. 빈의 숲속에 작은 오두막 등 세 채의 부동산을 갖고 있어서 혁명적 사회주의 지도자 조지프 버팅거 등 레지스탕스 요원들을 숨겨주곤 했다. 1930년대 말 버팅거는 그녀의 남편이 됐다. 헌신적인 엄마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활동적인 학생으로 이중생활을 하면서 빈 시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계속했는데 그녀의 역할을 가짜 여권을 만들어 조직원들이 그 나라를 탈출하게 돕는 일이었다. 또 재산과 영향력을 활용해 영국의 일자리를 찾아내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한번은 두 동지를 탈출시키려고 여권을 전달하기 위해 겨울밤에 열차로 이동한 뒤 산을 3시간이나 올라가기도 했다. 가디너는 빈의 온갖 사람들과 알고 지냈다. 1934년에 영국 시인 스티븐 스펜더와 사귀기 시작했다. 또 당시 빈에 살던 영국 노동당 당수 휴 게이스켈과도 알고 지냈다. 영국 최악의 배신자와도 만났다. 젊은 남성이 그녀에게 공산주의 문헌 목록을 통째로 넘겼는데 전쟁이 끝난 뒤 알고 보니 영국과 옛 소련을 동시에 섬긴, 최악의 이중간첩 킴 필비였다.나치에 오스트리아가 병합되자 딸과 남편 버팅거는 떠났지만 그녀는 의학 공부를 계속하겠다며 남아 레지스탕스 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셋이 모두 미국으로 떠났다. 가디너와 남편은 유대인 비자를 마련해주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난민들이 미국에 정착해 일자리와 거처를 마련하는 일을 도왔다. 가디너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구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비는 수백명은 된다면서도 “그녀 자신도 숫자를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2년 뒤인 1987년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는데 여러 사람이 그녀가 없었더라면 “많은 이들이 오늘날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 후 몇십년 동안 그녀는 정신분석학 훈련소를 세우고 대학 강단에 서며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하지만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일을 떠벌이지 않아 도움을 받거나 가까운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1973년 미국 작가 릴리안 헬맨(Hellman)이 책 ‘펜티멘토’의 한 장에서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전부터 빈에서 살다 레지스탕스와 함께 일했던 줄리아란 여성을 알고 지냈다고 썼다. 영화 ‘줄리아’가 이 책을 바탕으로 했음은 물론이며 제인 폰다가 헬맨을 연기했다. 이 책이 나오자 사람들이 무리엘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헬맨의 얘기를 읽어봤어요? 당신이 틀림없는 줄리아 같은데? 그녀가 쓴 얘기는 바로 당신 얘기네.” 가디너는 헬맨에게 편지를 보내 ‘오 진짜 이상하다. 이런 얘기를 내게 들은 건가?’라고 물었는데 헬맨은 답장을 보낸 적이 없다.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다만 울프 슈와바처를 변호인으로 기용한 점 때문에 그가 가디너 얘기를 들려준 것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책이 나왔을 때 그는 세상을 떠나 진실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사회주의 레지스탕스 요원들은 1930년대 자신들을 도운 미국 여성은 단 한 명뿐이었으며 매리로만 알려진 여성이라고 증언했다. 해서 가디너는 회고록 ‘암호명 매리’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활약을 소개했다. 절판된 지 오래 됐는데 이번에 기획전을 맞아 재출간됐다. 런던의 햄프스테드에 위치한 프로이트 박물관은 그가 빈을 떠난 뒤 생의 마지막 몇 달을 지냈던 곳으로 가디너가 주선해 마련했다. 나중에 자선재단의 도움을 얻어 재매입해 박물관으로 꾸몄다. 레드그레이브는 가디너의 역할을 부 각시킨 연극 극본을 쓰기도 했다. 이번 기획전에서 그녀는 난민 활동가 로드 덥스, 킨더트랜스포트 운동 창시자인 니콜라스 윈턴과 함께 박물관을 소개하는 행사에 사회자로 나선다. 할머니가 뒤늦게 각광을 받는 데 흥분된다는 손자 하비는 “할머니는 부의 99%를 다 주고 갔다. 테레사 수녀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좋은 음식을 좋아했고 하루를 끝내며 보드카 토닉을 마시곤 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돈이 있어 자신의 윤리 감각을 충족시키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당신은 사회가 필요로 했던 여성이었다”고 돌아봤다.
