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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고 보면 랭보도 주식 부자,,, 여성도 상업·예술 다 잡아야

    알고 보면 랭보도 주식 부자,,, 여성도 상업·예술 다 잡아야

    2016년 출간된 이래 64쇄, 7만 3000부가 팔린 책 ‘입트페’(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 작가는 여성주의 저서와 역서를 전방위적으로 출간하는 젊은 여성주의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속 고립된 여성들과 연대하는 프로젝트로 이메일 서비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시작했다. ‘고사리박사’는 필명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웹툰 작가다. 2018년부터 신생 독립 플랫폼 딜리헙에 연재한 웹툰 ‘극락왕생’은 이듬해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연재 10개월 만에 매출 2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불교 보살의 자비 아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를 다시 살게 된 귀신 박자언의 이야기에는 딱 한 명의 협시 외에 부처와 보살 모두 여성이다. 여성주의 창작자이자 친구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을 최근 서울 마포구 이 작가의 자택(이자 사무실)에서 만났다.-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년에 썼던 이메일 서비스와 석사 논문을 섞어 새 책으로 만들려고 해요. 지난달에 냈어야 하는데 잘 안 돼 괴로운 상태고요. 올 초 석사 학위(문화인류학)를 받았는데, 프랑스로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 중이에요. 고사리박사 이달 말, 새달 초에 출간하는 문학동네 여성 작가 테마단편집에 실릴 원고 작업을 했고요. 5월 부처님오신날이 ‘극락왕생’의 크리스마스거든요. 의류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등 여러 이벤트를 준비 중이고요. ‘극락왕생’ 영상화도 결정돼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문체부 장관상 받은 ‘극락왕생’ 2019년, 함께 아는 지인을 통해, 말하자면 ‘소개팅’처럼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 작가가 지난달 만든 통번역 에이전시 ‘핫팟’은 ‘극락왕생’의 번역 작업을 전담하고 있다. 영어부터 시작해 일어, 중국어, 불어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고사리박사님은 ‘극락왕생’에서 현재 시점으로 29살이 됐을 여고생들 이야기를 그렸고, 이 작가님은 꾸준히 ‘2030’ 여성 목소리를 모으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여성들 이야기를 쓰고 다룰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요. 이민경 저는 의외로 ‘형식’이요. ‘저자로서의 인류학자’(클리퍼드 기어츠 저)라는 책을 봤는데 거기에 ‘작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고, 저자가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한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제가 해 왔던 작업이 일종의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이냐’를 고민하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트페’는 생각보다 형식이 되게 중요했어요. 온라인상에서 관련 발화가 많았지만 파급력이 없었어요. 매뉴얼, 회화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유럽 낙태 여행’은 여행기,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은 연극 또는 드라마,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편지글로 만들었고요. 고사리박사 저는 보편적인 경험을 디테일하게 구현하려고 해요. 만화라는 게 120%를 담아도 독자들이 80%밖에 못 느끼잖아요. 포맷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최대한 사실의 일이라고, 우리 함께 경험한 것이라고 느끼게 하려고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요. 동시에 주변 여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요. ‘극락왕생’에서는 작품에 나오는 (여자)고등학교 친구들끼리의 관계를 구현하는 일에 특히 공을 들였어요. 한국인의 학창 시절이 힘들잖아요. 자유롭지도 않고, 통제된 환경에서 스트레스가 쌓여요. 거기서 나를 견디게 해 준 게 동성 친구들이구요. 정상성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에’ 이성과 결혼하기 이전까지 내가 가장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었던 건 그 시절의 (여자) 단짝 친구란 말이죠. 우리들만으로, 여자들만으로 충분했던 그 시절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이야기에 담아 내기 위해 작품 초반에는 학창 시절의 재현에 초점을 많이 맞췄어요.●여성 서사의 계보 찾고 또 남겨야 -두 분은 공통적으로 여성 서사의 계보를 찾고, 기록하는 일에도 열심이에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왜 중요한가요. 이민경 저도 몰랐는데 ‘계보’가 계속된 제 테마네요. ‘유럽 낙태 여행’(2018)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해 싸워 온 유럽 활동가들에 관한 인터뷰집) 횡적인 역사를 조명하면서 다른 나라에도 이런 일이 존재했다고 얘기했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은 역사에 걸쳐 익명의 존재였다”고 말하잖아요.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에 대한 역사가 없던 게 아니고 지워졌다는 것이 피지배계급의 속성이에요. 남성들은 자신이 이룬 게 없더라도 계보 안에 들어가 있음으로 얻게 되는 안정감이 있어요. 앞으로 이렇게 살게 되리라는 비전 같은 거죠. 말하자면 이성애 규범적 생애 서사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도 가정이 유지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여성은 황당한 거예요. ‘왜 살고 있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생물학적 몸이 존속하는 것과 별개로 사회적 삶이 유지 가능한가에 대한 불안이 항상 있어요. 생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책들을 썼죠. 고사리박사 저도 계보가 있어야 낙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천은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신념은 추상적이어야 한다”고 많이 얘기하고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들은 매일 구체적으로 힘들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도망쳐야 하는 우주적 낙관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신화니까. 이민경 여성들끼리 상호의존하던 역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그걸 보여 주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임파워링’(Empowering)을 항상 견지해 왔는데요.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화하는 게 아니고 낙관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보니까 ‘계보’로 돌아가는 거 같아요. “괜찮아, 원래 이런 거야” 하는 식의. 고사리박사 불교에서는 과거·현재·미래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선형적이지도 않고 유기적으로 동시 존재한다고 묘사하거든요.●돈 모르는 작가가 멋지다는 착각 버려야 창작자인 두 사람의 재능이 교차하는 지점 또 하나는 사업가로서의 면모다. 이들은 초창기부터 판로 개척에 뛰어들었다. 이 작가는 출판사 봄알람을 만들어 텀블벅 펀딩을 통해 책을 다수 출간했다. 고사리박사는 ‘극락왕생’을 신생 독립 플랫폼인 딜리헙에 연재하며 회당 3300원이라는 ‘고가 마케팅’을 썼다. 지금은 웹툰 스튜디오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두 분 다 주체적으로 자기 작품의 판로를 만들어 왔어요. 이민경 작가를 꿈꾸는 여성들이 세상에 지분을 많이 못 갖잖아요. 여성들 사이에서 작가가 되기 위한 바람직한 태도로 글밖에 모르는, 달리 말해 돈을 모르는 사람이 멋진 작가라는 인식이 있어요. 반면 ‘잘 팔리는’ 남성 작가들은 세상의 물질적 토대와 깊이 연관돼 있고, 그걸 알고 있어요. 예를 들면 출판사에 돈을 벌어다 줬을 때 자기 지분을 요구한다거나, 임프린트를 만드는 식이죠. 여자 작가들은 자기 책이 잘 팔렸을 때 감사하다는 태도를 보이는데,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과 물질적 토대를 모르는 것은 다르죠. 고사리박사 중요한 지적이에요. 요즘은 지식재산(IP) 생산자들이 가장 경쟁력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작가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IP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해요. 이민경 그걸 알고 있으면 비여성적으로 보이거든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기성 출판사 눈치를 안 보겠다는 반항의 몸짓이었지만, 지금은 제가 책임지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업체 만드는 일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돼요. 제가 불문과였는데 랭보(1854~1891)가 유명한 시인이면서 주식 부자였더라고요. 그의 예술성과 상업성, 세속성은 같이 가거든요. 말하자면 남성은 자기 부피를 가진 사람이고, 밥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돈 버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예술을 해요. 여성들은 거꾸로 남성 작가들이 살림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돈의 흐름에 대해서는 차단이 돼 있어요.●여성 중심 콘텐츠가 안전할 수 있는 환경 -‘극락왕생’의 회당 3300원이라는 구독료는 얼핏 듣기에 비싸게 느껴지는데요. 고사리박사 일단 1만원을 결제해서 세 편을 보면 100원이 남잖아요. ‘100원 아까우니까 또 보겠지’ 하고 (가격을) 정했어요. 직관적으로 3300원은 비싼 듯하지만 못 낼 돈은 아니거든요. 보통 웹툰 한 편이 60~70컷 정도 되는데 ‘극락왕생’은 페이지 기준 80~100페이지니까 분량이 길기도 하고요. 또 진입장벽은 무조건 낮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여성 중심의 콘텐츠는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수가 있어요. 요즘 같은 때는 댓글도 웹툰의 주요 콘텐츠 중 하나거든요. 실제로 극락왕생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개인의 생활, 그들 삶의 기록이 내밀하게 펼쳐지는 작품이고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편안하게 꺼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여성들끼리 또 다른 소통의 장을 보여 준 게 ‘극락왕생’ 세계관의 확장이에요. 이민경 저도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이후에 독자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네이버 카페를 만드는 식의 확장이 일어났는데 이게 진짜 콘텐츠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고사리박사 지금 와서 보면 ‘입트페’로 귀결되는 게 결국 여자들 스스로 발화하게 만들어야 해요. 내 작품을 읽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으로 자기 걸 떠올리게 되면 좋죠. 이게 완전히 없는 걸 지어내서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알고 있고 당신도 아마 충분히 알고 있을 그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대화는 내내 두 사람이 공유하는 모순되는 듯 확고한 가치로 귀결됐다. 서로가 “내가 맛이 가도 알려 줄 것 같은 동료”라는 믿음. “‘가부장제 타파하자’는 말만 반복하면 아무도 안 본다. 그래서 ‘잘해야’ 한다”는 창작자로서의 신념, 여성주의자임이 그 자체로 브랜드파워가 되는 세상이라는 경험적 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한 작품은 만들면 안 된다”는 엄격함까지. 둘은 지난여름 강릉의 바다에서 거짓말처럼 큰 새를 봤고, ‘우리가 함께 봤다’는 믿음이 여성주의 정치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극락왕생’ 속 자언이 말하는 ‘윙윙인간’(‘윈윈’하는 인간)이라는 실체가, 여기 있었다. 젠더연구소 기자 seulgi@seoul.co.kr
  • 賞이 罰로 되돌아왔다… ‘별점테러’ 당한 그녀들

