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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초대행정장관은 여성?/영 현부총독 진 여사 천거

    ◎양국 모두 신뢰… 등 집안과 긴밀한 유대/기업인 오광정 재계 지지 못얻어 불리 영국은 오는 97년 7월1일 정식 발족하는 홍콩특별행정구의 초대 행정장관으로 현재 홍콩정부의 부총독격인 포정사 진방안생 여사(56)를 중국에 추천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12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영국소식통을 인용,영국측은 중국 고위층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특별행정구 초대 총독격인 행정장관 후보자로 중국과 영국 양측으로부터 모두 신뢰를 받고있는 진방안생 여사를 비공식적으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내로 홍콩특별행정구의 초대 행정장관을 확정한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진방안생 여사는 93년 12월 홍콩인으로는 처음으로 크리스 패튼 총독 바로 아래의 부총독격 직위인 포정사에 임명되는 등 홍콩에서 가장 능력있는 여인으로 널리 꼽혀왔고 지난 62년 홍콩정부에 들어온 후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해 왔다. 집안도 명문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할아버지 방진무는 항일(항일)과 반장개석(반장개석)의 선봉에섰고 안휘성 주석을 지냈으며,외할아버지 방수이는 강소성 무석의 저명한 민족자본가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진방안생의 4번째 삼촌 방심량은 의사이자 행정국(행정국) 전 의원으로 중국에 의해 애국지사로 꼽혀왔고 홍콩인들 중 유일하게 등소평 집안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며 등의 장남이자 장애자인 등박방과 절친해 그가 캐나다로 가서 수술을 받는 것도 주선했다. 홍콩연합보는 초대 행정장관으로는 진방안생 이외에 홍콩의 첫 유선텔레비전인 워프케이블을 경영하고 중국에 대규모로 투자 중인 홍콩재벌 구창집단 및 융풍의 최고실력자 오광정(49)도 거론되고 있으나 홍콩 최대재벌인 이가성이 홍콩특별행정구예비공작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기업인이 행정장관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 도시 망치는 아파트 개혁해야/김진애(서울광장)

    「아파트」가 「도시」를 망치고 있다.주민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이느라 시민이 모여사는 도시의 삶의 질을 해치고 있는 셈이다.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개발,재건축.이렇게 아무데나,아무렇게나 대형 고층고밀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다가는 21세기 우리 도시는 질식상태에 이를 것이다.그 때는 남산외인아파트 부수듯 시원스레 다 부수겠다 할 수도 없고,후세대들은 악화된 삶의 질과 환경관리비용 때문에 생기는 경쟁력 후퇴를 통탄하고 선대의 단견을 원망할 것이다. 문제는 재개발,재건축을 적절하게 관리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건너편에는 용적률 3백% 개발을 허용해 주고 우리는 안해주느냐,왜 어느 저층아파트는 고층아파트로 인가해주고 우리는 안해주느냐,법적으로 4백%까지 지을 수 있는데 왜 2백50%로 규제하느냐,이런 소리가 태연스럽게 나오는 현실이다. 이를 막으려다 어떤 민원에 걸릴 지 몰라 시정부는 전전긍긍한다.중앙부서에서 건축법과 관련법을 자꾸 완화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근거로 개발규모를 조정할 지 막막하기도 하다.더구나 재개발,재건축이 중앙정부의 주택공급 목표와 맞물려 있으니 섣불리 제어하다가 목표량 미달로 추궁 당할 지 모르고 주택부족률로 추단을 당할 터이니 도시문제 생길 것이 불을 본듯 훤해도 꿋꿋이 버틸 재간이 없다. 재개발,재건축은 또 주민들을 모두 투기자로 만든다.집 늘리기 전략으로 부동산전문가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듯이,예상지구내에 낡은 집 한채 가지고 있으면 적어도 지금 사는 것 보다 1·5배 크기의 아파트를 부담없이 가질 수 있으니 어떻게 기대를 부추기지 않으랴.「무임승차」가 가능하게 제도가 보장해주니 말이다. 아파트 당첨으로 온 국민을 비의도적인 투기대기자로 만드는 현행 주택분양방식과 다름이 없다.게다가 노후주택지,노후아파트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낡은 집 전세주고 소유주는 딴 데 살고 오히려 빨리 노후되기를 기다린다. 분양이 잘되어야 사업이 돌아가는 업계로서는 토지확보 문제 없고 분양걱정 없는 재개발,재건축이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사업이다.조합들 이권에 밀려,능력없는 업체로 수주를 못할까 무서워 주민들 이주비 주기와 로비에 바빠 주택공급업계는 최대한 짓도록 갖은 묘수를 다 쓰게 된다. 이들 각 이해집단이 열심히 자기의 이익을 궁리하는 동안,인왕산·관악산이 고층아파트에 둘러 싸이고 한강변이 고층아파트 장벽으로 막혀 남산의 스카이라인을 또 해친다.도시기반시설 과부하가 걸리니 시민세금부담이 늘어난다.중대형아파트가 지어지면 자가용도 따라 느니 교통문제는 심각해진다.살던 사람들 쫓겨 나가니 통근교통 유발하고 교통전쟁 가중시킨다.주변 주민들은 환경이 나빠지니 우리도 고층아파트 지을까 고민하게 된다.조합 바람잡이와 업자들이 이들을 부추긴다.온 도시를 고층아파트로 덮을려나? 어떻게 하면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희생양인 이런 딜레마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누가 어떻게 개혁의 의지를 실천할 것인가? 이것은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다.우리 도시는 더이상 「개발시대」가 아니라 이미 「정비시대」로 돌입하였다.정치 바람,민원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더욱 꿋꿋한 자치정부가 필요하다.자치단체마다 자신의경쟁력과 삶의 질을 챙겨야 한다.한정된 자원을 활용하며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갖추어야 된다. 아파트를 짓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다만 「주택문제」를 풀자고 「도시문제」를 더하는 것,눈에 보이는 「주민」위하여 더 큰 「시민」저버리는 것은 결국 자승자박이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 연대 세브란스병원장 취임 이경식 박사(인터뷰)

