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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긴장한 표정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긴장한 표정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 들어서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서울포토] 손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서울포토] 손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1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참배 후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문재인 대통령, 현충원 참배

    [서울포토] 문재인 대통령, 현충원 참배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 여사와 1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분향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문재인 당선 축하 ‘치켜든 엄지’

    [서울포토] 문재인 당선 축하 ‘치켜든 엄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며 후보 때 경호를 했던 경찰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어린이들 축하받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서울포토] 어린이들 축하받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며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홍은동 빌라 가격은? “실평수 25평…2억8500만원”

    문재인 대통령 홍은동 빌라 가격은? “실평수 25평…2억8500만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10시10분 국립현충원 참배로 첫 일정을 시작하면서 자택인 서울 홍은동 빌라에 관심이 쏠렸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을 떠나 서대문구 홍은동 소재 K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이 빌라는 부인 김정숙 여사 명의로 구입했던 것으로 전용면적은 84㎡로 실평수는 25평이다. 국토부 부동산 실거래 공개 시스템에 등록된 홍은동 자택 가격은 2억8500만원이다. 이웃주민 조모(56·여)씨는 문 후보 자택 바로 옆 라인에 살았다며 “(문 후보는) 이웃주민들을 항상 편하고 웃는 모습으로 대했다”면서 “특히 아기들을 매우 좋아하셨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웃주민은 “동네산책도 자주하셨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웃주민들이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는 분이었다”고 전했다. 김득순(62)씨는 “이웃이 대통령이 된다니 말도 안 되게 좋다”면서 “제발 서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 평안한 나라를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강추] 문재인 대통령 靑관저 시설 문제로 당분간 홍은동 거주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30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임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가정보원장과 대통령 비서실장 및 경호실장 인선을 발표한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모친 “잘난 사람은 많지만…재인이, 참 착하다”

    문재인 대통령 모친 “잘난 사람은 많지만…재인이, 참 착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아들 문 대통령에 대해 “잘난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재인이, 참 착하다.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부산 영도구 남항동에 사는 강 여사는 9일 대선 개표과정을 문재인 대통령의 막내 동생인 문재실씨와 함께 지켜봤다. 강 여사는 건강이 좋지 않아 10일 아들의 대통령 당선 후 소감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강 여사는 지난달 23일 자택에서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아들이었나’라는 질문에 “저래 가지고 세상 살겠다 싶었다. 어릴 때부터 장애인에게 관심 두고 도와주고 그랬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강 여사는 “고시에 붙었어도 덜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사람들에게 더 호의를 베풀고. 데모한 젊은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돈 안 받고 변호해 주고 그랬다”면서 “하여튼 내가 ‘저렇게 착한 사람이 어디 있노’ 했다”고 덧붙였다. 강 여사는 ‘문 대통령(당시 후보)이 초심이 변하면 그땐 어떻게 조언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며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다 캐도 마음 변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아들은 지갑이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강 여사는 문 대통령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매 한 번 안 때리고 내버려 뒀다”며 “대체로 순해서, 저절로 바르게 자라서 고맙다”고 회상했다. 문 대통령은 5월 9일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1342만 3800표, 득표율 41.08%를 기록하며 최종 당선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루탄 맞은 文 챙기다 인연…“가치관 맞는 짝”