    賞이 罰로 되돌아왔다… ‘별점테러’ 당한 그녀들

    올 수상자 7명 여성… 차별·위선 다뤄‘한남’ 표현에 “남성 폄하 했다” 반발인터넷 평점 1점 속출… 편협성 비난일각 “문학 다양성 넓어져… 포용을”여성 작가 7명의 소설을 담아 출간한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별점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당선작들이 여성주의에 치우쳤고 한 작품은 “남성 혐오” 표현인 ‘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지난 1월 말 2021년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국내 대표 문학상 중 하나인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하 작가의 중단편 소설 중 7편을 선정한다. 올해 수상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수상자 전원이 여성인 것은 2014년 제5회 이후 두 번째다. 여성이 겪는 차별, 지식인의 위선, 성소수자, 장애 등 다양한 인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선정됐다. 그런데 지난 7일 작품집이 출간되자마자 알라딘, 교보문고 등 주요 온라인 도서판매 사이트에서 이른바 ‘별점 테러’가 시작됐다. 별 5개 중 가장 적은 1개만 주는 식이다. 알라딘에는 15일 기준 99명이 리뷰를 남겼는데 이 중 별 1개 비중이 24.2%로 별 5개(68.7%)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구매자를 보면 20대 여성이 31.5%, 30대 여성 24.3%, 40대 여성 13.9% 순으로 여성 독자가 많았다. 남성 구매율은 30대(7.4%), 40대(5.7%), 20대(4.9%) 순이었다. 별 1개를 준 독자들은 여성 중심 시각의 작품들이 선정된 데 불만을 나타냈다. 한 독자는 “지나치게 여성주의에 힘을 실어준 편협한 작가상”이라고 혹평했다. 또 다른 독자는 “(별점) 테러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가린다. ‘좋은 소설=남혐’ 이건 아니다”라는 리뷰를 남겼다. 이런 평가는 김지연 작가의 당선작 ‘사랑하는 일’에서 성소수자인 주인공이 ‘한남’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남자를 뜻하는 한남은 남성을 폄하하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부 독자는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도 문제 삼았다. “작가가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을 해보지 않고 게임을 실제와 다르게 묘사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흡사하지만 작품 속 게임은 리그오브레전드가 아닌 가상의 게임”이라며 “여성 소설가는 게임을 잘 모를 것이라는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이나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에 대한 ‘별점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나온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흥행했지만 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에서 남성들에게 ‘0점 테러’를 당했고 출연 배우에게 악성댓글이 쏟아졌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특정 단어만을 이유로 공격하는 행위는 현실을 담아내려는 작가들의 창작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우려했다. 장은정 문학평론가는 “여성 등 소수자가 주인공이 되는 작품들이 나오면서 한국 문학의 다양성이 넓어진 것”이라며 독자들의 포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얻어맞고 찾은 상담소 “남편에게 더 잘하세요”

    얻어맞고 찾은 상담소 “남편에게 더 잘하세요”

    17년. 40대 여성 A씨가 남편의 폭력을 견딘 시간이다. 남편은 결혼 후 A씨가 더 이상 승무원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편의 강요로 전업주부로 살며 아이를 키운 A씨는 남편의 불합리한 요구가 있어도 한번도 ‘노(NO)’라고 할 수 없었다. 두려워서였다. 남편은 “너, 나 무시하냐. 더럽게 기분 나빠”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 걸핏하면 머리채를 잡는 통에 머리카락이 무더기로 뽑혀나간 적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아이들이 보면 놀랄까 봐 얼른 쓸어담으며 수없이 되뇌었다. “애들을 위해 참자.” 12일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가 쓴 이화여대 박사학위 논문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자기탈환 여정을 통해 본 사회관계규범의 재구성과 관계적 자율성 실천에 관한 연구’에 등장하는 사례다. 논문은 A씨를 포함해 가정폭력 가해자와의 분리기간이 3년 이상 된 피해여성 13명과 남편이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 결혼 관계를 유지 중인 여성 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남성이 75%를 차지하는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아내 위에 군림하려 한다. 아내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회적인 인식은 남편의 폭력을 지속시킨다. 피해여성들이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요인들도 존재한다. 여성에게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불평등한 젠더 규범과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문화가 대표적이다. 피해여성들은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이혼 절차를 밟는 등 여러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40대 여성 B씨는 남편의 구타로 퍼렇게 든 멍을 발견한 지인으로부터 가정폭력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상담소를 찾았다. 그런데 상담사는 B씨에게 “가끔 때리는 건 폭력이 아니에요. (남편에게) 조금 더 잘해주세요. 분위기가 이상하면 자리를 피하세요”라는 그릇된 진단을 제시했다. 30대 여성 C씨는 남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하지만 변호사와 경찰, 검찰, 법원은 ‘부부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C씨의 이혼소송을 맡은 판사는 판결문에 ‘결혼 사이를 유지하지 못할 만큼의 큰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는 문구를 적었다. 김홍 활동가는 “물리적 구타를 통해 가정폭력을 입증하려는 통상적인 문화가 있다 보니 반대로 신체적 폭력이 심각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혼 결정은 지지받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김홍 활동가는 “‘가정폭력은 안 된다’는 규범과 ‘이혼은 안 된다’는 규범 사이에서 여성들은 갈등하며 자녀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판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가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남자·이여자는 왜 그랬을까

    이남자·이여자는 왜 그랬을까

    예견은 현실이 됐다. 앞서 정치 전문가들은 20대가 4·7 보궐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될 거라 내다봤다. 실제 ‘이남자’(20대 남성)의 변심은 선거 결과를 갈라 놨다. 스스로를 이번 정부에서 차별받는 세대로 규정한 20대 남성은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보수정당을 선택했고 ‘이여자’(20대 여성)는 소신을 바탕으로 소수 정당 후보까지 고루 선택했다.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남자·이여자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승자의 자리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8일 이남자·이여자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집·취업… 난 정권 피해자” 이남자, 그 與와 갈라섰다 ‘이남자’(20대 남자의 줄임말)가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계층으로 자신을 인식해 온 이남자의 반격은 그렇게 표심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전통적인 진보·보수 진영 대결에서 벗어나 ‘공정’과 ‘성적 역차별’, ‘생존의 문제’를 바탕으로 삼촌(40대)이 아닌 할아버지(60대)와 함께 한 표를 던졌다. 통상 ‘청년=진보’라고 분류했던 이남자들이 보수화됐다는 시각보다는 현 정부 심판을 위해 차악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지난 7일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절대다수인 72.5%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예측됐다. 아빠뻘인 50대 남성(55.8%)과 보수 성향이 강한 60세 이상 남성(70.2%)보다 더 높은 수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44.0%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 20대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서울신문이 8일 이남자 10명에게 속내를 들어 봤더니 이들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 심판론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에 표를 준 대학생 권승일(27·가명)씨는 “오 후보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기보단 현 정부를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다주택이 잘못된 거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현 정부가 문제로 삼아 놓고선 정작 자신들이 다주택이었다. 이는 공정의 문제이자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주의 정책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총선까지 여당을 지지하다가 이번에 야당을 찍은 송준철(26·가명)씨는 “군 복무와 군 가산점, 여성할당제 논란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이 실망스러웠다”며 “대북(화해) 정책을 추구한다며 연평도 천안함 사건을 가볍게 여겼다. 이분들을 국가가 인정 안 해 주면 개죽음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20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도 문제였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한승훈(28·가명)씨는 “(취업 등) 정책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실패했는데도, 뻔뻔하게 남 탓을 하는 게 정부의 큰 문제”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사회로 진출할 기회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반정부적 입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정당이든 이남자가 추구하는 실용적 행복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언제든 이남자의 지지를 받지 못할 거라고 경고한다.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핵심이 뭔지 보인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남자 현상을) 실체도 불분명한 보수·진보로 판단해선 안 된다. 20대는 역사적으로 자유로워 ‘내’가 제일 중요하다”며 “국민의힘 역시 비전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이남자 세대는 이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페미·소수자가 시대정신” 이여자, 새로운 길 원했다 ‘이여자’(20대 여성)의 4·7 보궐선거 키워드는 소신이었다. 성평등 사회를 바라는 젊은 여성들은 거대 양당 후보를 두고 ‘최악이냐, 차악이냐’ 고민하는 단조로운 투표에서 벗어났다. 대신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다양한 후보들을 지지했다. 전 연령·성별 계층 가운데 유일하게 특정 후보에 과반수 표를 몰아주지 않고 소수 정당 후보들을 가장 많이 지지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방송3사의 4·7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의 무소속·군소정당 투표율은 15.1%로 전체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10%를 넘겼다. 20대 여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에 나선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4위),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5위), 무소속 신지예 후보(6위), 진보당 송명숙 후보(7위), 미래당 오태양 후보(9위)의 표를 합하면 총 9만 4000여표로 3위를 기록한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5만 2107표)보다 많다. 정치권은 20대 여성 유권자가 소수정당 득표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박모(24)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20대 여성 자살률이 올라가는 등 여성의 경제적 타격이 높은 이 시기에 여성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공약집을 꼼꼼히 살펴보고 신지혜 후보를 골랐다”고 말했다. 송명숙 후보를 뽑았다고 밝힌 원정현(23)씨는 “더 다양한 정당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해 주류 정당을 뽑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여성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여성의당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20대 여성의 소신 투표 배경에는 ‘어차피 시장은 오세훈’이라는 심리가 깔렸다. 선거 직전 연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자 평소 관심 있는 의제에 투표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했다고 밝힌 이혜주(25)씨는 “지난 총선에는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민주당 후보를 찍었는데 이번에는 평소 좋아했던 신지예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이여자는 40대 남성과 함께 박영선 후보 지지율이 높은 집단이기도 했다. 이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여당에 실망하면서도 오세훈 후보의 인권 의식이 더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 후보를 뽑았다고 밝힌 직장인 구모(26)씨는 “오 후보의 가장 취약한 점은 소수자 인권을 챙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학생 조모(23)씨도 “오 후보는 인권과 거리가 멀다”며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박 후보를 골랐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은 서울시장 당선인이 된 오 후보에게 성평등 정책을 주문했다. 원씨는 “오 후보가 전임 시장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노동권 개선 문제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집·취업… 난 정권 피해자” 이남자, 그 與와 갈라섰다… “페미·소수자가 시대정신” 이여자, 새로운 길 원했다

