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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셈 2000 특집/ 퍼스트 레이디 일정은

    26명의 정상들이 복잡하고 미묘한 국제현안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부인들은 무엇을 할까? ASEM은 다른 국제회의에 비해 실무성격이 강해 26명의 정상 가운데절반 미만만 부인이 동행할 것으로 보인다. 퍼스트 레이디가 오는 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중국 정도.이들은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에 공식·비공식 일정 등 ‘안방외교’를 하느라 스케줄이 빡빡하다. 퍼스트 레이디들의 서울 첫 공식일정은 20일 오전 9시50분에 열리는 제3차 ASEM 서울회의 개회식.개회식 후 회원국 정상인 남편들이 1차 회의에 들어가면 부인들은 오전 10시40분부터 창덕궁과 비원을 방문,1시간 동안 비원 내 부용지 등을 둘러보고 전통혼례식을 관람하게된다. 점심 시간에는 본격적인 ‘안방외교’가 시작된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서울을 찾은 퍼스트레이디들을 청와대로초대,오찬을 한다.이후 청와대 만찬 전까지 공식일정은 없다. 정상 부인들은 5시간 정도의 자유시간 동안 한국 주재대사관에서준비한 행사에 참석하거나 쇼핑 등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저녁 7시부터는 다시 부부동반으로 김 대통령이 주최하는 공식 만찬에 참석,식사와 공연을 즐기게 된다. 21일 오전에는 폐회식에 참석하기 전 1시간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대서양홀에서 열리는 ‘테크노 가든’ 전시회와 ‘서울 컬렉션 아셈 갈라쇼’를 관람한다.우리나라 유명 패션 디자이너 12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서울 컬렉션 아셈 갈라쇼’에서 정상 부인들은우리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접하게 된다.이어 오전 11시15분 폐회식 참석으로 공식일정을 마친다. 공식일정에 참석치 않는 이도 있다.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부인은 20일 오전 서울에 도착,서초구에 사는 주한 프랑스인들을 만날 계획이다. 한편 지난 8월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핀란드의 할로넨 대통령은 혼자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원상기자 wshong@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朴晙瑩 청와대대변인 문답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노벨평화상 발표 40여분만인 13일저녁 6시43분쯤 기자들에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수상 소감을 전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평화상 수상이 향후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국정운영과 평화상 수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대통령께서는 그동안우리 경제가 어려웠을 때 만난을 무릅쓰고 극복을 위해 노력하셨고이 땅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더 확산되도록 노력하셨다.그리고 지금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를 건전하게,안전하게 정착시켜야 할 문제가남아 있다.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신 것은 국가적으로,개인적으로영광이지만 국정운영과는 관계가 없고 묵묵히,담담하게 국정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소감을 밝히거나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 있는가. 적절한 시기에 말씀하실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벨상 발표 순간 대통령의 표정은 어떠했나. 담담한 표정이셨다.대통령께서는 TV를 통해 수상결과를 아시게 됐다.대통령께서는 오늘 일과를 끝내시고 바로 관저에 도착하셔서 이희호(李姬鎬) 여사님과 함께 TV를 시청하셨다. ◆노벨상 위원회로부터 사전에 통보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 ◆김대통령은 노벨상 발표후 누구와 무슨 말을 나눴나. 이여사님과 간단한 말씀을 나누시고 바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으셨다.그리고 이한동(李漢東)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들,경호실장,국정에 관여하신 분 중 축하하는 인사들이 관저에 가 축하인사를 드렸다. ◆상금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가. 아직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나중에 밝히겠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한반도를 평화 중심지로](1)수상 배경과 의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제79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그것은 단순히 개인적,혹은 국민적 ‘영광’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걸쳐 ‘변화’를 가져올 단초이다.수상 이유로 조명해 본 김 대통령의 사상과 국정철학,비전 등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99년 7월 ‘미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을 수상했다.이에 앞서 98년에는 유엔 인권협회가 수여하는 인권상을 받았다.모두 평화의 기초가 되는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국제사회에서 김 대통령은 실제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인권 신장 올 노벨평화상은 김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의 완결판이다.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위에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평화 기운을 움트게 한 공로다.