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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청사자놀음’ 보유자 전광석씨 별세

    중요무형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보유자인 전광석(田光石)씨가 12일 오후7시 서울 마포구 도화1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5세. 고인은 지난 23부터 9년 동안 전병식선생을 사사한 뒤 북청사자놀음 가운데 ‘칼춤’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고 73년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정순(崔貞純)여사와 경욱(耕旭·고려대교수) 경우(耕雨·우리기획 대표)씨 등 2남이 있다.발인은 14일 오전 9시.(02)929-3499
  • 청와대 통치사료 1,302점 발굴·공개

    1968년 북한 도발에 의한 ‘1·21사태’ 및 푸에블로호납북사건 직후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을 강력히 주장,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미국측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음을 확인해 주는 청와대 통치사료등이 9일 공개됐다. 발견자료는 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대통령 당시의 서한철과 공식 외교문서철 123점,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공식행사 녹음테이프 719점,김영삼 전대통령 관련 기록물 460점 등 모두 1,302점이다.이날 공개된 통치사료 중 중요한 대목을 사안별로 정리한다. [1·21사태 당시 박정희의 대북응징 요구] 68년 1월21일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청와대 습격사태 및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발생 직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B존슨 미 대통령간에 오간 편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북한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공격을 취할 것을 주장한 반면존슨 전 대통령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귀환을 위해 북한과 비밀협상을 진행시키면서 외교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인 2월5일 존슨 전 대통령에게보낸 친필서한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선 그들의 침략행동이 반드시 적절한 응징(due punitive action)을 받게된다는 교훈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2월9일자서한에서는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열어 북한으로부터 시인과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다짐받아야 하며,북한이 불응할 경우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즉각 보복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존슨 전 미 대통령은 2월9일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낸서한에서 사이런스 밴스 전 국방차관을 개인특사로 서울에 파견했다는 사실만을 밝힌 채 대북 군사응징 요구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또 2월28일자 편지에서 “밴스는 평양정권의 위협과 침략행위로 야기된 사태에 대한 각하의 우려와 견해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했다”면서 “본인 역시이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으나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며 대북 군사행동에 대해 우회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5·17 전후 최규하의국정장악력 상실] 80년 전두환 장군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인사들을 체포한 ‘5·17 사태’를 전후해 최규하 전 대통령의 의전일지가 거의 공란으로 남아 있어 당시의 국정공백 상황을 짐작케 한다. 당시 의전일지에 따르면 최 전 대통령은 원유가 폭등에대처하기 위해 5월10일 출국해 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를 방문하고 5월16일 오후 10시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그러나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7일부터5 ·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18일은 물론 21일까지 닷새 동안 행사 참석은 물론 정부 요인이나 군 관계자 등의접견 기록이 전혀 없다.다만 5월22일에 이르러서야 박충훈(朴忠勳)전 총리서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50년대 북한의 ‘핵보유설’] 미국측이 57년 당시 북한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제기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 보고서’도 관심을 끈다. 미측 군사전문가가 작성해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되는이 보고서는 북한이 공군기지 건설,초현대식 제트기 및 기폭탄,박격포 및 대공포 도입 등으로휴전협정을 어기고 있으며 “북한 공산군이 핵무기와 유도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측의 월남전 참전 요청] 존슨 전 대통령은 65년 월남전이 본격화되자 박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친서를 보내 한국군 전투병력의 월남전 파병을 줄기차게 요구했고,박 전대통령은 경제적 이득과 한반도 안보 등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존슨 전 대통령은 그해 7월25일자 서신에서 “현재 월남에 있는 병력 8만명을 배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해야 된다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군의 참전을우회적으로 요청했다.이에 박 전 대통령은 7월29일자 답신에서 “월남을 공산침략으로부터 수호해야겠다는 각하의정의로운 결의는 공산침략의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수억명의 자유애호 약소민족에게 큰 고무와 용기를 줬다”며파병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승만의 ‘원조 정상외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 종전직후인 54년 당시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과 교환한 수차례의 외교서신은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살리고북한에 비해 열등한 군사력을 만회하기 위해 애국심을 바탕으로 ‘굴욕에 가까운 정상외교’를 펼쳤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12월8일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미국에 대해 경제·군사적인 원조를 요청했다.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3월11일,11월5일,11월29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 “서울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100만명 이상의 중국 인민군과 수십만명의북한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며지원을 호소했다. [육영수 여사 관련자료] 74년 8월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이 쏜 총탄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陸英修)여사가 사망한 후 각국 사절이나 외교관이 보낸 조전과 우리정부의 답신, 육 여사가 생전에 각국 정상 부인들에게 보낸 서한도 포함돼 있다. 육 여사는 67년 7월7일 사토(佐藤) 당시 일본 총리의 부인으로부터 장난감 선물을 받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내줘 우리 지만이(박 대통령의 외아들)가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답신을 보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부음/ 한나라당 손태인의원,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 윤덕진씨

    ●한나라당 손태인의원 별세. 한나라당 손태인(孫泰仁·부산 해운대·기장갑) 의원이 지난 5일 오전 9시 경기도 일산 암센터에서 지병인간암으로 별세했다.57세.유족으로는 부인 김금숙 여사와 2녀가 있다. 경남 밀양 출신인 손 의원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80년대 초반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을 지냈으며,지난 2000년 4·13 총선때 부산 해운대 기장갑에서 당선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 및 예결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손의원의 영결식은 8일 오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국회장으로 치러진다.발인은 9일 오전 고향인 경남 밀양시 산외면본가에서 거행된다. ●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 윤덕진씨.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 윤덕진(尹德珍)씨가 5일 낮 12시 15분 경기 구리시 구리한양대학교병원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76세. 고인은 조부(윤억판)부터 대대로 북을 만드는 집안에서태어나 1954년 이후 북 제작에 종사,지난 91년 악기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유족으로는 북제작 전수교육 조교인 종국(41세)씨 등 5남3녀가 있다.발인은 7일오전 7시.018-354-4049
  • 김대통령 어제 喜壽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6일 희수(喜壽·77세)를 맞았다.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이날 오전 청와대 관저에서 홍일(弘一)·홍업(弘業)·홍걸(弘傑) 씨등 세 아들 부부,손자 손녀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이 자리에서는 주로 건강얘기를 나눴다는 전언이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지난 5일 아침 이상주(李相周)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들과 조찬을 갖고 “세계가우리 경제를 괜찮게 보는 것 같다.우리가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금년에는 특히 월드컵을 잘 치러야 국운상승의기회가 열린다”고 강조했다고 오홍근(吳弘根)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등은 김 대통령에게 생일 축하 난을 보내왔다.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 총재도 총재실부실장인 정병국(鄭柄國)의원을 통해 축하 난을 보내고,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도 난을 보냈다. 오풍연기자
  • 이인표 에스콰이아 명예회장 별세