    최루탄 맞은 文 챙기다 인연…“가치관 맞는 짝”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정숙(63) 여사는 이번 대선 기간 문 당선인의 최대 조력자를 자임했다.김 여사는 ‘문재인의 호남 특보(특별보좌관)’라고 불릴 정도로 지난 8개월간 문 당선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호남의 마음을 돌리는 데 애썼다. 김 여사는 문 당선인이 직접 찾지 못하는 호남의 곳곳을 누볐고,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문 당선인의 진지한 이미지를 보완했다. 늘 진지한 성격의 문 당선인이 답답하다는 의미의 ‘고구마’라는 별명을 얻었다면, 활달하고 밝은 성품의 김 여사는 시원한 ‘동치미’ 같은 역할로 문 당선인 곁을 지켰다.문 당선인과 김 여사는 경희대 선후배 관계다. 서울 출신인 김 여사는 1974년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해 축제에서 두 학번 위인 72학번 법대생 문 당선인을 처음 만났다. 본격적인 인연은 이듬해 유신반대시위 현장에서 시작됐다.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들고 행진했던 문 당선인의 앞에 최루탄이 발사돼 기절하자 문 당선인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줬던 사람이 바로 김 여사였다. 두 사람은 그 일을 계기로 가까워졌고 이후 구치소, 군대, 고시공부, 또다시 구치소, 사법연수원 등으로 이어진 7년 동안의 연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김 여사가 문 당선인을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이유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 당선인이 관습에 따른 여성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 같았다는 점도 문 당선인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김 여사의 친정과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친가와 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친정 부모는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집을 운영했고 김 여사는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두 살 위인 친언니는 미국 뉴욕 패션기술대(FIT) 출신으로 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김 여사는 숙명여중·고(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과 동창)를 졸업한 뒤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했고 졸업 뒤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다. 문 당선인이 학생운동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음악가의 길을 포기했다. 김 여사는 2011년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주년 기념음악회 무대에서 ‘청산에 살리라’를 부르는 등 녹슬지 않은 성악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시민들 “서민대통령 돼 달라”… 文, 광화문서 지지자 수천명과 자축

    5·9 조기 대선 투표가 끝난 오후 8시를 기해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41.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상황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상황실을 가득 메운 당직자 500여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포옹하며 함성을 질렀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시각은 한 표도 개표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당직자들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격려를 나눴다.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출구조사 방송을 보다 오후 8시 15분쯤 출발한 문 당선인이 40분쯤 여의도 상황실에 도착하자 들뜬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남색 양복과 파란 넥타이 차림에 세월호 배지를 착용한 문 당선인은 자택을 출발하기 전 문 앞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기호 1번을 나타내는 ‘엄지척’ 손 모양을 지었다. 시민들이 “서민 대통령이 돼 달라”고 환호하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취재진의 소감 질문엔 “나중에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붉게 상기된 채 시종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추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 당 상임고문단 등과 인사를 나눈 문 당선인은 간단한 연설을 했다. 당직자들에 대한 격려로 시작됐지만, “개혁과 통합, 두 가지 과제를 이루겠다”는 선언으로 끝난 연설은 수락 연설을 방불케 했다. 출구조사 결과 문 당선인과 오차범위 내 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간 득표율 격차가 18.1% 포인트로 컸음을 감안한 행보였다. 1·2위 후보(이명박·정동영) 간 득표율 격차가 22.53% 포인트로 가장 컸던 17대 대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격차로 당선이 예측돼서다. 상황실에 20여분쯤 머물다 귀가했던 문 당선인은 오후 11시 30분쯤 다시 자택을 나와 10여분 만에 지지자들이 운집한 광화문에 도착해 “내일부터 국민 모두의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추 대표, 김부겸 의원 등이 광화문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 문 당선인과 포옹하며 자축했다. 박 시장은 “뜨거운 대한민국의 새벽이 열렸다”고, 이 시장은 “문재인의 승리이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하는 국민 모두의 승리”라며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의미를 부여했다. 안 지사는 문 당선인에게 깜짝 볼 뽀뽀를 한 뒤 “(경선 경쟁자인) 저희를 불러 함께 축하 말씀을 드릴 기회를 허락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며 운을 떼 호응을 받았다. 안 지사는 이어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과가 나온 뒤 합심했다”면서 “이제 대선이 끝났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대구에서) 이번에 조금 더 나왔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움을 표시한 뒤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전국에서 고루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문 당선인의 희망이 달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23일의 선거운동 기간 드린 약속을 모두 지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3월 11일까지 매 주말 최순실 사태에 분노한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에는 이날 방송사 생방송 무대가 세워졌고 문 당선인 지지자 수천명이 운집했다. 초저녁부터 함께 출구조사를 시청한 문 당선인 지지자들은 결과가 발표되자 일제히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일부는 “과반 득표를 못 해 아쉽다”고 반응했다. 근처 서울시청에 모였던 홍 후보 지지자들이 출구조사 결과를 몇 번씩 확인하며 침묵한 풍경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문 당선인은 이날 오전 8시 30분 서울 홍은중학교에서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투표한 뒤 10시 30분쯤 주황색 등산복 차림으로 부부 동반 등산을 즐겼다. 하산길에 기자들이 ‘홀가분하냐’고 묻자 문 당선인은 “하나도 홀가분 안 합니다”라고 답했다. 개표 방송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당 상황실은 시종 들썩들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보도된 직후 외신들은 속보로 ‘문 당선인의 압도적 승리 예상’ 속보를 타전했다. 각국 통신사뿐 아니라 영국 BBC 방송도 긴급 뉴스로 ‘진보가 한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모로부터 1953년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출생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 죽을 받아먹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진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다. 그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재인을 데리고 암표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꾸려 장사를 하고 연탄배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문재인은 늘 죄송하기만하다. 강 여사는 9일 부산 영도구 자택에서 개표결과를 조용히 지켰봤다. 문재인은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영도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면서 당시 명문이던 경남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범생’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과 음주를 하다가 학교 측에 들통나는 바람에 몇 차례 정학을 당한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62)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씨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 2년 후배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씨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문재인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군인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흐뭇해했다. 실제로 그는 군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주특기가 폭파라는 사실은 점잖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반전이다.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당시 사령관 전두환에게서 받은 것이 밝혀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차 구속된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982년 처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같이 시작했다. 특히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문 후보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재인은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 일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은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그후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그는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 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끝에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후보는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대세론’을 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YS 부인’ 손명순 여사, 상도동서 휠체어 타고 투표

