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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이단아, 그는 ‘읽는’ 사람이었다/박철화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자크 데리다가 세상을 떠났다.서양의 종교와 형이상학의 공통적 근거가 되었던 선험적 말의 권위를 해체하는 데 애쓴 그는 20세기 후반의 철학계를 내내 들쑤셔 놓은 이단아였다.그의 철학은 수세기에 걸친 서양의 사유 체계를 뒤집어보는 일이었다.그 체계란 전제된 도식 안에서만 유효한 체계이다.데리다는 바로 그 도식 자체의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모든 도식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배제의 지점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텍스트의 표식,흔적 또는 미결정 특성과 텍스트의 여백,한계 또는 체제,그리고 텍스트의 자체 한계선 결정이나 자체 경계선 결정과의 연관 속에서 텍스트를 텍스트로 읽는 독법”을 통해 텍스트의 다른 가능성을 찾았다.따라서 그를 따라다니는 해체의 꼬리표는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그의 벗인 들뢰즈가 그러했듯이 데리다의 철학은 긍정이며 생성이다.기존의 사유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문제를 이동’시킴으로써 그 안에서 배제되거나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 밝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이 데리다에게 그의 철학에 대해 묻자 그런 것은 없다고 답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즉 데리다로서는 세상에 보내는 철학적 메시지가 아니라,그 메시지를 철저하게 읽어내는 규범이 중요한 것이다.그러한 텍스트 읽기의 규범을 사람들은 해체라 불렀다.데리다는 그 해체의 시선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해서 헤겔과 마르크스 그리고 현상학의 정전들을 읽어내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데리다의 철학적 실천은 그의 삶과 연관시켜 보면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다.그는 1930년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인이다.따라서 그에게는 뿌리가 없다.존재의 뿌리 없음이 바로 철학사의 전통을 비껴나가 텍스트를 뒤집어 읽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철학자로서의 발걸음을 내밀었지만 그를 먼저 인정해준 곳은 오히려 미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학계는 오래도록 데리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의 저서가 발표된 직후부터 미국에서는 매년 그를 초청하여 특별 세미나를 개최하였고,철학과 문학계를 가리지 않고 열렬한 관심을 표명했다.반면에 프랑스의 학계는 데리다를 냉대했다.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는 그를 거부했다.물론 데리다 자신이 1980년 국제철학학교를 창설하여 교장을 역임했고,마침내는 고등사회과학원에 자리를 잡았으나,미국의 물질적 후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이것은 단절없이 서양문명의 전통을 지켜온 유럽과 새로운 지적 전통을 세워야 하는 미국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쨌거나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생을 마치고 이제야 데리다는 존재의 고향으로 돌아간 셈이다.그가 떠난 자리에 이런 말이 적혀 있을 것이다.그는 ‘읽는’ 사람이었다. 박철화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빈 집’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빈 집’

    “처음엔 사람이 보이고 그 다음엔 미장센이 보일 것입니다.‘빈 집’은 두 번 봐야 하는 영화죠.”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15일 개봉하는 영화 ‘빈 집’(제작 김기덕 필름·해피넷 픽쳐스·씨네클릭 아시아)은 다양한 의미의 망들을 장면 장면마다 촘촘히 짜넣은 영화다.얼핏 보면 어렵지 않지만,따지기 시작하면 의미의 안개 속을 휘젓게 되는.관객마다 다른 해석을 품고 돌아가도 좋지만,그래도 베니스를 매료시켜 감독상까지 거머쥔 감독의 의도가 궁금했다. #“빈 집은 소통하고픈 마음 속의 여백” 태석(재희)은 집집을 돌며 열쇠구멍에 전단지를 붙이고,전단지가 떼어지지 않은 집에 들어가 자신의 집인양 얼마간을 살고 나온다.왜 이렇게 빈 집을 드나드는 걸까.“빈 집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있는 여백 같은 거죠.누군가가 자물쇠를 열고 찾아들어와 그 빈 곳을 채워주길 바라는.” 태석은 그렇게 빈 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다.어느날 빈 집인 줄 알고 들어간 평창동의 고급 주택에서 멍투성이인 선화(이승연)를 만난다.태석은 남편의 폭력과 소유욕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난다. 고급주택부터 철거되기 직전의 아파트까지.김 감독이 카메라에 담는 공간의 계층은 다양하다.“제 영화에는 언제나 가족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이번에도 다양한 레벨의 가족과 그 안의 균열을 들여다보고 싶었죠.” 둘이 우연히 들어간 한 사진작가의 집엔 선화의 누드사진이 걸려 있다.과거 잘 나가는 모델이었던 선화.그녀는 사진을 여러 개로 조각내 다른 형태로 이어붙인다.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파동이 떠올려지는 장면이다.김 감독은 “(이승연을 캐스팅한 뒤)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일 수도 있다.”면서 “누드의 본질은 아름다움인데 음란 코드로만 바라보는 것을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태석은 골프공에 끈을 묶어 나무에 매단 채 스윙연습을 하곤 한다.그럴 때마다 선화는 그 앞에 머뭇머뭇 멈춰선다.“‘나를 이해할 수 있느냐.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물음”이라는 게 김 감독의 해석.소통이 되지 않았을 때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아무런 대답이 없는 태석의 골프공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균열된 가족이 화해하는 팬터지” 태석과 선화는 한 빈 집에서 노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살인범으로 오해를 사 경찰에 연행된다.다시 집으로 돌아간 선화와,감옥으로 가게 된 태석.감옥 안은 마치 정신병원처럼 몽환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팬터지처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태석은 선화가 상상해낸 환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감옥에서 4년간 사람의 시선 뒤에 숨는 훈련을 한 뒤 출소한 태석은 선화의 집에서 그녀의 남편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남편의 폭력에 맞서기보단 유령 같은 환상으로 도피하는 건 아니냐고 따져 물었더니 김 감독은 “불신으로 균열된 가족이 화해하는 영화”라고 반박했다.“남편과 태석이 실제로는 중복된 인물일 수 있어요.선화가 남편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고요.그렇게 보면 2명이 화해하는 영화죠.” 결국 이번 영화의 귀착점도 ‘화해’다.날 선 비판의 감각이 무뎌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더니 “갈수록 부드러워져 더 이상 영화를 못 찍게 돼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폭력의 수위도 낮아졌다.영화의 영어제목은 ‘3­iron’.가장 사용하기 어려우면서도 일단 공을 날리면 강렬한 힘을 발휘하는 골프채다.영화는 이 채를 휘둘러 날아가는 공으로 상대방을 가격한다.“‘폭력’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감독.폭력의 강도보다는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탐구하는 그는 이제 이단아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웠다.더이상 일반관객에게도 혐오스럽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대신 은유와 이미지의 바다는 더 깊어졌다. 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김미성기자 492naya@sportsseoul.com
  • [보러갑시다]