  • ‘역대 최악의 日총리’ 아베·스가 나란히 1·2등...절대로 되면 안되는 인물은?

    ‘역대 최악의 日총리’ 아베·스가 나란히 1·2등...절대로 되면 안되는 인물은?

    제100대 일본 총리를 결정할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일정이 지난 17일 고시된 가운데, 일본의 한 여성지가 ‘2000년 이후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실망했던 인물’ 순위 여론조사를 최근 실시해 결과를 공개했다. 19일 주간지 ‘여성자신’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는 아베 신조(67) 전 총리였다. 전체 응답자의 26%가 그를 ‘가장 실망스러운 총리’로 지목했다. 응답자들은 정부의 사학재단 부당특혜 의혹인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가케 학원 스캔들’, 국가예산 유용 등 혐의를 받는 ‘벚꽃을 보는 모임’ 파문 등을 일으킨 것,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인 극도의 난맥상 등을 아베 전 총리를 부정적 평가 1위에 올린 이유로 꼽았다. 아베 전 총리는 1차 집권기(2006년 9월~2007년 9월)와 2차 집권기(2012년 12월~2020년 9월)을 합해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한 인물이다. “각종 불상사가 많았다”(30대 여성), “모리토모, 가케, 벚꽃모임 등 문제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도망만 다녔을 뿐이다”(60대 남성)와 같은 비판들이 이어졌다. 최악의 지도자 2위는 곧 물러나게 되는 스가 요시히데(73) 현 총리로 24%의 응답률을 보였다. 많은 응답자들이 코로나19 부실대응, 무리한 도쿄 올림픽 강행, 판단력 및 발신력 부족 등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무능과 실정이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의사로 발언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30대 남성),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켰다”(50대 여성), “하는 일마다 실망스러웠다. 일본의 미래가 캄캄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40대 여성) 등 의견이 나왔다. 3위부터 5위까지는 2009~2012년 민주당 집권기의 총리들이 이름을 올렸다. 아베 전 총리가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데서 알수 있듯이 일본에는 민주당 집권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많다. 하토야마 유키오(74·2009년 9월~2010년 6월 재임) 전 총리가 13.3%의 응답률로 3위에 올랐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등 비판이 주를 이뤘다. 4위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재임했던 간 나오토(75) 전 총리로 11.3%의 응답률을 보였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극도의 무능력을 노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5위는 2012년 말 자민당에 정권을 넘기며 아베 정권의 탄생을 가져다 준 노다 요시히코(64) 전 총리였다(9.3%) 6위는 아소 다로(81) 전 총리로 8.0%를 얻었다. 아소 전 총리는 이번 조사를 진행한 ‘여성자신’이 이달 초 별도로 실시했던 ‘절대로 총리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인물’ 설문조사에서 43%의 압도적인 응답률로 2위 아베 전 총리(14%)를 멀찌감치 밀어내고 1위를 했던 인물이다. 응답자들은 “말투가 지저분하게 들린다”, “일반적인 가치관과 동떨어진 사람”, “태도가 불량한 할아버지”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아소 전 총리는 “성희롱이라는 죄는 없다” 등 문제 발언을 자주 해 ‘망언 제조기’로 알려져 있다. 실망스러운 역대 총리 7위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84)가 차지했다. 7.3%였다. 그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있던 지난 2월 “여자가 많으면 회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성자신’은 “스가 총리의 뒤를 이을 새 총리는 언젠가 실시될 ‘실망스러운 총리’ 조사에서 순위에 오르지 않는 인물이 되기를 바랄뿐”이라고 논평했다.
