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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 전도사 에이브러햄 링컨:하(미국의 대통령 문화:7)

    ◎남북 대화합 이룬 ‘정직의 대명사’/“연방통일이 헌법보다 우선” 주독립 불가 역설/국민에 전쟁 수행 독려… 당대엔 인기 못 얻어/최악의 상황 유일한 탈출구는 일상화된 유머감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1861년 2월11일 일리노이주 주도 스프링필드의 중앙역인 그레이트 웨스턴역.취임식 참석차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플래트홈에 마련된 연단에 오른 링컨 대통령 당선자는 군중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자못 침통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친구 여러분,내 입장에 있지 않은 여러분 어느 누구도 이 이별의 순간에 솟구쳐 오르는 나의 슬픈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나는 4반세기를 이곳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빚진 채 지금 고향을 떠납니다.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 것인지 혹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나에게는 워싱턴에 부여된 일보다도 더욱 무거운 일들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역사자리에 선 ‘링컨 디폿 뮤지엄’에서 상영하는 링컨의 24년동안 스프링필드에서의 생애를 담은 30분짜리 비디오는그가 비장한 연설을 남긴 후 그의 일행을 태운 기차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죽음으로 국가 구해 이미 6개주가 연방을 탈퇴해서 독자 정부를 수립한 최악의 상황에서 연방대통령직 수행은 그 자체가 엄청난 형극의 길임을 링컨은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신의 우려대로 살아서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그러나 자신의 죽음으로 국가를 구했다.주검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시가지 북부 오크리지 묘지 중앙에 우뚝 서 스프링필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프링필드는 링컨이 변호사로,주의원,연방하원의원 등 공직생활을 하며 정치적 입지를 키운 곳이다.시 중심지 연방청사에서 5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의 사저일대가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그의 변호사 사무실인 링컨­헌돈 로 오피스(law office),그가 출석하던 제일장로교회에는 그의 가족들이 즐겨 앉던 자리가 보존돼 있는 등 미 전역 10여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링컨 사적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링컨이 연방분열을 경고한 ‘분열된 집안’이라는 연설로 유명한 옛 주의사당인 올드 스테이트 캐피틀에는 오늘날 미국내 최대의 링컨자료실이있는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헨리­호너 링컨 콜렉션이라 이름지어진 이 박물관 내의 링컨 자료실은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의 방대함은 물론 희귀자료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어 미국내 링컨니아나(링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취임 37일만에 전쟁 발발 대통령 취임후 불과 37일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링컨은 임기 내내 전쟁을 이끌어야 했다.이 기간중 링컨은 줄곧 참모들로부터 또는 많은 북부의 국민들로부터도 전쟁종식의 압력을 받았다.그러나 링컨의 신념은 확실했다.전쟁의 종식은 연방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미합중국의 존립 이유를 뿌리채 흔드는 것이었다.링컨은 기회있을 때마다 미 건국역사에서 ‘연방’은 ‘헌법’보다도 앞선 것임을 주장했다.그리고 몇몇 주의 영원한 분리는 불가능함을 강조하며 남부측에 타협을 호소했다. 그러나 미시시피 상원의원 출신의 남부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특히 그는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멕시코전쟁에서 지휘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전략가였다. 당초에는 남부의 여러가지 수치상 열세로 전쟁이 수개월내 끝날 것으로 예측됐다.그러나 초기 ‘불 런’전투에서 북부군의 대패는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했다.전쟁 내내 링컨은 남북 양측 군대의 주전선이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경계의 포토맥강을 중심으로 형성됨에 따라 야전군 지휘소처럼 변해 버린 워싱턴에서 북부군의 전략수립과 지휘관 찾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쟁관련 도서 탐독 미시시피강을 서쪽 경계로 해 동쪽으로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전선에서 서부에는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과 티컴셰 셔만 장군 등이 있었지만 동부전선에는 남부군의 용장,로버트 리 장군과 스톤월 잭슨 장군에 맞설만한 지휘관이 없었던 것이다.그는 또 군사전략 수립을 위해 의회도서관에서 전쟁의 기술에 관련된 책들을 빌려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링컨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전쟁의 시작은 노예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그 목표설정에 관한 것이었다.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궁극적으로 노예해방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위기는 연방회복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노예제도가 남부의 경제적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남부를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노예제 폐지를 선결과제로 간주했다.62년 여름,그가 내각에서 노예해방 선언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각료들이 반대했다.그러나 링컨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해 9월 앤티담 전투에서 북부군이 승기를 잡자 바로 이튿날 준비했던 노예해방선언을 감행했다. ○노예해방 북부도 반대 노예해방선언은 그러나 남부는 물론 북부의 반대도 불러 일으켰다.북부 공업지대의 많은 근로자들이 노예들의 해방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또한 북부의 승리가 확실시 되면서 남부주들을 포용하기 위해 내놓은 링컨의 온건한 화합정책들은 응징과 처벌을 요구하는 북부 과격파들의 건센 반발 가져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정의 연이은 비극은 링컨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부인 메리 토드 여사와의 사이에 둔 네아들중 한 아들은 일찍 죽었고 백악관에서만 두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자 메리 여사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할 정도였다.오직 한 아들 로버트만이 성장하여 후에 가필드 행정부에서 전쟁장관을 지냈다. 링컨이 이같은 암담한 안팎의 불행을 이기고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정열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탈출구는 일상화된 그의 유머감각 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그는 아무리 심각한 회의도 조크와 유머로 시작했으며 순간적인 재치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그가 엄숙하게 노예해방선언의 의사를 물었던 각료회의도 유머 한토막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링컨은 당대에는 국민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대통령은 아니었다.전쟁 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국민을 독려하고 재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직한 에이브’라고 그의 이름이 정직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는 국민에게 솔직했으며 결국 그는 192㎝의키에서 뿐 아니라 미 역대 대통령중 가장 우뚝 선 대통령으로 남게 된 것이다. ◎킴 바우어 미 일리노이 주립박물관 헨리­호너 링컨자료 실장/링컨의 인간평등 정신 역사에 우뚝/학자 800명·기관 50개 링컨학회 결성/“대통령학 가장 흥미있고 미래 지향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미국내 최대 링컨 관련자료 소장 도서관으로 알려진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의 링컨자료실장 킴 바우어 박사는 “링컨 대통령은 많은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해가 갈수록 그 업적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며 대통령학이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하고 미래지향적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조사에서 링컨 대통령이 미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부동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끝내 연방을 지켜낸 그의 소신과 노예해방을 가져온 그의 투철한 인간평등 정신 때문으로 볼 수 있다.더우기 그의 어려운 성장환경과 정직한 성품은 누구에게든 자신감과 신뢰감을 안겨 준다. ­미국내 링컨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링컨은 켄터키의 통나무집 시절서부터 인디애나를 거쳐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성장했다.그리고 백악관 생활과 남북전쟁 당시 여러차례의 전장 방문 등 많은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상호보완 연구가 중요하다.현재 800여명의 학자와 50개 소장기관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학회가 결성돼 있고 매년 심포지움과 학회지 등을 통해 200편 이상의 논문과 책들이 나오고 있다. ­헨리­호너 링컨자료실은 어떤 곳인가. ▲모든 분야의 링컨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만 링컨의 대통령 이전 자료는 최대의 소장처로 알려져 있다.현재도 개인적인 링컨 자료 소장자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로부터의 기증이나 구매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일리노이의 기업가 클레망 스톤씨로부터 200여점,미니애폴리스 공공도서관으로부터 200여점,최대 여성 수장가인 제인 하만드 여사로부터 링컨의 어린시절유품 수십점을 기증받는 등 계속 소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통령학은 과거지향적 학문이 아닌가. ▲과거 대통령에 대한 철저하고 정확한 연구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과 대통령에게 과거의 경험을 부여해 준다는 측면에서 미래지향적 학문으로 볼 수 있다.
  • 3김 나란히 정초에 생일

    ◎김 대통령 2일·김 당선자 6일·김 명예총재 7일/경제난국 감안 개인행사 안갖고 “조촐하게”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2일 70회 생일을 맞은데 이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6일로 73세가 된다.7일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71회 생일.30여년간 우리 정치를 이끌어온 ‘3김’이 정초에 연이어 생일상을 받게 됐다. 김대통령과 김대통령당선자는 6일 상오 첫 주례회동을 갖는다.지난 93년 1월6일 김당선자는 92년 말의 14대 대선에서 패배한뒤 의원직마저 내놓고 야인으로 돌아갔다.그로부터 정확히 5년후 김당선자는 청와대의 새 주인이 되는 문제를 놓고 김대통령과 협의하는 자리에 앉게 됐다.‘양김’ 모두에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15대 대선후 김대통령과 김당선자는 이미 두차례 만났다.그때마다 합의문을 내놓았다.두사람이 김당선자의 생일날 어떤 정치적 합의를 제시할지 주목된다. ‘3김’은 모두 조촐한 생일을 보내거나,보낼 예정이다.최근의 경제난국을 고려한 탓이다. 김대통령은 2일 직계가족들과만 시간을 같이했다.3일 낮에는 청와대 수석들이양식으로 마련한 생일상을 받았다.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도 4일이 생일이다.김당선자는 김중권 비서실장을 통해 김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난화분을 청와대에 보냈다. 김당선자는 6일 청와대 회동외에 평소 다니는 서교동 성당의 미사참석 정도의 일정만 생각하고 있다.매년 해오던 동교동 비서출신 측근들과의 조찬과 동네주민 초청 오찬도 생략하기로 했다. 당분간 개인적 행사는 안갖겠다는 판단이다.김종필 명예총재는 6일부터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어서 역시 특별한 생일행사가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오는 18일이 67회 생일이다. 고건 국무총리도 2일이 회갑이었다.
  • 정부수립부터 오늘까지/연표로 본 대한민국 50년

