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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가출(家出)해버려-Q여사에게 물어보셔요(47)

    저는 이곳 광주(光州)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40세전후의 남자올시다. 지난 5·8총선(總選)때 모당(某黨) 공천으로 입후보해서 낙선(落選)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뒤 68년과 69년을 통해서 사업을 좀 해보았으나 잘되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몇백만원을 탕진하고말았습니다. 결국 10여년 동안을 지출위주의 살림을 해오던 아내는 이젠 더 해낼 길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끝애를 데리고 가출(家出)한지가 2개월 남짓 되었습니다. Q여사, 저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더욱이 집에는 두 애들이 중학교와 국민학교에 다니고있기에 더욱 저의 거취가 속히 취해져야 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는지? Q여사의 여성세계에서의 능동적인 교시(敎示)를 기다립니다. <광주(光州)시 충장(忠壯)로5가 은전「빌딩」 5층 김관(金寬)> <의견> 「사랑의 작전(作戰) 아닐까요」 당신은 가출한 부인을 왜 찾으셨습니까? 다섯식구의 생계와 아이들 학비 그리고 아마 당신 자신의 용돈 주선을 다시 떠맡기고 싶어서였나요? 조그마한 구멍가게라도 차리고 두 애의 좋은 아버지로서 착실한 생활인이 돼보시죠. 행방이 묘연한 부인의 가출은 당신에게 어떤 계기를 주려고 꾸며진 「사랑이 작전」이 아닐까요. 당신의 인생관과 생활태도가 변하기를 기다리며 부인은 어디선가 당신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요구하신대로 저의 여성적(女性的)인 직관(直觀)은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Q> [선데이서울 69년 10/19 제2권 42호 통권 제 56호]
  • SK·GS “해외 유전개발 올인”

    SK·GS “해외 유전개발 올인”

    ‘검은 노다지를 캐라.’ 정유업계의 대표 주자 SK㈜와 GS칼텍스가 유전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특히 SK㈜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미국과 아프리카, 남미, 유럽 유전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SK의 ‘유전 행보’가 빨라지면서 해외 인수합병(M&A) 제안도 받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동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북서부 해상의 마중가 광구 개발에 지분을 투자해 내년부터 탐사정을 시추한다. 참여사는 미국 엑손모빌(50%)과 영국 BG(30%),SK㈜(20%)이다. 이번 광구 개발 참여로 SK㈜는 석유 생산·개발ㆍ탐사를 진행 중인 지역을 13개국 23개 광구로 늘리게 됐다. 심해광구인 마중가 광구의 면적은 1만 5840㎢로 대규모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SK㈜는 내다보고 있다. SK㈜는 또 유럽 유전에 첫발을 내딛는다. 영국 북해 북동부에 위치한 해상 광구 4곳의 개발에 참여키로 한 것.SK㈜의 광구별 개발 지분율은 20∼60% 수준이다.SK㈜는 4개 광구에서 현재 기초 탐사작업을 진행 중이며,2007∼2008년에 탐사정 시추에 들어간다.SK 관계자는 “세계 석유산업의 중심지인 영국에 진출을 함으로써 향후 유럽지역에서 SK㈜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유전 개발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헌트사의 레이 헌트 회장 등 세계적인 에너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SK㈜는 현재 ‘지분 원유’ 4억 2000만배럴을 확보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2만배럴을 생산하고 있다.SK㈜는 2010년까지 지분 원유 7억배럴, 하루 생산량 10만배럴 달성을 위해 올해 자원개발에 지난해(2000억원)보다 69% 늘어난 3385억원을 투자한다. 2003년 유전개발 사업에 진출한 GS칼텍스도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서캄차카 해상 석유개발 사업을 위한 한국컨소시엄 지분 10%를 인수하고, 현재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서캄차카 광구의 추정 매장량은 37억배럴에 이른다.GS칼텍스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도 지난해 12월 예멘 탐사광구 국제입찰에 참여해 16광구에 대한 탐사권을 획득했다.GS칼텍스는 유전개발 사업을 통해 하루 정제 능력인 65만배럴의 10∼15%를 자체 조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GS칼텍스는 동남아와 중동, 중앙아시아 등에 추가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정치무대 복귀 앞둔 이명박 서울시장

