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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순의 낮꿈꾸기] 칸트마저 피할 수 없었던 인식의 사각지대… 당신은 어떤가요

    [강남순의 낮꿈꾸기] 칸트마저 피할 수 없었던 인식의 사각지대… 당신은 어떤가요

    합리적 존재 범주에 여성은 포함 안시켜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 믿어 의심치 않아 한 종류의 차별에 민감성 높다 치더라도 다층적 차별 따른 인식 사각지대 불가피 지속적인 학습 과정 통해 인지 확장 필요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한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흑인 학생은 반인종차별을 위한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해 온 인권운동가이다. 백인 학생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위한 활동을 해 오던 사람이다. 발제 시간에 섹슈앨러티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발제 후 흑인 학생의 코멘트가 논쟁의 발단이다. 흑인 학생은 자신이 이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지난 한 학기 동안 ‘섹슈앨러티’와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들은 횟수가 평생 들은 것보다 더 많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발제자에게 ‘당신 같은 백인이 도대체 흑인들이 당해온 인종차별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라며, ‘성소수자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큰 문제인 양 과장하는 것을 듣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백인 학생이 ‘당신은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고 파괴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도대체 아는가?’라며 대응했다. 급기야 이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상대방의 인식 한계를 지적하였다. ●인식론적 사각지대에 대한 성찰 필요 누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격한 논쟁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백인 학생이 ‘더이상 이런 분위기를 참을 수 없다’며 일어서서 책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안 끝났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가방을 싸던 학생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나는 예정에 없던 즉흥 강의를 해야 했다. 첫째,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 그리고 둘째,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차별들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지닌 다층적 위험성에 관한 것이었다. 인종차별과 같은 한 종류의 차별구조를 잘 안다고 해서, 다른 종류의 차별에 대한 인지가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성 차별, 장애 차별, 계층 차별, 인종 차별, 나이 차별, 종교 차별, 외모 차별 등 현실세계에서 작동되고 있는 다양한 얼굴의 차별들은 각기 독특한 양상을 띠며 매우 복합적인 구조로 형성되고 유지된다.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표피적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반드시 학습해야만 한다. 다층적 차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는 지속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조금씩 형성되기 때문이다. 논쟁을 하던 두 학생은 격했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세미나가 끝난 후 서로 악수하며 미안하다는 사과를 나눔으로써 상황은 매듭지어졌다. 그런데 이 두 학생의 경우가 강의실에서만 있는 것인가. 아니다. 곳곳에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코스모폴리턴 사상을 사회정치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모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목적의 왕국’(Kingdom of Ends)을 설파한 철학자다. 칸트의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세계화 시대에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 정의, 환대, 권리를 상기시킴으로써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정치 철학적 토대를 놓은 중요한 공헌을 한다. 그런데 그 위대한 사상을 확산시킨 칸트도 인식의 사각지대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인간됨을 구성하는 ‘합리적 존재’의 범주에 여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인간 지리학(human geography)을 가르치면서 열대지방에서 태어난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의심치 않는다. 칸트가 중요한 철학적 공헌을 했다고 해서, 그가 지닌 여성 혐오 사상과 인종차별과 같은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들이 덮여서는 안 된다. 예술, 문학, 철학의 이름으로 또는 종교나 정치의 이름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와 경시를 정당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이러한 인식의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확장의 역사이기도 한 이유이다. ●차별·혐오에 관한 ‘인지 확장의 역사’에 희망 지난 10월 L 작가가 ‘단풍’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단풍은 ‘저 년’이라는 비하된 ‘여자’로 호명된다. 더 나아가 그 ‘저 년’은 남자를 유혹하는 ‘화냥기’를 지닌 여자로 재호명된다. ‘화냥기’ 있는 ‘저 년’을 ‘절대로 거들떠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성 비하는 물론 노골적인 자연 비하까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글이 전제하는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단풍을 바라보는 주체가 여자이기도 하다는 상식조차 전적으로 배제된 서사이다. 이 글에서 남성은 이 세계에서 ‘발화(speaking)의 주체’로서만이 아니라, ‘보기(seeing)의 주체’이며, ‘쓰기의 주체’로 자연스럽게 호명되고 각인된다. 남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남성중심적 발화, 보기, 그리고 쓰기 행위를 통해서, 단풍을 ‘화냥기’를 지닌 ‘저 년’이라고 한 표현이 담고 있는 여성 혐오와 자연 비하는 마치 숨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자연화된다. L 작가는 자신이 “여성을 비하할 의도나 남성 우월을 표출한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차별, 폭력, 혐오 행위는 행위주체의 ‘의도성’ 여부에 의해서 그 부당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어라고 해서 또는 은유라고 해서 여성, 인종, 장애, 나이, 성적 지향, 특정 종교 등 어떤 특정한 사회적 소수자 그룹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공적 세계에 발표되는 글들은, 그 장르가 무엇이든 그 글이 담은 가치를 확산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적 세계에서의 글과 말이란 이미 ‘정치적 행위’의 의미를 지닌다. L 작가의 비성찰적 변명과는 달리,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한 비판적 수정작업을 한다. 시집 ‘여수’로 2018년 20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가 된 서효인 시인은, ‘여수’를 출간하면서 과거에 썼던 시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이 아니라, ‘공장에 다니는 젊은이들’로, ‘우리 모두 아줌마가 되면’을 ‘우리 모두 학부모가 되면’으로 바꾸었다(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이 왜 ‘여성혐오적’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면, 젠더 문제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 ●다층적 혐오 넘어 모든 생명 존중하는 세계로 또한 여성 혐오적 표현이 있는 시들 몇 편은 시집에서 아예 빼기도 했다고 한다.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차별과 혐오의 면책 특권 영역이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어떠한 종류의 글이든 이러한 비판적인 수정 작업의 대상임을 이 시인은 보여준다. “그때는 몰랐던 여성 혐오가 지금은 보여”서 빼거나 수정하는 비판적 인식 확장 작업은 문학, 종교, 철학,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는 ‘여수’에서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로 ‘시인의 말’을 매듭짓는다. 인류의 역사는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지 확장의 역사’임을 서효인 시인의 수정 시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인류의 역사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는 남성이었다. 여성은 오직 ‘발화의 객체’(spoken object)로만 존재해 왔다.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이들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주변부인들을 향한 언사가 비하적이든 혐오적인 것이든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좋은’ 글이란 지금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담고 있는 글이다. 그 글이 전하는 새로운 세계가 지금보다 나은 세계라는 것은, 다층적 차별과 혐오, 불평등과 배제를 넘어서서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계, 모든 종류의 생명이 존중되는 세계, 그리고 나이, 계층, 생김새, 성별, 장애 여부, 피부색, 교육 배경, 또는 종교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고귀한 생명임을 의식 속에, 그리고 제도 속에 담아내는 세계이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지금, 이 영화] 사랑이 끝나도 이야기는 남는다

    [지금, 이 영화] 사랑이 끝나도 이야기는 남는다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의 원제는 ‘필름스타 돈 다이 인 리버풀’(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이다. ‘유명 영화배우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제목은 배우 겸 작가 피터 터너의 회고록에서 따왔다. 실제 그가 겪은 이야기로 이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제목을 좀 더 들여다보자. 우선 리버풀. 이곳은 피터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그와 함께 유명 영화배우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지역이다. 그 유명 영화배우는 누구일까. 바로 글로리아 그레이엄이다. 그녀의 전성기는 1950년대였다. 1950년에는 험프리 보가트와 같이 영화 ‘고독한 영혼’을 찍었고, 1952년에는 영화 ‘악당과 미녀’에 출연해 제25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은막의 스타였던 글로리아와 배우 지망생 피터가 처음 만난 해는 1979년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첫 대면은 1978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뒤에 이어지는 서사적 시간을 조밀하게 하려고 수정을 가했다.) 런던의 소박한 다세대주택에서 조우한 이들은 이웃에서 곧 연인이 되었다. 당시 글로리아가 56세, 피터가 27세였다. 둘의 나이 차이에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앞서 밝힌 대로 이것은 실화다.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 역시 젊은 시절 나이 차이가 이 정도 나는 여성과 애정을 나눴던 일화를 소설로 썼다. 이 작품에 나오는 구절을 아래에 옮긴다. 글로리아와 피터가 했던 연애와 그 후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전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대실패로 끝났다 해도, 흐지부지되었다 해도, 아예 시작도 못했다 해도, 처음부터 모두 마음속에만 있었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단 하나의 이야기였다.”(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중) 남들이 뭐라고 쑥덕거리든, 설령 지금은 우리가 헤어졌을지라도, 서로 사랑했던 단 하나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각자에게 진실한 것으로서 간직된다. (글로리아가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것과 상관없이) ‘유명 영화배우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의미를 나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납득할 수 있었다.이 작품에서 피터 역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이었던 제이미 벨이, 글로리아 역은 다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네트 베닝이 맡았다. 배우 연기를 자세히 평가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다만 그들이 가장 빛났다고 느꼈던 한 장면만은 언급하고 싶다. 객석이 빈 연극 무대에 두 사람이 올라가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주고받는 부분이다. 이때 피터와 글로리아는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밀어를 속삭인다. 그 순간 그들이 완벽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보였다. 정말이다.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언제요?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언제요?

