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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하의 라이너노트] 그녀들이 ‘나를 노래’한다

    [김윤하의 라이너노트] 그녀들이 ‘나를 노래’한다

    지난해 12월 26일 엄정화는 정규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The Cloud Dream of the Nine)에 실린 9곡을 모두 공개했다. 동일 앨범의 Part. 1 ‘첫 번째 꿈’을 통해 4곡을 먼저 공개한 이후 꼭 1년 만이었다. 타이틀 곡은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 가사는 사랑하는 이와 맞이한 관계의 종말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비유한 일견 흔한 내용이었지만 뮤직비디오 속 엄정화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80년대 팝스타 혹은 화려한 70년대 할리우드 여배우처럼 한껏 차려입은 그는 빈티지하게 편곡된 다이내믹한 신시사이저 선율에 맞춰 낡은 극장 객석 사이를 경쾌하게 누볐다. 누구보다 눈부신 주인공이었다.그로부터 3주 뒤, 이번엔 선미가 진짜 ‘주인공’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 발표돼 큰 사랑을 받은 ‘가시나’의 프리퀄 격인 이 노래 역시 기울어진 관계 속에 곧 다가올 헤어짐을 직감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지만 부제가 재미있었다. ‘히로인’(Heroine). 노랫말은 내내 네가 악역이라도, 슬픈 이별이라도 상관없으니 하던 대로 하라고, 넌 너여야만 한다고 상대에게 외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외침은 자기 자신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는 다짐과 다름없다. 그보다 열흘 앞서 발매된 걸그룹 오마이걸의 ‘비밀정원’을 이끄는 동력 역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장소’였다.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멋지고 놀라운 것이 숨겨져 있는, 언젠가 그 꿈들이 현실이 되면 소중한 누군가와 나눌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곳. 그곳에 초대될 사람은 내가 택한, 모든 걸 나에게 맡긴 채 조용히 따라와 줄 한 사람이다.근 한 달 사이 발매된 대중가요 속 펼쳐진 이러한 풍경은 꽤나 흥미롭다. 사랑을 노래할 때 버릇처럼 자신을 수동적 위치에 놓던 여성 화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꾸려 나간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앞서 언급된 이들의 대표곡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보다 명확해진다. ‘왜 하필 나를 택했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 어디선가 쉽게 넌 말하겠지 세상의 모든 여잔 너무 쉽다고’ (엄정화 ‘배반의 장미’). ‘그대여 보름달이 뜨는 날 그대 날 보러와요 / 이 밤이 가기 전에 해 뜨기 전에 서둘러줘요 / 그대여 보름달이 뜨는 날 그대 사랑을 줘요 / 이 밤이 가기 전에 해 뜨기 전에 날 보러 와요’ (선미 ‘보름달’). ‘그댄 마치 꿈에서 본 그 사람 같았지 / 이게 말로만 듣곤 한 사랑인 걸까 / 나의 맘을 다 뺏겨 버렸어 oh my baby’ (오마이걸 ‘Cupid’).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을 가진 변화였다. 이 변화가 각각 10대, 20대, 40대 여성 음악가에게서 고르게 감지되었다는 점도 놀랍다. 사회·문화적으로 페미니즘이 화두로 떠올라서일까.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나이에 맞는 감성을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이 생경한 풍경을 조금 조급하지만 시대와 호응한 일종의 ‘각성’이라 불러도 좋을까. 우리 대중가요 속 습관처럼 등장하던 타자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결국 버림받아 눈물 흘리던 여성 화자는 적어도 이제 여기 없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자신만의 소중한 장소를 가꾸고, 모든 것의 답이 나여야만 한다는 것을 거듭 깨닫고, 지나간 추억을 안고 새롭게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 장면을 기다리는 여성들이다. 시대의 거울이자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이 명확히 가리키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엄정화는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직접 작사한 ‘She’와 뮤직비디오에서 좀더 직접적으로 자신의 ‘지금’을 묘사한다. ‘엔딩 크레딧’에서 힘차게 춤추던 바로 그 극장을 배경으로, 그는 자신의 과거 활동 영상과 뮤직비디오가 교차 편집된 영상을 바라보며 한없이 벅찬 표정을 짓는다. 스크린 안과 밖의 그를 둘러싼 것들 가운데 달라진 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든 나이와 연도뿐이다. 그 시선에 슬프거나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반갑다. 오히려 세월이 쌓인 그대로 성장해 부드럽게 현재를 받아들이는 품이 한없이 넉넉하다. 이 넉넉함은 선미와 오마이걸의 음악에도 각자의 크기로 고스란히 적용된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움직임이다. 이제, 그녀들이 노래한다. 대중음악평론가
  • 지금과 닮은… 성냥불 같던 올드 상하이

    지금과 닮은… 성냥불 같던 올드 상하이

    그림은 한 점인데 뻗어나갈 수 있는 서사는 무한대다. 배경은 1930년대 ‘동양의 파리’라 불렸던 중국 ‘올드 상하이’.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자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변혁의 중심, 온갖 무역으로 축적한 황금의 도시였다. 유럽식 건축물, 고급 사교 클럽, 백화점, 영화관들로 흥성거렸던 격정의 순간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조덕현(61)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가 그 극적인 순간들을 소환한다. 다음달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에픽 상하이’전에서다. ●시공간 넘나드는 1930년대 ‘황금의 도시 ’ 갤러리를 들어서자마자 폭 5.8m, 높이 3.9m의 초대형 화폭에 옮겨진 올드 상하이의 풍경과 인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제목은 ‘1935’. 그림은 어느 한곳에 시선을 오래 두게 놔두질 않는다.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여 빚어내는 관계는 상상하는 만큼의 다채로운 서사를 펼쳐내고, 시간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비틀려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대 최고의 상하이 여배우 롼링위(阮玲玉)가 말 등에 올라타 한껏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촬영에 한창인 장면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의 주인공 역시 롼링위다. 건물 2층에서는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상하이로 건너가 중국 영화 황제가 된 김염(金焰)이 아내 진이(秦怡)와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들과 한 풍경에 녹아든 인물은 상하이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조선인 남성 조덕현과 상하이 여성 소설가 홍이다. 191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만주로 흘러들어 갔다가 상하이에서 일하게 된 조덕현 작가는 20세기의 풍랑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1995년 고독사한 것으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이다. 조덕현 작가는 2015년 일민미술관 전시 ‘꿈’에서 그의 말년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프리퀄’ 격으로 그의 20대 상하이 시절을 불러냈다. 이번 전시의 서사는 조 작가가 상하이 출신 소설가 미엔미엔(홍의 분신)과 합작해 만들어낸 것. 조 작가는 이번 전시의 서사를 이끄는 ‘조덕현’에 대해 “나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지만 지속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투영해 주는 인물”이라고 했다.●관객들이 스스로 맞춰가는 서사의 퍼즐 왜 그는 한 점의 그림에 이렇게 다양한 시대와 공간, 관계를 중첩해 보여주는 걸까. “제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만 제공하는 게 아니고 관람객들에게 여러 관계와 단서를 주고 퍼즐 맞추듯이 짜맞추기를 해 보라는 겁니다. 그림이 펼치는 서사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죠. 문학과 영화는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장르지만 그림은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그간 다양한 시공간의 자료를 한데 모으고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는데 이는 이전 역사화에서 진화된 형태라고 생각해요.”●화려했지만 격렬한 위협의 시대 매료 한 편의 거대한 역사화 같은 ‘1935’에는 인물들의 드라마뿐 아니라 전쟁과 계층 간 암운 등도 드리워져 있다. 왜 지금 ‘올드 상하이’일까. “1930년대 올드 상하이는 성냥불을 켜면 확 켜졌다 꺼지듯 화려하게 빛나다 사그라든 시대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시공간이지만 삶의 질과 속도가 같은 시대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시대 같은 공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극적이고 격렬했던 곳이자 시대였죠. 그 극적인 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서사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지진, 핵위협 등 사회의 모든 요소가 너무도 격해지고 위협적인 현재의 시대와 닮은꼴 아닌가요.” 극사실주의적인 필치가 특히 돋보이는 다른 대형 회화 ‘꿈꿈’은 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여기서도 시간과 공간은 경계 없이 뒤엉켜 있다. 수몰되는 ‘올드 상하이’를 배경에 둔 채 지구촌 곳곳의 참상들이 펼쳐져 있다. 1·2차 세계대전 난민, 베트남 보트피플, 팔레스타인 난민, 이탈리아 지진 피해자, 시리아 난민, 미얀마 로힝야족, 중일전쟁 당시 상하이 주민 등 각종 테러와의 전쟁, 재해의 희생자들이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 바로크 회화처럼 곳곳에 배치돼 ‘묵시록’의 풍경을 빚어낸다. ●‘꿈꿈’ 지구촌 곳곳 참상, 화폭에 펼쳐 이번 전시에는 ‘1935’, ‘꿈꿈’ 등 대작 회화 2점을 포함한 회화, 사진, 영상 설치작업 등 신작 18점이 공간에 맞게 부려져 있다. 전시의 동선 마지막인 갤러리 지하 1층에 자리한 영상 설치작업 ‘에픽 상하이’는 1930년대 상하이의 유명 영화 장면과 독거노인 조덕현의 골방 모습을 5면의 거울에 투영해 일파만파로 확장되는 영상의 파편들 사이에서 낯선 시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기묘한 경험을 안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페미니즘으로 변주된 셰익스피어

