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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꼼꼼한 정숙씨’ 여사의 내조

    [서울포토] ‘꼼꼼한 정숙씨’ 여사의 내조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한국을 국빈방문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을 기다리는 동안 문 대통령의 옷맵씨를 바로 잡아주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현대사 품은 장충체육관… 엘리트 예술의 산실 국립극장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현대사 품은 장충체육관… 엘리트 예술의 산실 국립극장

    서울미래투어단이 지난 18일 찾아간 서울미래유산은 장충체육관, 장충테니스장, 장충리틀야구장, 석호정, 국립극장 등 문화체육시설 5곳이었다. 단풍이 절정인 한양도성 장충구간과 자유센터, 옛 타워호텔, 신라호텔 영빈관, 장충단공원 내 수표교와 장충단비 탐사는 덤이었다.장충체육관과 국립극장, 석호정에 대해 알아봤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에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체육관으로 올림픽 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국가대표 경기장이자 공연장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이었던 김기수의 타이틀 매치가 열렸고, ‘박치기왕’ 김일이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 경기를 벌였다. 농구대잔치가 시작됐고, 대학가요제와 마당놀이가 전성기를 맞았던 곳이다. 정치행사장으로도 이용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로 권력을 연장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0년 일명 ‘체육관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이곳에서 열린 주요 이벤트만 나열해도 대한민국 현대사가 그려질 정도다. 하지만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이후 영광을 잃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2015년 재오픈했다. 국립극장은 1973년 10월 17일 개관했다. 대극장인 해오름극장과 소극장인 달오름극장, 공연성격에 따라 무대가 바뀌는 별오름극장, 원형 야외무대인 하늘극장 등으로 이뤄졌다. 설계자 이희태는 전통을 다른 질감으로 표현했다. 단순한 원통형이 아닌 날개를 붙여나간 기둥의 모양과 아래가 잘록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넓어지는 기둥이 특색이다. 외장은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시멘트를 바른 뒤에 다시 쪼아서 거친 느낌을 살린 기법을 사용했다. 경회루의 필로티와 기둥을 재현했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대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암살당한 현장이기도 하다. 석호정은 조선 인조 때인 1630년 처음 만들어진 활터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황학정은 관료들이 활을 쏘던 곳이었고 석호정은 민간에 의해 운영됐다. 1940년 일제의 조선 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폐쇄됐다가 해방과 더불어 재건했으며 현재는 서울시 직영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서울포토] 故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 헌화하는 문재인 대통령

    [서울포토] 故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 헌화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2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문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통합과 화합 되새겨”

