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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12명 선정

    국가보훈처는 19일 내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3·1운동 민족대표 이승훈(李承熏)선생,한국의 잔다르크 정정화(鄭靖和)여사,상록수의 계몽작가 심훈(沈熏)선생,을사조약에 항거 자결한 민영환(閔泳煥) 선생 등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12명을 선정·발표했다. 이밖에 이완용을 비수로 찌른 이재명(李在明)선생,호남지역 의병장기삼연(奇參衍)선생,대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친 윤세복(尹世復)선생,무정부주의 비밀결사운동가 유림(柳林)선생,머슴출신 의병장 안규홍(安圭洪)선생,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지낸 나창헌(羅昌憲)선생,임정기관지 독립신문 사장을 지낸 김승학(金承學)선생,황성신문 창간유공자 유근(柳瑾)선생 등이 뽑혔다. 국가보훈처는 “국민에게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업적으로 건국훈장을서훈받은 분중 독립운동의 계열을 고려해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선정 독립유공자들의 공헌을 선양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담은 교육용 소책자를 발간하고 생몰연대와공적을 새긴 기념패도 제작한다. 노주석기자
  • 백악관 안주인 정겨운 인수인계

    힐러리 클린턴 여사와 로라 부시 여사의 백악관 안살림 인수인계가시작됐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 로라 여사는 18일 지난 8년간 백악관 안살림을 맡아온 힐러리 여사를 방문,차를 들며 백악관 살림살이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물러나는 퍼스트 레이디와 새로 백악관의 안주인이 될 두 사람간의만남은 미 대통령의 권력승계 절차의 하나로 자리잡은 전통. 언론들은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생활을 시작하는 ‘활동파’힐러리 여사와‘현모양처형’인 로라여사의 백악관 대면 분위기를 상세히 전했다. AP통신 등은 ‘헬로’‘만나서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두 퍼스트 레이디의 만남에 대해 워싱턴의 혹한을 녹일만큼 따뜻하고 정다웠다고설명했다.힐러리 여사는 현관 입구에까지 나와 예정시간보다 7분 늦게 도착한 로라 여사를 맞았으며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사진기자들에게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했다.특히 혹한 때문에 승용차 문이 얼어 붙어 열리지 않자 힐러리 여사는 따로 경호원을 불러 문을 열어줬다. 로라 여사는 “백악관에 대해서는 좀아는 편이며 링컨 룸과 퀸즈룸에서 자 본 적이 있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그녀는 시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 재임 때 백악관에 묶은 적이 있는 데다 남편이 텍사스 주지사 재직중 백악관 초청행사 등에도 참석,백악관과는 매우 친숙한 편.지난 89∼93년까지 백악관 안살림을 챙겼던 시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로부터 세밀한 조언을 받을 수도 있는 형편이다. 힐러리 여사는 자서전 판권료로 거액을 챙긴 것과 관련,“워싱턴에수백만달러 짜리 집을 살 계획이 있느냐”라고 기자들이 묻자 “좀도와줄 수 있겠냐”며 농담으로 응수,프로 정치인다운 여유를 보였다. 두 사람의 패션도 주목을 받았다.힐러리 여사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검정색 바지 정장에 광택나는 분홍색 블라우스,로라 여사는 자주색 울 수트에 소박한 모양의 구두 차림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부시 워싱턴 ‘입성’ 클린턴과 정국 논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조지 ―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가 17일(이하현지시간) 당선 확정 후 처음으로 워싱턴에 입성했다. 부시는 사흘 동안 워싱턴에 머물며 정권인수 작업을 독려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 등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 정국운영 방향을 논의하는 등 대선에 따른 국론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첫발을 디딘다. 부시는 18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만나경제현안을 검토하고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와 회동,세금 감면을 비롯한 선거공약에 대한 의회 중진들의 의중을 파악할 예정이다. 19일에는 고어 부통령과 만난 후 백악관을 예방,퇴임하는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는 등 국가의 단결을 도모하는 모습을 부각시킬 것으로예상된다. 부시 당선자의 부인 로라 여사도 백악관에서 힐러리 상원의원 당선자(뉴욕)와 만나 백악관 안살림에 대한 인수·인계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부시는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스탠퍼드대 교수를 첫 흑인 여성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히스패닉계 소수민족 출신인 앨 곤살레스 텍사스주대법관을 법률자문관에,캐런 휴스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을 전략기획 자문관에 지명,새 행정부의 다양성을 과시했다. 한편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는 이날 CBS방송의 시사 대담 프로그램‘국민과의 대화’에 출연,부시 행정부가 보수주의 정책에서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hay@
  • ‘부활한 과거‘ 찬란한 유물 한눈에…동양문명 기획전

