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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향소 찾은 김대중 前 대통령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28일 오전 11시 서울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전 앞에 헌화를 한 뒤 묵념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8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의료의 최전선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는 의사들 역시 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희대, 유계준, 김선규, 오구라 쓰네코. 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는 4명의 의사들. 그들은 어떻게 암을 극복했을까? 암을 이겨낸 의사들이 말하는 암 극복의 열쇠를 공개한다. ●장화 홍련(KBS2 오전 9시) 장화가 변여사가 먹는 약을 빼돌리려는 장면을 목격한 변여사는 장화를 때린다. 이를 알게 된 홍련은 변여사가 부르는, 장화가 연애한다는 노래가 진짜 같다며 장화를 놀라게 만든다. 급기야 태윤이 홍련과 식사하는 일이 잦아지자 장화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한편 홍련은 수찬과 재회한다. ●신데렐라 맨(MBC 오후 10시) 대산을 만나러 간 유진은 세은에게서 대산과의 약혼 소식을 듣게 된다. 대산은 강회장 의견에 따라 세은과 약혼하겠다고 말하고, 집사는 불안한 눈빛으로 대산을 바라본다. 유진은 옷 창고에서 마주친 대산에게 약혼 축하 인사를 건네고, 대산은 서둘러 나가는 유진을 잡지 못하고 마음 아파한다. ●시티홀(SBS 오후 9시55분) 미래는 자신의 선거캠프로 돌아가서정도로부터 선거에 필요한 금액을 받고 놀란다. 다음날 미래는 죽집과 슈퍼, 옷집 등을 다니며 직접 후원을 받는다. 미래는 정도의 도움을 받자는 친구들의 요청을 뒤로하고 어머니에게 집저당을 잡히자고 이야기한다. 한편 미래는 시청에서 퇴직금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는다.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1시10분) 해마다 4월이면 수만마리의 괭이갈매기들이 날아드는 섬, 홍도. 경상남도의 최남단 절해고도인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335호로 지정돼 있다. 집단으로 모여 번식하면서도 인간사회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괭이갈매기들의 왕국 홍도. 괭이갈매기들의 생존경쟁과 모성애를 소개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중소기업들의 유럽 진출을 위해 마련된 ‘IT 전자 전시 상담회’. 이번 전시회에는 최근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 기조를 반영하듯 절전용 제품이 시선을 모았다. 그 중 한국 중소기업 44개 업체는 전기가 자동 차단되는 기술, 로봇 청소기와 강아지 로봇 등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 수치여사 기소에 침묵하는 미얀마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미얀마 양곤의 한 사원을 지키며 매달 26달러(약 3만 2900원)를 버는 킨 아웅은 아웅산 수치 여사의 기소 사건에 대해 말을 꺼렸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그는 군정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수치 여사의 공판이 계속되고 국제사회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미얀마는 침묵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7일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법과 국민을 존중한다면 수치 여사를 즉각적으로, 조건 없이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수치 여사를 구금하고 고립시키고 날조된 혐의로 기소한 것은 미얀마 정부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심각히 의심하게 만든다.”고 밝혔다.하지만 정작 미얀마에서는 수치 여사 기소로 인해 과거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수백명이 매일 법정 밖에 모이지만 주로 조용히 앉아서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는 게 전부다. 이 지역 사람들은 정부 정보기관이 그들을 면밀히 관찰 중이라는 것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주민들은 도전하기엔 군정이 너무 강력하다고 보고 있고 일부는 대규모 시위가 가뜩이나 약해진 경제를 더 어렵게 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여행사 매니저인 프랭키 니는 “모두 (재판에 대해) 말은 하지만 속삭이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수치 여사는 26일 법정에서 미국인 존 예토(53)를 자신의 집에 지내도록 허락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규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예토의 잠입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외부인 침입을 막는 것은 보안군의 책임이기 때문에 자신은 외부인 방문을 금지한 가택연금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변호인단은 당초 가택 연금 해제 예정일인 27일쯤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외교관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미얀마 정부는 수치 여사를 11월말까지 합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다고 밝힘에 따라 최종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꽃잎처럼 흘러가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김해 봉하마을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뙤약볕 아래 에서도 3㎞쯤 늘어선 ‘흰국화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끊임없는 조문객 행렬 29일이 영결식이어서 문상 기간이 내일 하루밖에 남지 않아서 인지 오후에 들어서부터 직장인과 중장년층의 조문이 부쩍 늘었다. 이날 25만여명 등 5일간 누적 조문객은 90만명을 돌파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모(57)씨는 “생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미워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그분의 명복이라도 빌려는 생각에 일을 끝내고 급히 달려왔다.”