    페미니즘으로 변주된 셰익스피어

    줄리엣이 로미오가 아닌 또 다른 줄리엣과 사랑에 빠지는 레즈비언으로 등장하고, ‘햄릿’의 오필리어는 꿈과 사랑을 잃은 채 죽음의 문턱에 선 5명의 한국 여성으로 변주돼 무대에 오른다.극단 산울림이 올해 첫 레퍼토리 기획전으로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동시대 여성의 삶으로 재해석하고 폭력, 억압, 사랑, 존재에 관한 페미니즘적 시선을 담은 연극을 잇따라 선보인다. 산울림소극장은 예술 창작집단 5곳이 셰익스피어 원작을 재해석해 만든 다섯 편의 작품을 17일부터 연이어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날 첫 무대를 장식한 작품은 ‘오셀로의 식탁’이다. 28일까지 열흘 남짓 공연되는 이 작품은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각색한 것으로 예술집단 페테&세즈헤브가 무대에 올린다. 오셀로가 이아고라는 희대의 악인을 막지 못한 것처럼 ‘이아고가 가득 찬 이 세상에 과연 폭력에 대한 해답이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정형시 모음집인 소네트(Sonnet)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소네트’(1월 31일~2월 11일)다. 연출가 3명이 공조하는 ‘CREATIVE 틈’이 기획한 작품으로 한 여성이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사랑 이야기를 서정적인 음악극으로 창작했다. 블루바이씨클프러덕션은 다음달 21일부터 3월 4일까지 ‘5필리어’를 올린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어’를 통해 폭력과 억압을 체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우리 시대의 오필리어가 누구인지 묻는다. 이어 3월 7∼18일에도 극단 노마드가 ‘햄릿’을 각색한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이 무대에 오른다. 햄릿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사고하기를 포기한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고전극장의 마지막 작품은 3월 21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되는 ‘줄리엣과 줄리엣’이다.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과 시대적 배경이나 원수지간인 두 집안이 등장하는 설정은 같지만 두 집안에 각각 줄리엣이라는 이름의 딸이 겪는 레즈비언 사랑이라는 독특한 서사를 담았다. 임수진 산울림 극장장은 “당초 셰익스피어 고전의 현대적 해석을 조건으로 제시했을 뿐 특정 주제를 기획하지 않았지만 우연의 일치로 페미니즘적 관점들이 많이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장석주·박연준 지음, 난다 펴냄) 다독가 부부인 장석주·박연준 시인이 지난해 상반기 매일 쓴 책 일기. 편집자 강윤정·카페꼼마 대표 장으뜸 부부, 예스24 김유리 MD와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 의사이자 에세이스트인 남궁인, 책방무사를 운영하는 뮤지션 요조 등 여러 다독가들의 일상에 스민 책을 엿볼 수 있는 시리즈 ‘읽어본다’ 1차본이 함께 펴 나왔다.여학생·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배소현 외 5명 지음, 제철소 펴냄) ‘여학생’은 삶의 한가운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주인공으로 성장해 나가는 십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는 청소년의 성과 연애, 자존감, 죽음 등을 다룬 청소년희곡집이다. 312쪽. 1만 3000원. 변방의 사운드(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신현준·이기웅 엮음, 채륜 펴냄) 아시아 11개국의 20세기 후반 팝 음악의 궤적을 각 지역의 현지인 혹은 전문가인 필자들이 써낸 아시아 대중음악의 통사. 456쪽. 2만 9000원. 차별 감정의 철학(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김희은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우리는 왜 끊임없이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지, 선하고 의로운 보통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폭력을 성찰한다. 208쪽. 1만 2000원. 여성, 산문 살롱(김진희·송경란 지음, 소명출판 펴냄) 천경자·박경리·강신재 등 1950~1970년대 펴 나온 국내 여성 작가 10명의 수필에서 이들의 예술세계와 여성으로서의 의식이 현재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살펴본다. 275쪽. 1만 3000원. 그래픽 노블 사랑 수업- 17가지 별난 사랑 이야기(토니노 베나퀴스타 지음, 자크 드 루스탈 그림, 이나무 옮김, 이숲 펴냄) 쇼윈도 부부의 내밀한 비밀, 나쁜 남자의 지순한 순애보, 동성애자 부부의 입양아 사랑 등 저마다 다른 사랑의 풍경들이 정교한 서사와 의외의 반전으로 빛난다. 248쪽. 1만 4000원.
  • 만화가, 독자 사로잡는 그들만의 비법