    ◎36년만의 주권 회복… 6·25 상흔 딛고 산업화 대장정/시련속에 꽃피운 민주화운동… ‘문민시대’ 열며 개혁의 길로 ▷48년 정부수립 과정◁ ◇정치 ▲1월8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방한 ▲5월10일 남한 총선거 실시 ▲5월31일 제헌국회 개원 ▲6월10일 국회의장에 이승만 박사 선출 ▲7월17일 제헌절 제정 ▲7월20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통령 이시영 선출 ◇사회·문화 ▲1월7일 의무교육제 실시 ▲4월3일 제주도 무장폭동 ▷제1공화국◁ ◆정치 ▲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미군정폐지 ▲ 〃 9월13일 행정권의 한국 정부 완전이양 ▲ 〃 11월30일 국군조직법 공포 ▲ 〃 12월9일 유엔총회에서 한국 승인 ▲50년 6월25일 6·25동란 발발 ◇경제 ▲50년 12월10일 한·미 경제원조협정 조인 ▲55년 8월8월 증권시장 개장 ◇사회·문화 ▲48년 10월20일 여수·순천 반란사건 ▲50년 6월1일 6년제 의무교육 실시 ◇체육 ▲50년 4월12일 한국,보스톤 마라톤대회 제패 ▷제2공화국◁ ◇정치 ▲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실시 ▲ 〃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성명 ▲ 〃 4월28일 과도정부 구성 ▲ 〃 8월12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 의원 선출 ▲ 〃 8월19일 초대 총리에 장면 의원 ▷제3공화국◁ ◇정치 ▲61년 5월16일 군사혁명위원회 설치 ▲ 〃 5월20일 장도영 중장을 내각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 출범 ▲62년 4월24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대통령권한대행 ▲62년 12월26일 헌법개정(대통령책임제) ▲63년 12월7일 제3공화국 출범(박정희 대통령 취임) ▲70년 12월23일 정부종합청사 준공 ▲72년 10월17일 박대통령,국회해산 및 계엄선포 ▲ 〃 12월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첫 대의원 선거 ▲ 〃 12월27일 유신헌법 공포 ▲74년 1월8일 긴급조치 1·2·3호 선포 ▲ 〃 1월15일 고위공직자 숙정 ▲ 〃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경제 ▲62년 1월5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66년 1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회·문화 ▲68년 11월29일 서울시내 전차철거 ▲ 〃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72년 4월10일 문교부,지명의 로마식 표기공표 ◇통일·외교 ▲65년 1월8일 월남파병 결정 ▲68년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납 ▲68년 11월2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출현 ▲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71년 3월27일 첫 미군 철수 ▲ 〃 9월20일 남북적십자사 이산가족찾기 첫 예비회담 개최(판문점) ▲ 〃 12월27일 국가보안법 국회 통과 ▲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 〃 8월30일 남북적,본회담 평양서 개막 ▲74년 1월30일 한·일 대륙붕협정 체결 ▲ 〃 8월15일 서울지하철 개통 ▷제4공화국◁ ◇정치·행정 ▲75년 2월1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률 73.11%) ▲79년 10월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 ▲ 〃 1월6일 최규하 대통령 취임 ◇사회·문화 ▲75년 6월30일 예비군 창설 ▲ 〃 9월2일 학도호국단 발단식 ▲ 〃 9월22일 민방위대 발대식 ▲76년 4월30일 매월 말일을 반상회로 지정 ▲ 〃 8월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 첫 금메달 획득 ▲77년 9월15일 한국등반대 에베레스트 정복 ▲78년 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 〃 4월21일 대한항공기 소련 무르만스크강제착륙 ▲ 〃 10월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경제 ▲76년 6월18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77년 6월19일 국내 최초 고리원자력1호 발전기 점화 ▲ 〃 7월1일 부가가치세 실시 ◇통일 외교 ▲75년 4월29일 주월 한국대사관 철수 ▲76년 8월18일 북한군 판문점에서 집단도끼만행 사건 ▲77년 11월7일 한미연합사 사령부 발족 ▷제5공화국◁ ◇정치·행정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 〃 7월9일 2급이상 고위공무원 232명 숙정 ▲ 〃 7월15일 3급이하 공무원 4천760명 숙정 ▲ 〃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 〃 8월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대통령당선 ▲83년 1월1일 공직자 윤리법 발효 ▲ 〃 7월13일 입법예고제 첫 실시 ▲ 〃 10월8일 아웅산 테러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공직자 17명 사망 ▲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대표,대통령직선제 선언 ◇경제 ▲80년 11월8일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81년 8월21일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5년 7월4일 제6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0년 7월30일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 〃 8월2일 컬러TV 시판 ▲ 〃 11월1일 사회정화위원회 발족 ▲81년 9월30일 서울올림픽 개최확정 ▲82년 1월5일 야간통금 해제 ▲83년 3월2일 중고생 복장자율화 ▲ 〃 6월30일 KBS 이산가족찾기운동 ▲ 〃 9월1일 KAL기 격추 ▲86년 1월13일 대입논술고사 첫 실시 ▲88년 2월15일 예술의 전당 개관 ◇통일·외교 ▲84년 2월1일 팀스피리트 훈련개시 ▲85년 7월23일 남북 국회회담 첫 예비접촉 ▲ 〃 9월20일 남북고향방문단 서울·평양에 도착 ▲86년 1월20일 북한,남북회담 일방연기 ▲87년 11월29일 북한,KAL기 추락 ▷제6공화국◁ ◇정치·행정 ▲88년 9월17일 제24회 서울하계 올림픽 개최 ▲ 〃 11월23일 전두환 대통령 재산헌납 발표 ◇경제 ▲91년 11월12일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9년 1월1일 해외여행제한연령 완전철폐 ◇통일·외교 ▲90년 6월5일 한소 정상회담(샌프란시스코) ▲ 〃 9월4일 남북 첫 총리회담 개최(서울) ▲ 〃 10월16일 2차 남북총리회담(평양)▲ 〃 9월18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91년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선언 ▲ 〃 12월31일 남북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92년 한중 수교합의 발표 ▷문민정부◁ ◇정치·행정 ▲93년 2월27일 김영삼 대통령 재산공개,국무위원 등의 재산공개 당부 ▲ 〃 8월9일 정부 공직자윤리위 가동 ▲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5일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선거,김대중 후보 당선 ◇경제 ▲93년 5월26일 신경제 5개년 계획발표 ▲ 〃 8월20일 경부고속도로 차종 TGV 확정 ▲ 〃 12월13일 쌀시장개방 합의 ▲94년 5월16일 금융실명제 실시 ▲96년 12월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97년 12월3일 IMF자금 요청으로 ‘IMF시대’ 도래 ◇사회·문화 ▲93년 4월6일 종합유선방송 허가 발표 ▲ 〃 8월20일 제1차 대학수학 능력시험 실시 ▲94년 1월6일 대입 본고사 14년만에 부활 ▲ 〃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 ▲96년 5월31일 한·일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 결정 ◇통일·외교 ▲94년 7월2일 남북정상회담실무절차 합의 ▲95년 6월29일 대북 경수로지원 합의 ▲97년 8월19일 대북경수로 부지공사 착공
  • 김 대통령 조촐한 새해맞이

    ◎“임기 마지막날까지 최선” 비서진에 당부/현철씨 등 세배도 받아… 어제는 70회 생일 김영삼 대통령은 무인년 새해 첫날 아침을 청와대 관저에서 맞았다. 경제사정 등을 감안,청남대에 가지 않았지만 쓸쓸하지는 않았다. 아들·딸 부부와 손자·손녀들의 세배를 받고 수석비서관의 하례도 받았다. 특히 차남 현철씨 가족도 세배에 동참했다. 2일는 김대통령의 70회 생일(음력 12월4일),역시 현철씨 부부를 포함한 직게가족들과 조촐한 시간을 가졌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말 대국민담화를 통해 현철씨를 가까이 두지않겠다고 밝혔었다. 김대통령은 10개월여만에 현철씨의 청와대 출입과 대면을 허락한 셈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현철씨가 국정에 간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청와대 일요가족예배에는 간혹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수석들의 ‘큰절’을 받고 ‘맞절’을 했다. 김대통령은 수석들에게 외환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는 호전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일뿐이므로 계속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한다”고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임기 마지막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원만한 정권이양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2월말 임기가 끝나는 점을 감안,1월초 연두회견이나 대국민담화는 관례대로 갖지않기로 했다.
  • “당화합·지방선거 승리” 한마음 다짐/4당 단배식 이모저모