라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빈다.”고 애도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이날 “권양숙 여사가 빈소 자원봉사자와 분향소를 찾은 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권 여사가 ‘무더운 날씨에도 본업을 뒤로한 채 슬픔을 같이하고 도움을 주신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사 희생자 보듬었던 고인 이날 오전 제주시 4·3항쟁 유족 대표 20여명이 조문했다. 이중흥(63)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사저를 방문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방문 당시 사저 정원이 너무 허술해 나무 하나 심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하니 ‘제주 수종으로 심어달라.’고 하셔서 산딸기나무를 심었다.”고 소회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81) 할머니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큰 별이 떨어지셔 달려왔다.”면서 “명절마다 권 여사가 술· 과일을 챙겨주셔서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며 눈가를 훔쳤다.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에는 1700개의 만장이 내걸렸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원들이 인터넷 다음 ‘아고라’에 오른 노 전 대통령 추모글을 적은 만장은 빈소까지 2㎞ 구간에 설치됐다. 만장에는 ‘돌아와 주세요. 노 통장님.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울어도 울어도 보고 싶다.’라며 애도와 그리움을 나타내거나 ‘우리 갈 길 멀고 험해도 끝내 이기리라’라는 민중가요 가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경남지방경찰청장 물병 세례 일부 조문객들이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과 경찰간부 40여명에게 물을 뿌리고 야유를 퍼부었다. 이 경남경찰청장 등 일행이 봉변을 당한 까닭은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게 늘어선 조문객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새치기 조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청장이 조문하는 동안 먼저 차례를 기다리던 일부 조문객들은 경찰간부 일행에게 물을 뿌리고 울먹이면서 “제대로 경호(청와대 경호를 오해)도 못하고 자살경위 수사도 제대로 못한 주제에 무슨 얼굴로 왔느냐, 경찰이 왜 조문 순서를 지키지 않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화가 난 일부 조문객은 경찰 일행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간부 일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흩어진 신발을 집어와 신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글 / 김해 김정한 이재연기자 jhkim@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봉하마을 빈소 표정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에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는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추모 열기가 더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조문객 행렬이 수백m에 이르렀다. 임시주차장인 진영공설운동장~봉하마을 셔틀버스는 조문객을 실어 나르느라 밤늦게까지 계속 운행됐다.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2㎞ 진입로는 국화꽃들이 2m 간격으로 줄지어 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지난 25일 새벽부터 자원봉사자와 조문객들이 하나둘씩 봉하마을 진입로 가드레일에 국화꽃을 1~3송이씩 꽂기 시작해 현재 수백송이로 늘어났다. 조문객들은 연령층과 신분 등이 각계각층이었다. 마을 관광안내센터 관계자는 “평일이어서 주말보다 조문객 수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후가 되면서 퇴근한 회사원과 수업을 마친 중·고생들이 조문객 행렬에 동참해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봉하마을 입구에서 빈소에서 조문하는 데 4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평일임에도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 수가 26일 자정까지 연인원 60만명을 넘었다. 장의위원회 관계자는 “현재의 조문 열기로 볼 때 봉하마을과 전국의 분향소를 찾는 추모객은 200만명을 넘어서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당시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40여만명과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의 영결식과 3주간의 사리친견법회 추모객 40만명을 이미 웃돈 셈이다. 추모 인파는 1949년 6월 서거한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국민장 때 100만여명, 1979년 첫 국장으로 치러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 200만명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서로 자신을 강하게 자책했으며, 이같은 심경을 가족회의나 주변 인사에게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자신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고, 자신이 죽으면 모두 다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며 “가족회의 때 ‘노 전 대통령이 나만 죽으면 편해 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권 여사는 ‘그 사람은 돈을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심하게 자책하며, “그 충격으로 걸음조차 걷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경북 문경에서 온 학생 남매가 편지를 읽었다. 