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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개봉 ‘럭키 넘버 슬레븐’

    브루스 윌리스, 모건 프리먼, 할리우드의 세대교체를 선언한 조시 하트넷, 그리고 ‘미녀 삼총사’‘킬빌’로 스타반열에 올라선 중국계 여배우 루시 리우. 이들 신구세대의 결합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마구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스릴러가 ‘럭키 넘버 슬레븐’(Lucky Number Slevin·22일 개봉)이다. 회사에서 쫓겨난 데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고 뉴욕의 친구 닉을 찾아온 남자 슬레븐(조시 하트넷). 그것도 모자라 뉴욕의 조직 보스(모건 프리먼)에게 닉으로 오해받아 끌려가더니 급기야 경쟁조직의 두목 랍비(벤 킹슬리)의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아 랍비 쪽에서도 닉이 진 빚을 갚는 대신 보스를 암살하라고 동시에 협박해온다. 물고 물리는 스릴러 드라마의 공식에 로맨스가 양념으로 끼어든다. 슬레븐은 닉의 아파트에 사는 여자 린지(루시 리우)를 사랑하게 되지만, 두 조직의 해결사 스미스(브루스 윌리스)가 20년만에 나타나면서 주변상황들이 실타래처럼 엉켜간다. 잠시라도 한눈 팔았다가는 이야기의 맥을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플롯은 독창적으로 반짝거리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사건들은 관객의 지능지수를 재보려는 듯 어지럽게 꼬여 있다. 띄엄띄엄 제시되는 가벼운 유머와 재기 넘치는 막판 반전이 복잡한 머릿속을 상쾌하게 정렬해준다. 언제부터인가 거친 동선의 액션물이 버거워 보이는 브루스 윌리스의 노쇠함을 재확인하게 되는데, 그 점이 팬이라면 안타까울 수 있을 것 같다. 기복없는 드라마 탓에 후반부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약점. 하지만 ‘쿨’하고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정교한 스릴러물에 점수를 줄 작정이라면 엄지손가락을 세워줄 만하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밀러 파일’

    ‘세일즈맨의 죽음’의 저자이자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세번째 남편으로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0∼50년대 연방수사국(FBI)의 면밀한 사찰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FBI의 ‘밀러 파일’이 공개됐다.AP통신이 정보자유법에 근거해 입수한 이 파일은 FBI가 신문기사는 물론 정보원들을 통해 밀러의 작가로서의 활동과 사생활을 면밀히 추적한 것을 보여준다. 이유는 밀러의 공산주의자 혐의 때문. 그러나 FBI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은 밀러가 공산당 동조자가 아니라 도리어 반대자라는 증거가 더 많이 입수된 채 1956년 끝났다고 AP는 전했다. 지난해 2월 향년 89세로 작고한 밀러는 평생을 베트남전 반대, 민권운동 지지 등으로 보낸 자유주의자. 밀러는 1956년 미 하원 비(非)미국행위위원회로부터 1940년대 같은 모임들에 참석했던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는 작가들의 이름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았다. 밀러는 이를 거부했다가 의회 모독 혐의로 기소됐었으나 나중에 대법원에서 번복됐다. FBI의 밀러 파일에는 한 정보원이 “밀러는 공산당에 환멸을 느꼈다. 입당했을 때 가졌던 기대와 달리 당이 밀러 내부의 창작력을 자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FBI에 보고한 내용이 들어 있다. 밀러 파일은 1944년부터 수집됐다.FBI는 밀러의 작품에 공산당의 영향을 집중 조사했으나, 한 정보원의 보고를 전하는 메모엔 ‘수명의 공산당원들이’ 밀러의 작품에서 배역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정보원의 결론은 밀러의 희곡은 “때때로 공산당의 지지를 받았으나 마르크스 이념을 추종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밀러의 장례식에서 밀러를 20세기 주요 극작가로 추모하면서 ‘양심의 문제들’에 대한 밀러의 경탄스러운 활동 때문에 겪은 ‘호된 시련’을 언급했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새영화] ‘착신아리 파이널’

    [새영화] ‘착신아리 파이널’

    22일 개봉하는 ‘착신아리 파이널’은 2004년 시작된 착신아리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편리한 도구에서 생활 필수품으로 발돋움한 ‘휴대전화’를 통해 공포를 자아낸다는 아이디어에 뿌리를 둔 영화다. 왕따를 당하던 여고생 ‘팸’은 결국 학교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이 팸의 휴대전화를 손에 넣게 된 친구 ‘아즈카’는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친구들에게 휴대전화로 죽음의 메시지를 보낸다. 며칠, 혹은 몇시간 뒤의 날짜와 시간에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예고를 담고 있다. 조건도 하나 붙었다. 다른 사람에게 죽음의 메시지를 보내면, 그 사람이 대신 죽는다는 것. 영화는 이 때문에 벌어지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동시에 서로를 의심하는 학생들의 공포에 초점을 맞췄다. 팸에 대한 미안함이나 반성 같은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팸이 자기 대신 왕따를 당했기에 미안함이 남아 있던 ‘에미리’만이 부산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친구 ‘진우’와 함께 이 죽음의 메시지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러닝타임 내내 쉴새없이 덜거덕거리는 영화지만, 아무래도 치명타는 공포영화인데 안 무섭다는 점이다. 자랑스러운 ‘IT코리아’의 실상을 재발견하는 결말에서는 심지어 대책없이 웃겨버리기까지 한다. 거기다 흥행이나 대중성을 감안해 선택한 듯한 ‘여고생과 왕따’라는 설정도 진부하다. 이 진부함을 털어낼 수 있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엿보이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KBS의 성장드라마 ‘반올림’이 훨씬 낫다.1·2·3편이 해마다 연달아 나왔다는 점도 그렇다. 뻔한 소재를 별다른 아이디어없이 울궈먹으려 들었다면, 전편을 잊을 정도의 몇년 정도 간격을 두고 속편을 만드는 게 관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면 예의, 배려라면 배려가 아닌가 싶다. 주연을 맡은 두 여배우 호리키타 마키와 구로키 메이사는 눈에 띈다. 한국배우로는 장근석이 출연했다.15세 이상 관람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선악의 회색영역에 있는 캐릭터가 좋아”

    호주 출신의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38)이 자신이 주연한 SF액션 ‘엑스맨:최후의 전쟁’의 홍보차 내한,1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어젯밤 도착하자마자 한국과 토고의 월드컵 경기에 이어 거리축제 광경을 TV로 지켜보느라 잠을 잘 못 잤다.”고 운을 뗀 잭맨은 “히딩크 감독이 무척 기뻐했을 것이며 한국과 호주가 월드컵 우승컵을 놓고 결전을 벌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월드컵 이야기로 회견장 분위기를 띄웠다. 15일 개봉하는 ‘엑스맨’시리즈 완결편에서 그는 1,2편 때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잃어버린 떠돌이 돌연변이 ‘울버린’을 연기했다. 첫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세계적 흥행스타가 될 수 있었던 데 대해 “운이 좋았고, 울버린이 선악의 회색 영역에 있는 캐릭터란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전편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에서 완결편의 감독(브렛 라트너)이 바뀐 사실에 대해서는 “감독의 감성적 면모가 추가된 점이 오히려 마지막편에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고 견해를 밝혔다. 울버린 캐릭터와 6년여 만에 헤어지게 된 심정이 어떻냐고 묻자 “극중에서 입던 옷이나 칼날을 집에 걸어뒀다가 울버린이 그리워지면 입어볼 것”이라며 또 한번 좌중을 웃겼다. 청바지와 재킷 차림의 잭맨은 스크린에서보다 한결 더 젊고 밝은 이미지였다.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국 국민들이 자국영화를 무척 지지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솔직히 한국영화는 잘 모른다.”고 답한 뒤 “그러나 아버지가 20년 동안 사업차 한국을 자주 오간 덕분에 한국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으며, 어제도 비빔밥에 김치를 먹었다.”고 친근함을 표현했다. 호주 출신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쉽게 입성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잭맨은 가장 긴 대답을 내놓았다.“호주는 연기의 기준이 높은 나라”라고 전제하고 “호주 연기자들은 세상에 본격 노출되기 전에 이미 3,4년 정도 연기단련이 된 만큼 시행착오도 적은 것”이라고 풀이했다.“할리우드는 출신보다는 독창성을 중시하는 곳이며, 한국배우 김윤진이 그곳에서 주목받는 것도 독창적 면모가 돋보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1994년 TV드라마 ‘로 오브 더 랜드(Law of the Land)’로 데뷔한 잭맨은 ‘엑스맨’ 이후 ‘섬원 라이크 유’‘스워드 피쉬’‘케이트 앤 레오폴드’‘반 헬싱’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다. 부인인 호주 여배우 데보라 리 퍼네스와 어린 아들을 기자회견장에 함께 데려와 남다른 가족애를 자랑하기도 했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공포영화 “ 더위야~ 레드카드를 받아랏”