    동양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열린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전’(19일∼내년 2월13일,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과 ‘중국황제유물전’(22일∼내년 3월4일,63빌딩 특별전시관)이 화제의 전시다.교과서 도면이나 외국 유명 박물관에서나접하던 유물들을 직접 대할 수 있는 자리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전’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고대 유물 720여점을 보여준다.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바빌로니아,앗시리아,신바빌로니아 등 4개 왕조에 걸쳐 4,500년간 지속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수메르 시대에 초점을 맞췄다.수메르문명은 기원전 31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전시품 중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뱀신이 새겨진 원통형 인장,함무라비 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흙벽돌,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적인 영웅 길가메쉬의 상징으로 사용된 황소부적,경제활동 문서로 쓰인 수메르어 점토판,눈 신상,점토못 등이 포함돼 있다.또 도시 한가운데 높이쌓아 만든 ‘지구라트’는 모형으로 보여준다.지구라트는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을 일컫는 것으로,탑꼭대기에는 신방이 있어 통치자와 여사제가 해마다 성혼례를 치뤘다. 이번 전시는 수메르시대 조각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수메르조각은 원통형의 환조가 주를 이루지만 봉납석판은 당시 조각으로는드문 부조양식이다.인장조각술이 발달한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수메르인들은 단단한 부싯돌이나 구리도구를 사용해 최초로 원통형 인장을 만들었다.그들은 점토판에 상거래를 명시하고 원통형 인장을 굴려경제활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미술자문을 맡은 중앙대 예술대 신현중교수는 “조그만 원통형 돌에 현대 기술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미세한음각을 해 넣은 것을 보면 수메르시대 조각술이 얼마나 발달했는가를알 수 있다”며 “원통형 인장은 사유재산권의 존재를 말해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과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이번 전시는 스위스 제네바 HM컬렉션측과의 계약에 의해 이뤄졌다.98년 ‘다윗의 도시와 성서의 세계’전을 진행한 안성림씨(고대근동박물관 건립위원회 상임위원)가큐레이터로 나섰고,근동학을 전공한 조철수교수(서강대 신학대학원)가 학술자문을 맡았다.관람료는 어른 5,00원,초중고생 3,000원.(02)587-0311. ‘중국황제유물전’에서는 5,000년 중국 황실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호흡할 수 있다.이번 전시는 중국 황실유물 해외전으로는 최대의규모.선양(瀋陽)고궁박물관,톈진(天津)예술박물관 등 중국의 5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역대 황실의 대표적 유물 151점이 출품된다.전시장은 ‘정사관’‘전쟁관’‘생활관’‘서화관’‘이벤트관’등 5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된다.정사관에서는 명(明)13릉에서 출토된 황제금관과 황후의 보석장식 봉관(鳳冠) 등이 전시되며, 서화관에서는 길이가 20m나 되는 건륭제 황제행렬도 ‘만호조천도’,명 선종의 ‘소행낙권도’,서태후와 마지막 황제 부의의 글 등을 볼 수 있다.전쟁관에서는 황제의 금갑옷과 장마안(仗馬鞍·말안장),보검,팔기군 갑옷등이 전시된다.생활관에서는 황실 의상,상아부채 등이 소개된다. ‘중국황실유물전’은 전시에곁들여 중국 전통 예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했다.경극 특유의 화려한 분장술과 무대의상을 가까이서 감상할 있는 선양경극원의 ‘패왕별희’공연,밀가루 반죽으로 삼라만상을 빚어내는 ’면소공예’,풀잎과 짚으로 각종 동물과 곤충을 만들어내는 ‘초편공예’등 전통공예품 제작시연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손으로 문지르면 분수처럼 물이 튀어 오르는 황실용세수대야 분수동분(噴水銅盆)’도 눈길을 끌 만하다. 입장료는 어른 8,000원,중고생 6,000원,유치원·초등생 5,000원.인터넷(www.63city.co.kr)에서도 볼 수 있다.(02)789-5663-5김종면기자 jmkim@
  • 힐러리 회고록 800만弗 ‘대박’

    [워싱턴 AFP DPA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부인이자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여사가 회고록 판권료로 800만달러(96억여원)를 받게 됐다. 미국 언론은 16일 힐러리 여사가 유명출판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와 800만달러를 선불로 받기로 계약했다고 보도했다.이는 9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고록 판권료로 받은 사상 최고액 850만달러에 조금 못미치는 거액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힐러리 여사가 퍼스트 레이디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상원의원이 됐기 때문에 공직 윤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회고록 판권료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워싱턴포스트는 고액 판권료가 의원 윤리 규정상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리규정에 따르면 현직의원은 출판업계 통상 관행에 따른 적정 판권료만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국의 대형출판사들은 힐러리 회고록의 판권을 따내기 위해 그동안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다.판권 획득에 성공한 사이먼 앤 슈스터는 이미 그녀의 사신(私信)과 포토에세이를 묶어책으로 출간한 바 있다. 회고록에는 8년간 대통령 부인으로서 보낸 화려했던 시절의 각종 뒷얘기들은 물론 남편의 바람기로 인한 심적 고통에 대해서도 솔직히토로할 것으로 보인다.