    만화가, 독자 사로잡는 그들만의 비법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위근우 인터뷰와 글/남해의봄날/220쪽/1만 5000원연말 스크린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뿐 아니라 과거 흥행작인 ‘내부자들’이나 명품 드라마 ‘미생’까지, 공통점은 모두 원작이 웹툰이라는 점이다. 동시대 가장 ‘핫’(hot)하고 ‘힙’(hip)한 직업이 웹툰 작가인 시대이기도 하다. KT경제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올해 7000억원을 돌파했고, 2020년 1조원 시장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신간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의 인터뷰어 위근우는 “게임의 룰이 달라졌다”는 말로 만화의 위상 변화를 증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매력적인 ‘만화의 시대’로 안내하는 동시대 만화가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난다(어쿠스틱 라이프), 이종범(닥터 프로스트), 한지원(생각보다 맑은), 김정연(혼자를 기르는 법), 이동건(유미의 세포들), 윤태호(미생) 등이 풀어 놓는 치열한 창작의 고민을 담고 있다. 독자를 사로잡는 만화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서사’, 각자의 개성 있는 세계관이 녹아 있는 독특한 이야기들 아닐까. 일상툰 작가인 난다는 서사를 사건의 힘에 의지하지만 반전은 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다. 소소한 일상 경험들을 캡처하듯 만화 속에 붙잡아 서사적으로 변용한다. 난다의 미덕은 균형 감각이다. 특별한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자기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안기는 이율배반적인 충족감이다. 대학에서 전공한 심리학을 만화 소재로 삼는 이종범 작가는 각 스토리를 구간별로 해체하는 편집증적인 방식의 이야기 설계를 선호한다. 그의 대표작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한 줄의 메모에서 출발했고 캐릭터와 서사는 주제 의식에 충실하게 부합했다.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해 이종범 작가는 ‘배가 산으로 가는 식’의 실패 확률은 낮은 작법이라고 자신한다. 출판 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전업한 김정연 작가는 서사적 명료성을 중시한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상황과 연출, 대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바대로 전달하는 것’, 이건 말로 표현하면 쉽지만 작법으로 실행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작품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작품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느껴지는 동시대 또래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명할 줄 아는 작가만의 섬세한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지난해 한국만화가협회로부터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한 이동건 작가는 문제의식과 작가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유미의 세포들’이 성장 서사의 구조를 갖는 건 작가 스스로 ‘요령’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관심사가 개입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만화가가 되는 방식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전통적인 입봉 경로인 공모전뿐 아니라 포털의 웹툰 2부리그(조석 작가)나 인터넷 커뮤니티(이말년 작가), 블로그(박수봉 작가)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연재로 ‘2017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한 수신지 작가 사례까지 다양한 경로를 참고하라고 말한다. 허영만 화실의 문하생으로 만화 인생을 시작해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윤태호 작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그는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고 강조한다. 윤 작가는 ‘핑퐁’의 마츠모토 타이요나 ‘아키라’의 오토모 카츠히로처럼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조형 작가보다는 노력을 통해 탄탄해지는 완성형 작가를 많이 키워낼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본다. 저자는 만화가에 대해 “새로운 플랫폼과 시장에서 자신들이 직접 룰을 만들고 또 그 룰을 폐기하거나 확장하는 능동적 이야기꾼”이라고 정의하며, “만화가가 큰 인기와 관심의 대상이 된 건, 그들이 동시대성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한 창작집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詩는 SF와 닮았다”

    “詩는 SF와 닮았다”

    영화·다큐·소설 등 경계없는 탐구 이어가 시스템 바꿔도 여전한 디스토피아 그려내 “시쓰기와 SF(과학소설)는 닮은꼴 같아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시 속에 담긴 것은 현실에 드러나지 않는 것, 관계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그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쓰는 SF와 비슷하다 생각했어요.”시인이 SF를 쓴 이유를 묻자 솔깃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한국 최고의 연애시집”(황현산 평론가)이란 찬사를 받은 시집 ‘연애의 책’을 통해 감각적이고 대담한 시적 화술을 선보인 유진목(36) 시인이다. 그의 등장은 몇 편의 시로 운명이 갈리는 신춘문예, 문예지 등 기존의 등단 방식이 아니라 더 눈길을 끌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투고 원고를 검토해 ‘될성부른 시인’을 가려낸다는 출판사 삼인 시인선 첫 권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언뜻 시와 SF의 거리는 멀어 보이지만 시인의 설명과 이력을 되짚어 보면 납득이 간다. 2009년 1인 영화 제작사 ‘목년사’를 차린 그는 단편 극영화,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직접 시나리오도 쓰며 장편 영화감독 데뷔를 늘 마음에 품고 있는 그에게 ‘서사’는 놓칠 수 없는 꿈인 셈이다.최근 펴낸 ‘디스옥타비아_2059 만들어진 세계’(알마)는 예술을 향한 그의 경계 없는 탐구 속에서 나온 작품이다. 흑인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인 미국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의 소설에서 빌려온 문장, 이미지 변주, 패러디들로 모자이크를 그린 소설은 2059년 노인 보호 시설인 ‘엘더’에 들어간 78세 노인 ‘모’의 목소리로 흐른다. 제목 ‘디스옥타비아’에서 짐작되듯, 소설은 억압받는 소수자였고, SF에서도 그들을 위한 목소리를 냈던 작가를 향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시인은 혼자 오랫동안 습작을 하면서 작가가 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옥타비아 버틀러의 삶에 자신을 포개며 “SF 속에서 당신은 상상 가능한 곳으로 얼마든지 떠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을 동력 삼아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2059년의 ‘모’는 출산과 육아를 인류의 본성으로 여기고, 남자다운 것과 여자다운 것을 지키지 않으면 문제 삼고, 여성을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과거’를 회상한다. 그 과거는 다름 아닌 우리의 현재다. 모는 “그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이나 해 볼 수 있겠는가”란 물음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강요하는 관념의 부조리와 야만을 극대화한다. 현재도 디스토피아지만 성차별, 혐오가 사라진 미래라고 유토피아는 아니다. 계층 간 이동이 원천봉쇄돼 있는 2059년은 또 다른 질곡으로 인간을 짓누르는 디스토피아다. 시대를 달리해도, 시스템을 바꾸어도, 여전히 디스토피아를 사는 인간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어느 한 부분을 개선하려고 파고들다 보면 좋은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강제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서점(그는 지난달까지 제주에 살며 나흘은 원고를 쓰고 사흘은 서점에서 일을 했다)에서 일할 때 독자분들은 매번 ‘우울하거나 힘들지 않은 이야기를 추천해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문학이 그런가요. 어떤 것이 우리에게 상처가 되고 어떤 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일러 주는 게 문학 본연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도 미래도 세계는 디스토피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려냈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거짓말에서 삶의 의지를 봤어요”

    “거짓말에서 삶의 의지를 봤어요”

