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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핀으로 번듯한 집 구하기, 일년 반 28차례 물물교환 끝에 성사“

    “머리핀으로 번듯한 집 구하기, 일년 반 28차례 물물교환 끝에 성사“

    지난해 5월 머리핀 하나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번듯한 집 한 채로 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데미 스키퍼(29)는 최근 테네시주 내슈빌의 새 집으로 이사했다고 영국 BBC가 27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틱톡꾼인 그녀는 코로나19 봉쇄가 덮친 지난해 봄에 머리핀을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렸다. 뭐든지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주고 내게 필요한 것을 얻는 일이 가능한지 알아보자는 것이 그녀의 물물교환 프로젝트 ‘트레이드 미(Trade Me)’의 목표였다. 2006년에 붉은 색 클립 하나로 중고거래를 시작해 집 한 채를 공짜로 얻은 카일 맥도널드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일년이 흐른 지난 5월 석 대의 트랙터를 넘기고 멕시코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치폴레의 유명인 카드를 손에 넣었다. 그녀는 여름이면 집을 공짜로 얻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난 11일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그렇게 참고 견뎌 이달 초 마침내 테네시주의 새 집으로 옮겼는데 모기지 대출도 없고 중개 수수료도 없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됐다. 물론 이사 비용은 들었지만 한 푼도 주택 구입에 쓰지 않았다. 손을 많이 봐야 하는 낡은 주택이었지만 뭐 어떻겠는가? 부부가 함께 리모델링을 했고 커다란 정원까지 갖췄으니 어엿한 내집이었다. 일년 반 남짓, 28번째 교환 만에 가능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무엇 덕분일까? 틱톡이다. 이 일을 시작할 때 그의 틱톡 팔로워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500만명이 됐다. “수많은 이들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난 집을 얻기 위해서라면 5년이라도 이 일에 매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어나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내 집이 생겼다. 이 일을 머리핀 하나로 해냈다.” 치폴레 유명인 카드를 손에 넣었을 때 역풍이 불었다. 일년 동안 공짜 음식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고, 50명을 초대해 2만 달러까지 케이터링 음식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카드였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며 누구도 그만한 가치를 지닌 품목을 교환하자고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싫은 소리를 해댔다. 해서 그녀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스키퍼는 치폴레 유명인 카드가 가장 필요한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팬들에게 한턱 쏠 일이 있어 보이는 미국프로축구(NFL) 선수 부부들에게 의사를 물어봤는데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몇달을 찾았는데 어느날 캐나다에서 화훼회사를 운영하는 알리사란 여성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알리사는 테슬라 태양광이 달린 자급자족형 트레일러 4만 달러 짜리와 카드를 맞바꾸자고 했다. 노숙인 여성 쉼터에서 일하는 알리사는 공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트레일러를 미국에 가져오는 일이 국경 폐쇄와 트레일러 바퀴가 미국에서 불법이란 이유가 겹쳐 석달을 지체했다. 팔로워 한분이 국경 근처까지 가져올테니 마중 나오라고 해서 스키퍼 부부는 15시간 차를 운전해 인도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다음 거래를 알아봤다. 메시지를 보내온 여러 여성과 전화 통화를 했다. 한 여성은 15채의 주택을 갖고 있다며 어느 때라도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다. 또 자신은 오래 전부터 스키퍼의 물물교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자족형 트레일러를 내주면 내슈빌 집을 내주겠다고 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내슈빌로 날아가 열쇠를 넘겨받았다. 작은 침실 둘에 주방, 거실, 화장실이 있고 커다란 정원까지 있어 스키퍼는 마음에 쏙 들어했다.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의 전셋집을 떠나 그 집에 살며 리모델링을 했다. 고장난 자동차, 값어치가 훨씬 못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인도받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정적인 생각을 늘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꼭 필요한 것이라면 집 한 채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해왔다고 했다. 이제 그만 두지 않을까? 아니다. 앞으로 다시 시작해 집 한 채를 더 구해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난 한 번이라도 해본 두 번째 사람이에요. 해서 난 두 번을 해본 첫 번째가 되려고요.”
  • 먹이 구하지 못해 아사(餓死)… ‘루돌프’ 순록이 사라진다

    먹이 구하지 못해 아사(餓死)… ‘루돌프’ 순록이 사라진다

    산타와 함께 크리스마스의 상징인 ‘루돌프’ 순록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20년간 핀란드 최북단 라플란드에 서식하는 순록 개체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대부분이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었고, 여름철 무더위는 새끼 순록들을 죽게 만들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순록 200마리가 한꺼번에 굶어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눈 대신 비가 내리면서 땅이 얼어붙어 순록들이 식물을 먹지 못하게 된 탓이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도 순록 개체 수가 90% 이상 감소한 사례가 보고됐다. 33년 전만 해도 약 500만마리에 달했던 순록의 수가 급감한 것은 서식지 파괴와 기후변화, 사냥 등의 영향 때문이다. 라플란드 순록은 영하 30도 이하 추운 겨울에 눈 속을 파고 이끼 등을 뜯어 먹으며 살지만 기후위기로 먹이가 부족해 굶주리고 있다. 통상 영하 50도까지 내려갔던 라플란드는 이제 영하 20도에서 0도 사이를 웃돌며, 지구 평균보다 4배 빠른 속도로 가열되고 있다. 25년째 순록에게 사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목동인 안나 크리스티나 올릴라는 더미러와의 인터뷰에서 “겨울이 늦게 시작되고 봄과 여름이 오래 지속되면서 새끼 순록들이 죽어가고 있다. 순록 무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순록처럼 북극 지방에 사는 동물은 땀샘이 거의 없고 일 년 내내 두꺼운 단열층을 유지하기 때문에 따뜻한 날씨에 적응하기 힘들다. 담요 역할을 하던 눈 대신 비가 내리면서 먹이에 접근하는 것도 더욱 어려워졌다. 북극곰과 순록을 비롯해 지역 야생동물들이 모두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 온실가스 이대로면 60~80년 뒤 한해 절반은 여름

    온실가스 이대로면 60~80년 뒤 한해 절반은 여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여름이 6개월로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3일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담긴 시나리오를 토대로 우리나라 기후변화를 전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과 비슷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현재(2000~2019년) 평균 97일인 여름이 이번 세기 전반기(2021~2040년)엔 112일, 중반기(2041~2060년)엔 131일, 후반기(2081~2100년)엔 170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평균 107일인 겨울은 전반기와 후반기에 각각 96일과 83일로 줄고 후반기엔 39일로 한 달 조금 넘는 수준으로 짧아질 것으로 전망됐다.온실가스 배출량을 상당히 줄여 우리나라와 인류의 ‘목표’인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계절일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탄소 시나리오에서 여름은 이번 세기 전반기 111일로 늘고 중반기와 후반기엔 각각 116일과 129일로 길어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겨울은 전반기 91일로 줄었다가 중반기 97일로 회복되나 후반기에 82일로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름은 ‘일평균기온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간 뒤 다시 내려가지 않은 첫날’을 시작으로 삼고 겨울은 ‘일평균기온이 5도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이 시점이다.남한 평균기온은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이번 세기 전반기 13.4도로 현재(11.9도)보다 1.5도 오르고 중반기와 후반기엔 각각 14.8도와 18.2도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저탄소 시나리오의 경우 13.2도에서 13.5도로 오르고 후반기에는 14.2도로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폭염일수(일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 수)는 현재는 10일 안팎이지만 80년 후 90일 가까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권역별로 폭염일을 보면 현재는 경상이 평균 12일로 가장 많은데 고탄소 시나리오상으론 이번 세기 후반기엔 충청(89.1일)과 수도권(86.4일)이 최다가 된다. 저탄소 시나리오에선 이번 세기 후반기 28.3일(경상)이 최다였다. 열대야일(일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 수)은 현재 최다 11일(제주)인데 고탄소 시나리오에선 이번 세기 후반기 최다 82.7일(제주)로 늘었다. 저탄소 시나리오에선 최다 35.4일(제주)일 것으로 전망됐다.
  • 10년차 베테랑 간호사, 하늘위 인생을 만나다