    ■콘서트 ■ 윤희정 콘서트 24일 오후 4시·8시 문화일보홀(02)3701-5757. ■ 나팔꽃 콘서트 10월1∼3일 오후 4시·7시30분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02)322-5720. ■ 이미자 오산 콘서트 10월2일 오후 3시·7시 오산문화예술회관(031)372-0602. ■ 플라워 콘서트 10월2일 오후7시 장충체육관(02)567-1318. ■ DJ DOC 대구 콘서트 10월2일 오후8시 대구 밀리오레 아미쿠스(053)621-9004. ■ 조영남 콘서트 10월5·6일 오후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749-1300. ■어린이 ■ 정글이야기 29일까지 서울열린극장창동(02)747-5161.배삼식 극본·정호붕 연출.키플링의 ‘정글북’을 각색한 가족뮤지컬. ■ 호두까기 인형 10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 1588-7890.모스크바 국립중앙인형극장의 인형극. ■ 브룸브룸 매직브룸 10월10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02)762-2741.마법학교를 배경으로 한 어린이영어뮤지컬. ■국 악 ■ 情가악회 4번째 공연 ‘情歌’ 23일 오후8시 유씨어터(02)762-0810. ■클래식 ■ 데이비드 러셀 기타 독주회 10월3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541-6234. ■ 전용우&김지성 ‘A Night of Ro- mance’ 10월4일 오후7시30분 영산아트홀(02)541-6234. ■ 장혜라 & 이지원 듀오 리사이틀 24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541-6234. ■ 김신경 피아노 독주회 23일 오후8시 금호아트홀(02)3436-5929. ■ 강수정 피아노 독주회 23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3436-5929. ■ 미 술 ■ 오수환 작품전 30일까지 가나아트센터(02)720-1020.기운생동하는 우주의 힘을 일필휘지의 선으로 풀어낸 ‘변화’ 시리즈. ■ 김춘옥 초대전 10월10일까지 조선화랑(02)6000-5880.‘은은함의 미학’을 살린 새로운 감각의 한국화. ■ 안종연 개인전 10월8일까지 갤러리 인(02)732-4677.‘빛과 여백’을 주제로 한 조각 형태의 평면작업. ■ 홍소안 작품전 10월11일까지 한전플라자 갤러리(02)2055-1192.광목 천 위에 그린 배채(背彩)기법의 소나무 그림. ■ 김기연 작품전 10월5일까지 가나아트스페이스(02)734-1020.펜화로 묘사한 손의 형상. ■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10월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02)724-2904.‘도시 위에서’‘비테프스크 위의 누드’등 주요 유화 작품과 드로잉,판화 등 120여점. ■ 이기칠 작품전 30일까지 김종영미술관(02)3217-6484.작가의 ‘작업실’을 만드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작품. ■ 그 너머를 보다 10월16일까지 스페이스C(02)547-9177.홍순명·박현주·김해민·한계륜 등 4인 그룹전.자연과 인간,빛,우주의 순환을 표현한 유화·아크릴·영상·평면 설치작품. ■ 신디 셔먼·바네사 비크로프트 작품전 11월21일까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041)551-5100.세계적인 여성 사진작가의 사진전. ■뮤지컬 ■ 크레이지포유 10월3일까지 세종문화회관대극장(02)552-4030.커비 워드 연출,남경주 배해선 출연.화려한 탭댄스가 빛나는 브로드웨이 코미디 뮤지컬. ■ 마리아마리아 10월3일까지 세우아트센터(02)6409-0901.성천모 연출.뮤지컬 배우 김선영의 모노 뮤지컬. ■ 찰리 브라운 11월21일까지 한양레퍼토리시어터(02)3141-8425.클라크 게스너 작·박선희 연출,곽상원 김경식 출연.인기 만화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7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 ■ 소나기 10월24일까지 건국대 새천년관 공연장(02)3445-7972.황순원 원작·유희성 연출,홍경인 최보영 출연.유년시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 ■연 극 ■ 초야 10월24일까지 상상블루극장(02)762-0810.박수진 작·손대원 연출,박기선 임채용 출연.옌볜 처녀와 결혼하는 농촌 총각 등 사회의 씁쓸한 이면을 풍자. ■ 로물루스 대제 10월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극장(02)399-1795.뒤렌마트 작·이용화 연출,정동환 김혜옥 출연.서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를 모델로 한 역사 희극. ■ 맨발의 청춘 10월6일까지 게릴라극장(02)763-1268.박현철 작·이윤주 연출,김광용 남미정 출연.주인공 괴짜 노인을 통해 우리 사회 노인의 성과 치매를 정면으로 다룬 연극. ■ 백마강 달밤에 10월1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745-3966.오태석 작·연출,성지루 황정민 출연.충청도 대동굿을 무대로 우리 전통 연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
  • 신동문 시전집·산문집 나란히 출간

    신동문 시전집·산문집 나란히 출간

    동문(東門) 신건호 혹은 신동문(1927∼1993),그를 만나는 일은 우울한 기쁨이다.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1940∼50년대의 공허와 혼돈을 저항과 참여의 시적 에너지로 발화(發話)시킨 그를 사람들은 ‘시대의 발언자’로 지목했으나,그 기억은 곧 비산(飛散)하고 말았다. 그렇게 잊혀졌던 그가 탐미적 풍토에 절어 있던 전후 문학 속에서 ‘시는 곧 상황이며,현실’이라는 말뚝 하나로 되살아났다.그의 시를 묶은 시전집 ‘내 노동으로’와 산문집 ‘행동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솔출판사 펴냄)가 최근에 발간돼 그에 관한 이런 기억의 단상들을 되살려놓고 있다. 그는 전후 문단에서 가장 극단적인 평가를 받은 시인이었다.한편에서는 “그의 시라는 게 절규일 뿐 예술에는 못 미친다.”고 폄하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의 반골정신은 현실에 맞서는 힘의 상징”이라고 편들었다.이런 와중에 그는 1963년 잡지 ‘세대’에 지상중계된 ‘순수문학이냐 참가문학이냐’라는 세미나에서 미당 서정주와 맞닥뜨려 이렇게 설파했다.“언제나 상황의 시를 써야 한다.즉 현실에서 기회와 소재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특수한 경지도 시인에게 취급되면 필연적으로 보편적 경지가 된다.나의 시는 전부가 상황의 시다.나의 시는 현실에서 생겨난다.나의 시가 뿌리박은 곳은 현실이며,돌아가는 곳도 현실이다.” 이렇듯 당대의 흐름에 맞선 반시적(反詩的) 페이소스를 앞세워 참여와 저항의 시를 써냈지만 그의 삶은 파행과 고난의 연속이었다.무슨 까닭인지 서울대 문리대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했고,경희대에 수영 특기생으로 입학했으나 늑막염으로 이내 학교를 떠나야 했다.그후 지병인 폐결핵으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요양원에서 소일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군에 자원 입대하기도 했다.이때 그가 겪은 전쟁은 그의 시세계를 이룬 진원지가 됐거니와,시대에 맞서 그토록 치열하게 엮어낸 시인의 삶은 그러나 1975년 그가 충북 단양에 칩거하면서 까마득히 잊혀지고 말았다. 시인 신경림이 “그의 시는 그 이전의 시인 아무와도 같지 않으며,또 그 이후 그와 같은 시는 아무에게도 없었다.”고 회고하거니와 새삼 전후 한국문학의 참여쪽 여백을 채워줄 그의 시를 다시 읽는 일은 우리에게 ‘우울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시전집 7500원,산문집 1만 3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안종연 ‘빛의 여백’展 갤러리 ‘인’서

