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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이병천 등 엮음

    6·10항쟁 20주년이 지났다.‘민주화 20년’에 대한 재평가가 봇물을 이룬다. 항쟁에 적극 참여했던 이들부터 항쟁의 원인제공자들까지 모두 민주화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한다. 모두가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나, 발화되는 4음절 ‘민·주·주·의’에 담긴 함의와 기대치는 각양각색이다. 진보적 열망과 에너지의 대폭발이었던 6·10항쟁, 그 20주년 시점에 만개한 보수담론은 우리 민주주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는 ‘동상이몽’이다.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참여사회연구소 기획, 이병천 등 엮음, 한울 펴냄.)의 저자들이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필자들이 바라보는 오늘의 한국사회는 일종의 ‘혼돈상태’다.“진보의 낡은 것은 무너졌으나 새로운 것은 세워지지 않았다. 혼돈의 틈새를 비집고 신우파 담론이 똬리를 틀었다.”고 그들은 평가한다. 책은 진보진영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성찰적 반성인 동시에, 분출하는 보수담론에 대한 적극적 응전이다. ‘대한민국’은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인 참여사회연구소가 기획했다.2부로 구성됐고,22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박근혜 “해명했으니 국민이 판단할 것”

    박근혜 “해명했으니 국민이 판단할 것”

    “자세하게 해명하고 설명했으니 국민이 보시면 판단되지 않겠어요.” 정수장학회 이사장 시절 탈세·횡령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경선 후보는 13일 이렇게 말했다. 박 후보를 이순자 여사와 비교하며 평가절하한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의 전날 발언에 대해 박 캠프 이혜훈 대변인은 “굳이 대응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김재원 대변인은 한 술 더떠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공작을 중단하라.”며 여권을 향한 논평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경선 후보에 대한 검증공방이 난타전 양상을 띠며 이른바 ‘이명박 X파일’에 대해 검증을 요구해오던 박 후보측도 역으로 검증대에 오르게 됐다. 박 후보측은 “있는 그대로 사실관계를 밝히고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박 후보의 행보부터 거침이 없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남북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박 후보는 탈세·횡령 의혹에 대한 기자들이 질문하자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관련 의혹 자체가 때마다 습관적으로 제기돼 왔으니 정면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대선 후보를 확정짓기 전에 당에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은 그대로였다. 박 후보는 “꺼릴게 없다. 우리부터 먼저 철저히 검증해 달라.”고 했다. 그는 “검증을 두고 후보들끼리 싸울 이유가 없다.”면서 “국민이 어떻게 보고 해명이 어떻게 됐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의 유족 김영우씨가 박 후보에 대해 횡령, 탈세 의혹 등을 제기한 데 대해 박 전 대표측은 곧바로 “정당한 보수였고, 오류를 확인한 뒤 세금 등을 모두 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정동영 전 의장 대변인 자격’이라며 “박 후보는 이제라도 인혁당 사건으로 목숨 잃으신 분들을 찾아서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한편 박 후보는 이날 여의도 캠프에서 경선 홍보 CI(이미지 통합)를 발표했다.‘5년안에 선진국’‘믿을 수 있는 대통령-박근혜’라는 윤고딕 글씨를 중앙에 배치하고, 한나라당의 파란 바탕에 열정을 나타내는 붉은 색 띠를 사선으로 배치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이명박 검증’ 공방 가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경선 후보의 검증 공방에 범여권 대선 예비주자들이 하나둘 끼어들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이틀째 이 후보를 공격하고, 정동영 전 의장은 측근 김현미 의원을 통해 ‘정동영측 입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가세했다. 이 후보측은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해석하고 있다.“청와대가 개입한 정권 차원의 공작”이라고 규정하고 강력히 반발했다. 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시작됐다는 시각이다. 김혁규 의원은 전날에 이어 13일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후보 부인의 ‘위장 전입’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해찬 전 총리로 친노 주자가 압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김 의원이 조바심에서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이 후보에게 ‘맞짱’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의원은 이날에는 “(이명박 전 시장의) 부인 김윤옥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어떤 동네를 얼마나 자주 이사다녔는지 주민등본과 초본을 함께 공개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이어 “진짜 주거를 위해 가족과 함께 그토록 자주 전출입했다면 모든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하지만 거짓이라면 이 전 시장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이에 이 후보측은 “주소 이전만으로 부동산투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 공세”라며 반박했다. 장광근 캠프 대변인은 김 의원의 주민등록 초본 공개 요구에 대해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한 뒤 “아무거나 붙들고 이것은 의혹이 있으니 근거를 대라고 하면 해야 하느냐.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근거를 내놓아야지 제기당한 쪽에서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장 대변인은 “여권의 대권 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더구나 한나라당을 배신한 자가 또 다시 청와대 눈치를 보면서 낙점을 기다리는 ‘노비어천가’를 부르는 그 모습이 측은하기 짝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이 후보측의 정두언 의원은 “미궁에 빠졌다.3군데 전입한 것에 대해 이 후보 본인도 모른고 김윤옥 여사도 모른다고 한다. 당시의 비서들을 찾아내 확인하려고 한다. 차라리 이걸 언론에 공개해 알아봐 달라고 해야 하나.”며 곤혹스러워 했다. 김현미 의원은 ‘정동영측 입장’이란 전제 아래 “대통령 후보 검증이기 때문에 성역이 없다.”면서 “BBK 문제와 관련해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가 즉각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잃어버렸다” vs “아니다” 부시 시계 논란

    부시 대통령이 지난 10일 알바니아를 방문했을 당시 환영 인파와 악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손목 시계를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다고 알바니아 언론들이 12일 전했다. 하지만 알바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은 시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했다고 AP가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10일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25㎞ 떨어진 작은 마을인 푸셰 크루자를 방문했다. 언론들이 제시한 3장의 사진의 경우 부시 대통령이 로라 여사와 함께 서 있는 장면에서는 왼쪽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으나, 그 다음 장면에서는 환영 인파 속에 있던 누군가가 부시 대통령의 왼쪽 손목을 감싸는 모습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의 손목에서 시계가 사라진 것으로 드러나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부시 대통령이 손목 시계를 도둑맞고도 그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티라나를 떠나기 위해 ‘공군 1호기’에 오르는 방송 화면에는 그가 다시 왼쪽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계분실 논란은 불식되지 않고 있다. 이춘규기자 연합뉴스 taein@seoul.co.kr
  • [범여권 ‘김근태 불출마’ 파장] 대선주자 연석회의 무산이후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통탄