    공포영화 “ 더위야~ 레드카드를 받아랏”

    영화 장르에도 유행이 있다. 제작자들도 관객들도 온통 액션물에 ‘필’이 꽂혀 있을 때가 있는가 하면, 코미디 쪽에 일제히 목을 빼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런데 공포물만큼은 예외이다. 수은주 눈금이 20도 어름으로 올라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름 극장가의 고정 레퍼토리. 올해는 어떤 납량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월드컵 열풍에 대작들도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6,7월 극장가를 국내외 공포영화들이 암팡지게 공략해보겠다는 태세들이다. 월드컵 열기보다 더 무서운(?) 영화가 도대체 뭘까. [1] 환생(8일 개봉) 공포에도 ‘색깔’이 있게 마련. 평소 “공포드라마는 뭐니뭐니 해도 동양식이 최고”라고 생각해왔다면 서둘러 봐두자(8일 개봉).‘주온’의 일본감독 시미즈 다카시가 윤회를 소재로 다듬어낸 공포물. 억울하게 살해됐던 사람들이 35년 뒤에 환생하는데, 이들이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다시 엮이게 됐는지의 과정을 더듬는 미스터리 드라마 구도가 밀도 높다. [2] 오멘(6일 개봉) 1976년 리처드 도너가 선보였던 공포영화의 ‘원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했다. 리처드 버튼, 리 레믹이 분했던 중년의 손 부부는 젊은 리브 슈라이버와 줄리아 스타일스가 연기했다. 테러리즘, 기온변화 등 종말의 전조로 동원한 소재도 현대적이다. 공포 강도 자체는 원작보다 덜하지만, 전반적으로 세련되게 리메이크됐다는 호평. 존 무어 감독. [3] 착신아리 파이널(22일 개봉) 왕따의 한을 소재로 한 학원공포물로,‘착신아리’ 시리즈의 완결편.22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개봉될 예정.‘링’‘주온’ 등을 제작한 일본 가도카와 헤럴드 픽처스와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 전체의 70%를 부산에서 촬영했다. 왕따를 못 견뎌 자살을 기도한 여학생 아스카는 수학여행에 동참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저주를 내리기로 결심한다. 한국배우 장근석, 일본의 인기 여배우 호리키타 마키 출연. [4] 아랑(28일 개봉) 장화홍련전의 근원설화이자 억울하게 죽은 여인 아랑이 원귀가 되어 나타나 원한을 푼 뒤 사라졌다는 내용의 고전 ‘아랑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공포. 끔찍한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두 형사가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원혼을 만나 그녀의 한을 대신 풀어준다는 내용.‘조신한’ 이미지의 송윤아가 터프한 형사로 변신했다는 점도 주목거리. 네티즌들 사이에서 올여름 가장 기대되는 공포로 꼽히고 있는 중. 안상훈 감독. [5] 크립(15일 개봉) 한정된 지하철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살인 추격전. 모처럼 만날 수 있는 영국산 공포스릴러. 늦은 밤 마지막 지하철을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들어버려 지하철 역사에 갇혀버린 여주인공이 살인마에게 쫓기며 필사적 탈출을 시도하는 하룻밤의 이야기. 제한된 공간, 단조로운 인물 구도인데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드라마 덕분에 지루할 겨를이 없다. [6] 아파트(7월6일 개봉) 이웃과 단절된 공간 아파트가 섬뜩한 공포소재가 됐다. 혼자 사는 세진(고소영)은 매일 밤 정확히 9시56분이면 건너편 아파트의 불이 동시에 꺼지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는데….‘분신사바’‘폰’ 등 공포영화 잘 만들기로 소문난 안병기 감독이 톱스타 고소영을 무려 4년만에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화제작. 포스터에서 겁에 질린 고소영의 큰 눈망울만 봐도 공포의 강도가 그대로 전해오는 듯.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스타지망 좋다만 속지마오