    1990년대 초반 지어진 신도시의 대단위 아파트.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약사 세영은 온 동네 소식이 고여드는 약국에서 누구의 물음에도 적당한 수준의 온기로만 답하는 사람이다. 대학 강사를 그만둔 남편 무원은 아버지의 유산인 지방의 호텔을 경영하며 아파트의 재건축위원회 일을 맡아보고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가족은 올해도 10년째 아내의 생일을 무심히 넘겼다.겉으로라도 평온해 보였던 가정은 딸 도우의 중학교 학부모회 일을 맡아보던 세영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불참하면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다. 그 학폭위에서 가해 학생에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고, 피해 학생은 어느 날 화단 앞 시체로 발견된다. 정이현(46) 작가의 신작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현대문학)는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이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집필 계기를 묻는 질문에 2007년 출간된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단편 ‘어금니’를 떠올렸다. “아들이 낸 음주운전 사고를 해결하는 남편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한 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독백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이다’에서 그 ‘것이다’라는 어미가 오랫동안 저를 붙들었습니다.” ‘그 것’이 자식을 위해 방관자일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인지 혹은 그 자책을 넘어선 반성인지, 작가는 궁금했다. 전작 ‘상냥한 폭력의 시대’(2016)는 도시인들의 상냥한 얼굴 뒤에 숨겨진 섬뜩한 폭력을 다뤘다. ‘알지 못하는…’에도 예의 그 ‘상냥한 얼굴’은 등장하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비롯되는 폭력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나’를 여성으로 알고 있는 이들의 오해를 바로 잡으려 들지 않고(무원),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는 학폭위에 ‘다 아는 애들’이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세영) 식이다. 작가는 그 ‘하지 않음’ 이후의 시간이 궁금했다.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일 수 있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어쩌면 더 무겁고 깊은 책임감이 존재를 내리누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 않음’은 ‘나중에’라는 말로 변형돼 자기 합리화에 일조한다. 그 회피 이후의 시간까지 논하기에,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중편 분량이 적당해 보인다. 그는 “일반적 단편 3개 정도의 분량은 처음이었기에 페이스 조절이 쉽지 않았다”며 “문장의 긴장도가 높은 단편의 호흡으로 가는 게 맞는지, 상대적으로 서사의 완급 조절을 해야 하는 장편의 호흡으로 가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혹시 험한 꼴을 당할까 두려워 조문을 만류하는 세영에게, 딸 도우는 말한다. “나중에… 언제요? 엄마, 시간이 없어요.”(122쪽) 그때 하지 않으면 다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아이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일깨운다. “사실 밖에서 볼 때 세영 가족들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이 더는 타인의 것만이 아님을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예전처럼 회피하며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마냥 ‘남 일’은 없음을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꿈틀’ 움직였을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손 the guest’ 차원 다른 완성도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의 서막”

    ‘손 the guest’ 차원 다른 완성도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의 서막”

    ‘손 the guest’가 첫 방송부터 차원이 다른 완성도를 선보이며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의 서막을 열었다. OCN 수목 오리지널 ‘손 the guest’(연출 김홍선, 극본 권소라 서재원, 제작 스튜디오드래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의 결합을 통해 탄생한 독창적인 세계관 위에 흡인력을 극대화한 배우들의 열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영상미까지 더해진 완벽한 완성도로 첫 방송부터 시청자를 제대로 매료시켰다. 세습무 집안에서 영매의 숙명을 타고난 윤화평의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손’, 박일도 귀신에 대한 소문이 이어져 왔다. 귀신에 씌어 자신을 해하고 동해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박일도는 윤화평의 집안에도 비극을 불러왔다. 종진(한규원 분)에게서 윤화평에게로 손이 옮겨간 이후 어머니(공상아 분), 할머니(이영란 분)가 연달아 죽음을 맞았다. 구마를 위해 찾아온 양신부(안내상 분)와 최신부(윤종석 분)는 윤화평이 십자가에 반응하지 않자 빙의가 아닌 학대를 의심했다. 분노하는 아버지(유승목 분)를 뒤로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며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손’이 최신부에게 옮겨가며 긴장감을 증폭했다. “오늘 확신을 가졌어요. 제 믿음”이라며 집으로 돌아간 최신부는 부모님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 동생인 최윤까지 죽이려 했다. 연이은 불행에 자신을 죽이려 드는 아버지를 피해 최신부가 적어준 주소를 찾아 나선 윤화평은 그의 집 앞에서 기이한 힘을 느끼고 공포에 떨었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강길영의 엄마(박효주 분)는 범상치 않은 사건을 직감했다. 집으로 들어가 숨어있던 최윤을 극적으로 구했지만, 자신은 빙의된 최신부에 의해 죽음을 맞고 말았다. 허망하게 선 윤화평, 두려움에 몸을 떠는 최윤, 울부짖는 강길영을 지켜보던 최신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숨 막히는 서막을 열었다.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윤화평(김동욱 분)은 택시 운전을 하며 ‘손’을 찾아다녔다. 어릴 때처럼 죽은 사람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악령과 감응하는 능력이 있는 윤화평은 누구보다 먼저 저수지 살인사건 현장을 발견했다. 죽은 엄마처럼 형사가 된 강길영(정은채 분)도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살해 후 배수로로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물에 젖은 시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가득했다. 윤화평은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김영수(전배수 분)의 집을 찾아갔다. 김영수는 뇌 손상을 입고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윤화평은 ‘손’을 의심했다. 아내와 딸에게 연락처를 남긴 뒤 집 앞에서 잠복하던 윤화평 앞에 강길영이 나타났다. 의심스러운 행적에 강길영에게 조사를 받게 된 윤화평은 다시 악령과 감응했다. 김영수의 집으로 달려간 윤화평은 다시 강길영과 마주쳤다. 현장에서 발견된 아내는 물에 젖은 채 사망해 있었다. 사건 현장을 두고 대립하던 윤화평과 강길영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고, 멀쩡하게 서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김영수를 발견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운명적인 공조가 시작됐다. 뜨거운 기대 속에 방송된 ‘손 the guest’는 첫 회부터 차별화된 장르물의 새 지평을 확실히 선보이며 저력을 입증했다.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의 결합으로 탄생한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만의 독보적인 분위기가 심장을 조이는 몰입감으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촘촘한 서사에 힘을 더하는 압도적 영상, 독창적인 세계관의 구현까지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완성도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김동욱과 김재욱, 정은채의 연기도 명불허전이었다. 능청스럽고 자유롭지만 령과 감응하는 순간 돌변하는 김동욱의 강렬한 에너지가 극적인 다이내믹을 발휘했다. 김재욱은 찰나의 등장만으로도 차갑고 다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압도적 임팩트를 남겼다.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존재감을 발산한 정은채의 파격적인 변신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손’이 불러온 비극적 운명으로 얽힌 윤화평, 최윤(김재욱 분), 강길영이 그려나갈 아주 특별한 공조가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한편, 이날 방송된 ‘손 the guest’는 방송 전후 각종 SNS와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서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1회는 케이블, 위성, IPTV 통합된 유료플랫폼 가구 시청률이 평균 1.6%, 최고 1.9%를 기록, 타깃 시청층인 남녀 2549 시청률이 평균 1.5%, 최고 1.8%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제공/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무엇보다 30대 여성 시청층에서 평균 2.7%, 최고 3.2%로 케이블, 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 이후 방영된 OCN 오리지널 첫 방송 시청률 가운데 1위,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기대를 높였다.(역대 1위 ‘뱀파이어 검사2’) 또한 여자 2549 타깃 시청률 역시 평균 2.3%, 최고 2.7%로 케이블, 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손 the guest’는 첫 방송 전부터 동영상 조회수에서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터, 장르물을 선호하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시청층에서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차별화된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 드라마의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OCN 수목 오리지널 ‘손 the guest’ 2회는 오늘(13일) 밤 11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오늘의 작가상에 배수아 ‘뱀과 물’

    오늘의 작가상에 배수아 ‘뱀과 물’