    ‘YS 부인’ 손명순 여사, 상도동서 휠체어 타고 투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가 9일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를 마쳤다. 손 여사는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동작구 상도동 서울 강남초등학교에 마련된 상도1동 제1투표소에 모습을 드러냈다.손 여사는 거동이 불편한 듯 투표소 건물 입구부터 기표소가 설치된 교실까지 약 20m를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기표와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도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몇몇 주민이 손 여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지만 손 여사는 눈만 마주치고 따로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손 여사를 수행한 김상학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이후 말수가 크게 줄으셨다”며 “가까운 사람과는 대화하시는데 최근에는 ‘나라가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선거니만큼 투표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함께 오지 않았다. 김씨는 현재 상도동에 거주하지 않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원진 “후회 없이 최선 다해…선거 혁명이었다”

    조원진 “후회 없이 최선 다해…선거 혁명이었다”

    새누리당 조원진 대선후보가 9일 “선거운동 기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고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말했다.조 후보는 이날 오후 1시쯤 부인 성희숙 여사와 함께 대구 달서구 성당동 성당중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뒤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조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 150여 곳을 돌며 유세했는데 이는 선거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라며 “4000여명의 순수 자원봉사자가 이룩한 선거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것을 바쳐 함께 한 당원과 국민께 깊이 감사한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중한 한 표 오전 6시에 행사한 전두환 부부 “좋은 사람이 되길”

    소중한 한 표 오전 6시에 행사한 전두환 부부 “좋은 사람이 되길”

    19대 대통령선거가 시작된 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순자 여사와 함께 오전 6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10분 정도 줄을 선 뒤 투표를 했다.전 전 대통령은 “좋은 사람, 훌륭한 분이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면 좋겠다”고 투표 소감을 말했다. 미디어몽구 김정환씨는 SNS에 “6시 50분쯤 연희동 주민센터에 도착했는데 이미 6시 05분경 전두환은 투표하고 돌아갔단다. 참관인들 말로는 정말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는 “여러분이 잠들어 있을 때 살인마는 본인에게 주어진 고유하고 신성한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했다. 소중한 한 표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말고 투표소로 가주기를”이라고 투표를 독려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명박 전 대통령 “5월 조기 대선, 마음 아프다”

