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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자전거 ‘따릉이’, 수리업무 민간 위탁 검토된다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공공자전거 ‘따릉이’ 수리업무 일부가 대여소 인근 자전거점포 자영업자에게 맡겨진다. 공공자전거 ‘따릉이’ 대여사업은 지난 2017년 9월 공공자전거 11,600대를 시작으로 현재 20,000대, 대여소 1,540개소, 회원 수 100만 명에 이르는 등 생활 속에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동안 자전거점포를 운영해오던 영세한 자영업자의 영업부진이 문제로 제기되어왔다. 경만선 시의원(더불어민주당, 강서3)은 제283회 임시회 서울시설공단 현안질의를 통해서 “공공자전거 대여로 인근 자전거점포의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는 만큼 수리업무를 맡겨 이들을 도울 필요성이 있다”고 제시하였고,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은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9일 시민과 함께’하는 광주시 채용박람회

    경기 광주시는 오는 19일 오후 2시 광주시 공설운동장에서 ‘오직 광주, 시민과 함께하는 광주시 채용박람회’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채용박람회는 구직자에게는 더 많은 우수기업의 취업 기회를, 구인기업에는 맞춤형 인재의 채용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접근성이 용이한 광주시 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로 확대 진행되는 이번 박람회에는 40개 업체가 직접 참여해 행사장에서 191명 채용을 목표로 현장면접을 실시한다. 또한, 취업전문상담사의 1대1 맞춤형 취업컨설팅, 이력서 사진 무료촬영, 이미지 캐리커쳐, 타로카드 취업운세 등 부대행사와 취업성공패키지, 경력단절여성 취업컨설팅, 광주시 청년 면접정장 무료대여사업인 ‘청년 꿈 이룸 옷장’ 등 다양한 취업지원 제도에 대한 안내도 함께 실시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구직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신분증, 이력서를 지참해 행사장을 방문하면 된다. 한편, 자세한 사항은 광주시 홈페이지 및 광주시 일자리센터(760-0019)로 문의하면 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평양 가는 ‘유쾌한 정숙씨’ 리설주와 어떤 ‘케미’ 보일까?

    평양 가는 ‘유쾌한 정숙씨’ 리설주와 어떤 ‘케미’ 보일까?

    “이번에 평화의 집을 꾸미는 데 (김정숙) 여사께서 작은 세부적인 것까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 “가구 배치뿐만 아니라, 그림 배치까지 참견을 했는데…(문재인 대통령)” “그래서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이렇게 왔는데(웃음·리 여사)” “(리설주 여사에 손뻗어 다독이며) 저는 가슴이 떨립니다(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의 대미를 장식하는 ‘하나의 봄’ 환송공연장에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는 마치 친자매처럼, 모녀처럼 다정하게 손을 꼭 붙잡고 들어왔다. 당초 리 여사의 판문점 행은 오전까지도 불투명했지만, 오후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역사적인 남북 퍼스트레이디 간 첫 만남에서 김 여사와 리 여사는 35년(김 여사 54년생·리 여사 89년생 추정)의 나이차 임에도 이처럼 살갑게 대화를 나눴다.김 여사가 워낙 화통하고 격의없는 성격인데다 둘 모두 음악 활동을 했다는 공통분모를 지녔기에 첫 만남의 서먹함은 없었다. 경희대 성악과를 나온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약했다. 리 여사 역시 북한 은하수관현악단의 독창가수로 활동했다. 오는 28~30일 평양정상회담에서 5개월 만에 재회하는 남북 퍼스트레이디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케미(궁합)’를 연출할지 주목된다. 지난 4월에 못 나눈 이야기보따리를 주고받으며 ‘회포’를 풀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 당시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방북 길에 동행했지만, 그때만 해도 북측은 퍼스트레이디의 개념이 없었던 탓에 퍼스트레이디 간 일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평양에서의 사상 첫 퍼스트레이디 친교일정이 이뤄지는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과거와 달리 남북 간 의전·일정을 협의하는 준비기간이 워낙 촉박하지만, 2박3일간의 일정인 만큼 두 분간의 의미 있는 일정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권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 등을 소화하는 동안 독자적인 일정을 4차례 소화했다. 북측 여성계 인사들을 만나거나 평소 권 여사의 관심사항인 도서관과 박물관, 의료분야 일정을 가졌다. 특히 북측은 2007년 10월 2일 권 여사와 박순희 조선민주여성동맹위원장 등 여성지도자들과의 면담장소로 백화원 영빈관을 제공하는 등 의전에 각별한 배려를 했다. 앞서 2000년 이희호 여사도 북측 여성지도자를 만났지만, 당시에는 인민문화궁전이 장소로 제공됐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13일 닷새 앞으로 다가온 3차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 평화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 순례길 국제순례지 선포식 기념 아시아주교단과 함께하는 미사’에 참석해 염수정 추기경 등 천주교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김 여사는 “저의 믿음과 저희 남편의 믿음에 여기 오신 주교님들의 도움을 주시는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김 여사는 “10월 중에 바티칸 교황청 방문을 계획 중”이라면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해 주신 교황님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포토] 김정숙 여사의 ‘간절한 기도’

    [포토] 김정숙 여사의 ‘간절한 기도’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 순례길 국제순례지 선포식 기념 아시아 주교단과 함께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청와대제공
  • 문 대통령 부부의 추석선물 ‘픽’…알뜰 한우와 곶감