    작가 안종연(53)이 ‘빛의 여백’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안종연은 지난 30여년 동안 회화를 시작으로 조각,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온 멀티 플레이 작가.나무,유리,알루미늄,스테인리스 미러 등 사용하는 재료도 범상치 않다.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는 ‘물과 빛’.흐르는 물,갇힌 물,빛을 투과하는 물,빛을 반사하는 물 등 다채로운 형태로 생명의 근원을 표현한다.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주제를 조각 형태의 평면을 통해 선보여 눈길을 끈다.작가는 검은색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미러를 드릴을 사용해 음각 또는 상감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전시장에는 640×480㎝ 크기의 대작을 포함,20여점의 ‘빛의 여백’ 연작들이 나와 있다.10월8일까지.(02)732-4677.
  • [논술비타민] 역사는 살아있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제시문 (가)와 (나)를 참조하여 (다)와 (라)의 차이점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뒤 그것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제와 연관지어 논술하시오.(1800자 내외)-연세대 2002대입 논술고사(인문계) 가개념적 지식의 한계나 상대성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왜냐하면 실재를 표현해 놓은 것이 실재 그 자체보다 훨씬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며,우리는 곧잘 이 둘을 혼동하여,이 개념과 상징을 실재 그 자체로 착각하곤 한다.이러한 미혹을 떨쳐버리게 하는 일이 바로 동양 신비사상의 주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그래서 불교의 선사들이 이르기를,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니,달을 인식한 후에는 그 손가락 때문에 우리가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또한 도가의 현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으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 따위는 잊혀지게 마련이다.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필요하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혀지고 만다.말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알고 나면 말 따위는 잊고 만다.” 서양에서는 의미론자인 알프레트 코지프스키가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어구로 똑같은 견해를 정확하게 표현했다.(…중략…) 동양의 신비사상가들은 궁극적인 실재란 추론의 대상이나 형상화할 수 있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그것은 우리의 언어나 개념의 근원이 되는 감각이나 지성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이다.(…중략…)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의 그림자 실제 길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묻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한 물체의 ‘진정한’ 길이를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그림자란 3차원 공간에 있는 점들이 2차원 평면 위에 투영된 것이며,그래서 그 길이는 투영의 각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마찬가지로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는 4차원 시공 속에 있는 점들이 3차원 공간에 투영된 것과 같으며,그것의 길이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카프라,‘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나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들의 이름만 나온다.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그때마다 누가 그 도시를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에 미쟁이들은 어디로 갔던가? 그 많은 보고(報告)들.그 많은 의문들.(브레히트,‘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다태조(太祖) 무황제는 패국 초군 사람으로 성(姓)은 조(曹),휘(諱)는 조(操),자(字)는 맹덕(孟德)이었다.태조는 어려서부터 임기응변하는 기지가 있었으나,멋대로 놀기를 좋아해,덕행과 학업을 닦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오직 양(梁)나라 사람 교현(橋玄)과 남양의 하옹만이 달랐다.교현이 태조를 일러 말하기를 “천하는 장차 혼란에 빠질 것인데,세상을 구할 만한 재목이 아니면 이를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천하를 안정시키는 일은 아마도 그대에게 달려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나이 스물에 효렴에 천거되어 낭관이 되었고,승진하여 제남국의 상(相)이 되었다.제남국에는 10여개의 현이 있었는데,장리들 가운데 대부분이 귀족과 척신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받는 일이 횡행하였다.이에 태조가 상주(上奏)하여 그 중 8명을 파직시켰고 음란한 제사를 엄금하니 간악한 자들이 모두 숨어버려 군내의 질서가 안정되었다.얼마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얼마되지 않아 기주자사 왕분,남양 사람 허유,패국 사람 주정 등이 호걸들과 연합하여 영제를 폐위시키고 합비후를 옹립할 계획을 세우고 태조에게 알렸지만,태조는 그런 제의를 거절하였다.왕분 등의 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동탁은 태조를 효기교위로 삼아 그와 함께 조정의 모든 일들을 의논하고자 하였다.그러나 태조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사잇길을 따라 동쪽(고향 초군)으로 돌아가려고 했다.호뢰관을 빠져나와 중모현을 지나갈 때 정장의 의심을 받아 현읍까지 압송되어 갔다.마을사람 중에 어떤 이가 태조를 알아보자 그에게 부탁하여 풀려나게 되었다.(진수,‘삼국지’ 위지(魏志)무제기(武帝紀)) 라그의 관직은 기도위로,패국 초군 사람인 조조인데 자는 맹덕이다.조조는 성을 나와서 초군으로 달아났다.그날 밤 진궁은 노자를 마련하여 조조와 함께 변장을 하고 칼 한자루씩을 가지고 슬그머니 관청을 벗어나 고향을 향해 말을 달렸다.3일 동안을 달려 성고지방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저 마을에 여백사라는 분이 계시는데,그분은 우리 아버님과 결의형제한 분이오.집안 소식도 들을 겸 오늘 밤 그곳에서 묵어가도록 합시다.” (…중략…) 여백사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다시 나와 진궁에게 이렇게 말했다.“집 안에 좋은 술이 없어 서촌으로 가서 술을 좀 사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나귀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중략…) 두 사람은 살며시 뒤꼍으로 다가갔다.그곳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묶어서 죽여버리는 것이 어떨까?” 조조가 진궁에게 속삭이듯 말했다.“내 생각이 맞았소.먼저 선수를 써서 처리해 버립시다.” 말을 마치자 조조는 진궁과 더불어 칼을 빼들고 들어가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니 여덟 사람이 죽었다.조조가 나머지 사람들을 찾아 부엌으로 가보니,그곳에는 잡으려고 묶어 놓은 돼지 한 마리가 있었다.진궁의 마음은 아프고 괴로웠다.두 사람은 급히 말을 타고 여백사의 집을 나와 달아났다.한 두 마장쯤 달려가다가 그들은 나귀를 타고 돌아오는 여백사 노인과 만났다.백사의 나귀 안장에는 술 두 병과 갖가지 안주가 실려 있었다.여백사는 떠나는 그들을 한사코 만류했다.조조는 듣지 않고 길을 서둘렀다.몇 걸음 가지 않아서 조조는 갑자기 칼을 빼들고 도로 돌아가서 여백사에게 “저기에 오는 저 사람이 누구입니까?”하고 소리를 쳤다.여백사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조조의 칼이 여백사의 목을 내리쳤다. 진궁이 크게 노하여 조조를 꾸짖었다.“조공,이게 무슨 짓이오!”“여백사가 집에 돌아가서 식구가 다 죽은 것을 보면 우리를 그냥 놔두겠소? 사람들을 풀어 우리를 뒤쫓을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꼼짝없이 큰 화를 당할 것이오.”“알고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의에서 크게 벗어나오.”“차라리 내 편에서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소.”조조는 차갑게 대답했다.진궁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나관중,‘삼국지연의’) 1.사오정,저팔계와 토론하다 “요전에 과거사 청산 관련 TV토론 봤니? 되게 짜증나더라.특히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를 성매매 행위 비슷하게 인식하는 모 교수 발언은 너무 심하지 않냐?” 사오정은 저팔계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글쎄,나도 우연히 토론회를 보았는데,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그날 그 교수의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 시기에 한국인들 중에도 잘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 자신도 반성하자는 의미로 얘기한 것인데 방송토론회 속성상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다고 봐.” 저팔계의 말에 사오정은 흥분했다.“너 잘 안봤구나.상대 토론자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공창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는 주장은 일본 우익들의 궤변’이라고 반박하자,그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한게 명백하다고 말했는데 누가 주장했나.’라고 하기도 했지.사회자가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 아닌가.’라고 했을 때도 ‘정신대 문제가 한국전쟁과 해방 이후 한국에 존재한 미군 위안부와 전혀 관계 없다고 하는 인식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라고 했어.정신대를 미국 위안부와 같게 취급한다는 소리 아냐?” 저팔계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래.그런 표현만 놓고 보면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그렇다고 그 교수의 발언이 정신대와 미국 위안부는 같은 것이라고 얘기한 것도 아니잖아.정신대 시절의 비양심적인 인간들과 미국 위안부 시절의 비양심적 인간들 모두 반성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는 동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 아닐까? 실제 그 이후의 발언을 보면 일본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했고,당시에 잘못한 한국인의 문제도 따져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에 내 판단이 맞을 거야.” 저팔계의 말에 사오정은 “말 뜻을 파악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똑같은 표현을 두고도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니….”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 때 삼장 선생이 들어왔다.“무슨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게들 하고 있느냐?” 둘은 자신들이 나눈 얘기를 들려주었다.“허허! 어려운 문제구나.언어라는 것이 정확한 듯하면서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마침 오늘 문제가 너희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을 듯하구나.” 2.삼장 선생,문제를 풀다 “자! 문제를 풀어볼까? 먼저 제시문 (가)와 (나)를 참조하라고 했으니 두 글의 중심 내용을 파악해야겠지? 제시문 (가)는 언어의 불충분성,또는 그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나)는 왕이나 영웅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관이나 역사 기술방식의 잘못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다.이런 점들은 문제의 서두에서 제시하고 있는 ‘동일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표현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다)와 (라)를 보면,똑같은 사건을 두고 서술자의 관점이나 인식의 차이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다)의 경우는 조조를 영웅으로 기술하고 있다.조조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임기응변하는 기지가 있었으나 멋대로 놀기를 좋아해 덕행과 학업을 닦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몇 사람은 영웅을 알아 보았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잘못된 부분보다는 그 업적 중심의 기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라)에서는 조조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또한 좋지 않은 품성이 나타난 사건을 자세히 서술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따라서 본론1에서는 앞서 예시한 것들처럼 똑같은 사건이 어떻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리 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서술하면 된다. 그 이후에는 ‘그것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제와 연관지어 논술하라.’고 하였다.따라서 본론 후반부에서는 현대에서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가 달라진 사례를 들면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밝혀야 한단다.역사에 대한 평가가 정반대로 달라진 경우는 많다.동학혁명은 과거에 ‘폭동’으로 해석됐지만 지금은 ‘혁명’으로 재평가되고 있고,광주민주화운동 역시 과거에는 ‘광주사태’로 불렸으나 현재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된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런 것과 관련해 친일청산,국가보안법 폐지,의문사 진상규명,이라크 파병,행정수도 등 많은 문제들이 현존하고 있다.결국,이러한 역사 해석의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일이 이번 논술의 관건이라 할 것이다.제시문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언어의 한계와 해석 관점의 차이로 인해 실재가 왜곡되거나 잘못된 인식이 싹틀 수 있으므로 이런 점에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3.삼장선생,덧붙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역사에 관해 좀더 얘기해보자.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게 마련이다.사회의 변화,문화의 변화 등 이 모든 변화가 곧 역사다.어느 역사학자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한 것처럼 역사는 과거의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현재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나아가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실로서가 아니라,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고 내일의 우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바탕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며,역사의 의미를 찾아 삶을 창조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역사를 공부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해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역사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가능한가.’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역사적 사고를 하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 있는 단초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점 때문에 논술고사에서 역사 관련 논제를 직접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이 제시문으로는 자주 나오므로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역사를 항상 오늘의 우리와 관련지어 생각하려는 자세와 올바로 역사를 보고자 하는 관점의 문제를 염두에 두며 공부하려무나.” 4.사오정 깨닫다 “예! 잘 알겠습니다.” 둘은 힘차게 대답한다.“팔계야! 우리 좀더 역사공부를 한 뒤 다시 한번 아까 그 문제를 토론해 보자.”“응.그때는 선생님 모셔놓고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하는지 시합하자.선생님 심판이 돼주실 거죠?” “물론이지.그런데 심판 봐주는 값은 얼마나 줄거니?” 삼장선생의 말에 둘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논술강의가 이어집니다. 논술과 심층면접 지상강의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http://cafe.daum.net/seoulinseoul로 문의하면 선생님들의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법학이수증명 미리 받아야