    [범여권 ‘김근태 불출마’ 파장] 대선주자 연석회의 무산이후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통탄

    “나 결심했으니까 준비해라.” 12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김근태 전 의장이 전날 최측근에게 ‘통보’한 첫마디다. 이미 대선 불출마 선언문 초안을 직접 작성한 뒤였다. 부인 인재근 여사와 지지자들의 만류에도 결심은 돌이킬 수 없었다.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국회 기자실 주변에는 측근을 비롯, 지지모임인 김근태의 친구들과 한반도재단 회원들의 눈물이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김 전 의장은 “마음이 무겁다.”며 말끝을 흐렸다. 오는 20일이면 ‘한반도포럼 전국 대표자모임’이 출범할 예정이었다. 다음달 초에는 전국 지지자대회도 열기로 했다. 한달 전 캠프 회의에서 “대통령이 되면 뭘 잘할 수 있냐.”는 질문에 “복지와 통일만큼은 자신 있다.”고 답했던 그였다. 비록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지만 중도에 대선 레이스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고 측근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2002년 중도하차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하게 조직을 구축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은 느닷없는 결정이 아니었다.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행사 직후 포럼관계자들과 가진 회동에서부터 불출마 징조가 보였다는 후문이다. 의욕을 보였던 대선 주자 연석회의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중대 결단’,‘밀알’,“버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원주에서 열린 미래구상 초청강연회에서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통탄하며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10일 종교지도자들이 주선한 범여권 대선주자 연석회의가 또 무산됐다. 한 핵심 측근은 “김 전 의장은 무산 소식이 알려진 전날 모든 기득권을 버리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낮은 지지율도 김 전 의장의 발목을 잡아왔다. 일부 측근들은 그에게 백의종군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은 범여권 개혁세력들의 분열을 좌시할 수 없다는 압박으로 읽힌다. 이날 회견에서도 “이번 대선이 1987년의 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대통합을 통해 지난 20년간 민주개혁 세력이 밀고 온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한나라당과 대격돌을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명숙 정동영 천정배 김혁규 이해찬 손학규 문국현 등 범여권 대선 주자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후보단일화, 소통합, 제3지대 통합신당으로 분열된 범여권의 대동단결을 촉구하며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한 단일후보 선출을 거듭 요청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12대 국회의원 김태수

    김태수 전 의원이 11일 오전6시 별세했다.71세. 고인은 민주정의당 창당발기인,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이사, 자연건강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유족으로는 부인 최은진 여사와 아들 성민씨가 있다. 빈소는 강북 삼성의료원. 발인은 13일 오전6시.(02)2001-1095
  •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한나라 경선레이스 점화] 李·朴 사활 건 승부만 남았다

