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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윤기 행정처장 권한대행 내정자

    20일부터 재판 업무로 복귀하는 손지열 대법관의 뒤를 이어 법원행정처장 권한대행으로 내정된 장윤기(45) 창원지법원장은 1975년 임관한 이래 주로 대구와 경남지역에서 근무한 ‘향판’으로 지역의 신망이 두텁다. 유럽인권협약과 외국헌법을 연구해 구속영장 실질심사제와 사회보호법 및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의 효력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돌연사한 근로자에 대해 연장근무로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사망의 원인이었다고 판단,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여러 차례 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관심을 보였다. 취미는 동양고전 읽기와 산책. 가족은 부인 정현숙 (51)여사와 2남 1녀.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올브라이트, 시트콤 출연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된 매들린 올브라이트(68)가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시트콤에 배우로 출연해 화제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측도 18일(현지시간) “여사가 시트콤 ‘길모어 걸즈’에 출연한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학자와 외교관으로 지내온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모어 걸즈의 열성 팬이라는 올브라이트는 “대사를 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야 알았다.”면서 “출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과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서 일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며 흡족해 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3)

      사연 : 남편과 얘기할 틈 없는데 결혼한 지 6년이 되는 가정주부입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직장 성격상 매일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옵니다. 남편은 퍽 양순하고 가정에도 관심을 갖는 성격이지만 집안일에 관해 얘기할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엔 자세한 얘기를 해줘야지 하고 날마다 벼르지만 1주일이 지나도 기회가 안옵니다. 도대체 맑은 정신으로 대화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술이 덜 취했을 땐 그 분은 주로 자기 얘기만 합니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얘기에 그냥 나도 말려 들어 정작 해야 할 얘기는 못하고 맙니다. 그분에게 금주를 시키거나 직장을 옮기게 할 자신은 없습니다. 이제 아이까지 생겼는데 그분의 관심은 가정적인 면에서 점점 멀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서울 성북동 길정자> 의견 : 마음의 고향이란 증거예요 당신의 남편은 서울의 전형적인 월급쟁이인 것 같군요. 말은 하지 않지만「샐러리맨」으로서의 좌절감, 압박감을 수시로 느껴야 하는 가엾은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 마침 술을 하실 줄 안다는 것은 당신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밖에서의 여러 불쾌한 일을 술로 풀지 못하면 심하면 성격파탄자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합니다. 술이 덜 취했을 때 그분이 주로 자기 얘기를 한다고요? 그것이 바로 그분이 당신을 마음의 고향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안정될 때까지 해야 할 가정적 얘기는 혼자서 삭이세요. 그리고 열심히 그분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Q> [ 선데이서울 69년 3/9 제2권 10호 통권 제24호 ]
  • [18일 TV 하이라이트]

    ●대발견 아이Q(EBS 오후 8시5분) 비타민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것인지, 또 너무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는지 등 비타민에 대한 궁금증과 해답을 찾아본다. 아이들의 인지능력 발달과정과 대인관계 능력을 발달시키는 상징놀이에 대해 ‘아기 실험실’에서 알아본다.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SBS 오후 11시5분) 가수 전혜빈이 털어놓는 윤도현에 대한 느낌, 꽃미남 스타 정경호가 밝히는 키스신 촬영비화, 양동근 에게 업혀가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맡은 머리냄새를 잊을 수 없다는 이재은의 숨겨진 얘기, 김용만이 폭로한 신동엽의 배 감추기 기술, 정경호가 고백하는 김용만의 편의점 사건 등이 잇따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신병을 모집하기 위해 군에서 직접 개발한 전쟁게임 때문에 미국이 시끄럽다. 이 게임은 미국 차트 4위에 오를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기는 군에서 사용하는 무기와 장비, 이라크 전쟁 상황을 똑같이 재현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게임과 전쟁을 청소년들이 혼동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비밀남녀(MBC 오후 9시55분) 혼자 술을 마시던 영지에게 도경이 다가와 힘내라며 다독여 준다. 영지는 도경에게 준우를 사랑하긴 하지만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준우는 영지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데리고 나간다. 준우는 영지를 사랑하지만 그동안 비겁하게 감추고 있었다며 그렇게 살기 싫다고 말한다.   ●TV소설 고향역(KBS1 오전 8시5분) 순덕이 철기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홍철은 송 사장과 만나 대책을논의한다. 선경이 자신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 순덕은 어린 선경을 떠올리며 애틋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한편 병원으로 송 사장을 찾아온 금자는 얼떨결에 황 여사와 만나 모진 수모를 당하는데….   ●웨딩(KBS2 오후 9시55분) 세나는 슬픔을 내색하지 않은 채 애써 담담하게 숙희의 장례를 치르는 승우가 걱정스러운데, 승우는 세나의 위로에 그제서야 마음 편히 눈물을 흘린다. 소식을 듣고 내려온 진희는 분향만 마치고 서둘러 떠나려 하지만, 그런 진희를 윤수와 만나게 해주기 위해 따라나서는 세나를 오해한 승우는 기분이 언짢아진다.
  • [어떻게 지내세요] 방송기자 1호 문제안씨

    [어떻게 지내세요] 방송기자 1호 문제안씨

    “방송이나 신문에 사용되는 말과 글은 초등학생이나 노인들에게도 쉽게 전달돼야 합니다.” ‘방송기자 1호’를 아시나요? 문제안(86)씨가 바로 주인공이다. 문씨는 8·15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초대 방송기자로 활약하면서 광복의 현장을 우리말로 생생하게 취재·전달해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이승만 박사의 귀국을 특종보도했으며, 남로당 박헌영 인터뷰 등 격동의 현장을 구석구석 누볐다. 아울러 6·25 당시에는 서울신문 종군기자로 활약하면서 정전협정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또한 한글 타자기 개발로 유명한 공병우 박사와 최현배 박사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한글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글학회에서 미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글 전도사’로 남다른 의욕을 과시한다. 한글학회에서 문씨를 만났다.“마라톤의 손기정 선수와는 양정고 같은 반에 있었지. 당시 한글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장지영 선생께서는 우리들에게 일주일에 1시간씩 몰래 한글을 가르쳐 주셨어. 숙직실에서 밤새며 책을 만들고….”라고 회고했다. 또 “장 선생님은 강의 마지막날 ‘한글책을 잘 간직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꼭 전해 주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렸지. 요즘처럼 무슨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어.”라고 당시의 한글사랑을 술회했다. 방송기자 1호가 된 사연에 대해 “1942년에 경성중앙방송국 단파방송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지.” 하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경성중앙방송국은 기술과에 근무하는 몇몇 사람이 도쿄방송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반도와 만주, 중국 등지로 송출했지. 그러던 어느날 기술과 직원 한 사람이 미 샌프란시스코 방송을 청취하게 됐는데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에 밀리고 있다는, 비밀이나 다름없는 내용이었지. 이런 소문은 기술과 직원들을 뛰어넘어 장택상씨 등 지식인들 사이에도 급속히 퍼졌어. 당연히 일본 경찰이 수사를 했고 기술과 직원 등을 비롯해 200여명이 잡혀 갔어. 그러자 아나운서가 모자라 공채를 통해 방송국에 입사했지. 때마침 광복이 되면서 우리말로 보도하는 방송기자가 필요해 그 1호가 된 셈이지.” 문씨는 45년 9월9일 경성방송국이 “지금부터 우리말로 시작합니다.”라는 감격의 멘트와 함께 첫 방송기자가 됐다. 한 달여 만에 이승만 박사의 귀국을 특종보도하는 행운을 안았다. 이후 조선통신 경향신문 자유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등을 거쳤다.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66년부터 서라벌예대를 시작으로 74년 수도여사대,79년 원광대 교수 등을 각각 지냈다.87∼99년에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종군기자로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63년 최우수문화영화상(남대문),96년 제18회 외솔상(한글운동 실천부문)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종군기 남북삼천리’ 등 13권을 남겼다. 건강관리를 위해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며 대한승마협회 부회장과 스키·요트협회 이사를 지낼 만큼 평소 운동을 좋아한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부고]