  • 내가 만난부시/ 전형적 리더타입…박찬호 팬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 W 부시 텍사스주 지사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남으로 정치 명문가에서 성장했으나 중앙정계에서는 활동한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이다. 국제 사회에는 더욱 알려져 있지 않아 향후 어떤 스타일의 정치를펼쳐 나갈 지가 자못 궁금하다.그러나 지한파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한국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있다.앞으로 대한(對韓) 정책이 일부 우려처럼 급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선이 굵고 단순 명료하며 약속을 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꼼꼼히 챙기는 실무형이라기 보다는 자신은 핵심원칙만 정하고 권한과 책임을 과감하게 하부에 위양하는 전형적인 리더 타입이다. 삼성반도체 오스틴공장 일로 텍사스주 지사인 부시 당선자를 몇 번만났지만 그의 스타일은 언제나 간단 명료했다.삼성반도체 지원에 대한 원칙만 강조하고 세부 지원 사항은 모두 참모들에게 일임했다.그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특히 야구선수 박찬호의 팬이다.그는“아직 찬호 박의 사인은 받지 못했다”며 한국인인 필자의 기분을배려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박찬호의 승패 기록 정도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가정적인 사람이다.집무실 책상 위에는 액자가 몇 개 놓여 있는데 모두 가족 사진이다.부친인 부시 전 대통령을 호칭할 때에는 언제나 ‘마이 굿 파더’이고 어머니인 바버러 여사에 대해서도‘마이 굿 마더’라는 수식어를 빼먹는 법이 없다. 주위의 참모들을 보면 부시 당선자의 통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참모의 대부분이 오랜 친구이거나 지사 취임 당시부터의 참모들이다.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돈 애덤스 선거대책본부장,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앤드루 카드 전 교통장관 등 모두 부시 집안과 수십년 지기들이다.인간 관계를 중시해 한 번 맺으면 수십년동안 교류하고 참모를 신뢰하고 하부에 권한을 위양함으로써 아랫 사람들의 잠재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전형적인 리더의 스타일을 다시 강조하고싶다. 향후 그의 정책방향을 가늠한다면,외교·국방과 통상은 레이건 대통령과 부친인 부시 전 대통령 시대의 정책과 유사할 것으로 보이지만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국내정치는 감세,세출 억제를 지향하면서 민간부문을 중시하는 자율 경제를 추구할 것으로 본다. 이승환 삼성전자 부사장 오스틴 현지 법인장
  • 힐러리 회고록 판권료 84억원 넘어

    [올버니(미 뉴욕주) AP 연합] 최근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회고록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13일 “힐러리 여사가준비중인 회고록에 대한 출판사들의 판권 입찰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입찰가가 700만달러(84억원) 수준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의 추세로 볼 때,회고록 판권료가 지금까지최고를 기록한 잭 웰치 GE 회장의 자서전 판권료 710만달러를 거뜬히넘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미 출판사들이 힐러리 여사의 회고록에 이처럼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최근 그가 남편인 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위스키와의 섹스스캔들 및 뒤이은 의회의 탄핵 소추와 관련된 내용을 회고록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편 힐러리 여사는 최근 뉴욕 시내의 한 저택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 ‘엉망진창’ 크리스마스 양계장선 ‘닭 탈출극’

    이맘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극장가 고정아이템.가족용 오락물들이이번 주말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판을 올린다.맨먼저 테이프를 끊는 작품 두편,‘그린치’와 ‘치킨 런’.16일 동시개봉돼 UIP와 드림웍스의 상상력이 키재기를 하게 된다. ■그린치(원제 The Grinch) 론 하워드 감독의 ‘그린치’는 불쑥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던지며 시작된다.크리스마스에 세상은 왜 통째로 술렁거려야 하지? 어째서 모두들 행복한 척해야 하고?성탄절을 눈앞에 두고 들떠있는 후빌마을.흥청대는 마을을 굽어보며심술쟁이 그린치가 이죽거리며 내뱉는 비아냥이다.여기서 사족 하나. 아이 손을 잡고간 어른관객들에게 상술에 휘둘리는 크리스마스의 좌표를 새삼 곱씹어보게 할,복병같이 흥미로운 대사다. 어릴적 별난 생김새로 따돌림당한 아픔때문에 산꼭대기에서 혼자 살아온 그린치는 마을사람들이 즐거워지는 꼴을 두고볼 수가 없다.외톨이 그린치에게 관심을 갖는 건 꼬마 신디뿐.신디의 노력으로 마을축제에 초대됐지만 옛 여자친구마저 시장의 선물공세에 넘어간 것을 알게 되자 그린치는 크리스마스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랜섬’ ‘아폴로 13’ 등을 찍어온 론 하워드 감독의 새 영화는 눈요깃거리 가득한 뮤지컬 드라마가 됐다.이미 만화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닥터 세우스의 유명동화(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나)가 원작. 애당초 제작사쪽에서는 짐 캐리의 개인기에 잔뜩 기대를 걸었을 게 분명한 터.하지만 익히 봐온 그의 ‘원맨쇼’보다는 주변장치들이 훨씬 돋보이고 말았다.반인반수(半人半獸) 그린치를 빚어낸릭 베이커의 특수분장술은 역시 최고다.