  • [김균미 칼럼] 메르켈 리더십의 성공 비결

    [김균미 칼럼] 메르켈 리더십의 성공 비결

    독일과 유럽을 16년 동안 이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시대가 곧 저문다. 오는 26일 치러지는 연방하원 총선거에서 메르켈의 후계자가 결정된다. 독일 총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고, 누가 차기 총리가 되느냐보다 솔직히 동독 출신의 여성 물리학자가 어떻게 ‘남자들의 리그’로 인식돼 온 정치에서 16년간 총리로 장수할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하다. 더욱이 물러나는 순간까지 메르켈 총리에 대한 긍정 평가가 70%를 넘는다는 독일 공영방송의 여론조사 결과는 놀랍고도 부럽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당내 경선이 한창인 한국에서는 두 눈을 아무리 씻고 둘러봐도 제대로 된 지도자감이 보이지 않아 더더욱 그렇다. 여성 지도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메르켈은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개신교 목사의 딸로 태어나 갓난아이 때 동독으로 이주했다.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일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1년 뒤 기민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1991년 헬무트 콜 총리가 가족여성청소년 장관에 임명했다. 이어 환경장관을 지냈다. 2000년 기민당 대표, 2005년 첫 여성 총리직에 오른 뒤 내리 4선에 성공했다. 금융위기와 남유럽 경제 위기, 유로 위기, 난민 위기, 코로나19 대유행 등에 대처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총리 3선, 4선에 성공하면서 메르켈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메르켈 리더십은 종종 ‘엄마(무티) 리더십’으로 불린다. 엄마가 아이를 보살피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처럼 메르켈은 반복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기와 불안으로부터 안정감과 연속성을 제공하는 안전망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희망을 주고 불안을 덜어 주고 지켜 주는 것만큼 중요한 지도자의 역할이 또 무엇이 있을까. 국내에 출간된 메르켈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앙겔라 메르켈’, 메르켈 리더십을 분석한 전문가와 외국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메르켈이 세계 지도자로서 성공한 이유들이 읽힌다. 먼저 합리적·실용적이다. 메르켈은 주요 결정을 내릴 때 서두르지 않는다. 중장기적인 파장을 가늠하고 장단점을 비교 분석한다.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한다. 소심하게 비친다는 걸 알지만 경우의 수를 따져 보는 게 몸에 뱄다. 둘째, 중재와 협력을 중요시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1994년 환경장관 당시 베를린 기후변화협약을 타결시키고, 총리 취임 첫해인 2005년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마라톤 협상 끝에 EU 예산안 합의를 이끌어 냈다. 남유럽발 재정 위기와 코로나19 경제재건기금 협상 때도 지치지 않는 중재로 합의를 도출했다. 셋째, 사실과 자료에 근거한 과학적 리더십이다. 물리학자답게 사실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이슈를 다루고 대책을 검토한다. 현안에 대한 공부와 회의 준비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넷째, 진정성과 신뢰를 중시한다. 과시욕이 심하고 말이 앞서는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다. 약속을 어기면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소수의 최측근 보좌진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철저하게 자기와 주변을 관리한다. 자유와 책임, 관용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이다. 물론 메르켈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신중함은 종종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개혁의지가 부족하고 유럽과 독일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많은 유럽 전문가들은 날을 세운다. 하지만 16년 동안 유럽과 세계를 강타한 여러 위기를 극복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메르켈의 성공한 리더십에 비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과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 된다. 권력 의지만 앞세우는 대신 실력을 쌓고 신뢰와 책임, 경청과 협력을 중시하며 최소한의 품위를 갖추면 된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가.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과 여성 여야 당대표, 여성 국회부의장이 나왔다. 대선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도 여러 명이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수적으로 늘었지만 존재감은 오히려 줄었다. 성공한 여성 정치인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울어진 정치적 환경이 문제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메르켈 리더십을 공부할 때다. 정치 잔재주만 배우지 말고.
