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여섯 자녀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이범수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저시력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사업화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이재연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05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북촌의 기와 물결 아래 근대의료·독립史 숨결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북촌의 기와 물결 아래 근대의료·독립史 숨결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가 2012년부터 보존정책을 펼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보존정책을 통해 소유자와 시민들이 문화유산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가치에 눈을 뜨고, 스스로 가꿔나가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문화유산 보존정책에 시민들의 자발적 역량을 더하자는 취지다. 이런 취지를 앞세워 2013년 284건, 2014년 53건, 지난해 45건의 미래유산을 소유자(관리자)의 동의를 얻어 선정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를 확인하고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어? 여기 뒀던 플래카드 가방 못 봤어요?” 여섯 번째 서울미래유산 탐방일인 지난 8월 20일 집결 장소인 3호선 안국역 근처 서울노인복지센터 간판 옆에 뒀던 행사 플래카드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고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가 중얼거렸다. 모임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시설관리팀에 잠시 다녀왔더니 그새 사라진 것이다. 시설관리과 직원이 난감해하면서 찾아보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잃어버린 가방을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센터는 넓었고 어르신도 많았다. 시계 초침은 야속하게 답사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를 향해 지체없이 째깍거리며 돌아갔다. 답사 시작 3분 전 시설과 직원이 플래카드 가방을 들고 뛰어왔다. 잃어버린 돈을 되찾은 것만큼 기뻤다. ‘10시 정시 시작’ 전통을 깨지 않아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한 어르신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가방을 들고 들어간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는 배건욱(45) 서울미래유산 해설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옛 통계청 건물 ‘노인복지센터’…격자 패턴 등 건축가 이희태식 모더니즘 ‘발 담근 김에 멱 감는다’고 시설관리팀 직원에게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서울미래유산’ 현판 앞에서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1961년 준공돼 통계청으로 사용되어 온 유서 깊은 건물로 2014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서울노인복지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하루 2000여명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1500여명이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손꼽히는 대규모 사회복지 시설이다. 시설관리팀 박충식씨는 “내부는 전면 리모델링해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며 “외부의 적벽돌, 머릿돌에서 그나마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수관에 가려진 머릿돌에는 ‘준공 단기 4293년 11월 1일’, 1961년에 지어졌다는 표식이 뚜렷하다. 우수관을 꺾어서 머릿돌이 잘 보이게 만들면 명물이 될 만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 해설사는 “건축가 이희태의 모더니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격자형 패턴의 디자인이 차양창과 함께 모던한 감각을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 계동 사옥 앞에는 굴뚝처럼 생긴 석조물이 있다. 관상감 관천대다. 조선시대 천문관측대로 사용됐다. 원래 옛 휘문중고 자리에 있던 것을 1984년 가을 지금의 자리에 복원했다. 이 관천대는 경주의 신라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의 창경궁 관천대 등과 함께 우리나라 천문관측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사적 제296호로 지정돼 있다. 김기도 에스이앤티소프트 대표는 “그동안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뭐하는 구조물일까 궁금해만 했지 적극적으로 알아보지는 않았다”면서 “천체 망원경도 없던 그 옛날에 이런 시설에서 하늘을 보고 천문을 읽었다니 참 신기하다”고 말했다. 첫 양방병원 ‘제중원’ 표지석…백인제 가옥 등 근대의학 태동지 북촌 현대 계동 사옥 앞에는 ‘제중원’터 표지석이 있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표지석 자리는 제중원이 처음 세워졌던 곳이고 훗날 이곳으로 옮겨졌다. 제중원은 고종이 1885년 미 공사관 공의(公醫)인 알렌의 건의를 받아 설립한 양방 병원이다. 알렌은 1884년 갑신정변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궁중의 전의(典醫)로 발탁됐다. 실록에는 고종이 혜민서와 활인서를 대신할 의료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설치를 허락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면에는 알렌이 고종에게 서양의학의 보급과 서양식 의료기관의 설립을 건의해 제중원 설립을 이끌었던 사연이 숨어있다. 그러고 보면 북촌 지역은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태동지다. 이날 답사에 참가한 김치중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연대세브란스 병원의 모태인 제중원, 1900년대 초기 우리나라 콜레라 방역대책을 세워 근대의학 도입에 공헌한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뷘시의 병원,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 등 북촌 지역은 근대의학의 의향(醫香)이 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북촌팔경 중 한 곳인 북촌1경을 가기 직전 여운형 집터 표지석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응암감자탕과 현대그룹 건물 사잇길 끝까지 가서 우회전한 뒤 안동칼국수 맞은편이다. 몽양 여운형은 우리나라 해방 정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주의 진영의 인물이다. 특히 1936년 조선중앙일보 사장 재직 시 손기정 사진에 있던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의 주역이었고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해방 전후 공간에서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배 해설사는 “일장기 말소사건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1936년 하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삭제해 보도하자 이를 조선총독부가 문제 삼아서 생긴 사건”이라며 “당시 조선중앙일보는 인쇄기 품질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총독부가 알아차리지 못해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쇄품질이 좋았던 동아일보가 검열에 걸리면서 결국 전모가 밝혀져 두 신문 모두 정간되고 여운형도 사퇴하고 만다. 조선중앙일보가 있던 건물은 현재 NH농협 종로지점으로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다. 배 해설사는 답사단을 대동세무고 교정으로 이끌었다. 대동세무고는 김만수란 사람이 1925년 전국 인력거꾼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한 대동학원이 전신이다. 건학이념은 ‘불학위빈’(不學謂貧)이다. ‘배움은 곧 가난을 벗어나는 길이요, 배워야만 민족독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 해설사는 “대동학원 설립은 일제강점기에 경제·교육·문화 면에서 민족 역량을 배양하고 민족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지사들의 뜻있는 결합이었다”며 “서민들의 자구적 노력의 결정체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배 해설사가 답사단을 대동세무고로 이끈 진짜 이유는 옆집인 인촌 김성수의 옛집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독립 투사들 모였던 인촌의 집…지금은 굳게 닫혀 ‘단절된 유산’ 느낌만 김성수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3·1운동에도 참여했던 그가 1940년대에 학도지원병을 고무하고 징병제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매일신보 같은 매체에 실었다. 김성수는 이 집에서 1918년부터 1955년까지 살았다. 현재는 인촌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2·8 독립선언 준비, 3·1운동의 초기 준비 단계 등에서 항일 독립투사들이 모인 밀회 장소이자 중앙고보, 보성전문, 동아일보 설립을 구상하는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배후 지원, 민족 교육, 민족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던 장소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며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서울미래유산이면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관리되고 있는 이 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명의로 대문 옆에 ‘이곳은 개방된 관광구역이 아닙니다’란 안내문을 커다랗게 써 붙여 놨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민 공통의 기억이어야 하는데, 닫힌 대문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굳게 닫힌 대문이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답사단은 만해 한용운이 불교잡지 ‘유심’을 발행한 유심사터를 지나 북촌 주민들의 용수원이었던 ‘석정보름우물‘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전해 들었다. 옆에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고 있는 우리가 이곳 역사를 가장 잘 알지.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맞는 말씀이다. 원래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그런 분을 찾아서 앞장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북촌팔경 핵심 ‘한옥마을’…관광객들 ‘북적’ 에티켓 ‘기본’ 본격적인 북촌 한옥마을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대문에 ‘조용히 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가회동 31 일대는 북촌 한옥마을의 메인 골목인 데다 북촌팔경 중 한 곳이라서 관광객이 늘 북적인다. 특히 주말에 많이 몰리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은 휴식에 방해를 받고 있다. 안내문은 관광객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주민들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가회동 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안내문이 신기한 듯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 일대가 서울미래유산이다. 배 해설사는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다채로운 공간과 전통가옥인 한옥들이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에 들러 땀을 식히고 서울미래유산인 돈미약국을 거쳐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헌법재판소는 1993년 지어져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헌법수호의 최고기관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터는 조선말 좌의정을 지냈던 박규수 선생 저택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제중원이 있던 장소다. 최근에는 헌재 도서관 증축 부지에서 조선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1754∼1772) 집터가 발견됐다. 이곳은 구한말 개화파 민영익의 집, 일제강점기 군국기무를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 자리이기도 하다. 배 해설사는 “사대문 안은 조금만 파내려 가면 거의 모든 곳에서 유구가 발견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인근으로 수평 이동해 보존하기로 했다. 답사에 참가한 박수현(39)씨는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를 중단하는 게 시민 눈높이”라며 “헌법기관이 법을 어기며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탐방 시작 이후 처음으로 종로경찰서 옆 한식집 ‘금수저’에서 경후식(景後食)을 했다. 성준경(48)씨 부부가 막걸리를 샀다. 북촌답사가 운치 있게 마무리됐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V.O.S 박지헌, 다섯째 딸 출산 “결혼 전부터 계획, 여섯째 생긴다면..”

    V.O.S 박지헌, 다섯째 딸 출산 “결혼 전부터 계획, 여섯째 생긴다면..”

    V.O.S 박지헌(38)의 다섯째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여섯째를 언급한 발언도 눈길을 끈다. 그룹 V.O.S 멤버 박지헌은 30일 오전 10시 41분쯤 서울의 한 병원에서 2.8kg의 딸아이를 얻었다. 현재 와이프와 아이는 건강한 상태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지헌과 그의 아내 서명선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으며 2010년 혼인신고를 하고 2014년 뒤늦게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빛찬, 강찬, 의찬, 찬송 3남 1녀의 자녀가 있었으며 이번 득녀로 3남 2녀의 아빠가 됐다. 막내딸의 이름은 소리다. V.O.S 박지헌의 다섯 자녀는 결혼 전부터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헌은 앞서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계획했던 아이 다섯 명을 채웠으니까 만족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재미를 알게 됐다. 그만 낳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섯 째가 생긴다면 또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V.O.S 박지헌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함께 기도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소리 잘 키우겠습니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밥벌이도 못한다던 ‘날라리’ 화려한 듯 애절하게 팔십년

    [명인·명물을 찾아서] 밥벌이도 못한다던 ‘날라리’ 화려한 듯 애절하게 팔십년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으로 향하다 보면 앞으로는 임진강이, 뒤로는 해발 140m 남짓한 보현산이 받쳐주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 나타난다. 예로부터 보현산 산신제와 두레 등 마을공동체 문화가 잘 보전되고 있는 전통 민속마을 중 한 곳인 경기 파주시 탄현면 금산2리이다. 이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농요 소리가 2003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면서 민요보존회원들이 ‘금산리민요전승관’에 모여 소리하고 연주하는 일이 잦다. 마을 안 골짜기에 위치한 전승관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농악기 소리는 보현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마을 어귀까지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강한 파음을 내는 악기 소리가 있는데, 지나는 사람들의 심금마저 울린다. 농악기 대부분이 두들김 악기로 거칠고 둔탁한 소리를 내지만 그 거친 소리에 섞여 독특한 고음을 내는 악기가 있으니 바로 ‘새납’이다. 태평소(太平簫)라고도 부른다. 소리가 유난히 크고 우렁차면서도 애절함과 화려함을 갖춰 대취타, 농악, 불교음악 등에서 연주된다, 고려 때 전래된 직후에는 소리가 크기 때문에 군대에서 사용했으나 점차 사용 범위가 넓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초상을 치르고 상여가 나갈 때나 회갑 등 우리 선조들의 큰일에 빠지지 않던 악기였다. 그래서 새납은 쇄납(??), 호적(胡笛) 또는 날라리라고 불리며 전통 농악 연주에서 빠질 수 없는 공명악기(共鳴樂器)다. 새납에 쓰이는 목재는 대추나무, 산유자, 오동나무, 박달나무, 뽕나무 등 단단한 나무가 주로 사용된다. 관의 길이는 30㎝가 못 되게 해 위는 좁고 차차 퍼져 아래를 굵게 한다. 손가락으로 닫았다 열었다 하는 구멍(지공)은 모두 8개. 그중 두 번째 지공은 뒤에 있다. 원뿔형 관의 넓은 쪽 끝에 나팔모양의 동팔랑(銅八郞)이 있으며 반대쪽에는 동구(銅口)가 있다. 동구 끝에는 갈대로 만든 작은 혀(舌)를 꽂아 입으로 분다. 새납은 선율악기 중에서 음량이 가장 크며 운지법과 음의 높낮이는 향피리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음높이가 한 옥타브 더 높다. 이 마을에는 새납 제막 및 연주 기능 보유자가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조병주(85)옹이다. 2002년 8월 파주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고,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3호인 ‘금산리 민요’의 회원이다. 금산리 민요에서는 사물놀이에 꽹과리처럼 ‘리더’ 격인 새납 연주를 맡고 있다. 조병주옹의 새납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릴 적 부친이 자주 불던 새납이 신기해 따라 불기 시작하면서 그의 새납 인생이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새납을 불고 다니는 일은 매우 천박한 일이었다. 돈벌이도 되지 않았다. 수대를 살아온 조씨 집성촌인 금산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당숙 등 친척들이 새납 연주를 곱게 보아주질 않았다. 새납을 불기만 하면 5촌 당숙과 7촌 당숙 등 주변에서 “이 짓을 해선 못 살아간다”며 수없이 새납을 부러트려 버렸다. 그러나 매를 맞으면서도 새납 불기를 단념하지 않고, 몰래 직접 새납을 만들어 불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집안 어른들도 포기하고 격려했다. 그렇게 시작한 새납 인생이 80평생을 함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새납 연주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다. 어려서 부친이 부는 새납 소리를 듣고 따라 불기 시작했다. 인근의 새납 연주자를 찾아가 그 소리만을 듣고서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요즘처럼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새납은 악기상에서 구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조병주옹은 직접 새납을 만든다. “악기상에서 사서 부는 새납은 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 내가 만든 새납은 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내 손이 간 것이라야 불 수 있어.” 실제 조병주옹이 만들어 부는 새납의 소리는 다른 새납보다 소리가 맑다. 가끔 악기상에서 구입한 새납을 들고 찾아와 손을 봐 달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면 조병주옹은 음통을 더 넓혀주는 등 손을 봐준다고 한다. 손을 보면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새납 연주의 달인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파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까지 소문이 나면서 호상(好喪) 상여 행렬에 불려다니기도 수십 차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금산리 농요가 출전해 조병주옹이 대회의 최고 연기자에게 수여하는 개인상을 받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고령의 연세에 새납 연주를 이렇게 잘하시는 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평가를 했다. 그 후 2000년에는 경기도에서 각 분야 최고의 장인들에게 주는 ‘경기으뜸이’에 새납 제작 및 연주 기능보유자로 선정됐다. 2002년 8월에는 파주시무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돼 새납의 달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여러 학교에서 새납 연주를 지도해 달라는 부탁이 많았다. 그는 금산리 민요와 가락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마을 인근에 있는 학교가 좋을 것 같아 탄현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새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들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배움에 열성을 보일 때마다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이 학교 두레패 학생들은 2002년 경기도청소년 민속예술제에 출전해 본상에 입상하기도 했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고음을 내던 조병주옹의 새납 소리가 점점 약해지더니 이제는 숨이 차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됐다. 가정사도 기구해 새납을 전수할 자녀들도 없다. 여섯 자녀 중 넷을 암으로 잃었다. 남은 두 남매도 병치레하느라 삶이 엉망이다. 자녀 병원비를 대느라, 집 한 칸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사는 집도 남의 집이다. 조병주옹마저 췌장암이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견뎌 낼 자신이 없다. 매월 20만원씩 국가로부터 지급되는 참전 유공자 수당과 파주시가 무형문화재에 지급하는 월 20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평생을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새납이 이제 새 주인을 찾을 때가 됐건만 배우기 쉽지 않은데다, 만드는 것도 손이 많이 가고 돈벌이도 되지 않아 이대로 버려질 위기에 처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커버스토리] 평생 살면서 매달 꼬박꼬박…요놈이 효자네