    “집·취업… 난 정권 피해자” 이남자, 그 與와 갈라섰다… “페미·소수자가 시대정신” 이여자, 새로운 길 원했다

    예견은 현실이 됐다. 앞서 정치 전문가들은 20대가 4·7 보궐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될 거라 내다봤다. 실제 ‘이남자’(20대 남성)의 변심은 선거 결과를 갈라 놨다. 스스로를 이번 정부에서 차별받는 세대로 규정한 20대 남성은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보수정당을 선택했고 ‘이여자’(20대 여성)는 소신을 바탕으로 소수 정당 후보까지 고루 선택했다.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남자·이여자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승자의 자리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8일 이남자·이여자의 속마음을 들어봤다.20대 남성 ‘분노투표’… 文정부 심판론 압도 野 오세훈 후보에 72% 몰표 ‘이남자’(20대 남자의 줄임말)가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계층으로 자신을 인식해 온 이남자의 반격은 그렇게 표심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전통적인 진보·보수 진영 대결에서 벗어나 ‘공정’과 ‘성적 역차별’, ‘생존의 문제’를 바탕으로 삼촌(40대)이 아닌 할아버지(60대)와 함께 한 표를 던졌다. 통상 ‘청년=진보’라고 분류했던 이남자들이 보수화됐다는 시각보다는 현 정부 심판을 위해 차악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지난 7일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절대다수인 72.5%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예측됐다. 아빠뻘인 50대 남성(55.8%)과 보수 성향이 강한 60세 이상 남성(70.2%)보다 더 높은 수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44.0%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 20대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서울신문이 8일 이남자 10명에게 속내를 들어 봤더니 이들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 심판론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에 표를 준 대학생 권승일(27·가명)씨는 “오 후보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기보단 현 정부를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다주택이 잘못된 거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현 정부가 문제로 삼아 놓고선 정작 자신들이 다주택이었다. 이는 공정의 문제이자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주의 정책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총선까지 여당을 지지하다가 이번에 야당을 찍은 송준철(26·가명)씨는 “군 복무와 군 가산점, 여성할당제 논란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이 실망스러웠다”며 “대북(화해) 정책을 추구한다며 연평도 천안함 사건을 가볍게 여겼다. 이분들을 국가가 인정 안 해 주면 개죽음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20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도 문제였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한승훈(28·가명)씨는 “(취업 등) 정책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실패했는데도, 뻔뻔하게 남 탓을 하는 게 정부의 큰 문제”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사회로 진출할 기회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반정부적 입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정당이든 이남자가 추구하는 실용적 행복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언제든 이남자의 지지를 받지 못할 거라고 경고한다.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핵심이 뭔지 보인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남자 현상을) 실체도 불분명한 보수·진보로 판단해선 안 된다. 20대는 역사적으로 자유로워 ‘내’가 제일 중요하다”며 “국민의힘 역시 이들에게 비전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이남자 세대는 이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20대 여성 ‘소신투표’… 과반 득표 후보 없이 15%가 군소 정당·무소속 선택 ‘이여자’(20대 여성)의 4·7 보궐선거 키워드는 소신이었다. 성평등 사회를 바라는 젊은 여성들은 거대 양당 후보를 두고 ‘최악이냐, 차악이냐’ 고민하는 단조로운 투표에서 벗어났다. 대신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다양한 후보들을 지지했다. 전 연령·성별 계층 가운데 유일하게 특정 후보에 과반수 표를 몰아주지 않고 소수 정당 후보들을 가장 많이 지지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방송3사의 4·7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의 무소속·군소정당 투표율은 15.1%로 전체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10%를 넘겼다. 20대 여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에 나선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4위),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5위), 무소속 신지예 후보(6위), 진보당 송명숙 후보(7위), 미래당 오태양 후보(9위)의 표를 합하면 총 9만 4000여표로 3위를 기록한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5만 2107표)보다 많다. 정치권은 20대 여성 유권자가 소수정당 득표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박모(24)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20대 여성 자살률이 올라가는 등 여성의 경제적 타격이 높은 이 시기에 여성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공약집을 꼼꼼히 살펴보고 신지혜 후보를 골랐다”고 말했다. 송명숙 후보를 뽑았다고 밝힌 원정현(23)씨는 “더 다양한 정당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해 주류 정당을 뽑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여성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여성의당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20대 여성의 소신 투표 배경에는 ‘어차피 시장은 오세훈’이라는 심리가 깔렸다. 선거 직전 연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자 평소 관심 있는 의제에 투표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했다고 밝힌 이혜주(25)씨는 “지난 총선에는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민주당 후보를 찍었는데 이번에는 평소 좋아했던 신지예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이여자는 40대 남성과 함께 박영선 후보 지지율이 높은 집단이기도 했다. 이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여당에 실망하면서도 오세훈 후보의 인권 의식이 더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 후보를 뽑았다고 밝힌 직장인 구모(26)씨는 “오 후보의 가장 취약한 점은 소수자 인권을 챙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학생 조모(23)씨도 “오 후보는 인권과 거리가 멀다”며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박 후보를 골랐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은 서울시장 당선인이 된 오 후보에게 성평등 정책을 주문했다. 원씨는 “오 후보가 전임 시장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노동권 개선 문제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엇갈린 20대 표심…이남자·이여자 속마음은