    ◎“친절 진료로 환자신뢰 얻겠다”/유방암분야 권위자… 덕망높은 교수로 학생들에 인기 『의료계의 세계화는 우선 환자에게서 신뢰를 얻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최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24대 병원장에 취임한 이경식(58·일반외과)박사는 『모든 일에 「내가 하겠습니다」라는 자세로 봉사해 세브란스를 가장 신뢰받는 병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 대학병원들이 의료시장 개방과 재벌의 병원업 진출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제,세브란스의 「친절 카드」도 변화에 부응하려는 하나의 노력임을 강조했다. 『진료지원부서의 도움 없이는 「환자중심병원」은 한낱 이상에 불과하지요.따라서 곧 지원부서에 근무하는 3천여 세브란스인 각자의 업무특성에 맞게 친절실천 행동강령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이원장은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진료진등 인적자원은 매우 우수하지만 대학 의료기관인 만큼 재원조달 능력이나 경영측면에서는 재벌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이 많다』고 시인한 뒤 장기적으로 경영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산학협동을 강화해 부족한 점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털어놨다. 지난해 의과대학 졸업생들에 의해 「올해의 교수」로 뽑힐 만큼 학생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은 인물로 알려진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는 늘 「환자와 입장 바꿔 생각」해 줄 것을 당부하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또 지난 30여년간을 외과의사로 살아오며 2천건이 넘는 유방암수술 기록을 남겨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정평이 나 있다. 61년 연세대의대를 졸업한 뒤 일반외과 주임교수,대한 대장항문병학회 회장,암센터병원장등을 거쳤으며 현재는 미국 외과학회 정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부인 김소인(56)여사는 고대 간호학과교수로 재직중이다.
  • “가시적 실천으로 당화합 추구”/김덕룡 민자총장 포부와 면모

    ◎“지방선거 앞둬 걱정” 신중성 여전/“YS 분신”… 71년부터 김 대통령 「밀착 보좌」/새정부 첫 정무장관… 개혁작업 최일선 활약 8일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다시 정치전면에 나서게 된 김덕룡 의원. 「김영삼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릴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그는 논리가 정연하고 분석력이 뛰어나 「컴퓨터」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표정이 변함없고 늘 조용한 성격이라 「자크」라는 소리도 듣지만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장관으로서 개혁작업의 최일선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업무추진력을 발휘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임명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총재로부터 정식 임명장을 받기 전』이라고 상기시키고는 『임명권자의 뜻이 있을테니 총재를 만난 뒤 다시 한번 얘기할 기회를 달라』고 특유의 신중함을 보였다.그러면서도 『경륜도 짧고 능력도 부족한 사람이 지방선거를 앞둔 중대한 시점에 중책을 맡아 걱정도 든다』고 겸손해 한 뒤 『당을 단합시키고 당직자들과 협의해서 좋은 방안들을 내도록 하겠다』고 「단합」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화합방안에 대해서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했고 「세계화에 걸맞는 차세대형 정치인」이라는 주위의 평가에 대해서는 『세계화는 함께 해 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만 했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출신의 김 총장이 김영삼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1년 수행비서로 들어가면서부터.「6·3운동」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르던 대학시절 김영삼 의원을 처음 만난지 8년만이었다. 시인 김지하씨의 양심선언사건 때 김영삼 신민당총재를 「제거」하기 위한 중앙정보부의 「작전」에 따라 구속된 뒤 79년 YH사건 백서발간,83년 김영삼 단식사건의 외신제보등으로 세차례 김 총재를 대신해 옥고를 치렀다.79년 김총재의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10·26,「서울의 봄」과 5·17,「민추협」결성 등 시련기는 물론 3당통합 때 통합추진위 대변인 등으로 격동의 한복판에서 김대통령의 곁을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김 대통령은 지금도 그를 「김실장」으로 부르고 있다. 정치규제에 묶여 13대 들어서야 서울 서초을에서 원내에 진출한재선의원에 불과하지만 그를 중진급으로 부르는데 시비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장관으로서 공직자재산공개·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개혁작업을 입안·추진하던 그가 지난 93년말 장관직을 갑자기 물러나자 항간에서는 「너무 잘나가던 실세」로 찍혀 「물을 먹은 것」이라는 입방아도 있었다.그러나 김대통령은 이런 평가를 비웃듯 지난해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까지 『김의원을 아끼는 마음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깊은 신뢰를 표시했다. 지난해 8월 민자당 서울시지부장에 임명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12·23개각」을 앞두고 「새시대 새인물론」을 편 것이 「젊은 총리 대망론」으로 확대해석돼 김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자 일부에서는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하지만 이번에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중용됨으로써 그같은 인식이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입증시켰다고 할 수 있다.그는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머리가 하얀 남자」에서 『21세기 일류국가 건설을 위한 사고의 대전환』을스스로에게 촉구하고 있다.「세계화」를 내걸고 새출발을 다짐한 민자당의 「눈」으로 그가 다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부인 김열자여사(53)와 사이에 2남.▲전북 익산 출신(54세) ▲서울대 사회학과졸 ▲신민당 총재비서실장 ▲민추협 기조실장 ▲통일민주당 대변인 ▲민자당 총재비서실장 ▲정무1장관 ▲민자당 서울시지부장.
  • 지문날인 철폐 앞장/최창화목사 별세

    【도쿄=강석진 특파원】 80년대 재일동포의 인권 향상 등을 위해 일본정부가 강요하는 지문날인제도의 철폐운동에 앞장 섰던 최창화목사 (재일 대한기독교장로회 고쿠라교회)가 8일 상오 11시34분 지난해 6월부터 투병해온 폐암으로 기타큐슈시의 고쿠라(소창)기념병원에서 별세했다.향년 65세. 최목사는 평북 선천군 출신으로 유족은 부인 김정녀 여사(64)와 지문날인 반대운동에 앞장선 선애씨 등 1남2녀.자택은 기타큐슈시 고쿠라북구 백은 1­6­7이며 연락처는 093­521­7271이다.
  • 기우제(외언내언)