    출판사 민음사가 주관하는 ‘2018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에 소설가 배수아(53)의 소설집 ‘뱀과 물’이 선정됐다. 낯선 시공간을 배경으로 어린아이들이 마주하는 ‘형체 없는 어둠’을 그려낸 단편 7편이 담겼다. 본심 심사에서 이 작품의 원시적이고도 현시적인 여성 서사가 2018년과 닿아 있는 절묘한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수상 소식에 작가는 “지금 내게서 흘러나오는 말은 충분히 멀지 못하고 충분히 없지 못하여,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부족한 목소리에게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과분하고 소중한 영광이라는 것도, 나는 잘 안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늘의 작가상은 독자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넷서점 독자들의 투표로 1차 후보작 20편, 최종 후보작 8편을 정하고 독자와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수상작을 결정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창근 작가 신작,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발간

    고창근 작가 신작,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발간

    어우동을 재해석한 고창근 작가의 신간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이 발간됐다. 작가는 역사서를 보면 어우동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고 말한다. 남성이자 권력자들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의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 다른 점이 많이 느껴진다.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왕실종친에게 시집을 갔으나 기생에게 빠진 남편의 모함으로 친정으로 쫓겨 온 어우동. 오히려 이 사건으로 어우동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잡는다. 어머니에게 유산을 물려받아 분가한 어우동은 남성중심의 유교사회였던 조선의 법도를 무시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성에 대해서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뭇 남성들의 성노리개가 아니라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남존여비 삼종지도라는 남녀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몸의 해방을 통해 삶의 해방을 추구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나 생명보다 왕권강화와 권력유지가 더 소중했던 성종은 어우동에게 사형을 내렸다. 작가는 “남성중심의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조선법도를 거부하고 주체적인 성을 향유했으나, 음행이라 하여 사형당했던 여인이 어우동”이라며 “여자의 욕망은 죄라 사랑하다 죽은 여인의 뜻을 이제야 기린다”고 말했다. 한편 고창근 작가의 신간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은 지난 8월 25일부터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평화의 대명사, 바이킹 후손들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평화의 대명사, 바이킹 후손들

    바다의 늑대/라스 브라운워스 지음/김홍옥 옮김/에코리브르/352쪽/1만 7000원바이킹이 어떤 이들인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내심 바이킹이 친숙하다. 우리는 만화 ‘아스테릭스’에서 싸우는 바이킹을 만나고, 영화와 게임에서 그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남자들을 마주친다. 어렸을 때 놀이동산에서 비명을 지르며 탔던 배 모양의 놀이기구 이름 또한 바이킹이다. 그 배의 이름이 ‘롱십’인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름들이 낯익은 것은 다 그러한 공기 같은 문화 때문이다. 토르, 오딘, 라그나로크, 블루투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이킹의 이미지는 피해자들이 만든 것이다. 바이킹 자신은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이킹이 야만인이라고만 못박을 수는 없다. 그들은 대부분 나무를 재료로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교회를 세웠기에 그들의 유산이 오랜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의 문자인 ‘룬’은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보다 주문이나 푯돌에 더 적합했다. 이 책은 파편화되고 대상화된 바이킹의 이미지를 온전히 세운다. 여성의 권리가 서구의 기독교 사회보다 훨씬 많았던 곳. 외모에 무척 신경을 쓰고 위생관리에 철저했던 사람들. 혹독한 처벌을 통해 건전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자세. 문화인이라면 당연히 음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믿음. 잔치를 베풀거나 손님 접대하는 일을 대단히 중요시하는 문화. 저자는 이 책에서 구체적인 사람들을 소개한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에리크 피도키왕, 하랄 하르드라다…. 그들이 단지 약탈자만이 아니라 서사시인, 영웅, 여행자였음을, 훌륭한 상인이자 탐험가였음을 말한다. 그들이 휩쓸고 간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는 달랐다. 그들은 새로운 창조의 밑바탕이 되는 ‘파괴’를 맡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살육과 약탈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해 바이킹의 역사는 입체적으로 다시 쓰인다. 저자는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바이킹의 특성으로 그들의 놀라운 적응력을 든다. 자신이 가닿은 지역의 전통을 흡수하고 새롭게 결합시키는 능력.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바이킹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느 면에서 그들이 정말이지 적응을 잘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들의 고향이었던 오늘날의 북유럽 국가들을 보라. 안정감, 질서, 침착한 시민들로 유명한 모범적인 국가들. 바이킹의 후손들은 이미 평화의 대명사가 돼 있다.
  • “우린 모두 상처 주는 사람이라 인정해야”

    “우린 모두 상처 주는 사람이라 인정해야”

    미숙한 10~20대 기억의 흔적 꺼내 “상대방을 순식간에 판단하고 단죄 서로에 대해 알아갈 기회 잃어버려”2016년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1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소설가 최은영(34)이 2년 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담담한 문장으로 인간 내면의 다양한 풍경을 펼쳐내는 작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강렬하게 데뷔했다. 젊은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평단과 독자들의 기대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도 작가는 지난 2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을 꾸준히 써 왔다. 작가가 보낸 치열한 시간의 기록인 신작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은 데뷔작에서 그가 보여 줬던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서영채 문학평론가)이 한층 두드러진다.소설집에 실린 7편의 작품에는 ‘작가의 말’에도 나오듯 우리가 지나온 “미성년의 시간이 스며 있다”. 열여덟 살에 처음 만나 서로에게 매혹된 어떤 동성 연인은 욕심과 몰이해 때문에 끝내 이별하고(그 여름),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어떤 자매는 서로를 미워하다 어른이 되면서 상대방의 외로움을 이해하게 된다(지나가는 밤). 눈부신 20대를 함께 보낸 세 친구는 서로의 감정을 미묘하게 외면하고(모래로 지은 집), 어린 시절 오빠의 학대 속에 자라는 옆집 친구를 구하려 애쓰다가 태연하게 이를 방관하는 어른들의 폭력성에 상처 입기도 한다(601, 602). 작가는 어설프고 미숙했던 10대와 20대 시절 사랑과 우정이 남긴 기억의 흔적을 가만히 불러낸다.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누구보다 잔인하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혔던 상실의 시기를 응시하는 건 나도 모르게 그들을 배반했던 순간을 끝내 잊지 않기 위함이다. 누군가에게 늘 유해했지만 스스로 무해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우린 모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며 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 못된 부분이 많다는 걸 더 인식하지 못하죠.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어떤 관계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끼면 그만큼 상대방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요.” 작가는 친구, 연인, 가족 등 인간과 인간 사이,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다양한 무늬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받고, ‘여자애’라서 가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등 거친 환경에 처한 여성들의 모습을 비추며 세상의 부당함을 꼬집는다. “결혼을 하고 며느리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차별을 경험하면서 타인의 상처에 더욱 민감하게 됐어요.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미묘한 관계 속에서 괴롭거든요. 우린 때로 상대방을 순식간에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서로에 대해 알아 갈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죠. 밋밋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모두 개성을 가진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항상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던 중 본격적으로 소설을 창작하는 기쁨을 누렸다. 첫 작품 발표 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작가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첫 소설집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넌 과대평가 받고 있어’,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니’와 같이 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제 마음속에서 커졌어요. 너무 힘들어서 지난해 가을부터 상담도 받았는데 다행히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이젠 적어도 ‘잘했어. 사람이 어떻게 매번 잘해. 못할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됐거든요. 앞으로도 ‘지금은 내가 비록 망작을 냈지만 다음엔 잘할 수 있을거야’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소설에 가닿을 수 있도록 열심히 쓰려고요. 소설 쓰는 거, 정말 재밌거든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무법변호사’ 종영, 최고 시청률 10.2% 기록...이 드라마가 남긴 것