    “늘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게 마음이 끌렸어요. 그들의 허무맹랑한 꿈이나 욕망이 내 것 같았죠. 소설은 언제나 그런 착각 속에서 쓰게 돼요.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거짓말이고 소설이라면, 거기서 우리는 희망을 얻기도 하고 새로운 각성에 이르니까요.”첫 장편 ‘달과 바다’로 거짓이 진실보다 반짝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줬던 정한아(35) 작가가 거짓으로 삶을 지어 올리고 부수는 인물로 생동하는 서사를 만들어 냈다. ‘리틀 시카고’ 이후 5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장편 ‘친밀한 이방인’(문학동네)이다. ‘이방인’이라는 명사와 ‘친밀한’이라는 형용사 사이의 아이러니가 솔깃한 제목과 얼굴을 감춘 채 다면체의 가면을 쓴 인물의 표지는 작품의 기이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나’는 7년이나 소설을 쓰지 못한 소설가. 대학교수로 자리 잡은 남편이 유능해질수록 무능해지는 스스로에게 지쳐 가던 그는 신문에서 자신이 10년 전에 쓴 소설과 함께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란 광고를 발견한다. 육 개월 전 실종된 남편을 찾고 있다는 여자 ‘진’은 자신의 남편이 광고 속 소설을 쓴 작가로 행세했다며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남편 이유미의 삶을 ‘나’에게 던져 놓는다. 소설은 거짓말을 동력으로 세 남자의 아내,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산 이유미의 삶을 타인들의 기억으로 촘촘히 복기한다. “누구나 인간 관계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필연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꿈과 욕망이 정직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없을 때 부도덕하고 비효율적일지라도 거짓으로 이뤄 내는 사람들에겐 삶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 생명력이 보였고요. 거짓말이 세상의 벽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나 기지, 생존 전략으로 보이면서 이를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이유미의 행적을 추적하는 ‘나’ 역시 감춰진 거짓으로 ‘정상성’을 기신기신 유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작가는 잃을 것 없는 이유미와 잃을 것 많은 ‘나’의 삶을 대조하면서 어떤 위치이든 여성의 삶은 ‘거짓의 서사’가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을 있는 대로 드러내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남성 중심 사회의 틀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되고 폐기되죠. 저 역시 글을 쓰고 학교에 머물 때는 여성에게 사회가 생래적으로 주는 페널티를 느끼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이를 실감했어요. 아내와 엄마로서 ‘진짜 나’와 ‘내보여야 하는 나’ 사이에서 큰 딜레마를 느끼면서 나 역시 방어막을 치고 거짓말을 하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었죠.” 청량하고 생기 넘치던 청춘의 서사가 생의 비의를 알아버렸을 때의 깊이와 어둠을 가지게 된 것 그 때문일 터다. 예상치 못한 풍경으로 내닫는 미스터리와 반전의 서사에서 “매번 작품을 쓸 때마다 유려한 거짓말쟁이가 돼 간다고 느낀다”는 작가의 고백이 더없는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제 영화에서 처음으로 여성 킬러가 나옵니다” 쌍권총 들고 돌아온 오우삼

    “제 영화에서 처음으로 여성 킬러가 나옵니다” 쌍권총 들고 돌아온 오우삼

    “제가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액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더욱 힘있게,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죠.”액션 누아르의 거장 우위썬(71·吳宇森·오우삼) 감독은 14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액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이야기 했다. 수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그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그가 오랜 만에 쌍권총 액션을 연출한 신작 ‘맨헌트’가 갈라프레젠테이션에 초청받았다. 1990년대 중반 미국 할리우드로 진출해 10여년 활동하다가 다시 홍콩(중국)으로 돌아와 쌍권총 액션을 연출한 것은 ‘첩혈속집’(1992) 이후 25년 만이다. “어려서 춤과 무용, 뮤지컬을 좋아했는 데 액션 영화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액션을 통해 인간적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존경하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님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스토리가 전달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전 세계 액션 배우와 스턴트 맨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들과 일할 때 활력이 가득한 분위기를 좋아하죠.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정신도 좋아요. 액션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에요.” ‘맨헌트’는 살인 누명을 쓴 변호사와 이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다. 비둘기, 쌍권총, 슬라이딩 총격을 비롯한 아크로바틱 액션, 슬로 모션 등 그의 트레이드 마크도 곳곳에 등장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서로 교감한다는 점에서 ‘영웅본색’(1986)과 함께 양대 산맥인 ‘첩혈쌍웅’(1989)을 떠올리게 만드는 데 이 영화는 1970년대 다카쿠라 켄 주연의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우 감독은 “존경하는 배우인 다카쿠라 켄에게 헌정하기 위해 리메이크를 했다”며 “1970년대에 좋은 일본 영화가 많은 데 이를 소개하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작 영화의 판권을 확보하지 못해서 원작 소설을 갖고 영화를 찍었다”고 귀띔했다. 소설이 1970년대가 배경이라 현대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세부적인 이야기에 변화를 줬다는 게 우 감독의 설명이다. 특히 우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처음 여성 킬러를 등장시켰다고 강조했다. “우정이나 액션 등 기본적인 틀이나 주제는 다르지 않지만 원작에 없는 부분을 많이 넣었어요. 특히 두 여자 킬러를 추가해 내용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죠.” 그는 여자 킬러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식으로 연출하지는 않았다고 부연했다.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동물, 아름다운 풍경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 캐릭터도 저만의 미적 기준을 갖고 촬영하죠. 저에겐 첫 여성 킬러였지만 주윤발, 양조위를 찍을 때와 다른 느낌은 없었어요. 그들만의 낭만과 감정을 잘 표현할 줄 아는 배우들이었거든요.” 그의 작품에 열광했던 세대들은 벌써 40~50대 중년이 됐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오우삼 스타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식하지는 않을까. “사실 영화를 찍을 때 그 부분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거에요. 관객을 감동시키고 흥분시킬 수 있다면 시대나 나이대에 상관 없이 받아들여질 거에요. 이번 작품에도 제 스타일이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려고 했습니다. 제 옛날 작품을 본 적이 없는 관객들도 좋아할 겁니다.” 우 감독은 수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또 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오자 상당히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며 웃기도 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홍콩에는 여전히 재능 있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도 많은 홍콩 영화들이 선보여지고 있고, 많은 감독들이 홍콩에서 작업하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다 제 덕분은 아닌 거죠.” 내년 할리우드 진출 25년을 기념해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첫 작품 ‘하드타켓’의 오리지널 감독판을 선보일 계획이 없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하드타켓’은 심한 가위질을 당한 채 개봉해 아쉬움을 남겼다. “당연히 오리지널 컷이 더 길고, 액션이 더 많고, 독창적인 요소도 더 있죠. 당시 문제가 있어 여러 신을 삭제해야 했지만 늘 그 작품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져왔어요. 물론 오리지널 버전이 기념으로 상영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절한 해군 출신 작가와 작업을 했었는데 그 작가를 비롯해 당시 추억이 많은 작품입니다.” 당연하게도, 그가 액션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서사 대작들도 많이 만들었다. “액션 외에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많아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영웅적인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다른 지역의 나라에 가서 그곳 문화를 소개하는 작품도 찍고 싶어요. 저에게는 다시 한 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거에요. 다음 작품은 유럽에서 찍을 거랍니다.” ‘맨헌트’에는 범아시아 프로젝트다. 중국의 장한위, 일본의 마사하루 후쿠야마가 주연을 맡았다. 일본의 대배우 쿠니무라 준도 나온다. 특히 한국의 하지원과 우 감독의 딸 안젤리스 우가 우 감독의 첫 여성 킬러를 연기하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원은 “오우삼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돼 매 순간이 영광스러웠고 행복했다”며 “액션 연기가 좋았던 게 일본,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가 나오지만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화가 있어 촬영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날 엔딩신을 찍었는데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호흡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작품인 ‘검우강호’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고, ‘태평륜’ 등에도 출연했던 안젤리스 우는 “아버지와 함께 액션 영화르 찍은 것은 즐겁고 좋은 경험이었다”며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는데, 이전 작품에서 잘해서 (아버지가) 한 번 더 기회를 준 게 아닌가 한다”며 웃었다. ‘맨헌트’는 오는 12월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부산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지금, 이 영화] ‘우리의 20세기’, “여자는 남자를 소심하게, 아니 사려깊게 만든다”

    [지금, 이 영화] ‘우리의 20세기’, “여자는 남자를 소심하게, 아니 사려깊게 만든다”