    백년 전의 우리모습을 정밀하고도 따뜻하게 그린 영국여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한국인의 종교관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종교에 대한 무관심은 극단적이고 종교적 자질은 부재하며 호소할 만한 종교적 이념도 없고,…아무런 현세의 이익도 제공해 주지 않는 자제와 희생의 종교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입장인 것같다』고 쓰고 있다.도처에 십자가가 찬연한 오늘의 서울의 밤하늘을 본다면 그도 달라지겠지만 한국인의 원천적인 종교관을 탁월하게 간파한 점만은 인정할 만 하다. 지난 일요일에는 난데없이 서울 관악산에서 농수산부공무원들과 등산인들이 기우제를 지냈다.돼지머리를 놓고 기원을 하며 넙죽이 절 하며 제사 지내는 모습이 일요일의 시청자를 웃음짓게 했다.웬지 기우제만은 토속신앙 방식으로 지낸다.아마도 이날의 기우제에는 불교도는 물론 기독교도·천주교도도 참례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유족끼리 지내는 장례가 아닌 공공방식의 장례일 경우 기독교,천주교,불교가 『연고전,고연전』처럼 부르는 순서에 「엄정한」 공정성을 기하며 다 함께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관례로 자리잡은 것에 비하면 이런 「제사」가 독자적인 권능으로 치러지는 일은 신기하다. 비숍여사가 거기까지는 미처 못보았는지는 몰라도 한국인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빌면 이뤄질 것이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그 심성이 한국인의 영적심리의 바탕인 것 같다.열심히 비는 일의 정성을 위해서 마음을 정하게 갖고 부정한 일을 삼가기도 한다.그러면서 화해도 하고 관용도 베푼다. 그리고 고통을 분담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오죽하면 그런 마음을 먹었겠느냐고 동감하면서 보는 이들도 그 일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그 효험을 믿는 마음으로 자신의 종교와 상치되는 일도 눈감아 주기도 한다.관악산에서의 기우제도 그런 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빌어본다.비좀 주소서.
  • 내한한 북경여성대회 NGO의장/태 수파트라 매디스트 여사(인터뷰)

    ◎“여성 정치참여 확대가 중요 안건” 『오는 9월 북경에서 열리는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는 지역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가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다뤄질 것입니다.그것은 여성이 정책결정 과정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하지 않고는 산재한 여성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주최 「95 북경 세계여성회의와 여성의 정치참여」 주제 학술세미나(6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 기조강연자로 내한한 태국의 여성정치인 수파트라 매디스트 여사(45). 북경 세계여성회의 비정부기구(NGO)총회의장이자 아·태지역 여성정치센터 총재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그는 앞으로 NGO가 주체가 돼 UN의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여성들의 시각이 보다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번 북경대회 NGO 포럼의 주제가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이듯 사회의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과 가정의 복지를 먼저 생각하는 여성들이 지도자로 대거 등장할 때 핵무기 걱정이 없는 살기좋은 세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백50여 국가에서 3만여명의 여성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경 세계여성회의에서는 여성과 관련한 빈곤,교육,보건,폭력,무력분쟁이 미치는 영향,경제구조와 정책,남녀평등,인권,환경,정책참여 등 11개 주제가 다뤄질 예정인데 수파트라 여사는 여기서 결정된 결과들이 각국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전세계에 NGO 네트워크를 형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후 그를 위한 한국 NGO의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5선의원으로 국회 내무위 위원장,민주당 당무위원,총리실장관 등을 지낸 그는 향후 총리로 지목되는 태국 내 가장 유망한 여성정치인이다.
  • 모델이 조각가 위해 미술관 건립

    ◎「현대 조각의 아버지」 아리스티드 마욜 기념/불 75세 비에르니여사,자신의 누드상 등 전시 프랑스의 한 할머니가 자신을 모델로 그리던 예술가를 위해 미술관을 세워 사회에 기증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그것도 예술가가 죽은지 51년만에 이뤄진 일이다.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도 지난달 20일 파리 시내 그르넬 거리에서 열린 「마욜 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해 프랑스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했다.마욜 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올해 75세의 디나 비에르니여사. 비에르니여사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리스티드 마욜(1861∼1944)의 전속모델이었다.1935년 마욜이 그린 「나신 연구」같은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비에르니여사다. 또 루브르박물관 옆의 튈르리공원에서 볼 수 있는 12개의 청동동상들도 마욜이 나신의 비에르니여사를 모델로 만든 조각들이다.이 조각들은 비에르니여사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지난 64년 앙드레 말로가 문화장관일때 정부에 기증한 것이다. 이 청동동상들은 세계의 유명 박물관들이 복사판을 구하려고 혈안이 돼있지만 한 작품당 12개로 한정돼 있는 복사판도 거의 동이 나있어 박물관을 애타게 하고 있다. 비에르니여사는 1934년 마욜을 만나게 된다.당시 14세의 여학생이던 비에르니여사는 조각을 하던 친구를 따라 지방에 내려갔다가 73세의 하얀 수염투성이인 마욜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비에르니는 그뒤 일요일이면 부모 몰래 지방으로 내려가 마욜을 위한 나체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생활은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면서도 계속된다.60살 차이나는 화가와 모델은 스페인을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2차대전 당시 비에르니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지만 마욜은 그의 예술을 좋아하는 독일군측에 부탁해 비에르니를 석방시켜 준다.하지만 지난 44년 83세이던 마욜은 자동차 사고로 숨져 모델과 화가의 관계도 끝나고 만다. 비에르니는 그뒤 1947년 마티스와 잔 부세등 마욜의 친구들의 권유로 파리시내 야콥 거리에 화랑을 세워 경영하기 시작했다.지난 73년 마욜의 아들인 루시앙 마욜이 숨지고 유산을 물려받자 마욜 미술관 건립을 꿈꾸게 된다.지난 81년 1천2백만프랑(약 18억원)의 기금으로 미술관 건립재단을 설립했지만 세계 각지에 팔려나가 흩어져 있는 마욜의 작품들을 사모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소유하고 있던 집을 팔고 미국과 일본의 컬렉션을 돕는 일을 하기도 했다. 미술관 건립꿈을 실현하는데 꼬박 14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녀는 『어떻게 보면 미친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고한다.비에르니여사는 『마욜은 화실도 없었고 조수도 없이 언제나 혼자서 일했다』면서 『그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베끼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지도 않았다』고 마욜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마욜은 시장에서 파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그가 사용한 몽트발이라는 섬유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고 비에르니여사는 기억하고 있다.항상 호기심을 버리지 않은 예술가의 모습이 비에르니여사가 50여년동안 가슴에 담고 있는 마욜이었다. 마욜 미술관에는 러시아화가들의 그림도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이 작품들은 비에르니여사가 지난 60년대 옛소련으로부터 빼낸작품들이다.모스크바에서 반출이 금지된 카바코프·불라토프등의 작품의 파리 전시를 위해 러시아세관의 감시망을 피해 가져 온 작품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 가뭄극복 자금 지원/국민은,피해·재해대책 참여사 대상