    [커버스토리] 평생 살면서 매달 꼬박꼬박…요놈이 효자네

    1970년대만 해도 노인들의 환갑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그런데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환갑잔치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평균수명이 확 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는 말도 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늘어난 수명만큼 우리네 삶도 여유로워졌을까. 대다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한 칸 마련하느라 청춘을 바쳐서다. 70세 무렵까지 일해야 먹고산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그럼 일할 능력도, 써 주는 곳도 없는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대안으로 우리나라에는 집을 통해 고정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정부 보증 주택연금 제도가 있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국민들이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고 매월 일정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받는 상품이다. 자기 집에 계속 살면서(주거 안정) 인생 황혼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노후 보장) 위해 도입됐다. 그러자면 자식에게 집을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 ‘강박관념’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정부 얘기다. ■‘이사 그만’형 - 70대 부부 59㎡·2억대 구리에 아파트 판잣집·단칸방 전전하다 70대에 내집 마련… 주택연금 매달 102만원씩 ‘내 인생 위로금’ 올해 74세, 75세인 이혜자(여·가명)씨 부부는 결혼 51년차다. 42년 전 충청도에서 달랑 닭 두 마리를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여관을 전전하다 거여동 무허가 월세 ‘하꼬방’(판잣집)을 얻어 짐을 풀었다. 수도도,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같이 써야 하는 곳에서 넷째를 가졌다. 남편은 연탄 배달을 하고, 이씨는 골목 초입에서 아기를 업고 풀빵을 팔았다. 세입자 보호법도 없던 시절, 6개월마다 월세를 올려 달라는 주인, 애들이 시끄러우니 나가 달라는 주인, 그렇게 하늘 같은 집주인 말에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돈에 집을 맞춰 옮겨다녔다. 이사만 열여섯 번이었다. 2남 2녀를 다 출가시키고 칠순을 넘겨서야 경기 구리시에 59㎡ 아파트를 장만했다. 이제야 내 집에서 사나 했더니 걱정은 또 찾아왔다. 이씨는 무릎관절 수술로 거동도 힘들었다. 남편은 설암 수술을 받았다. 자식들은 경기 침체로 손주들 학비 대기도 빠듯하다. “이 집 빼서 전세로 옮겨가고 남은 돈을 아껴 죽을 때까지 살자”는 남편의 힘없는 제안에 이씨는 몸서리쳤다. 칠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2년마다 집을 옮기는 게 끔찍해 “이혼해서 당신은 전세 살고 나는 딸네 집에서 애 봐 주며 살자”고 등을 돌렸다. 평생 큰소리 한번 없던 잉꼬부부는 생활비 문제로 그렇게 남남처럼 넉 달을 지냈다. 그러다 남편이 “주택연금 좀 알아보자. 은행에 집을 빼앗기는 줄만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가입하는 것 보니 아닌가 보다”라며 말을 걸었다. 그렇게 부부는 2014년 주택연금 가입자가 됐다. 이씨는 말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죽을 때까지 집을 옮겨다니는 게 내 인생인 줄 알았는데 연금을 받으니 마치 그간 고생한 위로금이자 남은 생을 열심히 살라는 격려금 같다”고. 자식들이 간간이 주는 용돈은 비상금으로 모으고 기초노령연금에 주택연금을 합쳐 알뜰살뜰 산다. 부부 사이도 다시 좋아졌다. 지금은 운동도 하고 봉사도 함께 다닌다. 이씨는 “(연금은) 돈 없다고 한 달 미루지도 않고 자기 상황에 따라 줬다 안 줬다 하지도 않고 꼬박꼬박 제 날짜를 지키는 믿음직한 효자”라고 고마워했다. 남편 역시 “젊은 시절 소원이었던 집, 중년엔 자식들 울타리였던 집, 지금은 부부 노후를 책임지는 집이 바로 다름 아닌 자식”이라고 거들었다. 이씨 부부는 구리의 59㎡(2억 2200만원 상당) 집을 맡기고 한 달에 102만원(감소형)씩 받고 있다. ■‘혼자 산다’형 - 교직 명퇴 남편과 사별 59㎡ 아파트 남편 떠나고 빚 갚으니 작은 아파트에 나 홀로…그나마 주택+노령 연금 月80만원에 기대 37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명예퇴직한 오세현(여·가명)씨. 남들은 “연금도 나오고 집도 있고 부럽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적자 인생으로 살아왔던 터다. 다섯 자녀 뒷바라지도 모자라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 다 합쳐 10명도 넘는 사람이 한집에서 살았다. 80㎏ 쌀로도 한 달을 못 채웠다. 월급이 나오면 가게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외상을 갚다 보니 집에 도착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던 어머니의 가르침에 5남매 모두 대학에 보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이 많이 쌓여 퇴직금으로 빚을 정산하고 나니 남은 것은 고작 몇 푼. 1996년 2월 퇴직한 뒤 그해 7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가을쯤 40여년간 살던 정든 집이 재개발로 헐렸다. 불과 1년 만에 정든 집이며 직장, 가족까지 떠나보냈다. 혼자된 몸으로 아들 집 근처에 59㎡의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남편이 떠난 지 20년이 됐다. 궁한 모습을 감추며 살아보지만 줄어드는 주머니에 갈수록 초라함만 느껴졌다. 그러다 인근에 노인 건강타운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200개나 된다. 점심값은 1000원밖에 안 하지만 취미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니 오가는 길목마다 드는 돈이 제법이다. 이때 건강타운에서 주택연금을 알게 됐다. 매달 60만원 가까이 준단다. ‘내가 빨리 죽어도 남은 집값만큼 자식에게 상속된다’고 하니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싶었다. 여기에 노령연금 20만원을 합치니 용돈이 제법 두둑해졌다. 손주들 학비 보태라고 봉투를 건넬 여유까지 생겼다. 생일 선물도 사다 주는 넉넉한 할머니가 됐다며 오씨는 환하게 웃었다. ■‘자식 권유’형 - 일산 집 팔고 132㎡·4억대 안양에 새둥지 재산 상속 필요없다는 아들딸… 죽을 때까지 돈 나오니 오히려 자식 부담 더는 길 한국주택금융공사 직원들은 가장 가슴 아픈 사례로 자식 간의 갈등을 든다. 한 상담창구 직원은 “딸 손에 이끌려 주택연금에 가입했다가 다음날 아들 손에 끌려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해지하는 노인이 많다”고 전했다. 아들에게 집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주택연금 가입을 권유하는 자식은 딸, 해지시키는 자식은 아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들딸이 적극적으로 권해 가입자가 된 사례도 있다. 2013년 가입한 이지희(여·가명)씨다. 이씨의 큰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한테 재산 물려준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가 버신 돈이니 이제는 마음껏 다 쓰세요.” 이때만 해도 이씨는 “쓸데없는 소리 마라. 너네 아버지한테는 손톱도 안 들어가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그런데 전셋값을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전화 한 통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씨는 경기 일산에 갖고 있던 원래 집을 팔고 자식 집 근처인 안양에 터를 새로 잡았다. 계속되는 자식들의 강권에 마지못해 연금에 들었다. 4억 5000만원짜리(132㎡) 집을 맡기니 매달 124만원이 나왔다. 이씨는 “죽을 때까지 100만원 넘는 돈이 나온다고 하니 오히려 자식들 부담을 덜어 주는 길”이라며 좋아했다. 주택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매달 일정한 날에 일정한 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득이 없어도 정해진 틀 안에서 생활을 계획할 수 있다. 자녀들도 편한 마음으로 부모를 대할 수 있다. 이씨는 “연금이 아니라 복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집을 뺏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에서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 수는 2011년 7286명에서 올 3월 말 현재 3만 1504명으로 증가했다.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전체 노령인구를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비중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우리나라 부모 특유의 정서와 “가진 거라곤 집 한 채뿐인데 벌써부터 넘겼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라는 불안감이다. 주택금융공사 측은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할지 말지는 개개인의 선택 문제”라며 “하지만 어떤 노후가 부모 자신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행복이 될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려줄 것은 집이 아니라 행복한 노후’라는 주택연금의 큼지막한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7남매 둔 온 상사네, 17년째 ‘다복한 전쟁’

    7남매 둔 온 상사네, 17년째 ‘다복한 전쟁’

    19평 군인아파트 두 곳 이어붙여 생활… 5남 2녀 아침마다 등교·화장실 경쟁 자가용 이용 못하고 놀이공원 못가도 우애 넘치고 이해심 많은 아이들 고마워 가임기 여성의 평균 출산율이 1.3명 수준인 초저출산 시대에도 자녀를 7명이나 둔 군인 가족이 있어 화제다. 육군은 4일 가정의 달을 맞이해 전남 장성 육군기계화학교 소속 온은신(45) 상사의 사연을 소개했다. 온 상사는 1999년부터 부인 김민정(38)씨와 슬하에 5남 2녀를 낳아 기르고 있다. 온 상사 부부는 매일 아침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등교를 봐주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기숙사형 고등학교에 진학해 주말에만 집에 오는 첫째 국현(17)을 제외하고도 나래(16·여), 국선(14), 나영(12·여), 국온(9)을 깨워 등교시켜야 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여섯째 국빈(4)을 달래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 지난 3월 태어난 막내 국율이를 어르고 달래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평소 우애가 좋던 남매들도 아침에는 화장실을 먼저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온 상사가 야전부대에 있을 때는 군인아파트가 15~24평이라 불편이 많았지만 2년 전 기계화학교로 전입 온 다음부터는 사정이 나아졌다. 온 상사 가족이 현재 사는 38평의 군인아파트는 19평 아파트 두 집 사이에 통로를 내고 이어 붙인 것으로 방이 4개, 화장실이 2개다. 온 상사 가족은 이사를 하게 되면 언제나 군인아파트 1층을 신청한다. 층간 소음 때문에 생길지 모르는 이웃과의 불협화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온 상사는 지금까지 자가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식구 9명과 짐까지 싣기에 알맞은 차를 못 찾았기 때문에 이들 가족은 어디를 가든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놀이공원도 그림의 떡이다. 입장료와 식사, 기념품 구매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명절에 온 상사의 고향인 전북 김제에 가는 정도가 가족여행인 셈이다. 온 상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내나 저나 아이들을 좋아하고 형제자매가 많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보니 어느덧 7자녀 아빠가 됐다”면서 “놀이공원이나 가족여행을 제대로 못 가지만 항상 우애 넘치고 아빠와 엄마를 이해해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우! 지구촌] 친모 대신, 자신을 학대한 양모를 선택한 아이,왜?

    [나우! 지구촌] 친모 대신, 자신을 학대한 양모를 선택한 아이,왜?