    문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통합과 화합 되새겨”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서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고 말했다.최근 자유한국당이 보수우파 진영의 정체성을 계승하겠다면서 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나란히 걸었다. 독재정부를 수립했던 이·박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세운 김 전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여러 업적들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 아래에 함께 모였다”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온 정치지도자들이 많이 계시지만 김영삼이라는 이름은 그 가운데서도 높이 솟아 빛나고 있다. 김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고난을 헤쳐오신 손명순 여사와 유족들께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독재 권력과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면서 “거제도의 젊은 초선의원은 ‘바른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을 가슴에 새겼고, 40여년의 민주화 여정을 거쳐 도달한 곳은 군사독재의 끝, 문민정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민정부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가치와 의미는 결코 폄하되거나 축소될 수 없다”면서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4.19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항쟁·6월항쟁이 역사에서 제 자리를 찾았던 때가 바로 문민정부”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 13일 담화문에서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개혁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문민정부를 넘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신 것”이라면서 “법과 정의에 기초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군사독재시대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이뤄졌고, 군의 사조직을 척결하고, 광주학살의 책임자를 법정에 세웠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경제정의의 출발이었다”고 덧붙였다.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김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는 발언에 대해 연합뉴스는 “자신이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소속으로 ’김대중 정부‘의 유지를 이어 정권을 재창출한 만큼 부산·경남 지역의 민주화 세력을 상징하는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받아 안아 민주주의의 장애물인 지역 구도를 타파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최근 자유한국당은 민주화를 이룬 업적을 이어받겠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나서서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을 강조한 것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뜻과 함께 과거 하나였던 민주 세력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고 연합뉴스는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경남 거제 출신에 경남중·고 후배이기도 한 문 대통령은 실제로 1990년 ‘3당 합당’을 하기 전까지 부산을 기반으로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맞은 거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맞은 거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22일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거제시는 이날 오전 10시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난 장목면 대계마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 앞 광장에서 서거 2주기 추도식을 개최했다. 거제시민과 김 전 대통령 친·인척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김 전 대통령이 보여준 흔들림 없는 민주정신, 개혁정신이 사회 곳곳에 튼튼히 뿌리를 내렸다”며 “보고 싶고, 그리우면서 존경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 전 대통령 자택경호와 대선 유세 경호를 맡았고 청와대 가족경호팀장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은 “국가원수 이전에 자상하신 아버지, 고향 대선배님으로 대해주셨던 따뜻한 순간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김 전 대통령의 셋째 여동생인 김호림(82)씨는 오빠의 육성과 회고 영상이 나올 때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김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현철씨는 유족을 대표해 영상 인사를 했다. 그는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고향 거제도를 잊지 않고 자랑스러워 하셨다”며 “아버님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시는 거제시민들께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추도사 후에는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손명순 여사에게 자주 들려줬거나 들었던 노래 ‘메기의 추억’, ‘청산에 살어리랏다’가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은 김 전 대통령 사진에 헌화한 데 이어 기록전시관을 둘러보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발생한 IMF 외환위기로 많은 업적이 가려졌지만, 이 땅에 민주화의 새벽을 연 정치인이자 국가 발전의 초석을 다진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 정치 기반인 부산·경남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한편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서거 2주기 추모행사로 ‘소망나무 키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사 측은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방문객들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과 개인적인 소망을 적은 뒤 전시관 1층 소망나무에 달도록 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포토]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

    [서울포토]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2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11살 소년 키가 180㎝…트럼프 아들 배런 ‘폭풍 성장’

    11살 소년 키가 180㎝…트럼프 아들 배런 ‘폭풍 성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아들 배런 트럼프가 폭풍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현지시간으로 20일, 멜라니아와 배런은 워싱턴 백악관을 화려하게 장식할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구경했다. 올해로 만 11세인 배런은 엄마인 멜라니아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훌쩍 자란 모습이다. 공식적으로 멜라니아의 키가 180㎝인 것을 감안하면, 배런의 키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배런은 흰색 셔츠와 검은색 상‧하의 정장 및 구두를 매치하는 심플한 패션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던 지난해 11월만 하더라도 배런은 꼬마 티를 벗지 못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당시 만 10살이었던 배런은 아버지가 대통령 선거 승리 연설을 하는 동안 졸음을 참지 못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히기도 했다. 배런의 어린 시절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만인의 동생’이자 귀공자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밝은 갈색 머리에 파란 눈과 짙은 쌍꺼풀 등은 어린이 모델을 연상케 한다는 호평도 이어졌다. 배런이 백악관으로 이사오던 날 입었던 하늘색 티셔츠는 사진이 공개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완판 되면서 ‘배런 효과’를 입증했다. 한편 해외 언론도 배런의 폭풍 성장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고작 11살인 트럼프의 막내아들이 엄마보다 더 클 정도로 성장했다”며 이들의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청와대 본관에 대형 ‘촛불 시위’ 그림 걸렸다

    청와대 본관에 대형 ‘촛불 시위’ 그림 걸렸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발한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를 주제로 한 대형 작품이 청와대 본관에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지난 13일 청와대 본관 입구에는 민중미술가로 알려진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 작품이 설치됐다. 이 그림은 가로 11.7m, 세로 3.6m 규모로, 작년 말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찾은 작가가 당시 상황을 캔버스 78개에 나눠 그린 뒤 이어 붙인 작품이다. 작품에는 광화문을 배경으로 ‘닥치고 OUT’ ‘하야하라’ 같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촛불집회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임 작가의 전시회를 찾았다가 이 작품을 본 뒤 마음에 들어 문 대통령에게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후 문 대통령은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달 6일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행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에게 해당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청와대의 구입 의사를 전달받은 임 작가는 애초 가로 16.2m, 세로 3.6m, 캔버스 108개로 돼 있던 작품을 청와대 본관 벽면의 크기에 맞춰 줄인 뒤 설치를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임 작가는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 때 모두 문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또한 유 전 청장과 함께 이번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공약 기획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바른 말글] 박수 치다/손성진 논설주간