    엇갈린 20대 표심…이남자·이여자 속마음은

    예견은 현실이 됐다. 앞서 정치 전문가들은 20대가 4·7 보궐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될 거라 내다봤다. 실제 ‘이남자’(20대 남성)의 변심은 선거 결과를 갈라 놨다. 스스로를 이번 정부에서 차별받는 세대로 규정한 20대 남성은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보수정당을 선택했고 ‘이여자’(20대 여성)는 소신을 바탕으로 소수 정당 후보까지 고루 선택했다.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남자·이여자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승자의 자리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8일 이남자·이여자의 속마음을 들어봤다.“우리가 최대 피해자죠”…‘이남자’가 보수에게 표를 던진 이유 ‘이남자’(20대 남자의 줄임말)가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계층으로 자신을 인식해 온 이남자의 반격은 그렇게 표심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전통적인 진보·보수 진영 대결에서 벗어나 ‘공정’과 ‘성적 역차별’, ‘생존의 문제’를 바탕으로 삼촌(40대)이 아닌 할아버지(60대)와 함께 한 표를 던졌다. 통상 ‘청년=진보’라고 분류했던 이남자들이 보수화됐다는 시각보다는 현 정부 심판을 위해 차악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지난 7일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절대다수인 72.5%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예측됐다. 아빠뻘인 50대 남성(55.8%)과 보수 성향이 강한 60세 이상 남성(70.2%)보다 더 높은 수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44.0%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 20대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서울신문이 8일 이남자 10명에게 속내를 들어 봤더니 이들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 심판론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에 표를 준 대학생 권승일(27·가명)씨는 “오 후보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기보단 현 정부를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다주택이 잘못된 거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현 정부가 문제로 삼아 놓고선 정작 자신들이 다주택이었다. 이는 공정의 문제이자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주의 정책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총선까지 여당을 지지하다가 이번에 야당을 찍은 송준철(26·가명)씨는 “군 복무와 군 가산점, 여성할당제 논란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이 실망스러웠다”며 “대북(화해) 정책을 추구한다며 연평도 천안함 사건을 가볍게 여겼다. 이분들을 국가가 인정 안 해 주면 개죽음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20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도 문제였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한승훈(28·가명)씨는 “(취업 등) 정책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실패했는데도, 뻔뻔하게 남 탓을 하는 게 정부의 큰 문제”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사회로 진출할 기회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반정부적 입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정당이든 이남자가 추구하는 실용적 행복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언제든 이남자의 지지를 받지 못할 거라고 경고한다.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핵심이 뭔지 보인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남자 현상을) 실체도 불분명한 보수·진보로 판단해선 안 된다. 20대는 역사적으로 자유로워 ‘내’가 제일 중요하다”며 “실제로 20대 남성이 차별을 받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체감하는 것이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힘 역시 이들에게 비전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이남자 세대는 이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는 굉장히 실용적인 세대이며 오히려 자신들이 보수화됐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20대는 국가관, 민족관 등에 구애받지 않으며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중요한 세대인 만큼 20대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정책을 펼쳐야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거대 양당 대신 다양한 가치를”…‘이여자’의 소신 투표 ‘이여자’(20대 여자의 줄임말)의 4·7 보궐선거 키워드는 소신이었다. 성평등 사회를 바라는 젊은 여성들은 거대 양당 후보를 두고 ‘최악이냐, 차악이냐’ 고민하는 단조로운 투표에서 벗어났다. 대신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다양한 후보들을 지지했다. 전 연령·성별 계층 가운데 유일하게 특정 후보에 과반수 표를 몰아주지 않고 소수 정당 후보들을 가장 많이 지지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방송3사의 4·7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의 무소속·군소정당 투표율은 15.1%로 전체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10%를 넘겼다. 20대 여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에 나선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4위),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5위), 무소속 신지예 후보(6위), 진보당 송명숙 후보(7위), 미래당 오태양 후보(9위)의 표를 합하면 총 9만 4000여표로 3위를 기록한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5만 2107표)보다 많다. 정치권은 20대 여성 유권자가 소수정당 득표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박모(24)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20대 여성 자살률이 올라가는 등 여성의 경제적 타격이 높은 이 시기에 여성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공약집을 꼼꼼히 살펴보고 신지혜 후보를 골랐다”고 말했다. 송명숙 후보를 뽑았다고 밝힌 원정현(23)씨는 “더 다양한 정당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해 주류 정당을 뽑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여성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여성의당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20대 여성의 소신 투표 배경에는 ‘어차피 시장은 오세훈’이라는 심리가 깔렸다. 선거 직전 연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자 평소 관심 있는 의제에 투표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했다고 밝힌 이혜주(25)씨는 “지난 총선에는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민주당 후보를 찍었는데 이번에는 평소 좋아했던 신지예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이여자는 40대 남성과 함께 박영선 후보 지지율이 높은 집단이기도 했다. 이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여당에 실망하면서도 오세훈 후보의 인권 의식이 더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 후보를 뽑았다고 밝힌 직장인 구모(26)씨는 “오 후보의 가장 취약한 점은 소수자 인권을 챙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학생 조모(23)씨도 “오 후보는 인권과 거리가 멀다”며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박 후보를 골랐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은 서울시장 당선인이 된 오 후보에게 성평등 정책을 주문했다. 원씨는 “오 후보가 전임 시장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노동권 개선 문제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씨는 “20대 남성 지지율이 70%를 넘는 것을 봤다”면서 “앞으로 남성 지지자들을 더 신경 쓰고 여성 유권자를 외면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페미니즘은 원래 야만적이다” 할례 폐지 앞장선 아랍 여성운동 대모 [김정화의 WWW]

    “페미니즘은 원래 야만적이다” 할례 폐지 앞장선 아랍 여성운동 대모 [김정화의 WWW]

    “세계에는 ‘이집트’하면 두 개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라미드, 그리고 나왈 엘 사다위요.” 이집트의 여성주의 단체 나즈라의 대표 모즌 하산의 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보수적인 자국과 아랍 문화권을 넘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집트 여성운동의 대모 나왈 엘 사다위(89)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최근까지도 이어지던 여성 성기 절제(할례) 관습을 없애고자 수십년간 앞장섰고, 서구 백인 여성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페미니즘 논의를 아랍 여성의 입으로 다시 쓰며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다. “이집트에서 가장 급진적인 여성”, “야만적이고 사나운 여자”로 불리던 그의 삶을 돌아봤다.6살 때 성기 절제 수술 “육체적 고통과 끔찍한 충격”사다위는 1931년 이집트 작은 마을인 카프르 탈라에서 아홉명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 모두 고등 교육을 받은, 그 시절 흔치 않은 부유한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해 정부 교육부 공무원으로 일했고, 오스만제국 출신의 어머니 역시 프랑스 교육을 받았는데 이들은 아들뿐 아니라 딸에 대한 교육 역시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여성이 결코 성에 대해 자유롭게 털어놓거나 낙후된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다. 사다위는 “어머니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하곤 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는 이모가 딸만 셋 낳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손찌검당하는 모습을 봤고, 할머니가 “남자아이 한명이 여자아이 15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 여자애는 역병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6살에 겪은 할례의 경험은 그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기억으로 남았다. 여성 할례, 또는 여성 성기 절제(FGM)는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여성의 성욕 억제와 외도 방지 등을 목적으로 수천년간 이어진 관습이다. 4~8세 여자 아이들의 성기 일부를 자르거나 봉합해 ‘정숙한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다위는 훗날 그의 대표작인 ‘이브의 숨겨진 얼굴’(The Hidden Face of Eve·1977)에서 당시의 끔찍한 경험을 상세히 설명한다. 어느날 밤 침대에서 화장실로 끌려간 그는 “알몸으로 누운 타일 바닥의 차가움과, 누군가 계속 입을 막던 것을 기억한다”며 “그들이 내 몸에서 무엇을 잘라냈는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울기만 했다”고 했다. 가장 큰 충격은 미소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봤을 때다. 그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며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묘사했다. 그가 여성 할례에 대해 평생 싸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감옥서 휴짓조각에 비망록…50여권 책으로 유명세사다위를 더욱 유명하게 한 건 작가로서의 그의 탁월한 능력이다. 검열과 투옥, 살해 협박과 죽음의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연극, 소설, 단편 소설 모음, 논픽션 등 50여권의 책을 썼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는데, 자신처럼 할례를 받아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을 보고 느낀 분노는 고스란히 활자로 남았다. 책 ‘여성과 성’(Women and Sex·1971)에서 사다위는 여성의 신체와 성에 대한 사회의 무지와 이중잣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착취적인 결혼은 매춘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고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성별 간 차이는 가부장적 관행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적었다. 오늘날엔 당연하지만 1970년대 아랍 국가에서는 너무나 급진적이던 그의 주장은 곧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출판 직후 이집트 공중보건 교육 국장직에서 해고됐고, 그가 창간한 잡지는 문을 닫았다.1981년에는 안와르 사다트 정권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다 1500명의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수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감옥에 펜이나 공책이 반입되지 않자 눈썹 화장용 아이브로우 펜슬과 두루마리 휴지에 비망록을 썼는데, 이는 나중에 ‘여성 교도소 회고록’(Memoirs from the Women’s Prison·1984)으로 출판됐다.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뒤 석방됐지만, 이후 수년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했고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설득으로 의사가 된 그에게 글이란 부조리한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무기’였다. 그는 책 ‘이시스의 딸’(A Daughter of Isis·1999)에서 “글쓰기는 국가의 통치자가 행사하는 독재적 권력, 그리고 가부장적 집안에서 아버지나 남편이 행사하는 권위와 싸우는 무기가 됐다”고 썼다.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지만 사다위는 과거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책을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책을 쓸 것”이라며 “성별, 계급, 식민주의, 할례와 강간,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억압하는지 등 과거 쓴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사다위의 책은 4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고, 각국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돼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아랍의 시몬 드 보부아르? 사다위는 그냥 사다위다” 미국이나 유럽 등 지구의 북부 국가들에서 주로 이뤄지는 여성운동의 한계에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페미니즘은 미국 여성이 발명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종교 문화, 제국주의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했다. 아랍 여성의 이야기가 서구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지는 것에 비판적이었고,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더 낫다는 식의 비교를 용납하지 않았다. 글로벌 매체 더컨버세이션의 아프리카판은 “사다위는 여성 할례를 ‘야만적’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여성을 구분하는 것에는 저항했다”며 “신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모든 여성은 ‘정신적인 할례’를 받는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실제 사다위가 일으킨 변화는 결코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 역사에 뒤지지 않는다. 그의 투쟁으로 2008년 이집트 의회에선 마침내 할례 시술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암암리에 할례는 이뤄졌지만, 계속된 싸움 끝에 사다위가 사망하던 날 이집트 상원은 이 처벌을 최대 징역 15년형으로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집트 유명 여성운동가이자 뉴스레터 ‘페미니스트 자이언트’를 펴내는 모나 엘타하위는 “나는 사다위를 ‘아랍의 시몬 드 보부아르’라고 지칭하는 데 분노한다. 우리는 백인 페미니스트의 ‘로컬’ 버전이 아니다”라며 “사다위는 사다위다”라고 말했다. 사다위는 지속적인 여성 운동과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할례 폐지 이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할례를 하는 여성의 수는 여전히 많다. 법이 생긴다고 해서 뿌리 깊은 습관을 바꿀 수는 없다”며 “교육이 필요하다. 할례가 정당하다고 세뇌당한 부모와 소녀들 자신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과거 한 인터뷰에서 그가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환상적인 일을 해서가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 것처럼, 별세 이후 수많은 이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것도 그의 끊임없는 실천과 노력 덕분이다. 사다위가 선택한 공식 대변인이자 번역가, 친구인 옴니아 아민 박사는 “삶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의 마음, 정신, 영혼에 문화 혁명을 일으킨 여성”이라고 했고, 엘타하위는 “사다위는 페미니즘이 우리가 ‘수입’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 토착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어르고 달래는 게 아니다. 여성혐오자를 겁주고 가부장제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그게 사다위의 본질이자 페미니즘의 본질이다. 페미니즘은 야만적이고 위험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줬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나왈 엘 사다위는 누구 · Nawal El Saadawi (نوال السعداوي)1931 이집트 카프르 탈라 출생1955 카이로 의대 졸업1963 이집트 공중 보건 교육 국장 임명1972 ‘여성와 성’(Women and Sex) 출판, 이후 공중 보건 국장직 해고1977 ‘이브의 숨겨진 얼굴’(The Hidden Face of Eve) 출판1979~1980 유엔 여성기구 북아프리카·중동 지부 고문1981~1982 안와르 사다트 정권에서 반체제 인사로 구속돼 투옥1984 ‘여성 교도소 회고록’(Memoirs from the Women’s Prison) 출판2004 이집트 대통령 선거 출마   유럽평의회 남북상 수상2011 무바라크 축출 시위2015 BBC ‘올해의 여성 100인’ 선정2020 타임지 ‘올해의 여성 100인’ 선정2021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
  • “성추행 때문에 선거하는데… 제대로 사과받아 용서하고 싶어”