    ■ 서원우 서울법대 명예교수 서울대 법대 서원우 명예교수가 16일 오전 8시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고인은 한국공법학회장과 한국환경법학회장, 한국부동산법학회장, 기업활동규제심의위원장, 서울대 법대 학장, 동아시아행정학회 한국지회장 등을 지냈다. 평생 행정법학의 연구에 헌신했으며, 특히 일본과의 학문 교류에 크게 기여해 지난 7월 일본 나고야대학으로부터 한·일 법 문화 교류에 앞장선 공적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이두영 여사와 덕주(㈜아트랜드 대표), 상교(〃 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9일 오전 8시.(02)2072-2091. ■ ‘신의 아들’ 만화가 박봉성씨 만화 ‘신의 아들’로 유명한 만화가 박봉성씨가 15일 오후 4시30분 별세했다.56세.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4년 ‘떠벌이 복서’로 데뷔했다.1983년부터 1987년까지 총 37권에 달하는 ‘신의 아들’을 집필해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씨와 함께 80년대 만화 붐을 일으켰다. 고인은 부산예술문화대 만화학과 겸임교수, 한국만화가협회 22대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2003년 동료 작가들과 만화 콘텐츠 전문기업 ‘대한민국 만화중심’을 설립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권복녀씨와 2남1녀. 발인 17일 오후 3시,011-9909-3095. ●정원모(전 삼성물산 상무)형모(전 대림산업 부장)이모(한국은행 금통위실장)정모(소망화장품 천안대리점장)학모(삼성SDS 수석)씨 모친상 홍의경(전 대우전자 부장)씨 빙모상 16일 인하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32)890-3191 ●박황(전 한일은행 심사부장)씨 별세 준(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균(서울농자재 이사)영(전 동화은행 화성지점장)미애(정치과원장)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03 ●윤찬열(자영업)동현(명인설계 대표)용현(국방부 사무관)용호(자영업)씨 부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2 ●정동천(SBS 제작본부 부국장)씨 부친상 16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2650-2741 ●서대원(퍼시픽림 인터내셔널 대표)씨 빙모상 김정은(영화배우)씨 외조모상 15일 건국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2030-7903 ●정동건(라포 부사장)동주(세계여행사 대표)동신(라포 전무이사)동인(일본 월드트래블 대표)일순(라포 대표)씨 모친상 정환상(클라라 대표)홍준기(신라CC 회장)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6 ●주수도(한국무역협회 부산지부장)영화(사업)영봉(〃)영일(두산중공업 총무부)씨 부친상 16일 경남 마산삼성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55)290-5649 ●정용주(건국대 산학협력단 충주지부 행정실장)씨 모친상 이진성(충주 대원고 교사)씨 빙모상 16일 건국의료원 충주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43)840-8496 ●한성규(전 동국대사대부고 교장)명규(용인대 교수)씨 모친상 김경남(동국대사대부속여중 교사)김봉옥(언남중 〃)씨 시모상 승훈(현대모비스 직원)씨 조모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93 ●오화중(사업)석중(신성건설 주택사업부 과장)점숙(현대자동차 〃)인숙(사업)씨 부친상 김병규(사업)홍성환(〃)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64 ●김인범(진안테나시스템 대표)씨 상배 지훈(대만 거주)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010-2236 ●전동성(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씨 모친상 16일 적십자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725-7099 ●이목희(열린우리당 의원)씨 빙부상 16일 인하대부속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32)890-3199 ●송인득(MBC 아나운서국 부장)씨 부친상 16일 일산병원, 발인 18일 오후 1시 (031)908-1599 ●이창우(전 파주시 부시장)흥우(고양시청 근무)응우(우정건설 대표)씨 모친상 16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백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선영 (031)919-0899
  • 둥글둥글 통통한 여인네들 정겨워라

    동화처럼 순수하고 천진한 세계가 넘치는 그림을 그리는 고 장욱진 화백의 15주기 기념전이 장 화백이 살던 경기도 용인시 고택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의 주제는 ‘장욱진이 그린 여인상’. 그의 여인들은 섹슈얼한 분위기의 ‘여성’이 아니다. 아내와 어머니, 딸 등 자신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들을 택했다. 그림 전체를 차지하는 여인의 당당한 구도와 녹색주조의 화면은 여인들의 강렬한 눈매와 함께 우리를 긴장시킨다. 힘차고 건강한 생명력이 꿈틀댄다. 생전에 그는 10여점의 여인상을 그렸는데 이번 전시에는 그가운데 8점의 유화가 선보이고 있다. 커다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두손을 마치 불자들의 수인(手印)형태를 하고 있는 ‘여인상’은 부인 이순경(87)여사를 그린 작품. 커다란 다리가 붉은 황토를 굳게 밟고 서 있는 모습이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염원이 느껴진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처음 공개되는 ‘나무와 여인’‘어머니상’등 2점이 눈길을 끈다. 까치 한마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큰 나무아래 강아지와 함께 서 있는 여인을 그린 ‘나무와 여인’은 고향같은 존재로 생각했던 화백의 어머니 모습. 실존의 차원을 넘어 민화와 같은 전통미술의 맥이 연결된 작품이다. 또 둥글둥글하면서도 통통한 여인의 살짝 올라간 손가락이 돋보이는 ‘어머니상’은 다소 성스러운 분위기의 다른 작품과 달리 부인의 애교가 느껴지는 화사한 그림. 불명(佛名)이 진진묘인 부인의 기도하는 모습을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한 ‘진진묘’ 등에서는 불심이 가득한 부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고 장 화백의 둘째딸 희순씨는 “그림과 가족이 생활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생활을 책임졌던 저의 어머니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셔서 이런 애틋한 마음을 화폭에 담으신것 같다.”고 말했다.23일까지.(031)283-1911.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광주 방문… 한미동맹 강화 주력”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가 1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나란히 기자회견을 가졌다. 버시바우 대사는 15일 출국을 앞두고 있으며, 이 대사는 이날 워싱턴에 부임했다. 각각 열린 회견이었지만 두 신임 대사는 현재의 한·미 관계가 매우 좋다는 평가와 함께 주재국 국민 속으로 다가가겠다는 약속, 크리스토퍼 힐(현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전 주한대사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지목한 점 등 세 가지 공통점을 보였다.●“반미 감정은 이견·오해서 나온것”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국무부 5층 한국과 회의실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났다. 버시바우 대사는 인사말을 통해 “한·미동맹은 지역과 세계의 변화에 맞춰 현대화라는 과정을 겪고 있다.”면서 “양국간 동맹을 지탱할 강력한 의견합치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내 반미감정 논란과 관련,“엄청난 규모의 강력한 반미감정은 없다고 본다.”면서 “일부 정책에 대한 이견과 미국의 의도에 대한 오해 등에서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전국을 여행하며 각계각층의 한국인을 만나 한·미관계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광주를 방문하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방문할 것”이라며 “당시 실제상황(미국의 역할)에 대한 견해가 어떻든간에 큰 비극이었으므로 희생자를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회견 말미에 부인 리사 여사를 불러 자리를 함께했다. 보석공예가인 리사는 다음주 인사동에서 한양대 금속공예과 동창회가 주최하는 공예전에 참가하기로 예정돼 있다며 문화 외교관으로서 적극적인 활동 의지를 보였다. 버시바우 대사와 리사 여사는 각각 16,15세 때였던 1968년에 처음 만나 1976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버시바우 대사는 16일 서울에 도착,17일 청와대에서 신임장을 제정할 예정이다.●“카라반 여행 부활하겠다” 이날 오전 11시 워싱턴 인근의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이태식 대사는 오후 2시부터 대사관저에서, 다시 3시30분부터는 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견을 가졌다. 이 대사는 북한 핵 문제와 한·미 군사동맹 등 안보 관련 사안은 올해 큰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통상·문화 분야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 양국이 포괄적 동맹관계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특히 한·미 무역 규모가 700억달러에 이르렀기 때문에 양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조속히 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한·미 양국의 대사가 함께 보름 정도 전국을 순회하는 ‘카라반’이라는 행사가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이를 다시 살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이 대사와 버시바우 대사가 함께 각주를 돌며 한·미 안보 및 경제통상 관계에 대해 관심있는 미국인을 상대로 노변정담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대사는 이날 오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참배하는 것을 첫 일정으로 잡았다. 이 대사는 11월 안에 신임장을 제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dawn@seoul.co.kr
  • 마이어스 민망한 ‘부시찬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지명한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을 둘러싸고 ‘색깔’ 논쟁이 가속화되면서 그녀와 관련한 과거의 기록들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도서관과 문서위원회가 공개한 2000 페이지 분량의 공식 문서와 개인 노트 등의 자료를 소개하면서 마이어스가 부시 대통령의 열성 팬이었다고 보도했다. 마이어스는 지난 1997년 7월 당시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51회 생일을 맞자 “당신은 대단한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역대 최고의 주지사”라면서 “위대한 일을 계속하라.”는 찬사를 담은 편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어스로부터 이같은 생일 축하를 받은 뒤 부시 주지사는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당신의 우정과 솔직함에 감사한다.”면서 “앞으로도 현명한 충고를 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답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마이어스가 이끌었던 텍사스 로터리 위원회의 회의록 등이 포함된 자료에 마이어스의 법률적 사고를 보여주는 대목은 거의 없으며, 부시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밀감을 보여주는 자료만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마이어스가 대법관으로 지명받을 만한 자격은 없으며, 대통령의 법률가로서 충실하게 봉사해온 오랜 친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부시 대통령이 보수 색깔이 분명치 않은 마이어스 고문을 대법관으로 지명한 데 대해 미 상원의 공화당 의원 가운데 절반 가량이 반대 또는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다음달로 예상되는 상원 인준이 쉽지 않을 것으로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로라 부시 여사가 직접 남편을 거들고 나섰다. 로라는 11일 NBC의 토크쇼에 출연, 진행자로부터 “여성이 (대법관)지명자가 되도록 밀었느냐?” 는 질문을 받자 “맞다.”고 답했다. 로라는 마이어스 지명자가 비판을 받는 것이 성차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해 마이어스에 대한 자격시비를 남녀 차별로 몰고 갔다.dawn@seoul.co.kr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2)

