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여사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법치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문인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차도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명단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861
  • 안방극장 ‘로맨스 그레이’ 뜬다

    “삼각관계가 애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요즘 드라마를 보다보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와 이런 주장을 늘어놓을 만한 무수한 중년 커플들을 만나게 된다.주로 젊은층 연애담이 중심되던 드라마방정식에 중년층 삼각관계가 또다른 축으로 추가되는 새로운 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에도 로맨스그레이들이 드라마에서 감초 구실을 해왔으나 최근 경향은때로 젊은 커플들을 제치고 드라마 인기의 동력으로 부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삼각관계의 이차방정식화’라고 불러볼 법한이같은 현상은 중년주부의 주시청시간대인 주말드라마를 중심으로 일일극 및 미니시리즈로까지 소리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K-2TV 주말극 ‘유정’.운전기사인 홀어머니 선영(이휘향)의딸 수진(박진희)과 레지던트 현우(김찬우),재벌집 딸 희주(김윤진)등 20대의 삼각형에 선영-재벌회장 동욱(노주현)-동욱의 친구부인 승혜(김용선)를 꼭지점으로 한 중년 삼각형을 병치,뜻하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극 후반에 접어들어 저울추가 중년쪽으로 기울어갈수록 인기가 치솟고 있다. S-TV 주말극 ‘파도’역시 비슷한 형국.초반 영준(이재룡)-윤숙(이영애)-수경(왕희지)등 젊은층 사랑다툼에 초점이 맞춰졌을 때만 해도 그저그렇던 시청률이 최근 영준 어머니(김영애)를 둘러싸고 애인인 윤사장(이정길)과 아들(영준)의 갈등으로 옮겨오면서 베스트권으로 도약했다. 상대적으로 젊은층을 겨냥했던 M-TV 주말 ‘사랑해 당신을’도 경쟁상대인‘유정’의 호객전략에 자극받아 윤여사(사미자)와 황여사(김용림)사이에 백일섭을 긴급 투입,‘어른들’얘기를 풀어나갈 틈을 마련했다. 홍옥(고두심)의 로맨스를 딸 남옥(최정윤)이 것과 대등하게 풀어나가는 K-1TV ‘사람의 집’,엄마(고두심)와 딸(김지호)의 연애담을 가로질러 엮은 M-TV 옛 수목극 ‘눈물이 보일까봐’등도 이같은 흐름을 타는 드라마들.11일과 18일 각각 막을 올릴 M-TV‘날마다 행복해’,K-1TV‘해뜨고 달뜨고’등 새로시작할 일일극도 이런 추세를 외면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드라마 주시청층이 아무래도 중년 주부들이라는 점 외에도 제작진 역시 두기둥 체제에서 위험을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효과’를 노린 결과로 보인다.즉 젊은 삼각관계가 호응을 못 얻을 때 중년층을 부각시켜보고 여의치않으면 되돌아오는 등 운신의 폭이 크게 넓어지는 것이다.하지만 무책임함에 대해 어느정도 관용을 얻을수 있는 젊음의 사랑에 비해 중년의 사랑이 모범적이려면 내적 필연성이라는 현실적 기반이 튼튼해야만 한다.그런 의미에서최근 브라운관 속의 로맨스그레이 상당부분이 호소하는 것이 주부들의 현실도피적 대리충족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세들(4) 이후락의 ‘축재’

    이후락은 자신의 아들들을 한국 재벌들과 정략결혼을 시켜 온 나라를 사돈관계로 얽어놓았다.첫째아들은 서정귀(徐廷貴·박정희의 대구사범 동창,전흥국상사·호남정유 사장·작고)의 사위가 됐는데 그는 김동조(金東祚·전외무장관) 주미대사 시절 대사 관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둘째아들 이동훈(李東勳)은 한국화약 창업주이자 전 회장인 김종희(金鐘喜·작고)의 사위가됐다.그래서 이들 사돈기업을 포함해 이후락의 후원으로 기업을 성장시킨 다섯개 기업의 회장을 세칭 ‘이후락의 5인방’이라 불렀다.신진자동차의 김창원(金昌源·작고),극동건설의 김용산(金用山),대농의 박용학(朴龍學),한국화약의 김종희,호남정유의 서정귀가 바로 그들이다. 미국의 석유재벌 칼텍스와 유니언 오일사의 한국내 합작선 선정은 제3공화국 사상 최대의 이권이었다.한국 재벌들이 석유합작선을 놓고 벌인 혈투에서 호남정유와 한국화약그룹이 최후의 승리를 한 데는 이후락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이들 미국의 국제적 석유자본은 기름값을 정부가 결정하는 한국에서 석유공급을 독점함으로써 폭리를 취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박정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그것을 관리한 것이 이후락 일가였다. 내가 이후락 일가 부정부패의 세세한 부분까지를 알게 된 것은 사실 내 친구 ㅊ의 덕분이다.미국유학을 다녀온 그녀는 60년대 이후 이후락과 그의 부인·자녀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쳤다.ㅊ은 후암동 이후락의 집을 드나들면서 접하게 된 기기묘묘한 일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한번은 집주인이 내방객이 두고간 돈봉투를 소파 밑에 밀어넣어 두었다가 깜빡 잊어버려 청소하던 식모가 수백,수천만원짜리 수표를 주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당시 국민학생이던 이후락의 셋째아들이 ㅊ의 집에 놀러왔다가 ㅊ의 어린 딸에게 돈세는 법을 가르쳐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지폐를 한 장씩 넘기며)“돈은 1억,2억,3억…이렇게 세는 거야”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평양을 왔다갔다하던 이후락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던 때 나는 서울을 방문해 ㅊ의 집에 며칠 머물렀는데거기서 영어를 배우러 온 이후락의 부인 정윤희(鄭允熙)와 마주친 적이 있다.ㅊ이 나를 ‘미국친구’라고만 소개했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채 한담을 나누게 되었다.그녀는 말끝마다 “우리 남편이 이제 남북통일을시킬 것”이라고 자랑을 하기에 내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정 여사,당신 남편은 도둑놈이오”.그러자 이후락의 부인이 펄펄 뛰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그건 다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세간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우리 주인은 절대로 결백합니다.부정이라고는 모르는 분이에요”.이후락 부인과 나는 이후락이 도둑인가 아닌가를 놓고 한참 설전을 벌였다.내가 자리를 뜨자 이후락의 부인이 ㅊ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라고 한다.“워싱턴의 문 기자”라고 하자 다음날 그녀는 돈봉투를 가지고 와서 내미는 것이었다.기가 막힌 나는 그녀에게 목청을 높였다.“나까지 도둑으로 만들려고 이러십니까?” 5공시절 나는 동향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온 박영옥(朴榮玉)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정축재 액수에서)우리보다 이후락이가 적게 나왔는데 이럴수가 있나. 신군부 놈들이 이후락이는 봐준 거다.당시 신군부 군인들의 기세가 어땠는줄 아니?그들은 나에게 ‘이 도둑년’하면서 내 손가락에 낀 반지까지 빼갔다.그러면서도 이후락이는 봐줬으니 신군부에다 뭘 바쳤는지….목숨 바쳐 혁명한 사람은 두 번이나 외국으로 쫓아내고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권력은 다 해먹은 게 바로 그 자다” 이처럼 온 나라를 혼맥으로 엮어가며 차기 권력을 향한 자기기반을 착착 다져가던 이후락도 73년 12월 박정희의 ‘가지치기’로 해임되고 말았다.권좌를 떠난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후락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73년 12월말 한국을 빠져나와 런던으로 갔다.거기서 미국비자를 받으려했으나 실패하자 당시 한·영 영사협정에 따라 비자 없이 갈 수 있던 영국령(領) 바하마로 갔다.거기서 이후락은 당시 돈으로 50만달러를 주고 저택을사들이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하였다. 이후락이 바하마에 집을 사 정착하려고 한 이유는 자신의 재산을 이곳으로도피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바하마는 은행에돈을 갖다 넣어도 비밀이 보장되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서 미국 부호들이 재산도피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었다. 김형욱에 이어 이후락마저 해외로 도망가자 박정희는 이후락을 귀국시키기위해 노심초사했다.자신의 엄청난 치부들이 폭로될 것을 극도로 우려했기 때문이다.두 사람 사이에 몇 차례 특사가 오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조선일보 외신부의 김 아무개 기자였다.이후락은 결국 박정희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편지를 받고 74년 2월말 귀국했다. 73년 이후락 해임후 박정희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는 어떻게 되었을까.일설에 의하면 박정희는 비밀계좌의 예금주 이름을 모두 자신의 측근으로 바꿨다고 한다.그런데 10·26 이후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이 보안사 요원 5명과 그를 스위스로 보내 비밀계좌의 돈을 모두 찾아왔다는 얘기가 있다.그때따라갔던 요원 중 한 사람이 미국에 와 “그 때 수고비로 5만달러를 받았다”고 발설한 일이 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주세논쟁 최일선’ 재경부 女사무관