  • 지도자 40명 회담·분쟁지 VR 회의… 외교는 멈추지 않았다

    지도자 40명 회담·분쟁지 VR 회의… 외교는 멈추지 않았다

    바이든, G7 정상회의·기후회담 등 참석 12개국 외무장관 ‘백신 공급’ 회의까지코로나 유행 상황 속 ‘비대면 회담’ 활발 세계 각국서 수백명이 동시 회의 가능분쟁지역 여성 등 현장 목소리 반영도 국가 간 협상서 기밀유지 어려움 한계온·오프 융합 ‘하이브리드 외교’ 주목최근 몇몇 ‘낙하산 대사’(특임 공관장)들의 저조한 활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주재국 주요 인사들과 만나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실질적 외교 행위가 전무했다는 것으로 비판받았다. 부임 후 9개월간 비공개 외교 활동이 1건뿐이었다는 대사도 있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이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집행현황’을 분석해 공개한 것이었다. 지적을 받은 공관들은 대부분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외교에 제약이 크다”는 해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접 지역 공관장이나 전임자들과 비교해 활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비판을 면할 수는 없었다. 역량 있는 대사들은 ‘비대면, 디지털 외교’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그러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 기사에서 ‘디지털 외교´의 여러 면을 짚으면서 “외교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1년 반 남짓 대전염병의 시대, 외교는 어떠했을까. ●러시아, 유엔 안보리서 ‘물리적 출석’ 고집 비대면 외교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었다. 지난해 2월 대통령으로서의 첫 정상회담을 화상으로 했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의 회담 이후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달 런던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했고, 이튿날 바로 ‘뮌헨 안보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3월에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쿼드’ 첫 정상회담도 열었다. 4월에는 기후정상회담으로 40명의 세계 지도자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움직이지 않았다. 임기 첫 3개월간 해외 방문 횟수는 단 5회로, 전임자에 비해 눈에 띄게 적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존 케리 각각 25회, 힐러리 클린턴 19회, 마이클 폼페이오 17회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최근 가장 적었던 렉스 틸러슨의 9회와 비교해도 적었다. 화상 회담이 대세가 된 듯 보이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물리적인 출석’ 외에 다른 어떤 형태의 회의도 수용하기를 거부하면서 화상회의의 공식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투표 행위도 이메일로 제출하게 되면서 일이 더뎌졌다. 그래도 사람을 모으는 일에는 비디오 카메라만 한 게 없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나 아세안 회의에 필요한 모든 정상들을 모으는 데는 수개월이 걸리지만, 화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지난 2월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 논의를 위해 12명의 외무장관들과 한 명의 총리가 뉴욕에 집결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이 주제로 유엔 안보리 화상회의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단지 ‘아스펜(ASPEN) 안보포럼´에서 연설하기 위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캔버라에서 로키산맥까지 들르기란 여간해선 없을 일”이다. “정치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이 물리적으로 출석해야 했다면 거의 틀림없이 참석하지 않았을 연설과 회의에 참석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 화상회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유엔 정무 차관보 로즈메리 디카를로는 “공항이나 도로에 머물지 않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고 했다.●분쟁지역 주민 의견 직접 수렴 가능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 사례들도 소개했다. 포커스그룹조사 등 정치 또는 평화 프로세스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에서 디지털이 갖는 효용성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예컨대 유엔이 분쟁지역 예멘에서 20~30개의 질문이 있는 정기 여론조사를 진행할 때 30만 달러(3억 3000만원)의 비용이 들고 답변을 얻는 데 한 달이 걸리지만, 디지털로는 질문 설계에 약간의 자문료가 들었고 결과도 즉시 도출됐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인도주의 대화센터’는 분쟁지역에 있는 여성들을 스위스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시킬 수가 있었다. 리비아는 민감한 정치 협상을 비디오 플랫폼으로 진행하면서 화해의 로드맵인 ‘리비아 정치대화포럼’(LPDF)을 이끌어 냈다. 