    국민은행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지방자치단체의 재해대책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 7일부터 특별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용수확보 자금은 재해대책 관련 관정개발업체·양수기 제조업체·지하수개발업체·생활 또는 공업용수 시설물 설치업체 등에 지원하며,시설자금은 소요자금의 1백% 이내,운전자금은 3억원까지이다.금리는 우대금리에 1%포인트를 가산한 연 10%이다. 가뭄피해 기업자금은 재해대책본부나 중소기업 협동조합 등으로부터 피해확인을 받은 업체로,상업어음 할인형식으로 1억원까지 운전자금으로 지원된다. 국민은행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경우 기존의 운전자금 대출금의 만기가 돌아와도 일부 상환없이 전액 기한을 연장해 주거나 재대출해주는 등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 화가 천경자/화려한 색조…꽃·뱀·여인집착(이세기의 인물탐구:68)

    ◎독창적 화풍… 한색깔 고르려 수십번씩 검토/91년 「미인도사건」뒤 잠적… 심한 우울증 앓아/묵화 능한 어머니 곁에서 그림 시작… 글솜씨도 뛰어나 천경자 「깊은 우물속에 깔린 신비한 보라색과도 같은 「한」과 「찬란한 절대 고독」의 이미지,꽃과 뱀과 여인과 화려한 파스텔조의 환상적인 색조라면 누구라도 쉽게 화가 천경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면은 날이 갈수록 청청하여 영혼과 빛과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변함없이 변주하고 있다.그림 외에 글솜씨로도 유명한 그는 수필집 「한」의 경우 「한이 한없이 나간다」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고 70년대 남태평양 풍물전을 비롯한 해외스케치전은 관람객이 줄을 짓는 이변을 낳았다.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중에서 대중적인 인기스타가 아닌 이상 글과 그림으로 이처럼 폭넓게 회자된 인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전시한 그의 「미인도 모사품사건」이후 그는 한때 화단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당시 이 작품의 진위여부를 놓고 『내그림이 아니라』는 작가의 주장과 『작가의 그림이 틀림없다』는 미술계와의 팽팽한 대립속에서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심한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심적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대인관계 비사교적 그의 성품은 그가 좋아하는 미모사만큼이나 민감하다.작은 바람소리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아 옳지 않은 것을 동조하거나 싫은 것을 적당히 수용하는 법이 없다.대인관계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로서는 전혀 비사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가리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그림도 그렇다.색깔을 쓸 때도 발색을 억제하는 반대색을 쓰기 위해 연보라·남보라·황토에서 녹청을 동원하고 그것이 이 그림에서 얼마만큼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까다롭게 따진 다음 이를 선택한다.그러고 나서도 멀리서,가까이서 수십번씩 견주어보고 3∼4개월이 지나 썩 괜찮다는 결론이 나올 때 비로소 화폭 앞을 떠난다. 이른바 동양적인 정조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의 조형적 특징은 「천경자풍의 인물을 전형화」하는 데 결정적 성공을 거둔 점이다.평론가 심항섭은 동양화의 인습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각과 신선한 착상력을 지닌 그의 그림에 대해 『화가로서의 최종적인 꿈인 자기만의 화풍을 선명히 세웠고 색채선택과 배치에도 그만의 확고한 독창성을 성취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평한다.즉 「새로운 조형적 가치실현」과 「개별적 형식의 완결」이라는 어려운 등식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기에는 주로 뱀(사)의 무리에서 느낀 감흥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고 특히 부산 피란시절에 발표한 서른다섯마리의 뒤엉킨 뱀의 「생태」는 풍경과 정물에 집착하던 화단에 커다란 충격의 논란을 던졌다.이후 초현실적인 시적 이미지들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그는 자전적 요소를 띤 모티브로 아네모네·라일락·팬지·아스파라거스 같은 요요한 이향이 가득한 꽃무리 속에 화사하게 떠오른 여인의 희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운명은 그가 항상 예감한대로 줄기차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와 같진 않았다.세차게 흘러내리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브레이크가 걸리듯 곤두박질치는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마치 파란을 자초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따라서 한이 많고 고독하다고 하지만 그의 한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한이며 고독 또한 그러하다. 어릴 때는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노랑·파랑·분홍색등 밀랍냄새가 코를 찌르는 오사마(왕양)크레용과 미쓰보시수채화물감을 으깨고 주무르면서 묵화·서도에 능한 어머니 박운아여사 곁에서 그는 하루종일 그림그리기를 지루해 하지 않았다. ○여동생 죽음에 충격 광주농고 졸업후 군청에 다니던 부친(천성욱씨)은 딸이 의과대학에 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심성과 감성을 이해한 어머니가 패물과 논을 팔아 마련해준 여비로 어렵게 도쿄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오자 집안은 몰락했고 그의 결혼실패에 이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죽음,그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 시련을 견디고 있을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가 겹쳤다.언젠가 그는 「낙인」이란 수필에서 「나의 인간성에 배어 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적요한 낙인은 바로 부친의 불행과 이 여동생의 죽음 때문에 박힌 슬픔의 표적」임을 밝힌 적이 있다. 화가의 일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가정과 인간에의 정이 스민 화면에 「고통과 황홀감을 공존」시켜왔고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평생의 반려이던 어머니마저 85년 타계후 가정도 혈육도 떨쳐버린 상황에서 그는 「꽃도 피고 가족도 많던 시절에는 생기찬 리듬감이 화면에 넘쳤으나」 이제는 대양에 뜬 섬처럼 오로지 홀로 남아 「화가」로 존재하는 자신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설령 찬란한 미래가 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비오지 않은 가문 봄날,움트려고 파닥거리는 라일락나무 같은 과거에 더 깊은 애착과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는 2남2녀. 모사품사건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글은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빛과 색채의 순례자로서 그는 정밀(정밀)한 시적 정취와 아름다움을 넘어선 승화된 고독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9년전부터 살고 있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의 모든 방은 그가 그린 그림만이 가득,그속에서 지난 4년간 예술원 회의에 나간 외에 올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화력 50년전과 80년이후 15년만의 개인전을 위한 작업에만 온통 매달려 있다.회고전 성격을 띤 이 전시에는 그가 직접 소장하고 있는 42년 선전 입선작들과 부산시절의 「생태」,최근작인 「우수의 티나」 「누가 울어」시리즈등 평생의 화업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의 하루종일 화폭 앞에 대좌한 채 이제로부터 몸속에 침잠한 예술적 기운을 한점 미련없이 출산시키는 순간이다.그 외엔 영화광이던 젊은 시절을 되살려 공포영화·공상영화를 보거나 겐자브로의 소설을 읽는다.여전히 걸어다니는 화폭처럼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고 아침시간에 커피 한모금,지난해부터 술은 하지 않는다. ○화사한 옷차림 즐겨 그는 특유의 호남사투리로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것을 말할 때도 웃고 또 별로 슬프지 않은 일도 그가 한을 담아 말하면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수한 감동과 감상을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그러나 나이에 따라 슬픔이나불행은 역시 세월의 금사망속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고 관유온자한 자세로 자신에게 얼마나 더 충실할 수 있는가를 때때로 자문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대로 예술에 집결하고 귀결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서정시적인」 내용을 함축하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천경자사」라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남과 다르다.그리고 지금 「고독으로 미채(미채)된 삼림속에 그가 꿈꾸는 예술의 전당을 짓기 위해」 화폭이라는 그만의 광산에서 그는 진짜 보석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사치하리만큼 눈부신 색채의 범람으로 그의 화면은 한층 탁마된 다이아몬드를 구사하고 어느때는 투명한 루비며 사파이어가 그림의 창안에서 언뜻언뜻 상서로운 광채를 발한다.인물의 눈이라든가 중요한 부분에 미점으로 사용하는 금분조차도 단순히 호사스러운 치장이 아닌 것이 세상사로부터 절연된 듯한 순화된 감정과 표정은 그 자체가 그대로 「극미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연보 ▲1924년 전남 고흥 출생 ▲1941년광주욱고녀 졸업 ▲1944년 도쿄녀미전졸업, 일본문전 무감사작가 소한천청·부산금성사사.재학중 일본문전·청금회전 입선,조전(선전)「조부상」(23회)「노부」(24회)연입선 ▲1946년 첫개인전(광주여고 강당) ▲1949년 서울개인전(동화백화점화랑) ▲1949∼52년 조선대 교수 ▲1952∼74년 홍익대 교수 ▲1953년 부산 개인전 ▲1954∼74년 홍대교수 ▲1955년 대한미협전서 「정」으로 대통령상 수상,백양회 창립멤버 ▲1960∼81년 국전 초대작가및 추천작가 심사위원 심사위부위원장 운영위원역임,국전 초대출품 ▲1963년 도쿄개인전(서촌화랑) ▲1965년 도쿄개인전(이토화랑) ▲1967년 말레이시아 초대전 ▲1969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고에즈 연수,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모아 타이티 첫스케치 여행,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70년 남태평양 풍물전 ▲1973년 현대화랑 초대전 ▲1974년 아프리카 풍물전 ▲1977년 한국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 ▲19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후 예술원 회원전 출품 ▲1979년 인도 중남미 풍물전 ▲1980년 개인전(현대화랑) ▲1981년 하와이등 미주지역스케치 ▲1990∼94년 권옥연 변종화 윤중식과 4인전(이목화랑),멕시코여행 오월문예상(65년) 서울시문화상(71년) 3·1문화상(75년) 예술원상(79년) 은관문화훈장(83년) 수필집 「언덕위의 양옥집」「여인소묘」「유성이 가는곳」「한」「자유로운 여자」「쫑쫑」「캔맥주 한잔의 유희」「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자서전 「내 슬픈전설의 49페이지」,기행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아프리카 기행화문집」 등
  • 구상… 탐색… 모임/정관술의 「바빴던 설연휴」