    격렬한 주세율 논쟁의 와중에서 소주업계의 반발에 맞서고 있는 재정경제부의 담당자는 의외로 행정고시 출신의 여사무관이다. 김경희(金景羲·30)소비세제과 사무관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우리나라가판정패한 이후인 지난 97년 10월부터 2년여 동안 주세를 담당해왔다. 올 정기국회에서 소주세율을 올리고 위스키세율을 인하한다는 방침이 소주업계의 반발을 부르면서 ‘입술이 터질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김 사무관은 “이번 주세율 조정과 관련해 업계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항의성 전화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37회로 지난 94년부터 재정경제원(재경부 전신)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법무담당관실에서 근무하다 소비세제과로 옮겨 주세를 담당하고 있다. 연세대 영문과 졸업 후 행시를 염두에 두고 법학과에 편입,졸업했다.김 사무관은 고시 동기생인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의 이강호(李康鎬)행정관과 재경부에서 만나 결혼한 유일한 부내 커플이기도 하다. 그는 “소주,맥주도 조금 하고 폭탄주도 마실 수 있지만 업계 사람들이술을 마시자고 찾아오지는 않는다”며 “필요하면 주류업계 사람들을 언제나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일기자 bruce@
  • 바그와티 美컬럼비아대 교수 대구라운드 기조연설 요지

    선진·채권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 대응,개발도상국과 채무국의 입장을 대변해 쌍방통행형 신(新)국제금융질서 수립을 목표로 한 대구라운드 세계대회가 6일 경북대 대강당에서 국내외 7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 관계자와 석학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됐다.사흘동안 계속될 이 대회의 개막행사에는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J.Tobin)교수 등이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서상돈상 본상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이었던 고(故) 양기탁 선생이 받았다.수상은 며느리 최선옥(81)여사가 대신했다.국제상은 미국 컬럼비아대 자그디시 바그와티 (J.Bhagwati) 교수에게 돌아갔다.다음은 바그와티 교수가 ‘세계화:적절한 통제의 문제’란 제목으로 이날기조연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는 ▲세계화가 투기성 단기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통해현재 아시아 금융위기로 알려진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고 ▲시민 사회세력들이 그같은 세계화에 저항하거나,최소한 조절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국제 교역,외국인 직접 투자,단기자본 이동, 인구이동등 여러 유형의 세계화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의 토론에서도 이같은 현상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분명한 사실은 그 개념들간에는 유사성도 있지만 차이도 크다는 것이다.자유 교역과 자본이동 자유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으나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는 이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시아국가들로 하여금 단기자본 이동 자유화를 허용하도록 밀어붙였다.따라서 우리는 세계화를 다룸에 있어서 개념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이 과정에서 우리는 ‘적절한 통제’ 원칙이 국내외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국내외 차원의 적절한 통제에는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노동기준에 대해 보다 인정넘치는 정책을 촉구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도 포함된다.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NGO의 엄청난 확산이 범세계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강력한 세력형성으로이어지도록 세계화가 조절만 된다면 반대하기보다는 지원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朴正熙와 金大中](1)