    스타지망 좋다만 속지마오

    당신도 영화배우가 될 수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피를 본 「스타」지망생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는 미끼에 걸려들어 금품을 빼앗기고 몸을 망치고, 그래서 화려한 「신데렐라」의 꿈 대신 사색(死色)의 낯빛이 되어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많다. 영화가 주변엔 지금도 「스타」지망생을 노리는 상습 사기꾼이 버젓하게 활약하고 있기 때문. 피해자들의 실례를들어 영화사기꾼의 숫법을 알아보자. 강정태(姜貞泰)(가명·24·고졸(高卒))씨는 2개월가량 영화배우가 된 줄만 알고 기뻐했다가 돈 20만원만 날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가 마의 손길에 걸린게 지난 6월. S예술학교에 다니면서 출연기회를 노리던 그에게 어느 날 두툼한 편지 봉투가 날아왔다. 『범인을 찾는 12인의 얼굴』이란 영화제목의 광고문과 신인배우 모집요강이 들어 있었다. 신문지 크기의 광고문에는 제작자 김동기(金東基)(가명), 감독 김중원(金中遠)(가명)의 이름으로 『연애시대(戀愛時代)』『흑춘(黑春)』 두편의 영화가 사진과 함께 소개됐고 「개봉박두(開封迫頭)」라고 박혀 있었다. 그리고 동봉한 엽서에는 『출연할 의사가 있으면 일차 면담하자』고 서울 광화문의 S다방을 지정해 놨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金씨는 있는 맵시를 다 내고 지정한 다방으로 나갔다. 먼저 만난게 제작부장이라는 사람이고 그 다음이 제작자 金모, 감독 金모의 차례 최종적으로 金감독은 『우선 촬영현장에 가서 「카메라·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일사천리의 진행에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촬영현장이라는 정능(貞陵) 골짜기에 가서 金씨는 실제로 「카메라」앞에 섰다. 촬영, 조명「스태프」들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앞얼굴, 옆얼굴을 찍고 간단한 「액션」도 해보았다. 이틀뒤 金씨는 조연으로 출연시킨다는 통지와 함께 「시나리오」를 받았다. 주연엔 申모, 尹모라는「톱·스타」. 2개월간 세 번 촬영장에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申, 尹같은 「톱·스타」는 그때마다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예명을 짓고 1년간 전속계약까지 체결한 金씨는 그 동안에 제작자에게 1만원에서 5만원단위로 15만원을 빌려줬다. 「카메라·테스트」에 3천5백원, 분장료 9천원, 제작부장, 조명기사, 촬영기사에게 잘 보이려고 준 돈이 근 10만원. 그리고는 끝장이 났다. 똑같은 「케이스」에 걸린 사람으로 朴종만(가명), 文진희(가명)가 있다. 두 사람은 모 영화사가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 응모했다가 낙방한 사람. 약간 실의에 잠겼을 때 예의 초대장이 왔고 각각 15만원~20만원씩 빼앗겼다. 여자인 文양의 경우 「매니저」를 자청한 청년에게 별도의 사례로 2개월에 5만원을 주었고…. 끝장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수상하다고 느끼면 이미 늦은 때였다. 사기꾼의 행각이 그만큼 완벽하기 때문에 배우지망생이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들이 조금만 침착했다면 그들의 출연영화가 실제로 제작되는 것인가를 알아봤어야 했다. 그들을 속인 『연애시대(戀愛時代)』란 영화가 제작됐는가도 알아봐야할 일이다. 제작자는 한국 영화제작자협회에, 감독은 한국영화인협회에 그 정체를 문의해봤어도 될 일이다. 그러나 정체를 알아보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얼마전에 이름을 대면 곧 알 수 있는 영화감독의 명의로 배우지망생을 농락한 사기한이 있었다. 그 사기한은 서울교외 팔당(八堂)에 근거를 두고 주로 여배우 지망생에게 야릇한 「카메라·테스트」를 며칠간 했다. 7,8명이 빈집에서 합숙하면서 「필름」도 들지않은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했다. 이런 경우는 피해자 자신이 수치심 때문에 고발을 못했다. 물론 그런 약점이 충분히 이용된 것이지만 상습 사기한은 숫법이 좀 더 치밀하다. 3년전에 피해자의 고발로 철창신세를 진 일이있는 K라는 사기한은 지금도 다른 이름(그에겐 10개 이상의 이름이 있다)으로 계속 성업중. 그가 내건 영화사 이름만도 「x亞필름」등 6개나 된다. 그는 신인모집에 1개월쯤 앞서서 월간잡지에 만들지도 않는 영화광고를 낸다. 윤정희(尹貞姬), 남정임(南貞妊) 같은 A급 배우의 사진을모아 「스틸」을 만들고 「개봉박두(開封迫頭)」를 선전한다. 이용하는 잡지는 주로 「영화xx」「xx잡지」등 값싸고 판매율이 적은 잡지. 그 다음엔 같은 이름으로 일간지 광고난에 신인모집 광고를 낸다. 잡지에 게재한 「개봉박두(開封迫頭)」의 영화는 「포스터」로 만들고 거기에 신인기용의 새작품을 발표한다. 제작 실적을 과시함으로써 의혹을 씻으려는 작전이다. 응모자가 나타나면 20명이든 30명이든 우선 면접통지를 우송하고 예의 「카메라·테스트」를 한다. 「테스트」비용 3천여원을 선뜻 내면 우선 합격이고 2단 3단계로 돈을 긁어낸다. 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혼자만 합격인가 싶지만 사실은 몇십명을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숫법으로 상대하는 것. 이들은 실제로 「시나리오」도 만들고 촬영흉내도 낸다. 7,8명이 작당해서 「카메라」를 메고 야외 「로케」를 나간다. 「레디·고」를 부르고 연기연습도 시키지만 사실상 그 앞에서 돌고 있는 촬영기는 「필름」도 들지 않은 빈털터리. 믿고 돈이나 주면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들중에는 현역감독, 제작자의 이름을 빌어 행동하는 철면피도 있다. 정진우(鄭鎭宇), 문여송(文如松)씨등의 이름이 이용된건 오래전 일이고 얼마전엔 가짜 정소영(鄭素影)감독이 나타나 말썽이 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영화제작은 당국에 등록된 영화사만이 할 수 있고 촬영에 앞서서 제작자는 작품신고를 하게 돼있다. 신인모집은 감독, 제작자가 「스카우트」하는 경우와 공개모집의 두 「케이스」가 있지만 사서함(私書函)을 이용하거나 신문 3행광고를 이용하는 따위 옹색한 짓은 않는다. 「스타」지망생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더욱 있을 수 없다. 또한가지 배우지망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는 이른바 각종명칭의 배우학원이다. 서울에는 한때 20에 가까운 배우학원이 난립하여 눈을 어지럽게 했다. 이중 실제로 일정「코스」를 정해 교육시키고 있는 학원은 불과 4,5개. 이중 10년 전통을 자랑하고 배우산출 실적이 있는곳도 한둘 있으나 나머지는 믿을게 못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기한이 그렇듯 영화계 주변의 사기한들은 피해자가 고발을 못하도록 교묘한 수단을 쓰고 있다. 일단 법망에 걸려도 빠져 나오기 일쑤. 영화의 부산물 치고는 엄청난 사회문제다. 배우 지망의 선남선녀는 우선 영화 출연에 돈이나 그밖의 것을 요구하는 제작자가 있다면, 그를 사기한으로 고발하는게 좋을 것 같다. [선데이서울 69년 10/12 제2권 통권 제 55호]
  • ‘뮤지컬계 신데렐라’ 미스사이공 김보경 vs 맘마미아 이정미

    ‘뮤지컬계 신데렐라’ 미스사이공 김보경 vs 맘마미아 이정미

    무명 단역에서 단숨에 주역으로 발돋움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 꿈 같은 동화를 눈앞의 현실로 마주한 두 배우가 있다. 올 여름 치열한 흥행 경쟁을 벌일 뮤지컬 ‘미스 사이공’과 ‘맘마미아’의 헤로인, 김보경(24)과 이정미(23)다. 둘다 이제 겨우 2∼3년차 신인인 데다 출연작은 한 손에 꼽을 정도. 그것도 일명 ‘떼(그룹)신’으로 불리는 앙상블 경력이 전부이다. 주역을 따냈다는 기쁨도 잠시, 한솥밥을 먹던 극단(신시뮤지컬컴퍼니)동료에서 라이벌로 숙명적인 대결을 앞둔 두 배우를 만났다. ●끼많은 배우 김보경 VS 야무진 배우 이정미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너두 많이 말랐네.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의 건강부터 챙기는 모습이 여간 다정하지 않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김보경은 2003년부터 신시에서 활동해 왔고, 단국대 연영과에 재학 중인 이정미는 2004년 ‘맘마미아’를 계기로 신시와 인연을 맺었다. 둘은 지난해 ‘갬블러’일본 공연때 앙상블로 함께 무대에 서며 친해졌고, 뒤이어 ‘아이다’를 8개월 동안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나이는 김보경이 한 살 많지만 이정미가 학교를 한해 일찍 들어가 동갑내기처럼 지낸다. “보경이는 끼가 참 많아요. 그러면서도 차분하고, 책임감도 크죠. 가진 게 많은 친구라 뭘 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이정미)“야무진 면은 정미 못 따라가요. 어른스럽고, 아는 것도 많아서 제 인생 상담도 곧잘 해주죠.(웃음)”(김보경) ‘신분 상승’은 했지만 무대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앙상블이든 주인공이든 배역은 중요치 않아요. 무대에 서는 그 순간이 기쁘고,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하고 싶은 욕심뿐이에요.” ●비운의 여인 ‘킴’ VS 상큼발랄한 소녀 ‘소피’ ‘미스 사이공’한국 공연(28일∼8월20일 성남아트센터,9월1일∼10월1일 세종문화회관) 소식이 전해진 이후 공연계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킴 역에 낙점될 것인가였다. 그만큼 킴은 여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매력적인 배역이다. 올초 ‘아이다’공연을 관람하러 온 영국 제작진이 김보경을 눈여겨보고 오디션 참가를 권했고, 치열한 경쟁 끝에 주역을 따냈다. 김보경은 “미군 병사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에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강인한 어머니의 면모까지 다양한 감정선을 오가는 연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킴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2년 전, 중년 아줌마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며 흥행신화를 일으킨 ‘맘마미아’(18일∼9월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결혼을 앞두고 친아버지를 찾으려는 깜찍발랄한 스무살 신부 소피의 이야기다. 초연 때 배해선이 소피를 연기했고, 이정미는 앙상블로 무대에 섰다.“내 나이 또래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는 그는 “앙상블은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소피는 춤과 노래, 연기까지 모두 소화해야 돼 공부가 많이 된다.”고 말했다. 박해미, 이태원, 전수경 등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신인인 그에겐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올리는 만큼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흥행 예측을 해달랬더니 약속이나 한 듯 “색깔이 너무 달라 비교하기 힘들다. 둘다 좋은 작품이니 둘다 보라.”고 권했다. ‘그래도 꼭 한 작품만 봐야 한다면’이라고 되묻자 잠시 마주보며 웃더니 “한국 초연작“(김보경)“검증된 흥행작”(이정미)을 내세우며 금세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오션스 트웰브(캐치온 밤 11시50분)1960년 프랭크 시나트라와 딘 마틴 주연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리메이크했던 범죄 영화 ‘오션스 일레븐’(2001)의 속편이다. 현재 3탄 ‘오션스 서틴’도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어 소더버그 브랜드물로 굳어지고 있는 인상이 짙다.‘스팅’(1973)을 연상케 하는 트릭과 반전이 기본 골격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즐거움은 눈이 현란할 정도로 캐스팅이 초호화판이라는 것.1편에서는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맷 데이먼, 앤디 가르시아 등 11명이 이야기 축을 이루더니 2편에서는 캐서린 제타 존스, 뱅상 카셀이 가세하며 ‘트웰브’로 간판을 갈았다.‘서틴’인 3편에서 합류할 스타도 눈길이 쏠린다. 현재 알 파치노와 휴 그랜트가 배역 크기에 상관 없이 출연을 결정했고, 여배우로는 앤젤리나 졸리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3년 전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가 운영하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1억 6000만 달러를 털었던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과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 라이너스 캘드웰(맷 데이먼) 등은 돈을 나눠 흩어진 뒤 조용히 살고 있다. 동료 가운데 하나가 베네딕트와 내통하며 은신처가 모두 발각되고, 훔친 돈에 이자까지 붙여 돌려주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오션 일당은 얼굴이 알려진 미국을 벗어나 런던, 로마, 암스테르담에서 한탕할 계획을 세운다. 러스티의 옛 애인이자 유로폴 수사관 이사벨(캐서린 제타 존스)과, 유럽 최고 도둑을 자처하는 프랑소와 툴루(뱅상 카셀)가 얽히며 일은 복잡해지는데….2004년작.125분. ●캐스트 어웨이(채널CGV 오후 6시40분)‘포레스트 검프’(1994)로 세계 영화 관객을 웃기고 울렸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톰 행크스가 6년 만에 의기투합한 휴먼 드라마다. 일에 치여 살다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는 내용. 톰 행크스가 배구공과 친구가 되고, 무인도에서 탈출하다가 배구공을 잃어버리고 안타까워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전 세계를 누비는 택배업체 페덱스 직원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여자친구 캘리(헬렌 헌트)와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 간만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자친구와 만났지만 긴급 호출로 또다시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척. 그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남태평양 무인도에 불시착하고 4년 동안 뜻하지 않은 나홀로 생활을 하게 되는데….2000년작.143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정보처리능력’ 50세가 최고라는데…