      사연 : 지나친 어머니의 간섭 세상의 어머니들은 왜 그리 눈치가 없을까요. 저는 결혼 9개월의 새색시입니다. 저는 무남독녀 외딸이고 남편은 7남매의 넷째. 저의 부모님이 외로우실까 보아 저희는 살림을 친정에서 차리기로 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순조롭게 되어 나가고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너무 자상한 관심이 요즘은 귀찮은 간섭으로 변해가는 것이 탈이에요. 밤이면 불 끄고 일찍 자라고 성화이시고, 아침에는 사위가 식사를 많이 안 든다고 꾸중이십니다. 아무 때나 저희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일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아무튼 우리 두 내외를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서울 성북동 이경아> 의견 : 어서 아기를 낳아드려요 하루빨리 아기를 낳아 드리세요. 그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거예요. 부모의 눈에는 6순의 자식도 어린애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아요. 따님을 시집 보낸 지 벌써 9개월이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따님을 어른으로 인정하시기 싫으신 거예요. 살림을 따로 났더라도 그럴텐데 더구나 같은 집안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아기를 얼른 낳아 드리면 싫더라도 새 사실 새 사태를 인정하시게 될 거예요. 그러고 나면 어머니의 관심은 모두 손주에게로만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오히려 따님과 사위에게 무관심한 어머니를 서운하게 생각할 걸요. 당신은 새 귀염동이 아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어머니와 다투지 않을 마음의 준비나 해두시죠. <Q> [ 선데이서울 69년 3/2 제2권 9호 통권 제23호 ]
  • [부고]