    정치무대 복귀 앞둔 이명박 서울시장

    이명박 서울시장이 오는 30일이면 민선 3대 시장으로서의 4년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CEO를 거쳐 국회의원, 행정가,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가는 그를 만나 유력한 대권주자로서의 향후 구상을 들어봤다. ▶유력한 대권주자인데 내년 대선에 떠오를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전제는 선진사회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특히 서민경제가 무너져서 결국 경제 살리기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5.31지방선거의 압승이 대선에서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는데. -우리가 노력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으니까 자성하고 경고하는 뜻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총선과 대선의 간격이 좁았지만, 이번에는 2년 정도 남았다. 이번에 압승했다고 다음에 지고, 이번에 졌다고 다음에 이긴다는 방정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청계천 사업을 이뤄낸 것처럼, 차기 대선에서 구상하는 사업이 있나. 경부운하 얘기도 있던데. -2년이나 남았는데 공약을 얘기하긴 어렵다. 고용문제가 심각하니까 거기에 걸맞은 생산적 프로젝트가 나와야 한다. 정부가 소위 ‘있는 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을 펴서 소비가 위축되고, 내년에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늘었지만 근무연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 정부는 정년을 늘리려 하지만, 기업은 반대한다. -정년 연장의 대전제는 경제 활성화다. 경제가 침체돼 신입사원을 뽑을 수 없는 상황인데 고소득 근로자가 계속 늘면 기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경제를 적절히 성장시켜야 한다. 일본은 그렇게 하고 있다. 이 정권이 실패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만 보고 정책을 세우기 때문이다.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 양극화 해결방안은. -지식정보 산업화 시대에서는 소득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식정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라도 일자리가 있어서 살아가면 지식정보로 몇십억원씩 떼돈을 버는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소득은 양극화되지만 사회적 문제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양극화의 한쪽 극단은 노숙자다. 그동안의 정책은 세탁·목욕·잠자리를 마련해 쉼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노숙자들은 줄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시가 일자리를 주기 시작했다.1000만원을 예금하면 한 달에 5만원씩 내는 임대아파트를 주기로 했다. 자포자기하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거기에 걸고 있다.1000명이 일하는데 300명이 임대아파트를 신청했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치인이 모두 일자리를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주느냐에 차이가 있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복지정책을 생산적으로 돌려야 한다. ▶얼마 전 황제테니스 공세도 있었고, 정가에선 X파일이 있다는 등 여러가지 소문이 떠돈다. -황제테니스를 고발했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다. 무고죄에 해당한다. 우리 아들이 전방 군대를 갔다왔는 데 인터넷에선 군대 안 갔다는 글이 돌아다닌다. 요즘에는 어디에 내가 낳은 아이가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없으니까 X파일이다 뭐다 떠드는 것이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더이상 네거티브 선거전략이 먹히지 않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내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한·미 FTA가 국가 전체적으로는 플러스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정부만 준비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들고 나오니까 이해당사자가 당혹스러워한다. 이들이 대책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정서상 문제가 되는 것, 농수산물 특히 쌀은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 쪽도 그런 업종이 있다고 한다. 쌍방이 그런 업종은 10∼20년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걱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내년에 가서 미국 때문에 우리 농산물이, 영화산업이 다 죽게 생겼다고 하면서 반미감정을 자극하면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 평택 대추리 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미국 문제를 반미, 친미 등 정치논리로 해결하지 말고, 국익에 맞느냐, 반하느냐로 따져야 한다. 좌우 이념 갈등은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다. 후진적 발상인데 뛰어넘어 실용주의로 나가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안경호 발언은 전근대적, 냉전시대의 발상이다. 북한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조차 자칫하면 등을 돌리게 한다. 남쪽에 대한 전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실수한 것이다. ▶어떤 리더십을 갖고 있나. -사람들이 독선적이라고 오해하는 데 그렇지 않다.CEO형 리더십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결정을 하면 효율적으로 집행한다. 기업에서 그런 것을 배웠다. 임원들은 물론이고 말단 직원까지 목표를 부여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집행할 때 신속하니까 독선이라고 오해하는 면이 있다. 통합형 리더십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퇴임후 계획이나 활동은. -경선까지에는 1년 정도 남았다. 7월에는 가족들과 보내려고 한다. 친구·친지도 만나고 고향에도 다녀올 계획이다. 그후 현장을 체험해 보려고 한다. 그냥 휙 둘러보는 민생투어가 아니고 농촌이나 중소기업에 며칠씩 머물면서 몸으로 느껴보려 한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적으로 당에 맡기려고 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들려 하고, 이에 걸맞은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누가 되더라도 공정 경선이면 승복하겠다고 밝혔는데. -당연하다. 이제 이인제식 발상은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경쟁 끝에 의가 상하기보다는 협력해 정권교체를 이뤄낼 것으로 본다. ▶박 전 대표와 고건 전 총리의 장점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박 전 대표는 대중성을 갖고 당이 어려울 때 기여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 전 총리는 아직 정치한다고 밝히지 않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 그 신중함이 장점이다. ▶종합부동산세·재산세와 관련해 강남은 탄력세율을 적용한다고 한다. 결국 부자들만 이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인데. -강남에 부자만 사는 것은 아니다. 강남은 부자, 강북은 서민 이런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 정책 목표는 달성해야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 투기목적으로 집을 샀다, 팔았다 하는 사람하고 일생에 집 한번 옮기는 사람하고 차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부자에게 과세하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부작용을 많이 일으킨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부자의 비위를 맞춰라.’라는 정책을 펼친다. 우리와 용어는 맞지 않지만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재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경험없는 정권이 종합적인 대책없이 이념적, 정치적으로 하다 보니까 실책하고 있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오승호 경제부장 박선화 지방자치뉴스부장 정리 전광삼·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사장 인터뷰 스케치 퇴임을 보름 앞둔 15일 서울신문과 단독 회견을 가진 이명박 서울시장은 경제문제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1시간30분여 이어진 회견에서 이 시장은 정치분야에서는 다소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열정적으로 답변했다. 현대건설 등에서 잔뼈가 굵은 ‘실물경제통’인 이 시장은 중소기업의 경영난과 서민경제의 위축, 일자리 축소 등 경제 현안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경기침체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면서 “이대로 가면 올 연말을 넘기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며 시급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 시장은 가장 큰 경기 침체 요인의 하나로 대기업의 투자기피 현상을 꼽았다. 그는 “우리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국내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내 투자 없이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기업들이 대부분 ‘공포 분위기’에 있는 것 같다.”고 기업의 투자 마인드 위축을 걱정했다. 그 연장선에서 “지금은 누구도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면서 현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과 일관성 부재를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가급적 즉답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그는 “요즘 경제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 얘기하면 싫어한다.”면서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나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경선 방식 등 구체적 대권 도전 플랜을 묻자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여권의 정계 개편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민주평화통일세력 연대라고 해서 한나라당을 포위하겠다는 식의 정계 개편을 얘기했는데, 이는 아마 패배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사람 중심의 정계 개편은 지역 구도로 가게 돼 있다.”면서 “(정계 개편이 굳이 필요하다면) 지역을 아우르는 포용적 전략으로 전국 정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이명박 서울시장 주요 약력 ▲출신 경북 포항(65) ▲학력 동지상고·고려대 경영학과 졸 ▲경력 현대건설·인천제철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제14·15대 국회의원.97년 대통령선거 서울시 선거대책본부장. 서울시장(현) ▲가족 김윤옥 여사와 1남3녀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삼겹살과 김치찌개 ▲주량 맥주 1병 ▲애창곡 아침이슬 ▲취미 테니스, 수영 ▲존경하는 인물 도산 안창호 ▲좌우명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 한덕희씨 여섯째딸 한은자양

    한덕희씨 여섯째딸 한은자양

    철문안에 들어서면 정원이 가을뜰 답잖게 풍성한 서울 화곡동의 韓씨댁. 한가한 은퇴생활을 정원가꾸기와 독서로 한가하지 않게 보내고 있는 한덕희씨(韓德熙· 전 朝鮮醬油 주식회사 전무이사)댁은 이 풍성한 정원보다 더 풍성하게 인화초(人花草)를 가꾼 댁으로 동네에서 이름이 났다. 1男 7女의 인화초(人花草)중 아버지의 귀염동이 은자(銀子)양은 방년 20세. 『여럿이 자라서 그런지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척척 처리합니다. 그것이 부모 마음에는 언제나 흐뭇하고 자랑스럽죠. 아무말썽도 없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그 힘들다는 입시(入試)들을 모두 무사통과 했어요. 옛날 같으면 자랑 될것도 없겠지만 이런 일도 요즘 부모로서는 복(福) 아닐까요? 』 아버지 한덕희(韓德熙 )씨를 쳐다보며 동의(同意)를 구하듯 어머니 노(盧)여사가 말문을 연다. 말썽없이 건강히 자라난 미끈한 몸매의 梨大3년 이화여고를 거쳐 이대영문과(梨大英文科)에 재학중인 3년생. 싱싱한 구릿빛 피부가 이 아가씨의 활동적이고 발랄한 생활을 묻지 않을도 알게끔 한다. 『저희 애들이 거의 다 그랬지만 이 애는 특히 바빠요. 늘 하는 일이 그렇게 많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속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나요. 그런데 내 「코피 」시중은 꼭 들죠』 아버지 기호에 딱 맞추어 「코피 」를 끓인다. 7공주 중에도 아버지와 단짝이 된 이유는 이 손재간이 아닐지. 네째언니 혜자양은 「올림픽」수영선수고 그위 언니는 음악가고 세째언니는 미술가고 …. 은자(銀子)양은 음악을 하지는 않고 「디스크」수집을 한다. 『주로 「팝·송 」 』이란다. 『 요리솜씨가 꽤 있는 편인가봐요. 제 어머니한테 칭찬을 듣거든요』 불고기하고 「 카레 ·라이스」 는 요리전문가 뺨치는 자랑 「 메뉴」란다. 국민교 땐 『느티나무 있는 언덕』에 출연도 『애들이 모두 「스포츠 」를 조금씩은 해요. 은자(銀子)는 「스케이트」를 썩 잘타죠. 수영도 곧 잘하고-』 미끈하단 말이 바로 이 아가씨의 몸매를 두고 생긴 것 아닌가 싶다. 1백 62cm의 키. 귀여운 「쇼트·커트」며 싱싱한 표정. 「스포츠 맨십」이 뭔지를 이 아가씨는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회사원인 오빠는 왕년 연세대(延世大)의 「아이스 하키 」선수란다. 이 댁 유이(唯二)의 남성이 모두 은자(銀子)양의 「팬」이다. 『말을 시작한 김에 모두 털어 놔야죠. 은자(銀子)는 또 바느질하는게 취미랍니다 』 「스커트」같은 것은 수시로 「리폼」해 입고 나타나서 식구들을 놀래켜 준다. 갑자기 온 식구가 깔깔 웃으면서 『 마지막으로 공개하는 비밀이 한가지』있단다. 『 국민학교 때 「느티나무 있는 언덕」이라는 영화에 나갔어요. 학교 선생님이 추천을 하셨죠. 박노식씨가 그때는 날씬한 「핸섬」이었는데 공연을 했어요』 처녀 촬영을 말썽 안부리고 잘 해 냈다고 어머니 노여사는 덧붙인다.『 그게 겁이 없고 당당한 저 애 성격탓이었던가봐요. 지금도 겁이 없는 편이죠』 [선데이서울 69년 10/19 제2권 42호 통권 제 56호]
  • [역세권 아파트 탐방] 압구정동 구 현대아파트