냉전체제에 의해 유린된 인권과좌절을 거듭한 민주주의를 소중히 가꾸고,크게 꽃을 피울 토양을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면서 마련한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도 수상 이유에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실제 김 대통령은여러차례의 사면·복권을 통해 사형수를 감형하고이른바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관련 수감자도 석방했다. 지난 9월초에는 남파간첩 등 사상범인 비전향 장기수 72명을 그들의 희망대로북송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실천 김 대통령은 취임한 뒤에도 국내는 물론 아시아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끝없이 헌신해 왔다. 김 대통령은 임기중 달성할 5대 국정지표 가운데 첫 목표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꼽았다.국내의 비판 속에서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국정을 운영하려는 노력을 계속했고,또 자신을 탄압했던 군사정권 지도자들을 용서함으로써 ‘역사와의 화해’를 시도했다.또 기회 있을때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연금중인 미얀마 아웅산 수지여사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고,한·일 정상회담 때도 미얀마 정부가 연금중인 수지 여사와 대화에 나서도록 한·일 두나라가 공동으로 촉구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김 대통령이 재야인사였던 시절,리콴유 전싱가포르 총리 사이에 벌어진 ‘아시아의 민주주의 가치’ 논쟁은 김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민주주의는 지역·인종·피부색과 관계없는 보편적 가치로,아시아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논지를 폈었다. ◆대북 햇볕정책 “이제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을 가질수 있게 됐다”는 게 노벨상위원회가 햇볕정책에 대해 내린 최종 평가다.남북정상회담이 그 기폭제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있다.그러나 햇볕정책은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취임 이후 동해 잠수정 침투사건-서해교전-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 등으로 숱한 좌초위기를 맞았다.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으로 여론이 서서히 비판적 시각으로 들끓기 시작했고,남북차관급 회담이 결렬되는 등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늘상 얘기한 대로 ‘인내심을 갖고’ 햇볕정책을 추진,지난 6월 분단 55년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이는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물꼬를 트는 동력으로 작용,북한 조명록(趙明祿) 차수의 방미로 이어졌고,급기야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등 한반도 새로운 질서가 태동중인 것이다. 양승현기자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청와대 이모저모

    **”다시 없는 영광 국민과 함께”. 미국의 뉴스전문 채널인 CNN방송이 13일 오후 6시 ‘올해 노벨평화상은 한국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수상’이라는 긴급 뉴스를 생중계로 보도하자 청와대는 순식간에 “대한민국 만세”라는 환호와 함성,박수소리로 온통 떠나갈 듯 했다. 김 대통령도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을 통해 “다시 없는 영광으로이 영광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리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인권과민주주의,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아시아와 세계의 민주주의와 평화를위해서 계속 헌신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는 축하메시지를 올리기 위한 접속자가 폭주하는 바람에 과부하가 걸렸으며,전화 역시 국내와 외국인사들의 축화전화로 밤새 북새통을 이뤘다.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 등의 축하메시지도 속속 도착했다. ◆김대통령 표정 발표 순간,김 대통령은 관저에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의 손을 꼭 쥐었다. 이어 박 대변인을 방으로 불러 수상 소감을 구술하고 밖으로나와이한동 (李漢東) 국무총리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다.또 TV를 보고 축하인사를 하러 관저로 올라온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안주섭(安周燮) 경호실장,각 수석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TV시청 도중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축하전화를 받고 간단히 대화를 나눈 뒤로는 전화를 직접 받지 않았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통령은 최규학(崔圭鶴) 복지노동수석에게 “의정(醫政)간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라며 국정현안을 챙겼다.이어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에게는 “고유가 등 경제외적인 요인이 어느정도 회복됐는가”라고 물었다.또 “주가가 내려갔다가 오르면서 낙폭이 줄었는데,향후 전망이 어떻느냐”라고 질문을 하는 등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변인도 “우리는 경제를 건전하고 안전하게 정착시켜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며 “노벨평화상 수상은 국가적으로,또 개인적으로영광이지만 묵묵히 담담하게 국정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오후 5시쯤 본관 집무실에서 나와 관저에 머물면서 이여사와 단둘이서 독서를 하며 발표 직전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한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박 대변인은 “발표 순간까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여사와 가족 김 대통령을 38년간 내조하며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온 이 여사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박선숙(朴仙淑) 부대변인은 “수상소식을 듣고도 이 여사는 아무런말씀이 없으셨다”고 전했다. 