문경여고 3학년 박수경(19)양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자 조문행렬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박양은 “부모님 다음으로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비보를 듣고 멍해졌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울먹였다. 박양은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며 “진심으로 편히 쉬시라.”라고 편지를 맺었다. 박양의 남동생 박민용(11·모전초 3)군도 편지를 낭독했다. 박양은 2003년 ‘대통령이 된 바보’란 책을 읽고 감동했다고 했다. 봉하마을에 머물며 폭력으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을 막는 등 장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일부 과격 노사모 때문에 유족들의 근심이 가중되고 있다. 유족들은 “모든 인사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하지만 조문을 방해하는 일부 노사모 회원들을 통제할 수 없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김정한 박성국기자 jhkim@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마을 보이는 아늑한 남향… 사저서 50m 거리”

    “양지 바른 남향으로 아늑하다. 어린 시절과 귀향후 즐겨 찾던 마을앞 야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26일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장지로 유력한 사저 부근 야산 터를 둘러본 김해지역 유명 지관 구영옥(80·김해시 진영읍)옹은 “장지는 풍수지리학적 측면과 접근성이 충분히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은 서민과 달리 존경받는 분이다. 장지가 생가 등과 불과 50m 밖에 안 떨어져 참배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며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사저 등을 관광하면서 휴식도 함께 취할 수 있는 위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풍수·접근성 좋아 관광지 될 것” 이어 “장지 예정지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권 여사와 함께 (관광지 겸 선산으로) 이야기를 했던 곳”이라며 “이곳에 오면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또 “장지에서는 옥녀봉(황후의 자리)도 쉽게 볼 수 있고 부엉이바위도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노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권 여사를 잊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여사, 건평씨 등과 예정부지 살펴 권 여사는 이날 오전 6시40분쯤 지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노건평씨와 지관 구씨가 있는 장지 예정지에 나와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비가 오면 뒷산에서 물이 내려와 묘소에 물이 찰 수 있다.”면서 “묘소를 만들 때 물이 차지 않도록 물길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여사는 지관과 함께 장지를 확인한 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야 하는데….”라고 하자, 노건평씨가 “제가 모시고 가서 차 대접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구씨는 전했다. 구씨는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화장해서 일단 봉하마을로 온 뒤 장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정토원에 모시게 될 것”이라며 “장지 조성공사가 끝나면 가족들과 상의해 장지에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언급한 비석과 관련해서는 “장지와 별도로 가족 및 장례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노건평씨는 구씨에게 “나는 나중에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봉하마을 입구 선영 자리 옆으로 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씨는 노 전 대통령의 양친이 묻혀 있는 봉하마을 입구의 선영 자리를 봐주는 등 노 전 대통령측과 수십년간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측은 이날 오전 구씨를 불러 장지 예정지를 둘러보게 한 뒤 가족회의를 거쳐 이곳을 장지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장지로 봉하마을 선영과 봉화산 등이 거론됐으나 유족들이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사저옆 야산을 장지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마을입구 2㎞ 국화 꽃길… 나흘새 60만명 조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에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는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추모 열기가 더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조문객 행렬이 수백m에 이르렀다. 임시주차장인 진영공설운동장~봉하마을 셔틀버스는 조문객을 실어 나르느라 밤늦게까지 계속 운행됐다.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2㎞ 진입로는 국화꽃들이 2m 간격으로 줄지어 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지난 25일 새벽부터 자원봉사자와 조문객들이 하나둘씩 봉하마을 진입로 가드레일에 국화꽃을 1~3송이씩 꽂기 시작해 현재 수백송이로 늘어났다. 조문객들은 연령층과 신분 등이 각계각층이었다. 마을 관광안내센터 관계자는 “평일이어서 주말보다 조문객 수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후가 되면서 퇴근한 회사원과 수업을 마친 중·고생들이 조문객 행렬에 동참해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봉하마을 입구에서 빈소에서 조문하는 데 4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평일임에도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 수가 26일 자정까지 연인원 60만명을 넘었다. 장의위원회 관계자는 “현재의 조문 열기로 볼 때 봉하마을과 전국의 분향소를 찾는 추모객은 200만명을 넘어서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당시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40여만명과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의 영결식과 3주간의 사리친견법회 추모객 40만명을 이미 웃돈 셈이다. 