    ◎국민회의­“봉사정치로 새시대 열자” 각오/자민련­“합심단결로 국난극복에 앞장”/한나라당­“원내 다수당 역할 다하자” 결의/국민신당­지방선거 철저준비 거듭 강조 국민회의,한나라당,자민련,국민신당 등 여야4당은 1일 단배식을 갖고 당내 화합과 결속을 다지고 오는 5월 지방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차세대를 노리는 각 당 중진들도 자택을 개방,세배객을 받으면서 정치적 위상제고와 새 정부에서의 역할을 모색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상오 중앙당사에서 당지도부와 소속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배식을 갖고 정권교체의 의미를 되새겼다. 조세형 총재권한 대행은 인사말에서 새해를 ‘희망의 해’라고 규정짓고 “구각을 깨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새해에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를 모시고 봉사정치를 펴자”고 강조했다. 김영배 국회부의장과 김상현 의원은 “새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도록 김당선자를 보좌하자”고 당부했으며, 이종찬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장도 “김당선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도록하자”는 각오를 피력했다. 이어 주요 당직자들은 동작동 국립묘지와 수유리 4·19묘지를 차례로 방문,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당총재인 김당선자는 단배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부인 이희호 여사와 시내모처에서 당선이후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경제위기 타개방안 등 새해구상에 몰두했다. 그러나 조대행,김상현 의원,한광옥·정대철 부총재 등 당지도부와 김충조 사무총장,박상천 원내총무 등 당직자들의 집에는 아침부터 내방객들로 성시를이뤄 달라진 세태를 반영했다. 강북삼성병원에 입원중인 권노갑 전 부총재는 아예 출입문에 ‘면회사절’이라고 써 붙이기도 했다. ○…자민련은 이날 김종필 명예총재와 박태준 총재 등 당 지도부인사의 국립묘지 참배에 이어 마포 당사에서 단배식을 갖고 공동 집권당으로서의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김명예총재는 축사에서 “올해에도 합심협력해 국난을 극복하고 단단하게다져 모든 보람들을 나눠 갖자”면서 “어떤 경우에도 당내에서 잡음이 나와선 안된다”고 ‘한마음 한뜻’을 강조했다. 박총재도 “김명예총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당세를 확장하고,호랑이가토끼를 잡을 때도 총력을 다하듯 그런 자세로 일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한편 12인 비상경제대책위의 김대중 당선자측 대표인 김용환 부총재의 한남동 자택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이 몰려 달라진 위상을 반영했다. ○…한나라당도 이날 상오 여의도 당사에서 이회창 명예총재 조순 총재 이한동 대표 김수한 국회의장 김윤환 김덕용 의원,이기택 전 의원 등 400여명의 원내외위원장,당직자 들이 참석한 가운데 단배식을 가졌다. 이명예총재는 “원내 다수당인 우리 당이 어떤 지향점을 갖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정국은 좌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총재도 “당의 과감한 체질개선과 정책정당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통해 당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명예총재의 신당동 전셋집에는 원내외위원장 80여명을 비롯,법조계,관계,언론계,학계 인사 400여명이 찾아 덕담을 주고 받았다. ○…국민신당도 이날 상오 대부분 당직자들이 국립묘지 참배에 이어 여의도 당사에서 단배식을 갖고 새해 각오를 다졌다. 이만섭 총재는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새 정부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비판할것은 준엄히 비판하겠다”고 강조했고 이인제 고문도 “우리 당이 저력을 키우고 약진하는 한해가 돼야 한다”면서 지방선거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를 강조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각각 연희동 사저에서 가족 친지들과 출감후 첫 신정연휴를 함께 하며 많은 내방객들을 맞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연휴 이틀간 장세동 전 안기부장,안현태 전 경호실장,이양우 변호사,허삼수 전 청와대수석 및 허문도 전 통일원장관,민정기 전 청와대비서관 등 측근들과 채문식 전 국회의장,강영훈 전 총리,황영시 전 감사원장,김용태 청와대비서실장,한나라당 김태호 사무총장,이세기 이해귀 최병열 김영일 의원 등 정치인들도 다녀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저에도 노신영 강영훈 이현재 정원식 노재봉 전 총리를 비롯,최영철 전 국회부의장,안무혁 배명인 서동권 전 안기부장,정해창 전 청와대비서실장,현홍주 전 주미대사,정구영 전 검찰총장,김종인 전 청와대경제수석,이현우 전 경호실장,한영석 전 청와대민정수석,김학준 전 청와대공보수석 등이 방문했다.
  • 각당 종무식·지도부 연휴 움직임

    ◎여 “새해엔 좋은 정치” 야 “심기일전”/김 당선자­외부접촉 끊고 정국구상 전념/김종필­국립묘지 참배후 당사서 단배식/이회창­친·외가 인사후 자택서 하객맞이 여야 지도부의 새해맞이는 그 어느때보다 조용하다. 대부분 가족들과 조용히 연휴를 보내며 신년정국 및 당체제 정비·지방선거 대비책 구상등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이에앞서 지난 31일 여야는 당별로 종무식을 갖고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결의를 다졌다. ▷연휴 일정◁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3일까지 일체의 공식활동이나 외부와의 접촉없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모처에 머물며 새해 정국을 구상한다는 방침이다. 김당선자는 5일 당사에서 신년하례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공식업무를 시작한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1일 김당선자를 대신해 당사에서 단배식을 주재한뒤 당직자들과 함께 국립묘지와 4·19묘지를 잇따라 참배할 예정이며 대통령직인수위의 이종찬 위원장은 신교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차례를 지낸 후 휴식을 취하며 하객을 맞을 예정이다. ○‘사유무애’ 신년휘호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는 신년휘호를 ‘사유무애’로 정했다.생각에 사를 버리고 한계를 두지말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한해를 펼치자는 뜻이다. 김명예총재는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당사에서 단배식을 가진뒤 서울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새해 정국구상을 가다듬을 계획이다. 박태준 총재는 단배식이후 북아현동 자택에서 쉴 예정이고 김복동 수석부총재는 단배식 참석 직후 대구 지역구민을 접촉할 계획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는 1일 상오 부인 한인옥 여사와 함께 명륜동 친가와 개포동 처가에 인사를 다녀온뒤 신당동 자택에서 하객을 맞을 예정이다.조순 총재는 단배식과 국립묘지 참배 행사이후 부인 김남희 여사와 함께 서울 근교에서 정국구상을 가다듬는다. 이한동 대표는 전두환 노태우 최규하씨 등 전직대통령들에게 새해 인사를 한뒤 지방에서 휴식을 취한다.김윤환 고문은 단배식후 고향인 선산에 들러 성묘할 예정이다. ○…국민신당 이만섭 총재도 1일 상오 국립묘지를 참배후 당사에서 단배식을가진뒤 북아현동 자택에 머물예정이다.이인제 고문도 새해 첫날 국립묘지 참배,단배식 참석에 이어 각계 원로를 찾아 인사를 할 계획이다. ○김 당선자 뒷받침 전력 ▷종무식 표정◁ ○…국민회의는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종무식에는 조세형 총재권한대행,한광옥 엄삼탁 부총재 김충조 사무총장 박상천 원내총무 등 대부분의 지도부가 참석,대선 승리를 축하하고 그간 노고를 격려했다. 참석자들은 종이컵에 술대신 음료수로 채운 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며 건배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조대행은 인사말에서 “내년에는 대선승리를 보다 값지게 만들고 좋은 정치를 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 김대중 당선자를 뒷받침하자”고 당부했다. ○실질적 집권당 만들자 자민련도 박태준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마포당사에서 종무식을 갖고 한해를 결산하고 무인년 새 출발을 다짐했다. 박총재는 인사말에서 “우리는 김종필 명예총재를 모시고 청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일을 금년에 해냈다”며 대선승리를 자축하고 “국민회의와 협력,당을 실질적 집권당 모습으로 만드는데 앞장서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날 종무식에는 주요당직자와 사무처 요원 2백여명이 참석했고,김종필 명예 총재는 참석치 않았다. ○…한나라당은 이한동 대표,김태호 사무총장,이상득 정책위의장 등 당직자들과 당료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무식을 갖고 대선패배 원년을 마감했다. ○과거 야당과는 다르게 이대표는 시종 “심기일전해서 분발하자”,“살신성인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등의 독려로 결의를 다잡았다.이대표는 특히 “내년에는 지혜와 용기를 결집,결속과 단합을 이룬 가운데 과거 야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신당은 1일 단배식이 예정돼 있다는 이유로 종무식을 갖지 않았다.
  • 경제 회생의 길을 찾는다/특별대담