협상을 조율한 유엔의 리비아 특별대표 대행 스테퍼니 윌리엄스는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대화의 숫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디지털로 200명의 여성과 100여명의 젊은이들, 그리고 130개 지방자치체의 대다수를 참여시켰으며 다섯 차례의 디지털 대화를 가졌다. 리비아인들이 정치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즉석 여론조사도 포함돼 있었다. 유엔 외교관들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리비아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평화협상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협상이 지속될 가능성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지난 2월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리비아 국민의 71%가 새 정부를 선출하기 위한 LPDF 과정에 만족하고 있으며 68%는 그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윌리엄스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디지털 대화와 같은 것을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관들은 이런 방식의 잠재력에 흥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가상현실(VR) 기술은 뉴욕에 있는 유엔의 의사 결정자들이 분쟁 지역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 VR는 ‘브리핑의 미래’로 여겨지고 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공공외교센터는 영사 외교와 해외 시민들과 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디지털 채널과 봇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 초기 국가들이 잇따라 국경을 폐쇄하기 시작하면서 대사관·영사관들은 귀국 비행과 송환 절차 등을 공지하거나 상황 변화 등의 정보를 업데이트 하기 위해 디지털 채널로 눈을 돌렸다. 리투아니아 외무부는 인공지능(AI) 지원 챗봇을 배치했는데, 업무의 규모와 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최상의 선택으로 꼽혔다. ●“브렉시트·기후변화 직접 대화 필요” 비대면의 최대 약점은 협상에서 드러난다.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공식적인 대화를 위한 공간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협상이 풀리지 않을 때 술집에서 잡담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이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려운 메시지는 더 많은 뉘앙스와 함께 전달될 때 이해되기 쉽고, 인간관계에 손상도 덜하다. 기밀 유지는 또 다른 핵심 요소다. 누구라도 ‘민감한 문제’는 가상공간에서 꺼내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브렉시트 협상 같은 일은 직접 대화로나 가능한 일로 꼽힌다. 기후변화 대처 같은 것도 만나서 논의해야 할 영역이다. 그래서 ‘물리적’ 정상회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각국 주재 대사의 역할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지 않다. 주재국의 정치, 문화, 언론, 논쟁 등을 충분히 흡수한 외교관들은 해당국의 ‘문화 통역사’로서 대체가 어려운 존재들이다. 오프라인 외교는 지난봄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되기 시작해 하반기에도 줄줄이 일정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는 물리적 외교와 디지털의 혼합인 하이브리드 외교의 도래를 앞당겼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하이브리드 외교는 장기적으로 외교의 수행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온·오프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상쇄하는 균형점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
  • [여기는 중국] “나 국영기업 간부야!”…60대 남성, 열차 여성 승객 강제 추행

    [여기는 중국] “나 국영기업 간부야!”…60대 남성, 열차 여성 승객 강제 추행

    만취한 60대 남성이 여성 승객의 침대칸에 침입해 추행을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남성은 저항하는 여성 승객을 향해 자신이 국영 기업 고위급 임원이라는 신분을 노출하며 강제 추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푸저우시 철도공안처는 지난 11일 산밍베이에서 우한으로 향하는 열차 침대칸에서 상하이 소재의 대형 국영 기업의 지도자라고 주장하는 60세 남성이 여성 승객을 추행하려 한 혐의로 현장에서 붙잡혔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 승객의 도움 요청을 받은 열차 승무원에 대해서도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승무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들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힌 이 남성은 사건 직후 7일 동안 구금형을 받은 상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문제의 남성은 사건 당시 만취 상태로 장거리 이동 중인 열차 내 침대칸을 서성이던 중 피해 여성의 개인 침대 칸 내부에 무단으로 침입한 혐의다. 이 남성은 추행을 저지하는 여성 승객의 팔목을 잡고 강제 추행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또, 여성 승객이 만취한 남성을 개인 침대칸 밖으로 내쫓은 뒤에도 수 차례 거듭해서 침대칸 내부에 무단 침입해 수행을 시도했다. 