    ‘에밀’(1762)은 루소의 교육론이 담긴 저작으로 유명하다. 그는 인위적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자연적 가치를 회복하는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한데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은 젠더적으로 보면 뜨악한 면이 적지 않다. 예컨대 15세 이후 청년기의 배움을 다룬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자는 남자를 대담하게 만들지 않고 소심하게 만든다.” 이 책을 접하고 분노한 사람이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다. 나중에 그녀는 남녀 교육 차별을 반대하는 ‘여성의 권리 옹호’(1792)라는 소책자를 출간해 ‘에밀’을 논박했다. 교육을 둘러싼 18세기 중반과 19세기 초입의 세계관은 이 정도로 달랐다. 그럼 20세기는?그중 하나의 답을 영화 ‘우리의 20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원제는 ‘20세기 여인들’이다. 제목대로 영화는 1979년 샌타바버라에 사는 여자 셋의 삶을 서사적 중심에 놓는다. 첫 번째 인물은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다. 나이 마흔에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를 낳은 그녀는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올바르게 크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다. 두 번째 인물은 애비(그레타 거윅)다. 도로시아 집 세입자 중 한 명인 그녀는 자유분방한 만큼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진작가다. 세 번째 인물은 줄리(엘르 페닝)다. 그녀는 본인이 미쳤다고, 곧잘 스스로를 방기하는 태도를 취한다. 제이미는 그런 그녀의 유일한 친구다.도로시아는 애비와 줄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제이미가 지금 시대의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 할 수 있는 범위―자기 인생 안에서 제이미를 교육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모든 교육은 일방적일 수 없다. 학습자뿐 아니라 교수자도 교육을 통해 달라진다. 이들은 교학상장(敎學相長)한다. 제이미가 선생인 양 세 사람을 깨우칠 때도 있다. 여기에는 감독 마이크 밀스의 자전적 요소가 담겼다. “내 유년기 대부분은 엄마와 두 여자 형제들이 함께했는데, 아마 그때부터 내 주위의 여자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 일종의 생존이라고 깨달았던 거 같아요. 그게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을 때도 말이죠.” 제이미도 마이크 밀스와 마찬가지로 여성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애비가 권한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면서 그는 사고의 변화를 느낀다. 도로시아의 염려가 무색할 정도로 제이미는 괜찮은 성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쯤 되면 앞에 언급한 루소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할 것 같다. “여자는 남자를 소심하게 만들지 않고 사려 깊게 만든다.” 애비처럼 도로시아 집에 세 들어 사는 윌리엄(빌리 크루덥)도 이른바 ‘남자다운 대담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그의 모습은 20세기 에밀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제이미는 그 이상 잘 자랄 것이다. 20세기 여인들 덕분이다.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450억짜리 ‘교주전: 천공의 눈’ 메인 예고편 공개

    450억짜리 ‘교주전: 천공의 눈’ 메인 예고편 공개

    제작비 450억 원이 투입된 판타지 무협 영화 ‘교주전: 천공의 눈’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교주전: 천공의 눈’은 전설의 도둑 ‘니공공’과 우인족 여성 무사 ‘흑우’가 교주를 파괴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TV 드라마 ‘화서인지절애지성’으로 제작된 당칠공자의 소설 ‘화서인’이 원작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아주 오랜 옛날, 날개 달린 우인족은 인간과 공존해 왔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도둑 니공공이 교주를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깐죽거리는 말투와 모자란 듯한 행동에도 위기 상황에서는 날렵하게 도망가는 니공공 모습이 눈길을 끈다. 여주인공 흑우는 냉철하고 도도한 우인족 무사로 니공공과 정반대의 특징이 눈에 띈다. 대조적인 성격의 니공공과 흑우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서사의 흐름에 따라 둘의 로맨스를 궁금케 한다. 또 대규모 전투는 물론 둘의 화려한 액션은 긴 여정에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장애물들을 극복할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특히, 우인족 후계자 설열이 교주를 열면서 “이제 ‘천공의 눈’이 열린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그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도둑질의 성인이자 가슴 아픈 비밀을 지닌 ‘니공공’ 역은 왕대륙이, 우인족 여성 무사 ‘흑우’ 역은 장천애가 맡았다. 인간을 말살하기 위해 교주를 손에 넣고 천공의 눈을 열려고 하는 우인족 후계자 ‘설열’ 역은 임달화가 맡았다. 450억 거대 제작비가 든 ‘교주전: 천공의 눈’은 9월 말 개봉 예정이다. 15세 관람가. 110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수부라 게이트’, 팽팽한 긴장감 돋보이는 19금 예고편

    ‘수부라 게이트’, 팽팽한 긴장감 돋보이는 19금 예고편

    이탈리아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다룬 영화 ‘수부라 게이트’가 충격적인 스토리와 장면을 여과 없이 담은 19금 예고편을 공개했다. ‘수부라 게이트’는 정치인의 미성년 성매매와 마약 스캔들, 시체유기를 은폐하려다 마피아 조직 간의 전쟁으로 번진 뒤, 끝내 절대 권력의 파멸로 이어지는 7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공개된 19금 예고편은 겉으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정치인이 어두운 사생활을 즐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밤에는 마약에 취해 여성들과 난교 파티를 벌이고 낮에는 멀쩡한 가면을 쓰는 정치인의 검은 실체는 충격적인 연쇄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남몰래 살인을 벌이는 마피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협박을 당하는 그의 모습 등은 팽팽한 긴장감과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서사를 예고한다. 이렇게 충격적인 스토리를 여과 없이 드러낸 ‘수부라 게이트’는 지난 22일 언론 시사회 직후 “한국 정치 현실과 유사한 작품”, “새로운 범죄 누아르의 탄생”,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와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개봉 당시 이탈리아 아카데미와 비평가 협회로부터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는 “수부라” 오리지널 시리즈 10부작 제작을 확정 지었다. 영화 ‘수부라 게이트’는 오는 9월 7일 개봉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134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지금, 이 영화] ‘내일의 안녕’, 뻔한 시한부 설정…페넬로페 크루스 열연이 살려

    [지금, 이 영화] ‘내일의 안녕’, 뻔한 시한부 설정…페넬로페 크루스 열연이 살려

    훌리오 메뎀 감독의 영화 ‘내일의 안녕’에 높은 별점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작품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유방암 말기로 길어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그녀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남은 나날을 의미 있게 보내기로 한다.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을 띤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내일의 안녕’이 보편성을 심화시키지 못하고, 보편성을 상투화한다는 데 있다. 영화는 더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는 단순한 휴머니즘을 설파한다.주제뿐 아니라 그것을 풀어 놓는 방법도 한계가 뚜렷하다. 너무 뻔한 상징은 관객의 실소를 자아내고, 억지스럽게 연결된 서사는 관객을 실망시킨다. 자, 그럼 앞으로 볼 영화 리스트에서 ‘내일의 안녕’을 빼면 되는 것인가? 그래도 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으로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관객이 눈여겨볼 만한 요소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그다가 그렇다. 마그다로 분한 페넬로페 크루스는 영화를 혼자 이끌어가다시피 한다. (출연하는 작품에 따라 다소 편차가 있기는 해도) 그녀는 장편영화의 리듬을 독자적으로 장악할 줄 아는 일류 배우다.‘내일의 안녕’에서도 페넬로페 크루스는 그런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연기한 인물 마그다의 공도 있다. 이 영화에서 마그다는 능동적으로 사는 유일한 캐릭터다. 가슴 절제 수술을 받는 날, 의사 줄리안(에시어 엑센디아)은 그녀에게 같이 온 보호자가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마그다가 답한다. “일부러 혼자 왔죠. 더 강해지려고.” 그녀는 불가항력적인 불행에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운명을 원망하며 스스로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그다가 유물론자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난에 맞닥뜨린 남편 아르투로(루이스 토사)가 신에게 기도할 때, 마그다는 그러지 않는다. 대신 아들 다니(테오 플라넬)에게 자신의 신념을 전한다. “나는 천국이 아니라 삶을 믿어. 삶이 우리의 소유란 것만은 아니까. 삶을 마음껏 누리면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자기 자신과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하면서 살아야 해. 그러려면 기쁨을 주는 걸 가까이하고 아픔을 주는 건 멀리해야지. 하지만 신중히 선택해야 돼. 누구에게도 상처를 안 주도록,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이럴 때 마그다는 철학자 스피노자가 주창한 윤리학적 명제―코나투스(자기를 보존하는 능력)의 증진을 실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 덕분에 ‘내일의 안녕’은 최악을 면했다. 스피노자는 행복을 찾는,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고 썼다. 이와 같은 어렵고 귀한 노력을 마그다가 했다.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 영화칼럼니스트
  • “연기는 내 운명, 삶의 목표… ‘엄마’도 우리 인생의 주연”

