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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방학때 가볼까…체험활동

    봄방학때 가볼까…체험활동

    봄방학에 뭘 할까. 새 학기 시작을 열흘쯤 앞두고 학생들은 새 교과서와 새 친구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설렌다. 학부모들은 부족한 공부를 어떻게 하면 더 시켜볼까 고민이다. 겨울방학에 이어 선행학습을 시켜보려는 것이다. 봄방학은 길어야 보름. 계획을 짜서 공부하기도 마땅치 않다. 참고서 대신 직접 체험해보는 선행학습은 어떨까. 봄방학을 이용한 초등학생들의 체험식 선행학습 요령을 살펴봤다. ●초등학교 1·2학년 1∼2학년 때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부모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많다. 때문에 부모가 교과 내용과 관련된 견학 장소를 먼저 고른 다음 뭘 볼지 계획표를 짜면서 아이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좋다.1∼2학년은 너무 오래 걷거나 보는 것만으로는 흥미를 잃기 쉽다. 직접 만져보거나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우선 추천할 곳은 식물원이나 동물원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1∼2학년 ‘국어’와 ‘슬기로운 생활’에는 자연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1학년 때는 꽃밭에 기르기 좋은 식물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고,2학년 때는 동물과 식물을 사는 곳에 따라 나눠보는 시간도 있다. 수목원에 간다면 교과서에 나오는 애기똥풀, 강아지풀, 씀바귀 등을 자세히 살펴보자. 생태공원은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식물과 동물, 곤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다. 저학년 ‘슬기로운 생활’이나 중·고학년 ‘과학’에 생태계 속의 작은 생물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과학관에 간다면 구체적으로 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이나 교과 내용과 관련 있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둘러보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특히 1학년 때는 우리 몸의 생김새와 감각 기관을 공부하므로 인체를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다.2학년이라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 물과 공기의 성질에 대한 체험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물관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직간접으로 많이 연관돼 있어 미리 견학하면 수업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우정박물관과 김치박물관은 저학년 수업 시간에 많이 다룬다. 김치의 종류와 역사를 알아보고 영양가를 조사한다면 새 학기에 더욱 흥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저학년 때는 우리나라 명절의 풍습과 놀이를 배울 기회가 많다. 한국민속촌이나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자.1학년 ‘국어’시간에는 민속놀이를 하는 방법을 배우며,2학년 때는 여러가지 집의 모습에 대해 배운다. ●초등학교 3·4학년 3∼4학년이 되면 1∼2학년 때와는 달리 교과목이 나뉘어 공부할 내용이 많아진다. 때문에 자칫 학습 의욕을 잃기 쉽고, 사회나 과학 교과에 대한 흥미도 이 때 결정된다. 따라서 다양한 체험과 견학을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3∼4학년 ‘사회’는 지역화 교과로, 우리 고장과 시·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인터넷만 찾아보지 말고 실제 박물관이나 지역 공연, 시장 등을 직접 찾아가보자. 3학년이 되면 자연에 대해 더 깊이 배운다.3학년 ‘과학’은 날씨에 대해 다루므로 기상청이 하는 일 등을 알아보면 좋다.4학년 ‘국어’ 시간에는 소금에 대해 배우고,‘과학’시간에는 소금물에서 소금을 분리하는 실험을 다룬다. 가족여행을 갈 기회가 있다면 서해안 염전이나 인천에 있는 수도권 해양생태공원을 다녀오면 도움이 된다. 동물원에 간다면 암수의 구별 방법과 함께 동물 분류에 초점을 맞춰 둘러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부모들이 3학년 자녀에게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부분이 과학이다. 질문이 어려워지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이 때는 과학관을 이용해 보자.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있는 과학연구원의 탐구학습관이나 체험학습장은 무료이거나 싸고, 내용도 알차다. 3학년 때부터는 다양한 박물관을 많이 견학해보는 것이 좋다.4학년 ‘사회’시간에는 박물관의 종류와 업무를 배우고, 박물관 견학과 모의 박물관 꾸미기 등의 활동을 한다.3∼4학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박물관으로는 경기도 의왕의 철도박물관(4학년 ‘국어’ 중 ‘증기기관차 미카’), 경기도 용인의 삼성교통박물관(3학년 ‘사회’ 중 ‘교통수단의 발달’), 전북 고창의 판소리박물관, 강원도 강릉의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 민속박물관, 경기도 수원 국토지리정보원 내 지도박물관 등이 있다. 3학년 ‘사회’에서는 역사 공부가 시작된다. 서울 남산이나 무악산 등 전국의 봉수대를 비롯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다녀오는 것도 좋다.4학년 ‘국어’시간에는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전기를 배우므로 미리 충남 천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약용은 ‘국어’‘사회’‘과학’등의 교과에서 자주 나오는 인물이다. 수원의 화성과 경기도 남양주의 정약용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면 좋다. ●초등학교 5·6학년 고학년은 견학의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견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국립서울과학관부터 가보자.5학년이라면 1층 기초과학전시실과 4층 우주관은 필수 코스다.6학년은 3층에 있는 심장혈관의 집을 놓쳐서는 안된다.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의 낙성대 본원과 남산 분원도 활용하기에 좋다. 특히 남산 분원에서는 5학년 때 배우는 물체의 속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서울 LG사이언스홀이나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등도 가볼 만하다. 5학년 ‘사회’시간에는 우리 조상의 의식주와 문화·종교·과학 등의 생활상을,6학년 때는 고조선에서 근대까지 전반적인 역사 흐름을 배운다. 때문에 저학년 때 가봤다고 하더라도 민속박물관을 다시 둘러보면 새삼 보람을 느낄 수 있다.6학년이라면 세계로 눈을 돌려 서울의 지구촌 민속박물관이나 경기도 고양의 중남미 문화원 등을 다녀오면 도움이 된다. 아이가 역사에 관심을 보인다면 국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 외에 다양한 곳을 활용할 수 있다. 서울 절두산 순교 성지나 경기도 파주의 선사유적지, 강화역사박물관, 천안의 독립기념관,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전쟁기념관 등도 좋은 공부가 될 만한 곳이다. 민주주의를 배우기에 좋은 장소도 추천할 만하다. 국회나 대법원, 지방법원 등을 견학하면서 삼권 분립과 준법 정신 등을 배울 수 있다. 국회는 꿈나무 의회교실(youth.assembly.go.kr), 대법원은 어린이 마당(www.scourt.go.kr/kids)에 접속해 견학할 수 있다. ■ 도움말 서울 화랑초등학교 이현진·김언지·장은미 교사 ■ 즐기면서 배워보세요! 봄 방학 때 가볼 만한 행사장을 소개한다. ●서울숲 곤충식물원(parks.seoul.go.kr/seoulforest) 세계 딱정벌레 표본 전시회와 살아 있는 우리나라 딱정벌레 상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 딱정벌레를 포함해 293종 1305개체를 매일 50종씩 교체 전시한다. 무료.(02)460-2905. ●IQ뮤지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다음달 1일까지 열린다. 고전 퍼즐을 비롯해 희귀 퍼즐, 불가능 퍼즐, 세계의 퍼즐 등을 직접 풀어볼 수 있는 체험학습 행사다. 어른 7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5000원.(02)2000-9774. ●스포츠 과학놀이 체험전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파미에 파크 2층 씽크타운(www.thinktown.co.kr)에서 8월30일까지 열린다. 스포츠와 장비에 숨겨 있는 과학 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과학 이벤트쇼와 마술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과학체험교실 등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1만 2000원.(02)6282-5777. ●여섯번째 대멸종 이화여대 자연사 박물관에서 4월30일까지 열린다. 과거 지구의 멸종을 뒤돌아보고 자연파괴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동물들의 자취를 표본과 모형, 영상물을 통해 더듬어볼 수 있다. 무료.(02)3277-3155. ●‘우리의 오랜 친구, 개’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www.nfm.go.kr)에서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개의 상징과 의미를 살펴보도록 마련했다. 개가 등장하는 생활용품 등 각종 유물을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개 사진 공모전과 개 모양 토우 만들기 작품전도 둘러볼 수 있다. 이달 27일까지. 일반 3000원, 학생 1500원. ●신비한 미생물 탐험전(www.microbes.co.kr)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어른 1만 2000원, 청소년 8000원.(02)785-8320. ●재미난 박물관(www.funkr.com) 인천 서구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이달 말까지 열린다. 빛, 소리, 움직임 등 과학적 원리로 반응하는 제품과 놀이기구, 생활과 날씨, 해양 등과 관련한 신기한 제품, 놀이기구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유아 4000원, 청소년 5000원. 어른 6000원. ●집에서는 따라하지 마세요. 다음달 1일까지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 씽크아트홀에서 열린다. 음향과 3차원 입체영상, 조명, 특수효과를 동원해 상상력과 표현을 발휘시키는 과학교육극이다. 오전 11시, 오후 2시,4시 공연. 균일가 1만 5000원.(02)6737-6718. ●세계 밀랍인형 박물관(www.worldwaxmuse um.net) 서울 코엑스에서 다음달까지 열린다. 세계 유명 인사의 밀랍인형 150점을 볼 수 있다. 마돈나, 샤론 스톤, 찰리 채플린 등 해외 인기 배우에서부터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정치인, 박주영·홍명보·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 설경구, 비, 안성기 등 국내 인기 연예인 작품도 전시한다. 방학을 맞아 입장료는 이달까지 어른 1만 2000원, 중·고생 1만원, 어린이 8000원으로 할인한다.(02)562-8153.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청약제도 확 바뀐다](상)문제점·파장 진단