    ◎청남대서 5일간 정국운영 장고/김 대통령/김동길의원 등 접촉 야통 논의/이 대표/국립묘지 참배… 신당행보 가속/JP 진영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달 28일부터 지방휴양지인 청남대에서 닷새 동안의 설연휴를 마치고 1일 하오 귀경. 김대통령은 지난해 설에는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거제도를 찾아 성묘를 하고 부친 김홍조옹에게 세배를 했으나 올해는 청남대로 직행. 김대통령은 대신 청남대로 떠나기에 앞서 상경한 부친을 맞아 세배를 했으며 손명순여사와 함께 1만원씩의 세뱃돈을 받고 쑥스러워 했다는 후문. 청와대측은 김대통령이 고향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를 수행원등 관계자들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고 설명. 그러나 앞으로의 정국 구상에 보다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이 지배적. ◇…이홍구 국무총리는 설연휴 마지막날인 1일 낮 서울 교통방송국과 경찰청 상황실을 찾아 귀경교통상황과 연휴에 일어난 사건·사고등을 점검하고 근무자들을 격려. 이총리는 먼저 교통방송국에 들러 특별생방송 「서울로 가는 길」의 제작 현장을 살펴보고 방송에도 출연,진행자및 귀경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안전운행을 당부. 이총리는 이어 경찰청 상황실에서 박일용경찰청장으로부터 귀경 교통관리대책과 사고상황을 보고받고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원활한 교통소통과 안전관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시달. ◇…민주당 지도부는 김종필씨의 신당창당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야권통합에 적잖은 차질이 예상되자 연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외인사들의 영입작업에 박차를 가하는등 부산한 움직임. 이기택대표는 설날인 지난달 31일 하오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 문희상비서실장과 강창성·이장▦의원등 측근 20여명을 불러 신당출현이 야권통합에 미칠 파장을 점검.이대표는 이어 시내 모처에서 몇몇 구여권인사들과 접촉,영입문제를 논의한 뒤 1일에도 신민당의 김동길·한영수의원등과 만나 통합문제를 협의.이와 관련,한 측근은 『설연휴기간까지 이대표가 접촉한 외부인사는 전직장관 K·N·H씨와 예비역 장성 M·Y씨를 비롯해 4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으나 이들 대부분이 신당의 태동으로 민주당행에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후문. 민주당은 신당이 본궤도에 오르면 외부인사의 영입이 더욱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오는 24일 임시전당대회 전에 1차 야권통합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를 위해 2일 상오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한편 외부인사영입대책을 마련할 계획. ◇…민자당 대표직을 사퇴한 김종필의원측은 설날 연휴동안 잇단 모임을 갖고 신당창당 준비에 속도를 붙이는 모습. 박준규 전국회의장과 최각규 전경제부총리,구자춘·정석모·조부영·이긍규·김동근의원과 이희일 전동자부장관등 8명은 1일 상오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모여 당헌·당규및 정강·정책등 신당창당의 실무작업을 논의.청구동 김종필의원의 자택을 찾아 모임 결과를 보고한 최전부총리와 구의원은 『민자당 전당대회(7일) 직후 8∼10일 쯤에는 뭔가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발기인대회를 먼저 가진 뒤 준비위구성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소개. 김종필의원은 이날 기자들을 내실로 불러 떡국을 권하고는 『좋은 정치를 해보겠다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만날 것』이라고 밝히고 새 당의 이름및 대표에 대해 『모임의 이름이 유니언이든 유나이티드가 됐건,또 직명이 대표가 됐던 뭐가됐던 얼굴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피력.또 『신현확씨를 만난 것은 국가원로에게 내 생각을 밝히고 충고와 조언을 구한 것 뿐인데 이를 두고 「한계 노출」 운운하는 얘기는 부적절한 것』이라고 일부 보도에 불만을 표시. 이날 청구동에는 지난 연말 공주치료감호소에서 나온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들르기도. 지난 30일 노태우전대통령을 방문했다가 『아직 만날 때가 안됐다』는 부정적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진 최전부총리는 이날 『모시고 있던 분에게 신상문제를 의논한 것일 뿐』이라고만 소개. 김종필의원은 설날인 31일 동작동 국립묘지의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번영시킨 분의 뜻을 생각했다』고 소회를 피력했고 30일에는 유치송 전민한당총재및 채문식 전국회의장 등과 만나 신당문제를 논의하기도.
  • 미 교민사회「한국식과외」열풍/“자녀 성공 시키자”… 유별난 교육열