장남 김홍일(金弘一) 의원,차남 김홍업(金弘業)씨와 며느리,손녀들도 찾아와 축하했다.김 대통령 내외는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청와대 분위기 비서실과 경호실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각방마다 CNN 방송을 시청하다 발표가 나오자 박수와 만세, 함성으로가득했으며,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특히 해외언론비서관실은 서울 주재 외신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속보 기사를 챙기느라 인터넷사이트를 검색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청와대 춘추관 앞마당에 대기하고 있던 각 방송사의 중계차량도 일제히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발표후 ‘청와대 동정’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한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이 100년만의 노벨평화상수상자이자,새 천년 첫 수상자가 된 게 기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李姬鎬여사 내조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이여사는 지난 38년 동안 영광과 절망의 순간순간을 김대통령과 함께 해온 평생 내조자이면서 동지였다. 1922년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여사는 이화여고와 서울대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램버스대,스카렛대 등 미국 유학까지 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귀국후 YWCA총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중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첫 부인과사별한 채 전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김대통령과 운명적인‘만남’을 했다.주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신념과 관용,멋에 이끌려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62년 이여사와 재혼한 이후 재선,3선 의원으로 성장한 김대통령은 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정적이 되면서 납치-망명-투옥-연금으로이어지는 형극의 길을 걷게된다.당연히 이여사의 삶도 암울한 시련의늪으로빠져든다.이여사는 유신의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김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82년까지의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 있다는 전언을접하고,이여사는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여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김대통령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자식들에게 엄친(嚴親)노릇도 해야 했고,감옥에 간 동지들의뒷바라지와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남편이 옥중에 있을 때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이여사는 김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이후에는 측근들이 감히진언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귀띔해 줬고,영부인이 된 뒤에도 신문을자세히 읽고 김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 뿐만 아니라 여성과 장애자 등 이 사회의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관심과 사랑을 바쳐왔다.이여사의 이런 노력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한국인 수상자’빈 액자’주인 찾았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기다리며 비워 둔 채 걸려있던 교보문고 내 액자가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종로1가 교보빌딩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는 13일 저녁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직후 종로출입구와 광화문출입구에 걸려있던 2개의 빈 액자에 김 대통령의 초상화를 채워 넣었다. 이날 내걸린 김대통령의 초상화는 가로 29.7㎝,세로 42㎝ 크기로 김대통령의 얼굴과 상반신이 찍힌 사진을 스캐너로 읽어 스케치효과를낸 것. 교보문고는 지난 92년 6월 재개장이후 매장내 두군데 입구에 아인슈타인등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스케치 초상화를 담은 액자 74개를전시해 왔는데, 이중 2개는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비워뒀음(Reserved for future Korean winners)’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빈 채로 전시해 왔다. 교보문고 홍보실 김정환 주임(32)은 “지난 8년간 한국인의 노벨상수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액자를 비워뒀었다”고 말하고 “김대통령의 수상 확정으로 드디어 빈자리의 주인이 생겨 기쁘다”며 환하게웃었다. 한편서울시내 각 대형서점들은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소식이알려지면서 특별코너를 설치하고 김 대통령 관련 서적 확보에 들어가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교보문고의 경우 두 개의 전시대를 마련해‘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아태평화재단),‘김대중 옥중서신’(한울),‘나의 삶 나의 길’(산하) 등 김 대통령의 대표적인 저서를 비롯해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내일을 위한 기도’(여성신문),‘나의 사랑 나의 조국’(명림당) 등 이희호 여사의 저서,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 등 관련서적 60여종을 내놓았다.종로서적도서둘러 특별 전시코너를 마련했으며 골드북닷컴,을지서적, 씨티문고등 시중 대형서점들도 미리 확보해놓은 서적들을 판매대에 올리는 등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김주혁기자 jhkm@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오가타 난민판무관 서울평화상 수상