    [청약제도 확 바뀐다](상)문제점·파장 진단

    청약통장제도에 대한 대수술이 시작됐다. 지난 1978년 ‘입주자 저축제도’로 출발해 28년 동안 서민들이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줬던 청약통장제도가 근본부터 바뀌는 것이다. 저소득 무주택자들은 내집마련이 한결 쉬워졌지만,1주택 소유자들은 공공택지에서 지어지는 중소형 아파트는 원천적으로 분양받을 수 없게 됐다. 청약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 시리즈로 짚어본다. ■ ‘1주택’ 200만명 반발 거셀듯 정부가 7일 마련한 청약제도 개편안은 청약시장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민간택지에서 민간업체가 분양하는 주택을 제외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주택공급은 무주택자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청약통장 1순위라도 1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면 공공택지내 아파트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청약제도를 실수요자 위주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중소형기준 25.7평 이하 될듯 현재 청약통장에 가입한 720만명 가운데 1순위자는 400만명에 달한다. 이 중 1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입자들은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비록 1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보다 나은 위치의 아파트 또는 보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청약통장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들 1주택자들은 이르면 2008년부터 공공택지에서 분양되는 중소형 아파트는 원천적으로 분양받을 수 없게 됐다. 중소형 아파트의 기준에 대해서는 주택산업연구원의 연구결과 등을 종합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종전의 중소형 규모인 25.7평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전국에 공급된 25.7평 이하의 주택물량은 15만 6400여가구에 달한다. 이 중 공공택지 물량을 25%라고 감안해도 3만 9100여가구에 대해서는 1주택자들의 청약이 사실상 차단되는 것이다. ●1주택자 유예기간내 소화해야 현재 1순위자 중 1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200만명과 앞으로 1순위자가 되는 1주택 소유자들은 청약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전에 청약통장을 쓰는 것이 유리하다. 무주택자 우선배정에 이어 가점제까지 본격 도입되면 당첨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점제는 무주택기간, 가구주 연령, 가구 구성원 수 등 항목을 정해 가중치를 부여하고 이를 합산한 종합 점수로 당첨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수백만명에 달하는 1주택 소유자들이 유예기간내에 청약통장을 한꺼번에 쓰게 되면 당첨확률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즉 유예기간내에 청약통장을 쓰더라도 1주택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당첨확률이 떨어지고, 제도 시행 이후에 청약통장을 쓰면 가점제 등에 밀려 역시 당첨확률이 적어지는 것이다. 개정안이 1주택 소유자들에게 특히 불리하도록 돼 있지만 위헌 소지 등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무주택자들에게 중소형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것은 정책적 판단이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1주택자들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승 우려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힘들어지면 아파트 수요는 자연스럽게 민간택지 아파트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민간택지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올라가게 되고, 분양가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수년전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분양하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렸던 것처럼 청약제도가 바뀌게 되면 민간택지 아파트는 한동안 대박신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주택시장의 양극화 현상도 예상된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전무는 “무주택자가 많은 강북이나 수도권 외곽지역 등지에서는 기존 주택을 사는 대신 원하는 지역의 청약이 시작될 때까지 주택구입을 미뤄 매매값은 점점 떨어지는 반면 전세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중소형 청약예·부금 가입자들의 해약이나 큰 평수 전환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비해 무주택자만 가입할 수 있는 청약저축의 인기는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중소형 청약예·부금 통장 가입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전문가·시민 반응 부동산 전문가와 시민들은 달라지는 청약제도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기존 청약통장 가입자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는 청약 자격을 더욱 세분화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10년째 청약부금통장을 갖고 청약에 도전해 서른 여섯번 떨어졌다는 회사원 강모(39)씨는 “청약통장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당첨되는 것을 볼 때마다 억울함을 느꼈다.”면서 “이번 나온 가산점제가 빨리 적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 강북구에 18평짜리 주공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는 김성아(32·서울 송파 잠실동)씨는 강남 지역 중형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수년째 돈을 모으고 있는데 가산점제가 도입되면 당첨 기회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청약통장은 가입자가 워낙 많고 경쟁률이 높지만 1주택자와 무주택자에 대한 최소한의 구분도 없었던 만큼 이번 계기에 대상을 세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형 주택을 가진 1주택자들이 중형 주택으로 갈아탈 기회를 빼앗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다. 신한은행 부동산팀 고준석 팀장은 “1주택자들이 중형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이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별도의 풀을 구성하도록 가산점제가 무주택자들과 소형 1주택자들로 이원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견건설사 한 임원은 “지금도 잘못지으면 줄줄이 미분양 사태가 나는데 중·대형 평형에 대해서까지 유주택자들을 배척시킨다면 앞으로 사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면서 “중·대형 평형에 대해서는 유주택자들의 분양 기회를 줄이는 일이 없도록 종전의 방식을 조금 개선하는 수준에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공공택지내 중소형 물량을 모두 무주택자에게 분양하는 것과 관련, 국민은행 주택청약 담당 관계자는 “기존에도 공공택지내 공공분양은 전량 무주택자에게 주었고, 민간분양의 75%도 무주택자에게 주었다.”면서 “1주택자들이 분양받을 수 있었던 나머지 25%의 민간분양 물량을 무주택자들에게 주는 것인 만큼 대세에 큰 영향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어떻게 바뀌나 ‘청약제도 대수술’로 700만 청약 통장 가입자들의 내집 장만 계획도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공공·임대분양을 청약하려면 청약저축이 필요하고, 민영주택을 분양받으려면 예·부금에 가입해야 한다. ●가점제 무주택자 우선 순위 당첨은 동일 순위내에서 무작위 추첨을 통해 결정되는 로또식이다.2주택 소유자는 1순위에서 배제되지만 1주택자나 무주택자에 대한 구분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무주택기간, 가구주 연령, 가구 구성원 수 등 항목을 정해 가중치를 부여하고 이를 합산한 종합 점수로 당첨자를 결정한다. 가구주의 나이와 가족수가 많고 무주택 기간이 긴 청약자의 당첨 기회가 높다. 나이가 어리고 핵가족인 청년층 당첨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점제 방식은 오는 2007년 이후 시행될 전망이다. ●공공택지 25.7평 이하 모두 무주택에게 배정 기존에는 공공택지내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중 25.7평 이하 민영주택 및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민간이 건설하는 민영 분양주택 중 75%만 무주택자에게 배정했다. 나머지 25%는 1가구를 가진 사람들도 함께 경쟁해 당첨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제 이 25%마저 모두 무주택자에게 돌아간다. 시행 시기는 2008년 이후다. 단 중소형 주택의 기준은 지금의 전용면적 25.7평 이하로 할지는 향후 주택산업연구원 용역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여론 수렴을 거쳐 정한다. 민간분양 아파트의 무주택자 공급분은 18평 이하로 한정될 가능성도 있다. 무주택자의 기준도 바뀐다. 소형 다세대주택 보유자 등 초소형 주택소유자들은 지금도 유주택자로 분류되고 있어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 청약제도가 무주택자에게 우선 순위를 주는 쪽에 무게를 두어 개편되는 만큼 정부는 초소형주택 소유자를 무주택자로 간주하고 초소형 주택의 기준을 추후 정비하기로 했다. ●3자녀 이상 특별분양 대상에 포함 저출산 문제 해소 지원 차원에서 자녀를 셋 이상 둔 가구도 국가유공자,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등과 같은 특별분양 대상으로 간주한다. 공공택지내 공공·민영 분양주택의 10% 범위내에서 추첨을 통해 우선 공급받을 권리를 갖는 것이다.6월전에 주택공급규칙 개정을 마무리하고 이를 시행할 방침인데 우선 공공택지내 분양주택을 대상으로 하고 추후 민영주택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8월 분양될 판교 25.7평 이하 중소형 주택(1774가구)에도 적용된다. 판교의 경우 철거주택 소유자, 국가유공자 등의 경쟁률이 높을 것으로 보여 특별분양대상 177가구 중 20∼40가구 정도만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07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십대들의 쪽지’에서는 청소년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대한민국 10대들의 대표적인 고민’을 살펴보고, 자녀들이 이런 고민을 할 때 부모는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좋을지 알아본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애로점, 곤혹스러움도 풀어보고,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지도 알아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2005년, 스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태욱, 채시라 부부가 털어놓은 ‘황당 파경설’의 진실을 들어본다. 탤런트 신애라는 치명적인 실수로 아들의 운동회를 망쳐버렸다고 한다. 스타들이 말하는 올 한해 잊을 수 없는 황당사건부터, 스타들이 직접 뽑은 ‘2005 이색 베스트상’까지 모두를 공개한다.   ●클로즈업(YTN 오후 1시25분) 윤리문제에 이어 논문의 진위공방으로 비화됐던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문제가 MBC측의 대국민 사과 이후 진정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 10월 도입한 과학부총리제는 시행 1년을 넘기면서 연착륙했다는 평가다.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와 함께 올 한해 과학기술계를 결산해본다.   ●김동률의 포유(MBC 밤 12시55분) 첫 무대의 주인공은 프라하의 연인 OST로 알려진 가수 유해준이 ‘단하나의 사랑’을 들려주고, 이어 김시진과 듀엣으로 ‘프라하의 연인’을 부른다. 또 KCM이 출연하여 ‘Dance with my father’,‘은영이에게 Part2’와 ‘알아요’를 들려주며 2집 앨범 활동을 마무리하는 무대를 갖는다.   ●낭독의 발견(KBS1 오후 11시40분) 스물 여섯살 연상의 가톨릭 사제와 사랑에 빠졌던 세계적인 비즈니스 우먼 조안 리씨. 폭풍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했고, 그 후 성공한 여성으로 지금은 ‘고마운 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조안 리씨가 낭독무대에 올랐다. 그의 저서 ‘고마운 아침’ 중 딸의 결혼 시기 즈음에 쓴 글을 읽어준다.   ●추적60분(KBS2 오후 11시5분) 최근 발표된 한 다국적기업의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여성 53%가 성형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신드롬만큼 성형수술은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충격적이게도 취재진이 확인한 성형수술 관련 사망자가 올해만 4명이나 되었다. 성형 열풍의 진상과 성형외과 의원들의 의식 실태를 추적한다.
  • [주말 탐방] 한강낚시터 잠실~행주대교까지

    [주말 탐방] 한강낚시터 잠실~행주대교까지

    한강의 ‘강태공’ 그들은 누구인가. 그 이름에서 유유자적이 느껴지지만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국 고대의 실제인물인 강태공은 노인이 될 때까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백수’였다. 그는 주나라 문왕(文王)의 눈에 들어 재상에 오르기까지 위수(渭水·황하의 지류)에 낚싯대를 드리운 촌로였다. 낚시로 세월을 보냈던 시절, 아내가 집을 나가는 등 시련을 겪었던 강태공의 마음이 어찌 편하기만 했을까. 서울 한강의 ‘강태공’들도 엇비슷하다. 하루 평균 100여명, 연간 3만여명을 헤아리는 그들. 물이 맑아지고 어종이 크게 늘면서 일부 지류에서는 견지낚시를 즐기는 애호가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한강에서 무엇을 낚을까. 그들은 대부분 짜릿한 손맛에 고기 비늘만큼이나 찬란한 삶의 꿈을 긷지 않을까. 한강이 낚시 명소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한강의 낚시터는 잠실수중보에서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에 이르는 양안 57㎞ 구간(강남 33㎞, 강북 24㎞)에 펼쳐져 있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광나루지구와 선유도공원을 제외한 한강시민공원 10개 지구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9월부터 19개 지역(19.4㎞)에서는 낚시 행위가 금지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낚시터에 대한 관리는 9월까지 낚시터가 있는 각 자치구에서 관할했으나 이달부터 한강수계 낚시터 전역을 한강시민공원사업소가 관리하도록 조례가 개정됐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낚시터 관리·운영 권한이 넘어옴에 따라 낚시터를 전면 재정비하고 조정할 계획으로 있다. 우선 한강 서울수계 대부분이 낚시 가능지역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낚시터마다 강태공들을 위한 의자 등 편의시설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강에서 낚시하기 위해서는 강태공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도 있다. 우선 개인당 4대 이상의 낚싯대를 펼칠 수 없고, 훌치기 낚시(미끼를 달지 않고 세 방향으로 뻗어있는 바늘을 지나가는 물고기의 몸에 걸어서 잡는 낚시)를 해서는 안 된다. 잠실수중보에서 성산대교까지는 떡밥·어분낚시가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구간에서 야영·취사행위도 금지돼 있다. 특히 떡밥 낚시는 한강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 위반시 30만원의 과태료를 각오해야 한다. 지구별로 낚시터의 특징을 살펴본다. ●잠실지구 잠실수중보 인근에서 탄천 양수장까지 2㎞에 이르는 구간으로 한강낚시터의 대표격이다. 잠실수중보 밑으로 물고기가 밀집해 있지만 2년 전 수중보가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낚시꾼들의 아쉬움이 큰 지역이다. ●뚝섬지구 영동대교 하류 600m 지점에서 자양빗물펌프장까지 1.7㎞ 구간에 낚시꾼들이 몰린다. 누치·쏘가리·잉어·강준치 등 한강에서 대물 소식이 가장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 장마철에는 붕어와 잉어가 떼지어 오르는 길목이다. ●반포지구 낚시터 시설이 가장 잘 돼 있어 ‘낚시터공원’으로 불린다. 특히 반포주공아파트 뒤편에 1만 2000평 규모의 인공섬인 서래섬이 길쭉한 모양으로 조성돼 있다. ●양화지구 한강에서 보기 드문 대낚시 포인트이다. 당산철교에서 성산대교 직전의 양화 유람선 선착장까지 2㎞의 호안은 대어가 종종 올라온다. 특히 선유도를 마주보고 형성돼 있는 800m 구간은 물살의 영향이 거의 없고 침수수초가 형성돼 있다. ●여의도지구 여의도 샛강 유입부에서 상류로 한강철교 아래까지 붕어·잉어·누치 등 어종이 다양하다. 계단식 호안과 어소(고기집) 블록이 깔려 있다. 호안이 단조로워 릴낚시가 성행한다. ●망원지구 양화지구 맞은편의 망원지구 낚시터로 성산대교 근처 홍제천 유입구부터 상류의 당산철교까지 2.9㎞ 구간에서 잉어가 잘 낚인다. 릴낚시와 대낚시가 고루 구사된다. ●이촌지구 예부터 두무포라 불리던 이곳은 강변에 늪지가 많아 잉어가 모이는 집산지로 유명하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꿈이 이뤄질 세상을 낚고 있죠” 평일인 지난 17일 오후 한강 낚시꾼들이 많이 있다는 서래섬을 찾았다. 서래섬은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사이에 있는 인공섬으로 1982∼86년 올림픽대로 건설과 함께 조성됐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한 날에 열대여섯명의 낚시꾼들이 5∼10m 간격으로 앉아 낚싯대를 담그고 있었다. “평일에 이렇게 한강에 나온 낚시꾼들치고 사연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래섬에서 처음 만난 유모(43·관악구 신림2동)씨는 낯선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강이 고마울 따름이죠. 이렇게 낚싯대를 던져놓고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이 화를 식히는 유일한 길이거든요. 이것마저 없었다면 길가에 나앉아 술이나 마시는 신세로 전락했겠죠.” 유씨는 올 1월까지만 해도 경기도 안양 근처에 직원 12명을 거느린 모자공장 사장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자금유통이 어려워지고 수금이 안 되더니 급기야 올초 공장문을 닫게 됐단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다툼이 잦았던 아내와는 이혼했다.10살짜리 딸은 동생 집에 맡겨졌다. 유씨는 딸이 보고 싶지만 만나지 않겠단다. 딸 얘기가 나오자 눌러쓴 모자를 한번 더 힘껏 누른다. 유씨는 3개월째 거의 매일 한강에 나와 온갖 구상을 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재기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한강은 희망을 낚으려는 유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없이 고마운 공간이다. 홀로 낚싯대 2대를 던져 놓은 공정기(45·구로구)씨는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공씨는 스스로를 삼청교육대 피해자라고 밝혔다. “삼청교육대에 4주동안 잡혀 있었어요. 악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삼청교육피해자신고접수’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25살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공씨는 그후 20년동안 제대로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뒤에서 감시하면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느낌 때문이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던 공씨는 정신과 진료를 통해 장애등급까지 받았다. 공씨는 “그나마 한강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서 “우선 피해자접수 결과를 지켜본 뒤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임한 후 낚시를 즐기는 김모(65)씨는 ‘꿈’을 낚고 있다. 그는 10년 전 회사를 은퇴하고 재테크를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진행형인 ‘꿈’의 실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모은 돈으로 노인전문요양소를 짓고 있어요. 아직 설계중인데 몇년 안에 완공될 것 같습니다.” 김씨의 아내는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두 자녀들도 모두 가정을 갖고 있다. 그는 “더이상 세상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서 꿈이 이뤄질 세월을 낚고 있다. 소주 한 병에 순대 2인분을 사들고 한강을 찾은 김기철(60)씨와 노병선(57)씨는 4년 전 낚시하다 만나 친구가 됐다. 모두 아내와 함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젊어서는 가게일에 열중했지만 이제는 모두 아내들에게 일임했단다. 둘은 거의 매일 함께 낚시를 다닌다. 굳이 한강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최저 비용으로 최고 재미를 누릴 수 있는 낚시터를 찾는 것도 둘만의 쏠쏠한 삶의 재미다. 노씨는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한강만한 낚시터도 없다.”면서 “낚시꾼들에게서 요금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3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 낚시터에서는 낚싯대 1대당 1000원씩 요금을 받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주말 낚시꾼들은 몰라도 평일 낚시꾼들 숫자는 곧 경기회복과 맞물려 있다.”면서 “40대 중반의 평일 낚시꾼 수가 ‘확’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두번 사기당하고 농부로 정착한 탈북 귀순자 김만철씨