    ‘드디어 루비콘강을 건넜다. 오는 12월19일 대선으로 가는 샛길은 없다. 사활을 건 승부만 있을 뿐이다.’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11일 대선 경선 후보로 등록,70일간의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제 현행 선거법에 따라 후보로 등록하면 다른 정당의 후보로 나서거나 독자 출마가 불가능하다.8월19일 경선에서 명운을 건 외길 승부를 펼쳐야 한다. 원희룡·고진화 의원은 12일, 홍준표 의원은 마감일인 13일 후보 등록을 하고 경선레이스에 공식 가세한다. ■이명박 “지도자 못될만큼 살지 않아” 이 전 시장의 출마 선언문은 박 전 대표와 달랐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딸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자 부담인 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려고 접근한 반면 이 전 시장의 선언문에는 이렇다 할 인간적인 풍모나 체취를 담지 않았다. 이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당 안팎의 도덕적 시비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박하는 데 오히려 초점을 맞췄다.“저는 살면서 실수와 잘못도 있었겠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지 못할 만큼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거의 포기할 뻔했지만 야간인 포항 동지상고에 수석 합격, 돈 한푼 내지 않고 고교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대학 진학의 꿈을 잃지 않아 고려대 상대에 합격했다. 학생운동으로 복역한 전과 때문에 취직이 어렵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편지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건설에 입사해 29세에 이사, 35세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고 이후 최장수 CEO의 역사를 쓰면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정치인 이명박’은 만만치 않았다.1995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해 이종찬씨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8년에 다시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 최병렬씨와 경쟁했지만 선거법 재판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2002년 삼수만에 서울시장으로 재기해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체제 개편으로 강력한, 추진력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굳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박근혜 “내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로 살아온 얘기로 출마 선언문을 풀어갔다. 먼저 “철들기 시작할 무렵, 밥상에서 가난한 국민의 모습을 보면서 목이 메어 밥을 넘기지 못하시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시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삶을 대신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10년 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터졌을 때,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제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면서 “이제 다 쓰러져가는 한나라당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 드렸던 그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소신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일평생 저의 삶을 견인해 온 것은 바로 ‘정직과 신뢰’였다.”면서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에게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자산이자 부담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1952년 군인이던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11살.1974년 피습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뒤를 이어 1979년 10·26 때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 퍼스트 레이디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이때부터 가슴에는 조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들이 깊이 각인됐다고 한다. 지난해 피습을 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내공’을 쌓은 시절이다.“저에겐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다. 저에겐 오직 대한민국만 있다.”고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李 국정운영 방향 “청계천 살렸듯이 경제 살릴것” “청계천을 살려냈듯이 대한민국 경제도 살려내겠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향후 5년간 국정운영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경제 성장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이 나서 국정을 바로 세우고 헌정 질서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는 모든 세력의 지지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선진화세력, 미래지향적 실용주의 세력이 모두 모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나라당뿐 아니라 뉴라이트와 중도·보수 시민세력,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대한민국 선진화 추진회의’(가칭)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계천을 살려냈듯 대한민국 경제도 살리겠다.”며 “‘대한민국747 비전’(7% 경제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주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이 후보는 “중도하차 가능성은 완벽하게 없다.”며 “수질을 좋게 하고 수량을 보존하는 운하를 계속 국내외 전문가와 협의,3만∼4만달러 경제적 효과의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朴 국정운영 방향 “나라 근본 세워서 선진국으로” “나라의 근본부터 바로 세워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을 만들겠습니다.” 박 전 대표는 ‘원칙을 통한 선진한국’을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목표로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께서 못다한 두가지를 꼭 하려 한다.”며 “하나는 대한민국의 선진화이며, 또 하나는 그 시절 고통을 받았던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것만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철학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또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 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외교강국으로 만들어 치열한 경제경쟁, 국가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처리즘 공약’에 따른 복지예산 감축지적에 대해선 “대처리즘이 경제를 살리고 번영을 구가하는데 지금도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세금 감면과 규제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가 추구한 바와 같지만 제가 복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李 검증 역공 논리 “朴·범여권서 ‘李죽이기’ 대연정” 이 전 시장 측은 검증 공세에 대해 “박 전 대표와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대연정”이라고 역공을 펴고 나섰다. 박 전 대표측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이 ‘여권발(發)’이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냈다. 이 전 시장은 경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나쁜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놓고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를 하면서 ‘없는 땅’ ‘없는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같은 식구가 할 수 있는 짓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박 전 대표 측에 직격탄을 날렸다. 진수희 캠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음해하려는 일련의 작업들을 여권에서 제조, 유통시키는 역할은 박근혜 캠프 핵심 의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며 “이적 행위를 해서라도 경선에 승리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식 원칙’인가.”라며 거들었다. 이 전 시장 측이 검증 공방에 대해 전에 없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각종 의혹 제기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한때 5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이다, 지난달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부터 지지율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 전 시장과 20% 이상 격차를 벌렸던 박 전 대표와의 격차가 10%대까지 좁혀졌고 일부 조사에서는 한 자릿수대로 바짝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박영선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대표해서 지지율 1위 후보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며 “최근 상황을 보면 범여권과 박 전 대표 진영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朴 검증 역공 논리 “국민 알권리 李측서 본질 호도” 박 전 대표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검증 공방과 관련,“자꾸 공방 정국으로 몰고가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전 시장 측에서 검증공세를 네거티브 전략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실체 없는 얘기를 하면 네거티브가 되겠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국민이 확실히 알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검증 문제는)캠프간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의구심에 대해 국민에게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측이 ‘여권과의 연계 의혹설’을 제기하며 역공을 가한 데 대해 이혜훈 공동대변인인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날 추가적인 의혹 제기는 하지 않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이슈화에 성공했고, 이날 경선 후보 등록을 신호로 여권에서도 파상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면서 일단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분위기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정책토론회와 검증을 통해 역전을 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여론조사에서 미묘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고, 철저한 검증이 이뤄진다면 이 전 시장의 ‘거품’도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측은 ‘6·7월 검증 총공세’를 통해 반전의 발판을 마련, 내달 열리는 후보 검증 청문회까지 승부를 걸겠다는 계획이다. 캠프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외부에서 계속 새로운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검증위가 새롭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리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李·朴, 경선 등록부터 ‘신경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접수를 둘러싼 이­박 진영의 장외 신경전도 뜨거웠다. 누가 먼저 경선 후보로 등록하느냐에 적잖은 관심이 쏠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한발 앞서 후보로 등록했다. 박 전 대표는 선거대책위 구성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이날 후보 등록 1호를 기록한 뒤 공식 출마 선언을 하는 등 세몰이를 가속화했다. 그러자 지난달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명박 전 시장도 후보 등록 후 기자회견을 갖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전 대표측 유정복 비서실장은 오전 9시에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후보 등록을 했다. 박 전 대표는 30여명의 국회의원과 캠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사 주변에는 아침 일찍부터 박사모 회원과 박 전 대표 지지자 등 2000여명이 모여 박 전 대표를 응원했다. 이 전 시장은 오전 11시에 백성운 캠프 종합행정실장을 통해 후보 등록을 하고 오후 2시에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홍문표·이윤성 의원 등 30여명의 국회의원과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이 전 시장은 ‘출마선언문’을 읽으며 결의를 다졌다.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은 12∼13일 각각 후보 등록을 한 뒤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朴 “아버지 시대 희생자에 죄송”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국민 선언문’에서 ‘과거와의 화해’ 의지를 천명했다. 먼저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은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 시절에 불행을 당한 분들께 사과를 드리는 것은 진심과 충정을 담은 말이다. 진실하게 다가갈 때 마음을 열고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사과했다.“산업화, 민주화 세력이 손을 잡아야 경제도 살리고 선진한국 건설도 이룰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합해서 하나가 되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도 댔다.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에도 사과의 뜻을 내비쳐 왔지만 공개적으로 진심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시한 것은 선친의 부채를 짊어진 국민 대화합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시각에는 “정치하면서 단 한 번도 표를 의식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면서 “국민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일축했다. 열린우리당 유은혜 대변인은 “진심이라면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위선과 이율배반의 전형”이라고 깎아내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한국 직장 회식 ‘술 대신 뮤지컬’