    2006년 사법시험부터 도입되는 법학과목 이수제도와 관련,법무부가 미리 학점이수 증명 자료를 접수받는다. 법무부는 10월 한달 동안 예비수험생들로부터 ‘법학과목 이수증명’을 받는다고 19일 밝혔다. 이 기간 동안 법학과목 이수증명을 제출한 수험생들은 2006년 시험에 응시할 때 증빙자료를 별도로 낼 필요가 없다.또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를 개인별로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할 방침이다. 이수증명을 앞당겨 받는 것은 수험생들이 시험 직전에 관련 서류를 챙기느라 분주해 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아울러 법학과목으로 인정해야 할지 모호한 과목이 더러 있는 점을 감안,수험생 개개인에게 법학과목 인정여부를 미리 확인시켜 준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수험전문가들은 “법대졸업생 같은 경우 큰 무리가 없겠지만 비법대생들의 경우 취득학점 증명을 제출해 법학과목 이수제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수험생들로부터 법학과목 이수증명을 받는 한편 각 대학과 대학원에 공문을 발송,현재 법학 인정과목에서 누락되거나 추가할 과목이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수험생들의 이수증명과 대학·대학원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법학과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작업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일반 법대를 졸업해 법학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수험생은 학위증서나 학위증명서 사본을 제출해야 한다.일반 법대 외에 학점은행이나 독학사,방송통신대,경찰대 등에서 법학학사 학위를 받은 수험생은 ‘학점취득증명서’를 내면 된다. 또 법학사 학위가 아니라 그냥 법학과목만 이수했을 경우 법학과정이 있는 학교에서 법학강의를 들었다면 학교장 명의의 ‘법학과목 학점취득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면 된다.법학과정이 없는 학교에서 학점을 땄다면 ‘성적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법학과목을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여백에 연필로 취득학점의 합계를 적어서 내야 한다.대학이 아니라 학점인정기관에서 얻은 학점은 한국교육개발원장 명의의 ‘법학과목 학점취득증명서’를 발급받아 법무부에 내면 된다. 법학학점을 받은 곳이 대학 등 여러 곳으로 나눠져 있다면 그에 걸맞은 자료를 준비해 제출해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똑떨어지는 법학과목이야 별 문제 없겠지만 모호한 과목들이 있다.”면서 “이들 과목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보완작업을 해 나갈 예정인 만큼 수험생과 각급 학교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법무부는 2006년 전에 법학과목 관련 자료를 최대한 DB화하기 위해 이번뿐 아니라 내년에도 몇차례 더 법학과목 이수증명을 받기로 했다. 법학과목 이수제도는 법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된 제도로 35학점 이상 법학과목을 이수했다는 증명을 제출해야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로 2006년 시험부터 시행된다.수험생들은 법무부 사법시험 홈페이지(www.moj.go.kr//barexam)에 접속,양식을 다운로드받아 관련 서류를 첨부한 뒤 직접 법무부를 찾아가거나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무심으로 빚은 연잎·참새 茶器-8일부터 연파 신현철 찻그릇전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의 도예,특히 다기(茶器)는 여전히 일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도예 1세대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지만 우리 같은 2세대까지 그런 시류에 묻혀선 곤란하지요.” 도예를 시작한 이래 20년이 넘게 다기,그것도 찻사발 등 ‘한국 다기’의 원형을 탐색해 온 도예가 연파(蓮波) 신현철씨의 ‘찻그릇전’이 8일부터 9일 동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려 주목을 끈다.이번 전시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전통다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그리고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에 천착해 온 작가의 도예혼이 찻그릇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리라는 기대 때문. 신현철의 도예는 안팎에서 ‘우리 차문화를 이끌어온 동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거니와,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창작열이 고스란히 밴 연잎다기를 비롯,무궁화다기,참새다기와 찻사발,가루차 나눔다기 등 ‘신현철 찻그릇’ 200여점이 선보인다.자신이 소장해 온 작품에다 최인호씨 등 전국의 차인(茶人)들이 소장한 28점의 명품을 어렵사리 한자리에 모아 그의 도예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한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어찌보면 형태적으로는 너무 단순해 더 이상 더하고 뺄 것이 없어 보이는 게 지금의 다기지만 그의 손끝에서는 그런 인식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연잎다기. 지난 세월,신현철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던 연잎다기의 탄생 배경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어차피 지금의 차문화는 그 뿌리를 불교의 선(禪)문화에 두고 있는데,스님들이 손쉽게 바랑에 넣어다니며 차를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형태적으로는 연잎이나 연꽃 등 종교적 상징성을 가지며 바랑 속에 거추장스럽지 않게 들어갈 만큼 기능적으로 간편한 연잎다기를 만들게 됐다.” 이렇듯 우리 다기에서 일본 때를 쏙 빼내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일본식으로 비판받았던 일자(一字)형 옆손잡이 대신 둥그런 뒷손잡이를 창안해 냈는가 하면 찻그릇에서 모든 의도를 뺀 채 오로지 잘 생긴 유방처럼 누구나 편하게 대하고,얼른 집어들 욕심이 들게 만든 것들이라 처음 보아도 새록새록 피어나는 욕심을 느끼게 된다.이렇게 일궈온 그의 찻그릇을 두고 작가 정동주씨는 ‘가히 돈오(頓悟)의 경지’라고 말한다.“뭔가를 잔뜩 집어 넣고자 하는 욕심을 물리치고 오로지 무심만으로 빚은,그래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찻그릇에 뭣이든 자신의 느낌을 담을 여백이 있는 찻그릇이 바로 신현철의 다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중국,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초대돼 20여회의 창작전을 여는 동안 한결같이 ‘남의 길을 가지 않은 독창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찻그릇을 보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드러내 보였다.“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내 가마에 불을 지필 때마다 ‘진정한 내 것이라는 게 뭔가.’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문의(031)762-2525. 심재억기자 jeshim@ seoul.co.kr
  • 아룽구지소극장 ‘바다와 양산’

    아룽구지소극장 ‘바다와 양산’

    말의 성찬이 넘쳐나는 요즘 대학로 극장가에 침묵과 여백의 미덕을 환기시키는 ‘조용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9일부터 아룽구지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바다와 양산’(마스다 마사다카 작,송선호 연출)은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와 소설가 남편의 일상을 지극히 사실적이고,담담하게 묘사한 수채화같은 작품이다. 희곡을 쓴 마스다 마사다카는 서민들의 일상을 문학적이면서도 연극적인 텍스트에 담아내는 일련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인 극작가.‘바다와 양산’은 96년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수상했다.이번 공연은 지난해 3월 연출가 송선호와 한국 배우들이 일본 교토아트센터에서 한·일 공동프로젝트로 일본 관객에게 선보였던 작품을 한국 상황에 맞게 번안해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 정숙(예수정)과 소설가이자 고교 교사인 남편 준모(남명렬),그리고 이들이 세들어 사는 시골집의 순박한 부부 순배(박지일)와 화자(이정미).이별을 눈앞에 둔 정숙과 준모 부부에겐 그저 남들처럼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상이 있을 뿐 드라마틱한 갈등이나 구구절절한 아픔이 인위적으로 끼어들지 않는다.그래서 슬픔의 농도가 더욱 짙다. 마을 일이라면 무조건 발벗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순배는 준모에게 철없이 운동회에 나와달라고 부탁하고,화자는 딱한 준모네 사정을 알면서도 밀린 월세 때문에 고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낙네다.준모에게 원고료를 주러 왔다가 지붕까지 고쳐주는 출판사 직원 경수,준모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출판사 여직원 영신,그리고 맘씨 착한 간호사 남출 등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꼭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작품의 결을 윤기있게 빛내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대사와 대사 사이의 풍부한 여백.관객은 대사보다는 오히려 여백안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한다.이를 테면 정숙은 간호사 남출을 남편과 이어주려 하면서도 정작 영신이 찾아오자 남편 손을 자신의 무릎위로 끌어당김으로써 질투심을 드러낸다.연출자 송선호는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남명렬,박지일,예수정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40대 중견 배우들의 앙상블도 기대치를 높이는 요소.배우들 스스로도 “동양적 리얼리즘의 모범”(남명렬)“일상과 연극성이 잘 결합된 ‘웰 메이드’연극”(박지일)이라며 작품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한편 공연기획사 모아는 20대보다는 30대 이상 중장년 관객들이 한층 공감할 만한 공연인 점을 감안,공연장 옆의 베이비 카페와 연계해 무료 탁아서비스를 제공한다.인터넷(www.moaplan.com)에서 미리 신청을 받는다.공연은 26일까지,1만 2000∼2만원(02)744-0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첫 경험/ 문화부 심재억차장

    토요일 오후,동네 목욕탕은 조용했다.도회 중학교에 갓 입학한 시골뜨기에게 그날의 목간은 우아했지만 우세스러운 경험이었다.그 전에야 부엌문 닫아걸고 목간통에 앉아 어머니에게 철썩,철썩 등판 맞아가며 밀 것 밀고,닦을 것 닦은 게 고작이었다.그런 촌뜨기가 담임 선생님의 ‘용의검사’ 으름장에 기죽어 목욕탕을 가야 했는데,무얼 가져가야 할지 초장부터 헷갈려 곰곰 물리를 따져 챙긴 게 비누와 수건,그리고 여벌의 속옷이었다. 그 속옷 때문에 일이 꼬였다.목욕탕에 아무도 없었던 탓에 곁눈질로 누구를 흉내낼 염의도 없이 나는 팬티를 입은 채 탕 속에 들어가 느긋하게 자세를 잡았다.‘아무렴,그래도 명색이 뼈대 있다는 사대부가(家)의 혈족인데,비록 목간이지만 중인(衆人)이 번잡한 곳에서 어떻게 마지막 의관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단은 그때 벌어졌다.때밀이 겸 관리원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오더니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윽박질렀다.“얌마,탕 속에 ‘빤스’입고 들어가는 놈이 어딨어? 빨리 안 벗어.” 그렇게 세상을 배운 내가 지금은 이렇게 빤질거리는 깍쟁이가 됐다.너무 어쭙잖아서 그게 희망의 여백이기도 했던 소싯적. 문화부 심재억차장 jeshim@seoul.co.kr
  •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김태정 글