    “연기는 내 운명, 삶의 목표… ‘엄마’도 우리 인생의 주연”

    “영화를 통해 저를 아는 팬들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상상의 경계를 넘어 여러 장소와 사람들에게 가닿는 (영화의) 서사 능력에 항상 감탄을 하게 됩니다.”할리우드 중견 배우 다이앤 레인(위·52)은 1980년대 뭇 남학생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 ‘책받침 요정’이다. 1, 2위는 브룩 실즈와 소피 마르소가 차지했지만 3위 자리는 그녀와 피비 케이츠가 다퉜다. 중년에 접어들며 조연 출연이 잦았는데 오랜만에 주연을 맡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보여 준 ‘파리로 가는 길’(아래)이 국내에서 잔잔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3일 개봉해 8일 만에 4만명가량이 관람했다. 다양성 영화 전용관 위주의 전국 70개 스크린 개봉이고, 멀티플렉스의 경우 조조 회차에 걸리는 빈도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레인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남편 마이클(앨릭 볼드윈)과 함께 프랑스 칸영화제에 갔다가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겨 남편의 프랑스 사업 파트너 자크(아르노 비아르)와 단둘이 파리까지 느린 여행을 하며 삶을 돌아보는 앤을 연기한다. 이 영화는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부인 엘리너 코폴라가 여든 살에 ‘입봉’(감독 데뷔)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레인과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1980년대 여성 스타 중 거의 유일하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비결은.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원해서인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실질적으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없이 자랐다. 형제가 없고 이모나 삼촌, 할머니도 없어 슬프게도 어린 시절엔 나 홀로 가족이었던 셈이다. 극장에서 연기하고 있는 자체가 기적 같았고, 갑자기 가족이 생긴 느낌이었다. 되돌아보면 연기는 운명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너무 힘들기도 해 열아홉 살 때부터 3년 정도 쉰 적도 있었다. →영화 데뷔작 ‘리틀 로맨스’로 10대에 스타가 됐다. 늘 주연이었지만 이제 슈퍼맨 엄마 마사 켄트 등 조연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쉽지 않은지. -슈퍼맨 엄마로 지내는 것도 영웅적인 일이다. 선하고 착한 영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엄마’는 우리 인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20대 때 프랜시스와 수차례 호흡을 맞췄는데 50대에 엘리너의 감독 데뷔작에서 주연을 맡았다. 코폴라 가족과 보통 인연이 아닌데. -맞다. 프랜시스의 작품을 할 때 엘리너도 항상 곁에 있었다. 딸인 소피아는 ‘럼블 피시’에 내 동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코폴라가(家)의 영화인들을 인내하며 애정을 갖고 돌봐 온 엘리너에게 ‘보답’하는 일의 한 부분이 된 것은 보람찬 경험이었다. 왜냐면 이번에는 엘리너의 차례였으니까! 누군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보고 있으면 그 기분이 내게도 전염된다. 게다가 (촬영하며) 아름다운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리틀 로맨스’나 ‘아웃 사이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등에서의 당신을 기억하는 한국 팬이 많은데. -언젠가 직접 한국에 갈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 이 작품에 대한 관심에도 깊이 감사드린다. 일상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한숨 돌리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탈출하게 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추신. 공복에 보면 안 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장난 전화에서 시작된 죽음의 공포!…‘데스콜’ 예고편

    장난 전화에서 시작된 죽음의 공포!…‘데스콜’ 예고편

    장난전화라는 소재에 공포를 버무린 영화 ‘데스콜’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데스 콜’은 늦은 밤, 장난전화를 하던 10대들이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공포를 그렸다. 공개된 예고편은 10대들이 한 여성을 대상으로 장난 전화를 거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낯선 남자의 전화 한 통이 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장난 전화를 하던 가해자에서 한순간에 피해자가 된 주인공들은 자신의 여자 친구와 가족까지 위협하는 낯선 발신자에게 어떠한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의 위협에 빠진다. 절대 전화를 끊지 말라는 협박 속에 타인과 자신의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후 발생할 사건에 대해 공포심을 자극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장난전화’라는 소재로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전달할 영화 ‘데스 콜’은 ‘그래비티’ 제작진이 참여해 공포심을 자극하는 시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서사구조까지 갖추어 웰메이드 공포 스릴러를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데스 콜’은 오는 7월 27일 개봉한다. 83분. 청소년 관람불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문학·사회 도전한 여공들 삶 개척하는 서사 되살려”

    “문학·사회 도전한 여공들 삶 개척하는 서사 되살려”