    [역세권 아파트 탐방] 압구정동 구 현대아파트

    ‘강남 부촌 아파트 1번지+교통·교육·쇼핑·문화의 압구정 메리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은 1970∼80년대 부를 축적한 이른바 ‘강남 부자 1세대’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한강을 따라 현대(4979가구), 한양(2729가구), 미성(1233가구) 등 8941가구에 몰려 있는 국내 아파트 부촌의 효시다. 이 중 현대아파트는 압구정동에서도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의 대명사로 꼽힌다. 한강 조망권이라는 개념도 1970년대 말 구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처음 시작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4979가구(1∼10차) 규모의 단일 브랜드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재건축 위한 ‘종´상향 신청 반려 구 현대아파트는 아직 재건축 추진위원회 구성 단계다. 최근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서울시에 종 상향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통여건이 늘 만성 적체 상태여서 도로 등 단지 주변 인프라를 추가 확보하지 않고 층수만 올릴 경우 도시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반려 이유다. 재건축이 이뤄지려면 아직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투자가 목적이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교육·쇼핑 여건등 매력 지난해 가격이 급등, 올해 공시가격도 대폭 올랐다. 하지만 구 현대아파트 소유자들은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인근 중개업소들은 입을 모은다. 언젠가는 재건축사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고한 데다 문화·교육·쇼핑·교통 등 각종 여건이 훌륭한 압구정 메리트를 포기할 수 없어 대부분 보유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 인근 A부동산 관계자는 “3·30대책 이후 각종 규제로 재건축 아파트값이 떨어진다는 보도가 있지만 급매물 몇 개 때문에 그렇게 비춰지는 것뿐”이라면서 “매수세가 없지만 나오는 매물도 드문 데다 올들어 증여가 많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3·30대책 글쎄요~. 대신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은 세입자들에게 전가되는 분위기다. 현대 3차 33평형 전세의 경우 지난해 ‘8·31대책’ 당시만 하더라도 1억 8000만원이었지만 지난 3월 2억원으로 올랐고 지금은 2억 2000만∼2억 3000만원은 줘야 얻을 수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이 걸어서 5분 거리. 올림픽대로, 언주로, 논현로, 압구정로를 이용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 한강시민공원, 도산공원, 강남성모병원 등 편의시설과 압구정초, 구정중, 구정고 등 교육시설도 가까이 있다. ■ 도움말 내집마련정보사 김선영 팀장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대중컨벤션센터에 기증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소장하고 있던 수의(囚衣)와 옥중편지 등을 자신의 기념공간이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 기증했다. 김대중컨벤션센터는 14일 “김 전 대통령이 센터내 기념공간인 김대중홀에 전시하도록 수의와 옥중편지, 독서용 안경, 돋보기 등 30여점을 최근 보내왔다.”며 기증품을 공개했다. 센터에 기증한 소장품은 지난 1982년 7월 광주항쟁 배후조종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청주교도소 수감중 옥중에서 입었던 상·하 수의 한벌과 독서용 안경, 돋보기, 성경책, 목포상고 졸업앨범 등이다. 특히 부인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중 추위를 이기라며 직접 뜨개질해서 보낸 털옷 상·하의와 털 양말도 함께 보냈다. 이밖에 청와대가 기증한 김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사용했던 한식과 중식 식기세트, 많은 사연을 적기 위해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가족들에게 보낸 친필 옥중서신 20여점도 공개됐다. 김대중홀 전시품은 지난달 개관 당시 13종 90여점에서 이번 추가기증으로 30여종 120여점으로 늘었다. ‘김대중홀’로 불리는 기념공간은 80여평 규모로 지난해말 착공한 뒤 관련자료 수집과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지난달 9일 일반에게 공개됐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셸 위 댄스 실장… 샌드페블즈 비서관

    14일 청와대 브리핑에 ‘셸 위 댄스 실장’,‘샌드페블즈 비서관’,‘소림사 가족’‘최다 방북 공무원’ 등 특이 경력을 가진 청와대 참모들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전통 경제관료인 권오규 정책실장의 취미는 댄스다. 권 실장 부부는 차차차, 룸바, 삼바, 탱고, 왈츠, 블루스 등을 소화해 낼 만큼 수준급이다.1999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가르치는 토요 댄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취미를 붙였다고 한다. 권 실장은 업무 탓에 교습에 자주 빠져 부인과 수준 차이가 나자 7개월간 과외를 받기도 했다. 윤장배 농어촌비서관은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나 어떡해’를 불러 대상을 차지한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의 리더 출신. 서울 농대 축산과를 졸업한 윤 비서관은 78년 행시에 합격, 농림부에 들어갔다. 가수이자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박진영씨의 외삼촌이다. 윤 비서관은 공보관 시절인 2001년 그룹 창설 30주년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명선 비상계획관의 가족은 이른바 ‘소림사 가족’이다. 한 비서관의 무술은 합기도 9단·태권도 7단·유술 6단·검술 4단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시절 경호팀장을 맡기 전까지 항공사에 근무하면서 항공기 납치범 진압을 위한 항공무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경찰의 대테러특공대원인 맏딸은 태권도 등 각종 무술 유단자에다 권총부문 마스터자격증을 보유한 여성 명사수이다. 한때 권양숙 여사를 경호하기도 했다. 둘째딸 역시 무술 유단자로 경찰특공대 소속 경찰이다.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은 84년부터 통일부에서 근무한 ‘북한통’으로 북한을 무려 60차례 이상 다녀온 최다 방북 기록 보유 공무원. 대략 평양 15차례, 경수로사업으로 함남 신포 5차례, 금강산 10차례, 개성공단 준비를 위해 36차례 개성을 다녀왔다. 개성공단은 한때 출퇴근했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北 “南 월드컵결승 가시라요”

