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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기록사진집’ 9권 발간

    ‘정부 기록사진집’ 9권 발간

    국정홍보처는 5일,1971∼1972년 정부 활동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9권 1500부를 발간, 중앙·지방행정기관, 국·공립도서관, 박물관, 언론사 등에 배포했다. 사진집에는 국정홍보처와 국가기록원이 보관해 오던 정부의 주요행사 사진 가운데 엄선된 368장이 수록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동정을 비롯, 새마을운동, 서울지하철 1호선 기공식, 백제 무령왕릉 발굴 공개,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 비상 계엄하의 서울시가 표정 등이 담겼다. 국정홍보처는 1999년 5월 첫 권을 발간한 뒤 해마다 1∼2권씩 정부 기록사진집을 발간해 오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여학생 사귀면 안되나요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30)

    사연 : 여학생 사귀면 안될까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의 남학생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의 학생회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고 1학년 여학생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과 어머니는 1류 대학에 가려면 이성교제는 끊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자꾸 만나고 싶고 공부에 지장이 있을 리는 없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만일 1류 대학에 못 가게 된다면 그것은 큰 일이에요. 형님들, 일가 아저씨들이 모두 건실한 1류 대학 졸업생들이어서 두고두고 집안에서 구박을 받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여학생과 사귀면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서울 종로구 사직동 李> 의견 : 감정을 정리해 보셔요 여자 친구와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나면 공부할 의욕이 무럭무럭 일어난다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고등학생 나이라고 해서 연애감정이 생기는 데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은 오히려 나쁘다는 심리학자도 있습니다. 진실한 연애라면 하는 편이 낫다는 견해조차 있을 지경이에요. 그 여학생을 어째서 좋아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세요. 단지「이성」이기 때문입니까?「여성」이라는 것 이외에 그녀만이 지닌 좋은 점이 따로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속소설의 주인공처럼『못잊어』를 외치는 것은 현대적이 못됩니다. 대학 입학까지 연애대상으로「로맨틱·무드」를 만들어가면서 만나지는 마세요. 친구로서 좋은 사이를 두고 만나는 것은 아마 해롭지 않겠죠. 예를 들면 교회에서나 집에서 여러 사람(어른들도)이 함께 갖는 좌석 따위를 말예요. <Q>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작가 김유정의 지독한 짝사랑

    작가 김유정의 지독한 짝사랑

    30이란 아까운 나이로 병마와 싸우다 요절한 작가 김유정의 애인이 살아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雲泥)동 109의 2. 계(桂)동 입구에서 휘문(徽文)고교 쪽으로 가다 보면 한 가닥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 온다. 길가에 연한「시멘트」2층집이 바로 김유정의 옛 애인이 살고 있는 곳. 국창(國唱) 박녹주(朴錄珠·65) 여사의 집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명인 박녹주 여사가 일세(一世)의 문사(文士) 김유정의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라는 건 거의 숨겨진 사실. 이 40년 전 사랑의 이야기를 박여사에게 들어보면 - . 이상(李箱)과 단짝 친구인 천하의 외고집 작가 김유정은 이상과는 둘도 없는 단짝. 우선 그의 사람 됨됨을 보면 - .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李箱의『소설체로 쓴 김유정론』에서) 이 외고집장이 김유정은 또 한 소리(唱)를 무척 좋아했다.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하고 그 척척 붙어 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 아리랑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를 내 뽑는다』(李箱의『김유정론』에서) 이런 김유정이니까 판소리 명인 박녹주를 미치도록 사랑할 만도 했다. 김유정과 박여사가 처음 알게 된 건 김유정이 23세 되던 해. 그러니까 나이 2살 위인 박여사가 25세 때였다. 당시 김유정은 수운동(현 묘동)에 살고 있고 박여사는 봉익동에 살고 있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연전(延專)다니던 23세 유정이 극장 공연 보고 홀딱 반해 당시 연전학생이던(아직 문단에 나오기 전) 김유정은 당시 조선극장(지금 낙원동에 있었음)서 공연 중인 박여사를 보자 홀딱 반해버렸다. 그날 저녁으로 박여사에게「러브·레터」를 띄웠다. 다음날 박여사가 그 편지를 받아보니「박녹주 누님 전(殿)」해놓고는『당신을 연모(戀慕)합니다』라고 서 있더라는 것. 박여사는「연모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레코드·재키트」에 든 자신의 사진까지 오려 보낸 것으로 미루어 사랑편지임을 알고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누님』소리가 싹 빠지고「박녹주씨 전」으로 또 편지가 날아 들었다. 이번엔 상세한 자신의 이력소개와 집안 사정 그리고 자기와 결혼해 달라는 사연이었다. 박여사는 그 편지를 그대로 받아두었다. 그러자 하루에 꼬박 2통씩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혈서까지 써 보내왔다.『무슨 학생이 편지만 쓰고 공부는 언제하나?』싶더란다. 어느 날 국창 이동백(李東伯)의 양녀인 원채옥(元彩玉, 현재 포항서 살림)이 놀러 왔다. 박여사에게 이 이야기를 듣곤 그 성의가 놀라우니 선이나 한번 보라고 권해왔다. 그러지 않아도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한번 보고 싶던 차에 친구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편지를 김유정에게 띄웠다. 그 이튿날 새벽같이 김유정이 들이닥쳤다. 보니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다. 박여사는 원채옥을 다락에 숨기고 유정과 마주 앉았다. 金 = 난 당신을 지극히 연모하오. 朴 = 연모가 무슨 소리요? 金 = 즉 말하자면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외다. 朴 = 학생 신분으로 소리하는 여자 사랑하면 되오? 金 = 학생하고 소리하는 사람 연애하지 말란 법, 법률 몇 조에 있소? 朴 = 그래도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 되면 얼마든지 우리 같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게요. 金 = 당신이 날 사랑해주어야 공부 잘 되고 훌륭한 사람 되지. 첫 대면은 이렇게 끝났다. 다락에 숨어있던 원채옥은 유정이 가고 나자 박여사에게『이년아- 너 서방 하나 잘 얻었다』고 놀려대었다. 그러나 당시 박여사는 이미 명인 소리를 듣기 시작한 국창. 이름도 없는 일개 문학도 유정을 사랑하기엔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슴 한 구석에 헌칠히 키 큰 유정의 순정을 간직한 채 어느 갑부와 살림을 차리고 들어 앉았다. 불응하자 집에 찾아 들어 편지선 누님이 이년으로 그렇다고 김유정의 외고집이 꺾일 리 없었다. 살림을 차린 줄 알면서도 편지는 여전히 날아들었다. 박여사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영감 눈에 띄지 않게 찢어버렸다. 한번은 사각모자를 쓴 유정의 사진이 끼여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을 차마 찢어 버릴 수 없어 깊이 간수해둔 것이 이제 40년을 지난 오늘까지 박여사의 수중에 남아 있다. 유정의 편지는 점점 악이 받쳐갔다.「누님」이「씨」로, 그러다「녹주야」가 되더니 종내는「이년, 저년」이 되어버렸다.「연모」소리만 늘어놓던 편지가『너 오늘 운수 좋았다. 내 눈에 뜨이기만 했으면 죽었다』로 나왔다. 그러면서 집으로 찾아 들기 시작했다. 이때는 영감도 눈치를 챈 뒤라, 박여사는 영감과 상의, 유정을 피해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 유정은 용케도 또 찾아오는 것이었다. 갑부와 살림을 차렸는데 설이면 세배하러 왔다고 설이 되면 금반지 하나, 마른신(가죽신) 하나, 양단저고리 한 감을 갖고『세배하러 왔노라』며 찾아 들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버티고 앉기 일쑤여서 박여사가『이러다 우리 영감 만나면 어쩌느냐』고 안달하면 유정은 배포 좋게『그래야 영감과 헤어지고 나하고 살 수 있게 되지 않느냐』며 버티었다. 한번은 어느 중국집에서 손님이 부른다기에 갔더니 방에는 유정 혼자 버티고 앉았더란다. 『나하구 살자』『그렇겐 못한다』설왕설래 끝에 유정이 하는 말이 - . 『너 돈이 좋으니? 그럼 내 나랏님 진지밥상이라도 훔쳐다 주마』하더라는 것. 이러길 꼬박 3년. 정 모씨(월북)가 쓴『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까지 이 연애사건은 기록이 되어버렸다. 박여사가「관」에서 노래하는 줄 알면 그 앞 골목에 숨어있기 일쑤요, 집을 비우면 집에서 버티고 기다렸다. 마침내 박여사는 모든 세상살이가 귀찮아 졌다. 김유정의 손길도 피할 겸 피로한 몸도 쉴 겸 삼방약수터로 훌쩍 떠나버렸다. 이것이 유정과의 마지막이었다. 꼬박 3년 - 열병 앓듯 하던 유정은 그 해 조선(朝鮮)·중외(中外) 두 신문에 소설이 당선되고 이어 계속 수작들을 발표했다. 사랑의 열병이 한물 가시고 나자 유정은 흡사 박여사에게 미치던 것처럼 문필(文筆)에 미쳐버린 것. 그러나 이때 이미 유정은 폐결핵을 앓기 시작할 때. 결국 그는 30이란 아까운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번 손목이라도 잡고 다정히 대해주었더라면 싶어』- 박여사는 사각모를 쓴 유정의 사진을 어루만진다.『이제 다 지나간 일이지만 - 』하며 박여사는 담배연기를 훅 내뿜곤『나보다 더 오래 살아 내 소리보다 몇 백 배 더 좋은 글을 써주길 바랐더니…』박여사의 눈동자엔 40년 전 사랑이 당장 쏟아질 듯 가득히 괴어 있다. <작가 김유정씨 약력> 1908년 강원도 춘천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상경, 형의 집에 머무르면서 휘문(徽文)고보를 거쳐 연희(延禧)전문학교 문과를 중퇴. 1935년 단편『소나기』가 조선일보에,『노다지』가 중외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그 해『금따는 콩밭』『산골』을 발표, 다음해에『동백꽃』『야앵(夜櫻)』『봄봄』『땡볕』, 37년에『따라지』등의 수작을 발표했다. 문단생활 단 2년 만에 30여 편의 단편을 발표한 그는 향토적 서정이 풍부한 독특한 문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고백한 바와 같이 빈곤, 실연, 병고로 말미암아 우울이「성격화」되어 그의 작품 뒤에는 언제나 인생을 방관하는 애수가 깃들여 있다. 27세 때부터 폐결핵으로 고생하기 시작, 1938년 30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2005 발레協 대상 김정수씨