    반영/스파르타식 교육 입식학원 40곳 성업 한국식 과외학원들이 최근 미국의 뉴욕시의 퀸스와 뉴저지주,LA등 교포거주지역에서 성업중이다. 뉴욕타임스지는 28일 사진을 곁들여 스파르타 방식의 학원수업에 대해 소개하고 이같은 학원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자녀들의 성공을 바라는 한국교민들의 유별난 교육열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한국 일본중국등 극동아시아국가의 오랜 전통으로 인해 미국에도 오래전부터 이들 국가의 교민들이 모여사는 지역에 입시과외학원이 등장했으나 지난 10년동안 자녀를 성공시키려는 부모들의 욕심에 편승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시 인근의 경우 10년전에는 입시학원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40여개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교민사회의 신문은 언제나 학원광고가 요란하게 실리는데 일부 학원은 자기학원 출신으로 하버드,스탠퍼드,MIT등 명문대학과 스튀브상,브롱스 사이언스등의 명문고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명단을 게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학원비는 한달에 평균 2백달러(약 16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임스는 한국교민들이 대부분 언어와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미국사회에 쉽게 진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녀들이 최고 명문대학의 학위를 소지함으로써 부모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않도록 모든것을 다 투자할 각오가 돼있다고 소개했다. 과외학원의 스파르타식 교육이 알려지자 자녀를 우수한 학생으로 만들려는 비아시아계 부모들에게도 관심대상이 되고있다.
  • 만학도(외언내언)

    고고미술사학자로 유명했던 삼불 김원용교수가 나이 50이 넘어 영국에서 1년동안 유학한뒤 수상집을 펴냈었다.책이름이 「노학생의 향수」.뒤늦은 유학생활의 신산함과 외로움을 진솔하게 담아 화제가 됐었다. 그중에 이런 글이 있다.하숙방에서 책을 보고있는데 난데 없는 개미떼들이 줄을 지어 문틈으로 행진하더란다.무료한 판에 개미군단을 따라 가 봤더니 복도를 지나 어느 문틈으로 사라지더라는 것.마루바닥에 얼굴을 대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면서 얼굴이 뻘개진 하숙집 여주인이 나타났다.아뿔사! 그건 여주인의 목욕탕이더란 얘기였다. 학문의 「늦깎이」는 정상보다 몇배나 힘들고 어려운 도정을 걸어야한다.그러나 그런 난관을 극복하고 대성한 이들은 많다.우리 여성계의 거목인 이태영여사도 서른다섯에 서울법대를 졸업,38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만학도.작고한 여류조각가 김정숙도 33살때 조각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국어학자 일석 이희승도 직장생활하다 44살에 도쿄유학생이 되었다.최근에는 팔순의 시인 미당 서정주의 러시아 유학이 화제가 됐었다. 서울에 주부들만을 대상으로한 주부중·고교가 있다.20대 후반서 60대가 넘은 할머니학생까지 있지만 어찌나 향학열이 높은지 수업시간에 교사들이 쩔쩔 맬 정도라고.「못배운 한」을 풀어보려는 주부들의 열기가 그렇게 뜨거울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평생교육시대.대학마다 평생대학원이 부설돼 주부나 노인학생들이 몰리고 있다.「성공적인 노후의 삶」「죽음의 준비」등 과정도 있다고 한다.서강대 편입시험에 정년퇴직한 67세와 61세의 「노익장」이 합격을 했다.산전수전 다겪고 손자뻘대학생들과 어울려 학문의 길에 들어선 그 결단과 의지가 놀랍기만 하다. 「배우고 또 수시로 익히면 그 또한 즐겁지 않으랴」(논어)의 경지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 “마지막 민주화 과업은 북주민 해방”/김 대통령

    ◎마틴루터 킹 평화상 받고 강조/아침이슬 축가속 투쟁·수난 회고 김영삼대통령이 26일 「마틴 루터 킹 2세 비폭력 평화상」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수상의 영광을 민주화과정에서 희생된 동지와,동참해준 국민 모두에게 바쳤다.킹목사의 미망인 코레타 킹여사는 『자유를 위해 40년동안 투쟁하면서도 시종일관 비폭력의 원칙을 고수한 훌륭한 본이 됐다』고 수상자선정 배경을 설명했다.한국 민주화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뜻깊은 행사였다. 증정식은 이날 상오 춘추관 대회견실에서 민주화의 「핵심동지」들과,정·관계대표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김대통령은 킹여사의 증정사에 이어 킹목사의 말과 모습이 새겨진 메달및 상장을 증정받았다.상장은 『94년도 마틴 루터 킹2세 비폭력 평화상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서 출중한 영도력을 발휘하신 대한민국 김영삼대통령에게 증정합니다』라는 내용.김대통령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단식으로 대표되는 비폭력을 기렸다. 김대통령은 이상의 18번째 수상자. 김대통령은 수상연설에서 『킹목사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우리에게 고난과 억압의 어두운 시대를 밝혀주는 희망의 등불이었다』고 회고하고 『홍익인간 이념을 민주주의를 통해 꽃피우려는 우리의 이상 앞에서 북녘의 동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자신의 마지막 민주화 과업이 북한주민의 「해방」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김대통령과 킹여사는 모두 미국내 흑인들과 한국인의 갈등을 의식한듯 이부분을 특별히 강조했다.김대통령은 『한때의 어려움을 우리는 안타깝게 기억하지만 킹목사의 관용과 사랑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고 했고 킹여사도 『이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한국인의 이해와 우의를 증진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증정식에 이어 박현준씨가 「선구자」,양희은씨가 「아침이슬」을 축가로 불렀다.박씨는 지난 87년 대통령선거 때 부산유세에서 「선구자」를 불렀다가 서울시향에서 해고됐고,아침이슬은 운동권에서 애창된 곡으로 이날 행사의 성격을 상징화하는 것들이다.
  • 유럽의 새모색/「카리스마」보다「융합의 리더」찾는다(신지도자론:3)