    ◎“노·사·정 발상 전화 국제신뢰 회복부터”/대기업 지배구조 시정·국민 건전 소비 유도/노동시장도 경제원리 따라 유연성 확보를 우리 경제가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을 받는 이른바 ‘IMF 관리체제’로 들어갔다.이제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부문에서 종전에 볼수 없던 큰 변화를 겪게 됐다.서울신문은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고 국가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경제계 원로인 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장과 배순훈 대우그룹 프랑스지역본사 사장을 초청,‘다시 뛰자’를 주제로 신년 대담을 마련했다. ▲차동세 원장=경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습니다.우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기업위기 등으로 나누어 분석을 해봤으면 합니다.이 3가지는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악순환을 거듭하다 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물론 경기적인 측면과 국제적인 측면,정부의 정책 실기,기업의 재무구조가 지나치게 취약한 점 등에도 원인이 있지요. ▲배순훈 사장=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한국이라는 배’가 세계화란 바다를 항해하는 데 물결이 생각보다 훨씬 거셉니다.예전에 조용한 바다에서 항해할 때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지요.그러나 진짜 세계화 조류를 만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이제 물결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리더십 결여 근본원인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에서 개혁을 해야 되는 거지요. ▲차원장=배에서는 선장 갑판장 기관장 등이 항로를 결정하고 책임을 집니다.‘한국호’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탓입니다.바람부는 방향을 그때그때 피하려다 좌초위기에 처한 겁니다.세계는 ‘경제전쟁’을 하고 있습니다.전쟁에서는 사상자가 생기게 마련입니다.그러나 ‘전투’에서는 혼이나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겨야 합니다. ▲배사장=경제학자 레스터 스로우는 “자본주의란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온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물을 떠나 뭍에 오른 물고기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펄쩍펄쩍 뛰는 상황에 비유한 것이지요.세계경제가 특별한 상황이 없다가 지금은 ‘전쟁’에 맞닥뜨려 방향을 잃은 상황입니다.우리 경제는 기초(펀더멘탈),특히 인간자본이 튼튼합니다.상당히 우수한 인간자본을 갖고 있습니다.앞을 내다보고 어떻게 문제를 푸느냐에 따라 (선진경제가 되는)기간이 짧을 수도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차원장=우리는 그동안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단적인 예로 지난해 말 우리 견해와 IMF 요구 사이에 극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많이 가졌는 데 그것이 국제적 시각과의 차이입니다.IMF는 특정 이익집단이 아닙니다.그들은 한국의 경제를 지원해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합니다.한국이 정상적인 경제로 나아가 선진국이 되도록 지원할 것입니다.(IMF가)우리를 잘 몰라서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다소 과격하다,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요구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 요구들은 대체적으로 국제적인 시각에서의 ‘한국병에 대한 처방’으로 봐야 합니다.국제 명의가 내놓은 처방전이지요. ▲배사장=그렇습니다.IMF와의 합의를 항복문서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습니다.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외환부족에 원인이 있었습니다.IMF에서 빌린 돈을 갚으려면 경상수지가 개선되야 하고 그러려면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당분간 경제규모를 축소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면서 국제시장에서 상품가치를 높이는 등의 활동을 해야 합니다.우리는 배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체중감량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몇사람이 배에서 내려야 효율적입니다.힘없는 계층의 부담을 다른 데서 덜어주도록 논의돼야 하는 데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는 선거유세시 나이들고 병든 사람에 대한 의료비용을 줄이자고 호소했습니다.거기서 줄인 비용을 국가 전체가 더 잘사는 데 투자하자고 했습니다.선거에서 당선을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서는 힘든 얘기를 한 것입니다.대통령 당선자도 그런 류의 얘기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차원장=우리 사회가 지도력을 회복해 경제 경쟁력을 살려내는 것이 관건입니다.새 대통령과 정부가 먼저 지도력을 찾아야 합니다.지도력은 인기영합과는 거리가 멉니다.달콤한 약속이나 장미빛 그림,청사진 아닌 청사진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것은 진정한 지도력이 아닙니다.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해야합니다.새 대통령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세계적인 시각부터 가져 달라는 것입니다.나라밖에 친구들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국제사회에서 대통령과 한국정부가 믿음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지나친 부채의존 탈피 ▲배사장=기업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겠습니다.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지도자는 자본주입니다.우리나라에서 자본주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과연 재벌총수들일까요.부도난 재벌의 자본은 모두 마이너스입니다.은행빚이 자산보다 많은 거지요.대부분 재벌총수들은 자산이 마이너스입니다.따라서 그들이 마치 굉장한 자산을 가진 것처럼 경영과 관련한 사안을 결정해 온 것은 경제를 잘못된 길로 이끈 원인입니다. ▲차원장=기업의 소유·지배구조가 바로 잡혀야 한다는 뜻이겠지요.왜곡된 소유·지배구조나 경영형태는 국제기준으로 볼때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지요.지나치게 부채에 의존하고,차입에 의한 과잉투자를 겁없이 하고….특히 관련도 없는 사업을 다각화란 명목으로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행태들이 국제시각에서는 믿음이 안가고 장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겁니다.기업인들도 정치인들 못지않게 국제적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말은 옛 얘기입니다.기업이 잘못되면 기업인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배사장=이른바 ‘한국식 자본주’들이 돈도 없이 회사를 지배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투자와 자원을 잘 이용해서 수익성을 높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과거에는 정부에 잘 보이면 은행에서 돈을 꿔주고 해서 운영을 해왔습니다.그러나 앞으로는 국제자본시장에서 돈을 끌어와야 합니다.그러자면 투명성이 있어야 합니다.사업자체도 타당성이 있도록 경영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이것이 기업의 지도자들이 해야할 ‘개혁’입니다. ▲차원장=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시급합니다.이 분야도 국제적 기준에 맞추도록 해야 합니다.금융계 종사자 뿐만 아니라 금융정책 담당자들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근로자들의 의식개혁도 시급하지요.80년대 후반부터 우리 근로자들은 고속성장에 도취해 합리적인 사고를 못했습니다.1달러가 900원일 때 우리 근로자의 임금은 영국보다 더 높았습니다.그런 고임금으로는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정치권의 인기주의 때문에 정리해고를 몇년 유보한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정리해고를 즉각 허용하고 임금을 동결해야 합니다.필요하면 감봉도 해야합니다. ▲배사장=노사분규가 한창이던 80년대말 근로자들은 과거에 저임금을 받아서 앞으로는 더 높여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그러나 생산성을 높이려면 노동시장의 자유화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노조가 임금인상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됩니다.노동계 지도자들도 국가 경제보다 근로자를 먼저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월급인상과 물가상승을 부른한 요인입니다. ▲차원장=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신축성을 확보하려면 합리적이고 경제원리에 맞는 소리를 해야 합니다.억지나 정치논리는 안됩니다.경제가 망하면 결국 근로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비참하게 됩니다. ▲배사장=이제는 여건이 됐습니다.정경유착이 사라지고 있고 더욱이 IMF의 지원을 받는 상황입니다.기업주로서도 투명경영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이런 것들을 더욱 촉진하려면 우선 세금내는 방법부터 간단하고 쉽게 했으면 합니다.기업이 세금을 내기 위해 경리직원을 수십명씩이나 두고 업무량도 많습니다.세법이 복잡해진 것은 그동안 투명경영을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습니다. ○가계도 고통 분담해야 ▲차원장=국민들,소비자들도 쇼크를 좀 받아야 합니다.소비를 너무 줄여 위축되어서는 안되지만 합리적인 소비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배사장=가계의 소비생활은 중요합니다.부가가치가 외국에서 이뤄지는 상품은 소비를 줄이고 반대로 국내의 부가가치와 관계되면 늘리는 방법을 써야지요.소비를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건전한 소비’소비를 해야 합니다. ▲차원장=TV를 살 때 ‘TV’를 사야지 ‘브랜드’를 사서는 안된다는 뜻이군요.의식과 가치관도 국제 기준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우리의 의식구조나 가치관은 100년 전이나,50년 전이나,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공중질서를 지키거나 사회생활을 건전하게 하는 것도 우리 경제의 경쟁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기 꺼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배사장=최근 캐나다 밴쿠버에 갔을 때 APEC에 참석했던 외국인사들을 만났습니다.당시는 외환위기 전인데도 한국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은 강인하기 때문에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셈이죠.
  • 문전성시는 옛말 달라진 새해 맞이