    “그때 마침 박수가 터지자 학생은 흠칫 좌우를 살피며 얼려서 자기도 박수를 쳤다.”(선우휘, ‘깃발 없는 기수’) “윤 여사가 열렬하게 박수를 치면서 팔꿈치로 현을 툭 건드렸다. 박수를 치라는 뜻인 것 같아서 그대로 했다.”(박완서, ‘오만과 몽상’) 글을 쓰는 중에서도 열에 아홉은 ‘박수 치다’라는 말이 바른 것으로 알고 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지만 관용적으로 쓰는 문구다. 그런데 박수(拍手)는 ‘두 손뼉을 마주 침’이라는 뜻이니 그 안에 이미 ‘치다’(拍)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의미가 중복되지 않으려면 ‘손뼉을 치다’라고 써야 맞는 것이다. ‘손뼉’은 ‘손바닥과 손가락을 합친 전체 바닥’을 뜻한다. ‘박수가 터지자’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박수갈채를 보내다’, ‘힘찬 박수를 부탁합니다’도 맞는다. sonsj@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사건(9)무등산 타잔 사건

    [그때의 사회면] 사건(9)무등산 타잔 사건

    1977년 4월 20일 새벽. 광주광역시 동구청 철거반원 7명이 무등산 증심사 계곡 덕산골에 있는 무허가 주택을 철거했다. 철거반원들은 주변의 집 5동을 철거하고 심모씨가 살던 집을 철거하려다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 무허가 주택에는 심씨와 아들 박흥숙, 박의 여동생이 단란한 삶을 꾸리고 있었다. 반원들은 철거를 거부하자 가재도구를 끌어내고 기둥과 문을 부수어 불태워 버렸다. 박흥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중?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철물공장에 다니며 무허가 주택 옆에 있던 별채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은 철물공장에서 사제총과 총알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몸이 탄탄하고 날쌔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납덩이를 달고 무등산 정상을 오르내려 맨몸으로는 날아다니듯 산을 탔고 태권도와 유도 유단자이기도 해 ‘무등산 이소룡’이라는 다른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철거반원들이 집을 부수고 불태우자 박은 흥분해 사제총을 들고 나와 공포탄 한 발을 쏘며 반원 오모씨를 인질로 잡고 다른 철거반원 4명을 불러 모았다. 박은 여동생에게 반원들 팔을 빨랫줄로 묶게 했다. 그런 다음 구덩이에 몰아넣고 흉기를 휘둘러 오씨 등 4명을 살해했다. 철거반원들이 문짝 등을 태울 때 박이 모아두었던 현금 30만원을 같이 불태워 박을 더 흥분시켰다고 한다. 박은 범행 뒤 서울의 이모집으로 도망쳤다가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고 박순천 여사와 고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이 중심이 돼 “공부해 보려고 꿈을 갖고 사는 소시민이었고 효성이 지극했다”며 박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구명운동은 처음 60여명이 참여했다가 전국으로 확산됐으나 박은 극형을 면치 못했다. 결국, 박은 1980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은 최후진술을 통해 “당국에서는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그 추운 겨울에 꼬박꼬박 계고장을 내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마을 사람들을 개 취급했다. 당장 오갈 데 없는 우리에게 불까지 질렀다. 돈이나 천장에 꽂아두었던 봄에 뿌릴 씨앗도 깡그리 타버렸다. 이처럼 당국에서까지 천대와 멸시를 받아야 하는 우리인데 누가 달갑게 방 한 칸 내줄 수 있겠는가? 세상에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이 이 나라의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박의 사건은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란 제목으로 2005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사건은 단지 개인의 잔혹한 범죄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었다. 집 없는 빈민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고 빈민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남았다. 사진은 박의 검거 소식을 전한 기사. (경향신문 1977년 4월 23일 자)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미모·다재다능…드라마서 활약 연예 생활 중 본명 ‘안영채’ 등단 장편 ‘우리들의 한나…’만 본명 써‘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 1970년대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 감상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만나는 손님들도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하게 나오는 화제가 ‘어느 배우를 좋아하느냐’인데 보통은 여배우 이름이 많이 나온다. 