    '때리지 않으면 재목이 못된다(不打不成材)’,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효자된다(棍棒底下出孝子)’ 중국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중국에서도 아동학대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러나 대다수 중국 부모들의 관념 속에 ‘아이를 훈육차원에서 때리는 것’과 ‘법률 위반’은 여전히 별개의 일이다. 2014년 조사결과, 84%의 중국부모들이 아이를 때린 경험이 있으며, 아이를 때린 부모 중 88% 역시 부모로부터 맞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맞은 아이’가 커서 ‘때리는 부모’가 된다는 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지난해 3월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난징(南京) 아동학대’에 대한 후속 여론이 분분하다. ‘가정교육’과 ‘가정폭력’, ‘가장의 권위주의’와 ‘미성년자의 인권보호’의 경계는 어디인가? ‘매질은 인성교육에 필요한가?’ 중국 사회는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중국 사회가 공분한 ‘난징 아동학대’ 지난해 3월 중국은 ‘난징 아동학대(南京虐童)’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9살 어린이 스샤오바오(施小宝)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양모로부터 몽둥이와 줄넘기로 온 몸에 끔찍한 매질을 당했다. 학교 교사는 아이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아동학대를 의심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공분했다.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경찰은 무엇을 했나?”, “가해 부모를 처벌하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경찰은 아이의 양모 리정친(李征琴·51)을 ‘고의상해죄’로 체포했다. 그러나 학대 부모가 엘리트 출신의 ‘부유층 집안’ 이라는 사실에 중국사회는 또 한번 놀랐다. 양모인 리정친은 지역 유력방송국의 기자로서 부국장 직함을 가졌고, 남편은 20년 넘게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학대 부모는 저소득층, 저학력자라는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리정친에게 ‘고의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6개월을 복역하고, 이달 13일 출소했다. 가해자 ‘양모’ 앞에 무릎 꿇은 피해아동의 ‘친모’ 지난 13일 중국 매스컴은 리정친의 출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친모 장춘샤(张传霞)와 아들 스샤오바오(施小宝)가 리정친 앞에서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것이다. 장춘샤는 “언니, 미안해요!”라며 읍소했고, 스샤오바오는 “엄마, 엄마…”하고 부르며 리정친을 끌어 안았다. 이렇게 세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리정친은 스샤오바오를 만나기 전 호텔에 들러 목욕재계를 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깨끗한 모습으로 아들 스샤오바오를 만나고 싶었다. 세 모자는 마주 앉았고, 리정친은 마음을 가다듬고 스샤오바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누구랑 살고 싶니?”… 아이는 한참 대답을 망설이다 리정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심한 매질을 당했던 아이가 어째서 양모와의 삶을 선택한 것일까? ‘정직’을 가르치고 싶었던 양모의 매질 4년 전 리정친은 시골에서 어려운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는 사촌 여동생 장춘샤를 만났다. 장춘샤는 막내둥이 스샤오바오를 키우는 일이 막막했다. 리정친은 동생에게 본인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제안했다. 대도시에서 좋은 학교에 보내준다는 사촌언니가 한없이 고마웠다. 리정친은 당시 여섯 살인 스샤오바오를 데려오며, “너의 친엄마는 나, 리정친이다”라고 말했다. 스샤오바오는 이후 리정친을 친모로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나 시골에서 올라온 스샤오바오는 문제가 많았다. 세수하고, 밥 먹는 것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다. 리정친은 스샤오바오를 가장 좋은 유치원에 입학시키고, 초등학교 역시 최고 명문학교로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의 과제를 일일이 돌보며 가르쳤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놀림을 받던 스샤오바오는 리정친의 도움으로 성적이 향상되며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스샤오바오는 걸핏하면 거짓말을 일삼았다. 리정친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직한 삶’에 어긋난 것이었다. 지난해 3월 31일 스샤오바오는 “학교에서 어문 시험 1등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스샤오바오의 거짓말을 알아챈 리정친은 아이에게 매질을 가했다. 이미 전에도 한 학기 내내 ‘숙제가 없다’는 거짓말에 속았던 터였다. 리정친은 순간 치솟는 분을 삭히지 못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매질을 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잃었다. 3일 후, 상처 가득한 아이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고, 양모는 ‘악모(恶母)’로 불리며 경찰에 체포됐다. 아이는 ‘누구의 아들’로 살아야 하나? 리정친은 본인의 매질이 심했고,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녀는 혁명가 집안에서 태어나 엄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8명의 자녀들은 자라면서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녀는 “가장 심하게 맞으면서 자란 형제가 가장 출세한 인물이 되었다”고 밝히며,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서 매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리정친은 양모가 감옥에 있는 동안 친모와 생활해 왔다. 그러나 “친모와의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조금도 안 좋아요”라고 말했다. 엄마(리정친)가 밉지 않느냐는 질문에 “엄마가 밉지 않아요. 모두 나를 위해 그러신 거에요”라며 엄마를 두둔했다. 이미 아이에게 ‘엄마’는 리정친의 존재를 의미하며, ‘낳은 정’보다 ‘기른 정’에 더 길들여졌다. 친모 역시 “스샤오바오가 다시 농촌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언니가 계속해서 아이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정친은 본인의 잘못을 용서해준 아이의 선택이 고맙고, 다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녀는 법적으로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아무리 친부모와 당사자가 양모와의 삶을 원해도 법률의 문턱을 넘어서긴 힘들어 보인다. ‘우주 비행사’가 꿈이라는 스샤오바오, 아이는 ‘누구의 아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사진1,3,4=신징바오/ 사진2=징화스바오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문화마당] 입시 단상/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입시 단상/김재원 KBS 아나운서

    명절 연휴가 그리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주부나 며느리뿐만이 아니다. 결혼 못한 처녀 총각, 취직 못한 대학 졸업생, 대학 못 간 수험생도 온 가족이 모인 명절은 지옥에 가깝다. 친지들의 안부나 질문은 가슴을 찌른다. 이루지 못한 좌절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도 힘든데 친지들의 관심을 가장한 무심한 질문은 다시 주저앉히기에 충분하다. 결국 집을 나와 명절에 문 연 값싼 식당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사정은 그런 자녀를 둔 부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자녀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는 세 번인데, 바로 대입과 취업과 결혼이란다. 자랑하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도 오죽할까만 어디 본인들의 심정에 비할 수 있을까. 특히 설 명절은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붙들고 추가 합격을 기다리는 대입 수험생에게는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다. 우리 집도 재수한 아들을 둔 터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의 입시를 두 번 겪으면서 느낀 짧은 생각 몇 가지를 나누련다. 첫째, 대입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다.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공부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학에 가고, 기회 균등이라는 명분하에 배려 대상도 많아졌다. 따라서 공부하기 위해 공부로 대학을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설령 합격해도 나보다 공부 못하던 친구가 훨씬 좋은 대학에 들어가 버리면 찜찜한 마음은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둘째, 다양한 기회가 요행을 부추긴다. 수시 여섯 번, 정시 세 번, 도합 아홉 번의 기회는 수험생들을 들뜨게 한다. 공부 못한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갔다는 소문만 듣고 너도나도 지원해 본다. 지원만으로도 그 대학에 붙은 듯한 황홀한 느낌은 수험생에게는 독이다. 수십 대 일을 넘어 이백 대 일의 경쟁률이 나온다는 것은 제도가 기형적이라는 뜻이다. 대학 입시부터 요행을 바라고 질러라도 보자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셋째, 다양한 제도를 모르면 대학에 가기 힘들다.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은 복잡하다는 뜻이다. 수천 개 전형 중에 내게 맞는 것을 찾기란 그만큼의 탐색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그 역할은 부모에게 떨어지고, 돈 많은 부모는 사설기관을 찾고, 돈 없는 부모는 직접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거나 그러지도 못하면 미안한 마음을 평생 부둥켜안아야 한다. 넷째, 잦은 탈락의 고배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예전에는 전기 한 번, 후기 한 번 떨어지고 재수해서 전기 한 번 떨어지고 대학에 간다 해도 기껏해야 두세 번의 아픔을 겪으면 그만이었다. 도합 아홉 번의 기회에 6차 이상 이어지는 추가 합격 발표마다 확인을 해야 하는 현행 제도는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거절당하는 아픔을 뼈저리게 심어 준다. 재수한 우리 아들도 도합 스무 번은 떨어졌다. 다섯째, 공부는 수험생이 하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번다. 아홉 번의 응시를 위한 전형료도 수십만원이다. 게다가 정시 지원을 앞두고 사교육기관에서 시행하는 모의 지원은 칠팔만원, 대면 컨설팅은 수십만원이다. 불안한 심리를 악용한 사교육기관의 횡포다. 심지어 모의지원은 수험생들의 지원 경향에도 영향을 미쳐 입시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출신 대학은 이름과 생년월일 다음 순위로 나를 따라다니는 개인 정보다. 주소나 직장처럼 바꿀 수도 없다. 20년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방법과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대학 입시 제도를 만드는 사람만 모르는 것 같다.
  • [씨줄날줄] 재벌가의 혼외자/김성수 논설위원

    ‘시앗’은 남편의 첩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남편이 첩을 얻게 되면 ‘시앗 보다’라는 표현을 쓴다. ‘시앗 싸움에 요강 장수’라는 말도 있다. 본처와 첩이 싸우다 요강이 깨지면 제3자인 요강 장수만 득을 본다는 뜻이다. 어부지리라는 소리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축첩(蓄妾)은 최고위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돈만 있다면 상당수 남성들이 두 집 살림을 했다. 가정불화의 원인이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축첩축출을 공약으로 내걸 정도였다. ‘축첩 공무원 모두 해면(解免·물러나게 함)키로, 이미 1385명 적발’…. 1961년 6월 초 한 조간신문 기사 제목이 당시 사회상을 보여 준다. 이중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부정을 범하게 된다는 점을 들어 축첩 공무원을 쫓아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과 권력, 명예를 쥔 남성들은 부인 외의 여성을 탐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까지…. 불륜은 필연적으로 ‘혼외 자녀’를 낳았다. 미국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은 10여명의 사생아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은 혼외 딸을 20년이나 넘게 숨겼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정일권 전 국무총리, 소설가 이외수씨도 혼외자 문제로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재계 로열패밀리를 둘러싼 혼외 자녀 스캔들은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그만큼 자주 터진다. 창업 1세대인 재벌 총수들과 주로 관련된 얘기다. 지금은 사라진 ‘요정문화’와도 무관치 않다. ‘연예인 A가 B회장의 아이를 낳았다’라는 ‘카더라통신’이 툭하면 돈다. 루머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상당수는 사실로 확인된다. 실제로 전직 여배우 C씨는 2004년 자기 아들이 삼성가 고(故) 이맹희씨의 아들이라는 걸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2년 뒤 “친아들이 맞다”는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삼성가(家) 상속 소송에서는 이병철 회장이 일본인 여성과 낳은 혼외자 이태휘씨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혼외 아들인 이모씨도 상속 소송을 제기해 법정 분쟁을 벌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어제 한 일간지에 편지를 보내 ‘마음에 위로가 되는 여인’을 만났으며 혼외로 여섯 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고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부인 노소영씨와는 이혼하겠다고 했다. 재벌 총수가 공개 이혼 선언을 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지 넉 달 만에 처음 한 일이 불륜 공개냐는 뒷말도 나온다. 올해 2월 간통죄가 폐지돼서 처벌을 안 받게 됐으니 고백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최 회장은 기업 경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장은 ‘수신제가’가 더 급해 보인다. 협의 이혼이 되지 않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의 소송전도 치러야 한다. ‘금지된 사랑’의 대가다. 김성수 논설위원 sskim@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조기교육, 경쟁 그리고 적기교육

    “한글 공부하고 싶어요.” “잠이 안 와서 그러는 거지?” “아니야, 진짜 한글 공부하고 싶어서 그래요.” 밤 10시가 넘었지만 잠을 자지 않으려는 여섯 살 아들. 아빠는 그런 아들을 혼낼 수밖에 없습니다. “늦게 자면 키 안 큰다.” “한글 공부는 해가 떠 있을 때만 하는 거다.” 온갖 근거 없는 주장과 “이러면 아빠는 더이상 너랑 놀아 줄 수 없다”는 협박도 이어집니다. 아들은 결국 포기하고 잠자리로 들어갑니다. 제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억지로 잠자리에 들어간 아들에게 늦게 자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또다시 장황한 설명을 이어 갑니다. 그러자 아들이 울먹이며 말합니다. “받아쓰기를 했는데, 다른 애들은 다 썼는데 나랑 친구 한 명만 못 썼어.” 10명이 넘는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자기와 한 친구만 한글을 못 써서 창피했다는 겁니다. 받아쓰기를 또 하면 계속 창피를 당할까 봐 갑자기 한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밤중에 나온 아들. 그것도 모른 채 호통만 친 무심한 아빠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들은 몇 달 전만 해도 한글을 잘 몰랐습니다. 지금도 술술 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글자들을 띄엄띄엄 읽는 편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저거는 ‘치과’야”, “저거는 ‘약국’이야”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잊지 않고 호들갑을 떨어 주는 일은 아빠의 의무였습니다. “대단하다”, “한글 대장이네” “짱이다, 짱” 하면서 ‘엄지 척’을 해 줍니다. 그러면 아들은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지요. 한글 교육을 일부러 시키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부부의 교육철학이 적기 교육에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기의 교육’을 뜻하는 ‘조기교육’은 언제부터인가 ‘선행학습’의 다른 말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 반대의 의미로 ‘적기교육’이란 말이 쓰입니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는 적정한 때에 적절한 교육을 통해 아이를 바르게 키우자는 의미입니다. 독일, 핀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유치원에서 문자 교육을 시키지 않습니다. 문자 교육을 하더라도 아이에게 꼭 필요한 ‘화장실’, ‘노크’ 등 생활에 필요한 단어들만 가르칩니다. 이 당시엔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보다 감수성을 길러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스스로 한글을 익히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한글을 가르치기보다 감수성을 먼저 기르길, 스스로 원리를 생각해 한글을 깨우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경쟁’이란 벽에 부딪히자 금방 허물어졌습니다. 받아쓰기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배움이 더 늦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적기교육의 철학도 순식간에 흔들립니다. 다른 학부모들이 왜 그렇게 조기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는지도 이해가 됐습니다. 한국유아교육학회장을 지낸 이기숙 교수가 쓴 ‘적기교육’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몇 살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기대했다면 적기교육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수학 공식을 대입해 정답을 찾는 과정과 달리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결국 자녀의 배움의 적기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부모다.” 적기교육을 빙자한 방임교육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흔들린 것 아니었을까. 아빠는 오늘도 반성하고 아이에게 또다시 눈을 돌립니다. gjkim@seoul.co.kr
  • 왕실에서 스타까지…세계 강타한 ‘금수저 베이비’ 마케팅