    “내레 이제 농부가 됐시요. 우리 집 닭들은 아주 토실토실 합네다.” 김만철(65)씨. 지난 1987년 1월 청진의대에서 의사로 근무 중 11명의 가족을 이끌고 탈북, 귀순했다. 특히 소형선박 청진호를 이용, 일본과 타이완을 거쳐 25일 만에 남녘땅을 밟은 각본없는 드라마는 북한판 엑소더스를 예고하며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또한 귀순 일성으로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고 싶어 왔다.”고 말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표현대로 김씨 가족들은 귀순후 남쪽의 따뜻한 섬인 남해에 정착했다.‘평화의 집’이라는 찾아가는 선교병원을 세워 선교활동에 나서는 등 제2의 삶을 착실히 살았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두번의 사기극에 휘말려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평화의 집’이 경매처분되는 시련을 겪었다. 결국 김씨 가족은 5년전 따뜻한 남쪽에서 북쪽인 경기도 광주시의 한 산골짜기로 이사했다. 수소문 끝에 김씨의 집을 찾았다. 비포장 도로로 꾸불꾸불 이어지는 외딴 곳. 입구에는 고추를 심은 텃밭이 군데군데 보였고, 토종닭 수십마리가 초가을 햇살 아래 평화롭게 떼지어 다녔다. 때마침 김씨는 정장차림으로 네살된 외손녀와 함께 인근 병원에 막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외손녀의 변비 때문이란다. 부인 최봉례(60)씨는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왔느냐.”고 하면서 인터뷰를 마다하고 고추밭으로 나가버린다. 탈북 당시 11명의 가족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슬하의 3남2녀 소식부터 들었다. 큰아들 광규(40)씨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연애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았으며, 모 공기업 홍보실에서 근무 중이다. 큰딸 광옥(36)씨는 화물차 운전기사인 남편, 자녀 둘과 경기도 일산에서 행복하게 지낸다. 둘째아들 명일(33)씨는 모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노동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자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부인은 동해출신으로 연애결혼했으며, 자녀 둘을 낳아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다. 둘째딸 광숙(31)씨는 지난 95년 강원도 화천 지역을 통해 탈북한 한용수(31)씨와 결혼, 딸 하나를 낳고 경기도 역곡에서 지낸다. 셋째아들 광호(29)씨는 아직 미혼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UCLA)을 나와 현재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김씨는 “18년전 탈북 당시 식구 11명에서 지금은 스물대여섯으로 늘었다. 손자·손녀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족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것은 1년에 한번꼴이어서 귀순 당시에 견주면 격세지감. 이어 “지난 세월, 남한에서 살아오는 동안 사기를 당하는 등 혹독한 적응기를 거쳤다.”면서 여생을 땅의 진리를 터득하며 살겠단다. 김씨는 남해에서 가지고 온 미니 포클레인으로 직접 집을 짓고 텃밭을 일궜다. 또 한마리, 두마리 키우기 시작한 닭이 지금은 100여마리로 늘었다. 고추농사는 닭들이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실패를 거듭했고 대신 그걸 먹고 자란 닭들만 살쪘다고.“기왕이면 완전 토종인 우리 닭들이나 선전을 좀 잘 해달라.”며 웃는다. 북한에 있는 가족 얘기가 나오자 “위로 형들이 몇분 있는데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떻게든 돕긴 도와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그 아이는 남편의 아이냐

    그 아이는 남편의 아이냐

      『어린애의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 뿐』이라고「괴테」는 영탄했다. 시성(詩聖)의 이 망언(?)이 진작 알려졌던들 그 주옥 같은 명편(名篇)들이 여성들에 의해 그렇게 잘 읽히지는 않았으리라.「패터니티·테스트」라는 이름의 친자(親子)감정이 요즘 법의학계의 큰「이슈」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생각을 갖게 하는 일.「여성상위」「모성우위」의 천하에서 현대의「아담」들은 내심 그 아들이 자기의 발가락이라도 닮아주길 눈물겹게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년 10월 말까지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 건수는 모두 1,267건. 이중 60%가 남편 혹은 아내의 부정(不貞)을 이혼사유로 들고 있다. 여기 곁들이게 마련인 것이 친자확인 혹은 친자감정문제- 현대판「솔로몬」의 재판은 그렇게 해서 개정(開廷)된다. 혈액검사로 밝혀낸「남의 아이」의 실례(實例) <사건 1> 남편은 김석환(金錫煥)(가명·50) 아내는 이화자(李花子)(가명·47). 고급 공무원인 남편과「인텔리」인 아내가 50의 문턱에서「서로 갈라지길」선언했다. 최근에 와서 갑자기 가정에 등한해진 남편을 상대로 이여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남편 김씨는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 막내 아들인 영진(永珍)(4)군에 대한 친자확인 소송을 낸 것이다. 남편 김씨에 의하면 영진군은 분명 자기의 자식이 아니며 거기에서 받은 충격으로 그는 수년 동안 가정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김씨와 이여인 그리고 영진군에 대한 혈액검사가 1차적으로 모 의학 권위기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남편은 B형, 아내는 AB형. 그러니까 이 부부 사이의 자식은 법의학상 A형이나 B형 혹은 AB형의 혈액형이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영진군의 혈액형은 O형. 의학은「부권부정(父權否定)」을 선언했다. 친자감정도 안 한 채 처음 원고쪽인 이여인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던 법원은 이와 같은 법의학의 확정 감정으로 당초의 판결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 이 사건은 아직도 해결이 안 난 채 법원에 계류 중이다. <사건 2> 경기도 고양군 을(乙)면, 후미진 산골짜기에 외딴집 두 채가 있었다. 하나는 정삼길(가명·45), 이순자(가명·39)씨 부부의 집이며 다른 하나는 최오철(가명·39), 전양옥(가명·38)씨 부부의 집. 최씨의 부부가 아들 딸 여섯을 두고 있는데 비해 정씨의 부인 이씨는 마흔이 넘어서도 어린애를 낳지 못했다. 이여인에겐 어린애를 못 낳는다고 시댁으로부터 심한 눈총이 들어왔으며 마음에선 정씨에게 소실을 보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때, 결혼생활 25년 동안 어린애를 갖지 못하던 이여인이 뜻밖의 임신을 했다. 남편은 물론 시댁과 마을에서도 이여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분만한 씨는 분명히「불의의 씨」이며 그 씨의 주인은 옆집남자인 최오철씨일 거라는 것. 「부권확정」을 위한「패터니티·테스트」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 실시되었다. 남편이 A형, 산모가 A형, 옆집남자가 O형인데 어린애는 A형. 따라서 이 아이는 정씨의 것일 수도 있고 최씨의 것일 수도 있다는 판정이 나왔다. Rh-Hr형 검사가 2차적으로 실시되었다. 남편이 CC, 산모가 Cc, 옆집남자가 cc인데 아기는 cc. 즉 남편과 산모 사이에는 CC인자형이나 Cc인자형의 자녀만이 출산되며 옆집남자와의 사이에는 cc인자형이 출산될 수 있다. 옆집남자인 최씨와의 불의가 있었음이 인정되었다. 뒤늦게 알려진 얘기지만 남편 정씨는 남성 불임증 환자. 임신을 못해 쫓겨나게 된 이여인은 의식적으로 옆집남자인 최씨를 유혹, 그의 씨를 받아 여권(女權)(?)을 지키려 했던 것. 촌부(村婦)의 무지가 빚은 단막극이었다. 「아버지 아니다」는 알아도「당신의 아이다」는 못가려 법의학에서 응용되는 친자문제는 보통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A라는 사람이 a라는 어린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둘째, A’라는 부인이 a라는 어린이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셋째, A라는 사람과 A’라는 부인이 a라는 어린이의 부모가 될 수 있는가. 친자감정은 우선 혈액형 검사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응용되고 있는 것은 ABO형, MN형, Rh-Hr형 검사이며 외국에선 PQ, Ee, Pp형 검사 등도 실시되고 있다. 혈액형 검사에서는「친권긍정」은 못하고「친권부정」만을 할 수 있다. A라는 아이가 A라는 사람의 아이가「아니라는」것은 증명해도「A의 아이다」는 것은 확정을 못한다. A형의 부(父)와 B형의 모(母) 사이에 난 아이가 B형이라 해서 그 아이가 반드시「A형인 부」의 자식일 순 없다. O형과 B형의 부에게서도 B형의 자식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법의학상 친권부정율은 다음과 같다.(적십자혈액원장 원종덕 박사의 말) ① ABO형으로 산출되는 부권부정율은 19.86%, MN형은 18.74%, Rh-Hr형은 31.93%로 총부정율은 51.36%이다. ② 절대적으로 모권이나 부권을 부정할 수 있는 총 부정율은 26.62%이다. 지문·미각·침 등에 유전학(遺傳學) 적용, 귀지의 습도(濕度)도 부전자전(父傳子傳) 즉 전체 친자감정 건수 중 약 반은「A가 a의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부권부정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반의 해결을 위해 지문, 타액, PTC 등의 다른 검사가 실시된다. 혈액형 검사 이외의 친자감정 방법에 대해 과학수사 연구소 문국진(文國鎭) 법의학과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문 검사> 지문검사는 친자감정에 광범히 이용되고 있다. 생후 한 달 반이 지나면 사람에겐 지문이 생기는데 보통 두 살만 되면 지문검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문이 뚜렷해진다. 지문에는 궁상(弓狀)문, 제상(蹄狀)문, 와상(渦狀)문 등 백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유전된다는 원칙 아래 부모의 것과 자식의 것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다. 지문 외에도 장(掌)문(손바닥), 족적(足跡)문, 구진(口唇)문 등이 친자감정에 이용된다. <PTC 미각검사> PTC(페닐디오카바마이드)란 약을 입에 넣었을 때 쓴맛을 느끼는 사람과 안 느끼는 사람이 있다. 느끼는 사람을 양성, 안 느끼는 사람을 미맹(味盲)이라 하는데 이것이「멘델」법칙에 의해 유전된다는 것이다. <타액 검사> 자기의 혈액형 물질을 침에 배설하는 사람과 배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배설형을 S, 비배설형을 s로 할 때 그 자식의 형을 보는 것이다. <귀지 검사> 사람의 귀지에는 마른 것(乾)과 습한 것의 두「케이스」가 있다. 아버지의 귀지가 마른 것이면 아들도 같이 마르다는 것이다. <인류학적 생체검사> 첫째, 기형(畸形)여부를 본다. 언청이, 요도의 위치, 육손이 등의 기형은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유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째, 계획(計劃)검사를 한다. 예를 들면 신장과 양손 끝(指端間)의 거리의 비율은 항상 같다는 것 등 124개「포인트」를 계측한다. 모발과 눈동자의 빛깔 등도 유전요소가 된다. <산과(産科)적인 고찰> 임신기간과 성교날짜, 배란기에 성교를 했는지의 여부 등을 면밀히 검사하여 친자여부를 감정한다. 희극배우 채플린의 친자확인 소송(訴訟)은 의학계 결론과 달라 말썽 문국진 박사에 의하면 형사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친자확인 소송은 군인들 세계에서 많다. 전방 주둔부대의 군인이 그곳 다방, 술집 등에 근무하는 여성들과 일시적인 정교(情交)관계를 맺는 경우, 몇 년 후에 소위「당신의 아들」을 업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자료, 양육비, 재산상속 등의 문제와 관련되는 친자확인 소송은 돈 많은「화이트·칼라」족에 많다는 것. 유명한 희극배우「채플린」은 몇 번의 정교를 맺은 어느 배우지망생으로부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받은 적이 있다. 「채플린」은 혈액형이 O형, 여자는 A형인데 아이는 B형. 의학계는 친권부정을 판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배심법정은 아이를「채플린」의 씨로 단정, 매주 75「달러」의 양육비와 변호사료 5천「달러」를 지불토록 한「난센스」판결을 내려 세상의 빈축을 산 적이 있다. 서울가정법원 사무국장 김동선(金東先)씨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친자문제와 관련되는 대부분의 사건을「패터니티·테스트」없이 처리한다. 발가락조차 닮지 않은 자식을 할 수 없이 자기의 자식으로 믿고 살아야 하는,「억울한 부권」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다시 부는 주산 열풍