    문 대통령 부부의 추석선물 ‘픽’…알뜰 한우와 곶감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추석을 앞두고 선물 쇼핑에 나섰다. 폭염으로 작황이 좋지 않은 농가와 추석 물가에 대한 걱정도 늘어놨다. 문 대통령 부부는 11일 청와대 연풍문 2층에 마련된 추석맞이 농축수산물 직거래 장터를 찾았다. 추석을 앞두고 명절 물가를 살펴보고 국산 농축수산물 판매를 북돋우는 목적의 일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사과 진열대 앞에서 예년에 비해 가격이 어떤지 물어봤다. 상인이 “폭염 때문에 과일이 좀 작고 가격도 30% 비싸다”라고 답하자 문 대통령은 “그만큼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 아닌가. TV 보도를 보면 온전한 사과가 없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 여사는 사과의 당도를 물어보곤 “한 개에 6000원이다. 청와대 온 뒤로 시장을 안 봐서 물가 비교가 잘 안 된다”며 가격에 관심을 보였다.두 사람은 시식용으로 잘라놓은 사과와 배를 맛봤다. 진열대를 한 바퀴 둘러본 김 여사는 ‘한우 알뜰 세트’와 ‘추석 곶감’을 샀다. 김 여사는 매장을 나가려다 말고 문 대통령을 향해 “여보, 우리 집에서 먹을 것도 갖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김을 골랐다. 김 여사는 “대통령이 김을 제일 좋아하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서울포토] ‘진짜 VIP 손님’ 문 대통령 부부

    [서울포토] ‘진짜 VIP 손님’ 문 대통령 부부

    11일 청와대 연풍문에서 열린 추석맞이 직거래장터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상품을 구매한뒤 계산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드론 퍼포먼스에 文대통령 영상도… 확 달라진 北 9·9절

    드론 퍼포먼스에 文대통령 영상도… 확 달라진 北 9·9절

    북한이 지난 9일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 집단체조 공연 ‘빛나는 조국’에 드론(무인기) 등 최신기술이 총동원되고 문재인 대통령도 등장했다. 북한이 9·9절을 맞아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선보인 새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에는 드론, 레이저, 영상 기술 등 최신 기술이 사용됐다. 또 반미 구호 대신 ‘평화번영 통일의 새 시대’라는 문구와 지난 4월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정상회담 장면 등이 나타났다. 10일 중국중앙(CC)TV 등이 전한 보도를 보면 공연 도중 대규모 드론 대형이 경기장 공중에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 모양을 선보였다가 허공에 ‘빛나는 조국’이라는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북한 집단공연의 상징과도 같은 ‘인간 카드섹션’을 통해 만들어진 장내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는 4·27 남북 정상회담 영상이 방영됐다. 대형 프로젝터를 통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을 비롯해 두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포옹하는 모습 등이 나오자 경기장에서 박수갈채가 터졌다.영상이 끝나자 ‘4·27 선언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라는 글귀가 대형 카드섹션으로 표현됐다. 또 수천명의 학생들은 ‘대외관계의 다각화’라는 카드섹션을 선보였으며 영어와 중국어 문구로도 형상화했다. 1만 7490명의 학생이 동원돼 드론 비행부터 레이저쇼, 서커스, 클래식 공연, 태권도, 불꽃놀이까지 다양한 형식의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무대 바닥에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기법도 활용됐다. 북한은 또 9·9절을 맞아 초청한 외신기자들에게 증강현실 고글을 쓰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중국어, 일본어로 대화하는 인공지능(AI)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고 글로벌타임스가 전했다. 9일 오후 8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펼쳐진 집단공연에는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으며,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 등이 함께 관람했다. 조반니 메를로 세계스포츠기자연맹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빛나는 조국’은 올림픽 개막식과 비슷했다”면서 “북한이 선보인 통일이라는 주제가 가장 의미심장하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서울포토] 이야기 나누는 김정숙 여사와 이리아나 여사

    [서울포토] 이야기 나누는 김정숙 여사와 이리아나 여사

    김정숙 여사가 한국을 국빈 방문중인 이리아나 인도네이시아 대통령 부인과 10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서울포토] ‘2018수원한국 지역도서전’ 방문한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2018수원한국 지역도서전’ 방문한 김정숙 여사

    김정숙 여사가 7일 오후 수원 화성행궁 일대에서 열린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방문해 지역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제공
  • [서울포토] ‘2018수원한국 지역도서전’ 방문한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2018수원한국 지역도서전’ 방문한 김정숙 여사

    김정숙 여사가 7일 오후 수원 화성행궁 일대에서 열린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방문해 지역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제공
  • [불온(不·on)한 회의] 송도 불법주차·병역특혜 논란, 비상식·불공정에 대한 분노인가