참다 못한 여성 승객은 열차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남성의 추행과 폭행 시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또한 남성은 현장에 출동했던 여성 승무원에게도 추행을 시도했으며 남성 승무원들에 의해 추행이 저지 당하자 이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등 폭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남성은 자신이 상하이 소재의 대형 국영 기업의 고위급 임원이라고 신분을 노출하는 등 강압적인 태도를 이어갔다. 그는 “(나는)상하이 대형 국영 기업을 이끄는 지도자”라면서 자신을 저지하는 승무원들의 손과 팔을 꺾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또 그는 “너희들 위에 있는 간부들을 다 알고 있다”면서 “나를 막는 너희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금 설명해주면 되느냐”등의 협박을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승무원들은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맞고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고 현지 언론을 보도했다. 이 남성은 다음 정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공안에 인계, 공안행정처벌법 위반 혐의로 현재 7일 간의 행정 구금이 된 상태다. 사건이 외부에 공개되자, 현지 누리꾼들은 문제의 남성을 겨냥해 “이런 말도 안되는 난폭 행위를 저지르고도 단 7일 간의 구금이 전부라는 것이 억울하고 분통하다”면서 “승무원을 괴롭힐 경우 최소 2년 이상의 처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여성 승객을 대상으로 한 강제 추행 혐의자에 대해서는 단 7일 간의 구금만 있느냐. 더 무거운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했을 때 서방 세계는 그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철저한 억압과 잔인한 통치가 꽤 규모 있는 나라에서 부활할 것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이역만리 타국의 격변이 서방 세계 전체를 흔드는 이유는, 그것이 서구인들이 강고하게 갖고 있던 어떤 믿음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간의 상실로 서구인들 신념 ‘흔들’ 그 믿음은 3세기 전 즈음에 북대서양에서 태동한 계몽주의와 진보의 신화인데,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끝없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교리를 핵심으로 한다. 그 믿음은 북대서양 네트워크를 통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꽃을 피워 세계를 제패했다. 한편 믿음의 신봉자들에게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자리한 아프가니스탄은 북대서양에서 발원한 그 신화가 아직도 도달하지 않았던 ‘암흑의 심장’이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상실이 서구인들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은, 단순히 전략적이거나 재정적인 손실의 차원이 아니라 신념이 흔들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서구식 계몽주의는 패배한 것일까? 세계 최강의 군대와 가장 효율적 기업으로 무장한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을 쓰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더 긴 시간축 속에서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카불이 함락되기 100년 전, 서쪽의 터키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무슬림 세계에서 전통적 권위를 인정받던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멸망하려 하고 있었다. 연합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제국의 분할에 맞서서, 청년 장교단과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외세에 맞서는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반외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전통과 구습에 묶인 제국을 구하기보다는, 근대 계몽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인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1921년은 그렇게 모인 터키 독립전쟁의 주역들이 최초로 헌법을 통과시킨 해였다. 터키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가톨릭 교회를 억누르고 세속주의를 확립시킨 프랑스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신헌법은 여러 개정을 거쳤고, 마침내 터키의 국체는 세속주의 공화국으로 확정됐다. 그 지도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딴 이념인 ‘케말주의’가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이란·이라크 등 근대화 프로그램 시작 터키에서 시작된 케말주의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세계는 19세기 이래로 ‘유럽을 압도하던 우리가 왜 지금은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됐는가’라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케말주의가 제시한 답은 간명했다. 서구 계몽주의를 따르자. 종교와 구습에 얽매인 노인들을 몰아내고, 무지몽매한 대중을 계몽해 근대적 공화국을 건설하자. 