    “성추행 때문에 선거하는데… 제대로 사과받아 용서하고 싶어”

    입장문서 ‘위력에 의한 성추행’ 재강조“피해 회복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피해호소인’ 명칭·당헌 개정 모두 잘못박前시장 지지자 2차 가해 가장 힘들어”신상유출 우려해 사진·영상 촬영 안 해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3주 앞두고 처음으로 직접 심경을 밝혔다. 그동안 변호인단이나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혀 왔던 것과 달리 스스로 언론 앞에 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 격인 더불어민주당이 피해 사실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인정 없이 후보자를 내는 모습에 크게 반발한 의도로 풀이된다. 피해자 A씨는 17일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서울 중구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민주당에 피해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신상 유출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고 언론 앞에 나선 이유에 대해 “본래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많이 묻혔다”고 밝혔다. 이번 보궐선거가 성추행 사건에서 촉발됐음에도 민주당에서 제대로 된 대처 없이 유야무야 선거를 치르려는 모습을 비판한 셈이다. A씨는 ‘그분의 위력은’으로 시작하는 일곱 문장의 입장문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박 전 시장의 위력이 박 전 시장을 향해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그 위력이 (지지자들의) 이념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고, 나를 괴롭히는 일에 동조하도록 했다”면서 박 전 시장의 위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성추행 사건의 출발이 ‘위력’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A씨는 “용서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는 “피해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면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게 먼저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연이어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A씨의 피해 사실을 직접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을 겨냥한 것이다. A씨는 “이 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존엄한 생명을 잃었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사실의 인정’ 절차를 잃었다”면서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은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사실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A씨는 그동안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으로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2차 가해와 신상 유출을 꼽았다. 그런 A씨의 심경을 반영해 기자회견은 A씨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하는 선에서 진행됐다. 현장 사진과 영상 촬영은 하지 않고, 기자회견 유튜브 생중계 영상에서도 A씨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소리가 송출되지 않고 자막으로만 처리됐다. 기자회견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과 공동변호인단인 서혜진 변호사,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 모임 공동대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회복 위해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회복 위해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저의 피해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며 처음으로 직접 심경을 밝혔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한 소모적인 논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된 지 250여 일만이다. 피해자 A씨는 17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티마크 그랜드 호텔에서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한 결과, 저의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용서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게 먼저”라고 덧붙였다. A씨가 직접 언론 앞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박 전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제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그 속에서 저의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저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아직까지 피해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서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사실에 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박 전 시장의 사망에 대해서도 심경을 밝혔다. A씨는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박 전 시장)이다. 고인이 살아서 사법 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고인의 방어권 포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제 몫이 됐다”고 말했다. 또 “상실과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 화살을 저에게 돌리는 행위는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A씨는 자신의 피해가 국가 기관을 통해 인정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저는 서울북부지검 수사 결과와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통해 제 피해 실체를 인정 받았다. 지난주에는 비로소 60쪽에 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을 받아봤다”면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조사에 임했고 일부 참고인들의 진술과 정황에 비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았다”고 강조했다. 3주 남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사건이 정쟁의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는 “피해를 정쟁 도구로 삼으며, 사건을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받았다”며 “‘이것이 아니다’라는 생각 들 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A씨는 “더불어민주당에는 소속 정치인의 중대한 잘못이라는 책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저의 피해 사실을 축소·왜곡하려 했고, 서울시장에 결국 후보도 냈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사과를 하기 전에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당 차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A씨 외에 A씨의 지원단체 중 하나였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소장, 공동변호인단에 소속된 서혜진 변호사, ‘2차 가해’ 중단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이대호 전 서울시 미디어비서관과 함께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참석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정의당, 무너지는 정파정치…새로운 진보의길 찾을까

    정의당, 무너지는 정파정치…새로운 진보의길 찾을까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를 필두로 모였던 정의당 당내 정파인 평등사회네트워크가 지난 10일 결국 해체했다. 정의당의 최대 정파인 인천연합도 당대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가운데 진보정당의 정파정치가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등넷 “성공보다는 실패가, 성과보다는 과오가 많았다” 평등넷은 입장문을 통해 “지난 6년간 시대적 과제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사회운동과 함께 하는 강한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지역과 부문에서 노력해 왔다”며 “그러나, 성공보다는 실패가, 성과보다는 과오가 많았음을 인정한다. 특히 최근 벌어진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또 “김종철 전 대표와 함께 해 온 조직으로서 정의당 당원과 지지자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무엇보다 평등넷 활동 기간 몇 차례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음에도 재발을 방지할 조직적인 성찰과 혁신, 적극적인 계획과 실행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등넷은 애초의 목표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해산한다”며 “그러나, 회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한국 사회 세력 교체를 실현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차별과 혐오 없이 모든 존재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파정치 넘어선 진보정치의 미래는 김 전 대표가 몸담았던 평등넷은 PD(민중민주)계열 운동권의 정의당내 핵심세력으로 평가받는다. 평등넷은 2015년 진보결집더하기(노동당 통합파)라는 이름으로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정의당과 함께 4자통합을 이뤘다. 이로써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노동당 등 분열을 거듭했던 PD계열은 정의당 내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했다. 이때부터 정의당은 인천연합을 중심으로 한 NL(민족해방) 정파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과거 참여했던 국민참여 계열 등과 경쟁하며 당을 이끌었다. 정파(의견그룹) 중심 당내 정치는 이념과 가치 대결을 촉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당 통합을 저해하고 공개적인 당 운영을 방해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공식적인 중앙당 의결기구가 아닌 의견그룹 내의 외부조직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탓에 민주적 결정구조에서 의견그룹에 속하지 않은 일반당원들이 배제 당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의견그룹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정의당은 평등넷이 해체했을 뿐 아니라 인천연합 등 주요 정파가 모조리 당대표 보궐선거에 나서지 않으면서 정파 정치가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이정미 전 대표, 윤소하 전 원내대표, 박원석 전 의원 등 정의당 내 주요 인사들은 당대표 출마를 고사하고 여영국 전 의원에게 기회를 넘긴 바 있다. 정의당이 당내 보궐선거를 통해 정의당이 새길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비공식적인 정파와 구시대의 가치를 버리고 녹색과 여성주의와 같은 시류에 맞는 진보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정의당은 선거 운동(3월 7~17일), 찬반 투표(18∼23일)를 거쳐 오는 23일 당대표의 당선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박원순 피소 유출’ 논란 여성연합, 혁신위 출범…“조직적 성찰”