    이인표(李寅杓) 에스콰이아 명예회장이 3일 오전 10시 노환으로 별세했다.81세. 고 이 명예회장은 61년 에스콰이아 및 계열사를 창업했다.83년엔 사회과학도서관을,90년엔 인표 어린이도서관을 세웠고,95년엔 서울대학교에 사회과학정보센터를 기증하는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92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도정(韓道正)여사와 장남 은봉(隱峰·㈜진서 사장),차남 범(范·㈜에스콰이아 대표이사 회장),3남 정(玎·개인사업)씨가 있다.발인은 5일 오전 9시 강남삼성의료원,장지는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광주공원묘원.(02)3410-3151∼3
  • [세계의 자녀교육] 프랑스 데스쿠에트 부부

    “행복한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합니다.” 지난 7월 부임한 주한 프랑스대사 프랑수아 데스쿠에트(53·Francois Descoueyte)와 부인 크리스티나 데스쿠에트(36·Christina Descoueyte)부부는 요즘 2년 5개월된 딸,8개월된아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에 한창이다. 부인 크리스티나는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지난 88년 당시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일하던 대사와 결혼했다.데스쿠에트 대사는프랑스 최고 엘리트 코스인 파리 정치학교와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다.이들 부부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가정에서 아이들이 충분히 행복감을 맛보며 자라게 하는 것.그것이아이들이 사회라는 큰 세계로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게 하는 힘의 뿌리라고 믿는다. “다정하고도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그리고 마음껏 사랑을표현하는 것은 좋은 가정교육의 기본이죠.아이들은 열린 분위기 속에서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책임있는 행동과 현명한 선택을 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같아요.” 하지만 행복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마냥 풀어놓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프랑스 학교 교육은 자율을 중시하면서도 꽤나 규율이엄격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초보 엄마로서 어려움은 없는지,또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위한 비결은 따로 없는지 크리스티나 여사에게 물었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사실 모든 부모들은 아이 시절 자신이 키워졌던방식대로 부모가 되는 법을 몸으로 알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나는 내 상식과 본능을 믿는다.부모로서 완벽하기보다실수하지만 노력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공무에 바쁜 남편 역시 ‘늦둥이’사랑이 지극하지만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게 가장 큰 아쉬움.하지만 시간을 쪼개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반드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애쓴다. “프랑스 아빠들도 요즘에는 애 키우는 데 아주 관심이 많아졌어요.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남성들이 늘자 프랑스 정부는 최근 남편들의 육아휴가를 허용하는 새 법안을만들고 있습니다.” 수능시험이 치러진 지난 11월,출근시간이 1시간 늦춰지는‘입시 소동’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교육열을 다시금 실감했다는 이들 부부는 “수능시험을 위해 전국민이 동원되는 게아주 인상적이었다.이러한 열기를 보며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 지도 상상할 수 있었다”고놀라워했다.이들은 “그러나 짧은 동안에 이룬 한국의 발전을 볼 때 한국의 교육제도와 수준은 상당히 양호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지나친 조기교육 열기에 대해서는 “부모들이 나서서아이들에게 지식을 강요하기보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스스로개발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부모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을 묻자 크리스티나 여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랑하고 행하라”는 성 아우구스틴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맺었다. 허윤주기자 rara@ ■‘프랑스 교육제도’ 학생 70∼80% 기술인 코스로. 지난해 확정된 2002년도 프랑스의 교육 예산은 4조 30억프랑(한화 640조원).전년에 비해 3.84%나 늘어난 액수로 2002년도 프랑스 정부예산 상승액의 절반이나 된다.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제왕의 몫’을 채어갔다는 질투가 나올 정도로 교육에 대한 투자가 각별하다. 의무교육 제도와 전문기술 교육이 일찍부터 정착된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은 입시 과열과 대학병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 3세부터 시작되는 유아원을 거쳐 만 6세에 5년 과정의초등학교(Ecole Primaile)에 입학,중학교(College) 4년,고등학교(Lycee) 3년의 의무교육을 거치며 기본적인 교양과목은모두 이수한다.대학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 기관에서 전문교육에 들어간다. 첫번째 진로 선택은 중학교 4학년 때 공부를 계속할 학생과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로 나뉘면서 이루어진다.직업교육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빵 가게,정육점,카페 등으로 진출하는 전문 기술인이 된다. 두번의 진로 선택 과정을 거쳐 70∼80%의 학생들이 전문기술인으로 양성된다.진로는 학생의 자질을 바탕으로 지도교사,학부모들의 합의에 의해 큰 마찰없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나머지 30%가 선택하는 학교는 일반대학교(Universite)와그랑제꼴(Grand Ecoles)이다. 이들중 대부분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25% 정도(전체 학생으로로 보면 10% 미만)의 우수 학생들은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다는 그랑제꼴로 진학한다. 그랑제꼴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진학 희망자들은 우선 상경계 1∼2년,이공계 2∼3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졸업까지 보통 5∼6년이 걸린다. 졸업생들은 관공서,기업체의 고급 간부,엔지니어가 된다. 프랑스의 대학은 1968년의 사회개혁 이후 평준화되어 한국과 같이 일류나 이·삼류와 같은 구분이 거의 없다.전공 학과별로 특별히 권위가 있는 대학이 있기는 하지만 공식화된것은 아니다. 허윤주기자.
  • JP “이·박 전대통령 묘 참배”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총재가 새해 1일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묘역을 참배한다.당직자들이 현충탑과 박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하는 계획을 올렸으나 이 전 대통령 묘역도 추가토록 김 총재가 지시했다는 전언이다. 김 총재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3·15 부정선거 하나만 가지고 고약한 분을 만들어놓고 내쫓아 하와이 객지에서세상을 떠나게 했고,이후 민주화하는 사람들이 깎아내리고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탄생이 어려웠다”고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해 왔다. 특히 김 총재는 그동안 ‘기승전결’(起承轉結)론을 언급하며 이 전 대통령을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은 ‘기’起)에 해당하는 인물로 묘사해 왔다. 이에 따라 JP가 임오년 새해 첫날에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키로 한 것은 자신이 줄곧 주장해온 기승전결론의 마지막 단계인 ‘결’단계를 내각제로 매듭짓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총재는 참배식 직후 부인 박영옥(朴榮玉) 여사 등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5일 또는 6일까지 머물며 15일 대선출정식에서 밝힐 ‘뉴JP플랜’ 구상에 들어간다. 이종락기자 jrlee@
  • 원로시인 김구용선생 타계