    10년차 베테랑 간호사, 하늘위 인생을 만나다

    남들은 환갑 이후, 빨라도 중년에 인생 2막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김형경(39) 해양경찰청 경위는 30대에 인생 2막을 열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10년을 꼬박 일한 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조종사가 돼 돌아왔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무안항공대 소속 부기장으로 바다와 하늘 사이를 누비는 김 경위를 21일 전남 무안군 항공대에서 만났다.김 경위는 베테랑 간호사다.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산부인과에서 7년을 일했다. “일이 너무 고되서” 옮긴 곳이 성형외과 수술팀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3년을 일했다. 10년을 내리 수술팀에서만 보낸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성형외과였어요. 수술이 하루에 100건가량 있었으니까요. 세계 각지에서 해외 고객이 정말 많이 와요. 자연스럽게 의료통역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수술팀 경험을 살려 의료통역사를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병행했다. 막상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조종사라는 인생 목표를 갖게 됐다. 처음엔 일본에서 조종사 교육을 받을 생각이었다. 관련 학과를 수소문한 끝에 학교 문을 두드렸다. 30대 초반인 탓에 학교는 입학 허가를 주저했다. 졸업생 취업률 떨어뜨리느니 아예 입학을 안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김 경위는 학과장을 직접 찾아갔다. “시험 기회라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합격도 했어요. 그런데 합격통지서를 받고 보니 학비가 1년에 2억원인 거예요. 게다가 일본에서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더라도 한국에선 별도로 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새롭게 자료를 뒤진 끝에 찾아낸 곳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비행학교였다. 준비 끝에 2015년 입학을 했다. 김 경위는 “당시 부모님이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 어머니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특히 반대하셨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설득한 끝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10년간 일하면서 벌었던 돈을 모조리 학비와 생활비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처음엔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첫 수업부터 교관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 교관은 김 경위를 철저히 외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관의 태도에 오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입학생 300명 가운데 여학생이 딱 저 혼자였어요. 여학생을 접해 본 적이 없던 교관으로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피한 거였어요. 교관과 친해지고 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죠.” 첫 번째 관문은 입학 1주일 뒤 필기시험이었다. 김 경위는 “그걸 통과해야 실습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수업시간에 ‘1주일 뒤 시험’이라는 말도 겨우 알아들었는데 시험 교재는 한 쪽 읽고 해석하는 데 한두 시간 걸렸다”면서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자며 문장 자체를 통째로 외웠다. 어차피 교신을 영어로 해야 하니까, 교신을 못 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봐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하다”는 그는 “당시로선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항공사에선 40세 넘은 여성 조종사는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빨리 졸업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어서 어학연수도 건너뛰고 몸으로 부딪치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막상 부딪쳐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고 나 스스로 언어에 감각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가서야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죠.” 날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한 끝에 자가용 비행기 자격증부터 계기비행, 사업용 자격증, 대형 여객기 조종 자격증까지 4가지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고 귀국한 건 2017년 여름이었다. 김 경위는 “사실 졸업시험 즈음해선 귀국할 비행기표 구할 돈밖에 안 남았다. 시험에 떨어지면 미국에서 노숙자가 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준비한 끝에 다행히 합격했다”면서 “귀국해 보니 몸무게가 39㎏밖에 안 됐다. 엄마가 그걸 보고 많이 울었다”고 떠올렸다.금의환향을 하긴 했지만 기대했던 꽃길은 없었다. 1년가량 항공사 취업을 준비했지만 그를 불러 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김 경위는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나 할까. 엄청나게 좌절했다”면서 “사실 임시직 간호사를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조종사가 되는 길에서 멀어질 것 같아 일부러 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해양경찰청에서 조종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그는 “공공부문이니까 남자 여자 따지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이 됐다. 믿어지질 않았다”고 회상했다. 2019년 2월에 무안항공대에 배치받았다. 조종사 23명, 정비사 14명 등 46명이 근무하는 무안항공대는 고정익 항공대다. 해경 항공대는 크게 고정익 항공대와 회전익 항공대가 있다. 고정익은 동체에 날개가 고정돼 있고, 회전익은 날개가 회전해서 움직이는 헬리콥터를 생각하면 된다. 김 경위는 “무안항공대는 내가 맡은 CN235를 포함해 고정익 항공기 3대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해상순찰과 치안정보수집, 해양범죄 단속, 해양재난대응과 오염감시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소개했다. 해경 소속 고정익 항공대는 김포항공대와 무안항공대 두 곳밖에 없다. 이 때문에 무안항공대는 마라도 서남쪽 149㎞에 있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부터 독도까지 한반도보다도 몇 배 더 넓은 면적을 담당해야 한다. 김 경위는 “보통 서해와 동해 해상순찰로 나눠서 순찰하는데 한번 이륙하면 보통 4시간가량 비행한다”고 소개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안항공대는 그동안 다양한 성과를 거두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지난해 6월 항공 순찰 도중 불법으로 고래를 포획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선 두 척을 발견해 3시간에 걸쳐 채증한 끝에 현행범으로 체포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4일에도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와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사이 해상에서 129t 어선이 7589t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해 항공대가 구조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비행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멋진 순간이 적지 않을 듯했다. 기억나는 비행 경험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비행학교에서 친구 2명을 사고로 잃었던 얘기를 꺼냈다. 대만에서 온 한 친구는 시동을 걸기 전에 항공기 외부점검을 하다가 프로펠러가 갑자기 돌아가는 바람에 머리에 치명상을 입어 뇌사가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다른 친구는 경비행기 뒷좌석에 탔는데 기체 고장으로 불시착했다가 나뭇가지가 창문을 뚫고 몸을 관통해서 사망했다.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마칠 때까진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해서 몇 시간 동안 시신을 그대로 둬야 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지금도 그 친구들 모습이 떠오른다. 항공기 조종의 무게감을 생각한다. 내가 조종하는 항공기에 탑승한 모든 이들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항공기 조종사는 여전히 여성에겐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이다. 당장 화장실 문제부터가 곤욕이다. 지금도 해경에는 여성 조종사가 3명밖에 없다. 그나마 회전익 항공대에는 여성이 없다 보니 여자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 있을 정도다. 긴급상황 때문에 급하게 착륙했다가 당황한 적도 여러 번이다. 비행기에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김 경위는 “항공기에 화장실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불편하다. 비행을 앞두고는 아예 물을 안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면서 “전 세계 여성 조종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요즘은 조종복이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따로 돼 있어 다행이다. “예전에는 조종복이 위아래 통으로 돼 있는 일체형이었거든요. 화장실 가기가 힘들어 변비도 많이 걸렸다고 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김 경위는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조종사가 되면 좋겠다. 그중에서도 여성 조종사들이 해경에 많이 지원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비행기는 예민해요. 조종은 꼼꼼해야 합니다. 특히나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려면 빠른 판단을 하면서도 꼼꼼해야 하죠. 아무래도 꼼꼼한 건 여자들 특기잖아요.” 다음 목표를 물었다. 김 경위는 “기장이란 자리는 책임감과 빠른 판단력이 필수다. 앞으로 2~3년은 더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면서도 “언젠가 기장이 돼 더 많은 생명을 구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상흔만 바라보지 않고 상처안으로 파고들다

    상흔만 바라보지 않고 상처안으로 파고들다

    친오빠 잃었던 작가의 성장 소설부모의 극단적 종교 신념에 구속돼아이가 길 잃고 치유받지 못한다면…아버지 독선… 극우화된 유럽 꼬집어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어린 시절 이런 트라우마가 생기면 슬픔의 깊이만큼이나 위로하기는 더욱 힘들다. 더군다나 부모가 극단적 종교적 신념에 구속돼 아이를 제대로 위로하지 못하는 세상에 놓인다면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네덜란드 작가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30)의 장편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이 같은 아이의 시선을 바탕으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가정과 종교, 사회를 비판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국제 부문 역대 최연소 수상자에 선정돼 세계 문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설은 어느 겨울날 네덜란드 농촌에서 시작된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열 살 소녀 ‘야스’는 빙판 스케이트 대회에 나갔다가 호수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큰오빠 ‘맛히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그날 입었던 빨간 코트를 한여름이 돼도 벗지 못한다. 부모는 벅찬 상실감에 아이들을 보듬을 수 없다. 얼마 후 마을에 구제역이 돌고 100여 마리가 넘는 소들이 살처분되면서 야스와 또 다른 오빠 ‘오버’ 등은 선명한 슬픔과 맹렬히 솟는 폭력성, 성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야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폐허나 다름없다. 형제의 죽음을 이해하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 성경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금욕적 생활을 이어 온 부모는 장남의 죽음을 일종의 형벌이나 저주로 여긴다. 애지중지 키운 소들이 죄다 살처분되는 현장에서도 부모는 아이들의 눈을 가려 주지 않고, 어른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작은 동물을 해치고 친구와 형제자매를 성적으로 괴롭히며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한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이란 제목에서 보듯 우울한 소설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편치 않다.실제 세 살 때 친오빠를 잃은 작가는 성장소설 형식을 빌린 이 책으로 야스가 죽음과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한발 물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가 돼 생생히 경험하는 소설”이라는 부커상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적확하다. 상흔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자기 자신을 찾음으로써 하나님을 잃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기 자신을 잃음으로써 하나님까지 잃는 사람들도 있다”(84쪽)는 야스의 독백은 무조건적 믿음만을 강요한 이 시대 교회가 길 잃은 영혼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반영했다. 반면 야스의 자기 파괴 행위는 결국 이미 소통할 수 없게 된 큰오빠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자 했던 나름의 소통 방식으로 풀이된다. 독실한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작가는 이를 통해 주변의 시선만 의식하고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부모의 독선이 가져올 악영향을 경고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이교도를 배척하는 야스의 아버지를 통해 극우화되는 유럽의 현실도 꼬집었다. 어린 시절로 시선을 돌려 내면에 묻힌 어두운 기억까지 끌어올리는 작가의 화법이 돋보인다. 슬픔과 광기, 죽음, 절망으로 가득한 유년의 서사는 읽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죽음과 삶의 문제를 소녀의 시각으로 조명한 슬픈 이야기는 아동 학대와 방치가 신문 지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더위 식히러 강물 들어간 아르헨 소녀, 파라냐 떼 습격에 중상

    더위 식히러 강물 들어간 아르헨 소녀, 파라냐 떼 습격에 중상

    더위를 식히러 강물에 들어간 13세 소녀가 식인물고기 피라냐 떼의 습격으로 발가락을 잃는 등 크게 다쳤다. 엘리토탈(El Litoral) 등 외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파라나강 서쪽 도시 로사리오에서 현지시간으로 지난 21일 13세 소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강물에 들어가 있다가 피라냐 떼의 습격으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중에서도 상태가 심각했던 13세 소녀는 인근 병원으로 급히 이송돼 수술을 받고 안정을 되찾았다. 당국은 사고 이후 시민들의 입수를 금지했다. 현지방송은 현장에 출동한 구조 대원이 부상자의 발을 지혈하고 붕대를 감는 등 응급 처치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현지 인명구조대 책임자 세르히오 베라디는 “이번 습격은 기온이 높아져 강물의 수위가 낮아진 탓”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장에 있던 구조대원이 첫 습격을 목격하고 사람들에게 곧바로 물밖으로 나오라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추가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강가에 설치된 샤워 시설만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번 습격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출생지로 유명한 로사리오시에서 일어났다. 도심과 가까운 파라나강 라구나 세투발(Laguna Setubal)은 일광욕 명소이기도 하다. 당시 37도가 넘는 날씨에 더위를 식히려 강물에 뛰어든 사람중 다수가 피라냐 떼 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물밖으로 뛰쳐나왔다. 강변에 있던 부모들은 물에 들어가 놀고 있던 아이들을 구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이번 습격은 피라냐과에 속하는 팔로메타(palometa)가 벌인 소행으로 여겨진다. 팔로메타는 떼로 몰려다니며 날카로운 이빨로 먹잇감을 뜯어먹는 특징을 지녔다.
  • [애니멀 픽!] ‘아야!’ 외줄 타다 다친 원숭이, 가장 웃긴 사진속 야생동물 선정