    ‘난민의 대모’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이 13일 제5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 오가타 여사는 이날 신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철승(李哲承)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상장과 트로피,상금 20만달러의증서를 받았다. 오가타 여사는 이날 받은 상금 20만달러를 12월 UNHCR 창설 50주년에 맞춰 독립기관으로 출범할 난민교육신탁기관(Refugee Education Trust)에 기부할 뜻을 내비쳤다. 이날 시상식에 앞서 청와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한 오가타 여사는 14일 성균관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15일방콕으로 떠날 예정이다. 곽영완기자
  • [ASEM 참가국 주재 大使 기고](4)金在燮 인도네시아 주재대사

    시드니 올림픽의 금메달 열풍이 가시지 않은 오는 20,21일 서울에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린다.우리와 같이 IMF 경제위기를 겪은 인도네시아에서 서울 정상회의를 바라보는 필자의 감회는 남다르다. 우리는 98년 2월 야당이 집권하는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정부를수립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매진했다.인도네시아는 98년 5월 폭동으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당시 하비비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30년 권좌에서 물러났다.지난해 10월 국민협의회(MPR)에서 실시한 대선 결과 4,00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 최대 회교단체인 NU의 지도자 와히드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99년 6월 총선으로 제1당으로 부상한 인니투쟁민주당의 메가와티 여사는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제는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회복이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아직도 정국이 완전히 안정되지 못하고 있으며,경제가 회복되고 있기는 하나 회복속도가 국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다.올해 인도네시아의 경제성장률은 3∼4%,물가상승률은 7∼8%로 전망되고 있다.96년 미화 1달러당 2,500 루피아 정도였던 환율은 98년 1월의 1만7,000 루피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8,700 루피아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 회의에 참석하는 와히드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 한다.인도네시아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4%,세계 총교역의 35%를 차지하는 ASEM 회원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이들과의 교역을 증진하고자 한다.대통령궁·외무부·산업통산부 등 관계관들은 무릎을 맞대고 고심하면서 홍보 묘안을 짜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ASEM뿐 아니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및 아태경제협력체(APEC) 같은 지역협력체가 발족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특히 ASEM은 무역 및 투자 등 경제분야 협력에만 국한하지 않고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하고 정부·민간 협력을 도모하기 때문에 21세기 아시아·유럽간 다양한 협력증진을 통해 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ASEM 준비를 위한 고위관리회의(SOM)에 참석했던 인도네시아측 인사는 자신있게 서울 정상회의가 성공할 것으로얘기한다.회원국간 이견이 많았던 과거와는 달리 지난번 SOM에서는한국측이 밤늦게까지 회의를 진행하면서 의견 차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한 결과 진통이 있었지만 몇 가지 사항만 제외하고 대부분 문안에대해 합의를 이루었다고 한다.그리고 결론을 내지 못한 일부 사항에대해서는 정상회의 전까지 합의를 도출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제는 ASEM 정상회의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온 국민이 합심해 새천년을 맞이한 첫 해에 아시아·유럽의 정상들이 우리의 수도인 서울에 모여서 개최하는 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하자.그리고 한국이 새 천년에는 세계가 모두 부러워하는 번영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고,아시아와 유럽이 협력하여 번영과 안정을 이루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는 훌륭한 국가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자. 金在燮 인도네시아 주재대사
  • 前 스리랑카 여성총리 반다라나이케 여사 타계

    [콜롬보 AFP 연합] 세계 최초로 여성 총리를 지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전(前)스리랑카 총리가 10일 심장마비로 숨졌다.향년 84세. 찬드리카 카마라퉁가 현 스리랑카 대통령의 모친이기도 한 반다라나이케 전 총리는 지난 60년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이후 약 40년간 스리랑카 정치계를 이끌어 왔으나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 8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아들 아누라 반다라나이케는 이날 모친이 선거구인 아타나갈레에서국회의원 투표를 마치고 콜롬보로 돌아 오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전했다.