    6·15 공동선언 여섯돌을 맞아 남북의 민·관 대표단이 참석한 6·15 민족통일대축전이 14일 3박4일 일정으로 개막됐다. 이날 저녁 7시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해외대표단 500여명과 1만여명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던 행사는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한 시간여 늦게 시작됐다.●DJ 특별연설서 “철의 실크로드 대화나눌 것”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날 개막식에 참석해 특별연설을 통해 자신의 방북과 관련해 “어떻게 하면 기차가 부산과 목포를 출발해 개성과 평양을 거쳐 유라시아대륙을 관통하고 파리, 런던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를 이룩할 것인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머지않아 북한을 방문하고자 한다. 김 위원장과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비가 내린 탓에 귀빈석인 주석단 대신 로열박스에서 이희호 여사와 나란히 앉아서 연설을 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은 개막식보다 일찍 행사장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주고받아 눈길을 끌었다.●북측 대표단 5·18 민주묘지에 헌화 북측 당국 대표단 19명과 민간 대표단 40명 등은 남측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5·18민중항쟁추모탑에 참배했다. 참배행사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헌화와 묵념 순으로 약 2분간 진행됐고 분향은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파탄날 것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안경호 민간대표단장은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입을 다물다가 ‘한나라당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나라당에 가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에는 외교 및 대남통인 백남순 외무상의 3남인 백룡천 내각 사무국 부장, 고 김용순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의 아들 김성씨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 축구 결승까지…” 우리측 정부 대표인 박병원 재정경제부 1차관은 공항 VIP룸에서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 등 북측 당국 대표를 영접하고 한국-토고의 경기를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축구소식 들었느냐는 박 차관의 말에 김 단장은 “남측 팀이 첫 경기부터 2대1로 이겨 동족으로서 아주 기쁘다.”고 화답했다. 김 단장은 “남측 사람들이 계속 올라갔으면 좋겠다.17차때는 4강까지 올라가지 않았느냐.”면서 “북측 사람들도 경기를 보는데 4강까지 올라가도록 마음의 성원을 보내겠다.”고 덕담을 건넸다.이어 “세계적인 관측에 의하면 선수권 우승은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다툰다고 하는데, 그건 관측일 뿐이고, 남쪽이 그중에 한 자리를 차지했으면 좋겠다.”고 한국팀의 결승 진출 기대감을 표시했다.광주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한국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한국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2)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어야만 활동이 가능했던 당시 ‘예그린악단’. 이 악단의 합창단원 출신답게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자니브라더스의 등장으로 당시 평면적이었던 TV 쇼가 놀랍도록 화려하고 입체적으로 변신했다. 쇼 프로그램에서의 절대적인 인기 못지않게 이들은 ‘방앗간 집 둘째딸’ ‘아나 농부야’ ‘마포 사는 황부자’ 등에 이어 ‘빨간 마후라’ ‘수평선’까지 공전의 히트를 날리며 정상의 인기그룹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멤버는 김산현(김준)을 비롯해 김현진, 양영일, 진성만. 이들의 힘차고 경쾌한 하모니는 듣는 이들에게 ‘알파파’(※마음이 평온해질 때 나오는 뇌파)가 샘솟게 만드는 노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갈수록 멤버 김준씨는 되레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음악적인 불만족에서 오는 갈증이었다.4중창단은 4성, 즉 네 화음이 모여 노래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유니 송’으로 불러달라는 주문까지 받아야 했던 만큼 중창단이라는 의미가 무색하던 시절이었다. 중창단의 인기에 비례해 본인만의 개성은 죽여야 하는, 이른바 개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 보일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차 이들은 각자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을 쌓아나가며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한사람, 한사람만으로도 무대가 꽉 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자니브라더스는 TV와 워커힐 무대 등에서 화려한 스테이지와 함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면서도 쇼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각자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을 키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각자 연습무대에 나섰던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당시 워커힐악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저녁한때 목장풍경’ ‘비둘기집’ 등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던 실력자 김기웅(70)씨의 회고다. 그는 당시 이들의 레퍼토리 편곡을 기꺼이 도맡아 주기도 했다. 결국 68년 8월, 그룹보다 각자 솔로로 활동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들은 마침내 TBC-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솔리스트로의 변신을 위해 피아노 독주부터 빅밴드 곡에 이르기까지 100여 곡을 준비해오며 ‘스타일리스트(Stylist)‘를 꿈꾸던 김준씨가 멤버 중 가장 먼저 독립, 솔로활동을 시작한다.69년 11월, 평소 즐겨 부르던 레퍼토리들을 모아 독집음반 ’김준과 톱송(Top Song)’을 발표한 것. 스탠더드 팝과 재즈의 번안곡이 주를 이룬 이 음반의 수록 곡들은 지금까지도 김준씨의 변함없는 애창곡들이다. 그러나 자니브라더스는 주위의 권유에 의해 또다시 재결성하게 된다. 이들의 재결합을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사람이 바로 당시 서울신문사 발행인이던 장태화 사장. 음악애호가이기도 했던 장 사장은 이들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끝에 직접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 친다는 뜻의 순수 우리말)으로 개명해준 뒤 1969년 12월,MBC-TV를 통해 화려한 컴백쇼를 주선했다. 결국 이들 네명은 주위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다시 ‘메아리진 쇼(전우중 PD)’를 시작으로 컴백, 매주 한 차례씩 음악성과 예술성 있는 인상적인 프로그램을 한동안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도 그들 개개인의 ‘끼’와 ‘욕구’를 막기엔 역부족, 결국 이들은 완전히 해체하고 만다. 싱어 송 라이터로 변신한 김준씨는 솔로가수로 그리고 작곡가로도 재능을 한껏 발휘해왔다.‘사랑하니까’(패티김)를 비롯해 84년 TBC 세계가요제 금상 수상곡 ‘나 이제 여기에’(박경희),‘내 마음은 풍선’(장미화),‘그래도 설마하고’(임희숙),‘Blue Smile’(이미배), 그리고 김준 자신의 목소리로 발표한 ‘휘파람 하이킹’ ‘여보소 날보소’ ‘태양의 데이트’(김준 작사, 김학송 작곡) 등. 그는 70년도부터 지금까지 36년간 단 한 차례도 음반을 발표하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로 ‘음악의 생활화’, 그 일관된 삶을 지켜왔다. 김준씨는 1980년에 International JUN Free Art를 설립한데 이어 K.J.C(한국재즈모임)의 창립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재즈 활동을 위해서라면 모든 힘과 신명을 바쳐왔다. 아울러 주위 동료들의 신명을 돕고 참여하고 앞장서왔던 그는 현재, 평창동에서 부인 김미자 여사와 함께 ‘김준재즈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 마련된 작은 라이브 무대에는 한국의 대표적 재즈 뮤지션들이 모두 한 번씩은 섰을 정도로 값진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공연과 음반작업을 통해 재즈를 생활화하고 있는 김준씨는 올 11월,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서전 ‘타박타박 주절주절 두비두바’를 출간할 계획이다. 그의 이러한 작업이 반가운 것은 재즈처럼 자유스럽고 심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의 윤곽이 이 책을 통해 선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sachilo@empal.com
  • 재키가 뉴요크로 이사할때