추모 인파는 1949년 6월 서거한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국민장 때 100만여명, 1979년 첫 국장으로 치러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 200만명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서로 자신을 강하게 자책했으며, 이같은 심경을 가족회의나 주변 인사에게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자신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고, 자신이 죽으면 모두 다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며 “가족회의 때 ‘노 전 대통령이 나만 죽으면 편해 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권 여사는 ‘그 사람은 돈을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심하게 자책하며, “그 충격으로 걸음조차 걷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경북 문경에서 온 학생 남매가 편지를 읽었다. 문경여고 3학년 박수경(19)양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자 조문행렬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박양은 “부모님 다음으로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비보를 듣고 멍해졌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울먹였다. 박양은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며 “진심으로 편히 쉬시라.”라고 편지를 맺었다. 박양의 남동생 박민용(11·모전초 3)군도 편지를 낭독했다. 박양은 2003년 ‘대통령이 된 바보’란 책을 읽고 감동했다고 했다. 봉하마을에 머물며 폭력으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을 막는 등 장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일부 과격 노사모 때문에 유족들의 근심이 가중되고 있다. 유족들은 “모든 인사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하지만 조문을 방해하는 일부 노사모 회원들을 통제할 수 없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 김정한 박성국기자 jhkim@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喪家를 움직이는 5인방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는 비서실 출신을 주축으로 한 ‘5인 회의’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이병완 청와대 전 비서실장, 천호선 전 수석비서관, 행정관을 지낸 민주당 백원우 의원, ‘좌(左)희정’으로 불린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5인 회의의 고정 멤버다. ‘박연차 게이트’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사실상 폐족(廢族)이 되었을 때 눈치 살피지 않고 주군인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달려갔던 인사들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며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실세총리’로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이해찬 전 총리가 회의 멤버에서 빠져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문 전 비서실장(변호사)은 ‘박연차 게이트’가 터져 노 전 대통령이 수사 전면에 등장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다. 코너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의 ‘입’이었고, 노 전 대통령이 ‘VIP의 무덤’이라는 대검 중수부 12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줄곧 주군 곁에 있었다. 이 전 실장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발탁돼 비서실장과 정무특별보좌관까지 맡았던 ‘노의 그림자’였다. 천 전 수석비서관과 백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 출신으로 영원한 ‘노의 사람’이다. 특히 재선인 백 의원은 국회 내 친노(親)의 최측근 인사다. 안 최고위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 사후(死後) 새롭게 등장한 ‘5인방’은 고비마다 대책회의를 열고 결론을 도출, 권양숙 여사에게 승인을 받은 뒤 처리하고 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부터 줄곧 상가(喪家)를 지키고 있다. 가족장을 고집하던 권 여사를 설득해 낸 것도 다름 아닌 이들이었다. “권 여사가 가족장을 고집한 것은 남편의 유언도 유언이지만 밑바탕에는 현 정권에 대한 격한 감정이 깔려 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권 여사라 해도 남편의 사후 ‘충신’인 이들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김해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부고] 원로 극작가 강성희 여사

    [부고] 원로 극작가 강성희 여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원로 작가인 강성희(본명 강순보) 여사가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44세때 1965년 희곡 작품 ‘자장가’로 유치진 선생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뒤늦게 문단에 등단했다. 하지만 오로지 뜨거운 작가 열정과 희곡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앞세워 30여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쉼 없이 꾸준한 창작 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으로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펜문학상(1987), 한국문학상(1996), 대한민국예술원상(2000)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류원(반도실업 대표), 류훈(경인교육대 교수)씨.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며 발인은 28일 오전. (02)2227-7566.