    대한매일은 미국 US 아시안뉴스 서비스 주필인 문명자씨의 미공개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을 단독입수,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연재합니다.문씨는 지난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을 국내에 보도한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이후 30여 년간 미국서 활동해온 현역언론인입니다.그동안 그는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한국관련 고급정보를 목격하고 기록해 왔으며 이번 회고록은 이같은 내용들을 토대로 한 것 입니다.회고록에는 한국현대사의 ‘미스터리’는 물론 한·미관계의 이면사를 처음 공개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있어 ‘역사적 기록’으로서도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73년 4월 15일 대만대학에 박사학위를 받으러 간다며 한국을 빠져나온 전중앙정보부장 김형욱(金炯旭)이 며칠후 미국에 나타났다.그것은 영락없는 도망길이었다. 5·16 쿠데타의 주동인물중 하나였던 그는 그후 출세가도를 달렸다.63년 5월 제4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김형욱은 박정희를 위해 별명처럼 ‘곰’같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한편 자기자신을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치부를 했다.이같은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유는 자명했다.수십년간 충성해온 수하들을 하루 아침에 내치고 잡아넣는 박정희의 냉혹성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김형욱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71년 공화당 전국구 의원 신분으로 남미를 방문하고 뉴욕에 들렀을 때였다.그때 나는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유엔 취재차 뉴욕에 있다가 당시 컬럼비아대학 연수생으로 와 있던 동아일보 기자 이웅희(李雄熙·현 무소속 국회의원)와 함께 김형욱과 뉴욕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후 나는 그와 수 차례 만난 적이 있다.73년 11월 내가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후 그는 내게 “문 여사,용감한 결심을존경합니다.우리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입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그는 내가 망명을 선언한 후 부쩍 자주 전화를 걸어왔는데 “김대중 납치범 명단을 내가 다 가지고 있는데 때가 되면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77년 1월 김형욱은박 정권의 미국 의회 부정로비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프레이저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한 적이 있다. 그는 뉴욕 케네디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낯뜨거운 사건이 발생했다.김형욱이 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세관원에게 걸린 것이다.내가 그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유태인 친구의 제보 때문이었다. 세관원은 오리걸음(덕 워킹)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양남자가 뭔가 숨긴 것이틀림없다고 확신,김형욱을 멈춰 세웠다.꼭 아편쟁이같이 생겨 마약밀수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헤이,유,스탑”(여보,좀 멈춰요). “미?”(나요?). “예스,유”(예,당신말이오). 더욱 한심한 일은 세관원이 그를 불러 세워 몸수색을 하려 하자 김형욱은 한국식으로 세관원을 협박했다고 한다.“내 몸을 수색해서 아무것도 안나오면너 그냥 두지 않겠다”.“오케이”.세관원은 보안관에게 명령했다. “데려가 발가벗겨”. 보안관이 김형욱을 방으로 데려가 발가벗겼는데 그는 무려 7만5,000달러의돈뭉치를 다리에 붕대로 둘둘 감고 그 위에 여자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79년 10월 7일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후 나는 교토통신의 요코가와 워싱턴특파원과 함께 처음으로 뉴저지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한 일이있다.그의 부인 신영순(申英順·在美)에게 주소를 물어 찾아간 그의 집은 웬만한 미국 부호의 집 못지않게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실종 직전 김형욱은 이른바 ‘회고록’ 출판문제로 박 정권과 막판 거래를하고 있었다.박 정권은 김형욱에게 “회고록을 출간하지 않는 대가로 5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하고 이미 100만∼150만 달러를 먼저 지불했다고 한다.김형욱은 그 나머지 돈을 받으러 파리에 갔다가 결국 실종되고 만 것이다. 김형욱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우선 중앙정보부가 파리에 온 김형욱을 납치,살해한 후 센강에 버렸다는 설도 있었고,또 산 채로 짐짝처럼 포장해 KAL기에 실어 서울로 데려갔다는 설도 있다. 그 무렵 우리 사무실에 프랑스어로 된 익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는데 그 내용은 김형욱이 KAL기 짐칸에실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의 한 항공사 화물부에 문의를 해보았다.“사람을 짐짝처럼 싸서운송하는 것이 가능합니까?”.“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곤란하고 온도·습도가 낮아 사람이 짐칸에서 파리∼서울간 15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래저래 취재는 벽에 부딪쳤고 나는 김형욱의 사인규명을 거의 포기했다. 그런데 80년대초 나는 뜻밖의 루트를 통해 김형욱의 사인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정보에 접하게 되었다.발설자는 정일권(丁一權) 전 국무총리였다.그는유럽을 여행하던 중 파리에서 자신이 신뢰하는 모 인사(본인의 요청으로 신분을 밝힐 수 없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잔인하다 잔인하다 했지만 박정희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잘못했다고비는 김형욱이를 자동차에 실어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어 버렸다네”그의 말에 따르면, 산 채로 서울로 납치해간 김형욱을 차지철이 경복궁에서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대령했는데 김형욱이 박정희에게 “잘못했습니다.죽여주십시오”하고 빌었다는것이다. 정일권의 말대로라면 김형욱은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가 된다.정일권의 입장에서 보면 김형욱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던 ‘이북파 최측근’이었으니 분개할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이같은 사실을 정일권 본인을 통해 거듭 확인한 바 있다.지난 8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얏트호텔에서 정일권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김형욱이가 서울로 잡혀와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으시다는데 사실인가요?”“예,내가 그런 애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그것은 사실입니다”. 정일권은 말년에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94년 타계했는데 내가 그를 본 것은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文明子씨 일문일답 ■회고록을 출판하게 된 동기는. 역사를 위한 기록이다.한국사회는 가치의 혼돈시대를 맞고 있다.이대로 한세기만 지나면 한국사회에는 박정희를 미화하는 기록만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의 권부를 가까이서 취재하면서 나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사실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우리 후손들의 역사인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바람으로 그동안 보고 들은 박정희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회고록의 제목은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인데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부분이 70% 정도를 차지하는 있는 것 같은데…. 61년 5·16쿠데타 때부터 시작해 82년 김대중씨가 사형수에서 사면을 받고워싱턴에 왔을 때까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박정희씨는 이미 관 뚜껑에 못을박은 사람이고 김대중씨는 아직 활동하는 현역 정치인이 아닌가. 김대중씨에대한 기록은 또다른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문 주필의 박정희 전대통령 비판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관적이라는 지적이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박정희에 대해서 나는 한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그러나독자들은 나의 책에서 사실만을 보면 된다.1961년 4월이후 현재까지 워싱턴에서 벌어진 한국정치 관련사건들을 사실에 입각해 기록했다.사실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문 주필의 회고록에는 특정인들의 실명이 거침없이 거론되고 있는데…내가 실명을 거론한인물들은 한국정치사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다.그들은 공직에 취임함으로써 이미 역사의 심판대 위에 스스로 올라선것이다. 나는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언론의 익명문화다.육하원칙의 가장 첫번째 요소가 ‘누가’이지 않은가.한국의 언론인들은 혈연·지연·학연의 인간관계 속에 깊이 편입돼 있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한다. 퇴직후에도 그 인간관계 속에서 살길을 찾아나가야 하므로 ‘익명의 문화’는 극복되지 않는다.내 경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사회에서 떨어져 4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다. ■그동안 ‘반한인사’ 또는 ‘친북인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이에대한 본인의 견해는? 유신정권때인 70년대까지는 ‘반한인사’로 불렸는데 80년대말 남북 고위급회담이 본격화된 후 북한취재에 나서면서 ‘친북인사’로 호칭이 바뀌었다. ‘반한인사’,‘친북인사’란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전혀 타당하지않다.굳이 말하자면 ‘반박정희 인사’나 ‘반유신인사’라고해야 옳다.‘친북’도 그렇다.남북은 같은 민족이다.서로가 ‘친북’도 하고 ‘친남’도해야 한다.‘친미’나 ‘친일’,‘친중’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94년 김일성 주석 사망후 ‘100일설’부터 ‘3년설’까지 북한붕괴론이 대단했다.내가북한에 가보고 와서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했더니‘친북인사’라고 했다. 한반도 남북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는 시야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스스로 외눈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두 눈으로 보는 사람이 편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운현기자] -文明子씨는 인가 문명자(文明子·70)씨는 38년째 미국 권부의 상징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 재미교포 언론인이다.73년 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납치사건’을 보도한 후 중앙정보부의 체포위협을 피해 미국에 ‘정치망명’을한 전력으로 그동안 국내에선 그의 활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80년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미국 여기자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덩샤오핑을 인터뷰했으며 90년 남북고위급회담 이후방북취재를 시작한이후 92,94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했다. 30년 대구 출생인 문씨는 숙명여고 졸업후 연세대 영문학과 1학년 재학중 6·25를 맞아 피란지 부산에서 일본으로 유학,메이지대 경제학부·와세다대국제법 대학원을 졸업했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특파원을 시작으로 동아일보,경향신문,MBC 워싱턴특파원을 역임한 그는 73년 미국에 정치망명한 후 미국인 동료기자들과 함께 US아시안뉴스 서비스(통신사)를 설립,국제정치담당 주필로 일하고 있다.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남편 최동현(崔潼鉉)씨와 사이에 1남 1녀.그의 미국이름 주리 문(Julie Moon)은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가 지어준 것이다. [정운현기자]
  • 줄리아니·힐러리 선거 대리전 양상