    ● 송보열 前 제일은행장 행원 출신으로 첫 제일은행장에 올랐던 송보열(宋寶烈) 전 제일은행장이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송 전 행장은 지난 88년 제일은행 출신으로는 첫 은행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제일시티리스 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 서예가인 부인 김정묵 여사와 재훈(삼성서울병원 기획조정실장·성균관의대 교수)·재복(고려대 공대 교수)·재용(서울대 경영대 교수)·재호(경동도시가스 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2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도 포천 서능공원묘지.(02)3410-6901. ● 유석근 前 한국일보 편집위원 유석근 전 한국일보 편집위원이 10일 오전 10시 급환으로 별세했다.53세. 고인은 1978년 한국일보 견습35기로 입사, 체육부장과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정례 씨와 병석(학생), 새보미(학생) 등 1남1녀.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13일 오전. 장지는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나자렛동산.(02)2290-9452. ●이재환(한국야쿠르트 책임연구원)씨 모친상 김진홍(국민일보 논설위원)김창성(두리관세사무소 사무장)씨 빙모상 10일 성인천한방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32)891-4334 ●권오형(전 문경초등학교 교장)씨 상배 기용(농협중앙회 차장)기목(연세대 정보통신처 부처장)기대(대오엔지니어링 대표)기홍(이화공영 부장)기창(서울대병원)씨 모친상 1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392-0299 ●정태용(전 삼우관광 회장)씨 별세 한정자(전 한국여성개발원 선임연구원)씨 상부 석준(미국 거주)주호(〃)민수(건축사)씨 부친상 김윤수(종합건축사사무소 성현 차장)씨 빙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3410-6905 ●공계진(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을진(사업)운진(〃)씨 부친상 박상조(사업)박상웅(농업)황부상(도화종합건설 부장)씨 빙부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010-2295 ●신항대(재미 사업)항구(명진·화성실업 대표)항락(광주일보 광고국장)씨 모친상 10일 조선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062)231-8901 ●신동인(충주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씨 부친상 9일 청원 초정노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43)216-0564 ●최용길(금강엘이비종합건설 대표)화길(사업)씨 모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3010-2268 ●송승호(자영업)용호(증권예탁결제원 예탁업무부 대리)씨 모친상 9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30분 (02)2650-2752 ●김춘권(전 한양건축 회장)씨 상배 손영식(재미 사업)황태웅(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전무)김장환(전 쌍용제지 상무)정봉화(세림정보 부사장)한상현(영원산업개발 상무)최영식(순천향대 교수)씨 빙모상 10일 강남성모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8시 (02)590-2538 ●박상준(현대시멘트 부장)씨 부친상 김원규(한마음병원 원장)씨 빙부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40분 (02)3010-2265 ●안희준(SK 상무)희경(회사원)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410-6909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효성가(家)의 2세 경영이 닻을 올린 지 30여년.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회장의 ‘유훈 경영’ 방침대로 효성은 내실과 외양을 조화시키며 튼튼한 중견 그룹으로 커왔다. 대신 2세들의 분가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된 사세(社勢)는 아직 옛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효성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안정 지향의 경영 색깔에서 도전과 진취가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효성은 올해를 ‘뉴스타트의 해’로 삼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두주자에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의 성공적인 착근이 ‘신(新) 효성’의 성공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세 분가 효성가(家)의 2세 분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만우 회장이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일찍이 효성의 주력 기업을 하나씩 떠맡기면서 독립 경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우 회장은 “3형제가 장성했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로서 제몫을 다하는 만큼 앞으로 지켜볼 따름”이라며 1978년 사실상 기업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은 70년대부터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 등을 맡았다. 차남인 조양래(68)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다. 성격이 활달한 3남 조욱래(56)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전피혁 사장에 올랐다.3형제는 이후 분리 경영을 해오다가 1980년부터 주거래 은행까지 달리할 정도로 철저한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83년 그룹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제2의 창업’을 선언, 화섬과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을 키워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와 한국전지, 한타M&B 등을 통해 타이어사업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반면 3남 조욱래 동성개발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효성기계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만우 회장과 4자성어 2세 경영의 특징은 선친의 ‘유훈 경영’과 밀접하다. 만우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다. 그는 세 아들에게 ‘항상 가까이 두고 뜻을 새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휘호를 하나씩 줬다. 장남인 효성 조 회장에겐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라는 뜻에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란 글귀를 남겼다. 차남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쉬지 말고 힘을 길러라’라는 뜻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글귀를 받았다. 막내인 동성개발 조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4자성어를 받았다. 자식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우 회장의 일종의 ‘자식 사랑’인 셈이었다. 2세들도 선친의 뜻에 따라 지금껏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효성 조 회장은 화학과 정보통신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갔고, 특히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 대신에 타이어 ‘한우물 경영’에 충실했다. ●학자풍의 조석래 회장 조 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조 회장은 조씨가(家)의 학자풍 스타일 면에서 선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 만우 회장과 조 회장 모두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 회장의 이런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초기부터 많은 빛을 봤다.74년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었을 때 슬기롭게 넘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 회장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직면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 회장의 광범위한 정보 획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착상이었다.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선친의 부름을 받고,1966년 효성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육성시켰으며,1975년엔 폴리에스터 공장을 준공해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섬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또 한·미 재계회의와 한·일 경제인 회의,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등의 리더로서 국제 협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길경영’과 ‘권토중래’ 조양래(67) 한국타이어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조 회장은 5년 전에 산 국산 브랜드의 구두를 여태껏 신고 다닌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하루는 직원들과 식당에 밥먹으러 갔는데 너무 구두가 낡아서, 직원들이 회장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사장 시절에 딱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사진 기자가 인터뷰용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무슨 전문가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가. 전문가이면 사진을 한 번만 찍으면 되는 것을. 필름만 그저 아깝게….”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해외 출장에 수행원을 두지 않고 다닌다. 또 숙소도 일반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2급호텔에 투숙한다. 그의 이런 검소함과 치밀함은 한국타이어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이후 조 회장은 줄곧 타이어사업 하나만 매진해 세계 9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조 회장은 1988년 “경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현재 한국타이어 복지재단 회장직을 맡아 ‘미신고 복지시설’ 지원 등에 앞장서고 있다. 3남인 조욱래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대전피혁 사장에 취임,10년만에 대성과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총 8개 계열사로 늘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특히 일본 스즈키사와 제휴해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효성기계를 설립, 한때 대림산업과 함께 국내 오토바이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책임·내실 경영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한파는 효성기계를 어렵게 했다. ●효성가 3세 효성가 3세(조현준-현문-현상)들은 경영수업의 첫발을 모두 외국 회사에서 내디뎠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를 거쳐 97년 부친인 조 회장의 부름을 받고,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에 입사했다. 차남 조 전무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99년 효성 경영전략 2팀장으로 합류했다. 막내 조 상무는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와 일본의 세계적인 통신사인 NTT도코모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효성에 입사했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 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유닛(PU)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등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차남인 조 전무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 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그는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 전무는 국제 변호사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효성닷컴’을 찾아왔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3남인 조현상 상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오랜 직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조 상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현안인 성장엔진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룹 장기전략 수립과 기업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3세들의 경영 승계 시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 회장이 아직 정정한 데다 3세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업무 권한을 팀장들에게 대폭 위임,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덕장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조현범 상무는 치밀한 분석력과 폭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타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3세 혼맥 조씨가(家)의 3세 혼맥도 국내 명망가와 혈연으로 잘 엮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와 ‘사돈의 사돈’이라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이라는 점이다. 또 권노갑 전 의원과도 ‘사돈의 사돈’이다.2세 혼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家)와 통혼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조씨가는 국내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만우 회장이 일부러 정치권을 기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뜻밖의 사실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61) 여사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장남인 조현준(37) 효성 부사장은 2001년 11월 한국제분 이희상 회장의 3녀인 미경(29)씨와 결혼했다. 양가가 서로 안면이 있는 데다 미경씨의 형부가 적극 나서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테니스와 연주회 등을 관람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결혼식은 조 부사장의 모교인 세인트 폴 고교에서 했다. 현재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조 부사장의 처가인 이희상가(家)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간이다. 한국제분 이 회장(60)은 부인 정영화(59)씨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인 윤혜(34)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부사장과 재만씨는 동서간이다. 차남 조현문(36) 효성 전무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여진(3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진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재원.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 회장과 송 여사가 이어줬다. 시부모와 며느리간 첫 만남은 2001년 6월 한·미 재계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진씨는 당시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로, 한·미 재계회의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연례회의에서 조 회장 부부와 여진씨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다음해에 또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세 사람은 같은 일정을 보내게 됐다. 당시 장남인 조 부사장이 막 결혼을 한 시기여서 주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던 송 여사는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아직 두명을 더 보내야 한다.”고. 이후 조 회장은 조 전무에게 여진씨를 소개해줬고, 두 사람은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조 회장과 여진씨의 부친인 이 전 청장과는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으며, 조 전무의 동생인 조현상 상무와 여진씨의 오빠는 미국 브라운대의 선후배 사이일 정도로 양가는 사돈으로 맺어지기 전부터 가까웠다.3남 조 상무(34)는 아직 미혼이다. 효성가의 방계 3세들의 혼맥도 화려함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문자(64) 여사는 2남2녀를 뒀다. 미국 뉴욕의 FDU대 수학과 교수인 맏딸 희경(39)씨는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43)씨와 혼례를 치렀다. 차녀 희원(3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진영(28)씨와 인연을 맺었다. 진영씨의 모친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차녀인 설영자씨다. 차남 조현범(33) 상무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녀인 수연(30)씨와 결혼했다. 최근에 보기 드문 정치인과 재벌의 혼사였다.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의 자제는 모두 2남 1녀. 장남인 현강(30)씨는 삼정KPMG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 현우(22)씨는 미국 TUFTS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녀인 윤경(27)씨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인 석융씨와 혼인했다. 홍 회장의 딸인 지연씨가 권노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민(35)씨와 결혼해 조씨가는 권 전 의원 가문과 한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효성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이상운(53) ㈜효성 사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76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중동 등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효성물산 기획실과 시장개척실, 사업개발실 등을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효성그룹의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송형진(62) ㈜효성 건설PG장은 건설 경력 35년이 넘는 전문 경영인이다.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팀워크를 중요시해 건설PU장 시절, 사업이 진행중인 현장을 한 번 이상은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경기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 김재학(57) ㈜효성 중공업 PG장 겸 전력PU장 사장은 기계공학 전공자답게 정확함과 세밀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경영은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조직력 결속을 중시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최병인(44) ㈜효성 정보통신PG장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효성의 전문경영인(CEO)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2000년 효성에 합류했다.2002년 그룹 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인 효성데이타시스템과 효성컴퓨터를 합병해 노틸러스효성㈜을 출범시켰다. 우신고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왔다. 유효식(58) ㈜효성 지원본부장 부사장은 1974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PU체제’로 전환시켰다. 인천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정윤택(50) ㈜효성 재무본부장 전무는 종합조정실과 재무본부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재무 전문가다. 추진력이 탁월하고, 금융 및 산업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 서울 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류필구(60)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9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0년째 경영하는 국내 IT업계 최장수 CEO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안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조충환(63) 한국타이어 사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전형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64년 삼성물산에 입사, 도쿄 지사장 등을 거친 ‘상사 수출맨’이다.8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기획과 재무 등을 거친 뒤 97년 12월 한국타이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golders@seoul.co.kr ■ 바깥활동 활발한 며느리들 효성가(家) 며느리들은 세련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커리어 우먼’쪽에 가깝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엔 꽤 적극적이다. 흔히 며느리들은 안으로 돌리고, 딸들은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국내 재벌가(家) 문화와 거리가 있다. 딸이 귀한 가문이어서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여성 후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송광자(61) 여사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여성도 일을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후회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보약을 다려줄 정도다. 아들만 있는 송 여사는 며느리가 모두 딸 같다고 한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의 얘기다.“지난달 제수씨가 북핵 6자회담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가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열심히 하고,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오라고 북돋워주더라고요.” 송 여사가 그렇다고 며느리 뒷바라지나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 가든클럽에서 봉사 활동도 한다. 또 미대 출신으로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미술관 지원사업이나 일반인에 대한 현대미술 교육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3세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께서 무척 배려를 해주신다.”면서 “일이나 공부 때문에 늦게 귀가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저녁도 대신해 때로는 당황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송 여사의 이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영향이 크다. 당시 재계에서 엘리트였던 만우 회장은 며느리들에게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예컨대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자가용 시대가 온다며 면허증을 따도록 했으며, 연료로 연탄을 주로 쓰던 시절 차세대 연료인 LPG(액화석유가스)에 관한 공부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미술을 전공한 맏며느리인 송 여사에겐 신혼 초에 살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전시회를 열어 줄 정도로 미술 공부를 독려하곤 했다. 며느리 건강을 위해 보약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훗날 맏며느리가 그림 공부를 그만두자 만우 회장이 이를 가장 애석해했다. 조석래(70)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미경(29·조현준 부사장 부인)씨는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음악(피아노)을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엔 한국 전통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 이여진(31·조현문 전무 부인)씨는 1997년 외무고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조 전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절제가 뛰어난 것이 와이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golders@seoul.co.kr ■ 재주꾼인 3세들 효성가(家)의 3세들은 재주가 다양하다. 취미와 스포츠, 외국어 모두 수준급이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인다. 장남 조현준(37) 부사장의 설명은 이렇다.“부친과 조부는 뭐든 하려면 제대로, 일정 수준 이상까지 요구했었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이상으로 실력을 키웠고, 다른 분야도 비슷했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었고, 제3외국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미국의 세인트 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미식 축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경영수업 틈틈이 사내 야구팀과 직장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스키와 스쿼시, 테니스는 선수급 기량이다. 그는 한때 건축학과 교수가 꿈이어서 건축과 미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 복구 작업에 참가한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한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보호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운영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는 소믈리에(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할 정도로 와인 전문가이다. 차남 조현문(36) 전무는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다. 대학 시절엔 가수 신해철 등을 비롯한 중·고교 동창들과 어울려 보컬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 1집에 수록돼 있다. 조 전무는 또 축구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에 축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스키와 테니스 실력은 형인 조 부사장에 못지 않다. 3남 조현상(34) 상무도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축구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브라운대 아카펠라 그룹에 가입해 밴드 리더로 활동했다. 아카펠라 해외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조 상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공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축구와 스키, 스케이트 등은 한때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자크 로게 IOC위원장 10일 방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부인 안네 보빈 여사와 함께 오는 10일 한국을 방문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는 로게 위원장은 당일 청와대 만찬에 참석해 스포츠 교류를 통한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앞서 지난 7월 노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당시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통해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와 강원도 평창의 2014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협조 친서를 전달한 적이 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1)