    다시 부는 주산 열풍

    주산 붐이 다시 일고 있다. 전자계산기가 나오면서 골동품이 됐던 주판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주산은 계산력과 집중력, 창의력을 높여 학습에 보탬이 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모습을 감추었던 주산 학원도 최근 많이 늘어났다. 주산 교육의 현장을 찾아 학생들로부터 주산을 배우는 소감을 들어봤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강남구가정복지센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20여명이 주판 알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애숙(36·여) 강사가 숫자를 큰 소리로 부르면 아이들은 그 숫자를 소리내 따라 읽으며 주판을 놓았다.“주판을 털고 놓기를 325원이요.”,“더하기 111원이면.” “답은 436원이요.” “더하기 1111원이면.”, “답은 1547원이요.” “더하기 11111원이면.”,“답은 12658원이요.” “빼기를 11111원이면.”,”답은 1547원이요.” “빼기를 1234원이면.”,“답은 313원이요.” 아이들은 주판이 흔들리면 주판알이 흔들려 오답이 나올까봐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주판알을 놓았다. 아이들은 머릿속에 주판을 그리고 주판 없이 주산을 하는 심산(心算)도 했다. 김 강사는 계속 숫자를 불렀다. 하지만 심산은 주산보다 다소 어려워 단위가 적은 문제를 냈다. 큰 목소리로 답을 말하는 강동운(10·대진초 3학년)군은 “머릿속에 노란 알이 있는 주판을 그리고 계산했는데 재미있다.”고 했다. 7살짜리 아들을 둔 김은희(36·여)씨는 아들이 여섯달째 주산을 배우고 있는데 계산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고 말했다. 주산을 배우기 전엔 1시간 이상 걸리던 수학 문제들을 15분 만에 푼다고 한다. 조현정(36·여)씨의 초등학교 2학년생 딸은 예전엔 두 자릿수 덧셈을 할 때 공책에 당연히 숫자를 쓰면서 했는데 이젠 문제를 보면 바로 답을 낸다. 김명덕(38·여)씨도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동호가 계산을 할 때 손가락으로 세면서 했었는데 최근엔 그런 모습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계산이 더 빠르고 정확해졌다.”고 했다. 김씨는 “형인 동운이는 주산을 배운 뒤 수학은 늘 100점을 맞아온다.”고 자랑했다. 아이들도 급수가 하나씩 오르면서 경쟁도 하고 성취감도 느끼고 있다. 조민재(49)씨는 “유치원생인 아들 이래가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걱정이 됐는데 요즘은 게임보다는 주산을 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말했다. 조이래(7)군은 “학원에서 친구들끼리 더 높은 급수를 따기 위해 경쟁이 붙었다.”면서 “높은 급수를 따 곱하기 계산을 하는 친구를 보면 부러워 나도 빨리 따라잡기 위해 매일 연습한다.”고 말했다. 홍영재(7)군도 “시작했을 때보다 주산을 하루에 2배 이상 연습한다.”면서 “나도 빨리 높은 급수를 따고 싶어 쉬는 시간에도 주판을 잡는다.”고 말했다. 남소현(9·여·대현초 2학년)양도 “한 급수를 올릴 때마다 무엇인가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이달 말 급수시험에서 꼭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곳에 초등학생인 아들을 보내 주산을 배우게 하고 있는 이선주(36·여)씨도 주산 예찬론자다.“아들이 산만해 잠시도 한군데 앉아 있지를 못하고 주변 친구에게 장난을 걸어 학교 선생님한테 자주 지적을 받았다.”는 이씨는 아들을 고민 끝에 아파트 복지관에서 하는 주산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학생 때 주산을 배우면서 집중력이 많이 높아졌던 경험이 생각났다고 한다. 효과는 생각보다 빨랐다. 주산을 금세 익혔고 수학 문제를 풀 때 진지해져 성적도 향상됐다. 게다가 아들은 학교에서 칭찬을 들어 자신감이 생겼고 공부할 때는 성격도 많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양화실(37·여)씨는 “아들 경민이가 집중력이 좋아진 것은 수업시간에 심산을 반복한 결과”라며 이씨 말에 동조했다.“집에서도 자주 나한테 문제를 내라고 한다.”는 그는 “심산을 해 답을 맞히면 ‘나 잘 하지 않느냐.’며 자랑도 한다.”고 전했다. 이영하 이화여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주산을 배우면 계산력이 확실히 능숙해져 수학에 자신감이 생기고 심산을 할 때 주판을 상상하면서 계산해 우뇌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관련된 좌뇌도 함께 좋아진다.”고 말했다.“주판알이 작고 손끝으로 다루기 때문에 순간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틀리게 되므로 집중력도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주산도 어릴 때 배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30~40년전엔 상업고 필수과목 디지털 시대에 고물로 취급받던 주산이 공부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주산은 아날로그 시대에 훌륭한 계산기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20∼30년 전엔 주판 한둘 없는 집이 없었다. 주산 관련 자격증은 취업에 꼭 필요했다. 은행이나 일반회사 경리 자리는 주산급수 자격증이 없으면 취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주산은 모습을 감추었다. 값싼 전자계산기가 널리 보급됐기 때문이다.1990년대 중반 주산은 상고의 정규과목에서 빠졌고 노동부도 2001년 국가기술 자격시험에서 주산부기 시험을 없앴다.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던 급수시험도 사라졌다. 주산 학원도 문을 닫았다. 모든 계산을 계산기로 하게 되자 주산자격증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산이 부활하고 있다. 국제 주산수학연합회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2001년도 전국 주산 학원수는 100개 미만이었고 주산을 배우는 학생수는 200명도 안 됐다. 하지만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붐이 일어났다. 전국 학원수가 1500여개, 전국 학생수는 5000여명으로 각각 늘었다. 지난해엔 학원수와 학생수가 각각 3000여개 3만여명, 올해엔 5000여개 10만여명으로 급증했다.2003년 3월에 문을 연 주산암산학원 예스엠은 1년 만에 가맹점을 2000여곳으로 늘렸다. 어린 시절 주산을 배워 좋은 점을 알고 있는 30∼40대 학부모로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암산능력을 향상시켜 계산을 잘 하는 것은 수학 실력과도 연결된다. 계산을 잘 하면 수학에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두뇌계발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져 집중력이 떨어진 아이들에게 주산은 특히 좋다. 머릿속에 주판을 그리고 계산하는 심산은 더 큰 효과가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국제대회 2위 김민준·지윤 남매 “주산에 재미를 붙이면 수학이 쉬워집니다.” 지난달 2일 세계 15개국의 대표선수 2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태국황실 공주배 국제주산 암산 수학대회’ 초등·중등부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한 김지윤(12·여·울산 굴화초 5학년)·민준(14·울산 삼호중 1학년) 남매 얘기다. 컴퓨터에 밀려 주산을 배우는 학생들이 사라짐에 따라 지난 14년 동안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제주산대회에 출전하지 않아 이들의 수상 의미는 각별하다. 이들 남매가 주산을 접한 것은 1년 전쯤.“주산을 배우기 전 수학은 풀이과정을 이해해도 계산이 틀려 오답이 나오는 등 짜증나는 과목이었다.”는 남매는 “주산을 배우면서 수학에 흥미를 가졌다는 어머니 말을 듣고 주산을 배웠고 수학도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산을 잡은 지 단 1년 만에 국제대회에서 2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서경옥(40)씨의 도움이 컸다. 서씨는 자녀들의 주산교육을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주산교육이 열리는 곳이면 서울과 부산, 대전 등 전국 어디든 찾아 다니며 강의를 듣고 이를 토대로 자녀를 가르쳤다. 서씨는 하루에 한 시간씩 직접 자녀들에게 주산을 가르쳤다. 그러자 이들 남매는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스스로 하루에 1∼2시간씩 주판을 상상하고 주산을 두는 심산을 할 정도로 주산에 매료됐다. 지윤양은 “암산속도가 아주 빨라지고 답도 척척 맞아, 주산이 너무 재미있어 혼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들 남매는 다른 또래 학생들이 1문제를 푸는 사이,7∼8문제를 거뜬히 푼다. 주산 실력이 좋아지면서 남매의 수학성적도 쑥 올라갔다. 주산을 시작하기 전에도 반에서 상위권에 속하기는 했지만 주산을 배운 뒤 수학 성적은 전체 학급을 통틀어 최고로 올랐다. 기억력도 좋아졌다. 암산할 때 나오는 수를 기억해야만 더하기, 곱하기 등 연산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매는 두자릿수 곱셈을 공책에 적지 않고도 척척 해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로 연산을 해 계산력이 많이 떨어진 만큼 더욱 주산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서씨는 “누구나 주산을 쉽게 배울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며 반드시 효과가 생긴다.”고 ‘주산예찬론’을 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1447억 복권당첨 진짜 ‘인생역전’

    1억 1543만 6126유로(약 1447억원)란 유럽 최대 금액의 복권에 여섯 자녀를 둔 아일랜드 여성이 당첨됐다. 남편이 벽돌 직공으로 일하는 돌로레스 맥나마라(46)는 생전 처음 산 유로밀리언 복권으로 유럽 역사상 최대의 당첨금을 챙긴 ‘억세게 운이 좋은’ 주인공이 됐다. 나흘 동안 최고급 호텔에 숨어 있다 4일(현지시간) 더블린의 복권회사 사무실에 나타난 맥나마라는 거대한 수표를 들고 활짝 웃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변호사는 “돌로레스가 가능한 한 빨리 가족들과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며 취재진들에게 그녀의 사생활을 보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로밀리언에 1등으로 당첨되려면 1∼50 사이의 숫자 5개와 1∼9 사이의 행운의 숫자 2개를 모두 맞혀야 한다. 그동안 유럽 최대의 복권 당첨금은 1억 500만유로였다. 세계 최대금액의 복권 당첨자는 2002년 미국에서 파워볼 복권에 당첨된 앤드루 위태커로 3억 1490만달러(약 3949억원)를 받았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박용만(50) 두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친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두산에는 파벌이 딱 하나 있는 데 그게 두산파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가진 만남이었지만 박 부회장의 ‘집안 자랑’은 가풍과 장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력, 비즈니스 패밀리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가족간의 인화가 두산이 10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두산가(家)를 우애깊은 형제지간으로 꼽는다.‘돈 앞에 추한 꼴’을 적잖이 보인 재계 가문이 많았던 탓인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가만의 독특한 가풍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이 그렇게 자랑했던 화목한 집안이 요즘은 쪼개져 살벌하다. 차남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3남 박용성 회장의 추대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동생들의 쿠데타’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으로 각각 주장되며, 양측의 진실공방 싸움이 한창이다. 수년간 쌓여온 형제간 갈등이 이제야 곪아 터졌다는 것이 두산가 안팎의 지적이다. 피붙이가 등을 돌리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비리를 저지른 동생과 조카를 잡아가라.”와 “가문에서 빼버리겠다.”로 상징되는 이번 분쟁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09년 전통의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오너가의 집단 사법처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두산으로서는 호사다마가 아닐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우연히 그룹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지만, 급히 자리를 떴다.6개월 전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어제의 두산과 오늘의 두산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 ●‘박승직상점’이 그룹의 모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인 두산이 1일 창립 109돌을 맞았다. 보름 전만 해도 ‘잔치’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쏙 들어갔다. 두산 창업주 고 박승직씨는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을 열고, 두산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등짐 장사와 면포상, 보부상 등 밑바닥 생활 15년 만에 마련한 가게였다. 이후 박 창업주는 포목상으로 대성공,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 불렸다.1906년에는 중추원 의관과 정3품에 승서되는 등 이미 거상으로서 황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박 창업주는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19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인 공익사 설립에 참여했다.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화기린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다. 박 창업주는 해방 후 새롭게 출발하는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두(斗)자와 묏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재화가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가분과 정정숙 여사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도 바깥 활동이 잦지 않다. 내조와 자녀교육이 최우선 순위다. 이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며느리 고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남인 용곤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박 초대 회장의 안테나에 맏딸 용언씨의 친구인 이응숙(작고)씨가 잡혔다. 다소곳하고 참해 마음이 끌렸다. 박 초대 회장은 지프를 타고 한동안 이씨를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낙점했다고 한다. 가족간 인화에 며느리가 중요하다는 박 초대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초대 회장의 모친인 정정숙 여사와 그의 아내 명계춘(92) 여사는 내조뿐 아니라 남편들 못지 않은 사업수완을 발휘, 여장부로 통했다. 국내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朴家粉)’은 사실상 정 여사의 작품이다. 정 여사는 1915년 부업 삼아 분기술자 3명을 고용, 재래식 화장분을 근대적으로 포장 판매했다. 처음엔 면포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던 미끼 상품이었다가 여성 반응이 의외로 좋아 박승직상점의 어엿한 거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정 여사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 신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박가분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죽은 깨와 여드름이 없어지며, 얼굴에 잔티가 없이 피부가 윤택하고, 고아지게 하는 박가분”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도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한때 운수업을 벌였다.‘남자는 보다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훗날 두산상회의 토대가 됐다. ●귀하게 얻은 늦둥이 박 창업주는 1910년 딸만 여섯을 두다가 첫 아들을 얻었다. 박두병 초대 두산 회장이다. 박 창업주의 나이 46세로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후에 우병과 기병, 규병 등이 태어났지만 우병을 빼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 창업주의 자식 교육은 별났다고 한다. 두산가에서 인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 창업주가 장남에게 들려준 ‘지붕에 소 올리기’다. 가장의 터무니없는 지시도 가족이 믿고 따라야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은 4대째 내려오는 두산가의 좌우명이다. 박 초대 회장은 경성중을 거쳐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한 뒤,1931년 대지주인 명태순의 딸 계춘씨와 결혼했다. 이어 조선은행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박승직상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해방 후 동양맥주를 인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쌓았다.60년대 들어 한양식품(코카콜라·환타 제조)과 윤한공업사(현 두산메카텍),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병유리(현 두산테크팩)를 인수하며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대했다. ●두산 1번은 용곤 명예회장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장유유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장자인 박용곤(73) 명예회장은 여전히 ‘두산의 1번’이다. 전화번호도 ‘1∼2번’을 쓴다. 이어 용오(68) 전 회장(3∼4번), 용성(65) 회장(5∼6번), 용만(50) 부회장(7∼8번) 순이다. 그래서 이번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형제가 어쩌다가….”라며 허탈해 했다. 두산가는 사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재계에서 형제간 최고의 화음을 자랑했다. 이는 박 초대 회장의 철저한 자식 교육에서 비롯됐다. 박 초대 회장은 형제간 말썽이 나면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장자를 혼냈다고 한다. 동생들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도록 했다. 인화와 관련된 박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도 입에 오른다.“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그러자면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지아비는 화하고, 지어미는 순해야 한다. 이럴 때 한 푼의 재산이 없어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스럽다.”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부친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풍양속 차원에서 권장할 일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거죠.” 두산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갖는다. 명계춘 여사를 중심으로 3대(3∼5세)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 ●“남의 눈치밥 먹어봐야….” 두산가는 기업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자녀 교육도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박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이 들려준 부친의 자식 교육은 이렇다.“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은행 근무를 적극 권했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미국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꼭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용곤 명예회장이 일본을 강조해 일본어 공부가 추가로 들어갔죠.”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용성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용만 부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각각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6형제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두산가는 경영수업도 다른 재벌가와 차이가 있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모든 계열사를 거치게 한다. 또 30대 초반에 계열사에 배치해 평균 1∼2년에 한번씩 승진시킨다. 4세도 예외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4세 중 장자인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미국 매켄에릭슨에서 근무했다. 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는 미국 코닥에서, 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박태원(36) ㈜네오플럭스 상무는 효성에서 시작했다. ●“정략 결혼은 피하라”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두산가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정·관계 집안과 직접적인 사돈 관계가 없다. 대부분 평범한 집안과 통혼했으며, 간혹 재계 집안이 눈에 띈다.“자녀 혼사에 정략 관계를 두지 마라.”는 박 창업주의 당부를 후손들이 잘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박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 결혼은 두산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혼사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집안의 첫 경사였지만 ‘재벌가 정략 결혼’이라는 시선 탓에 다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기생으로 양가가 예전부터 서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원씨와 원희씨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 관계가 급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모두 6남1녀를 뒀다. 장녀 용언(72)씨는 당시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7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차남 용오 회장은 1962년 미국에서 만난 최금숙(작고)씨와 결혼했으며,3남 용성 회장은 66년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인 영희(62)씨와 혼례를 올렸다.4남인 박용현 서울의대 교수는 68년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작고)씨와 인연을 맺었다. 5남 용만 부회장은 바깥에 잘 알려진 집안으로 장가갔다. 당시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박 부회장은 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신애(50)씨와 혼례를 치렀다. 그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생으로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6남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딸인 상의(45)씨와 인연을 맺었다. golders@seoul.co.kr ■ 박두병 초대회장등 3명 상의 회장 역임 두산그룹과 대한상의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두산이 재계에서 최고(最古)의 기업이라면 상의도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1884년 한성상업회의소 설립)다. 두산그룹 회장은 묘하게도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54년 공식 출범한 이후 배출한 회장은 12명. 이 가운데 두산그룹 회장 출신은 무려 3명이나 된다. 고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이 1967∼73년 상의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상의 수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현 두산 회장도 2000년 이후 상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상의의 반백년 역사 가운데 총 20년을 두산측에서 집권한 셈이다. 특히 대(代)를 이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곳은 두산 박씨가(家)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4세에서도 상의 회장이 나올지 주목된다.30년간 상의에서 근무한 전 임원은 박두병-용성 부자에 대해 “성격 급하고, 타성에 젖은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게 꼭 붕어빵”이라고 했다. 사실 두산과 상의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906년부터 5년간 상의의 전신인 경성상업회의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무려 3대가 상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용성 현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역대 회장 가운데 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출근한 첫 날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이렇다고 한다.“예산 규모나 회원사 수, 단체의 역사로 보면 상의가 국내 경제5단체 중 맨 앞인데 왜 항상 전경련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이냐. 앞으로 경제단체를 소개할 때는 상의를 맨 앞에 써라. 가나다 순으로 해도 상의가 전경련보다 앞이 아니냐, 또 우리는 법에 의한 단체고 나머지는 임의 단체로 사단법인으로 해서 승인 받은 데가 아니냐.”고. 그러나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으로 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golders@seoul.co.kr ■ 3·4세 MBA출신 많아… 며느리는 ‘이화의 딸’ ‘가방 끈’이 긴 두산가문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는 당연히 따야 할 자격증처럼 보인다.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오너 집안인 데다 미국 유학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만큼 3세 ‘용’자 돌림과 4세 ‘원’자 돌림 대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했다.3세 가운데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다만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뉴욕대를 나왔다. 3세 가운데 MBA 학위를 딴 사람은 3남인 박용성 두산 회장과 5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박 부회장은 보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4세로 넘어가면 MBA는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원’자 돌림 15명 가운데 박용곤 회장의 장녀인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를 뺀 9명이 MBA 학위를 갖고 있다. 또 박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 등 학업중인 4세가 5명이나 돼 앞으로 MBA 학위 소지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안에 MBA 출신이 많다 보니 동문들도 적지 않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숙부인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MBA 출신이다. 또 박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등 6명은 모두 뉴욕대 MBA 동문들이다. 이밖에 박 교수의 차남인 박형원 ㈜두산 식품BG 차장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이며, 박인원 ㈜두산 전자BG 과장은 하버드대 MBA 학위를 땄다. 반면 며느리들은 ‘이화의 딸’들이 많다. 서미경(박경원 전신전자 대표 부인·고대 신문방송학과)씨와 이상의(박용욱 이생 회장 부인·한양대 기악과)씨를 빼면 대부분 이대 동문들이다. 맏며느리인 고 이응숙씨를 비롯해 김영희(셋째 며느리), 고 엄명자(넷째 며느리), 김소영(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부인), 서지원(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부인), 정윤주(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부인)씨 등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은 이대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박지원 부사장과 부인은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방학엔 다도해 비경을