    [뉴욕 외신종합] 성모 마리아를 그린 한 점의 그림이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직을 놓고 대결을 벌이는 힐러리여사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간의 정치쟁점으로 발전하고 있다. 문제의 그림은 오는 10월 2일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막뒤는 전시회‘센세이션(Sensation)’전의 출품작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이 그림은영국 화가 크리스 오필리의 작품으로 마리아를 아프리카 흑인으로 묘사했고또한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낸 여자 엉덩이 사진들을 모아 코키리의 똥과 함께 뒤범벅해 그렸다. 전시회 소식이 나가자 가톨릭의 존 오코너 추기경이 “신성모독”이라고 발끈하고 나선데 이어 가톨릭 신자인 줄리아니 시장은 27일 “시의 보조금을받아 운영하는 미술관이 이런 전시회를 하게 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그는이 그림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뉴욕시에서 지원하는 700만 달러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다.이 문제는 그러나 이른바 창작품에 대한 관(官)의 간섭,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침해등의 논쟁을 일으키면서 시당국과 종교계,예술계가 설전에 들어갔다.이런 상황에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고있는힐러리여사가 28일 뉴욕을 방문,“시장의 마음에 안든다고 전시를 못하게 할수는 없다”고 미술관 손을 들어주었다. 브루클린미술관은 29일 줄리아니 시장을 상대로 표현의 자유 침해 혐의로정식소송을 제기했다.
  • 金대통령 문화·관광행사 잦은 나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0일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99 청주 국제공예 비엔날레’에 참석해 우리 전통공예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강조했다.한국도자기 공장과 문의초등학교,청주 흥덕구청도 찾아 지역인사들에게 국정방향도 설명하고 민의도 수렴했다. 이날 청주 나들이는 지난 28일 참석했던 속초 국제관광엑스포와 마찬가지로 김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21세기 문화·관광사업의 일환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다음주에는 유교문화권 개발에 나서고 있는 안동을 방문한다.문화·관광사업 육성을 향한 김대통령의 행보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통령은 청주 국제공예제에서 “문화는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용적인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문화산업 육성의지를 역설했다.또 “앞으로 문화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번 행사가 전통공예 부흥의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 김대통령은 귀로에 한국도자기 공장에 들렀다.우수했던 우리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높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메시지인 셈이다.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손수 도자기를 빚고 방명록에 ‘세계일류(世界一流)’라는 휘호를 남긴 데서도 김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문의초등학교 방문도 이색적이다.이 학교 6학년인 김소라양이 지난 4월 김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됐다.김양은 학교 뒷산으로 현장학습을 갔다가 대청댐과 청남대를 보고 김대통령에게 꼭 학교를 찾아달라는 편지를 보냈다.소라양은 편지에서 학교생활을 소개한뒤 ‘언제 틈나시면 머리도 식히실겸 우리 학교에 놀러오세요.우리를 보면 힘이 나실거예요.건강 조심하시고,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썼다고 청와대측은 밝혔다.김대통령은 이날 학교를 찾아 소라양에게 “이제 꿈이 이뤄졌느냐”고 물었고,소라양은 “대통령 할아버지가 정말 찾아줘 기쁘다”고 반갑게 인사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인도 집권연정 총선서 압승