    왕실에서 스타까지…세계 강타한 ‘금수저 베이비’ 마케팅

    입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영국에서는 ‘그’와 관련된 대부분의 제품이 공개되는 즉시 매진 사례가 이어진다. 업계에서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소문난 이는 다름 아닌 여왕의 증손주인 조지 왕자(2)다. 조지 왕자가 걸치고 나온 옷이나 신발 등은 공개 동시에 매장에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전화기가 닳도록 문의 전화를 걸어봤자 수 주를 기다려야 하거나 아예 품절돼 사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조지 효과’라 부르고, 조지 왕자에게는 ‘완판남’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이처럼 일명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표현되는 아이들을 이용한 로열 베이비 마케팅에 전 세계 엄마들의 지갑이 열리고 있다. ◆왕실에서 스타까지…세계를 강타한 ‘금수저 베이비’ 마케팅 ‘조지 효과’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지난 해 4월 왕세손 부부와 함께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한 조지 왕자(당시 생후 8개월)가 일명 ‘기저귀 외교’에서 선보인 옷들은 일찌감치 품절리스트에 오르면서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일각에서는 조지 왕자를 두고 “생후 8개월에 트렌드세터로 등극했다”고 평가했고, 조지 왕자 덕분에 완판 기록을 쓴 아동복 디자이너는 연일 “땡스, 조지”를 외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조지 왕자가 생애 최초로 미니 트랙터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의 모델과 가격 정보를 영국 주요 매체에서 전했다는 사실은,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를 물고 태어난' 조지 왕자가 육아용품 업계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파워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조지 왕자가 태어나기 전 한국에서도 그 ‘효과’가 상당했던 슈퍼베이비는 바로 톰 크루즈의 딸 수리 크루즈다. 수리 크루즈는 이미 5살 때부터 하이힐을 포함한 다양한 디자인의 구두를 신기 시작했고, 어른도 선뜻 사기 힘든 고가 명품 브랜드의 코트를 걸쳤다. 쉴 새 없이 따라붙는 파파라치 ‘덕분에’ 수리 크루즈가 입고 신은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 됐다. 엄마들 사이에서 대여섯 살의 어린 딸에게 하이힐을 신기는 것이 유행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수리 크루즈의 뒤를 이은 베이비 마케팅 스타는 전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 부부의 딸 하퍼 세븐 베컴이다. 하퍼 세븐 베컴은 "태어나니 아버지가 베컴, 어머니가 빅토리아"라는 수식어가 잇따랐을 만큼 태어난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았다. 특히 하퍼 세븐 베컴은 여아 전용 드레스 코드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스포츠 브랜드의 의류까지 척척 소화해냈고, 덕분에 일부 브랜드는 뜻밖의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키즈’에 눈 돌린 명품 브랜드…식스포켓 이어 에잇포켓 키즈가 주 고객 유명인의 어린 자녀가 부모 못지않은 모델이 되어주자,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의 키즈 라인은 이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 구찌, 마르니, 펜디, 베르사체부터 버버리와 랑방, 샤넬까지 키즈 라인을 줄줄이 선보였고, 유명인이 자신의 아이에게 이 브랜드들의 옷을 입힘으로서 명품 키즈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명 ‘식스 포켓 키즈’(6-Pocket Kids) 또는 ‘에잇 포켓 키즈’(8-Pocket Kids)의 증가도 한 몫을 한다. 식스 포켓 키즈란 아이 한 명에 부모와 조부모 등 6명이 지갑을 연다는 뜻이고, 에잇 포켓 키즈는 여기에 삼촌과 이모까지 포함된 의미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아이 한 명에게만 ‘올인’하는 가정이 늘어났고, 내 아이가 먹고 입는 것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명품 키즈 브랜드가 가장 주력하는 시장은 아시아다. 특히 괄목할 만한 시장 성장을 보이는 곳은 일찌감치 ‘소황제 열풍’이 시작된 중국이다. 중국의 아동복 시장은 연간 30%씩 성장해 현재 24조원 규모까지 부풀었고, 한류 바람을 타고 고가의 유모차 등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부모들이 생겨났다. 중국 A항공사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불량 분유 등 먹거리 파동이 연이어 터지면서, 분유 등 유아식품 및 각종 유아용품 구매를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는 중국 엄마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 1~4월 의류와 분유, 그림책의 수입액은 전년보다 줄은 반면 평균 수입 단가는 전년 대비 각각 18.2%, 9.2%, 13.1% 올랐다. 양보다 질을 택하는 명품 소비가 늘고 있다는 증거다. 저출산 뿐만 아니라 갈수록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 현상 역시 명품 키즈 용품의 소비증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육아 예능 붐과 함께 불거진 부작용 한국에서는 수 년 전부터 육아 리얼리티 예능이 붐을 일어나면서 키즈 용품 매장에서는 ‘○○○ 아들 ▲▲가 쓰는 그 장난감’ 이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이 입는 옷과 쓰는 제품들은 곧장 판매고로 이어지면서 일명 ‘국민제품’의 칭호를 얻기도 한다. 문제는 유명인의 자녀들을 이용한 베이비 마케팅이 활발해질수록 위화감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이미 육아 예능은 PPL 전시장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각종 키즈 용품의 광고현장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언뜻 보기에도 값나가는 옷과 장난감, 밥그릇과 식탁을 쓰는 ‘금수저’ 아이들을 보는 일반 부모들은 아이들이 귀엽다고 느끼기 이전에 죄책감과 미안함을 먼저 느끼기 마련이다. 자신과 친구들의 차이점을 구별할 줄 알게 되는 나이에 이른 아이의 경우, 이런 육아 예능을 본 뒤 “엄마아빠는 왜 내게 저런 것들을 사주지 않을까”에서 시작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 도 있다. 유명인의 자녀를 통한 마케팅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긴 어렵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우를 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지나친 금수저 베이비 마케팅은 브랜드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조지 왕자부터 삼둥이까지…‘금수저’ 마케팅 열풍

    [송혜민의 월드why] 조지 왕자부터 삼둥이까지…‘금수저’ 마케팅 열풍

    입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영국에서는 ‘그’와 관련된 대부분의 제품이 공개되는 즉시 매진 사례가 이어진다. 업계에서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소문난 이는 다름 아닌 여왕의 증손주인 조지 왕자(2)다. 조지 왕자가 걸치고 나온 옷이나 신발 등은 공개 동시에 매장에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전화기가 닳도록 문의 전화를 걸어봤자 수 주를 기다려야 하거나 아예 품절돼 사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조지 효과’라 부르고, 조지 왕자에게는 ‘완판남’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이처럼 일명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표현되는 아이들을 이용한 로열 베이비 마케팅에 전 세계 엄마들의 지갑이 열리고 있다. ◆왕실에서 스타까지…세계를 강타한 ‘금수저 베이비’ 마케팅 ‘조지 효과’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지난 해 4월 왕세손 부부와 함께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한 조지 왕자(당시 생후 8개월)가 일명 ‘기저귀 외교’에서 선보인 옷들은 일찌감치 품절리스트에 오르면서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일각에서는 조지 왕자를 두고 “생후 8개월에 트렌드세터로 등극했다”고 평가했고, 조지 왕자 덕분에 완판 기록을 쓴 아동복 디자이너는 연일 “땡스, 조지”를 외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조지 왕자가 생애 최초로 미니 트랙터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의 모델과 가격 정보를 영국 주요 매체에서 전했다는 사실은,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를 물고 태어난' 조지 왕자가 육아용품 업계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파워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조지 왕자가 태어나기 전 한국에서도 그 ‘효과’가 상당했던 슈퍼베이비는 바로 톰 크루즈의 딸 수리 크루즈다. 수리 크루즈는 이미 5살 때부터 하이힐을 포함한 다양한 디자인의 구두를 신기 시작했고, 어른도 선뜻 사기 힘든 고가 명품 브랜드의 코트를 걸쳤다. 쉴 새 없이 따라붙는 파파라치 ‘덕분에’ 수리 크루즈가 입고 신은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 됐다. 엄마들 사이에서 대여섯 살의 어린 딸에게 하이힐을 신기는 것이 유행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수리 크루즈의 뒤를 이은 베이비 마케팅 스타는 전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 부부의 딸 하퍼 세븐 베컴이다. 하퍼 세븐 베컴은 "태어나니 아버지가 베컴, 어머니가 빅토리아"라는 수식어가 잇따랐을 만큼 태어난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았다. 특히 하퍼 세븐 베컴은 여아 전용 드레스 코드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스포츠 브랜드의 의류까지 척척 소화해냈고, 덕분에 일부 브랜드는 뜻밖의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키즈’에 눈 돌린 명품 브랜드…식스포켓 이어 에잇포켓 키즈가 주 고객 유명인의 어린 자녀가 부모 못지않은 모델이 되어주자,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의 키즈 라인은 이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 구찌, 마르니, 펜디, 베르사체부터 버버리와 랑방, 샤넬까지 키즈 라인을 줄줄이 선보였고, 유명인이 자신의 아이에게 이 브랜드들의 옷을 입힘으로서 명품 키즈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명 ‘식스 포켓 키즈’(6-Pocket Kids) 또는 ‘에잇 포켓 키즈’(8-Pocket Kids)의 증가도 한 몫을 한다. 식스 포켓 키즈란 아이 한 명에 부모와 조부모 등 6명이 지갑을 연다는 뜻이고, 에잇 포켓 키즈는 여기에 삼촌과 이모까지 포함된 의미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아이 한 명에게만 ‘올인’하는 가정이 늘어났고, 내 아이가 먹고 입는 것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명품 키즈 브랜드가 가장 주력하는 시장은 아시아다. 특히 괄목할 만한 시장 성장을 보이는 곳은 일찌감치 ‘소황제 열풍’이 시작된 중국이다. 중국의 아동복 시장은 연간 30%씩 성장해 현재 24조원 규모까지 부풀었고, 한류 바람을 타고 고가의 유모차 등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부모들이 생겨났다. 중국 A항공사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불량 분유 등 먹거리 파동이 연이어 터지면서, 분유 등 유아식품 및 각종 유아용품 구매를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는 중국 엄마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 1~4월 의류와 분유, 그림책의 수입액은 전년보다 줄은 반면 평균 수입 단가는 전년 대비 각각 18.2%, 9.2%, 13.1% 올랐다. 양보다 질을 택하는 명품 소비가 늘고 있다는 증거다. 저출산 뿐만 아니라 갈수록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 현상 역시 명품 키즈 용품의 소비증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육아 예능 붐과 함께 불거진 부작용 한국에서는 수 년 전부터 육아 리얼리티 예능이 붐을 일어나면서 키즈 용품 매장에서는 ‘○○○ 아들 ▲▲가 쓰는 그 장난감’ 이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이 입는 옷과 쓰는 제품들은 곧장 판매고로 이어지면서 일명 ‘국민제품’의 칭호를 얻기도 한다. 문제는 유명인의 자녀들을 이용한 베이비 마케팅이 활발해질수록 위화감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이미 육아 예능은 PPL 전시장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각종 키즈 용품의 광고현장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언뜻 보기에도 값나가는 옷과 장난감, 밥그릇과 식탁을 쓰는 ‘금수저’ 아이들을 보는 일반 부모들은 아이들이 귀엽다고 느끼기 이전에 죄책감과 미안함을 먼저 느끼기 마련이다. 자신과 친구들의 차이점을 구별할 줄 알게 되는 나이에 이른 아이의 경우, 이런 육아 예능을 본 뒤 “엄마아빠는 왜 내게 저런 것들을 사주지 않을까”에서 시작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 도 있다. 유명인의 자녀를 통한 마케팅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긴 어렵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우를 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지나친 금수저 베이비 마케팅은 브랜드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청계천으로 떠나는 육의전 시간여행

    서울 청계천 일대에 조선시대 시전(市廛)행랑이 펼쳐진다. 종로구는 오는 19~20일 청계천 광통교에서 ‘육의전 체험축제’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육의전은 조선시대 때 지금의 종로 1~2가에 있었던 여섯 종류의 큰 상점이다. 선전(비단가게), 면포전(면포가게), 면주전(명주가게), 지전(한지가게), 포전(삼베가게), 어물전(수산물가게)을 말한다. 구는 전통 계승과 시민들의 문화체험 기회 마련을 위해 10회째 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2015 고(古·GO) 종로문화페스티벌’의 대표행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축제는 재현마당과 체험마당, 공연마당으로 구성됐다. 행사 기간 청계천 일대 거리에는 육의전 상점가를 재현한 전통 기와모양의 부스를 선보인다. 전문 연극배우가 물장수, 생선장수, 포도대장 순라 등으로 변신해 조선시대 저잣거리 풍경을 구현하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다. 자녀와 함께 찾은 방문객들에게 유익한 코너들도 많다. 육의전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육의전 이동 박물관’, 골목길 해설사와 육의전 관련 유적지(피맛골, 육의전 박물관, 육의전 터 표지석 등)를 탐방하는 ‘육의전 시간여행’ 등이다. 거리 곳곳에서는 특별한 체험행사들이 펼쳐진다. 육의전 상인 및 궁중의상 체험, 투호놀이와 윷놀이, 제기차기 등은 물론 전통 활·검 제작, 나무팽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김영종 구청장은 “교육·체험·먹거리·볼거리가 풍성한 축제”라며 “시민들이 조선 최대의 경제상업기구 육의전을 만나보고 선조들의 지혜와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 아기를 온종일 남한테 맡기며 왜 일하려 하느냐고요?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 아기를 온종일 남한테 맡기며 왜 일하려 하느냐고요?