    방학엔 다도해 비경을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초·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는 여행지를 정하는 일이다. 모처럼 가족들끼리 푸른 바다에 몸을 담그고 쉴 수 있는 곳이라야 하고, 아이들에게 뭔가 유익한 추억도 남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피서객들로 크게 붐비지 않는 즐겁고 유익한 여행지가 없을까. 그렇다면 주저없이 다도해가 펼쳐진 서남해안으로 떠나보자.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쪽빛 바다와 남도 특유의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맛깔스러운 음식이 있어 아이들의 편식 걱정은 접어도 좋다. 대부분 살찔 염려가 없는 웰빙 식품이라 어른들에게도 딱이다. 여름 성수기에도 비교적 사람들이 크게 붐비지 않는 다도해의 비경 외달도(목포)와 조도(진도)로 안내한다. 목포·진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외국에 온 것 같아요” - 외달도 ●아이들을 위한 열대의 쪽빛섬 ‘여기가 우리나라 맞아?’‘사랑의 섬’이라는 별칭이 붙은 목포의 외달도는 이름만큼이나 예쁜 섬이다. 열대 지방의 리조트를 연상시킬 만큼 이국적인 정취를 뿜어낸다. 푸른 바다와 인접한 해수풀장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외달도행 신진페리(061-244-0522)에 오르자 서남해안에 점점이 박힌 섬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외달도는 목포에서 불과 6㎞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고하도와 달리도, 율도를 거쳐 도착하기 때문에 시간은 50분쯤 걸린다. 요금은 1인당 왕복 7000원. 페리는 2시간 간격으로 하루 6차례 운항한다. 배를 놓치면 북항(270-8584)에서 일명 ‘쌕쌕이’로 불리는 낚싯배를 이용하면 된다. 10명까지 인원에 상관없이 편도 2만 5000원이다. 시간은 15분. 선착장에 내려 해변을 따라 왼쪽으로 100m쯤 지나 해변에 인접해 있는 해수풀장(276-9676)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아우성이 즐겁게 메아리친다. 지난해 완공돼 올해가 사실상 첫 개장으로 아직까지는 덜 알려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적다. 청정해역의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 해양수산부로부터는 ‘100대 아름다운 섬’으로, 전남도에서도 ‘아름다운 섬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오전 9시 문을 열어 오후 5시 문을 닫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해수욕장과 샤워실 등 시설 이용료가 없다는 것. 내년에는 유료화를 검토중이지만 크게 비싸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목포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숙박용 텐트는 1박에 2만원(275-9676). 해수풀 앞에는 갯벌 생태체험장이 있어 각종 조개와 고둥을 채취할 수 있어 어린이들을 위한 훌륭한 자연학습장 구실을 한다. 해수풀 뒤에는 왕골이 우거진 천연 습지가 있어 개구리 울음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섬은 걸어서 30분이면 일주할 정도로 크지 않지만 경치가 빼어나다. 선착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으면 멋진 해상 콘도형 유료 낚시터(246-3170)가 있는데 바다에 설치된 가두리 양식장에서 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다. 낚싯대와 미끼는 무료로 제공되며 잡은 고기의 종류에 따라 돈을 내면 된다. 참돔은 마리당 1만 6000원, 농어·감성돔은 마리당 8000원이다. 무료로 회도 썰어준다. 이 곳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는데 1인당 7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3만원이다. 외달도에 붙은 무인도 별섬은 앙증맞을 정도로 귀엽다. 외달도 해수욕장과 등대, 갯바위 낚시터 등도 있으며, 섬 중심에 있는 해발 64m의 매봉산은 최고의 산책코스다. 이 곳의 먹을거리는 최고의 여름 보양식. 특산물인 전복과 고둥, 굴, 소라 등 해산물 요리와 토종 촌닭을 맛볼 수 있다. 아이들의 편식 걱정을 접어도 좋을 만큼 맛있다. 해수욕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김순엽 민박집(261-1347)이 있다. 무공해 야채와 도다리 매운탕 등 한상 가득 나오는 한정식이 1인당 5000원이며, 촌닭 1마리 3만원, 전복은 15마리를 썰어 한접시에 7만원이다. 숙박료는 2만 5000∼3만원이다. ●세계에서 2점뿐인 공룡화석 목포의 박물관은 다른 곳과 달리 알차다. 자연사박물관과 국립해양유물 전시관이 있는데 모두 국내 최고의 전시관이다. 용해동 입안삼 자락에 있는 목포 자연사박물관(276-6331)은 12개 전시관에 1만 3000여점의 희귀 전시품을 전시한 자연생태학습의 요람이다. 지구 46억년의 자연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질관 등은 세계에 단 2점뿐인 공룡화석 렙토세랍토스와 임신한 해양파충류 화석이 전시돼 있다. 성인 3000원, 초등학생 1000원. 인근 국립해양유물전시관(270-2000)은 우리의 오랜 해양역사의 하나인 고대 선박의 발달사와 송·원대 도기문화를 보존·전시하고 있다. 완도선실, 신안선실 등 4개 전시실에는 해저에서 인양한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성인 600원, 어린이 무료. 인근에는 남농기념관과 문화예술회관이 있다. 외달도 옆 고하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108일 동안 머물던 곳으로 사당이 있다. 목포시청 관광과(270-8217). ■ 절로 신나는 섬-조도 ●푸른 바다에 깃털처럼 뿌려진 조도 남근바위(방아섬), 똥섬(변도), 모자섬(산자도)…. 푸른 바다에 섬들이 새의 깃털처럼 흩뿌려져 있다 해서 붙여진 조도. 푸른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154개의 섬들은 작은섬 하나하나가 자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모양만으로도 그 이름을 대충 어림잡을 수 있을 만큼 섬 모양이 특이하다. 팽목항에선 조도 어류포행 조도고속페리(061-542-5383), 신해고속페리가 하루 여섯편 운항한다. 이 중 두편은 관매도까지 간다. 조도까지 편도 3000원, 승용차 운반비 1만 4000원(운전자 포함). 떠나기 전에 미리 운항여부와 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섬들의 중심인 조도의 어류포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가슴을 열어준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조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도리산 돈대봉. 항구에서 일주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돈대봉에 도착하자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섬들을 감싼 해무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섬을 도는 해안도로의 길이가 100㎞에 이를 정도로 긴 만큼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가족 여행을 온 곽혜영(53·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전망대 앞에 펼쳐진 섬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일본 도치기현에서 9년째 살다가 최근 귀국한 곽씨의 친척 박미애(47)씨는 “일본의 3대 절경인 미야기(宮城)현의 마쓰시마(松島)보다 훨씬 예쁘다.”면서 “섬사이에 피어오르는 해무가 절경이다.”고 말했다. 매도는 3㎞에 이르는 백사장과 3만평의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모래사장이 곱디곱다. 배를 타고 관매8경을 돌아보면 좋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진도 남도국립국악원과 인접해 있는 개인 미술관인 나절로 미술관(010-9457-8841)은 이 일대 최고의 숙박 명소. 지난 94년 손수 가꾼 이색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추상화가 이상은(53)씨가 운영하고 있다.‘나절로’는 이씨의 호로 ‘스스로 흥에 겨워’란 뜻의 호남 사투리다. 이씨가 폐교된 3500여평 규모의 상만초등학교를 인수해 가꾼 곳이다. 미술관 정원에는 무성한 담쟁이 덩굴과 108번뇌의 얼굴을 표현한 돌상이 어우러져 있다. 이 미술관에는 7개의 방이 있어 주로 예술인들에게 방을 내주는데 전화로 예약하면 일반인도 숙박할 수 있다. 토담으로 지은 찻집에서는 차를 마실 수 있으며, 야외에는 바비큐 시설과 원두막이 있어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 숙박료는 2인 1실 2만 5000원. 인근엔 정유재란때 충무공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왜선 330여척을 무찌른 명량대첩지가 있다. 가계해수욕장에서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인 신비의 바닷길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유익한 여행지는 세계적인 명견인 진돗개(천연기념물 53호)를 보는 것. 진돗개시험연구소(540-3388)와 인근에 있는 사육장을 둘러볼 만하다. 진도개의 본산으로 철저한 혈통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돌담한정식(544-1170)에서는 한정식과 갈치조림, 병어조림, 보리쌈밥(1인분 6000원) 등 남도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진도군 문화관광과(540-3219)
  • “이제 그만 낳아도 될 것 같네요”

    “12번째 보물을 선물받았어요.” 서울에서 자녀를 가장 많이 둔 남상돈(40·동대문구 제기동)·이영미(40)씨 부부가 12번째 아이 ‘똘순이’를 낳았다. 아내 이씨는 지난달 30일 밤 12시1분에 경희의료원에서 10시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으로 몸무게 3㎏의 건강한 딸을 순산했다. 남편 남씨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계획은 없다.”면서 “나이가 들면서 몸도 점차 힘들어지는 데다 이제 아들과 딸이 각각 여섯명으로 균형이 맞게 됐으니 그만 낳아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이들 부부는 1987년 결혼한 뒤 경한(18), 진한(12), 석우(10), 휘호(9), 다윗(7)군과 아직 이름을 못 지은 똘이(2) 등 아들 여섯에 보라(17), 지나(14), 세빈(8), 세미(5), 소라(4)양 등 딸 다섯을 키워왔다. 부부는 이번에 낳은 똘순이와 아직 이름을 못지은 똘이에게 나머지 10명의 아이들처럼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줄 계획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일터인 식당에 딸린 방에서 월세로 살았지만 서울시의 도움으로 이달 중 영등포구 당산동의 34평형(전용면적 25.7평) 시영 임대아파트로 옮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남씨는 “임대 보증금 4454만원에 월 57만원의 임대료를 내거나 1억 4000여만원의 전세로 최장 50년간 임대아파트에 살 수 있게 됐지만 전세금 구하기가 막막하고 월세도 부담이 너무 커 이사를 가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파크골프 이젠 한강에서