    한국발레협회(회장 김민희)는 ‘2005 한국발레협회상’ 수상자들을 선정,5일 서울 시내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올해 대상 수상자로는 김정수(단국대 교수)씨가 선정됐다.부문별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무용가상 김명순(호산나선교발레단 지도위원)▲작품상 이상만(Lee 발레단 예술감독)▲공로상 손정자(우석대 교수)·김복선(동아대 교수)▲신인안무가상 최지연(한양대 강사) ▲프리마 발레리나상 강예나(UBC 수석무용수)▲당쇠르 노블상 이원철(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신인상 노보연(국립발레단 캐릭터 솔리스트)·김민정(UBC 수석무용수)▲전성숙여사상 이빛나(세종대 재학)▲감사패 전준식(동아특수정밀 회장)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다른 듯하면서 닮은 도발적 멜로 두편

    다른 듯하면서 닮은 도발적 멜로 두편

    수은주가 0도를 오르내리는 이 12월. 극장가가 때아닌 연애담으로 후끈 달아오른다. 어감부터 헷갈려서 충무로를 분분하게 만드는 국산멜로 ‘애인’(제작 기획시대)과 ‘연애’(제작 싸이더스FNH·필름나루). 각각 8일과 9일 개봉하는 영화들은 다른 듯하면서도 너무 닮았다. 기습적 연애에 빠진 여주인공, 그 과정을 통해 자아를 돌아보게 되는 주제의식은 충분히 한 틀에 포개질 만하다. 똑같이 순제작비 13억원이 들어간 저예산 영화란 점도 닮았다. 그러나 도발의지가 선명한 두 영화들의 감상포인트는 보기에 따라선 극단적일 수 있다. 낭만적이거나 혹은 치명적이거나! ●약혼자 두고 엘리베이터서 만난 남자와… ‘연인’과 크게 다른 뜻이 아닐진대 훨씬 더 내밀한 느낌을 주는 단어가 ‘애인’일 것이다. 그 은밀한 뉘앙스를 발판삼아 도발을 모색한 멜로물이 성현아 주연의 ‘애인’이다. 7년 사귄 남자와의 결혼을 한달 앞둔 여자(성현아)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조동혁)가 싫지 않다. 장난처럼 ‘작업’을 걸어오는 당당하고 유쾌한 남자. 약혼자와의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여자는 남자의 기습적 연애공세를 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다음날이면 아프리카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나는 남자와, 약혼자를 두고 낯선 남자와의 시한부 밀애를 즐기는 여자의 이야기에는 구구한 ‘정보’가 없다. 이름도 나이도 명시하지 않은 극중 남녀 주인공의 자유연애와 심리상태만이 탐색의 대상일 뿐이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대낮에 진한 첫 정사(그것도 갤러리에서)를 갖기도 하는 남녀는 어쩌면 원초적 욕망의 현시(顯示)이다. 노골적이고도 뻔뻔한 섹스장면들은 수위가 높다. 하지만 애당초 불온한 의도로 가득찬 이 ‘섹스영화’에는 신기하게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낯을 붉힐 겨를이 없다.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 속에는 낯선 남녀가 만나 익숙해지는 전체 과정이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그 솔직한 내용들은 도덕관념을 무감각하게 만들 정도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예컨대, 조심조심 서로를 탐색하던 남녀가 섹스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다음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말을 트는 사이로 돌변하는 식이다. 너무 늦게 새 사랑을 발견한 커플의 이야기에 감독은 측은하게 질척거리는 감정을 싣진 않았다. 동기불순한 이 섹스영화에 별 반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다. 하루를 함께 보낸 남자를 ‘사랑’이라 인정하면서도 결혼이란 제도의 울타리를 선택하는 여자는 현실만큼이나 현실적이다. 세련된 멜로가 되기엔 힘이 달리는 부분이 눈에 띈다. 주인공들의 감상을 걸리적거릴 만큼 집요하게 부각시킨 몇몇 장면들, 깊은 인상을 심지 못하는 세공 덜된 대사들은 많이 아쉽다. 김태은 감독 데뷔작.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빚 쪼들려 접대부 생활하다 만난 남자와… 연애는 변덕스럽다. 설레고 낭만적이면서, 때론 위태롭고 치명적이다. 달콤한 첫맛과 쓰디쓴 끝맛을 동시에 남기기도 한다. 영화 ‘연애’(감독 오석근)는 이같은 연애의 속성을 30대 초반의 가정 주부의 일탈을 통해 풀어낸다. 자극적 소재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과 묘사를 통해 연애에 담긴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무미건조하게 사는 어진(전미선)은 전화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한 남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고단한 일상을 달랜다. 남자와 시시콜콜 얘기하고 위로받는 것이 어진에겐 삶의 청량제인 셈. 어느날 어진은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김여사(김지숙)의 소개로 룸살롱 접대부의 길로 들어선다. 남편이 실직한 뒤 빚에 쪼들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매춘에 뛰어든 것. 모든 상황이 낯설고 수치스럽지만, 그곳에서 만난 남자 민수(장현수)는 어진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대하는 등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연애는 서툴고 사랑에는 어색한 어진은 민수의 접근에 설레며 점점 그에게 빠져든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첫 섹스가 두렵지만, 자신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이기에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행복은 여기까지. 민수는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며 어진을 당황케 만든다. 감독·주연배우·제작사 모두에게 의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탁월한 연기력으로 의심없는 연기 내공을 선보인 전미선은 영화를 통해 데뷔 16년 만에 처음 주연 배우에 이름을 올렸다. 오석근 감독은 지난 93년 작 ‘101번째 프로포즈’ 이후 12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싸이더스픽쳐스와 좋은 영화의 합병으로 탄생한 싸이더스FNH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만큼 산뜻해 보이지 않는다. 다소 투박하고 답답하다. 일탈을 좇는 어진의 시선은 불안하고, 주변을 둘러싼 삶의 고단함이나 남자들의 감정도 어정쩡하다. 차라리 더 자극적으로 강하게 나가든가, 잔가지를 좀더 쳐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권양숙여사, 이명박시장 예방 15대총선등 주제로 환담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2일 만나 나눈 대화가 화제다. 권 여사는 이 시장에게 대통령을 빼닮은 ‘직설화법’을 구사하면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쓴잔을 마신 일과 청와대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권 여사는 이날 오전 11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구세군 대한본영 자선냄비 시종식 및 타종 시범식에 참석하기 전 시장실을 예방해 2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권 여사는 “손녀가 요즘 못하는 말이 없어 신기하네요.”라고 신변 얘기를 하며 “얼마나 일을 많이 하시면 불도저 시장이라고까지 불리세요. 실제로도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라며 이 시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권 여사는 “우리, 종로에서 한번 선거했었죠?”라며 선거 이야기를 꺼냈다. 종로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시장이 겨뤘던 15대 총선을 화제로 삼은 것이다. 당시 이 시장이 1위,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2위, 노 대통령이 3위를 차지했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그땐 정치를 잘 모를 때였습니다.”라면서 “청와대 생활이 갑갑하지 않으세요?”라고 되물었다. 권 여사는 “행사 중심 일정이어서 재미가 없네요. 보고·회의·행사가 반복돼 처음엔 답답했는데 이젠 익숙해졌어요.”라고 답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꼬마아기 14인의 치맛바람