    술∼술∼술….한국 기업들의 회식 문화가 여사원들이 늘어나면서 바뀌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이 10일 전했다. NYT는 “여성들이 부상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술병 마개를 코르크로 닫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회식문화를 소개했다.소주와 삼겹살, 맥주, 노래방 등 2,3차로 이어지고 만취한 채 택시를 잡는 밤풍경은 익숙한 모습이라는 것. 또 술자리에서 여성 대신 마셔주는 ‘흑기사’,‘폭탄주’ 문화도 전했다. 한국 기업들의 회식은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2,3차까지 다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라도 억지로 마시는 경향이 짙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먹고 죽자.” 등의 표현도 종종 쓰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기업 내 여성 사원들의 숫자가 늘면서 회식문화가 변하고 있다. 신문은 술을 강요한 직장 상사에게 3만 2000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 등은 회식 문화의 변화를 예고한다고 풀이했다. 최근 술자리를 뮤지컬과 영화 관람으로 대체하고 이탈리아 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기업이 느는 등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1983년 10월 아웅산테러사건이 발생하기 1년여 전, 그러니까 1982년 봄 어느날이다. 한 전직 장관(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부인이 지인 소개로 용하다는 무당을 서울에서 만났다. 부인의 남편은 다름아닌 외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다. 무당은 부인에게 “염려말라. 가만히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요즘 들어 국상(國喪)이 자주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원혼을 풀어야 한다.”는 말을 뱉었다. 며칠 후 무당의 말대로 전직 장관 부인 등을 포함, 몇몇 지인들이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고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원혼을 달래는 굿을 조용히 치렀다.(이때 지난해 작고한 사진작가 김수남씨가 무당옷을 빌려 입고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참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무당은 전직 장관 부인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장관 지명에서 자신의 남편은 탈락되고 대신 이범석씨가 신임 외무장관이 됐다는 것이었다. 목소리에는 약간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변명 같지만 전화위복이 될 테니 두고 보라.”고 위로했다. 해가 바뀌어 1983년 9월. 무당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생일날(음력 8월18일)에 주위 친한 사람들을 일부 초청, 점을 봤다. 그런데 이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무당은 “버마(미얀마) 가면 안 되는데, 버마 가면 정말 안 되는데!”라고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한달 뒤인 10월7일 밤, 무당은 대통령이 죽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건 개꿈이야, 개꿈!”하면서 남쪽을 향해 침을 퉤퉤 내뱉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 아침 아웅산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위기일발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범석 외무장관을 포함,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운명을 ‘재천’이라고 할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상황이 떠올려진다. 첫째, 당초 전직 장관 부인의 뜻대로 남편이 외무장관에 발탁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무당의 말대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둘째, 무당이 ‘버마’를 운운한 점, 또 ‘대통령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 미얀마가 있는 남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운 좋게도 살아 돌아왔다. 운명의 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앞두고 신(神)의 전주곡 같은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이 피범벅이 된 끔찍한 사건일수록 그 뒷얘기는 더욱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살아온 60년 이 시대의 큰무당,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金錦花·77)는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뿌린다. 작두 타며 신을 만나는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뭔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17세 때에 처음 신과 만났으니 올해가 꼭 60년째가 된다. 한때는 혹세무민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한국인’이 됐다. 그가 세계 여러 나라에 갈 때마다 단연 ‘인기캡’으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국내에서 서해안풍어제(무형문화재82-2호) 굿판을 벌일 때도 많은 외국팬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는 2년 전 강화도 북쪽 해안가에 30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무속체험장인 ‘금화당’ 간판(글씨는 ‘도올’이 썼다.)을 내걸었다. 서해안풍어제 굿판을 벌이기에도 좋고 고향인 황해도 연백땅을 바라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이문동의 서해안풍어제연구소와 금화당을 오가며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신과 가까이에서 ‘경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주 이문동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소박한 한복차림에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금화당’ 얘기를 먼저 꺼냈더니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워싱턴·LA 공연을 비롯, 유럽 각지의 해외공연을 수십차례 다니면서 무속 체험장 같은 공간을 꼭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여러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줘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으로도 소문이 퍼져 최근에는 세계 연극평론가 70여명, 외국 신문사 기자, 천주교 수녀들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무속박물관이 내 꿈 아울러 여력이 되면 무속박물관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200여년된 탱화 등 우리 무속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다수 소장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의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동생을 본다는 뜻에서 처음에는 ‘넘새’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이 다섯에 남동생이 태어나자 이름을 ‘금화’라 했다. 그의 신기는 어릴 적부터 신통방통했다. 열살 무렵에는 아이들과 놀면서 시퍼런 낫을 맨발로 타고 올라가 춤을 췄다. 또 어느 집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고, 임신한 사람을 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혔다. 열일곱살되던 정월 대보름날 밤이었다. 시름시름 무병을 앓던 그가 달맞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울을 건너려 하자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져내렸다.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때부터 ‘신의 딸’이 됐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신 어머니가 돼 금화의 허주굿(온갖 잡신을 몰아주는 굿)을 해주었다. 금화는 이어 내림굿을 하면서 작두를 탔다. 열아홉살되던, 즉 6·25직전 어느날었다. 금화는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뚝뚝 떨어지고 달구지가 피묻은 옷가지를 싣고 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물론 신의 계시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무당을 반동분자로 취급했던 터였다. 나라에 큰 난리가 날 것을 안 금화는 숨어다녔으나 자주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전쟁 초기에는 북한군인들이 찾아와 피란간 사람들의 명단을 대라며 윽박지르더군요. 반동으로 몰리자 마을 원두막에 앉아 혼자 인공기를 만들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28수복 직후에는 남한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 노릇한 사람의 명단을 대라고 하더군요.‘너는 무당이니 다 알지 않느냐.’고 하면서 목에 총을 들이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지요.” ●올해 일어날 일은 비밀 결국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리 중에 인천으로 피란오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때에는 굿을 할 수가 없어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석, 우수상·공로상·개인상·단체상 등을 싹쓸이하면서 당당한 민속예술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의 초청공연이 계기가 됐다. 이때 작두 타는 모습 등을 비롯, 한국의 토속 샤머니즘을 선보여 많은 관중을 불러모았고 이후 매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해외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올해 큰 사건은 없느냐고 하자 “그건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너무 빠르다. 순리대로 가야 하며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금화당에서 무녀인생 60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큰 굿판을 벌일 예정이니 그때 구경 오라고 당부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황해도 연백 출생. ▲46년 외할머니에게 허침굿(허주굿), 내림굿, 솟을굿을 받음. 방수덕·권만신에게 대덕굿, 철물이굿, 배연신굿, 대동굿 등 전수. ▲82년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 문화사절단으로 방미. ▲84년 미국 하와이주 인간학연구위원회 및 하와이대재단 초청공연,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배연신굿·대동굿 기능보유자 지정. ▲95년 김금화대동굿(연강홀)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
  • 「미스 논산 농협(論山 農協)」강경석(姜京錫)양-5분데이트(103)