소외로 심사가 뒤틀린 괴물이크리스마스 선물을 닥치는대로 훔쳐낸다는 이야기는,판타지 가족영화로 옮겨지기에 아주 제격인 소재였다.크리스마스 트리나 선물이 쾌락의 상징으로 전락해 수모를 당하는 설정도 신선하다.가족코미디 ‘라이어 라이어’를 함께 만들었던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와 손잡고 하워드 감독은 1억2,000만달러를 제작비로 밀어넣었다. ■치킨 런(원제 Chicken Run) ‘월레스&그로밋’시리즈로 또하나의애니메이션 아성을 쌓아온 영국의 아드만픽쳐스가 할리우드의 메이저드림웍스와 제휴해 만든 클레이(Clay)애니메이션이다.호시탐탐 디즈니의 독주에 딴지를 걸어오던 두 제작사의 만남은 일찍부터 화제가되기에 충분했다.그렇게 탄생한 영화는 보란듯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이다.지난 6월 개봉 당시 미국에서만 1억달러 이상을 거둬들였다. 점토인형들이 얼마나 발랄한 상상력을 동원할지는 첫 장면에서부터감이 잡힌다.압박과 설움뿐인 닭장에서 탈출하기로 선언한 일군의 닭들.허겁지겁 울타리 흙을 파올리는 ‘닭발’에는 웬걸? 몽당숟가락이삽 대신 들려있다. 이쯤부터 폭소는 1분에 적어도 한번꼴로 터지게돼있다. 트위디 여사가 그렇게 포악을 떨지만 않았어도 농장의 닭들은 조용히알만 낳고 살려고 했었다.하루라도 알을 못낳으면 치킨파이 신세가되고마는 살벌함 속에서 닭들은 잊었던 자유를 꿈꾸고,암탉 리더인진저는 미국 출신의 수탉 록키를 영입해 어떻게든 날아보려고 온갖아이디어를 짜낸다.점토인형 특유의 둔한 듯하면서도 소박한 질감은좌충우돌 코미디를 들뜨지 않게 중심잡아준다.앙칼진 트위디 여사와우둔한 그의 남편,매사에 느리지만 진실을 견지하는 진저,합리를 위장한 편의주의자 록키.캐릭터들의 면면과 갈등구도는 탈출기를 다룬여느 실사영화 이상으로 균형잡혀있다.록키의 목소리 연기는 멜 깁슨이 맡았다. 황수정기자 sjh@
  • 金대통령 ‘오슬로 구상’ 뭘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오슬로 구상’을 언제쯤 풀어놓을까. 김 대통령은 오슬로나 스톡홀름 방문 중 국내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박준영(朴晙瑩)대변인 등 청와대 참모들도 “대통령이귀국하면 각계 인사들을 두루 만난 뒤 국정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지난 8일 출국할 때 “밖에서도 국정의 중요 사항은 차질 없이 챙기고,귀국 후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말해 ‘밑그림’을 대강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문 중에도 김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국내 경제문제였다.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 등으로부터 매일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지시사항을 꼼꼼히 챙겼다는 전언이다. 진념 재경부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 여부와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김 대통령의 구상은 연말쯤 당정개편으로 이어질 것 같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3일 “김 대통령이 출국 인사말에서 ‘여러분이바라는 국정개혁’을 강조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개혁’에는 ‘쇄신’보다 더 강한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니냐”고 말해 김 대통령이 모종의 결단을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오슬로 구상’을 풀어놓기 앞서 각계 인사들을 두루접촉할 계획이다.김 대통령은 출국 전 민주당 최고위원들과 만났을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도 만나 의견을 들은 뒤 최종 결심을 할 것으로예상된다. 그러나 시기는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여권 핵심 관계자는 “임시국회 상황에 따라 국정개혁 단행 일정은 유동적일수밖에 없다”며 당정의 면모 일신을 위한 개편이 내년 초로 미뤄질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또 “내각 개편은 당과 청와대 보좌진 개편 후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단계적 개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했다. 스톡홀름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대통령 행보 결산. [스톡홀름 오풍연특파원] 스웨덴을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노벨재단 방문,팔메 전 총리 부인 접견 등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문 성과]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져올 유·무형의 파급효가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 같다.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성과 가운데 국가 이미지의 국제화를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면서“앞으로 대외관계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내 초청 인사로 동행한 손병두(孫炳斗)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우리기업들이 노벨상 이미지를 상품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재단 및 국왕 방문] 김 대통령은 오전(이하 현지시각) 노벨재단을 방문,올해 노벨상 수상자 12명과 환담했다. 김 대통령은 마이클 솔맨 노벨재단 사무총장에게 ‘노벨상 100주년기념전시회’에 출품할 ‘옥중 서신’ 원본과 수의(囚衣) 등을 전달했다. [팔메 여사 접견]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오후 숙소인 그랜드호텔에서 고(故) 올로프 팔메 전 총리의 부인 리스벳 팔메여사와 그 가족을 만났다. 