    ◎“발전적 EU건설” 외교력을 제일 덕목으로/불/좌파 개혁실패에 민의 우파 선호/독/화학적 민족통합·경제성장 기대/영/강력개혁 대처 영국병 치유 업적 21세기의 유럽국가들은 전반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프랑스의 한 국제문제연구소는 『민족주의 강화로 21세기가 반드시 장미빛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미국의 석학 새뮤얼 헌팅턴은 『앞으로 민족문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민족과 문화에 대한 비전이 미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떠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와 함께 현재 경제적 통합의 중간지점까지 진전된 유럽연합의 앞날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조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질도 요구된다고 보고 있다. 선택은 국민에게 달렸다.시대 변화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국가지도자상은 늘 바뀌어 왔다.유럽 여러나라 지도자들의 진퇴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은 지난 58년 드 골장군을 막강한 권한까지 주면서 대통령으로 택했다.그러나 11년 뒤에는 그에게 심한 거부반응을 보여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했다.프랑스는 2차 대전이 끝난뒤 정치·사회적인 불안이 계속되는 데다 당시 식민지 알제리에 주둔하던 군부의 쿠데타조짐까지 겹친 위기상황을 맞자 초야에 묻혀 있던 드 골장군을 불렀다.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외교·국방·내치에 방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5공화국 헌법을 통과시켜주면서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드 골대통령은 카리스마적인 국가경영으로 전반적인 안정기를 이룩하지만 60년대말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어닥친다.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월남전 참전에 대한 젊은층의 반전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었고 국내적으로 2.7%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실업문제와 학교시설 개선문제 해결등이 요구됐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조르주 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등장해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만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던 것같다.81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프랑수아 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미테랑 대통령에게 가히 혁명적인 개혁을 기대했다.사회당 정권의 출범에 겁을 먹은 일부 부유층은 해외로 도피했을 정도였다.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주의 정책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점차 퇴색했고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는 두번의 좌우 동거정부에서 나타난다. 프랑스는 오는 5월 대통령선거에서 21세기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인데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크 들로르 전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인기가 높았다.이들은 정치인 출신이 아닌 행정관료에다 경제전문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프랑스의 미래 지도자상을 읽을수 있게 한다. 사회당 집권 14년에 대한 염증에다 사회당 후보로 유력시되던 들로르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국민의 선택은 우파로 결정될 것 같다.새로운 지도자의 자질로는 3백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문제 해결책,유럽통합(EU) 비전,외교력의 균형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프랑스가 비교적 폭넓은 지도자의 변화를 추구했던데 비해 이웃나라 독일은 경제및 통일지도자를 한결같이 요구해왔다고 할수 있다.아데나워 총리(재임 49∼63년)은 패전국이던 서독에 완전한 주권을 회복케 하는 강력한 지도자로 적합했고 에르하르트 총리(63∼66년)는 경제부흥을 위한 경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룬 독일국민들이 통일이라는 정치적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한 지도자는 빌리 브란트(66∼74년),헬무트 슈미트(74∼82년),헬무트 콜총리(82년∼)등으로 이어진다.특히 89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룬 콜 총리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기민성은 새시대의 지도자 덕목으로 지적된다. 콜 총리는 85년 옛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등장해 신데탕트시대를 맞이하자 이를 적극 활용해 89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독초청으로 2차대전의 남은 숙제를 해결한다.나아가 그는 동서독과 4대전승국간 회담을 통해 독일통일의 열매를 거둔다. 콜 총리는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거듭 지지를 받아 16년동안 최장수 총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국민이 요구하는 그의 활약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이제는 통일이후 문제해결과 화학적인 통합,경제성장을해야 한다는 쪽이다. 종전이후 영국에 나타난 현상은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저조한 생산력,전국을 마비시킬 수 있는 호전적인 노동조합등 이른바 영국병의 만연이었다.대영제국의 광영은 커녕 유럽내 2류국가로 전락할 상황에서 국민이 요구한 것은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그래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여사가 79년 등장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조의 파업에 강력히 대응하는등 개혁조치를 취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대처 총리가 11년만에 다우닝가를 내준 것은 주민세 추진같은 비타협적인 강경함에 국민들이 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존 메이저 총리는 합의를 중시하는 온건정책을 펴면서 북아일랜드와의 휴전같은 내치문제로 눈을 돌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제 유럽은 카리스마에 의한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아닌 합의와 조화를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시대가 되고 있다. 결국,지도자란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읽고 목표를 설정하며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 그 목표를 달성케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 “김대통령「인권개선 노력」평가”/「평화상」시상차내한 스코트 킹여사

    ◎“상호 문화 이해가 한흑갈등 해소 지름길 64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저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고 마틴 루터 킹목사의 미망인인 코레타 스코트 킹여사(68)가 김영삼대통령에게 「마틴 루터 킹 평화상」을 수여하기 위해 25일 하오 내한했다. 킹여사는 이날 「킹센터」소장인 막내아들 덱스트 킹목사(34)와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김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타협할 줄 모르는 자세로 비폭력원칙에 충실함으로써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본보기가 됐다.또 한국을 성공적인 민주주의국가로 이끌었으며 언론자유와 사회개방에도 공헌한 점을 높이 샀다. ­미국내 한국인과 흑인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은.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 갈등해소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킹센터가 하는 일과 킹목사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인가. ▲킹센터는 비폭력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을 추구한다.킹목사도 이를 통해 사랑·평화·정의를 실현하려 했다.인종을 초월해 세계자녀들이 함께 하자는 것이 남편과 나의 꿈이다. 「마틴 루터 킹 평화상」은 킹목사가 창립한 「비폭력 사회변화를 위한 마틴 루터 킹 센터」에서 매년 세계적으로 인권운동과 민주주의 신장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이다. 킹여사는 26일 상오 청와대를 방문,김대통령에게 상을 수여한 뒤 오찬을 함께 할 예정이다.
  • 94 마틴루터킹 평화상/내일 김 대통령에 전달/킹여사 오늘 내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인권신장에 공헌한 세계적 지도자에게 주는 마틴 루터 킹 인권평화상의 94년도 수상자로 김영삼대통령이 선정된데 따라 킹여사가 26일 김대통령에게 이 상을 전달하기 위해 25일 방한한다.
  • 「케네디가 신화」 이룬 안방마님/로즈여사 타계