      사연 : 다리가 굵어 고민인데 Q여사님. 여자들의「스커트」는 점점 짧아지는데 지금 저는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저는 언니들에 비하여 다리가 무척 굵어요. 지금 여중학생이니까 아직은「미니」같은 걸 입을 나이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의 반에서도 제일 굵은 다리를 가지고는 지금도 여간 부끄럽지가 않아요. 얼굴은 예쁘다고들 합니다. 남들처럼 다리를 가늘게 하는 해결책은 없는지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소라> 의견 : 미니만이 멋은 아니에요. 이미 굵어져 있는 다리의 살을 내리게 하는 방법은 별로 없어요. 더 굵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은 더러 있어요. 이른바 미용체조죠. 수영이나 기계체조, 줄넘기 등은 전신미용법이면서 다리를 곱게 하기도 하는 방법입니다. 다리만 곱게 하는 체조 중에는 뜀뛰기가 있어요. 두발을 모으고 펄쩍 뛰는 것입니다. 뛰어오를 때는 다리에 힘을 주고 내릴 때 힘을 뺍니다. 이「힘을 주고 빼기」가 중요해요.「발레리나」의 다리가 대체로 굵은 것은 장시간 다리에 힘을 주고 긴장만 시키지 힘을 빼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누웠을 때 다리를 높이 쳐들고 있으라고 권합니다. 외국에는「롤러」라는 것이 있다는데 부드러운 수건을 꼬아서 대용해도 됩니다. 꼬인 수건의 양쪽 끝을 두 손으로 잡고 다리에서 위쪽으로「마사지」를 하는 겁니다. 이런 방법이 별 효과가 없더라도 비관은 마세요. 세계의 유행은「미니」뿐만이 아니랍니다. 작년부터는 또「나팔바지」라고 들 하는「팬탈룬」이 선풍적으로 입히고 있어요.「팬탈룬」을 입으면 다리의 굵기는 아무도 모를테니까요. <Q> [ 선데이서울 69년 2/23 제2권 제8호 통권 제22호 ]
  • 여사장 되고픈 미스·단국대학 윤경임양 - 5분 데이트 (21)

    여사장 되고픈 미스·단국대학 윤경임양 - 5분 데이트 (21)

      『여사장이 되고 싶어서요. 또 만약 안되더라도 생활엔 역시 산술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지금 단국대학 상과 3년생이다. 이름은 윤경임(尹庚任·23)양. 오므리면 한쪽 눈만해지는 조그만 입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본래 말이 없단다. 그대신 커다랗고 맑은 눈만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의사소통이 충분하다. 그렇게 표정이 풍부한 눈을 가졌다. 조용하고 새침한 미모가 무표정하려 들면 위엄까지를 엿보인다. 그러다가도 그 표정을 바꾸려 들면 자유자재다. 상당한 연기력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사실은 KBS-TV「탤런트」모집 시험에 응시, 꽤 좋은 연기력과 흔치 않은 용모로 어렵지 않게 그 어려운 난관을 거쳤는데 표준말을 쓰지 않는다 해서 실격됐다. 사투리를 안 쓰려고 많이 애쓰는 고심이 얘기하는 동안에도 느껴진다. 고향이 해남, 광주 숭실여고를 졸업했다. 여사장 지망생이 여기로「탤런트」가 되고 싶어한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엉뚱한 데가 있지만 여사장이 되기 위해 좋은 연기를 밑거름으로 삼고 싶었다면…. 편모 슬하에 1남 5녀 중 막내딸, 참 의젓한 막내딸도 다 있다 싶더니 여사장 몸가짐을「트레이닝」중인 지도 모른다. 왜 하필이면 꼭 여사장이 되고 싶어 하냐고 몇 번이나 재차 물어도 작은 입을 더 한층 힘을 주어 다물어 버릴 뿐이다.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얗던 얼굴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빨개졌다. 그냥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일 뿐 또 말이 없어졌다. 절대로 수선스럽지 않은 것은 물론 너무나 의젓하게 가라앉아있다. 특기나 취미도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보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불고기 먹고. ※ 뽑히기까지 KBS-TV「탤런트」모집 현장에서 사진기자가「픽·업」한 미인 중에서 표지 미인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미인이 윤양. 촬영시에는 좋은 연기력 때문에 수월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anna표 복조양말서「스토킹」한「세트」선물) [ 선데이서울 69년 2/23 제2권 제8호 통권 제22호 ]
  • ‘병신춤’ 5년만에 무대 다시선다