    파크골프 이젠 한강에서

    오늘날 사회문제 중 하나가 세대간의 갈등이라 한다. 갈등을 줄이려면 함께 몸을 부딪치며 땀을 흘리는 게 좋다고 한다. 잔디밭에서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까지 3대가 함께할 수 있는 레포츠, 파크골프를 권한다. 골프처럼 돈이 많이 들거나 배우기 어렵지 않은 파크골프는 골프와 게이트 볼의 중간 형태인 신종 레포츠다. 초등학생이나 노인들도 간단하게 배워서 즐길 수 있다. 더욱이 비용도 저렴하고, 한강시민공원에 파크 골프장이 있어 접근하기도 쉽다. 이번 주에는 가족과 함께 ‘나이스∼샷’ 한번 외쳐 볼까요.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아이들과 함께 가는 골프장 화창한 5일 여의도 63빌딩 앞 시민공원의 파크골프장을 찾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한쪽 구석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스윙을 배우고 있다. 그늘 밑에 깔아놓은 돗자리에선 아기가 곤하게 잠을 자고 저만치에서는 도시락을 싸 온 가족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상식을 깨는 골프장, 파크골프장은 가족나들이 장소다. 바로 앞에 있는 필드로 나가 보았다. 제법 넓었다. 파란 하늘과 도심의 빌딩, 초록 잔디가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할아버지 ‘나이스 샷∼’ 잔디를 밟다 보니 보송보송 기분이 좋다.4번 홀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들까지 모두 여섯 명이 티샷을 날리고 있었다.“와∼ 할아버지 파이팅.”“우리 아버지 멋쟁이.” 할아버지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필드에 가득 퍼졌다. 멋지게 티샷을 날린 할아버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태우야, 이번엔 네 차례다!” 뒤이은 손자, 폼은 그럴싸한데 공은 엉뚱한 데로 날아갔다. 가족들이 “우∼”하고 야유를 보내자 할아버지는 “다음에 잘 할 게야.”라고 손주편을 들어준다.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 파크골프만의 매력인 것 같다. 파크골프는 신체 조건이나 세대에 상관없이 배우기 쉽다. 얼마나 공을 멀리 보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공을 잘 다루느냐가 키포인트. 파크골퍼들의 실력도 엇비슷하다. 오히려 섬세한 여성들의 점수가 더 잘 나오기도 한다. ●훨체어까지 필드로 일반 골프는 장애인들은 좀체 접근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파크골프는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해서도 그린 위를 다닐 수 있다. 8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도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든 김병창(62)씨가 가족들의 부축을 받고 그린 위에서 한손으로 골프를 하고 있다.“정말 좋은 운동입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잔디를 밟으며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니 행복합니다.” 매일 집안에서만 지냈던 김씨는 주말 가족들과의 파크골프가 새로운 삶의 활력이 됐다고 말했다. ●부담없이 즐겨라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들른다는 이종국(51·인슈넷 대표이사)씨는 “파크골프는 가족들간의 대화도 되찾아 줍니다. 게다가 가격도 부담없어요.”라고 말했다. 한강파크골프장 9홀을 라운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 정도. 이씨는 아들과 라운딩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홍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큰아들 태우와는 회사경영이론이나 경영철학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연세춘추’편집장 둘째 달우와는 주로 정치·사회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이야기를 하니까 자녀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자녀들 또한 아버지의 고충을 알게 돼 친구처럼 됐단다. 어린 손자와 함께 파크골프를 치러 온 전윤석(62·파크골프협회 부회장)씨는 “어린이들이 골프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규칙이나 매너를 배울 수 있어 좋다. 손자들이 자세도 엉성하고 재대로 치지도 못하지만 주말에 잔디밭에서 하루 놀다 간다는 기분으로 간단하게 도시락을 준비해서 주말마다 온다.”고 한다. ●짜릿한 손맛 “와∼ 나이스 버디!”라는 환호성을 지르는 김안금(46·커피숍 경영)씨는 선배인 김재분(51·주부)씨의 버디샷에 박수를 보냈다.“홀컵에 공이 빨려 들어갈 때 너무 짜릿해요. 골프보다 더 재미있어요.”라고 활짝 웃어보였다. 네이버의 파크골프 동호회 회원인 양민숙(42·현대디지텍)씨는 “타수를 한타 한 타씩 줄여가는 것이 파크골프의 묘미”라며 “홀인원을 했을 때는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찼어요.”라고 말했다. 9홀 33타가 기본이지만 초보는 대개 45∼50타를 친다. 하지만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으면 25타 내외를 치는 프로급도 있다. 한국 파크골프협회(www.parkgolf.or.kr,02-412-4397)나 네이버 카페의 파크골프 동호회(cafe.naver.com/1parkgolf)에 가입하면 쉽게 파크골프에 입문할 수 있다. ■파크골프가 뭔데~ 파크골프(Park Golf)는 일반 골프가 아닌 공원에서 치는 일종의 변형 골프다. 게이트볼과 골프의 중간 형태로 골프와 규칙은 비슷하지만 장비는 간단하다. 감나무로 만든 헤드와 금속 샤프트로 이뤄진 클럽 한 개에 플라스틱 공, 고무 티만 있으면 된다. 일반 골프공보다 큰 6㎝ 직경의 플라스틱 공은 하늘로 날아가지 않고 굴러가거나 낮게 떠가는 것이 특징이다. 홀은 파 3∼5로 구성돼 있는데 9홀이 구비된 한강파크골프장인 경우 가장 긴 홀이 92m고 가장 짧은 홀은 30m이다. 보통 홀 간 거리는 20∼100m 정도로 9홀 기준으로 파(Par)는 33타이다. 처음 치는 사람의 경우 평균 45타가 넘게 나오지만 몇 번 치다보면 곧 익숙해진다. 골프와 마찬가지로 페어웨이 위로 공을 굴리는 게 타수를 줄이는 비결. 공이 잘 뜨지 않아 러프를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홀컵이 크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 그냥 툭 쳤다가는 금방 타수가 늘어난다. 치는 즐거움을 더해주기 위해 벙커·해저드·브리지 등 다양한 장애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파크골프는 1984년 일본 북해도에서 시작된 운동. 파크골프장은 한강 시민공원처럼 하천부지 등을 활용해 만들 수 있다.18홀을 만드는 데 3000평이면 충분해 도심 레저스포츠로 알맞다. 또 적은 비용으로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쉽게 즐길 수 있어 ‘패밀리 레포츠’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파크골프 인구가 150여만명에 이른다. ■전국 여기저기서 즐기세요 1998년 강원도 평창 보광휘닉스파크에 6홀이 처음으로 조성됐다. 이어 양지 파인리조트와 제주 한화리조트, 대명 비발디파크에도 생겼다. 지난해 5월 파크골프협회가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 9홀(2300평)을 만들어 본격적인 파크골프의 시대를 열었다. 또 경남 진해에도 오는 8월 파크골프장이 생기고 전남 목포, 경기도 고양·용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운동화에 간편한 복장이면 준비 끝. 경비는 클럽 대여료와 강습료를 포함해 1인당 5000∼8000원.2명 이상이면 게임이 가능하지만 네 명이 한 팀을 이루는 게 좋다. ■Rule 루랄라 알고 치면 너무 쉬워요 티샷부터 퍼팅까지 하나의 클럽만 쓰는 것이 특징.86㎝ 길이에 주먹보다 조금 큰 헤드가 달려 골프의 드라이버와 비슷한 모양새지만 길이가 짧아 휘두르기가 편하다. 하지만 공을 치는 타구면의 각도(로프트)가 90도보다 작아 공이 잘 뜨지 않는다. 값은 15만원 수준. 공은 지름 6㎝ 크기에 합성수지로 만드는데 골프공 표면과 달리 요철(딤플)이 없어 매끈하다. 공의 색깔로 자신의 공을 표시한다. 한강파크골프장에는 파랑·노랑·분홍 등 모두 여섯 가지 색의 공이 있어 한번에 여섯 명이 동시에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룰도 골프와 비슷하다. 홀마다 3∼5타의 규정 타수가 있는데 18홀 기준으로 66타가 기준이다(한강파크골프장은 9홀이므로 두번 라운드를 하게 된다). 공이 큰 만큼 홀컵도 20∼21㎝ 정도로 크다. 경기금지구역(OB구역)으로 공이 나가면 2벌타를 받는다.18홀을 도는 데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0년’ 기념 신곡낸 남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0년’ 기념 신곡낸 남진

    ‘오빠부대’에도 원조가 있다. 지난 1971년 9월16일 서울 세종로 시민회관 분장실. 당시 스물 여섯살의 젊은 가수가 초조하게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과연 관객이 얼마나 올까.’ 베트남전에 청룡부대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지 3개월 만인 데다 국내 가수로는 첫 리사이틀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날 따라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공연시작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관객의 발길이 뜸했다. 그러나 30분 전. 약속이나 한 듯이 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여성 관객이 70%. 역사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엘비스 프레슬리 의상을 차려 입은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여기저기에서 ‘오빠, 오빠’ 하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공연은 전례없는 대성공. 이후 공식 팬클럽이 생기면서 ‘오빠부대’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오빠부대’ 원조…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른바 ‘오빠부대의 기수’ 남진씨. 흔히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남씨와 프레슬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프레슬리는 21세때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자신이 부른 노래를 소재로 한 영화에도 출연, 팬들을 사로 잡았다. 남씨 역시 21세때 ‘가슴아프게’로 스타가 됐다. 또한 자신의 노래를 영화화한 ‘가슴아프게’‘울려고 내가 왔나’‘별아 내가슴에’ 등에 출연, 더욱 인기를 모았다. 헤어 스타일이나 몸동작 그리고 하얀 가죽옷에 금속장식이 있는 프레슬리 의상 차림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남씨는 올해로 만 60세이자 가수로 데뷔한 지 꼭 40년째. 그동안 두세 차례 공백기가 있었지만 가요 40년사를 관통하는 빅스타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블루스 트로트 왈츠 차차차 트위스트 등 장르를 뛰어넘는 천부적인 가창력과 특유의 무대동작은 인기의 보증수표. 아울러 숙명의 라이벌인 나훈아씨도 아직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어 둘이 함께하는 ‘빅쇼’를 기대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남씨는 ‘노래인생 40년’을 기념해 최근 신곡을 무려 여섯곡이나 내놓으며 새로운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신곡은 ‘둥지’와 ‘모르리’에 이어 2년 만이다. 서울 여의도 모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남방셔츠의 윗단추를 두 개 정도 풀어헤치는 평소의 모습을 연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탈하면서 깔끔한 옷차림었다.‘원조 오빠’의 멋은 여전히 풍겼다. 우선 신곡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지난 2년 동안 신곡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다.”면서 원래 일곱 곡을 예정했으나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우선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대표곡은 ‘저리가’(김동찬 작사·차태일 작곡). 지난 40년 세월을 잘 녹여 담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8월 특별무대 이어 가을부턴 전국투어 어쨌든 이번 신곡발표를 계기로 제2의 노래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오는 8월 두시간여 동안 특별무대를 마련한다. 신곡과 추억의 히트곡, 또 잘 알려지지 않은 금지곡 등으로 팬들과 새롭게 만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 가을부터 전국투어를 나서 또 한번 ‘바람몰이’에 도전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와 관련,“노래를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다. 정말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 하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데뷔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소회를 피력했다. 잠시 지난 세월을 회상하던 그에게 공전의 히트곡 ‘가슴아프게’를 불쑥 꺼냈다. 그러자 “원래 제목은 ‘낙도 가는 연락선’이었다.”면서 “작사가 정두수씨의 고향이 하동이라 하동포구를 연상하며 글을 썼는데 너무 올드패션 느낌이 들어 고민 끝에 ‘가슴아프게’로 바꾸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님과 함께’는 작곡가 남국인씨의 부인이 작사한 곡. 처음에는 동요처럼 느껴졌지만 때마침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삽시간에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는 국민가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반면 금지된 곡도 여럿 된다고 했다. 데뷔하던 해에 ‘서울 플레이보이’‘울려고 내가 왔나’‘연애 0번지’ 등 신곡을 잇달아 발표했다.‘연애 0번지’의 경우 ‘달콤한 입술로 윙크하는 연애 0번지여∼’라는 노래인데 곧 ‘퇴폐곡’으로 낙인찍혀 금지되고 말았다. 또 이 무렵 발표된 ‘사랑하고 있어요’도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러다 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울려고 내가 왔나’가 오히려 인기를 끌었던 것. 시골에서 상경해 고생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가닥 위안을 주는 노래라는 이유에서였다. 문득 ‘라이벌 나훈아’와 합동공연 여부가 궁금해졌다. 주저없이 “팬들이 원하고 있는 만큼 내년 정도에는 (합동)공연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제는 (팬들에게)보답할 때가 됐다.”며 웃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우정’이든 ‘라이벌’이든 무대에 같이 서면 나름대로 가요계에 의미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모 언론사에서 흥미있는 조사를 했더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라이벌 1위는 ‘정주영-이병철’ 2위는 ‘남진-나훈아’라고요. 사실 나훈아는 나이로 보나 가요계 데뷔로 보나 4,5년 후배지요.‘라이벌’은 흥행사들이 만들어냈지요. 하긴 술자리나 여학교 등에서 ‘남진 팬’과 ‘나훈아 팬’이 서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많았지요. 아무튼 우리 가요사에서 남인수-현인 선배 이후 최고의 라이벌이라고들 합디다. 특히 스타일과 분위기, 고향 등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빅이벤트감이지요.” 나훈아씨와 만나느냐는 질문에 “어쩌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있어도 별도의 만남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목포 부잣집 장남… 해병대로 베트남 참전 남씨는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목포 부잣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포 북초등학교를 나온 후 부친을 따라 서울에서 경복중학교를 다녔다. 다시 고향에서 목포고를 나온 뒤 평소의 꿈인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부친이 돌아가시던 65년에 어머니(13년 전 작고)의 전폭적 지지로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인기가수로서 명성을 막 날리기 시작할 때 돌연 해병대에 입대했다. 일본 공연을 앞두고 병역미필로 불발되자 곧바로 해병대를 자원했던 것. 훈련을 마친 후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의 다낭과 호이안 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여기에서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사과상자에 가득 담길 분량의 팬레터를 받았다. 대부분 여성팬. 주위 전우들 사이에는 팬레터와 예쁜 사진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에 골인한 전우도 있었다. “영화 출연은 지금까지 50여편되지요. 윤정희 남정임 문희 등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자주 출연했습니다. 특히 남정임은 같은 학과 메이트였지요. 최근에는 2년 전 상영된 ‘대한민국헌법 1조’에서 신부역을 맡았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달리 스스로 ‘마마보이’라고 말하는 남씨. 그런 가정적 영향 때문인지 자녀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이고 싶어한다. 남씨는 부산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 3녀1남을 연년생으로 두었다. 딸 셋은 국내에서 대학에 다닌다. 막내인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 중. 남씨의 딸 사랑은 극진하다. 하루에도 십여차례 전화를 걸어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눈다. 대신 해가 떨어질 무렵이면 반드시 귀가해야 한다는 엄한 규정을 정했다. ●“더욱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 부르겠다” 건강관리를 위해 자택(경기도 분당) 주변의 헬스클럽을 가끔 찾는다. 골프 핸디캡은 10정도이며, 이탈리아 칸초네와 프랑스 샹송을 듣는 취미도 있다. “(노래 부를)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경험을 잘 살려 더욱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본명은 김남진(金湳鎭). 데뷔 직전 문여송 감독이 ‘남쪽의 보배’라는 뜻을 담긴 ‘남진(南珍)’으로 예명을 지어주었다. 이후 가요계의 보배로 40년 동안 이름값을 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목포 출생 ▲56년 목포 북초교 촐업 ▲60년 경복중학 졸업 ▲62년 목포고 졸업 ▲65년 한양대 영화과 졸업 ▲65년 ‘서울플레이보이’로 데뷔,‘울려고 내가 왔나’ 등 발표 ▲66년 ‘가슴아프게’ 발표, 영화 ‘형수’‘가슴아프게’ 데뷔 ▲67년 MBC방송 신인상 수상 ▲69년∼73년 TBC방송 남자 가수상 대상 3회 수상 ▲69년∼71년 베트남전 참전 ▲71년 서울 시민회관 첫 리사이틀공연, 한국 무대예술상 그랑프리2회 수상 ▲71년∼73년 MBC10대가수왕 연속 3회 ▲72년∼77년 리사이틀 5회 공연 ▲91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2000년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 대표곡 가슴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 별아 내가슴에, 미워도 다시한번,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마오, 지금 그사람은, 빈잔, 둥지 등.
  • “자식 11명… 외계인 아니라 애국자죠”