    시인이자 한문학자인 김구용(金丘庸)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자택에서 별세했다. 79세. 지난 192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49년 잡지 ‘삼천리’에서 시 ‘산중야(山中夜)’‘백탑송(白塔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시(詩)’‘송(頌)’‘구곡(九曲)’‘구거(九居)’등 4권의 시집을 남겼다.노장사상과불교적 세계관에다 서구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자유로운 시적 상상력 등 동서양 사상을 넘나드는 심오한 시세계로 유명하다. 또 4살 때부터 금강산에서 불교와 한학을배우고 22세에 일제징용을 피해 동학사에 들어가 12년 동안 기거하며 경전 및 수많은 동서 고전을 섭렵했다.이를바탕으로 ‘수호전’등 중국 4대기서를 비롯 ‘채근담’등을 우리 말투로 맛깔스럽게 번역했다.56년부터 87년까지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가르쳤고 지난해 발간한 ‘김구용문학전집’으로 지난 13일 제36회 ‘월탄문학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구경옥(具京玉)여사와 장녀 수련(秀蓮),장남 원동(源東·충북대 의대교수) 2남 유동(裕東·독일 유학)씨 등3남매가 있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고 발인은 31일 오전 10시.(02)3410-6910. 이종수기자 vielee@
  • [공무원 Life & Culture] 여소영 대통령·외교부 공식 중국어 통역관

    ‘화교(華僑)보다 더 화교 같은 여자.’ 대통령과 외교통상부의 공식 중국어 통역관인 여소영(26·6급)씨는 자신에게 따라 붙는 이 말이 싫지 않다.외교부 동북아2과 소속으로 중국 외교의 ‘입’역할을 하는 여씨는 ‘중국사람같다’는 말에 오히려 신바람이 난다고 말한다. 지난 5월2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방한한 리펑(李鵬)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오찬 석상.리 위원장의 부인주린(朱琳)여사가 옆에 서 있던 여씨에게 ‘의자좀 밀어달라’고 요청했다.외교관례상 상대국 통역에게는 할 수 없는 부탁이었지만 여씨는 웃으며 의자를 밀어줬다.오찬이끝난 뒤 주린 여사가 여씨에게 다가와 “너무 중국말을 잘하고 분위기도 중국인 같아서 우리 수행원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여씨의 중국말 솜씨와 화교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일화다.여씨는 “나중에 중국대사관 관계자에게서 리펑 위원장도 ‘통역이 우리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그만큼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99년 5월 중국어 통역요원으로 특채돼 외교부에 첫 발을내디딘 그녀의 활동 범위는 대통령과 외교부 통역에 국한되지 않는다.총리실 등 각 부처의 급하고 중요한 대중(對中) 현안이 걸린 현장에 수시로 불려 나간다. “한 마디로 ‘악바리’란 별명이 어울리는 직원이다.사전 준비에 철저할 뿐 아니라 한·중 외교현안 전반을 꿰뚫고 있어 아주 믿음직스럽다.” 대중 외교정책을 총괄하고있는 추규호(秋圭昊) 외교부 아·태국장은 여씨와 같은 통역관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외교부에서 여씨를 높이 평가하는데는 통역이 끝난 뒤 카운터 파트인 중국측이 통역관에 대해 내놓는 한결 같은 평가가 한 몫하고 있다.지난 4월 방한한 다이빙궈(戴秉國)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우리측 관계자들에게 “중국현대어에 정통하고,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여씨와 중국말과의 인연은 20년째다.스스로도 자신은 중국과 전생의 연이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다.중국 고전과 서예에 각별한 관심을가졌던 아버지(呂運日·57·목사) 덕분에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초등학교와 중·고교 과정을 각각 대전과 대구에있는 화교 학교에서 보낸 것.대학도 타이완국립대(국제관계학 전공)로 유학을 갔고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남들이 웃을지도 모르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늘나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93년 대전엑스포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조직위원장의 통역을 맡으면서 통역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여씨는 이때 중국말을 잘하는 자신의 능력과 외교를 접목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씨가 통역관 생활 2년만에 받은 명함만도 두꺼운 명함첩으로 6권분량이나 된다.“한번 맺은 인연은 모두가 소중하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는 여씨는 통역일을 하면서 알게 된 중국인들이 편지 등 연락을 해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상하이(上海)시 사회과학원의 외사판공실 관계자들로부터 최신 단편소설책을 선물받았다고 소개했다. 여씨는 지난해 8월 방한한 우동허(武東和) 외교부 부부장을 수행한 뒤 우 부장으로부터 그녀를 소재로 한 시 한 편을 받았다.우 부장은 최근 펴낸 자신의 시집에 ‘여소영’이란 이름을 소재로 한 이 시를 실었다. “중국어는 고어와 고전이 많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게다가 중국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새로운단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어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혼인 여씨는 그러나 새해 소망들중 결혼은 뒷순위라고말한다.“변화하는 중국어와 중국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도록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學無止境)’는 경구를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는 여씨가 첫 손으로 꼽은 새해 바람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국정홍보처 ‘정부기록사진집’ 제5권 발간