  • [부고] 마지막 여성광복군 전월선여사 별세

    김원웅 전 국회의원의 어머니이자 생존한 마지막 여성광복군인 전월선 여사가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전 여사는 1923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39년 중국 구이저우성(貴州) 구이린(桂林)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해 활동하다 42년 광복군으로 편입돼 항일운동을 했다. 정부는 1990년 전 여사와 남편 김근수 지사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김원웅(전 국회의원), 원규(동원대 교수), 원유(천안 계광중 교사)씨 등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02-3410-6933).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국립대전묘지에 안장된다.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사저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앞으로 그가 머물던 고향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의 운영방안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마련한 사저가 이제 바깥주인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장례도 끝나지 않은 현재로서는 사저 활용에 대해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지금처럼 사저에 계속 머물지, 아니면 기념관 등으로 활용할지는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권 여사가 다른 곳으로 이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괸측된다.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약 500m의 지척이어서 권 여사가 사저를 드나들 때마다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 괴롭지 않겠느냐.”며 이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만약 권 여사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현재의 사저는 노 전 대통령의 기념관으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반면 봉하마을 주민들은 권 여사가 마을에 남기를 원하고 있다. 한 주민은 “비록 지아비를 잃은 아픔이 크지만 권 여사가 고향 마을을 지키며 함께 살기를 원한다.”며 “(권 여사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것보다 차라리 고향인 이곳에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또 권 여사가 환멸을 느껴 자녀가 있는 미국 등으로 거처를 옮겨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를 지냈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아무튼 사저의 활용 향방은 장례가 끝나고 난 뒤 한참 후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저는 지난 2007년 1월 공사에 들어가 2008년 2월 초 준공됐다. 총 비용은 땅 매입비 등 12억원이 넘게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건축면적이 993㎡ 규모로 착공됐으나 설계변경을 통해 연면적이 1277㎡로 30%가량 늘어났다.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황톳빛 외벽에 수십개의 유리창이 들어간 ‘ㄷ’자 구조이다. 3채의 독립 건물이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김해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노혜경 前 노사모 대표 “그가 원했던건 통합… 조문 막지말라”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노혜경 前 노사모 대표 “그가 원했던건 통합… 조문 막지말라”

    “한때 고인을 비방했던 이들이 왜 원망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원한 것은 국민통합과 화해입니다.” 노혜경(51) 전 노사모 대표의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울분에 찬 일부 지지자들이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던 사람들의 조문을 막아서자, 노 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며 이들의 자제를 호소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냈던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충격적인 비보에 23일 오전 한 걸음에 서울에서 봉하마을로 달려 왔다. 이후 25일까지 빈소를 떠나지 않고 궂은 일을 마다않고 있다. 임시분향소 옆 마을회관에서 조문객들을 위한 안내방송도 그의 몫이다. 그는 스스로를 노 전 대통령의 가장 까다로운 지지자라고 소개한다. 노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공신이면서도 당선 뒤 주요 정책마다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던 ‘골칫거리 지지자’였다.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 핵발전소 건설, 이라크 파병,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 반대하지 않은 정책이 없었다. 지지자들의 뜻에 부합하지 못했던 당신의 번뇌가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서거 당일 부인 권양숙 여사를 뒤로 한 채 생을 버린 부분에 대해 “계백장군이 가족을 베어 버리고 나간 심정과 같지 않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통령이 평생을 걸고 지켰던 자존심이 무너진 상황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겠느냐.”는 그는 “고인은 ‘통합의 지도자’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했다. 유서에서 밝힌 ‘원망하지 마라.’는 말도 이런 맥락일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지그시 쳐다봤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지방시대]아름다운 기부 마무리도 아름답도록…/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지방시대]아름다운 기부 마무리도 아름답도록…/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멀린다가 만든 기부재단에 또 다른 세계적 거부 워런 버핏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들의 우정이 멋있고, 그들의 기부문화가 부럽고, 그들의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도 훈훈하고 신선한 기부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꽤 오래 전 김밥할머니, 젓갈할머니의 기부 이야기는 옷깃을 여미게 했다. 겨울에 불도 때지 않는 냉방에서 잠을 자고, 집안의 행색도 다소 남루해 보이는 그들의 기부는 마치 고행 같아 보였다. 근래에 많은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무척 고무적으로 보인다. 지속 성장의 밑거름으로 시도되는 기업의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이 잘 정착되었으면 한다. 반면 무슨 사건이 터지면 나오는 재벌총수들의 기부 약속은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해 일부 재벌들의 기부 약속이 성숙해져 가는 우리의 기부문화에 일조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기부는 대학으로 많이 집중된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문과 인재양성, 봉사를 통한 사회 공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를 떠나서 대학을 논할 수는 없다. 이런 기대 속에서 많은 이들이 대학에 기부를 해왔다. 