신성일, 허장강 등 훌륭한 남자 배우도 여럿이지만 그런 이름이 거론되는 경우는 열이면 한둘 정도에 불과하다. 대개는 흔히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유지인, 장미희 등의 이름이 자주 불려 나온다. 그런데 트로이카라고 불리지 않았던 배우들 중에서 유독 사람들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이가 있다. 트로이카처럼 많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여겨질 만큼 이미지가 뚜렷했던 배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안옥희(安玉姬)다.배우 안옥희는 1953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특출한 외모와 함께 다양한 재능을 갖추었던 그녀는 일찌감치 예술가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였다. 이미 열아홉 살 때 희곡 ‘여우와 소’를 발표했고 아동극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를 연극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스무 살 때는 연극 ‘러브스토리’와 ‘검은 고양이 네로’에 출연해 이 즈음부터 연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바로 그즈음 텔레비전 신인 탤런트 모집에서 무려 2800대1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비로소 시청자들 앞에 나타났다. 영화 출연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꽃신’, ‘수초의 노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런데 안옥희는 배우로서 재능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희곡과 아동문학을 쓰면서 기본기를 다진 그녀는 1977년 월간문학에서 동화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에는 ‘마지막 일기’로 성인문학 부문에서도 입선을 했는데 이때 안옥희는 이미 잘 알려진 연예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문학작품을 발표할 때는 안옥희라는 이름 대신 본명인 안영채(安榮蔡)를 썼다. 문단 데뷔를 위해 작품을 보낼 때도 ‘영채’라는 이름을 써서 자신의 현재 신분을 가렸다. 많은 사람들이 안옥희라는 이름을 연기자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녀는 안영채라는 이름으로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평론가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그리고 한국희곡작가협회의 정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앞서 말했듯 안영채라는 이름이 저자로 돼 있다. 1975년에 발표한 수필 ‘귀뚜라미의 외출’을 시작으로 ‘춤추는 무리들’(1976), ‘아아, 저 눈빛이’(1988), ‘혼자 사는 여자’(1993)까지 작가로 활동할 때는 옥희가 아닌 영채였다. 그런데 안옥희라는 이름을 쓴 장편소설이 있다. 이 책은 안옥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 유독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안옥희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이 책은 안옥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다. 출간 연도는 1979년. 그러니까 한창 배우로서 바빴던 시기에 시간을 쪼개어 장편을 써 냈던 것이다. 나도 전에는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수원에 사는 어떤 분 댁에 가서 책을 매입했을 때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제목이 좀 유치해서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표지에 한자로 쓰인 저자 이름을 읽어 보니 안옥희인 것이다. 설마 이 옥희가 바로 그 연기자 안옥희일까? 에이 설마, 그래도 혹시? 하면서 표지와 면지를 넘겨 보니 정말로 저자는 유명한 배우 안옥희였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편집자는 우선 왜 이 소설에 ‘영채’ 대신 ‘옥희’라는 이름을 썼는지 밝히고 있다. 안옥희는 문학작품을 출판할 때 영채라는 이름을 줄곧 써 왔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이름을 쓰고자 했으나 소설을 검토해 본 결과 옥희라는 연기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굳이 핸디캡이 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게 요점이다. 그러면서 편집자는 소설가 안옥희를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캐서린 맨스필드와 견줄 만하다고 소견을 말하고 있다. 