    재키가 뉴요크로 이사할때

    다시 말썽 일으킨 계산서 현금으로 수당내자 화내 64년 5월1일 나는 새로운 고민 거리에 부닥치게 되었다. 음식조달자인 그 해군 두 사람이 마침내 자기들이 아주 부당하게 일하고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버틀러」(주류담당자),「웨이터」그리고 각종 식품과 물품 운반자 노릇을, 그것도「조지타운」과「애토카」별장 두군데서 해왔다는 불만을 털어 놓았다. 가장 낙심시키는 것은 그들이 해군의 각종 시험에 대비하는 시험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자기들은 승진의 기회와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엇다. 그들은 백악관의 식당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했다. 거기서는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되었고, 더 많은 시간을 그들의 가족과 더불어 보낼수가 있엇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승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과 교체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중의 말을 털어놓으면서 나더러「케네디」부인에게 말 좀 잘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재키」로서는 그녀의 몇 명 안되는「스태프」가, 그녀가 백악관 시절에 훨씬 많은「스태프」들로부터 받은 것과 같은 정도의 모든「서비스」와 편의와 안락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의「스태프」의 태도는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5월19일「재키」와 나는 JFK의암살 이후 처음으로 그 계산서 문제에 부닥치기 시작했다. 계산서들을 죽 훑어 보면서 그녀는「현금」이라고 되어있는 전표에 눈을 딱 멈췄다. 그건 90「달러」였는데「프로비」에게 나간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프로비」의 시간외 수당으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외 수당?』 「재키」가 반문했다. 『여기서 하는 모든 잔 일에 대해서도 내가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네,「재키」』 나는 말했다. 『그건 보통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프로비」는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고 있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요. 나는 특근수당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매어리」』 「재키」가 말했다. 『「프로비」의 봉급에 관해서라면…나는 1백「달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나는 내가 여름에 다른 데 가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는 그것마저도 지불할 수 없어요』「재키」는 나에게 고용관계 일을 맡아보는「포월즈」부인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당신봉급은 너무 많아요” 흔들리게된 나의「포지션」 『「프로비」가 만일「워싱턴」에서「톱·메이드」로 일하면서「파티」나 거들고 여름동안에 별로 하잘 것 없는 일들을 했다면 얼마나 받겠는가를…』 「프로비」의 급료에 관한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재키」는 나의 봉급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당신은 1만2천「달러」를 요구하고 있어요. 왜 그만큼 지불해야 해요. 나는 그럴 수 없어…』 『「재키」』 내가 말을 가로막았다. 『제발 내가 무얼「요구」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내가 바란 건 내가 마땅히 받아야겠다고 느낀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예요. 그리고 내가 그만큼 받지 못할 바에야…』 『아, 아니,「매어리」』 「재키」가 재빨리 말했다. 『그건 좋아요』 6월에「재키」는 다시「케이프·코트」로 갔다. 64년7월2일 상오8시 나의 남편과 내가 주방에 앉아서「코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재키」였다. 『아「매어리」,「재키」예요』라고 인사한 뒤 그녀는 본론을 이야기 했다. 『당신 이미 짐작했을는지 모르지만 내가 「뉴요크」로 이사할 계획이라는 걸 당신과「링컨」부인에게 먼저 알리고 싶어서… 』 그녀의 그런 말은 퍽 충격적이었다. 비록「프로비」와 나는 그녀가 최근「뉴요크」에 자주 간 것이 무엇때문이냐 하는 걸 은밀히 생각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그러나 나는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 감으로써 당신의 생활이 한결 더 편안하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시면 이사하셔야겠죠. 부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젠 당신이 필요치 않아” 너무도 냉정한 작별인사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서 그녀의 이삿짐 옮기는 일에 관해서 말했다. 나는 즉시 그녀에게 말했다. 『그거요, 나를 아시겠지만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는 동안 내가 거기 가 있죠』 「재키」가「뉴요크」로 이사한다는 기사가 7월7일자 여러 신문에 실렸다. 그 기사는 나의 「포지션」에 관한한 전혀 정확하게 밝혀주지않고 있었다. 나는 속이 상했고 어리둥절했다. 다음날 아침「재키」는「케이프」로부터 나에게 전화를 했다.『나의 이사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거예요』 『네』나는 대답했다.『읽었어요, 그러나…』 『그런데』라고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내 생활이 이제 온통 바뀌니까 나의「스태프」가「뉴요크」에 있게 되는데 내 생각으로는 9월1일 이후부터는 더 이상 당신이 필요치 않게 될 거예요』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매어리」, 내 말 듣고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전혀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잠시 뒤에 나는 가냘프게 말했다. 『아, 네, 네,「재키」듣고 있어요. 하지만 다시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 그녀는 내가「들었다고 생각했던」말을 정확하게 되풀이했다. 마침내 나는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재키」, 그게 당신의 결정이라면…』 『아, 이봐요,「매어리」』 그녀가 다시 말했다. 『화 내지 말아요』 나는 전혀 「화 내지」않았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단지「케네디」가와의 오래고 밀접한 관계를 해온 나로서 그런말을 갑자기 전화를 통해 들으니까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일 따름이었다. 『네, 알아요』그녀는 얼마간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참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가까와요. 만일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줘요』 사실 「뉴요크」로 옮겨 간다는 건 내가 바란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재키」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따뜻하게 말해주기를 나는 바랐던 것이다. 분명히 내가 지나친 기대를 했던 것이었다. 말을 마치면서「재키」는 나에게 이사를 위해 여름에 「워싱턴」에 머물러 있을 거냐고물었다. 나는 체념한 듯이 『「재키」, 내가 항상 당신한테 말했듯이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 마지막 날까지』[선데이서울 69년 10/12 제2권 통권 제 55호]
  • 현대상선지분 인수전 재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가가 현대상선 주식을 추가 매입하면서 경영권 수호 의지를 과시했다.현대중공업도 현대상선의 유상증자 발행가액이 1만 4000원으로 확정됨에 따라 12일 이사회를 열고 증자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양측의 본격적인 ‘세 대결’이 재개된 것이다. 현 회장은 9일 공시를 통해 현대상선 지분을 0.27% 추가 매입해 지분율을 1.48%에서 1.75%로 높였으며 부친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은 1.22%에서 1.28%로, 모친인 김문희 여사는 0.52%에서 0.54%로 지분을 늘렸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도 현대상선 지분을 기존 17.16%에서 17.52%로 늘렸다. 현 회장 일가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지분을 0.71% 추가 매입함으로써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17.52%), 케이프포춘(10.01%), 우리사주(3.89%) 등을 합쳐 35.46%의 우호 지분을 확보해 현대중공업그룹의 우호지분(32.94%)과 차이를 조금 더 벌렸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모두 참여할 경우 우리사주 지분율이 4.6% 정도 늘어나 현대중공업측과 지분 격차를 7%로 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현대상선 지분 8.69%를 보유 중인 현대건설도 9일 이사회를 열고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참여키로 결정해 향후 현대건설 지분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류찬희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WORLD CUP] 제3세계 ‘열기’… 미국은 ‘냉기’