    ‘박원순 피소 유출’ 논란 여성연합, 혁신위 출범…“조직적 성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에 연루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이 조직 쇄신을 위한 혁신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 여성연합은 8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기념 입장문에서 “조직적 성찰과 혁신 통해 변화된 시대에 필요한 역할 찾아갈 것”이라면서 혁신위 출범을 밝혔다. 공동위원장은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자와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가 맡았다. 여성연합은 “40대인 두 위원장은 그동안 여성연합 활동에 비판적 의견을 견지해 온 인물로 다양한 세대의 의견을 아우르며 여성연합의 혁신 방향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혁신위원은 외부위원 6명을 포함해 총 18명으로 구성됐다. 외부위원에는 권김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문단 내 성폭력 예방활동 등을 펼쳐온 프로젝트팀 ‘우롱센텐스’ 대표 오빛나리 작가, 서울대에서 법과대학 박사과정 중인 설정은씨가 참여한다. 여성연합은 ▲외부위원은 20대에서 60대까지 세대별 대표성을 유념해 구성 ▲내부위원은 여성연합 지부와 회원단체 활동가 중 전국 지역 배분 ▲대표 중심이 아닌 활동가 중심 참여 등을 고려해 혁신위원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여성연합은 “향후 10대 페미니스트, 반성폭력운동단체, 정치 및 정책 전문가 등 의견 그룹 간담회 등 진행으로 혁신안에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여성연합은 지난해 12월 30일 김영순 전 여성연합 상임대표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검찰 발표가 나오자, 지난 1월 14일 정기총회를 열어 김 전 대표 해임을 의결하고 혁신위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혁신위는 오는 7월까지 활동하며 박 전 시장 피소 유출 사건에 대해 원인 등을 진단하고 여성연합의 역할과 방식, 조직구조와 문화 등 전반적인 활동에 대해 점검할 예정이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IT업계 연봉 억소리 나는데… 男 9900만원vs女 5500만원

    IT업계 연봉 억소리 나는데… 男 9900만원vs女 5500만원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빵)과 인권(장미) 증진을 위해 기념하는 ‘세계 여성의 날’이 8일 113주년을 맞았다. 한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턱없이 작은 빵을 받는다. 시든 장미조차 쥐지 못한 여성 노동자도 여전히 많다. 4차 산업혁명 도래로 가장 주목받는 고용시장으로 떠오른 개발자 업계조차 마찬가지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등 정보기술(IT), 게임 분야 기업들이 억대 연봉을 제시하며 ‘개발자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IT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은 전체의 30%를 밑돈다. 일부 업체에서는 급여 수준도 남성 직원의 절반가량에 그친다. 7일 IT 업계에 따르면 여성 개발자는 2017년부터 1년 새 약 1만 6000명 증가하는 등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절대 소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9 ICT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소프트웨어·디지털콘텐츠 개발제작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9만 3742명으로 전체(32만 1435명)의 29.1%에 불과하다. 성별 임금격차도 존재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카카오의 여성 직원 1인 평균 연봉은 5500만원으로 남성(9900만원)의 55.6%에 그쳤다. 같은 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전 업종의 남성 대비 여성 노동자 임금 비율인 67.8%보다 10% 포인트 이상 낮다. 네이버의 남녀 직원 평균 연봉액은 각각 8706만원과 7253만원으로 여성이 남성의 83.3% 수준이었다. 게임개발사인 엔씨소프트의 경우 연구개발(R&D) 직군 남성의 평균 연봉은 8219만원이지만 여성은 남성의 75.3% 수준인 6192만원을 받았다. 남성을 승진에서 우대하고, 출산과 육아 부담이 큰 여성 개발자를 선호하지 않는 관행이 임금격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IT 업계 여성주의자 모임인 ‘테크페미’에서 활동하는 A(31)씨는 “과장 승진 자리가 하나라면 ‘가장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남성을 승진시키는 식으로 여성을 차별한다”며 “객관적인 업무 성과가 여성이 우수해도 남성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는 등 여성이 커리어(경력) 관리를 하는 데 불리하다”고 말했다. 성차별적 발언에 시달리거나 남성 중심적 조직 운영에 소외감을 느끼는 여성 노동자도 적지 않다. 남녀 비율이 4대1인 IT 회사에서 일하는 웹디자이너 B(27)씨는 “상사가 ‘너는 회사의 꽃’이라고 말하곤 했다”면서 “업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남직원끼리만 공유할 때도 많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 회사를 떠나는 여성도 있다. 부서원 30여명 중 여성이 2명인 부서에서 일하는 개발자 C(28)씨는 최근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여성 선배 개발자가 기획으로 업무를 바꾸고, 남성 임원이 대부분인 것을 보며 계속 일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면서 “외국 기업은 여성들이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적고 소속감도 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구글 등 외국 기업들은 매년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며 여성 인재 확충을 위해 노력한다. 2020년 페이스북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은 37.0%였고 여성 엔지니어는 24.1%였다. 여성 고위직 비율은 34.2%였다. 같은 해 구글은 여성 직원 비율은 32.5%, 여성 고위직은 26.7%였다. IT 시장의 여성 유입을 늘릴 수 있도록 여성 인재를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컴퓨터공학 전공자 등 인력 육성에 노력하고, 구시대적 조직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네카라쿠배’ 개발자 몸값 천정부지라지만…여성에게 높은 ‘벽’

    ‘네카라쿠배’ 개발자 몸값 천정부지라지만…여성에게 높은 ‘벽’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과 인권 증진을 위해 기념하는 ‘세계 여성의 날’이 8일 113주년을 맞았다. 1908년 그날, 미국의 열악한 섬유공장에서 화재로 숨진 동료들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1만 5000명의 여성은 빵(생존권)과 장미(권리)를 달라고 외쳤다. 한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턱 없이 작은 빵을 받는다. 시든 장미조차 쥐지 못한 여성 노동자도 여전히 많다. 4차 산업혁명 도래로 가장 주목받는 고용시장으로 떠오른 개발자 업계조차 마찬가지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당토(당근마켓·토스) 등 정보기술(IT), 게임 분야 기업들이 억대 연봉을 제시하며 개발자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IT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은 전체의 30%를 밑돌고 급여 수준도 남성 직원 연봉의 50~80%에 그친다. 여성 개발자는 2017년에서 1년 새 약 1만 6000명 증가하는 등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IT 시장의 절대 소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9 ICT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소프트웨어·디지털콘텐츠 개발제작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9만 3742명으로 전체(32만 1435명)의 29.1%에 불과하다. 성별 임금격차도 존재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카카오의 여성 직원 1인 평균 연봉은 5500만원으로 남성(9900만원)의 55.6%에 그쳤다. 같은 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전 업종의 남성 대비 여성 노동자 임금비율인 67.8%보다도 10%포인트 이상 낮다. 네이버의 남여 직원 평균 급여액은 각각 8706만원과 7253만원으로 여성 연봉이 남성의 83.3% 수준이었다. 성별이 아니라 직군에 따라 임금 수준이 다르다는 반론이 있지만 같은 개발자 직군에서도 여성은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게임개발사인 엔씨소프트의 경우 연구개발(R&D) 직군 남성의 평균연봉은 8219만원이지만 여성은 남성의 75.3% 수준인 6192만원을 받았다. 남성을 승진에서 우대하고, 출산과 육아부담이 큰 여성 개발자를 선호하지 않는 관행이 임금 격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IT 업계 여성주의자 모임인 ‘테크페미’에서 활동하는 A(31)씨는 “과장 승진 자리가 하나라면 ‘가장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남성을 승진시키는 식으로 여성을 차별한다”면서 “여성의 객관적인 업무 성과가 우수해도 남성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곤 해 여성이 커리어(경력) 관리를 하는 데 더 불리하다”고 말했다. 성차별적 발언에 시달리거나 남성 중심적 조직 운영에 소외감을 느끼는 여성 노동자가 적지 않다. 남녀비율이 4대1인 IT 회사에서 일하는 웹디자이너 B(27)씨는 “상사가 ‘너는 회사의 꽃’이라고 말하곤 했다”면서 “업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남직원끼리만 공유할 때도 많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 회사를 떠나는 여성들도 있다. 부서원 30여명 중 여성이 2명인 부서에서 일하는 개발자 C(28)씨는 최근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여성 선배 개발자가 기획으로 업무를 바꾸고, 남성 임원이 대부분인 것을 보며 계속 일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면서 “외국은 여성 개발자를 키우는 데 회사와 학교 모두 적극적이어서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적고 소속감도 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구글 등 외국기업 역시 IT나 관리자 직군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적지만, 매년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며 여성 인재 확충에 노력한다. 2020년 페이스북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은 37.0%였고 여성 엔지니어는 24.1%이었다. 여성 고위직 비율은 34.2%였다. 같은 해 구글은 여성 직원 비율은 32.5%, 여성 고위직비율은 26.7%였다. IT 시장의 여성 유입을 늘릴 수 있도록 여성 인재를 국가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관행처럼 굳어진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컴퓨터공학 전공자 등 인력 육성에 노력하고, 구시대적 조직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면서 “유연근무제나 육아휴직제도, 재택근무 제도를 확대해 남여 모두 일과 생활을 양립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동정] 최인숙 제7대 한국여성사진가협회장 취임