물론 약간 과장을 덧붙인 비교일 수도 있지만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작품을 읽어 보니 저자는 주인공 ‘한나’를 포함한 여러 여성 캐릭터들을 특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 낸 것이 흥미로웠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당시로선 현대물인데 사회 분위기상 이처럼 여성이 주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성은 대부분 약하고 순결한 이미지이기에 가부장적인, 마초적인 남성에 종속돼 휘둘리는 역할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나는 그런 남성들에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강인한 캐릭터다. 소설 내용을 가볍게 보자면 일단은 연애소설이다. 한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지만 이미 문예잡지에 시(詩)가 추천받아 게재되면서 신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엔 한나를 좋아해서 따르는 남자 셋이 등장한다. 말이 좋아 따르는 것이지 이들은 사실 한나를 힘으로 제압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가장 어린 강동민은 20대 대학생으로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직업은 딱히 없고 순수하지만 앞뒤 안 가리는 저돌적인 성격이다. 그의 삼촌인 강이권 역시 한나를 좋아하는데 나이는 40대이고 관광사업 투자 회사를 운영 중이다. 세상의 가장 큰 가치를 자본에서 찾는 인물이다. 아는 언니로부터 소개받은 김원일이라는 사람은 30대로 서울 모 지역구의 5선 국회의원의 맏아들이다. 독일에서 유학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양식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어서 신사적인 면도 있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기본적으로 정치 쪽 야심이 대단하다. 주인공 한나는 이 세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는가 싶더니만 이내 기지를 발휘해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한나가 원하는 행복은 남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남자에게 기대어 무언가를 이룰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쓸쓸함이 있다. 어머니인 송 여사는 이런 말을 한다. “행복은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내겐 작은 행복들이 없어. 그저 더듬이를 상실한 곤충 같지.” 이런 말을 남긴 후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나는 큰 결심을 세우고 안면도로 떠난다. 거기 작은 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한나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이 그려 내지 못한 큰 그림을 시작하려 한다.당시만 하더라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안면도에서 주민들과 함께 서울과는 다른 행복하고 자연친화적인 문화공동체를 구상한 한나는 그 옛날 덴마크를 발전시킨 니콜라이 그룬트비히의 모습을 그려 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잠시뿐 사업가 강이권과 서울에서 온 D재벌이 안면도를 장차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과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 편안하게(安) 쉴 곳(眠)을 찾아 안면도까지 온 한나는 힘과 자본을 앞세운 이들의 야욕 앞에서 절망하고 만다. 결국 한나는 강이권 몰래 안면도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난다. 그곳이 어디인지 소설은 알려 주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한나는 안면도에서 비로소 ‘우리들의 한나’가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이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거기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한나는 그 누구의 한나가 아닌 우리들 모두의 한나인 것이다. 어느 곳에서 한나는 어머니가 말했던 잃어버린 삶의 더듬이를 찾을 수 있을까. 한나가 안면도를 떠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한나가 또다시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작가 안옥희는 1993년 10월 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연기자로나 문학가로 한창 꽃피울 시기인 서른아홉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한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녀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곳에서 한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한나는 끝내 행복해야 한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허영란, 성화봉송주 마신 소감 “정말 맛있다” 극찬