    꼬마아기 14인의 치맛바람

    치맛바람 중에도 아주 훈훈한, 엄마냄새 가득한 바람도 있다. 정릉동 266의 61, 담없는 집의 엄마 김문수(金文洙·38)씨가 그런 바람의 주인공. 벌써 넉 달째 동네소녀 열 네 명의 집회를 일요일마다 집뜰에서 열어준다. 노래하고 공놀이하고「포크·댄스」추는「브라우니」소녀단 집회. 다음은 하도 재미있어 보여 찾아 본 어느 일요일의 이 집회 얘기. 한국 최초의 동네소녀단, 일요일마다 한 집에 모여 『들린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매혹되고「걸·스카우트」운동에 미치지 않고는 이 짓을 못하죠. 아이 셋 가진 살림하는 여자가 집안으로 남의 아이들을 끌어 들이는 일이니까요』 「브라우니」는 소녀단 중에도 제일 나이 어린 국민학교 꼬마들의「그룹」이다. 그래서 우선 시끄럽고 다루기가 가장 힘들다. 이 정릉의「브라우니」들 나이도 만 6살부터 12살까지. 대장인 김문수씨의 막내딸 박명선양과 동네꼬마 서은선양이 최연소자. 5학년짜리가 6명, 4학년짜리가 2명, 3학년짜리 3명, 2학년짜리 1명. 일요일 하오 2시면 저희들 이름대로「브라운」빛「브라우니」단복을 입고 모여든다.「브라우니」방석 한 개씩,「브라우니」일기 하 권씩을 들고 온다. 집회는 담은 없지만 넓은 잔디가 있는 뜰에서 열린다. 손가락 두 개로 이마를 짚고 악수하는「브라우니」인사를 한다. 1주일 만에 만나는 동무들. 주간 동안은 제각기 다른 학교, 다른 학급으로 뿔뿔이 헤어져 공부하는 꼬마들이다. 사실 이 정릉「브라우니」는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국민학교 어린이의 소녀단 활동이 이제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거의가 학교 단위로, 학년 단위로「그룹」이 조직되고 대장은 국민학교 선생님이다. 엄마가 대장이 되어 이웃을 단위로 조직된「브라우니」는 이 정릉의 경우가 처음. 나이가 다양하니까 지도하는 엄마는 좀 힘들다. 얼핏 생각하면 꼬마들도 6살~12살이면 지능 정도차가 심해서 곤란할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흥미 있어 한다. 학교에서, 집에서 보는 식상한 얼굴들이 아니라서인지 의들도 그럴 수없이 좋다. 『하느님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어린이가 된다』『남을 돕고 가족을 돕는다』『손윗사람을 존경하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약속과 규율을 같이 외는 것도 이날의 일과. 게임을 한 가지씩, 끈 매는 법도 배우고 쉬운「게임」을 한 가지씩,「포크·댄스」도 한 가지씩 엄마대장이 가르치는 대로 배운다. 공치기를 하다가 털썩 자빠져도 옷을 버리지 않는다. 옥외에서는「브라우니」깔개를 엉덩이에 꼭 매고 있으니까. 끈 매는 법도 배운다.『남을 돕는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우선 무엇이든 할 줄 알아야 한다. 치맛단이 뜯어졌거나 단추가 떨어졌을 때 꿰매는 법도 배운다. 6살박이 명선, 영선, 두 꼬마도 물론 같이 배운다. 12살짜리 언니들은 이 두 꼬마가 앙증맞고 귀여워 죽겠단다. 이래서 집회 활동 중에 우애는 더욱 깊어진다. 「브라우니」일기첩에는「1일 1선(善)」의 소녀단 실천항목이 있다. 제각기 공책에 칸을 만들어 가진 자작 일기첩. 1주일 동안 한 착한 일을 서로 공개하는 일과도 있다. 아직은 어린 꼬마들이니까「이닦기」「자기 방 자기가 치우기」「형제끼리 안 싸우기」「엄마 심부름 하기」가 가장 큰 기록. 그동안 날씨가 추워서 옥외집회는 잠깐 하고「프로그램」을 주로 집안에서 했다. 20평짜리 집의 4평 응접실과 꼬마방이「브라우니」임시집회실. 열 네 명이 모여 앉으면 와글와글해서 사람과 소리가 집안을 꽉 메운다. 『어쩌다 일요일에 집에 있으면 자기 아이들도 귀찮은 법인데 매주일 그 와글거리는 것 어떻게 참고 사시오?』 이 집 주인 박기순(朴基淳·한국은행 조사역)의 친구들이 신통해 한다. 방관자인 아빠뿐만 아니라『「브라우니」에 들린』엄마도 실은 고달프다. 『교회에서 좀 늦게 돌아오면 점심밥이 입에 들어 갈 새가 없어요』 꼬마들이 벌써 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일이 재미나는 것은 운명이고 부부간의 결혼계약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기순씨는 신통해 하는 친구들에게 변명조로 이렇게 해명한다. 『「걸·스카우트」를 그만두지 않는 걸 조건으로 결혼했으니 별 수 있나요』 대장은 세 아이 가진 엄마, 13년 전 소녀단원 된 후로 13년 전인 57년 3월 김문수씨는「걸·스카우트」봉사대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한창 재미를 붙인 그 해 9월에 결혼을 했다. 그때 심정으로는 너무 당연한 결혼조건. 그 뒤로 매주 2시간「걸·스카우트」일을 해왔다. 『「브라우니」들이 너무 수선을 떨면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아빠가 자주 독촉을 해서 만들어진「담없는 집의 브라우니」다. 작년 11월에 딸네미 있는 이웃집을 일일이 방문해서 22명이 모였었다. 집이 좀 멀고 너무 수줍음 타는 아이들이 빠지고 지금은 14명. 『엄마들이 그러는데 꼬마들이 일요일 되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대요. 4월은 꽃씨 뿌리는 달이죠』 지난번 3월 15일 선서식을 했는데 엄마들이「금일봉」을 선사했다. 그 돈으로 꼬마들이 공을 샀다. 나머지는 동네에 뿌릴 꽃씨를 사서 4월 활동을 할 계획. 57년 3월 김여사가「걸·스카우트」대원으로 선서한 것도 15일. 이번「브라우니」들이 선서한 것도 3월 15일. 그 동안 모아둔「걸·스카우트」단보(團報)를 며칠 전에 들춰 보고 알아낸 우연의 일치. 이것도 즐겁고 신명나는「운명」인 줄 알고「브라우니」엄마 노릇을 언제까지나 할 작정이란다. [ 선데이서울 69년 4/20 제2권 16호 통권 제30호 ]
  • 간부 여사원이 괴롭히는데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9)

    사연 : 상사(上司)의 구박 면하려면 석 달 전부터 저의 사무실 생활은 지옥보다도 더 비참해졌습니다. 저는 직장생활 2년의 22세의「타이피스트」입니다. 그런데 석 달 전 40대의 노처녀「타이피스트」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타이피스트」경력 20년이니까 물론 초「스피드」예요. 영어도 잘하기 때문에 외국인인 사장의 비서역할까지 합니다. 회사가 커져서 채용된 간부급「타이피스트」라나요. 그런데 이 간부 여사원이 들어오는 날부터 저를 구박하는 거예요.「미스·타이프」를 나무라는 것은 물론 전화받는 법이 못됐다는 등,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흉을 봅니다. 그것도 10여명 남자사원이 있는 데서 큰 소리로 빈정거려요. 요즘은 회사를 나오려면 골치가 아파지고 그 여인이 옆에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사무실에서 퇴근하면 두통과 가슴의 고통이 멎는 거예요.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처지는 못됩니다. <서울 중구 소공동 李> 의견 : 아첨, 대결 중 택일 22세 아가씨와 40대 노처녀 사이에도 질투의 감정은 생생하게 일어나는 모양이군요.「미스」리는 자기만이 피해자인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 질투의 감정은 양편에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을 시인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이 말이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요? 문제 해결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미스」리가 태도를 돌변해서 이를 테면 옛날 소설에 나오는 기생첩이 대감마님 위하듯 아첨하는 법. 둘째, 대판 싸움을 걸어서 응어리졌던 감정을 푸는 법. 셋째, 제일 건전하고 상식적인 방법인데 낙서첩을 한 개 마련하여 틈만 나면 그 여인의 욕설, 악담을 적는 것입니다. 속이 후련해져서 정작 본인을 맞닥뜨리면 미운 감정이 약화될 겁니다. <Q> [ 선데이서울 69년 4/20 제2권 16호 통권 제30호 ]
  • 盧대통령 “농민들이 큰일 낼것 같다”