    「미스 논산 농협(論山 農協)」강경석(姜京錫)양-5분데이트(103)

    「미스·논산 농협」강경석양은 조용하고 뜸직한 인상의 아가씨. 49년생이라지만 체격이고 얼굴표정은 훨씬 성숙해 보인다. 강양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전북 군산(群山)여고 출신. 여고를 졸업하고는 곧장 논산에 있는 농협지점에 입사해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 현재 예금계 담당. 가정쪽으로는 홀어머니 노(盧)예식여사(51)의 2남4녀중 셋째 딸. 직장근무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 어머님을 도와 살림살이를 익힌다는 착실한 아가씨. 한가한 주말이면 「레코드」듣는 것이 취미. 주로 가벼운 고전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특기는 성악. 여고시절 합창단원으로 익힌 노래솜씨는 「프로」급을 능가할 정도. 직장대항 노래자랑 대회라도 열리는 때에는 항상 대표급 선수로 출전, 농협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왔단다. 좋아하는 노래는 『투·영』. 아직 구체적인 결혼계획은 없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만한 남자친구 또한 없다고. 그러나 결혼은 연애결혼을 하고싶다고 살짝 속삭이듯 말했다. 이상적인 남편감은 『공처가 소리 듣지않을 정도의 가정적인 남성』. [선데이서울 70년 10월 11일호 제3권 41호 통권 제 106호]
  • “6·10항쟁 의미 되새기는 기회로”

    “6·10항쟁 의미 되새기는 기회로”

    “2004년 6월10일 영정이 찢겼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내 가슴도 찢어졌죠.”(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당시 도서관 앞이 시끄럽다고 그런 짓을 했다던데 화가 치솟더군요.”(영정과 걸개그림을 그린 최병수 화백) “교내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우리가 꼭 책임지고 싶었습니다.”(연세대 상경대 이한열 열사 추모기획단장) 2년 전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훼손된 채 발견된 이한열 열사의 영정이 6월 항쟁 20주년을 앞두고 단과대 후배들에 의해 복원된다. 영정은 1987년 이한열 열사 영결식 때 사용됐던 영정으로 2004년 6월10일 중앙도서관 앞에 전시됐다가 예리한 칼로 난도질 당한 채 발견돼 그동안 복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30일 연세대 상경대 고(故)이한열 열사 추모기획단에 따르면 이한열 열사 영정 복원과 대형 걸개그림 추가 제작을 위한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가로 1.8m, 세로 2.3m 크기의 영정은 6월 항쟁의 상징적인 그림으로 다음달 9일까지 복원돼 중앙도서관 앞에 다시 내걸린다. 걸개그림은 이미 제작된 두 점이 각각 국립현대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에 소속돼 있어 추가로 제작하는 것이다. 재학생들은 지난 3월 영정과 걸개그림을 그린 최병수 화백을 찾아가 영정 복원을 부탁했다. 최 화백은 “훼손된 것도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가 있고, 다시 제작하는 것 역시 다른 의미의 복원이니 다시 그리자.”고 말했다. 영정은 1988년 9월에 스프레이를 뿌려 놓은 훼손 사건이 있었던 터라 이번이 세 번째로 제작되는 셈이다. 모금 목표액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거액의 기부보다는 학생들이 조금씩 정성을 모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모인 금액은 목표금액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졸업생들도 이 소식을 듣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몇 만원씩이지만 꾸준하게 모이고 있으며 약정서를 써주는 선배들도 늘어나고 있다. 추모기획단장 이혁(24)씨는 “모금은 6월9일이 지나도 계속된다.”면서 “하루를 위해 준비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학교에선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듣기 힘들다.”면서 “영정·걸개그림 재제작 모금사업을 통해 이한열 열사와 6·10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금운동을 함께하는 이모(24)씨도 “큰 의미가 아니라도 학우들이 2007년 현재의 관점에서 6·10항쟁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높이 10m, 폭 7.5m의 이한열 추모 걸개그림도 현재 80% 정도 작업이 진행됐다.2004년 10월 위암 수술을 받은 최 화백은 “대학생은 취직에만 관심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 대견한 일”이라면서 “다시는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돈도 없는 학생들이 한두푼씩 모으는 게 쉽지 않은데 그저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모금운동에 동참하려면 상경대 학생회실(02-2123-3648)로 연락하면 된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Seoul In] 의료 급여 전화상담 서비스

    은평구(구청장 노재동) 의료급여 텔레캐어(전화상담) 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6월부터 서비스를 운영한다. 텔레캐어 사업은 전화를 통한 건강 상담·지도, 의료급여사업 설명, 수요자 중심의 보건복지 서비스 연계 등을 진행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예방하는 사업이다. 지역내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1만 4832명(4월30일 현재)으로 구 인구의 3.2%를 차지한다. 지난해 의료비로만 69억 2609만원이 지출되는 등 과도한 의료비용이 발생돼 복지재정의 압박요인이 됐다.6월부터 텔레캐어 사업이 시범 운영됨에 따라 지역내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건강관리 능력을 제고하고, 적정의료 이용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회복지과 350-3695.
  • 진실화해위 “부일장학회 中情서 강탈”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재산 등 강제헌납 의혹사건’에 대해 강압에 의한 재산 헌납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는 재산권을 침해한 점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강탈한 재산을 반환하는 한편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중앙정보부의 수사권은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범죄에만 한정돼 있는데 이와 상관없는 김지태씨를 구속 수사한 것은 권한 남용에 해당된다.”면서 “구속 재판을 받고 있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김씨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여만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MBC),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강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권 및 재산침해 행위”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헌납 토지에 대해서는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울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하라.”면서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된 만큼 공익목적 재단법인을 설립해 그 재단에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헌납 주식도 돌려줘야 하는데 정수장학회가 이 주식을 국가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김지태씨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정수장학회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언론사 주식을 정수재단의 경비 조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공익성에 반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는 “강탈 당한 언론 3사는 단순한 재산권 침해에 머물지 않고 언론기관의 존립 근거에 속하는 공공성 또는 중립성 등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정수장학회는 현재 MBC 주식 30%, 부산일보사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차남 영우(65)씨는 지난해 1월27일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아버지를 국내재산 도피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한 뒤 처벌을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부일장학회와 아버지 소유의 땅 10만평, 부산일보 등 언론 3사를 강제로 헌납시켰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용어클릭 ●부일장학회 1958년 11월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었던 김지태(전 삼화고무 사장)씨가 토지 10만 147평을 기본 재산으로 설립한 장학회다.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몰수돼 5·16장학회로 바뀌었다.8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이사장으로 있었으며 최필립씨가 현재 이사장이다.
  • 「미스 여군 美」이희자(李熙子) 하사-5분데이트(102)