    여공 문학/루스 배러클러프 지음/김원·노지승 옮김/후마니타스/367쪽/1만 7000원“버지니아 울프는 중간계급 여성이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하던 그 역사적 순간, 근대 세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했죠. 한국의 여공들은 공장에서 겪었던 부당한 고통으로 문학에 영감을 주면서 기존의 문학과 사회질서에 도전했습니다. 현재는 잊혀졌지만 이들은 한국 근현대 문학과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적 표식이자 주인공인 셈이죠.”‘여공’은 ‘희생양’의 또 다른 말이었다. 공장에서는 가혹한 노동조건과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 내몰렸고, 집에서는 ‘공부하는 오빠’ 대신 부양의 의무를 짊어져야 했다. 남성 중심주의적인 사회에서 이렇게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돼 온 ‘여공의 서사’를 외국 학자가 다시 썼다. ‘여공 문학’의 저자 루스 배러클러프(46) 호주국립대 문화역사언어학부 부교수다.“여공 문학은 우리에게 급격한 변화의 시기의 삶을 새롭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특별한 목소리들”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목소리를 재평가하며 촘촘히 되살려 냈다. 다채로운 꿈과 욕망을 지닌 인간, 주체성을 지닌 행위자로서 여공을 새롭게 위치시키면서. 지난 5일 서울대에서 만난 배러클러프 교수는 “문학과 여공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한 여공 문학이라는 표현이 만들어 내는 부조화와 불편함이 나를 매혹시켰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먼저 매료된 것은 사람이었다. 열여덟이던 1989년 여름 그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의 초청으로 3주간 한국을 찾았다. 당시 경기도 부천의 한 공장에서 만난 또래 여공들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학 신입생이던 저나 그 친구들 모두 그 나이대 특유의 활기와 호기심이 가득해 ‘서로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혼자 익힌 러시아어로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을 읽고 있는 그들은 야심이 있었고 언젠간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키우고 있었죠. 문학과 작가에 대한 그 열정이 놀랍고 궁금했어요.” 이후 호주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던 그는 1998년 노동사를 공부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공부하며 전국공공부문노동조합연맹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그가 ‘여성이 쓴 노동 문학을 읽고 싶다’고 하자 활동가들은 몇 권의 책을 쥐여 줬다. 여성 노동자의 자전적 수기인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 등이었다. 그가 호주로 가져가 밤마다 사전을 옆에 끼고 읽어 나간 이 저작들은 그의 박사 연구 논문이 됐고, 20여년 만에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여공 문학’은 식민지 시기인 1920~1930년대 여공들을 다룬 기사와 소설, 1970~1980년대 여공들의 자전적 수기, 1990년대 신경숙의 ‘외딴방’까지를 아우른다. 역자인 노지승 인천대 교수는 “한국 문학사에서 ‘여공’의 존재를 가시화시켜 주제로 만들고, ‘여공 문학’을 하나의 독립된 계보와 역사로 만든 것은 오롯이 이 책의 공”이라고 평한다. 배러클러프 교수는 “(한국에서) 출간된 여공의 글에는 그들이 사회에 던지는 다양한 통찰이 들어 있었다. 이 여성들은 ‘근대성’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최초로 간파해 낸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여공의 삶을 깊숙이 통제한 성폭력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 경험에 대한 이해 역시 불완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도 충언했다. “기존 여공 문학에서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여공들이 다양한 폭력으로 죽거나 다른 여러 질서에 굴복하는 등 산업화에 온전히 지는 플롯을 따라가죠. 하지만 굳이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주도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개척해 나가는 서사들에 저는 주목했습니다. 자기결정권이 폭력에 의해 가려졌던 당시 여성들의 목소리를 여공들의 목소리를 통해 끄집어내고 싶었던 거죠.” 지금 그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여공들이 문학에서 사라졌다고 그들의 존재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 내 제조업 부문이 축소되고 사업체들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재배치되면서 청년 세대는 세계화된 한국 경제에서 고통을 겪고 있죠. 이들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이어질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광주시 29일 ‘2회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행사

    광주시 29일 ‘2회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행사

    경기 광주시는 29일 오후 시청 중회의실에서 ‘2회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행사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구직자의 취업과 구인업체의 인력수급 지원을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브람스생활건강, 제이케이푸드 등 관내 12개 기업에서 사무와 생산직종 등 68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또한 구인업체와 구직자간 현장 채용면접 외에도 구직기술 향상과 취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직업전문상담사와 1:1 맞춤형 취업컨설팅도 진행된다. 아울러 이력서사진 무료촬영 등 부대행사와 청·장년고용지원금, 새일여성 인턴제 등 다양한 취업지원제도에 대한 안내도 함께 실시된다. 이번 행사에는 구직을 희망하는 광주시민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으며, 신분증, 이력서를 지참하여 행사장을 방문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광주시 일자리센터(760-0019)로 문의하면 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1명, 1평, 1시간 퍼포먼스로 세상에 없는 25시가 열린다

    1명, 1평, 1시간 퍼포먼스로 세상에 없는 25시가 열린다

    변방의 시선을 다양한 연극 형식으로 표현하는 서울변방연극제가 2년간의 재정비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올해로 18회를 맞이한 서울변방연극제(이하 연극제)는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대표 이경성 연출가를 선임하고 이번 축제를 준비해 왔다. 연극의 사회적 목소리와 미학적 실험을 중요시한 작품을 선보여 온 이 예술감독은 연극제 무대를 통해 좀더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연극제를 격년제로 개최할 방침인데 재정적·시간적 제약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고 연극제에 참여하는 작품을 꼼꼼히 선정, 지원하기 위해서다. 연극제는 오는 26일부터 새달 8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과 대학로 일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25시-극장 전’이라는 주제를 내건 올해 연극제는 정치·사회적 맥락과 동시대의 감수성을 변방의 상상력을 통해 전달하는 작품들을 초청했다. 우선 개막일인 26일 오후 1시 광화문에서 ‘25시-극장 전’이라는 제목의 릴레이 1인 퍼포먼스로 포문을 연다. 1평 공간에서 1시간 동안 1인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총 24인이 24시간 동안 이어 간다. 연극제 사무국은 “개별적인 24개의 ‘극장’들이 횡적인 시간을 이어 가는 것을 통해 24시간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 25시가 새로운 공간으로 열리는 것을 표현한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공식 초청작으로는 세월호 청문회 과정에서 수집한 말을 통해 가해자들의 논리와 말의 방식을 탐구하는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킬링타임’(구자혜 연출), 인도, 베트남, 중국, 터키 출신의 한국 거주자와의 워크숍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정의를 재질문하는 창작집단 푸른수염의 ‘이방인의 만찬’(안정민 연출), 현대인의 무기력한 몸을 탐색하는 극단 두의 ‘슬픈 짐승-답장’(동이향 연출) 등이 있다. 해외 초청작으로 일본 참가 단체 Q의 ‘케미코후모와’도 만날 수 있다. 극작가 사토코 이치하라가 쓴 이 작품은 여성의 시각에서 혼돈의 시대를 사는 일본인들의 부조리한 일상을 묘사한다. 또 독일에서 시민들과 함께 개인의 서사와 역사를 통해 사회의 보이지 않는 흐름을 드러낸 작업에 열중해 온 연출가 카이 투흐만은 다양한 세대의 시민 7명과 함께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민주주의와 나, 기억’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세한 공연 일정과 정보는 홈페이지(www.mtfestival.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만~3만원. 070-7918-7342.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인종차별 겪은 나 아웃사이더 만든 미국인 꼬집었죠”

    “인종차별 겪은 나 아웃사이더 만든 미국인 꼬집었죠”