    “OO 엄마, 도대체 이 어린 애를 하루 종일 남한테 맡기면서 일을 왜 하려는 거예요?” 복직이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알고 지낸 동네 엄마들과 식사를 할 때였다. 한 엄마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게요…. 제가 좋아서죠, 뭐.” 겨우 내뱉고 나니 나는 천하의 매정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육아는 그동안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아주 근본적인 물음의 답을 찾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서부터 일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의 교육을 받는 것처럼 직장에 다니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학교에 갔듯이 이제는 회사에 다닐 뿐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꾸려 갔듯이 일을 통해 사회에서의 관계를 넓혀 갔다. 이 일을 하기 위해 10여년 동안 꿈을 키웠고 공부를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일은 그냥 ‘나’를 드러내는 그 자체였고 나를 감싸는 울타리였다. ●당연하게 여겼던 내 일을 그 존재부터 다시 고민 하지만 이토록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일을 그 존재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여성이라고 해서, 결혼과 임신·출산을 했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우리 어머니 세대에나 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책으로 읽던 세상에나 가능했던 거였다. 나에겐 일하는 내 모습이 너무 당연했던 것이라 그동안 현실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간 뒤에야 적지 않은 엄마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이 시작됐다. 여성 5명 중 1명꼴로 결혼과 육아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15~54세 기혼 여성 956만 1000명 가운데 결혼, 임신·출산, 육아, 자녀 교육(초등학생) 등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경력 단절 여성이 213만 9000명으로 22.4%를 차지했다. ●여성 22% 결혼·육아로 퇴직… 30대가 절반 넘어 일을 그만둔 사유는 결혼이 41.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육아(31.7%)와 임신·출산(22.1%) 등의 순이었는데 2013년 대비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9.7%나 늘었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단절도 5.4% 늘었고 자녀 교육으로 인한 단절은 27.9%나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절반 이상이 30대(52.2%)였고 이들 역시 육아(35.9%)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 이런 통계를 매년 접했으면서도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와는 별로 관계없는 일이겠거니 했다.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아기를 키우며 만나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나는 단연 튀는 존재였다. 임신한 몸으로 꿋꿋이 만삭까지 회사를 다녔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1년 3개월 다 채워 썼다. 친정 가족들이 해외에 있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도 없으면서 돌쟁이를 두고 복직을 결심했다. 이런 엄마는 흔치 않았고 그래서 너무 많은 질문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말이다. 그 앞에서 ‘자아실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나니 스스로가 너무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많은 엄마들이 육아에 전념하며 오롯이 아이의 일과에 맞춰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다. 아이에게 오늘 뭘 먹일까가 하루 중의 큰 고민이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바람을 갖고 준비하는 엄마들도 매우 많았지만 그 바람은 기한도 없이 늦춰질 뿐이었다. “아이가 세 돌이 지나면 일을 해야지” 했다가 세 돌이 5살, 초등학교 입학까지, 이런 식으로 미뤄졌다. ●일과 육아의 딜레마 속 엄마로서의 역할 항상 걱정 이렇게 아이에게만 전념하는 삶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나도 정말 예쁜 내 아이와 항상 함께하고 아이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일을 계속할지 말지를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을 안 하게 되면 당장 가정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고 그만하기에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었고 할 줄 아는 것도 이것밖에 없다. ‘돈을 아예 찔끔 주는 회사였거나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직업이 아니었다면 미련 없이 그만뒀을 텐데’라는 이상한 아쉬움까지 가져 봤다. 아기와 오롯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 겨우 1년. 그나마 1년의 육아휴직을 다 쓸 수 있었던 것도 엄마들 사이에서는 행운아였다. 법에 마땅히 규정된 육아휴직 역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1년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지만 임신을 하고 육아휴직을 쓴다고 권고사직 압박을 하지 않은 회사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걸 알았다. 2013년 고용노동부의 여성고용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장 지도 점검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92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출산 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제 등의 이행 실태를 점검한 결과 900개 사업장이 총 4729건의 여성고용환경 관련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1년의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면서도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고 불안했다. 잊을 만하면 각종 사고가 발생하는 어린이집에 돌도 안 된 아기를 밀어 넣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나머지 시간에 아기를 맡겨야 하는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최소한 세 돌까지는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것이 좋다는 이론을 어겨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복직을 한 지 여섯 달째인 오늘까지도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나의 어깨를 누른다. 감히 아기가 아닌 나를 먼저 생각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떠올리고 있다. 나의 일은 경제적인 기둥이 돼 주고 나를 단련시켜 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나의 이런 능력과 경험이 나중에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의 사랑은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엄마나 가족이 아니고선 쉽게 믿기 힘든 세상이라 더욱 그렇다. 적어도 3년이라는데 이 시간 동안 일을 포기하면 4, 5년 뒤 나는 다시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나의 모든 상황이 딜레마에 놓인 것 같은 상태로 지금 일을 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정말 큰 문제를 줄까, 나는 부족하고 이기적인 엄마일까 항상 걱정을 달고 산다. ●일하며 아이 잘 돌보는 환경 언제쯤 당연시될까 남편도 아기가 태어난 뒤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무척 힘이 들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의 고민은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잘해서 좋은 성과를 낼 것이냐였지, 일을 할지 말지가 아니었다. 외벌이로는 힘들어 나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또 나는 일을 하길 원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일을 하는 게 맞는가를 고민한다. 똑같은 교육을 받고 비슷하게 사회 생활을 시작해 놓고 고민의 본질부터 달라야만 하는 게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잘 돌보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언제쯤 당연한 것이 될까. 일과 아이,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포기하거나 둘 다 잘 못할 수밖에 없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baikyoon@seoul.co.kr
  • “사회정의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보답”

    “사회정의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보답”

    LG복지재단은 지난 8일 교통사고를 당한 여성을 구하려다 신호 위반 차량에 치여 숨진 정연승(35) 특전사 상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한다고 10일 밝혔다. LG 측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구본무 회장과 LG 차원의 뜻을 담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의 공익법인인 LG복지재단은 이를 위해 ‘LG 의인상’을 신설하고 첫 번째 수여자로 정 상사를 선정했다고 전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9공수여단 소속인 정 상사는 이른 아침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여성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달려가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하던 중 신호를 위반한 채 달려오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 정 상사는 솔선수범의 자세로 복무해 부대원들의 본보기가 돼 왔고 평소에도 장애인 시설과 양로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결식아동과 소년소녀 가장을 후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 아내와 여덟 살, 여섯 살 난 두 딸이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LG그룹은 과거에도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는 의인과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위로금을 전달해 왔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은 2명의 군 장병에게 5억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앞서 2013년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려다 희생한 인천 강화경찰서 소속 정옥성 경감 유가족에게 5억원의 위로금과 자녀 3명의 학자금 전액을 지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 엄마가 됐는데, 가장 필요한 것도 ‘엄마’였죠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 엄마가 됐는데, 가장 필요한 것도 ‘엄마’였죠

    아기를 낳고 기르면서 가장 필요하고 갖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친정 엄마’였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자 오히려 내 엄마의 존재가 더욱 간절해지는 모순이라니. 하지만 친정 엄마 말고는 마음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전혀 없었던 이유에서다. 그나마 평일 저녁에 일찍, 그래봤자 저녁 9시에 들어오는 남편이 유일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2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 외 자녀를 정기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있느냐는 조사에서 79.2%가 “없다”고 답했다. 자녀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친조부모(48.1%)와 외조부모(47.1%)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타 친인척 7.2%, 비혈연 인력 5.8% 등은 극히 일부였다. 아기 엄마가 취업 중일 경우에도 정기적으로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겨우 절반(52.5%)을 조금 넘겼다. 일을 그만두었거나 취업한 적이 아예 없는 엄마들의 경우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각각 91.2%, 87.9%나 됐다. 급한 일이 생길 경우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65.1%)이 가장 많았고 외조부모(36.8%), 친조부모(33.3%), 이웃이나 친구(14.7%) 등으로 조사됐다(다중 응답 결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아기를 맡길 수 있다는 건데, 그조차도 여건이 안 되는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다는 게 서럽고 버거울 때가 많았다. 몸이 아프거나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정말 난감했다. 단 10분도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처지가 못 되다 보니 ‘지원군’이 절실했다. ●도움 못 받아 처절… 장염에 링거 꽂고 아이엔 모유 감기 같은 가벼운 증상은 차라리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고, 출산 후 잇몸이 상해 내내 이가 시리지만 치과 근처는 얼씬하지도 못했다. 꼭 받아야 하는 진료가 있을 때엔 아기를 안고 초음파 검사를 하거나 간호사가 우는 아기를 안아준 적도 있다. 급성 장염에 시달린 어느 날에는 밤새 아픈 배를 부여잡다가 겨우 동네 내과에 가서 아기와 함께 누워서 링거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으며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기도 했다. 잠깐씩 벌어지는 일들은 그런대로 넘길 수 있었다. 복직 시기가 점점 다가올수록 친정 엄마의 부재(不在)가 더욱 처절하게 와 닿았다.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걱정을 수백 번 했다. 아기를 맡길 데가 없는데 갑자기 출장을 가라는 지시를 받거나 집에서 반대 방향의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출입처로 출퇴근을 하라는 지시를 받는 등의 꿈을 수도 없이 꿨다. 도움을 청할 데가 마땅치 않으니 친정 엄마 없이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워킹맘의 필수품이야말로 친정 엄마였다. ●영아 위탁 어린이집 “10~16시 돌봐줘요”에 난감 일을 하려면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야 했는데 친정 엄마가 없다는 사실부터 큰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나의 근무 여건이나 상황에 딱 맞는 곳은 아예 찾을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어린이집을 이용해야 했다. 정부에서 보육수당 40만 6000원(0세 기준)이 지원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적다. 그러나 알아본 주변 어린이집 모두 0세반 영아의 경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가 ‘적정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어린이집에서는 “법적으론 오후 7시 30분까지이지만 아이들이 그 시간까지 남아 있지 않는다”라거나 “아기가 너무 오래 있으면 안 좋다”고 말했다. 내 출퇴근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내 아이 한 명만 종일 봐달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나마 늦게까지 눈치를 덜 보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아직도 대기 순번이 100번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취업 여성들은 대체로 오후 6시 이후에나 퇴근을 하고 특히 오후 6시 반 이후 퇴근자가 50.6%에 달한다. 그런데 육아지원 기관들은 오후 3시 반부터 아이들을 하원시키기 시작해 오후 5시가 되면 아이의 13%만 기관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이모님’ 현대판 오복이라 할 정도로 드물어 ‘베이비시터’(아이돌보미)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매달 월급의 반 정도를 뚝 떼내야 하지만 방도가 없다. 그나마 12시간 이상 아이만 보거나 입주도우미를 쓰지 않으니 반만 떼내는 것이다.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출퇴근형 베이비시터는 월 160만~180만원, 입주형은 월 200만원이 넘는 게 시세다. 어린이집을 병행하면서 ‘등·하원도우미형’ 시터를 구하면 시급 8000원~1만원선의 급여를 줘야 한다. 아이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앞뒤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이모님(베이비시터)이 등·하원을 시켜주면서 아이를 봐준 생활을 한 지 어느덧 6개월. 각종 사건·사고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루 종일 남에게 맡긴 무모한 엄마가 됐다. 그나마 다행히 아주 좋은 분을 만나 어느 정도 걱정을 덜어냈다. 이모님 구하기 미션을 위해 몇 달 동안 인터넷을 부여잡고 정보를 찾아 헤맸다. 가장 가까이에 사는 분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아파트 동마다 일일이 전단지를 붙이고 20여통의 전화를 받았다. 다섯 차례에 걸쳐 면접도 봤다. 아이를 봐주실 분을 한두 번 만남에 결정해야 하니 나의 ‘사람 보는 눈’과 ‘운’에 철저히 기대야 했다. 좋은 이모님을 만나는 것이 현대판 ‘오복’(五福)이라고 할 정도로 엄마, 아이와 잘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주변에서나 육아 카페에서 복직을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다. 아예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겨 두고 주말에만, 또는 한 달에 두어 번만 아이와 상봉하는 경우도 흔하다. 여고 동창들은 취업과 결혼을 하며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가 아기를 낳고 마치 귀향을 하듯이 다시 친정 근처로 이사했다. 남편 지인들 가운데에서도 처가살이는 더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다. ‘헬리콥터맘’이나 ‘캥거루족’이라며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한 성인 자녀들을 비판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버티기가 쉽지 않다. ●딸 결혼시키고도 ‘딸의 딸’ 돌보는 친정 엄마는… 내 가정을 꾸리고 나도 어엿한 부모가 되었는데, 여전히 나의 부모 말고는 기댈 데가 딱히 없다는 게 늘 불만이다. 친정 엄마는 또 무슨 죄인가. 기껏 딸을 키워서 공부도 다 시켜 놓았는데 그 딸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딸의 딸’까지 키워줘야 한다. 평생 내 엄마로만 살아왔는데, 이제 내 아이의 할머니로 살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복직을 한 지 여섯 달이 다 된 지금까지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지우지 못하는 이기적인 딸이다. 30년쯤 뒤, 내 아이가 아기를 낳았을 때는 세상이 달라져 있을까. 손주를 봐주는 친정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그 다짐이 오히려 이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딸부잣집 셋째딸 겐제베 2관왕 무난한 시동