    “자식 11명… 외계인 아니라 애국자죠”

    서울 동대문구 동서시장에 위치한 전주식당.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면 식당은 한살배기 갓난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축구팀을 꾸려도 충분한 11남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들은 식당주인 남상돈(40)·이영미(40)씨의 ‘보물’이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남씨 가정이 서울에서 자녀를 가장 많이 둔 곳으로 꼽혔다.5월 현재 서울에서 주민등록상으로 자녀를 가장 많이 둔 가정은 10남매를 둔 2곳이다. 그러나 남씨 가정은 최근 ‘똘이’가 태어나 11명의 ‘군단’이 됐다. 이름을 짓지 못한 똘이는 아직 출생 신고를 못했다. 똘이 위로 소라(4), 세미(5), 다윗(7), 세빈(8), 휘호(9), 석우(10), 진환(12), 지나(14), 보라(17), 경한(18)이 등 6남5녀. 남씨 부부 외에는 아무도 이들의 이름과 서열을 외우지 못할 정도다. 2년동안의 열애 끝에 결혼한 남씨는 다섯째를 낳을 때만 해도 아이가 그다지 많다고는 못느꼈다. 승용차에 가족을 싣고 여행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섯째 아이가 생겼을 때에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도 ‘생명’을 포기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많아지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이 없다.’는 속담처럼 집안에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집에 케이크를 하나 사오면 물어뜯고 싸우기 일쑤였다. 이럴 때 남씨 부부가 세운 원칙은 단 하나. 아이들을 꾸짖기 보다는 각자의 얘기를 모두 다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최근에는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을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등의 ‘질서’가 생겼다. “나이를 얼마 먹지 않았는데 아이를 11명 두었다고 하면 외계인으로 취급 당하기 일쑤입니다. 한때 가족 수를 물어보면 일부러 반으로 줄여서 대답하곤 했지만 이제는 큰 소리로 말합니다. 농담삼아 저출산 시대인 요즘 저같은 사람이 애국하는 게 아니냐고 합니다.” 그래도 11남매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있다. 빠듯한 살림살이와 식당일의 고단함이다. 남씨는 물론 유행에 민감할 아이들조차도 그 흔한 휴대전화 하나 없다. 제법 공부를 잘하는 맏이가 급식비를 아낀다고 급식 당번을 자원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대견하면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잘나가는 대기업의 ‘과장님’이던 남씨는 외환위기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아파트까지 경매에 넘기면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교육만은 제대로 시켜볼 작정이다. “꼭 물건에 돈을 투자해야 투자가 아닙니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일꾼을 낳는 것도 투자라고 봅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면 사회에서 자기 몫을 잘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하는 게 전부입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방학2동 주민자치센터]“공무원 선생님들 너무 좋아요”

    [방학2동 주민자치센터]“공무원 선생님들 너무 좋아요”

    지난 19일 오후 6시 반 서울 도봉구 방학 2동 주민자치센터 2층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대부분의 주민자치센터는 문을 닫을 시간인데 1층에서는 김밥과 떡볶이 냄새가 풍겼고, 건물 여기저기서 중·고등학생 대여섯명의 웃음 소리도 들렸다. ●일과 뒤 저소득층 자녀 영어·수학 무료 지도 7시가 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네 팀으로 나뉘어 교양강좌실 책상에 흩어져 앉았다. 떡볶이 등으로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마친 선생님들은 담당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시작했다. 장소만 주민자치센터일 뿐 그룹 과외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설마 공공시설에서 불법 과외를? 다름아닌 도봉구의 신입 공무원들이 무료로 아이들에게 과외를 해주는 ‘참빛교실’의 현장이다. 최근 입사한 ‘빵빵한’ 실력의 신입 공무원 29명이 방학2동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자녀 22명에게 영어·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선생님은 한 번씩 참빛교실에 나와 수업에 참여한다. ●학생 22명에 ‘새내기 교사’ 29명 참빛교실은 지난 9일부터 시작됐다. 처음 이 일을 제안한 김미혜(43·여)씨는 방학2동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딸에게 학원도 보내주기 어려운 처지인 어느 아버지가 딸의 학업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무료 과외 수업을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재곤 방학2동장은 “공간이 넓은 자치센터를 야간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김 주임이 좋은 제안을 해왔다.”면서 “신입 공무원들이 흔쾌히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일찌감치 자치센터에 도착해 수업을 기다리던 김영미(가명·15·여)양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학교 외에는 마땅히 공부를 배울 곳이 없었다.”면서 “학원을 다니는 다른 아이들처럼 방과 후에 친구들이랑 언니·오빠들이랑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의 의지도 대단하다. 도봉구청 문화체육과에서 일하는 김지연(25·여)씨는 “이제는 수업이 없는 날도 아이들을 보러 오게 된다.”면서 “아이들에게 참된 빛을 비춰주자는 ‘참빛교실’의 이름처럼 전문 선생님보다 실력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수능 공부방’으로도 활용 추진 지금은 중학생이 대부분인 무료 과외방만 운영되고 있지만, 앞으로 방학2동 주민자치센터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수능 EBS 공부방’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도봉구에서는 이를 위해 컴퓨터 시설과 부대 비용 등을 제공해줄 예정이다. 방학2동 주민자치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난해 12월15일 새로 문을 열었다. 지하에는 60평의 체력단련실과 요리 강습실이 있다. 주민들은 누구나 3개월에 4만원만 내면 러닝머신 등 다양한 운동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 ●요가·스포츠댄스 3개월에 1만 5000원선 1층은 사무실이며, 2층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2층 교양강좌실에서는 서예, 사군자 등의 강의와 과외 교실이 열린다. 인터넷 방에는 6월 중 8대의 컴퓨터가 비치될 예정이고, 새마을 문고에도 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고 인기 교양강좌인 요가와 스포츠댄스는 3층 75평의 강당에서 열린다. 3개월 단위로 선착순 모집하며, 강습료는 3개월에 1만 5000원 정도로 일 주일에 두시간 가량 진행되는 알찬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웰빙 가족나들이 이천으로…

    웰빙 가족나들이 이천으로…

    가족 나들이에도 ‘웰빙’ 열풍이 거세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피로도 풀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이 각광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23일부터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경기 이천은 최적의 웰빙 가족 여행지. 지구촌 도자기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맛있기로 유명한 이천 쌀밥을 맛보고, 온천으로 쌓인 피로도 풀 수 있다. 여기에 친환경 농촌마을인 부래미마을과 노란색 산수유가 핀 산수유 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이천 나들이의 장점은 할인행사가 풍성해 4인 가족이 6~7만원 정도의 여행 경비로 하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 남도지방으로의 나들이가 버거운 수도권 주민들에게 이천은 알짜배기 당일 나들이 코스. 초등학생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웰빙 여행 ‘바겐 세일’중인 이천으로 부담없이 떠나도 좋다.23일 시작되는 세계도자비엔날레를 미리 다녀왔다. 이천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9:00 도자기 비엔날레 세계 67개국 도예가 3000명이 참가하는 도자기의 제전 ‘2005 제 3회 세계 도자비엔날레’ 행사장인 이천 세계도자센터(031-631-6507)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오전 7시 서울을 출발, 경부·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이천 IC를 빠져나와 도로변에 설치된 안내표지판을 따라 가자 쉽게 행사장인 설봉공원에 도착했다. 정문에 들어서자 꽃으로 장식된 축제 마스코트 토야(TOYA)가 반갑게 맞이했다. 흙(地)을 ‘토(土)와 야(也)’로 풀어 쓴 것으로 ‘지상의 모든 생물은 전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깊은 뜻을 가진 마스코트다. 행사 규모에 비해 입장료가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이천 세계도자센터를 비롯해 여주세계생활도자관, 광주 조선관요박물관 등 3곳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당일권이 어른 8000원, 초등학생 4000원.22일까지 미리 예매(www.wocef.com)하면 2000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 미리 예약하면 부모와 초등학생 자녀 2명을 포함해 1만 6000원이면 된다. 2년마다 가을에 열리던 행사를 올해부터는 봄으로 바꿔 한층 화사해진 것이 특징이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이 핀 언덕길을 오르자 전시관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전시장 1층에 있는 안토니 곰리(영국)의 작품 ‘아시아의 땅’.1만 9000여개의 얼굴모양을 한 10여㎝의 작은 도자기가 50여평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중국 상하이에서 학생과 주민들이 만든 30만개의 도자기중 일부를 가져왔으며, 같은 모양의 얼굴은 하나도 없다.”는 게 세계도자기엑스포 남기명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이어 이천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인 필립 바스(스위스)의 얼굴모양 용기 등 작품을 비롯해 도자기로 만든 자동차, 침대, 한복 등 다양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센터 옆에 있는 ‘도자만권당’(631-6649)은 국내 유일의 도자기 도서관. 중국과 일본, 영국, 미국, 독일 등 세계 각국의 주요 도자전문자료와 관련잡지, 학위논문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봄소풍을 나온 이천 설봉어린이집 아이들은 신기한 듯 토야를 이리저리 만지며 즐거워했다.“꽃으로 만든 토야가 너무 예쁘다.”며 수줍은 듯 말하는 양유빈(5) 어린이가 봄꽃만큼이나 귀엽다. 한편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 바로 옆에 있는 광주 조선관요박물관(797-0614)에서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우리나라 국보와 중국 1급 문화재, 일본 중요문화재 등 전세계에서 모인 국보급 청자 200여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로 나오면 만나는 여주세계생활도자관(884-8715)에서는 세계의 작가 20여명이 출품한 서재와 주방, 침실과 욕실, 휴게 공간 등 도자기를 실생활에 접목시킨 작품을 볼 수 있다. 모두 이천에서 3번 국도를 따라가면 각각 10∼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도자기 엑스포 www.wocef.com, 631-6509. 12:00 이천쌀밥 점심 오전 내내 도자기를 꼼꼼하게 감상하느라 허기진 배를 달래는데는 이천 쌀밥이 최고. 예로부터 이천 쌀은 맛있기로 유명해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미다. 쌀밥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은 모두 가마솥에 고슬고슬 지어낸 쌀밥에 된장 뚝배기와 간장 게장 등 30여가지 반찬을 함께 내놓는다. 3번 국도변에 쌀밥집이 많은데 옛날쌀밥집(633-3010)과 고미정(634-4811), 임금님쌀밥집(632-3646) 등 20여곳이 관광 식당으로 지정돼 있다. 가격은 9000∼1만원. 미란다호텔 앞 도가니 설렁탕 전문점 푸주옥(635-7892)의 24시간 우려낸 국물로 만든 도가니탕이 일품이다.1인분에 9000원. 광주에서는 소머리 국밥과 도공들이 붕어찜, 여주에서는 남한강에서 갓 잡아올린 민물생선 매운탕과 천서리 막국수가 유명하다. 13:00 웰빙식기 골라봐 이천 시내 곳곳에서는 웰빙 열풍을 타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다양한 도자식기를 구입할 수 있다. 요장에 들러 구입할 수도 있지만 3번 국도변 신둔면과 사음동 일대에는 10㎞ 거리에 걸쳐 300여개의 도자기 전시·판매장이 모여 있다. 전국의 도예 명장들이 몰려 있어 가격이 비쌀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 수백∼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도예 명장인 세창도예(632-7711)의 김세용선생 등의 작품을 제외하면 몇천원짜리 생활 자기도 많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도자기 쌀항아리의 경우 2만∼10만원이면 2말에서 반가마까지 들어가는 것을 구입할 수 있다. 밥그릇과 접시, 컵 등은 누가 만든 것이냐에 따라 수천원에서 수십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지천도요(633-7668) 지창운 대표는 “청자와 백자, 분청 등 예술작품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쓰이는 찻잔, 머그잔, 액세서리 등 소품 등을 상설 전시·판매하고 있다.”면서 “생활자기의 경우에는 일반 백화점 가격에 비해 50% 이상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입시 주의할 점은 도자기는 낮에 구입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밤에는 도자기의 흠집이나 색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5:00 노란 산수유 마을 도자기를 감상하면서 피로해진 눈을 다스리는데는 노란 산수유가 제격. 설봉공원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산수유 마을을 산책하면 좋다. 노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산수유 마을은 백사면 도립리와 경사리, 송말리 등 5만여평.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산수유 군락지다. 조선 중종 14년 기묘사화때 낙향한 선비들이 이 곳에 은거하면서 처음 산수유를 심었다고 전해진다.100년 이상된 고목들이 많아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에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비롯해 화가,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담한 마을 입구에 있는 도립리 ‘육괴정’은 기묘사화를 피해 낙향한 여섯 선비의 우의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산책로 곳곳에서 판매하는 산수유 차와 산수유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면 피로가 풀린다. 산수유는 자양강장과 피로회복, 식용증진, 변비, 해열 등 다양한 질병에 좋은 열매. 차 한잔에 1000원, 막걸리는 3000원. 산수유 열매를 봉지에 담아 판다. 한봉지에 3000∼5000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1만∼2만원에 팔던 것이 중국산 수입으로 가격이 크게 내렸다. 마을 인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이천백송과 반룡송 등이 인상적이다. 반룡송(천연기념물 381호)은 하늘로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용의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농촌체험마을인 부래미마을(www.buraemi.invil.org)에 가면 좋다.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마을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과 입구의 동그란 저수지가 아늑하고 포근함을 더해주고 있다.‘부래미(富來美)’라는 마을명은 정신적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는 품격 높은 부자마을이라는 뜻이다. 계절별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있는데 봄에는 나물캐기, 도자기 시연, 염색, 떡메를 쳐서 인절미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체험료는 식사를 포함해 1만 7000∼1만 8000원(643-0817). 18:00 마무리는 온천 온천은 나들이의 단골 코스. 도자기비엔날레 기간 중 40%의 파격적인 할인행사가 펼쳐진다. 600여년 전인 조선시대부터 뜨거운 물이 올라와 ‘온천배미’라고 불려왔던 곳에 온천시설이 들어섰다. 한 농부가 사철 솟아나는 더운 샘물에 세수를 하였더니 눈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미란다호텔 스파플러스(633-2001)가 유명한데 실내·외 온천탕과 레저탕 등 30여가지 기능성 온천탕을 갖췄다.5000여명이 동시에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초대형 온천 테마파크로 요금은 주중 성인 1만원에서 6000원, 어린이는 7000원에서 4200원이며, 주말에는 성인 1만 2000원에서 7200원, 어린이 9000원에서 5400원으로 할인됐다. 귀가는 온천에서 피로를 푼 뒤 러시아워를 피해 9시 이후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올라오는 것이 좋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어떻게 지내세요] 작사가 반야월