    「미스 여군 美」이희자(李熙子) 하사-5분데이트(102)

    사과처럼 동그랗고 복스러운 얼굴의 이희자(李熙子)하사(20)는「미스 여군」美로 뽑힌 아가씨. 약간 검은듯 하면서도 매끄러운 피부, 건강한 몸맵시는 젊은 아가씨답게 싱싱하다. 얼굴표정은 늘 화냈을 때를 상상조차도 할 수 없게 밝기만 하고. 66년 11월 인천(仁川) 인화(仁花)여고 재학중 군에 입대 했다. 가정적으로는 무척 외로운 아가씨. 부모님은 모두 계시지 않고, 1남3녀중 막내딸. 두 언니는 이미 결혼을 했고, 오빠도 결혼해서 경남(慶南) 하동(河東)에 살고 있다. 여군기숙사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 이하사의 일과는 아침 6시 기상과 함께 시작되고 저녁 5시에 끝이 난다. 주어진 일과가 끝난 뒤에는 주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얼마전부터는 바둑에 취미를 붙여 열을 올리고 있다. 주말은 동료 군인들과 함께 즐기고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때는 영화구경. 제대는 74년 2월. 만기가 되면 제대를 하고 오빠집이 있는 하동으로 내려가 차분히 집안일을 배울 생각이란다. 결혼은 27살쯤 될때 천천히 할 생각이라고. 존경하는 여성은 「인디라·간디」여사. [선데이서울 70년 10월 4일호 제3권 40호 통권 제 105호]
  • 수치여사 가택연금 1년 연장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이 다시 연장됐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25일 국제사회의 압력과 호소 속에서도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을 1년 더 연장했다고 현지 경찰소식통을 인용해 BBC가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는 이날 오후 가택연금 연장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정부 관리들이 탄 차량이 수치 여사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노벨상 수상자로 올해 61세인 수치 여사는 지난 17년 가운데 11년 7개월을 연금 상태에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가택연금은 지난 2003년 5월 시작돼 27일 종료될 예정이었다. 군사정부는 철권통치 속에서도 수치 여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그치지 않는 등 그녀의 지지세가 위축되지 않자 가택 연금 연장 가능성을 시사해 왔었다. 이에 앞서 수치 여사의 연금 종료 시한을 앞두고 미국, 유럽연합(EU), 유엔, 아세안 등은 한 목소리로 연금 해제를 촉구했다. 지난주 김대중,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등 한·미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59명의 정치 지도자들이 수치 여사의 석방을 위해 미얀마 군사 지도자 탄 쉐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의 에르린다 바실리오 외무차관, 루이즈 아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등도 해제를 요구했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그들만의 무분별시위 감동은 없고 짜증만…”

    “그들만의 무분별시위 감동은 없고 짜증만…”

    “집회·시위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주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현직 시민운동가가 시민·사회단체들의 무분별한 집회·시위문화에 대해 애정어린 쓴소리를 했다. 24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6개월 단위로 발간하는 ‘시민과 세계’에 따르면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이 오는 31일 발간되는 시민과 세계 11호에 ‘소통과 연대의 집회를 위하여’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을 통해 “집회·시위는 허가 대상이 아닌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헌법적 권리”라고 전제한 뒤 현재 집회·시위 문화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시민들은 교통체증, 행사장을 뒤덮은 깃발, 경찰과 벌어지는 충돌, 소음, 화형식 등에 큰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시민·사회단체 스스로 집회·시위문화에 성찰할 점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먼저 “집회 시간이 너무 길고 발언 내용도 비슷한데다 연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내빈 소개도 많고 연설은 너무 거칠고 운동권 은어를 남발한다. 구호는 늘 ‘촉구한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회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틈이 없다.”면서 “지나가는 시민뿐 아니라 집회를 막으러 온 경찰마저도 감동시키려 했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집회장에 수십∼수백개나 되는 깃발은 국민들에게는 늘 조직된 사람들만 집회하는 걸로 비치기 때문에 ‘매번 하던 사람들이 또 데모한다.’는 핀잔과 조롱을 듣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집회 소음에 대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엄청나게 큰 음향으로 집회를 하고 노래나 녹음된 육성을 틀어놓는데 이는 지지가 아니라 반감의 대상이 되고 만다.”고 밝혔다.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체증 문제에 대해서는 “길이 막힌 당사자나 국민들의 짜증이 민주사회에서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까지 이르렀다면 깊이 반성해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삼성 ‘32나노 로직기술’ 개발 착수