    [불온(不·on)한 회의] 송도 불법주차·병역특혜 논란, 비상식·불공정에 대한 분노인가

    처음엔 이 주의 키워드를 ‘분노’로 봤습니다. ‘송도 불법주차’ 사건이나 ‘병역특례’ 논란이 불공정, 비상식에 대한 분노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회의가 이어지니 분노 표출의 현상과 원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인식의 흐름과 변화도 함께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이번 ‘불온(不on)한 회의’에서는 우리가 왜 이렇게 와글거렸는지는 가늠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부장: 50대 여성이 자신의 차에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인 데 화가 나서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고의로 막은 사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는데. 달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죠. 아파트 입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차분했어요. 문제의 차주가 누구인지는 입주자 대표단 몇 명만 알고 있었고, 대부분 “그 사람 신원은 지켜주자”, “불편을 겪긴 했지만 경찰 조사가 들어갔으니 거기서 해결할 문제다”, “차주가 차를 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물론 차주에게 사과도 요구했죠. 비상식적인 사건을 눈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상식선에서 움직였고요. 그런데 오히려 네티즌들이 더 분노해서 찾아가고, 차주의 신상을 털고…. 인터넷에서 논란이 너무 증폭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호: 그게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자신이 만난 사람에 대한 인상은 그 사람의 단면이잖아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던 이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단면을 털어놔요. “내가 아는 이 사람은 이렇더라”는 식으로. 그런 단면이 인터넷의 어느 공간에 모여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거죠. 사건 가해자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형태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집단지성의 덫에 걸리는 거죠. 우리가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믿음. 사건 당자사들의 당시 사정 따위는 관심이 없어요. 달란: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사안은 기사화할 가치가 있죠. 정보 차원에서요. 하지만 가끔 논란이 커질 때가 있어요. 진호: ‘굳이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일인가’라는 고민, 기자들은 결국 ‘알면 재밌을 만한 일’에 많이 흔들리죠. 부장: 그러면 송도 불법주차 사건은 알려야 했던 일이었을까. 달란: 분명 화제성은 컸지만, 논쟁의 흐름이 ‘김 여사’(운전을 못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사화에 대한 고민은 여전합니다. 지금 여성 회원이 많은 인터넷 카페에서는 ‘만일 차주가 남자였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했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진호: 확실히 맞는 지적이에요. 물론 차주가 남자였어도 이 사건은 화제가 됐겠지만 남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신상이 노출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최근에 인천 자유공원에서 차량 난동을 부린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 보고 ‘미쳤다’고 생각해도 ‘저 놈 누구야? 한 번 파헤쳐 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죠. 세진: 이 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하는지보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나’에 초점을 맞춰 봤어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다는 건, 분명 잘못이죠. 사건이 며칠 동안 계속된 뒤에야 사과문을 내놨고요. 저렇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부장: 보통은 ‘분노조절장애’로 판단하지만, 상식 밖의 행동을 한 사람을 다 그렇게 보면 진단과 해결의 여지가 없어지겠지. 진호: ‘사적 응징’으로 보기도 합니다. ‘자신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죠.부장: 또 다른 분노는 ‘병역특례’에서도 드러났는데. 진호: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 대표팀이 4강까지만 진출했는데도 선수들이 모두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때도 불공정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들끓지는 않았죠.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이젠 많은 사람들이 랭킹의 수준을 나름 가늠하고 있는 것이죠. 평소 40~50위를 하던 팀이 당시 월드컵 4강에 진출했으니까, 이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고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은 야구든 축구든 상대팀 전적에 비해서는 우리가 월등한 편인데도 아슬아슬하게 금메달을 딴 터라 논란이 크죠. 게다가 이번에는 스포츠냐 대중문화냐의 문제로 번졌잖아요.달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은 ‘손흥민은 왜 면제돼요’가 아니라 ‘방탄소년단(BTS)는 왜 면제가 안 돼요’라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대중문화 안에서도 병역특례 적용이 옳은지 여부에 대해 갈릴 거라고 봐요. 미국 음악차트인 빌보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차트 1위’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여론이 병역특례 제도에 불만이 많아서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여론이 바뀔 때마다 이걸 손볼 것이냐라는 문제도 생기죠. 진호: BTS의 병역 면제를 반대하는 쪽은 “과연 BTS 성과가 국가를 대표하는 일이냐”, “상업적인 성공에 더 가깝지 않느냐”는 의견을 보입니다. 이 의문에 손흥민 선수를 대입하면 “그렇다면 손 선수는 국가를 위해 활약했나”, “프로 무대에서의 성공을 위해 뛴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한 겁니다. 경근: 가끔 우리가 스포츠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북한과 비슷한 부분이 보입니다. 우린 분단국가이지만 실제 전투는 거의 하지 않죠. 그래서 스포츠에 등치시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일본, 미국한테는 져도 남한은 꼭 잡아야 해요. 이런 점을 정신교육시키기도 하죠. 하도 한국과 대항전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보니까, “지는 선수들은 아오지 탄광에 보낸다”는 소문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안 보내거든요.(웃음) 특정국가의 경기를 대하는 자세는, 남북이 다르지 않은 거죠. 진호: 스포츠에 대한 개념이 ‘국가 위상’에서 ‘개인의 자아실현’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병역특례의 논의 대상도 더 확대된 것이 아닐까요. 세계 강국을 꺾었다는 자부심도 뿌듯한 일이지만, 한창 잘나갈 때 활동을 접고 군대에 가야 하는 현실적인 안타까움. 달란: 요즘 그런 얘기 나오고 있잖아요. 마일리지를 쌓아서 일정 수준이 되면 병역을 면제해 주는 제도로 바꾸자고.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게, 정말 국위선양을 할 만큼 특출하지 않은데 선수 생활을 오래해서 마일리지를 쌓고 군대를 안 가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지금 우리나라는 ‘예술과 체육 분야에서 국위선양에 현저한 공이 있는 사람에게 병역을 면제해 주니까. 그리고 또 생각해 봐야 할 게, 올림픽 양궁 1등과 월드컵 8강 진출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마일리지 가중치를 부여할 때 종목별 특성도 고려해야 하고. 병역문제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진호: 젊은이들의 재능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병역특례 제도가 일정 부분 필요하죠. 시대가 변하면서 중요한 요소들도 바뀌게 마련이죠. 그에 따른 새로운 특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은 대중문화의 파급력도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건데, 그 영향력을 너무 제로로 보는 건 아닌가 싶어요. 세진: 사실 병역특례 논란이 기본적으로 징병제여서 발생하잖아요. 지원병제로 바꾸면 논란이 안 생기지 않을까요. 분단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방의 의무를 병역으로만 수행할 필요는 없잖아요. 병역 외에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이를테면 대체복무도 그중 하나인 거죠. 예술인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병역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달란: 지원병제는 궁극적으로 나갈 방향인 건 확실해 보여요. 진호: 하지만 분단 현실이 바뀌어야 되는 것이니까. 종전선언 후에 남북이 서로 군축을 하기로 약속하고, 그것이 실제로 심도 있게 진행되면 지원병제로 바뀔 수 있겠죠. 병역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인 거죠. 달란: 만약 연말에 종전선언이 되면…. 마침 남북 정상회담이 18~20일로 잡혔어요. 종전선언 논의를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정리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울포토] 경로당 방문한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경로당 방문한 김정숙 여사