    [어떻게 지내세요] 작사가 반야월

    “박장대소 해야 해. 요새 신경통이 있긴 하지만 괜찮아. 지팡이 짚고 걸어다니고, 버스·전철 이용하고, 정신력으로 사는 것이 건강비결이야. 목숨 붙어 있을 때 후배들에게 잘 하려고 애를 쓰다 보면 보람도 느끼고 말야.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원로 작사가 반야월(88)씨.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가장 많은 작품수를 발표한 작사가’ ‘가장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노래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작사가’ 등.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우리 가요계의 ‘3대 보물’로 일컬어진다. 설 연휴 직전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한국가요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반씨를 만났다. 그는 협회 회장이다. 악수를 하면서 그는 “이봐, 기자 양반. 나이가 내일 모레 아흔이지만 이렇게 건강해.”라며 활짝 웃는다. 그는 또 듣는 것이 약간 어둡지만 눈치코치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금방 알아차린다며 이것저것 막 얘기를 한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 사무실에 나와 후배들 얘기와 협회 일 등을 들으며 ‘교통정리’를 해준다고 했다. 그는 “나는 말야, 겉으로는 딱딱하게 여기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혼자 외롭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좋은 후배들과 자주 만나려고 하지. 가끔 동해안으로도 가. 거시기, 뭐야. 새파란 물과 공기가 폐에 썩 좋잖아.”하면서 비 안 오는 날은 있어도 술 안 마시는 날은 없다며 파안대소했다. 아직도 술을 마시냐고 거듭 물었더니 일제 때부터 맥주를 마신 기량이 어디가냐며 털털 웃음으로 답했다. 집에서는 신문 4,5개를 쭉 훑어본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새벽 1시가 되는 날이 많단다. 사설이라든가 사회면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이는 후배들과 대화자료란다. 경남 마산 출신인 그는 1937년 태형레코드사가 주관했던 ‘전국가요음악 콩쿠르대회’에서 1등으로 당선돼 가수로 데뷔했다.38년에는 ‘불효자는 웁니다’를 발표했으며, 이듬해에는 가수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넋두리 20년’ ‘꽃마차’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이어 ‘유정천리’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사랑’ ‘산유화’ ‘소양강처녀’ 등 발표한 작품이 모두 5000여편에 이른다. “내가 발표한 거, 가사 다 외워. 아직 총기가 있어. 새 천년이 와도 나는 현역이야.” 본명 박창오에서 인생은 시작됐다. 그러다가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고 반야월이라는 작사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집에서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자녀 여섯을 두었으며 둘은 잠시 가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시대의 어머니상 탤런트 고두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시대의 어머니상 탤런트 고두심

    누가 18세를 낭랑(朗朗)이라고 했나. 한 여인이 그때 시집갔다. 꽃다운 나이였다. 결혼은 지독한 외로움에서 시작했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살았다. 산고의 울부짖음 속에 직접 탯줄을 끊고 목욕시키며 첫 아이를 출산했다. 그렇게 자식 열둘을 낳았다. 그중 다섯은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머지 자식들이 있으니 견딜 수밖에. 모진 세월, 그렇게 온몸으로 아픔을 이겨냈다. 일자무식이었지만 자식을 억척스럽게 꼭꼭 보듬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다가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거울이 되어 늘 곁에 있다. “엄마, 지금도 TV에 나오는 걸 보나? 나, 상 탔거든. 엄마가 그랬지, 편지가 따로 있냐,TV가 편지지라고. 난 엄마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을 한꺼풀 벗긴 해탈의 모습이었거든. 어머니…,50년 동안 묻어두고 못한 말을 이제야 합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닮고 싶은 거울이지요.” 인기 탤런트 고두심(54). 올해를 이렇게 시작했다.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준 거울을 부둥켜안고 5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고백을 했다. 또한 스스로 ‘이 시대의 어머니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어머니처럼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는 2004년 KBS·MBC 양 방송사에서 연기대상을 받았다.TV 시청자들은 고두심에게 어떤 이미지를 느낄까. 한 여론조사가 눈길을 끈다. 청와대 안주인 1순위,2002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인…. ●질곡의 어머니·한많은 어머니 그는 연기생활 33년 동안 처녀 역할은 한번도 안해봤다. 천의 얼굴을 가진 탤런트라고 하지만 대부분 어머니 역이었다. 질곡의 어머니, 바보같은 어머니, 한많은 어머니. 목욕탕의 때밀이 등을 맡느라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고두심’ 하면 두개의 이미지, 즉 ‘어머니’와 ‘제주도’로 귀결된다. 지난 주 서울 여의도 MBC방송국 녹화장과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서울갤러리에서 연달아 만났다. 방송국에서는 밤을 샌 초췌한 얼굴이었고, 갤러리에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방송국에서 만날 때였다. 전남 남원에서 올라왔다는 주부 김모(45)씨. 그는 고씨를 보자마자 달려오면서 “일부러 (사인받으려고)올라왔어요. 정말, 요즘의 어머니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시청자 김씨가 보는 눈에는 많은 함축이 담겨 있었다. 순간, 속으로 ‘아, 이 정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챘는지 고씨가 이렇게 얘기한다.“나 있잖아, 지나가다 보면 아기 업은 엄마들이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맙다는 얘기를 자주해. 어떻게 그렇게 잘 (어려운 어머니 역할을)대신해 주냐고.”. 수줍게 피식 웃는다.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는 표정이기도 했고, 요즘 ‘나 이렇게 살아.’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TV 속의 어머니가 아니라 요즘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표준’이 생각났다. 고씨 또한 각박한 시대에 20대 아들과 딸을 둔 그런 어머니였다. 고씨는 지난 9일 제주 출향 인사들이 베푼 만찬에 참석했다. 장소는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 고교 때 은사였던 김원치 전 검사장을 비롯,50여명이 고씨를 위한 축하의 자리를 열었다. 그가 그저 인기 탤런트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를 무척 사랑하는, 인간적으로 친근함을 주는 사람임을 입증해 주는 상징적 자리이기도 했다. 고씨는 평소 자주 ‘제주는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어머니는 무엇일까. 불쑥 질문을 던지자 거침없이 말문을 연다.“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또 어머니가 사랑하는 제주, 어머니같은 제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나에 대해서만 말해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50대중반에 찾은 해답도 어머니 그는 불혹의 나이 때부터 심각하게 고민을 해왔다. 의혹투성이의 삶을 풀기 위해 자신의 뿌리,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대, 그때를 알아야 실체를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해답을 찾았단다. 바로 ‘어머니’였다. 지난 연말 연기대상을 받았을 때 수상 소감으로 ‘어머니’라는 외침을 여섯번이나 했다. 식당에서 돈가스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그는 “IMF 이전에는 아버지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희망이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는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또 변해도 ‘삶의 본질’ 자체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바다에 옥죄어 살아야 했지요. 한뙈기의 논도 없는 제주에서 가난으로 인한 박대도 많았지만 어머니들은 자식을 온몸으로 감싸안았습니다.” 고씨의 집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앞마당에 어머니(홍정의·84살에 작고)는 앉아 있고 자신은 선 채로 대화하는 모습의 그런 동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결코 어머니를 보내지 않았다. 안방에 없으면 마당에 계시고 마당에 안 계시면 제주 오빠네 집에 가 계시다.”며 웃는다. 또 야외촬영을 갈 때 흐트러진 모습을 고치기 위해 어김없이 생전의 어머니가 남겨준 거울을 꺼내본다고 했다. ●다섯째로 태어나 23살때 연기자의 길 1938년 결혼 직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태평양 사이판 서남쪽 부근 ‘얍’이라는 미개척섬에서 인생의 보따리를 풀었다.10년의 세월 동안 일본과 얍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어머니는 해녀는 아니지만 제주 여인들이 누구나 그랬듯이 바다에서 자맥질을 자주했다. 해방후 삶의 무대를 제주로 옮겼다.1948년 4·3사태가 생기면서 삶이 어지러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었다. 고씨는 3년후 다섯째로, 어머니의 외모를 빼닮으면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고씨는 여객선 3등선에 의지해 육지로 나왔다. 서울에 사는 오빠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서울에서 처음 한 일은 무역회사의 사무원.1년이 조금 안돼 MBC공채 5기에 뽑혀 탤런트가 됐다. 스물셋에 연기자가 됐지만 불행(?)하게도 처녀 역할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줌마나 어머니, 아니면 할머니역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무뚝뚝하지만 매력있는 부산 남자를 만나 뜨겁게 사랑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밤열차를 타고 그의 품에 안기는 낭만은 ‘그만’이었다. 꿈같은 신혼시절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년 결혼생활, 그는 어머니한테 ‘이혼’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를 보듬어 안았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지요. 어머니는 촬영장에 따라가시려고 주머니 속에 항상 양말을 숨겨 놓으셨지요. 전원일기 촬영장인 경기도 양수리를 가시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는 어머니란, 설명이 많을수록 감동이 없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대는 어머니가 희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씨는 현재 평창동에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과 딸 두 자녀는 미국에서 지낸다. 일요일이면 여섯시간이나 걸려 북한산을 종주할 만큼 체력을 관리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5월 제주 출생 ▲70년 제주여고 졸업 ▲72년 MBC 공채 5기 탤런트 ▲72년 드라마 ‘갈대’로 데뷔 ▲95년 극단 로뎀 단원,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위촉 ▲99년 축산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공동대표.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 ▲수상경력=1990년 KBS·MBC연기대상,91년 백상예술대상·MBC연기대상.97년 제주도문화상.2000년 SBS연기대상.2004년 KBS·MBC연기대상 ▲연극 ‘투우사의 왈츠’ 등 6편, 영화 ‘질투’ 등 8편, 드라마 ‘한강수타령’외 50여편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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