    제2공화국,5·16 등 지난 61년부터 63년까지 3년간 급박하게 돌아갔던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을 담은 ‘정부기록사진집 5권’이 28일 발간됐다.국정홍보처가 보관해온 사진자료를 수록한 이 사진집에는 ▲5·16 및 국가재건최고회의 활동 ▲3·15 부정선거 관련자 특별재판 ▲화폐개혁등 당시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사진 520매가 수록됐다. 특히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제주 해변에서 수영복을입고 포즈를 취한 장면 등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이 다수 포함돼 있다.이밖에도 이방자 여사의 낙선재 입궁,국립극장 개관식 등이 실려 있다. 최광숙기자 bori@
  • [정치 2001] (6.끝)고뇌하는 김대통령

    2001년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고뇌의 한해’이자‘결단의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해 6·15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안겨줬던 데 비해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안으로는 경제 불황과 잇단 비리의혹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과 재·보선에서의 집권당 패배,민주당 내부의 갈등과 분열,‘DJP 공조’ 붕괴 등 각종 시련에 직면했다. 또 밖으로는 조지 W 부시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남북 및북·미관계 악화,기대됐던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무산,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한일관계 경색,9·11 미국 테러사태 등 악재(惡材)가 잇따랐다. 특히 대북 강경책을 내세운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는 물론 그동안 공을 들여온 남북관계까지 덩달아경색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북한은 3월11일 서울에서열기로 예정돼 있던 제 5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일방적으로연기, 남북관계가 6개월여 동안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미국 테러사태 직후인 9월15일부터 18일까지 5차남북장관급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된 데 이어 11월8일부터 14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된 6차 장관급회담도 아무런 성과없이 결렬돼아쉬움만 더해 주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또한 한반도 주변4강외교의 기본 틀을 흔들어 두차례의 한·일정상회담에도불구하고 과제를 남겼다. 국내문제 해결도 쉽지 않았다.전국 7곳에서 치러진 4·26기초단체장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민주당내 일부최고위원과 소장파 의원들은 당과 청와대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쇄신을 요구하면서 김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설상가상으로 지난 9월3일에는 임동원(林東源) 전 통일장관에대한 해임건의안이 가결됨으로써 공동정권의 한 축을 이뤄온 ‘DJP 공조’가 무너졌다. 이어 ‘10·25 보선’에서 또다시 패배함으로써 여권의 내분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다.민주당내 일부 최고위원과 소장파 의원들이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과 박지원(朴智元) 전 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 등을 요구하면서집권당내 갈등은 차기 대선구도와 맞물려 혼미를 거듭했다. 결국 김 대통령은 11월8일 민주당 총재직 사퇴라는 고강도결단을 내렸지만 정국 전개상황은 묘하게 꼬여들고 있기만하다. 오풍연기자 poongynn@. ■이희호여사 ‘튀지않는 내조’.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올해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평생 ‘동지’이자 ‘동반자’로서 조용한 내조(內助)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여사는 국정운영에 바쁜 김 대통령이 챙기기 어려운 분야를 찾아 정성을 쏟았다.정국 소용돌이 속에서도 ▲소외계층 격려 33회 ▲여성관련 간담회 34회 ▲문화·자선행사 18회 ▲청소년·교육관련 행사 9회 등 모두 120여회에걸친 행사를 소리없이 치러낸 것이다, 이 여사는 지난 1월펄벅재단으로부터 사회적 약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한공로로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끝난 올해 각·시도 업무보고에서는 15회에 걸쳐 1,500명과 간담회를 가졌다.이 여사는 간담회에 참석한사회복지직 공무원,의용소방대원,미용사,월드컵 민박 신청자,여성 농업인·경제인,여성 운전자,여성 공무원 등으로부터 민생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들었다. 이 여사가 또 대통령 부인으로서 처음으로 소록도를 방문해 자원봉사회관 건립을 지원하고,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통해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었던 ‘아담 킹’과의 인연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올봄 가뭄이 한창이던 때는 본관 화장실을 절수형으로 고치고,쌀값이 폭락했을 때는 ‘아침밥 먹기 운동’에 동참하면서 청와대 식단도 쌀소비 위주로 바꾸기도 했다. 청와대 안살림을 책임지는 대통령 ‘집사람’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매일 신문 독자란까지 꼼꼼히 읽어가며 대통령에게 여론을전달하고,TV 뉴스를 챙겨 그날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아울러 국빈행사를 포함한 각종 행사의 식단을 점검하는 것도 이 여사의 몫이다. 오풍연기자.
  • 김대통령 연말 정국구상/ 개각 밑그림 ‘장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연말 ·연초 정국구상에 관심이모아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오는 27일 장·차관 송년 만찬을 끝으로 올해공식 일정을 마무리짓고 정국 구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김 대통령은 28일 이후 별다른 일정을 잡지 말도록 관계 비서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홍근(吳弘根)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이달 중순 유럽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김 대통령의 일정이 너무 꽉짜여있었다”면서 “김 대통령은 내년 1월1일까지 구상에몰두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우선 내외신 연두기자회견 및 개각 구상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각 수석실은 김 대통령이 참고할 수있도록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통령은 이같은 공식라인 이외에 각계 인사와 비공식접촉을 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들을 것으로알려졌다. 지난해도 관저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했었다. 무엇보다 김 대통령은 ‘개각’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귀띔이다.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뜻을십분 살리고,흐트러진 민심을 다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은 이 기간 중 개각 시기 및 폭 등 밑그림을 대강 그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한편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성탄절인 이날 청와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손자·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이에 앞서 지난 24일 저녁에는 김홍일(金弘一)의원과 홍업(弘業)·홍걸(弘傑)씨 등 세 아들 부부, 7명의손자·손녀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는 전언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2002관광 월드컵 현장을 가다] 프랑스