    새로운 감성의 작가를 만날 때는 언제나 설레게 된다.더구나 틀 지어지지 않은 상상력으로 무장한 독특한 작품을 들고 세상에 나올 경우는 특히 더 하다. 김태정(41)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사 펴냄)을 읽다보면 시인의 모습이 몹시 궁금해진다.등단 후 13년 동안 들인 공이 절실하게 읽히는,고른 수준의 작품들이 우선 궁금하고 그 속에 스민 ‘무공해 삶’ 또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시집 속 여백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나는 김태정의 의식을 따라가면 최근까지도 “286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이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의 삶이 어렴풋이 느껴진다.그 윤곽을 더듬는 과정은 자본에 오염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만가지 잡념들이 콩 튀듯 팥 튀듯”(‘별밭에서 헤매다’)하는 시인의 머리 속에는 가파른 현대사와 개인사가 공존한다.386세대인 시인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낮엔 공장을 다녔고 밤엔 야간대학을 다닌 모양이다.남들이 책에서 발견한 세상의 모순이 시인에겐 생활이었으니 한때 변혁의 꿈을 꾼 것은 당연하다. 이후 세상이 바뀌면서 남들이 앞다퉈 화해를 모색할 때 시인은 그게 힘들었나보다.“그 ‘적당히’가 적당히 안되는 불온한 시인이여”(‘샤프로 쓰는 시’)라거나 “곧을 태 곧을 정,까짓거 대나무처럼 살면 될 거 아닌가 뜻도 모르는 채 내 이름 석자에 온 생을 맡겼습니다.”(‘봄산’)라고 슬쩍 들려준다. 당연히 이런 ‘날 것의 자존심’은 변신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상처를 입는 법.시인은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그려보이지는 않지만 시집 곳곳에 “삭이지 못할/시퍼런 상처”의 흔적을 보여준다.오죽하면 만만치 않은 삶의 고독과 상처를 겨울산에 나누려고 할까?(‘겨울산’) 그러나 “길들여진 걸음으로는/차마 한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는”게 체질인 시인은 “곧고 곧아라 삶도 사랑도,내 이름대로만 살면 될 거 아닌가 겁도 없이”(‘봄산’)라고 다짐한다.그래서 봉지쌀을 먹고 실밥을 따는 노동의 세월을 거치고 “밥이 되고 공과금이 되고 월세가 될 글”(‘궁핍이 나로 하여’)을 쓰는 빈곤 속에서도 마음은 더 풍요로운 삶을 이어간다. 세월에 단련된 시인의 노래는 자신에게만 엄격하지 타인에게는 너그럽다.야간대학 동창생 엄고만의 삶을 따스하게 바라보거나 “늦게 나온 별처럼 깜빡깜빡/고단한 두 눈이 졸음으로 이울고”있는 노동자가 “거친 손으로 달구어진 아이롱”에서 “순결하게 달아오른 별”을 본다(‘해창물산 경자언니에게’). 이런 작품세계를 일컬어 시인 정우영은 장문의 해설과 함께 ‘민중서정시’라 이름붙인다.또 시인 노향림은 “풍자와 은유를 적절히 교접시킨 그의 시는 아무리 긴 시라도 짧은 듯 끝까지 놓지 않고 읽게 만든다.”고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시는 소설보다 몸이 작아서 아무래도 자기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는 한 평론가의 말은 김태정을 염두에 둔 듯하다.이윤 창출이란 괴물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자본주의 체체 안에 살면서 그 마저 부인하려는,이 아나키스트와도 같은 시인의 염결성 앞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삶과 경영이야기](19) 한국版 ‘로열 덜튼’ 꿈 김성수 한국도자기 사장

    한국판 ‘로열 덜튼’을 꿈꾸는 한국도자기 김성수(金聖洙·56) 사장은 ‘아버지가 사장을 지냈으니까 아들도 사장한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재벌들의 경영세습을 빗대는 ‘창업주의 아들’이란 말을 거부한다.그는 스스로 도자기 영역에 뛰어들어 독자적인 실력을 쌓아왔고,사장을 할 만한 경영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국산 도자기 개발에 한평생을 바친 전문경영인이라는 자신감이 강했다.올해로 환갑(61주년)을 맞은 한국도자기의 역사에도 그의 땀이 곳곳에 스며 있다. 한국도자기는 연간 5000억∼6000억원대의 도자기 시장에서 50% 남짓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도자기 업체다.‘ZEN’(여백의 미를 이용한 간결한 디자인을 의미)이란 고유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이 업체는 커피 머그 다기 도자기홈세트 등 수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연간 신제품 개발만 500∼600건에 이를 정도로 경쟁력의 핵심을 ‘기술개발’에 두고 있다. ●부친의 길을 따르다 진흙을 빚어 옥(가치)을 창조하는 작업.도자기 제조 작업이다.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친(김종호옹)이 고향인 충북 청주시 우암동 214 주변 3300여평의 허허벌판에 도자기 공장을 차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61년 전인 1943년이었다.‘충북제도사’라는 회사였다.하지만 부친은 의욕만 앞섰을 뿐 기술이 별로 없었다.기술이 변변치 못하다 보니 장사가 안돼 빚만 늘었다.어린 나이에도 너무 무모한 모험 같았다.밤을 새워 도자기를 구워댔지만,툭하면 깨졌다.외부 기술자를 불러 만들어봤지만 허사였다.도자기의 원천 기술이 부족한 터라 어쩔 수 없었다.금융권에서 돈도 꿔주지 않았다.어머니는 맨날 사채를 구해 당좌를 막고,이자 갚는 게 일이었다.4형제 가운데 막내의 눈에 비친 현실은 너무 안타까웠다.큰형(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도 부친을 열심히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집안 살리려 전공 바꿔 학창시절에는 상대나 문과대를 진학하려 했다.하지만 집안의 가세가 점점 기울었다.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겠다고 부모에게 손을 내밀 처지도 못될 정도로 살림은 어려웠다.그래서 마음을 바꾸었다.도자기를 전공해서 제대로 된 국산도자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공대에 진학하기로 했다.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이었다.그래서 한양대 공대(화학과)에 들어갔다.졸업한 뒤에는 곧바로 국립공업연구소 요업과 연구원으로 일했다.정부 산하 연구기관이었다. 이론과 실기를 갖춰다고 느낄 무렵인 73년 지금의 한국도자기에 연구실장으로 들어왔다.국립공업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만나 결혼한 부인을 ‘도자기 디자인 연구실장’으로 영입했다.연구실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도자기 공부는 계속했다.연세대 산업대학원에서 공업재료로 석사학위를,충북대에서는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두드리면 열린다 밤잠을 줄이며 도자기 제품의 질을 높이는 데 노력했지만,결과는 신통찮았다.이것 저것 사업을 벌여놓다 보니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물건은 팔리지 않았다.도매상에 가져가도 품질이 시원찮다며 받지도 않고,설령 물건을 팔아도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막히면 뚫린다고 했던가.수출쪽으로 눈을 돌렸다.고품질이 아니더라도 후진국 시장에는 먹혀들 것 같았다.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동남아 시장에서 제법 잘 팔렸다.당시 제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무역금융제도도 큰 도움이 돼 접시 그릇 등을 대량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자금사정이 호전되면서 밥그릇 국그릇 등 일반 사기그릇에서 디너세트(양식기) 등으로 제품의 종류도 늘렸다.영국에서 도자기에 새겨넣는 신종 무늬 기법도 들여와 제법 그럴듯한 제품을 만들게 됐다.빚도 갚고,품질도 개선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청와대가 부른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당시 영부인이던 육영수 여사로부터 연락이 왔다.70년대 중반쯤이었다.청와대 식기가 외국도자기 일색이고,국산은 놋그릇이나 플라스틱에 불과한데 고급 식기를 국산으로 만들 수 없겠느냐는 요청이었다.그래서 공부도 하고 문헌도 뒤적여 신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선진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본차이나’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건너갔다.본차이나는 소뼈(Bone)와 도자기(china)의 합성어.도자기 문화가 발달된 영국 등 유럽에서는 원래 도자기 문화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도자기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당시 영국은 극심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저렴한 가격으로 본차이나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제조 기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은퇴한 기술자와 컨설턴트 등도 대거 영입했다.지금 생각하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원래 본차이나는 일을 많이 하지 않은 소뼈(철분 함유량이 적음)를 구워 인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질을 추출한 뒤 고급 점토,장석(불속에서 물질을 붙여주는 재료) 등을 잘 섞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한치의 오차라도 생기면 불량품이 돼 내다버려야 했다. 남의 기술만 가져오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판단은 크게 빗나갔다.몇백개의 도자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천개를 만들어야만 했다.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본차이나 개발에 성공한 것은 82년쯤이었다.이때부터 대량 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회사의 틀이 제법 잡혀나갔다. 하지만 고민은 또 생겼다.좋은 제품을 생산했지만,영국의 제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특히 제품의 브랜드에서 한수 접어야 했다.내수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수출이 마음먹은 만큼 되지 않았다. ●슈퍼스트롱으로 한단계 도약 회사내의 ‘중앙연구소’에서 신소재 개발에 나섰다.88년부터 3년간 20억원을 투입해 젖소뼈가 함유된 특수초강자기인 ‘슈퍼스트롱’을 개발해냈다.일반 도자기보다 2∼3배 강하고 수분흡수율이 0.01% 이하이면서 가격은 본차이나보다 20∼30% 저렴한 실용적인 자기였다. 슈퍼스트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경영이 정상궤도에 진입했다.이듬해인 91년에는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증설하는 등 공격경영에 나섰다.슈퍼스트롱에 힘입어 국산 도자기의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졌다. 지금은 영국의 ‘로열덜튼’,독일의 ‘빌레로이 보흐’,미국의 ‘네녹스’ 및 ‘미타사’,이탈리아의 ‘사슬라기’ 등 세계 50여개국의 도자기 판매회사에 수출해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일부는 미국 독일 등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대량 공급하고 있다.인도네시아 대통령궁,노벨만찬장 식기,교황청 식기,청와대 식기 등이 한국도자기의 제품이다.덕분에 청주에 7개 공장,인도네시아에 3개 공장을 보유하고 월 350만개의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굴지의 도자기 업체로 자리잡았다. 이만큼 성장한 것은 남들보다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매년 연구·개발(R&D)투자에 매출액의 10% 이상 투입했다.신소재 개발,디자인 연구,색채연구 등이 핵심 연구 분야다.나노기술에 이어 살균·항균효과가 높은 은나노기술을 접합한 ‘은나노 그린차이나’‘은나노 파인차이나’ 등이 개발돼 조만간 선보이게 되는 것도 투자에 따른 기술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돈은 절대로 빌리지 않는다 누군들 돈 빌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돈을 빌려 사업을 하지 않을려고 애를썼다.2000년부터는 한푼도 빌리지 않는 무차입경영을 이어가고 있다.사업 초창기에 부모들이 사채를 꾸러 다니는 초라한 모습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인도네시아 공장 3곳을 증설할 때도 돈을 빌리지 않고 영업이익을 낸 뒤 지었다.지금의 사옥도 96년에 땅을 사고 설계한 뒤 이익잉여금으로 건물을 완공한 뒤 2000년 7월에 입주했다. 한국도자기는 세계적인 도자기 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업계에서 유일하게 ‘디자인센터’를 보유하고,95년 4월 디자인스쿨 ‘프로아트’를 개설해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김성수 사장은 김성수 사장은 ‘다이아몬드 경영’을 지향한다.작지만 단단하고,빛나는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철학을 깔고 있다.공대 출신답게 소박하면서도 치밀한 그의 성격과 맞아떨어지는 개념이다. 김사장은 법인카드를 쓰지 않는다.회사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4형제가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한다.그래서 업무상 사람을 만날 때도 개인 돈을 쓴다. 개인용 승용차를 업무에 이용하고 기름값도 직접 낸다.주주로서 받는 일정액의 배당금으로 충당한다. 김 사장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그래서 노조가 없고,현안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해결한다. 본사 1층 로비에도 모은행이 입주하겠다는 것을 거부하고,판매장으로 만들 정도로 도자기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일요일에는 교회를 찾기에 골프를 즐기지는 않는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나의 디지털스토리] 휴가사진 예쁘게 찍는법