    ‘무법변호사’ 종영, 최고 시청률 10.2% 기록...이 드라마가 남긴 것

    ‘무법변호사’가 시청자의 뜨거운 관심 속 종영을 맞았다. 1일 tvN 드라마 ‘무법변호사’가 마지막 방송을 했다. 봉상필(이준기 분)과 하재이(서예지 분)는 ‘절대 악’ 차문숙(이혜영 분)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렸고, 차문숙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석관동(최대훈 분) 죽음과 함께 차문숙에게 또 다시 배신당한 안오주(최민수 분)가 증인으로 나선 데 이어 하재이의 모친 노현주(백주희 분)까지 등장, 차문숙을 벼랑 끝으로 내몰며 흥미진진한 극 전개를 이어갔다. 하지만 안오주는 도주 끝에 자살했고, 차문숙은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구치소에 수감됐다. 봉상필-하재이는 천승범(박호산 분) 검사 제안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일하게 되는 모습으로 시청자의 아쉬움을 달래는 ‘사이다 엔딩’을 선사했다. ‘무법변호사’는 마지막회까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마지막회인 16회 시청률은 케이블, 위성, IPTV를 통합한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 평균 8.9%, 최고 10.2%를 기록했다. 지난 5월 12일, 첫 방송한 ‘무법변호사’는 16회 여정을 이어오는 동안 시청자 사랑을 꾸준히 받았다. 아쉬움 속에 종영을 맞은 ‘무법변호사’, 이 드라마가 남긴 것들을 정리해봤다. 1. 이준기-서예지-이혜영-최민수, 격이 다른 연기력! 국보급 배우 열전! ‘무법변호사’는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라 불리는 이준기-서예지-이혜영-최민수의 격이 다른 연기력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봉상필’ 역을 맡은 이준기는 ‘무법변호사’를 연기하기 위해 대역 없이 원테이크 리얼 액션 연기부터 한층 깊어진 감정 연기까지. 한계 없는 연기력으로 매회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또 전작인 OCN 드라마 ‘구해줘’와 180도 다른 걸크러쉬 꼴통변호사 ‘하재이’ 역을 맡은 서예지는 몸 사리지 않은 액션은 물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 능동적이고 강인한 여성 변호사의 진일보된 모습을 보여주며 극의 몰입을 높였다. 고결한 성녀의 미소 뒤 검은 민낯을 가진 ‘차문숙’ 역의 이혜영은 적폐 판사의 모습을 대사 한마디 필요 없는 서늘한 눈빛 연기만으로 표현,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관록의 연기를 선보였다. 최민수는 어시장 깡패 출신 ‘안오주’ 역을 맡아 내공 있는 액션 연기와 폭발하는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특히 캐릭터를 위해 직접 머리를 M자로 이발하고 눈썹을 들썩이는 등 작은 표정 변화만으로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연기 장인의 진면모를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최강 조연 배우들 활약이 ‘무법변호사’를 더욱 빛냈다. 염혜란-김병희-임기홍-서예화-최대훈-안내상-박호산-김광규-차정원 등 주연들의 연기를 뒷받침해주는 조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지금의 ‘무법변호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2. 탄탄한 필력x몰입도 甲 연출력→’기존 틀 박살’ 입체적 캐릭터 관계+서사구조! ‘무법변호사’는 회가 거듭될수록 반전의 반전을 더해 마지막까지 추리를 해야 하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만들었고 “제가 법정에 서는 한 죄 없는 사람이 법으로 살해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4회) 등 현실에 강렬한 일침을 날리는 촌철살인 명대사를 더해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였다. 특히 김진민 감독은 거악소탕 법정활극에 걸맞게 현란한 카체이싱씬 등 액션에 코미디, 로맨스를 가미해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봉상필과 기성시장 살인사건 진범이 치열하게 대치한 터널씬(3회), 봉상필과 차문숙이 디케 여신상과 故차병호 동상 옆에 나란히 선 선악 대비씬(11회) 등 영화 같은 명장면을 통해 연기와 대본이 시너지를 이룬 ‘무법변호사’만의 색깔을 탄생시켰다. 이와 함께 입체적인 캐릭터 관계가 주목 받았다. 최대웅(안내상 분)의 오른팔이었던 권만배(이현걸 분)가 차문숙의 오른팔이 되고 안오주의 충직한 부하 김비서(정영훈 분)가 차문숙의 사주를 받고 안오주를 살해하려 하는 등 때로는 아군처럼, 때로는 적군처럼 서로의 이해관계로 얽힌 것. 이에 서로의 목을 향해 칼날을 겨눴던 두 사람이 일시적 동맹을 맺거나 아군이 돌연 적군의 첩자가 되는 등 관계의 전세 역전이 시청자들에게 지루할 틈 없는 반전의 묘미를 줬다. 또 ‘작은 악’으로 ‘거악’을 물리친다는 독특한 서사구조도 흥미로웠다. 주인공이 극악무도한 악인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받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권선징악이 펼쳐지는 일반 드라마와 달리 ‘무법변호사’는 처음부터 정의의 심판과 악의 대립이라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에 안오주와 은밀하게 내통했던 우형만(이대연 분)과 차문숙의 오른팔 남순자(염혜란 분) 등을 이용해 안오주에 이어 차문숙을 무너트리려는 봉상필의 복수 행보가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사이다를 안겼다. 3. 유쾌 상쾌 통쾌한 전개! 現 시대상 투영한 고구마 현실에 날리는 핵사이다! ‘무법변호사’는 무전유죄 유전무죄, 전관예우, 부패 사슬 최정점에 앉아있는 두 얼굴의 법관 등 답답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기존 법정물과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청자들을 ‘무법변호사’ 늪에 빠지게 했다. 이를 위해 ‘기성’이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지금껏 법정물에서는 본 적 없는, 법과 무법(無法)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무법변호사’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특히 조폭 출신으로 정의 구현에 나선 봉상필이 법조 최고 명문가 출신이자 ‘악의 화신’ 차문숙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는 반격으로 부정부패와 비리, 탐욕, 위선으로 가득한 씁쓸한 현실에 사이다 같은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두 사람의 빅픽처와 극을 관통하는 숨겨진 진실은 시청자들의 추리력을 한껏 발동시켰고 “한국 법정물계에 또 다른 수작이 탄생했다”는 호평까지 이끌어냈다. 앞서 윤현호 작가가 “진정한 정의와 치열한 공분의 가치를 깨닫고 불의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마지막까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처럼 ‘무법변호사’는 극에서나마 현실에 한 명쯤은 있었으면 하는 대리만족 캐릭터를 통해 답답한 고구마 현실을 제대로 뒤집고 속 시원한 쾌감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한편 tvN ‘무법변호사’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은 1회부터 16회까지 제작진과 배우들을 달리게 한 원동력이었다”며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좋은 드라마로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하고자 불철주야 촬영에 몰두했고 4개월이라는 여정을 열심히 달려왔다. ‘무법변호사’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오래 기억될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tvN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철학자들은 왜 꿀벌에 빠졌나

    철학자들은 왜 꿀벌에 빠졌나

    꿀벌과 철학자/프랑수아 타부아요, 피에르 앙이 타부아요 지음/배영란 옮김/미래의창/352쪽/1만 6000원꿀벌은 어떤 곤충인가. 꽃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꿀을 채집하고 벌집에 저장하는 부지런한 곤충? ‘꿀벌과 철학자’ 저자인 타부아요 형제는 고개를 젓는다. 꿀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세계의 작동 원리를 가르쳤으며,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신의 섭리를 알려 주기도 했다. 그뿐인가. 네로와 나폴레옹 황제에게는 가장 충성스런 조언자였고, 니체에게는 인간의 위대함을 상기해 주는 지표였다. 이처럼 철학자들은 시대와 문화권을 막론하고 꿀벌을 통해 자연의 비밀과 인간의 근원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래서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사상가라면 반드시 벌통 하나쯤은 곁에 두고 있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였다”고.책은 서구 지성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사상가들의 치열한 논쟁을 불렀던 꿀벌과 사상가의 주장을 소개한다. 형 프랑수아 타부아요는 20년 경력 양봉업자, 동생 피에르 앙리 타부아요는 파리 소르본대 철학 교수다. 한 명은 사상가들의 철학을, 한 명은 벌의 생태를 분석하는 식으로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인다. 형제는 그리스 신화와 고대 철학자, 제국의 건설자부터 수도사와 혁명가, 자본주의자가 꿀벌의 생태를 통해 어떻게 세계를 바라봤는지 추적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 국가와 꿀벌 사회를 비교했다. 노예와 외국인, 자유민, 지도층이 함께 살았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꿀벌 사회는 비슷했다. 무리를 이끄는 지도층과 일벌, 수벌, 도둑벌 등 꿀벌 사회도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됐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정치의 영역으로 꿀벌을 끌어들였다. 서사시 ‘게오르기카’ 4권에서 ‘두 왕 사이의 불거진 불화’를 통해 두 편으로 나뉜 벌이 어떻게 서로 질서를 잡아가는지 상상력을 동원했다. 당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대치를 빗댄 것이다. 꿀벌은 신약성서에서 잠시 자취를 감춘다. 꿀벌은 인간과 신의 중재자 정도로 여겨졌는데, 그 자리를 예수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교부학을 통해 꿀벌은 다시 무대에 복귀한다. 신의 가르침을 보여 주는 ‘모범 곤충’으로서다. 교부들은 성서를 다루는 이들을 부지런한 꿀벌, 예수는 꿀벌 집단 내에서도 으뜸이 되는 ‘왕벌’(실제로는 여왕벌)로 비유했다. 특히 꿀벌은 처녀의 몸으로 수태한 성모 마리아를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당시만 해도 벌이 교미하는 방식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 꿀벌처럼 성적인 결합 없이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통용됐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대표적인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논리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우리를 영생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게 욕망과 성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에서 보자면 가당찮은 주장이었지만 “꿀벌도 교미하지 않는데, 인간이 왜 그런 것 하나 못 참느냐”는 주장도 당시엔 통했다.근대 정치혁명을 통해 정치의 주인이 바뀌면서 꿀벌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여러 사상가가 무정부주의, 여성주의, 자유주의를 꿀벌로 풀어냈다. 꿀벌이 가진 완벽한 질서와 인간 이성의 숭고한 자유를 외친 프루동, 꿀벌 사회가 모계 중심의 여권제에 기반을 둔 태초의 인간 사회를 보여 주는 가장 완벽한 사례라고 주장한 바흐오펜, 그리고 기존의 부지런한 꿀벌이라는 틀을 비틀어 “벌집의 풍요로움을 만들어낸 주된 원동력은 바로 욕심과 허영심”이라고 주장한 버나드 맨더빌 등이다. 꿀벌은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그나마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남성 우월주의 사상에서 ‘왕벌’로 불렸던 벌이 사실상 암컷인 여왕벌이었던 점, 그리고 여왕벌에게도 벌침이 존재했고 일벌이 다소 퇴행한 난소를 가진 암컷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소우주에 버금가는 육각형의 벌집은 수학이 풀어냈다. 여왕벌이 벌집 밖의 하늘 위로 날아올라 교미를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과학이 꿀벌의 진짜 모습을 찾아낸 셈이랄까. 형제는 “20년 전 철학과 꿀벌을 결합시킨 탐사 계획을 맨 처음 떠올렸을 때에는 그 규모나 기간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자료를 읽어 나가고 새로운 발견을 해 나갈수록 우리 형제는 서양 사상사의 주요 대목에서 늘 꿀벌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혔다. 20년에 걸친 꿀벌 탐사는 그야말로 ‘지적인 비행’이라 할 수 있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꿀벌과 함께 하는 이 여행에 동참해 보시길. 머리가 윙윙거리며 지끈거리더라도 나름 유익한 여행이 될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미술,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 담다