한데 최근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진 부산대 기부금 소송사건은 참으로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개인 기부금 사상 최대 액수인 305억원을 부산대에 기부하기로 한 송금조 회장과 부산대 간의 갈등은 ‘아름다운 기부’가 혹시 잘못 귀결되지나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다. 2003년 송금조 회장은 김인세 부산대 총장에게 305억원의 기부 약정을 했고, 송 회장은 100억원을 1차로 기부했다. 이 최초 기부 약정서와 관련된 문제에서부터 양측의 입장은 엇갈린다. 송 회장 측은 기부금이 ‘양산 캠퍼스 부지대금’으로 사용되도록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총장 측은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약정했다는 것이다. 양측은 2007년 3월 다시 기부약정서를 만들었으며, 이번에는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부지매입기금’이라고 목적이 수정되었다. 날짜도 2003년 10월8일자로 했다. 송 회장의 부인인 진애언 여사는 ‘그때까지 195억원을 기부했는데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아무 이야기도 못 듣다가 75억원이 교수들의 학술연구비 조성에 사용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부산대는 2007년 5월 부산대발전기금 이사회를 열고 “9월까지 연구비로사용한 75억원을 부지매입기금으로 충당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을 결의했다. 이 자리에는 진 여사도 참석했다. 부산대측이 기부금을 다른 곳에 사용했다며 부산대를 상대로 추가 기부금을 낼 수 없다고 소송을 제기한 송금조 회장 부부의 청구는 1심에서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기부자의 사용목적이나 사용방법 지정은 기부처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는 아니다.”며 기각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기부한 돈이 기부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머지 기부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판결해 기부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왜냐하면 사회통념상 기부금을 약속했더라도 기부자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변경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어서 여러 가지 파장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 땅의 바람직한 기부문화 정착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양측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이 초유의 아름다운 기부가 훼손되거나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기부로 종결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문구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 [사설] 北 2차 핵실험 도발로 얻을 것 없다

    북한이 어제 2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다. 2차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자,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추구하는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지대공 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됐으며 이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다. 국제사회와 남한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은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이단아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본다. 북한은 핵실험을 하기 불과 몇시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조전을 보내와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을 애도했다. 조문을 하면서 한편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이다. 북한은 핵실험으로 추모 열기에 덮인 남한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을 것으로 그릇 판단했겠지만 오히려 남한은 더욱 국력을 결집시켜 나갈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파는 리히터규모 4.5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의 3.6보다 강력한 것으로 관측됐다. 1차 핵실험보다 위력이 한층 세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또 한 차례의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면서 “이번 핵실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북한은 후계자에게 견고한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서두르는 인상이 짙다. 북한의 목표는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 강성대국을 달성하는 것이고, 이때까지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듯하다. 1차 핵실험에 실패한 북한에는 2차 핵실험 성공 여부보다는 잇따른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대내·대외용 선결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아무리 핵실험을 하더라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리 만무하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일본은 재무장 목소리를 내면서 동북아 핵확산의 빌미로 삼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함께 핵무기가 초래하는 위험을 줄여나가고 궁극적으로 그 위험을 제거하는 것은 미국의 절대적인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도발행위에 엄중한 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이미 북한 핵실험 대응책 실무협의에 들어갔으며, 한·일 외무장관은 베트남에서 회담을 갖고 조속한 안보리 소집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에는 안보리 의장 성명 정도로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중국도 북한 제재에 거부반응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북한으로부터 핵실험 사전통보를 받은 중국이 핵실험을 막지 못한 점은 실망스럽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핵실험 정보 공유를 제대로 했는지도 면밀히 따져 볼 일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상원에 출석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약속한 비핵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북한에 한푼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으로 강성대국을 향한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거둘지 모르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한은 핵실험이 강성대국을 건설하기도 전에 자멸하는 길이라는 점을 왜 모르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김정일 “심심한 애도” 조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전한 조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상사로 서거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전 북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조전을 노 전 대통령 유가족측에 전달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오전에 북한의 조전 내용을 유가족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달 경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발행된 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이 보낸 조전을 게재했다. 