    딸부잣집 셋째딸 겐제베 2관왕 무난한 시동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딸부잣집 셋째딸이 무난하게 대회 2관왕 시동을 걸었다. 지난 25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된 2015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1500m 결선에서 4분08초09에 결승선을 통과, 금메달을 목에 건 겐제베 디바바(24·에티오피아) 얘기다. 지난달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에서 3분50초07로 1993년 취윈샤(중국)가 작성한 종전 세계기록(3분50초46)을 22년 만에 0.4초 가까이 앞당겼지만 IAAF가 아직 공인하지 않아 이날 의문의 여지 없는 세계기록 경신이 기대됐다. 하지만 그는 레이스 초반 일찌감치 기록 경쟁을 포기하고 순위 경쟁을 택해 다소 실망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겐제베는 27일 오전 10시 40분 여자 5000m 예선에 나서 대회 2관왕을 노린다. 더불어 바로위 언니 티루네시(30)가 2008년 작성한 세계기록(14분11초2) 경신에 나선다. 결선은 30일 오후 8시 15분 열린다.(사실 에티오피아인들은 첫 이름을 우리의 성(姓)처럼 부른다고 한다. 따라서 형제를 구분하기 위해서만 이렇게 표기한 것은 아니다.) 티루네시는 2003년 파리와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 5000m를 2연패했고 2005년 헬싱키를 시작으로 2007년 오사카, 2013년 모스크바까지 세 차례나 1만m 챔피언에 올랐다. 올림픽 5000m에서는 2004년 아테네와 2012년 런던 동메달을, 2008년 베이징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만m에서는 베이징과 런던까지 2연패했다. 원래 5000m와 1만m를 겸업하던 티루네시는 동생 겐제베가 1500m와 5000m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최근에는 1만m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치챘겠지만 자매는 에티오피아의 이름난 육상 가문 출신이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남쪽 아르시주 베코지에서 자라난 여섯 자녀 가운데 넷이나 육상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맏언니 에제가예후(33)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1만m 은메달에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 5000m와 1만m 동메달리스트, 2011년 시카고마라톤 준우승자이며 그 아래 남동생 Dejene(26)도 800m 선수로 뛰고 있다. 티루네시가 둘째, 겐제베가 셋째 여동생이다. 이 마을은 이름난 육상인들을 길러낸 곳으로 유명하다. 올림픽 챔피언 Fatuma Roba와 1만m 선수로 두 차례 올림픽과 한 번의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건 Derartu Tului, 두 차례나 올림픽 챔피언을 지낸 Kenenisa Bekele가 모두 사촌들이다. 티루네시와 2008년 10월 결혼한 Sileshi Sihine도 올림픽 1만m 은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이들 4남매는 어릴적 Derartu의 성공담을 듣고 자라났는데 선수로 뛰기 시작한 데는 다른 사촌(이들의 자매로 종종 오해받는) 베켈루 디바바가 국제적인 육상 선수로 성공해 벨기에에 거주한다는 얘기에 고무됐다고 IAAF 홈페이지는 전하고 있다. 에제가예후가 1998년 먼저 입문했고 티루네시가 1년 뒤 같은 길을 따랐다. 티루네시가 2000년 아디스아바바로 옮겨왔을 때 학교 등록이 늦어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자 경찰이 비행 청소년들을 교화하기 위해 만든 스포츠 클럽에 다니는 조건으로 아디스아바바 체류를 허가받아 육상 훈련을 시작했고 곧 겐제베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해외여행 | Ohana Time in Hawaii 필사적 하와이 가족여행③Festival

    해외여행 | Ohana Time in Hawaii 필사적 하와이 가족여행③Festival

    ●Ohana Time Festival 레이 향기에 취하니, 알로하 스피릿 하와이에서 5월1일은 메이데이May Day가 아니라 레이데이Lei Day다. 레이는 사랑과 존경과 환영의 의미를 담은 하와이의 전통 꽃목걸이. 알로하~ 인사와 함께 상대의 목에 레이를 걸어 주며 진심 어린 사랑과 정성을 전한다. 그래서 보는 앞에서 레이를 벗거나 받은 레이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만큼 무례한 일도 없다고 한다. 하와이 여행은 곧 목덜미의 레이 감촉에 익숙해지고 꽃향기에 취하는 여정이다. 매년 5월1일 레이 데이가 되면 호놀룰루에서 가장 크고 또 오래된 공원 카피올라니 공원Kapiolani Park에서 레이축제Lei Day Celebration가 열린다. 1927년 소규모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하와이 최대 규모가 됐다고. 일 년에 한 번뿐인 레이 축제를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이냐고 앞서 나가며 아내와 딸의 발길을 재촉한다. 다이아몬드 헤드 언저리까지 오니 카피올라니 공원이 나타나고 레이를 목에 건 사람들이 공원 곳곳을 활보한다. 저 앞 원형무대에서는 훌라 공연이 한창이다. 전문 댄서들이라기보다는 순박한 마을 주민들이다. 부끄러운지 계면쩍어하고 동작을 놓치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긴다. 보는 이도 편안하고 부담 없다. 정통 훌라는 다르다. 사회자의 호들갑스런 소개와 함께 무대에 오른 2014년 레이 프린세스Lei Princess와 레이 퀸Lei Queen의 훌라는 뭐랄까, 경건하고 우아하다. 지난해 레이 축제 때 콘테스트를 통해 선발됐을 테니 실력이 남다를 수밖에. 손동작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다던 얘기가 생각나 미리 공부 좀 할 걸 후회한다. 딸은 공원 곳곳의 축제 프로그램에 관심을 쏟는다. 어딘가에 레이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있을 거라며 팔을 잡아끈다. 유치원생 정도 될 법한 꼬마 무리가 한 천막에 빼곡하다. 그곳에서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레이를 만들고 있다. 단순히 꽃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각종 이파리와 양치류 식물들도 함께 차곡차곡 꿴다. 레이의 정수나 나름 없다. 어머~ 예쁘다, 예술작품 같다며 아내가 감탄한다. 그 정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하와이 사람들의 알로하 정신Aloha Spirit으로 이어지는 거겠지. 마음을 열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마음, 그를 통해 나와 상대, 더 나아가서는 나와 자연과의 조화와 연대를 추구하는 정신이다, 라고 스스로도 어려운 설명을 딸은,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다 친절하구나, 쉽게 이해한다. 이튿날 오후부터 호놀룰루 시내는 도로가 폐쇄되는 등 야단법석이다. 13회째를 맞은 스팸축제로 메인 거리 칼라카후아 애비뉴는 차 없는 거리로 변한다. 사람들이 대신 빼곡하다. 하와이주의 스팸 소비량이 미국 내 최대여서 열리기 시작했다고. 스팸 요리를 필두로 별별 하와이 길거리 음식이 길거리를 메운다. 눈대중으로 맛을 가늠해 고른 길거리 음식 서너 접시를 들고 잔디밭에 앉으니 이 또한 오붓하다. 스팸 축제 www.spamjamhawaii.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Ohana Time Stay 방에 남겨 둔 레이 꽃 편지 밖으로만 나도느라 이 좋은 호텔에서 잠만 자다 갈 판이라고 아내가 일깨우듯 투덜댄다. 너무 강행군이었나 싶어 일찍 ‘귀가’한다. 우리의 집은 엠버시 스위트 와이키키 비치 워크Embassy Suites Waikiki Beach Walk. 21층짜리 훌라 타워와 알로하 타워 두 개 동이 있는데 우리 객실은 훌라 타워에 있다. 와이키키 해변과는 한 블록 떨어져 있지만 테라스에 서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파도소리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가족여행에 특화된 호텔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와이키키에서 유일하게 모든 객실이 스위트룸이다. 침실과 별도로 거실이 따로 있다. 딸이 방방 뛰며 좋아라 했던 것도 다 이 덕분이다. 거실의 소파는 엑스트라 침대로 변신하기 때문에 대가족이라도 문제없다. 객실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한갓진 한때를 즐긴다. 힐튼 계열이구나, 아내는 호텔안내서를 뒤적이며 호텔투어 동선을 짠다. 가족 모두 운동에는 별 취미가 없어서 헬스클럽은 빼꼼 들여다보고만 나온다. 세탁실이 있는 줄 알았으면 옷을 조금씩만 챙겨 왔을 거라는 아내는 하나마다한 후회다. 호텔 밖으로 나가니, 요즘 호놀룰루에서 새로운 쇼핑명소로 부상했다는 와이키키 비치 워크Waikiki Beach Walk로 바로 이어진다. 부티크 숍과 로드숍이 올망졸망 예술적 풍경을 자아낸다. 야자수 나무와 어우러진 비치 워크 모습을 배경으로 가족 셀카! 조금만 더 걸으면 호놀룰루의 최대 번화가 칼라카후아로 이어진다. 호텔 1층 마트와 건너편 ABC스토어는 식료품과 의류, 기념품 등으로 가득하다. 하와이의 맛집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로이스Roy’s도 1층에 있다. 뷔페 레스토랑과 수영장은 같은 층에 있다. 아침 먹을 때마다 수영장 타령이던 딸은 드디어 한을 푼다. 아빠와 수영 레이스를 펼치는데 지치지도 않는다. 아내는 비치의자에서 풀 사이드 바에서 주문한 하와이 로컬맥주를 들이키며 레이스를 관람한다. 오후 5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무료 칵테일 리셉션이 열리는데 아직이다. 여행 마지막 날 밤, 귀국 준비에 여념 없는 와중에 문득 보니 딸이 없다. 테라스에 오도카니 앉아 어둠 내린 바다를 바라보며 훌쩍인다. 돌아가려니 너무 슬프단다. 다음날 아침 딸은 또 꾸물댄다. 우리 객실을 담당했던 호텔 룸메이드에게 편지를 남긴다. 레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침대 위에 놓고 그 안에 편지를 넣는다. 매일 마주치고 대화하면서 정이 들었던 룸메이드다. 왜 딸 하나만 낳았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는 자식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라고 대답하면, 어디 돈만 들더냐며 맞장구치는 식의 대화가 떠올라 풋 웃고는 객실을 나선다. 우리 오늘 떠나요, 고마웠어요, 그녀에게 인사한다. 자기 역시 고맙다더니, 하와이만큼 공부하기 좋은 데도 없으니 꼭 다시 오라고 딸에게 말하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 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니 딸은 또 울컥 북받친다. 마할로 하와이! 엠버시 스위트 와이키키 비치 워크 kr.embassysuiteswaikiki.com 와이키키 비치워크 www.waikikibeachwalk.com ▶travel info Hawaii AIRLINE 인천-호놀룰루 구간을 대한항공KE, 아시아나항공OZ, 하와이안항공HA이 논스톱 직항으로 연결하고 있다. 델타항공DL 등이 코드셰어로 공동운항하며, 일본이나 중국 등 경유편 항공편도 많다. 비행시간은 호놀룰루행은 8시간 30분 정도, 인천행은 10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Rent-a-Car 하와이에서는 단체 패키지여행이 아닌 이상 렌터카여행이 일반적이다. 호놀룰루공항에 버짓Budget 등 글로벌 렌터카 회사가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각 회사별로 공항과 각사 영업장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공항 도착 후 자신이 예약한 렌터카 회사의 셔틀버스를 이용해 이동하면 된다. 연료를 채워서 빌릴 경우 일정을 감안해 양을 조절해 요청해야 한다. 무턱대고 가득 채웠다가는 절반도 쓰지 못한 채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 하와이는 운전석 방향이 한국과 동일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운전할 정도 실력이면 별 무리가 없다. 한국과 달리 별도 표시가 없어도 비보호 좌회전이 인정된다는 점,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 등에 그어진 스톱STOP 라인 앞에서는 무조건 정차하고 좌우사방을 살핀 뒤 정차한 순서대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점, 호놀룰루 시내 등 도심에서는 일방통행 도로가 많다는 점 등에만 주의하면 된다. 한국어 내비게이션을 빌릴 수도 있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도 큰 무리가 없다. FOOD 하와이 전통요리를 한번에 훌라그릴Hula Grill 아웃리거 와이키키Outrigger Waikiki 2층에 자리잡은 하와이의 맛집이다. 하와이 전통 음식을 한접시에 담아 서빙하는 ‘하와이안 루아우 플레이트Hawaiian Luau Plate’를 맛볼 수 있다. 참치를 썰어 양념으로 버무린 포케Poke, 돼지고기를 타로 잎에 쌓아 쪄낸 라우라우Laulau, 이무Imu라고 불리는 땅 속 화덕에서 오래 익힌 돼지고기인 칼루아 피그Kalua Pig 등 예닐곱 개의 요리가 한접시에 담겨 나온다. 하와이 전통 훌라 공연과 음악을 감상하며 즐긴다. www.hulagrillwaikiki.com 동서양 음악의 조화 로이스Roy’s 일본인이 운영하는 퓨전 레스토랑으로 하와이 전통음식에 프렌치 요리를 조화시켰다. 동서양의 음식이 조화를 이룬 ‘퍼시픽 림 퀴진Pacifid Rim Cuisine’을 맛볼 수 있다. 하와이에만 7곳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엠버시 스위트 와이키키 비치 워크 1층에도 운영되고 있다.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 좋은 고급 레스토랑이다. www.royshawaii.com Hotel & Resorts 와이키키 최대 규모 힐튼하와이안빌리지 힐튼하와이안빌리지호텔은 6개의 타워와 5개의 수영장, 인공 라군 등을 갖춘 와이키키 최대 규모의 리조트로 유명하다. 와이키키 해변과 맞닿은 레인보우타워를 비롯한 6개의 타워가 제각각의 매력으로 일종의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하와이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www.hiltonhawaiianvillage.com 돌고래가 헤엄치는 카할라호텔 대중적이고 북적대는 와이키키 소재 호텔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탤런트 이영애가 결혼식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많이 다녀갔다. 고급 웨딩촬영 및 허니문 리조트로서의 색채가 강하다. 자녀 동반 가족단위 여행객들로부터 인기인데, 리조트 내에 돌고래 대여섯 마리를 키우고 있다. 돌핀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www.kahalaresort.com 와이키키 바다와 맞닿은 쉐라톤와이키키 와이키키 바다와 맞닿은 리조트 호텔이다. 객실이 1,6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를 자랑한다. 1층에 자리 잡은 뷔페 레스토랑 카이 마켓Kai Market은 ‘농가에서 식탁까지’를 콘셉트로 하와이산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든다. www.sheraton-waikiki.com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하와이관광청 www.gohawaii.com/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중국 구이린Guilin-풍경 그 너머의 고장