  • 金대통령, 막걸리 교환하며 農政 대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함께 10일 경기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의 벼 수확현장을 방문,농민들을 격려하고 대화를 나눴다.태풍이 두차례 한반도를 강타했으나 벼 수확량이 3,700만섬에 이르는 풍작이 기대된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 대통령은 풍작현황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받고 “농민을 도와준군인·경찰·공무원에게도 감사한다”고 인사말을 한 뒤 들녘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농민들과 돼지머리를 안주로 막걸리를 들었다.농민들이 권하는 3잔을 연거푸 마셨다. 이어 농민들과 자유스럽게 대화를 나눴다.논농업 직불제 가격 인상요구에 대해서는 “추곡 수매가가 5% 정도 올라가고 직불제가 도입되면 7.6%의 인상 효과가 있다”며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고,농산물 물류센터 건설에 대해서는 “2002년까지 농림부 유통예산을 30%로 늘리고 친환경 농산물 유통센터가 내년에 건설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농가부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김 대통령은 “이 문제만 나오면답답하고 걱정이 많다”고 농민들을 위로했다.양승현기자 yangbak@
  • 클린턴 재임8년 소회 기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지난 8년 재임을 어떻게 평가할까. 내년 1월 퇴임,3개월 여 임기를 남겨놓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은 정치전문 주간지 뉴요커 16일자 최신호 기고문에서 지난 8년의 소회를 밝혔다. 클린턴의 글을 종합해볼때 재임기간 중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시기는 1998년.화이트 워터 스캔들이 증폭되고 르윈스키 성추문이 겹치면서 탄핵직전까지 간 해다.클린턴은 특히 백악관 시용직원 모니카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과 관련,“나는 엄청난 개인적 실수를 1년이 지나서야 바로 잡으려고 시도했다”면서 “이 사건은 나의 가족과행정부,국가에 막대한 고통을 초래했다”고 술회했다. 한편 클린턴은 가장 큰 업적으로 95·96년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된뒤 일어난 연방정부 폐쇄 위기에 잘 대처한 점을 들었다.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부인 힐러리여사와 함께 연루의혹을 받았던화이트 워터 부동산 사기 사건에 대한 초기 대응 실수. 클린턴 대통령은 94년 화이트워터 사건이 터졌을 당시 재닛 리노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를 임명,자신의관련 여부를 조사토록 했다고 말했다.그는 로버트 피스크 특별검사를 임명토록 한 이유에 대해 “모친이 사망한 직후 지쳐있는 상태에서 사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백악관 보좌관들이 특별검사 임명을 지시토록 건의해 어쩔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나는 이것(화이트워터 사건)이 거짓이며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술회했다.그러나 후에 피스크 특별검사는 르윈스키 스캔들을 물고 늘어져 ‘악연’을 맺게된 케네스 스타 검사로 교체됐다. 워싱턴 연합
  • [‘6.15’이후의 북한](8)비전향장기수 최하종씨

    지난 9월2일 평양은 들끓고 있었다.64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는 이 날을 북측은 임시휴식일(공휴일)로 정했다.아침 10시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평양시 초입인 통일거리 환영행사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35분.고층아파트촌인 통일거리는 환영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 이날 북으로 돌아간 비전향 장기수중 한 사람인 최하종씨(73).그의개인사는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면에서 특기할 만하다. 최씨가 남으로 내려온 것은 62년 3월.‘5·16혁명’ 주체중 한 사람이었던 삼촌 최주종(작고·주택공사 사장 역임)장군을 만나러 내려왔다.최장군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 후배 출신. 최씨는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하얼빈공대와 김책공대를 나와 당시 국가계획위원회에 근무중이던,북의 청년 엘리트였다.남으로 내려온 이유를 그는 “삼촌과 통일문제를협의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삼촌에게 연락하자마자 그는 바로 체포됐다.삼촌은 “그것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다”면서 “재판정에서 ‘강제로 내려왔다’고 진술해라.그러면 내가 빼내 주겠다”고 했다.그러나 최씨는 끝내 “자진해서 내려왔다”고 진술했고 결국 무기형을 받았다. 최씨가 감옥문을 나선 것은 36년 만인 1998년.당시 그는 만70세였다.이북에서 태어나 생의 절반 이상을 이남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는남쪽과는 또 하나의 큰 인연이 있다.바로 북에 두고 온 부인이 서울출신이었던 것이다.부인의 이름은 김재숙(70).대한매일에서 출판한‘북한인명사전’에는 상업성 국장을 지내고 은퇴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씨는 일제하 신간회 서기장을 지낸 독립지사 김항규 선생(93년 건국포장 추서)의 딸이다.김선생은 해방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이승만 정부에 참여를 끝내 거부했다.