    미술,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 담다

    에게해의 터키블루빛 바다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그리스의 한 섬. 겉으론 평화로워보이지만 이곳은 늘 비극이 엄습한다. 언제 엔진이 멈출지 모를 허름한 고무보트에 운명을 맡긴 시리아 난민들의 행로이기 때문이다. 이미 뒤집힌 보트에 빽빽이 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은 한 줌의 희망이라도 거머쥘 수 있을까. 홍순명 작가가 회화 ‘바다 풍경-시리아 난민’에 묘사한 풍경이다. 그런데 작가는 난민들의 사투를 흰 물감으로 덮어버렸다. 역사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의 고통, 그 불편한 진실에 눈감는 사회와 개인들을 뜨끔하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난민, 여성 등 우리 시대의 소외된 이들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려는 예술의 노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8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에서 열리는 기획전 ‘보이스리스: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에서다. 전시장에는 주류의 질서에서 한참 밀려난 이들의 현실을 다뤄 온 국내외 작가 7명의 영상, 설치, 회화 작품 30여점이 나왔다. 전시를 기획한 송가현 큐레이터는 “제주도의 예멘 난민, 유럽의 시리아 난민 등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가 조명받고 있는 가운데 난민뿐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생각해 볼 기회를 갖기 위해 관련 작업에 몰두해 온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며 “각각의 작품 모두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켜켜이 쌓아 올린 하나의 이야기임을 주목해 달라”고 했다.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현대미술 축제 ‘카셀 도큐멘타 14’에서 거대한 파이프를 쌓은 작품으로 주목받은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 작가 히와 케이의 영상 작업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중동 각국에 퍼져 부유해야 하는 쿠르드족의 고통을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서사로 엮어 관람객들이 국경 너머 타인의 아픔에 교감하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2017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인 송상희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은 일견 아름답지만 불편한 역사의 궤적이 관통하는 이야기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기차역 외벽에 ‘한여름 밤의 꿈’ 발레 영상이 투사된다. 탄자니아는 과거 포르투갈, 독일,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런데 발레는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의 음악을 재료로 구성됐다. 기차역 역시 독일 식민지 때 세워진 것이다. 아픈 역사의 지층에 투사된 사랑 이야기가 기묘한 모순을 이룬다. 관람료 무료. 월요일 휴관. (02)2124-8928.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초짜들의 ‘생짜’ 연기… 충무로 주연들이 젊어졌다

    초짜들의 ‘생짜’ 연기… 충무로 주연들이 젊어졌다

    대중의 인지도도, 연기 이력도 없는 ‘생짜 신인’이 주연을 꿰찬다? 배우의 티켓파워와 입증된 연기력에 기대 온 충무로에서 이례적인 신인 캐스팅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20대 여배우 리스트가 또래 남자배우들에 비해 빈약한 가운데, 신선한 얼굴의 신예들이 작품의 의도, 캐릭터를 기대 이상으로 구현해내며 한국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벌써부터 올 연말 신인 여배우상을 놓고 경합이 치열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27일 개봉을 앞둔 박훈정 감독의 신작 ‘마녀’가 대표적이다. 최근 열린 ‘마녀’ 시사회에서 엔딩크레딧에 대중들에게 전혀 각인되지 않은 이름이 첫머리에 올랐다. 박 감독이 원톱 여주인공으로 발굴한 신예 김다미(23)다. 이번 작품은 ‘신세계’, ‘대호’ 등 거친 남성 서사를 선보였던 박 감독이 선보이는 여성 미스터리 액션물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지만 신인 배우에게 주연을 맡겼다는 점에서도 시선이 쏠렸다. 연출진은 4개월에 걸쳐 1500여명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한 끝에 김다미를 찾아냈다. ‘마녀’의 연영식 프로듀서는 “극 중 역할이 여고생인데다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인데 기존 여배우들은 이미 성인 연기를 많이 해 온 터라 관객들이 여고생으로 받아들이는 데 괴리감이 클 것 같았다. 김다미는 앳된 외모에 비밀을 간직한 듯한 분위기가 있어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고 했다. 김다미는 작품에서 순수함과 의뭉스러움, 여유만만함, 광기 등 다채로운 면모를 오가며 ‘인간 병기가 된 소녀’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냈다. ‘마녀’는 결말에서 속편을 예고하는데, 김다미 역시 이미 속편 출연 계약까지 마친 상태다.지난 5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도 새 히로인 전종서(24)가 화제를 모았다. 첫 영화 출연작으로 칸 레드카펫에 서는 극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전종서에 대해 “경험이 많고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라 하더라도 하기 어려운 장면이 영화(버닝)에서 최소한 서너 장면은 나오는데 (전종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 줬다”며 높은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개봉을 앞둔 작품에서도 신인 여배우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인 ‘악질경찰’(이정범 감독)은 이선균, 박해준뿐 아니라 전소니(27)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전소니는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를 쥐고 있는 여고생 장미나로 액션까지 소화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후문이다. 지난 4월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도 20대 신인 여배우 두 명을 기용했다. 어른들의 문제로 생긴 일상의 균열을 두 소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임지며 성장해 나간다는 이야기로 김혜준(23)과 박세진(22)이 여고생 역할을 맡았다. 신인 여배우를 과감히 주연급에 올린 작품들은 대부분 감독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마녀’와 ‘악질경찰’의 투자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코리아의 심영신 상무는 “요즘 감독들은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신인 배우들을 찾고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며 “위험 부담은 있지만 기성 배우와 달리 관객의 머릿속에 고정된 이미지가 없어 감독이 구상한 캐릭터, 연출 의도가 더 잘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이는 최근 몇 년간의 성공 사례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은교’(2012)의 김고은(27), ‘검은 사제들’(2015)의 박소담(27), ‘아가씨’(2016)의 김태리(28) 등 깜짝 등장한 신예들은 이제 필모그래피를 견고히 쌓아 가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영화홍보사 퍼스트룩의 강효미 대표는 “김고은, 박소담, 김태리의 데뷔작 캐스팅 사례는 당시에는 도전적인 시도였지만 실력으로 호평을 얻고 화제를 모으며 신인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이런 경험으로 위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연출자, 제작사, 투자배급사들이 새로운 얼굴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변화는 스타 배우에 기댄 기존의 흥행 공식이 잘 통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장르와 소재 다변화, 신선한 얼굴 수혈로 돌파구를 삼으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기존 영화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 여성상이 많이 생겨나면서 신인 캐스팅이 잦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서울신문 DB
  • 김희애 “나에 대한 이미지·선입견 넘어서고 싶었다”

    김희애 “나에 대한 이미지·선입견 넘어서고 싶었다”