김 대통령은 89년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팔메 여사를 만나 80년 구명운동에 대해 뒤늦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팔메 여사는 94년 아·태재단 창설때 방한했다. 팔메 여사는 99년 ‘옥중 서신’ 스웨덴판(版)의 서문을 썼으며,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된 뒤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대부’격인 팔메 전 총리는 73년 김 대통령의도쿄(東京) 납치사건때와 김 대통령이 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운동에 적극 나서는 등 김 대통령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김 대통령과 팔메 전 총리의 인연은 팔메 총리가 86년 2월 영화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다 암살당할 때까지 돈독하게 이어졌다.
  • 김우중씨 수단으로 이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 최근 아프리카 수단을 노후 안식처로 정해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근황에 정통한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올 초이후 기거해 온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거처를 정리하고 부인 정희자(鄭禧子·대우개발회장)여사와 함께 수단으로 옮겼다는 것.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이끌 때 수단을 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으로 선택,타이어 방적 등 합작공장을 설립했으며,이 때부터 노후에 수단에 정착해 섬유업체를 경영하기를 원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김 전 회장의 수단이주에는 정 여사가 ‘남편에게 힘이 돼주기 위해’ 동반이주를 결심한 것이 큰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사업차 중국에 머물다 대우그룹 워크아웃을 계기로 해외생활을 시작,베트남 미국 독일 등지로 거처를 옮기며‘도피생활’을 해왔다. 주병철기자 bcjoo@
  • 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르웨이 공식일정 안팎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1일 오전(현지시간)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를 면담하고 의회를 방문한 데 이어,저녁 축하음악회를 관람하는 등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한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전날 저녁에 열린 횃불행진에서는 우리말로 ‘만세’를 외치는 소리와 애국가가 오슬로 시내에 울려퍼졌다. ◆총리 면담 김 대통령은 오전 총리실로 스톨텐베르그 총리를 방문,환담했다.김 대통령은 풍요로운 복지국가를 이끄는 스톨텐베르그 총리의 지도력을 칭송했으며,스톨텐베르그 총리는 남북한 화해·협력과한국의 인권 신장,민주화 달성 등에 경의를 표시했다. 스톨텐베르그총리는 적절한 시기에 방한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의회 방문 김 대통령은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전통에 따라의회를 방문했다.김 대통령은 그뢴달 의장의 영접을 받고 에이나르스텐스나스 위원장을 비롯한 외무의원들과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스텐스나스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고난의 역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주(駐)노르웨이 대사 주최 오찬 참석 김 대통령은 숙소인 그랜드호텔에서 박경태(朴慶泰) 주노르웨이 대사 주최 오찬에 참석했다.오찬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속한 나라의 대사가 노르웨이 노벨위원 등을초청하는 전통에 따른 것으로,노르웨이 정·재계와 문화계 인사 70여명이 참석했다. ◆학생 전시회 및 공연 관람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오후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학생 전시회 및 공연을 관람했다. 평화를주제로 한 전시회에는 노르웨이 전국의 4∼7학년 학생들의 글짓기 및그림 경연대회 당선작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음악과 무용도함께 선보였다. 이 행사는 국제아동구호단체인‘Save the Children’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기념하기 위해 98년부터 매년 주최하고 있다. ◆축하음악회 참석 김 대통령 내외는 그랜드호텔에서 동포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저녁에는 노르웨이 최대 공연장인 오슬로 시내 스펙트럼에서 열린 축하음악회를 관람했다.호콘 노르웨이 왕세자 등 5,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축하음악회는 노벨평화상 시상식과 관련된 마지막 공식행사.축하음악회는 영화 007시리즈에 출연했던 영국여배우 제인 세이모어가 사회를 봤다. 또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시상식에 이어 이날도 노래를 불렀으며,세계적 연주자 브라이언 애덤스의 공연도 펼쳐졌다.공연 도중에 클린턴미국 대통령,푸틴 러시아 대통령,슈뢰더 독일 총리가 보낸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는 영상메시지가 방영됐다. ◆이 여사 원자력병원 방문 이 여사는 오전 노르웨이 원자력병원을방문했다.이 여사는 요하네센 원장으로부터 현황을 듣고 방사선치료실과 환자들을 위한 실내수영장 등을 둘러봤다.
  • [사설] 金대통령의 ‘평화 메시지’