    △ 사진가 최인숙이 제7대 한국여성사진가협회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최 신임 회장은 홍익대 대학원 사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여성주의 문화콘텐츠 기획자, 사진작가로 활동해왔다. 한국여성사진가협회 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 잘라도 꺾어도 일어난 그녀의 ‘독립’

    잘라도 꺾어도 일어난 그녀의 ‘독립’

    “내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 그중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 만일 네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하여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해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남자현 등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이 임종 직전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해 교육운동과 무력투쟁에 앞장선 그는 1932년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연맹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혈서로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글을 써서 보낼 만큼 맹렬한 항일 투사였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바로 그다. 책상 앞에 앉은 여성의 왼손 무명지에 흰 천이 감겨 있다. 두루마리 옆 종지에는 혈서를 상징하는 붉은 피가 선명하다. 주먹을 꽉 쥔 오른손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가 배어 나온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윤석남이 채색화로 화폭에 되살린 남자현의 초상이다. 윤석남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건 나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면서 “내가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그림에 담았다”고 말했다.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윤석남이 그린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을 모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가 전시 중이다. 저마다 독립운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지만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 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다. 남자현을 비롯해 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이 그들이다.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남편 신채호의 유골함을 안고 있는 박자혜(1895~1943)의 초상에선 남편을 잃은 슬픔과 나라를 빼앗긴 울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민족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동료 간호사들과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했던 독립운동가였다. 여성 독립운동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하고, 원산 신학교에서 교육 계몽사업에 헌신한 김마리아(1892~1944)의 초상은 교단 앞에서 왼팔을 번쩍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어 생전에 그가 품었던 진취적인 기상을 생동감 있게 드러냈다. 윤석남은 “얼굴은 실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묘사했고, 화면 구도와 장면 설정은 인물의 일대기를 토대로 상상해서 그렸다”고 했다. ●화면 구도·장면 설정은 삶 토대로 상상 2011년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채색화와 한국인의 초상에 관심을 갖게 된 윤석남은 2018년 채색화로 그린 자화상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2019년엔 ‘윤석남,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를 통해 여성 지인 22명의 대형 초상화 연작을 전시했다. 이후 다음 작업을 고민하다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초상화에 여성이 거의 없는 현실에 “울화가 치밀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앞으로 2~3년 내 여성 독립운동가 100명의 초상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설치작품 ‘붉은 방’도 만날 수 있다. 종이 콜라주 850여장이 벽면을 가득 메운 공간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50여개의 나무조각을 세워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영웅들의 삶을 추모한다. 4월 3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길고양이·고래… 인간과 동물, 몸짓·소리로 공존 모색

    길고양이·고래… 인간과 동물, 몸짓·소리로 공존 모색

    재개발을 앞두고 주민들이 떠난 빈집의 지붕 위를 배회하는 길고양이들 사이에서 민소매 꽃무늬 원피스 차림의 중년 여성이 두 손을 바닥에 대고 기어 다닌다. 납작 엎드려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동작을 따라 하며 마치 고양이인 양 행동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양이 등에 올라타고 화면 밖으로 날아간다.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엉뚱한 상상으로 엮인 이 영상은 국내 1세대 설치미술가이자 여성주의 미술 대표 작가인 홍이현숙의 신작 ‘석광사 근방’이다. 작가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재개발 예정지에서 서식하는 길고양이들과의 교감을 시도하며 인간과 동물 간 소통과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 실제로 길고양이와 친해지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다만 지붕 위로 올라간 장면은 붕괴 위험 때문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는 낯선 제목만큼이나 새로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향한 작가의 시선과 접근법을 보여 준다. ‘휭’은 바람에 무언가 날리는 소리, ‘추푸’는 남미 토착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동물의 신체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수면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다. 인간의 언어로는 대화할 수 없지만 그들의 소리와 몸짓이 전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제목이다.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공생을 강조하는 작가가 관심을 기울인 또 다른 존재는 고래다. 사운드 설치작품 ‘여덟 마리 등대’는 밍크고래, 혹등고래, 푸른 고래 등 8종류 고래가 내는 각기 다른 소리를 들려준다. 고주파와 저주파 음역대를 오가는 고래의 소리를 인간은 온전히 들을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 아쿠아리움연구소가 채집한 고래 소리는 뱃고동 소리 같기도, 귀신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어두운 전시장 한가운데 노란 불빛 아래 뗏목처럼 놓인 구조물에 앉아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마치 바다를 표류하며 고래 떼와 만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북한산 승가사 마애불을 카메라로 어루만지듯 클로즈업하며 작가가 상상으로 느끼는 촉감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영상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폐쇄회로(CC)TV를 통해 이어도를 상상하는 ‘각각의 이어도’ 등도 인상적이다. 전시에선 가부장적 사회에 저항하고,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등 사회적 의제에 집중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도 만날 수 있다. 3월 28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페미니스트가 도덕주의자는 아냐… 투쟁엔 소음 존재”

    “페미니스트가 도덕주의자는 아냐… 투쟁엔 소음 존재”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진아 여성의당 공동대표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까지. 바다출판사의 여성 서사는 기존의 페미니즘 지형을 열어젖힌다.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키우다 가부장제의 실체를 깨닫고 레즈비언 정체성을 탐구한 리치, 평생을 알코올 중독과 섭식장애에 시달렸던 냅의 솔직하다 지친 자기 고백, 서울 한복판에 페미니즘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만든 김 대표까지 이들 에세이는 모두 나희영 바다출판사 편집자의 손을 거쳤다. 최근 미국 정신분석학자 필리스 체슬러의 회고록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기획 출간한 나 편집자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인 책에는 1970년대에 낙태권 쟁취, 성폭력 피해 여성 쉼터 등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와 질투, 정쟁이 오롯이 담겼다. “페미니스트가 도덕주의자는 아니잖아요. 얼마나 뜨겁게 운동을 했는데, 어떠한 부정적 소음도 없이 운동이 치러졌겠어요. ‘과거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발판으로 지금의 페미니스트가 더 현명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인 거 같아요.” 나 편집자가 만든 ‘언니들’의 고백적 에세이는 시대와 국경을 가로지르는 여성 연대를 가능케 한다. 바다출판사에서 내는 여성주의 잡지 ‘우먼카인드’ 한국판 편집장이기도 한 그의 기획력이 빛을 발한 사례다. 지난해 9월 출간돼 2만 5000부가 판매된 ‘명랑한 은둔자’는 한때 알코올 의존에 시달렸다는 김명남 번역가의 후기에서부터 냅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3040’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그는 “기획 당시 ‘아마존’에서 본 리뷰부터 ‘캐럴라인은 내 친구 같고 내 자신 같다’는 김소연 시인의 추천사, 한국 독자들의 후기까지 우정의 기운이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 나 편집자의 기획 편집도 여러 여성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나는 내 파이…’를 쓴 김 대표 추천으로, ‘명랑한 은둔자’는 김 번역가의 홈페이지에 있던 냅의 글 두 편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이달 말에는 흑인 여성으로선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에세이 ‘보이지 않는 잉크’를 출간한다. 나 편집자는 “책 자체의 가치와 시장에서의 좋은 반응을 고루 갖춘 콘텐츠를 찾는 게 가장 큰 고충이자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그 출판사의 ‘페미니즘 에세이’가 특별한 까닭