    허영란, 성화봉송주 마신 소감 “정말 맛있다” 극찬

    배우 허영란이 성화봉송주를 마시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지난 16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자기야 백년손님’에서는 배우 허영란이 남편 김기환과 함께 후포리를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후포리 이춘자 여사의 사위 남재현은 허영란에게 일명 ‘성화봉송주’를 건넸다. 그는 “이것은 술이 아니고 평창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며 마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재현은 술이 담긴 맥주잔을 맥주병으로 받친 상태로 술을 마셨다. 그는 허영란과 허영란의 남편 김기환에게도 성화봉송주를 건넸다. 허영란은 “별 술을 다 먹어보네”라고 말하면서도 “술이 정말 맛있다”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이를 보던 이춘자 여사는 “여자가 술이 맛있다 하고 앉아있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SBS ‘자기야 백년손님’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시민이 말하는 ‘논두렁 시계’ 사건의 진실···“망치로 깨버렸다”

    유시민이 말하는 ‘논두렁 시계’ 사건의 진실···“망치로 깨버렸다”

    유시민,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 직접 들어” 16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유시민 작가와 박형준 교수가 출연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에 개입했다는 논란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유시민 작가는 “‘논두렁 시계’ 사건의 문제점은 국정원이 검찰수사에 관여했는가에 있다”며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는 국정원장이 대검중수부장을 만나 불구속 수사 의견을 준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대통령도 개별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를 못하게 되어 있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전임 대통령을 구속하면 안된다’고 판단을 했다면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총장에게 의견을 전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두렁 시계’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유시민 작가가 들었던 이야기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달랐다. 유 작가는 “기자들은 검찰에 들었다고 하는데 실제 논두렁에 버렸다는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 박연차 회장이 회갑을 맞은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노건평(노 전 대통령의 둘째 형)씨를 통해 명품시계를 줬는데 노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이 화를 낼까봐 가져다주지 못하고 퇴임할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시계는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됐고,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눈에 띄지 않게 보관했다고 한다. 유 작가는 “이지원 복사 건으로 봉하마을에 압수수색을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어서 노 전 대통령이 재산목록을 만들다가 시계의 존재를 알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이 크게 화가 나서 망치로 깨서 버렸다고 전해들었다”고 내막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박형준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박 교수는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여부에 있어 청와대와 검찰의 입장 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형준 교수는 “대통령 지시로 수사에 관여했다는건 추정일 뿐”이라며 “당시 청와대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는 게 원칙’이라는 흐름이었는데 검찰이 구속수사를 주장했다. 이 흐름을 아는 국정원 직원이 검찰에 전달했을 수도 있다”고 유시민 작가와는 다른 흐름의 의견을 내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잘 다녀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동아시아 3개국 순방 마치고 귀국

    [서울포토] ‘잘 다녀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동아시아 3개국 순방 마치고 귀국

    15일 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백년손님’ 허영란, 연극배우 남편 김기환 최초 공개 “이국적 외모”

    ‘백년손님’ 허영란, 연극배우 남편 김기환 최초 공개 “이국적 외모”

    ‘백년손님’ 후포리 춘자LEE 하우스에 허영란 부부가 찾아온다.16일 방송되는 SBS ‘자기야-백년손님’은 이만기와 장모 최위득, 후포리 남서방과 장인 최윤탁, 장모 이춘자, 마라도의 사위 박형일과 해녀장모 박순자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날 ‘백년손님’에서는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허간호사로 존재감을 알렸던 배우 허영란과 남편 김기환이 후포리 ‘춘자Lee 하우스‘에 입성하는 이야기가 공개된다. 앞서 진행된 스튜디오 녹화 당시, 결혼 후에도 여전한 동안 미모를 자랑하는 허영란이 VCR에 등장하자 스튜디오에서 지켜보고 있던 패널들은 “예전과 똑같다”, “여전히 예쁘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날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될 허영란의 남편 김기환은 연극배우로, 이국적인 외모와 구릿빛 피부, 개성 있는 패션 스타일을 뽐내 눈길을 끌었다. 남편 김기환은 강한 인상과는 달리 아내 허영란에게 족욕과 발마사지 해주는 등 살뜰히 챙겨주며 보면 볼수록 순박한 매력을 발산했다. 이에 스튜디오 패널들은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착하고 순박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백년손님’의 열혈한 애청자임을 자부한 허영란-김기환 부부는 후포리 ‘춘자Lee 하우스’로 향하는 길부터 입성한 순간까지 설레는 마음과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영란은 이춘자 여사와 처음으로 인사할 때 와락 껴안으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고. 이어, 허영란은 이춘자 여사와 함께 밭 노동을 하러 갈 때에도 “홍성흔 코치님이 벤 대추나무는 어디 있냐”, “나르샤 씨가 쪼던 밭이 어디냐”고 물으며 ‘백년손님’의 열혈 팬임을 증명했다는 후문이다. 16일 목요일 밤 11시 10분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랑해요 김정숙”…영부인 생일에 네티즌 실시간검색어 선물