    이명박 전 대통령 “5월 조기 대선, 마음 아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9일 오전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제19대 대통령선거에 한 표를 행사했다.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 40분쯤 서울 강남우 아파트 단지 내에 마련된 논현1동 제3투표소를 찾았다. 이 전 대통령은 투표 후 기자들과 만나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5월에 대선이 치러지는 것과 관련해서는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많은 국민들이 투표하러 나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8년간의 수감생활 끝에 만기 출소한 김경준(51) 전 BBK투자자문 대표와 관련한 질문에는 “그런 질문에 답변할 자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데 힘 모아주시길”

    문재인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데 힘 모아주시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대선 투표 후 소회를 밝혔다.문 후보는 9일 오전 8시 40분쯤 자택 인근인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제3투표소에서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투표했다. 투표를 마친 뒤 문 후보는 “선거 운동에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며 “당도 절박한 마음으로 뛰었지만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 위해서 정권 교체 하겠다는 국민의 염원이 간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끝까지 함께해주신 많은 국민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선거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번 선거는 1700만 촛불이 만들어낸 촛불 대선이다. ‘이게 나라냐’ 이런 탄식에서 ‘이제는 나라다운 나라 만들어야겠다’는 국민 결의가 만들어낸 선거다”라며 “투표를 해야만 현실이 될 수 있다. 투표에 참여해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광의 순간들…오늘 밤 한 사람만 웃는다

    영광의 순간들…오늘 밤 한 사람만 웃는다

    9일 오전 6시 정각 전국 1만 3964개 투표소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제히 시작됐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 사상 첫 대통령 탄핵에 따른 궐위 선거로 오후 8시까지 진행되며, 10일 새벽 2~3시쯤 당선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13명의 출마 후보 가운데 단 한명 만 웃게 될 대선, 제14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지난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영광의 날을 돌아봤다.● 개표 방송에 뜬눈으로 밤새고 새벽 조깅, 김영삼 1992년 12월 18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부정권의 실질적 종식과 함께 제12대 대선이 진행됐다. 민주화의 두 거목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 속에 19일 새벽 김영삼 후보 당선이 확정됐다. 이후 집계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종 득표율은 김영삼 후보 41.96%, 김대중 후보 33.82%였다.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TV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김영삼 후보는 당선이 확정되자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서울 상도동 자택 일대는 잔치판이 벌여졌다. 김 당선인은 평소보다 10분 이른 새벽 5시 10분쯤 가벼운 조깅복 차림으로 자택을 나와 상도동 조깅팀인 민주조기회 회원 30여명과 아침을 시작했고, 민주조기회 회원들은 ‘위대한 우리의 지도자 김영삼 대통령 만세’ ‘우리는 해냈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당선을 축하했다. ● 동생의 죽음 후 찾아온 대통령 당선 소식, 김대중 15대 대선이 진행 중이던 1997년 12월 18일 저녁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전날 간암으로 숨진 동생 대의씨의 빈소다. 대의씨는 대선에 출마한 형을 위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사망 소식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고, 김 후보는 대선 당일 오전에서야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됐다. 투표를 마치고 빈소에 도착한 김 후보는 동생의 영정 앞에서 오열, 조문객들을 숙연하게 했다.김 후보는 그렇게 동생을 떠나보낸 몇 시간 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이날 밤 일산 자택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새벽까지 TV 개표방송을 지켜봤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 나가자 흥분한 측근들에게 “오차율의 한계가 있다”며 성급한 반응을 보이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 태풍이 된 노란 바람, 노무현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선의 시작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세론이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당시 광주 경선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을 12월 대선 ‘태풍’으로 키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다. 노 후보는 48.9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58%에 그친 이 후보를 간신히 따돌렸다.대선 당일 경남 김해 선영 참배를 마치고 오후 6시쯤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노 후보는 여의도 당사 인근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개표방송을 지켜봤다. 노 후보가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당사를 찾은 시간은 이미 각 방송사들이 노 후보의 당선을 확정한 밤 10시 30분쯤이었다. 당사 입구에는 노사모 회원 등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운집, 북과 꽹과리 등을 치며 “대통령 노무현”을 외쳤다. ● 대권 도화선 청계천서 당선 인사, 이명박 2002년 12월 19일 제17대 대선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득표율 48.7%로, 26.14%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됐다. 대선 당일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이 후보는 오후 9시 40분쯤 여의도 당사에 도착했다. 당선 확정까지는 개표율이 낮았으나 이미 당선을 확신한 듯 얼굴에는 미소와 여유가 넘쳤다.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이 당선인이 찾은 곳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 청계광장이었다. 이 당선인은 지지인파가 모인 청계광장에서 “오늘 이 시간부터 힘드신 분들, 절망하시는 분들, 외국으로 이민 갈지 망설이는 분들 모두 희망을 갖고 그 자리에서 함께 하자”라며 “저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5년 동안 보여드리겠다”고 말해 큰 환호를 받았다. ● 첫 여성 대통령에서 첫 파면 대통령으로 몰락, 박근혜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선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1.55%라는 과반의 득표율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지만, 그는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임기 5년을 마치지 못하고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에 따라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되면서 이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아닌 ‘수인번호 503’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박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 확정 직후 찾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했던 말은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루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였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홍준표, 대한문서 마지막 유세…“文은 친북좌파, 安은 초등학생 얼라”