    그 출판사의 ‘페미니즘 에세이’가 특별한 까닭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최근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진아 여성의당 공동대표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까지. 바다출판사의 여성 서사는 기존의 페미니즘 지형을 열어젖힌다.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키우다 가부장제의 실체를 깨닫고 레즈비언 정체성을 탐구한 리치, 평생을 알콜 중독과 섭식장애에 시달렸던 냅의 솔직하다 지친 자기 고백, 서울 한복판 페미니즘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만든 김 대표까지 이들 에세이는 모두 나희영 바다출판사 편집자의 손을 거쳤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필리스 체슬러의 책 제목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인 책에는 1970년대에 낙태권 쟁취, 성폭력 피해 여성 쉼터 등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와 질투, 정쟁이 오롯이 담겼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나 편집자는 말했다. “페미니스트가 도덕주의자는 아니잖아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다면 그게 부자연스럽겠죠. 얼마나 뜨겁게 운동을 했는데, 어떠한 부정적 소음도 없이 운동이 치러졌겠어요. ‘과거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발판으로 지금의 페미니스트가 더 현명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인 거 같아요.” ‘영 페미니스트’를 넘어 ‘영영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가 도래한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서도,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 편집자가 만든 ‘언니들’의 고백적인 에세이는 시대와 국경을 가로지르는 여성 연대를 가능케 한다. 바다출판사에서 만드는 여성주의 잡지 ‘우먼카인드’ 한국판의 편집장이기도 한 그의 기획력이 빛 발한 케이스다. 지난해 9월 출간돼 2만 5000부가 판매된 ‘명랑한 은둔자’는 한 때 알콜 의존에 시달렸다는 김명남 번역가의 후기에서부터 냅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3040’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나 편집자는 “기획 당시 ‘아마존’에서 본 리뷰부터 ‘캐럴라인은 내 친구 같고 내 자신 같다’는 김소연 시인의 추천사, 한국 독자들의 후기까지 우정의 기운이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 나 편집자의 기획 편집도 여러 여성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나는 내 파이…’를 썼던 김 대표의 추천으로, ‘명랑한 은둔자’는 김 번역가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냅의 글 두 편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독자들이 감탄했던 아름다운 편집 이야기 몇 토막.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표지에는 하나 가득 리치의 사진이 실렸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곱은 손,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에서 노년을 맞은 여성의 존엄이 느껴진다. 저명 시인이자 여성운동가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리치를 알리기 위한 나 편집자의 선택이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였던 냅이 요절하기 직전 10여 년 간 쓴 글을 모은 ‘명랑한 은둔자’를 편집할 때는 글의 순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원서에서는 마지막 장이었던 ‘홀로’가 한국어판에서는 맨 앞으로 옮겨졌다. ‘고독’과 ‘고립’의 차이에 관한 그런 설득력 있는 글(‘혼자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기에, 나 편집자의 평소 지론대로 가장 인상적인 글을 앞으로 보냈다. 반면, 조정을 배우면서 ‘강하고 유능한 팔’을 만들어내는 이야기 ‘내 인생을 바꾼 두갈래근’은 맨 뒤로 갔다. “냅이 술도 끊고 섭식장애도 극복하면서, 자기 몸을 바꾸거든요. 건강한 몸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글로 책을 끝맺는 게 편집자로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달 말에는 흑인 여성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책 ‘보이지 않는 잉크’를 출간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모리슨의 에세이다. “작년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나 미투 운동들처럼 이제 국경이 큰 의미가 없어진 시대잖아요. 모리슨이 말하는 인종과 젠더,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 편집자는 “책 자체의 가치와 시장에서의 좋은 반응을 고루 갖춘 콘텐츠를 찾는 게 가장 큰 고충이자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분노에서 몸·직업·꿈으로… 여성주의의 실용적 파격

    분노에서 몸·직업·꿈으로… 여성주의의 실용적 파격

    현직 언론인 2명이 88명 취재 ‘말하는 몸’ “유일 재산” “내 집” 등 자기 몸 시선 모아 7명의 성공 경로 찾는 ‘내일을 위한 내 일’2030 초점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눈길“젊은 여성, 경험·진로 등 구체적 문제 주목”최근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직업, 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인터뷰집이 잇달아 출간됐다. 수년간 출판계에 거세게 일던 여성주의 열풍이 ‘82년생 김지영’에서 보여주듯 주로 불평등과 위협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개별적 삶과 경험, 진로 문제에 대한 구체적 관심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학동네는 최근 다양한 삶의 이력을 지닌 여성 88명의 몸 이야기와 이를 기록한 현직 여성 언론인 두 명의 에세이 ‘말하는 몸’을 출간했다. 1·2권으로 나뉜 이 책은 질병, 출산, 직업병, 성폭력, 다이어트, 운동, 탈코르셋, 연대 등 여성의 삶을 말하는 여러 주제를 몸의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인 박선영 PD와 유지영 기자는 “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당신의 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비슷한 얘기들이 중복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결과는 흥미로웠다. 미싱사 김명선씨에게 몸은 ‘유일한 재산’이며, 여성을 위한 섹스토이숍을 운영하는 강혜영씨에겐 ‘누구도 함부로 어지럽혀서는 안 될 내 집’이다. 장애여성공감 전 대표 배복주에게는 ‘연애 관계에서 하자가 있다고 여겨지던 몸’이다. 이 밖에도 날씬하지 않고 식욕이 왕성한 요가 강사, 하루 300㎉씩 섭취했던 섭식장애 경험자, 구두를 신고 태평양을 걸어서 건넌다는 승무원 등 다양한 관점의 몸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 기자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그들의 용기를 경유해 우리의 삶을 말해보려 했다”고 밝혔다.창비는 이다혜 작가가 여성들의 일터를 찾아 구체적 일의 풍경을 전하는 인터뷰집 ‘내일을 위한 내 일’을 펴냈다. 이 책에선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 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작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등 각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여성 7명이 일과 직업에 관한 생각을 밝힌다. 직업을 발견하는 단계에서 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이상희 교수 편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음대 입시생이던 고등학생 때 피아노 연주를 원치 않아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결혼에 의지하고 싶지 않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고인류학을 공부했다. 꿈은 분명하나 자격이 있는지 자신감이 없어 방황하고 있다면 윤가은 감독이 위로가 될 수 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에 회의를 가진 그가 찾은 답은 “감독으로서 자격은 작품마다 갱신된다”는 것이었다.유선애 작가의 저서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한겨레출판)은 저자가 2030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1990년대생 10명과 심도 있게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영국 BBC ‘사운드 오브 2018’에 한국계 뮤지션 최초로 이름을 올린 예지, 공상과학소설(SF)에서 여성이 할 일을 새롭게 보여준 소설가 김초엽, 밴드 ‘새소년’의 리더 황소윤,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의 재재, 다큐멘터리 감독 정다운 등이다. 작가는 이들에게 ‘온전히 되고 싶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다. 김지은 서울예술대학 문예학부 교수는 “3~4년 전부터 남녀 간 구조적 불평등이나 성 착취, 사회 안전 등 여성의 존재 위기에 대한 분노와 회의를 다룬 출판물이 대세였다면, 최근엔 분노를 넘어 개별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얘기로 관심의 초점이 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어떻게 ‘유리천장’을 뚫고 자기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실용적인 페미니즘이 도래했다”며 “대다수의 2030 여성들이 어머니 세대보다 더 많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그들에게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지영식’ 분노에서 개인 삶으로…출판계 여성주의 열기도 실용적 진화

    ‘김지영식’ 분노에서 개인 삶으로…출판계 여성주의 열기도 실용적 진화

    최근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직업, 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인터뷰집이 잇달아 출간됐다. 수년간 출판계에 거세게 일던 여성주의 열풍이 ‘82년생 김지영’에서 보여주듯 주로 불평등과 위협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개별적 삶과 경험, 진로 문제에 대한 구체적 관심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문학동네는 최근 다양한 삶의 이력을 지닌 여성 88명의 몸 이야기와 이를 기록한 현직 여성 언론인 두 명의 에세이 ‘말하는 몸’을 출간했다. 1·2권으로 나뉜 이 책은 질병, 출산, 직업병, 성폭력, 다이어트, 운동, 탈코르셋, 연대 등 여성의 삶을 말하는 여러 주제를 몸의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인 박선영 PD와 유지영 기자는 “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당신의 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비슷한 얘기들이 중복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결과는 흥미로웠다. 미싱사 김명선씨에게 몸은 ‘유일한 재산’이며, 여성을 위한 섹스토이숍을 운영하는 강혜영씨에겐 ‘누구도 함부로 어지럽혀서는 안 될 내 집’이다. 장애여성공감 전 대표 배복주에게는 ‘연애 관계에서 하자가 있다고 여겨지던 몸’이다. 이 밖에도 날씬하지 않고 식욕이 왕성한 요가 강사, 하루 300㎉씩 섭취했던 섭식장애 경험자, 구두를 신고 태평양을 걸어서 건넌다는 승무원 등 다양한 관점의 몸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 기자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그들의 용기를 경유해 우리의 삶을 말해보려 했다”고 밝혔다.창비는 이다혜 작가가 여성들의 일터를 찾아 구체적 일의 풍경을 전하는 인터뷰집 ‘내일을 위한 내 일’을 펴냈다. 이 책에선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 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작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등 각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여성 7명이 일과 직업에 관한 생각을 밝힌다.직업을 발견하는 단계에서 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이상희 교수 편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음대 입시생이던 고등학생 때 피아노 연주를 원치 않아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결혼에 의지하고 싶지 않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고인류학을 공부했다. 꿈은 분명하나 자격이 있는지 자신감이 없어 방황하고 있다면 윤가은 감독이 위로가 될 수 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에 회의를 가진 그가 찾은 답은 “감독으로서 자격은 작품마다 갱신된다”는 것이었다.유선애 작가의 저서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한겨레출판)은 저자가 2030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1990년대생 10명과 심도 있게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영국 BBC ‘사운드 오브 2018’에 한국계 뮤지션 최초로 이름을 올린 예지, 공상과학소설(SF)에서 여성이 할 일을 새롭게 보여준 소설가 김초엽, 밴드 ‘새소년’의 리더 황소윤,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의 재재, 다큐멘터리 감독 정다운 등이다. 작가는 이들에게 ‘온전히 되고 싶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다.김지은 서울예술대학 문예학부 교수는 “3~4년 전부터 남녀 간 구조적 불평등이나 성 착취, 사회 안전 등 여성의 존재 위기에 대한 분노와 회의를 다룬 출판물이 대세였다면, 최근엔 분노를 넘어 개별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얘기로 관심의 초점이 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어떻게 ‘유리천장’을 뚫고 자기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실용적인 페미니즘이 도래했다”며 “대다수의 2030 여성들이 어머니 세대보다 더 많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그들에게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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