    “사랑해요 김정숙”…영부인 생일에 네티즌 실시간검색어 선물

    15일 김정숙 여사의 생일을 기념해 네티즌들이 “사랑해요 김정숙”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띄우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문재인과 함께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비롯한 팬카페와 커뮤니티, SNS 등을 중심으로 ‘사랑해요 김정숙’ 실시간 검색어 이벤트가 제안됐다. 오전 10시, 12시, 2시에 ‘사랑해요 김정숙’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실시간 검색어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이날 오후 2시 18분 현재 ‘사랑해요 김정숙’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4위에 머물러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숙 여사 생일 “최고의 선물”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김정숙 여사 생일 “최고의 선물”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11월 15일 김정숙 여사의 생일을 맞아 5년 전인 2012년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아내 김정숙 여사의 생일을 축하하며 올린 글이 주목받고 있다.당시 문 대통령은 “오늘 아내의 생일입니다”라며 “지방에 와 있느라, 생일 아침을 쓸쓸하게 혼자 맞이했을 겁니다.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편치 않은 날이지만 아내와 처음 만났던 때 제 인생의 축복입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같은 날 김정숙 여사는 이 사실을 모른채 유쾌한 매력을 뽐냈다. 김정숙 여사는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 강동원씨가 제대했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이제 곧 현빈씨도 제대한다면서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삐 살았네요. 더 멋진 배우로 만나길 기대할게요!”라는 글을 올렸다.잠시 후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 축하 글을 확인한 김정숙 여사는 “제겐 최고의 선물이네요!”라는 글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경희대 캠퍼스 커플로 김정숙 여사가 대학교 2년 후배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정숙 여사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정숙 여사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 대통령을 찾았다. 김정숙 여사는 남자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리고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정숙 여사의 말춤…‘평창 스타일’로 유쾌한 일정 마무리

    김정숙 여사의 말춤…‘평창 스타일’로 유쾌한 일정 마무리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강남스타일을 개사한 노래 ‘평창 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는 모습이 포착됐다.김 여사는 14일 오후 필리핀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말춤을 추며 7박 8일간의 동남아 순방 일정을 유쾌하게 마무리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필리핀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찾아온 200여명의 동포, 필리핀 6·25 참전용사가 자리했다. 무대 좌우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설치돼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분위기를 냈으며,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인 출신 필리핀 현지 방송인 라이언방이 무대에 올랐다. 라이언방이 무대에서 강남스타일을 개사해 ‘평창 스타일’을 부르자 흥이 난 김 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춤을 따라 했다. 옆에 앉은 문 대통령에게 같이 추자는 제스처도 보였지만, 문 대통령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등장한 가수 최백호에게 앵콜을 청했다. 최백호는 문 대통령의 신청곡으로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한편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 기업의 필리핀 진출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참전용사에게는 “어려울 때 우리는 도와주신 뜻을 잊지 않겠다”며 “매년 참전용사 두 분씩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자녀들의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남편 따라서 해외에 나와 교민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한다. 서울에서도 미용을 해 주시는 분이 따로 없는데 해외에 나오면 현지 미용사를 만나서 도움을 받곤 한다. 그러면서 교민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서 정말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오늘 저를 도와주신 미용사께서 ‘교민들이 동포간담회를 많이 기다린다, 초대받은 분들이 좋아하고 자랑하신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100점 맞은 아이가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왔다”며 “앞으로도 더욱 세세히 듣고 열심히 해서 5년 동안 잘 지키고, 우리 동포들이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는 대한민국 만드는 데 저도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 내외는 7박 8일간의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평창 스타일’… 말춤 추는 김정숙 여사

    ‘평창 스타일’… 말춤 추는 김정숙 여사

    김정숙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14일 필리핀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해 ‘말춤’을 추고 있다. 김 여사는 필리핀 현지에서 활동하는 개그맨 라이언 방이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 스타일’을 개사한 ‘평창 스타일’을 부르자 흥에 겨워 일어나 춤을 췄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에게도 같이 춤을 추자고 권했지만 문 대통령은 춤을 추는 대신 김 여사의 옆에 서서 박수로 장단을 맞췄다. 마닐라 연합뉴스
  • ‘평창스타일’ 말춤 추는 김정숙 여사

    ‘평창스타일’ 말춤 추는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14일 오후 필리핀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 필리핀 현지 활동 개그맨이자 평창홍보대사로 위촉된 라이언방이 강남스타일을 개사해 평창 스타일 부르자 흥이 난 김정숙 여사가 말춤을 추고 있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에게도 같이 춤을 추자고 권했지만 문 대통령은 춤을 추는 대신 김 여사의 옆에 서서 박수로 장단을 맞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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