    해외여행 | 중국 구이린Guilin-풍경 그 너머의 고장

    억만년의 시간이 빚어낸 경치를 시인묵객들은 천하제일이라 예찬했고, 구이린계림, 桂林을 보지 않고 산수를 논하지 말라고 누군가는 으스댔다. 그러나 마주한 그곳에서 시선을 파고든 건 산과 물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었다. 장엄한 풍광도 삶의 터전일 뿐인 그들은 전통을 잇고 현재를 수긍하며, 리장리강, 漓江처럼 담담히 흐르고 있었다. 순한 웃음을 주던 그 얼굴들이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구이린桂林을 여행하기 전 기원전 214년, 진나라 시황제가 처음 도시를 세운 구이린은 광시좡족자치구 북동부에 있다. 수려한 경관은 익히 유명하고 특히, 몇년 전부터는 수십 개의 풍경구를 새로 개발하고 교통까지 편리해져 국제관광도시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구이린은 아열대 기후라 기온이 높고 일 년 내 비가 자주 온다. 크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이라지만 실제 체감 온도는 그렇지 않다. 습기 탓에 훨씬 덥게 느껴지고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5월 말의 기온이 34℃ 정도였는데 체감온도는 40℃처럼 느껴졌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기 때문에 가볍게 보지 말고 여행시에는 계절에 맞는 준비물을 잘 챙기도록 한다. 흔히 계수나무 꽃이 피는 가을을 여행의 최적기로 꼽는다. 룽지티톈의 경우 10월 둘째 주쯤 추수를 하기 때문에 황금 논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 내 인파가 몰리는 첫째 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 ●구이린桂林 계수나무의 숲 잦은 비에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고작 60일이라는 구이린. 출국 전부터 중국 기상청 예보에 온통 신경이 쏠렸건만. 6월을 앞둔 구이린의 하늘은 머리 위로 폭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동하는 내내 차창에 코를 박았다. 종일 집안으로 향기가 스민다는 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계수나무는 초여름 무성한 녹음을 뿜고 있었다. 건물 사이 기괴한 봉우리들이 시선을 끌었고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그 사이를 무심히 내달렸다. 구이린은 몇년 사이 빠르게 변화해 왔다. 특히 광시廣西좡족자치구의 교통 요지로서, 잘 정비된 도로에 리장漓江, 샹장湘江의 물길은 광저우와 홍콩, 마카오까지 이어진다. 숲을 이룰 만큼 계수나무가 많다는 뜻을 가진, 구이린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110년의 계수나무 부부수가 있는 곳은 징장왕청靖江王城이다. 징장은 구이린의 옛 지명으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왕위에 오르면서 장손인 주수겸을 왕으로 임명해 구이린에 파견했다. 왕청은 징장왕의 저택으로 명나라 5년에 착공해 완성까지 20년이 걸렸다. 현재 광시사범대학 왕청캠퍼스로 사용 중인 징장왕청은 시내에서도 중심에 있었다. 견고한 성벽과 네 개의 성문은 당시 그대로지만 종묘, 정자, 누각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중일전쟁1937~1945년 때 파괴되어 1947년 재건한 것이다. 역사전시실로 꾸며진 청윈뎬承云殿에는 12대에 걸친 성의 역사를 모아 놓고 있으며 한 켠에서는 작은 공연도 펼쳐진다. 그 뒤 국학당으로 사용 중인 침궁 앞으로 학생들이 오간다. 우거진 나무터널을 지나 걸음은 두슈펑獨秀峰에서 멈췄다. 66m 높이에 불과한 이 석회암 봉우리는 이름처럼 홀로 우뚝 솟아 있는데 정상에서 보이는 멋진 전경은 과거 명인들의 동경이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석각이다. 당나라 이래 136개나 되는 석각이 봉우리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새겨졌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송나라 후기 때 문인이던 왕정공王正功이 직접 새긴 시다. ‘구이린의 산수가 천하의 으뜸桂林山水甲天下’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그 시 속에 있다. 젊은이들과의 연회에서 흥에 겨워 쓴 시의 한 구절이 구이린을 대표하는 말로 대대손손 기억되리라는 것을 왕정공은 짐작이나 했을까.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더위에 지쳐 있다 쾌재를 부른 것은 루디옌蘆笛岩에서다. 루디옌은 시내에서 7km 떨어진 광명산에 있는 동굴로 전체 2km 중에 개방된 곳은 500m 정도다. 18℃를 유지한다는 동굴 안은 정말 시원했다. 눈사람, 부처, 사자, 수정궁 등 기이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주, 석화가 색색의 조명 아래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고 안내원의 설명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동굴은 정말 신비로웠지만 여기저기 판매를 목적으로 잘려 나간 종유석을 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자연의 예술궁전’이라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분명하다. 구이린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평범했던 낮과 달리 밤의 구이린은 화려하게 변신한다. 대표적인 곳이 량장쓰후兩江四湖다. 량장쓰후는 시내를 감싸 흐르는 리장과 타오화장桃花江의 물줄기를 도심의 룽후龍湖, 산후杉湖, 구이후桂湖, 무룽후木龍湖와 연결해 만든 해자라고 할 수 있다. 네 개의 호수는 당나라 당시에도 구이린의 해자였다. 샹산象山공원도 량장쓰후 부근에 자리한다. 흔한 유원지를 떠올리는 분위기 탓에 명성과 달리 조연으로 전락했던 그 코끼리 모양의 돌산은 차라리 밤이 되자 주연의 자리를 되찾은 듯 보였다. 산후 앞 선착장에서 유람선의 차례를 기다렸다. 물 위로 량장쓰후의 랜드마크인 일월쌍탑日月月雙塔이 반짝인다. 금탑은 태양, 은탑은 달을 뜻한다. 유람선이 제 속도를 내고 룽후를 지나는 오른쪽으로는 룽후공원의 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조명에 파묻혀 웃고 있다. 함께 손을 흔들었다. 속도가 줄어든 것은 중간 지점 구이후 부근에서다. 재현된 옛 선박모형 앞에서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낚시 퍼포먼스가 연출되고 있었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는 긴 목과 주둥이를 이용해 재빠르게 물고기를 잡는다. 배는 다시 미국 금문교 모양의 다리 아래를 지난다. 모두 열 아홉 개나 되는 량장쓰후의 다리 중에는 이처럼 세계 유명 다리를 본뜬 것도 많아 교량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뱃놀이의 풍류는 당을 거쳐 송宋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많은 호수와 강이 있는 구이린은 수로가 발달해 뗏목과 배를 이용한 뱃놀이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개발이 진행되면서 수질은 나빠지고 하천의 체계는 무너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1998년의 량장쓰후 프로젝트다. 강과 호수를 연결하고 공원 녹지를 조성했으며, 다리와 길을 만들고 수질을 정화하는 작업을 거쳐 2002년, 지금의 량장쓰후를 탄생시켰다. 덕분에 도심의 생태환경 질은 높아졌고 오늘날 쾌적하게 밤의 풍류를 즐기게 된 것이다. 유치하다 싶을 만큼 화려한 조명들로 몽롱한 사이, 수변 무대 앞에서 유람선이 갑자기 멈춰 선다. 음악과 함께 민속공연이 한창이었다. 감상도 잠시, 출발 지점을 향해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배 안. 어여쁜 한족 아가씨가 익숙한 우리 노래를 비파로 연주하는 동안 한 시간여의 현대판 뱃놀이가 끝나 가고 있었다. ●룽성 龍勝 눈물로 일군 천국의 계단 구이린에서 77km. 광시와 후난湖南성 접경에 자리한 룽성으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룽성 각족各族자치현 허핑和平향, 그곳에 있는 룽지티뎬龍脊梯田이 목적지다. 룽지티톈은 우리가 흔히 다랭이 논이라 부르는 계단식 논이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반 만에 버스가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을 또 가야 한다. 세차게 비가 내렸고 험한 산길 아래는 물줄기가 운무에 쌓인 계곡을 휘감았다. 멀미가 슬슬 올라올 무렵 멈춘 곳은 훙야오红瑶족의 부락인 황뤄야오자이黄洛瑶寨. 60가구, 약 500명이 이곳에 모여 산다. 야오족은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원명元明시대 봉건통치자들의 압박을 피해 대규모 야오족이 남쪽으로 이동했고, 특히 명대 97년간은 군대까지 동원한 유혈진압에 시달렸다. 훙야오족이 룽지티톈에 정착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다채로운 자수를 수놓은 붉은색 옷을 입는 훙야오족은 여인들의 긴 머리가 유명하다. 머리카락 평균 길이는 1.7m, 가장 긴 사람은 2.1m나 된다. 다섯살 때부터 기른 머리를 성인식 때 귀밑까지 자르고는 다시 평생 기른다. 자른 머리카락은 뭉치로 잘 보관해 뒀다가 결혼 후 자녀를 낳으면 틀어 얹는데 그것을 반발盤髮이라 한다. 그리고 머리를 손질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 뒀다가 또 하나의 반발을 만든다. 예쁘게 틀어 올린 머리는 지금의 머리에 두 개의 머리채를 묶어 비로소 완성된 스타일이다. 훙야오족이 이토록 애지중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머리카락이 부귀영화와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흔들다리를 건너야 했다. 10여 명씩 우산을 든 채 한 손으로 출렁대는 다리를 부여잡고 뒤뚱대며 건넜다. 발아래로 비에 불어난 물살이 아찔했다. ‘천하제일장발촌’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들어선 민속공연장에는 훙야오족 문화의 면면이 공연으로 펼쳐진다. 전통차인 유차를 마시며 여인들이 그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감아올리는 퍼포먼스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남성 관객과 함께 연출하는 결혼 풍습도 흥미롭다. 마음에 드는 남성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꼬집고 남성이 여성의 발등을 살짝 밟는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공연은 부락에서 가장 나이 많은 81세의 할머니가 창가에서 긴 머리를 빗는 것으로 막바지에 이른다. 놀랍게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 훙야오족은 쌀뜨물을 발효시킨 물로 계곡에서 머리를 감는다는데, 일평생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을 지니고 있는 비법일지도. 노동이 흐르는 산등성이 풍경 71.6km2라는 가늠하기도 힘든 면적의 룽지티톈은 해발 1,916m 룽지산 자락을 380m부터 높게는 1,180m까지 뒤덮고 있다. 크게 진컹티텐金坑梯田과 핑안티텐平安梯田으로 나뉘는데, 핑안은 좡壯족의 거주지이고 진컹은 훙야오족의 거주지다. 그들은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이 방대한 개간 작업을 시작해 청나라 초기에 완성했고, 지금까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방향은 진컹티톈 쪽이었다. 3년 전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천천히 고도가 높아지고 창밖으로 논이 물결친다. 20분 후, 드디어 가장 높은 진푸딩金佛頂 전망대다. 막 비가 그친 희뿌연 산자락에 온통 용이 춤을 춘다. 논 사이사이 다자이, 신자이, 좡지예 등 부락들이 그림처럼 박혀 있고, 장대한 선율로 흐르는 곳곳에서 모심기가 한창이다. 룽지티톈에는 ‘황금빛 부처의 정수리’라는 진푸딩 외에도 8개의 전망대가 더 있다. ‘달과 일곱 개의 별’, ‘천국으로 향하는 천개의 계단’ 등 저마다 낭만적인 이름을 지녔다. 위대한 이 풍광은 땀과 정성으로 일군 것이라기보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옳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카메라를 내려놓기 힘든 매력적인 예술작품이기 전에 돌투성이 산을 일구며 죽음과 맞서 온 이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역설적인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저 말을 잊을 뿐이다. ●싼장 三江 시의 고향, 노래의 바다 또 하나의 소수민족을 만나러 싼장 둥족자치현으로 향한다. 소수민족들이 흔히 그렇듯 이들 또한 한족, 몽고족, 만주족 등 주류의 핍박을 피해 이 변방의 산간벽지에서 거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8개의 부락이 모여 산다는 정양촌 입구. 촌락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청양펑위차오程陽風雨橋, 이름 그대로 바람과 비의 다리다. 길이 64.4m에 폭 3.4m, 높이는 10.6m에 이르는 이 다리는 실용성을 넘어 뛰어난 조형미와 아름다운 자태로 세계적으로도 건축양식의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1916년부터 12년이 걸려 완성됐는데 중국 정부의 중점보호대상문물로 지정되어 있다. 청양펑위차오는 맨 아래에 5개의 청석으로 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삼나무로 몸체를 만든 후 탑 모양의 정자를 지붕으로 올린다. 다리 내부는 긴 복도 형태다. 놀라운 것은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서로 맞물려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펑위차오風雨橋는 둥족 마을 어디에나 있다. 현에만 모양이 다른 다리가 100개도 넘는다. 부락과 부락의 경계, 강이 있는 자리에 세우는 펑위차오는 교량의 기능 외에도 영혼을 달래고 액을 막아 복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펑위차오인 허룽河龍교를 지나니 핑자이平寨다. 이 부락에는 고루鼓樓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펑위차오와 함께 둥족 문화를 상징하는 고루는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고루를 지을 때는 모두가 힘을 보태고 돈이나 물건을 기부하기도 한다고. 점심은 관샤오冠小촌에서 바이자옌百家宴을 베풀어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바이자옌은 귀한 손님이 오면 집집마다 대여섯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모여 접대하는 손님맞이 잔칫상인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전통복장을 한 둥족 여인들이 줄을 맞춰 서서 고음과 저음이 섞인 음색으로 환영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환대는 노랫가락을 타고 둥족은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아무 때고 권해도 막힘없이 한 자락을 뽑아낸다. 고유문자가 없는 그들이 노래 속에 역사와 신화를 담아 문화적 전통을 이어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둥족 사회가 ‘시의 고향이자 노래의 바다’라는 서정적 칭호를 갖게 된 것도 민족의 서사를 전승하는 방법이 노래였기 때문이다. 고루 앞 광장. 군무와 함께 연회가 시작된다.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인 루성蘆笙이 갖가지 소리를 내며 광장을 울리고, 이들이 모시는 대모신 싸마薩瑪를 상징하는 우산을 들고서 여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춤을 춘다.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진 우산살이 마을의 재앙을 막아 준다고 믿는다. 공연이 끝날 때쯤 여인들이 서둘러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상 하나에 두 가정이 만든 음식이 놓이는데 얼핏 봐도 백 가족은 돼 보인다. 둥족은 자신의 집에서 만든 음식상 앞에 앉아 그 자리에 마주 앉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 특이한 것은 한자리에서 식사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을 들고 상을 돌면서 각각의 손맛을 볼 수가 있다. 개구리튀김이나 메뚜기볶음이 앞에 있다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다. 상마다 반겨 주는 얼굴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연신 받아먹었다. 여기저기서 권주가가 끝날 때까지 권하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켜 곤혹을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배를 두드릴 때쯤 마지막 순서는 뚜어예多耶다. 강강술래처럼 음악에 맞춰 모두가 손을 잡고 도는 춤으로 화합의 뜻이 담겨 있다. 연회가 끝났다. 돌아 나서는 등 뒤에서 그들이 또 이별 노래를 부른다. 괜히 목이 메어서 결국 뒤돌아 손 한 번 흔들지 못했다. 바람소리 같고 새소리 같은 그 노래 때문이다. 소수민족 중국에는 한족 외에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에 비해 다른 민족들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1952년 소수민족정책 시행 이후 5개 자치구와 30개 자치주, 120개 현에서 소수민족 자치를 허용하고 있는데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은 1,800만 의 좡족으로 광시에 많다. ▶travel info GUILIN Airline 아시아나항공 ‘인천-구이린’ 직항편이 현재 매주 목, 일요일 20:30에 출발하고 ‘구이린-인천’은 04:55 인천 도착이다. 에어차이나항공은 김포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구이린까지 운항한다. 직항 소요시간은 약 4시간, 경유시 ‘김포-베이징’은 1시간 40분, ‘베이징-구이린’은 약 3시간이 소요된다. TEA 유차油茶 좡족, 둥족, 묘족, 야오족은 복장이나 음식 등 비슷한 풍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유차다. 구이린의 유차는 궁청 야오족유차, 룽성 둥족유차, 신안유차로 나뉘는데 유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을 ‘타打유차’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보통 현지에서 나는 차를 살짝 볶아 생강, 마늘, 쪽파 등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걸러낸다. 그리고 기름에 튀긴 찹쌀 위에 부어 낸다. 감기를 치료하고 고된 노동 후, 체력회복을 위해 마셔 왔다는 유차는 손님이 오면 꼭 권한다. 훙야오족과 둥족 모두 환영의 뜻으로 유차를 냈는데 둘 다 비슷했다. 맛은 마치 식용유가 섞인 누룽지처럼 약간 애매하다. MUSICAL 둥족의 사랑이야기, 줘메이坐妹 <줘메이>는 둥족의 풍속을 연출한 대형 뮤지컬이다. 현 중심에 자리한 공연장, 둥샹냐오차오侗鄕鳥巢는 새의 둥지를 형상화한 둥근 형태로 천장이 없다. 줘메이는 둥족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서막을 포함, 전체 6장의 구성 안에서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시켜 춤과 노래로 엮어낸다. 특히 펑위차오와 전통가옥, 흐르는 강 등 둥족의 생활터전을 연출한 무대와 출연자들의 화려한 의상이 볼거리다. www.zuomeisj.com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공연 바캉스