    “농민들이 큰일을 낼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주말인 26일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05 서울 쌀박람회 및 발효식품전’을 둘러보고 박홍수 농림부장관에게 이같이 밝혔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손정수 농촌진흥청장으로부터 고품질 쌀인 ‘쌀라이스’의 설명을 듣고 쌀라이스로 만든 쌀밥을 시식했다. 노 대통령은 “하루 세 끼 꼬박 밥을 먹는데 밥맛이 참 꿀맛”이라면서 “쌀밥이 맛있다.”면서 쌀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어 쌀로 만든 고기인 ‘쌀고기’ 전시관에 들러 시식하면서 “고기 같은 맛이 난다.”고 품평했다. 노 대통령의 쌀박람회 참석은 쌀시장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을 농가의 경쟁력 향상을 평가하고 차세대 먹을거리 산업으로의 발전을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어 ‘미래 성장동력 연구성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3층 컨벤션홀로 자리를 옮겨 미래과학기술홍보관, 팔씨름 로봇관, 테라급 나노소재관, 양성자 가속기관, 위그선관, 자원재활용관,DNA칩 제작관 등을 차례로 들러봤다. 노 대통령은 팔씨름 로봇관에서 2개의 작은 로봇이 동요 ‘곰 세마리’에 맞춰 춤추는 것을 지켜본 뒤 직접 로봇과 팔씨름을 하기도 했다. 이어 위그선(물 위를 나는 배)관에서는 “원리가 비행기와 같으냐.”“공기부양정과는 뭐가 다르냐.”“이 기술은 어디서 개발됐느냐.” 등의 질문을 던지며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오명 과학기술부총리, 박홍수 농림장관과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 김영주 경제정책수석,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등이 수행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동양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데다 이관희(76)여사 사이에 딸만 둘을 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화경(49)씨가 일찍이 경영에 참여해 현재 오리온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동양의 ‘경영 대권’은 맏사위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 사위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에게 돌아갔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만큼 이 창업주가(家)의 혼맥도는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또 이 창업주가 딸들의 통혼을 통해 사돈가(家)의 후광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유업을 이어갈 사위들의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혼맥의 단순함을 더했다. 특히 오리온 담 회장의 집안이 화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설탕왕·시멘트왕’ 이양구 창업주 동양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부친 이교흠(작고)씨와 모친 김성자(작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서남의 어린 시절은 힘겨운 생활로 점철됐다.15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졸업장을 받은 서남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함흥물산’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했다. 서남은 훗날 이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8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서남은 1938년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6·25전까지 수차례의 회사를 세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고향에 수십만평의 토지와 1억원에 가까운 거금도 삼팔선과 전쟁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이 거꾸로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남은 부산과 마산, 대구 등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서남은 당시 국내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 가까운 사이였다. 서남은 1955년 삼성 이 창업주와 풍국제과의 배동환씨 3인의 공동 출자로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풍국제과의 경영에도 참여해 오늘날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기틀을 다졌다. 또 동양제당이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서남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서남은 1957년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노후시설 교체와 증산을 통해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규 업체의 대거 진입으로 시멘트가 남아돌았고, 정부의 금융 긴축정책으로 동양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서남이 훗날 ‘운명의 날’이라고 밝혔던 1971년 9월10일 법원에 회사보전신청을 제출해 세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살아났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가 사실상 동양의 구명줄이었으며, 평상시 쌓아온 정직과 신용도 큰 도움이 됐다. ●운명적인 만남 서남과 이관희 여사의 인연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6·25가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거제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했다. 6·25 발발로 3년 5개월만에 공군 소속으로 귀향한 서남은 모친의 부탁에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관희씨는 당시 함흥의 명문인 영생고녀(永生高女)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전쟁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올리고 생이별을 하게 됐다. 부산으로 내려온 서남은 가족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피란선을 타고 월남해 거제도에 머물던 관희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이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의 유업을 기리고 있다. 서남과 이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경(53)씨와 차녀 화경씨 등 2녀를 뒀다.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혜경씨는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혜경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선비 가문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고 현 교수의 3남2녀 가운데 셋째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인 현재천(61)씨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는 현재란(49) 의사로 현재 이화의원 원장이다. 현 회장과 이 고문은 ‘정담(28·여)-승담(25·남)-경담(23)-행담(18)’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2세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녀 현 회장과 동문이다. 첫째인 정담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한 뒤 지금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장남 승담씨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차녀 경담씨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행담씨는 스탠퍼드대 교양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서남의 둘째 딸 화경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0년 뜨거운 열애끝에 담철곤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의 선친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으며, 타이완 국적으로는 한의원 경영이 쉽지 않아 일찍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경씨와 담 회장은 슬하에 경선(20)씨와 서원(16·남) 1남1녀를 뒀다. 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원군은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남가(家)의 혼맥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나마 현 회장 집안을 통해 정·재계에 인연이 이어진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상윤 전 총장은 6∼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 전 국회법사위 위원장과 사돈지간이다. 김 전 법사위원장은 손경식 CJ 회장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잉꼬 부부 이 고문과 현 회장은 중매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결혼 이후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에 홀로 유학한 현 회장은 이 고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편지 첫 머리에 늘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적었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서로가 첫 사랑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온 담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이 사장을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 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애했다. 담 회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유학간 4년이 유일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 때도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싼 국제전화를 하는 탓에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친구에서 연인, 다시 부부로 인연이 이어지기까지 두 사람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오랜 만남을 지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결혼때는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CEO(최고경영자)’다. 담 회장은 현재 이 사장이 총괄경영을 맡고 있는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아이디어를 추진한 주역이다. 이 사장은 “나는 다소 감성적인 반면 담 회장은 실용적이어서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이제는 이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더없이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곧잘 언급한다. ●혹독한 경영 수업 서남은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더 강하게 경영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 서남의 ‘후계자론’이다. 현 회장은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입문한 뒤 결혼과 함께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동양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 창업주는 타계하는 날까지 두 사위와 작은 딸에게 이론과 실전으로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후, 이 창업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았다. 낮에는 현장을 같이 누비며 실전과도 같은 수업을 받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수십년동안 쌓아온 이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이틀 정도 잠을 안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이화경 사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담철곤 회장도 유학을 마친 후 동양시멘트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자가 되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며 두 사람 모두 구매부로 발령냈다. 이후 이 사장은 영업부를 제외한 각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특히 마케팅담당 시절엔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로 광고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 광고다. 