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선생,허헌 변호사와는 일제하 결의형제를 한 사이였지만 김병로 선생이 단독정부에 참여한 후로 그와 결별했다.48년 김선생이 서울의 한달동네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을 때 김병로 대법원장이 경찰 사이드카를 앞세우고 달동네 상가를 찾아오는 바람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여사는 48년 월북해 허헌 집안에서 기거했고,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상업성에 근무하던 55년,최씨와 결혼했다.그러나 부부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헤어져야 했다. 9월2일 오후 7시 평양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속에 환영행사를 마친 비전향 장기수들은 고려호텔 식당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았다.마침내마주앉은 최하종·김재숙 부부.최씨에게 감회를 물었다.“우선 기쁘고요,우리는 다른 이산가족들처럼 헤어지지는 않아도 되니 울 일은없겠구나 했는데 판문점에서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들을 돌봐준 남쪽 사람들의 고마운 사연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신준영기자 현지르포 junyoung@
  • [‘6.15’이후의 북한](5)리억세 고려약기술센터 실장

    국어학자 리극로(李克魯·1893∼1978) 선생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의 주모자로 함흥 감옥에 투옥돼 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은 애국자로 48년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잔류하였다.그 후 오랫동안 남한에서는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왔다.기자가 많은 월북 지식인들의 후손들 가운데 특히 리극로 선생의 아들 리억세씨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일제시기 리극로 선생이 지었을 것임이 분명한 ‘억세'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방북취재중 조선고려약기술센터에서 리억세씨(69)를 만났다.그의 직책은 이 센터 자료조사실 실장.그는 “서울에서 온 기자선생들을 만나게 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며 반갑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향에서 온 젊은이들을 보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름은 리극로 선생께서 지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그런데 사람이 이름처럼 우람해 보이지는 않지요?”솔직히 그랬다.마른 체구에 온화한 미소,부드러운 말씨로 전혀 ‘억세'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리극로 선생이 남북연석회의 참가후 남으로 돌아가지 않으신 배경은?” “당시의 심정을 나중에 말씀하셨는데 왜놈도 못 죽인 김구·여운형 선생을 죽이는 친일파 세상에 대한 환멸과 김일성 장군의 인간적 흡인력이 북에 남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고 하셨습니다.아버지 말씀에 따라 48년 8월중순에 온 가족이 평양으로 왔습니다” 북은 종전에 ‘동의학'이라 부르던 민족의학의 명칭을 ‘고려의학'으로 바꾸었다.그는 “중국측이 우리의학을 동의학이라 하는데 우리는고려의학이라 불러야지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고려약학이 전공이십니까?” “본래는 합성약(양약) 전공인데 고려약 발전에 기여하고자 중간에고려약으로 돌았습니다.조국전쟁때 인재양성정책에 따라 50∼55년까지 레닌그라드 제약대학에 유학했습니다.” 전쟁때 혼자 해외에 나와 공부하는 게 죄스러워 새벽 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고,그 결과 레닌그라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개교이래 최초의 전과정 5점(all A) 학생이었고 ‘공화국 최초의 제약기사'이기도 했다.북의 ‘약제사'는 우리로 치면 약사이고 ‘제약기사'는 제약 연구진이다.남쪽이 의약분업·한약분쟁 등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북의 고려 의료체계가 궁금했다. “고려약은 어디서 생산합니까?” “보건성의 약무국이 약 전반을 관장하고 고려약은 고려약 생산관리국에서,신약(양약)은 제약생산관리국에서 생산합니다.” “고려의학에서 의약분업의 형태는?” “병원에서 고려의사가 처방을 내면 고려약제사가 약을 주는데 처방전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먹기 좋고 흡수가 잘 되게 법제를 하는 것이 약제사의 임무입니다.규격화된 고려약들은 약국에서 판매되는데 총 1,500여종중 일상적으로 공급되는 것은 20종 정도입니다. 약국에는 약제사가 있어 문답도 해주는데 중등교육으로 양성된 조제사는 판매만 할수 있습니다.” 리억세 실장은 해방 직후 서울대 의대 교수와 의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다가 월북해 북에서 초대 보건상을 지낸 이병남 박사의 사위이기도 하다.리 실장의 부인 리원영씨(67)는 신경내과 전문의다.리병남선생의 5남매중 3남매가 의료인이라 했다. 며칠 후 추석이었다.기자는 북의 추석 명절 지내는 모습을 둘러보러 나섰다.아침 일찍 평양인근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갔는데 뜻밖에도리극로 선생 묘소에 성묘하고 있는 리억세 실장 일가와 마주쳤다.리원영 여사는 기자의 손을 잡고 흔들며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우리 아버지 병원이 종로 파고다극장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 바뀌었겠지요?” 그녀는 파고다극장 옆에 용빈루라는 중국요리점이 있었고,옆에 리병남 소아과가 있었다며 해방직후의 종로2가 모습을 한참 설명했다.기자가 별 신통한 대답을 못해도 리 여사는 남에서 온젊은이들을 만난 것 만으로도 못내 기쁜 듯 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코스투니차 ‘反 공산’외길 걸어온 원칙주의자