    공연 바캉스

    연극을 보며 웃고 클래식 선율에 젖어들다 보면, 또 박물관을 거닐며 옛 선조들의 정취를 느끼고 다양한 체험을 하다 보면 어느새 무더위는 저 멀리 달아난다. 올여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과 전시가 풍성하다. 밤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과 함께하는 야외 공연, 저렴한 티켓 가격으로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축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오페라와 합창,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전시까지 가족 단위로 ‘공연·전시 바캉스’를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2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경남 밀양 일대에서는 제15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 ‘연극,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슬로건을 건 올해 축제는 남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영남루에 특설무대가 마련된다. 이곳에서 개막 축하공연을 비롯해 재담극 ‘탈선 춘향전’, 손숙의 ‘어머니’, 창작뮤지컬 ‘궁리’, 강부자의 ‘오구’ 등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들이 공연된다. ‘코마치후덴’(이윤택 연출),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오태석 연출) 등 거장들의 명작들을 비롯해 ‘만주전선’(박근형 연출) ‘정글북’(이대웅 연출) ‘갈매기’(김소희 연출) 등 연극계 화제작들, 가족극과 대학 극단의 작품들, 해외 초청공연까지 총 40편의 작품이 관객들을 만난다. 경남의 대표적인 피서지인 거창 수승대 계곡은 오는 9일까지 한바탕 연극으로 들썩인다. 제27회 거창국제연극제는 울창한 숲과 계곡의 물줄기 등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세계 11개국 54개 극단의 연극을 선보인다. 극단 백수광부의 ‘까베세오’, 극단 청우의 ‘내 이름은 강’ 등 연극계 화제작과 일본,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체코, 스페인 등 해외의 초청공연, 댄스, 팝페라, 민요 등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마에스트로’의 지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무대도 열린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다음달 1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멀티플라자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서울시향 강변음악회’를 개최한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등 익숙한 클래식 명곡들을 들려준다. 총 1만석 규모의 객석이 전석 무료이며 관객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온 듯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방학을 맞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연도 풍성하다. 세종문화회관의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음악회’(다음달 6~19일)는 오케스트라와 합창, 오페라, 국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예술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합창음악회 ‘신나는 콘서트’는 클래식과 민요뿐 아니라 뮤지컬, 재즈, 이탈리아 칸초네 등 다채로운 장르로 꾸며진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의 ‘썸머클래식’은 규모 있는 관현악곡을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모차르트의 코믹 오페라 ‘코지 판 투테’,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국악극 ‘꿈꾸는 세종’ 등 알찬 프로그램이 가족단위 관객들을 기다린다. 박물관도 각양각색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역사에 대한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충족해줄 ‘선조들의 풍류 있는 여름나기’를 준비했다. 상반기 어린이박물관에서 이뤄진 교육들 중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프로그램들만 선별했다. ‘아름다운 빛깔, 고려청자’라는 교구를 활용하는 ‘신비한 고려청자의 세계’, 해시계 ‘앙부일구’를 통해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는 ‘해 그림자 속 암호를 풀어라’,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을 둘러싸고 벌인 영토전쟁에 대해 알아보는 ‘삼국이여, 한강을 사수하라’ 등 여섯 종류의 교육프로그램을 다음달 4일부터 14일까지 16회에 걸쳐 운영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을 주제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놀이를 통해 한글의 제자 원리를 익히고 한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키울 수 있는 ‘한글아, 안녕?’, 오감 체험을 통해 부모와 자녀 간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글 마음 여행’ 등을 진행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여름방학 경주박물관 탐험대’를 31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매주 금·토·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14회에 걸쳐 진행한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내용을 토대로 ‘영원을 꿈꾸는 황금장신구’ ‘비단길에서 온 보물’ ‘또 하나의 부처님, 탑’ 등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강의를 비롯해 금제허리띠 꾸미기, 유리잔 꾸미기, 탑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에서는 6~9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연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오늘은 나의 무대2 : 보물상자 대탐험’ 전시가 내년 2월까지 열린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오늘의 눈] 新디지털디바이드에 대한 우려/송수연 특별기획팀 기자

    [오늘의 눈] 新디지털디바이드에 대한 우려/송수연 특별기획팀 기자

    “요즘에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서울신문이 지난 4월부터 두 달간 보도한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 기획 기사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교수의 이야기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 관계자들이 이렇게 입을 모은다는 것이다. 대개 부모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 준 경우다. 아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외롭다 보니 스마트폰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전면에 다루지 못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스마트폰 중독과 빈곤 사이의 연결 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유독 스마트폰 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다섯 살 재성(가명)이도 그중 하나였다. 재성이 어머니는 홀로 자녀 여섯 명을 키우다 보니 막내 재성이에게 관심을 제대로 쏟지 못했다. 재성이는 혼자 누나들이 쓰던 스마트폰을 갖고 놀다가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디지털디바이드’란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본래 디지털디바이드란 소득이나 교육, 지역 등에 따라 인터넷 활용도에 차이가 생기고, 이로 인해 정보 격차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 인터넷 접근 기회가 많기 때문에 저소득층 아이들에 비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런 차이가 계층 간 격차를 더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성이처럼 오히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디지털 중독에 빠져드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득 수준의 차이가 계층 간 ‘디지털 중독 격차’를 유발하는 다른 의미의 ‘신(新)디지털디바이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 소득 수준이 높은 가정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인터넷 활용을 엄격히 통제하는 경우가 다수 목격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40대 정모씨는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을뿐더러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는 시간도 일주일에 두 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아이는 방과 후 각종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사실상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가 별로 없다. 맞벌이를 하는 30대 김모씨 부부는 베이비 시터를 고용해 아이를 돌보고 있어 아이가 마냥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방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신사 고위 간부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어렸을 때 스마트폰을 사 주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스마트폰이 여전히 고가의 전자기기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근로 대신 아이와 시간을 보내거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보다는 저렴하고 용이한 육아 방법이다. 물론 1차적으로는 부모가 적절한 규칙을 세우고 아이에게 스마트폰의 바른 사용법을 교육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부모가 생계에 허덕이지 않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신경을 쓸 여력이나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공간 등이 있다면 아이가 집에서 혼자 온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 신디지털디바이드 현상이 지나친 기우였으면 좋겠다. songsy@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