    ‘정보처리능력’ 50세가 최고라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한 이동통신사 광고카피로도 등장했던 이 말은 실제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저출산·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고령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괄시는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장년층에서 노년층까지 우리 사회의 중년들은 정말 능력 없고 의존적인 존재인가. 나이에 대한 차별은 인종차별·성차별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인가.28일 오후 11시에 방송된 SBS스페셜 ‘에이지즘(Ageism)-나이차별보고서’는 이같은 질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뿌리 박힌 나이차별(에이지즘)을 들여다봤다. 프로그램은 먼저 올들어 불어닥친 동안(童顔)신드롬과 늦둥이 엄마들의 모임을 들여다 보았다. 한때 잘 나갔던 30대 후반 여배우와,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들이 우리나라 배우들보다 평균 7살이나 많다는 조사 등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자기 자리에서 당당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 늙는 게 무섭다는 20대 여성과 주름을 없애 준다는 화장품 CF와의 관계, 나이를 묻고 답하는 것이 익숙한 서열사회 등을 진단한다. 제작진은 IMF외환위기 이후 연장자 우대문화가 사라지면서 능력 있는 40대까지 퇴직 압력을 받게 됐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공을 세웠어도 나이 때문에 밀려나야 하는 우리 현실은,‘나이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미국에서 최근 이뤄진 100세 노인의 행복한 은퇴식과는 괴리가 크다. 나이를 먹으면 과연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제작진은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UCLA와 버지니아대, 예일대 등 심리학·의학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의 정보처리능력을 좌우하는 ‘미엘린’이 최고치에 이르는 것은 50세이며, 개인에 따라 40∼60세에 절정기에 이른다고 한다. 또 나이가 들면 기억 용량은 줄어들지만 양쪽 뇌를 골고루 사용해 오히려 지적 수행능력이 높아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나이를 먹으면 능력이 떨어진다는 에이지즘의 전제조건이 틀렸다는 것을, 미국 한 은행장 비서로 일하고 있는 86세 할머니의 컴퓨터 능력 등을 통해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젊은이와 미디어에 비춰진 노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며, 고정관념을 깨야만이 사회 전체의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신·구세대가 함께 하는 세대공동체 프로그램 등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에이지즘 현상과 연구 등을 1시간 남짓 되는 시간에 모두 다루려다 보니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아쉬웠지만, 고령화 사회에 에이지즘의 문제점과 건강성을 찾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한번 쯤 되새겨볼 만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관심끄는 신작 뮤지컬 4편

    관심끄는 신작 뮤지컬 4편

    6월, 월드컵 대전 못지않은 뮤지컬 전쟁이 벌어진다.‘미스 사이공’‘맘마미아’‘지킬 앤 하이드’ 등 빅3의 아성에 신작 중소형 뮤지컬 4편이 가세해 뜨거운 경합을 펼친다. 이들 작품은 ‘아이 러브 유’와 ‘헤드윅’의 흥행 이후 최근 대학로 뮤지컬의 새 트렌드로 떠오른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과 콘서트 뮤지컬인 데다 모두 초연작이어서 한층 기대를 모으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김종욱 찾기´ VS ‘폴 인 러브’ 2일 동시개막하는 두 작품은 여러모로 경쟁적인 관계다. 먼저 근래 가장 주목받는 신예 창작인들의 대결이라는 점.‘김종욱 찾기’는 지난해 호평받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극작가 장유정, 작곡가 김혜성 콤비의 작품이고,‘폴 인 러브’는 ‘뮤직 인 마이 하트’의 연출가 성재준과 브로드웨이 유학파 출신 작곡가 이지혜의 합작품이다. 뮤지컬 스타 오만석·엄기준(김종욱 찾기)과 김다현(폴 인 러브)의 한판 승부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제작사간 대결도 눈길을 끈다.‘김종욱 찾기’는 그동안 뮤지컬에 투자자로만 참여해온 CJ엔터테인먼트가 처음으로 제작에 뛰어든 작품이고,‘폴 인 러브’는 ‘말아톤’의 영화제작사 시네라인 투의 첫 뮤지컬 제작이다. 첫사랑 김종욱을 찾아나선 여자와 첫사랑 찾아주기 대행업을 하는 남자의 티격태격 연애담을 따라가는 ‘김종욱 찾기’와 친동생의 약혼녀를 사랑하는 바람둥이 형의 예측불허 사랑을 그린 ‘폴 인 러브’는 둘다 기발한 설정과 재기발랄한 대사, 잔잔한 여운이 돋보인다. ●콘서트 뮤지컬,‘밴디트’VS‘브루클린’ 콘서트와 뮤지컬의 경계를 허문 ‘헤드윅’의 성공에 힘입어 2편의 콘서트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4일 개막하는 ‘밴디트’는 여성 탈옥수 4명으로 구성된 록밴드의 이야기다.1997년 개봉한 독일의 동명 뮤지컬 영화가 원작으로, 국내 제작사인 문화예술기획 렛츠가 판권을 사들여 무대화한 점이 이채롭다. ‘밴디트’의 강점은 록콘서트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강렬한 사운드. 이를 위해 강효성, 이영미, 김희원, 박준면, 전혜선 등 20∼40대 연령별로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닌 여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이들은 실제 밴드를 능가하는 연주 실력을 갖추기 위해 6개월 동안 집중 훈련을 받기도 했다. 27일 막올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브루클린’은 뉴욕 브루클린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거리의 가수 5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힘든 현실에서도 희망을 간직한 채 지저분한 쓰레기장을 무대 삼아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람들을 위로한다. 펑크, 하드록은 물론 팝, 가스펠,R&B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음악이 100분의 공연 시간을 가득 메운다. 강렬한 음악과 독창적인 구성은 이 작품을 2004년 초연 당시 브로드웨이 차세대 뮤지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PMC프로덕션과 오디뮤지컬컴퍼니가 공동제작하는 한국 공연에는 김소현 문혜영 홍지민 등이 출연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정말 위급한 상황 닥치면 강인함의 본성 드러나죠”