    [뉴델리 AFP AP 연합] 지난 5일부터 4차례 실시된 인도 총선에서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의 집권연정이 압승을 거둔 것으로 29일 출구조사에서 예측됐다. 스타 TV가 200개 선거구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 12만명을 대상으로 출구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바지파이 총리의 국민민주동맹이 전체의석 543석 가운데 지금까지 투표를 끝낸 418개 의석 중 249석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25석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5차투표는 내달 3일 실시된다. 반면 소니아 간디 여사가 이끄는 제1야당 국민회의당은 134석에 그칠 것으로조사됐다. 공산당을 포함한 나머지 군소정당은 3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집권연정은 우타르 프라데시주(州) 등 북부 일부지역에서만 고전했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압도적 우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 귀경길 큰 혼잡 없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6일 전국 들녘에서는 태풍으로 쓰려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침수된 논에서 물을 빼내 풍년의 꿈을 되살리려는 ‘농심’이 넘쳐났다. 군 장병에 경찰관과 공무원들이 나섰고 귀성객들은 귀경을 뒤로 미룬 채 들녘으로 나갔다.전날 비바람이 멎으며 시작된 벼 일으키기 작업은 이날 더욱본격화돼 전국에서 수십만의 인력이 동원됐다. 연휴를 기습한 태풍 ‘바트’는 폭풍우를 몰고와 10평 가운데 3평에서 벼를 침수시키거나 쓰러뜨렸으며,낙동강 지류의 둑이 무너지면서 25채가 모여사는 마을을 순식간에 쓸어가 버리기도 했다. 8,000여㏊의 논에서 피해를 입은 경북에서는 공무원 군인 등 4만8,000여명이 나서 농민들의 벼 일으키기 작업을 도왔다.특히 포항에서는 해병 1사단장병 2,500여명이 동원되기도 했다. 전남경찰청은 이날 6개 중대 700여명을 동원해 나주시 왕곡면과 담양군 대전면 등지에서 농가 일손을 도왔다.경기도에서는 평택시청의 1,400명을 비롯해 공무원과 군장병 1만2,000여명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들녘으로 나가 애타는 농민들을 도왔다. 또 낙동강 지류인 신천의 제방 70여m가 무너져 한 마을이 순식간에 수몰된경북 성주군 용암면 문명리에서는 물이 빠지면서 주민 160여명과 13대의 각종 중장비가 투입돼 응급 복구작업이 펼쳐졌다. 한때 물이 불어나 고립됐던 경남 합천군 청덕면 성태리 묘리마을 등 3개 시·군 7개 마을 주민들도 집안 정리를 서두르며 피해복구에 안간힘이었다.또24일 경북 봉화에서 호우로 선로가 유실되면서 기관차 1량을 전복시켜 2명을 숨지게 했던 영동선은 운행 중단 이틀 만인 이날 정상화됐다. 한편 중앙대책본부는 이번 태풍에 따른 집중호우로 3명이 사망하고 1명이실종되는 등 4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농지 및 주택 침수로 48억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밝혔다. 대구 황경근·광주 남기창기자 kkhwang@
  • 金대통령 民生현장 방문-실향민·장애아동등 위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22일 오후 추석을 맞아 실향 중산층 가정을 방문하고 장애아동 시설과 일선 파출서를 둘러봤다.불우 이웃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추석 경기와 민생치안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서 였다. 먼저 김대통령 내외는 여의도 라이프콤비아파트에 사는 실향·중산층 가정인 오응서씨의 집을 찾았다.오씨 가족은 물론 인근 주민들과도 환담을 나눴다.화제는 물론 추석경기와 우리의 경제개혁 및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김대통령은 주민들에게 체감물가와 경기상황을 소상히 묻고는 “국민과 정부가 힘을 합쳐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일류국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23일이 2000년 D-100일인 점을 상기시키며 21세기 지식기반국가 시대에 맞는 각 가정의 노력과 준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차흥봉(車興奉)보건복지부장관과 박창석원장의 안내로 장애아동 보호시설인 영락애니아의 집을 방문,원생들을 위로하고 책임자들을 격려했다.이곳에서도 역시 어려움과 애로사항을 듣고 사회복지 차원의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김대통령 내외는 다시 남대문경찰서 남묘파출서에 들러 추석 민생치안 상황을 점검했다.김대통령은 파출소장 김정주경위로부터 관내상황을 보고받고 예방차원의 치안을 강조했다.특히 주민들이 안심하고 귀향할 수 있도록 강·절도사범의 근절에 만전을 기하도록 당부했다. 한편 김대통령은 지방 휴양시설에서 추석연휴를 보낼 예정이다.23일 내려갈 계획이나 귀경일자는 아직 잡지않았다.독서를 하면서 국정 구상을 가다듬을 계획이라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하남환경박람회 개막식“환경보전 지혜 모아야”