    ‘혁명은 축구공에서 나온다?’무게 441g의 축구공이 제3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전 세계 10억명의 눈을 사로잡을 지구촌 축제가 9일(한국시간 10일 오전) 독일 뮌헨에서 개막한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12일자 최신호를 통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랍 등 제3세계에서 ‘둥근 축구공’이 불러오는 변화의 바람을 소개했다. 나이지리아 빈민가부터 단파 라디오로 중계 방송을 듣는 콩고 정글에도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44년 동안 국민들을 억압해 온 미얀마 군사정권과 핵문제로 서방과 날카롭게 대치하는 이란, 독립 4년 만에 내전에 휩싸인 동티모르에서도 축구는 스포츠 그 이상이다.축구는 아프리카 소년들에게는 그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나 인쇄물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에서 HIV(에이즈 바이러스)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시민단체 ‘크리스천 에이드’ 회장 레이첼 바갈레이는 “축구야말로 에이즈의 위험성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극찬한다. 그녀는 “축구는 서로 동료애를 느끼고 자부심을 키워 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케냐의 구호단체인 ‘얼라이브 앤드 키킹’이 후원하는 축구 경기는 효과적인 활동이다. 소년 선수들은 ‘안전한 놀이(safe play)’라는 빨간 리본을 달고 경기에 출전한다. 안전한 놀이는 ‘콘돔을 착용한 안전한 섹스’를 의미한다. 이 단체 사무총장인 짐 코건은 “에이즈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축구야말로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말한다. 2001년 ‘세계 홈리스(노숙자) 월드컵’을 창안한 멜 영도 축구를 통해 기적을 맛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열린 1회 대회가 끝난 후 참가선수 141명 중 43명이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에 복귀했다. 축구는 정치·사회적 변화를 갈망하는 민주화의 신호탄으로도 작용한다. 이란 여성에게 축구는 자유의 상징이 됐다. 이란 정부는 여성들의 축구 경기장 입장을 법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란 여성들이 TV 중계를 통해 축구를 볼 수 있는 자유도 1987년에야 허용됐다. 지난해 6월 독일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놓고 이란과 바레인이 겨룬 지역 예선전이 열린 아자디 스타디움.100여명의 여성이 축구장 입장을 가로막는 경찰과 대치했다. 그들은 “자유는 내 권리, 이란은 내 조국”이라는 구호를 외쳤다.5시간 동안의 시위 끝에 50여명이 경기장에 들어갔고 남성들과 함께 축구를 관람했다.1979년 이란혁명 이후 처음으로 허용된 것이다. 이란 여성들의 쾌거는 당일로 끝나고 말았다.8일 국내에 개봉된 자르파 파나히 감독의 영화 ‘오프사이드’는 아자디 시위를 소개한 것이다. 이란 여성단체회장 아르페 엘야시는 “이슬람 율법이 결코 축구와 남녀 평등을 바라는 여성들의 열정을 꺾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다시 가둔 미얀마도 월드컵 열풍을 비켜갈 수는 없다. 축구는 1962년 쿠데타로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민주화 운동과 함께 탄압받았다. 군부가 축구로 인해 민주주의가 전파될까 두려워한 탓이다. 그럼에도 미얀마 국민의 절반인 2500만명이 독일 월드컵을 시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얀마 전문가인 앤드루 마셜은 “정부가 전기를 배급하고 있지만 축구 시청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지워줄 월드컵 시청을 막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군부는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전통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았던 크리켓보다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탓이다. 인도 사회에서 축구의 대중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되고 있다. 뉴델리의 빅람 싱은 “축구야말로 글로벌 인도를 보여 주는 새로운 전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켓이 국민 스포츠인 방글라데시 대학생들은 최근 ‘축구 시위’를 벌였다. 대학 당국이 “월드컵 시청을 위해 TV를 비치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기숙사 가구를 불태우는 등 격렬한 농성으로 대응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자국 대표팀의 경기 당일 절반 근무를 공식 선언했다. 에콰도르는 9일 폴란드와 본선 첫 경기를 벌인다. 국민들은 오전 근무만 하고 축구를 보러 바삐 퇴근하게 된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원로 극작가 차범석씨 별세

    원로 극작가 차범석씨 별세

    대한민국 예술원회장을 지낸 원로 극작가 차범석씨가 6일 오후 6시25분 경기 일산 백병원에서 별세했다.82세.1924년 전남 목포생으로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온 고인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로 등단한 이래 ‘해방 이후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는 ‘산불’등 숱한 희곡을 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옥순 여사와 딸 혜영·혜진, 아들 순주(일산백병원 방사선과 의사)·순규(동남해운 대표)씨등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0일 오전.(02)3410-691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남편 경영철학 실천 노력에 감사”

    “남편의 약속을 지켜서 기쁘다.” 도리스 드러커(94) 여사는 한국에 온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드러커 여사는 지난해 11월 사망한 피터 드러커 교수의 ‘70년 친구’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드러커 교수의 평생학습, 지식경영 등을 한국 사회에 접목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PDS) 헌장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5일 한국을 찾았다.PDS 헌장 선포식은 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다. PDS 준비위원들은 지난 2004년 11월 미국을 방문, 드러커 교수에게 헌장 선포식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드러커 교수는 “나는 안되지만 내 아내가 대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2년 전 남편의 약속을 드러커 여사가 지킨 것이다. 이번이 드러커 여사에게는 두번째 한국 방문이다.1977년 남편과 함께 방한, 서울과 부산·경주 등을 둘러봤다. 지난번 방문 때 경주에서 묵었던 ‘발 전체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던’ 온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독일 태생의 드러커 여사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대학 강사였던 드러커 교수를 전철역에서 만나 1937년 결혼했다. 드러커 교수 또한 나치를 피해 영국에 와 있었다.“반대편 에스컬레이터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몇분만 늦었어도 피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드러커 여사는 물리학 석사, 변호사 자격증, 경제학 박사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프리랜서로 특허 취득에 대한 자문을 해오다 지난 1996년 비지복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강사의 목소리 크기를 전기신호로 바꿔 특정 크기보다 작아지면 경고등이 켜지는 장치를 만드는 회사다.2004년에는 ‘라듐을 발견해, 아니면 네 머리를 뽑아버릴거야.’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냈다.94세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드러커 여사는 “건강, 에너지, 무언가를 하겠다는 결심만 있으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노대통령, 둘째 외손녀 얻어

    노무현 대통령이 둘째 외손녀를 얻었다. 이로써 친손녀 1명, 외손녀 2명의 할아버지가 됐다. 노 대통령의 딸 정연(31)씨는 지난 3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3.5㎏의 둘째딸을 순산했다고 청와대측이 4일 밝혔다. 권양숙 여사는 3일 병원을 방문해 정연씨의 순산을 축하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날 병원을 찾았다. 정연씨는 병원을 옮겨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 [20&30] 나이에 걸맞지 않게…