    노벨 평화상 수상식 참석을 위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낮 현지의 한 소년으로부터 ‘평화의 횃불’을 증정받았다.수상식 공식 행사의 한 순서였다.김대통령은 소년에게서 받은 그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그 순간 김대통령의 가슴 속에 온갖 감회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 미수,납치·살해 위기,사형선고 등 다섯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6년의 감옥생활,10년이 넘는 망명과연금의 고통을 딛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40년 동안 줄기차게 쏟아온 노력이 마침내 전세계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마당에 어찌 감회가 없었겠는가.김대통령이시상식 연설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말한 것도,그런 절절한 감회의 결정(結晶)일 것이다. 노벨위원회 베르게 위원장은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적 잔재를 녹이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다”고선정이유를 밝혔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라 할지라도 위원회의 결정에 더이상 보탤 말이 없을 것이다.굳이 덧붙이자면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하겠다는 그의 굳건한 결의와 ‘평화의 메시지’에 다 함께 힘을 보태주자는 말밖에 더 있겠는가. 김대통령은 인권 존중과 사회정의 구현에 있어 민주주의가 지닌 힘을 강조하고,그가 국정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생산적 복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국민들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현지의 ‘대서특필’을 감격 속에 받아들이면서도,한편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상황에 곤혹감을 느낄 것이다.세계적인 정치지도자의 발목을 계속 잡아서 무슨이득이 있는가, 여야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깊이 자성해 볼 필요가있다고 본다. 김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은 수상이유에 대한 앞으로의 헌신이 의무로 발생한다”고 선언하고,그가 상을 받은 이유를 위해 헌신할 것을거듭 다짐했다.그러면서 그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도하는 미얀마의민주화 운동과 동 티모르의 독립에 대한 전인류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역설했다.평화의 사람 김대중,그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전세계에 큰 울림을 일으키고 있다.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샤리프 前파키스탄 총리 가족과 함께 사우디 망명

    지난해 파키스탄 군사정부의 쿠데타로 축출돼 수감생활을 해온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10일 사면으로 풀려나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군사정부는 10일 공식 성명을 통해 샤리프 전 총리의 석방을 발표하면서 “이는 파키스탄 국민과 국가 모두에게 가장 유익하다고 판단해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성명은 현 군사정부 지도자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의 권고로무하마드 라피크 타라르 대통령이 법에 따라 샤리프 전총리에 대해잔여형량을 사면했다고 밝혔다. 샤리프 전 총리는 이날 아침 감옥에서 풀려나 군병원으로 옮겨져 건강검진을 받은 후 수도 이슬라마바드 근처의 군사공항에 도착,부인쿨숨 나와즈 여사 등 가족과 합류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함께출국한 가족 가운데는 부인과 자녀,부친,수감중인 동생 샤흐바즈 푼잡 전 주지사 등이 포함돼 있다. 샤리프 전 총리의 소속정당인 파키스탄이슬람연맹(PML)은 샤리프 전총리의 석방에는 사우리아라비아의 왕족 가운데 한 사람이 중재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PML 소식통들은 샤리프 전 총리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PML총재직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슬라마바드 AFP 연합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수상 회견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일 밤(한국시간) 노벨위원회 주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장에는 CNN 등 세계각국 기자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공동 수상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는가. 같이 받았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위원장을 만나는 것과 노벨 평화상을 받는 두 가지 꿈이 실현됐다.다른 꿈이 더 있나. 노벨평화상은 받고나면 더 큰 사명이 부과된다는 점에서 올림픽 금메달과는 다르다.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 대해 북한에서 인사말을 보내온 게 있는가. 또 통일은 김대통령 생애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간접적인축하의 말은 들었지만 공식적 축하는 없었다.일생을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 어려운 고비도 넘겼지만 임기 중 통일을 성취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그러나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지난 6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400명이 왕래했다.