    “정말 위급한 상황 닥치면 강인함의 본성 드러나죠”

    |도쿄 조태성특파원|재난영화에서 대개 여배우들이란 악∼악∼ 소리만 질러대는 ‘음향효과’이거나, 온갖 멍청한 실수란 다 저지르는 ‘머저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엔딩쯤에야 구출자-물론 멋진 남자다-에게 진한 뽀뽀 한번 하는 것 외에는 좀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액세서리’다. 그러나 31일 개봉하는 영화 ‘포세이돈’(Poseidon)의 에미 로섬은 그렇지 않다.‘미스틱 리버’와 ‘오페라의 유령’ 등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던 에미 로섬은 ‘포세이돈’에서 강인하고 당찬 19살 아가씨 제니퍼 역을 소화해냈다. 지난 17일 일본 롯본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난 에미는 발랄한 19살 아가씨였다. 간단한 일본말로 인사하는가 하면 늦게 허둥지둥 기자회견장으로 뛰어들어오는 기자를 향해 환한 미소로 어서 오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19살에 어울리는 발랄한 모습이 돋보였다. 이런 아가씨-더구나 배역처럼 실제 나이도 19살이다-에게 ‘재난’이 와닿을까.“무엇보다 두려움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조금 노숙하다.“물론 나이가 어려 공포스러운 경험은 없었죠. 그래서 재앙과 관련된 비디오를 많이 구해다 봤어요.9·11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에 갇힌 소녀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도 구해들었고요.” 여기서 예외가 된 게 하나 있다. 바로 포세이돈의 원작인 1972년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선입견이 들까봐 일부러 보지 않았단다. 이번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바로 인간 내면의 강인함이다.“사람들은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그 때 진정한 본성이 드러나죠.” 때론 혐오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힘을 합치고 서로 도와가는 과정이 바로 재난영화의 매력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제니퍼라는 캐릭터가 강인한 여성이라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포세이돈은 어떤 영화? 재난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1972년작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리메이크. 거대한 해일을 만나 전복해버린 호화유람선 포세이돈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탈출행렬에 동참한 사람은 전직 소방관 로버트(커트 러셀)와 딸 제니퍼(에미 로섬), 도박꾼 딜런(조시 루카스), 동성애자 넬슨(리처드 드레이퍼스) 등이다. 스케일이 큰 영화를 찍어왔던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1400억원짜리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이런 저런 삐걱대는 소리 모두 젖혀 두고서라도, 결정적으로 전복된 거대한 배에서 탈출한다는 것, 다시 말해 배 바깥이 아니라 배 안의 온갖 오밀조밀한 공간을 다 헤쳐나가는 과정은 ‘스케일’보다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탐욕과 고뇌’에 초점을 맞춘 원작의 스케일 부족은 용서된다. cho1904@seoul.co.kr
  • 문정숙·이만희 시들해진「여보·당신」

    문정숙·이만희 시들해진「여보·당신」

    이만희(李晩熙·40) 문정숙(文貞淑·43)이 7년 간의 염문(艶聞)에 종지부를 찍고 헤어진다는 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별거(別居)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정식 부부관계도 아닌 이들에겐 별거 곧 몌별(袂別)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두사람의 몌별설(袂別說) 이면엔 연구할 만한 사정(私情)들이 숱하게 쌓여있다. 옛 배우자와 정식 이혼후 곧 결혼한다 3년 끌더니 이만희(李晩熙)·문정숙(文貞淑)의 몌별설(袂別說)은 객관적으로 볼때 결혼할 모든 준비를 완료해놓고 최후의 순간에 돌아선 느낌을 던진다. 그것은 두사람이 모두 각기의 과거를 정리하고 결혼에의 생활준비가 완료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일이지만 이만희감독은 문정숙과의 결합을 위해 이미 7년전에 전처와의 이혼수속을 끝냈다. 그리고 문정숙 역시 67년8월에 전부(前夫) 張모씨와 협의이혼, 자유의 독신여성이 됐다. 밀회의 어두운 애정생활에서 탄탄대로를 걷게된 이들은 예상처럼 동거생활을 시작했고 상호간의 호칭도「여보」와 「당신」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결혼식을 올려 정식부부로 맺어진다는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론일는지 모른다. 장본인들도 『곧 결혼식을 올린다』는게 3년전부터의 입버릇. 작년3월 李감독이 여배우 M양과 염문을 날렸을때도 그들은 『4월중엔 결혼아니면 약혼식이라도 올리겠다』면서 두사람의 애정불변을 선언했었다. 그랬던 그들이 결혼소식 아닌 이별소문을 날리고 있다. 7년간의 연애에 권태기가 접어든 것일까? 「사랑하기때문에」라고 결합할 권리를 주장했고 사실상의 부부로 인정됐던 그들이 권태기를 극복할 용기마저 잃은 것일까. 이 사랑에 관한한 李감독의 말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그는 3년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문정숙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두사람을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짝인 문정숙은 표현이 달랐다. 그는 『우리가 지금 20대처녀처럼 사랑만 찾게 됐느냐?』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보다 자녀를 위해서 살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두사람 모두 자식 있는 몸 가정을 소중히 여기지만 이 자녀문제와 각자의 가정문제가 사실상 두사람의 결합을 지연시킨 가장 큰 벽이된 것 같다. 현재 이만희감독은 전처소생의 3남매를 데리고 서울 행당동 301에서 살고있다. 11세의 맏딸을 비롯해서 1남2녀가 모두 A급사립국민학교에 다니고있다. 동네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李감독은 굉장히 부정(父情)이 강한 아버지. 3남매의 뒷바라지를 손수 다해내고 『단 하루도 자녀없인 못살 사람』이란다. 문정숙도 이점은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현재 모고등학교 3년생의 아들이 하나 있다. 그는 자신의 얘기를 아들이 지상으로 읽는게 가장 무섭다고 실토하면서 현재의 생활은 이미 자기중심에서 아들중심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무엇인가 그 아이에게 어미로서 물려줄게 있어야 하지않겠느냐』는게 문정숙의 생활태도. 문제는 두사람이 각기 「내 아이」는 있어도 「우리 아이」라고 부를 수있는 공동의 유대가 없는데 있는 것같다. 연인 내지 부부간의 위치보다도 이들은 우선 각자의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묶어놓을 혈연이 없다. 이것은 이만희감독의 최신 작품인 『엄마 결혼식(結婚式)』에서 흥미있는 비유를 찾을 수 있다. 3,4년간 가장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왔고 이른바 예술파감독으로 손꼽힌 이만희는 예술영화전멸의 69년에 단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콤비」작가인 백결(白潔)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작품속의 얘기는 李감독의 사생활, 사고방식을 비슷하게 그려냈대서 흥미거리다. 『엄마 결혼식』의 남주인공은 연애와 부성애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중년이다. 아내잃은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도 아이에 대한 집착때문에 결혼을 못한다. 『그사람은 너무 독선적 이에요. 아이들이 오면 내 정성껏 옷도 해입히고 내자식처럼 힘을 기울였어요. 그런데 조금만 비위가 상하면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버려요』라는 문정숙의 얘기. 그의 이만희에 대한 불만은 좀더 상세하다. 『어떻게 잘 살기위해 바짝 정신차리고 일하지 않고 되는대로 살려는 사람같아요. 술만 마시고. 주변사람들이 나쁜 탓인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런 생활이 너무 길었어요』 밑바닥엔 경제적인 이유도 깔린듯 그러나 문정숙의 이런 불평은 차라리 잘 살아가자는 아내로서의 고심은 될망정 몌별소문의 근본이유는 될 수 없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이해하는 배우의 입장이라면-李감독이 그의 작가로서의 작업과 생활사이에서 일어나는 「갭」도 문정숙은 이해하고 돌아봐줘야할 처지다. 「스타」문정숙과 감독 이만희는 당초 감독과 연기자의 위치에서 만났다. 감독과 배우의 사랑은 흡사 스승과 제자의 그것처럼 불균형한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는 좀 다르다. 李감독은 연상의 여인 문정숙에게 흡사 모성애같은걸 느낀 것 같다. 문정숙을 자기작품의 단골주역으로 쓴 李감독이 그후 한국영화의 대표급 감독으로 「크로스·업」되었지만 어쨌든 두사람 모두 한국영화계선 『없어선 안될 사람들이』란게 영화계 주변 얘기. 그런데 금년들어 李감독은 작품활동을 전폐하듯했다. 직접 기획한 『엄마결혼식』은 현재까지 李감독에게 무거운 짐만을 안겨줬다. 개봉하면 큰 돈을 벌지 모르지만 어쨌든 경제적 곤란도 크다는 소문이다. 물론 문정숙·이만희는 그들의 몌별설을 헛소문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전처럼 그 어조는 강경하질 않다. [선데이서울 69년 9/21 제2권 38호 통권 제 52호]
  • MBC ‘불꽃놀이’ 주연 한채영