    ‘병신춤’‘욕쟁이 할머니’ 등으로 잘 알려진 공옥진(74)여사가 병마의 고통을 딛고 무대에 다시 선다. 그는 전통적인 소리에 춤·재담·몸짓을 더한 창무극의 창시자이다. 무대에 오르면 보는 이를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타고난 광대이다. 뒤틀린 몸짓과 춤사위로 서민의 한을 달래왔던 그는 지난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1년여 만에 해외 및 금강산 선상공연에 나서는 등 재기한 듯했다. 그러나 그 후부터 기력이 쇠약해진 탓에 고향에서 장기간 칩거하다가 최근 활동 재개에 나섰다. 광주 북구문화의집(상임위원 전고필)은 5일 오후 7시 북구 문흥동 근린공원에서 1인 창무극의 명인 공옥진 여사 초청 무대를 마련한다. 전고필(39) 상임위원은 “공선생이 몸이 불편한데도 초청에 쾌히 응했다.”며 “그의 춤을 주민들에게 선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공 여사는 이 날 1시간30분 동안 심청가·병신춤·동물춤 등을 종합한 ‘1인 창극’을 펼칠 예정이다. 그의 창무극은 미국·영국·일본 등지의 세계적 무대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수 조교’를 둘 수 없게 돼 그의 예술혼의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전남도는 2003년 공 여사의 ‘1인 창무극’에 대한 지방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으나 논란 끝에 부결됐다.“공 여사가 당대에 춤을 즉흥적으로 창조했고, 마땅한 장르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반대 논리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춤의)가치는 인정하지만 지정 근거가 미약하다.”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가 되려면 최소 3∼4대에 이르는 계보가 필요한데 1960년대 만들어진 창무극(신무용)은 최우선 조건인 시기성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다만, 공씨의 춤이 동편제에 속하고 우수한 기량을 들어 전남도 지정 문화재로 추천하는 한편 기록을 남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광주 최치봉 박승기기자 cbcho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1)-창업주 故조홍제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1)-창업주 故조홍제 회장家