    6일 오전 김정숙 여사가 광주 구월동에 위치한 경로당을 방문해 식사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여기는 중국] 유치원 입학식서 여성댄서 ‘봉춤’ 논란…원장 “책임없다”

    [여기는 중국] 유치원 입학식서 여성댄서 ‘봉춤’ 논란…원장 “책임없다”

    중국 광동성 선전시에 위치한 대형 유치원 입학식 축하공연에서 ‘봉 춤’을 추는 댄서가 등장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 현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영상물 속에는 3~6세 어린이를 주요 대상으로 운영되는 유치원 입학식 무대 위에 검은색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봉 댄스를 추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수영복을 연상케 하는 몸에 밀착된 댄스복을 입은 20대 댄서는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으며, 무대 앞에는 이날 입학식에 참석한 어린이 4명이 댄서의 춤을 구경하는 장면이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무대 정면 앞으로는 입학식에 함께 참석한 학부모 대열과 어린이 일부가 댄서의 춤동작을 따라하거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봉 댄스’를 추는 댄서가 춤을 춘 행사장이 3~6세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유치원 입학식이었다는 점에 있다. 행사장에는 3~6세 유치원생 500여명과 학부모 100여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영상은 지난 3일 선전시 소재 한 유치원에 참석한 학부모가 촬영한 것으로 영상물을 개인 SNS에 게재하며 일파만파 공유됐다. 자신을 해당 영상물을 촬영한 학부모라고 밝힌 구 씨는 “유치원 입학식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라는 장면을 목격했고, 해당 유치원 원장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영상물을 촬영해 공유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유치원은 일명 ‘신사후이(新沙荟)’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 중인 민간 사설 유치원으로 확인됐다. 당일 입학식에 참석했던 다수의 학부모들은 외설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유치원에 자녀를 입학시킬 수 없다며 퇴원 수속을 요구하는 이들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당일 행사에 참석했던 학부모 가운데 일부가 미국의 유력 언론인 블룸버그 통신사 통신원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해외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는 등 사건이 크게 번지는 모양새다. 논란이 증폭되자, 해당 유치원이 소재한 바오안취 교육국은 즉시 문제의 사안에 대해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교육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유치원 측이 주동적으로 해당 댄스 업체를 섭외, 실시한 사건으로 보고됐다. 다만, 교육국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3~6세의 어린이들이 주로 입학하는 개학식에서 문란한 공연을 실시한 것은 결코 타당치 못한 처사’라고 밝혔다. 문제가 발생한 이튿날인 4일 오후 해당 지역 교육국은 자사 공식 웨이보 채널을 통해 사건 후속 처리 방침을 공고했다. 바오안취 교육국은 △문제를 일으킨 유치원 책임자가 학부모와 물의를 일으킨 지역 사회에 즉시 사과하도록 조치했으며 △해당 사안에 대해 유치원 원장 라(赖) 씨가 모든 책임을 지고 원장직에서 물러날 것 △유치원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운영행위 규범과 관련한 조사를 받을 것이며, 이 지역 일대의 타 유치원에서는 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규범화된 운영 규칙을 준수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교육국의 즉각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부모가 확인할 결과 문제의 유치원 측에서는 논란의 책임자인 원장을 해임한 적이 없으며, 해임 의사가 없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날 자신을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유치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 했던 학부모라고 밝힌 이 모씨는 “직접 유치원에 전화해 확인해 봤으나 유치원 측은 이번 봉 댄스 공연과 관련해 댄스 업체에게 일체의 금품이나 사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원장 해임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비록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진행된 댄스 공연이었으나, 사건의 중대성을 인정해 원장 라(赖) 여사 스스로 물러나야 마땅한 사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유세미의 인생수업] 닭 두 덩어리