    “오래 사귄 애인, 절대로 놓칠 수 없죠.” ‘신돈’ 후속으로 13일 첫 방송되는 MBC 주말드라마 ‘불꽃놀이’(연출 정세호·김홍선, 극본 김순덕, 제작 초록뱀)에서 여주인공 ‘신나라’역을 맡은 한채영의 당찬 각오다.‘쾌걸 춘향’‘온리유’ 등에서 맡았던, 사랑 앞에서 한없이 마음 약해지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대담하면서도 유쾌한 사랑의 복수극을 펼친다. MBC 드라마는 처음이라는 그는 “시놉시스를 구해 읽고 출연을 자청할 정도로 마음에 든 작품”이라면서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역할인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불꽃놀이’는 사랑을 찾아 위장취업한 평범한 대졸 ‘백조’ 노처녀가 어떻게 세상과 싸워 성공하는지, 그 과정에서 사랑을 이뤄나가는 ‘패자부활전’을 그린 드라마. 한채영이 맡은 30세 화장품 뷰티플래너 ‘신나라’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지만 ‘백수’ 신세다. 캠퍼스 커플로 7년간 사귄 동거남을 공인회계사로 만들었지만 그에게 어이 없이 차이고 만다. 결국 애인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을 찾아갔다가 그녀가 일하는 화장품 회사에 나이를 속여 고졸 사원으로 위장취업한다. 그곳에서 역시 그녀를 짝사랑하는 재벌 2세 연하남을 만나 지지고 볶으며 사랑을 가꿔 나가는데…. 그는 “지금까지는 주로 맹목적으로 사랑을 따르는 캐릭터였지만 이번에는 질투도 하고 복수도 하는,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맡는 역할도 더 현실적이 되는 것 같고, 실제 제 모습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드라마에서는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명랑한 성격에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도 하는 적극적이고 당당한 캐릭터라서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경험은 없지만 만약 7년간 사귄 남자에게 차인다면 그냥 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바람둥이여서 그와 계속 사귀지는 않겠지만 당한 만큼 (복수)해주고 보내겠다.”며 웃었다. 8등신 몸매와 서구적인 마스크로 ‘바비인형’이라는 별명도 얻은 그는 “여배우로서 섹시하다는 말은 칭찬으로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섹시함보다는 귀엽고 코믹한 분위기가 강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치어리더 복장 등 원래 나이보다 어린 고졸 사원으로 보이기 위한 깜찍한 패션도 선보인다. ‘불꽃놀이’는 MBC ‘짝’‘M’ 등과 SBS ‘홍길동’‘청춘의 덫’ 등을 연출한 정세호 감독이 10년 만에 MBC로 돌아와 만드는 16부작 미니시리즈다. 한채영과 함께 강지환, 박은혜, 윤상현 등이 호흡을 맞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생결단’서 마약쟁이역 추자현

    ‘사생결단’서 마약쟁이역 추자현

    이 여자, 아직도 구름 위를 노니는 표정이다.27일 개봉한 영화 ‘사생결단’(제작 MK픽쳐스)에서 마약중독자 ‘지영’으로 나오는 배우 추자현(26). 사실 ‘사생결단’같은 남성미 넘치는 영화에서 여배우란, 대개 액세서리에 그친다. 짐승처럼 날뛰는 이 남자에게도 순정은 있다, 그런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런데 추자현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킨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 황정민·류승범, 투톱 사이를 비집고 나온 것이어서 놀랍다. 정작 본인은 얼떨떨한가 보다.“칭찬은 많이 해주시는데, 아직은 멍해요.” 대신 황정민·류승범 칭찬에 침 마를 새 없다. 두 배우가 펼치는 환상의 앙상블에 연방 감탄사다.“와∼ 그걸,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저는 편집된 순서대로 촬영했거든요. 그런데 두 분은 장소 중심으로 찍다 보니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감정선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완벽해요.” 인터뷰 장소 벽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를 쓰다듬으며 너무 뿌듯하단다. 아무리 배우에게 출연작은 제 새끼같다지만 이 정도면 중증(?)이다. 더구나 포스터에는 두 주연의 얼굴만 있다. 조그맣게라도 자기 얼굴 안 나온 게 섭섭할 법도 한데, 포스터를 바라보는 추자현의 표정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솔직히 그분들 일하시는데 바짓가랑이 붙잡는 게 아니었으면, 적어도 나 때문이라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했던 게 제 마음이었어요.” 추자현은 브라운관에서 꽤 주목받았던 배우. 그러나 데뷔작 ‘카이스트’의 중성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런 역할만 계속 들어왔다.“처음엔 그것도 하나의 도전이었으니까, 나쁘진 않았어요. 그런데 다른 역할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 그게 답답했죠.” 그래서 ‘오 필승 봉순영’(2004년)을 끝으로 드라마 출연을 끊었다. 배우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보다 잊혀짐. 걱정은 없었을까.“왜 없었겠어요. 이 결정을 두번 다시 후회하지 않으리라 몇번이나 다짐했는데요.” 그렇게 푹 쉬다가 만난 영화가 ‘사생결단’이다. 오디션은 봤지만 캐스팅되리라고는 기대도 안했다.“이번은 안돼도 좋으니 다음 작품하실 때라도 불러주세요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하이힐을 벗어던지며 모든 것을 보여줬다.“잘했다기보다 열심히 한다는데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이런 바탕 위에 우러나온 게 바로 ‘추자현표 마약연기’다. 금단증상 때문에 발악하는 장면을 찍기 2∼3일전, 실제 중독자인 2살 연상의 ‘언니’를 만났다. 그때 깨달은 것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면, 중독자와 비중독자가 있다는 사실. 비중독자는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중독자는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이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며칠 동안 호텔방에 꼼짝않고 처박혀 있다 촬영에 들어갔다. 은근히 걱정된다. 근래에 보기 드문 호연을 펼쳐보였다지만, 거친 누아르에서의 마약중독자 역할이었으니 이미지가 너무 ‘쎈’ 쪽으로 쏠리지 않을까. 드라마의 ‘선머스마’ 이미지처럼. 정작 본인은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 영화작업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이번엔 지영이었으니 다음엔 또 어떤 친구가 나를 기다릴까, 또 어떤 감독님과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더 기대되는데요?”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길섶에서] 거리의 화가/이목희 논설위원

    20년 전 파리에 갔을 때 모든 게 멋져 보였다. 새벽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가는 길.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가 주연한 ‘파리는 안개에 젖어’ 무드 그대로였다. 노트르담 대성당, 베르사유 궁전은 근사했고, 문화선진국의 향내가 진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거리의 화가를 처음으로 봤다. 그냥 지나치면 문화인이 안될 듯싶어서 거금(?)을 들여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얼마 전 벚꽃축제가 열린 여의도 윤중로를 찾았다. 서울도 대학로, 인사동, 청계천에 거리의 화가가 생겼으나 이번에는 숫자가 많았다.30~40명은 될까. 빵모자를 삐뚜름히 쓰고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넉넉해 한참 지켜봤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고, 완성도가 높았다. 파리 화가들과 비교해 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 벽장을 뒤지니 20년 전 초상화가 둘둘 말려 있었다. 펼쳐보는 순간 파리의 문화 환상이 무참히 깨졌다. 어쩜 그리 못 그렸는지. 우리 거리의 화가들을 파리로 옮기면 그곳이 뒤집힐텐데…. 최근 몽마르트를 다녀온 이에 따르면 한국인 거리 화가가 꽤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분수에서 한밤중의 정사