    [애니멀 픽!] ‘아야!’ 외줄 타다 다친 원숭이, 가장 웃긴 사진속 야생동물 선정

    원숭이 한 마리가 외줄을 타다 사타구니를 다쳤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올해 가장 웃긴 야생동물 사진으로 뽑혔다. CNN 보도에 따르면, 2021년 ‘코미디 야생동물 사진상’(Comedy Wildlife Photography Awards)에서 종합 우승은 영국 사진작가 켄 젠슨의 황금비단원숭이 사진이 차지했다. 주최 측은 17일 성명에서 영국, 아프리카, 인도 등 전 세계에서 7000점이 넘는 사진이 출품됐고 이 중 결선에 진출한 작품 42점 중 젠슨의 출품작이 종합 우승작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아야!’(Ouch!)라는 제목의 종합 우승 사진은 젠슨이 중국 남서부 윈난성 쉰강에 있는 한 교각에서 수컷 황금비단원숭이 한 마리가 교각을 지지하는 와이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재치 있게 포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젠슨은 “올해 대회에는 특히 멋진 사진이 다수 출품됐다. 따라서 내 출품작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내 사진은 지난 몇 달간 믿기지 않을 만큼 널리 알려졌는데 사진 한 장으로 세계인을 웃게 하고 가치 있는 야생동물 보존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부문별 우승작으로는 육상동물 부문에서 미국 사진작가 아서 트레비노가 촬영한 ‘닌자 프레리도그!’(Ninja Prairie Dog!)라는 제목의 사진이 선정됐다. 이는 콜로라도주 롱몬트에서 프레리도그 한 마리가 자신을 노리는 흰머리수리를 작은 몸으로 활짝 펼쳐 놀라게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는 사진 속 프레리도그는 당시 이런 대처 덕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설명했다.수서동물 부문에서는 싱가포르 사진작가 치키 테오의 수달 가족 사진이 우승했다. ‘학교 갈 시간’(Time for school)이라는 재치 있는 제목으로 출품된 이 사진은 어미 수달이 새끼에게 스파르타식으로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담고 있다.스코틀랜드 사진작가 존 스피어가 현지에서 촬영한 ‘여름이 다 갔나 봐’(I guess summer’s over)라는 제목의 사진은 조류와 네티즌 투표 두 부문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이 사진은 비둘기 한 마리가 얼굴에 떨어진 낙엽을 맞은 순간을 절묘하게 담고 있다.이밖에 묶음 사진 네 장을 기준으로 뽑는 포트폴리오 부문에서는 미국 사진작가 비키 조론이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마투사도나 국립공원에서 새끼 코끼리를 촬영한 ‘진흙 목욕의 즐거움’(The Joy of a Mud Bath)이라는 제목의 포트폴리오 사진이 우승작이 됐다.영상 부문에서는 인도 사진작가 라훌 라크마니가 뉴델리주 자택 테라스에서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흰가슴물총새가 갑자기 날아온 같은 종의 새와 부딪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 영상은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봉쇄령 이후 가장 친한 친구와 포옹하기’(Hugging Best Friend After Lockdown)라는 제목으로 출품됐다. 코미디 야생동물 사진상은 전문 사진작가이자 환경보호론자인 폴 조앤슨 힉스와 톰 술람이 야생동물 보존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었다. 목적은 사뭇 무겁고 진지한 야생동물 보존 문제를 즐겁고 유쾌한 경쟁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 사진상은 매년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가장 인기 있는 사진 대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공모전의 수익 10%가량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구눙팔룽(Gunung Palung) 국립공원에서 오랑우탄을 보존하기 위해 활동하는 ‘세이브 와일드 오랑우탄’에 기부될 예정이다. 사진=코미디 야생동물 사진상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단풍나무 식별하기 좋은 계절/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단풍나무 식별하기 좋은 계절/식물세밀화가

    기나긴 겨울을 지난 나무는 봄을 맞아 연두색 잎과 꽃을 피운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잎 색은 짙어지고, 가을이 오면 진녹색 잎은 붉은색 혹은 노란색, 주황색으로 변한다. 어느새 추위가 가까워지면 가지에 매달려 있던 단풍잎은 땅으로 떨어진다. 그런 낙엽은 부서지거나 다른 풀의 이불이 돼 주고, 또다시 긴 겨울을 지나면 나뭇가지에 또다시 새싹이 돋는다. 이것이 보편적인 나무의 삶이다. 그리고 지금은 단풍이 낙엽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단풍’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기후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 또는 그렇게 변한 잎’이라 정의한다. 단풍은 자연현상, 식물 삶의 한 과정인 것이다.단풍이 드는 것은 봄과 여름 내 엽록소가 역할을 다하고, 엽록소에 의해 드러나지 않던 안토시안과 카로틴, 크산토필과 같은 색소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안토시안에 의해 화살나무와 단풍나무 잎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카로틴과 크산토필에 의해 은행나무와 생강나무, 히어리는 잎이 노랗게 된다. 이 다채로운 색 변화를 감상하려 우리는 ‘단풍놀이’라는 것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등교 준비를 하던 내게 아빠는 설악산 단풍을 보러 가자고, 학교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선생님께도 이미 말씀드렸다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설악산의 단풍을 보았다. 나무들이 만들어 낸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자연 팔레트는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단풍은 자연현상이자 동시에 식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단풍나무라는 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종이 속한 속명(가족 이름)이다. 이 가족 중에는 대표종인 단풍나무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단풍나무 그리고 이름에 ‘단풍’이 들어가지는 않는 신나무, 복자기나무, 고로쇠나무와 울릉도에 분포하는 귀한 섬단풍나무, 우산고로쇠도 있다. 외국에서 도입돼 도시 곳곳에 심어진 은단풍과 중국단풍, 공작단풍, 네군도단풍 등까지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스무종이 넘는 단풍나무를 만날 수 있다. 단풍나무속 식물 중에는 손바닥 형태를 띠는 잎이 많다. 단풍나무는 당단풍나무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잎몸이 5~7개로 갈라지며, 당단풍나무는 그보다 많은 9~11개로 갈라진다. 손가락이 더 많은 것이 당단풍나무다. 중국에서 도입돼 화단에 많이 심어진 중국단풍은 잎몸이 3갈래로 갈라지며, 산지에서 자라는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보다 손바닥이 더 통통한 형태다. 종마다 잎의 형태가 다른 데다 단풍 든 잎의 색도 다르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단풍나무와 당단풍나무는 새빨간색, 중국단풍은 연한 노란색, 복자기나무는 주황빛을 띤다. 복자기나무의 주황빛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 친구는 가을이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광릉숲의 복자기나무에 단풍이 들었는지 시시때때로 내게 묻는다. 이들은 잎 형태와 단풍 색이 다를 뿐 아니라 종마다 꽃과 열매의 형태도 다르다. 단풍나무의 꽃과 열매는 화려하지 않은 데다 우리에게 그다지 쓰임새가 없기 때문에 잎이 단풍 들 때만큼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봄바람이 불 때 흔들리는 연둣빛 단풍나무 잎 사이사이 보이는 빨간 꽃송이의 움직임, 각기 다른 각도로 벌어지는 열매의 날개(프로펠러)를 보는 일은 단풍나무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단풍나무속 속명 ‘에이서’(Acer)는 라틴어로 ‘강함’을 뜻한다. 목재가 치밀하고 무늬도 예뻐서 바닥재나 가구에 흔히 이용된다. 팔만대장경판 일부에도 단풍나무가 쓰였다. 캐나다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설탕단풍은 메이플 시럽의 원료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조경수로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주말 최고조의 아름다움을 비추던 단풍은 일요일 내린 강한 빗줄기를 따라 낙엽이 됐다. 덕분에 월요일 출근길 꽉 막힌 도로에서 재밌는 풍경이 펼쳐졌다. 지난 밤 어느 나무 아래에 주차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자동차 유리창마다 각기 다른 단풍잎이 붙어 있었다. 복자기나무, 단풍나무, 당단풍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졸참나무…. 덕분에 나는 우리나라 주차장 화단에 심어지는 조경수의 흔적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나는 나뭇잎을 관찰하고 채집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오르거나 내 키보다 긴 가위를 들곤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계절만큼은 단풍잎을 그리기 위해 굳이 사다리와 가위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잎이 스스로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토록 편리하게 잎을 관찰하고, 식별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내 주변에 어떤 나무들이 살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발밑에 떨어진 단풍잎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자연이 우리에게 쥐여 준 이 짧은 ‘식별’의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 산불 키운 뒷산, 전복 죽는 바다… 민서네·순주네 울리는 온난화

    산불 키운 뒷산, 전복 죽는 바다… 민서네·순주네 울리는 온난화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 지인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 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의 영향이 컸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전복 때문에 깊어진 아빠의 한숨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섭씨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생계가 달린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이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평소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 탓이다.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9월 말이면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 포자(씨)를 줄에 붙여 키워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 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고성 손지민·서울 오달란 기자 sjm@seoul.co.kr
  • 산불 키우는 바삭한 낙엽… ‘소금 응급처방’ 부르는 바다

    산불 키우는 바삭한 낙엽… ‘소금 응급처방’ 부르는 바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 지인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 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의 영향이 컸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전복 때문에 깊어진 아빠의 한숨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섭씨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생계가 달린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이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평소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 탓이다.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9월 말이면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 포자(씨)를 줄에 붙여 키워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 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 폭설 사라진 강원, 싱거워진 바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기후에 산다

    폭설 사라진 강원, 싱거워진 바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기후에 산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 지인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 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의 영향이 컸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전복 때문에 깊어진 아빠의 한숨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섭씨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생계가 달린 어민들은 양식장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이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평소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 탓이다.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9월 말이면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 포자(씨)를 줄에 붙여 키워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 버려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 눈 귀한 강원도에 사는 민서, 덥고 싱거운 바다에 사는 순주