    홍준표, 대한문서 마지막 유세…“文은 친북좌파, 安은 초등학생 얼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대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대한문서 마지막 유세를 했다. 이날 오전 부산을 출발한 홍 후보는 대구와 대전, 충남 천안을 거쳐 오후 8시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붉은색 유세 단상에 올라 목청을 높였다. 마이크를 잡은 홍 후보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 달 전만 해도 참 암담했다”고 입을 뗐다. “세상이 우리 자유한국당을 외면하고, 후보를 외면하고, 저를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더니 “이제 어제부로”라며 목청을 끌어올린 홍 후보는 “우리가 이겼다”고 말했고, 이에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주최 측은 유세현장에 30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추산했다. 홍 후보가 “선거가 아니고 체제선택 전쟁이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친북 좌파한테 줄 것이냐, 자유주의 대한민국 세력에게 줄 것이냐”라며 “그 전쟁에서 내일 우리가 이긴다”고 하자 지지자들은 “홍준표 대통령”을 연호했다. 그는 “투표장만 나가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다. 투표장만 나가면 된다”며 “이런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섯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로 내세운 건 “안보 대통령”이었다. 그는 “북한의 저 어린애, 내가 꽉 쥐고 짓눌러서 이제는 한국을 협박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대통은 배짱, 뱃심, 강단, 결기를 갖추고 태산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해선 “친북좌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해선 “초등학생 얼라”라는 격한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홍 후보는 “내 아버지는 경비원이었다. 내 어머니는 까막눈이었다. 그래도 홍준표는 세상을 비관하지 않았고 꾸준히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며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집권시 “야당이든 여당이든 전부 가리지 않고 독려하고, 분기별로 한 번씩 기자실에 나와서 기자들하고 프리 토킹(free talking)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후보는 ‘법치’와 ‘낭만’도 강조하며 “우선 광화문에 ‘떼법’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유와 낭만을 가지고, 청와대에서도 음악회를 하고, 노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권위를 싹 없애버리고, 대중 속에 들어가 같이 숨 쉬는 낭만적인 대통령이 돼 보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7공화국을, 새로운 공화국을 한번 열어보겠다”며 “개헌을 통해 이 나라 구조를 다 바꾸고 국회를 바꾸고 지방제도 국가제도를 싹 바꾸겠다”고 밝혔다. 연설을 마칠 때쯤 홍 후보는 “5월 9일은 친북 좌파 심판하는 날”이라고 외쳤다. 이에 대한문에 운집한 지지자들은 대형 태극기를 펼치며 환호했다. 홍 후보는 ‘아! 대한민국’을 열창했으며, 이어 부인 이순삼 여사와 장남 정석 씨가 연단에 올라 함께 큰절을 올렸다. 그는 대한문 유세 이후 인파가 많은 강남역 일대와 홍대입구 주변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22일에 걸친 선거운동을 마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깜짝 등장’ 문재인 딸 다혜씨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만들어달라”