    분수에서 한밤중의 정사

    映畵街이얘기저얘기-金洙容(김수용)감독 우리들은 항상 선의의 피해자이다. 작품 하나를 놓고 두 감독을 저울질하는 제작자나, 배역 하나에 두 배우가 걸려들어 본의아닌 경합을 하게 되고 끝내는「라이벌」의식이 노골화 되어 동료사이의 정을 끊어놓는다. 빼앗긴 쪽은 빼앗은 자를 저주하지만 체면상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상황은 쉽게 역전이 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여자주연을 선정할 때 우선 세아가씨의 이름이 후보자로 동시에 대두되며 그들의 이름은 南貞妊(남정임) 文姬(문희) 尹靜姬(윤정희)양이다. 도매금으로 물망에 올랐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는 두사람은 항상 의미없는 피해자가 된다. 이것은 쏟아지는 작품에 비해서 숫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 하기만한 「톱·스타」들의 유명세이며 한국영화계의 피할 수없는 악순환이기도 하다. 항상 여주인공 선정에서 톱스타 文姬·尹靜姬경합 「엘리자베드·테일러」와 「소피아·로렌」정도의 개성 차이가 있다면 몰라도 文姬와 尹靜姬 두 여우를 놓고 볼때 그들 사이엔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선의로 해석하면 두 사람의 연기의 폭이 넓고 유사형이란 뜻이 되겠지만 이것은 배우로서는 결코 장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배우의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강렬한 개성이라고 대답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리 잘 생기고 예뻐도 그 용모에 개성이 깃들지 않았으면 배우의 자격은 없다. 결코 미남이라고 말할 수없는「장·폴·베르몽드」나 「스티브·매퀸」의 줏가가 높은 것도 개성 제일주의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연희의 장편 『石女』를 「스크린」에 옮기게 되었을 때 그 주인공으로 두 아가씨가 예외 없이 물망에 오르게되었고 文姬양으로 낙착될 때까지 제작자와 감독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이러한 뒷 이야기를 듣고도 못들은 체 하며 「카메라」앞에서 태연히 연기를 해야하는 장본인의 마음도 약간은 괴롭겠지만 배역의 경합이 심하면 심할수록 열연의 도는 뜨겁게 마련이다. 사랑의 환상적인 의식도 영화에선 실제로 찍어야 그날밤 J공원 분수를 밤새도록 내뿜게 하고 그 솟구치는 물줄기 속에서 정사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다. 쉴새없이 폭발하는 수압(水壓)과 열띤 사랑의 유희….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러한 영상세계에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차라 서슴지 않고「카메라」를 그 곳에 세우게 된 것이다. 성격차이와 정신적인 학대속에서도 가정이란 굴레를 오히려 자신의 오만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책으로 삼고 있는「인텔리」가정주부 文姬의 밀회장소…사나이 申星一은 긴 침묵을 깔고 뜨거운 눈빛으로 여인을 뇌쇄시키려 든다. 여인은 견디기 힘든 시선을 피해 분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나이의 뜨거운 애무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의 눈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말이나 글로는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있지만 은막의 언어란 좀체로 간단하지가 못하다. 분수속에서 애무하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가 실지로 물속에 몸을 잠그고 그 숱한 물줄기를 다 맞아야 한다. 이런때 文姬양 만큼 고분 고분하게 감독의 말을 들어주는 여우도 흔치 않다. 『옷을 어떻게 할까?』 『또 불려 가게요』 요즈음 음란물 단속의 여파는 확실히 우리들의 작업장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나는 남녀 배우들 앞에 옷을 하나도 벗지않고 정사「신」을 연기할 수있도록 미리 연구한 도표를 내놓았다. 여배우의「클로즈·업」된 얼굴 둘과 남배우의 大寫(대사)된 손두「커트」, 그리고 남녀의 전신 한 장면으로 구분된 그림을 연결하는 것이다. 침대위에서 옷을 입고 뒹굴었다면 보는 사람의 빈축을 사기 안성마춤이겠지만 야외 나무 그늘이나 풀밭이라면 그래도 용서받을 수가 잇을 것같다. 보는 사람에겐 시원하기만한 분수지만 그 힘센 물줄기를 통째로 맞아가며 애무하는 연기를 해낸다는 것은 분명히 커다란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게 된다.「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文姬는 쉴새없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申星一의 뜨거운 호흡에 말려드는 동작은 계속되었고 감독이「카메라」를 멈출 때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참고삼아 여기 그 장면 하나 하나를 설명해 보자. 먼저「카메라」를 뒤로한 男과 女는 서로 얽혀 쓰러진다. 두번째는 남자의「클로즈·업」 된 손을 따르는「카메라」. 그 손이 여인의 허리에서 옷속으로 등을 향해 뻗어가고 다시 서서히 앞 가슴 쪽으로 옮겨진다. 세번째 그림은 여인의 충격적인 얼굴에서 특히 눈언저리를 크게 잡는다. 네번째는 다시 남자의 손. 이번 손은 목에서부터 서서히「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게 되고 그 손은 다시 배꼽아래로 뻗는다. 다섯번 째는 여인의 얼굴이 대사되고 특히 윤기있는 입언저리를 「클로즈·업」 한다. 이러한 장면들이 차례로 찍히는 동안 모름지기「섹스」나 음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카메라」에 포착된 곳만 움직임을 갖기 때문에 도무지 정사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촬영이 끝났을때 여배우의 양쪽 귀에선 물이 주르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 돼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밤중 물속에 잠겨 본의 아닌 뜨거운 정사를 연기하는 여배우의 얼굴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끝내 배역을 얻지 못한 또 한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톱·스타」들은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항상 경합속에서 살아야 하고 차가운「라이벌」 의 눈초리를 참아 넘길 수 있는 무딘 신경이 또한 필요한 것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8/24 제2권 34호 통권 제48호 ]
  • “해변의 여인으로 스크린 데뷔해요”

    “해변의 여인으로 스크린 데뷔해요”

    고현정과 홍상수의 결합, 어떤 결과를 낳을까. 아니 한동안 사라졌던 특급 여배우와 수차례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예술영화 감독간의 결합이라고 고쳐 얘기해야 할 듯. 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기활동에 들어가지 않은 왕년의 여배우, 그리고 상업성(특히나 예매권을 쥐고 있는 여성 관객들의 취향)을 외면했다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왔던 예술영화 감독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 되지 않을까. 공전의 히트작 ‘모래시계(1995)’ 이후 연예계를 떠났다가 지난해 SBS 드라마 ‘봄날’에서 화려한 재기를 했던 배우 고현정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으로 영화에 데뷔한다.17일 서울 광진구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해변의 여인’ 제작발표회에서 고현정은 시종일관 밝고 예의바른 모습이었다.홍 감독의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연기자 이전에 팬의 입장으로 홍 감독님의 영화를 예전부터 관심 있게 봐왔다.”면서 “그래서 출연에 거창한 결심이 필요했다기보다 제의가 왔을 때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상대배우 김승우에 대해서도 “아직은 많이 낯설어하는 나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잘 이끌어줄 것 같다.”면서 “함께 출연하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상수 영화’ 하면 생각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배우는 물론, 관객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고현정은 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현정은 “사실 기존 이미지에서 안 벗어나고픈 욕심은 있지만, 그건 저의 사소한 욕심”이라면서 “배우로서의 책임감도 있는 만큼 확실히 임해야 한다면 확실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해변의 여인’은 중래(김승우), 문숙(고현정), 선희(송선미), 창욱(김태우) 등 30대 인물 4명이 우연히 떠났던 여행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물론 홍 감독 영화답게 스토리나 캐릭터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5월말 크랭크업한 뒤 9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여담여담] 女자를 떼어내자!/김미경 문화부 기자