    눈 귀한 강원도에 사는 민서, 덥고 싱거운 바다에 사는 순주

    [편집자주]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이 좀 무서워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불타고 있는 건 툰베리의 집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집이고 미래다. 자연은 기후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냈지만, 어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환경학자들은 “미래 세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지구를 계속 채찍질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인류의 ‘마지막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불을 꺼야 하는 이유다.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존 보고서를 통해 답을 찾는다. 기획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그린피스가 함께했다.‘강원 동해안 및 산간지방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으로 늦겨울인 1, 2월에 많은 눈이 내린다.’ 지리 교과서는 강원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강원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 쌓인 태백산맥을 보기 어려워졌다. 눈이 귀해지면서 강원도의 산은 바싹 말랐다. 건조해진 산은 불쏘시개다. 한 번 불이 붙으면 크게 번져 인간이 사는 마을을 집어삼키는 재앙이 됐다. 2019년 강원 고성과 속초를 휩쓸었던 산불은 도로변 전신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시작된 인재였지만 수분기 없는 낙엽들이 불을 화마로 키웠다. 고성에 사는 정민서(15)양도 2019년 산불의 피해자다. “민서 아빠와 결혼해서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겨울에 눈이 참 많이 왔어요.” 민서의 엄마 엄미숙(56)씨는 32년 전을 떠올렸다. 민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폭설이 생소한 민서는 엄마의 기억과 다른 강원도에서 살아간다.● 건조한 강풍 타고 순식간에 번진 화마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민서는 저녁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붉은 하늘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산불이 발생했다는 재난 알람 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집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더 붉어졌고 멀리서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민서네 가족은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는 점점 거세졌다. 삽시간에 집과 차 안까지 그은 냄새가 가득 퍼졌다.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던 분의 펜션으로 몸을 피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민서의 가족은 뼈대만 남기고 흉측하게 타버린 집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민서 가족은 리조트, 연수원, 조립주택으로 피난민처럼 떠돌았다. 민서 엄마 엄씨는 충격으로 안면에 마비가 왔다. 학교에서는 민서가 산불 피해로 불안지수가 높게 나왔다며 심리 치료를 권했다. 2년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민서의 가족은 올해 2월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화마가 할퀸 상처가 다 나은 것은 아니다. “저녁 하늘이 조금 붉으면 그때가 떠올라요. 또 산불 아닐까, 우린 어디로 피해야 하나…. 가슴이 벌렁거려요.”● 불 먹은 나무들…2년 지나도 씻기지 않은 상흔 지난 5일 민서 가족과 함께 둘러본 고성·속초는 산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속초고등학교에서 1㎞만 걸어가면 뼈대만 남은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내부는 까맣게 그을려 이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불이 났을 당시 열기로 폭발해 깨진 유리창 조각만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영랑호 인근 리조트 펜션 20여채도 모두 불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이 났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나무들은 2년 반 동안 서서히 죽어갔다. 조경업계에서는 이를 ‘불 먹었다’고 표현한다. 고성 토성면 인근 나무들은 불을 먹어 껍질이 벗겨지고 매끈한 심만 남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산불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건조해진 기후와 강한 바람이 큰 몫을 했다. 엄씨는 “눈이 많이 왔을 시절에는 한겨울에 쌓인 눈이 봄까지 꽁꽁 얼어 있고, 천천히 녹으니까 상대적으로 습했다”면서 “요새는 눈이 많이 안 오고, 눈이 와도 금방 녹으니 낙엽이 말라서 바삭바삭하다. 불이 나면 잘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 국내 산불 피해액 10년새 5배 증가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불 발생 빈도는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1년 산불 발생 건수는 277건, 피해 면적은 109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발생 건수 620건, 피해 면적 2920㏊로 2~3배씩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1년 290억 6300만원에서 1581억 41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권원태 APEC기후센터 원장은 “우리나라의 겨울철 온도가 높아지면서 토양 수분이 빠르게 말라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봄철 가뭄이 더 심해지고 산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소금 타야겠다” 싱겁고 뜨거운 남해 청정 바다 박수자(52)씨가 김순주(10)양을 품었던 해, 순주의 아빠 김동연(58)씨는 전남 완도군 청산도 먼바다에 나가 전복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배를 타러 나가는 부지런함 덕에 연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순주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순주에게 전복은 웃음꽃이자 힘의 원천이자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전복 잘 키우기로 소문난 아빠, 엄마가 한숨 쉬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날씨 때문에 전복이 많이 죽고 잘 자라지도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빠가 힘들게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해요.” 순주는 지난여름 작은 배를 타고 아빠의 전복 양식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엄마를 따라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혀끝에 댔다. 어째 짠기는 안 느껴지고 맹맹했다. “엄마는 ‘소금 타야겠다’고 하세요. 몇 년 사이에 바다가 싱거워져서 전복들이 비릿해지고 잘 죽는대요. 진짜 소금 포대라도 사다가 뿌려야 할까 봐요.”● 일찍 찾아온 더위에 전복 폐사 늘어 순주 엄마 박씨는 “올해는 최악의 여름이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가 7월부터 찾아왔다. 전복은 수온과 염분에 예민하다.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더우면 먹이인 미역과 다시마를 먹지 않는다. 어민들은 양식장 수온이 23~24도일 때까지만 먹이를 주고 25도가 넘어가면 먹이 공급을 중단한다. 고수온이 계속되면 먹이를 안 주는 날이 늘어난다. 먹이를 안 주면 폐사량은 적지만 전복에 살이 차지 않는다. 김병학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수온이 올라가면 4년산 전복의 40~80%, 2년산 20~40%가 산란을 한다”며 “고수온에서 산란하면 면역기능과 대사가 현저히 저하돼 먹이를 계속 주면 폐사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 대응 실험장이 된 양식장 순주가 사는 청산은 완도 12개 섬 중에서도 연육교를 놓지 못할 정도로 수심이 깊고 파도도 세 전복 양식에 적합하다. 청산 바다에서 자란 전복은 도매상인들이 마리당 2000원을 더 쳐줄 정도로 상품성을 인정받는다. 올해는 양식을 망친 어민들이 적지 않다. 양식장을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실험실로 이용한 결과다. “우리는 전복 양식장을 ‘아파트’라고 불러요. 아파트 한 칸에 100㎏은 나와야 300만~4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더우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더위가 길어지면 언제까지 굶길 순 없잖아요. 수온이 26도일 때 몇 칸에만 미역을 줘 보는 거예요. 먹이 준 칸에서 폐사율이 60%가 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애들은 또 굵기가 실한 거예요. 온난화에 적응하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순주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완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올여름 전남 고흥 바다 수온은 30도를 넘어 전복 양식어가 등 102가구가 피해를 봤다. 전복 290만 4000마리가 죽었고 어류, 굴·가리비도 폐사해 약 45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신안 흑산도와 안좌도 바다도 28도가 넘어 전복 폐사가 일어났다. 김 연구관은 “수온 변화가 적은 바다 밑에 사는 전복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사육하니 온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28도가 넘으면 전복의 절반이 죽어 고수온 폐사로 본다”고 설명했다.● 고수온 잘 견디는 ‘슈퍼전복’ 개발 어민들은 기후변화에 살아남으려고 전복 사육기간을 줄이고 있다. 겨울부터 봄까지 3~4년 키운 성태(㎏당 6~8미)를 시장에 내놨지만 전복이 클수록 수온변화에 예민하고 폐사율이 높아 5~6년 전부터 2년~2년 6개월 키운 다음 판매한다. 고수온을 잘 견디고 사육기간이 더 짧은 ‘슈퍼 전복’ 종자도 시범적으로 키우고 있다. 싱거운 바다도 순주 부모님의 근심거리다. 기후변화로 바다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닷물은 점점 싱거워지고 있다. “더운 여름 좀 버텼나 싶었더니 9월에 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쏟아졌어요. 염도 떨어지면 전복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비 온 직후는 괜찮아 보여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더라고요.” 전남 강진만 마량 해역에선 지난 7월 5~7일 3일간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복 2300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민물이 바다에 유입돼 염분이 5~15pus(해수 1㎏에 든 염류의 양(g))로 낮아진 탓이다. 바닷물 염분농도는 보통 30~33pus로 전복 폐사 기준은 22pus 이하로 본다. ● 비 멎기 무섭게 찾아온 가을 불볕더위 한 해 전복 농사의 시작인 가을에 찾아온 불볕더위 역시 순주네를 괴롭혔다. “전복 먹이가 되는 미역을 9월 말부터 키우기 시작해요. 모내기처럼 미역 포자를 긴 줄에 붙여야 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포자가 다 녹아버리거든요.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정도 미뤘는데 하루 이틀만 늦어도 미역 성장 속도가 더뎌서 손해가 크죠. 포자값도 작년보다 2배 가까이 올랐고요. 11월에 아기전복(치패)도 입식해야 하는데 날씨가 도와줄지 모르겠어요. 올해는 발 뻗고 자는 날이 없네요.” 고성 손지민·서울 오달란 기자 sjm@seoul.co.kr ● 지난 겨울 고성·속초 강수량 고작 11.4㎜ 새로 관측되는 기상 데이터들은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미 기후변화가 시작됐다고 경고하고 있다. 메마른 봄부터 산불이 자주 나는 강원 영동지역은 겨울철 강수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비열(물질 1g의 온도를 1도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이 높아 쉽게 데워지지 않는다는 바다의 여름 수온이 10년 평균치를 웃돈다. 18일 기상청의 기상자료개방포털을 활용해 강원 영동지역의 겨울철(12월~이듬해 2월) 강수량을 살펴본 결과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평균 113.8㎜였던 강수량은 최근 5년간 평균 100.1㎜로 12.0% 줄었다. 30년 평균 강수량(129.8㎜)과 비교하면 약 22.8% 감소했다. 지난해 이 지역의 겨울철 강수량은 11.4㎜에 그쳤다. 최근 10년 평균 강수량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는 극소량이다. 눈비가 오는 날도 크게 감소했다. 최근 10년간 강원 영동지역의 겨울철 평균 강수 일수는 16.1일이었으나, 최근 5년 평균은 11.7일로 4일 이상 줄어들었다. 이석우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보전연구부장은 “지구온난화로 겨울철 가뭄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온도가 올라가고 강수량이 적어지면서 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 올해 한반도 해역 여름 수온, 10년 평균치 1도 상회 전남 완도 앞바다는 올해 역대급 무더위를 기록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해양관측 월보를 분석해 보니 올 1~3월 수온이 통계월보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5년과 비교해 평균 3.7도 올랐다. 따뜻한 겨울바다가 지속되면 아열대 어종이 출현하는 등 해양 생태계가 바뀐다. 지난 7월 평균 수온은 23.3도로, 최근 16년 새 가장 높았다. 수온 변화는 전복 양식 어가가 많은 남해만의 일이 아니다. 동해, 서해, 남해 등 3개 해역 10개 관측지점의 올해 7~9월 평균 수온은 2012년 이후 10년 평균치를 0.99도 웃돌았다. 특히 지난 7월 평균 수온이 23.86도로 10년 평균치(22.14도)보다 무려 1.72도 높았다. 수온이 3일 이상 28도를 넘거나 전일 수온 대비 5도 이상 상승하는 등 급격한 수온 변동이 있을 때 수산과학원이 발령하는 고수온 경보 횟수도 올해 다섯 번으로 기록돼 2017년 이후 가장 많았다.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관계자는 “바다가 함유할 수 있는 열 용량은 대기의 1000배로, 쉽게 달아오르지 않지만 한 번 수온이 오르면 잘 식지 않는다”면서 “표층뿐만 아니라 점점 깊은 바다로 고온 현상이 전이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고성 손지민·서울 오달란 기자 sjm@seoul.co.kr
  • 폭염·가뭄 탓…美 유명 설산, 만년설·빙하 융해 역대 최고