    ‘밀로셰비치 없는 유고의 미래’는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다.그러나 그것은 5일밤 현실로 나타났다.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것은 20여년간 타협을 모른 채 유고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한 남자 때문에 가능했다.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Vojislav Kostunica·56)가 바로 그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밀로셰비치 축출을 이끌어낸 힘은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확신과 타협을 거부해온 정직성에서 비롯됐다.밀로셰비치의 오랜 집권을 통해 대다수의 야당지도자들이 여권의 유혹에 넘어가 야당지도자로서의 명성을 잃었지만 그만은 여권과의 제휴를 거부한 채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부패로 얼룩진 유고 정계에서 부패에물들지 않은 유일한 정치인이란 청렴성도 전국민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어내는데 도움이 됐다. 서방이 즉각 환영과 함께 유고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고 발표했을만큼 그는 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완고한 세르비아민족주의자이기도 하다.데이튼평화협정에 대한 반대,백악관과 나토 평화유지군,유고전범재판소에 대한 그의 완강한 비판은 민족주의자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1944년 베오그라드에서 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베오그라드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모교 교단에 섰다가 74년 교단에서 쫓겨난뒤 변함없는 반공산주의 투쟁의 길을 걸었다.92년 세르비아민주당(DSS)을 창당한 뒤 계속 당수직을 맡아왔다.부인 조리차 여사.자녀는 없다. 유세진기자 yujin@
  • 金대통령 동교동 사저 ‘역사속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의 애환이 서려 있던동교동 사저가 지난 8월28일 철거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 吳淇坪)은 지난 8월초 재단이사회회의에서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의 1에 위치한 건평 30평의 1층 단독주택인 김 대통령의 사저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대신 인근 부지를 합쳐 내년 9월까지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의 재단건물 신축공사를시작했다. 동교동 사저는 지난 62년 3월 김 대통령이 신촌의 사글세방에서 이사와 지난 95년 말 일산 사저로 옮겨가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71년 사제폭발물 투척과 80년대 가택연금 등 김 대통령이 33년간 측근들과 고통의 세월을 함께 버티어 냈던 장소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동교동 사저는 보존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아태재단측에서 퇴임후 경호문제 등을 고려,새 재단건물을 짓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청와대측과 협의를 거쳐 철거공사를 단행한 것으로알려졌다. 지난 95년 김 대통령이 일산으로 이사가면서 맏아들 김홍일(金弘一·민주)의원에게 넘겼던 동교동 사저는 지난해 7월 김 의원이 서교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 이희호(李姬鎬)여사에게 팔렸다.철거 전까지는 비서관이 기거하면서 관리해왔다. 이송하기자 songha@
  • 金대통령 큰처남 빈소찾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일 저녁 큰 처남인 전한국증권업협회장이강호(李康鎬·85)씨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 병원 영안실을 찾아 문상했다. 1일 저녁 작고한 이씨는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의 9형제중 첫째로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한신증권 대표,초대 증권업협회장을지낸 증권계의 대표적 인물이지만 71년 김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현직에서 물러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군사정권의 핍박을 받은 이씨는 증권업협회장 이후 아무런 직책도 없이 살아왔다”며 “때문에 김 대통령은 평소 큰 처남에게 미안한 심정을 갖고 있었고 이번에 부음을 접하고 직접 문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앞서 오전에 조문했다.이날 빈소에는 민주당 서영훈(徐英勳) 대표,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 등이 조화를 보냈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직접 문상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美 프레드 앨퍼드교수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는 더이상 낯설지 않다.그것은 멀리 17세기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구한말 비숍 여사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타인의 시선을 유난히 의식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늘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최근 출간된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C.프레드 앨퍼드 지음,그린비 펴냄)는 한 미국인 교수(메릴랜드대 정치학과)의 한국인에대한 특별한 시각이 담긴 책이다.원래 제목은 ‘Think No Evil(악의부재를 생각한다)’.원제가 암시하듯 저자는 한국인의 심리에는 ‘악(惡)’의 개념이 없다는 데서 출발,한국인의 자아와 세계화를 펼쳐가는 한국인의 심리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악’이란 다분히 서구적인 개념이다.