    효성의 입사 면접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한강의 물 무게는 얼마나 되나, 대한민국 바퀴벌레의 총 수는.’등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대략, 약, 수준,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고 불확실한 답을 내놓는다면 효성에선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효성은 숫자에 관해 근거 없는 ‘적당주의’를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이는 효성 창업주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떤 사항이든 계수화해서 보고 받기를 좋아했으며, 그래야 납득을 했다. 만우 회장도 중요한 경영상의 결재를 할 때는 철저히 계수에 입각해서 처리했다. 특히 신규 사업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마저 계산에 넣고 사업을 추진했을 정도다. 시쳇말로 “1년간 지급하는 로열티와 그 기술을 이용해 얻은 이익을 금액으로 계산해 향후 10년간의 수지계산서를 만들라.”고 한다면 요즘 실무진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것이다. 그러나 만우 회장은 40년전에 이를 당연하게 지시했으며, 당시 효성 실무진도 이에 익숙했었다. 그의 이같은 ‘계수 경영’은 그만의 독특한 성냥개비 계산법을 낳았다. 그가 계산하기 위해 손가락에 성냥개비를 끼우고 슬슬 돌릴라 치면 실무자들은 계산이 혹시 틀리지 않았을까 긴장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꼼꼼한 경영 스타일은 창업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효성의 주력 사업으로 훗날 나일론을 선택하기에 앞서 만우 회장은 공학과와 경제학과 출신의 엘리트 10여명을 뽑아 당시엔 생소한 기획부를 구성, 무려 2년간 20여종의 유망 업종을 검토하게 했다. 오늘날 효성의 제조업 전통과 실속 우선주의, 심사숙고형 기업 문화, 철저한 계산으로 돌다리도 두드리는 사업 풍토 등은 만우 회장이 효성에 남긴 유산들이다. 또 꼬장꼬장하고 대쪽같은 그의 성격은 효성을 늘 정치권과 거리를 두게 했으며, 생전에 2세들의 분가를 마무리한 것은 ‘돈 만큼은 가족이라도 철저해야 한다.’는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최근 재계의 불미스러운 일련의 일들을 보면 만우 회장의 혜안이 놀랍기만하다. ●늦되고, 어리석은 만우(晩愚) 만우 회장은 모든 게 늦었다. 신학문을 접한 것이 17세였고, 고보(중·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약관(弱冠)을 앞둔 19세였다. 또 대학을 졸업한 것이 이립(而立·30세)이었으며, 사업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 불혹(不惑·40세)을 넘어서였다. 그리고 효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자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순(耳順·60세)을 앞둔 56세였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는 스스로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으로 호를 ‘만우(晩愚)’로 지었다. 그러나 출발이 늦었을 뿐 그의 성취는 작지 않았다.1960년대 부실기업이었던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정상화시켰으며, 현재 나일론 세계 4위, 타이어코드 세계 1위인 동양나이론(현 효성)을 설립했다.70년대엔 효성금속과 효성기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한때 총 24개 계열사의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40∼50대를 받쳐 삼성 성장에 일조를 했던 만우는 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 불과 10년 만에 효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려 놓은 것이다.1981년 포천이 뽑은 500대 기업 속엔 만우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효성과 삼성이 나란히 포함됐다. ●진정한 가장은 애처가 늦었던 만우 회장이 빠른 것도 있었다. 그는 15세 때 집안 뜻에 따라 진주 하씨가의 차녀 정옥(작고)씨와 결혼했다. 당시 하씨가는 진주에서 쌀 2000섬 규모의 부호로 개화한 집안이었다. 부인 정옥씨는 신학문을 깨친 신식 여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교 생활이 몸에 밴 만우였지만 아내 사랑만큼은 각별했다고 한다. 만우는 무슨 일이든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엔 ‘팔불출’ 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이었다. 회사에 있다가도 아내가 아프다고 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열 일을 다 제쳐놓고 들어왔다. 또 틈을 내 여행도 같이 자주 다녔다. 사업에서 물러났을 때엔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창경원 산책을 취미로 삼았으며, 함께 시장에 나가 장을 보는 것도 즐겼다. 특히 만우 자신도 말년에 몸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내의 병수발을 자식 몫으로 두지 않았다.78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만우는 아내의 상청(혼백을 모시는 제단을 마련하는 일) 돌보는 일을 1년간 직접 했다. 당시 만우 자신도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심한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만우는 사람을 고를 때도 이런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사람을 쓸 때 세가지를 봤다. 첫째가 반골 유무, 둘째가 지론 출중이며 셋째가 진정가장(眞正家長)이었다. 반골 유무와 지론 출중은 누구든지 고려할 만한 요소이겠지만 진정 가장은 꽤 이채롭다. 만우는 가정이 제대로 서야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선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 중에 바람을 피우거나, 첩을 얻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내치라고 했다. 실제로 부장급의 한 직원은 여자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되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회사를 어떻게 다스리겠나.”이것이 만우의 생각이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동업 만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에게 자금을 빌려준 계기로 동업을 시작했다. 만우 회장은 어린 시절 호암(고 이병철 회장의 호)의 친형인 병각씨와 지기여서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만우와 호암의 동업은 사실상 삼성이라는 대그룹의 출발점이었다. 고 이 회장의 기획력과 만우 회장의 꼼꼼한 일처리는 자산규모 1700만원의 삼성물산을 설립 3년 만에 48억원이라는 순이익을 올리게 했다. 삼성물산의 성공은 제일제당(현 CJ그룹)과 제일모직 등의 제조업 진출로 이어졌다. 특히 제일모직은 만우 회장이 자금 마련부터 기계설비 발주, 기술 숙련 등 모든 과정을 진두 지휘했다. 제일모직의 당시 ‘골덴덱스’는 영국제와 마카오 복지를 대체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조·이 투톱 체제는 불과 10년 만에 삼성을 명실공히 한국 제일의 재벌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 회장은 돌연 만우 회장에게 동업 청산을 요구했으며, 만우도 ‘이쯤에서 재산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 문제에 대한 의견 조율이 안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점차 깊어갔다. 이 과정에서 만우는 4·19와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진 급변하는 정국에서 삼성 대표로 부정 축재자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국이 점차 안정되면서 호암과 만우는 다시 재산 분배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옳다, 그르다 싸우기만 하면 자기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만우는 결국 3억원을 받는 것으로 삼성과의 모든 정리를 마무리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6세였다.15년간 대주주이자 경영인으로서 삼성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는 데 일조를 했지만 그 ‘끝’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만우는 ‘나의 회고’에서 당시 이 결정을 이렇게 밝혔다.“오늘날 7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수많은 어려운 결단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한 결단이 아니었나싶다.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분배받을 재산에만 연연했더라면 내 독자사업은 시작도 못해보고, 재산은 재산대로 찾지 못한 채 끝나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만우와 호암의 결별에도 양가의 인연은 대(代)를 이어 지속됐다. 만우 회장의 장남인 조석래 효성 회장과 호암 회장의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다. 또 조 회장의 부인인 송광자(61) 여사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는 서울대 미대 동창이다. 3세로 내려오면 인연은 더 깊고 다양해진다. 조 회장 차남인 조현문(36) 효성 전무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친구 사이다. 장남인 조현준(37) 부사장과 이 상무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다. 삼성가인 이재현 CJ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아들인 김재열(이건희 회장 사위) 제일모직 상무 등도 조 회장가(家)의 3형제(현준·현문·현상)와 잘 어울린다. 조 부사장은 “같은 또래인 데다 어린 시절부터 잘 어울려 요즘에도 운동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했다. ●사돈들의 활약 효성은 재벌가 가운데 사돈들의 활약이 유달리 두드러진다. 특히 만우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아들 후견인의 역할을 사돈들에게 맡겼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의 장인인 송인상(91) 한국능률협회 회장은 만우의 지기이자 조 회장의 후견인이었다. 송 회장은 재무부 장관과 한국수출입 은행장을 두루 거친 경제계의 거물로 조씨가와 사돈을 맺기 전부터 만우와 친분이 두터웠다.78년 만우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엔 사위를 도우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송 회장은 80년부터 16년간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효성 고문으로 있다. 차남인 조양래(68) 한국타이어 회장에겐 처남들의 경영 참여가 눈에 뛴다. 외환은행장을 지낸 손위 처남 홍용희씨가 고문으로 활약했으며, 또 다른 손위 처남인 홍건희 한국타이어 부회장도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한국타이어는 한때 ‘조·홍’ 공동 경영체제를 이뤘다. 삼남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도 장인인 김종대 전 대전피혁 회장의 경영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우 회장은 77년 대전피혁을 28세에 불과한 욱래 회장에게 맡기고 난 뒤, 사돈인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에게 아들의 뒷일을 맡겼다. 경험이 부족한 아들의 단점을 김 전 장관에게 보완해 달라는 뜻에서다. 김 전 장관은 회장직을 맡아 경영에 나섰다. ●양말 빠는 회장님 만우 회장은 자식들이 혹시나 ‘부잣집 아들 병’에 걸릴 것을 몹시 경계했다. 이 때문에 일부러 엄하게 대했을 뿐 아니라 확실한 경제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용돈 예산을 짜게 했다. 또 아들들이 유학을 떠날 때는 유학 기간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최소 경비를 한꺼번에 쥐어주며 돈이 남든지, 모자라든지 간에 더 이상의 용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덕분에 2세들은 유학 시절에 툭하면 접시 닦이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러나 만우가 늘 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중학교에 다니던 양래가 영어책을 잃어버려 난감해 할 때 친구에게 그 영어책을 빌려오게 한 뒤, 밤새 직접 필사를 했다. 또 장남인 석래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사업차 방문한 만우는 장남의 하숙집에 널려 있던 양말을 깨끗이 빨아 놓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는 공석에선 자식이라도 하대를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선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선친은 자식을 키운다고 할까, 믿어준다고 할까 하는 점이 굉장히 강해요. 당시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아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고, 자식들의 결정을 무척 존중해 주셨습니다.”실제로 만우 회장은 조 회장이 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기를 바랬지만, 공학을 전공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만우는 “재산이라는 것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들어오기도 한다. 자식에게 재산보다는 스스로 일해서 생활해 나갈수 있는 능력을 꼭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화려하게 뻗은 2세 혼맥 조씨가(家)의 혼맥은 여느 재벌가 못지않게 사통팔달로 뻗어 있다. 전직 대통령가(家) 뿐 아니라 정·관·재계 골고루 인연이 닿아 있다. 만우와 부인 하 여사는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장녀와 차녀인 명숙(작고)씨와 명률(78)씨는 만우가 고향인 함안 군북에 있을 때, 인근 대지주 집안에 시집보냈다. 장녀 명숙씨는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진양 대지주인 허정호(80)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 학생이었던 정호씨는 신한병원 원장을 지냈다. 둘째 딸 명률씨는 산청 대지주인 권동혁가(家)의 장남인 병규(80)씨와 인연을 맺었다. 병규씨는 한때 효성건설 회장을 역임했다. 효성의 혼맥은 장남인 조석래 회장의 결혼으로 정·재계 중심부로 들어간다. 학업 때문에 결혼이 늦은 조 회장은 그의 나이 32세 때, 송인상 회장의 3녀 광자씨를 평생의 배필로 맞아들였다. 조 회장은 처가를 통해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과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과 동서지간이 된다. 또 신 전 회장가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연결되며, 이 회장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연이 닿아 있다. 차남인 조양래 회장은 66년 지인의 소개로 법조계 원로인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 회장의 차녀인 문자(64)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회장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지간이다.3남인 조욱래 회장은 경기여고 교장인 손영경씨의 중매로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의 딸인 김은주(50)씨와 결혼했다. 김 전 장관은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의 부친인 고 신덕균 전 신동방 명예회장의 처남이기도 하다. 조씨가의 혼맥은 방계도 만만치 않다. 만우 회장의 동생인 고 조성제 대전피혁 사장은 5남 3녀를 통해 관·재계의 명망가를 사돈으로 맞아들였다.3남 경래(73)씨는 홍재선 전 전경련 회장의 딸 애수(68)씨와 결혼했으며,4남 익래(70)씨는 원용필씨의 딸 정선(68)씨와 결혼했다. 원용필씨는 원용석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친형이다. 장녀 장숙(68)씨는 정종철 전 서울시장의 아들 창순(70)씨와 결혼했다. golders@seoul.co.kr ■ 조석래 회장의 ‘명문 처가’ 조석래(70) 효성 회장의 처가인 송인상(91·효성 고문) 한국능률협회 회장의 가계도를 들여다보면 화려하다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다. 송씨가(家)는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가문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한국 상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가와 사돈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정·관·재·법조계에 이르기까지 ‘그물망 혼맥’으로 촘촘히 엮여 있다. 송 회장 본인도 일제시대의 식산은행을 시작으로 재무부 이재국장과 한국은행 부총재, 부흥부장관, 재무부 장관, 룩셈부르크 대사,EC대사, 한국수출입은행장, 동양나이론(현 효성) 회장 등 관·재계를 넘나드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슬하에 1남4녀를 둔 송 회장과 최연순(91) 여사는 딸을 모두 국내 대표 집안에 시집보냈다. 특히 손주들의 통혼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집안과도 연결된다. 장녀 송원자(66)씨는 이봉서(69) 전 상공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장관은 경기고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나왔으며, 현재 부동산임대업체인 단암산업 회장이다. 이 전 장관의 부친 고 이필석옹은 상업은행장과 국제화재 회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의 3녀인 혜영(33)씨는 1997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장남 정연(42)씨와 화촉을 밝혔다. 두 사람은 정연씨의 친구 소개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혜영씨는 숙명여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정연씨는 현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 회장의 차녀 길자(63)씨는 신명수(64) 전 신동방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 전 회장과 길자씨는 2남 1녀를 뒀으며, 장녀인 정화(36)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40)씨와 결혼했다. 재헌씨는 미국 조지타운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한나라당 이 전 총재와 노 전 대통령은 송 회장가(家)를 통해 ‘사돈의 사돈’인 셈이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게 되면 송 회장가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김승연 한화 회장과도 이어진다. 3녀 송광자(61)씨는 조 회장과 67년 결혼해 현준-현문-현상 3형제를 뒀다.4녀 송진주(59)씨는 주관엽(61)씨와 혼인했다. 진주씨는 서울대와 예일대(박사)를 거쳐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예산 샌님’ 조홍제 前회장 만우 조홍제 전 회장의 별명은 샌님과 구두쇠였다. 만우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그냥 샌님도 아닌 ‘예산 샌님’이라 불렀다. 미리 예산을 꼼꼼하게 짜놓고 융통성 없이 그대로 집행하는 데서 비롯됐다. 당시 도움을 받기 위해 만우 회장의 사무실 문턱을 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만우가 배정해 두었던 예산이 바닥나기 일쑤였다. 그러면 만우는 “올해 예산이 떨어졌으니까 내년에 보자.”고 했다고 한다. 만우의 먼친척 동생인 조영제씨의 회고는 이렇다.“사회봉사도 회사 경영과 마찬가지로 예산 집행을 한다 이겁니다. 요즘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40년전에 그런 경비를 예산짜서 집행하는 기업가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우는 구두쇠로도 유명했다. 그냥 구두쇠가 아닌 ‘통 큰’ 구두쇠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신발장에 남은 것은 밑창이 다 닳은 구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는 내의도 해진 것을 기워입었으며, 양복 역시 다 떨어져 못 입게 되기전까지 새 양복을 맞추는 법이 없었다. 그의 근검절약 정신은 가족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줄 때는 늘 빠듯하게 줘 낭비하는 버릇을 갖지 않게 했으며, 손자에게 주는 세뱃돈도 천원짜리 한 장으로 때우곤 했다. 만우는 자신이 먹고, 쓰고, 입는 데에는 한없이 검소했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엔 수십억원을 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쓸 때는 쓰고, 쓰지 않을 때는 쓰지 않는, 그런 구두쇠였다. 만우가 돈을 아끼지 않은 곳은 교육 사업이었다. 대학시절 은사 권유로 교수가 될까 했던 만우는 1950년대부터 영남장학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고향 함안군의 몇몇 학교에 시설을 마련해 주었다.76년엔 운영 부실로 재정난에 빠진 동양학원의 이사장을 맡아 대규모 채무를 해결해줬으며,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25억원을 내놓았다. “나는 학교에서 돈 한푼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선생님들은 오직 좋은 교육만을 해주시기 바랍니다.”만우 회장이 이사장으로서 원했던 유일한 소망이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로라 부시, 리얼리티 쇼 출연