    폭염·가뭄 탓…美 유명 설산, 만년설·빙하 융해 역대 최고

    미국에서 11번째, 캘리포니아주(州)에서 5번째로 높은 해발고도 4322m의 유명 설산인 섀스타산에 있는 만년설과 빙하가 올해 가장 많이 녹아내렸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북쪽, 캐스케이드산맥 남쪽에 있는 섀스타산의 정상은 보통 1년 내내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올해 7, 8월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만년설과 빙하가 눈에 띄게 녹아내린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올해 초에는 정상에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아 이미 위험에 처한 빙하의 녹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지적했다. 섀스타산에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큰 휘트니 빙하가 있는데 이런 빙하를 조사하는 노스캐스케이드 빙하기후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니컬스칼리지의 빙하학자인 모리 펠토 박사는 워싱턴포스트에 “7월 중순까지 만년설이 줄어들어 빙하 부피는 훨씬 더 많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물론 섀스타산이 과거 헐벗었을 때에는 늦여름이나 심지어 가을에도 눈이 녹아내리긴 했었다. 하지만 펠토 박사는 “9월 말 며칠 동안이 아니라 지난 두 달간 얼마나 빨리 녹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에서 남서쪽으로 약 8㎞, 해발 1000m에 있는 한 마을에 설치된 온도계는 올 여름 두 차례나 40℃에 육박한 기온을 기록했다. 심지어 산 중턱에서도 6월 말 기온은 25~29℃에 달해 휘트니 빙하의 융해 속도를 높였다. 휘트니 방하는 지난 16년간 전체 길이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길이 약 800m의 빙하 후퇴를 경험했다. 올해에만 전체 부피의 15~20%가 줄어 두 개의 작은 빙하로 붕괴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이에 대해 펠토 박사는 “오늘날 섀스타산에는 약 2.6㎢의 빙하가 남아 있다”면서 “이는 80년대 초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펠토 박사는 또 “빙하 소실이 가속하고 있어 올해는 단일 해 중 가장 큰 빙하 소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트위터를 통해 만년설과 빙하로 덮인 섀스타산을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고 “이례적인 수준으로 녹아내린 섀스타산의 빙하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면서 “이는 쉽게 되돌릴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섀스타 마운틴 가이드의 운영책임자이자 지질학자인 닉 케셀리 박사는 지난달 마운틴 섀스타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년설의 엄청난 소실로 섀스타산의 서쪽은 벌거숭이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만년설은 강설량이 녹는 양보다 많아서 1년 내내 남아 있는 눈으로, 빙하의 부피가 늘거나 줄어드는 데 영향을 주며, 기온이 오르면 녹아내려 개울과 강을 통해 많은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성미경의 원형교차로] 세계인의 일상, 한국 문화/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

    [성미경의 원형교차로] 세계인의 일상, 한국 문화/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

    일상적인 상황인데 가끔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7월 여름에 접어들면서 집 앞 정원의 여러 그루 무궁화 나무에서 꽃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지나치기 일쑤인데 여름이 다 지난 며칠 전에는 그 모습이 몹시 생경해 한참을 바라보고 꽃봉오리도 만져 보았다. 생각해 보니 무궁화는 파리뿐만 아니라 내가 가본 프랑스 도시며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더 크고 풍성한 무궁화를 보곤 한다. 무궁화가 공식 국화인가 아닌가 하는 복잡한 논의는 잠시 잊기로 하자. 어찌 됐든 무궁화는 관습적으로 나라꽃으로 내면화돼 있고 그 이미지는 다양한 공식 문서와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타국에서 무궁화를 볼 때 곧바로 한국을 떠올리는 나와 같은 사람들도 대다수일 것이다(그렇다고 소위 국뽕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아니다).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수용되는 것은 마치 집 앞 정원과 프랑스 도시 곳곳에 피어 있는 무궁화같이 터를 잡고 어우러져 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매우 일상적인 풍경으로 말이다. 얼마 전 센강 옆 작은 공원에 10대 청소년 4~5명이 모여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열심히 몸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익숙한 언어의 멜로디가 CD플레이어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케이팝에 맞춰 댄스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30여년 전 친구들과 카세트를 켜고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던 나의 10대 시절과 너무나 똑같아서 누가 볼까 봐 혼자 볼이 빨개지며 미소가 번졌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에이치앤엠(H&M)은 블랙핑크와 컬래버레이션해서 여기 파리에도 매장 한 구석에 별도의 코너를 마련해 놓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의상과 패션 액세서리가 지나가는 파리지앵의 눈길을 잡는다. 한국 아이돌 그룹은 ‘멋짐’의 선두 주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파리에 거주하는 한 한국 학생은 “시크(chic)하고 힙(hip)”하다며 지나가는 또래들로부터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해외에서 중국·일본·베트남 음식점은 쉽게 볼 수 있고, 먹을 것의 느끼함에 몸서리를 떠는 우리의 속을 달래 주어서 자주 찾게 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파리 중심가뿐만 아니라 주거 지역 골목에도 한국 음식점이 많이 들어섰다.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하기를 즐기는 유럽 특유의 카페 문화에 맞춰 대부분 테라스를 마련해 놓았다. 김치,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을 알고 즐기는 외국인이 많아진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얼마 전 저녁 식사를 하러 한식당에 갔다. 옆자리에 (우리로 치면 단체 회식 같은 분위기인데) 10여명 정도의 서양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한국인이나 동양인 없이. 그 익숙한 분위기처럼 더이상 파전에 와인을 즐기는 서양인들만의 테이블이 낯설지 않을 만큼 한국 음식은 대중화되고 있다. 9월 초에는 몽파르나스에서 ‘케이팝 & 케이힙합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사실상 프랑스는 7월부터 백신 접종률을 높여 가며 ‘위드 코로나’ 정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대중음악 공연이나 쇼는 활발하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케이팝 팬들이 모여 떼창을 부르고 한국말 랩의 묘미를 느끼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한 대학생은 레드벨벳을 가장 좋아하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국에 어학 연수를 갈 수 있도록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 문화(혹은 한류)의 해외 확산과 현지 수용은 생각보다 다양한 일상의 층위에서 촘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집 앞에 핀 무궁화가 다른 종류의 꽃나무와 어우러져 정원의 풍경을 완성하듯이 말이다. 내가 그저 예쁜 꽃인 줄 알고 지나치다가 어느 날 문득 무궁화임을 깨닫고 우리나라를 떠올리듯, 여기 사람들이 케이팝 한 구절을 흥얼거리다가 ‘아, 내가 지금 부르는 게 한국말로 된 노래구나’ 하고 멈칫 알아채듯 한국 문화가 세계인 삶의 일부분으로 풍경처럼 일상화되기를 바라본다.
  • 코로나로 독서하기 좋은 9월… 어린이들 읽을 만한 책은

    코로나로 독서하기 좋은 9월… 어린이들 읽을 만한 책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두 달 넘게 네자릿수를 기록한 가운데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돌아왔다. 추석 연휴도 겹쳐 어린 자녀에게 그동안 못 읽었던 동화나 그림책을 권하기 좋은 시점이지만, 학부모로서는 어떤 책이 좋을지 고민이다.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회가 교육 현장의 교사, 사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추천한 9월에 읽기 좋은 어린이 문학 일부를 소개한다.●저학년 그림책으로는 동물, 우주여행 소재 추천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책으로는 그림책 ‘나의 왕국’, ‘와! 여름 캠프다’, ‘우주 관람차’ 등이 있다. ‘나의 왕국’(키티 크라우더 지음, 나선희 옮김, 책빛 펴냄)은 부모의 싸움에 낀 자녀의 상황과 감정을 여러 동물 친구에 비유해 보여준다. 단순한 선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 차분하고 음영을 강조하는 채색은 주인공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와! 여름 캠프다’(마틸드 퐁세 지음, 이정주 옮김, 우리학교 펴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름 캠프에 간 아이가 상상의 동물 등에 올라타고 환상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아이는 동물 친구들을 만나 경험한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할머니에게 보내고, 독자는 이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낀다. ‘우주 관람차’(김성미 지음, 책읽는곰 펴냄)는 우주 관람차가 마지막 운행을 한다는 소식에 한 가족이 놀이공원을 찾게 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깜빡하고 놓고 내린 장난감 우주선이 외계와 교신하더니 우주 관람차가 솟아오르는 장면은 상상력과 동심을 자극한다.●고학년 동화로는 심리극, 성장 소설 등이 제격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책으로는 ‘감자가 싫은 날’, 내 기분은 여름이야, ‘비밀 유언장’, ‘제1차 세계 동물 정상회의’ 등이 있다. ‘감자가 싫은 날’(지혜진 지음, 바람의아이들 펴냄)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진주의 심리를 다뤘다. 진주의 엄마는 노점상에서 값을 치르지 않고 감자를 가져왔고, 이 일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진주의 비밀이 됐다. 책 속 주인공의 심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져 아이들이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기원한다.‘내 기분은 여름이야’(변선아 지음, 근하 그림, 창비 펴냄)는 13세 사춘기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정음이는 자전거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망설여지지만, 친구 슬아의 권유에 따라 용기를 내서 자전거에 오르고 바람 속에서 그리워하던 아빠를 느낀다. ‘비밀 유언장’(이병승 지음, 최현묵 그림, 서유재 펴냄)은 돌아가신 줄 알았던 주인공의 외할머니가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병원에서 처음 만난 아픈 할머니는 시골집에서 유언장을 찾아보라고 하고, 주인공은 도서관 관장을 하셨던 할머니의 정신적 유산에 공감하게 된다. ‘제1차 세계 동물 정상회의’(그웨나엘 다비드 지음, 시몽 바이이 그림, 권지현 옮김, 토토북 펴냄)는 생물들이 사라질 위기의 2030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키드는 처음 열리는 세계 동물 정상회의 취재를 간다. 연사로 올라오는 쇠돌고래, 톱상어, 침팬지, 거미 등의 발언을 통해 지구를 위기로 내몬 인간 세상을 꼬집는다. 기후 변화 위기에 처한 인류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환상을 다룬 그림책 등 모든 학년 아이들에게 공감 이밖에 모든 학년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는 ‘고양이와 함께한 날의 기적 WILD’, ‘난 나의 춤을 춰’ 등이 있다. ‘고양이와 함께한 날의 기적 WILD’(샘 어셔 지음, 이상희 옮김, 주너어RHK 펴냄)는 고양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애쓰지만, 고양이의 마음을 알기 쉽지 않은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창문 너머로 탈출한 고양이를 쫓아 환상적 세계로 들어서면서 독자도 모험에 푹 빠져들게 된다. ‘난 나의 춤을 춰’(다비드 칼리 지음, 클로틸드 들라쿠르아 그림, 이세진 옮김, 모래알 펴냄)에서 오데트는 부모님에겐 비쩍 마른 딸, 친구들에겐 너무 뚱뚱한 애로 여겨진다. 사탕과 초콜릿을 좋아하는 오데트는 동경하던 작가 레어 다비드를 만나게되고 작가는 다른 사람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꿈을 키울 것을 권유한다.
  • [오늘마음읽기]“코로나 블루로 멈춘 삶, 시선이 두려워요”

