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본 공직사회] (11) 남성 공무원 육아휴직 실태
오후 3시 아파트 정문. 학원차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 틈새로 ‘아빠’가 끼어 있다. 딸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들과는 이제 짧은 인사도 주고받는다. 지난달 육아휴직에 들어간 중앙부처의 한 남성 공무원은 “처음 며칠간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피아노 학원 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리는 10여분이 솔직히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곤 했다.”며 웃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적응’ 속도가 빨랐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학원행사 같은 정보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이름을 밝히길 사양한 그는 “육아휴직하고 두어 주 동안은 집안어른들께도 알리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이제 더 이상 주위의 편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중앙과 지방 공무원은 모두 1만명에 육박했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은 9806명으로, 2006년 2560명에 비하면 5년 만에 거의 4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육아휴직 공무원은 2007년 3712명, 2008년 5953명, 2009년 7584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29.3%나 껑충 뛰었다.
●중앙·지방 모두 매년 증가세
중앙과 지방을 나눠도 증가세는 엇비슷하다. 지난해 42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교사 제외) 가운데 육아휴직 사용자는 4309명으로 전년(3342명)에 비해 28.9% 늘었다. 지자체 공무원은 5497명으로 전년(4242명)에 비해 29.6% 많아졌다.
이 같은 추세 속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다. 근년 들어 증가세에 전례 없이 꾸준한 가속이 붙고 있다. 2007년 123명이던 것이 2008년 296명, 2009년 386명, 지난해에는 458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는 전년 대비해 18.0%나 증가했다. 지난해 육아휴직 대상인 남성 공무원이 4만 5744명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중 약 1%가 육아휴직원을 낸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게 관가의 해설이다. 육아휴직이 가능한 중앙부처 남성공무원 대상자 가운데 실제로 휴직원을 낸 비율은 2007년 0.6%, 2008년 0.7%, 2009년 0.8%였다.
육아휴직제가 국가공무원법에 처음 명시된 것은 1995년. 행안부의 한 고위간부는 “그 당시도 육아휴직에 남녀 차별을 두지는 않았지만, 애 키운다고 남자가 직장을 쉰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육아휴직을 십분 활용하는 요즘 후배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앙부처들 중에서는 국세청, 고용노동부, 법무부, 지식경제부 등이 육아휴직 이용률이 눈에 띄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데다 인적 구조상 미취학 자녀를 둔 젊은 직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아이 돌봄’에 관대해지는 일터
실제로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민간기업 쪽에서도 꾸준히 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4년 181명이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6년 230명, 2008년 355명, 지난해 819명을 기록했다. 여성가족부의 한 사무관은 “불과 4~5년 전만 해도 남자가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직장을 쉬겠다고 하면 덮어놓고 눈총부터 줬지만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더더구나 맞벌이 부부라면 오히려 다른 사유보다 더 관대하게 이해해 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이 키우기’를 선언한 남성 직장인의 증가는 전반적인 육아휴직 확대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민간의 경우 2005년 1만 700명에 그쳤던 전체 육아휴직자가 지난해에는 4만 1732명으로, 5년새 4배 가까이 많아졌다.
행안부의 인사 관계자는 “전반적인 육아휴직자의 증가와 남성 공무원들의 가세에는 육아휴직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진 이해도가 주효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2008년부터 여성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이 1년에서 최장 3년(남성은 1년)으로 연장되고, 만 3세 이하 자녀에서 만 6세 이하로 완화된 휴직기준 등 정책적인 배려가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한몫했다.”고 풀이했다.
앞으로도 공무원 육아휴직은 꾸준히 상향곡선을 그을 전망이다. 지난 5월부터는 휴직기준이 만 6세 이하 자녀에서 만 8세 이하로 또 확대됐다. ‘육아휴직에 이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연달아 사용해야만 출산휴가시 결원보충이 되던 것이 출산휴가로 시작해 육아휴직을 붙여써도 출산휴가 때부터 인력이 충원되도록 바뀐 제도도 증가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원보충이 되지 않으면 매일 얼굴을 맞대는 동료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생각이 육아휴직을 가로막는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급여도 인상됐다. 올 1월부터는 매월 50만원 정액제에서 월 봉급액의 40%(상한 100만원, 하한 50만원)로 조정됐다. 근평점수 문제도 불이익이 덜한 쪽으로 개선된다. 현재 육아휴직자는 근무평정 만점(70점)의 60%(42점)만 받고 있으나, 하반기부터는 휴직 전 받은 두 차례 근평점수의 평균을 적용받을 수 있다.
●서울시 ‘파파 쿼터제’ 연내 시행
그러나 육아휴직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돼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여성계에서는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는 문제를 여성에게만 국한시키지 말고 이제는 남성의 영역으로도 확대시킬 때가 왔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직사회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부부 공무원 중 여성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안에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공무원을 대상으로 ‘파파 쿼터제’(아버지 육아휴직 할당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연말까지 약 14명의 남성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육아휴직의 일정 기간을 아버지 몫으로 돌리는 파파 쿼터제는 영국,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에서는 이미 제도화돼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