    ◎경제난국 감안 신년 하례객 사절/조촐한 단배식 뒤 IMF 정국 구상 여야 지도부의 새해 맞이가 달라지고 있다.결정적인 요인은 IMF 한파다.대부분 자택 개방을 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검소한 가운데 새 출발의 각오와 결의를 다진다는 계획들이다.매년 정초의 ‘문전성시’는 이제 옛말인 것 같다. 우선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와 박태준 총재는 어려운 경제현실을 감안,하례객을 일절 받지 않는다.김명예총재는 1일 아침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마포중앙당사에서 단배식을 가진뒤 가족들과 서울 근교에서 휴식을 취하며 정국구상을 가다듬을 생각이다.박총재도 공식일정을 제외하곤 휴일 내내 북아현동 자택에 머물며 피로해진 심신을 달랠 계획이다. 김수한 국회의장도 매년 가져왔던 의장공관 신년하례 행사를 일절 않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조순 총재와 이한동 대표도 자택에서 신년하례를 받지 않을 예정이다.조총재는 단배식과 국립묘지 참배에 이어 서울 근교에 머물며 새해 정국구상에 돌입한다.이대표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방문,새해 인사를 한뒤 고향인 경기도 포천에서 1박2일간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김덕룡 의원은 연휴동안 측근인 이규택 조웅규 의원 등 70여명과 1박2일 일정으로 태백산을 등반한다.그러나 자택을 개방하는 인사들도 더러 있다.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는 1일 부인 한인옥 여사와 함께 명륜동 친가와 개포동 처가에 인사를 다녀온뒤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신당동 자택에서 신년하례를 받는다. 김윤환 의원도 당공식행사에 참여한뒤 서초동 자택에 줄곧 머물며 찾아오는 하례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향후 당의 진로 등에 관해 생각을 가다듬을 계획이다.이종찬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도 1일 신교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차례를 지낸 후 휴식을 취하며 신년 하례객을 맞을 예정이다.이기택 전 민주당총재도 정계 원로인사들에게 세배를 다년온뒤 북아현동 자택에 머물며 하례객들을 맞는다.
  • 시종 화기속 정국의견 교환/김 대통령­김 당선자 만찬 표정

    ◎만찬뒤 김 당선자 메모보며 합의사항 구술/손 여사·이 여사 포옹하며 각별한 우의 과시 29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청와대만찬은 2시간10분여동안 진행됐다.만찬 메뉴는 김당선자가 좋아하는 우럭매운탕을 곁들인 한정식.국산 마주앙을 나누며 화기로운 분위기속에 정국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날 관저 앞뜰까지 나와 기다리다가 김당선자 내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김대통령은 다시한번 김당선자의 승리를 축하했다.손여사는 당선자부인 이희호 여사가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고마움을 표시하고 같이 포옹하는 등 각별한 우의를 과시했다.김당선자는 손여사가 손자가 10명이나 된다고 하자 “이름을 다 알기도 어렵겠습니다”고 말해 웃음이 이는 등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만찬은 포도주 건배로 시작됐다.김당선자 내외는 김대통령 내외에게 마음의 표시로 홍삼제품을 선물했다. ○…김대통령과 김당선자 내외 4명은 만찬 내내 함께 있었다.만찬이 끝난뒤두사람은 대기중인 신우재 청와대공보수석과 정동영 국민회의대변인을 불러 김당선자가 명함만한 메모를 보면서 합의사항을 구술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떠나는 김당선자 내외를 관저 대문(인수문)까지 배웅했다.관저 마당에서는 안채 등 집배치를 직접 설명해주기도 했다. ○…김대통령이 관저로 정치인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만찬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특히 관저 만찬행사 초입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것도 처음이다. ◎청와대 회동 합의 5개항 전문 1.앞으로 두사람이 긴밀히 협력하여 남은 2개월동안 국정운영이 차질없이 이루어지도록 중대한 시기에 협력하여 잘 넘기기로 했다. 2.매주 화요일 상오 9시에 정례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3.IMF협정을 충실히 지키고 IMF와 협력하여 국제적인 신인도를 강화하며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위해 협력한다. 4.원활한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위해 정부가 적극 협력하도록 대통령이 정부에 지시키로 했다. 5.일부 언론에 보도된바와 같은 문서파기는 없는 것으로 알며 만일 있다면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대통령이 정부에 지시키로 했다.
  • 미 저명 칼럼니스트 맥그로리 여사 WP칼럼 요지(해외논단)

    ◎김대중 당선자에 거는 기대/역경에 단련된 ‘큰 삶’에 국제거부들 긍정 평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가는 가운데 미 워싱턴 포스트지의 유명한 정치 칼럼니스트인 메리 멕그로리 여사는 28일 김 당선자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컬럼을 썼다.김 당선자에 대한 미 언론의 시각을 반영하는 그의 ‘김 당선자는 고칠 수 있을 것인가’란 제목의 컬럼을 소개한다. 73세의 김대중 당선자는 이제까지의 생 대부분 동안 그의 조국의 제일 나쁜 면을 부각시켰다.이제 그의 조국의 가장 좋은 면을 이끌어내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그는 존경스러운 인격자이며,그리고 ‘좋은 사람은 꼴찌가 십상’이라는 입맛 쓴 속담을 올해 보기좋게 뒤집어 엎어버린 소중한 사례다.열광적인 민주주의 신봉자인 그는 그의 조국 한국을 움직였고,끝내 좌초시킨 소수 독재자 그룹에게 갖은 수치를 당했다.그들은 그를 투옥했고,납치했고,여러번 살해를 기도했다.그들은 그를 추방시켰다.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국민통치의 신념을 지켰으며 끝내 보답받았다. ○경제난 극복 임무 부여 한국이 무릎을 꿇은 신세로 경제 패망과 고통에 직면하자 그의 동포들은 그에게 달려와 “다시 제대로 가게 해달라“고 말한 것이다.당선이후 그는 예의 그 넓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북한과 직접 대화할 용의를 표명했는데,이 북한 역시 극단적 상황에 놓여있지만 언제나 처럼 괴상하게 행동하는 중이다.그는 그를 가장 악명높게 괴롭힌 장본인들인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는 데 동의했다.김 당선자는 보수주의자들과 정적들이 쉴새없이 쳐논 올가미를 재주좋게 빠져나온 반정부인사로서가 아니라 국가지도자로 보아주기를 희망한 것이다. 한국의 재계 인사들은 김 당선자가 망가진 경제를 복구시킬 수 있을 지 확신하지 못한다.그러나 그들은 넬슨 만델라와 동열에 드는 인물을 드디어 지도자로 삼게 됐다는 점에 내심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만델라나 김 당선자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나쁜 면을 빠짐없이 겪었으면서도 아직도 용서와 속죄를 믿고있으며,또 거의 믿을 수 없는 인생 사연으로 세계인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IMF는 5백70억달라라는 사상최대의 구제금융을 내놓았지만 이것의 대가는 물질주의에 물든 한국인들이 그다지 마음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내핍 정책이다.김 당선자가 그의 인생을 그토록 오랜동안 비참하게 만들었던 깡패들을 이겨낸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마찬가지로 그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노동조합들을 내핍과 긴축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득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그는 미국 정치가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여기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상당한 추종자들을 거느렸고,그가 겪은 고난을 그와 똑같이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 감히 생각치 못했을 여러 정치가들의 동정을 얻었다.85년 2월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그가 결정하자 22명의 미국인이 그에 대한 위해의 방패막이를 자청해 동행했다.여기에는 2명의 하원의원이 포함되었다.지금은 의회를 떠난 오하이오주의 에드워드 파이건 민주당의원과 얼마전 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한 펜실베니아주의 토머스 포그리에타 민주당의원이다. 한국에 돌아온 이래,독실한 카톨릭신자인 그는 줄곧 활기,그리고 그의 조국에 반드시 민주주의가 도래한다는 꺼지지 않는 신념을 지녀왔다.그는 한국적 정치 경험에선 아주 독특한 정치가다.한국인들은 ‘경제기적’을 이유로 억압을 정당화하는 억압적 정부와 정치가들에게 익숙해 있는 측면이 있다. ○한국사의 독특한 정치가 국가경제 부활과 연계시켜 김 당선자가 이를 극복해낼 전망을 살펴볼 때,그의 과거 개인적인 위기탈출 만큼 시사하는 것은 없다.그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적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다.지난 73년 도쿄 납치가 좋은 예로 그를 수장시켜려던 무리들은 국제적 비난과 미국의 위협에 직면하자 살해를 포기했었다. 김 당선자가 직면한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나쁠 것이 없으며,그에게 드디어 힘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이다.그는 미국인들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냉철하게 보면서도,자신에 대해서는 애정을 보여준 사실을 알고 있다.어쩌면 몇몇 국제 거부들이 한국의 새 대통령을 보고나서 이 사람과 그리고 그의 조국은 뭔가를 해내기 위해 도전할 기회를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 김 대통령·김 당선자 내외/오늘 청와대 만찬회동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29일 저녁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 하며 경제난 극복대책과 정권인수인계 등 국정 전반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이날 만찬회동은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김당선자와 부인 이여사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대선 이후 두번째 이뤄지는 이날 회동에서 김대통령과 김당선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발족에 따른 정권인수·인계문제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각서 이행후속조치 등에 관해서도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 DJ 조용한 신년연휴 보낸다/공식행사·언론회견없이 신년사만 발표