그러나 이산가족은 2·3세대까지 포함하면모두 1,000만명 가량이 된다고 한다.그래서 먼저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 왕래,면회소 설치 등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이루어 나갈 생각이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미얀마나 동티모르 같은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아웅산 수지여사와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염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동티모르에서는 한국 군인들이 치안유지 등평화유지군의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북한과 종교 교류를 지원할 생각은 있는가. 한국에는 종교들간의관계가 매우 좋다.예를 들어 가톨릭을 포함해 불교·민속종교 등 7대종교가 내가 귀국하면 노벨상 축하 미사를 서울의 대성당에서 드리기로 돼 있다.남북 종교간에는 충분히 교류가 되고 있지는 않으나 북의 종교계와 대화를 하고 있으며,남북한 종교간의 교류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중국 문제는 장쩌민(江澤民)주석을 만나 교황청의 관계개선 희망을 전했고,장주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의사를말했다. 여기에 대해 중국측의 반응이 있었다. 교황청이 대만문제를해결하면 중국과 관계진전이 될 것으로 (나는)느끼고 있다.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교황의 방북의사를 전했고 의향을 물었다.내년에 오시라고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이런 중국 및 북한과의 접촉결과는 모두 교황청에 전달했다. ■한반도 평화조약을 위한 4자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쯤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인지,2002년쯤이면 될 것으로 생각하나. 언제쯤이 될지는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4자회담 제의에 대해 미·중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다.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평화상 수상 이후 남북 관계가 어떻게 조정될 것으로 보는가. 이번에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은 인권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수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전세계의)절대적이고 가장 큰이슈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시상식 표정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하나는 첫 방울이고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다네.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다네.만사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랐겠는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10일 밤(한국시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선포하면서 노르웨이 시인 군나르롤드크밤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는 시를 인용했다.숱한 고난과 핍박을 견뎌낸 김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하게 됐음을 시구(詩句)로 비유한 것이다.오슬로시청 메인 홀에서 열린 이날 시상식에는 김 대통령의 가족 10명과 국내초청인사 42명,하랄드 5세 국왕,호콘 왕세자,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 등 노르웨이 최고위층 인사 대부분과 그루할렌 브룬트란트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등 1,100여명의 인사가자리를 메운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김 대통령은 오후 8시50분 오슬로시청에 도착,8분 뒤인 8시58분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스톨셋 노벨위원회 부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시상식장에 입장했다.김 대통령이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한국에서 온 인권지도자를 맞았다.이어 1분 뒤인 8시59분 하랄드5세 국왕과 소냐 왕비 등 왕족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방청객들과 함께 단상 맞은 편에 앉았다.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행사 시작 10분 전인 8시50분 시상식장에 도착,룬데스타드 노벨위원회 사무국장의 영접을 받았다. 베르게 위원장이 연단에 나와 김 대통령이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임을 선포하면서,업적,배경 등을 설명했다.그는 설명 끝무렵에 “시인의 말처럼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라고김 대통령을 ‘첫번째 물방울’에 비유,선구자적 삶을 칭송했다. 그는 김 대통령이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구 소련 저항지식인의상징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와 닮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베르게 위원장의 수상 이유 설명에 이어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아리디티의 ‘입맞춤(Il Bacio)’,그리그의 ‘이히 리베 디히’등 2곡을 노래했다.이어 김 대통령은 베르게 위원장으로부터 메달과디플로마(증서)를 받았고,조씨는 마지막으로 안정준의 ‘아리 아리랑’을 불렀다. 