    [나의 디지털스토리] 휴가사진 예쁘게 찍는법

    요즘은 여행의 필수품 중의 하나가 ‘디지털 카메라’다.휴가를 가서 수 십장 아니 수백 장의 사진을 찍지만 막상 컴퓨터에서 보면 쓸만한 사진이 없어 허탈해진다.어떻게 하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만 주의한다면 여름의 추억을 담는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디지털카메라로 찍는 요령을 알아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변화를 시도하라 우리는 보통 눈 높이에서 ‘김∼치’를 하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그러나 좀 색다른 사진을 원한다면 서 있는 사람을 앉아서 찍어보자.아이들의 경우는 몸을 더 낮추어 아이의 눈 높이에서 찍어 보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인물사진은 가슴부근까지 찍는 ‘바스트 샷’을 기본이라고 하지만 과감하게 얼굴만을 찍는다든지,경우에 따라서는 눈·코·입만을 찍어보자. ●피사체를 중앙에 두지 말라 대개 정중앙에 피사체를 두고 찍는다. 하지만 가로 화면의 3분의1정도만 피사체를 두고 나머지는 풍경이나 경치가 나오게 찍어보자.다른 느낌이 난다. 세로도 마찬가지다.화면의 끝에 얼굴만 살짝 걸고 하늘,산을 배경으로 찍어도 된다. 다양한 게 재밌다.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초점(핀트)이다. 보통 디카는 중앙의 피사체에 초점이 맞게 설계되어있다.하지만 반셔터를 이용하면 이러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피사체를 가운데 두고 셔터를 반쯤 눌러 초점을 맞추고 그대로 누른 상태에서 화면을 구성하면 된다. ●욕심을 버려라 아름다운 풍경과 여자친구 얼굴까지 사진 한 장에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풍경이나 사람 둘 중에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서 찍어야 한다.아니면 맥이 없는 사진이 되기 십상이다.또한 인물사진은 세로로 찍는 게 좋다. 보통 디카는 가로로 찍는게 자연스럽다.하지만 인물을 가로로 찍으면 여백이 많아 인물에 집중되지 않는다.
  • [나의 디지털스토리] 휴가사진 예쁘게 찍는법

    요즘은 여행의 필수품 중의 하나가 ‘디지털 카메라’다.휴가를 가서 수 십장 아니 수백 장의 사진을 찍지만 막상 컴퓨터에서 보면 쓸만한 사진이 없어 허탈해진다.어떻게 하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만 주의한다면 여름의 추억을 담는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디지털카메라로 찍는 요령을 알아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변화를 시도하라 우리는 보통 눈 높이에서 ‘김∼치’를 하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그러나 좀 색다른 사진을 원한다면 서 있는 사람을 앉아서 찍어보자.아이들의 경우는 몸을 더 낮추어 아이의 눈 높이에서 찍어 보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인물사진은 가슴부근까지 찍는 ‘바스트 샷’을 기본이라고 하지만 과감하게 얼굴만을 찍는다든지,경우에 따라서는 눈·코·입만을 찍어보자. ●피사체를 중앙에 두지 말라 대개 정중앙에 피사체를 두고 찍는다. 하지만 가로 화면의 3분의1정도만 피사체를 두고 나머지는 풍경이나 경치가 나오게 찍어보자.다른 느낌이 난다. 세로도 마찬가지다.화면의 끝에 얼굴만 살짝 걸고 하늘,산을 배경으로 찍어도 된다. 다양한 게 재밌다.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초점(핀트)이다. 보통 디카는 중앙의 피사체에 초점이 맞게 설계되어있다.하지만 반셔터를 이용하면 이러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피사체를 가운데 두고 셔터를 반쯤 눌러 초점을 맞추고 그대로 누른 상태에서 화면을 구성하면 된다. ●욕심을 버려라 아름다운 풍경과 여자친구 얼굴까지 사진 한 장에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풍경이나 사람 둘 중에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서 찍어야 한다.아니면 맥이 없는 사진이 되기 십상이다.또한 인물사진은 세로로 찍는 게 좋다. 보통 디카는 가로로 찍는게 자연스럽다.하지만 인물을 가로로 찍으면 여백이 많아 인물에 집중되지 않는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작가의 말-­대항해 닻을 올리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작가의 말-­대항해 닻을 올리며