북한 매체들이 전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한 데 이어 김 위원장이 조전을 보낸 것은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김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하는 등 남북한 협력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기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때 보낸 조전에선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애국사업에 기여한 정주영 선생”이라고 표현했으나 이번 조전에선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권여사 월 690만원 연금 승계받을 듯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권여사 월 690만원 연금 승계받을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에 대한 예우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권 여사 등에 대한 예우가 가장 많이 바뀌는 부분은 연금.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월평균 985만원의 연금을 받아왔지만, 권 여사 등에게는 690만원가량만이 지급될 전망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유족 중 배우자에게 대통령 연금의 70%를 유족 연금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비서관들은 면직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비서관의 신분은 행정안전부 소속의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면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재 봉하마을에는 별정직 가급 1명, 나급 2명 등 3명의 비서관이 근무하고 있다. 또 운전업무 등을 맡는 6급 직원 1명도 근무 중이다. 하지만 권 여사 등에 대한 경호는 당분간 청와대 경호실에서 계속 맡는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에는 퇴임일 이후 2년간 청와대 경호처가 유가족 경호를 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법률적으로는 2010년 2월24일까지는 청와대 경호처가, 그 이후에는 경찰이 주요 인사 관리 차원에서 경호를 맡게 된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으면, 2015년 2월24까지 청와대 경호처가 경호를 담당할 예정이었다. 이 밖에 유가족에게 무상으로 지원되던 병원 진료(국·공립병원 무료, 사립병원은 사후 국가정산)와 공무상 국외여행 경비 지원 등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모두 끝난 뒤, 권 여사 등에 대한 예우를 구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권 여사 “모두 다 비워놓고 떠나라… 미워말자”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권 여사 “모두 다 비워놓고 떠나라… 미워말자”

    “고인은 편안하고 인자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슬퍼 더 서럽게 울었습니다.” 25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관식을 지켜 본 민주당 서갑원 의원의 소회다. 이날 입관식은 권양숙 여사와 친지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회관에서 1시간30여분 간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염은 이날 새벽 1시29분쯤 시작돼 2시5분쯤 마무리됐다. 사저에서 머물던 권 여사는 염이 끝나자 승용차를 타고 마을회관에 도착,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 봤다. 권 여사와 가족, 친지들은 ‘잠든 듯 편안한 얼굴’을 보고 통곡했다. 검은색 뉴그랜저 차량에서 경호관의 부축을 받아 내린 권 여사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15m가량 떨어진 마을회관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권 여사는 감색 상의에 회색바지, 흰색 운동화 차림이었다. 휠체어에 의지해 애써 침착한 표정을 보였지만 설움에 북받친 듯 가끔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입관식도 휠체어에 기댄 채 참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염을 지켜본 측근들은 “베옷 수의를 입은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이 잠든 듯 평온했다.”고 전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권 여사를 비롯해 친지분들이 차례로 고인을 뵈었다.”며 “전통제례에 따라 권 여사도 입관 이후 첫 제사를 지내며 상복으로 갈아 입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의 다른 가족과 친지들도 이같은 절차에 따라 입관을 마친 뒤 상복 차림으로 첫 제사를 올렸다. 입관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권 여사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등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했다. 또 박봉흠·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박남춘 전 인사수석, 이호철 전 민정수석, 이정호 전 시민사회수석, 윤태영 전 대변인, 민주당 서갑원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입관식에 참석한 조계종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입관식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권 여사는 좋은 길 가시라며 향을 하나 피웠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입관식에서 “모두 다 비워 놓고 떠나라. 용서하고 미워하지 말자.”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권 여사의) 시름이 생각 이상으로 깊다. 아무 말씀도 없고 묻지도 않는다. 억지로 권유해 하루 한끼, 겨우 몇 숟갈만 들고 있다.”며 “몸에 힘이 빠져 신발도 못 신으시더라.”고 전했다. 오전 3시15분쯤 권 여사가 휠체어를 타고 입관식장에서 나와 승용차로 이동하자 일부 조문객은 “여사님 죄송해요.”라고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이 “힘내세요.”라고 말하자 가볍게 목례를 하기도 했다. 전날 내려와 대기하던 노사모 회원들은 미리 준비한 촛불을 밝혔고, 일부 조문객은 촛불을 도로가에 일렬로 세워 놓기도 했다. 김해 박정훈 박성국기자 jhp@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이념떠나 모든 국민 조문”… 유족 국민장 수용