    [유세미의 인생수업] 닭 두 덩어리

    “말도 말어. 내가 그 생각하면 아직도 속에서 천불이 나. 생일인지 뭔지 앞으로 또 하자고 하면 이 집구석 싹 다 엎어 불고 말테니께.”생일상 잘 받아 먹었느냐고 축하 인사 한번 건넸다가 날벼락마냥 화풀이당한 친구는 어안이 벙벙하다. 사실 친구한테 퍼부을 일은 아닌데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 나온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꼭지가 뜨거워지는 박복자 여사. 몇 해 전부터 생일이면 즐겁기는커녕 나이 먹는 서글픔에 절로 한숨 나오는데 올해는 아들 내외 때문에 마음이 더 상했다. 그 전에도 어미 생일을 잘 챙긴다 여기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전화하는 품새부터 부아를 돋운다. “어머니 생일 어떻게 할까요?” 심드렁한 며느리 음색에 서운함이 먼저 가슴에 얹힌다. ‘어떻게 하긴? 내 생일상 내가 차리랴?’ 목구멍까지 솟구친 말을 꿀꺽 삼키고 있으니 따발총처럼 떠드는 며느리는 이미 일정을 결정한 뒤였다. “아이들 학원 때문에 생신날에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구요. 그냥 이번 토요일에 미리 저녁 먹는 걸로 하죠 뭐. 전화드릴게요.”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그녀, 죄 없는 남편에게 괜한 심통이다. 시어미 알기를 오뉴월 식은 밥덩이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둥 처음부터 남편이라는 사람이 저리 무심하니 애들까지 닮아서 한통속이라는 둥 미운 남편만 가자미눈으로 째려보다 머리 싸매고 휙 드러누워 버렸다. 그래도 저녁 먹자는 토요일 오후부터 박복자 여사는 부산하게 공들여 화장하고 오랜만에 머리도 정성껏 매만졌다. 생일 아닌가. 그러나 오후 6시가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혼자 끌탕하던 그녀가 오후부터 곱게 차려 입은 채 벌서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려는 순간 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근처 찜닭 집으로 예약했으니 7시에 식당으로 오라나. “나 참 기가 막혀서. 부모 알기를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남이랑 약속해도 그렇게 무성의하게 하겠냔 말야. 찜닭 먹겠다고 차려 입고 주렁주렁 걸고 달고 나선 내가 우세스러워서 원.” 이미 마음 상한 박복자 여사가 찜닭이 마음에 들 리 없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대체 그게 무슨 맛인지…. 닭 두 덩어리를 물었다 놨다 먹는 흉내만 내다 일어섰네.” 겨우 식사만 마치고 자식들이 서둘러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허전할 수 없다. 허청허청 걷는 걸음마다 어느덧 선득한 밤바람이다. 말하면 세금 붙는 줄 아는 남편이 그제서야 입을 뗀다. “애들한테 서운해 말어. 건강하게 새끼들 잘 키우고 제 밥벌이 하고 살면 고마운 거지. 난 아침에 눈떠 애들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대견해.” 이 양반이 누구 염장을 지르나. 40년 같이 살며 마누라 생일 한번 변변히 챙기지 않은 당신이 할 소리냐고 막 따지려는 순간 그녀의 말을 남편이 또 가로막는다. “이 험한 세상에 내 아이들이 그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훌륭해. 그거면 됐어. 세상 철없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부모가 돼서 밤낮없이 직장에, 집안일에 달음질치는 거 보면 안타깝지. 그래도 다 이겨 내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잖은가.” 남편이 늙긴 늙은 모양이다. 눈가에 언뜻 물기가 비친다. “마누라를 그렇게 좀 가엾게 여겨 보쇼”라며 못 본 척 고개 돌리고 그녀는 앞서 걷는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낼모레다. 이번 명절은 야채값이 다락같이 올라서 상을 차릴 수나 있나 벌써 겁부터 난다. 배추 사다 김치라도 미리 해놔야 애들이 와서 먹을 텐데. 아들이 좋아하는 새우장도 좀 만들고 집에 갈 때 들려 보낼 밑반찬은 뭘로 하나. 투덜거리던 마음은 그새 잊고 우리의 박복자 여사 벌써부터 마음이 급하다.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그러나 사랑이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시)의열단장 김원봉은 고국이 해방되자 이역에서 숨진 아내 박차정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김원봉은 피 묻은 박차정의 속적삼을 친정 식구들에게 전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인 경남 밀양 부북면 제대리 뒷산에 유골을 묻었다. 1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지만 중국 땅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중국서 만난 김원봉과 13년간 항일독립운동 제대리에서 내려 농가를 지나 야산으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띄엄띄엄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묘지였다는데 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100m쯤 올라가니 박차정의 묘소가 나타났다. 마른 솔잎이 봉분을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라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는 너무 초라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란 비문만이 묘주(墓主)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묘소에서 멀리 너른 들녘이 보이고 밀양강이 굽이쳐 흐른다. 밀양강 바로 북쪽, 해천 옆에 남편 김원봉의 생가가 있었다. 그 위쪽 부북면 신작로에는 해방 후 귀국해 고향을 방문한 김원봉을 환영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찼었다.‘빨갱이’로 낙인찍힌 김원봉의 배우자란 딱지는 박차정의 공훈을 인정받는 데도 오랫동안 장애물이 됐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차정의 생가는 부산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담벼락 옆 동네 안쪽에 있다. 지금은 옛날 모습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드문드문한 관람객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충절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어릴 때부터 반일 감정이 남다른 소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김원봉은 대한광복회의 암살 활동에 충격을 받고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약산은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터진 3·1운동의 비폭력에 실망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암살·파괴활동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혈 운동가들은 민중 속에 잠재한 폭력의 위력을 끌어내는 뇌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19년 11월 9일 중국 지린성 반 아무개 농부의 집에 우국 청년 10명이 모였다. 밤샘 토론 끝에 김원봉을 의백(義伯·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이 결성됐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을 ‘칠가살’(七可殺)로 규정, 처단의 목표로 삼았다. 