    서울신문에 싣는 나의 새 글 ‘바다에 살어리랏다’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3조에 충실한 내용이 될 것이다.왜냐하면 나의 천착(穿鑿)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는 물론 바다 밑에까지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이런 헌법정신과 무관하게 우리의 바다와 우리의 ‘갯것’들은 총체적인 소외 속에 있었고,그래서 평등적 삶과 무관했다.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바다를 우습게 여겨 고작해야 술자리 안주 횟감 정도의 처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굳이 이웃 해양강국 일본이나 멀리 영국에서 모범사례를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21세기 들어 해양의 존재가 부각되면서,그 문화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일고 있다.마치 동해 일출이 떠오르듯 바다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생선회 값과 수출입 물동량이 뛰고 있고,해변 땅값이 뛰고 있으며,덩달아 섬들이 뛰고 있다. ●거대 담론 아닌 ‘우리네 바다’ 얘기할것 그러나 내 글은 그렇게 ‘뛰는 것들’의 요동과는 무관하다.바다에 관한 한 중심을 잡아갈 것이며,그래서 ‘어물전 꼴뚜기 뛰는’ 식의 우스움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무수한 바다 담론의 요동 속에서 전복되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중심잡기에 있다고 믿는다.해양을 통한 부국강병,대외 교류를 핑계삼는 해양의 거대담론에 발목이 잡힌 논의는 피해 갈 것이다.비좁은 물길과 얕은 바다,자잘한 잡고기와 어로에 목숨을 건 무지랭이 어민들,그런 익숙한 것들에 바치는 헌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돌이켜보면 바다는 천출(賤出)로 내몰린 갯것들의 터전이었다.문화사적으로 철저히 소외돼 왔으며,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는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존재였다.유사무서라지만,남은 기록의 신빙성도 허약하며,그나마 절대량이 부족해 기록 없음으로 인한 역사의 재구성은 어렵고 고단한 작업일 것이다.이런 까닭에 내가 풀어내는 갯것 이야기는 생활사,구술사,미시사,일상사,민속사를 통해 거대한 바다의 문화,바다의 역사를 복원해 나가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해양에 뜻을 둔 민속학자로서 이 강토 구석구석의 갯벌마다 찍어놓은 발자취로 유사무서의 텅 빈 여백을 채워갈 것이다. ●우리 웰빙의 원조는 ‘청산별곡’ 아닐까 무심결에 제목을 ‘청산별곡’의 ‘바다(아래아 바다)래 살어리랏다’에서 빌려왔다.요새 웰빙 타령이 흐름이 된 세상인데,우리식 웰빙의 원조는 본디 나문재조개랑 구조개랑 먹고 사는 청산별곡류가 아닌가 싶다.해중산인(海中山人)처럼 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는 유장한 삶의 현장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필자와 독자 그리고 바다가 지면상으로나마 네트워크로 연결돼 바다를 벗하며,곳곳을 누비게 되길 기대해 본다. ‘관해기(觀海記)’란 부제도 달았거니와 근대 100년을 지나치면서 그만 사라져버린 옛말을 다시 불러온 것이다.현대식 표현으로는 ‘주강현의 바다읽기’ 혹은 ‘바다 가로지르기’인데,관해는 보다 포괄적·중층적 심미안을 품고 있어 한결 의젓한 품격을 지닌 말이라 생각한다.일상에서도 되살려 두고두고 새롭게 쓸 일이다.더욱이 관해기라고 ‘기(記)’를 붙여 신조어를 만들고 보니 필자로서는 감개무량이지만,순 한글독자들의 반응이 영 다를 수도 있어 걱정도 없지 않다.아무렴 어쩌나.바다같이 너른 마음으로 품어주길 기대해 본다. 지금 내게 바다는 단순한 자연적 바다만은 아니다.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는 ‘생명의 바다’ 그리고 ‘인문의 바다’라는 은유적 함의를 오지랖 가득 담고 있다.복합학문적이고 중층적 서술로 접근해 가는 ‘생활문화사로서의 바다’ 혹은 ‘바다의 문화사’를 의도한다면 이해가 빠를까. 천공 우라노스와 대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오케아노스(Oceanos)에서 대양(ocean)이 비롯됐다.한국의 창세무가(創世巫歌)에서는 ‘천지가 암흑하여 하늘과 땅이 갈리고 바다가 생겨났다.’고 하였다.‘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인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났고,문명이 시작됐다.바다는 크고 유장하여 동서고금의 야광주 같은 이야기가 많으며,박람강기(博覽强記)의 절대적 지식량이 요구되는 지구 유일무이의 미지의 공간이다.그러나 아쉽고 또 조금은 ‘쪼잔하다’는 생각을 물리치고 이번에는 우리의 바다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우리 바다만 가지고도 너무나 할 말이 많은 까닭이다.중국,일본,오키나와 이들 이웃과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건너뛸 요량이다. ●‘멍게·해삼에 소주 한잔’ 행운 건질지도 ‘출사표’를 쓰고 있노라니 물때가 됐는지 물길 가득 바다 소리를 앞세운 밀물이 몰려온다.배를 띄울 참이다.서울신문 독자들과 일주일에 두 번씩 떠나게 되는 이 도도한 대항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미지의 보물섬에 닻을 내릴 것이다.아니면 황당하게도 해적이나 인어아가씨와 마주치거나,더러는 멍게 해삼에 소주라도 한잔 걸치게 되는 행운을 누릴지 누가 알겠는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작가의 말-­대항해 닻을 올리며

    서울신문에 싣는 나의 새 글 ‘바다에 살어리랏다’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3조에 충실한 내용이 될 것이다.왜냐하면 나의 천착(穿鑿)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는 물론 바다 밑에까지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이런 헌법정신과 무관하게 우리의 바다와 우리의 ‘갯것’들은 총체적인 소외 속에 있었고,그래서 평등적 삶과 무관했다.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바다를 우습게 여겨 고작해야 술자리 안주 횟감 정도의 처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굳이 이웃 해양강국 일본이나 멀리 영국에서 모범사례를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21세기 들어 해양의 존재가 부각되면서,그 문화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일고 있다.마치 동해 일출이 떠오르듯 바다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생선회 값과 수출입 물동량이 뛰고 있고,해변 땅값이 뛰고 있으며,덩달아 섬들이 뛰고 있다. ●거대 담론 아닌 ‘우리네 바다’ 얘기할것 그러나 내 글은 그렇게 ‘뛰는 것들’의 요동과는 무관하다.바다에 관한 한 중심을 잡아갈 것이며,그래서 ‘어물전 꼴뚜기 뛰는’ 식의 우스움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무수한 바다 담론의 요동 속에서 전복되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중심잡기에 있다고 믿는다.해양을 통한 부국강병,대외 교류를 핑계삼는 해양의 거대담론에 발목이 잡힌 논의는 피해 갈 것이다.비좁은 물길과 얕은 바다,자잘한 잡고기와 어로에 목숨을 건 무지랭이 어민들,그런 익숙한 것들에 바치는 헌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돌이켜보면 바다는 천출(賤出)로 내몰린 갯것들의 터전이었다.문화사적으로 철저히 소외돼 왔으며,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는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존재였다.유사무서라지만,남은 기록의 신빙성도 허약하며,그나마 절대량이 부족해 기록 없음으로 인한 역사의 재구성은 어렵고 고단한 작업일 것이다.이런 까닭에 내가 풀어내는 갯것 이야기는 생활사,구술사,미시사,일상사,민속사를 통해 거대한 바다의 문화,바다의 역사를 복원해 나가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해양에 뜻을 둔 민속학자로서 이 강토 구석구석의 갯벌마다 찍어놓은 발자취로 유사무서의 텅 빈 여백을 채워갈 것이다. ●우리 웰빙의 원조는 ‘청산별곡’ 아닐까 무심결에 제목을 ‘청산별곡’의 ‘바다(아래아 바다)래 살어리랏다’에서 빌려왔다.요새 웰빙 타령이 흐름이 된 세상인데,우리식 웰빙의 원조는 본디 나문재조개랑 구조개랑 먹고 사는 청산별곡류가 아닌가 싶다.해중산인(海中山人)처럼 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는 유장한 삶의 현장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필자와 독자 그리고 바다가 지면상으로나마 네트워크로 연결돼 바다를 벗하며,곳곳을 누비게 되길 기대해 본다. ‘관해기(觀海記)’란 부제도 달았거니와 근대 100년을 지나치면서 그만 사라져버린 옛말을 다시 불러온 것이다.현대식 표현으로는 ‘주강현의 바다읽기’ 혹은 ‘바다 가로지르기’인데,관해는 보다 포괄적·중층적 심미안을 품고 있어 한결 의젓한 품격을 지닌 말이라 생각한다.일상에서도 되살려 두고두고 새롭게 쓸 일이다.더욱이 관해기라고 ‘기(記)’를 붙여 신조어를 만들고 보니 필자로서는 감개무량이지만,순 한글독자들의 반응이 영 다를 수도 있어 걱정도 없지 않다.아무렴 어쩌나.바다같이 너른 마음으로 품어주길 기대해 본다. 지금 내게 바다는 단순한 자연적 바다만은 아니다.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는 ‘생명의 바다’ 그리고 ‘인문의 바다’라는 은유적 함의를 오지랖 가득 담고 있다.복합학문적이고 중층적 서술로 접근해 가는 ‘생활문화사로서의 바다’ 혹은 ‘바다의 문화사’를 의도한다면 이해가 빠를까. 천공 우라노스와 대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오케아노스(Oceanos)에서 대양(ocean)이 비롯됐다.한국의 창세무가(創世巫歌)에서는 ‘천지가 암흑하여 하늘과 땅이 갈리고 바다가 생겨났다.’고 하였다.‘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인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났고,문명이 시작됐다.바다는 크고 유장하여 동서고금의 야광주 같은 이야기가 많으며,박람강기(博覽强記)의 절대적 지식량이 요구되는 지구 유일무이의 미지의 공간이다.그러나 아쉽고 또 조금은 ‘쪼잔하다’는 생각을 물리치고 이번에는 우리의 바다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우리 바다만 가지고도 너무나 할 말이 많은 까닭이다.중국,일본,오키나와 이들 이웃과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건너뛸 요량이다. ●‘멍게·해삼에 소주 한잔’ 행운 건질지도 ‘출사표’를 쓰고 있노라니 물때가 됐는지 물길 가득 바다 소리를 앞세운 밀물이 몰려온다.배를 띄울 참이다.서울신문 독자들과 일주일에 두 번씩 떠나게 되는 이 도도한 대항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미지의 보물섬에 닻을 내릴 것이다.아니면 황당하게도 해적이나 인어아가씨와 마주치거나,더러는 멍게 해삼에 소주라도 한잔 걸치게 되는 행운을 누릴지 누가 알겠는가.˝
  • 전통과 자연으로의 회귀…장순업 개인전