그렇다면 민족은 얼마든지 강력하게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이 같은 비전은 이름을 달리한 채, 시차를 두고 여러 국가에서 시도됐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케말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아 나름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계몽주의는 이집트의 영웅 나세르, 이라크와 시리아의 바스당 당원들, 파키스탄의 국부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모두 공유하는 신념이었고, 자민족을 부강하게 만들 약속된 도구였다. 신세대 엘리트 주도하의 근대화 프로그램은 여러 성과를 내었다. 근대적 고등교육과 기술교육의 혜택을 많은 이들이 누렸고, 그중에는 교육에서 오랜 기간 배제돼 온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슬람 전통법인 샤리아 대신 서구식 법체계가 자리를 잡았고 영화나 가요를 비롯한 현대적 도시 문화도 태동했다. 이 국가들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러 미국, 소련, 유럽에서 날아온 고문단은 이런 발전상을 보며 흡족해했다. ●‘이슬람주의’라는 이념 태동 하지만 근대적 발전상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계몽주의에 기초한 서구 근대성은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구의 힘에 굴복하고 전통과 신성을 내팽개친 새로운 엘리트를 혐오했고, 무기력하게 전통을 답습하는 전통 엘리트도 경멸했다. 이슬람 신학, 법학과 서구 학문과 공산주의 혁명론 등에 정통한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근대적인 단체를 설립했고, 학술적 탐구와 정치적 구호를 담은 책들을 간행했으며, 세속주의 엘리트를 향한 저항을 선동했다. 세속주의가 이슬람 세계를 휩쓰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표에 따라 ‘이슬람주의’라는 이념이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슬람 세계의 바깥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세속주의 엘리트가 추진하는 근대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그런 ‘반동적’ 이념들은 금세 사그라들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1979년에 이란의 샤(황제)가 혁명의 물결에 밀려 퇴위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근대화라는 숙제를 착실히 이행하는 우등생으로 인식되곤 했다. 어쩌다가 근대화의 결과로 사라졌어야 할 이념이 새롭게 헤게모니를 잡게 됐을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를 주창한 엘리트들의 근대화는 사회를 충분히 바꾸어 놓기는커녕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극심한 반발만을 야기했다. 근대화의 혜택이 대부분 발전한 도시 지역에 집중되는 가운데, 내륙의 농촌에는 여전히 전통적 사회 질서와 문화가 잔존했다. 근대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빈곤은 뿌리 깊은 문제였으나 도시 엘리트들은 촌락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한편 1945년 이래로 시작된 급속한 인구증가, 그에 따른 생태적 위기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를 부추기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주요 도시의 화려함과 부유함, 그리고 서구식 생활양식은 도시에 유입된 빈민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문명적’ 생활양식을 향유하는 서구적 엘리트들은 여전히 종교라는 구습에 얽매이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엘리트에게 빈민들은 ‘계몽의 빛’을 거부하며 무지에 속박된 이들이었다. ●이란 혁명, 파키스탄 이슬람화 자극 이슬람주의자들은 상황을 다른 각도로 보도록 도와주었다. 서구화된 엘리트들은 문명화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것이었다. 미국은 소비자본주의와 성적 방종으로 문화를 더럽히는 국가였고, 소련은 무신론을 내걸고 이슬람을 탄압하는 국가였다. 따라서 타락한 엘리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외세를 몰아내는 투쟁을 시작하는 것만이 알라가 제시한 성스럽고 올바른 길이었다. 혜택이 편향됐던 서구식 근대화는 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대중의 분열을 부추겼다. 마침내 1970년대를 거치며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근대화 프로그램의 초라한 성적이 드러나자, 힘의 균형은 이슬람주의 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분개한 대중이 보기에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언어는 계몽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주의였다. 따라서 1979년 이란 혁명은 홀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아랍 세계의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란의 시아파 혁명을 불신했으나, 유사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에 고무됐다. 