    프랑스는 98년 월드컵대회를 치르면서 두가지 큰 성공을 거뒀다.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대 0으로 누르고 월드컵을 거머쥔 게 첫 번째 성공이다.월드컵 승리는 국민단합으로 이어졌다. 두번째로는 프랑스 경제의 급상승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90년대 중반까지 파리시내 곳곳에 세워졌던 ‘세놓음’이라는광고간판은 이 대회를 치르면서 자취를 감췄다.이제는 집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프랑스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프랑스 최대 사회문제의 하나였던 실업률이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되살아 났다. 프랑스 월드컵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총 매출액 2조2,560억원에 수익이 6,000억원이다.입장권 값을 94년 미국 월드컵대회 때보다 낮추고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한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풍부한 문화·관광 인프라,특히 미술·박물관들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프랑스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미술관·박물관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까. 프랑스박물관협회에 등록된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은자그마치 7,000여개나 된다.게다가 파리는 시내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자 미술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박물·미술관은 루브르·퐁피두센터·오르세 같은 잘 알려져 있는 곳에서부터 경찰·레닌·안경박물관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루브르미술관] 16세기 궁전으로 시작됐다가 루이 16세가 베르사유궁에서 주로 생활을 하면서 루브르궁은 미술품들로 채워졌다.1792년 537점의 그림으로 출발해 지금은 서구미술의결정체들이 모여있다.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미술품과 조각품들이 볼거리다.미술관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는 고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명물이다. [오르세미술관] 기차 역을 미술관으로 바꾼 오르세미술관은누구나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다.밀레의 이삭줍기를 비롯해 마네,모네,고흐 등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퐁피두센터] 루브르미술관이 고대미술품,오르세미술관이 근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면 퐁피두센터는 현대 미술품의종합예술공간이라 할 수 있다.전시된 4만5,000여점의 미술품도 모두 수작이지만 ‘짓다만 건물’이라는 이미지를 주는퐁피두센터의 겉모습이 더 눈길을 끈다.흉물스럽게 드러난배관 가운데 파란색은 공기순환로,초록색은 급수관,빨간색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통로,노란색은 배선관이라는 점을 알면 더욱 흥미롭다. [포도주박물관] 포도주의 나라답게 포도주박물관도 있지만잘 알려져 있지 않다.파리의 ‘강남’에 해당되는 파시 전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물의 거리’(rue des eaux)에있는 아담한 박물관이다.루이 13세가 마시던 포도주 저장고를 박물관으로 만들었다.포도 수확에 사용된 각종 기구와 장비,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이 밀랍인형으로 소개돼있다.특히박물관 위에 살던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가 채권자를 피해 박물관의 자그마한 비밀통로를 통해 센강 쪽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10∼20분의 관람이 끝나면 포두주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기메박물관] 프랑스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아시아 유물전시관이다.확장공사 끝에 지난 1월 다시 문을 열었고 한국의 고대 불교유물 등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피카소미술관] 파리시내 마레지구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에서는 건물 안팎에서 피카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피카소의상속자들이 엄청난 상속세 대신 정부에 내놓은 작품들이 미술관을 꾸미고 있다.200여점의 그림,150여점의 조각,1,600여점의 판화 등이 전시돼 있다.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미술관보다 질·양적으로 우수하다는 평이다. [로댕미술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가깝다.정원이 워낙 잘 다듬어져 있어 영화촬영장소로도 애용된다.정원을 거닐면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시민’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파리 박정현기자 jhpark@. ■“축구장은 경기만 하는 곳 아니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파리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서 10㎞ 지점 왼쪽에 나타나는 비행접시 모양의 초현대식 건축물이 그 유명한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다.‘프랑스의 경기장’이라는 뜻이다.생드니시(市)에 있어 생드니 경기장으로도 불린다. 스타드 드 프랑스는 외계인의 대형 비행접시 같은 느낌을준다.축구 경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갖가지 공연,전시,이벤트 행사가 연중 열리고 있는 것이 이 경기장의 특징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곡가 베르디의 ‘아이다'가 지난 9월14일 이곳에서 공연돼 성황을 이뤘다.‘축구장은 경기만 하는곳이 아니다’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경기때는 8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지만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때면 10만명까지 입장할 수 있게 설계됐다.경기 외 수익이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해마다 치러지는 대규모 공연이나 전시·이벤트는 20여개로 평균 200여만명의 관객을 유치한다.지난 10월6일에는 프랑스와 알제리의 친선 축구경기가 열렸고 10월20일에는 모터쇼가 열려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았다.월드컵 대회가 끝난 뒤 활용도 측면에서 가장 성공한 곳으로 꼽힌다. 축구경기나 이벤트가 없는 날에는 ‘프랑스의 또 하나의 자존심’인 스타드 드 프랑스를 구경하려는 내국인과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를 데리고 생드니 경기장을 찾은 미셸 저네여사(50·파리거주)는 “스타드 드 프랑스는 굉장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프랑스인으로서 정말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생드니 경기장은 이제 에펠탑,개선문,루브르박물관,샤를 드 골 공항에 이어 또 하나의 프랑스의 명물이자 상징물로 자리잡았다.경기장 내의 고급 레스토랑 두 곳은 세계적 비즈니스 명소가 됐다.경기장에 펼쳐진 푸른 잔디가 내려다 보이는 회의장도 명물로 꼽힌다. 1층 전시장에는 경기장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대역사(大役事)의 순간들이 전시돼있다.3년 전 파리 월드컵대회의 명장면사진들도 걸어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순간순간과 함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입장권 판매원은 “전시장을 찾는 사람이 하루 평균 300여명”이라고 말한다.전시장 입장료가 성인 한 사람당 38프랑이어서 연간 입장수입만 7억원을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정현기자. ■셍드니시 관광청장 콜롱브리 인터뷰. 프랑스 월드컵대회를 치른 파리·리옹·몽펠리에·마르세유·랑스·보르도·낭트·생에티엔·툴루즈등 10개 도시 가운데 월드컵을 통해 가장 많이 변모한 곳은 생드니시(市)다. 생드니 시청 산하 관광청의 테오둘리차 콜롱브리 청장(사진)은 “월드컵 이후 우리 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50% 이상 늘었다”고 자랑한다.중세성당이 있었던 탓에 월드컵대회 전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생드니시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콜롱브리 청장은 “스타드 드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끼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됐다”고 자랑했다. 그가 꼽는 성공비결은 범정부적 차원의 주변 정화와 축제,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다.콜롱브리 청장은 “시 차원에서 8,000만프랑(144억원)을 투입했고 정부에서 주변시설 정화 등에 50억프랑(1,200억원)을 지원했다”고 말한다.이런 재개발 사업 덕분에 파리 근교 대표적 슬럼가의 하나였던 생드니시의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콜롱브리 청장은 “월드컵대회를 준비하면서 거리 곳곳에는 각종 축제와 거리행사를 열었고,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불러 음악축제를 개최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고 말했다.프랑스의 대명사인 예술을 스포츠와 연계시킨 것이다. 생드니시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콜롱브리 청장은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3년여동안 지역학생들에게 유럽의 축구팀을 자세하게 소개했고 생드니시와 스타드 드 프랑스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를 집중 교육시켰다”고 말했다.초등학교 학생들은 월드컵을 주제로 외국학생들과 펜팔하면서 대외 홍보를 맡았다.주민 모두가 홍보대사였던셈이다.
  • THE QUEEN 1월호 발행