    “또래 중 가장 모험적인 극작가.”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극작가 겸 연출가 영진 리(43)를 두고 뉴욕타임스가 일컬은 말이다. 2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영진 리는 2003년 본인의 이름을 딴 극단 ‘영진 리 시어터 컴퍼니’를 통해 실험적인 작품을 개성 있는 어법으로 선보이며 도전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2006년 미국에서 초연한 그의 대표작 ‘용비어천가’는 그가 쓴 많은 희곡 중 유일하게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이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인 작가 5명의 대표작을 무대에 올리는 국립극단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용비어천가’(11일까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가 오동식 연출가에 의해 한국 무대에서 되살아났다. 2013년 캬바레극 ‘우리는 죽게 될 거야’ 이후 두 번째로 한국 관객에게 작품을 선보이게 된 극작가 영진 리를 이메일로 만났다.●아시아 여성 괴롭힘·학대 당했던 사실 빗대 ‘용비어천가’는 누군가로부터 뺨을 맞으면서 훌쩍이는 한 여성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화면 속 여성은 바로 이 작품을 쓴 영진 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사에서 아시아 여성이 괴롭힘과 학대를 당했던 사실을 빗댄 대목이라고 한다. 꽤 당황스럽지만 절로 생각에 빠지게 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지나면 관객은 또 다른 불편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극 중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들이 서로를 향해 가학 행위를 하며 지독한 인종 차별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가운데 백인 역할을 하는 한 남녀 커플이 무심한 듯 자신들의 인생을 논하기 시작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 커플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작품을 망쳐 놓고는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연극으로 바꿔버린다. 소수 인종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심함을 꼬집는 부분이다. “미국인들이 자꾸만 저에게 저의 한국적인 정체성에 대한 글을 쓰라고 권했지만 정작 저는 그러기 싫었어요. 이 연극은 사실 그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썼어요. 미국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안겨 주고 그들 안에 내재한 인종차별주의를 인식할 수 있게끔요. 또 저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고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저의 사고방식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죠.” 영진 리의 말처럼 작품 속에서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주의적인 태도를 꼬집게 된 것은 그가 미국에서 느꼈던 불편한 경험에서 비롯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커플처럼 백인들이 자신의 삶에 침투해 주도권을 빼앗는 건 그에겐 익숙한 경험이었다고. ●괴상한 연극에 맞춰 서사시 제목 차용? 웃음 드리려 “거의 백인만 사는 작은 마을에서 소수 인종 여성으로 자란 사실이 정체성과 소외를 주로 다루는 제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제가 쓴 모든 연극 작품에는 ‘타자’ 또는 ‘아웃사이더’의 느낌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저의 정체성이 복잡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 이쯤 되면 작품의 제목이 ‘용비어천가’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행적을 노래한 동명의 서사시와 이 작품이 과연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 갸웃거리게 된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만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아시아계 예술가들이 작품 제목을 정할 때 이색적이고 동양적으로 들리는 제목을 사용하는 것이 항상 신경에 거슬렸어요. 그래서 일종의 장난으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색적이고 동양적인 제목을 선택했어요. 저의 괴상하고 황당한 연극의 제목으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사시를 차용하면 웃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고정관념 깨는 희곡 쓰기… 저와 관객에게 거는 도전 개성 넘치는 실험극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영진 리의 다음 작품은 향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크리마스 연휴 때 집에 모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내용의 연극 ‘이성애 백인 남성’을 내년에 공연한 이후 2019년에는 신작을 선보인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작품을 올린 역사상 최초의 여성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기록되는 의미 있는 순간이다. 지금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그를 이끈 원동력 역시 불편함에 있었다. “희곡을 쓸 때 ‘세상에서 가장 쓰기 꺼려지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제 자신에게 물어봐요. 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영역에서 벗어나야 고정관념을 깨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든 작품은 관객에게 거는 도전인 동시에 저에게 거는 도전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주말 영화]

    ■가을의 전설(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지금은 영화계 거물이 된 브래드 피트가 ‘제2의 로버트 레드퍼드’라는 별명을 얻었던 초창기 주연작이다. 어린 시절 곰 사냥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지만 이를 계기로 야성을 일깨운 트리스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트리스탄은 사랑하는 막내동생을 1차 세계대전 전쟁터에서 잃고 돌아온 뒤 동생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가슴에 움튼 야성 때문에 방랑의 길을 택하게 된다. 삼형제의 아버지로 앤서니 홉킨스가, 맏형으로 에이단 퀸이, 막내로 헨리 토머스가 함께한다. 영어 제목 ‘Legend of The Fall’에서 Fall은 가을이 아닌 몰락과 추락을 의미하는데 국내 개봉 당시 ‘가을’로 오역됐다고 한다. 장대한 서사물을 곧잘 연출하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잭 리처: 네버 고 백’을 만들었다. 1994년작. ■헬프(EBS1 일요일 오후 1시 55분) 지난해 숨막히는 미스터리 스릴러 ‘걸 온 더 트레인’을 선보였던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출세작이다. 남성 감독임에도 여성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게 특징. 이 작품은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옥타비아 스펜서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작가를 꿈꾸는 신출내기 기자이자 백인 여성인 스키터(에마 스톤)가 부당한 처우를 받던 흑인 가정부들을 인터뷰해 그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을 그렸다. 2011년작.
  • 열두 폭의 목소리…눈으로 본 사운드

    열두 폭의 목소리…눈으로 본 사운드

    형태도 없고, 비물질적이며, 비가시적인, 그러나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신체를 통해 나오지만 결코 신체에 속하지 않은…목소리. 목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형식으로 시각예술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 1970년대의 개념미술, 1980~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최근 들어 영상 위주의 전시들에서 그 역할과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더 보이스’(The Voice)전은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예술적 매체이자 장치로 등장해 시각예술 영역에 침투한 목소리를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품들을 통해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난 10여년간 신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미술관이 1년 만에 마련한 기획 전시로 국내외 작가 12명이 참여한다.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브루스 나우만의 초기 실험영상인 ‘립 싱크’(1969)는 음악에서처럼 예술가 자신의 목소리를 기본적인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사용한 작품이다. 발상과 방법이 독특하다. 작가 본인의 모습이 거꾸로 뒤집힌 채 ‘립싱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내뱉는 행위를 통해 입의 움직임과 실제 소리 사이의 물리적 시간 차, 언어적 의미와 실제 상황의 차이를 고조시키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위적인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는 우연히 발생하거나 의도되지 않은 소리가 모두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 앞에서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4분 33초’(1952)를 발표해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케이지가 1958년 작곡한 ‘아리아’의 비정형적인 악보가 이번 전시에 소개되고 있다. 악보는 일반적인 음표나 음악적 부호 대신 높낮이를 표시하는 선과 색 등의 시각적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해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작품을 존케이지재단과 협의해 재제작한 형태로 선보인다. 보이스퍼포먼스 작가 미카일 카리키스의 2채널 비디오 ‘프로미스 미’에서는 작가 자신이 등장해 정치적 맥락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지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한쪽 화면에서는 말을 하려고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아 애쓰는 모습이, 다른 화면에서는 입을 다물고자 하지만 다물어지지 않아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온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영상예술가 차학경(1951~1982)의 1975년 작품 ‘입에서 입으로’는 모음을 발음하는 여성의 입을 초근접 촬영한 것으로 목소리는 제스처로만 존재한다.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병치시킨 작품이다. 아티스트그룹 ‘슬라브스와 타타스’는 유라시아 지역 소수민족의 언어처럼 서구문화권에서 사용되지 않는 발음기호들을 토대로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고찰한다.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주디스 배리의 1999년 작품 ‘보이스 오프’는 양면에 동시상영되는 다른 이미지 속 일상의 소리와 다양한 목소리들(대화, 독백, 흥얼거림)의 혼재를 보여준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가 라그나 키아르탄슨의 6시간짜리 퍼포먼스 영상 ‘노래’는 작가의 여자 조카 3명이 알랜 긴스버그의 시 구절을 반복적인 멜로디로 부른다. 서사 구조가 배제된 연극적인 연출이 기묘한 효과를 낸다. 김가람 작가의 사운드 프로젝트 ‘4로즈’는 기계가 만들어 내는 목소리가 인터넷 댓글로 대변되는 사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작가는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늦장대응, 최순실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파문 등 파장을 일으킨 뉴스에 따라붙은 인터넷 댓글들을 가사로 만든 음원들을 소개한다. 이세옥은 독일 여성이 능숙한 한국어로 무대에서 낭독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안나의 공연’ 연작으로 언어와 목소리의 상관관계를 탐구하고 김온은 ‘기억과 기록 사이의 목소리 사용법’에서 카프카의 작품 ‘꿈’ 중 마침표 앞의 단어들을 발췌해 낭독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시각예술의 하위개념이나 부차적 요소로 다뤄져 온 목소리를 주인공으로 한 전시는 다소 낯선 감이 있지만 찬찬히 의미를 새겨 가며 볼 만하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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