    진땀 나는 손에서 끝까지 그러쥐어야 할 기억과 역사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문학, 영화 등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거듭 서사에 불러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오는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는 여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견고한 진심과 묵직한 정공법으로 왜 ‘그녀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인지 들려준다. 1992~1998년 6년간 23번이나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와 싸운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 재판’ 실화를 통해서다. ‘허스토리’ 포스터를 보면 위안부 할머니 역의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배우의 낯선 모습이 있다. 우아한 외모와 패션, 카리스마나 기품 있는 역할 등으로 익숙한 김희애(51)의 변신이다. 숏커트에 흰머리, 왕잠자리 안경, 몸매를 가리는 넉넉한 옷 등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지운 그를 동료 배우인 김해숙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주름을 가리긴커녕 더 그려 넣고 체중도 5㎏가량 불린 까닭은 영화 속 배역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 재판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으로 고군분투하는 여행사 사장 문정숙 역할을 맡았다. 작품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김희애라는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굉장히 욕심이 많았다. 기존의 김희애에게서 연상할 수 없었던 많은 요소들을 이번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희애에게도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덥석 받아들였다. “여배우라면 외모를 부각시켜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번 역할은 외형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자유롭고 당당한 한 인간으로, 할머니들의 든든한 조력자로, 배우로서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전혀 저같지 않게 보이고 싶었거든요. 제 안에 있는 저에 대한 선입견도 넘어서려 노력했죠.” 하지만 시작하고 보니 고투의 연속이었다. 삶 전체를 휘감은 고통 탓에 살아도 생지옥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독려하고 보듬으며 일본 정부와 싸워야 하는 데다, 부산이 배경이라 부산 사투리는 물론 일본어까지 완벽히 소화해야 했다. 그는 “막상 해보니 제 커리어에서 가장 큰 위기가 왔다. 아주 큰 산 하나 넘었다”고 했다. “일어와 부산 사투리 대사를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심해서 촬영 들어가기 석 달 전부터 억양을 다 표시해서 외웠어요. 촬영하다 감독님이 법정 신에서 일본어 대사를 바꾸면 원망까지 하고 악몽도 꾸고요(웃음). 원래 작품할 때 촬영이 끝나도 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마지막 법정 신을 마치고 분장실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다른 서사와는 의미가 달랐던 만큼 이번 역할은 제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죠.” 극 중 법정 장면에서 그는 재판부와 피고인 일본 정부에 할머니들의 증언을 격정적으로 통역하며 관객들의 감정이입과 긴장을 한껏 높인다. 이 역시 일일이 집에서 연습한 것을 녹음해 들어보고 다듬은 결과다. 관부 재판이라는 용어는 그 역시 낯설었다. “영화 찍기 전엔 저도 몰랐어요. 가까운 역사도 모르고 참 내가 주위를 너무 안 둘러보고 살았구나 부끄러웠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존엄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빠져들었어요.” “배우를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는 20대를 지나 어느덧 데뷔 36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연기를 하면 할수록 감사한 마음과 연기의 정석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새록새록 난다고 했다. “연극영화과를 나왔지만 배우 생활을 하느라 학교를 거의 못 다녀 연기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데 ‘밀회’ 때 함께 한 안판석 감독이 이런 문자를 한번 주셨어요. ‘항상 희애씨가 준비해 온 연기가 제가 생각해 온 것보다 더 좋았다’고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칭찬이었죠. 그러면서 안 감독이 조연출 한번 해 보라고 제의하셨어요(웃음). 작품을 남기고 싶거나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순수히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한번쯤은 해 보고 싶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여성 감독이 상업영화? 기회의 확장이죠”

    “여성 감독이 상업영화? 기회의 확장이죠”

    내몰린 여성들 다룬 ‘미씽’ 이후 프랜차이즈 영화 맡아 다들 갸웃 “다양한 영화 한다는 믿음 중요…현실 뿌리 둔 웃음에 또다른 쾌감”‘어벤져스’, ‘쥬라기 월드’, ‘미션 임파서블’ 등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시리즈로 기획되는 영화)는 늘 국내 극장가를 휩쓸지만 정작 우리 영화계에선 시리즈 영화 제작이 드물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장군의 아들’, ‘가문의 영광’, ‘조폭마누라’, ‘여고괴담’ 등의 시리즈 영화들이 명멸해 간 가운데 최근에는 지난 2월 3편을 내놓은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유일했다. 이런 가운데 2015년 개봉 당시 262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탐정: 더 비기닝’이 속편 ‘탐정: 리턴즈’를 선보여 프랜차이즈 영화로 입지를 굳힐지 관심을 모은다.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추리극에 능청스럽고 지질한 캐릭터에 완연히 녹아든 권상우와 성동일의 코미디 연기 호흡이 어우러진 ‘탐정’은 대중의 평균 취향에 맞춤한 상업영화다. 이 영화를 ‘미씽: 사라진 여자’를 연출한 이언희 감독이 맡아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관람해 화제를 모은 ‘미씽: 사라진 여자’(2016)는 사회에서 내몰린 여성들을 품고 이해하려는 진중한 통찰과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의 전작 ‘…ing’(2003), ‘어깨 너머의 연인’(2007) 역시 투톱 여성 주연을 내세워 ‘관계’를 탐구한 작품들이다. 때문에 그의 전작을 아는 이들이라면 이번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할 법하다. “저도 처음엔 제작사에서 제안을 받고 ‘저한테 왜 농담하시냐’, ‘저한테 왜 이러시냐’고 했어요(웃음). 1편이라는 분명한 비교 대상이 있는 상황이고 신인도 아니고 ‘미씽’도 많은 응원을 얻은 상황에서 속편을 한다는 건 본격적으로 비교되는 싸움에 뛰어드는 거잖아요. 하지만 목표가 생겼죠. 여성 감독에게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상업영화를 함으로써 여성 감독에게 붙는 꼬리표에서 자유로워지고 ‘이 감독은 다양한 영화를 할 수 있구나’란 믿음이 생기게 해야겠다고요.”오는 13일 개봉하는 ‘탐정: 리턴즈’는 1편에서 미제 사건을 해결한 콤비,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과 광역수사대 형사 노태수(성동일)가 탐정 사무소를 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경찰 2계급 특진도 마다하고 사무소를 개업한 노태수, 만화방을 닫으며 아내에게 갖은 구박을 받는 강대만은 손님이 없어 고전한다. 그러다 우연히 맡게 된 사건은 파헤칠수록 몸집과 무게를 불리며 유쾌한 코미디에 중심을 잡아 준다. 이 감독은 “전작 ‘미씽’이 불편하고 갈수록 긴장해서 등이 의자에서 떨어져 앞으로 나가는 얘기라면, ‘탐정’은 점점 등을 의자에 기대며 보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미씽’을 보고 제게 기대가 생기신 관객도 있겠지만 이번 영화는 정반대의 반향을 목표로 한 영화예요. 범인이 누구인지, 사건의 실체가 뭔지 스릴감에 치중하기보다는 현실에 뿌리를 댄 웃음과 고민에 주력하며 캐릭터와 한껏 친해지는 과정을 보여 주려 했죠.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가 나오면 관객들이 각각의 캐릭터에 다 친근함을 느끼고 그 안의 서사를 익혀 나가잖아요. 그와 마찬가지예요. ‘탐정’이라는 영화를 하나의 마을이라 보면 캐릭터와 친해질수록 속편이 나올 때마다 하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거죠.” 때문에 이 감독은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하고 감독의 철학을 드러내는 전작에서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탐정’ 세계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 “사람들이 함께 이해하고 울어 주고 공감해 주는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소진된 면이 있다면, 이번 영화는 관객들에게 거는 기대가 전혀 달라요. 관객들이 웃어 주고 즐거워해 주길 바라요. 2시간 동안 웃을 수 있다는 건 이야기 자체에 관객들이 끌려들어가는 거잖아요. 다소 불안하긴 하지만 웃음의 최종 선택자는 관객이기 때문에 감독으로서는 다른 종류의 쾌감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인 거죠.”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깨 너머의 연인’과 ‘미씽’ 사이 9년의 공백기가 눈에 띈다. 그는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여성 감독의 작품, 여성 주인공 영화가 아직도 극소수인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 투영된 공백기인 셈이다. “기회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죠. 전작들이 크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요. 공백기 때의 시간이 너무 아쉽고 앞으로의 시간도 아쉬워요. 이번 영화를 선택한 것도 기회의 폭을 넓히고 싶어서였어요. 하고 싶은 걸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할 수 있었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종교·인종·편견 넘어…영화, 여성을 말하다