    [오늘마음읽기]“코로나 블루로 멈춘 삶, 시선이 두려워요”

    <9회>내 마음 들여다보기 코로나가 삼킨 일상, 우울감 호소하는 사람들다른 이와 비교하고 자책…자존감 사라져작은 것부터 해내며 성취감 느끼는 연습타인과 비교 말고, 작은 성취하면 칭찬하기#편집자 주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오늘하루 마음읽기’에서는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마음속 이야기를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명이 친절하게 읽어드립니다. 아홉 번째 회에서는 코로나19 탓에 우울감에 빠진 건우씨 이야기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신재현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 들려드립니다. 건우(가명)씨는 진료 전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답답하다며 이야기 도중 가슴을 치기도 했죠. 그를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는 절박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건우씨는 해외 명문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인정받는 학생이었던 그는 오랜 타지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 탓에 국내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2020년 초, 졸업 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기부터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죠.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파급력, 공포와 함께 코로나 사태는 그의 삶을 뒤바꿔 놓았어요. 요즘 우리의 삶처럼 말이지요. 그에게 코로나 사태는 단순히 마스크를 써야 하고, 만남을 줄여야 하는 불편함 그 이상이었습니다. 삶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지요. 성공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오랜 타지 생활에서의 힘듦을 고국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매일 TV에 나오는 확진자 수에 따라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처음에는 ‘금세 끝날 거다’, ‘그러고 나면 기회가 올 거다’ 하고 스스로 다독였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인 마음은 줄어들었습니다. 건우씨는 점차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집 밖에 나서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속으로만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돼 버렸습니다. 건우씨는 또다시 무기력에 빠져들어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습니다. 자기 비난을 시작할 때면 내가 왜 살아야 하나,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나,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그의 머리에서 끊임없이 떠올랐고, 불안한 감정은 그를 종일 괴롭혔지요. 페이스북에서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의 타임라인을 발견한 순간, 건우씨는 그때의 절망스러운 감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속의 친구는 직장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말쑥하게 차려입고 샴페인 잔을 들며 활짝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차마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직장은 건우씨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다른 사람들은 삶을 속도를 내어 살아가는데, 내 삶은 왜 멈춰있는 걸까?’이 모든 변화가 고작 반년 만에 일어났습니다.●코로나 블루가 뭔가요?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한 우울, 무기력,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된 질병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일상적인 우울감, 혹은 우울증과는 그 궤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병 자체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우리 삶에 스미는 무기력이 코로나 블루의 특징이라 할 수가 있겠네요. 나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공동체, 국가, 그리고 전 세계가 이러한 무기력감과 두려움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인류에게 공포를 주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규명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아직도 명확한 해결책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 자체가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언제 끝날지 모르니 두렵고, 항상 피부에 와닿는 모든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한 시점의 사건을 뜻하는 코로나 ‘사태’라 표현하기보다 새로운 시절의 시작, 코로나 ‘시대’로 부르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의 현실적인 부분도 흔들립니다. 바이러스로 잔뜩 위축된 삶은 대인관계와 직업적 영역 전부를 쪼그라들게 합니다. 뉴스나 신문에서는 연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줄어들기만 하는 여러 경제적 숫자들, 반대로 늘어나기만 하는 확진자 수를 이야기합니다. 정부의 대응 단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두려움은 커지고, 또 반대로 우리의 삶은 더욱 좁아지기만 하지요. 참 팍팍하고도 힘든 시절입니다. 건우씨는 코로나 블루에 빠졌습니다. 그는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거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더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무너진 삶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지는 것도 그런 탓이겠지요.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대, 우리 마음의 형태 기대했던 것, 자신 있던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의 마음에는 절대적인 절망만 가득합니다. 잔인하게도,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이 이 상황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다른 이들과의 비교, 그리고 자책이 반복되는 거지요. 반복의 끝엔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것 밖에 안되는 존재구나” 하는 식의 회한만 남게 됩니다. 이렇듯 코로나 블루 상태의 마음 안, 우리의 자존감은 풍화돼 갑니다. 우리의 뇌는 상황을 일반화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상황이 길어질수록, 뇌는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설’을 ‘정설’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생존이 최우선인 뇌의 기능 탓입니다. 우리는 항상 현재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려 합니다. 미래는 항상 미지의 영역에 속하지만, 우리 뇌는 어떻게든 이를 추론하려 하고, 또 대비하려 분주합니다. 고대의 원시인이든, 현대인이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아주 미묘한 단서만으로도 미래를 그리려 하고, 또 그에 맞추어 생존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항상 ‘정답’만을 내어 놓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정확하고 이성적인 추론에 근거하기보다 감정에 휘둘립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두려움, 무기력감 탓에 뇌는 그릇된 판단을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 상황이, 이 마음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요. 절망의 늪으로 점점 빠져드는 과정인 것이지요. ●코로나 블루,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면 참 어려운 시절이고, 힘든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로나 사태에 대한 마음의 대비책은 이 상황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먼저, 코로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상한 비유로 들리지만 코로나는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오는 장마, 날이 추워지면 이따금 찾아오는 폭설과 같은 것으로, 즉 삶에서 가끔 맞이해야 하는 불청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니 인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물러가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삶의 출발점을 코로나 시대에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상황을 인정하고, 좀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마음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언제 끝나나, 대체 언제 끝나나’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보다 ‘어쩔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자’는 생각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건 당연하겠지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반발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마음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또 껴안아야 하겠지요. 우리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이전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작은 것일지라도요.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껴 나가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좀 더 많은 긍정의 점수를 매겨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건우씨의 경우처럼 모든 계획이 다 어그러진 상황일지라도,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에 시선을 돌려 작은 성취를 마음 안에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지요.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는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하기’와 ‘아무것도 하지 않기’와 같은 양자택일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고요. 그렇다면 그 둘 중 ‘무엇인가를 하기’를 좀 더 자주 선택하는 거지요. 당장 사람들을 만나거나, 거창한 일을 계획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방에 온종일 머무르기보다 집 근처를 짧게나마 산책하는 것으로도 충분해요. 처음에는 세수도 하지 않고 나가보세요.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는 필수니까 아무도 모를 겁니다.그냥 편한 옷 그대로, 부담 갖지 말고 시작하는 거예요. 땅을 보고 걷지 말고, 변하는 나뭇잎의 색을 살피고, 피부에 와 닿는 계절의 온도를 느끼고, 하늘에 걸린 구름의 크기를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서는 잘했노라고, 오늘 집에만 있고 싶었는데 참 대견하다며 자신을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칭찬은 굉장히 대단한 것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티끌만큼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오늘 한 선택은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날의 보람과 작은 성취는 다음 날의 또 다른 ‘무언인가를 하는’ 선택으로 이끌게 될 테고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SNS),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에 걸린 누군가의 자랑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는 마세요. 어느 시점의 언젠가 우리 또한 분명 그런 모습일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작은 것들을 쌓아 올리면서 코로나 시대를 견디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필자인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을 맡고 있다. 현직 의사들이 운영하는 정신의학신문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중증 질환은 물론 평범한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쉽게 설명해준다. 저서로는 ‘나를 살피는 기술’이 있다.
  • 김순호 구례군수, 750명에 수해 복구 감사 서한 ‘눈길’

    김순호 구례군수, 750명에 수해 복구 감사 서한 ‘눈길’

    김순호 구례군수가 수해 1년을 맞아 자원봉사와 구호물품을 보내온 민간인과 기관단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서한을 보내 눈길을 끌고 있다. 8일 군에 따르면 김 군수가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수해로 절망에 빠진 주민들을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 297명과 기부물품 후원자 453명 등 750명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지난달 말 전한 편지에는 일상 회복 소식에 덧붙여 다시 일어서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 군수는 서한문에서 “수해를 겪은 지 1년이 지났다. 유례없는 섬진강 범람으로 군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막대한 재해 앞에 막막한 마음만 앞서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구례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회고했다. 이어 “전국 각지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땀 흘리며 삶의 터전을 일으켜 세웠고, 수재민들은 기부물품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었다”고 되돌아 봤다. 또 “이제 우리 구례는 일상회복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고 있다. 수해의 원인이 밝혀지고, 수재민들께서는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밟는 중이다”며 “이러한 재해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도 속속 추진하고 있다”고 진행상황을 알렸다. 김 군수는 “많은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모든 군민의 마음을 모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감사한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귀하의 헌신을 오랫동안 기억하겠다”며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으니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바란다”고 인사를 마무리했다. 감사 서한문을 받아본 A씨는 “복구 지원을 위한 봉사활동을 다녀와 그 후 소식이 궁금했는데 잊지 않고 군수께서 편지를 보내와 반갑고 안도가 된다”며 “하루속히 일상을 회복해 평범한 행복의 의미를 되찾기 바란다”고 기대감을 보냈다. 김 군수는 “전국에서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에 감사의 마음을 새기고 있다”며 “서한문으로나마 수해 후의 진행상황을 알려드리고 군민과 함께 고마움을 피력하고 싶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구례군 수해비상대책위에서는 섬진강 수해원인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주민 피해배상을 위한 환경분쟁조정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례군도 민간대책위에 협력하고 수해의 항구적인 복구와 주민재난금 긴급지원을 통해 복구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오늘부터 여덟 번째 박승비 개인전, 코로나 시대 숨쉬기와 마음의 빗질