    백악관에서 남편이 잠든 뒤 ABC-TV의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이나 시청한다던 로라 부시 여사가 지난 27일(현지시간) 같은 방송의 인기 리얼리티쇼 ‘진짜 변신(Extreme Makeover)’에 카메오로 출연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로라 여사는 이날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파손된 미시시피주 빌럭시의 한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만나 참사때 경험담을 경청하는 한편, 구호 의류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라 여사는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는 ‘닥터 필’에 출연했으며 제이 리노의 ‘투나이트 쇼’에도 등장하는 등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행정부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어머니 염원 신도회관 꼭 건립” 조계종 첫 여성신도회장 김의정씨

    “악착같은 여성의 참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아울러 독자적인 신도회관 건립을 임기 중 최우선 과제로 삼아 추진해나가겠습니다.” 김의정(金宜正·64)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27일 서울 견지동 신도회관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뒤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회장은 지난 24일 열린 대의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23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여성 신도회장이 나오기는 조계종단 사상 이번이 처음. 백창기 전 회장의 사의표명으로 공석이 된 회장 자리를 이어받은 김 회장은 앞으로 2년6개월간 신도수 1000만명의 거대 조직을 이끌게 된다. “외국에서도 여신도들의 활동은 활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김 회장은 “여자들은 무슨 일을 해도 남자보다 악착같이 하는 면이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임기동안 꼭 매듭짓고자 하는 사업은 신도회관 건립. 당선 전 중앙신도회 부회장을 약 20년 동안 맡아오면서 독자적 신도회관 마련에 관심을 쏟아온 그는 “임기가 2년여밖에 안 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신도회관 마련은 돌아가신 어머니(궁중다례 및 다도 전문가였던 명원(茗園)김미희 여사)의 염원이기도 했는데, 때가 잘 맞아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울예술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음대와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을 나온 김 회장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로 한국 차문화를 복원·보급하는 데 앞장서 왔다. 불교TV 이사, 만해사상실천선양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0)

      사연 : 성격배우 되고 싶은데… 19세의 꿈많은 소년입니다. 저의 꿈이란 훌륭한 성격배우가 되는 것입니다. 용모는 제가 보기에도 웬만해서 배우학원 입학시험에 붙은 경험도 있습니다. 배우「콘테스트」나 방송국의「탤런트」모집에 응모하는 길이 더 낫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제 꿈을 이루는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요. <영등포 이(李)> - 매주 이런 질문이 대여섯 분에게서 오기에 이번에 한데 묶었습니다. 의견 :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영화배우가 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영화사가 특정 작품의 주역을 공개 모집할 때 응모하는 게 그 한 가지 길. 공개모집은 아니지만 영화감독, 제작자 또는 영화계 사람에게「스카우트」되는 길, 그리고 배우학원이나 연극, TV무대에 나가 연기공부를 하면서 진출의 기회를 노리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개모집에 당선되면 일약「스타」로 등장하는(예: 남정임, 홍세미, 윤정희) 장점이 있으나 흔한 일이 아니고 또 뽑히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리고 제작자를 가장한 무책임한 부류가 배우모집을 악용하는 수도 있습니다. 감독에게 상의할 때도 신망있는 감독이어야 합니다. 가짜감독도 많으니까요. 비교적「스카우트」에 관심 있는 현역감독 몇 분을 소개하자면 전현목, 김수용, 이만희, 정진우, 이성구, 장일호씨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배우학원의 경우 한국배우전문학원이 비교적「스타」배출의 실적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용모, 재능을「테스트」하는 방법에는 각 TV방송국의「탤런트」모집에 응모하는 것도 꼽을 수 있습니다. <Q> [ 선데이서울 69년 2/16 제2권 7호 통권 제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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