    ◎미 보스턴 시장 딸… 24살때 결혼/아들 셋 대통령·의원으로 키워/두아들 암살당하는 비운 감내 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 로즈 케네디 여사가 22일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사인은 폐렴에 따른 합병증. 그녀는 미국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을 키워내는 등 미국신화를 창조한 훌륭한 어머니로 존경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사고와 흉탄에 아들·딸들을 잃은 비운의 여인이었다.그녀는 아들들이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거나 유세장에 직접 나가 지지를 호소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를 돋보이게 한 것은 지난 63년과 68년 장남인 존 F 케네디 대통령(당시)과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됐을 때 보인 기품과 용기였다. 그녀는 지난 1890년7월 존 피츠 제럴드 보스턴 시장의 「귀염둥이」 딸로 태어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1914년 고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와 결혼,4남5녀를 낳았다.2차대전중 남편이 영국주재 대사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재기넘친 해학과 지적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1944년미국으로 돌아오면서 그녀 자신이 「환희와 고통」으로 표현한 또다른 인생이 시작됐다.장남인 조지프가 미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데 이어 4년 뒤에는 둘째딸 캐슬린마저 비행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첫째딸인 로즈마리 역시 정신 이상으로 폐인이 되고 말았으나 아들들이 대통령과 상원의원이 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그녀는 평생을 장애아들을 돕는데 헌신하고 70세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고 80세까지 골프를 즐기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해왔으나 지난 84년 심장발작을 일으켜 휠체어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네덜란드/“구두쇠 되자” 이색 운동(세계의 사회면)

    ◎벤여사 “소비 줄여 환경 지키자”… 반만 먹기 실천 그녀는 홀쭉해질대로 홀쭉해진 치약튜브를 갈라 칫솔로 남은 치약을 모두 발라낸 뒤에야 버린다.그녀는 길거리에서 주워온 소파위에 두툼한 슬리핑백을 펴고 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레스토랑에 가지 않는다. 그녀 이름은 한네케 반 벤(51),네덜란드의 「구두쇠(Vrek)운동」 창설자다.「반만 먹기」운동의 열렬한 찬동자이기도 한 그녀는 「진짜 자린고비 되는 법」,「덜 쓰며 더하기」등의 책을 썼으며 이 책들은 모두 2만부 이상 팔려나갔다.그녀는 구두쇠로 사는 요령을 알려주는 「구두쇠신문」(Vrekkenkrant)도 발간하고 있다.구독자가 3천5백명이나 된다. 네덜란드의 6개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그녀와 인터뷰하려 애쓰고 있으나 그녀는 인터뷰 대가를 후하게 받으려 끈덕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3년전만 해도 돈을 마음내키는대로 쓰곤 했으나 환경주의자들이 쓴 책들을 읽고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우리 모두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그리고 잡다한 물건 없이 사는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어느날 돌연 떠올랐다』고 그녀는 술회한다. 한네케는 남편 로브 반 페덴과 함께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팔아치운 뒤 스페인 대신 네덜란드 해안일대를 자전거로 일주,휴가경비를 대폭 줄였다. 이들은 새로운 경비절감방법을 찾는데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공중전화부스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잊어버리고 그냥 꽂아둔 전화카드가 있나 살피기 위함이다.
  • 킹 목사 추모사업 싸고 대립/미국/유족

    ◎공원관리국 공사에 반발… 생가 폐쇄/당국/“96올림픽전 유적지 확장” 개발 강행 미국 흑인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비폭력적 평화운동에 앞장서온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 66주년을 맞아 킹목사 유적지의 확장 계획을 놓고 유족측과 연방공원관리국측의 심한 대립으로 유적지 입장이 잠정 폐쇄되는 등 킹목사 유업을 기리려는 추모객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16일 킹목사 탄생기념일을 맞아 필라델피아에서는 자유의 종을 울렸으며 연방공휴일로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들이 성대하게 펼쳐졌다.그러나 막상 조지아주 애틀랜타시 스위트 어번 지역의 킹 목사 유적지를 찾은 관광객들은 생가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4만6천여평의 킹 목사 유적지는 킹 목사의 생가를 비롯,시무하던 교회,묘소,학교,기념재단인 킹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킹 목사가 39세인 1968년 암살될 때까지의 활동상및 각종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어 미국내 인권옹호의 성지로 매년 수많은 추모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러나 오는 96년 올림픽 경기와 때맞춰몰려들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이 유적지를 관할하고 있는 공원관리국측이 지난해 올림픽 후원사들의 협조를 얻어 유적지내에 1천1백8십만달러를 들여 교회및 방문자센터를 신축키로 결정하자 킹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미망인 코레타 스코트 킹 여사(67) 등 유족측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미 이곳에 6천만달러를 투입해 첨단정보장치를 갖춘 종합인권교육센터를 설립,대대적인 인권테마공원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모금중에 있는 유족측은 당국의 처사를 『킹목사의 숭고한 정신과 그 유산을 대중들로부터 유리시키는 계획』이라며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게 된 공원당국이 지난해 11월 유족들의 동의없이 그대로 공사를 강행하자 유족측은 지난 연말 가장 중심부인 킹 목사의 생가를 폐쇄시키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1980년 역사공원으로 지정된 킹목사 유적지는 미국내에서 뉴욕 자유의 여신상,필라델피아 독립홀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나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부족해 올림픽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정비를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원관리국측은 주장하고 있다. 한편 68년 킹 목사 서거 직후 킹 여사에 의해 세워진 킹센터는 인권옹호를 위해 일할 미래의 세대에 비폭력적 원칙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60여명의 연구진및 5백만달러의 연간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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