서구의 이원론적 사고의 산물이다.서구는 그리스도교라는 유일신앙의 역사를 전개해오면서 악을탄생시킬 수밖에 없었다.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 파생된 사탄이라는존재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에 비해 동양사상에서는 조화와 하나됨을강조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세계에서 악이 생겨날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악이 존재하지 않는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저자가 말하는 ‘악의 부재’는 어디까지나 추상화된 개념,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이해하는 개념으로서의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예컨대 한국사람들이 ‘나쁜 날씨’‘나쁜 친구’‘나쁜 물건’이라고 하는 말에는 그것을 하나로 묶을공통점이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나아가 ‘죄가 밉지,사람은 밉지 않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악의 정체를 스스로 은폐하며 그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드는 ‘죄악’이라는 비판도 곁들인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두 차례 한국을 찾아 250여명과 인터뷰를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세계화를 일종의 악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다.세계화는 과연 악인가.저자에 따르면한국의 세계화 논의의 핵심에는 집단적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는 정(情)에 기초한 모든 것을 순전히 도구적인 관계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두려움의 환상이다.막스 베버는‘정’을 비합리성의 전형으로 보았다.저자는 이러한 속성의 정을 그토록 부여잡고있는 한 진정한 세계화의 길은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마치 조선 개화기 때처럼 한국사람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나 구본신참(舊本新參)혹은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끝으로 세계화를 계몽과 연관짓는다.그가 말하는 계몽이란칸트가 이야기한 바 ‘발언 또는 대화로서의 계몽’이다.남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생각이라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칸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인간은 ‘남들과의 공동체 속에서’가장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계몽에 대한 실험이 성공하려면 선택의 원칙과 유형을 만들어야 한다.세계화 또한 그런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남경태 옮김,1만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새천년 첫 개천절 기념행사 다채

    새 천 년 들어 처음 맞는 개천절인 3일 각 종교·사회·시민단체들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다.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상임대회장 윤경빈 광복회장)는 3일 낮12시 사직공원에서 개천절 기념식을 개최하며 세계한민족개천절기념사업회(대회장 이종구 전국방부장관)도 오후2시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개천한민족대축제’를마련한다.현정회도 기념식과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준비위가 주최하는 개천절 기념식은 김광욱 천도교령의 개회선언,윤경빈 광복회장의 대회사에 이어 민주당 한화갑최고위원의 축사,그리고 8,000만 겨레에게 드리는 글 낭독 순서로 진행된다.개회식이 끝난뒤엔 뿌리패 공연단의 사물놀이공연과 서울시민민속놀이 경연마당 등으로 짜여진 문화축제가 열린다. 세계한민족개천절기념사업회도 이날 기념식과 야외 개천문화축제를여는데 대회장인 이종구 전국방장관의 대회사,전운덕 천태종 총무원장과 이승헌 새천년평화재단총재의 기념사와 개천선언문 낭독,고은시인의 개천축시 낭독에 이어 축하공연이 이어진다.행사에는 재미교포 등 70여명으로 구성된 개천절 축하사절단이 참석하고,힐러리 여사와 바와 제인 유엔세계평화회의 사무총장이 축하메시지를 보낼 예정이다.사랑의 장터,헌혈과 장기기증 행사와 단군상 조각전 등 이벤트도 열린다. 현정회는 오전11시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안 단군성전에서 추계사직대제를 겸한 개천절 기념식을 가진뒤 ‘홍익인간과 선비정신’을 주제로 한 기념강연회를 개최한다. 김성호기자 kimus@
  • 金대통령 우표첩 경매…수익 결식아동돕기에 쓰기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가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www.auction.co.kr)에서 진행중인 인터넷 자선경매에 참여한다. 김 대통령 내외는 옥션이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6일까지 자선단체인 ‘사랑의친구들’(명예총재 李姬鎬)과 함께 진행하는 ‘사랑나누기경매한마당’이란 자선이벤트에 사인을 담은 우표첩을 내놓았다. 이 우표첩은 지난 6월27일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기념해 발행됐던 남북정상회담 개최 기념품.모두 1만8,000권이 발행돼 인기리에 팔렸지만 대통령 내외가 내놓은 것은 직접 사인이 들어있어 소장가치가높다는 평가다. 이벤트에는 이인제(李仁濟) 민주당최고위원이 백자도자기를,민주당장재식(張在植) 의원이 다도세트를 각각 내놓았다. 경매에서 얻은 수익금은 모두 결식아동 돕기에 쓰일 예정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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