    삼성전자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인 로직(logic)기술을 미국 IBM 등과 공동 개발한다. 이는 삼성전자가 메모리에 이어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첨단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IBM과 프리스케일, 독일의 인피니온, 싱가포르의 차터드 등 4개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300㎜(12인치) 웨이퍼(반도체판)용 차세대 32나노(㎚·10억분의 1m) 로직기술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이들 5개사는 2010년까지 공동개발을 마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 비용을 분담하고, 개발 리스크(위험)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공동 개발하는 로직기술은 모바일용 응용 프로세서(AP), 디지털 TV용 시스템온칩(SoC), 주문형 반도체(ASIC) 등에 주로 쓰인다. 이번 제휴를 통해 개발되는 로직 공정은 한번의 칩 설계로 참여사 어느 곳에서도 제품 생산이 가능한 멀티 소싱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SoC사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함으로써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의 균형적인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오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사장은 “이번 협력을 통해 신물질, 트랜지스터 구조 등의 새로운 기술적 과제를 극복함으로써 차세대 32나노 로직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캐디간 IBM 반도체 솔루션 사업부장은 “삼성과의 협력은 현재와 미래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라며 “이번 협력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미래 기반 기술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미스·서울지방 국세청」은성모(殷性摸)양 - 5분데이트(101)

    「미스·서울지방 국세청」은성모(殷性摸)양 - 5분데이트(101)

    「미스·서울지방 국세청」은성모(殷性摸)양은 갸름한 얼굴, 날씬한 몸매의 고전적인 느낌의 아가씨. 전남 광주 태생으로 69년 봄 조선대학교 의상과를 졸업했다. 국세청에 근무한 것은 69년 6월부터. 국세청 본청 직세국장실에 근무 하다가 지난 2월 서울지방 국세청으로 옮겨와 계속 청장실에 근무하고 있다. 가정쪽으로는 어머니 하의경(河義敬)여사(62)의 4남7녀중 다섯째 따님. 위로 4명의 오빠와 1명의 언니는 이미 결혼을 했고 지금은 3살위의 언니를 포함해서 딸만 모두 4명이 남은 셈이라고. 월급은 일부 살림살이에 보태라고 어머님께 드리고, 동생들에게도 용돈으로 몇푼씩 쥐어준다는 착한 아가씨. 또한 용돈은 아껴서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계를 붓고 있는 야무진 아가씨. 취미는 서예와 성악. 노래부르기를 특히 즐겨서 여고때부터의 18번이 『솔베지의 노래』라고. 의상과 출신인만큼 옷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직장일에 쫓기느라 통 옷을 못만들어 안타깝단다.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고…. 2년쯤 뒤, 위의 언니가 결혼한 뒤에나 얘기해 보잔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27일호 제3권 39호 통권 제 104호]
  • 北 인사 첫 4·19민주묘지 참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8차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한 북한측 인사 5명이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리 국립 4·19민주묘지를 방문, 참배했다. 북측 인사가 4·19묘지를 공식 참배한 것은 1995년 4·19묘지가 국립으로 승격된 뒤 처음이다. 이날 4·19묘지를 방문한 ‘조선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련행 피해자보상 대책위원회’(조대위) 홍선옥 위원장, 손철수 서기장 등 5명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들과 함께 묵념한 뒤 헌화했다. 홍 위원장 등은 이후 몽양(夢陽) 여운형 묘소로 발길을 옮겨 참배하고, 몽양의 비서였던 이기형씨 등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운형 선생 60주기 사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이어 고 문익환 목사의 수유동 ‘통일의 집’으로 옮겨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88) 여사와 다과를 함께 했다. 홍 위원장은 “살다보니 일본인들 가운데 이런 악질과 만나기도 한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근 잇따른 위안부 관련 망언을 함께 규탄하기도 했다. 한편 아시아연대회의 참석차 방한한 일본의 요시카와 하루코(吉川春子) 참의원(공산당)도 20일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할 의향이 있다면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계승해 공식 입장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요시카와 의원은 “아베 총리가 미국 순방 도중 부시 대통령에게 한 사죄는 위안부 문제와 아무 관계 없는 사람에게 한 것으로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禪수행 50년 지리산 황매암 일장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禪수행 50년 지리산 황매암 일장 스님