    종교·인종·편견 넘어…영화, 여성을 말하다

    아랍·여성 영화제 등 특별 섹션 여혐·미투 등 다룬 작품 선보여 ‘허스토리’ ‘마녀’ ‘여중생A’ 등 여성의 서사 내세운 작품들 개봉 최근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이 사회와 개인의 인식을 바꿔 가는 가운데 영화제, 스크린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획과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올해 7회째를 맞은 아랍영화제(6월 1~6일)는 동시대 아랍 여성들의 목소리를 국내 관객들에게 전한다. 올해 마련한 특별섹션 ‘포커스 2018: 일어서다. 말하다, 외치다’를 통해서다. 특별 섹션에서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은폐됐던 성폭력 문제와 일상이 된 여성혐오를 다룬 영화들을 앞세운다. 칸국제영화제에 두 차례 초청됐던 튀니지 여성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이 내한해 자신의 영화 ‘튀니지의 샬라’(2014), ‘뷰티 앤 더 독스’(2017)를 선보이며 아랍 여성들의 변화와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들려준다. ‘뷰티 앤 더 독스’는 2012년 성폭력 피해 여성이 경찰에게 2차 가해를 당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폭력적인 관료제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예리하게 발가벗긴다. ‘튀니지의 샬라’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불경하다는 이유로 여성의 엉덩이를 면도날로 긋고 달아나는 여성 혐오 범죄자 ‘샬라’의 정체를 감독이 직접 좇는 모큐멘터리다. 박은진 아랍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국내에서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대한 공포, 남성 중심 사회의 폐해 등이 되풀이되는 만큼 아랍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에서 국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우리와 멀다고 생각했던, 공고하게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회라 생각했던 아랍까지, 전 세계에서 변화의 바람이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목도하며 우리의 현실을 포개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영화계에 역량 있는 여성 영화인들을 발굴하고 소외됐던 여성 영화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온 국제여성영화제도 올해 20돌을 맞았다. 오는 7일까지 서울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여성영화제의 섹션 ‘쟁점들’에선 미투 운동, 디지털 성폭력, 낙태 등 최근 뜨거운 현안 3가지를 키워드로 정해 이를 성찰할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놨다.1944년 소작농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레시 테일러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여섯 명의 흑인에게 강간을 당한 뒤 침묵을 요구하는 이들을 고발한 사건을 다룬 ‘레시 테일러의 #미투’, 미투 운동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의 의미로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여성 감독들의 단편 세 편(관찰과 기억, 혀, 모래놀이) 등이 소개된다. 이달 들어 스크린에서도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여성들의 서사’가 유독 강세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미투 운동과 맞물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뿐 아니라 칸영화제에서도 여성 서사들의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뚜렷했다”며 “이렇듯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우거나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여성 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과거 전향적인 시도들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최초로 배상 판결을 받아낸 관부재판(1992~1998년)을 다룬 ‘허스토리’, 여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로는 드물게 미스터리 액션을 펼치는 ‘마녀’, 여중생의 성장을 다룬 ‘여중생A’ 등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지난해 호평을 얻은 ‘아이 캔 스피크’가 위안부 문제를 중반 이후부터 꺼내고 남성 조력자(이제훈)의 도움을 받았다면, ‘허스토리’는 일본 정부와 오롯이 맞선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와 분투를 전면에 내세웠다.외화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백설공주의 모델이 될 만큼 아름다운 외모로 이름을 떨쳤지만 ‘주파수 도약 기술’을 발명해 오늘날 와이파이, 블루투스, 첨단군사기술을 있게 한 헤디 라마의 생을 다룬 ‘밤쉘’이 7일 개봉한다. 자택에 따로 작업실을 둘 만큼 발명에 몰두하며 여성을 외모로만 판단하려는 세상의 편견을 돌파하려 했던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해 다큐멘터리가 극영화처럼 느껴진다.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등 할리우드를 이끄는 여배우 8명을 포진시킨 케이퍼 무비 ‘오션스8’, 여성의 자존감 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낸 코미디 ‘아이 필 프리티’ 등도 여심 공략에 나선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명작’엔 그녀가~

    ‘명작’엔 그녀가~

    독보적인 연기로 등장하는 작품마다 ‘명작’으로 일구는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63).이야기와 캐릭터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는 그의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획전이 열린다.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나인이 다음달 5일부터 26일까지 진행하는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다. 미카엘 하네케, 장 뤼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작업한 위페르는 출연작만 해도 100편을 훌쩍 넘는다. 장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새로운 서사를 빚어온 그는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의 대표작 네 편이 상영된다. ‘미세스 하이드’(5일)에선 학생들에게 투명인간 취급받던 선생에서 미세스 하이드로 변모하며 극단의 연기를 선보인다. 고전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은 블랙 코미디다. 이어 비뚤어진 욕망과 사랑을 파격적인 화법으로 펼친 ‘피아니스트’(12일), 안정적인 일상에 생긴 균열로 변화를 겪는 중년 여성의 흔들림을 섬세하게 그린 ‘다가오는 것들’(19일),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들여다보는 ‘해피 엔드’(26일) 등이 차례로 선보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서산개척단’ 이조훈 감독 “슬프고 충격적인 근현대사”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서산개척단’ 이조훈 감독 “슬프고 충격적인 근현대사”

    “당시에는 방송 쪽도 영화 쪽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역시 후환이 두려웠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을 연출한 이조훈(45) 감독은 2013년 당시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감독이 작품을 시작한 시기는 박근혜 정부 초기였다.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된 정권 초기에, 그녀의 아버지를 고발하는 영화에 누가 쉽게 손을 잡아주겠는가. 하지만 오랜 시간 갖은 풍파에 부딪히면서도 이 감독은 기어이 영화를 완성해냈다. 5년 만이다. 영화 ‘서산개척단’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부터 국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한 간척사업에 강제 동원된 대한청소년개척단, 일명 ‘서산개척단’의 실체를 5년간 심층 취재한 작품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을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2013년 9월, ‘서산개척단’에 관한 이 감독의 취재가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박정희 정권의 문제점을 다루다 보니 어려움이 컸다. 이에 대해 그는 “방송에서도 다룰 수 없는 상황이어서 영화로 만들게 됐다”며 “하지만 제작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4년 동안 개인적으로 일해 번 돈으로 취재했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면서 작년 하반기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며 쉽지 않았던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1961년, ‘사회명랑화’ 사업으로 진행된 ‘대한청소년개척단(서산개척단)’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제노역과 강제결혼 등으로 대한민국 청춘 수백 명의 삶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당시 정부는 거리의 부랑아 깡패, 윤락여성 등에게 갱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의 홍보와 달리 실제 개척 단원은 부랑아와 성매매 여성들만이 아니었다. 단지 늦게 다녔다는 이유로, 혼자 있었다는 이유로 무고한 일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전국 각지에서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은 1700여명이었다. 끌려온 이들은 이후 허기와 노역, 폭력을 견디며 힘겨운 하루를 살아야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탈출하는 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를 막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강제동원한 이들을 강제로 합동 결혼시키는 ‘비인격적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유린이 발생했다. 젊은이들은 강제노역과 강제결혼 등 견디다 못한 상황에 탈출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하수인들을 시켜서 그들을 잡아다가 구타하고 살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은 개척단원들의 수가 약 200명 정도”라며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제작 초기 자신들이 겪은 참혹한 과거에 대해 피해자들은 언급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이 감독의 끈질긴 노력과 설득이 그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미투 운동이나 갑질 고발과 같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뜻에서 어려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것처럼, 그 대열에 동참하는 의미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서산개척단’은 피해자들의 과거에 집중했다. 내레이션을 배제했고,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이야기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차곡차곡 받아서 전달하고자 했다”는 이 감독의 목표처럼, 그는 내내 피해자들에게 차분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끌어내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 감독이 작품 안으로 뛰어들어 인터뷰를 던지는 방식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다큐멘터리 작법)적 서사를 완성한다. 이 감독에게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그는 한 중간관리자와의 인터뷰를 꼽았다. 중간관리자였던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에게 이 감독이 ‘개척단 활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자 “그분이 ‘없다’라고 답한 뒤,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셨다. ‘왜 눈물을 흘리느냐’고 물어봤더니, ‘죽은 친구들이 생각난다’고 이야기했다”며 그들의 깊은 상처와 오롯이 마주하게 되었던 순간을 설명했다.지난 3월 3일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인간재생공장의 비극 -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아십니까?’ 편 방영에서는 서산개척단의 실체가 소개됐다. 방송 후 시민들은 피해자들이 겪은 참혹한 삶에 대한 보상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진행하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서산개척단’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에 대해 이 감독은 “방송에서 다 전하지 못한 영화만의 특별함이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보시면, 그들의 마음에 동참하시게 되리라 생각한다”며 피해자들의 고된 여정에 동행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이조훈 감독의 전작은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딜’(2014년)이다. 영국, 칠레, 일본 등 세계 7개국 탐방을 통해, 공공재 민영화의 폐해를 취재해 국내 공공부문 민영화 시도를 깊이 있게 진단해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이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서산개척단’ 역시 밀도 있는 자료조사와 취재를 기반으로 완성됐다.그는 “‘서산개척단’은 슬프고 충격적인 근현대사의 사건을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라며 “아직까지 이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너무 많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목도의 필요성이 있는 작품인 만큼, 영화를 보고 이들의 슬픈 역사를 치유하고,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동참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은 5월 말 정식 개봉에 앞서, 오는 3일 개막하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주 베트남 대사에 임명된 김도현 삼성 임원 알고보니...