    고급 리빙 문화 정보지 ‘THE QUEEN' 1월호가 22일 발행됐다.신년을 맞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꾸민 이번호에는새해 맞이를 위한 밀라노 별장과 뉴욕의 오리엔탈풍 모던인테리어를 소개했다. 이와 함께 2002 패브릭 트렌드,오리엔탈풍의 리빙 소품컬렉션,새 희망을 주는 오브제,신년 모임을 위한 테이블세팅 등 품격있는 리빙& 인테리어 기사를 마련했다.또 방송인 이인용의 ‘델타 하우스'와 건축가 양진석이 개조한 53평 아파트,‘일 마레' 안도일 사장의 심플 스페이스를 찾아가 이들의 남다른 인테리어 감각을 엿보았다. 1월의 테마 ‘화이트'를 컨셉으로 꾸민 ‘하얀 실내의 정갈한 멋’‘차세대 아나운서 2인의 화이트 드림'‘하얀 꿈이 담긴 레스토랑’ 등의 기획기사도 눈길을 끈다.트렌드리더를 위한 패션 기사로,패션 포인트 ‘명품 브로치’,품격있는 명품 지갑,부드러운 남성을 위한 머플러,미리 살펴본 2002 봄·여름 룩 등 앞선 감각의 패션 정보를 화려한화보에 담았다.또 겨울철 필수 선택,자외선 차단 제품과스키장에서의 피부관리,남성을 위한 수분공급 제품 등 겨울철 피부관리를 위한 뷰티정보도 꼼꼼하게 알아봤다. 이밖에 이희호·한인옥·정영자 여사가 직접 들려주는 따뜻한 겨울나기와 새해 희망을 비롯,SBS 오락 프로그램의프로듀서를 맡아 방송 복귀하는 주철환 교수,컴필레이션음반 ‘드라마’를 낸 이미숙,중국의 모계사회를 다녀온소설가 이경자,‘꽃섬’의 감독 송일곤,재충전을 마치고활동 재개하는 명세빈과의 인터뷰 기사도 놓쳐서는 안 될읽을거리.정가 6,500원.
  • 집중취재/ (중)미제사건도 파헤쳐야 한다