    ◎경제난 타개책 등 국정운영 구상에 몰두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신년연휴 동안 공식 일정을 갖지 않고 모처에서 정국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시대’의 신년 첫날은 일체의 공식행사 없이 조용히 열리게 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김한길 대변인은 27일 “신년연휴를 전후로 김당선자는 오는 31일부터 새해 1월3일까지 4일동안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서울을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정국구상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간동안 김당선자는 국민회의 관계자들과의 신년하례는 물론 가족들과의 모임도 갖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는다는 것 김대변인의 전언이다.신년사를 발표하는 것으로 갈음할 것이라고 한다. 당초 국민회의는 새해 첫날의 신년하례를 놓고 찬반의 격론을 벌였으나,김당선자가 이날 아침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 단배식도 4일로 늦춰졌다. 김당선자가 일체의 신년하례를 피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심각한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가 가중되고 본격적인 실업사태가 예견되는 1월을 맞이하면서 김대중시대의 개막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는 것이 김당선자의 생각이라고 측근은 전했다. 김당선자의 신년구상은 당면한 경제난 타개책을 포함,임기 5년간의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내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시급한 과제인 경제위기 극복과 관련해 ‘노·사·정 대합의’ 마련 등 국민적 동참을 가시화하는 방안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1월중 예정된 ‘국민과의 TV대화’를 준비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당선자는 2월 취임때까지 삼청동 안가에만 머물지 않고 일산 자택을 오가며 업무를 볼 것으로 전해졌다.
  • 김 당선자 내주 임시공관 입주/청와대직원들 부속관사 쓰던 구옥

    ◎직접 둘러본 이여사 “도배만 해달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다음주초 일산자택을 떠나 청와대 인접부속관사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다. 김당선자의 이사와 관련,곤혹스러워하는 이는 김용태 청와대비서실장. 김당선자의 새 거처는 청와대비서실장 공관 옆이다. 비서실장 공관이 2층의 번듯한 주택인 반면 김당선자가 입주할 곳은 청와대 직원들이 부속관사로 쓰는곳으로 비교적 낡은 편. 건평도 70여평 밖에 되지 않는다. 김비서실장은 지난 24일 조홍래 정무수석과 함께 이종찬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만나 “나는 그만둘 때가 얼마 안남았으니 실장공관을 미리 비워도 된다”면서 “당선자께서 비서실장 공관을 임시로 쓰도록 건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전해들은 김당선자는 “뜻은 고맙지만 허름하더라도 부속관사를 쓰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측은 또 부속관사를 1억원 정도 들여 수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김당선자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직접 부속관사를 둘러본뒤 “안고쳐도 괜찮다. 도배만 새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도배와 함께 부엌 등 필수시설만 간단히 손질하는 수리작업이 진행중이다. 김당선자는 가족중 부인 이여사와 둘이만 새 거처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 예술행정가 이종덕(이세기의 인물탐구:156)

    ◎말과 행동 책임 질줄아는 ‘예술인’/30여년간 예술가와 동고동락… 후원자 역할/유럽 등 24개국 한국전통예술 우수성 알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의 소설가 조셉 콘래드가 ‘그 친구를 보면 그 인간을 판단할수 있다’고 했듯이 이종덕 예술의 전당 사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정치한 ‘예술인’인가를 서서히 알게된다. 그의 외형은 기개와 추진력을 지닌 장부의 이미지지만 내면에 도사린 은미신독은 정신과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줄아는 전형적인 행정가의 풍모다.그의 수첩에는 한달분의 스케줄이 거미줄처럼 메모되어있고 한번 일을 맡으면 일사불란하게 진행시킨다. ○스케줄 한달분 메모 그는 일찍이 ‘자신이 무엇이 될것인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예술가들과의 인연만으로 한길을 걸어온 예사롭지 않은 전조를 보인다.문공부 문화과에 소속되어 온갖 문화적 이벤트와 행사를 주도하고 지난 30여년간을 예술가들의 고뇌와 애환에 동반하면서 그들의 ‘힘’과 ‘도움’이 되어주었고 그때부터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예술인’으로서제고해왔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무용에서 연극 음악 국악 미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기라성같은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담론에 심취하게 되었다.관객과 행정가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예술의 차원을 알기 위해 외형의 화사나 거창한 이력보다는 공연을 일일이 관람하고 학위 논문까지 꼼꼼하게 살펴 ‘진정한 예술가’인가 아닌가를 가려낸다.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생각하면서’군림하는 자세가 아닌,협력자와 후원자로서 관과 예술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해온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평소 그에 대한 평가는 ‘직선적이면서 호방한 성격’‘사통팔달의 사교성’‘실천력과 행동력’‘예술행정에서의 괄목할만한 수완’등등으로 손꼽힌다.60년대초 해외유학이 어렵던 시절에 정경화 정명훈 등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해외에 유학보내기 위해 직접 외무부에 드나들면서 여권수속을 해주기도 했고 74년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돌아왔을 때는 상부에 보고하여 시청앞에서 대대적인 환영대회를 열어준적도 있다.국가원수의방한이나 스포츠맨들의 해외경기 개선에서나 볼수 있었던 이퍼레이드는 아마도 예술가로선 처음이자 그후에도 없었던 일이다. 누구라도 원만구족의 평생을 누리기란 쉽지않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과 사명감을 성취하기 위한 기틀을 처음부터 탄탄하게 마련해온 셈이다.조페공사에 근무하던 이완규씨와 김도영 여사의 2대독자. 일본 오사카 태생으로 나카모토(중본)초등학교 3학년때 고향인 경기도 시흥에 돌아와서 서울 경복고를 졸업했고 일본에서는 ‘조센징’고국에 돌아오자 ‘일본인’취급을 받은 상처때문에 때때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일면이 노출되기도 한다. 한때는 영화광에다 연극과 악극단 쇼에 쫓아다니기도 했으나 연세대 졸업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채출신으로 문공부 선전국 예술과에 근무하면서 문화예술계의 끊을수 없는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그의 타고난 사교성은 10여개의 모임에서도 의리와 친화력을 펼치고 정재계는 물론 작가 최정희 서기원과 국악계의 김천흥 성경린 무용에서의 강선영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원로들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술행정 수완 뛰어나 그의 자존심은 전문 예술가가 아닌, ‘예술을 애호하고 두둔하는 입장’에서 온축된 실력과 자신감으로 자신에게 부닥친 일에 정면대결하고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양성된 실력으로 밀어붙이는 융통성과 배짱이 병행된다.그중에서도 72년 문공부 공연과장시절,진해벚꽃놀이가 천편일률적으로 군악대로 장식되는 타성에서 벗어나 우리의 국악과 무용으로 살아있는 무대를 꾸며냈고 이후 정부로부터 ‘우리 전통예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발전시키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그때부터 5개월간 뮌헨올림픽 국제민속제를 비롯 유럽 중동 동남아 24개국을 순방하여 각국 매스컴으로부터 ‘한국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호평과 국내에서도 포드,카터 미 대통령 방한 등의 굵직한 행사들을 고루 성공시키고 있다. 88올림픽 개폐회식,서울예술단을 재단법인으로 체제를 전환한 것과 93 대전엑스포때 연인원 2천700명의 매머드공연이 국민대화합으로 이끈 공로가 인정되어 예술의 전당 사장에 발탁되자 공연장이 일반에게 너무 생소하게 알려진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최고의 예술상품· 관객서비스·문화공간 등 ‘베스트 5운동’을 전개, 관객에게 친근해질수있는 ‘예술의 전당 대중화’ 에성과를 거두었다. 가족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김영주씨와의 사이에 4녀(차녀 상온씨는 이매방 승무 이수자이고 막내 은경씨는 HBS근무) 평소의 그는 관리출신이지만 전형적인 관리의 티는 찾아볼수 없다.상대방을 들뜨게하는 미사려구나 감동적인 웅변,과장된 제스처는 없지만 일사일언적인 압축된 사상은 어디서나 진지하고 순수한 언행을 흐트리지 않는다. 어쩔수없이 장의 기질이 몸에 배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행동은 격의가 없는듯하게 정이 많고 예의가 반듯한 반면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고 호의를 베푼다.사물의 핵심을 투철하게 꿰뚫는 천부적 직관력은 보직을 받고 사무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다른 관료들과는 달리 총준의 지도력과 행정력,속도를 늦추지않는 전력투구로 거의 드믈게 ‘예술행정가’의 위치를 창출한 예이다.무용가 최현씨는 ‘인간적인 면과날카로움, 따뜻함과 냉철함,포용력과 실천력에서 경탄할만한 행동가’로 그를 아낀다.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 사나이의 기상과 평범속의 비범을 지닌 그를 향해 ‘문화예술계가 만들어낸 발군의 인재’라는 주변의 평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그는 지금도 넘치는 추진력과 식지않는 정열로 예술을 발전시키고 확대시키는 행정가로서 자신의 경륜과 기량을 약진하려는 시점에서도 처음과 같은 자세로 여전히 풋풋하게 서있기 때문이다. □연보 ▲1935년 일본 오사카(대판)출생 ▲1955년 서울 경복고졸업 ▲1960년 연세대 사학과졸업 ▲1962∼76년 문공부선전국문화과 ▲1967년 국무총리 공로표창 ▲1972년 민속예술단 뮌헨올림픽국제민속예술제참가및 유럽순회공연 감독 ▲1977∼81년 문공부 예술국공연과장·보도과보도과장·정책연구관 ▲198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상임이사 1984년 미국무성초청 예술계 시찰 ▲1986년 연세대 행정대학원졸업, 86’아시안게임 문화행사 기획위원 ▲1988년 88올림픽행사 기획위원 ▲1989년 서울예술단 단장▲1993년 대전 EXPO개폐회식 문화행사 주관 ▲1994년 서울예술단 이사장 ▲1995∼현재 예술의 전당사장, 전국문예회관연합회회장,일본 베세토연극제참가 감독 ▲1996년 아시아태평양연합회이사,서울예장로터리클럽 창립회장,라자로돕기회 운영위원장 1997년 현재 아시아태평양연합회회장,한국국제협력단자문위원,연세대동문회이사,한국향토음악인협회위원,한국문화경제학회이사,한국몽골협력회의이사 대통령근정포장및 공로표창(73·80년)보국훈장삼일장(81년)국민훈장목련장(88년)국무총리표창(89년)옥관문화훈장(94년)
  • 김 대통령 충현교회 성탄예배