단원들은 거사에 서로 가겠다고 싸울 정도로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첫 거사 모의는 그만 악명 높은 조선인 경찰 김태석에게 발각돼 윤세주 등 6명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장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기도,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습격 등 잇단 의거를 감행했다. 헝가리인 마자알의 고성능 폭탄 제조법 전수와 의열단 정신을 명문화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의 기세는 더욱 높아져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열단원 김지섭은 화물선 석탄창고 속에서 열이틀을 지낸 끝에 일본에 도착해 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의열단원들의 잇단 항거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에게는 김구 선생보다 많은 100만원(현재 가치 약 320억원)이란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다. 김원봉은 잠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원판을 회수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일경을 따돌렸다. 신출귀몰이었다. ●신출귀몰 약산,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 더 붙어 5~6년 동안 수백건의 투쟁을 했지만 자금이 바닥나자 의열단의 활동도 주춤해졌다.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약산은 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 학생들을 가입시키면서 의열단 재건에 나섰다. 김원봉이 박차정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다. “천궁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의 반월이/ 고요히 대지 위에 비칠 때(…)/ 옛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이 18세 때 모교(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교지에 발표한 시 ‘개구리 소리’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박차정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된 집안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비분강개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박차정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1930년 1월에 서울 여학생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바로 ‘근우회 사건’이다. 두 번의 구금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해 몸은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박차정을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였다. 박차정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3~4월쯤이었다.●독립투쟁·문학 공통관심… 사랑으로 발전 박차정은 등단을 권유받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김원봉도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독립투쟁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관심사는 사랑으로 승화됐다. 두 사람은 1931년 3월 결혼했다. 김원봉은 난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설해 투사들을 양성했다. 이육사는 이 학교 1기 졸업생이었다. 박차정은 교관으로 힘을 보탰다. 김원봉은 일본의 침략이 격화되자 혁명세력의 통합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박차정은 그 산하에 난징조선부녀회를 만들어 당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을 규합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약산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8년 10월 10일 항일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약산은 의용대장이 됐고 박차정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다. 의용대는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활동을 했고 총을 들고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1939년 2월 박차정은 장시성 쿤륜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화베이지방으로 북상해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김원봉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 임정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군무부장 취임 직후인 1944년 5월 27일 부상의 후유증이 깊어져 아내 박차정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김원봉은 광복을 맞아 근 30년 만에 귀국했으나 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익 인사 김원봉에게 반대파의 백색테러와 암살 위협이 지속됐다. 미군정에 체포됐을 때 고문을 하고 수모를 준 경찰이 친일 앞잡이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풀려난 뒤 너무나 분해서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검열상과 노동상이란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1958년 숙청당하고 말았다.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좌우를 넘나들며 독립을 염원한 민족주의자였다.●약산 생가터엔 의열기념관… 서훈은 거부 당해 밀양 내이동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의열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흐르는 해천변에는 항일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준설 학예연구사는 “김원봉뿐만 아니라 박제혁, 최수봉, 강우규 의사 등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면서 “의열단에 최초로 참여한 사람은 알려진 대로 13명이 아니라 10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약산 집안의 9남2녀 중 4형제는 6·25 때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막내 김학봉(86)씨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다. 김원봉에 대한 유족과 밀양시민들의 서훈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열심히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왕손… 아버지 의친왕은 재평가돼야 한다