    ***‘공권력의 살인’ 진상 밝혀라. “용서할 준비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그들이 진실을 밝히고 참회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과거 무자비한 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뼛속 깊이 사무친 한을 안고 있지만 가해자가 확인되더라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공권력의 죄상을 밝히고 국민을 위하는 공권력으로 다시 태어나기만을 바란다. 1973년 간첩단 사건과 연루돼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망한 ‘의문사 1호’ 서울대 최종길(崔鍾吉·당시 42세) 교수의 아들 광준(光濬·37·경희대 법대 교수)씨는 23일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로 아버지가 중정 직원에 의해 타살됐다는 사실이 일부 드러났지만 공권력이 회개해야진정한 진실 규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최 교수의 유족이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선친이 의문사했을 때 9살이던 광준씨는 “중정의 감시가 지독해 의혹을 제기하기는커녕 추모 미사를 여는 것마저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친구들의 차가운 시선을견디지못해 학교를 다섯번이나 옮겨야 했고 장례식 때에는문상객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 최 교수의 동생 종선(鍾善·54·재미 사업)씨의 운명은 더비극적이다. 사고 당시 중정에 근무하며 형을 자진 출두시켰던 장본인이 종선씨였다. 종선씨는 ‘호랑이 굴’인 중정에서 81년까지 이를 악물고근무하면서 진실을 밝히려 했다. 퇴직 이후 중정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적 충격을 가장,병원에 입원해 형의죽음에 대한 정황을 꼼꼼히 기록해 ‘산자여 말하라,나의형 최종길 교수는 이렇게 죽었다’라는 수기를 지난 3월 출간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회복을 위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등 유신철폐 운동을 주도하다 75년 8월 경기 포천군이동면 약사봉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장준하(張俊河·당시 57세) 선생의 유가족들도 눈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75)는 현재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쓸쓸히 지내며 진실을 기다리고 있다.요즘도 5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서 살고 있는 둘째아들 호성씨(49)를 데리고 약사봉을 둘러본다. 선친의 뜻을 잇기 위해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는 호성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형은 취직길이 막혀 싱가포르로 도망치듯 떠났다”면서 “군사정권시절에는 정보기관원과 경찰이 우리 집에서 상주했다”고회고했다. 최근 안기부의 간첩 조작사건으로 드러난 ‘수지 김 살해사건’의 유족들 삶은 산산조각난 상태다. 수지 김(본명 김옥분)의 여동생 옥임씨(40 ·충북 충주시칠금동)는 “어떤 보상으로도 국가권력의 횡포에 희생당한언니의 억울함을 풀 수 없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수지 김의 어머니와 7남매 가운데 맏딸 옥녀씨(당시 42세)는 수지 김이 살해된 87년 분을 못이겨 정신이상으로 숨졌다.둘째 만식씨도 연일 술로 화를 달래며 살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옥임씨는 “오빠는 언니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보다 울분을 참지 못해 거리로 뛰어나가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넷째 옥자씨(48)와 여섯째 옥임씨,막내 옥희씨(34)는 사건이후 남편에게 버림당한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으며, 다섯째 옥경씨(44)는 반찬가게를 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옥임씨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어떻게 14년동안이나 살인사건을 공안사건으로 은폐·왜곡할 수 있느냐”면서 “공소시효를 들어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의 공권력이 민초들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다음달 2일 충주시 한 사찰에서 홍콩 수지 김의묘에서 떠온 흙으로 ‘천도재’를 열 계획이다.옥임씨는 “사건의 진상은 밝혀졌지만 아직 사죄 전화조차 받지 못했다”고 흐느꼈다. 군, 경찰,안기부 등에 의해 자식을 잃은 의문사 유족들은지난 17일부터 1주일 동안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위원장실을점거한 채 양승규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425일 동안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면서출범시킨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유족들은 “공권력이 진상규명 작업에전혀 협조하지 않아 의문사 규명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권력에 의한 아들의 타살을 밝히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자살한부모도 있고, 유서를 품고 다니며 죽을 각오로 진상규명에 매달리는 부모도 있습니다.언제쯤 우리의 한이 풀릴까요?” 농성장에서 만난 유족들은 수백번을 되풀이했을 법한 자식들의 의문사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이창구 이영표기자 window2@. ■입법추진 함승희의원 “사건조작 알게 된 날부터 시효 적용”. 최근 사회적 조명을 받고 있는 서울대 최종길(崔鍾吉) 교수 의문사 사건,수지 김 살해 은폐 사건 등과 같은 ‘반(反)사회·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이 연내에 추진된다.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23일 “반인륜·반사회적 범죄는 기존의 공소시효 적용 대상에서제외시켜 사건의 은폐 및 조작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를 적용,처벌케 하는 내용을 담은 가칭 ‘반사회·반인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특별조치법’의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 의원은 이번 주부터 여야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이르면연내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함의원은 “의도적 증거조작이나 은폐사건에 대해선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입법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춘규기자 taein@.
  • ‘벽안의 산타’ 32년 한국고아 사랑

    ‘벽안의 산타할아버지’.주한 미7공군 소속 303정보부대 장병들이 32년동안 한국의 고아들에게 사랑을 전해 감동을 주고 있다.부대원들은 지난 22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푸짐한 선물을 원생들에게 안겨주는 ‘사랑나누기 행사’을 가졌다. 부대 장병들과 한국 고아와의 인연은 지난 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장병들이 미국인 선교사 화이트 제인(66) 여사가 충북 제천에서 운영하는 ‘영육아원’에 창고를 지어준 것이 계기가 됐다.제인 여사는 63년 한국에 건너와 영육아원을 설립,독신으로 살면서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부대원들의 봉사는 매월 이뤄지고 있다.30∼40명의 부대원들이 영육아원을 방문,시간을 같이보내는 것 부터 성금을 모아 학용품 등을 사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특히 99년에는 바자회를 열어 마련한 3만달러로 영육아원 별관을 지었다. 현재는 초등학교 원생들을 등·하교를 위해 ‘스쿨버스사주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3만달러 가운데 현재 1만8,000달러를 모았다. 앳된 모습의 니콜 완타 병장(22·여)은 “귀국뒤에도 선배들처럼 아이들과의 인연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강동형기자 yunbin@
  • 한겨레신문 초대사장 송건호선생 타계

    지조있는 지식인이자 참언론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져온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이 21일 오전 6시 서울 은평구 역촌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5세. 고인은 지난 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정보기관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씨병이발병,8년째 투병 생활을 해왔다.충북 옥천 출신인 고인은민주화운동가로,현대사연구가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형 지식인’으로 존경받았다. 서울대 법대 재학중인 1953년 대한통신에 입사,언론계에첫발을 들여놓은 고인은 자유신문 외신부장,한국·조선일보 논설위원,경향신문·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70년대 중반부터 언론민주화운동을 펼쳐온 청암은 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초대 사장에 취임했다.청암은 그뒤 94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40여년동안 ‘언론외길’을 걸었다. 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언론자유를 외치는 젊은 기자들의 사표를 수리하라는 사주를 향해 “부하 기자들의목을 치면서 더 이상자리를 지킬 수 없다”며 동아일보를 떠난 청암은 이후 언론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동아일보를 박차고 나오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고생했으니 이제 청와대로 오시오”라며 온갖 유혹의 손길을 뻗쳤으나 그는 권력과는 한 치의 타협도 없이끝까지 지조를 지켰다. 84년 해직언론인들을 규합해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초대의장에 취임한 청암은 대안매체로 ‘월간 말’을 창간했다. ‘행동하는 지성인’의 대명사격이었던 그는 60년대에 ‘드골평전’‘한국지식인론’을 쓴 바 있다.또 해직기자 시절을 전후해 20여 종의 저작물을 내놓았는데 ‘민족지성의 탐구’‘한국민족주의의 탐구’‘한국현대인물사론’‘한국현대사론’ 등이 그것이다.언론자유투쟁과 저술활동 공로로 청암은 금관문화훈장,심산상,호암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장례식장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오전 직접 빈소로 전화를걸어 부인 이정순(李貞順·71) 여사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와 한광옥(韓光玉) 민주당대표,한완상(韓完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남궁진(南宮鎭) 문화부 장관,최학래(崔鶴來) 한국신문협회회장과 언론사 대표 등 각계 인사들도 밤새 빈소를 찾았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한국 언론의 정신적 기둥을 잃었다”면서 “선생의 삶은 고단했지만 그것은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언론의 역사가 됐다”고애도했다.전국언론노동조합도 “선생은 전국 2만 언론 노동자들의 스승이며 민족의 지성이었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씨와 준용씨 등 2남4녀.장례는 24일오전 8시 사회장으로 치러진다.장지는 광주 5ㆍ18묘역.(02)3210-2400,(02)710-0201. 정운현기자 jwh59@. ***정부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1일 고 송건호(宋建鎬)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의 빈소에 오홍근(吳弘根) 공보수석을보내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했다.정부는 이날 송 전대표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추서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市·區의원 초대석/ 김판길 예결특위장