    ‘깜짝 등장’ 문재인 딸 다혜씨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만들어달라”

    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마지막 광화문 유세에서 문 후보의 딸 문다혜씨가 깜짝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다혜씨는 이날 직접 단상에 등장해 시민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다혜씨는 이날 문 후보의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 영상편지를 통해 “무거운 책임을 다하시는 모습, 그런 아빠를 저는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날 다혜씨의 영상편지는 ‘깜짝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영상편지 속에서 다혜씨는 문 후보의 정계 입문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정치를 하신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참여정부 시절 치아 10개 빠질 정도로 고생하셨다”며 “국민들께 싫은 소리를 들어서 너무 속상했다”고 밝혔다. 이어 “단지 아버지로만 생각한 제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했다”며 “오히려 아버지께서 대통령 후보가 돼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버지 말씀처럼 뚜벅뚜벅 걸어오신 가장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혜씨는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됐을 때 아버지께 푸념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의 타이틀로 존재할까 두렵다고 했다”며 “그 때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직업은 엄마라고,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을 하는 너를 보니 자랑스럽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혜씨는 아버지 문 후보에게 “‘전업맘’도 ‘워킹맘’도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 아이 키우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다혜씨는 이날 어머니 김정숙 여사와 아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 직접 등장해, 어버이날을 맞아 문 후보에 카네이션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척’을 들어보이며 아버지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로크 전 주중 미국대사 사퇴 이유가 중국의 미인계 때문

    로크 전 주중 미국대사 사퇴 이유가 중국의 미인계 때문

    중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주중 미국 대사를 맡았다가 2013년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혔던 게리 로크(63) 전 대사가 중국의 미인계에 걸려 사토와 이혼까지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8일 미국 시애틀 KIRO7 방송에 따르면 “로크 전 대사의 부인 모나 리(李蒙) 여사가 이혼했음을 알렸다”면서 그 배경으로 중국 ‘미인계’를 거론했다. KIRO7방송사에서 기자로 근무한 적 있는 리 여사는 “남편과 이혼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책임 있는 가장이고 좋은 친구”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2014년 8월부터 별거에 들어가 이혼 수속을 밟았고 시애틀 킹카운티 법원으로부터 2015년 4월 이혼 허가를 받았다. 로크 전 대사는 뤄자후이(駱家輝)라는 중국명을 가진 화교 3세로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민주당 하원 의원에 당선된 그는 상무부 장관, 워싱턴주 주지사 등을 거치면서 가는 곳마다 미국 내 중국계 정치인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며 대선 주자로까지 거론되며 각광을 받았던 인물이다. 리 여사도 화교 명문가 출신이다. 할머니가 쑨원(孫文·1866∼1925)의 외아들 쑨커의 둘째 부인으로 윈난지역 먀오(苗)족 공주였다. 로크 전 대사는 부임 2년 반 만인 2013년 11월 “시애틀의 가족과 함께 지내겠다”며 석연찮은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정가에선 대선 출마 준비를 한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홍콩 매체는 로크 전 대사가 베이징의 여성 기업인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때 리 여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혼외정사 소문을 부인하면서 온 가족이 시애틀과 베이징을 바쁘게 오가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남편의 사직이 가족의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미인계에 동원된 여성으로 루크 전 대사 부부와 인터뷰를 했던 중국 유명 앵커 양란(楊瀾)의 이름이 거론됐다. 양란은 중국중앙(CC)TV 간판 앵커 출신으로 미디어산업에 뛰어들어 남편 우정(吳征)과 함께 양광 미디어투자그룹을 이끌고 있는 기업인이다. 최근 중국 권력층 내부를 폭로한 중국 재벌 궈원구이는 우정의 신분이 중국 정보기관 소속의 공작원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 부임 당시 공항에서 수행원 없이 가방을 등에 직접 매고 가족과 함께 할인 쿠폰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사 마시던 소탈한 모습으로 중국 대중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던 로크 전 대사는 중국 당국과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고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콩과 대만 매체들은 로크 전 대사의 이혼 소식에 미 태평양 사령부에 배속됐던 벤저민 비숍 예비역 중령이 2012년 한미합동군사훈련 및 작전계획 수립에 관한 기밀을 자신의 20대 중국 여자친구에게 넘긴 사례 등을 열거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 트로뉴는 누구? “24세 연상의 영혼의 동반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 트로뉴는 누구? “24세 연상의 영혼의 동반자”