    오늘부터 여덟 번째 박승비 개인전, 코로나 시대 숨쉬기와 마음의 빗질

    박승비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 ‘숨; 비로소 숨을 쉬다’가 1일 오전 10시부터 7일 낮 12시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H갤러리에서 열리는데 코로나 시대 중견작가의 고민이 어느 지점을 향하는지 엿보게 한다. 박 작가의 이번 전시는 숨쉬는 행위를 통해 원기(元氣)를 흡입함과 동시에 정신이 원기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지극한 즐거움을 얻게 된 결과, 인간이 스스로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절대 자유인인 지인(至人)이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홍익대 일반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2010년 12월 ‘은유와 상징 속에 노닐다’전, 2012년 12월 ‘은유와 상징 속에 노닐다2’전(이상 갤러리 이즈), 2015년 4월 ‘다시 봄 노닐다’전(갤러리 M), 2018년 12월 다전박승비학서전 陽陽陶陶(백악미술관2층)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부스 개인전까지 포함하면 여덟 번째다. 박 작가의 <氣 , 숨결> 연작은 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공기이며 이것을 들이마시는 것이 숨쉬기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림이자 글씨, 즉 이 두 가지가 합체된 ‘서화(書畵)’이다. 서화는 본래 근원이 같았다[書?同源]고 박 작가는 단언한다. 고대 중국에서 그림과 글씨는 한 몸이었고 분리되지 않았다. 상형문자 자체가 문자이자 그림이었다. 박승비 작가는 그림과 글씨가 분리되기 이전의 원시적 상태였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림과 글씨의 근원을 살펴보고 있다. 박 작가의 그림 주제는 철학적 성찰을 담아 무겁게 느껴지지만 자연스러운 숨쉬기처럼 경쾌하고 청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코로나가 창궐해 숨쉬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의 흥취(興趣)가 번뜩이는 작품들은 숨통을 뻥 뚫어줄 수 있다. <주요 작품 소개><숲 숨>, <숲 숨결>은 수목이 번성한 숲에서 숨을 쉬면서 원기를 흡입하고 자유로운 몸이 되는 체험을 그린 것이다. 작가에게 숲은 절대적 자유의 쉼터이다. 이 쉼터에서 그는 모든 세속의 번뇌를 넘어선 절대적인 고요함, 즉 정적(靜寂)의 세계를 발견하였다. 숲은 고요하다. 사람이 침범하여 소리를 내지 않는 한 숲은 조용하고 자연의 소리만이 들린다. 고요한 숲에서 사람은 평안함의 희열을 느낀다. <안安>은 박승비 작가의 말처럼 “모든 생각이 멈춰지고 호흡이 고르게 되면서 이르는 편안한 상태”를 보여준다. 안(安)은 안식(安息), 즉 평안한 숨쉬기를 의미한다. 숨이 고르게 되면 모든 잡다한 생각이 사라지고 사람은 절대적인 자유와 행복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기氣, 숨결> 연작은 장지에 흙을 발라 먹 또는 먹과 분채를 가한 후 표면을 긁어낸 작품으로 기(氣)는 마치 자유로운 물, 생동하며 우주를 떠도는 에너지의 흐름처럼 표현되어 있다. 원기를 들이마시면서 형성된 숨결은 바로 이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다. 원기와 일체가 되면서 정신은 생동하는 에너지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하게 된다.<수어지교水魚之交> 또한 <氣, 숨결>과 동일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품이다. 물고기는 물을 만나 살아간다. 인간이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이 물고기는 물을 만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이 숨을 쉬면서 원기와 일체가 되듯이 물고기는 물을 만나 하나가 된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아가듯 사람은 원기 속에서 정신의 절대적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물과 원기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경계는 사라지고 만물은 하나가 된다.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 사유, 관습은 모두 원기를 만나게 되면 허상이 되어 사라진다. 숨통이 트인다는 것은 사회적, 관념적 구속(拘束)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숨을 쉬는 것은 절대적 자유의 획득을 의미한다. 정신이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게 되면 우리를 속박해 왔던 고정관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무無>,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서 세상의 만물은 순간마다 생멸(生滅),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과 숨 쉬는 것의 상징성을 결합하여 원기 속에서 일체가 됨으로써 인간은 모든 경계를 벗어나 절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無何有之鄕>은 내 마음의 이상향, 자연 그대로의 세계로 절대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곳에 대한 박승비 작가의 염원을 보여준다. 작가는 정관자재의 경지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마음을 올바로 챙기는 일의 중요성을 와 <기氣, 숨결 - 마음을 빗다> 연작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는 ‘마음챙김’의 중요성을 물이 가득 찬 도자기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사람은 마음을 늘 정화(淨化)해야 하며 정화된 마음은 맑은 기(氣)로 분출된다고 박승비 작가는 생각하고 있다. <氣, 숨결 - 마음을 빗다>는 흐트러진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 즉 마음에 빗질을 함으로써 정관자재의 경지를 항상 유지하려는 박승비 작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림 표면에 보이는 선(線)들은 바로 마음 빗질의 흔적이다. 마음 빗질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관련된다. 항상 마음을 빗질하면 인간 번뇌의 근원인 무지(無知), 즉 무명(無明)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항상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그의 이번 전시회 작업노트를 살짝 엿보자. ‘작업을 시작하면서 숨을 고르게 한다. 화면 위에 색을 올리고, 흙을 쌓아 올리고, 다시 긁어내고, 무수히 반복되는 작업 속에 어느 사이엔가 가쁜 숨이 잦아들고 숨 쉬는지조차 가늠이 안된다.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은 변한다는 無常을 마음에 두고 작업을 한다. 점차 형상을 지워나가면서 화면은 점점 단순해진다. 단순해진 화면에 마음을 모은다. 작업을 통해서 생각을 비워내고 마음을 고요히 한다. 비워진 만큼 보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길 소망한다. 2021년 여름이 끝나가는 즈음에 박승비’
  • [영상] “하늘을 날고 있어요”…소떼가 헬기에 매달린 이유

    [영상] “하늘을 날고 있어요”…소떼가 헬기에 매달린 이유

    스위스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여름을 지낸 소들이 익숙한 듯 헬기에 실려 하늘을 나는 모습이 공개됐다. 로이터 등 해외 언론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클라우젠패스 인근의 해발 1950m의 산악지대에서는 일명 ‘소들의 비행’이 이어졌다. 헬리콥터에 매달린 안전망에 몸을 실은 채 공중을 날아 초원지대로 내려온 소들은 약 10마리에 달한다. 소들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침착하게 비행을 마쳤으며, 이 과정에서 부상당한 소는 없었다.소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높은 산악지대에서 내려온 것은 다리 부상 때문이었다. 여름철에는 고산지대에서 지내다 가을에는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다리를 다쳐 산길을 걷기 어려운 소들을 현지 구조대가 헬기를 동원해 구조한 것. 스스로 이동이 가능한 소 1000마리 가량은 직접 산비탈을 걸어 내려왔고, 부상을 입은 소들은 현지 농가 주민과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헬리콥터에 연결된 안전망에 탑승한 뒤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현지의 한 농가 주민은 “자동차로 접근하지 어려운 일부 목초지와 부상을 입어서 걷지 못하는 소는 헬리콥터로 이송시키고 있다”면서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은 아니고 잠시의 고요한 비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안전하게 내려온 소들 중 치료가 필요한 소들은 곧바로 수의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이들은 스위스에서 가장 큰 알프스 목초지인 우어너보덴으로 옮겨질 예정이다.한편 스위스에서는 계절에 따라 목동이 모든 소떼들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연한 풀을 찾아다니는 소떼들을 위해 전담 목동들은 마을 소떼를 전부 몰고 알프스 고지대에서 여름을 보낸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목동과 소가 마을로 복귀하고, 알프스의 가을 축제가 시작된다. 축제는 화려한 퍼레이드로 시작하는데, 수백 마리의 소떼가 초원을 가로지르거나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시장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이어진다.
  • 100년 전을 곱씹다… 짜장면·호텔도 다 ‘최초’