    하남국제환경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매일신보사가 후원한 세계최초의 종합 환경박람회인 ‘99하남 국제환경박람회가 21일 10시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한강 올림픽 조정경기장에서 개막됐다. 개막식에는 대통령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김명자(金明子) 환경부장관,리우환경정상회담 의장을 지낸 모리스 스트롱 국제연합(UN) 부사무총장,세계적인 대체에너지개발 권위자 알렉산더 고를로프 박사 등이 참석했다.‘환경!그 생명시대의 개막’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유엔개발계획(UNDP)의협조 아래 다음달 20일까지 한달 동안 세계환경인의 한마당 축제로 진행된다. 김용래(金庸來) 조직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21세기를 살아나갈 우리가 실천해야할 생활철학”이라며 “19세기 말 인류 최초로 열린 영국산업박람회가 산업화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행사였다면 하남 국제환경박람회는 21세기 환경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알리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남·문호영기자 alibaba@
  • 전직대통령 초청 청와대 오찬 1시간50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0일 낮 전직 대통령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뉴질랜드·호주 국빈방문 성과를 설명했다.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고,전직 대통령들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배석한 김중권(金重權) 비서실장의 말을 빌어 전했다.박대변인은 또 “국내 정치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없었고 주로 자유롭게 환담을 나눴다”고 소개했다. 오찬에는 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과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김종필(金鍾泌)총리가 참석했다.최 전대통령은 부인 홍기(洪基)여사가몸이 불편해 혼자였고,모두 부부동반이었다.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오찬은 낮 12시부터 1시50분까지 계속됐다.오찬 자리는 김대통령을 중심으로 오른쪽 방향으로 최·노 전대통령,김총리 부인 박영옥(朴榮玉)여사,노 전대통령 부인 김옥숙(金玉淑)여사,이희호(李姬鎬)여사,전 전대통령 부인 이순자(李順子)여사,김실장,김총리,전 전대통령 등으로 배치됐다.김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에게 진구절,잣죽,삼색 은대구찜,소갈비 구이와송이,조기구이,밥,국 순으로 이어지는 한식을 대접했다. 오찬에 앞선 환담에서 최 전대통령은 귀국 후에도 계속된 김대통령의 일정에 감탄을 표시했고,노 전대통령도 “해외에 나가면 굉장히 힘든데,참 대단하다”고 건강에 부러움을 표시했다.이에 전 전대통령은 “안 나가본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나가면 신나는 줄 아는데…”라며 해외순방의 어려움을 회고했다. 전 전대통령은 버마 아웅산 사태 때문에 호주·뉴질랜드를 방문하지 못한사실을 털어놨으며,김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은 잠시 여야 출입구가 다른 호주 의회와 기후 등을 놓고 얘기했다.김대통령이 “우리도 국회에 여야 출입구를 달리해 볼까요”라고 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에 앞서 김총리는 오전 11시50분쯤 미리 도착,김실장에게 김 전대통령의참석 여부를 묻고 “연락을 했는데,반응이 없다”는 김실장의 대답을 듣고“아마 세 형님 보기가 무서워서 그런가 보다”고 김 전대통령의 불참을 은근히 비판했다.다음은 오찬 대화 요지. ■전 전대통령 김대통령의 외교적 성과가 대단한 것 같다.(축배 제의에 이어 김대통령이 베를린 북·미회담과 페리 보고서에 대해 간단히 설명)■노 전대통령 처음엔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국민의 우려가 있었으나 내용이 알려지면서 그런 우려가 없어진 것 같다.일련의 대화과정을 보면 당사자간원칙이 존중되고 있어 우리 외교사에서 평가할 만한 일이다. ■전 전대통령 북·미 베를린 합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단을 의미하는것인가. ■김대통령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그런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이 중요하다.이번 합의에는 중국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중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일본내 우익세력에 명분을 줄까봐 우려하고 있다. ■전 전대통령 북한 미사일 발사는 일본에 재무장의 명분을 주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 이번 APEC에서 여러가지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취한 것은 외교사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동티모르 파병과 관련해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걱정이 실린 광고가 신문에 게재됐다. ■김대통령 이번 파병은 유엔과 인도네시아 하비비 대통령의 공식적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다.국민들이 더 잘 알도록 이해시키는 데 노력하겠다. ■최 전대통령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외교관계에서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없었다.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성과가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고르비 부인 라이사여사 별세

    모스크바 AP 특약 냉전종식의 주역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대통령의부인 라이사여사가 20일 오전 독일 뮌스터대 병원에서 지병인 백혈병이 악화돼 사망했다.67세. 지난 7월부터 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라이사여사는 최근 병세가악화돼 수일간 생명이 위독한 상태를 보이다 이날 새벽 숨졌다고 뮌스터대병원 대변인이 발표했다. 라이사여사는 80년대 중반 개혁·개방정책을 펴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서방 나들이를 하면서 지적인 미모와 우아함으로 서방 언론들로부터 과거의 소련 퍼스트 레이디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여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 타계한 라이사여사

    우아한 외모와 매너,뛰어난 패션감각에 활달함까지.생전 라이사 고르바초프 여사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다. 매사 적극적으로 남편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내조했던 라이사 여사는 이전까지의 소련 퍼스트 레이디와는 전혀 달랐다. 남편을 따라 외유에 나선 최초의 소련 퍼스트 레이디였다. 모스크바대 철학교수 출신인 그녀는 비록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사치스럽고 튀는 여성’으로 부정적 여론의 도마에 자주 올랐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지적이고 우아한 여성으로 주의를 끌었다. 이때문에 그녀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함께서방세계에 크렘린의 어두운 이미지를 바꿔놓은 주인공으로 평가됐다. 남편인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의 금실은 전세계가 알아줄 정도.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평소 라이사 여사를 ‘나의 라야’로 부르며 평생의 동반자이자정치적,이념적 동지로 아끼며 신뢰했다. 라이사 여사가 최근 독일에서 투병생활을 할때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의 병상을 지켜,두 사람의 애정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여사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난 7월부터 독일 뮌스터대학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고, 통일의 은인이기도 한 병상의 그에게 독일 국민들은 매일 꽃다발과 위문편지를 보내며 여사의 쾌유를 빌었다. 본명이 라이사 막시모브나 티타렌코인 여사는 32년 남부 시베리아에서 철도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모스크바 대학 재학시절 댄스 파티에서 같은 대학법대생이었던 고르바초프를 만나 53년 결혼했다.지난 91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실각한 뒤부터 건강이 악화됐으나 부군의 해외강연길에 꼬박꼬박 동행하며 내조를 다했다. 이경옥기자 ok@
  • 정상회담등 이모저모