    [색다른 인터뷰] 열심히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왕손… 아버지 의친왕은 재평가돼야 한다

    “어머니인 의친왕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의 마지막은 늘 비극으로 끝났다. 대한제국 왕실의 비운은 당연히 겪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게 아흔이 다 돼서야 받아들여져요. 아버지 의친왕의 잘잘못을 역사가 정확하게 평가했으면 합니다. 그게 제 마지막 바람이에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녀’ 이해경(88) 여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이 여사는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조선왕조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떤 연유에서 이 같은 생각을 떠올릴까 궁금했다. 이 여사는 고종 황제의 친손녀다. 아버지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순종 다음 서열이었으나 일제의 견제 등으로 동생인 영친왕에게 황태자 자리를 빼앗겼다. 동생인 영친왕이 철저하게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과 달리 의친왕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독립운동가와의 접촉이 잦았으며,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려고 기도했다가 만주에서 일제에 발각돼 송환되기도 했다. 의친왕은 일제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지만 거부하며 항일정신을 사수한 왕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 이승만 정부가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으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이 여사는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등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의 미래를 바로 세우려 했던 고종 황제나 의친왕과 비슷한 고민을 문재인 대통령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생각한 대로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결과’는 ‘운명’이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친왕의 13남 9녀 중 다섯째 딸이다. 세 살 때 생모와의 이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사동궁(의친왕부·義親王府) 생활, 그리고 8·15 광복, 이어진 6·25 전쟁, 1956년 가혹한 현실을 피하고자 선택했던 도미(渡美) 등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 여정을 보냈다. 특히 그는 순탄치 않은 노년을 보낸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듯했다. 이 여사는 “아버지가 매일 술에 빠져서 살았다는 일제에 의한 역사적 오류가 아직도 그대로”라면서 “항일정신이 강했던 아버지는 일제의 핍박과 삼엄한 감시가 본격화되면서 매일 술집에 다니는 척해야 했다.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의친왕이 190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이토 히로부미가 대통(大統) 계승을 권유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했고, 1919년 중국 상해(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던 유일한 ‘왕손’”이라면서 “의친왕의 열정과 행동은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떠난 지 62년, 26살의 꿈도 많고 한도 많았던 앳된 여인에서 이제 미수(米壽)를 넘긴 ‘호호 할머니’로 변한 조선의 마지막 왕녀인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일제 치하에서 의친왕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사동궁을 찾았다. 그때마다 노래와 춤으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린 기억이 있다. 특히 길러주신 의친왕비(이하 지밀 어머니)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궁 밖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대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말을 옮길 수 있어서 조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역사 문헌 등을 보면 퍼즐처럼 맞춰지는 일들이 있다. 어렸을 때 갑자기 일본 경찰들이 집 주변에 늘었다든지, 해방 직후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사동궁을 찾았던 일 등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의친왕의 독립운동 행적은 어떻게 아는가. -미 컬럼비아대학 한국학과 사서로 27년간 일하면서 많은 한국 역사책과 자료를 접했다. 거기서 아버지의 흔적을 많이 찾았다. 또 유학 오신 한국 학자들이 나에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와 자료가 있는 미 도서관 등을 알려줬다. 미국에서 한국의 근대사를 공부했다. →여자로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있었을 텐데. -맞다. 어렸을 때는 상당히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역사 자료 등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심정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어쩌면 미국 생활이 아버지와 나를 연결해 준 것 같다.→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겠지만 특히 더 했던 것 같다. -한때는 드라마처럼 ‘궁’에서 호강하며 살았다. 어렸을 때 시녀들이 ‘공주마마’라고 부르며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줬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에 ‘왕족’이 ‘망국의 원흉’으로 인식되면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친북 인사로 몰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온 지 62년이 지났다. 한국을 몇 번 찾지 않았다고 알려졌는데. -맞다. 사실 떠나면서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당시 왕족이라는 굴레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사회에 대한 반감 등 때문에 한국에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말 안 가려다 생모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19년 만인 1975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1950년 중반에 미국 유학은 흔치 않은 일이다. 왕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당시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어 왕족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지밀 어머니 등 가족들이 먹을 쌀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밀 어머니가 나의 혼수품으로 주신 비단을 팔아서 연명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8군의 도서관에서 일할 때 친하게 지냈던 데이비드 스트릿맨이라는 군인의 아버지가 도와줘서 미 유학이 가능했다. →미국 생활은 어땠나. -비행기 값을 마련하고자 지밀 어머니가 사 주신 야마하 피아노를 팔았다. 비행기 표를 사고 남은 돈 80달러를 가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했던 것 같다. 다행히 텍사스의 메리 하딘 베일러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모두가 반대했던 미국행이라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한국과 연락도 끊었다. 사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도와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과 방학에는 식당과 백화점, 보육원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먹고살기 어려웠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아무도 내가 조선의 왕녀인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누가 쳐다보지 않았다. →의친왕비가 자신의 호적에 이 여사만 올리는 등 총애를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모, 낳아 주신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 -3살 때 헤어진 생모를 10년 후인 13살 때 화신상회(현 종로 제일은행 본점 자리)에서 만났다. 그 이후로 또 거의 본 적이 없다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잠시 같이 지냈다. 생모는 박금덕 여사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 정도로 정·재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여성이었다. 의친왕이 한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에 당찼던 것 같다. 내가 궁 생활을 힘들어 했던 것이 자유분방하고 당찬 생모의 성격을 닮아서인 듯하다. →일부에서 ‘공주’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히 잘못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뀌면서 고종 임금님이 황제가 되고, 왕자인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의친왕, 영친왕 등으로 봉작됐다. 그러니까 나는 왕자의 딸이지, 왕의 딸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마지막 공주’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내 밑으로 여동생들은 궁 생활을 하지 않았고, 위로 언니들은 돌아가셨다. 그래서 ‘마지막 왕녀’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인연을 못 만나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결혼할까 고민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었다.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복잡했던 우리 가정사를 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꿨는데, 막상 선택의 순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내가 힘이 미약하고 나서는 것을 싫어해 숨어 있었지만, 일제에 의해 왜곡·날조된 우리의 역사를 되찾는 일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나도 미력이나마 돕고 싶다. 글 사진 뉴욕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이해경 여사는 누구 -1930년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다섯 번째 딸로 출생. -1933년 생모인 박순덕씨 곁을 떠나 ‘궁’으로 거처 옮김. -1946년 경기여고 졸업 -1950년 이화여대 음악과 졸업 -1953년 미8군 사령부 도서관 사서 근무 -1956년 미국으로 유학 -1959년 미국 텍사스 메리 하딘 베일러대 졸업(성악 전공) -1969년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 사서 취직 -1996년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과장 정년퇴직 -현재 뉴욕의 컬럼비아대 근처 작은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음.
  • 의왕시, 경력단절여성위한 ‘힐링토크 콘서트’ 다음달 11일 개최