그는 입사 26년만에 오리온그룹의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담당하는 CEO에 올랐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의 여성부호 50인 가운데 8위(1652억원)에 올랐다. 담 회장도 81년부터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구매부장과 사업, 관리, 영업 상무 등을 거치며 89년 동양제과 CEO에 올랐다. ●동양·오리온의 분가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사위간에 기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기에 동양제과가 영상미디어 분야에 투자와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계열분리가 빨라졌다. 동양제과는 2001년 9월1일 동양에서 분가했다.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뿌리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과 오리온의 분가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위해서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그룹이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지를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이후 동양은 금융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증권·종금·투신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사로 거듭났으며, 동양생명은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동양은 현재 제조업 6개사, 금융 7개사로 총자산은 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00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계열사를 26개사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액 1조 5300억원을 올렸다. 특히 미디어플렉스의 극장사업체인 메가박스는 전국에 11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말아톤’과 ‘웰컴투 동막골’,‘가문의 위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켜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베니건스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과 편의점 사업체인 바이더웨이 등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오리온의 대표 CEO 노영인(59) 동양시멘트 사장은 30여년을 시멘트업계에 종사한 산증인이다.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 한파를 수출로 돌파했다. 그동안 시멘트 수출은 채산성이 안 맞고, 선진국의 품질검사가 까다로워 시늉만 내왔다. 그러나 노 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밀어붙여 99년에는 창사이래 최대 물량인 171만t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579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기나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노 사장은 동양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박중진(54)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은 금융업계에선 신사로 통한다. 친근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그는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증권과 동양생명, 동양종금을 거치며 10년이상 실전 금융을 익혔다. 윤여헌(57) 동양생명 사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건설부와 재무부를 거쳐 95년 동양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겉치레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내실형’ 스타일이다. 철저한 손익 위주의 경영을 선호한다.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상우(48) 오리온 대표이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1987년 오리온(옛 동양제과)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마케팅 분야를 맡았다. 농심이 장악한 국내 스낵시장에 포카칩과 스윙칩 등을 출시해 오리온의 돌풍을 일으켰다. 오일호(53) 스포츠토토 사장은 1987년 오리온 마케팅부 과장으로 입사해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004년엔 스포츠토토 사령탑을 맡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가라앉은 ‘토토´를 최근 ‘토토 붐´으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golders@seoul.co.kr ■ 창업주 두딸 이혜경·화경씨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자매.’ 이혜경(53) 동양매직 고문은 국내 ‘재벌가(家)의 딸’들이 그러하듯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공(이화여대 미대)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장녀로서 모친인 이관희(서남재단 이사장) 여사를 도와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서남재단의 이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이화경(49) 오리온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밑바닥을 두루 거친 뒤 26년만에 오리온 사장에 올랐다. 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장은 그동안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언니와는 다르게 ‘바깥 일’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자매를 잘 아는 지인들은 보통 언니를 ‘살림꾼’으로, 동생을 ‘여장부’로 부른다. 이 고문은 소박하면서 다정다감하다. 살림을 손수 챙기며,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다. 미술 감각을 살려 실내 장식과 정원 등은 손수 꾸민다. 또 혼자서 곧잘 동대문 시장에 나가 살림 도구나 가족 옷을 산다.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1남3녀를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대에 진학시킨 것은 이 고문의 노력과 관심 덕분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때 사회활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현 회장도 틈틈이 아이들의 영어와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막내딸 행담씨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고문은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 사장은 경영인,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한 법이 없다. 자녀(1남1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업무 외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경영인으로서 이 사장은 어떨까. 호탕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 현대경영이 2003년 8월 100대 기업 비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에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상의 유연함과 직원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현장 분위기와 실무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직원들은 이 사장을 열정적인 CEO로 평가한다. 이 사장이 전담하는 계열사는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 외식 사업부문인 롸이즈온 등 3개사. 일주일을 나눠 각각의 회사에 출근한다. 이 사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직원들과 직접 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CEO로서 때로는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사장은 “내가 재밌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golders@seoul.co.kr ■ 두 CEO 경영스타일 비교 ‘외유내강 VS 실용주의’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다 보니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을 선 굵은 외유내강형으로, 담 회장을 철저한 실용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기업의 성장세로는 담 회장의 오리온이 빠르다.1989년 매출액 1360억원에 불과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지난해 1조 5300억원으로 10배 이상 키운 것은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한 담 회장의 공이 크다. 현 회장은 오리온이 분가한 이후 그룹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금융계열사를 통합, 매각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 덕분에 10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그룹의 외적 성장은 더디었지만 속은 눈에 띄게 알차졌다. 현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재계의 ‘스타 CEO’로 떠올랐다.CEO 서밋 의장으로서 각국 CEO(최고경영자)들과 토론 및 기자회견을 깔끔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CEO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룹 총수가 화를 내서 임직원들의 기를 꺾으면 차후 일 진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원칙에 따라 결정된 내용은 남들이 주저해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평가받은 첫 사업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인수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대형사고와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터라 임직원들의 증권사 인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자본금 20억원에 지점이 덜렁 하나뿐인 일국증권을 불과 5년만에 10대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를 계기로 동양은 30년간 지속된 시멘트와 제과 사업에서 탈피해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를 일궈냈다. 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 중학교 시절 바둑을 배워 고등학교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대학 때는 교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장수영 9단에 2점으로 버티는 아마 고수다. 현 회장의 고교·대학 동기들은 그를 ‘티없는 친구’로 기억한다.“품성이 맑고 깨끗하며 원만할 뿐 아니라 일처리까지 깔끔하다.”는 것이다. 담철곤 회장은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 대신 스키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스타일도 아니다. 직원들은 잔정이 많은 CEO라고 얘기한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부장 시절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담 회장으로부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회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습니다.‘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직원의 기를 꺾지 않으려는 회장의 배려였지요.” 담 회장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90년대 초반에는 20대 중심의 신규 사업팀을 구성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쓴맛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훗날 오리온의 케이블 TV사업과 극장·외식사업 등으로 진출해 현재의 그룹 규모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잘 엮는다. 국내 제과사들이 90년대 안방시장에 안주하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오리온의 고성장을 주도했다.2003년엔 남들이 모두 망했다고 평한 체육복표 사업체 스포츠토토를 인수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꿔 놓고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6일 TV 하이라이트]