    [캔버라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호주 방문 3일째인 17일에도 한·호 정상회담을 비롯,전쟁기념관 방문,야당당수 접견,한국전 참전기념비 기공식 참석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18일 새벽 캔버라를 출발,시드니를 거쳐 이날 오후 서울 공항을통해 귀국한다.김대통령은 공항에서 대국민 귀국보고를 할 예정이다. ■한국전 참전기념비 기공식 김대통령은 이날 오전 6·25전쟁을 비롯해 호주의 역대 참전기록과 유물 등을 보관한 전쟁기념관을 방문,전사자들을 기리는 추념홀 무명용사 묘비에 헌화했다. 김대통령은 호주가 참전한 전쟁별로 전사자 이름이 벽에 동판으로 기록된회랑 중앙의 추념홀에서 진혼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헌화·묵념한 후 회랑끝에 있는 한국전 전몰장병 명단 앞에 잠시 멈춰 6·25전쟁 참전자인 제임스 기념관운영위원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호주군이 싸웠던 가평전투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오후 존 하워드 호주총리와 20분간의 단독 및 30분간의 확대 정상회담을 가졌다. 단독회담에서는동티모르 문제가 집중 논의됐고,확대회담에서는 양국간 실질협력 관계 증진방안에 관해 매우 ‘실무적이고 솔직한’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김대통령은 확대회담에서 “호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가장 재정이 건전하고 잘 사는 나라여서 장사 좀 하러 왔다”고 말해 회담장에 웃음이 터졌다. ■호주총리 주최 오찬 정상회담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함께 의사당 그레이트 홀에서 열린 하워드 총리 내외 주최 오찬에 참석했다.김대통령은 호주의 6·25 참전,국제통화기금(IMF) 위기극복 지원 등을 예로 들어 “호주는 우리 한국이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을 때마다 든든한동반자가 됐다”고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하워드 총리는 오찬사에서 “김대통령이 국회의 승인을 받아 1개 대대 병력을 동티모르에 파병하겠다고 말했다”고 하자 호주측 인사들은 큰 박수를 보내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호주의 관심을 나타냈다.
  • [義烈 독립투쟁] (6)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현 노신공원)에서는 일본군이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이날 한국의 의혈청년 윤봉길(尹奉吉)이 그 단상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침공의 우두머리인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원흉들을 쓰러뜨렸다. 당시 현장에서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사열대와 함께 엎어지고 쓰러지는 원흉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 제국주의가 함께무너지는 장쾌함을 보였다.윤의사가 세계로부터 정의의 삶을 대변한 ‘의사'로 불리고 있는 것는 바로 이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상하이를 주목했는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언론일수록 제국주의를 맹타한 윤의사를 높이치켜세웠고 또 한국의 독립운동을 들먹였다.국내외 동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특히 ‘상하이의거’를 주도한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그리고 한인애국단 단장 백범 김구(金九)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러한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왜냐하면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파리강화회의의 안정기조라고 하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에 온 세계가 눌려 독립운동도 외면당하고 있었으므로 그 신질서를 깨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고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때마침 뉴욕 월가(街)의 증권파동을 계기로 경제공황이 몰아쳐 왔고,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하더니 다시 상하이를 침공하여 상하이의 한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파리강화체제를 무너뜨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을 만들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세웠다.이봉창(李奉昌)의사로 하여금 일제의 심장인 도쿄 궁성을,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의사로 하여금 만주침략의 아성인 관동군사령부를 공격토록 한데 이어 윤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침공의 선봉을 꺾어놓는다는 소위 ‘삼면작전’을 세웠다.이같은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백범이었는데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성공으로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윤의사는 원래 농민운동을 통해 고향의 부흥을 꾀하던 진보적 계몽주의자였다.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야학당과 청년회·체육회·부흥원을 조직하였으며 ‘농민독본’도 저술했다.그러나 경제공황까지 덮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다.윤의사는 마침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그것이 1930년 윤의사가 23세 때의 일이다. 처음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윤의사는 이듬해5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때마침 상하이에서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군과중국군이 싸우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어머님께 보낸 편지에서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꽝꽝하는,민족과민족이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윤의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웠다. 청년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자신의 생명을불태워 정의를 현양하는 꿈을 실현코자 했다. 윤의사는 ‘성인군자는 살아서영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는‘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윤의사는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일본 국기를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났다.도시락과 물통이 바로 폭탄이었다.이 폭탄은 당시 중국군 장교로 상하이 병공창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명 王雄·전광복회장)이 만든 것이었다. 의거 당일 아침 윤의사는 백범과 살아서는 ‘마지막 식사’를 같이했다.그리고 윤의사는 자신의 시계와 백범의 시계를 바꾸어 찼다.자신의 시계는 6원짜리였고 백범의 것은 2원짜리였다.“선생님,나는 한시간밖에는 시계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며.죽음을 앞에 둔 청년이 보여준 태연한 여유를 보면서 백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렇게 떠나간 윤의사에게 시계는 아니나 다를까한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11시반쯤 홍구공원의 폭음과 함께 그 시계도 멈추고 말았다. 윤의사의 의거로 침체됐던 독립운동이 생기를 찾고 활기를 띠게됐다.또 국내외 동포가 다시 임시정부로 마음을 모으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한국독립을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중일전쟁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중국대륙 곳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나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8·15광복때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사의 의거로 국내외 동포들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으고 중국정부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가네자와(金澤)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일제는 윤의사의 시신을 길거리에 묻어 행인들이 밟고 다니게 했는데 이같은 야만성은 일본제국주의밖에는 없다.해방후 윤의사의 유해는 백범의 지시로 이봉창·백정기(白貞基)의사등과 함께 봉환,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尹의사의 사회개혁 활동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는 초창기 야학·문맹퇴치운동 등에 헌신한 개혁주의 성향의 농촌운동가였다.윤의사가 20세 되던 해인 1927년에 출간한 ‘농민독본(農民讀本)’은 윤의사의 계몽사상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은 유실되고 현재 제2·3권만 전해오고 있다. 제2권은 ‘계몽편’으로 편지 쓰는 법,인사법 등 생활교양과 조선지도,백두산 등에 대한 소개 등 일반상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8과까지만 보존돼있다.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제3권은 농촌개혁 방향과 농민의 당면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앞부분에는 ‘소리의 갈래’등 한글맞춤법도 소개돼 있다. 총 25과로 구성된 제3권은 현재 7과까지만 보존돼 있다. 제2권이 기초학습자료라면 제3권은 일종의 사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윤의사로부터 야학지도를 받은 예산군 덕산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농민독본’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윤의사 평전에서 “매헌은 한낱 시골의 야학당교사가 아니라 이미 이 무렵부터 사회개혁과 이상국가 건설을 꿈꾼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고 평했다. 정운현기자 jwh59@kdaily·com *윤봉길의사 직계후손들 근황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윤의사 의거 당시 장남 종(淙)씨는 세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둘째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하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67·서울 동작구 상도동 거주)씨.김씨는 딸 여섯에 끝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겨우 윤의사의 대를 이었다.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29)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현재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재직중인데 97년에 결혼,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정운현기자]
  • ‘박정희 논쟁’ 인터넷서 후끈