    흔히 20대는 사회로 처음 진입해 좌충우돌하는 시기,30대는 자기 자리를 찾아 바닥을 다지는 시기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런 공식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몇 살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러느냐는 핀잔이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는 구박에도 개의치 않는 그들, 또래답지 않은 2030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애늙은이 20대 “건강이 최고 따라와” 입사 3년차 이지은(27·여)씨의 신조는 ‘건강이 최고´이다. 세상에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씨는 또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건강을 챙겨 주변에서 ‘애늙은이´란 소리를 듣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약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기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대추, 해바라기씨, 늙은 호박 등 몸에 좋다는 음식은 모조리 구해 달여 먹는다. 지난해에는 뱀술을 구해 먹는 바람에 가족들까지 기겁을 했다. 직장에서는 비공식 동호회인 ‘몸보신 클럽´에 가입해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1주일에 한 번 정도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임이다. 이씨를 제외하고는 회원 대부분이 40∼50대다. 지난주에는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대신 회원들과 행주산성 근처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고 왔다. 너무 일찍 유난을 떤다고 핀잔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씨는 이것이 자기를 소중히 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취업준비와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어머니가 먼저 챙겨주셨는데 좋은 음식과 보약을 먹고 효과를 보고 나니 이제는 제가 알아서 찾아 먹어요. 건강은 젊었을 때 챙기는 게 최고 아니겠어요?” 지난해 가을 취직한 김영진(28)씨는 지금까지 밖에서 점심식사를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도시락을 싸오거나 구내식당으로 간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하루에 최소 두 끼는 학생회관 식당에서 해결하는 소문난 ‘학관 마니아´였다. 회식을 할 때에도 회비를 내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 먼저 일어나서 꼭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간다. 이런 절약습관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한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중학교 때 생겼다.“그때는 어쩔 수 없이 아꼈지만 지금은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아낍니다. 남들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궁상을 떤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그 덕에 입사동기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돈을 모을 수 있었으니까요.” 학원강사 김현지(26·여)씨는 쇼핑 전문가다. 하지만 또래들처럼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에 주로 간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도 꼭 오후 10시 이후에 찾는다. 바가지를 안 쓰기 위해서다. 이때쯤 도매상에 가면 물건을 사러 오는 소매상들로부터 시세와 물가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김씨의 책상 위에는 채소, 우유, 생선 등 가격을 근처 시장과 슈퍼마켓별로 비교해 적어놓은 메모지가 붙어 있다. 업데이트는 1주일에 한 번, 이 메모를 보고 슈퍼마켓을 돌며 가장 싼 물품들을 산다. 주변상가에는 ‘깍쟁이 처녀´로 소문이 다 났다. 꼭 어머니 대신 장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워낙 즐기다 보니 어머니도 딸에게 장보는 일을 위임했다. ‘20대 애늙은이´ 중에는 이렇게 일찍 철 들었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무 눈치 빠르게 행동해 얄밉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회사원 박모(29·여)씨는 두 살 차이 나는 1년 후배 여사원만 보면 어린 나이에 왜 저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배는 차장, 부장 등 자기 인사고과와 관련 있는 상사의 집안 대소사를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생일이나 장례식 같은 잡다한 경조사는 물론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기념일에 꽃다발까지 챙겨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커피 심부름 같은 일도 먼저 발벗고 나서 동료 여직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변에서는 군대에라도 다녀온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박씨는 “윗사람에게는 그렇게 살갑게 잘하면서 후배들은 얼마나 견제하는지 회식 자리에서 자기가 신경쓰는 상사의 옆에는 앉지도 못하게 한다.‘늙은 여시´라고 악명이 자자하던 입사 20년차 40대 노처녀 선배도 ‘어린 여시´가 더 무섭다며 두 손 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철없는 30대 “백수, 내스타일이야” 백수 3년차인 김모(32)씨의 별명은 ‘국가시험 전문가’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계속 미역국을 먹고 포기했고, 졸업 직후에는 교사 임용고사를 준비하다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뒀다. 운이 좋아 대학 교직원으로 취업했지만 답답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한 학기를 겨우 채우고 사표를 냈다. 지금은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지만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매달린다. 물론 결과는 모두 낙방. 가족과 친구들은 이제 제발 한 우물만 파라고 안달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시간은 많다.”고 여유만만이다. 김씨의 이런 ‘시험벽’에 애인은 떠나간 지 오래이고, 생활패턴이 달라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소외되지만 김씨는 아직도 “이것이 내 스타일”이라며 오늘도 꿋꿋이 도서관을 찾는다. 4년째 공사 시험을 준비중인 이모(31)씨는 졸업 직후 딱 한 번 회사생활을 하다가 깐깐하게 구는 선배와 한바탕 맞짱을 뜨고 스스로 그만둔 경우다. 퇴사 직후 철밥통을 찾겠다며 공기업 취업준비를 했지만, 아직도 소싯적 버릇을 못 버린 것이 문제. 이씨는 지금도 스타크래프트 등 온라인 게임을 꼬박꼬박 하루 2∼3시간씩 하고 있다. 본인은 취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항변하지만, 주변에서는 그 버릇 버리고 공부에 올인하기 전에는 절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혀를 찬다. 결혼시장에도 또래답지 않은 기준을 대입시키는 30대들은 적지 않다. “적어도 결혼하려면 제대로 된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회사원 정모(37·여)씨의 맞선은 기억나는 것만 120여차례다.20대 후반, 속칭 소개팅으로 시작한 자리가 어느덧 맞선이라는 이름으로 변했지만 배우자 후보를 고르는 그의 신념만은 10여년간 변한 게 없다. 기준은 ‘운명 같은 사람’. 그는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몇 차례 만나보고 감흥이 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씨는 “무슨 멜로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만남은 아니더라도 뭔가 가슴시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확실하게 느낌이 오는 사람이 없네요.” 그간 죽자고 정씨를 따라다닌 사람만도 3∼4명이나 됐다. 학벌이나 직장, 가문 등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결코 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일방통행’에 맘을 내줄 순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30대 후반에 단지 느낌이 오는 남자를 찾는 걸 보고 친구들도 철없다고 하지만 한번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결혼 정보업체 등에 따르면 혼기가 꽉 찬 30대들 가운데도 이상이 지나치게 높거나 10대 같은 사랑을 꿈꾸는 남녀가 적지 않다. 주로 남성은 상대의 ‘외모’, 여성은 상대의 ‘직업’이나 ‘나이’ 면에서 현실파악이 안 된다는 것. 웹 기획을 하는 고모(34)씨는 앞선 정씨보다는 기준이 뚜렷했다.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대장금의 이영애 같은 스타일이다. 정확히 따지면 얼굴이라고 했다. 그는 “물론 이영애씨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을 만나면 성취동기가 높아져 연애에도 최선을 다할 테고 당연히 성공률도 높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행복출발 오미경 팀장은 “자신은 원래 어려보이는 얼굴이라며 연하의 남성을 찾는 여성이나 특정연기자와 닮은 여성과 만나고 싶다며 외모를 강조하는 회원들을 보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나이에 걸맞은 생각이 꼭 옳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배우자를 찾는 데 있어선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약안팔기 운동하는 약사