    ●희망풍경(EBS 오후 5시40분) 지난 15일 수훈이가 활동하고 있는 복합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홀트 혼성합창단 ‘영혼의 소리로’가 아주 특별한 공연을 가졌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수줍어하던 11살 정신지체아 수훈이가 3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이룩한 결실. 꼬마 지휘자 수훈이의 아름다운 도전을 지켜보자.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35분) 전통의 맛을 지켜나가는 아름다운 고장 순창을 찾아간다. 순창에서만 생산되는 질 좋은 고추와 순창의 맑고 깨끗한 물로 담근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의 고추장마을. 이곳에선 지금 고추장 담글 메주 띄우기가 한창이다. 고추장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순창 고추장’의 맛의 비결과 담그는 비법을 배워본다.   ●자매바다(MBC 오전 9시) 김 실장에게 끌려간 충근은 권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김 실장을 제압한 뒤 그의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난다. 다음날 호식의 사무실로 찾아간 충근에게 호식은 춘희에게 한 행동은 자신에게 맞선 것과 마찬가지라며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춘희는 인수에게 정희가 동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라고 한다.   ●잘먹고 잘사는 법(SBS 오전 9시) ‘건강음식 대백과’에서는 요구르트, 올리브와 함께 서양의 3대 장수음식으로 꼽히며 고대 로마시대에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던 양배추를 소개한다. 또 ‘비교체험 여행쇼!일상탈출’에서는 딸기와 감귤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또 ‘금주의 웰빙뉴스’에서는 조류독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고향역(KBS1 오전 8시5분)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는 양쪽 집안은 음식을 만들고 함 맞을 준비로 바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 여사는 선경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난다. 무사히 함이 들어온 다음 날, 채달평은 송 사장이 직접 써서 보낸 혼서를 들고 철기를 찾아가고, 질긴 악연의 고리를 실감하는 철기는 회한에 젖는다.   ●진미 대탐험(KBS2 오전 8시) 산에서 나는 쇠고기로 ‘진시황제의 불로초’로 알려진 더덕. 맛과 영양이 더덕더덕 붙어있다는 더덕도 올바르게 먹어야 약이 된다고 한다. 더덕의 효능과 이색요리 등 더덕의 모든 것을 공개한다. 또 5500명의 네티즌이 직접 뽑은 ‘다이어트 할 때 결심을 무너뜨리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알아본다.
  • 로버트김 어제 출국