    토기,장승,망부석,하르방,당초문,연화문,민화….서양화가 장순업(57·한남대 교수)은 이같은 우리 전통문화 품목들에서 따온 이미지들을 형상화해 왔다.그런 만큼 그의 그림에선 자연이 묻어난다.때론 천이나 종이가 아니라 갯가의 자연석을 캔버스로 삼기도 한다.그 돌 위에 아크릴이나 토분으로 사람의 형상 혹은 자연의 이미지를 새긴다. 서울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장순업’전은 작가의 이런 자연친화적 속성들을 알뜰하게 보여준다.주제는 ‘빛과 시간의 이야기’. 작가는 투과된 빛에 의해 바래거나 희미해진 형상들을 먹의 번짐과 공간의 여백으로 처리한다.또 빛을 그리기 위해 밝음과 어둠을 대비시킨다.고흐가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 밝은 빛을 그리기 위해 어둠의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도입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 전시에서 보듯 장순업의 근작들은 한지나 황토 등을 오브제로 사용해 전체적으로 중후한 느낌을 준다.전시는 20일까지.(02)544-8585.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최인호 소설 ‘상도’ 중국서 호평

    최인호씨의 장편소설 ‘상도(商道)’가 중국에서도 화제작으로 자리를 굳혔다.지난 2002년 중국에 수출돼 그해 ‘세계지식출판사’에서 출간된 ‘상도’는 최근까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공식적으로만 200만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상도’는 200여년 전 조선의 실존인물인 의주 상인 임상옥을 통해 진정한 상인의 길을 밝힌 작품.국내에서는 2000년 도서출판 여백에서 펴낸 이래 지금까지 300만부가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상도’가 어떻게 ‘상인의 나라’ 중국에서 이처럼 인기를 끌 수 있을까.먼저 한국과 중국이 유교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소설은 부자가 되기를 권한다.하지만 그것은 한·중·일 3국에서 모두 밀리어셀러가 된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류와는 구분된다.‘상도’는 벌거벗은 부자론을 설파하지 않는다.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돈을 번 다음의 태도가 중요함을 역설한다.작가는 가득 채우면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팔 할쯤 채워야만 온전한 계영배(戒盈杯)의 비의를 통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상도임을 보여준다.진정한 상인은 모름지기 ‘상불(商佛)’이 돼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상도’가 중국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데 대해 작가는 “중국이 경제발전에 속도를 내면서 상인의 도를 강조한 내 소설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며 “조만간 중국 기업의 CEO들을 대상으로 칭화대에서 ‘상도 강의’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상도’는 일본과 타이완에서도 출간돼 ‘상인정신의 교본’으로 호평받고 있다.한국 출판저작권 수출의 청신호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15년만의 답장 ‘그리운 어머니’

    “(…)두번 편지 잘 바다보앗다.너의 두 내위(내외)도 잘 잇고 우리 귀여운 다해(다혜),경재(아들의 이름은 성재였다)도 잘 논다니 뭇어(무엇)보다도 깁뿐이리로다(기쁜 일이다).(…)” 비록 언문체라 암호처럼 읽기가 난해하고 맞춤법도 틀리지만,그래서 어쩌면 더 정겹고 눈물겹게 읽히는 이 편지는 중견 작가 최인호(59)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1년전 미국에 머물던 때 한국의 며느리에게 보낸 것.그 속에는 손자와 아들 내외에 대한 걱정,집안 일에 대한 생각,답장을 기다리는 마음 등 어머니의 심정이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작가는 어머니의 부탁대로 살기는 커녕 답장조차 못했다.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어머니의 빈 자리는 갈수록 깊고 넓었다.최씨는 자신을 휘감는 후회와 그리움에 못이겨 십오 년 만에 답장을 썼다.“그리운 어머니.십오 년 만에 답장을 씁니다.(…)제 답장을 참으로 많이 기다리셨지요(…)저는 눈 뜬 장님이었습니다.(…)늘 아들인 저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제가 아플 때 펄펄 끓던 이마에 어머니의 손이 닿기만 해도 신열이 내리던 그 기적의 손 그대로,어머니…”(147쪽). 절절한 심정을 못이긴 작가는 내친 김에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여백 펴냄)라는 사모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정치·사회적으로 어지러운 시대에 작가로서 가족과 어머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를 던지고 싶었습니다.어머니가 삶의 절박함을 담은 ‘모르스 부호의 SOS’ 편지를 30년 만에 ‘내 마음의 우체통’에서 열어 본 심정입니다.어머님 나이가 되니까 그 마음의 결이 하나하나 다가와 교정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수필 형식의 가족 소설인 이 책은 작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예순 여덟 살 때부터의 운명하실 때까지의 모습과 그 뒤 묵주·흑백사진 등 어머니의 숨결이 배어있는 물건 등을 징검다리로 추억을 풀어가는 형식으로 이뤄졌다.그 속에는 홀로 3남3녀를 키우느라 두툼한 빵처럼 커진 손,아들을 6학년 때까지 여탕에 데리고 다닌 억척스러움 등이 등장한다.학창시절 젊고 아름답지 못한 어머니를 창피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일과 노인성 히스테리에 걸리신 어머니를 짐스러워한 데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도 토로한다. 그리움과 회한 등이 공존하고 어릴 적부터 자신의 원형질이 담긴 그 공간을 작가는 ‘치마 냄새’로 압축한다.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뛰어들던 그 푸근함 속엔 김치 냄새와 반찬 냄새,화장품 냄새 등이 어우러져 어머니만이 가질 수 있던 혼합된 냄새가 담겨 있다.작가는 그 냄새 속에 잠기며 피어나는 다양한 추억들을 떠올린다.마술사처럼 뒤집으며 구워주던 밀전병 먹던 일,해질 무렵 기상대 앞 골목길을 따라 함께 시장가던 황금빛 추억(192∼194쪽) 등이 아늑하게 등장한다. 이 회한의 감정은 작가에게 우표도 붙이지 않은 ‘받을 수 없는 편지’를 자주 쓰게 만들었다.그 때마다 작가는 어머니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추억에 잠겨 편지를 쓰기도 하고,“이제라도 전화를 걸어 오실 것 같은”(198쪽) 생생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시도 때도 없이 뻗치던 작가의 사모곡은 마침내 어머니만이 아니라 소중한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넓어지고 끝없이 메아리친다.“아아,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을까.살아 있을 때,함께 어울려 있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146쪽).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9일 개봉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

    31년전 칸 영화제를 흥분시킨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ete Sauvage)’은 시대를 앞선 지혜가 담긴 작품이다.어느 시대건 있음직한 인간과 문명의 어두운 모습을 비추면서 문명의 야만성을 꼬집는다. 영화의 무대는 시대를 알 수 없는 이얌 행성.그곳을 지배하는 푸른 거인 트라그족들은 엄지손가락만한 옴(인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homme)을 애완동물처럼 기르고 있다.트라그 지도자의 딸인 티바의 사랑을 받던 옴 테어는 티바가 헤드폰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엿보면서 그들의 지식을 하나씩 흡수한다.그러다 ‘지식의 헤드폰’을 훔쳐 도망친 테어는 길러지지 않은 옴들이 사는 지역으로 와서 다른 옴들에게 트라그족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준다.이를 알게 된 트라그들이 대규모 소탕작전에 나서면서 감독의 메시지를 조금씩 드러낸다. 9일 개봉하는 ‘판타스틱‘이 지닌 미덕은 주제의 보편성에 있는 듯.트라그가 옴을 벌레 죽이듯 짓밟고 살충제를 뿌리며 살상하고 그에 맞서는 옴(인간)의 모습은 ‘31년전 애니메이션’에 머물지 않는다.강자와 약자,서양과 동양 사이에 대립으로 역사상에 늘 존재해왔다.이 작품의 원제인 ‘야만의 행성’은 그 야만성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영화 속 강자인 트라그의 폭력성이 오만한 인류문명에 대한 경고음으로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탈리아의 부르노 보제토,러시아의 유리 놀슈타인과 더불어 세계 3대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르네 랄루 감독은 종이를 이용한 애니메이션의 거장.종이판에다 캐릭터의 동작을 일일이 그리는 수작업에 25명의 작화가가 3년 반 동안 매달렸다.비록 화려한 3차원그래픽과 세련된 그림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화면이 거칠고 촌스럽게 보일지 모른다.하지만 그 서투름과 낯섬은 섬세하고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과 더불어 동작의 여백을 남기면서 역으로 상상력을 한껏 북돋운다.애니메이션에 인색하던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도 26회 영화제에서 ‘특별상’으로 작품성을 인정했다. 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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