    프랑스의 새 대통령에 선출된 에마뉘엘 마크롱(39)의 25세 연상 부인인 브리짓 트로뉴(64)가 화제다. 마크롱과 트로뉴는 사제 지간으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20여 년 전 학생과 교사로 프랑스 아미앵의 한 사립고교에서 만났다. 15세 소년 마크롱은 40세 프랑스어 교사였던 트로뉴와 연극 동아리에서 함께 희곡을 쓰며 사랑에 빠졌다. 트로뉴는 당시 3명의 자녀를 둔 기혼자였다. 두 사람의 관계에 놀란 마크롱의 부모는 아들을 파리로 보냈지만, 마크롱은 17살때 반드시 트로뉴와 결혼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이후 트로뉴는 결국 이혼하고 2007년 마크롱과 결혼한다. 결혼 당시 마크론은 29세, 부인은 54세였다. 두 사람은 자녀가 없지만, 마크롱은 트로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둔 세 자녀와 손주 7명이 모두 자신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트로뉴의 자녀들도 마크롱을 ‘대디’라고 부른다. 트로뉴의 맏딸 로렌스는 마크롱과 같은 1977년생이다. 아버지와 딸이 동갑인 셈이다. 로렌스에겐 급우가 의붓 아버지가 된 것이다. 마크롱의 전기 작가인 안느 풀다는 마크롱이 사귄 또래 여자친구는 단 한 명 뿐이었고, 그 외 마크롱이 만난 여성은 트로뉴가 유일했다면서 오늘날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평가했다. 안느 폴다는 “마크롱의 부모님은 마크롱이 트로뉴의 딸과 사귀는 줄 알았다가 선생님인 트로뉴와 사귀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BBC가 전했다. 마크롱은 트로뉴에 대해 “지적인 영혼의 동반자이자 친구”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트로뉴의 활약은 돋보였다. 그는 남편과 함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일종의 협력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마크롱은 지난 1차 투표 직후에 이어 이번 결선 승리 후에도 트로뉴의 손을 붙잡고 함께 무대에 올라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배우자는 사생활을 지키며 정치 무대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로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남편에게 정치적 조언자 역할도 하고 있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유세에 동행해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남편의 연설문 작성도 도왔다. 남편을 돕기 위해 2015년 교단을 떠난 트로뉴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남편이 당선되면 영부인으로서 청년 문제에 집중하고 교육 문제를 위해 싸울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영부인에게 공식적인 지위가 부여되지 않지만, 앞으로 트로뉴가 영부인의 역할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크롱의 보좌진은 트로뉴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처럼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마크롱 부부에 관한 자서전을 쓴 칸디스 네들렉은 “트로뉴의 관심사는 교육 개혁 분야로, 정치 일선을 피해서 자폐 아동과 빈곤 계층 아동에 관한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53년생인 트로뉴는 초콜릿 제조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다. 그의 제자들은 트로뉴가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며, 유쾌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트로뉴는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데, 프랑스 잡지들은 그녀의 스타일을 ‘현대적’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최근에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루이뷔통 등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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