    10년만에 고국을 찾은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이 19일간의 방문일정을 마치고 24일 오전 미국으로 떠났다. 김씨는 이날 공항에서 일체의 공식행사 없이 친지 및 후원회 회원 20여명의 조촐한 환송을 받으며 부인 장명희(61) 여사와 함께 출국했다. 그는 출국에 앞서 “고향의 따뜻한 인정을 느꼈다. 조국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3대세습?/진경호 논설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본관은 전주다. 시조인 문장공 김태서의 33대손이라고 한다.2000년 남북정상회담때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전주 이씨)에게 “이제야 한가족이 만났다.”라며 의기투합(?)했고, 방북한 남한 언론사 사장들에게는 “남쪽에 가면 시조묘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한 시조 김태서의 묘는 전북 완주 모악산 중턱에 있다. 풍수사들이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 곳이다. 정좌계향(동북향)의 갈마음수형, 즉 ‘목 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으로, 자손들이 부귀하고 크게 흥할 자리라고 한다. 특히 조산(祖山)인 고덕산이 멀리 있어 먼 후손이 묘터의 운세를 이어받는다니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이 해당되는 모양이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차남 정철(24)이 급부상하고 있다. 둘째부인 고 고영희의 아들로, 스위스 국제학교에서 유학했고,NBA의 열렬한 팬이며 온건한 성향으로 알려졌다. 엊그제 독일 슈피겔지가 정철이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 만찬 때 정철이 배석했고, 이것이 후계자 지명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부자의 권력세습은 지구촌 곳곳에서 이뤄져 왔다.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부친에 이어 2003년 취임했다. 지난해 취임한 싱가포르 3대 총리 리셴룽도 초대총리 리콴유의 아들이다. 인도에서는 네루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 또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가 잇따라 총리를 맡기도 했다. 이집트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야, 몰도바 등에서도 권력세습 움직임이 한창이다. 대부분 절대권력자의 국가들이다. 다만 3대 세습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들 나라보다 한 수 위라 하겠다. 권력세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반대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데다 중국과의 관계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시조 묏자리도 변수가 될지 모르겠다. 한 지역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시조묘가 마주한 고덕산의 정기가 김 위원장에게서 끝난다는 것이, 이 곳을 꼼꼼히 살핀 전북지역의 유명한 향토풍수사의 주장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권력 세습에 앞서 김 위원장이 직접 내려와 시조 묏자리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듯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내년 8월 서울서 ‘도서관 올림픽’

    전세계 도서관 관계자 50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2006 서울세계도서관 정보대회’(WLIC)가 내년 8월20∼24일 서울 코엑스 일원에서 개최된다. WLIC 조직위원회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기남(국회의원) 위원장과 한상완(연세대 부총장)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72차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서울총회를 겸한 세계 도서관 정보대회의 내용과 일정 등을 공개했다. ‘도서관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번 행사는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 태국에 이어 네번째로 서울에서 열리는 것으로, 전세계 154개 회원국의 1700여 단체에서 5000여명이 참가하는 매머드급 국제 행사다.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조직위 명예위원장을 맡게 되며,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이명박 서울시장, 배종신 문화관광부 차관, 우상호 의원,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 소설가 도정일씨 등 100여명이 조직위원으로 참가한다. 조직위는 대회 준비와 개최를 위한 예산 규모를 80억원으로 책정하고, 이중 18억원은 국고 보조로, 나머지는 참가자 등록비와 기업 협찬 등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특히 북한 도서관 관계자 50여명을 초청하며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최빈국들 관계자 무료 초청 등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번 행사는 도서관 관계자들의 상호협력과 교류라는 고유 역할에 더해 대규모 참가자들이 뿌리는 관광 수입 등 부가수익도 500억원에 달하는 등 경제효과도 매우 크다고 조직위측은 밝혔다. 이에 따라 대회 유치경쟁도 매우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대회에선 ‘도서관:지식정보사회의 역동적 엔진’이라는 주제로 총회와 각종 세미나, 콘퍼런스, 워크숍, 라운드테이블 등이 진행된다. 신기남 위원장은 “우리의 도서관계 위상은 한국의 국력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며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사회자본인 도서관을 전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리는 데 이번 대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완 집행위원장도 “문화강국, 지식강국을 지향해야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다.”며 “도서관이 이를 위한 역동적 엔진으로 거듭나게 하는 무대로서 이번 대회를 치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유학중 뉴욕서 교통사고 이건희회장 셋째딸 사망

    유학중 뉴욕서 교통사고 이건희회장 셋째딸 사망

    미국 뉴욕대에 다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3녀 윤형(26)씨가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삼성 관계자는 “윤형씨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치명상을 입은 뒤 다음날 새벽 숨을 거뒀다.”면서 “21일 오후에 직계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현지에서 불교식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고 22일 밝혔다. 삼성측은 “윤형씨 사망 이후 외부의 조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면서 “이 회장과 홍 여사는 결혼하지 않고 죽은 자식의 장례에 부모가 참가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장례식에는 참석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올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윤형씨는 다른 자녀들과 달리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활달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첫날밤에 신부가 죽었는데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8)