그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극단적 무장 단체가 메카의 대(大)모스크를 점거하고 타락한 사회에 대한 정화를 촉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사우디 왕실은 대내적 불만을 잠재우고자 자신들 판본의 종교적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을 더 강하게 선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란 혁명은 인접한 파키스탄이 이미 1977년부터 추진하고 있던 이슬람화를 더욱 급격하게 밀어붙이도록 자극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아 울 하크 장군은 이슬람주의 정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79년의 마지막 나날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놀라운 속도로 진척됐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파키스탄은 소련군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맡으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은 지정학 이상이었다. 석유 파동 덕택에 부유해진 사우디는 파키스탄에 경제적 지원을 해줌과 동시에 이념적 지원도 해주었다. 사우디가 지원한 마드라사(신학교)가 파키스탄 각지에 세워졌으며, 이곳은 급진 이슬람주의 전사들을 키우는 훈련소가 됐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양편에 거주하는 파슈툰족은 이런 공통의 경험을 통해 급진화됐다. 한편 사우디는 아랍 세계 각지의 지하드 전사들이 ‘무신론 제국’인 소련을 상대하러 아프가니스탄에 집결하는 것도 지원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의 계곡에 들어간 전사 중에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부유한 집안의 청년인 오사마 빈라덴도 있었다. 지역에 근거한 이슬람 무장 세력과 글로벌 테러리즘을 주창하는 성전주의자들 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의 이슬람주의 전사들은 소련군이 물러난 뒤에도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치며 ‘탈레반’이 됐다. 탈레반은 꾸준히 시골을 공략했다. 그들은 도시의 부패와 ‘타락’을 몰아내고 마을 주민에게 질서, 안정, 이슬람의 회복이라는 언어로 호소했다. 탈레반의 힘은 무기와 아편 판매로 모은 돈만큼이나, 그들 고유의 언어와 약속에서도 나왔다.●미군이 탈레반에 패배한 이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미군은 왜 탈레반에 패배했을까? 그 이유는 탈레반의 신념을 형성하는 긴 역사와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세속주의 엘리트들은 배후지의 농촌, 혹은 도시의 빈민과는 유리된 삶을 살았으며 그들 사이의 문화적 분리는 크나큰 정치적 불만을 촉발했다.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 것은 도시 바깥에 뻗어 있는 광활한 대지, 거기에 펼쳐진 수많은 마을의 동향이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애초에 계몽주의에 근거한 비전에 공감하지 못했으며,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누적돼 온 관습과 그와 유사한 깊이의 신앙에 오히려 더욱 공감했다. 카불과 헤라트에서 일어난 계몽주의의 패배는 그렇기에 일찍이 1979년의 이란과 2013년 무렵의 터키에서 벌어진 패배와도 일정하게 흡사한 점이 있다. 카불의 함락은 서구적 근대화라는 비전이 이 지역에서 국민적 발전을 가리키는 빛이 아니라 도시와 시골, 엘리트와 대중을 가르는 단층선에 불과했다는 고질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또다시,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남긴 셈이다. 임명묵 작가
  • 중국, 연예인 이어 여성스러운 남성 게임 캐릭터도 금지

    중국, 연예인 이어 여성스러운 남성 게임 캐릭터도 금지

    중국 규제당국이 거대 게임업체들을 상대로 여성적인 남성 게임 캐릭터까지 통제하고 나섰다고 AFP통신이 9일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 8일밤 중국 1위와 2위 게임사인 텐센트와 넷이즈 등을 소환해 미성년자 게임 제한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가운데 여성적인 외양을 가진 남성 등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업체들에 시정을 요구했다. 이미 중국은 업체들을 대상으로 청소년들의 게임 시간을 일주일에 3시간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린 바 있다. 평일에는 인터넷 게임 접속을 아예 할 수 없고, 금~일요일에만 하루 한시간씩 접속이 가능하다. 홍콩대에서 중국의 남성성에 대해 연구하는 겅송 교수는 “여성적인 외양의 남성이 신체적으로 약하고 감정적으로 취약하다는 사회 인식에 따라 취해진 조치”라고 분석했다. 랭커스터 대학에서 중국학을 가르치는 데릭 허드 교수는 AFP 인터뷰에서 “(중국의) 일부 지도자들은 과도한 게임이 젊은 남성들의 성격을 유하게 만든다고 믿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중국 미디어 산업 규제기관인 국가광전총국은 지난 2일 8개 조항의 방송·연예계 관련 통지문을 내고 “기형적인 미적 기준을 결연히 근절한다”며 ‘냥파오’(외양과 행동이 여성스러운 남성)를 배격하겠다고 예고했다. 중국 문화 속 전형적인 남성상에 부합하지 않거나 화장을 하는 남성 아이돌 가수 등이 규제 대상이 된다. 이미 여성스러운 말투를 사용하고, 필터를 이용해 여성스럽게 보이는 외모로 영상을 촬영했다가 틱톡에 올린 한 남성 블로거는 중국 네티즌들의 항의에 틱톡 계정이 삭제당했다. 한편 주한 중국대사관은 중국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가 자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따른 인터넷 정화운동으로, 한국 연예인의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팬클럽 계정 금지는 한류를 겨냥한 것이 아니란 입장을 8일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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