    ◎개인신도자격 참석… 경호원수 최소한으로/설교도중 경제난 언급때마다 심각한 표정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취임전에 다니던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열린 성탄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예배의 주된 의제는 역시 경제위기 극복. 예배를 주재한 김필수 목사는 “우리 국민의 방탕과 사치가 경제위기로 이르게된 것을 용서해 달라”면서 “민족을 살리는 복음의 메시지가 울려퍼질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기도나 설교 도중 경제난과 관련한 언급이 있을 때 마다 침통한 표정을 짓는 듯 비쳐졌다. 청와대측은 이에 앞서 “김대통령이 개인신도 자격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싶다”는 뜻을 교회에 전달하고 경호원 수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지난해에는 김대통령이 연단에 나가 인사말도 했지만 올해는 이것도 생략했다. 김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안내방송도 따로 없었다. 김대통령은 예배를 마친뒤 본당 앞에서 신도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작년에는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으나 이번에는 차분한 분위기였다.김대통령과 함께 매년 성탄예배에 참석했던 현철씨는 인대수술때문에 병원에서 요양중이어서 예배에 참석치 않았다. 청와대에서는 김광일정치특보,김광석 경호실장,최양부 농림해양· 이해순의 전 수석 등이 같이 예배를 보았다.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하(미국의 대통령 문화:5)

    ◎2차대전 적극 개입… 1천만 실업자 구제/전후 평화 정착 기대속 4선 당선 영광/대통령 문화 요람 도서관 시스템 도입/부인 일리노어 적극적 사회 활동/헌신·박애정신 국민 마음속 각인/동상 선 세계 최초 퍼스트 레이디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대공황의 질곡에서 미 국민을 구출할 희망의 상징으로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애칭 FDR)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뉴딜정책을 추진했다.테네시강 개발사업,국가부흥청 설립,농업조정법 제정,사회보장제도 도입,노동조합 활성화 등 100일 입법을 통한 새행정부의 의욕적인 정책추진은 무기력과 절망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뉴딜정책 평가를 위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띤 1936년 대통령선거에서 FDR은 선거인단수 523대 8의 미 역사상 최대의 표차로 재선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그러나 활기찬 뉴딜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으로부터의 탈출은 요원했다.36년 다소 회복되는 듯 하던 경기는 37년 중반부터 다시 불경기로 돌아섰으며 38년에는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실업자가 전체 노동력의 5분의 1인 1천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당초부터 실험적 성격이 강했던 뉴딜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사방에서 FDR에 대한 비난의 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천운을 타고난 듯,뜻하지 않은 방향에서의 해결책이 마련됐다. FDR의 대통령 취임과 같은 해인 33년 독일의 권력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가 국제연맹을 탈퇴,인접국들에게 과거 독일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며 전쟁준비에 광분하면서 유럽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마침내 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마침내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고,이로 인해 군수산업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미국의 경제상황은 대공황에서 탈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후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전쟁이 미국을 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던 40년,미 대통령선거의 최대쟁점은 참전문제였다.초기 FDR은 재선한 대통령으로서 명예로운퇴진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전쟁에 직면한 위기상황에서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그를 또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그는 참전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으나 미국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대가 필요함을 역설했다.미 국민은 그를 미 역사상 최초의 3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전쟁 초기 FDR은 곤경에 처한 영국을 도우려 했지만 고립주의자들로 가득찬 미 의회의 거부로 소규모 제한적인 원조밖에는 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미국은 민주주의의 거대한 무기고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의회와 국민을 설득,마침내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39년 10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핵폭탄에 관한 서신에 접한 FDR이 즉시 비밀계획팀을 만들어 연구에 착수,마침내 원자탄을 만들어내게 한 것도 이같은 그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던 중 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국의 본격적인 참전 계기가 됐다.참전은 모든 미국 경제를 전시경제로 돌아서게 했고 미 전역의 공장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들이 쏟아져 나왔다.1천만에 달하던 실업자가 방위산업 증강에 따른 구인수요와 군입대로 사라지게 됐다.또한 FDR의 활발한 전시외교는 그를 자연스레 국제지도자로 부상시켰다. 44년 11월,아이젠하워 장군 지휘하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위해 독일로 진격하고 있을 때 미국은 다음 대통령선거를 치렀는데,FDR은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를 물리치고 4선 대통령에 당선됐다.전쟁의 마무리 뿐 아니라 전후평화에 있어서도 미 국민은 그의 영도력에 큰기대를 걸었던 것이었다.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던 그는 취임 3개월도 못된 4월12일 조지아주 웜스프링 휴양지에서 뇌출혈로 숨졌다.그의 나이 63세. 라이딩스의 대통령 순위에 따르면 FDR은 지도력과 정치력에서 각각 1위,업적 및 위기관리와 용인술에서는 각각 2위,성격 및 집중도에서는 15위를 기록해 전체 순위에서는 링컨에 이어 2위로 나타나 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의 일화는 그의 지도력 및 용인술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첫대통령 취임 직후 FDR의 군예산 대폭 삭감계획에 불만을 품은 맥아더 육군참모총장이 조지 던 전쟁장관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했다.대통령과 부딪히는 것을 꺼리고 있던 던 장관을 제치고 맥아더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FDR은 빈정거리는 투로 평화시에 많은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답했다.두사람 사이에는 다소 설전이 오갔다. 마침내 맥아더가 자제력을 잃고 “만일 다음 전쟁에서 미국이 져 미국 병사들이 적의 군화발에 짓밟힌다면 그들은 맥아더가 아닌 루즈벨트를 원망할 것입니다”라고 대들었다.그러자 FDR 역시 화를 버럭내며 “당신이 대통령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며 고함을 질렀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맥아더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 없었다.군통수권자에 대한 모욕은 군법회의 감이었다.그는 사과를 한 후 총장직 사의를 표하고 뒤돌아 나왔다. 맥아더가 막 집무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대통령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더글라스,어리석은 짓 말게.여기 당신의 목과 예산안을 함께 가져 가게” FDR의 정치생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할 사람은 부인일리노어 여사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그녀는 남편의 투병중 세심한 간호는 물론 그가 주민들로부터 잊혀지지 않도록 정치활동을 대신,남편의 정치적 재기를 가능케 했다.또 퍼스트 레디가 된 후에도 신문에 ‘마이 데이’라는 칼럼을 정기적으로 썼으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현대적 퍼스트 레디상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DR이 죽은후 그녀는 남편 생가의 옆동네인 바킬의 고향집에서 17년을 더 살았으며 트루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6년간 유엔총회 미국대표단장을 역임하는 등 공직생활을 하기도 했다.62년 78세로 생을 마감한 그녀는 국민들 마음에 헌신적이고도 박애적인 영원한 퍼스트 레디로 깊이 각인됐으며 지난 여름에는 워싱턴에 동상이 선 첫 퍼스트 레디가 됐다. FDR의 업적 가운데 주목받는 것으로는 대통령도서관 시스템의 도입이 있다.역사기록의 중요성과 대통령직 수행 자체가 국민의 위임에 의한 것임을 자각했던 그는 1기 임기가 끝났을 때 자신의 모든 자료들과 하이드파크의 생가를 국가에 기증,대통령도서관을 만들어 국민들이 언제라도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했다.현재 미국내 존재하는 대통령도서관은 모두 11개로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의 관할 아래 제31대 후버 대통령부터 41대 부시 대통령까지 주로 생가에 건립돼 있으며 미 대통령문화의 요람이 되고 있다. ◎수잔 쿠퍼 미 국립문서보관소 대통령도서관 담당/“대통령직 관련 자료 보존·열람 FDR 투철한 역사의식서 시작”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수잔 쿠퍼 대통령도서관 담당관은 “미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한데 모아 보존하고 열람시키는 전통을 수립한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투철한 역사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도서관의 설립 동기는. ▲1939년 두번째 임기중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하이드파크의 생가일부와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연방정부에 기증하고 그 관리를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됐다.도서관 건물은 이듬해인 40년 후원회에서 건립후 국가에 헌납했다.1955년 ‘대통령도서관법’이 제정돼 도서관의 건립은 대통령후원회 등 개인이 맡고 관리만 국립문서보관소에서 하도록 돼 있다. ­이전에는 대통령문서가 어떻게 보존돼 왔나. ▲대통령마다 의회도서관 또는 출신대학,거주지 도서관 등에 기증하거나 혹은 후손에 남기는 등 가지각색이었다.그래서 팔려나간 경우도 있고,훼손·분실되는 일도 많았으며 여러군데 흩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대통령도서관 현황은. ▲최근 텍사스 A&M유니버시티 내에 개관한 부시도서관을 포함 모두 11개이다.루즈벨트에 이어 트루만(미주리 인디펜던스),후버(아이오와 웨스트브렌치),아이젠하워(캔자스 애빌린),케네디(매사추세츠 보스톤),존슨(텍사스 오스틴),포드(미시간 앤아버),카터(조지아 애틀란타),레이건(캘리포니아 시미 밸리)도서관 등이 있다.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의 도서관은 캘리포니아 요루바린다에 있으나 의회명령으로 방대한 양의 워터게이트사건 관련 문서들은 아직 국립문서보관소의 닉슨자료실에 보관돼 있다. ­대통령 도서관에 전시되는 자료들의 내용은. ▲대통령이나 비서진에 의해 공식적으로 만들어진문서,국내외로부터 받은 문서 및 서신,취임전후의 자료,사진·필름 등 각종 오디오 비디오 자료,유품 등 개인소장물품과 공식선물 등이다.
  • 뉴솜 미 버지니아대 교수 CS모니터지 기고(해외논단)