    사연 : 셋방「가스死」의 책임한계 저는 29세의 청년으로서 결혼 첫날밤에 불행을 당한 사람입니다. 저의 괴로운 사연을 해결해 주십시오. 사연인즉, 결혼 첫날밤에 셋방에서 신랑·신부가 연탄「가스」로 중태에 빠져 신랑은 회복하고 신부는 끝내 절명하고 말았습니다.(셋방에 이사하던 첫날밤이며 또한 결혼 첫날밤입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사람이 자기 집에서 죽었으니 죽은 사람의 남편인 제가 정신적인 손해를 보상하라고 합니다. 저는 오히려 집주인이 배상해야 한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까요. 법적으로 해결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시고 만일 고발하려면 어디로 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십시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124 권> 의견 : 손해배상 청구권 있다 얼마나 분하십니까. 우선 동정의 말씀을 드립니다. 법적인 문제이므로 변호사 김용달씨에게 문의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방이 지은 뒤 얼마나 되었는지에 따라서 문제가 달라진답니다. 오래 된 것이면 시공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고 책임은 집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이런 경우 집주인이 부주의하게 혹은 고의로 연탄「가스」가 새게끔 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지방법원에 고소할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은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것과 정신적인 손해에 대한 것으로 나뉘는데 계산법이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 여기 설명드릴 수가 없군요. 아무튼 손해배상 청구권은 응당 당신에게 있습니다. 걱정 마셔요. <Q> [ 선데이서울 69년 4/13 특대호 제2권 15호 통권 제29호 ]
  • 부시, 北 우회압박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9일 APEC 폐막 직후인 오후 4시25분쯤 경기도 오산 주한미군 공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이라크 독재자 몰아내 민주 만끽” 부시 대통령은 5000여명의 장병 앞에서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의 예를 들어 북한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는데, 그 골자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독재자를 몰아낸 지금 이라크 국민은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군에 의한 ‘정권 교체’를 두려워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민감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점퍼 차림으로 부인 로라 부시 여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함께 오산기지내 U-2기 격납고를 개조에 만든 행사장에 등장했다.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부시 대통령은 장병들의 열렬한 환호에 고무된 듯 밝은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한반도의 한쪽은 아직도 암흑에 갖혀 있지만 언젠가는 전 한국민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라크가 전쟁이후 자유선거를 치르는 등 변화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테러 자행은 커다란 실수이며, 미국은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北 “美, 강점 큰 수치 얻게될 것” 그러자 다음날인 20일 북한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강점통치를 계속할 경우 더 큰 수치와 죽음만 얻게 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앞서 APEC 기간 중 북한은 남한의 APEC 개최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 움직임만을 몇차례 보도했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부시·후진타오 정상회담] 美 위안화절상 ‘빈손’… 북핵등 공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이석우 기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 중국정부에 사회·정치·종교적 자유의 확대를 촉구하는 한편 중미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최대 현안인 경제·통상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며 이같이 촉구했다. 이날 회담에선 인권, 경제문제 등에 대해 대중국 압박의 수위를 높인 미국과 이에 대해 양국 관계의 포괄적인 협력관계 강화를 강조하며 갈등을 피해가려는 중국의 대응이 대조됐다. 두나라는 양자 문제에 있어선 이견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반면 북한 핵문제, 테러 방지 등 국제무대에서의 공조에선 협력적 기조를 확인했다. 신화통신은 후 주석이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 이른 시일안에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시의 경제 공세 부시 대통령은 무역역조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촉구하면서 후 주석을 궁지에 몰았다. 특히 위안화 추가 절상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도 함께 요구했지만 중국측은 무역불균형 시정 등을 위한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후 주석은 정상회담 직후에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무역역조 해소 조치와 위안화 절상, 지재권 보호 등을 위한 방안도 마련해 나가겠다.”는 원칙만을 천명했을뿐 구체적인 시기와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측은 보잉사가 이날 40억달러 규모의 여객기 70대 판매계약을 중국측과 맺는 ‘선심성 선물’에 만족해야 했다. ●부시 ‘자유의 확대´ 압박 부시 대통령의 정치·사회·종교 자유의 확대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의 문화와 전통, 국가적 상황이 있다.”고 말해 사실상 거부했다. 이 문제는 향후 여전히 양국간 팽팽한 ‘신경전’의 원인으로 남게 됐다. 정상회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20일 방중 첫 공식활동으로 베이징 시내의 강와스(缸瓦市)교회에서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종교의 자유를 확대하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다. 강와스 교회는 1921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주도로 건립된,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예배당으로 신자가 중국인과 외국인 등 5000여명에 달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신리(于新粒) 베이징 기독교양회 주석이 선물한 중국어 및 영어 성경을 받으면서 “건강한 사회란 모든 신앙을 받아들이고 예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방명록에 “중국의 기독교도들을 축복하소서”라고 썼으며 동행한 로라 여사는 “사랑과 존경도 함께 하기를”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 관리들은 “종교자유의 확대를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 비핵화 협조 경제·인권 등 양국 현안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반면 한반도 문제 등 국제적 공통관심사에 대해선 협력기조를 확인했다. 정상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 중국은 모두 평화롭고 안정된 핵무기없는 한반도를 원하고 있다.”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천명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기존의 핵개발 프로그램과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협력과 대화 강조한 후진타오 회담에서 후 주석은 경제성장을 위한 중국의 평화적인 노력과 국제 사회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위협론 완화에 노력했다. 신화통신은 후 주석이 지도자간 다양한 대화채널 유지, 에너지 협력강화, 문화교류 확대 및 문화협력을 위한 대화체제 수립, 무역균형의 점진적 실현 및 대화유지 등 5개항을 부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타이완 독립문제와 관련, 후 주석은 타이완 독립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타이완 독립의 반대와 저지를 통한 타이완 해협의 안정 유지가 중미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jun88@seoul.co.kr
  • “위기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친해요”

    “부산 APEC은 정말 훌륭했고 정상들도 아주 멋진 시간을 가졌으며, 따뜻하게 맞아준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에게 감사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19일 오후 부산의 한 식당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APEC 행사를 호평했다. 그는 특히 “18일 저녁 만찬은 APEC의 전체 일정과 모든 프로그램을 축약해 종합선물세트로 내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말했다. 로라 여사는 남편에 대한 내조에 대해 “우리 부부는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왔지만, 나는 보통 가정의 아내처럼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오랜 결혼 생활 덕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내 미국내 반한감정에 대해서는 “미국 국민 사이에 특별한 반한 감정은 없다고 본다.”면서도 “지금은 어려운 시기다. 미국은 수 차례나 아주 어려운 결정들을 내렸는데 전 세계 사람들 모두 우리의 결정에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권양숙 여사와의 친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2차례 만나 귀중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정상의 배우자는 개인 또는 공적인 문제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는 사람의 배우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선지 자연스럽게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라 여사는 시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여사로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관해 조언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며느리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점을 아시고는 자제하는 편”이라고 답했고, 쌍둥이인 두 딸 제나와 바버라가 정계에 진출한다면 지원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두 아이가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웃었다.부산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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