조씨의 축하노래가 끝나자 김 대통령은 베르게 위원장의 소개로 금색 노벨메달이 새겨진 파란색 연단으로 가서 수상연설을 했다.김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한국어로 낭독했으며,연설은 노르웨이어와 영어로 동시통역됐다.미국 CNN을 통해 세계 각 국에 중계됐다. 김 대통령은 연설에서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이며,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메시지”라면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준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답례했다.또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 책임의 시작“이라며 일생을 바쳐 세계의 인권과 평화,한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맹세했다. 연설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연설 전후 김 대통령은 모두 5차례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옅은 보라색 한복 차림의 이여사는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 장관 등과 함께 맨 앞줄에서 김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한편 김 대통령의 연설은 노벨위원회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일본 이와나미(岩波) 출판사가 번역해 발행할 예정이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 김대통령 “귀국후 국정개혁 단행”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8일 밤 오슬로에도착,나흘간의 노르웨이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앞서 김대통령은 오전 서울공항 출국인사에서 “국정의 중요 사항은 밖에서도 차질없이챙기겠다”면서 “귀국(14일) 후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 개혁을단행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광은 내 개인의 몫이 아니라 지난 40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남북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변함없이 동참하고 성원해준 국민 여러분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10일 노벨상 수상연설과 노벨위원회 주최 기자회견을통해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상,남북 화해·협력의 진전 상황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릴 것”이라며 “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poongynn@
  • 아웅산 수지 여사, 美 ‘자유의 메달’ 받아

    [워싱턴 연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6일 미얀마의 야당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 민주주의를 촉진한 공로로 미국의 최고민간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현재 미얀마 군사정부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놓인 수지 여사를 대신해 그의 아들알렉산더 아리스에게 메달을 전달하고 수지 여사와 미얀마 국민들이민주 회복을 위해 평화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대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 노벨평화상 시상식 초청 박용길·문성근씨 母子

    “문 목사님이 살아계셨다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장에서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셨을텐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각각 민주화에 기여한 인사와 문화계 인사로 초청을 받은 ‘늦봄’ 문익환 목사의 부인박용길(朴容吉·81) 여사와 3남 문성근(文盛瑾·47·영화배우)씨는 7일 서울 강북구 수유6동 자택 ‘통일의 집’에서 94년 타계한 문 목사를 떠올리며 아쉬움에 젖었다. 8일 오전 박여사와 함께 대통령 특별기로 노르웨이로 떠나는 문씨는“아버지가 살아생전 늘 말씀하시던 ‘가슴으로 만나는 통일’이 김대통령의 방북과 노벨평화상 수상을 통해 이루어진 것 같아 더할나위없이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여사는 “문 목사의 통일에 대한 열정과 염원을 이어받아 대신참석하게 된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문씨는 “아버지께서 89년 ‘나라도 통일의 길을 열어야 겠다’며방북했을 때 김일성 주석과 나눴던 말씀들이 6·15 남북공동선언과같은 내용”이라면서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고되풀이해말씀하시던 것이 새삼 떠오른다”고 말했다. 박 여사는 “문 목사와 김대통령은 평생을 한결같이 민주화와 통일의 꿈을 위해 살아온 동지이자 마음을 교류하던 친구였는데 이제야김대통령이 수상을 하게 됐다”며 환한 웃음으로 기쁨을 대신했다. 지난 95년 6월 김일성 북한 주석의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북했다가옥고를 치르기도한 박 여사는 97년에는 30년동안 살아온 집을 통일운동을 위해 내놓고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목사 기념사업’의 일을 하고 있다. 박 여사는 “평소 ‘고른 땅 밝은 하늘’,‘남누리 북누리 한누리되도록’이라며 남북 통일을 염원했던 문 목사님도 함께 하실 것”이라며 아들 문씨와 손을 맞잡았다. 안동환기자 su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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