    경기 의왕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다음달 11일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한 힐링 토크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시청 대회의실에서 “새일드림! 행복찾기”라는 주제로 열린다. 공연은 세계적인 복화술사와 캐릭터 깡여사의 유쾌, 상쾌, 통쾌한 여성 스토리 토크, 비보이들의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 열린다. 시는 재취업과 진로 설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력단절여성들에게 많은 위안과 격려가 되는 진정한 힐링과 소통의 시간이 되도록 준비했다. 의왕시뿐만 아니라 타지역 여성들도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의왕새일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경제참여율은 20대에 70% 수준에서 30대가 되면 갑자기 50%대까지 떨어진다.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 때문이다. 현재 여성가족부와 시는 경력단절여성 방지와 재취업을 위해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운영하며, 생애주기별 취업지원을 하고 있다. 권오종 기업일자리과장은 “이번 힐링 토크 콘서트는 경력단절여성들의 자존감 향상과 취업의욕고취 등 여성취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독립운동 남편 옥바라지한 부인도 유공자입니다”

    “독립운동 남편 옥바라지한 부인도 유공자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 발굴 사업 주관 투옥된 가족 보살핀 박애신 여사 찾아 “부족한 기록·증언으로 인정 쉽지 않아”“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위해 옥바라지를 하며 평생 희생한 부인은 어떤 포상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한 겁니다.”정부는 지난 15일 202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내 이 중 26명에 대해 서훈을 수여했다. 발굴 사업을 주관한 이정은(64) 사단법인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이사장은 28일 “남편이나 시아버지를 포함한 독립운동가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기웠으며, 독립운동을 떠난 남편 대신 만주땅을 개간한 여성의 노력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한평생 희생한 여성을 독립운동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 ‘위대한 여성상’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을 넘어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희생한 여성도 사각지대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이사장은 이번 발굴 작업에서 찾아낸 박애신(1900년생) 여사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박 여사는 1919년 3월 9일 독립운동가 김태규 선생과 혼인했다. 파리평화회의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달하는 데 관여한 시아버지 김병농 목사와 남편이 서대문 형무소에 연이어 갇히면서 옥바라지를 했다. 출옥한 남편은 몇 개월 후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동교통부(국내 거점과 비밀 연락 업무)에 들어갔다. 의열단 등에서 활약하면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이 이사장은 “부부의 마지막 만남은 김태규 선생이 갓난아이가 보고 싶으니 미상의 역 플랫폼에 아기를 안고 서 있으라고 기별을 했던 것”이라며 “김 선생이 기차를 타고 가며 먼발치에서 부인과 아기를 바라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여사는 독립운동가 인정 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그는 정부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선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이사장은 보훈처의 용역공모사업에 따라 연구진을 꾸려 지난 1월 12일부터 4개월간 발굴을 진행했고 202명을 찾아냈다. 정부는 지난 15일에 훈장과 포장을 받은 26명 외에도 향후 검증을 통해 오는 11월 순국선열의 날, 내년 3·1절 등에 차례로 서훈을 수여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발굴 과정에서 애로사항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독립운동 기록을 들었다. 그는 “문헌이나 증언을 찾고자 4개월 발굴 기간에 2개월은 족히 헤맨 것 같다”며 “전체 독립 유공자 중 여성이 2%에 불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보훈처가 3개월 옥고를 치러야 한다는 독립유공자 기준을 ‘실질적인 독립활동 여부’로 변경하면서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빛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에서 수석 연구위원을 지낸 이 이사장은 2012년 퇴임을 하면서 대한민국역사문화원을 설립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전두환 측근 민정기 “회고록 ‘조비오 신부는 사탄’ 표현 내가 썼다”

    전두환 측근 민정기 “회고록 ‘조비오 신부는 사탄’ 표현 내가 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의 핵심 측근인 민정기 전 공보 비서관은 28일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이나 ‘거짓말쟁이’로 쓴 것은 바로 나”라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낸 의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 사실을 증언한 조 신부에게 이같이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민 전 비서관은 이날 뉴스1과의 통화에서 “전 대통령으로부터 초고를 받고, 구체적인 문장 표현은 나중에 내가 다 정리해서 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민 전 비서관은 또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 신부를 가리켜서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워딩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아니다. 확실히 기억은 없는데 막판에 내가 마지막 작업할 때 그런 표현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민 전 비서관은 “지난 2000년부터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준비했다”며 “고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했다는 주장이 허위라는 것은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 등 과거 자료를 통해 전 대통령이 초고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날짜는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2013년에서 2014년쯤 전 대통령이 초고가 다 됐으니 마지막으로 원고를 만들어 발매하라고 했다”며 “당시 전 대통령은 문장을 가다듬고 목차를 구성하고, 출간하는 것까지 온전히 민 비서관이 책임지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고 뉴스1이 전했다. 그는 “초고를 받은 후에는 내 책임하에 원고가 완성됐고 출판이 이뤄지게 됐다”며 “‘사탄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쟁이다’라는 표현 등 구체적인 문장 표현은 나중에 제가 정리할 때 다한 것”이라고 밝혔다.전씨가 원고 완성 후 봤는지에 대해서는 “이순자 여사에게 원고를 전달해드렸고, 이 여사는 원고를 봤지만 전 대통령이 봤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며 “원고를 작성하고 완성하는 것은 내 책임하에 이뤄졌다. 구체적인 표현도 제가 작성한 것이 맞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법원은 전날 전씨의 불출석에도 정식으로 재판부에 요청받은 게 없다며 재판을 열었다. 다음 재판은 10월1일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법정동 201호 대법정에서 진행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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