    주 베트남 대사에 임명된 김도현 삼성 임원 알고보니...

    외교부는 김도현(52) 삼성전자 임원을 주베트남 대사에 임명하는 등 올해 춘계 공관장 인사를 단행했다고 29일 밝혔다.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에는 백지아 외교안보연구소장이 임명됐다. 다자통상외교 최전선인 제네바대표부에 여성이 공관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사에서 주목되는 김 신임 주베트남 대사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부를 발칵 뒤집었던 대통령 폄하 발언 투서사건의 장본인이다. 1993년 제27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김 신임대사는 서기관 시절이던 2004년 조현동(외시 19기) 당시 북미3과장 등 외교부 핵심 부서인 북미국 일부 인사들이 회식 도중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 외교 안보 라인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단 사실을 청와대에 투서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결과, 당시 외교부 회식에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면 노무현 정권은 다 끝난다. 외교부는 한나라당의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일로 발언 당사자인 조 과장은 보직해임됐다. 조 과장을 두둔했던 윤영관 당시 외교부 장관과 위성락 북미국장(외시 13기·현 서울대 객원교수)도 이후 끝내 경질됐다. 하지만 조 전 과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선임행정관, 북핵기획단장을 지내는 등 중용됐고 박근혜 정권에서도 공공외교대사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되며 승승장구했다. 반면 김 신임 대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친노 인사’로 분류돼 한직을 전전하다 2012년 끝내 외교부를 떠났고 이듬해 삼성으로 이직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스마트폰기기) 구주·CIS 수출그룹 담당 임원을 하다 이번에 대사로 발탁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과거 외교부 근무 중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공관에서 근무해 외교관으로서의 경험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몇 년 전 외교부에서 민간 기업으로 옮긴 뒤 민간분야에서 쌓은 상당한 전문성이 외교 공관장으로서 유용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신임대사 임명을 두고 이해상충 시비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이 베트남에서 대규모 휴대전화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이밖에 주이란대사에는 유정현 전 외교부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주 브라질 대사에 김찬우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에 조병욱 전 주미공사, 주 그리스 대사에 임수석 전 외교부 유럽국장, 주 노르웨이 대사에 남영숙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주 몽골 대사에 정재남 주 우한총영사 등이 임명됐다. 또 주 알제리 대사에 이은용 전 외교부 문화외교국장, 주 카타르 대사에 김창모 행정안전부 국제행정협력관, 주 쿠웨이트 대사에 홍영기 전 외교부 국제경제국장, 주 싱가포르 대사에 안영집 주 그리스 대사 등이 임명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의 과도 정부 때부터 지난달초까지 북미국장을 지낸 조구래 전 국장은 튀니지 대사에 임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벤저스’에 질렸다면...주목할 만한 작은 영화

    ‘어벤저스’에 질렸다면...주목할 만한 작은 영화

    대부분의 영화들이 ‘어벤저스’의 집중포화를 피해 갔지만 돌올한 개성과 재미로 무장하고 틈새를 파고 드는 신작도 있다. 25일 나란히 개봉한 인도 영화 ‘당갈’과 홍상수 감독의 신작 ‘클레어의 카메라’다.?다 아는데 왜 재미있지??‘당갈’ 인도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여자 레슬링 선수의 실화를 다룬 ‘당갈’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대개 그렇듯 플롯과 결말이 뻔히 예상된다. 그럼에도 감동과 쾌감을 보장한다. 인도 영화에 대한 편견이나 긴 러닝타임(161분)의 압박도 견뎌낼 만큼. 여성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극심한 인도 사회에서 “딸들에게 미래와 인생을 쥐여 주려고 온 세상과 싸우는” 아버지의 우직한 분투는 영화를 이끄는 동력이다. 땀내가 훅 끼치듯 실감 나는 경기 장면은 몰입도와 긴장을 높이고 상황에 맞게 짠 재치 있는 주제가 가사와 대사들은 수시로 웃음의 잽을 날린다.?동어반복이지만 우연의 서사, 말맛 돋보이는 ‘클레어의 카메라’ 우유부단하고 지질한 남자, 속물근성과 위선을 드러내는 술자리 대화?. 지난해 제70회 칸국제영화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 초청작이었던 홍상수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는 이처럼 ‘홍상수표 영화’의 전형들을 재연한다. 돋보이는 건 투톱으로 영화를 이끄는 김민희(만희)와 이자벨 위페르(클레어)의 호흡이다.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자연스러운 교감을 빚어내며 불완전한 관계와 인간의 민낯을 벗겨낸다. 프랑스 칸으로 출장을 간 배급사 직원 만희는 회사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양혜(장미희)에게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이유는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로 보이는 감독 소완수(정진영), 만희와 각각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는 클레어가 찍은 사진으로 퍼즐이 맞춰지듯 드러난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아는 관객들의 시선으로 보면 “내가 힘이 있겠니. 그만두라면 그만두는 거지”란 만희의 대사가 대중에 대한 김민희의 항변으로도 들린다. 만희 후배로 나오는 여감독이 내뱉는 “살면서 솔직해야 영화도 솔직하다”는 말에는 홍상수 감독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영화 바깥의 사정을 작품 안으로 끌어오면 풀썩 웃음이 나는 순간들이 잦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두번째 여전사 졸리를 지울까

    두번째 여전사 졸리를 지울까

    영화 ‘툼 레이더’는 곧장 앤젤리나 졸리의 이미지를 소환하는 영화다. 1990년대 만들어져 인기를 끈 동명의 게임을 2001, 2003년 두 편의 영화로 옮긴 ‘툼 레이더’는 그만큼 졸리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고혹적인 매력을 동력으로 삼아 영화 팬들에게 소구했다. 이 때문에 ‘2대 여전사’는 졸리의 존재감을 지우면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로 극 전체를 이끌어 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된다. 2016년 ‘대니시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며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여배우로 떠오른 알리샤 비칸데르가 그 역할을 맡았다. 8일 첫선을 보인 영화 ‘툼 레이더’에서다.17년 만에 귀환한 ‘2대 라라 크로프트’ 비칸데르는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을까. 일단 게임과 전작 영화 팬들의 기대감을 반영하듯 영화에 대한 관심은 개봉 첫날부터 뜨겁다. ‘툼 레이더’는 이날 개봉과 동시에 17.2%의 예매율을 기록하며 ‘리틀포레스트’(14.8%), ‘궁합’(12.2%)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다. 이번 작품은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가 어떻게 세계를 구해 내는 모험에 첫발을 내딛게 됐는지, 그 성장담을 담은 프리퀄(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이다. 이 때문에 그 기원을 추적해 들어가는 드라마가 더 강해졌고 (극에서 설정된) 여주인공의 나이대나 품고 있는 성정,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 전작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여자 인디아나 존스’라는 별칭답게 과거 작품과 마찬가지로 액션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21살 퀵배달 기사라는 설정답게 시작은 자전거 추격전으로 활발하고 밝은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후 수중 액션, 폭포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전투기 잔해에서 벌이는 사투 등 긴장감을 한껏 조이는 액션 장면이 쏟아진다. 하지만 졸리의 라라 크로프트가 섹시한 외모와 더불어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호쾌한 액션을 빚어냈다면 아직 여전사로 완성되기 전인 비칸데르의 라라 크로프트는 고뇌하는 장면이 많아서인지 악당을 물리칠 때도 왠지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등장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졸리와 달리 발레리나 출신인 비칸데르는 가녀리고 아름다운 몸 선과 움직임이 돋보이고 지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탄탄한 움직임을 위해 ‘원더우먼’의 갤 가돗의 몸을 만들었던 트레이너가 동원돼 5㎏의 근육을 증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칸데르는 소녀처럼 앳된 얼굴, 두려움을 품은 눈빛, 결단의 순간 주저하는 모습 등 인간적인 면모를 앞세우며 관객과의 감정적 교류를 택한 듯하다. 이번 영화는 라라 크로프트가 7년 전 실종된 아버지가 남긴 퍼즐 박스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면서 전개된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나 물건이 모험의 시작이 된다는 점, 아버지가 실패한 임무가 딸에게 주어진다는 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나쁜 세력에 악용될 가능성을 막아 낸다는 점 등 큰 얼개는 전작과 비슷하다. 아버지와의 유대는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를 만든 원천이자 극을 이끌어 가는 힘이기도 하지만 도식적인 느낌이 적지 않다. 아버지가 모험을 시작하게 된 원인으로 나오는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이를 초래한 초자연적 힘과의 서사 연결 고리도 헐겁다. 관건은 처음으로 여성 히어로 블록버스터를 이끄는 주인공이 된 비칸데르의 섬세한 역투에 관객들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지다. 12세 이상 관람가. 117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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