    ◎미,한국 새 정권 특별지원을 미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한바 있는 데이비드 뉴솜 버지니아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한국 김대중 당선자의 성공은 아시아 권위주의 국가들에 있어 민주주의 실험의 상징이라고 강조하고 따라서 민주주의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은 그의 새정부가 성공하도록 지원할 특별한 책임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뉴솜 교수가 ‘한국의 새 지도자:민주주의 상징의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24일자에 기고한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주 김대중을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한 선거는 한국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동시에 이는 아시아의 두드러진 반체제인사가 권력자의 위치에 오른 보기 드문 상승을 나타낸다.이것은 사실상 한국에서 야당 후보가 선출된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김 당선자는 그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서울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계속된 노력과 싸워왔다.그는 납치,투옥,사형선고,망명 등을 견디어냈다.이 시기를 통털어 미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은 김의 생명을 구하고 그를 감금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중재에 나섰다. ○반체제 인사 집권 첫 사례 특히 카터 행정부때 미국 정부는 김을 편들기 위하여 한국 정부에 무거운 압력을 가했다.그같은 개입의 동기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와 또한 서울의 권위주의적 속성이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안보정책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킬수 있다는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그러나 이 개입정책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비난이 따랐다.그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고 서울의 강력한 정부를 약화시킬까 두려워 했다. 그같은 개입정책이 김을 구출하는데 얼마만큼 작용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정치적 반체제인사들은 종종 그들을 편드는 외부의 노력이 그들이 외국 세력들과 너무 가깝다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를 일으킨다.또 그래서 그들의 생명이나 정치적 입지에 위험을 가중시킨다. 아시아의 다른 유명한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별로 효율적이지 못해왔다.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정적으로 미국이 자주 중재에 나서왔던 아퀴노는 그의 마닐라 귀로에 살해당했다.버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는 강력한 외부로부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부지도자들에 의해 사실상 감금돼 있다.중국에서도 유명한 반체제인사의 권력자로의 부상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김대중 당선자의 과제 그러나 김의 생존에 외부지원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했다해도 그의 승리는 그 자신과 한국민들에 속한 것이다.그는 그 수십년 동안 자신의 모국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는 명예와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됐음을 입증했다.그는 민주주의에 경도된 중산층과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직전 지도자들의 의지에 덕을 입었다.또한 현재의 경제위기와 재정문제들이 정치 엘리트 내의 부패와 과거 정실주의의 결과로 초래됐다는 인식으로부터도 덕을 입었다. 그러나 김 당선자는 아마도 그의 생애에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런지 모른다.야당지도자는 항상 통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비록 그가많은 의정경험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에서의 경험은 전무하다.한국에서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은 다음 총선이 있는 2000년까지 국회의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고 투자가들이 그의 정책방향에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 때에 권력을 잡게 됐다.그는 또한 IMF의 조건에 맞추기 위하여 보다 엄격한 방법으로 한국을 이끌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그러다 보면 그는 노조와 같은 그의 주요 지지세력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그는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위기 때에 국가를 이끌게 된다. ○민주주의 실험의 상징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장래보다도 김의 성공이다.그가 아시아 권위주의 통치를 반대하는 상징이 될때,그는 민주주의 실험의 상징이 되고 또한 ‘아시아적 가치’에 기초를 둔 일당제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전의 상징이 될 것이다.여기에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미국이 김의 새정권이 성공하도록 지원해야할 특별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다른 반체제인사들과 그들의 억압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 반상회비 모아“이웃돕기”/서울 암사동 주민 매달 1∼2만원씩적립

    ◎소년소녀 가장 3명에 훈훈한 인정 전달 “적은 돈이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온 국민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IMF의 한파 속에서도 서울 강동구 암사동 29통 1·2반 주민들은 24일 올 한해동안 매달 1∼2만원씩 적립해 온반상회비 30만원을 이웃에 사는 소년소녀 가장 등 불우이웃 3명에게 전달했다. 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소년가장 이호연군(14·신양중 2년)과 일찍 남편을 잃고 정신지체아 등 3남매를 혼자 힘으로 어렵게 키우는 김영민씨(32·여)등에게 주민들의 온정을 전했다. 이 동네 주민들 대부분은 인근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반상회에서 회비를 모아 매년 2차례 인근 고아원과 양로원 등 사회단체와 무의탁노인,소년소녀가장 등을 7년째 돕고 있다. 김한수통장(40·세탁업)은 “많은 사람들이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들어 이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매달 한번씩 반상회를 통해 한가족처럼 지낸다”며 “주민들이 어렵게 생활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어려운 이웃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모두가 한뜻으로 불우 이웃돕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91년 처음 시작된 이 동네 ‘이웃사랑 반상회’는 부부는 물론 동네 노인들 참석한다. 14가구가 모여사는 조그만 동네의 반상회지만 인원은 항상 30명을 넘는다. 송년 반상회와 야유회 때는 인근에 사는 소년가장이나 불우이웃을 초대 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소년가장 이군은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며 주민들의 온정에 답했다.
  • 이회창 홀로서기 나섰다/“훌훌 털고 일어날때” 휴식차 경주로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는 23일 하오 부인 한인옥 여사와 함께 경주로 떠났다.부산을 거쳐 일요일(28일) 귀경할 예정이다.이흥주 운영특보와 장다사로 보좌역 등이 수행했다.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말동무’를 위한 것이다. 이명예총재도 “쉬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부산은 대선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인사도 할겸 해서 잡은 일정일 뿐,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했다.그래서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 등 틈틈히 읽을 책도 3∼4권 준비했다. 이처럼 이명예총재는 당분간 정치권에서 한발 비켜서 있을 계획이다.소리나지 않더라도 나름의 정치적 행보를 했으면 하는 측근들도 있으나,선거과정에서 탈색된 이미지 복원을 위해 당분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이다.이명예총재도 자전적 에세이 ‘아름다운 원칙’을 예로 들며 “지금은 훌훌 털고 일어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명예총재가 당사로 찾아온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를 만나고 경주로 떠난 이날 하오 후보시절 그의 사무실의 짐은 모두 치워졌다.조순 총재의 방으로 바뀌고 대신 그의 짐은 조총재가 쓰던 9층 작은 방으로 옮겨졌다.권한 없는 명예총재로의 자리매김이다. 정치권의 계속될 역풍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그의 ‘경주 구상’이 궁금하다.
  • 김 대통령·김 당선자 29일 청와대서 만찬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 하며 경제위기 극복방안과 정권인계·인수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고 국민회의 유재건 총재비서실장이 23일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와 김당선자 부인 이희호 여사도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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