    인도의 달마대사가 중국 쑹산(嵩山)의 소림사 토굴에서 9년 면벽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40대 승려가 찾아와 무릎 꿇고 뵙기를 간곡히 청했다. “바다와 같은 자비심으로 제게 불법을 깨우쳐 주십시오.” “법을 구하려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야 한다. 부질없는 소리 말고 돌아가거라.” 승려는 갑자기 품고 있던 칼을 뽑아 왼팔을 댕강 잘랐다. 달마대사가 다시 물었다. “네가 구하려는 것이 무엇이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가 미소를 지으며 “네가 찾았다 해도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느니라. 하하하.” 그 말 한마디에 승려는 평생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어 “마음이라, 형상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을 붙잡고 왜 그리도 스스로를 할퀴었던가.”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승려는 달마대사에게 넙죽 엎드렸다. 달마대사에서 시작한 선불교가 중국에 비로소 전파되는 순간이었다. 이 승려가 바로 중국 선불교의 제2대 조사인 혜가(慧可·487∼593)스님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서산대사 또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을 통해 부처의 마음을 선(禪), 그 말씀을 교(敎)라고 설파했다. 말없음으로 말없는 데 이른 것은 ‘선’이요, 말로써 말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라고 하면서 선과 교의 독특한 차이점을 밝혔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새삼 ‘마음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표를 던져본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내 마음’은 과연 어디쯤 가고 있을까. 불안한 마음, 두려운 마음, 노여운 마음은 자꾸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반가운 마음, 푸근한 마음은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문득 찾아든다. 지난 14일 이런저런 상념을 떠올리며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은 한 암자를 향해 떠났다. 차로 4시간 남짓, 남원시 인월면 사거리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위치를 물었더니 “암자의 그 스님은 참 훌륭하신 분”이라는 설명과 함께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지리산 실상사 방향으로 30분쯤 오르다 해발 600m 지점에 이르러 외길 숲 사이로 ‘황매암(黃梅庵)’이 나타났다. 출가한 지 50년째 선수행(禪修行) 중인 일장(日藏)스님, 한라산 자락 토굴산방 ‘목부원’에서 15년 동안 수행안거하다가 2004년 이곳에 ‘황매암’을 창건, 조용히 참선 정진 중이다. 성철스님의 스승이기도 한 동산 큰스님의 막내상좌로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가장 귀감으로 삼는다. 그래서 2005년 ‘선가귀감’의 언해본을 쉽게 한글로 번역·출간해 그 뜻을 폈다. 또 1999년에는 생전의 성철스님한테 받은 ‘만선동귀집’을 편역했다. 이 두권은 불교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특히 스님은 선서화(禪書畵)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의 불사전(佛事展)과 장학모금전에 참여하면서 이같은 존칭을 얻었다. 스님은 속세와 담을 쌓고 토굴수행을 하기에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의하지 않는다. 까닭에 별도의 약속도 없이 무작정 황매암을 찾아 합장했다. 지리산 중턱을 감아도는 맑고 고운 바람과 풍경(風磬)소리를 배경으로 차방에서 스님과 마주 앉았다. 주위에는 온통 5월의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어제는 백초(百草)를 캤지요. 취나물, 다래넝쿨, 오미자, 감잎 등 새잎이 돋아나니까 그걸 캐서 몇 단지 만들어 발효를 시켜 둡니다. 여름에 냉수 타서 마시면 속이 깨끗해요.” 스님은 출가 후 얼마 있다가 심장병이 악화돼 참선방에서 나와 일찍부터 토굴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고독과 절망을 이기는 것이 간단치 않았다. 하루는 성철스님한테 찾아갔다. 순 한문으로 된 ‘만선동귀집’을 건네받았다. 그날로부터 옥편을 옆에 끼고 공부에 몰입했다. 출가 초기에는 한 성당에서 호주 출신 신부와 1년 동안 지내며 교리공부를 했다. 이해되는 대로 몇줄씩 써서 벽에 붙였다. 이것을 볼 때마다 마음의 고향을 느꼈다고 했다. “스님, 마음이란 무엇인가요?” “형체도 없는 것을 사람들은 닫아 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실천해야 합니까?” “진실해지면 표현도 진실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식과 위선이 많아집니다. 매일 있는 오늘이지만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시간, 이 환경은 두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바로 처음의 모습을 (마음에)담는 것입니다. 매순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또 여한 없이 밝은, 닫힘이 없이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 속이 내 속이고, 그 사람의 삶이 없이 결국 내 삶도 없지요.” “스님이 그리는 ‘선서화’도 그런 맥락인가요?” “달마스님의 9년 면벽이 천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살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어느날 말이 곧 허구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붓으로 써서 절방 여기저기에 붙여 놨습니다. 나중에는 ‘웃는 기왓장’도 넣었고, 색칠도 해봤더니 그림쟁이라고 하더군요. 본업이야 중노릇인데, 지나가는 누구나 그걸 보면서 잠시 마음의 고향을 느끼면 그만이지요.” 스님은 20년 전 내원사에 있을 때 잘 아는 지인이 암에 걸려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병문안을 갔다. 이때 촛불이 그려진 연하장 크기의 선서화를 선물했다. 환자는 세상의 빛을 본 것처럼 좋아하며 머리맡에 붙였다. 얼마 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적처럼 살아나 주위를 놀라게 했다. 화제를 돌렸다. 첩첩 산중의 암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해졌다. 갈등과 분열, 대립과 양극화, 도덕성 상실 등등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스님은 지체없이 “그건 다 우리의 거울이지요.”라고 말했다. 남을 탓할 필요 없이 각자 자신의 거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 어떤 캠페인으로 고쳐질 것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성장과정이 너무 쉬워요. 그러다 보니 우여곡절도 있고 혼란한 모습을 보이지만 나아집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유한이 아니라 무한입니다. 오늘의 발전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봄직하지요. 산은 무질서합니다. 수많은 가시덤불과 높고 낮은 언덕이 있거든요.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온갖 개성들이 함께 모여사는 사회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운명은 우리 각자가 하나씩 풀면서 꾸려나가야 합니다. 빈그릇을 보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가득차 있으면 유한한 법입니다. 때를 닦아내려면 걸레가 깨끗해야 합니다.” “스님, 그렇다면 이 시대의 리더는 어떠해야 합니까?” “능한 사람이 아닌 스스로 나의 허물을 돌아보고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어두운 알 속을 깨고 나오는 것이지요. 어둡다는 것은 무지가 아닙니다. 무엇엔가 사로잡혀 있으면 전체를 못봅니다. 전체를 밝게 봐야지요. 촛불이 방안에 하나 있는 것보다 10개 있으면 더욱 환해집니다.” 그러면서 그림 하나를 꺼낸다. 촛불 하나가 힘차게 그려져 있고 일휘등명(一 燈明), 보공시방(普供十方)이라는 글씨가 휘갈겨 있었다. 스님은 “밝은 등불(꿈, 희망, 용기) 하나, 이웃들에게 공양합니다.”고 풀이했다. “종교는 주변이 행복해져야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바탕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1년에 천끼 넘게 먹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먹습니다. 다만 라면을 만날지, 아니면 진수성찬을 만날지는 지나온 밥그릇의 바탕에 따라 정해지겠지요. 생활습관이 바로 ‘업’입니다.” ■ 그가 걸어온 길 ▲경남 울산 출생(속성 천씨). ▲1958년 13세때 출가, 범어사 ‘동산스님’의 막내 상좌(上佐). 이후 송광사, 해인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1980년 제주 한라산 자락에 ‘목부원’을 창건하고 수선.10여년간 경전 강독.‘청화스님’이 입적 직전 목부원(현 자성원)에 머물면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번역한 곳으로도 알려짐. ▲2004년∼현재 전남 남원의 지리산 산중에 ‘황매암(黃梅庵)’을 세우고 참선정진 중. ▲주요 저서 편역으로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1991년 불광출판)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2005년 불광출판)이 있다. ▲그외 숙생의 화업(畵業)으로 여러 차례 불사전(佛事展)과 장학모금전에 참여, 현존 선서화의 대가로 유명함. 실상사의 연관스님과는 절친한 도반. 성철스님을 사형(師兄)으로 모심(성철스님은 1936년 ‘동산스님’한테 사미계를 받았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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