    100년 전을 곱씹다… 짜장면·호텔도 다 ‘최초’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서 인류는 최초 타이틀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도 오르고 남극도 갔다. 관광산업에서도 ‘최초’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무엇이든 최초가 있다면 많이들 찾아가서 보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개항을 통해 가장 많은 ‘대한민국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도시가 있다.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개항도시 인천(당시 제물포)이다.인천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서해와 한강이 만나는 곳에 백제 비류가 ‘최초’로 도읍한 미추홀(인천의 옛 지명)은, 한반도에서 신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당시의 ‘미래도시’였다. 그곳이 현재의 인천 중구 개항지다.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인천은 또 하나의 ‘미래도시’를 세웠다. 연수구 송도국제도시다. 이곳은 외세가 아닌 대한민국이 주도해 미래를 펼치는 곳이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이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인근에 조성 중인 송도국제도시는 미래를 투영하는 듯한 첨단 건축물과 도시 인프라 속에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 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중구 개항장과 연수구 송도국제도시는 서로 이어져 있다. ●‘최초’가 열린 1883년 제물포 … 거대한 박물관이 되다 1883년 인천이 개항했다. 일본과 청나라, 서구 열강의 사람과 물자가 밀려들어 오는 ‘개항장’이 됐다. 당시 조선에선 신문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외교관들의 사교 모임이 열렸던 제물포 구락부 건물(유형문화재 제17호), 인천개항박물관(구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구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중구생활사전시관(구 대불호텔) 등 근대식 건물이 지금도 중구청 앞 개항장 문화거리를 차지하고 있다.아랫길로는 항만 창고를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역 쪽 건너편으론 차이나타운이 있으며 답동성당과 내리교회, 내동성당 등 국내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시설도 그대로 남아 있다. 개항장 시절부터 물자를 교류하던 신포시장까지 걸어서 한 번에 돌아보기 좋다. 이 일대는 온통 ‘최초’투성이다. 그것도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과 밀접한 것들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온갖 최초들과 마주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다.차이나타운. 온통 붉은색 간판을 내건 중국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최초의 짜장면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중국 산둥에서 건너온 화교 1세대가 고안했다. 개항장 부두 노동자를 칭하는 ‘쿠리’(苦力)들이 부둣가에서 싸고 푸짐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을 볶아 국수에 얹어 준 음식이다. 이후 청나라 조계지에 짜장면을 파는 식당이 많이 생겨났다. 1905년 개업한 산동회관은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83년 폐업했으며 그 건물은 현재 차이나타운 짜장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차이나타운에서 개항장 거리로 내려오면 최초의 호텔 대불호텔이 나온다. 1888년 일본인 해운업자 호리 리키타로가 인천항 앞에 서양식으로 지었다. 3층 양옥건물에 다다미방 240개, 침대방 11개를 갖췄다. 당시 숙박료는 1원 50전~2원 50전으로 주변 일본 여관의 고급객실 숙박요금 1원에 비해 훨씬 비쌌다. 현재는 역사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철도가 처음 놓인 곳도 인천이다.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1899년 9월 18일 완공됐다.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시작한 사업을 일본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양도받아 진행했다. 최초 운임은 상급좌석 기준 1원 50전으로 대불호텔 기본 숙박요금과 같았다(자고 가는 게 나았을 듯).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시속 20㎞로 1시간 40분 걸렸다. 야구와 축구 경기도 인천을 통해 들어왔다. 야구는 1904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면도날이 아니다)에 의해 도입됐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본인 학생에 의해 인천 창영초등학교(구 인천공립보통학교)에서 야구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창영초는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모교이기도 하다. 축구는 개항 전인 1882년 8월 영국 군함 플라잉피스호 수병들이 제물포에 상륙해 축구경기를 했다는 공식기록이 남아 있다.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1888년 만들어졌다. 훗날 맥아더 장군 동상이 들어서게 되는데, 2016년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역을 맡은 리암 니슨과 꼭 닮아 화제가 됐다.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면 1895년에 지어진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이 있다. 원래 이름은 협률사. 1920년대 애관극장으로 바꿨다가 6·25 때 소실되고 1960년에 현재 모습인 2층 극장전용관으로 새로 지었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등대도 팔미도 등대가 최초, 담배 공장도 동양연초회사가 최초다. 담배 공장이 있으니 성냥도 필요하다. 성냥 공장도 1917년 문을 연 인천 조선인촌회사가 최초다. “인천의 성냥공장~”으로 시작하는 ‘불량한’ 구전가요도 이 때문에 나왔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 없으면 못 마십니다”로 유명한 코미디언 고 서영춘의 만담. 왜 인천이고 사이다인가. 최초의 사이다 공장인 인천탄산수제조소가 1905년 일본인 히라야마 마쓰타로에 의해 신흥동에 생겨난 까닭이다. 생산품은 ‘별표(星印) 사이다’였고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실제 볼 수 있는 건축물도 많지만 없어진 것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박물관 역시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최초의 전신국, 전화국, 기상대 등이 들어와 쇄국하던 조선에 선진 문물을 알렸다. 해외 이민의 역사도 인천에서 출발했다. 하와이 파인애플 통조림 회사의 창업자 돌(Dole)이 대한제국에 이민을 요청한 이후 1902년 12월 22일 최초의 이민선 갤릭호가 한인 101명을 싣고 제물포항에서 출발했다. 공식 해외 이민 1호다. 하와이 교포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피땀 흘려 돈을 모았다. 이 돈을 독립자금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고국에 공과대학을 세우라고 성금도 냈다. 그리해서 생겨난 학교가 인하대학교다.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땄다. 월미도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당시 이민의 자료를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쫄면과 닭 강정 등 인천에서 최초로 탄생해 전국으로 퍼진 문화가 많다. 개항장 지역은 인천의 원도심으로 1970년대부터 다양한 먹자골목이 위치했다. 차이나타운 이외에도 밴댕이 골목, 신포국제시장 먹거리 골목이 있으며 물텀뱅(아귀) 골목과 동인천 삼치거리도 멀지 않다. 개항장 거리엔 고풍스러운 근대 석조건물과 왜식 목조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이 중에는 구 우선주식회사 건물처럼 커피숍과 베이커리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 쉬어가기 좋다. 커피의 역사 역시 인천에서 시작됐음을 알고 나면 기분이 달라진다. 100여년 전 인천, 커피잔을 기울이는 개화기 신사라도 된 기분이다.(그는 친일파였을까?)고풍스러운 전동차량을 타고 근대역사 전문해설사와 함께 개항장 거리를 한 바퀴 도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있다. 1인 1만 5000원(30분). 인근 월미도의 ‘그 무서운’ 놀이기구 바이킹과 디스코팡팡도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아이콘이며 이곳을 두루 잇는 바다열차 모노레일도 타볼 만하다.●다리 하나 건너면 송도… SF 영화 한 장면을 마주하다 개항장이 있는 중구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송도국제도시다. 전체 면적은 약 53.4㎢로 서울 여의도의 16배 크기다. 도시 외관부터 첨단의 느낌이다. 통유리 건물이 직육면체가 아닌 각각 다른 형태로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프로토스(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외계인 종족)를 납치해 설계를 맡겼는지, 미래지향적 건물 일색이다. 빙과류 ‘더위사냥’처럼 시원하게 생긴 마천루(포스코타워)를 비롯해 USB 메모리처럼 생긴 건물도 줄줄이 서 있다. 그렇다고 마냥 차가운 철골의 도회적 분위기만은 아니다. 녹지도 많다. 곳곳에 푸른 잔디며 정원이다. 도심에는 실개천도 흐르고 작은 호수도 있다. 센트럴파크 위에선 보트를 띄우고 유유자적 도심의 낭만을 즐긴다. 코마린 보트하우스 선착장이 동서 양쪽에 하나씩 있다. 원래는 투명보트, 파티보트 등 6종을 대여했지만, 방역수칙이 강화된 요즘은 구름처럼 생긴 구루미 보트, 문 보트라 불리는 초승달 모양 보트만 탈 수 있다. 은은히 보트 아래를 비추며 시시각각 색이 바뀌는 불빛이 특징인 문 보트(3인 3만 8000원)는 야간에 더욱 인기다. 사실 실제 타는 이들보다 바깥 산책로에 있는 이들에게 더 좋은 사진을 제공한다. 대신 탑승객들은 수면 위로 깔리는 시원한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사방으로 펼쳐지는 송도국제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푸른 밤하늘이 머리 위를 덮으면 하나둘 불을 밝히는 첨단 미래도시의 가로등이 물 위로 비친다. 해외 도시여행을 떠나온 듯한 낯선 풍경에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다. ■100년 뒤를 엿보다… 마천루·낭만도 다 ‘최신’미래 그리는 또 하나의 인천 송동송도는 과거 유원지로 유명했다. 지명도 송도가 아닌 옥련리였는데 일제강점기던 1937년 일본 자본이 해양유원지로 개발하며 이름을 ‘송도’라 바꿨다. 조수간만의 차를 없애고 해수욕장 수질을 유지하고자 수문을 달았다. 수인선 개통과 함께 송도역이 생기고 유원지로서 인기도 올랐다. 1970~1990년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이름은 해수욕장이지만 호수라 해도 될 정도로 잔잔해 여름이면 많은 이들이 몰렸다. 관광호텔도 생기고 유명 식당 등 인근 편의시설도 많았다. 송도국제도시가 조성되면서 송도유원지는 결국 2011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폐장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중고차 수출단지로 활용되고 있다. 거대 도시 송도 곳곳에 쇼핑단지도 먹거리촌도 잘 조성돼 있다. 외형을 근사하게 잘 지어 놓으니 콘텐츠가 저절로 찾아와 공백을 메우는 셈이다. 130여년 전 작은 어촌 제물포가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미래를 지지하는 중심도시로 변모했다. 아스라한 과거와는 달리 급작스러웠던 개항, 개화기 당시 인천으로 물밀듯 들어온 첨단 신문물과 문화는 당장 대한민국 근대화와 현대화의 길을 밝히는 탐조등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같은 공간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바다 건너 월곶에서 바라본 송도국제도시가 하늘에 그리는 미려한 윤곽 속에서 새로운 개화(開花)의 서막을 볼 수 있었다. ●‘맛’있는 도시… 중구와 송도의 탐미(耽味) 코스 의외로 인천은 냉면 본향이다. 본래 황해도 출신이 많이 살았던 인천. 서양 공관이 있던 조계지에서 자투리 고기를 구해 냉면 육수와 꾸미(고기붙이)로 썼더니 ‘인천 냉면 맛있다’고 입소문이 났다. 자전거로 신작로를 달려 서울까지 냉면을 배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경인면옥은 평양 출신 사장이 1947년 개업해 3대째 이어 오는 노포로 인천 냉면의 본류를 자부한다. 메밀을 쓴 평양식 냉면(1만원)이다. 사곶냉면은 황해도 식에 섬 특유의 문화가 섞여든 냉면(8000원)이다. 백령도 사곶에서 탈출(?)한 냉면으로, 돼지뼈를 우린 육수에 메밀 면을 말아 낸다. 독특하게 까나리 액젓을 한 방울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화평동 냉면골목도 빼놓을 수 없다. ‘세숫대야 냉면’이란 별명이 말해 주듯 가게마다 커다란 사발에 가득 담긴 냉면(6000원)이 정말 푸짐하다. 한참을 먹어도 줄지 않는다. 물론 맛이 없었다면 벌써 없어졌다.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와 챙겨 먹는 ‘서울 손님’도 많다.하얀백년짜장을 파는 만다복은 차이나타운의 인기 음식점이다. 춘장을 쓰지 않고 볶아 낸 고기양념장을 면발에 비벼 먹는 방식이다. 졸깃한 면발과 오이채에 짭조름한 고기볶음을 듬뿍 올리고 다진 마늘을 곁들여 비비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느낌의 백년짜장(7000원)이 완성된다. 100년 전 초창기 짜장면 방식이라고 한다.송도유원지 시절부터 유명했던 ‘송도갈비’는 수원왕갈비, 포천 이동갈비와 함께 ‘수도권 3대 갈비’라 불린다. 그리 달지 않고 간장과 과일만으로 재워 낸 양념소갈비를 숯불에 올리면 간장이 타들어 가며 구수하고 달큼한 불향을 내는데 이게 입에 짝짝 붙는다. 부드러운 한우 갈비를 잘 숙성 양념해 저렴하게 파니 예전 유원지 시절처럼 가족외식 코스로 딱이다.미추홀타워 별관에 위치한 한식당 ‘참예그리나’는 정갈한 메뉴에 하나하나 정성 깃든 찬을 내는 집이다. 한정식 상차림이 기본인 보리굴비 특선(1만 7000원)과 불고기정식(1만 6000원) 등이 유명하고 저녁상에선 한우차돌전복삼합이나 유황삼겹전복삼합 등 삼합류를 많이들 찾는다.송도 바다쏭은 한옥과 모던한 건물을 조합한 독특한 외관의 카페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내부와 탁 트인 전망창이 좋은 곳이다. 에스프레소(6000원)와 에그타르트, 크루아상 등 다양한 수제 빵이 맛있어 잠시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송도갈비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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