    약안팔기 운동하는 약사

    약국의 존재이유는 약의 연간 소비량을 되도록 줄이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약국집 주인.『저희 집에서는 XX제는 팔지 않습니다』는 식의「방」을 써 붙여 아예 약 안먹기, 약 안팔기「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괴상한 약장수. 오연(傲然)하기까지 한 이 약국 주인은 약사러 온 손님을 곧잘 설득시켜 집으로 그냥 쫓아 보내는, 장사 못하기 명수(名手)(?)다. 오는 10월 10일은 제13회「약의 날」. 어물전의 생선과는 달라 약은 손님이 골라선 안돼 『진정한 의미의 약국이라면 서울에서 그 집 하나밖에 없습니다. 약이 무엇이고 약국이 어떤 곳인가를 아는 유일한 약사죠. 어찌나 약국이 깨끗한지 처음오는 손님들은「도어」에서부터 곧잘 신을 벗고 들어오곤 한답니다』-입에 침을 튀기는 서울시 약사 감시원 C씨의 얘기가 하도 수상쩍어(?) 찾아 간 곳이「녹십자 약국」. 서울 영등포 구청 건너편의 큰 길가다. 이 이상한 약국의 이상한 주인이 약사 김성준(金成俊·45)씨. 잘 정리가 된 얼굴이다. 주인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그「질서」가 그대로 약국안에도 투영되어 그렇게 잘 정돈되어 있을 수가 없다. 『저희 약국에선「드링크」제는 원칙적으로 권해 드리질 않습니다』-이런 유의 글귀가 여기 저기 눈이 띈다. 조금도 지저분하질 않다. 『「약의 날」의 참 뜻은 약의 남용(濫用)·오용(誤用)을 막자는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약의 선택권을 전문가인 약사에게 주자는 거죠. 어물시장 같은데서 생선을 고르는 식으로 약을 소비자가 골라서야 국민보건이고 뭐고 없습니다』 드링크제(劑) 하루 10병이면 카페인 3백mg 마시는셈 외고집이라 싶을 정도로 논리가 단호하다. 약을 사러 가면 식모가 화장실에서 나오며『무슨 약 드려유』하기가 십상인「약사부재(不在)」「약국부재(不在)」의 이 풍토에선 어쨌든 보기 힘든 청렴. 49년 서울대 약대 졸업. 20년 동안 약국을 하고 있다. 약국이 제약회사의 자동판매기처럼 되어버린 오늘날 까지 약사의 자부심, 약국의 권위 같은 건 한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김(金)약사는 말한다. 『제약회사에선 눈살을 찌푸리겠지만「드링크」제 같은게 그렇습니다. 하루 한 두 병 정도는 또 모르겠어요. 요전에 어느 운전사가 와서 얘기하는데 하루에「드링크」제 10병을 마신답니다. 한 병에「카페인」이 30mg입니다. 3백mg의「카페인」을 그 운전사는 매일 마신다는 무서운 얘기가 됩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이 그렇게 제격일 수가 없다.「라디오」, TV의 제약회사 CM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허리가 아파 오고 골이 쑤셔옴을 느낀다. 식모를 시켜 방금 들은 그약을 사오도록 한다. 이 때 약국의 약사가 그 약을 그대로 집어 주는게『얼마나 큰 죄악이겠는가』하는게 김성준씨의 신(新)약국 경영론. 약사는 고객을 설득시켜 되도록이면 약을 안사먹게 하는게 그 사명이다. 장의사라고 해서 어떻게 빨리 죽을 수 있나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논리 전개. 무슨 잔소리가 많으냐고 불평하는 손님도 있지만 68년 한 햇 동안의 우리나라 의약품 생산고는 모두 2백 33억원에 달한다. 「아스피린」하나 합성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약이 소비되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안먹어도 좋은 약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고 있나를 말하는 것. 「약사 선생」에서「어이, 아저씨」로 평가절하된 오늘날의 약사 신세도 그에 비례해서 떨어졌다고 김약사는 자탄(自嘆)한다. 『흔히 손님이 와서「감기약 ○○을 주십시오」합니다. 환자가 진단, 처방을 다 해내는 것이죠. 도무지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보건은 바로 풍전등화, 그것입니다』 「감기약을 달라」고 하면 증세를 들어 적당한 약을 준다. 그러나「감기약 ○○을 달라」고 하면 절대로 약을 안주고 되돌려 보내는게「녹십자 약국」의 헌법. 식모가 아이가 와서「드링크」제를 달라고 하면 할 수 없이 내 준다. 안 주면 결국 다른 약국에서라도 사 가기 때문. 그러나 직접 그것을 먹을 본인이 오면 안 팔고 되돌려 보낸다. 『피로하면「사이다」를 차라리 한 병 잡수십시오. 그리고 1시간만 편히 잠을 주무십시오』-이들을 쫓아 보낼 때 쓰는 상투적인 얘기. 돈을 못 번다. 손님도 얼마 없다. 『약을 달라면 줄 것이지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는게 고객들의 일반적인 불평. 잘못쓰면 아무 효과없어 항생제 1회분은 안팔아 그러나「녹십자 약국」엔 이집 주인의 양식과 진심을 믿는 많은 소중한 단골들이 있다. 주로 조제를 해 가는 손님들이다. 그들은 거의 절대적으로 주인 약사의 지시를 따른다. 멀리 인천과 수원, 대전에서도 오고 월남에 있는 장병에게서도 조제 의뢰가 온다. 『하루는 어떤 부인이 생후 10개월된 아기를 데려왔습니다. 오른쪽 아랫배에 조그마한 혹이 나 있었어요. 이 정도면「테트라사이클린」제 몇알을 주어 돌려 보내는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저는 약을 주지 않고 병원으로 가 볼 것을 권했어요. S병원엘 가서 진찰한 결과 그 아기는 백혈병 환자로 밝혀졌습니다』 웬만한 항생제로 1회분은 절대로 팔지 않는다. 그것은 적당한 혈중농도의 유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1회분 투여는 약의 내성만을 키울 뿐 백해무익인 때문이라는 것. 「피가 되고 살이 되는…」하는 상식적인 CM이 있지만 진실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밥밖에 없다. 영양제, 강장제를 즐겨 찾는 고객들에게 들려주는 김성준씨의 피와 살에 관한 「각론(各論)」. 『문제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겁니다. 약을 하나 둘 판다는 건 거기에 비하면 지엽적인 것이에요. 돈벌이 하려면 뭐 할게 없어 약국을 합니까?』 다혈질에다가 정의파라는 그는 원래 신문기자가 하고 싶었다. 불의와 싸우고 자신의 배짱을 구김없이 키울 수 있는 온상은 신문기자사회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고. 서울시 약사회장을 한때 지냈고 지금은 약사회 기관지인 주간「약사공론(藥師公論)」의 주필. 부인 임경자(林慶子)여사와의 사이에 3남 2녀가 있다. 조제실엔 수도 장치를 해놓고 약조제도 꼭 소독「스폰지」위에서 하는 특급 약사. [선데이서울 69년 10/5 제2권 40호 통권 제 54호]
  • 안익태 유품 고국품에

    작곡가 안익태(1906∼1965) 선생이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편지를 비롯한 유품 150여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다. 안익태기념재단(이사장 김형진)은 “스페인 현지의 유족들로부터 넘겨받은 선생의 유품 150여점이 현재 부산항에 도착해 있다.”며 “다음달 1일쯤이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안익태기념재단은 올해 안익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롤리타 안 여사 등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유품을 인수, 국내 박물관에 기증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번에 들여온 유품은 안익태 선생이 직접 사용한 피아노 1대와 가구, 지휘봉, 볼펜, 시계, 다이어리, 앨범, 각종 배지, 훈장, 메달 등. 특히 그의 스승인 세계적인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40∼50통의 편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던 월트 디즈니가 식당에서 냅킨 위에 그려준 도널드 덕 그림 등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물품들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모은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종욱 WHO총장 국립묘지 안장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안장식이 29일 오전 11시 대전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엄수됐다. 안장식에는 미망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와 아들 충호씨 등 유가족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캐네스 버나드 WHO 조문단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안장식은 조사, 종교의식, 헌화와 분향, 안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미망인 레이코 여사는 아들 손을 부여잡고 안장식 내내 오열하며 먼저 간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캐네스 버나드 조문단 대표는 조사에서 “고인은 말보다 행동과 실천을 중시했다.”고 기렸다. 정부는 세계보건에 업적을 쌓아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높이 평가, 국민훈장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키가 작아서 고민인데-Q여사에게 물어보세요(46)

    저는 19세의 소년인데 키가 안 커서 고민입니다. 나이는 19세지만 사람들은 겨우 1 m53cm 정도의 제 키를 보고 15세 쯤으로 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키가 작으면 유전이라지만 저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키가 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좋으니 꼭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약이라도 좋습니다. <고민생 올림> [의견] 비관할 것 까지는 없어요 서울大 의대(醫大) 성낙응(成樂應)교수는 본인을 진찰해 보기 전에는 확실한 원인을 캐 낼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키가 자라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제일 흔한 예는 이유기(離乳期)의 영양섭취 불충분이라고 합니다. 생후 3년~6년 사이가 이른바 이유기인데 이 때 「칼슘」이나 동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원래 타고난 대로의 키로 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1m80cm로 클 수 있는 사람이 이때의 영양결핍으로 1m65cm 밖에는 크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19세이니 이제 새삼스레 약물이나 물리치료를 해보았자 신통한 효과는 못볼 것이랍니다. 19세 이후라도 25세쯤까지는 조금씩 키가 자라는 것이 보통이므로 크게 낙심할 것까지는 없읍니다. 의학적인 의견은 그렇다치고 내 소견 같아서는 키가 지금대로 있다손 치더라도 비관할 이유는 없읍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지 않아요? 온 세계의 미녀란 미녀는 모두 매혹시켰고 드디어는 미국대통령의 미망인 「재키」를 아내로 맞은 희랍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보세요. 그는 키가 무척 작답니다. <Q> [선데이서울 69년 10/5 제2권 40호 통권 제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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