    여기자·여변호사·여의사·여배우…. 여러 직업 앞에 여성을 뜻하는 ‘녀(女)’자가 붙은 것 뿐인데 고정관념은 별 수 없나 보다. 여기자는 용감무쌍하고 여변호사·여의사는 기가 세며 여배우는 예쁘고 섹시하다는 고정관념들. 여기자로 살아온 지 8년째이지만 주변의 이같은 고정관념을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여성’이라는 타이틀은 언론의 가장 좋은 이야깃거리다. 남성도 견디기 힘들다는 육사와 해사, 공사에 이어 경찰대까지 여성이 수석졸업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사법고시 등에서 여성이 수석을 차지한 것은 벌써 꽤 된 얘기이지만 아직도 뉴스가 된다. 여성들만 모여 회사나 사무소를 차린 것도 여전히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겁 없는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최근 만난 경찰대 졸업생 친구에게 물었다.“너희 학교도 여성이 수석졸업하는 시대가 왔구나?”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이랬다.“남학생들은 공부 말고도 할 것이 많은데 여학생들은 공부 외에는 할 일이 없거든.”너무나 당연한 현상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한다며, 기자인 친구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경찰대를 수석졸업한 여학생은 우락부락한 슈퍼우먼이 아니라, 남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보통학생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여기자 성추행 사건’ 이후 언론계 안팎이 시끄럽다. 같은 여자, 그리고 기자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밝힐 것을 밝힌 것인데도 “주변에서 말렸다는데 여기자가 너무 드세서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말까지 들린다. 당연한 인권이 드센 여기자라는 고정관념에 묻혀야 한단 말인가. 지난해 영어연수에서 만났던 대기업 과장과 벌였던 논쟁을 아직도 기억한다.20여가지 직업을 늘어놓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한 직업을 분류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들 직업 중 ‘간호사’는 당연히 여성성이 강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장은 중성적인 직업으로 분류했다. 특정 병동에서는 남성 간호사가 필요하고 남성 간호사도 늘어나고 있는데 여성적인 직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때는 궤변이라고 생각했지만 간호사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가 9년만에 독자 감소 등에 따른 경영난으로 최근 종간했다. 다소 과격하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내왔던 잡지의 최종호를 보면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여성을 대변해온 잡지의 종말을 통해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녀(女)’의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내자.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가슴속 그림 한 폭] 김일해의 ‘어느 하루’

    [가슴속 그림 한 폭] 김일해의 ‘어느 하루’

    “김일해 화백의 꽃그림들을 좋아해요.” 첫마디를 들었을 때 ‘아름다운 꽃과 여배우’를 연상했다. 하지만 탤런트 채시라씨는 내내 꽃씨 이야기를 했다. “김일해 화백의 ‘어느 하루’란 그림이에요. 이상한 점이 보이시나요?” 뜬금없는 질문에 유심히 들여다 봤다. #1 연기는 꽃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는 작업 “백합이 소녀보다 크기가 훨씬 커요. 실제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그래서 전 소녀가 상상속에서 키워낸 꽃이라고 생각해요. 소녀가 상상의 꽃씨를 뿌리고 저만의 색깔과 크기로 꽃을 키워낸 셈이죠.” 예상치 못한 말에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중2때 처음 잡지표지 모델을 시작했어요. 그 어린 나이에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에게 연기는 상상의 꽃씨를 꽃으로 키워내는 작업이에요. 처음 대본을 받으면 전 여느 소녀로 돌아가 사색의 날개를 펴요. 그러면 꽃이 피듯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가 떠오르죠.” #2 사랑, 어떤 꽃이 필지 모르는 꽃씨 그가 처음 김 화백의 작품을 접한 계기는 남편이 결혼전 함으로 지고 들어온 그림을 소장하게 되면서부터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꽃선물이었죠. 바닷가에 붉은 맨드라미가 피어 있는 그림이에요. 처음엔 바닷가에 때아닌 맨드라미가 있어 의아했죠.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그림이었어요. 원래 결혼이 운명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의아한 것이지만 이상하게 편하고 포근한 거잖아요.” #3 딸, 내가 심은 소중한 꽃씨 우문일지 모르지만 그녀가 심은 가장 소중한 꽃씨는 무어냐고 물었다. “딸 채니요. 이제 6살이에요. 요즘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생각하면 하루가 가요. 아 참 채니도 빨리 소녀가 되어서 이 그림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전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거든요. 한계 없이 꿈을 꾸고 키우려고 노력했으면 해요. 아이가 그 과정에서 실패해도 그로 인해 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한바탕 유쾌한 수다를 끝냈다. 이 사람, 배우이자 아내이자 엄마인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모든 역할을 꽃으로 소중하게 키워가려 한다. 결국 어떤 꽃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향을 내며 만개할지는 모르지만 절로 응원이 되는건 모든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는 그 긍정적인 자세 때문이리라.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연극 ‘미실’ 주인공 김호정

    연극 ‘미실’ 주인공 김호정

    아리아를 열창하는 성악가에게 핀라이트 조명이 쏟아졌다. 난생 처음 본 오페라 공연. 초등생 소녀는 눈부신 조명과 무대를 감도는 기분좋은 떨림에 단번에 매혹됐다. 그 길로 성악을 배웠지만 곧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악가의 꿈을 접었다. 중학생때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서 ‘저거다’ 싶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어서였다. 졸업 후 ‘캐츠’ 등 여러 편의 뮤지컬 무대에 섰다. 노래 한곡을 100번쯤 연습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재능보다는 열정이 앞선 배우였다. 그러다 독일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기막히게 노래 잘하는 배우들을 보며 그 자리에서 뮤지컬을 포기했다. 김호정(38). 일명 ‘여배우 트로이카’(박정자, 손숙, 윤석화)의 뒤를 이을 차세대 대표 주자로 꼽히는 그녀가 뮤지컬배우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은 좀 뜻밖이다. 차분하고 지적인 얼굴, 하늘하늘한 몸매, 게다가 낯을 가리는 성격의 그녀가 무대에서 격렬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연극 ‘갈매기’‘보이체크’, 영화 ‘나비’‘꽃피는 봄이 오면’ 등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도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연극 ‘미실’(24일∼5월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소식도 그런 점에서 의외였다. 미실이 누군가.‘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인 미실은 타고난 미와 색으로 신라시대 왕실 남자들을 좌지우지한 여성이다. 무공해 식물 같은 김호정에게 성적 본능에 충실한 미실은 어쩐지 버거워 보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전혀 다른 성향의 연기에 도전하길 원해요. 매번 비슷한 역할을 할 바엔 뭐하러 힘들게 연기하겠어요.” 극단에 적을 두지 않고, 공연마다 새로운 연출가와의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해 김별아의 장편소설 ‘미실’이 인기를 끌었지만 극단 여행자의 연극 ‘미실’(양정웅 작·연출)은 그보다 앞서 2002년 초연됐다. 왕을 색으로 섬기는 색공의 운명을 타고난 미실은 진흥, 진지, 진평 등 3대 왕은 물론 태자 동륜, 화랑 사다함 등 무수한 남자들을 섭렵했다. 인터뷰 직전까지 정사 장면을 춤으로 형상화한 대목을 연습하다 왔다는 김호정은 “미실은 권력을 위해 성을 이용하는 팜므파탈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에 따라 모든 남자에게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자유로운 여성”이라고 분석했다. 미실은 극중 일곱명의 남자와 사랑을 나눈다.“야하지 않느냐.”고 묻자 “야하기는 한데 아름다울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다작을 싫어한다. 영화든 연극이든 많아야 1년에 한편 정도다.2001년 영화 ‘나비’로 로카르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에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 한참을 쉬었다. 그러다 지난해 연극 ‘갈매기’ 등 체호프 연작과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피터팬의 공식’ 등에 출연했다.“20대때는 참 당돌했어요.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죠.30대가 넘으니 작품 전체가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요. 삶에 대한 이런 변화들이 연극에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gp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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