    ‘7일 가족장’을 강력히 고집했던 유족들이 정부의 국민장 제의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배경은 뭘까.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4일 “내부적으로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한편 가족장보다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참배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장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하자 정부측에서는 국민장 엄수를 노 전 대통령 유족측에 간곡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가족장을 강력히 희망했다. 유족과 장례위원들은 이날 밤 9시쯤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고, 적절한 시점에 이를 발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유인태 전 정무수석이 유족들에게 “가족장을 하면 안 된다. 국민들이 ‘삐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문희상 국회부의장도 “(가족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유 전 수석을 지원했다. 노씨 문중 어른들도 ‘가족장 결정’이라는 일부 보도를 보고 야단을 쳤다는 후문이다. 문중에서는 “대통령이 난 것도 경사다. 불행한 죽음이지만 국민장을 요구해야 할 판인데도 가족장으로 결정한 이유가 뭐냐. 노 전 대통령이 무슨 죄인이냐.”고 따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 문제와 함께 전국적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와 추모 물결이 일면서 유족들이 국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주변서 전한 검찰 조사뒤 ‘盧의 23일’

    지난달 30일 검찰조사를 받고 봉하마을로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2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주변에 따르면 이때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불면증과 칩거 생활이라는 말로만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을 앞둔 시점부터 모종의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 관계자는 24일 “서거 5일 전쯤 노 전 대통령의 지인을 만났더니 ‘대통령이 서울에 갔다 온 뒤 보니까 일낼 것 같더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초동에 다녀온 뒤 방문객도 받지 않았고 방문이 이뤄져도 예전 같으면 면담이 한 시간쯤 걸렸는데 아예 (대통령이) 말이 없어서 방문객들이 인사만 하고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인호 전 청와대 부대변인은 “최근 사저를 방문했을 때 볼살이 빠졌더라.”면서 “서거하기 3~4일 전부터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점을 전후해 마음을 굳히신 것 같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권 여사의 초등학교 동창인 경남 김해 진영농업협동조합장 이재우(63)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권 여사와 함께 등산을 가기로 해놓고 혼자 나갔다는 얘기를 권 여사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었기에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답했지만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갔다고 한다. 이씨는 그러면서 “권 여사가 ‘나를 떼어놓으려고 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당시 사저에서 경호차량이 급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저에 전화를 했더니 권 여사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20일 오후 6시30분쯤 대통령 내외를 사저에서 만난 뒤 나오면서 ‘독한 마음 먹지 마시라. 언제 새벽이나 밤에 저하고 등산을 하십시다.’라고 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오후에도 사저에서 화포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강사 앞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고향 마을과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영강사의 청호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이 화포천에 청소하러 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두번씩 우리 절의 앞길을 지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면서 “19일에는 평소와 달리 손만 흔들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해 특별취재팀 zangzak@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가족압박 등 10년전 방식 되풀이”

    “과거 거물의 입을 열 때 치사하지만 아들, 딸을 소환해 압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수사를 하는 중수부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올해 초 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전망을 하며 내놓은 말이다. 10여년 전에는 특수 수사의 최고봉이라는 대검 중수부도 가족을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과학수사가 발달한 현재의 대검 중수부는 ‘치사한’ 수사는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검찰은 수개월간의 수사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 주변으로 640만달러의 돈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중수부는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뇌물’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수사가 검찰과 노 전 대통령 간 진실게임으로 변하자 검찰은 저인망식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지난달 30일까지 검찰은 아들 건호씨를 다섯 차례나 불러 조사하고 조카사위 연철호씨도 체포해 조사했다. 또 권양숙 여사를 비공개 소환조사했으며 노 전 대통령 소환 이후에는 딸 정연씨와 사위까지 검찰로 불러 조사했다. 권 여사의 재소환도 계획하고 있었다. 가족들에 대한 꾸준한 압박이 이어진 셈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가족을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인 수사기법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장 비인간적이고 피의자를 벼랑 끝으로까지 몰고 갈 위험성이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성’에 대한 결벽증까지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박 전 회장으로부터 억대의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거나 이 시계를 권 여사가 집 부근에 버렸다는 내용 등이었다. 검찰은 ‘나쁜 빨대’를 색출하겠다면서 강한 반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연씨가 미국 뉴저지주에 160만달러짜리 아파트를 사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며 노 전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계약서는 정연씨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찢어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진술 외에 64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돈이었다는 점을 밝히진 못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압박하기만 한 셈이다. 법원 형사재판부의 한 부장판사도 “법원은 진술에 의존한 뇌물 사건을 엄격히 심리하고 있으며 검찰이 진술의 구체성, 공여자의 진실성 등을 최대한 입증해야 한다.”면서 “이번 수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하거나 이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검찰이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쪽에 정말 몰랐다는 증거를 대라고 입증 책임을 지우는 양상이 엿보여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이석 유지혜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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