    서울시의회 예결특위 김판길(金判吉·도봉1·민주) 위원장의 얼굴에 모처럼 안도감이 묻어났다. 물경 11조6,700억원을 넘는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깔끔하게 처리,시의회와 집행부로부터 “위원장의 균형잡힌 조정능력이 돋보인특위”였다는 평가를 받은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감안,사업의 연속성이 훼손되지 않도록계속사업은 철저히 내실을 기하되 가능한 한 신규 사업은억제했다”며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당초 구상대로 규모와 균형 면에서 잘 짜여진 예산”이라고 자평했다. “감액 규모를 더 늘리지 못한 점과 소속 의원들이 요청한 지역사업 예산을 원칙대로 칼질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그는 “월드컵 등 국가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치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그간의고충을 토로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중책 예결특위 위원장으로서 이같은 현실 때문에 평소 지론인 ‘강남·북 불균형 해소’를위해 예산을 따로 배정하지 못한 점도 그가 마음에 걸려하는 대목. 추진력이 뛰어나 ‘불로저’란 별명을 얻은 그는일을 취미로 들 만큼 부지런한 스타일로 부인 이재금(李載金·62)여사와 슬하 4남2녀를 두고 있다. 심재억기자
  • 딸의 눈에 비친 ‘인간 여운형’

    ■나의 아버지 여운형-김영사 펴냄. “선생님,이번 경기에 나가야 합니까. 나가지 말아야 합니까.”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나가는 것은 원통하지만 나가야 해.나가서 꼭 이김으로써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보여주어야 해.” 1936년 여름 어느 날.독일 베를린 올림픽대회 참가여부를놓고 고민하던 마라토너 손기정은 한 사람을 찾아갔다.몽양여운형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일화는 몽양의 둘째딸 여연구여사가 지은 ‘나의 아버지 여운형’(김영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가 아는 몽양은 좌우합작을 추진한 정치 지도자 혹은레닌 손문 김일성과 교유한 중도파 사회주의자 정도다.몽양에 대한 조명이 미흡한 현실에서 이 책은 묻혀있는 ‘인간여운형’을 당당히 복권시킨다.딸의 눈에 비친 몽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숨어있는 역사적 진실도 캘 수 있다.또 딸이 본 아버지 몽양의 자상함과 부성을 느낄 수있어 훈훈하다. 물론 저자가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까지 맡았던지라 김일성주석이 지나치게 미화된 느낌이라든가 반미의시각이 앞선 느낌도 든다. 또 북한의 정치무대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입장으로서 역사적 진실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하지만 가려진 몽양의 삶에 초점을 두면서 읽으면 큰 장애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책은 몽양의 일대기를 추적하고 있다.일제와 싸우다 투옥된 이야기,해방 후 분열된 정파를 화해시키기 위해 동부서주한 이야기 등이 상세하게 나온다.그 과정에서 당시의 이데올로기 지형도나 국내 정파들의 입장등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박헌영으로 대변되는 공산당으로부터는 ‘기회주의자’라고 비판받고 민족주의 진영으로부터는 좌파라고 지적받은 몽양의 정치적 입장은 뒤집어 보면 화합을 유지하려는 중도파의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아울러 신탁통치를 둘러싼 백범김구선생과의 노선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아꼈던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또 앞서 말한 손기정씨와의 일화나 일장기 말소가 몽양이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라든가 1940년 히로히토 천황을만나 당당하게 담판을 벌인 일화 등은 새로 접하는 사실들이다. 이 책은일본 잡지 ‘통일평론’에 연재된 수기를 신준영‘민족21’편집장이 편집한 것이다. 말미엔 신준영씨가 몽양의 세째딸 여원구씨와 가진 인터뷰와 몽양이 김일성주석의 회담기록을 덧붙였다.1만9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3代째 항일운동…소송동참 기쁩니다”

    “반세기 동안 묻혀져왔던 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송사건에 동참하게 돼 기쁩니다.방한기간 중 위안부 및 징용 소송사건을 널리 홍보하고 한국 관련단체로부터 지원도 받고 싶습니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외할머니,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진행중인 ‘일본군위안부 및 징용 피해’ 소송의 원고측 변호인단에 합세한 재미한인 변호사가 14일 방한했다.주인공은 지난 86년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된 미국 최대의 아시아계 법률회사 ‘림,루거앤드 김’의 공동대표인 크리스토퍼 김(49)변호사. 김 변호사는 3대에 걸쳐 80년 넘게 ‘일본과의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김 변호사의 외할머니 홍인명(1898∼1988)여사는 국내는 물론 중국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만세운동을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1921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재미교포 사회에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을 전담해 ‘만세 할머니’로 유명했던 인물.홍 여사의둘째사위이자 김 변호사의 아버지 패트릭 김씨(71년 작고)는 2차대전당시 미 육군으로 참전,필리핀 등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 김 변호사가 공동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미국에서의 ‘위안부소송’은 일제의 성노예 피해자들이 미국법정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 최초의 소송으로,한국 대만 필리핀 중국 등 4개국 피해자 15명이 각국의 피해자들을 대표해 제소한 집단소송이다.작년 9월 18일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제소하였으나 일본정부가 금년 3월 소송기각 신청을 내고 지난 10월 연방법원이 소송기각 판결을 내려 현재 원고측이 항소중이다.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근본적인 인권문제로 접근하고 있으며,결과를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김 변호사 일행은 한국내 구 일본군 위안부 관련단체 및 당국자들을 방문,지원을 요청하고 15일밤 출국할 예정이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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