    박정희(朴正熙)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에 대한 네티즌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업에 정부가 국고 1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서 PC통신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지난달 경북 구미시가 개설한 박대통령 ‘사이버기념관’(presidentpark.or.kr)에는 박대통령에 대해 극존칭을 사용,논란을 부추겼다. 이 사이트에는 박대통령에 대해 ‘오천년 이래의 가난을 물리치시어…’,‘위대한 업적을 남기시고…’ 등의 표현을 쓰는가 하면,고(故) 육영수(陸英修)여사에 대해서는 ‘○○에서 태어나시고…혼례를 올리셨으며’,‘49세로 순국…안장되셨다’는 등 극진한 예우를 갖춘 표현으로 일부 네티즌의 심기를건드렸다. 이에 대해 구미시는 부랴부랴 글의 내용을 수정,네티즌의 불만을 잠재우려했으나 이후에도 박대통령의 공과를 둘러싼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박대통령이 영웅이 된다면 철도나 공장을 세웠던 일본도 우리의 영웅인가”라며 “그에 대한 진실도 밝히지 않고 기념관을 세우는 미친 짓은 그만하라”면서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많은 업적이 있었다고 해도 그는 명백한 독재자”라면서 “‘박대통령식 경제정책’이야말로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주범”이라고비판했다. 반면 박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대한 찬성의견도 만만치 않다.한 네티즌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가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훌륭한 대통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우리들에겐 그만한 지도자는 아직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박대통령이야 말로 정의를 알고 배고픈 이들을 안 사람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요즘 정치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면서 기념관 건립을 찬성하기도 한다. 양극단에서 벗어나 박대통령 기념관에 대해 냉정한 주문을 하는 네티즌도있었다. “박대통령 기념관은 그의 공적만을 찬양하는 곳이 아니라 독재가 아닌 자유가,경제 발전보다 민주의 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가는 곳이돼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최여경기자 kid@
  • 李총재·이홍구대사 워싱턴서‘어색한 만남’

    [워싱턴 오풍연특파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이홍구(李洪九)주미대사가 오랜만에 만났다. 미국을 방문중인 이 총재는 14일 오전(한국시간) 워싱턴에 도착한 뒤 숙소인 힐튼호텔로 찾아온 이 대사와 20분 가량 만났다.배석자 없이 이 총재의부인 한인옥(韓仁玉)여사 등 셋이서만 자리를 같이했다.국내문제보다는 건강과 미국 생활을 화제삼아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둘은 경기고 동창으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9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때는 함께 나섰다가 이 대사는 도중하차했다. 이 총재와 이 대사는 당초 이날 저녁 만찬이 계획되어 있었다.그러나 이 총재가 “공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일정을 조정하도록 지시,만찬이 출국 직전 취소됐다.대신 이 총재는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에 근무하는 큰아들 정연(正淵)씨 등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poongynn@
  • 「APEC·오세아니아 정상외교」이모저모

    [오클랜드 양승현특파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차 뉴질랜드를 방문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2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이번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한·미·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APEC 정상회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도 각국 정상부인들과 양털깎기 대회를 관람하는 등 공식활동에 들어갔다. -3국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간의 3국 정상회담은 이날 클린턴 대통령의 숙소인 스탬퍼드호텔에서 예정보다 15분 늦은 오전 9시부터 시작돼 50여분동안 진행됐다. 클린턴대통령이 북한 미사일과 동티모르 사태 등의 의제를 설명한 뒤 본회담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취재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는 바람에 회담에서논의할 내용을 모두발언 형식으로 15분 동안 밝힌 뒤 비공개회담에 들어갔다. 3국 정상은 삼각형으로 배치된 좌석에 앉아 회담을 가졌으며,각국의 헤드테이블에는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외교부장관과 외교안보수석 등 3명이 앉고,뒷줄에 다른 공식수행원이 자리했다. 회담장에는 오부치총리가 가장 먼저 도착,미국측이 마련한 대기실로 들어섰으며 이어 도착한 김대통령은 오부치총리와 반갑게 두손을 꼭 잡으며 각별한 우의를 표시하고 잠시 환담을 나눈 뒤 회담장으로 함께 입장했다. 회담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회담장에서 클린턴 대통령 및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10여분 동안 개인적인 담소를 나눴다. 클린턴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오늘 여러 말씀을 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경제회복을 축하하고 더 안정적인 회복을 이루길 기대한다”고 인사했다. 이에 김대통령은 “힐러리여사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은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었으며 클린턴대통령은 “잘되고 있다”고 화답했다. 김대통령은 또 “따님이 같이 오셨던데 잘 지내느냐”고 물었고,클린턴대통령은 “장모님이 같이 오셔서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장관은 “김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집에 놓고 존경스러운 마음을갖고 있다”며 “오늘 회담에서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공식환영식 김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이 끝난뒤 칼튼호텔에서 열린APEC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참석한 다른 정상들과 환영식장으로 들어가 원주민인 마오리족 원로로부터 전통환영 풍습을 듣고 마오리족 할머니와 코를 맞대고 인사하는 전통풍습을 직접 실연했다. 이희호 여사 이날 오전 각국 정상부인들과 함께 콘월공원내 소렌토정원에서 양치기 및 양털깎기대회를 관람한 뒤 직접 어린 양들에게 젖을 먹이기도했다. 이여사는 이어 오라케이마래 공회당으로 이동,오클랜드 지역 초기 정착모습을 보고 20여분동안 설명을 들었다.이여사는 이 곳에서 마오리식 전통공연을 보고 원주민 문화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현지보도 11일자 뉴질랜드 헤럴드지(紙)는 김대통령과의 서면 회견기사를‘구습 일소에 나선 김대통령’이란 제목으로 크게 다뤘으며 ‘자유시장 선도자 비전 확고’란 별도 박스기사도 게재해 뉴질랜드 현지의 김대통령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김대통령은 회견에서 재벌개혁과 관련,“재벌에게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정부와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재벌들은 정부의재벌 개혁이 진지하고 일관성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오래지 않아 재벌들은 경쟁력있고 건전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yangbak@
  • 오늘 韓·中 정상회담

    [오클랜드 양승현특파원]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뉴질랜드 호주 국빈방문에 나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1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미사일문제 등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논의한다. 강주석의 숙소인 오클랜드 쉐라톤호텔에서 20여분 동안 진행될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측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한반도의 안정이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위한 당국자간 대화 재개에도 중국측의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김대통령은 이어 숙소인 칼튼호텔에서 프레이 칠레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경제협력 증진방안을 협의한다.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헤리티지호텔에서 APEC회원국 저명 기업인 250여명이 참석한 최고경영자회의(CEO)에 참석,‘새로운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지향하며:글로벌시대를 위한 제안’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김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10일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yangba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